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론 2편. 사람의 마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사람들은 유방이 천하를 차지할 있었던 가장 이유 중의 하나가 용인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를 썼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지만 인재를 썼다는 것은 결과 대한 하나의 분석일 뿐이다.

우리는 그보다 먼저 물어야  질문이 있다.

유방은 어떻게 사람을 움직일 있었는가.

 

유방의 진짜 능력은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결핍을 보는 천재적이었다.

보통 사람은 상대를 마주할  자기 입장 빠져 상대를 가늠한다.

상대방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내가 상대보다 무엇이 월등한가, 상대를 어떻게 하면 이용할  있을까. 상대와 나를 두고 저울질을 한다.

그런데 유방은 달랐다.

 

그는 상대를 마주하면서 사람이 지금 무엇에 굶주려 있는 지를 먼저 보았던 같다.

돈이 필요한가. 자리가 필요한가. 명예가 필요한가. 인정이 필요한가. 자기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고 싶은 무대가 필요한.

유방은 상대의 욕구를 먼저 보았.

그리고 거기서 그는 멈추지 않았다. 상대의 욕구는 결핍에서 오는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상대의 결핍을 채워 주었다.

돈을 원하면 돈을 , 직위를 원하면 직위를 었다.

명예를 원하면 이름을 올려주었고, 무대를 원하면 아예 판을 열어주었다.

이건 단순한 포상이 아니다. 이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결핍의 공간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결핍의 공간을 자신이 채워준 것이다.

그래서 유방 곁의 모인 사람들은 모두 유방을 통해 결핍을 채웠다.

 

그들은 결국 유방만을 위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방이 깔아준 위에서 자기 욕망을 실현하려고 열심히 뛴다.

바로  지점에서 유방 다른 어떤 제왕적 위치의 인물들과 차별점을 가진다.

그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스스로 움직일 이유를 만들어 준다.

 

, 그대는 자리를 원했지? 여기 자리가 있다.

그래, 그대는 이름을 남기고 싶었지? 여기 전장이 있다.

좋아, 네 재능을 증명하고 싶었지? 내가 무대를 열어 줄게.

유방은 결국 판을 깔아 것이다.

이렇게 판을 깔아주면 그다음부터 사람은 유방의 명령 때문에만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안의 결핍과 허기 때문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유방은 그것을 일찍이 간파했다.

사람은 자기의 욕망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그러나 유방의 진짜 천재성은 여기서 걸음 나간다.

그는 상대방의 결핍을 보고,  결핍을 채워주고,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렇게 채워진 욕망으로부터  사람의 능력을 기대 이상으로 뽑아냈던 것이다.

, 상대가 가진 모든 잠재적 재능을 전부 발휘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다.

 

보통 사람은 누군가를 만족 시키면 거기서 추고 상대에 대한 댓가를 바란다.

자리를 줬으니 됐지, 돈을 줬으니 됐지, 명예를 줬으니 됐지, 이쯤에서 생각한다.

그런데 유방은 이미 알고 있었다.

채워진 결핍은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움직이게 만든다는 이다.

자리를 받은 사람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뛰고, 명예를 얻은 사람은 명예를 키우기 위해 나아가고, 무대를 얻은 사람은 무대 위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고 깊이 달려든다.

유방은 바로 지점을 누구보다 알았다.

그러니 그의 용인술은 단순 사람  쓰기가 아니다.

그건 사람의 욕망을 읽고,  욕망을 충족시키고, 충족된 욕망을 다시 자기 판의 동력으로 바꾸는 심리적 설계 능력이다.

 능력이야 말로 유방의 진영에 인재가 모이게 근원이 아니었을까.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자기 생각 빠져 남을 보질 못한. 그런데 유방은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남의 허기를 먼저 보았. 

아마 장량 조차도 능력 만큼은 유방을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장량은 판을 읽는 사람이었지만, 유방은 사람을 어떻게 작동 시키는 알고 있었다. 

 

항우와 비교하면 차이는 선명하다.

항우는 자기가 바로 무대다.

그는 너무 강하고, 너무 높, 너무 눈부. 그래서 부하들은 항우를 따라가기도 .

항우 밑에서는 자기 욕망을 펼칠 공간이 상대적으로 었던 것이.

항우 이미 보통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소위 만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방은 항우와 다르다. 그는 자기가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자기 욕망을 걸고 뛰어오를 있는 판을 열어 것이.

한신에게는 군사를 맡기고, 장량에게는 계책의 무대를 주고, 소하에게는 뒷일의 권한을 었으며, 항우 진영에서 귀순한 진평에게 까지 각자의 욕망을 자리를 주었.

