- 다시, 100일 정진 100일차 

 

폐하.

진평(陳平) 이제 오래 말을 붙들고 있을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폐하께, 신이 살아왔던 지난 초한전쟁부터 삼십년 간을 마지막으로 아뢰고자 합니다.

 

신은 일찍이 항우 진영에 있었사옵니다.

홍문연에서 처음으로 한왕을 뵈었고, 그날 신은 한왕을 통해 천하의 향방이 누구에게로 기울 것이지 어렴풋이 보았습니다.

이후 신은 항우를 떠나 한왕께 귀의한 것도, 결국 그날의 인연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의 항우는 말도 못할 정도로 강했지만 결국 천하는 한왕의 손에 들어 갔습니다.

고조께서 천하를 얻은 것은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신은 고조께서 한왕 시절, 항우와 싸운 전반 십오 년의 천하쟁패와 고조께서 돌아가시고 궁중에서 이어진 후반 십오 년의 피바람을 모두 겪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신의 하는 말은 한낱 늙은 신하의 넋두리가 아니라, 초한지 삼십 년을 끝까지 건너온 한 사람의 진술이라 여겨 주십시오.

 

여태후께서 돌아가실 신의 마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진시황제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때의 진나라는 외부의 적에게 먼저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황제의 빈자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내부에서부터 무너졌습니다.

환관 조고는 욕심으로 자리를 더럽혔고, 명재상 이사는 제국의 무게를 알면서도 끝내 그 무게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태후가 죽은 , 신은 두려웠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 무척 겁이 났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한나라 마저 진나라의 뒤를 따를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우리에게 수습해야 문제는 진시황 사후보다 어려웠습니다.

여산을 비롯한 여씨 일문은 이미 왕과 요직의 자리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병권 또한 그들 손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는 한 그 어떠한 것도 수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정국을 안정 시키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권력 집단을 벗겨내고도, 나라가 다시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은 유방 황제가 저희에게 남겨 유훈에 따라 다시 조정을 개혁해야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핏줄보다 병권을 먼저 확보해야 했고, 명분보다 순서를 먼저 정해야 했습니다.

주발(周勃) 칼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은 칼을 언제, 누구에게 향하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씨를 벤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뒤에 누구를 세우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유씨 성을 가진 아무나 앉힌다고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피로 얼룩진 궁궐은 이름 하나 바꾼다고 곧장 맑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황제를 고르는 일은 핏줄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다음 질서의 얼굴을 고르는 일이었습니다.

신은 가장 먼저 폐하를 생각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유방 황제의 8명 황자들중에 *4번째 황자 이셨습니다. 2대 효혜제 (유영)께서 일찍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분의 후손인3대와 4대는 모두 어려서 사직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 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여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하셨으나 가볍지 않았으며, 온화하셨으나 약해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세상을 뒤흔들 상은 아니지만, 세상을 안정시킬 만한 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공신들은 움직였습니다.

여씨 일족을 제거하고, 병권을 거두고, 여씨의 천하를 다시 유씨의 이름 아래로 돌려놓았습니다.

걸음은 단순한 정변이 아닙니다.

진시황 사후 무너졌던 제국의 빈자리를, 이번에는 다시 무너지지 않게 초석을 닦는 일이었습니다.

 

천하쟁패의 십오 년은 유방 황제와 항우가 천하의 주인을 다투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후반 십오 , 유방 황제가 죽은 뒤 혈통과 후계와 외척이 칼이 되어 벌어진 또 하나의 초한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되기까지 도합 삼십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고조께서 나라를 세우고 나서 다시 나라의 기틀을 잡는 마지막 수가 폐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심으로 비로소 마무리될 있었습니다.

 

진정한 천하쟁패의 끝은 유방 황제께서 천하를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태후가 권력을 것으로도 아니었습니다.

죽은 자들의 자리를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처리하는가, 바로 그것이 진정한 천하쟁패의 마지막이라고 신은 여겼습니다.

폐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신 순간에서야 신은 비로소 알았습니다.

유방 황제는 밖에서 나라를 세우셨고, 여태후는 안에서 그 나라를 피로 붙드셨습니다.

폐하의 즉위는 그분들이 흘리신 위에서 처음으로 제국이 안정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신 겁니다.

