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 지식과 지혜를 실천으로 이끄는 마음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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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지은이 채사장

 : 혹시 당신도 혹등고래가 한번 되어 보고 싶은가요?

 

평균 몸무게 40길이 16미터일년에 8000키로 이상을 바다에서 헤엄치는 거대한 고래종그들을 우리는 흑등고래라고 부른다

거대한 몸집과 함께 엄청나게 큰 지느러미를 물 밖으로 솟구치면 폭우처럼 쏟아지는 흰 물결 속에 드러난 흑등고래

내가 만약 실제로 그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면 그 압도적인 모습에 초라한 인간종인 나는 경외감에 빠질 것이다.

그들이 우리 인간종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과학자들의 연구 때문이겠지만 연구자들도 밝혀낸 사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흑등고래가 우리 인간종을 아주 오랜 옛적부터 관심있게 지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와 같은 포유류에서 진화된 아주 먼 친척 뻘로 말이다.

혹등고래의 특징으로 이타심이 많아 바다에서 만난 인간을 종종 돕기도 하며 수 백킬로 떨어진 동료들과  노래로 소통을 한다고 알려졌다.

그들은 왜 인간에게 우호적일까그리고 부르는 노래는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혹등고래가 아니고서는 그 모든 의미를 절대로 알지 못 할 것이다.

흑등고래가 심해의 바다에서 유유히 부유하듯 내 심연의 내면에서 유유히 부유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

존재라고 하기에는 맞지 않겠지만 내면의 그것을 의식(意識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내면의 바다에서 노니는 우리의 의식에 관한 책이 나왔다.  

바로 채사장의 신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무한>편 이다.

 

책 제목을 줄여서 <...얕>으로 알려졌는데 작가 채사장이 2015년에 처음 출간한 이후  일반인 이였던 그를 단숨에 스타작가로 만들어 준 시리즈 책이다

처음 내가 작가의 책을 알게 된 것은 10년 전 쯤 <...> 1편과 2편을 통해서 였다

그 당시 나는 막 40대로 진입했고 한창 직장생활에 지치고 가정생활에 허덕일 때 였다.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어쩔 수 없이 사는 듯한 건조한  생활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마치 갇힌 우리에서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와 같았다

그러니 무슨 삶의 재미가 있었을텐가

당시엔 지금처럼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이란 걸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무료함을 달래려고 인천 공항 서점에서 우연히 집은 책이  <지대넓얕>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 뒷발에 쥐를 잡은 꼴이다.

당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한정된 머리속 공간이 확장되는 듯한 경험을 하였다.

작가 채사장이 쉽게 정리한 세상과 인간에 대한 탐구가 내 성향과 제대로 맞았다

내 나이  40대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책을 읽는 재미를 느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  그가 펴낸 책들 <시민의 교양>, <열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지대넓옅 제로 편>를 비롯하여 소설 <소마>까지 모두 읽게 되었다.

한마디로 팬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대넓옆시리즈에서 보여준 채 작가의 특징은 복잡한 세상 구조를 아주 심플하게 이분화 시켜 쉽게 설명하는데 있다.

이분화는 분명 많은 오류가 있음에도 구조와 맥락의 핵심을 보다 빨리 간파하는 장점이 생긴다

만약 그가 책을 통해 알려준 핵심을 몰랐다면 아마도 세상의 구조를 파악하기는 커녕 접근할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러한 시도는 무척 신선했고 자연스레 좀 더 넓고 깊이 있게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했다.  

작가 특유의 세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진지하게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내게는 무척 공감이 되었다.

 

그가 이번에 출간한 <지대넓얕 , 무한>은 이 시리즈의 최종회에 해당한다.

<지대넓얕 1.2>편은 역사정치경제사회와 철학과학예술종교등 우리들의 현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거의 모든 지식의 영역들을 폭 넓고 얕게 다루었다.  

