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260211      (출생189614일 중국생활 9533일)

오늘의정진: 려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 당나귀 일도 아직 갔는, 말의 일까지 와버렸구나!


- 다시, 100일 정진,  45일차

<夢幻空華/몽환공화/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何勞把捉/하로파착/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당나라 시절, 장경(長慶)이란 스님이 당대 큰스님인 영운지근靈雲志勤(?~866)선사 찾아가 물었다.

스님, 무엇이 불법의 대의(大意) 인가요?

려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 당나귀 일도 아직 끝났는데, 말의 일까지 와버렸구나!


려사는 당나귀의 일이고, 마사는 말의 일이다.

무엇이 당나귀 일이고, 무엇이 말의 일일까.

나귀와 말은 짐을 끌거나 혹은 사람을 태운다.

나귀의 일이나 말의 일이 서로 다른가.

나귀의 일도 끝이 안 났는데 영운 화상은 왜 말의 일까지 왔다고 했을까.

그것이 불법의 대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일체이변(一切二邊) 모든 상대적인 견해는

양유짐작(良由斟酌) 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다

몽환공화(夢幻空華)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하로파착(何勞把捉)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따지는 마음을 멈추고, 분석하는 일을 잠시 그만 두어야 한다.

자못 짐작하는 일은 여기까지 이다.

이제부터 뭔 가를 말한다면 전부 땅에 떨어진다.

속의 허깨비 같고 아름다운 꽃을 내가 붙잡으려 한들 잡아지겠는가.

려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

나귀의 일이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아니 벌써 말의 일까지 오고야 말았구나!

 

아불관려사마사(我不管驴事马事)

나귀의 일이든, 말의 일이든 나는 모르겠고,

아적사마상작완(我的事马上做完)

나의 일이나 바로 끝내자.


: 夢幻:꿈 몽, 허깨비 환: 꿈 속의 허깨비

空華: 헛될 , 꽃 화: 헛된 꽃

何勞: 어찌 , 수고로울 로 : 어찌 수고로운가

把捉: 잡을 , 얻을 득 : 잡아 얻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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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44일차

<一切二邊/일체이변/모든 상대적인 견해는

良由斟酌/양유짐작/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익숙한 것과 이별을 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이별의 연속이기도 하다.

시간이란 바로 이별로 가는 기차와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고, 익숙한 집을 떠나고, 아끼던 물건들을 버려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이별을 해야 새로운 만남을 있다.

정든 것들과의 이별은 다른 정을 들여야 대상과의 만남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별과 만남은 둘이 아니다.

이별에 아쉬워 하는 , 만남에 설레이는 것.

어느 하나 고정되지 않았다.

이별에 아쉬워 것도, 만남에 설레이는 감정도 사실 모두 다른 것이 아니다.

 

미생적란(迷生寂亂)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로움이 생기고

오무호오(悟無好惡)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일체이변(一切二邊) 모든 상대적인 견해는

양유짐작(良由斟酌) 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다

 

깨우침은 모든 이별과 만남으로 부터의 벗어남이다.

좋음과 미움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분법 적인 사고를 벗어나는 것이다.

좋음과 미움도 둘이 아니고, 이별과 만남도 둘이 아니다.

그러니 깨달음도 깨닫지 않음도 둘이 아니다.

미혹에서 깨달음이 잉태 된다.

술잔에 술을 따르니 술은 술잔에서 다시 차오른다.

술병이 떠나 보낸 술은 술잔으로 옮겨져 어느 마른 입술을 적시고 뜨거운 기운으로 흘러 내려간다.

술과 나는 둘인가.

짐작하며 술을 마신다.

따랐다.

: 一切:한 일, 모두 체: 일체, 즉 모두 하나가 되어

二邊: , 가 변: 양쪽 변

良由: 참으로 , 말미암을 유 : 참으로 말미암아

斟酌: 따를 , 술따를 작 : 짐작하여, 즉 짐작의 어원은 술 따를 때 어림짐작으로 따르는 것이라 한다.술잔에 많이 따를 수도, 적게 따를 수도 있다. 술잔을 기울여 따르는 술이 어떻게 한 방울도 틀리지 않게 따를 수 있으랴, 술을 따르듯 넘치지 않게, 또 적지도 않게 끔 사량으로 헤아리는 것이 바로 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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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43일차

<迷生寂亂/미생적란/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로움이 생기고

悟無好惡/오무호오/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도를 닦으려면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닦아야 하는 안다.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고요한 환경에서 도를 찾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럼 도는 깊은 속에만 감춰져 있는 것인가.

속에 절이 많은 이유가 번잡한 속세를 떠났기 때문인가.

그러나 신심명은 말한다.

고요함을 찾는 또한 미혹하기 때문이라고.


미혹(迷惑)이란 한마디로 무언가에 홀려 정신 못 차린 상태를 말한다.

현대식 용어로 표현 한다면 편견 이나 편향에 빠진 상태와 비슷하다.

편견이 우리의 사고를 잠식하면 우리는 미혹의 구덩이에 미끄러진다.