이제야 비로소 천하는 안정되었고 한은 오래 이어질 제국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 진평은 장량 같은 깊은 계책을 쉽게 내놓지 못합니다.

또한 소하처럼 조정의 실무도 능숙하게 처리도 합니다.

신은 걸음 물러서 있었고, 숨을 죽여야 할 때 숨을 죽이며 버티기만 잘 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는 신을 두고 그저 살아남은 사람이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신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았기에 마지막 판을 볼 수 있었고, 끝내 마지막 질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폐하.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그가 영웅이든, 황제이든, 반역자이든 죽음과 함께 그의 소리도 닫힙니다.

그래서 역사란 끝내 살아남은 자들의 진술만 남게 됩니다.

항우는 전설이 되었고, 유방 황제는 나라를 남겼으며, 여태후는 피를 남겼습니다.

, 진평은 그 남겨진 것들 위에서 마지막 질서를 골랐습니다.

 

이제 신이 바라는 것은 뿐입니다.

폐하께서 성군이 되시어 한나라를 오래 이끌어 가시는 것과 폐하께서 어서 빨리 태자를 책봉하는 것이옵입니다.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나라의 주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은 진의 몰락을 보았고, 또 한의 피바람도 보았습니다.

부디 이제부터 폐하의 한나라는 다시는 그런 주인이 없는 재앙을 겪지 않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신이 떠나게 되면 신의 장례는 검소하게 치러 주십시오.

신이 끝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이 나라가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삼십 년간 불었던 피바람을 지나 겨우 봉합된 나라가 기틀을 잡아 부디 오래토록 이어진다면, 신의 삶 또헛되지 않았다고 여길 수 있을 겁입니다.

 

, 진평은 비록 명재상은 아니었을지라도, 폐하께만은 끝내 좋은 재상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폐하, 신은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부디 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 주옵소서.


 By Dharma & Maheal

 

: *4번째 황자: 유항(劉恆BC 203년 ~ BC 157년) 으로 유방의 8명의 아들 중 나이 순으로 네번째 임.유항의 어머니는 유방에게 그리 사랑받지는 못했으나, 아주 처신을 잘하여 여태후 눈에 띄지 않아 이들 모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음. 훗날 태종 효문황제(太宗 孝文皇帝) 가 됨. 보통 한문제  부르며 한나라 치세중 가장 성군으로 불리게 . 그로인해 그동안의 내외적 혼란을 전부 정리가 되고 이후 한경제, 한무제로 이어지는 한나라 400년 기틀을 만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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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99일차 

 

여후가 죽었다.

내게는 다른 항우가 죽은 것과 다름 없다.

전쟁터에서 항우를 마주한 다는 것은 공포 자체 였다. 궁정에서 여태후 또한 그러했다.

항우는 성밖에서 기세로 천하를 짓눌렀고, 여태후는 궁 안에서 눈 빛으로 사람의 숨을 눌렀다.

그들 앞에서는 숨소리조차 함부로 없었다.

 

사람들은 항우가 죽은 초한지가 끝났다고 말했지만, 틀렸다.

항우는 해하에서 죽었으나, 항우가 남긴 공포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것은 여태후의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였던 것이다.

 

나는 원래 패왕 항우 곁에서 책사로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강함을 지켜봤다.

그는 기세로 사람을 압도했고 기세만으로도 사방을 떨게 만들었다.

반면에 여태후는 항우와 달랐다. 그녀는 항우처럼 기운으로 사람을 누르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여인의 몸에 깃든 냉담한 의지는 항우 못지않게 사람을 떨게했다.

그녀의 내려 보는 빛은 뾰족한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로왔다.

여태후의 빛은 깊이를 없는 냉담함 속에 감춰진 날이었다.

항우가 성밖의 패왕이었다면, 여태후는 궁 안의 패왕이었다.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나를 감싸야 했다. 그래서 숨을 죽였다.

 

왕릉은 나와 달랐다. 그는 곧은 사람이었다.

여태후가 여씨 일문을 왕으로 세우려 , 왕릉은 정면으로 반대했다.

한고조가 창업을 공신들과 함께 맹세한 *백마지맹(白馬之盟)  이유로 들었다.

