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61, 62일차

<要急相應/요급상응/재빨리 상응코자 하거든

唯言不二/유언불이/ 아님을 말할 뿐이로다>

<不二皆同/불이개동/ 아님은 모두가 같아서

無不包容/무불포용/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오늘 정진에서 신심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만났다.

신심명의 구절,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오직 간택하는 마음만 꺼리면 된다는 첫 구절을 뒷 받침하는 구절이 오늘 등장한 것이다.

오늘 구절에서 상응(相應) 불이(不二) 신심명 사상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분별하지 말라, 간택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불이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이 이기 때문에 서로 상응되는 것이다.

상응은 서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인연. 연기이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다.

이것과 저것은 개이지만 인연에 의해 상응하므로 불이가 된다.


 

요급상응(要急相應) 재빨리 상응코자 하거든

유언불이(唯言不二) 아님을 말할 뿐이로다

불이개동(不二皆同) 아님은 모두가 같아서

무불포용(無不包容) 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응한다는 표현을 현대적으로 풀이한다면 눈 깜짝할 변화하는 인연에 의한 관계라 보면 된다.

가족 가운데 아버지가 되고, 회사에서 부장이 되며, 부모님 아래에서 아들이 되는 나의 관계는 늘 고정 되지 않았다.

물건을 사면 손님이 되고, 차를 타면 승객이 된다.

인연에 따라 나도 모르게 순간 순간 우리는 많은 상응을 하고 있다.

그럼 아버지인 나와 아들인 그리고 부장인 나는 각각 다른 사람인가.

이름은 달라질언정, 나라는 인물은 변함과 변하지 않음의 둘이 아니다.

도리를 안다면 신심명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 것이다.

 

 

: 要急: 중요할 , 급할 급: 중요하고 급하다면, 즉 아주 급하다면

相應: 서로 , 응할 응:  서로 응하다.

 唯言: 오직 , 말씀 언: 오직 말할 뿐이다.

不二: 아닐 , 둘 이: 둘이 아니다. * 분별 이전을 뜻한다.

皆同: 모두 , 같을 동: 모두 같아서

無不: 없을 , 아닐 불: 아님이 없다.

包容: 쌓을 , 얼굴 용: 포용은 감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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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60일차

<眞如法界/진여법계/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無他無自/무타무자/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우주의 광활한 공간에서 지구라는 행성은 아주 보잘것없어 보인다.

태양계에 속한 지구는 은하계에서 중심도 아닌 변두리 쪽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우리가 속한 은하계 조차도 수많은 은하 하나에 불과하다.

우주는 우리의 인식이 상상하는 범위를 뛰어넘을 만큼 넓다.

가운데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상의 주인을 자처 하지만 과연 우주와 비교하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주 탄생의 파노라마에서 지구에 사는 인간이라는 종은 겨우 초짜리 시간에 불과 하다.

인간에게 탄생과 죽음은 대단히 중요한 같지만 우주의 생멸에 비하면 티끌도 안되는 같다.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지도 못한 100년도 안되는 한 생을 마치고야 만다.

우리는 살아야 하는 것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신이 있다면 인간을 만들었을까.

신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비사량처(非思量處) 생각으로 헤아릴곳 아님이라

식정난측(識情難測) 의식과 뜻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진여법계(眞如法界) 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무타무자(無他無自)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깨달음의 세계는 생각으로 짐작할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의 현상 세계는 너나가 있지만 진여법계에는 너나가 없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하지만 깨달음은 우리가 사는 현상계와 떨어진 이상 세계도 아니다.

깨달은 세계는 우리가 사는 지금 물질적 세계를 떠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사는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가 다르다면 그건 진실이 아니다.

진여법계란 진리의 근원적 세계이지만 또한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현상계는 그래서 신비하다.

우리의 존재가 신비한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 眞如:  , 같을 여: 참됨과 같다. 즉 진여란 바로 진리의 자리를 뜻함

法界:  , 경계 계: 법계는 우주를 비롯한 현상 세계 와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포함한 세계를 뜻함

 無他: 없을 , 다를 타: 다를 타는 즉 남을 뜻함. 남이 없고

無自: 없을 , 스스로 자: 스스로 자는 곧 나, 즉 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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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이름 2026-02-27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보고갑니다
 

- 다시, 100일 정진,  59일차

<非思量處/비사량처/생각으로 헤아릴  아님이라

識情難測/식정난측/의식과 뜻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空)  (虛) 단순히 비어있는 상태가 아닌, 비움이라는 상징을 보여주는 문자이다.