그리고 <지대넓얕 제로편에서는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 그리고 철학의 탄생까지 지금까지 다루었던 영역을 보다 근원적으로 접근하였다

그리고 이번 무한편은 더이상 지식의 영역을 넓히지 않고 자아(自我)라는 의식(意識)에 대해서만 아주 깊숙이 파고 들었다

나는 작가가 아마도 이번 무한편을 위해 지금껏 <지대넓옅시리즈를 빌드 업(Build-up)을 해왔다고 생각된다.

물론 내 생각이다작가의 말로는 이 시리즈는 원래 제로에서 끝내려고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무한편은 이 시리즈의 엔드 게임으로 확실히 마무리 짓는 것으로 보여진다.

 

우주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생명의 기원그리고 인류의 등장문명의 건설과 역사종교과학의 발전을 아우르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번 무한편에서는 영속된 시간의 파노라마 속에서 우리는 지식을 넘어선 지혜와 실천을 통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알게 된다

지금껏 인류는 지식을 이용하여 문명을 발전시키고 진화하여 왔지만 물질문명은 분명히 위기를 맞고 있다

지식과 정보는 더이상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

과잉된 정보와 지식은 우리의 삶을 더욱더 옭아매며 고통속으로 밀어 넣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러한 지식을 넘어선 지혜를 가져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지혜는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이러한 체험의 반복은 결국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책에는 깨달음의 과정을 모두 7장에 걸쳐 3개의 단계로 정리했다.

먼저 발심정비정진은 실천의 단계이고,  다음 견성은 지혜의 단계이고 마지막  출세조망정진은 삶의 단계로 구분했다

깨달음을 다루었다고 해서 현학적이거나 고리타분한 혹은 고행을 강조하는 그런 내용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깨달음이란 것이 무슨 거창하고 대단한 경지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작가는 쉽게 이렇게 말한다

<의식이 곧 보는 자이고 관조이고 알아차림이다이것은 동일한 것의 다른 이름이다... 중략... 침묵은 보는 자를 보는 행위였던 것이다관조자를 관조하는 것이고알아차리는 것이다이것이 견성의 실제 의미이고 깨달음의 실체라 하겠다이것들은 모두 동일한 것의 다른 이름이다.> p. 163(견성 중에서)

 

작가는 깨달음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의식이 어떻게 세상을 일으키며 그것이 어떻게 무한 반복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의식(意識)이 세상을 일으킨다는 작가의 통찰은 이 책 무한편의 가장 핵심이자 알파요오메가 였다.

<모든 것은 의식이 지어낸다그 어떤 것도 의식이 지어내지 않은 것은 없다의식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기원이다당신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과 당신 내면의 모든 것은 의식이 지어냈다그렇기에 의식의 다른 이름은 세상을 일으키는 능력존재의 근원집 짓는 자가 된다이들은 모두 의식의 특징이다.> p.178(견성 중에서)

 

작가가 규정한 의식은 불교의 관()과 아주 유사하다.

또한  공()과 색(), 무아 그리고 죽음윤회(輪廻같은 불교의 어려운 개념을 이 의식(意識하나로 대치하여 전부 쉽게 풀어 설명을 했다

 

<의식이 꺼지거나 단절된다는 것은 신체의 환상일 뿐의식의 관점에서 의식은 언제나 현재다그 영원히 이어지는 내면의 여행 동안 의식은 죽음이라 부를 많한 세계를 일으킨다.... 중략... 나는 죽지만 죽지 않을 것이다나는 돌아오고 돌아온다하지만 어디를 간 것이 아니니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나는 내면을 여행하는 자다. > p.222 (견성중에서)

 

깨달음 이후에 찾아오는 과정에 대하여 작가는 3가지 유형을 예상했다.

안주무기력자만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세상의 다른 이들처럼 먹고살기 위해 다시 애쓰게 될 테이지만 당신은 이제 안다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님을 말이다이것은 수단이다수많은 삶을 여행하는 과정 중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잠시 동안 세속에 깊게 몸을 담근 것 뿐이다.>

p.248(출세 중에서)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다소는 깨달음을 상징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10개의 단계를  그림으로 표현 했는데 이를 십우도(十牛圖혹은 심우도(尋牛圖:소를 찾는 그림라고 한다.  