맹약에서 유씨가 아니면 왕이 없고, 이를 어기면 천하가 함께 친다고 맹세를 했다.

왕릉은 맹약을 언급하며 우리를 향해 호통을 쳤다.

어찌 이제 여씨 집안을 끌어 들여 맹약을 깨려 하느냐고.

충신의 말은 옳다.

하지만 너무 옳아서, 오히려 그 자리에서는 쓸 수 없는 말이었다.

여태후는 불쾌해했고, 왕릉은 곧 파직 되었다.

곧은 말은 때로 사람을 빛내지만, 옳고 곧은 말이 나라를 살리지는 못한다.

 

나는 여태후 앞에서 절대로 맞서지 않았다.

우리는 고개를 숙였다.

여태후는 그런 우리를 보고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나는 왕릉에게 말했다.

조정 한가운데서 얼굴을 맞대고 다투는 일이라면 내가 왕릉만 못하다.

그러나 사직을 보전하고 유씨의 후사를 안정시키는 일이라면, 왕릉이 우리만 못하다.

 

나의 말은 변명이 아니다. 그것은 나만이 사직을 지키는, 왕릉과 다른 방식이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처세라 부를 것이다.

맞다. 처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처세가 목숨이었고, 목숨이 있어야 다음 판도 있었다.

 

나는 고조께서 살아 계실 때부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비참한 말년을 지켜 보았다.

한신은 참을 줄은 알았으나 굽힐 줄은 몰랐다.  

팽월은 전쟁이 끝난 , 쓸모가 없어졌다. 영포도 마찬 가지다. 심지어는 고조와 같은 패현 출신이었던 노관과 번쾌까지 무사하지 못했다.

오히려 고조가 사수의 정장시절 부터 대립했던 옹치는 말년까지 무사했고, 항우 집안의 항백도 항씨 후손을 이을 수 있었다.

이들을 보며 내가 깨우친 것이 하나 있다.

 

권력자에게 토사구팽을 당해 죽는 이유는 미움을 사서가 아니었다.

대개는 두려움을 샀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밉상이어도 살아남을 있다.

그러나 황제가 두려워하는 순간, 그때부터는 그 사람의 목숨은 위태해 진다.

여태후 밑에서는 법칙이 잔인해졌다.

그녀 앞에서는 잘못된 한마디가 반역이 되었고, 지나친 충성조차 오히려 의심을 샀다.

칼이 안으로 들어오면, 밖의 요란한 전쟁보다 안의 소리 없는 전쟁이 더 모골이 송연해진다.

 

나는 그것을 너무나도 많이 지켜봤다.

그래서 너무 높이 날지 않으려 했고, 너무 앞에 서지 않으려 했다.

숨을 죽여야 때다. 여태후가 살아 있는 동안은 바로 그런 때였다.

여태후의 아들 유영, 혜제가 죽은 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유씨의 천하라기보다 자기 피붙이들을 왕으로 세우고 지키는 일이었다.

여태후에게 유씨가 세운 한나라는 점점 의미가 없어졌다.

그렇다. 그녀는 권력의 화신이라기 보다, 끝내 집착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집착은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나에게 기다림은 비겁함이 아니다. 적어도 이 궁 안에서는 그렇다.

 

나는 여태후를 섬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없었다면 한이란 나라는 바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녀를 거스를 없는 시간 속에서 목숨과 선제가 남긴 한나라의 다음 시간을 함께 저울질하며 버틴 것이다.

이제 여후는 죽었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절대권력이 사라진 자리는 바람을 부르고야 만다.

 

우리에게 선택해야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다시 한번 피바람이 세차게 몰아 것이다. 어서 움직여야 할 때다. 지체해선 안 된다.

살아 있는 , 진평(陳平) 여후의 죽음 이후를 수습해야만 한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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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98일차 

 

훗날 사람들은  내가 척부인을 인간돼지 (彘: 체) 만든 일부터 나를 기억할 테지?

사건 이후 나는 악랄한 여자, 악독한 여자, 피로 권력을 지킨 냉혈한 황후로 여겼을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러나 사람은 하루아침에 괴물이 되질 않지. 심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절망이 지속되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분노로 바뀌고, 분노가 나를 잠식하는 순간이 오는거야. 이때는 이미 내 손에 칼이 쥐어져 있더라구.