공이 고정될 없는 인연의 변화를 비움의 역동성을 포함했다면,

허는 보이지 않는 도심으로 비어 있지만 충만함의 근원을 표현했다.

비어있는 도는 만물의 기원이며 움직이지 않는 부동함이다.

부동한 자리를 허라고 한다면 움직이는 변화의 역동성은 바로 공이 아닐까.

() 허가 되고, 용() 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공의 뜻처럼 고정되지 않았다.

도는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체용불이(體用不二) 다.

그렇기에 공과 허는 같은 비움을 표현하지만, 상태가 아닌 상징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허명자조(虛明自照)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불로심력(不勞心力) 애써 마음  일이 아니로다

비사량처(非思量處) 생각으로 헤아릴곳 아님이라

식정난측(識情難測) 의식과 뜻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이것은 나의 얕은 생각으론 알려고 해도 헤아릴 없는 경지다.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 법성게(法 性 偈)  이러한 경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 깨우친 지혜로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경계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찍이 선지식들 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르겠다면 그냥 믿어라.

근본이 있음을 믿고 거기에 전부 맡기라고.

사실 의심은 믿음으로 가는 문과 다름 없는 것이 아닌가.

크게 의심해야 크게 깨닫는다는 것은 바로 뜻이 아닐까.

그러니 의심은 분별이지만 분별 또한 버릴 것은 아니다.

또한 깨달음으로 가는 통로가 되니까.

이제는 공이 굴러 간다.

 

 


: 非思: 아닐 , 생각 사: 생각은 ~ 아니다.

量處: 헤아릴 , 곳 처: 헤아릴 곳

識情:  , 뜻 정: 안다는 것과 뜻으로는 즉 의식과 뜻으로는

難測: 어려울 , 잴 측: 재기 어렵다. 즉 측정하기가 어렵다.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 신라 시대 원효대사와 더불어 신라불교의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침.

원효대사가 해골물 사건으로 당나라 행을 접어 신라에 남았으나 의상대사는 끝까지 당나라에 가서 화엄경을 완전히 체득하고 돌아옴. 그때 남긴 화엄경의 정수를 단지 210글자로 표현한 것이 법성게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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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58일차

<虛明自照/허명자조/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不勞心力/불로심력/애써 마음쓸일이 아니로다>

 

(虚) (空) 다르지 않다.

비었다  뜻이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불교에서 공은 단순히 비어 있다는 상태가 아닌 비움이라는 상징  가깝다.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처럼, 공은 멈춰있는 비움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안에서 공은 쉴 사이 없이 돌아간다.

멈춤이 있는 비움이 아니라, 늘 고정되지 않고 돌아가는 비움이 공이다.

우리가 인연에 의해 모였다가 흩어지는 순간에 발생하는 고정됨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내가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되고, 부장이 되고, 손님이 되고, 승객이 되는 모습은 고정되지 않는다.

찰나의 순간인 동시에 인연에 의해 바뀌어지는 순간을 (空)이라는 글자의 상징인 것이다.

(虚)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마태복음의 구절 마음이 가난한 복이 있나니  중국어 성경에는 허심자유복(虚心者有福) 이라고 쓴다.

한글판 성경에서 허심(虚心)라는 의미를 마음이 가난한 , 혹은 심령이 가난한 자로 해석한다.

허를 '가난' 혹은 '없다' 는 의미에서 뽑아내 썼다.

그러나 중국어 성경은 도교에서 나오는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허는 단순히 비어 있음을 넘어선다.

허심은 마음에 사심이 없어 거리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티끌 같은 잡념이 없는 비어 있으나 도심(道心)으로 가득 있다.

그래서 도덕경의 허는 텅 빈 충만함 으로 의미를 두었다.

비었지만 충만하다는 뜻이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로 가득 차 있다.

공기를 마시고, 물을 마시고, 숨을 쉬지만, 그 입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물질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조화로 이루어졌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연결이 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충만함 이라고 표현할 있는 것이다.

 


허명자조(虛明自照)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불로심력(不勞心力) 애써 마음  일이 아니로다

 

우리의 본체는 비어 있으나 밝아 있다.

그래서 스스로 비춰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충만함 속에 있다면 따로 애써서 마음 일은 없을 것이다.