그림의 마지막 열번째 단계를 입전수수(入廛垂手) 라고 하는데 세속으로 들어가 손을 드리우는 경지’ 를 뜻한다.  

즉 깨닫고 난 후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과 일맥 상통하다

결국 깨달음은 삶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삶이 곧 깨달음이라는 것과 맞닿게 된다.

 

우리는 눈 앞의 세계만 인식할 뿐이다

작가의 통찰에 따르면 우리가 객관적인 세계라고 믿는 세계도 사실은 내 감각기관이 내 정신에 제공한 감각자료를 가지고 의식이 재구성한 세계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의식이 일어나고 다시 사라지는 무한 반복의 세상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무한의 세계의식의 세계는 나의 자아가 직접 체험하는 세계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실천이다지식만으로 심연에 있는 지혜를 얻을 수가 없다.

오직 실천만이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깊은 내면의 바다에 닿을 수 있도록 스스로가 혹등고래가 되어 봐야 한다.

나의 육체는  비록 작지만 나의 자아가 의식의 바다에서 얼마나 거대해 질 수 있는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스스로 헤엄쳐 봐야 한다

그렇다면 무한한 시간속에서 흑등고래가 되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함께 흑등고래가 되어 내면의 바다에서 노래를 불러 볼까요?)

이제 지식은 지혜로 바뀌어 더 넓어지고 깊어지게 되리라.

 

지혜로운 이는 자신이 지지자가 아니라 선택자임을 안다. 추종자가 아니라 결정권자임을 알고, 노예가 아니라 주인임을 안다. - P41

모든 이념과 신념이 마음을 병들게 함을 바르게 알고 이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 P98

우리가 이성이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면 본질적 자아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공하고, 본질적 자아가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도 명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그저 언어의 문제일 뿐, 실상은 동일한 것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 P155

지혜가 섬세하지 않으면 극단적 사유에 쉽게 이끌린다. - P238

인류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세 가지다. 세계는 무엇인가? 자아는 무엇인가? 세계와 자아의 관계는 무엇인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는 이 심오한 세 질문을 가장 쉬운 언어로 깊이 있게 답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담아내었다.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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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5-01-25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마힐님의 글을 읽기로 결심했어요~~^^
지대넓얕의 팬으로 그들이 다시 만나 시즌2를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힐 님... 즐거운 설명절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힐 2025-01-25 21:24   좋아요 0 | URL
아, bookholic님도 팬이셨군요. 같은 팬으로 반갑습니다. ㅎㅎ
저는 채사장의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담담한 시선과 그리고 그의 어투가 참 맘에 들었어요.
아마도 그가 죽음의 문턱 가까이 가봤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현실을 넘어선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웠구요.
이제 한국은 본격적인 설연휴가 시작 되었군요.
여기는 춘절이라고 하는데 28일 부터 담달 4일 까지 연휴랍니다.
bookholic 님의 가족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많으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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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년 124

오늘의정진: 從他謗任他非(종타방임타비) 남을 비방에 따르고 남의 비난에 맡겨둬라


- 100일 정진, 30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스물 아홉 번째 구절은 

<但自懷中解垢衣誰能向外誇精進/단자회중해구의수능향외과정진)

다만 스스로 마음의 때 묻은 옷을 벗을 뿐누가 능히 밖을 향해 정진하는 것을 자랑 하는가> 였다

수행은 남에게 자랑하려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마음공부는 눈으로 책을 보고 이해하는 학문이 아니다.

내가 사는 동안에는 마음의 때는 한시도 쉴틈이 없이 끼게 마련이다

내가 이만큼 수행을 잘 했다고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다.

