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260223      (출생18627일 중국생활 9545일)

오늘의정진: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다시, 100일 정진,  57일차

<一切不留/일체불류/일체가 머물지 않으며

  無可記憶/무가기억/기억할 아무것도 없다>

 

당나라 시절, 홀 어머니를 모시며 살던 가난한 나무꾼이 있었다.

너무나 가난했지만 효심은 가득했던 순박한 노총각 나무꾼은 성실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나무 지게를 지고 돌아가던 참이었다.

어느 부잣집 앞을 지나가는데 집주인의 글을 읽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책인지는 몰라도 주인의 낭독은 음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소리와도 같았다.

노래인지 글을 읽는 것이 무엇인지 수는 없지만 나무꾼에게는 무척 신기했다.

가까이 듣고자 담 벼락에 붙어서 유심히 듣게 된다.

그렇게 듣게 구절, 그 한 구절이 지나가는 나무꾼 마음 속에 들어온다.

응무소주이생기심? 무슨 뜻일까.

가난하여 글자도 배우지 못했던 나무꾼은 글의 뜻이 무엇인지 수는 없었지만 흘러나오는 낭독 소리에서 끊이지 않는 마음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나무꾼은 집주인의 낭독이 멈출 까지 마음에 들어온 구절 하나를 잊지 않으려고 되뇌였다.

응무소주이생기심. 응무소주이생기심.

이윽고 낭랑한 목소리가 끊어졌다.

나무꾼은 집안으로 들어가 방금 낭독을 끝낸 주인을 찾아가 인사하고 물었다.

소인이 무식한 나무꾼이라 몰라서 묻습니다.

방금 읽으신 책이 무엇인지요.

, 방금 내가 독경한 것은 불자라면 모두가 읽는 금강경(金剛經)이라고 하네.

그게 무슨 경인가요.

이건 5조 홍인 대사께서 불자들에게 매일 독경하라고 권하신 불경이야. 자네도 한 번 읽어 보겠나.

아닙니다. 전 일자 무식이라 봐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방금전 읽으신 구절 중에 응무소주이생기심이란  구절이 나오던데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그건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는 뜻으로 풀이한다네.

응당히 마음을 머무는 없이 내라고요?

그래, 마음을 내려면 머무는 바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5조 홍인대사께서 풀이 하셨다네.

이때, 나무꾼 청년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응무소주이생기심,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는 뜻이 뭔지를 확실히 체득하고야 만 것이다.

나무꾼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은 이상 홀 어머니를 없다며 5조 홍인을 찾아 떠나게 된다.

이 가난한 노총각 나무꾼은 훗날 5조 홍인 (弘忍, 601~674)의 법을 이은 6조 혜능(慧能, 638~713) 으로 불려지게 된다.

  

호의정진(狐疑淨盡) 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마음이) 맑아지면

정신조직(正信調直)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며

일체불류(一切不留) 일체가 머물지 않으며

무가기억(無可記憶) 기억할 아무것도 없다

 

아마 혜능은 가난한 환경에 어머니를 봉양하느라 결혼도 못한 노총각으로 인생을 예정이였다.

하지만 남이 읽던 금강경의 소절, 응무소주이생기심 이란 말에 그의 인생은 바뀌어졌다.

고정된 것은 없다.

마음은 본래 고정되지 않았다.

고정된 것은 생각과 관념 그리고 기억 뿐이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과 기억도 잠시 뿐이다. 그 또한 고정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응당 머무는 없이 마음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혜능은 순간 뜻을 온전히 깨달았던 것이다.

순간 운명은 무너지고 바른 믿음만 세워지게 되었다.

우리도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 그런 믿음이 세워질지 그 누가 알겠는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다.

바람은 불고, 물은 흐르며, 새는 지저귄다.

마음은 그렇게 머무는 바가 없다.

: 一切 : 하나 , 모두 체: 일체가

不留:  아닐 , 머무를 류: 머무르지 않는다.

無可: 없을 , 가히 가 : 할 것이 없다.

記憶: 적을 , 생각할 억: 생각을 적어 남긴다. 즉 기억한다.다.

By Dharma & Mahea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다시, 100일 정진,  56일차

<狐疑淨盡 /호의정진/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마음이) 맑아지면 

 正信調直/정신조직/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며>

 

인도 남쪽 타밀지방, 아루나찰라(Arunachala) 라는 성스런 산이 있다.

산을 가본 적은 없지만 동경하며 자란 어느 평범한 사춘기의 소년이 있었다.

어느 , 그 소년에게 아무 이유 없이 강렬한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 이제 내가 죽는다.

병도 없고, 외상도 없는데도 다가오는 죽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좋다. 이 몸이 이렇게 죽는다면  나는 사라졌는가.

죽어가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순간 소년에게 죽음을 넘어선 무언가를 알게 된다.

경험은 관념이 아닌, 완전한 체험적 확신이었다.

이후 소년은 집을 떠나 아루나찰라로 떠난다.

나는 이제 아버지를 찾아가니 걱정하지 말라.

소년이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였다.