나는 참고 견디다  황후가 됐어. 그런데 말이야,  황후의 자리가 곧 남편의 곁에 있다는 뜻이 아니더라구.황제 곁에는 늘 척부인이 있었어. 그 젊은 여자는 가까이 있었고, 난 멀리서 지켜 볼 수밖에 없었어.

여자의 질투라고? 그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내가 제일 미워한 것은 여자의 태도였어. 그 여자는 내 아들 유영(劉盈)  ()하고 자신이 낳은 아들 유여의(劉如意) 태자로 책봉해달라고 황제에게 간청한 거야. 척부인은 황제의 총애만 믿고 우리를 제거하려고 했던 거야.

 

분노로 몸을 떨지 않을 없었어. 내가 어떻게 유영을 키웠는데?  

전쟁 난리 속에서도, 항우의 손아귀 안에서도,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내가 끝까지 지켜냈는데...

이제 와서 감히 아들 위에 서려는 계집의 아들을 황제에 오르게 해달라고?

더구나 유방은 어느새 유여의가 자기와 닮았다고 말하고 다녔어.

요망스러운 여자의 말에 황제가 속았던 거야.

내가 두려워한 것은 여자에게 남편의 사랑을 빼앗기는 일이 아니야.

보다 문제는 아들의 자리와 목숨까지 함께 흔들리고 있었던 거야.

그동안 내가 어떻게 견뎌온 시간인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결국 나는 장자방을 찾아갔어. 무릎을 꿇고 유영을 지켜달라고 애원했지.

장자방은 뜻을 알고 *상산사호(商山四皓) 끌어 들였지.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태자는 폐위가 되었을 테지....

그래도 나는 안심하지 못했어. 척부인이 무슨 음모를 꾸며 다시 또 지 아들을 계승시키려고 할 지...

 

유방이 죽자 나에겐 이들 모자를 번에 죽일 기회가 왔어.

조나라 왕으로 있던 유여의를 장락궁으로 불러들였어. 내 아들은 황제에 올랐어도 마음은 나와 지 애비처럼 독하지 못해. 오히려 여의가 어리다고 형으로서 돌봐 주는 거야. 난 다급했지. 황제 모르게 처리해야 했거든. 그래서 황제가 사냥 나간 틈을 타서 독주를 먹여 죽여 버렸어.

황제는 몰라. 그 아이를 살려 두는 한 내 아들 유영은 결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없어.

이런 일은 애미에게만 보이는 법이 거든.


다음은 바로 척부인을 붙잡았어.

나는 그녀의 팔다리를 자르고, 눈을 뽑고, 귀를 자르고,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었어.

그리고 돼지우리에 던져 넣었지. 인간돼지로 만든 거야.

내가 잔인하다고? 그래. 그때의 내 눈에 그 여자는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질 않았던 거야.

여자가 팔다리를 가지고 했던 모든 짓을 멈추게 하고 싶었어.  그래서 잘랐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만들었어.

내가 미쳤다고? 난 복수를 한 거야. 단지 잔인하게. 척부인에게 당한 무시와 공포가 그들 모자를 그렇게 만든거야. 세상사람들이 날 욕해도 좋아. 패현 시절 여치는 예전에 이미 죽고 나, 여후만 남았어.

황후야.  이 궁궐 전체가 모두 내 뜻대로 움직여야해.

이상 나도 구석에 숨어 숨죽여  지내지 않을 꺼라고.

 

혜제(惠帝) 유영은 나중에 참상을 보고 우울증을 앓게 되었어.

어미가 행동이 사람이 짓이 아니라고 내게 소리쳤지.

아들에게 말을 직접들은 나의 마음은 찢어 졌지만 애는 정말 몰라. 내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사건 이후 혜제는 국정 일에 관심을 잃었어. 내가 대신 관여할 수 밖에 없게 되었어.

그러다 아들 혜제는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지.

어쩌면 애미의 업보를 받았다는 소문도 듣게 되었지.

아니야. 혜제가 죽은 게 나 때문이 아니야.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나 때문이 아니라고.

 

유영마저 죽고 나니, 내 주위엔 아무도 보이질 않아.