오직 한걸음 한걸음 나의 길만 걸어갈 뿐이다

 

오늘은 서른 번째 구절

從他謗任他非 (쫓을 종다를 타훼방할 방임할 임다른 타아닐 비  )

종타방임타비 /남을 비방에 따르고 남의 비난에 맡겨둬라

把火燒天徒自疲(잡을 바불 화태울 소하늘 천무리 도스스로 자피곤할 피 )

파화소천도자피 /불로 하늘을 태우려 하나 공연히 자신만 피곤하도다

 

수행자는 남들의 시선과 남들이 하는 말에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남이 뭐라고 하는게 들리는가?

내 집이 불에 타서 홀라당 다 태워버리게 생겼는데 남의 집 형편을 따질 틈이 없는 것이다.

수행은 철저하게 자신만을 바라봐야 한다.

남들에게 자비를 배풀고 중생을 구제하는 그런 거창한 일들은 내가 깨닫기 전에는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불쏘시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불을 지핀다고 해도 하늘이 태워지는가

진정으로 태워야 하는 것은 내 안의 불성이 발현 되도록 내 마음에다 불을 지펴야 한다.


()의 공안(公案)중에 파자소암(婆子燒庵이라고 있다

어느 조그만 절즉 암자(庵子)에서 수행을 하는 스님이 계셨다

그 암자 아래 집에는 스님이 수행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부처님 모시듯 정성들여 시봉(侍奉)하는 노파와 아름다운 딸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노파는 자신의 딸을 불러 말했다.

"얘야오늘 밤에 네가 스님 암자에 가서 스님을 한번 끌어 안아보거라그리고는 스님의 마음 상태가 어떠하신가를 물어 보고 오너라스님의 공부가 어느 정도가 됐었는지 한번 알아봐야 겠다."

노파는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 자신의 딸을 시켜 스님을 시험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밤이 깊어 스님이 암자에 혼자 있을 때 느닷없이 등장한 딸은 스님을 껴안고 노파가 시킨대로 온갖 교태를 부려 시험을 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전한 대로 물어 보았다

"스님소녀가 스님의 품에 안겼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하세요?

그러자 스님은 "목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대듯 추운 겨울처럼 아무런 온기도 못 느낀다

내 마음은 조금도 동요 되지 않는구나얘야." 

이에 탄복한 딸은 얼른 암자에서 집으로 내려와 노파에게 스님이 한 말을 전했다

이를 전해 들은 노파는 갑자기 화를 내면서 횃불을 들고 암자로 올라갔다.

암자로 올라 온 노파는 가지고 온 횃불로 암자를 태우기 시작했다.

"아니내가 여지껏 마귀 새끼를 키우고 있었구나당장 썩 나가라엉터리 스님아!" 하고 외쳐대면서 스님을 쫓아냈다.

아니 스님은 분명 딸 아이의 몸을 탐하지 않았는데 왜 노파는 화를 내고 암자를 태워 버렸을까

이게 바로 <파자소암의 공안이다.

스님은 분명히 색()에 집착하지 않았는데 노파는 분노했다.

도대체 스님이 무얼 잘못한 것 일까왜 노파는 암자를 태워버렸을까


從他謗任他非 (종타방임타비) /남들의 비방과 훼방에 신경쓰지 마라.

把火燒天徒自疲(파화소천도자피) /불로 하늘을 태우려 하나 공연히 자신만 피곤하도다.


증도가의 이 구절을 음미하면 파자소암의 화두에 대한 실마리가 보인다.

()은 죽은 언어의 끝을 잡고 화두(話頭)를 드는 것이 아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활구(活句)가 나의 온몸에서 팔딱 거려야 한다

어째서 나는 남들의 비방에 신경쓰고고목나무 처럼 생기(生氣)가 없어야 하는가?

불타올라야 한다하늘을 태우는 헛 수고 하지 말고 내 자신을 태워야 한다.


<일일 소견>

노파가 태운 것은 과연 암자 였을까

노파가 태운 것은 암자가 아닌 자신 이였다파자소아(婆子燒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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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23

오늘의정진: 但自懷中解垢衣 (단자회중해구의) 다만 스스로 마음의 때 묻은 옷을 벗을 뿐


- 100일 정진, 29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스물 여덟 번째 구절은

<上士一決一切了, 中下多聞多不信/상사일결일체료, 중하다문다불언)

상근기는 한번 결단하여 일체를 요달하고, 중하근기는 많이 들을 수록 더욱 믿지 않는다.> 였다.