구덩이에서 허우적 거리면 나오려 해도 다시 구덩이로 빠지고야 만다.


오직 빠져 나오려면 내가 미혹에 빠졌다는 부터 자각해야 한다.

자각이야말로 내가 미혹함에서 빠져 나올 있는 유일한 밧줄이다.

미혹에 빠진 조차 모르는데 어찌 내가 미혹에 빠져 있음을 것인가.

그래서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장심용심(將心用心)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기비대착(豈非大錯)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미생적란(迷生寂亂)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로움이 생기고

오무호오(悟無好惡)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두두물물 처처불상 사사불공 (頭頭物物 處處佛像 事事佛供)

삼라만상 하나하나, 물건 하나하나가 모두 부쳐요, 곳곳마다 부처가 아니 계신 곳이 없다.

도가 어디에도 없는 곳이 없음을 안다면 고요한 곳이든 번잡한 곳이든 상관이 없다.

 

깨우친 다는 것은 바로 미혹함에서 단박에 벗어나는 것이다.

어쩌면 깨우침의 미망에서 깨어나는 것이고, 모든 분별이 깨지는 것이다.

지금 믿어왔던 고정 관념이란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아직도 미혹의 구덩이에 빠진 줄도 모른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마음이 고요한가, 아니면 시끄로운가.

답이 하나라면 십중팔구는 여전히 미혹에 빠져 있는 것이다.

 

고요함을 찾지 말라. 찾는 마음이 이미 시끄럽다.

 

: 迷生:미혹할 미, 날 생: 미혹하게 생기다.

寂亂: 고요할 , 어지러울 난: 고요하고 어지러움

悟無: 깨달을 , 없을 무 : 깨달음은 ~ 없다.

好惡: 좋을 , 미워할 오 : 좋고 미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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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42일차

<將心用心/장심용심/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豈非大錯/기비대착/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무위(無爲) 반대가 유위(有爲)일까.

무위가 함이 없음이라면, 유위는 함이 있음이니 서로 대립이 된다고 있다.

함이 없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쉬는 경지라면, 유위는 아직도 뭔가 해야 함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항상 유위는 무위보다 미치는 경지로 여긴다.

과연 유위는 무위보다 것인가.

 

무위가 유위보다 높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애착이 아닌가.

유위적인 것은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기며 꺼리고 멀리하는 마음이 바로 분별이다.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뜻이다.

우리의 다섯가지 감각기관 ,귀,코,혀,몸이 없다면 의식이 작용하지 못하는데 어찌 꺼리고 버릴 것인가.

의식의 티끌 같은 육진을 통해야 비로소 세상의 실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위 역시도 유위가 있어야 본연의 뜻이 살아난다.

유위를 죽이고 무위를 살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법무이법(法無異法) 법은 다른법이 없거늘   

망자애착(妄自愛着)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

장심용심(將心用心)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기비대착(豈非大錯)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법이란 무위법과 유위법만 모두가 공존해야 한다.

분별해서도 안되고 분별할 수도 없다.

유위법과 무위법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로 그러해야 한다.

마음, 당신 마음이 따로 있지만, 그 각각의 마음을 따로 쓰지 말자는 것이다.

본래 한마음인데 따로 나눌 있는가.

 

: 將心: 가질 잘, 마음 심: 마음을 가지다

用心: , 마음 심:  마음을 쓰다

豈非: 어찌 , 아닐 비 : 어찌 ~아니겠는가

大錯:  , 어긋날 착: 크게 어긋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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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60207      (출생189610일 중국생활 9529일)

오늘의정진:  착각(錯覺)


- 다시, 100일 정진,  41일차

<法無異法/법무이법/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妄自愛着/망자애착/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무위(無爲) 함이 없음이다.

함이 없음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들여다 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의 마음들이 쉬어진 상태에 가깝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마음이 쉬어져, 더 이상의 의지로 인한 함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순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닌 이상 필요가 없는 경지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확언할 수도 없다.

확언 없는 이유는 무위에도 함이 있기 때문이다.

무위를 행한다는 것이 하나의 의지로 작용될 있다.

그러므로 무위는 함이 없는 가운데 행해지는 하나의 함이다.

그래서 무위라는 다른 함에 얽매여서도 안된다.

 

지자무위(智者無爲)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우인자박(偶人自縛)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법무이법(法無異法) 법은 다른법이 없거늘   

망자애착(妄自愛着)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또한 마찬가지 이다.

깨달음이란 하나의 구체적인 무언가의 형식이나 관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기준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집한다.

그것이 신념으로, 관념으로, 의식으로 자리 잡히면 이제 다시는 바뀌기가 힘들어진다.

법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도 의심을 하지 않게 된다.

또한 망령이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다는 , 그것이 착각일 수도 있다.

착각(錯覺), 틀린 깨달음이다.

 

: 法無:: 법 법, 없을 무: 법은 없다.

異法: 다를 , 법 법:  다른 

妄自: 망령할 , 스스로 자 : 스스로 망령되다.

愛着: 사랑 , 붙을 착: 사랑해서 붙는다. 즉 애착한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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