허심한 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 虛明: , 밝은 명: 비어 있으나 밝은 즉, 허는 텅 빈 충만을 뜻함.

自照:  스스로 , 비출 조: 스스로를 비추고

不勞: 아닐 , 애쓸 로: 애 쓰지 아니한다.

心力: 마음 , 힘 력: 마음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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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60223      (출생18627일 중국생활 9545일)

오늘의정진: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다시, 100일 정진,  57일차

<一切不留/일체불류/일체가 머물지 않으며

  無可記憶/무가기억/기억할 아무것도 없다>

 

당나라 시절, 홀 어머니를 모시며 살던 가난한 나무꾼이 있었다.

너무나 가난했지만 효심은 가득했던 순박한 노총각 나무꾼은 성실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나무 지게를 지고 돌아가던 참이었다.

어느 부잣집 앞을 지나가는데 집주인의 글을 읽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책인지는 몰라도 주인의 낭독은 음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소리와도 같았다.

노래인지 글을 읽는 것이 무엇인지 수는 없지만 나무꾼에게는 무척 신기했다.

가까이 듣고자 담 벼락에 붙어서 유심히 듣게 된다.

그렇게 듣게 구절, 그 한 구절이 지나가는 나무꾼 마음 속에 들어온다.

응무소주이생기심? 무슨 뜻일까.

가난하여 글자도 배우지 못했던 나무꾼은 글의 뜻이 무엇인지 수는 없었지만 흘러나오는 낭독 소리에서 끊이지 않는 마음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나무꾼은 집주인의 낭독이 멈출 까지 마음에 들어온 구절 하나를 잊지 않으려고 되뇌였다.

응무소주이생기심. 응무소주이생기심.

이윽고 낭랑한 목소리가 끊어졌다.

나무꾼은 집안으로 들어가 방금 낭독을 끝낸 주인을 찾아가 인사하고 물었다.

소인이 무식한 나무꾼이라 몰라서 묻습니다.

방금 읽으신 책이 무엇인지요.

, 방금 내가 독경한 것은 불자라면 모두가 읽는 금강경(金剛經)이라고 하네.

그게 무슨 경인가요.

이건 5조 홍인 대사께서 불자들에게 매일 독경하라고 권하신 불경이야. 자네도 한 번 읽어 보겠나.

아닙니다. 전 일자 무식이라 봐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방금전 읽으신 구절 중에 응무소주이생기심이란  구절이 나오던데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그건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는 뜻으로 풀이한다네.

응당히 마음을 머무는 없이 내라고요?

그래, 마음을 내려면 머무는 바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5조 홍인대사께서 풀이 하셨다네.

이때, 나무꾼 청년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응무소주이생기심,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는 뜻이 뭔지를 확실히 체득하고야 만 것이다.

나무꾼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은 이상 홀 어머니를 없다며 5조 홍인을 찾아 떠나게 된다.

이 가난한 노총각 나무꾼은 훗날 5조 홍인 (弘忍, 601~674)의 법을 이은 6조 혜능(慧能, 638~713) 으로 불려지게 된다.

  

호의정진(狐疑淨盡) 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마음이) 맑아지면

정신조직(正信調直)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며

일체불류(一切不留) 일체가 머물지 않으며

무가기억(無可記憶) 기억할 아무것도 없다

 

아마 혜능은 가난한 환경에 어머니를 봉양하느라 결혼도 못한 노총각으로 인생을 예정이였다.

하지만 남이 읽던 금강경의 소절, 응무소주이생기심 이란 말에 그의 인생은 바뀌어졌다.

고정된 것은 없다.

마음은 본래 고정되지 않았다.

고정된 것은 생각과 관념 그리고 기억 뿐이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과 기억도 잠시 뿐이다. 그 또한 고정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응당 머무는 없이 마음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혜능은 순간 뜻을 온전히 깨달았던 것이다.

순간 운명은 무너지고 바른 믿음만 세워지게 되었다.

우리도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 그런 믿음이 세워질지 그 누가 알겠는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다.

바람은 불고, 물은 흐르며, 새는 지저귄다.

마음은 그렇게 머무는 바가 없다.

: 一切 : 하나 , 모두 체: 일체가

不留:  아닐 , 머무를 류: 머무르지 않는다.

無可: 없을 , 가히 가 : 할 것이 없다.

記憶: 적을 , 생각할 억: 생각을 적어 남긴다. 즉 기억한다.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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