아무도 곁에 오지 않으려고 . 궁정안의 대신들은 모두가 날 무서워 해.

그래서 나는 유일한 친족인 여씨 집안을 궁중에 불러들이고 싶었어.

내게  남은 혈육은 여씨 친족만 남은 거야.

세상은 권력에 향한 탐욕이라 부를지 모르지.

하지만 내게 그것은 마지막 남은 피붙이를 붙드는 일이었어. 그래서 여씨 집안을 거침없이 궁안으로 끌어들였지. 그러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서늘한 그림자가 남아 있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저들은 모두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해.

내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두려워 . 개국공신들 조차도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해.

이제 두려워 하던 존재가 아니라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바뀐거야.

내가 그토록 무서워 했던 항우를, 여기 궁정에선 내가 항우가 된 거야.

항우가 주는 공포를 아주 알지.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의 숨을 턱 막히게 하던 공포 말이야.

지금 궁궐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는 바로 나야. 나는 드디어,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그 존재가 되어버린거야. 그래 난, 궁안의 항우가 된 거였어.

 

그런데 아쉽게도 나의 지독했던 천운이 다해가.  살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거든.

남편이 밖의 적들과 싸웠다면, 나는 궁궐 안의 적들과 싸워야 했어.

내가 죽게 되면, 내 유일한 피붙이인 여씨 집안은 어떻게 될까.

남편이 세운 나라는 계속 남을까. 아니면 진나라처럼 다시 혼란 속으로 무너질까.

내가 죽은 뒤의 일은, 또 다른 살아남은 자가 말해 주겠지.

 

By Dharma & Maheal  


:    *상산사호(商山四皓):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산시성(陝西省) 상산(商山) 숨어 지내던 사람의 선비를 말함. 모두 흰 수염을 기르고 있어, 흰 호()가 쓰였음. 유방이 천하쟁패 시절, 상산사호를 모셔 오려고 했으나 도무지 모실 수가 없었는데 태자 책봉 문제로 여후가 어려움을 장량에게 상의하자 장량이 모셔와 태자 유영 곁에 세웠다. 이에 유방은 상산사호가 유영을 비호하는 것을 보고서는 척부인 아들 (유여의)로 교체할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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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97일차 


세상 사람들은 나를 여후(呂后)라고 부른다. 어떤 이는 나를 두고 독한 여자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악랄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 여후는 악녀로 알려졌다.

내가 남긴 피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마지막 얼굴일 뿐이다.

얼굴이 만들어지기까지 내가 어떤 시간을 건너왔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 여치(呂雉) 본래 여씨 집안의 부잣집 딸이었다.

아버지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며, 나를 패현의 한 사내에게 시집 보냈다.

사내의 이름은 유계였다.

처음 그를 마주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건들거리며 묘하게 웃는 사내는 사수의 정장 노릇을 한다고 했지만, 옷차림은 번듯하지도 않고, 말과 행동은 어딘가 가벼워 보였다.

눈에는 유망한 관리라기보다 술과 장난에 빠져 사는 사내로 밖에 보였다.

이런 남자에게 내가 시집와야 하는지, 당시에 어렸던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완고했다.

“저 사람은 그릇이 크다. 네가 아직 모른다.”

믿지 않았다.

눈에는 그저 집에 붙어 있지도 않고, 패거리들과 어울려 웃고 떠드는, 어딘가 미덥지 못한 사내였으니까.

 

시집온 내가 먼저 배운 것은 남편의 사랑이 아니라 집안의 살림이었다.

시부모를 모셔야 했고, 형님 식구들까지 챙겨야 했으며, 집안의 빈 구석은 늘 내 손으로 메워야 했다.

남편은 동생이라 부르는, 어설픈 패거리들을 데리고 마을 곳곳에 참견하고 다녔다.

그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밤낮으로 드나들었고, 나는 술상을 차리고 밥을 내고 뒤를 치웠다.

그들은 나를 형수라 불렀고, 나는 겉으로는 웃으며 그 소리를 들었지만 속으로는 한숨이 많았다.

부잣집 규수로 자라던 내가 어느새 시골 아낙이 되어 있었다.

