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42일차

<將心用心/장심용심/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豈非大錯/기비대착/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무위(無爲) 반대가 유위(有爲)일까.

무위가 함이 없음이라면, 유위는 함이 있음이니 서로 대립이 된다고 있다.

함이 없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쉬는 경지라면, 유위는 아직도 뭔가 해야 함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항상 유위는 무위보다 미치는 경지로 여긴다.

과연 유위는 무위보다 것인가.

 

무위가 유위보다 높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애착이 아닌가.

유위적인 것은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기며 꺼리고 멀리하는 마음이 바로 분별이다.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뜻이다.

우리의 다섯가지 감각기관 ,귀,코,혀,몸이 없다면 의식이 작용하지 못하는데 어찌 꺼리고 버릴 것인가.

의식의 티끌 같은 육진을 통해야 비로소 세상의 실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위 역시도 유위가 있어야 본연의 뜻이 살아난다.

유위를 죽이고 무위를 살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법무이법(法無異法) 법은 다른법이 없거늘   

망자애착(妄自愛着)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

장심용심(將心用心)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기비대착(豈非大錯)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법이란 무위법과 유위법만 모두가 공존해야 한다.

분별해서도 안되고 분별할 수도 없다.

유위법과 무위법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로 그러해야 한다.

마음, 당신 마음이 따로 있지만, 그 각각의 마음을 따로 쓰지 말자는 것이다.

본래 한마음인데 따로 나눌 있는가.

 

: 將心: 가질 잘, 마음 심: 마음을 가지다

用心: , 마음 심:  마음을 쓰다

豈非: 어찌 , 아닐 비 : 어찌 ~아니겠는가

大錯:  , 어긋날 착: 크게 어긋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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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60207      (출생189610일 중국생활 9529일)

오늘의정진:  착각(錯覺)


- 다시, 100일 정진,  41일차

<法無異法/법무이법/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妄自愛着/망자애착/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무위(無爲) 함이 없음이다.

함이 없음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들여다 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의 마음들이 쉬어진 상태에 가깝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마음이 쉬어져, 더 이상의 의지로 인한 함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순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닌 이상 필요가 없는 경지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확언할 수도 없다.

확언 없는 이유는 무위에도 함이 있기 때문이다.

무위를 행한다는 것이 하나의 의지로 작용될 있다.

그러므로 무위는 함이 없는 가운데 행해지는 하나의 함이다.

그래서 무위라는 다른 함에 얽매여서도 안된다.

 

지자무위(智者無爲)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우인자박(偶人自縛)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법무이법(法無異法) 법은 다른법이 없거늘   

망자애착(妄自愛着)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또한 마찬가지 이다.

깨달음이란 하나의 구체적인 무언가의 형식이나 관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기준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집한다.

그것이 신념으로, 관념으로, 의식으로 자리 잡히면 이제 다시는 바뀌기가 힘들어진다.

법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도 의심을 하지 않게 된다.

또한 망령이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다는 , 그것이 착각일 수도 있다.

착각(錯覺), 틀린 깨달음이다.

 

: 法無:: 법 법, 없을 무: 법은 없다.

異法: 다를 , 법 법:  다른 

妄自: 망령할 , 스스로 자 : 스스로 망령되다.

愛着: 사랑 , 붙을 착: 사랑해서 붙는다. 즉 애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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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60206      (출생189609일 중국생활 9528일)

오늘의정진:  지혜와 자비


- 다시, 100일 정진,  40일차

<智者無爲/지자무위/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偶人自縛/우인자박/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 매트릭스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눈귀코혀몸이라는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세상이 진짜가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번의 선택으로 세상의 실체를 알게 것이다.

하지만 붓다의 빨간 약은 단번에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한다.

선택 끊임없는 수행이 병행이 되어야만 비로소 어느 순간 붓다가 설한바를 알게 된다.

단번에 알지 못하는가.

붓다의 빨간 약은 지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혜는 단번에 얻을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머리로 쌓는 지식조차도 단번에 얻을 없는데 어찌 지혜를 단번에 얻기를 바라는가.

지혜는 지식과 달리 머리에 국한되지 않았다.

지혜는 육진을 바탕으로 삼아 오감과 말나식과 아뢰야식 까지로 이어진다.

그래서 지혜는 인식의 깊이가  지식과는 다르다.

그러한 지혜에서는 어느 순간 자비로 변한다.

지혜와 자비는 빨간 약의 엑기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진이 인식의 티끌이라고 해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욕취일승(欲趣一乘)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물오육진(勿惡六塵)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육진불오(六塵不惡)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환동정각(還同正覺)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니라

지자무위(智者無爲)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우인자박(偶人自縛)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지혜와 자비는 결국 무위 함이 없는 경지로 이어진다.

지혜 없는 자비는 감정일 뿐이고, 자비 없는 지혜는 분별이 될 뿐이다.

알음알이로는 경지를 수가 없다.

 

: 智者: 지혜로울 지, 사람 자: 지혜로운 사람은

無爲: 없을 , 할 위:  함이 없다.

偶人: 어리석을 , 사람 인 : 어리석은 사람은

自縛: 스스로 , 묶을 박: 스스로 묶는다. 즉 스스로 얽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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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39일차

<六塵不惡/육진불오/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還同正覺/환동정각/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니라>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에서 주인공 네오(Neo)는 세상이 매트릭스임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때 그에게 선택지가 주어진다.

파란 약을 먹으면 그동안 살아왔던 대로 일 없이 계속 평소와 다를 없는 일상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빨간 약을 먹게 되면, 그 동안 살아왔던 것에서 벗어나 세상의 실체를 알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만약 나에게 파란 약과 빨간 약의 선택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세상이 연극의 무대였음을 깨닫는 순간이 언제 일까.

