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68일차
<有即是無 /유즉시무/있음이 곧 없음이요,
無即是有/무즉시유/없음이 곧 있음이니>
사막의 모래 바람이 일어난다.
태양의 강렬한 빛 마저 가릴 정도로 모래는 바람으로 변하여 맹렬해진다.
어디가 앞이며 뒤인지 알 수없다.
동서도 없고 남북도 없다.
사막 가운데 서있는 나그네는 눈 앞의 모래 바람 속에서 안간힘을 내며 겨우 버틸 뿐이다.
낮에는 모래 바람과 내리쬐는 태양의 칼날 같은 뜨거움을 견뎌야 하고
밤에는 얼어 붙을 정도의 차가운 기온의 변화에 떨어야 했다.
걷고 걷고 또 걷지만, 사막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은 달팽이 보다도 더 느리게 느껴진다.
봐도 봐도 물이 있는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죽어 있는 어느 동물의 사체의 뼈만 간혹 눈에 뜨일 뿐이다.
저기 저 유골이 어쩌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전에
그저 두손을 모아 합장할 뿐이다.
사막의 경계는 나그네를 안에 가뒀지만 나그네는 오히려 사막의 경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극소동대(極小同大) 지극이 작은것은 큰 것과 같아서
망절경계(忘絶境界)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극대동소(極大同小) 지극이 큰 것은 작은것과 같아서
불견변표(不見邊表) 그 끝과 겉을 볼수 없음이라
유즉시무(有即是無) 있음이 곧 없음이요,
무즉시유(無即是有) 없음이 곧 있음이니
얼마나 걸릴지, 가다가 죽을 지도 모르는 사지를 벗어났다.
거친 사막의 죽음의 경계를 벗어난 나그네는 그토록 바라던 천축이 앞에 있음을 알았다.
나그네는 모든 것이 자신이 걸어온 것이 아니라 불보살의 인도였음을 깨닫게 된다.
나그네는 지나왔던 사막을 향해 아니, 자신을 돌봐줬던 불보살님을 향해, 아니 스스로를 향해
지극히 삼배를 한다.
그가 바로 제천대성 손오공(齊天大聖, 孫悟空)의 스승, 삼장 현장(三藏 玄奘, 602~664)이다.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라.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이즉 공이요, 공이즉 색이어라.
신심명의 구절과 반야심경 구절이 만나는 지점이다.
반야심경은 당나라 현장 법사가 고비사막을 건너 인도로 가서 가져온 대승경전 중의 하나이다.
신심명은 수나라 승찬(僧璨, ?년 ~ 606년)대사가 선(禪) 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노래한 것이다.
선이 대승경전의 경지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승찬 대사는 천축을 가지도 않았고, 경전을 보지도 않았다.
현장이 죽음을 무릎쓰고 건너간 천축에서 가져온 경전의 내용과 몸의 문둥병을 극복하고 마침내 얻은 깨달음의 경지가 서로 같음을 승찬 대사는 알고 있었을까.
진리는 여여(如如)하기 때문이라. 그러하니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모래 바람이 어느새 하늘에서 내리는 꽃 잎으로 흩어진다.
오공(悟空)이여!
본래 비어 있음을 깨달았는가.
현장의 물음에 오공은 말을 잊었다.

주: 有即: 있을 유, 곧 즉 : 있음이 곧
是無: 바를 시, 없을 무: 없음이다.
無即: 없을 무, 곧 즉: 없음이 곧
是有: 바를시, 있을 유: 있음이다.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