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92일차

 

<泰山不讓土壤(태산부양토양),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故能就其深 (고능취기심)

산은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기에 큼을 이루고,

바다는 가는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기에 깊음을 이룬다.> - 사기 <이사 열전> 중에서

 

문장은 (秦)나라의 재상 이사(李斯, 기원전 280~208) *축객령(逐客令) 거두어 달라며 진왕에게 올린 상소문의 구절이다. 진왕은 그의 상소를 받아들여 인재 등용에 있어 작은 것을 버리지 않고, 미미한 재능까지 품게 되었다. 이사의 조언대로 진왕은 마침내 6국을 통일하고 스스로 시황제가 되었다. 이사는 진이라는 변방의 나라를 거대한 제국으로 설계한 명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명성은 세세생생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사에게 예상치도 못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진시황이 전국 순시중에 급사하게 것이다. 진시황의 유언대로 장남 부소가 황위를 계승해야 했지만 진시황의 또 다른 아들 호해의 스승인 환관 조고가 호해를 후계자 자리로 밀었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조고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교묘한 말로 이사를 설득했다.

부소가 즉위하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 몽염이 권력을 잡으면 지금의 영광도 사라질 것이라는 말, 자손과 가문까지 흔들릴 것이라는 말 앞에서 이사는 흔들렸다.

결국 그는 조고의 대로 부소가 아닌 호해를 선택한다.

명재상이었던 이사가 어떻게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사실 이사는 옳고 그름을 전혀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알면서도 스스로 무너졌다.

그를 무너뜨린 것은 조고의 혀가 아니라, 그 혀에 반응한 자기 안의 공포였다.

선택의 순간 조고의 말은 조언이 아니라 유혹이 되었고, 유혹은 공포로 변하여 이성을 가려 버렸다.

천하를 설계하던 사람이 끝내 자기 자리, 자기 권력, 자기 안위부터 계산한 것이다.

 

한신도 또한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다. 괴통은 그에게 여러 번 충고했다.

지금 제나라를 얻었으니, 더 이상 남의 장수가 아니라 스스로 한 축이 되라고 조언했고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자기 운명을 자기 손으로 붙들라고 간절히 설득했다.

그러나 한신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천하는 읽었으나, 자기 안의 결핍은 끝내 다 읽지 못한 것이다.

굴욕을 참는 법은 알았지만, 독립을 감당하는 법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괴통의 조언은 한신에게는 끝내 받아들일 없는 자유의 무게였는지도 모른다.

 

항우에게도 이러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범증은 여러 그에게 조언을 했다. 홍문연(鴻門宴)에서는 유방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항우는 끝내 실행하지 못했다. 천하의 판을 굳히기 위해 팽성을 떠나지 말라고 했지만 떠났다. 초회왕을 옹립해야 했지만 결국 죽였다. 그러나 항우는 범증의 조언을 하나도 듣질 않았다.

과연 항우는 범증의 조언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일까.

사실 항우는 범증의  조언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안의 영웅상이 너무 단단했다.

범증의 말은 옳았으나, 옳은 말이 언제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항우처럼 자기 자신에게 이미 매혹 된 사람에게는 옳고 그름은 모두 자기상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영웅상에 압도되어 끝내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인물이 것이다.

그래서 죽어서 전설이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이사는 공포에 무너졌고, 한신은 결핍에 붙들렸고, 항우는 자기 자신에게 갇혀 버리고 말았다.

반면에  유방은 달랐다.

 

도망자의 무리에서 패현으로 돌아온 유계는 패공(沛公)이라는 호칭을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오히려 소하가 그보다 정돈되어 있고, 더 믿음직해 보였다. 유계는 여전히 사수의 정장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하는 물러섰고, 유방을 밀어 올렸다.

유계는 50평생 이렇게 까지 자신이 올라갈지 몰랐다. 그래서 사양했다.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실패하면 모두가 끝이라는 것도 알았기 때문이다.

유계는 결국 소하의 말을 받아들였다.

유계는 소하의 감언이설 같은 유혹에 넘어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니었다.

소하는 유계의 공포를 자극하지 않았다. 그에게 허영도 부추기지 않았다.

다만 지금 판에서는 당신이 아니면 된다고, 당신이 그 자리를 올라야 한다고 설득했다.

오히려 자기보다 책임의 자리로 걸음 올라간 것이었다.