이러니 부하 입장에서는 하고 배길 수가 없다.

그건 충성 이전이며 명령 이전 이다.

어쩌면 중독에 가깝 않았을까.

그러나 중독은 단순한 흥분이 아니다.

그건 자기 욕망이 살아 있는 무대 위에 올라선 사람의 흥분이다.

 

유방은 사람에게 “나를 위해 뛰어라” 라고 말하기 전에, “네가 원하던 것을 여기서 해보라”  했다.

그래서 유방 진영은 단순한 적을 이기기 위한 군대가 아니었다.

각자의 결핍과 욕망이 유방 펼쳐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집단이었 것이.

그것이 반복 수록, 어느 순간 사람들은 유방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유방의 운명 안에서 자기 운명을 실현하려는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이것이야말로 유방이 만든 집단 무의식이자 운명 공동체 아니었을까.

결핍이 만들어 운명 공동체가 끝내 항우라는 완벽한 산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유방, 그는 인간 내면에 감춰진 결핍과 욕구를 보았다.

어떠한 두려움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 제왕의 마음이라면 상대의 결핍을 보는 눈은 제왕의 눈이라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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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론 1편. 유방의 굴기(崛起), 제왕(帝王) 마음

 

중국 속담중에 “三个臭皮匠,顶个诸葛亮 (sān ge chòu pí jiàng, dǐng ge Zhū Gě Liàng) 이란 말이 있다.

직역은 명의 냄새나는 가죽 기술자가 제갈량과 맞먹는다 라고 풀이하는데, 본래 뜻은 명의

평범한 기술자가 합치면 지혜로운 제갈공명 만큼 성과를 있다  뜻이다.

제갈공명이 어떠한 인물인가.

삼국지에 나오는 많은 주인공들 중에 가장 지혜롭고 신비로운 인물이 아니던가.

그러한 제갈량 조차 명의 평범한 사람이 모이면 맞먹을 있다는 민간에서 전해져 오는 속담이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힘을 합쳐 지혜를 짜내면 반드시 똑똑한 사람을 능가할 수도 있다.

속담에 들어 맞는 인물이 삼국지 전에 이미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이다.

 

2300년전, 약육강식이 지배하던 춘추 전국시대를 마침내 종식시킨 진시황은 자신의 통일 제국이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통일 한지 겨우 15년 만에 진시황이 죽자 진이란 거대한 제국은 곧바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王侯将相,宁有种乎?(Wáng hóu jiàng xiàng, níng yǒu zhǒng hū?)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는가  라고 외치며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의 불꽃은 마른 들판에 급속도로 들어가는 불길처럼 번져 중국 전역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진의 폭정으로 억압된 분노를 폭발한 농민들은 수도 함양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썪어도 준치라는 속담처럼 통일 제국이였던 진의 정규군을 성난 민중의 힘만으로는 당해낼 없었다. 결국 진승 오광의 반란의 불 길은 진압될 것 같았지만, 옛 초나라 장군 가문 출신의 항우가 진의 군대를 박살 내며 반란의 불 길은 더욱 크게 번져갔다.

 

이때, 유방의 고향 패현(沛縣)까지 반란의 불꽃이 이어졌고, 일개 사수의 정장(泗水亭长)이었던 유방이 패현을 장악한 패공(沛公) 되었다.

사수의 정장은 지금으로 치면 파출소장 정도인데 이때 바로 지역 시장의 위치까지 올라 것이다.

사실 유방과 항우는 지금 현대 중국의 강소성(江苏省) 지역 출신들이다.

유방은 서주(徐州), 항우는 숙천(宿遷) 소주(苏州)지역 에서 자랐다.

강소성 지역은 대륙을 관통하는 개의 , 황허와 양쯔강 중 양쯔강 아래 지역을 지배했던 옛 초나라였다.

그래서 후에 항우가 진을 멸한 초나라를 이어서 초패왕(楚覇王) 이라 정한 것이다.

결국 유방과 항우는 초나라라는 국가 정체성과 지역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훗날 항우진영에서 유방에게 넘어온 인재들도 이러한 지역문화의 공유 때문에 왕래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방은 초패왕 항우에 의해 당시의 (지금의 사천성)으로 밀려나가게 되고 한중왕(漢中王) 책봉되었다.

지금이야 중국인들의 정체성을 한나라(漢朝) (漢) 기원삼아 한족(漢族)이라고 내세우지만 정작 한의 시조인 유방 자신은  이란 국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방의 참모 소하(蕭何) 거듭된 설득으로 유방은  이라 국호를 겨우 받아 들였다고 한다.