옷소매를 걷고 밥을 짓고, 아이를 안고, 집안을 지키고, 술 취한 사내들 뒷자리를 치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훗날 나를 얼마나 질기게 버틸수 있게 만들었는지.

 

유계는 이상한 사내였다. 미덥지도 못했고, 집안을 잘 돌보는 남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그와 술을 마시고 떠들던 패거리들은 그를 얕보면서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허풍치고, 때로는 한심해 보일 만큼 느슨했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그를 중심으로 모였다.

나는 여러 생각했다.

사내는 대체 무엇이 있기에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가.

처음에는 몰랐지만, 세월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나라의 명령으로 죄인을 호송하게 되었다.

걱정도 되었지만 무사히 빨리 돌아오기를 빌었다.

유계가 호송하던 죄인들이 도망쳤다는 소문이 들렸다. 이제 남편은 더 이상 패현으로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사수의 정장에서 하루 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삶도 같이 바뀌었다.

남편이 도망자가 집안이 어찌 평안할 있겠는가.

이때부터 내게 불안은 일상이 되었다. 이제 오히려 예전 사수의 정장 시기가 그리웠다.

유계는 산으로 숨었고, 패현은 들 끓었다.

 

마침, 진은 무너지며 천하는 흔들렸으며, 어제의 관리가 오늘의 도적이 되고, 오늘의 도적이 내일의 장수가 되는 세상이 왔다.

유계는 패공이 되어 돌아왔다.

패현에서 마시며 건들 거리던 사내가, 이제는 사람들이 칼을 맡기고 목숨을 거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는 놀랐다.

그러나 놀랄 틈도 없이 세상은 우리를 시대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다.

 

패공의 아내가 되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졌겠는가.

짓는 손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고, 불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불안과 근심은 커져만 갔다.

패공의 아내라는 말은 좋은 옷감이 아니라, 더 큰 근심으로 짠 옷 같았다.

유계가 진을 멸하러 나서고, 다시 서쪽으로 가고, 다시 항우와 맞서게 되는 동안 내 삶도 함께 전장으로 끌려 들어갔다.

 

천하 사람들은 초한쟁패를 유방과 항우의 싸움으로 기억하겠지만, 내게 그저 그 시간은 그저 살아남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유계가 패현을 떠난 뒤의 일곱 동안, 내게는 하루하루가 칼날 위에 선 것 같았다.

잡혀 죽을까 두려웠고, 버려질까 두려웠고, 내 아들과 딸이 변을 당할까 두려웠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항우라는 이름이 공포에 몰아 넣었다.

 

이름은 사람의 이름이라기보다 재앙 같았다.

항우가 이겼다는 말이 들리면 가슴이 내려앉았고, 유계가 또 살아남았다는 말이 들리면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항우에게 사로잡혀 있던 시간은 지금도 몸이 먼저 기억한다.

나는 포로였다. 목숨이 내 것이 아닌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고, 언제 모욕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가장 잊을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시아버지께서 기름이 끓는 앞에서 죽음에 내몰리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역시 시아버지와 함께 기름 솥에 빠지게 두려워 몹시 떨었다.

무서운 항우의 마디에 사람의 목숨이 달렸던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나는 몸으로 알았다.

세상은 도리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힘이 없으면 효도도, 명분도, 눈물도 다 소용없다는 것을.

 

유계가 살아남고, 또 살아남아 기어이 항우와 맞서는 동안 나도 억척같이 살아남았다

동시에 나의 마음은 점점 변해져 갔다.

순진하게도 남을 의지하거나, 언젠가 편안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들은 아무 소용도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버텨야 했다.

유계가 끝내 천하를 얻어 황제가 되면, 이 지옥 같은 세월도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패현의 형수로 세월도, 포로로 떨며 견딘 세월도, 자식의 목숨을 품에 안고 버틴 날들도, 언젠가는 다 지나갈 것이라 믿었다.

 

마침내 믿을 없는 일이 발생했다. 항우가 죽은 것이다.

그리고 유계는 황제가 되고 한나라가 세워졌다.

천하는 모두 그의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유계의 세상이 되었다고 했지만 내게는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다른 두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항우는 분명 죽었지만, 항우에 대한 공포는 죽지 않았다.

