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86일차

 

400장 가까이 되는 문서를 노동국 창구에  제출했다.

내가 13년간 정식 직원으로 근무했다는 증거 서류들이다.

급여가 입금된 은행의 현금 흐름표, 세금 납부 기록, 업무 결제 보고서, 고객과의 업무 이메일, 결제를 받았던 각종 품의서와 기안서등의 서류를 변호사와 함께 추리고 추렸다.

변호사의 주장은 명확하다.

정식 직원으로 일을 했으며, 회사가 불법으로 해고 시켰다는 것이다.

나와 변호사는 이것을 입증해야 한다.

반면에 회사는 전혀 반대의 논리를 펼칠 것이다.

계약직이며, 회사는 불법 해고가 아닌 자발적 계약 종료일 뿐이라고 할 것이다.

회사가 어떤 증거를 제출할지 아직은 변호사도 모른다.

과연 나는 정식직원이었는가, 아니면 계약직이었는가

불법 해고인가, 아니면 합법적 계약 종료인가.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던 노동의 형태를 이런 식으로 다시 정의하게 몰랐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나올까.

나도 궁금하다.

 

이제 무언가를 보게 되고, 무언가를 듣게 되더라도

보는 것에, 듣는 것에 끄달리지 말자.

분명한 것은 앞에, 귓가에 들리는 모든 것은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현상은 잠시 드러났다 사라지는 것들이다.

내게 다가오는 현상을 그냥 마주할 있기 되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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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6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27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다시, 100일 정진  84, 85일차

 

문의 하러 왔는데요. 회사가 일방적으로 고용자의 비자를 취소나 말소를 시키는 경우도 있나요?

정상적이라면 쌍방이 업무 종결을 합의한 취업 비자를 취소 말소 시키는 게 맞습니다.

예외적으로 회사가 어떤 특수한 이유가 있다면 단독으로 비자 말소 신청을 수는 있습니다.

대신 심사를 해야 하는데 심사가 통과 되면 고용자의 비자는 종료가 되고 안으로 출국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회사와 노동 쟁의중일때는 비자 취소를 잠시 중단할 수는 없나요?

그건 회사와 상의해 보시죠. 저희들은 상급 기관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회사랑 협의를 보는 게 좋을 겁니다.

 

회사랑 협의가 안 되서 노동쟁의 신청을 했는데 어떻게 협의를 하란 말인가?

회사는 비자 말소라는 카드로 아예 나를 중국에서 보내려는 시도를 같다.

이제 시작된 노동쟁의인데 회사는 현재 공격적인 수단을  꺼낸 셈이다.

강제 추방이란 수를 꺼내 회사.

달리 보면 이런 수를 밖에 없는 회사의 조급함이 느껴진다.

덩달아 역시도 혹시나 하는 조바심도 든다.

회사도, 나도 우리는 서로 조급해 하고 있다.

노동쟁의 자체 판을 뒤집으려면 회사는 나를 중국에서 보내야 한다.

어떻게해서든 노동쟁의를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쫓아내려는 자와 안간힘을 쓰고 버티는 .

팽팽하다.

 

오후에는 은행에 다시 들러 지난주 받았던 은행 현금 흐름 명세표를 받으러 갔다.

서류 뭉치는 500장 정도 되어 보였다.

13년 치 모든 내역을 뽑아다 준 것이다.

내가 필요한 부분만 달라고 요청했는데도 그걸 일일이 사람이 체크해서 짜집기를 해야 한단다.

은행 시스템이 내가 생각하는 자동 처리 방식이 아니라 도무지 이해가 됐다.

하지만 여기는 중국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받아 들여지게 된다.

다시 1시간 기다렸다. 

문서 , 한 장에 도장을 찍느라 어쩔 수가 없었다.

은행의 매니저 간부 직원 말로는 자기들도 낙후 방식인 것을 알고 개선 중이란다.

 

내가 26년 전 중국의 은행에서 제일 놀랐던 점이 은행 창구가 전부 유리로 막혀 있다는 것이었다.

