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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328

오늘의정진: 了卽業障本來空/요즉업장본래공/ 마치면 업장이 본래 공함이여


- 100일 정진, 93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백 열세번째와 백 열네번째 구절은

<執指爲月枉施功/집지위월왕시공/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니

根境塵中虛捏怪/근경진중허날괴/육근, 육경, 육진 가운데서 헛되이 괴이한 짓 하도다

不見一法卽如來/불견일법즉여래/한 법도 볼 수 없음이 곧 여래이니

方得名爲觀自在/방득명위관자재/마침내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는구나> 였다.


영가현각스님은 비록 8살 어린나이에 출가를 했지만 지극한 효심을 지녔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스님은 장성하였고 홀로 남은 어머니와 누님을 자신이 수행하던 개원사(開元寺)로 모셔와 봉양을 하였다.  당시 절에 함께 수행하던 스님들과 대중들은 영사스님의 이러한 행위를 비방하였다. 지금의 관념으로도 출가한 스님이 세속의 연을 끊지 못하고 속가의 가족을 절에다 들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영가스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절의 한 구석에 공간을 마련하여 어머니와 누님을 모셨다. 영가스님은 출가를 했으나 속가와의 연()을 끊지 않았다. 또 그렇다고 환속을 하지도 않았다. 스님의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스님이라면 반드시 세속과의 정을 끊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난 것이다. 그는 스님이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영가스님에게 깨달음은 어떠한 의미였을까?


오늘은 백 열 다섯번째와 백 열 여섯번째 구절

了卽業障本來空/요즉업장본래공/마치면 업장이 본래 공함이여

未了還須償宿債/미료환상숙채/마치지 못하면 도리어 묵은 빚 갚아야 하니

飢逢王膳不能飡/기봉왕선불능선/굶다가 임금 수라 만나도 먹을 수 없으니

病遇醫王爭得差/병우의왕쟁득차/병들어 의왕 만난들 어찌 나을 수 있으랴


옷깃만 스쳐도 인연(因緣)이라고 했다. 부처님께서도 정각을 한 후 하신 설법이 12연기(緣起)였다. 나의 현재는 과거로 부터 왔고, 미래는 나의 현재로 부터 이어진다.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 인연은 갑자기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현생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먼,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 보다 더욱 머나먼 과거로 부터 이어져 지금 현생까지 온 것이다.

현재 나의 인연 중에 가장 깊고 중요한 인연은 누구보다도 부모 형제와 같은 친속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스님이라는 이름에 걸리지 않고 속가의 모친과 누님을 봉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스님은 위로는 불법을 구해야 했지만 아래로는 묵은 빛을 갚아야 했다. 불법을 배우는 목적이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즉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이 목적에 비추어 보면 스님은 자신만의 불법을 실천한 것이다. 깨달음을 위해 가족을 버려야 하는 출가승이긴 하지만 정작 깨달음을 얻은 후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 깨닫지 못하면 오히려 업장만 쌓이고, 갚아야 할 빚만 늘어난다. 이는 마치 굶어서 임금의 수라상을 만나도 먹을 수가 없고, 병들어서 의왕을 만났어도 고칠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일일 소견>

인연의 묵은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할까?

깨달음이란 거창한 이름을 떠나 내 곁의 소중한 인연들을 저버리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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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327

오늘의정진: 執指爲月枉施功/집지위월왕시공/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니


- 100일 정진, 92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백 열한 번째와 백 열두 번째 구절은

<二乘精進勿道心/이승정진물도심/이승은 정진하나 도의 마음이 없고

外道聰明無智慧/외도총명무지혜/외도는 총명해도 지혜가 없도다

亦愚癡亦小駭/역우치역소해/어리석고 바보 같아 겁이 많으니

空拳止上生實解/공권지상생실해/빈주먹 손가락 위에 있다는 생각을 내는도다> 였다.


빈 주먹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빈 주먹을 펴보이면 그저 손가락들만 쥐고 펼 수 있다. 손가락과 주먹은 사실 다르지만 같은 손이다. 주먹과 손가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주먹과 손가락이 다르다고 여긴다. 성문승과 연각승을 합쳐 이승인데 이것을 각각 분별한다면 도()에 이를 수 없다. 외도 또한 사이비라 여겨서는 도에 이를 수 없다. 분별심(分別心)은 도가 아니다.