원래 한중(漢中)이란 지역은 한수(漢水: 장강의 주요 지류) 흐르는 곳으로 하늘의 은하수와 닮아 땅의 은하로 비유 되었다.

그래서 땅이 비옥하여 훗날 패권을 다지기 아주 좋은 곳이며 하늘과 짝을 이루는 아름다운 이름이라 하여 천한(天漢)이라 부르며 이것은 하늘의 (天命)에 따르는 것이라 설득했다는 것이다.

 

당시 유방은 초패왕 항우를 감히 넘볼 없는 위치였다.

진의 수도인 함양을 먼저 입성하여 관중왕이라 책봉될 알았지만 항우의 서슬퍼런 눈빛에 울며 겨자 먹기로 쫓겨나가야 했다.

험난하기로 유명한 촉의 땅으로 들어가며 유방과 그의 군사들은 이제 다시 중원으로 나올 알았다. 유방은 분명 분노했겠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홍문연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항우에게 공포를 떨었겠지만 그는 그 공포에 사로 잡히지 않았다.

유방은 촉에 도착한 자포자기 하지 않고 바로 준비해서 고작 4개월 만에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바로 항우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다.

드디어 유방의 반격으로 천하쟁패가 시작된 것이다.

 

유방은 항우 앞에서 언제나 꼼짝도 못하고 주눅이 들었는데 어떻게 항우와 대적할 생각을 했을까?

항우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유방은 어떻게 극복할 있었을까?

이후 이어지는 천하쟁패는 불과 4년만 걸렸다.

진시황 사후 3년만에 진의 제국을 멸망 시켰고, 다시 4년만에 당시 아무도 넘볼 수 없었던 초패왕 항우를 이긴 것이다.

하지만 천하쟁패 기간중에 유방이 파죽지세로 항우를 몰아 부쳐서 이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번 싸움에서 유방은 거의 항상 탈탈 털렸다.

팽성 전투에선 56만의 유방의 연합군이 항우의 3만 정예병에 터지고 도망쳐야 했다.

형양성 전투에서도 항복까지 하고 죽을 뻔했지만 겨우 목숨만 건져 나와야 했다.

영혼이 나갈 정도로 유방은 항우에게 쫓겨나가야 했고, 목숨을 건 탈출은 한 두번이 아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방은 항우에게 도전했다.

도전하고 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또 패하는 모습에서 챔피언에게 죽지 않을 만큼만 얻어 터지고, 그리고 다시 재충전해서 또 도전하는 유방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유방은 항우와의 천하쟁패에서 승리하였다.

아무 배경도 없고, 무력도 약한 유방이 귀족 출신에다 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 항우를 어떻게 이겨서 천하를 재통일 시킬 있었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정도의 상대를 만나면 고양이 앞에 쥐처럼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데 유방은 어떻게 항우에게 대항할 의지가 꺽이지 않았던 것일까.

과연 유방은 정말로 하늘이 내린 천자였을까.

벌꿀오소리 같은 유방이 호랑이 같은 항우에게 달려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유방은 항우에게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항우가 패기를 지녔다면 유방은 똘기로 뭉쳤던 것일까.

 

2300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수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분석했었다.

그들은 유방과 항우의 출신과 인물 성향등을 비교 분석하며 여러 이유들을 밝혀냈다.

이유들 가장 대표적인 것을 뽑는다면 크게 세가지다.

 

첫째, 유방의 용인술(用人術)이다.

, 항우가 범증이라는 책사 하나를 잘 활용하지 못했지만, 유방은 인재를 알아보고 적극 기용하여 장량, 한신, 소하 같은 인물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꿨다는 것이다.

장량은 귀족 출신이며 과거 진시황 암살을 시도할 만큼의 의기가 높은 인물로 유방을 보자마자 유방의 두뇌가 되었다.  

한신 역시 뛰어난 전략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그냥 묻힐 뻔한 인물이지만 유방은 그에게 파초대원수라는 직함을 주고 유방의 전군을 통솔시켰다.

소하는 유방과 같은 패현 출신으로 원래 유방보다 지위가 높은 상사였지만 유방을 패공으로 모시면서 모든 전투의 후방에서 필요한 군수 물자를 끊임없이 지원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유방의 용인술이야 말로 항우가 결코 이길 없는 점이다.

 

둘째, 유방의 포용력이다.

비록 유방은 천민 출신이지만 귀족 출신인 항우에 비해 포용력이 넓었다.

항우가 전투에서 적들을 모두 죽이며 공포를 불러 일으켰지만 유방은 항우와 달리 감싸 안으며 민심을 안정시켰다. 그러한 포용력이 천하의 민심을 사로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유방의 정치적 명분이다.  