육신을 남겨준 부모를 떠나 참 나의 아버지를 찾아 성산으로 들어간 소년은 훗날, 아루나찰라의 현인이라 불려졌다. 

그가 바로 라마나 마하리쉬(1879~1950) 다.

 

아루나찰라에서 라마나 마하리쉬는 평생 질문만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 오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전해 것은 하나의 질문 뿐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에게는 어떤 체계적인 교리도, 현란한 설교도, 다른 그 어떤 가르침도 없었다.

오직 질문 하나로 그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 호수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어쩌면 그의 질문은 선가에서의 화두 시심마(是甚麽)  무척 유사하다.


시심마, 나를 움직이게 하고, 보고, 듣고, 말하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가.

경상도 선방의 스님들로 부터 유래된, 뭐꼬  이게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 화두와 같은 구조다.

뭐꼬.

나는 누구인가.

질문들, 사량의 헤아림으로는 답을 수가 없다.

 

계심평등(契心平等) 마음이 계합하여 평등케 되어 지고

소작구식(所作俱息) 짓는 바가 함께 쉬도다

호의정진(狐疑淨盡) 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마음이) 맑아지면

정신조직(正信調直)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며


여우는 의심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여우 같은 의심이 다하여만 질문에 대한 바른 믿음으로 전환된다.

아루나찰라의 어느 성자처럼, 산속 깊은 선방의 스님들처럼.

하나의 질문만이 바른 믿음으로 메아리쳐 돌아 것이다.

아루나찰라여!

나는 누구인가. 이 뭣꼬!


: 狐疑 :  여우 , 의심 의: 여우 같은 의심

淨盡:  깨끗할 , 다할 진: (의심)이 다하여 (마음이) 깨끗해지면

正信: 바를 , 믿을 신 : 바른 믿음

調直: 고를 , 곧을 직:  곧고 고르게 되다.


By Dharma & Mahea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다시, 100일 정진,  55일차

<契心平等/계심평등/마음이 계합하여 평등케 되어 지고

 所作俱息/소작구식/짓는 바가 함께 쉬도다 >

 

내가 부모로 부터 잉태되어 태어나기 이전을 선가에서는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본성을 뜻하는 본래면목(本來面目) 붙여서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이란 화두가 하나 생겨난다.

부모로 부터 태어나기 이전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화두가 선가에서 기록된 최초의 일화는 향엄스님으로 부터이다.

(香嚴, ?~898)스님이 스승인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에게 강하게 전해 받은 화두이다.

향엄의 화두는 먹고, 잠 자고, 똥을 싸는 생활의 모든 면에서 잠시도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청소하다가 무심코 던진 기왓장이 대나무에 맞아  하는 소리에 화두를 타파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부모로 부터 태어나기 이전 나는 누구인가.

본래면목이라 불리는 나의 본성은 어떤 것인가.

불성. 부처의 성품.

나의 모습이 부처의 성품이라면 나는 아직 부처인지 자각하지 못하는가.

자신의 성품이 본래 부처임을 아는 .

그것은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부터 있어왔던 성품이며, 나라는 껍데기가 사라져도 남을 존재이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어쩌면 모습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 것이다.

 

본래면목이란 나라는 존재를 생생히 느끼는 오감과 의식이 사라져도 여전히 남아 있을 본래 모습이다.

나의 본래 모습이 부처의 성품임을 여실히 알게 되는 것이 화두에 대한 그럴듯한 답이 된다.

그러나 이건 알음알이 설명에 불과하다.

진짜로 몸소 체득하여야 된다.

맛을 봐야 맛을 아는 것과 같다.

마음이 부처요.

성품이 바로 부처요.

아무리 먼저 깨달은 스승들께서 말씀을 하셨어도, 내가 아직 체험하지 못하면 전부 소용없다.

나는 누구인가.

다시 한번 내려가 보자

 

구경궁극(究竟窮極) 구경하고 궁극하여

부존궤칙(不存軌則)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요

계심평등(契心平等) 마음이 계합하여 평등케 되어 지고

소작구식(所作俱息) 짓는 바가 함께 쉬도다

 

마음의 심연에 끝까지 도달 본래면목 자리에서는 이상 어떤 법칙도 필요없다.

또한 평등한 마음 자리에서는 무언가를 행해도 걸림없다.

이미 한다는 마음 ()  쉬어져 있기 때문이라.

다시 아래에 놓을 뿐이다.

 

 

: 契心:  맺을 , 마음 심: 마음이 맺어져, 즉 마음이 계합되어

平等:  평평할 , 같을 등: 평등하게 되다

所作: , 지을 작: 짓는 바가, 즉 하는 바가

俱息: 함께 , 쉴 식 : 함께 쉬어진다






By Dharma & Mahea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다시, 100일 정진,  54일차

<究竟窮極/구경궁극/구경하고 궁극하여

不存軌則/부존궤칙/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요 >

 

나는 누구 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먼저 여러가지 단서를 살펴보기로 했다.