유리도 엄청 두꺼워 마이크를 켜서 대화를 해야 하는 정도였다.

게다가 당시엔 버스를 타도, 택시를 타도 운전석 부분엔 전부 유리로 막아 놨다.

은행, 택시, 버스에 쳐진 칸막이 유리를 보고 혹시 강도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충격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놀란 것은 은행의 업무 처리 속도였다.

어찌나 느리게 업무를 처리 하는지...

그런데 2026년인 지금도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서류 하나 발급 받는데 이틀에 걸쳐 5시간을 기다렸으니 말이다.

 

하루 종일 밖으로 다니니 금방 피곤해진다.

피곤하면 만사가 귀찮아 진다.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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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82,83일차


아니, 장난 하세요? 도대체 무슨 일을 지금까지 하신 거예요? 이게 뭡니까?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내고야 말았다. 나의 큰 소리에 은행 안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다시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월요일날 고객님 댁으로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매니저 급으로 보이는 급하게 직원이 다가와서 사과를 했다.


아니요. 됐어요. 제가 월요일 오전 9시 까지 다시 올께요. 그때 까지 꼭 만들어 주세요.


으름장.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키가 큰 여성 매니저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사실, 나도 이렇게 까지 고함을 지를지 몰랐다.

4시간 전, 오후 3시 정각, 북경 왕징에 있는 한국계 은행에 들어섰다. 

노동국에 내야 할 자료 중에 은행에서 입출금이 된 내역들이 있다. 

회사와의 노동관계를 입증하려면 회사가 내 개인 계좌로 보낸 급여및 비용들을 정리해서 발급을 받아야 한다. 

이 정도 업무면 은행에서 금방 될 줄 알았다.


번호표 8번, 오전부터 오후까지 나를 포함에 내가 8번째 고객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은행은 한가했다. 창고에 내 신분증을 주고 내가 요청하는 서류에 대해 설명한 후 창구 여직원의 업무를 기다렸다.

직원 말로는 자료가 본점에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고, 내가 요청한 자료의 검색 기간이 10년이 넘는 지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미리 내게 양해를 구했다.


好的(하오더), 没问题(메이원티)! 좋아요, 문제 없어요. 라며 기분 좋게 유리 창고 맞은 편의 앳딘 모습의 담당자에게 대답을 건넸다. 

그리고는 기다렸다.  기다림에 무료해서 유튜브도 시청하고, 미리 사온 커피도 마시며 그녀의 업무가 끝나길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자신의 컴퓨터에서 뭔가를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쯤 끝날까요?

글쎄요, 우리 쪽 은행에는 고객님 자료가 없어서 고객님이 개설했던 은행에서 자료를 받아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원래 중국의 은행은 계좌를 개설한 지점이 아니면 같은 이름의 은행이라도 업무처리가 상당히 느리다. 20년전 상해에서 만든 은행 통장을 말소를 하려고 하니 북경에선 안되서 상해에 가서 처리했던 이력이 있다. 

그만큼 중국의 은행 시스템은 폐쇠적이고 낙후된 면이 있었기 때문에 담당 직원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래서 또 기다렸다. 두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아직도.


시간이 지났다.


혹시 은행 퇴근할 시간이 아닌가요?

, 4시반에 은행업무는 끝났어요. 하지만 고객님 업무로 인해 연장 중입니다.

아이고, 이런 죄송하게도...


그러고 보니 은행 출입구 샷터문은 반쯤 내려가 있는데 은행엔 혼자 창구 앞에 앉아 있다

하지만 10명은 남짓한 은행 직원들 대부분은 서로 이야기를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드디어, 내가 요청했던 서류를 보고 서명을 해달라고 서류를 유리창 아래 구멍으로 건네 준다. 

서류를 보는 순간, 이거 잘못 됐음을 직감했다.


아니, 금액중 어느 것이 입금 된 것이고, 어느 것이 출금 된 것인지 표시가 전혀 없는 데요?