영가스님이 입문했던 천태종은 교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선종과 다르지 않다. 천태종의 핵심 수행법은 지관수행(止觀修行)이다. 지관수행은 산란한 마음을 그치고(), 자기 근본을 지켜보는() 수행이다. 즉 선종에서 화두를 들고 깊이 몰입해서 참구하는 수행과 다르지 않다. 단지 종파가 다르다고 깨달음까지 다른 것은 아니다.

도심(道心)은 둘로 보지 않는 마음(二心)이다.


오늘은 백 열세번째와 백 열네번째 구절

執指爲月枉施功/집지위월왕시공/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니

根境塵中虛捏怪/근경진중허날괴/육근, 육경, 육진 가운데서 헛되이 괴이한 짓 하도다

不見一法卽如來/불견일법즉여래/한 법도 볼 수 없음이 곧 여래이니

方得名爲觀自在/방득명위관자재/마침내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는구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이 아님에도 손가락을 달로 여기는 우()를 범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근, 육식, 육경으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감각기관을 육근(六根)이라고 한다. 육근에 의해 인식하는 경계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육경(六境)이라고 한다. 육근과 육경을 합쳐서 12()라고 부른다. 그리고 육경에다가 의식(義識)을 더하면 바로 육식(六識)이 된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육근, 육경, 육식을 합쳐 18계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육근, 육경, 육식을 통한 현실인식은 사실은 오류투성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18계를 통한 인식은 단지 우리의 주관적 해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즉 오온이 공함을 비추어 보라고 했다. 이것은 관세음 보살이 반야심경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핵심이다. 오온은 바로 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 이며 곧 우리의 몸과 마음을 뜻한다. 영가스님은 마침내 육근, 육경, 육식의 놀음이 바로 망상이며 공()임을 알게 되었다. 18계로는 법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음을 깨우친 것이다. 이제 비로소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진정으로 관자재보살의 법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일일 소견>

잘못된 공부란 둘로 보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닐까? 둘로 보지 않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공부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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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326

오늘의정진: 二乘精進勿道心/이승정진물도심/이승은 정진하나 도의 마음이 없고


- 100일 정진, 91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백 아홉 번째와 백 열 번째 구절은

<從來層磴覺虛行/종래층등각허행/예전에 비틀거리며 헛된 수행하였음을 깨달으니

多年枉作風塵客/다년왕작풍진객/여러해를 잘못 풍진객 노릇 하였구나

種性仕邪錯知解/종성사착지해/성품에 삿됨을 심고 알음알이 그릇됨이니

不達如來圓頓制/부달여래원돈제/여래의 원돈제를 통달치 못함이로다> 였다.


14살의 어린 사미승이 3조 승찬(僧璨  ? ~606)대사를 찾아왔다.

승찬 대사가 묻길 "어디서 온 꼬마냐?".  사미승 왈(), "주처(住處)가 없이 온 아이입니다."  

대사가 다시 묻길, "()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냐?"

사미승 왈 "성은 불성(佛性) 이고 이름은 불명(佛名)입니다.

승찬 대사가 호통치며 "네 놈은 어디서 이런 말을 배웠느냐?", 사미승 왈 "전생(前生)에 스님 한테 배웠습니다"

이 어린 사미승은 선종사(禪宗史)에서 승찬의 법을 이은 4조 도신(道信580~651) 이다.  본래 4조 도신은 14살 때 처음으로 승찬대사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15년전, 도신의 전생은 재송(栽松)이란 이름의 80이 넘은 노인이었다. 당시 재송은 승찬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 달라고 요청했었다. 하지만 법을 받기에는 재송의 나이가 너무 많아 거절당했다. 그러자 재송은 몸을 바꿔 다시 오겠다고 물러났다. 그날 이후 재송은 바로 몸을 벗고 도신으로 다시 환생하여 찾아온 것이었다.

영가 현각스님은 8살 어린나이에 출가를 했다. 어쩌면 영가 스님도 도신 스님처럼 다른 누군가의 전생에서 환생하지 않았을까? 수행은 한 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수 있을것 같다.