유방은 진시황에게서 내려온 악법(恶法) 약법삼장(约法三章)으로 만들어 우선 민심을 사로잡았고, 항우가 초의제를 시해한 것을 꼬집어 역적으로 몰아 명분을 세웠다. 그것은 그가 민심에 의한 정치적 명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분석은 대체적으로 유방이라는 개인의 힘이 많이 약하니 조직적인 구조로 힘을 재편성해서 항우의 개인적인 출중한 능력을 이길 있었다는 설명이다.

 “三个臭皮匠,顶个诸葛亮 (sān ge chòu pí jiàng, dǐng ge Zhū Gě Liàng) 이란 속담이 어울리는 결과를 만들어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의문이 든다.

유방이 조직을 구성하고 적합한 인물들을 통솔하는 장악력은 개인적 능력이 아닌가?

과연 유방의 개인적 능력은 정말 형편없었을까.

 

항우는 유방의 군대를 없이 깨트렸지만 결국 유방의 마음은 깨트리지는 못했다.

이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반복해서 지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진다. 패배가 쌓이면 현실보다 먼저  마음의 판사가 항복한다. 

나는 된다고, 여기까지라고, 저 사람은 넘을 수 없다고. 

보통 사람은 실패를 만나면 선택하게 된다. 포기하거나, 타협하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자기 수준을 낮춘다.

그런데 유방은 그렇지 .

그는 다시 준비하고, 곧바로 실행한다.  모으고, 또 나가고, 또 부딪힌다. 그리고 깨진다.

빠진 독에 붓는 것처럼 보여도 한다.

그건 언제나 비합리적이다.

제왕 마음은 어쩌면 그런 비합리성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초한전쟁의 승부는 마지막 해하의 전투에서만 갈린 것이 아니라,  이전 수많은 패배를 유방이 어떻게 통과했는가에서 이미 갈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항우는 유방의 몸을 몰아붙였지만, 유방의 마음은 끝내 항복 시키지 못했다.

나는 유방을 천민 출신 황제로만 보고 싶지 않다. 그건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너무 쉬운 위로.

많은 사람들이 유방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유방처럼 있다는 식의 희망 내세우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듣기에 달콤하지만, 그만큼 얕다.

 

유방 신분 낮을지언정,  내면의 디폴트는 결코 범인의 것이 아니었다.

무수한 실패를 당하고도 끝내 자기 존재의 중심을 내주지 않는 사람 바로 유방이었다.

항우는 유방과의 싸움에서 거의 매번 이겼지만 마지막 해하전투 패배 한번에 최후를 맞이했다.

 

유방이 천하를 얻은 것은 인재를 써서 만이 아니라, 무너져야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항우는 유방의 군대를 꺾었으나, 유방의 마음은 꺾지 못했다.

어쩌면 초한지의 진짜 시작은 바로 거기에서부터였는지도 르겠다.

유방의 꺾이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제왕(帝王)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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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14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입지전적인 인물들은 다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초한지에서는 유방만이 그러했다면 삼국지에서는 위,촉,오의 조조,유비,손권이 모든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니 결국 천하삼분지계로 나눠져 버리고 말았겠죠.
그나저나 유씨 일족은 주로 얻어터지며 살아가나 봅니다. 막판 뒤집기 기술이 막강하지만요....

마힐 2026-04-18 01:51   좋아요 0 | URL
자기보다도 큰 상대에도 겁먹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만 보면, 유방은 벌꿀 오소리 정신으로 무장한 인물이었나 봅니다.
벌꿀 오소리 정신이 아니었다면 한왕조는 분명 세워지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나라를 세워도 그걸 유지하는 것은 더 힘들었더라구요.
그때부터는 오소리가 아닌 너구리로 변해야 하는 가 봐요. ㅎㅎ
 

- 다시, 100일 정진 100일차 

 

폐하.

진평(陳平) 이제 오래 말을 붙들고 있을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폐하께, 신이 살아왔던 지난 초한전쟁부터 삼십년 간을 마지막으로 아뢰고자 합니다.

 

신은 일찍이 항우 진영에 있었사옵니다.

홍문연에서 처음으로 한왕을 뵈었고, 그날 신은 한왕을 통해 천하의 향방이 누구에게로 기울 것이지 어렴풋이 보았습니다.

이후 신은 항우를 떠나 한왕께 귀의한 것도, 결국 그날의 인연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의 항우는 말도 못할 정도로 강했지만 결국 천하는 한왕의 손에 들어 갔습니다.