공자(孔子 B.C 551~479)도 논어(論語) 에서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를 밝힌 적이 있다.


공자가 말한 상근기는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이다.

이는 태어나면서 부터 아는 경지의 사람을 뜻한다. 소위 신동(神童) 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어릴때 부터 이미 보통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중근기는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 이며, 배워서 아는 경지의 사람을 말한다.

공자는 스스로 자신은 생이지지자가 아니고 학이지지자라고 했다.

공자조차도 학이지지의 경지라면 평범한 사람들은 더이상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물론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나온 겸손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하근기는 곤이지지자(困而知之者) 로 곤란함에 부딪혀 어렵사리 경험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알아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아마도 이 부류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많을 것 같다.

태어나면서 부터 미리 아는 경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자처럼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부류도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낮은 근기는 아예 알려고 조차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현저히 낮은 사람들 부류일 것이다.

그러나 유학의 이러한 분류는 불교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유학이 근기(根機)의 기준을 현생(現生)에 두었다고 한다면 불교는 근기의 기준을 현생과 과거생까지 포함한 기나긴 시간속의 인과(因果)로 보고 있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상근기는 이미 수 없이 많은 윤회의 전생(前生)을 거쳐 쌓아 온 수행의 결과라고 한다. 태자 싯다르타가 한 생에만 국한되어 수행을 쌓아 부처를 이룬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부처님 전생담(前生談) <자타카>에는 과거 500생이 넘는 생애 동안 수행과 덕행을 쌓은 일화가 나온다.  부처가 되기 이전에 싯다르타는 과거생에 이미 토끼, 사슴, 코끼리 같은 동물의 생과 수행자, , 상인등의 모습으로 살았던 전생들을 겪어 왔던 것이다.

깨달음이란 단지 한 생애, 한 순간의 정진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상근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과거생 부터 무수히 닦아 온 것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하근기 부류의 수행자 역시 근기가 낮다고 무시 할 수 없다.

그들 역시도 원을 세우고 수 많은 생을 통해 공덕과 수행을 쌓아왔을 것이다.

상근기든, 중하근기든 모두 결국엔 깨달음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 만으로도 꼭 기필코 불도를 이룰 것이다.


오늘은 스물 아홉 번째 구절

但自懷中解垢衣 (다만 단, 스스로 자, 품을 회, 풀 해, 때 구, 옷 의  )

단자회중해구의 / 다만 스스로 마음의 때 묻은 옷을 벗을 뿐

誰能向外誇精進 (누구 수, 능할 능, 향할 향, 바깥 외, 자랑할 과, 정할 정, 나갈 진  )

수능향외과정진 /누가 능히 밖을 향해 정진하는 것을 자랑 하는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이라 하여 닦을 것도 없다고 했지만 그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면 여전히 닦을 것이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옷에 때가 묻으면 입었던 옷을 벗어내고 물로 빨래를 해야 깨끗히 씻어낼 수 있다.

마음의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때 묻은 옷을 벗어 씻어내듯 마음의 때도 씻어내야만 한다.

그런데 마음 닦는 다면서 마음이 아닌 다른 외부를 향한 수행과 정진은 다 헛수고 일 뿐이다.

자신의 마음을 벗어난 외부에서 찾는 것은 정진(精進)이 아니다.

오직 나의 마음 속에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밖에서 구하지 말라는 영가스님의 경책이다.


<일일 소견>

우리는 이번 생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생에 집착하며 살아간다.

이번 생이 과거 생에서 부터 이어져 왔고, 다음 생에도 이어짐을 잊지 말기를...