아마도 우리는 사는 동안에는 알아 차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 이르러서야 어쩌면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을 생각해 , 내 죽음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한 번 뿐이다.

나의 죽음을 체험할 있는 순간이 태어나서 한번 뿐이라니.

 

붓다는 이러한 세상의 구조를 깊이 관조한 마지막에 결론을 내렸다.

세상은 고해(苦海), 즉 '고의 바다' 라고 했다.

가난하고, 비참하고, 억울하게 사는 것만이 고통이 아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물질적인 부를 쌓고, 미남 미녀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도 바로 고통이라고 한 것이다.

붓다는 세상을 고라고 했을까.

우리는 생노병사(生老病死)를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붓다는 이러한 질문에 빨간 약을 내놓았다.

 

마치 네오가 먹게 되는 빨간 처럼 말이다.

붓다는 세상이 연극이자 환상임을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냈다.

그리고 그의 깨달음은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수행자들에 의해 다듬어져 이어져왔다.

붓다는 사성제를 비롯한 팔정도를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의 체질에 따라 맞는 빨간 약을 만들었다.

그래서 불교의 빨간 약은 너무나도 많다.

신심명도 그러한 빨간 중에 하나이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느끼는 감각들을 통해서 밖에 할 수 없다.

감각은 내가 있음과 내가 경험하는 세상을 생생하게 인식하는 도구이자 자신과도 같다.

그러나 그렇게 인식되는 나와 세상이, 사실은 하나의 무대이고, 꿈과 같은 환영이라면.

어느 누가 믿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붓다와 그의 후예들이 남겨 놓은 가르침을 통해 그와 같은 사실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그대는 빨간약을 먹을 것인가.

 

욕취일승(欲趣一乘)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물오육진(勿惡六塵)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육진불오(六塵不惡)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환동정각(還同正覺)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육진이라는 번뇌의 티끌이라면 육진을 버려할 것인가.

신심명은 단호히 말한다.

육진을 미워하지 마라.

그랬을까.

이것이 바로 빨간 약을 먹어야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六塵: 여섯 육, 티끌 진: 여섯 가지 티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가지 인식의 뿌리에 해당하는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 즉, , 소리, 냄새, 맛, 감촉,  육경(六境)  만나서 생기는 번뇌의 티끌.

不惡:: 아닐 , 미워할 오:  미워하지 아니하면  

還同: 돌아올 , 같을 동 : 같이 돌아온다. 즉 하나로 돌아온다.

正覺: 바를 , 깨달을 각: 바르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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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38일차

<欲趣一乘/욕취일승/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勿惡六塵/물오육진/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이란 공간과 시간의 무대에 올라서게 된다.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무대의 막이 내릴 때 까지 한 바탕 연기를 해야 한다.

우리 인간이란 배우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연극 무대에서 우리의 연기는 짜여진 극본대로 대사를 외우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즉흥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

배우인 우리 자신은 이게 연극인지 전혀 모르며 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연극의 무대를 지켜 보는 관객이 도대체 누구인지는 우리는 모른다.

무대 위의 연기자인 우리는 연극 무대에 펼쳐진 소품들이 소품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을 움직이는 그 가운데 그 모든 등장 인물과 사물들이 전부 생생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 대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대본은 이미 우리가 펼치는 연기 속에 이미 들어가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외운 대본이 아닌  우리의 심연에 대본이 이미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말나식과 아뢰야식이라 불리는 나라는 아집과 무의식이 바로 대본이다.

 

이러한 연극의 구조를 눈치를 사람들이 우리 중에 일부가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붓다였다.

붓다는 이러한 매트릭스 같은 현실 구조를 간파하고 구조를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의 세상이 매트릭스 같은 구조였음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구조 안에 벌어지는 모든 것이 실제라고 믿고 있는 벗어 없다.

왜냐면 우리의 감각 기관은 너무나 생생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픔이란 통각(痛覺)은 너무나 사실적이라 이것이 연극의 과정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벗어나야 하는가.

 

욕취일승(欲趣一乘)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물오육진(勿惡六塵)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이제부터는 매트릭스 실체에 접근할 차례다.

 

: 欲趣: 바랄 , 향할 취: 향하고자 바란다면

*一乘:  , 탈 승:   승은 수레에 태우는것을 뜻한다.

대승(大乘), 소승(小乘) 불교 할 때의 '승()'은 중생들을 수레에 태우고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것을 의미한다. 대승은 수많은 중생들을 태우는것이고 소승은 그보다는 적은 수의 중생들을 태우고 가는것 이다. 따라서 여기서 일승은 깨달음의 세계로 수레를 타고 가는것 말한다.

勿惡: 금할 , 미워할 오 : 미워하지 말라

*六塵:여섯 , 티끌 진: 여섯 가지 티끌, 여기서 여섯까지 티끌이란 우선 우리 인간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가지 인식의 뿌리에 해당하는 육근(六根)을 뜻한다. 이러한 육근은  , 귀,코, 혀, 몸, 뜻을 가지고  육경(六境) ,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 즉, , 소리, 냄새, 맛, 감촉,  만나서 생기는 번뇌의 티끌이 바로 육진(六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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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무대-연기-대본-매트릭스로 이어지는 비유의 줄기가 너무 적절하네요. 몇해 전 읽은 팃낙한 스님의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내용이 다시 떠오르네요.

마힐 2026-02-06 09:43   좋아요 1 | URL
잉크 냄새님도 이제 세상이 현실 같은 가짜임을 서서히 알아 차리시는가 봅니다.
이제 빨간 약 드실 시간인가요? ㅎㅎ
잉크냄새님은 일부러 파란 약 드실 것 같은데요. ^^

잉크냄새 2026-02-06 20:24   좋아요 1 | URL
전 이미 빨간 약 한번 먹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