고조께서 천하를 얻은 것은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신은 고조께서 한왕 시절, 항우와 싸운 전반 십오 년의 천하쟁패와 고조께서 돌아가시고 궁중에서 이어진 후반 십오 년의 피바람을 모두 겪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신의 하는 말은 한낱 늙은 신하의 넋두리가 아니라, 초한지 삼십 년을 끝까지 건너온 한 사람의 진술이라 여겨 주십시오.

 

여태후께서 돌아가실 신의 마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진시황제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때의 진나라는 외부의 적에게 먼저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황제의 빈자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내부에서부터 무너졌습니다.

환관 조고는 욕심으로 자리를 더럽혔고, 명재상 이사는 제국의 무게를 알면서도 끝내 그 무게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태후가 죽은 , 신은 두려웠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 무척 겁이 났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한나라 마저 진나라의 뒤를 따를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우리에게 수습해야 문제는 진시황 사후보다 어려웠습니다.

여산을 비롯한 여씨 일문은 이미 왕과 요직의 자리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병권 또한 그들 손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는 한 그 어떠한 것도 수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정국을 안정 시키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권력 집단을 벗겨내고도, 나라가 다시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은 유방 황제가 저희에게 남겨 유훈에 따라 다시 조정을 개혁해야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핏줄보다 병권을 먼저 확보해야 했고, 명분보다 순서를 먼저 정해야 했습니다.

주발(周勃) 칼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은 칼을 언제, 누구에게 향하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씨를 벤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뒤에 누구를 세우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유씨 성을 가진 아무나 앉힌다고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피로 얼룩진 궁궐은 이름 하나 바꾼다고 곧장 맑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황제를 고르는 일은 핏줄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다음 질서의 얼굴을 고르는 일이었습니다.

신은 가장 먼저 폐하를 생각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유방 황제의 8명 황자들중에 *4번째 황자 이셨습니다. 2대 효혜제 (유영)께서 일찍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분의 후손인3대와 4대는 모두 어려서 사직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 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여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하셨으나 가볍지 않았으며, 온화하셨으나 약해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세상을 뒤흔들 상은 아니지만, 세상을 안정시킬 만한 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공신들은 움직였습니다.

여씨 일족을 제거하고, 병권을 거두고, 여씨의 천하를 다시 유씨의 이름 아래로 돌려놓았습니다.

걸음은 단순한 정변이 아닙니다.

진시황 사후 무너졌던 제국의 빈자리를, 이번에는 다시 무너지지 않게 초석을 닦는 일이었습니다.

 

천하쟁패의 십오 년은 유방 황제와 항우가 천하의 주인을 다투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후반 십오 , 유방 황제가 죽은 뒤 혈통과 후계와 외척이 칼이 되어 벌어진 또 하나의 초한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되기까지 도합 삼십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고조께서 나라를 세우고 나서 다시 나라의 기틀을 잡는 마지막 수가 폐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심으로 비로소 마무리될 있었습니다.

 

진정한 천하쟁패의 끝은 유방 황제께서 천하를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태후가 권력을 것으로도 아니었습니다.

죽은 자들의 자리를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처리하는가, 바로 그것이 진정한 천하쟁패의 마지막이라고 신은 여겼습니다.

폐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신 순간에서야 신은 비로소 알았습니다.

유방 황제는 밖에서 나라를 세우셨고, 여태후는 안에서 그 나라를 피로 붙드셨습니다.

폐하의 즉위는 그분들이 흘리신 위에서 처음으로 제국이 안정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신 겁니다.

이제야 비로소 천하는 안정되었고 한은 오래 이어질 제국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 진평은 장량 같은 깊은 계책을 쉽게 내놓지 못합니다.

또한 소하처럼 조정의 실무도 능숙하게 처리도 합니다.

신은 걸음 물러서 있었고, 숨을 죽여야 할 때 숨을 죽이며 버티기만 잘 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는 신을 두고 그저 살아남은 사람이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신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았기에 마지막 판을 볼 수 있었고, 끝내 마지막 질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폐하.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그가 영웅이든, 황제이든, 반역자이든 죽음과 함께 그의 소리도 닫힙니다.

그래서 역사란 끝내 살아남은 자들의 진술만 남게 됩니다.

항우는 전설이 되었고, 유방 황제는 나라를 남겼으며, 여태후는 피를 남겼습니다.

, 진평은 그 남겨진 것들 위에서 마지막 질서를 골랐습니다.

 

이제 신이 바라는 것은 뿐입니다.

폐하께서 성군이 되시어 한나라를 오래 이끌어 가시는 것과 폐하께서 어서 빨리 태자를 책봉하는 것이옵입니다.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나라의 주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은 진의 몰락을 보았고, 또 한의 피바람도 보았습니다.

부디 이제부터 폐하의 한나라는 다시는 그런 주인이 없는 재앙을 겪지 않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신이 떠나게 되면 신의 장례는 검소하게 치러 주십시오.