오늘은 백 열한 번째와 백 열두 번째 구절

二乘精進勿道心/ 이승정진물도심/이승은 정진하나 도의 마음이 없고

外道聰明無智慧/외도총명무지혜/외도는 총명해도 지혜가 없도다

亦愚癡亦小駭/역우치역소해/어리석고 바보 같아 겁이 많으니

空拳指上生實解/공권지상생실해/빈주먹 손가락 위에 있다는 생각을 내는도다


영가스님의 출가는 천태종 계열의 절이었다. 천태종의 소의경전이 법화경이니 당연히 법화경에 통달했을 것이다. 이승, 삼승 그리고 일승이란 용어들은 법화경에서 나온다. 삼승(三乘) , 세가지 수래는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으로 모두 깨달음에 이르는 수레를 뜻한다. 법화경에서는 삼승이 곧 일승(一乘) 이라, 즉 삼승은 각각의 수레가 아니라 하나의 큰 수레라고 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三位一體) 개념하고도 비슷하다. 영가 스님은 이러한 뜻과는 다르게 이승이든 외도든 모두  깨달음에는 이르지는 못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승은 정진을 해도 도심이 없고, 외도는 총명해도 지혜가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깨달음은 커녕 어리석고 바보처럼 여겼다. 마치 빈 주먹을 쥐니 손가락 밖에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과연 진짜 그럴까?


<일일 소견>

법화경에서는 삼승이 곧 일승이라 했다. 이승도 삼승에 포함되는데 왜 도심(道心)이 없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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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325

오늘의정진: 從來層磴覺虛行/ 종래층등각허행/예전에 비틀거리며 헛된 수행 하였음을 깨달으니


- 100일 정진, 90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백 일곱 번째와 백 여덟 번째 구절은

<分別名相不知休/ 분별명상부지휴/이름과 모양 분별함을 쉴 줄 모르고

入海算沙徒自困/입해산사도자곤/바닷 속 모래 헤아리듯 헛되이 스스로 피곤하였다

却被如來苦呵責/각피여래고가책/문득 여래의 호된 꾸지람 들으니

數他珍寶有何益/수타진보유하익/남의 보배 세어서 무슨 이익 있을 건가> 였다.


부처님 당시 불교는 교종(敎宗)이나 선종(禪宗)이란 구분이 없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경전으로 옮기는 과정중에 교종이 탄생했다. 그리고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가운데서 선종이 탄생했다. 교종과 선종은 본래 둘이 아니다. 두 가지 모두 붓다가 깨달았던 경지로 이끄는 훌륭한 가르침이다.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오기 전부터 이미 불법은 중국에 전해져 있었다. 또한 구마라습(334~413) 같은 불세출의 고승에 의해 인도의 경전들이 한문으로 번역되어 대장경이 되었다. 대장경을 배우고 선을 수행하는 수행자들에 의해 점차 중국불교는 교종과 선종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또한 가르침을 전수하는 스승에 따라 서로 다른 종파와 문중(門中)으로 나누어지며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영가현각 (永嘉玄覺 665~713)스님이 출가했던 절강성 지역은 본래 천태종의 발상지였다. 천태종은 선종이 탄생하기 전쯤에 생긴 종파라 사실상 교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가스님도 출가 후 당시에 번역된 경전들을 통해 불법을 배웠으리라 추측해 본다. 그러나 불법을 배우는데 교종이든 선종이든 가는 길은 다를지언정 길의 목적지는 분명하다. 수행의 길은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기 까지는 헤메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를 이끌어 주는 스승님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은 백 아홉 번째와 백 열 번째 구절

從來層磴覺虛行/ 종래층등각허행/예전에 비틀거리며 헛된 수행 하였음을 깨달으니

多年枉作風塵客/다년왕작풍진객/여러해를 잘못 풍진객 노릇 하였구나

種性仕邪錯知解/종성사착지해/성품에 삿됨을 심고 알음알이 그릇됨이니

不達如來圓頓制/부달여래원돈제/여래의 원돈제를 통달치 못함이로다.


