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260312      (출생18644일 중국생활 9562일)

오늘의정진: 신심명(信心銘)을 마치며


- 다시, 100일 정진  74일차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온 이후 선은 탄생했다.

부처님의 말씀이 교라고 한다면,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한다.

붓다의 육신은 사리로 남아 많은 불교도들의 경배를 받고 있지만

붓다의 마음은 선으로 남아 많은 수행자들을 이끌고 있다.

단비구도의 마음으로 부처의 마음을 이어간 달마의 제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법을 이을 있었던 공통점은 바로 하나다.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진 경지를 체험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라는 육체적 공간을 넘어 갇힌 세계를 벗어났고,  과거 미래 현재를 구분하는 시간을 초월했다.

오직 마음 이라 밖에 없어서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마음을 깨친 것이다.


심즉불 (心則佛)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깨친 것이다.


그래서 신심명은 선의 스승들이 부처로 가는 가장 요긴한 길을 알려주는 지도와 같다.

부처로 가는 길은 무수히도 많다.

경전을 쓰고, 독송하고, 외우기도 하고, 참선을 하고, 기도도 한다.

하지만 모든 수행이 바로 마음을 떠나지 않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

승찬 스님은 문둥병이라는 병을 가지고 마음의 길에 들어섰다.

혜가 스님은 불안이라는 심리를 가지고 마음의 길에 들어섰다.

달마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이미 마음에 도달했다.

2500년전, 붓다가 가신 길을 지금도 여전히 우리 중에 누군가는 열심히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길을 찾고,  또 걸어갈 사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믿음만 지켜 뿐이다.

믿는 마음이 바로 신심(信心) 이요.

신심이 바로 부처로 가는 길이다.


지도무난 (至道無難)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유혐간택 (唯嫌揀擇)오직 간택하는 마음 조차도 꺼리지 말라

단막증애 (但莫憎爱)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조차도 걸리지 않는다면

통연명백 (洞然明白) 모든 통하여 명백하게 드러난다.

신심불이  (信心不二)믿는마음은 둘이 아니요

불이신심 不二信心)둘이 아닌 것이 바로 믿는 마음이라.



By Dharma & Maheal     


그저 마음 깊이 계신 스승님들께 합장 경배하며 신심명 관노트를 회향(廻向)합니다.  

廻向: 돌릴 회 , 향할 향, 회향은 불교에서 자신의 공덕을 다른 이들에게 돌려 향한다는 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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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13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임승차하여 이곳까지 달려왔습니다. ㅎㅎ
아직 무임승차로 따라갈 날이 더 남아 있군요.
 

- 다시, 100일 정진  74일차

<言語道斷/언어도단/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非去來今/비거래금/과거 미래 현재가 아니다>


부처의 법이 인도에서 전해진 1000여년,점점 쇠퇴해지는 법을 걱정한  스승 반야다라는 제자 달마로 하여금 동쪽으로 다시 이어가게 했다.

달마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왔다.

부처의 법이 동쪽에서 다시 이어졌다.

달마는 소림굴에서 자신이 이어온 법을 혜가에게 전수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오직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법은 불타가 생존시 부터 전해지는 방식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수법은 세상이 다하는 까지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단비구도의 상징으로 외팔이  2조 혜가를 향해 어느 한 수행자가  공경을 담아 외팔로 합장을 올린다.


스님, 제가 문둥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을 낫고 싶습니다.

문둥병 이라는 병의 실체를 꺼내 보거라.

이렇게 여기 저기 썩어가는 몸이 실체 입니다.

아니다. 그건 네 몸이지 병이 아니다.

몸이 병이 아니라면 병은 몸안에 있습니다.

그래 병이 몸안에 있다면 얼른 꺼내 봐라. 내가 고칠 수 있다.

안됩니다. 몸안의 병은 꺼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 몸안의 병은 꺼낼 수가 없다. 그런데 그대는 몸안에 병이 있음을 어찌 아는가.

밖의 살이 썪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밖의 살이 썪는 것이 때문임을 그대는 어찌 아는가?

문둥병 수행자는 병이 있음을 어찌 아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병이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누가 아는가,

몸이 병이 아니고   몸안의 병도 아니라면 무엇이 썪어가게 하는가.

스님, 모르겠습니다. 몸 밖의 병도, 몸안의 병도 꺼낼 수 없습니다.

그래, 이제 비로소 그대의 병은 다 낫게 되었다.


신심불이(信心不二)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고,   

불이신심(不二信心) 둘이 아닌것은 믿는 마음이니

언어도단(言語道斷)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비거래금(非去來今) 과거 미래 현재가 아니다

 

혜가의 말에 문득 수행자는 말이 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병의 실체가 없음을 아는 마음을 얻은 것이다.