신이 끝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이 나라가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삼십 년간 불었던 피바람을 지나 겨우 봉합된 나라가 기틀을 잡아 부디 오래토록 이어진다면, 신의 삶 또헛되지 않았다고 여길 수 있을 겁입니다.

 

, 진평은 비록 명재상은 아니었을지라도, 폐하께만은 끝내 좋은 재상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폐하, 신은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부디 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 주옵소서.


 By Dharma & Maheal

 

: *4번째 황자: 유항(劉恆BC 203년 ~ BC 157년) 으로 유방의 8명의 아들 중 나이 순으로 네번째 임.유항의 어머니는 유방에게 그리 사랑받지는 못했으나, 아주 처신을 잘하여 여태후 눈에 띄지 않아 이들 모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음. 훗날 태종 효문황제(太宗 孝文皇帝) 가 됨. 보통 한문제  부르며 한나라 치세중 가장 성군으로 불리게 . 그로인해 그동안의 내외적 혼란을 전부 정리가 되고 이후 한경제, 한무제로 이어지는 한나라 400년 기틀을 만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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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4-12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일 정진 수행을 축하드려요.
더 마음이 편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2026-04-12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6-04-12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일 정진 수행 달성 축하드려요.
초한지는 100일 이후로도 계속 달려주세요.

2026-04-12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firefox 2026-04-14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일 정진 완료 축하드립니다.

마힐 2026-04-14 09:45   좋아요 0 | URL
어떻게 하다 보니 겨우 마친 것 같습니다. **
firefox님 격려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
 

- 다시, 100일 정진  99일차 

 

여후가 죽었다.

내게는 다른 항우가 죽은 것과 다름 없다.

전쟁터에서 항우를 마주한 다는 것은 공포 자체 였다. 궁정에서 여태후 또한 그러했다.

항우는 성밖에서 기세로 천하를 짓눌렀고, 여태후는 궁 안에서 눈 빛으로 사람의 숨을 눌렀다.

그들 앞에서는 숨소리조차 함부로 없었다.

 

사람들은 항우가 죽은 초한지가 끝났다고 말했지만, 틀렸다.

항우는 해하에서 죽었으나, 항우가 남긴 공포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것은 여태후의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였던 것이다.

 

나는 원래 패왕 항우 곁에서 책사로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강함을 지켜봤다.

그는 기세로 사람을 압도했고 기세만으로도 사방을 떨게 만들었다.

반면에 여태후는 항우와 달랐다. 그녀는 항우처럼 기운으로 사람을 누르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여인의 몸에 깃든 냉담한 의지는 항우 못지않게 사람을 떨게했다.

그녀의 내려 보는 빛은 뾰족한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로왔다.

여태후의 빛은 깊이를 없는 냉담함 속에 감춰진 날이었다.

항우가 성밖의 패왕이었다면, 여태후는 궁 안의 패왕이었다.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나를 감싸야 했다. 그래서 숨을 죽였다.

 

왕릉은 나와 달랐다. 그는 곧은 사람이었다.

여태후가 여씨 일문을 왕으로 세우려 , 왕릉은 정면으로 반대했다.

한고조가 창업을 공신들과 함께 맹세한 *백마지맹(白馬之盟)  이유로 들었다.

맹약에서 유씨가 아니면 왕이 없고, 이를 어기면 천하가 함께 친다고 맹세를 했다.

왕릉은 맹약을 언급하며 우리를 향해 호통을 쳤다.

어찌 이제 여씨 집안을 끌어 들여 맹약을 깨려 하느냐고.

충신의 말은 옳다.

하지만 너무 옳아서, 오히려 그 자리에서는 쓸 수 없는 말이었다.

여태후는 불쾌해했고, 왕릉은 곧 파직 되었다.

곧은 말은 때로 사람을 빛내지만, 옳고 곧은 말이 나라를 살리지는 못한다.

 

나는 여태후 앞에서 절대로 맞서지 않았다.

우리는 고개를 숙였다.

여태후는 그런 우리를 보고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나는 왕릉에게 말했다.

조정 한가운데서 얼굴을 맞대고 다투는 일이라면 내가 왕릉만 못하다.

그러나 사직을 보전하고 유씨의 후사를 안정시키는 일이라면, 왕릉이 우리만 못하다.

 

나의 말은 변명이 아니다. 그것은 나만이 사직을 지키는, 왕릉과 다른 방식이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처세라 부를 것이다.

맞다. 처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처세가 목숨이었고, 목숨이 있어야 다음 판도 있었다.