수많은 경전을 읽고 경전속의 가르침을 실천을 한다고 해도 스승이 없다면 자신이 수행하는 길에 대한 확신이 서기 어렵다. 웬만한 신심이 아니고서는 자신이 믿는 바를 제대로 내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며 자칫 잘못하면 잘못된 길로 빠져들면 다시 빠져나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자신의 수행이 올바른 지에 대한 회의가 들수록 눈 밝은 스승에게 점검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영가스님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여러해 동안 자신의 수행이 헛된 수행을 했음을 알게 되고 본래 참성품을 알지 못하고 그저 알음알이의 사견에 빠졌다고 했다. 수행자의 진솔한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천태종은 법화경을 소의 경전으로 삼는다. 법화경의 핵심은 일체 모든 중생은 성불할 수 있다는 수기(授記)를 내린 사건이다. 사실상 부처님께서 설했던 모든 84천 법문의 결론은 성불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 마다 근기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모두 부처를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지를 못한다.

여래의 경지에 단박에 이르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일 소견>

믿음은 믿어야지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저절로 믿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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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324

오늘의정진: 分別名相不知休/분별명상부지휴/이름과 모양 분별함을 쉴 줄 모르고


- 100일 정진, 89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백 다섯 번째와 백 여섯 번째 구절은

<是卽龍女頓成佛/시즉용녀돈성불/옳은 즉 용녀가 단박에 성불함이여

非卽善星生陷墜/비즉선성생함추/그른 즉 선성 비구가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짐이다

吾早年來積學問/오조연래적학문/나는 어려서 부터 학문을 쌓았고

亦曾討疏尋經論/역중토소심경론/일찍 소를 더듬고 경론을 살폈다> 였다.


영가현각 (永嘉玄覺 665~713)스님은 내게 시퍼런 칼을 뽑아 겨었다. 곧장 목 밑에 대고 묻는다.

어서 답을 해라, 너의 대답이 옳다면 성불을 할 것이고, 틀리면 바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 순간,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머리를 굴리면 내 목은 곧 바로 칼날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답해라. 어서!”

스님의 한 칼에 순간 번쩍이며 주위는 한 순간에 차원의 경계가 갈라져 버린다.


영가스님은 지금 중국의 절강성(浙江省) 온주(溫州) 지역 영가현(永嘉縣) 출신이다. 지금의 절강성은 우리나라 남한 크기의 면적에 인구도 우리나라 인구 수와 비슷하다. 옛부터 절강성은 우리나라 서해안과 맞닿아 있어 상인들의 배가 자주 오고 갔다. 우리나라 심청전에 나오는 중국쪽 뱃사람들이 바로 절강성 사람들이다. 온주는 절강성에서 항주(杭州), 영파(寧波) 다음 가는 도시로 상업이 발달하였다. 스님은 8살 때 동진출가(童眞出家)를 하였다. 또한 무척 총명하여 어릴 때부터 학문을 쌓고 쉽게 경전들을 읽을 줄 알았다.


오늘은 백 일곱 번째와 백 여덟 번째 구절

分別名相不知休/분별명상부지휴/이름과 모양 분별함을 쉴 줄 모르고

入海算沙徒自困/입해산사도자곤/바닷 속 모래 헤아리듯 헛되이 스스로 피곤하였다

却被如來苦呵責/각피여래고가책/문득 여래의 호된 꾸지람 들으니

數他珍寶有何益/수타진보유하익/남의 보배 세어서 무슨 이익 있을 건가


당시 스님은 천태종(天台宗)에 입문을 하였다. 천태종의 지관수행(止觀修行)은 선정과 지혜를 닦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가스님도 쉽게 깨우침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오늘의 구절은 깨닫기 전에 영가스님 당신이 어떻게 수행을 했는지를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이름과 상() , 헛된 망상과 고정 관념의 세계에 빠져 늘 분별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별 망상을 쉬지 않고는 수행은 더 이상의 진전도 없다. 여래의 꾸지람이란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남의 보배를 세어서 무엇을 하겠느냐 는 말은 경전 속의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결국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곧 경전의 글들이 경화수월(鏡花水月) 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일일 소견>

경화수월(鏡花水月), 거울에 비춰진 꽃과 물에 비춰진 달은 눈으로 볼 수 있으나 잡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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