순간부터 유계는 패공 유방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초한지의 인물들은 단순한 영웅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안에 있는 여러 겹의 마음을 비추어 보여준다.

이사 안에는 공포 앞에서 무너지는 내가 있다.

한신 안에는 인정받고 싶어 끝내 독립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항우 안에는 자기 확신이 너무 커서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내가 있다.

그리고 유방 안에는, 두렵고 누추하고 모자라 보이지만 그래도 자기보다 큰 책임의 자리로 한 걸음 올라가려는 내가 있다.

 

조언과 충고 그리고 유혹은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내게 다가 온다. 둘 다 길을 제시하고, 둘 다 내 귀에 속삭인다. 문제는 그 말이 무엇이냐보다, 그 말을 듣는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이다.

안에 공포가 가득하면 유혹이 조언처럼 들리고, 내 안에 허영이 가득하면 독이 되는 말조차 격려처럼 들린다. 반대로 내 안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으면, 쓰디쓴 말도 비로소 조언이 된다.

 

그러니 사람을 망치거나 살리는 것은 능력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 조언과 유혹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그리고 분별을 가로막는 자기 안의 공포와 허영과 결핍을 얼마나 아는가.

문제는 안에서 만들어 낸다.

 

초한지는 전쟁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선택의 이야기다.

정확히는, 선택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다.

똑똑한 이사도, 천재적 장수 한신도, 초패왕 항우도 선택 앞에서 무너졌다.

유방만이 결과적으로 자기보다 책임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움직여 천하를 얻었다.

 

 

선택의 순간에 먼저 보아야 것은 바깥의 혀가 아니라, 그 혀에 흔들리는 내 안의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사도, 한신도, 항우도, 유방도 결국은 내 안에 존재하는 여러 얼굴들 중의 하나 일 뿐이다.

오늘 나는 누구의 얼굴로 하루를 선택하고 있는가.

 

: *축객령(逐客令): 진나라에서 실시한 외국인 추방령이다. 당시 진에는 육국의 떠돌이 문사, 재사들이 모여 있어 간첩활동을 하기도 했으므로 그걸 방지하고자 나라 안의 외국인(진을 제외한 6국 사람들)을 모두 추방하고자 명을 내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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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01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나니 초한지의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项庄舞剑意在沛公
중국 외무부장 왕이가 한국에 사드배치될 때에 쓴 말이죠.
그 조언과 충고와 유혹이 나의 어디를 건드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호시우행 2026-04-0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한지는 선택의 이야기란 표현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다시, 100일 정진  91일차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고, 때가 왔을 때에 단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게 됩니다. 걱정거리는 욕심이 많은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한왕의 신하로 있지만 군주를 벌벌 떨게 할 만한 위력이 있고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는데, 당신은 앞으로 위태로울 뿐입니다.

 

괴통은 한신에게 말했다.

유방과 항우가 다투는 천하에서, 이제는 한신이 제나라의 왕이 되어 천하를 셋으로 나누고 형세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이른바 천하삼분론이다.

그러나 한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듭 거절했다.

흔히 한신의 비극은 괴통의 계책을 따르지 않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한신이 여후에게 죽임을 당하며

“내가 괴통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는 뜻의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왕 유방을 떨게 하고, 초패왕 항우조차 두렵게 만들었던 한신이 어째서 괴통의 말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인의 손에 허망하게 죽어야 했을까.

그것이 단지 유방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을까.

나는 한신의 비극을 다른 곳에서 보게 된다.

 

한신은 어릴 때부터 가난했다.

굶주렸고, 사람들에게 기대어 밥을 얻어먹었다. 한때는 시골 정장 집에서 여러 날 밥을 얻어먹었으나, 그 집 부인이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끝내 밥을 주지 않게 되었다. 결국 한신은 그 집을 떠났다.

그러다 너무 배가 고파 괴로워하던 어느 , 빨래터의 한 아낙이 그를 보고 밥을 주었다.

뒤로도 여러 아낙에게 밥을 얻어먹은 한신은 기뻐하며 말했다.

반드시 은혜를 크게 갚겠소.

 

실제로 한신은 훗날 초왕이 , 자신에게 밥을 준 그 아낙을 찾아가 일반천금(一飯千金)의 고사대로 천금을 주어 보답했다. 자신에게 과하지욕(胯下之辱)의 굴욕을 준 건달도 찾아내어 죽이지 않고 장교로 삼았다. 옛날 밥을 주었던 정장 집에도 다시 찾아가 그 값을 치렀다.