 

나는 고조께서 살아 계실 때부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비참한 말년을 지켜 보았다.

한신은 참을 줄은 알았으나 굽힐 줄은 몰랐다.  

팽월은 전쟁이 끝난 , 쓸모가 없어졌다. 영포도 마찬 가지다. 심지어는 고조와 같은 패현 출신이었던 노관과 번쾌까지 무사하지 못했다.

오히려 고조가 사수의 정장시절 부터 대립했던 옹치는 말년까지 무사했고, 항우 집안의 항백도 항씨 후손을 이을 수 있었다.

이들을 보며 내가 깨우친 것이 하나 있다.

 

권력자에게 토사구팽을 당해 죽는 이유는 미움을 사서가 아니었다.

대개는 두려움을 샀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밉상이어도 살아남을 있다.

그러나 황제가 두려워하는 순간, 그때부터는 그 사람의 목숨은 위태해 진다.

여태후 밑에서는 법칙이 잔인해졌다.

그녀 앞에서는 잘못된 한마디가 반역이 되었고, 지나친 충성조차 오히려 의심을 샀다.

칼이 안으로 들어오면, 밖의 요란한 전쟁보다 안의 소리 없는 전쟁이 더 모골이 송연해진다.

 

나는 그것을 너무나도 많이 지켜봤다.

그래서 너무 높이 날지 않으려 했고, 너무 앞에 서지 않으려 했다.

숨을 죽여야 때다. 여태후가 살아 있는 동안은 바로 그런 때였다.

여태후의 아들 유영, 혜제가 죽은 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유씨의 천하라기보다 자기 피붙이들을 왕으로 세우고 지키는 일이었다.

여태후에게 유씨가 세운 한나라는 점점 의미가 없어졌다.

그렇다. 그녀는 권력의 화신이라기 보다, 끝내 집착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집착은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나에게 기다림은 비겁함이 아니다. 적어도 이 궁 안에서는 그렇다.

 

나는 여태후를 섬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없었다면 한이란 나라는 바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녀를 거스를 없는 시간 속에서 목숨과 선제가 남긴 한나라의 다음 시간을 함께 저울질하며 버틴 것이다.

이제 여후는 죽었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절대권력이 사라진 자리는 바람을 부르고야 만다.

 

우리에게 선택해야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다시 한번 피바람이 세차게 몰아 것이다. 어서 움직여야 할 때다. 지체해선 안 된다.

살아 있는 , 진평(陳平) 여후의 죽음 이후를 수습해야만 한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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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98일차 

 

훗날 사람들은  내가 척부인을 인간돼지 (彘: 체) 만든 일부터 나를 기억할 테지?

사건 이후 나는 악랄한 여자, 악독한 여자, 피로 권력을 지킨 냉혈한 황후로 여겼을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러나 사람은 하루아침에 괴물이 되질 않지. 심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절망이 지속되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분노로 바뀌고, 분노가 나를 잠식하는 순간이 오는거야. 이때는 이미 내 손에 칼이 쥐어져 있더라구.


나는 참고 견디다  황후가 됐어. 그런데 말이야,  황후의 자리가 곧 남편의 곁에 있다는 뜻이 아니더라구.황제 곁에는 늘 척부인이 있었어. 그 젊은 여자는 가까이 있었고, 난 멀리서 지켜 볼 수밖에 없었어.

여자의 질투라고? 그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내가 제일 미워한 것은 여자의 태도였어. 그 여자는 내 아들 유영(劉盈)  ()하고 자신이 낳은 아들 유여의(劉如意) 태자로 책봉해달라고 황제에게 간청한 거야. 척부인은 황제의 총애만 믿고 우리를 제거하려고 했던 거야.

 

분노로 몸을 떨지 않을 없었어. 내가 어떻게 유영을 키웠는데?  

전쟁 난리 속에서도, 항우의 손아귀 안에서도,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내가 끝까지 지켜냈는데...

이제 와서 감히 아들 위에 서려는 계집의 아들을 황제에 오르게 해달라고?

더구나 유방은 어느새 유여의가 자기와 닮았다고 말하고 다녔어.

요망스러운 여자의 말에 황제가 속았던 거야.

내가 두려워한 것은 여자에게 남편의 사랑을 빼앗기는 일이 아니야.

보다 문제는 아들의 자리와 목숨까지 함께 흔들리고 있었던 거야.

그동안 내가 어떻게 견뎌온 시간인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결국 나는 장자방을 찾아갔어. 무릎을 꿇고 유영을 지켜달라고 애원했지.

장자방은 뜻을 알고 *상산사호(商山四皓) 끌어 들였지.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태자는 폐위가 되었을 테지....