그건, 고객님이 직접 계산해 보면 알죠. 최종 금액에 금액이 많으면 들어 온 거고, 적으면 빠진 거죠. 직접 더해보고 빼보세요.


그럼 여지껏 은행에서 만들어 준다는 서류의 의미가 뭐란 말인가

허탈해진 마음 속에서 울분이 치솟았다. 

아니 그래도 한국에서 대표적인 이름을 가진 은행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일을 하지? 담당 직원에게 보다 은행 자체가 문제라 생각되었다. 

이러다 아마도 이 은행은 곧 문을 닫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 방문 고객이 총 8명, 내가 마지막 방문 고객인데 4시간에 걸쳐 해준 업무도 제대로 못하는 은행이 앞으로 계속 운영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무리 북경에 한국인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수준으로 까지 떨어졌는지 몰랐다.

한국에서 중국을 악마화하고 후진국이란 관점이 많은데, 요즘 중국의 관공서만해도 서비스 수준이 예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업무 태도와 처리 방식은 깔끔해졌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의 큰 은행은 예전 중국의20년전 수준으로 퇴보해 버린 것이다.


오늘도 진흙탕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내가 지녔던 여유도, 담담함도 이번엔 모두 진흙탕 속에 흠뻑 빠진 셈이다. 

내가 지녔다고 착각했던 여유도, 담담함도 사실 조급함의 다른 이름인 것은 아니였을까.

어쩌면 이번 노동쟁의가 아무런 소득 없이 결말을 맞이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나는 여전히 여여함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은행 서류 4시간. 중국 생활 26년이지만 아직도 적응 안된다.   

난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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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22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귤이 회수를 건너니 탱자가 되었군요.

저도 몇 년 전 중국 세무서에 갔다가 포기하고 왔어요. 십 년도 안된 세금 자료가 하나도 없다고 하더이다. 그 자료 들고 은행가서 현금 흐름 자료 신청 예정이었는데 안 가길 잘했네요. 환장할 뻔 했습니다.

마힐 2026-03-24 20:20   좋아요 0 | URL
진짜 성질 급하신 분들은 은행은 가지 말아야 돼요. ^^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은행 업무는 아마도 가장 발전이 안 되는 서비스 같아요.
 

- 다시, 100일 정진  81일차

 

애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에 안간힘을 쓴다.

아이의 표정은 굳었고 볼은 빨개지고 이마엔 땀이 맺혔다.

아이 바로 뒤에서 두 손으로 잡아 쓰러지지 않으려는 아이와 함께 나도 어느새 소리를 쳤다.

멈추지 말고, 계속 페달 밟아.

내가 손만 놓으면 아이의 자전거는 얼마 못가서 바로 쓰려져 버린다.

덩달아 아이도 같이 자전거 핸들을 놓쳐 버린다.

도대체 시간을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 초등 2학년때는 몸이 살이 많았다. 아니 그냥 또래 보다 확실히 뚱뚱했다.

운동 신경도 나를 닮아 별로 없는 같았는데, 자전거 타기를 연습 시키면서 확실히 운동 신경이 없음을 깨달았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으려면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발바닥으로 페달을 계속 밟고 돌려야 한다.

몸의 무게 중심을 페달에 맞추어 계속 이동 시켜야 한다.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서있지를 못한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페달, 그리고 핸들을 잡은 양손의 균형이 모두 고정되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으면 자전거와 몸은 기울어지고 급기야는 쓰러진다.

자전거에게 움직임은 세우는 것이다.

무게 중심을 옮긴다는 의식도 없이 그저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야 넘어지지 않는다.

결국 끊임없는 중심 이동이 바로 자전거가 달리는 원리이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어릴 때의 자전거 타기는 한번 배우면 평생을 간다.

 

정식 해고 통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회사 차를 반납하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회사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회사와의 소송이 매듭 지어지면 반납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결국 이번 주에 차량을 반납했다.

뒤로 나는 자전거를 다시 타기로 했다.