 

황제가 남편 곁에 있는 거대한 이름들, 한신, 팽월, 영포를 볼 때마다 나는 늘 예전의 항우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세상은 이미 유씨의 천하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도 천하는 완전히 남편의 손에 들어온 것 같지 않았다.

 

한신은 남편을 보는 같았고, 팽월은 음흉했으며, 영포는 너무 사나웠다.

그들을 경계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한 두려움은 분노로 변했다.

분노는 쌓여서 독한 마음으로 굳어졌다.

나는 그때 부터 그들을 남편 대신에 먼저 제거하기로 마음 먹었다.

바깥의 적이 사라졌다고 해서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무서운 싸움은, 우리가 쌓아온 것을 지키는 싸움이었다.

 

패현의 형수 노릇만 하고 있어서는 더는 궁중에서 살아남을 없었다.

술상을 차리는 손만으로는 궁궐 적들의 칼을 막을 없다.

이때 나에 남겨진 것은 하나였다.

죽음을 오가는 끝에 끝내 남은 것은 독함 뿐이었다.

독함은 생존이라는 체에 거르고 걸러진 생의 하나 남은 결정체였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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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09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라판 <사랑과 전쟁>이군요.
신구 아저씨를 조금만 일찍 만났다면 여후의 일생은 평안해질 수도 있었건만....신구가 부여하는 4주의 시간만 있었어도...

마힐 2026-04-09 21:34   좋아요 0 | URL
4주의 시간, 충분히 숙고할 만 한데...
그건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신구 아저씨의 판결을 들을 여후가 아닐 것 같습니다.
여후는 아저씨를 먼저 쓱싹 처리해 버릴 것 같습니다. ㅎㅎ
 

- 다시, 100일 정진  96일차 


패현에 돌아왔다.

사람들은 내가 천하를 얻어 드디어 금의환향을 했다고 말할 것이다.

사수의 정장 노릇이나 하던, 유씨 집 망나니 셋째 아들 유계가 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나이 마흔일곱, 내 고향 패현을 떠났다.

그때는 사실 사지로 가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 망할 놈의 진시황 노역에 죄수를 호송하던 길이 내 운명이 바뀔 줄이야.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죄수들은 도망갔고 나와 남아 있는 모두는 돌아가면 죽을 것이다.

이렇게 이상 남은 죄수들을 풀어주고, 나 또한 도망치어 숨어 살기로 했다.

그러나 선택이 나의 운명을 뒤바꿔 놓았다. 그래서 운명이란 놈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도망자 신세에서 패현으로 돌아와 보니 어느 내가 패공이 되었다.

그것도 잠시, 나와 형제들은 다시 패현을 떠나야 했다.

진을 멸하지 않고서는 패공이 되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패현을 떠나야만 새로운 나로 바뀌는 것 같다.

 

패현을 떠난 년동안 우리 형제들은 끈질기게 살아 남아 진을 몰아 냈다.

진은 무너져야 했고, 관중은 먼저 들어가야 했었다.

천하는 어느 마리의 용이 여의주 하나를 잡으려고 서로 다투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내가 황룡이라면 청룡 마리가 먼저 여의주를 잡고 있었다. 난 그걸 뺏으려고 덤비고 또 덤볐다.

여의주를 움켜 청룡, 그가 바로 항우다. 우리가 서로 차지 하고자 했던 여의주는 진이었다. 우리에게 진은 천하였고 여의주 였다.

항우는 강했다. 그는 정말 인간이 아닌 듯 했다. 세상의 기운이 그 한 사람에게 모두 들어 있는 것같았다. 그 앞에 서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몸이 먼저 떨린다. 나 역시도 늘 그랬다.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사실 나는 그보다 뭐든 떨어졌다. 전장에서는 늘 얻어 터지고, 언제나 도망다녀야 했다.

팽성에서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죽을 고비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넘겼다.

특히 홍문연에서의 술잔 앞에서는 정말이지 목이 떨어지는 알았다.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겨우 장자방과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촉으로 밀려났다.

이때 사람들은 아마 내가 거기서 끝날 알았을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 늘 졌으나 아주 무너지지는 않을 만큼만 졌다. 그건 정말 신기했다.

항우가 이길 나는 , 세 번 다시 일어섰다.