그래도 나는 안심하지 못했어. 척부인이 무슨 음모를 꾸며 다시 또 지 아들을 계승시키려고 할 지...

 

유방이 죽자 나에겐 이들 모자를 번에 죽일 기회가 왔어.

조나라 왕으로 있던 유여의를 장락궁으로 불러들였어. 내 아들은 황제에 올랐어도 마음은 나와 지 애비처럼 독하지 못해. 오히려 여의가 어리다고 형으로서 돌봐 주는 거야. 난 다급했지. 황제 모르게 처리해야 했거든. 그래서 황제가 사냥 나간 틈을 타서 독주를 먹여 죽여 버렸어.

황제는 몰라. 그 아이를 살려 두는 한 내 아들 유영은 결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없어.

이런 일은 애미에게만 보이는 법이 거든.


다음은 바로 척부인을 붙잡았어.

나는 그녀의 팔다리를 자르고, 눈을 뽑고, 귀를 자르고,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었어.

그리고 돼지우리에 던져 넣었지. 인간돼지로 만든 거야.

내가 잔인하다고? 그래. 그때의 내 눈에 그 여자는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질 않았던 거야.

여자가 팔다리를 가지고 했던 모든 짓을 멈추게 하고 싶었어.  그래서 잘랐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만들었어.

내가 미쳤다고? 난 복수를 한 거야. 단지 잔인하게. 척부인에게 당한 무시와 공포가 그들 모자를 그렇게 만든거야. 세상사람들이 날 욕해도 좋아. 패현 시절 여치는 예전에 이미 죽고 나, 여후만 남았어.

황후야.  이 궁궐 전체가 모두 내 뜻대로 움직여야해.

이상 나도 구석에 숨어 숨죽여  지내지 않을 꺼라고.

 

혜제(惠帝) 유영은 나중에 참상을 보고 우울증을 앓게 되었어.

어미가 행동이 사람이 짓이 아니라고 내게 소리쳤지.

아들에게 말을 직접들은 나의 마음은 찢어 졌지만 애는 정말 몰라. 내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사건 이후 혜제는 국정 일에 관심을 잃었어. 내가 대신 관여할 수 밖에 없게 되었어.

그러다 아들 혜제는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지.

어쩌면 애미의 업보를 받았다는 소문도 듣게 되었지.

아니야. 혜제가 죽은 게 나 때문이 아니야.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나 때문이 아니라고.

 

유영마저 죽고 나니, 내 주위엔 아무도 보이질 않아.

아무도 곁에 오지 않으려고 . 궁정안의 대신들은 모두가 날 무서워 해.

그래서 나는 유일한 친족인 여씨 집안을 궁중에 불러들이고 싶었어.

내게  남은 혈육은 여씨 친족만 남은 거야.

세상은 권력에 향한 탐욕이라 부를지 모르지.

하지만 내게 그것은 마지막 남은 피붙이를 붙드는 일이었어. 그래서 여씨 집안을 거침없이 궁안으로 끌어들였지. 그러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서늘한 그림자가 남아 있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저들은 모두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해.

내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두려워 . 개국공신들 조차도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해.

이제 두려워 하던 존재가 아니라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바뀐거야.

내가 그토록 무서워 했던 항우를, 여기 궁정에선 내가 항우가 된 거야.

항우가 주는 공포를 아주 알지.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의 숨을 턱 막히게 하던 공포 말이야.

지금 궁궐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는 바로 나야. 나는 드디어,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그 존재가 되어버린거야. 그래 난, 궁안의 항우가 된 거였어.

 

그런데 아쉽게도 나의 지독했던 천운이 다해가.  살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거든.

남편이 밖의 적들과 싸웠다면, 나는 궁궐 안의 적들과 싸워야 했어.

내가 죽게 되면, 내 유일한 피붙이인 여씨 집안은 어떻게 될까.

남편이 세운 나라는 계속 남을까. 아니면 진나라처럼 다시 혼란 속으로 무너질까.

내가 죽은 뒤의 일은, 또 다른 살아남은 자가 말해 주겠지.

 

By Dharma & Maheal  


:    *상산사호(商山四皓):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산시성(陝西省) 상산(商山) 숨어 지내던 사람의 선비를 말함. 모두 흰 수염을 기르고 있어, 흰 호()가 쓰였음. 유방이 천하쟁패 시절, 상산사호를 모셔 오려고 했으나 도무지 모실 수가 없었는데 태자 책봉 문제로 여후가 어려움을 장량에게 상의하자 장량이 모셔와 태자 유영 곁에 세웠다. 이에 유방은 상산사호가 유영을 비호하는 것을 보고서는 척부인 아들 (유여의)로 교체할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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