아이들처럼 어릴 배웠던 자전거 타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이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고, 다시 뒤에서 잡아주고, 페달을 밟게 하고, 뒤쫓아 가길 무수히 반복해서야, 어느덧 아이의 자전거는 넘어질 듯 안 넘어가며 갈팡지팡을 오고 갔다.

그렇게 비틀거리던 자전거는 서서히 중심이 잡히고 안정적으로 힘차게 달린다.

아이의 동년의 자전거 타기는 이제 내게 다시 이어져 노동 분쟁이란 자전거 타기로 투영되어졌다.

아이가 이제는 성인이 되어 자기 삶을 달려나가 , 나 역시도 이제 넘어지면서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정되지 말고 끊임없이 굴리자

그래야 넘어지지 않고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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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3-2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는 보통 어릴 때 아버지가 뒤에서 잡아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격려하며 아이가 잘 탈 때까지 가르쳐 주잖아요.
저의 아버지는 병약하시기도 했고 직장일로 바쁘셔서 그랬는지 자식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직까지 저는 자전거를 잘 못 타요. 언니는 자전거를 탈 줄 아는데 물어보니 친구에게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전에 남편이 저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는데 잘 타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마지막 지브리풍 사진 모습이 넘 정겨워요. <고정되지 말고 끊임없이 굴리자>
그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마힐 2026-03-21 21:21   좋아요 1 | URL
네, 페넬로페님 말씀처럼 그것이 바로 인생인 것 같아요.
제가 아들이 두 명인데 큰 애는 자전거 배우는데 제 기억으로 3시간이 걸렸다면, 작은 애는 30분 만에 혼자 쌩쌩 달리더라구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있는 중이겠죠?
그렇다고 모두가 자전거를 다 잘 탈 필요는 없겠죠? ^^
페넬로페님의 댓글 공유에 감사드리고, 다가온 봄을 느낄 수 있는 주말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_()_

yamoo 2026-03-21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아버지는 어렸을 때 자전거 타는 걸 잡아주기는 커녕 같이 놀아준 적도 없습니다. 항상 공부하라고만 닥달하고 공부 한자 안 가르쳐주면서 성적표 못 받아오면 때리기만 했지요. 그런 아버지가 나이 들어서는 대접안해준다고 화만 냅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아이 자전거 타는 걸 잡아주는 아버지...요즘 들어 생각해 보니 참 부러운 아버지입니다.

마힐 2026-03-21 21:12   좋아요 0 | URL
저는 우리 엄마한테 자전거를 배운 것 같아요.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우리 아버지가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 준 적이 없었요. 우리 엄마가 70이 넘으셨는데 작년 까지도 자전거 타고 다니셨어요. 그러다 공사중인 길에서 넘어지셔서 크게 멍드신 이후 지금은 안 타신다고 하세요. 이제는 나이가 드셔서 몸이 예전 같지 않으신 거죠.
아버지는 몸보다 기억이 점점 떨어지고 계세요. 부모님 두 분이 점점 예전의 모습과 기억이 희미해지고 계시네요. 그 희미함이 다하는 날이 이제는 점차 다가오는 것 같아 한편으론 먹먹하기도 하네요. 우리 애들은 생생해지고 나는 먹먹해지고, 부모님은 희미 해집니다. 그게 삶이겠죠?
야무님, 항상 즐거운 일만 생기시길 기원드릴께요.

잉크냄새 2026-03-21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전거의 두 바퀴를 이분법의 한 축으로 대치시키면 자전거 타기야말로 중도의 또 다른 비유가 아닐까 합니다. 이상과 현실, 진보와 보수, 희망과 절망, 빛과 어둠, 이성과 감성....어는 것 하나 잘났다고 먼저 나서려는 순간 자전거는 넘어집니다.

운동장에서 해가 저물도록 넘어지고 넘어지며 배우던 풍경이 떠오릅니다. ˝춘짜이지토우이스펀˝ㅎㅎ 이번주부터 다시 사이클링을 시작했어요.