본래 오고 감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음을 깨우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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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22

오늘의정진: 上士一決一切了(상사일결일체료) 상근기는 한번 결단하여 일체를 요달하고


- 100일 정진, 28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스물 일곱 번째 구절은

<三身四智體中圓, 八解六通心地印/삼신사지체중원, 팔해육통심지인)

삼신과 사지는 본체 가운데 둥글고, 팔해탈, 육신통은 심지의 도장이다.> 였다.

땅은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터전이다.

심지는 마음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터전이 되는 것이다.

심지인(心地) 에서 심지를 '마음의 땅' 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마음 자리'라고 보는게 더 어울릴 듯 하다.

우리가 흔히 심지가 굳다, 혹은 심지가 약하다는 말을 쓰곤 한다.

이는 마음이 견고하고 굳고 혹은 마음이 여리고 약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심지인은 마음 자리에 확실한 도장을 찍어 놓은 것처럼 확실하다는 뜻이다.


오늘은 스물 여덟 번째 구절

上士一決一切了 (윗 상, 선비 사, 한 일, 결단할 결, 한 일, 온통 체, 마칠 료 )

상사일결일체료 / 상근기는 한번 결단하여 일체를 요달하고

中下多聞多不信  (가운데중, 아래 하, 많을 다, 들을 문, 많을 다, 아닐 불, 믿을 신)

중하다문다불언 / 중하근기는 많이 들을 수록 더욱 믿지 않는다.


본래 마음은 높고 낮음이 없는 차별이 없는 자리이지만 사람마다 근기(根機 혹은 根器 )가 달라 본래 마음으로 가는 순서는 앞뒤가 있다.

근기는 마음이 자라는 터전인 심지(心地)와도 같다.

우리가 농사 짓는 땅에 따라 곡식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듯 각자의 마음 터전에 따라 수행의 성과도 달라진다.

즉 근기에 따라 깨달음의 길에 빠르고 늦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성장하는 터전이 가장 좋은 순으로 상근기(上根機),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로 구분하게 되었다.

상근기인 수행자는 마음 한번 결단을 하면 단박에 일체를 깨닫게 되지만 중근기와 하근기는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오히려 한번에 결단을 내지 못하고 많이 들을 수록 의심만 생긴다.

그러니 자연히 자신이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된다.  

우리 학교 공부도 마찬가지 아니였던가?

분명 유전자가 좋아서인지 조금만 노력해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친구가 있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중하위권에 머무르며 좌절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것은 모두 근기의 차이 때문이었다.


본래 마음 자리는 높고 낮음이 없는 평등한 자리 이지만 성취함에 있어서는 분명 빠르고 늦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

자신이 상근기인지 중하근기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지금껏 증도가에서 언급했던 깨달음에 대한 구절들이 믿어지는지 혹은 의심 밖에 안드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면 된다.

누구에게나 마니주를 감추고 살고 있으며 그걸 내 마음 속에서 발견하게 됨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걸 믿지 못 할 수록 의심은 계속되고 결국 자기 본래 모습을 찾기는 더욱더 어려워지게 된다.

그렇게 깨닫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본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느냐 못 믿느냐의 문제로 좁혀지게 된다.

그래서 상근기는 마음 한번 내는 것으로 본래 자신에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음을  믿을 수 있다.

성경속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만큼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 17 20>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능히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예수님도 말씀 하셨다.

내 안의 불성이 있다는 믿음이 겨자씨 만큼만 있어도 상근기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깨달음은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일일 소견>

나도 모르게 상대를 불편하게 해주지 않았는지...

나도 모르게 손해 보는 짓은 안 할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지...

나도 모르게 이익을 먼저 따지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지....

지혜롭게 마음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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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21

오늘의정진: 三身四智體中圓 (삼신사지체중원) 삼신과 사지는 본체 가운데 둥글고


- 100일 정진, 27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스물 여섯 번째 구절은

<無價珍用無盡, 利物應時從不吝 /무가진용무진, 이물응시종불인)

가치를 메길 수 없는 보배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만물의 이로움에 응하며 때에 따라 아끼지 아니한다> 였다.