 

그런데 시절 빨래터의 아낙은 한신의 보답 앞에서 오히려 화를 냈다.

대장부가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니, 내가 왕손을 불쌍히 여겨 밥을 주었을 뿐이오. 어찌 보답을 바랐겠소?

 

바로 말이 한신의 핵심을 찌른다.

한신은 스스로 대장부라 여겼고, 실제로도 세상은 그의 큰 뜻을 알지 못했다. 그의 재능은 분명했고, 포부 또한 컸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핍이 하나 있었으니.

빌어는 먹어도 스스로 벌어먹지는 못한 것이다.

 

배가 고파 죽게 생겨도, 일을 해서 끼니를 해결하겠다는 태도보다는 누군가의 인정과 도움 속에서 버티는 쪽이 먼저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굶주림을 견디는 힘은 있었으나, 자기 삶을 자기 손으로 꾸리는 힘은 끝내 약했던 것 아닐까.

 

한신은 미래를 보았다. 큰 뜻도 품었다. 굴욕도 참았다.

마침내 자신의 재능으로 천하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배고프면 남에게 기대고, 굴욕이 와도 참으면 되고, 때가 오면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줄 것이라는 습성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빌어먹는 것은 견뎠지만, 스스로 벌어먹는 독립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그는 제나라를 얻고도 완전히 자기 길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신은 스스로 얻은 위에 서서도, 한왕 유방에게 자신을 가제왕(假齊王)으로 봉해 달라고 청한다.

제나라를 손에 넣은 사람이, 형식이나마 왕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유방은 요구에 크게 분노했다. 자신은 항우와의 싸움 속에서 목숨이 오가는 판에 서 있는데, 한신은 작위부터 요구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장량과 소하의 만류 끝에 유방은 한신을 제왕으로 세웠지만, 바로 그 순간 유방은 한신을 두려운 존재로 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한신의 비극은 괴통의 계책을 따르지 않은 데만 있지 않다.

어쩌면 깊은 ,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결핍과 의탁의 습성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정받기를 바라고, 남이 자리를 주기를 기다리고, 굴욕은 참고 견디면 된다고 여기는 태도.

그것이 결정적인 순간, 독립의 결단을 가로막은 것은 아닐까.

괴통의 계책도, 무섭의 충고도, 결국은 이제는 남의 밑에 서지 말고 스스로 한 축이 되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신은 끝내 자리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니 항우에게 몸을 의탁하기도 했고, 유방의 신하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유방과 항우는 전혀 달랐다.

유방은 비록 낮은 신분에 구차한 모습도 있었지만, 언제나 자기 무리를 모아 스스로 살아남았다.

건달 노릇을 하든, 사수의 정장을 하든, 도망자들의 우두머리가 되든, 늘 자기 식으로 판을 만들었다.

항우는 본래 귀족 출신이었고, 능력 또한 출중하여 스스로 중심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신은?

가장 뛰어난 전술과 능력을 지녔음에도, 스스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한신의 비극은 천재적 재능이 아니라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해서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태사공 사마천이 한신의 비극을 안타까워 하지 말라고 것이 이해가 된다.

 

남이 주는 밥으로는 목숨을 이어갈 있어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는 어렵다.

결국 사람은 밥그릇을 스스로 책임 있어야 한다.

자기의 밥은 스스로 벌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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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31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다시, 100일 정진  90일차

 

여기 사내가 있다.

곱상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언제나 장검을 차고 다녔지만 궁핍하게 살았다.

그는 오늘도 도박판에서 자신의 애인이 춤을 추며 돈을 전부 탕진했다.

아름다운 여인이 춤을 추고 노래해서 돈을 사내는 술과 도박으로 써버렸다.

사람들은 회음(淮陰: 지금의 강소성)지역 최고의 무희가 이런 기생오라비 같은 사내에게 빠진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날 회음의 건달 하나가 사내의 앞을 막았다. 그리고는 시비를 걸었다.

 

어이, 자네, 허리에 긴 칼은 왜 차고 다니나?

멀쩡하게 생긴 놈이 여자한테 빌어먹고 다니는 주제에 칼은 필요한가.