마힐 2026-03-21 21:01   좋아요 0 | URL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사이클링의 속도가 느껴집니다. 페이창 하오!
잉크냄새님의 전성기 몸매가 이제 다시 복원이 되는 건가요? ^^
지아요!
 

- 다시, 100일 정진  80일차

새벽에 꿈을 꾸었다.

 

두 개가 서로 이웃으로 나란히 붙어 있다.

양쪽 모두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다니던 절에서 *천도재(薦度齋) 준비했다.

그런데 나의 천도재는 원래 다니던 절이 아닌 이웃에 있는 절에 가서 지내야 한단다.

원래 절에서 나의 위패와 , 초, 그리고 물을 챙겨 준다.

그걸 쟁반에 담아 이웃 절로 가지고 가는데 가만히 보니 초도 작고, 향도 단지 하나 뿐이다.

이웃 상단에 놓다가 그만 잘못하여 초를 넘어뜨려 불이 꺼지고 물에 빠져 버려 다시 없게 되었다.

, 잘 됐다. 다시 돌아가 얻어오자.

절로 돌아가니 내가 다니던 민턴 클럽에 가입한지 얼마 안된 여성회원이 초와 향들을 챙겨주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꿈에서는 이것 저것 챙겨주는 것이다.

헝겁 가방에 담아 이웃 법당에 들어가니, 내 위패를 놔둔 곳에 이미 초도 켜져 있고 향도 사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곳 스님께서 이미 독경까지 마친 상태였다.

스님 바로 뒤에 앉아 있던 절의 어느 청년법우가 나를 향해 옆에 앉으라고 한다.

내가 평소에 앉는 좌복보다 이웃 절의 좌복이 너무 커서 다시 돌아가 좌복을 가져 올까 하고 망설였다.

순간, 천도재가 끝났단다.

공양주 분께서 오늘의 재주분이 누구냐면서 *공양(供養)하고 가라고 모시러 왔다.

아니, 그 공양주분은 내 어린시절 친한 친구 어머니가 아니신가.

서로 너무 반가워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제는 아까 향과 초를 챙겨줬던 여성 회원까지 나타나 같이 공양간으로 가면서 꿈에서 깼다.

 

꿈은 아마도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무의식에서 만들어 같다.

천도재는 바로 현재 내가 치르고 있는 회사와의 분쟁을 해소하는 의식일 같다.

그리고 익숙한 절은 나의 기존 익숙한 상황이며 이웃 절은 새로운 환경에 처한다는 의미 같다.

향과 그리고 물은 실제 천도재에서 중요한 도구들이다.

아마도 분쟁에서 쓰일 법적인 자료나 증거를 상징할 지도 모르겠다.

여성 회원등장은 조력자 것이다. 익숙한 사람이 아닌 사람이 뜻 밖에도 도움을 줄 것 같다.

이웃 절에서 천도재를 이미 마쳤다는 것은 분쟁의 해소를 뜻한다.

그리고 좌복이 커서 망설였다는 것은 자리가  분명 크게 있지만 아직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무의식이 꿈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미 분쟁은 내가 어떻게 보는 단계가 아닌 같다.

이미 절차대로 진행 되어질 것이고, 이 과정 중에 여러 어려운 점이 분명 생기겠지만 다행이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되리라는 암시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가는데 까지 가보자.

이런게 자화자찬 아니겠는가?

 

 



*천도재(薦度齋): 불교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 즉 영가(靈駕)들이 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마음을 모아 정성을 드리는행사이다. 단순히 극락왕생을 비는 의식이 아니라 내가 전생에 알게 모르게 지었던 업들을 녹여내고 부처님의 법에 따라 수행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공양(供養): 시주할 물건을 부처님전에 올리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공양의 뜻은 아주 폭이 넓다. 수행적인 면에서 부터 배고픈 중생의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는 의미까지 두루 넚다. 여기서는 공양간 즉 절의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를 공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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