마음 속에 감추어진 무가진은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다.

또한 각각의 중생들에게 온갖 이익을 아낌없이 가져다 준다.

이러한 보물이 우리 모두에게 있으며 또한 자유자재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스물 일곱 번째 구절

三身四智體中圓 (석 삼, 몸 신, 넷 사, 지혜 지, 몸 체, 가운데 중, 둥글 원 )

삼신사지체중원 / 삼신과 사지는 본체 가운데 둥글고

八解六通心地印(여덟 팔, 풀 해, 여섯 육, 통할 통, 마음 심, 땅 지, 도장 인)

팔해육통심지인/ 팔해탈, 육신통은 심지(마음 자리)의 도장이다.


불교에서 삼신(三神)은 깨달은 부처의 몸이 3가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부처의 몸이 단지 육신(肉身)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구분하면 부처의 몸은 우주의 차원에 따라 법신(法身), 보신(報神), 응신(應身)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찰에 가면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육신의 부처가 아니다.

하지만 불교 신자들은 법당의 부처님을 진짜 부처님이라 생각하며 절을 하거나 기도를 드린다.

분명히 법당에 계시는 불상은 단지 나무나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에 불과할 뿐인데 불교 신자들은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우상(偶像)을 숭배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으로 단하소불(丹霞燒佛) 이라는 선가(禪家)의 유명한 공안(公案)이 있다.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이란 스님이 혜명사라는 절에 객승으로 머물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추운 겨울날이었으나 혜명사에서 객승을 접대하는 원주스님은 단하스님이 머무는 곳에 불을 때 주지 않았다.

그런데 한 밤에 절의 법당쪽에서 불을 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원주스님은 무슨일 인가 싶어 법당을 향해 달려가 보니 법당 안에서는 단하스님이 법당안에 모셔져 있던 불상을 도끼로 쪼개어 토막을 내서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원주스님은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냐 면서 난리를 쳤다.

단하스님은 이때 전혀 기죽지 않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다비식(茶毘) 을 치룬후 수 많은 사리를 얻으셨소. 그래서 내 여기 부처님도 태우면 사리가 나오는지 볼려고 했소' 답했다.

이에 원주 스님은 기가 막혀,  '무슨 나무에서 사리가 나오는 거요? '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단하스님은 ' , 그럼 사리가 나오지 않으면 그냥 나무 토막이지 무슨 부처요? 날도 추운데 그럼 불이나 때면서 몸이나 녹이면 되겠구려' 하고 답했다고 한다.


부처의 몸은 고정된 형상이 있지 않다.

더구나 나무나 청동으로 부처의 모양을 본 떠 만든 불상이 진짜 부처가 아니다.

단하스님은 부처의 상()에 메이지 않았기에 부처를 도끼로 쪼개고 불로 태울 수 있었다.



진리의 모습, 즉 법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법신(法身)이요.

깨달음에 대한 결과의 모습, 수 없이 많은 생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게 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보신(報身)이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모습, 즉 고통속에 빠진 수 많은 중생을 각각의 근기에 맞게 여러가지 다양한 화신(化身)으로 존재하는 것이 응신(應身)이다.

그렇다부처는 고정된 모습으로 있지 않다. 나의 마음도 고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삼신과 네가지 큰 지혜(四智), 모두 다 내 마음의 본체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또한 팔해탈(八解脫)과 육신통(六神通) 과 같은 깨달음의 경지와 신통술도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심지인()으로 삼는 다고 했다.

심지인은 마음의 땅에 도장을 찍듯히 확실히 보증 한다는 것이다.

나의 본체 마음속에서 삼신의 부처가 현현하게 나투어 돌아간다.

그렇다면 우선은 내 마음 속의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을 믿어야 한다.

그럼 이제  단하선사가 불상을 도끼로 쪼개고 불로 태운 행위의 공안을 타파할 수 있는 실마리를 풀게 된다.


<일일 소견>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凡所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 )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이 형상이 아님을 볼 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 <금강경 제 5분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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