어울리지도 않는데, 차라리 그 칼을 내게 넘기지 그래? 내가 그 칼로 진나라 놈들을 썰어 버릴테니.

자네가 그러고도 남자인가? 자네의 그 꼴은 도저히 봐 줄 수가 없어.

이봐, 자네 용기가 있다면 그 칼로 날 베고 여길 지나가던가, 아니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구.

 

사내는 자신을 모욕하며 도발하는 건달 앞에서 그저 고개를 숙인 듣고만 있다.

싸움이 일어날 기미에 주위의 사람들은 건달과 사내를 에워싸며 몰려 들었다.

사내는 천천히 자신의 장검에 손을 갖다 댔다. 뽑아서 단 칼에 베어 버리면 된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긴장하고 사내를 주시했다.

사내의 손은 장검에서 바닥으로 짚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건달의 가랑이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사내의 이런 행동에 사람들은 실망했고, 곧 놀림꺼리가 되어버렸다.

 

훗날 사람들은 일을 두고 *과하지욕(跨下之辱)이라 불렀다.

 

내가 순간 모욕을 참지 않고 단칼에 상대를 베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필부의 용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봤자 난 사람을 죽인 죄인밖에 더 되지 않나? 그러나 그 순간의 굴욕을 참음으로써 난 더 큰 포부를 실현할 수 있었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사내가 이루어낸 성과를 당시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내가 바로 당대에 아무도 이길 없다고 여긴 패왕 (覇王項羽)를 꺽고 천하쟁패의 결전에 종지부를 찍은 파초대원수 (破楚大元帥), 한신(韓信)이었다.

 

초한지(楚漢志) 사실 초한대전이라는 전쟁의 무용담보다는 비극적 인물 역사에 가깝다.

유방을 제외한 항우 그리고 한신 모두 비극적 최후를 맞이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항우의 천하쟁패의 실패보다 더 안타까운 것이 바로 한신의 마지막이다.

한신은 유방과 항우를 같이 비교하면 독특한 특징이 있다.

유방은 밑바닥의 감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고, 항우는 귀족의 명예로 스스로가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한신은 둘의 성질을 묘하게 함께 지녔다.

바닥의 생활도 알았고, 귀족의 기개도 가졌다. 그래서 더 크게 떠올랐고, 그래서 더 위험해진 것이다.

 

유방, 항우, 한신 중에 자신의 개인적 능력으로 가장 자수성가를 이룬 인물이 바로 한신이다.

한신은 천하쟁패 시기에 항우와 유방의 편에 모두 서봤다.

그가 최종, 누구의 편에 섰느냐에 따라 천하를 쟁취하게 되는 주인이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출중한 개인적 능력과 전장에서의 화려한 공적도 결국 천하 통일 버려졌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된 것이다.

한신에 대한 안타까움은 출중한 개인 능력에 비해 너무나 자기 자신에 대해 인식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한신의 재능을 두려워하는 유방 앞에서 자신을 낮춰야 했거나, 아니면 항우와 유방과의 경쟁에서 제 3의 위치로 스스로를 자립했어야 했다.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에 가려 자신의 처지를 살펴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을 감추듯이 천하 통일 후에도 자신을 감춰야 했지만 유방을 너무 얕보았고, 너무 믿었다.

초한지의 가장 비극적 인물, 한신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한신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강렬한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인물이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만이 아니라, 내려 놓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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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속에는 한신과 관련된 많은 사자성어를 접하게 된다.

방금 거론된 과하지욕, 토사구팽 말고도 *일반천금(一飯千金), *배수일전(背水一戰), *다다익선(多多益善), *사면초가(四面楚歌), *십면매복(十面埋伏) 등이 모두 한신과 연관된 고사 성어들이다.

이들 성어는 현대 일상에서도 많이 쓰인다.