인간은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태어났으나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육체를 지녔기 때문에 반드시 생명이 다하는 순간 육체를 버리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그럼 육체를 잉태 시킨 어머니 속에서 10달간 자란 육체를 지닌 인간이 태어나면 먼저 행하는 일이 있다.

어머니 자궁을 찢고 나와 세상을 마주하는 인간의  번째 행위는 바로 울음이다.

모든 인간의 태어남은 울음에서 시작한다.

울음은 소리다.

가날픈 인간 아이의 울음 소리는 슬픔일까, 기쁨일까.

삶의 시작이 울음이라면 울음의 의미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처럼, 우리에게도 태초에 울음이 있었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듯이 우리에게도 각자 세계의 창조를 이루게 된다.

인간이라면 이러한 과정을 거침에 예외는 없다.

첫번째, 단서다.

그렇다면 소리가 시작이라면 마지막은 침묵인가.

죽음은 침묵이다.

두번째, 단서다.

시작과 끝은 소리와 침묵임을 확인했다.

 

구경궁극(究竟窮極) 구경하고 궁극하여

부존궤칙(不存軌則)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요

 

구경이란 현대 중국어에서 크게 두가지 뜻이 있다.

끝까지 도대체  뜻으로 문장의 상황에 따라 사용한다.

그런데 의미가 서로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도대체 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또 다른 단어를 한자로‘到底(dàodǐ: 따오디)  라고 쓴다.

글자는 이를  () () 로 이루어 졌다.

바닥에 이를 정도 까지 내려가 도달하는 것이 도대체  뜻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끝까지 도대체  서로 같은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경이란 어떠한 경지가 끝까지  상태를 말한다.

 

불교에서 구경각(究竟覺) 수행이 완성되어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할 사용한다.

깨달음 중에서도 끝까지  것이다.

궁극 또한 구경과 같은 경지다. 끝까지 가서 더 이상 갈 데도 없다.

구경과 궁극은 모든 경지의 마지막 끝맺음이다.

이를 테면 정상에 이르렀다면 다시 오를 정상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정상 꼭대기에 이루면 동안 올라왔던 모든 길이 모든 도가 하나로 모여지는 것을 경험한 셈이다.

내가 오르는 길이 남들이 오른 길과 다를지언정, 그 꼭대기에선 결국 하나로 만난 게 된다.

꼭대기에 이르면 동안 모든 길들의 의미가 서로 다를까.

그건 꼭대기에 이른 사람만이 있으리.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 究竟:  궁구할 , 끝낼 경: 끝내 궁구하여

窮極:  다할 , 지극할 극: 다하고 지극하면

不存: 아닐 , 있을 존: 있지 않음이여

軌則:  , 법 칙 : 일정한 법칙



By Dharma & Mahea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다시, 100일 정진,  53일차

<兩旣不成/양기불성/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거니  

一何有爾/일하유이/하나인들 어찌 있을건가>

 

우리에게 어느 누가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보통 이름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름은 단지 편의상 부르는 라벨일뿐 실제 나를 온전히 나타내지는 못한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타인에게 설명할 때는 이름 외에 성별, 나이, 직업 같은 표면적인 특성 뿐만 아니라 나의 드러나지 않는 성향까지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샅샅이 남에게 설명한다 해도, 여전히 나라는 존재를 상대는 가늠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해 타인에게 아무리 이해 시켜려고 해도, 타인은 결코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닌 이상 누구도 나를 정확히 없다.

나는 오직 나를 통해서만 나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이해하는 나는 오직 타인의 의식에서만 존재하지, 실제 나와는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타인 보다 알 수 있을까.

어쩌면 나도 나를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지동무동(止動無動) 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없고   

동지무지(動止無止)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없나니

양기불성(兩旣不成)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거니  

일하유이(一何有爾) 하나인들 어찌 있을건가

 

나의 이름은 내가 아니라면, 나의 육체가 나 인가.

육체가 나라고 한다면, 내 육체는 어디서 왔는가.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나를 형성 시켰으니, 나는 부모의 것인가.

그럼 부모에게서 나온 나는 부모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육체가 아니라면, 내 의식이 나인가.

그럼 의식은 언제 부터 나에게 있었을까.

엄마 뱃속에서 부터 잉태된 순간 부터 있어야 하는데, 그때 의식을 나는 기억하지도 못한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의식이 과연 나인가.

나는 과연 누구인가.

오늘의 질문은 인류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까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와 같다.

살아 있다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멈추는 순간이 온다.

멈추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해답을 알게 된다면, 살아 있는 동안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명은 그렇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진 존재이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만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둘이면서 하나이니 하나는 따로 홀로 있을 없다.

결국 나는 누구라고 확실히 답은 못하지만 태어남과 죽음을 경험하는 존재임은 확실할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은 모든 생명있는 존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 兩旣:   , 이미 기: 둘은 이미

不成:  아닐 , 이룰 성: 이루지 아니 하고

一何: 하나 , 어찌 하: 하나는 어찌하여

有爾: 있을 , 이것 이 : 이렇게 있는가

 


By Dharma & Mahe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