군사가 흩어지면 다시 모으고, 성을 잃으면 다시 취하고, 판이 깨지면 다시 어떻게든 짜버렸다.

한신, 장량, 소하가 있었고, 팽월과 영포 같은 자들도 그 판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항우처럼 천하를 혼자 짊어질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항우는 전투를 이기는 사람이었고, 나는 전쟁을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었다.

 

넷이 되어 항우는 죽고 나는 비로소 황제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거기서 초한지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해하의 노래가 끝났고, 오강의 칼이 떨어졌고, 한나라가 섰으니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때부터가 다른 시작이었다.

 

천하를 얻은 , 다시 일곱 해가 지났지만 나는 쉬지 못했다.

한신은 죽었고, 진희가 반란을 일으켰고, 흉노를 치러 나갔다가 백등산에서 포위되어 하마터면 모든 것이 거기서 끝날 뻔했다.

팽월과 영포 같은 이름들이 여전히 그림자처럼 곁을 맴돌았다.

황제가 되었으나 갑옷을 벗지 못했고, 천하를 얻었으나 마음은 늘 칼집 위에 얹혀 있었다.

 

돌아보면 삶은 묘하다.

앞의 일곱 해는 천하를 얻는 시간이었다.

뒤의 일곱 해는 얻은 천하가 흩어지지 않게 붙드는 시간이었다.

나는 번째 일곱 동안 패현의 유계에서 한나라 황제로 올라섰고, 두 번째 일곱 해 동안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무너질 수 있는 나라를 붙들고 있었다.

그러니 천하를 얻는 일과 나라를 세우는 일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항우를 이기는 것과 한나라가 되는 것도 같은 일이 아니었다.

 

나이 예순 하나, 이제 다시 패현으로 돌아왔다.

이제서야 돌아와 보니, 젊은 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항우만 넘으면 되는 알았다. 그러나 항우가 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천하를 위협하는 칼은 성밖에서만 번득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라를 세운 뒤에 바람이 궁궐 안을 향해 것이다.

이제 술이 돌고, 옛 얼굴들이 보이고, 고향의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 앞에서 나는 마침내 노래를 부른다.

 

大風起兮雲飛揚(대풍기혜운비양) / 큰 바람이 일어나니 구름이 날아오르고

威加海內兮歸故鄕(위가해내혜귀고향) / 위엄이 천하에 미치니 고향으로 돌아왔노라

安得猛士兮守四方(안득맹사혜수사방) /어찌 맹사를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할 것인가

- 대풍가(大風歌) , 유방

 

사람들은 노래를 승전가라 부를 것이다. 그 또한 맞다.

패현 출신의 비루했던 사내가 천하를 얻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승전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정작 마음은 마지막 구절에서 걸린다.

어찌 맹사(용맹스런 신하) 를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할 것인가.

천하를 얻었으나 아직 지킬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흔히들 이걸 수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성은 눈에 보이는 바깥 성만이 아니다.

바깥의 적은 이미 죽었으나, 안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내가 평생 싸워온 것은 항우였으나, 내가 죽은 뒤 이 나라가 다시 마주할 것은 항우 같은 적이 아닐 것이다. 혈통과 총애와 후계와 공신과 외척, 웃는 얼굴 속에 감춰진 음울한 눈빛과 침묵 속에 숨겨진 칼들이 궁궐 안에서 다시 천하를 흔들 것이다.

 

항우의 <해하가>가 한 영웅의 마지막 노래였다면, 나의 <대풍가>는 이제 앞으로 불게 될 불안한 시작을 알리는 노래인지도 모른다.

 

나와 항우의 초한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또 다른 초한전쟁은 다시 시작될 것 같다.

나는 패현의 바람 앞에서 그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내가 세운 한나라는,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또한 죽으면, 진시황 뒤의 천하처럼 다시 어지러워지는 것은 아닐까?

 

이제 남은 운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살아남은 자가 들려 주게 될 것이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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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07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방의 독백이 영화 자막처럼 초한지 끝자락을 장식하네요.

마힐 2026-04-08 01:30   좋아요 0 | URL
유방의 독백을 시작으로 초한지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시점으로 풀어 보고 싶었어요. 초한지는 비극적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혀지더라구요.
2천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현실 같아 몰입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