:  *과하지욕(跨下之辱): 가랑이 아래의 굴욕, 한신이 더 큰 포부를 위해 잠시의 굴욕을 견뎠다는 고사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 사냥이 끝나면 개는 삶아 먹는다, 한신이 마지막 죽음에 이르게 된 고사

*일반천금(一飯千金): 밥 한끼에 천금을 갚는다. 한신이 가난했던 시절, 얻어먹은 끼니를 훗날 천금으로 보답했다는 고사

*배수일전(背水一戰): 등 뒤에 물을 두고 전투를 벌임,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곳에서 사생결전을 벌인다는 고사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유방과의 군사능력 문답에서 한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고사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에 초나라의 노래 소리, 한신에게 포위당한 초나라 병사들이 절망적 상황에서 고향 초나라의 노래를 부른다는 고사

 *십면매복(十面埋伏) : 십면이나 되는 매복을 깔아 놓음, 한신이 항우를 잡기 위해 곳곳에 매복을 숨겨 놓았다는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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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30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한지를 읽으면 개인적으로 한신에게 몰입하게 됩니다. 유방이 한신을 두려워한 것이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평생 품고 있던 감정이었으니...말씀하신 것처럼 회음후로 봉해졌을때 제3 세력으로 자립했다면 중국의 역사는 또 얼마나 다이나믹하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힐 2026-03-31 14: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초한지에서 저도 가장 감정 이입이 되는 인물이 한신이였어요.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생각 안 하기로 했어요. ^^
한신을 통해 배울 점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역사 속 인물을 분석하는가 봅니다. ㅎㅎ
 

- 다시, 100일 정진  89일차

 

전국시대, 중원을 차지한 일곱 강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패권 다툼은 끊이질 않았다.

혼란한 시대에, 열세 살 어린나이로 ()의 왕위에 오른 소년 (政) 훗날 천하를 통일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중원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진은 마침내 여섯 나라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정은 스스로를 시황제(秦始皇帝) 칭했다.

이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그의 것이었다.

그는 아방궁을 짓고, 천하의 부와 권세를 손에 쥔 채, 자신만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기를 꿈꾸었다.

인간이 누릴 있는 권능의 끝에 서서, 그는 자신의 제국 또한 영원하리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소불위 (無所不爲) 시황제에게도 끝내 외면할 없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북방의 흉노들였다.

오랑캐 흉노는 굶주린 이리떼처럼 끊임없이 제국의 경계를 흔들었다.

그들이 뛰는 황무지와 자신이 다스리는 풍요로운 제국 사이에 필요한 것은 경계를 세우는 것이다.

시황제는 북방의 요새와 성벽들을 연결해 거대한 방어선을 세우도록 했다.

방어선은 어느 길이가 만리나 이르렀다.

훗날 사람들은 그것을 만리장성이라 불렀다.

그러나 장대한 성벽은 황제의 위엄으로 쌓인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여섯 개국의 백성들의 땀과 , 그리고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의 죽음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만리장성을 쌓는 노역에 끌려간다는 것은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성을 쌓다 죽으면 시체를 그대로 흙과 사이에 벽으로 만들어 묻어버린다고 했다. 그 노역은 언제 끝날지도, 어떻게 죽음을 맞게 될 지도 모를 잔인한 일이었다.

 

무렵, 패현사수(沛縣泗水: 지금의 강소성 서주)  지역의 조그만 정장(亭长: 오늘날 파출소장)출신인 유계(劉季)에게도 제국의 명령이 떨어졌다.

죄수 여명을 호송해 북방 노역 현장으로 데려가라는 명령이었다.

유계는 이제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별다른 재주 없이 동네에서 하는 일이라곤 껄렁거리며 건달처럼 살아왔다. 굳이 재주라고 한다면 제법 허풍 떨 줄 알았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형님처럼 챙길줄은 알았다.

사람들은 그의 이런 때문에 우습게 보면서도 이상하게 따랐다.

그런 유계에게 생애 처음으로 제국의 중대한 호송 임무가 맡겨진 것이다.

정해진 기한에 도착하지 못하거나, 호송 하던 죄수가 한 명이라도 모자랄 시 호송을 책임진 유계는 목을 바쳐야만 했다.

하필이면 내가? 라는 생각에 유계는 자신에게 일을 맡긴 소하(蕭何) 나리가 원망 스러웠다.

패현의 하급 관리 였던 소하는 평소에 사고를 치는 유계와 패거리들을 여러 감싸주곤 했다.

이번에 소하 나리가 어쩔 수가 없다고 맡긴 일인데 이렇게 바에 그동안 신세진 갚는 셈치자.

 

유계는 대나무로 죄수들을 모두 고정 시키고 백명을 명이 움직이는 , 앞에서 진두 지휘를 했다.

과연 유계는 호송 임무를 완수할 있었을까.

 

유계 일행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제 시간에 닿기 위해 밤길에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시간에 도착할 있을 같지 않다.

게다가 어느 순간 인원 수를 세어보니,  몇몇 죄수들은 이미 틈타 달아난 뒤였다.

, 이제 어떻게 한다지?

제 시간에 도착 못해서 죽게 것이고, 설사 제 시간에 맞춘다고 해도 도망친 인원 때문에 또 죽게 될 텐데... 이를 어쩐다?

순간 유계는 죄수들을 돌아다 봤다.

죄수라고 하지만 그건 폭정을 삼는 진시황의 입장에서지, 사실 이들 모두 망한 육국의 백성들 아닌가.

그들이나 자신이나 불쌍한 백성에 불과 한데, 이제는 서로 같은 죄인으로 모두 목이 잘리겠구나.

그래,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야...

 

, 너희들 모두 풀어 주겠다. 해방이다.

어차피 우리는 노역 현장에 가면 모두 죽는다. 그럴 바엔 지금 당장 제 살 길을 찾아 흩어져라.

도망쳐라. 살려고 한다면, 지금 이때 뿐이다.

유계는 죄수들을 풀어줬다. 그리고 그 순간 부터 자신도 도망자가 되었다.

이제 유계는 이상 사수의 정장이 아닌 죄수를 놓아준 죄인이자 자신도 달아나야 하는 도망자가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흩어진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오히려 유계를 따르기로 작정했다.

그들 역시 어디로 달아나도 결국 죽을 운명이라면 차라리 자신을 살려준 유계와 함께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유계는 이제 자신을 따르는 망국의 백성들을 이끌고 산속으로 숨었.

다시 일개 도망자에서 도망자 우두머리가 된 것이.

도망자들의 우두머리가 훗날 막강했던 진을 무너뜨리고 천하를 차지하게 되리라고는, 그 당시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수의 정장(亭长) 유계(劉季), 그가 곧 한 제국을 세운 유방(劉邦: B.C 246~B.C 195: 출생은 여러개의 이설이 있다.)이다.

유방에게 죄수 해방이라는 결단이 없었다면 역사 속에서 한나라는 없을 것이다.

 

초한지(楚漢志)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천하쟁패를 다룬 역사 소설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유방보다 항우를 먼저 거론한다.

역시도 젊을 때는 항우의 휘황찬란한 무력에 열광했다.

하지만 나이를 어느 먹고 보니 그에게 한참 미치는 유방에 끌리는 이유는 뭘까.

유방, 그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든다.

 

:  *무소불위 (無所不爲):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즉 권능의 최정점을 뜻함.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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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88일차

 

제가 지은 모든 악업죄, 선행 없는 모든 탐심죄, 몸으로 입으로 뜻으로 지은 죄

일체 모든 잘못을 참회 합니다.

죄는 본래 자성 없고 마음 따라 일어나니 마음 만일 없어지면 죄업 또한 스러지네

죄와 망심 모두 놓아 마음 모두 공하여야 이를 일러 진실한 참회라 하네


참회진언(懺悔眞言)

우리들의 삶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대행 스님의 뜻으로 푼 천수경 중에서-

 

불교에서 참회(懺悔)는 단순히 자신이 지은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치는 행위가 아니다.

보통 뉘우친다는 의미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용서를 구하면 어느 정도 잘못이 탕감될 있다는 기대심리가 따라온다.

하지만 불교는 기본적으로 업이란 개념을 깔려 있다.

업은 용서를 구하고 뉘우치면 없어지는 개념이 아니다.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연기법은 바로 업의 원칙을 구조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잘못을 저지른 행위에는 반드시 인과관계에 의한 업이 따라온다.  

참회는 업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면으로 받아 들이는 태도를 지녔다.

따라서 불자는 자신의 지었던 잘못이 업이 됨을 누구보다 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업을 녹이는 마음 가짐을 수행으로 삼는다.

참회에는 업을 녹이는 수행 끝에 마침내 깨달음의 세계에 걸음 내딪겠다는 서원도 함께 포함된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과 잘못에 대한 댓가는 충분히 받겠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우리 마음 깊이엔 양심이란 것이 작동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다면 마음이 괴롭다.

괴로운 마음으로 인해 죄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참회란 잘못을 저지른  조차 본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없는데 무슨 잘못이 있고 참회가 있을 것인가.

 라는 (我相)을 완전히 녹이는 것.

결국 모든 잘못은 내가 있다는 아상 때문에 벌어진 것일지도...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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