이제 그대의 병은 이상 그대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스님, 이제서야 제가 문둥병이라는 이름을 붙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대, 그걸 알았다면 내 법은 그대에게로 전하노라.

 

혜가는 외팔로 문둥병 수행자의 머리에 손을 댄다.

문둥병 수행자는 업드려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린다.

이후 문둥병 수행자는 정말로 문둥병이 낫았다.

3조 승찬대사, 그는 단비구도(斷臂求道) 스승, 혜가를 이어 부처의 법을 이어 받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신심명(信心銘)이라는 깨달음의 소식을 전하기에 이르렀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언어가 끊어진 자리에 승찬 스님의 울림이 아직도 퍼져나가고 있다.

그대, 보이지 않는가.


: 言語: 말씀 , 말할 어 : 언어의

道斷:  , 끊어질 단 :  길이 끊어지고

非去: 아닐 , 지나갈 거 : 과거가 아니다.

來今: , 이제 금: 미래와 현재


 *신심명(信心銘): 4언 (四言) 2구 (二句)로 된 73게송으로 146구 584자  짧은 경전이다. 3조 승찬(僧璨 ?~606) 대사가 지었음.  대승경전의 핵심인 불이사상과 화엄경의 정수가 모두 포함 되어 있어 수행자라면 계속 두고 읽어 주면 좋을 것 같음.

오늘은 신심명 마지막 구절로 관노트 신심명을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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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12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의 끊어짐을 감당할 수 없어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깊은 마음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하지만 마힐님의 글을 통한 이언전심(以言傳心)으로 짧고 얕게나마 신심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

마힐 2026-03-13 12:25   좋아요 0 | URL
아, 이언전심이란 표현 참 좋네요.
역시 잉크냄새님!!!
믿음만 있으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ㅎㅎ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다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는데...
잉크냄새님 오늘 하루도 뜻 깊은 날이 되시길 바랄께요.
 

- 다시, 100일 정진  72일차

<信心不二/신심불이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고,   

不二信心/불이신심/둘이 아닌것은 믿는 마음이니>

 

겨울의 칼을 베는 듯한 바람 소리가 소림굴 안까지 들려온다.

하지만 어떤 휘몰아치는 바람도 소림굴 안의 고요를 깨드리지는 못했다.

단지 굴 앞에서 언제부터 인지 무릎을 꿇고 간절히 애원하는 수행자의 마음의 파동만 느낀다.


그대는 누구인가.

소승은 신광(神光)이라 하옵니다.

나를 찾는가.

대사께서 천축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한번 뵙고 싶습니다.

그대의 알량한 마음으로는 나를 없다.


알량한 마음이라니... 신광은 결심했다. 품 안의 칼을 빼내 들었다.

시퍼런 서슬의 칼날에 휘몰아 치는 바람에 쌓여 있는 자신의 몸이 비춰졌다.

신광은 망설임 없이 오른 손에 칼로 왼팔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눈위에는 뚝뚝 떨어지는 선혈로 번져졌다.

칼을 집어 던지고 끊어낸 왼팔을 들고 신광은 소림굴을 향해 외쳤다.


하나를 바치겠습니다. 이래도 알량한 마음입니까.

알겠다. 팔을 잘라 도를 구하는 그대의 신심이(信心) 그러하다면 이제 해보게.

저의 마음이 불안합니다. 도무지 그 불안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그대의 불안한 마음을 그럼 내게 가지고 오게. 내가 그 불안한 마음을 단박에 없애겠네.


신광은 불안한 마음을 찾으려 했다. 불안한 마음의 근원이 어디에 있던가.


저는 젊었을 군대에서 싸우느라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살생의 마음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꺼내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꺼내지도 못할 마음을 그대는 불안하다는 감정만 붙들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미 그대의 불안한 마음이란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신심불이(信心不二)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고,   

불이신심(不二信心) 둘이 아닌것은 믿는 마음이니

 

순간, 신광은 마음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팔을 잘라 바쳤던 신심과 불안을 떨게한 마음이 모두 사실 둘이 아니였던 것이다.

불이심이 믿음이 되는 것이고, 믿음  불이심(二心)  되는 순간을 맞이 것이다.

보리달마의 법이 신광에게로 이어지는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이다.

이후 달마는 신광에게 새로운 법명을 내렸다.

그가 바로 신심명(信心銘) 남긴 승찬(僧璨) 대사의 스승

2조() 혜가(慧可, 487~593) 였다.

 

: 信心: 믿을 , 마음 심 : 믿는 마음

不二: 아닐 , 둘 이 :  둘이 아니다.

不二: 아닐 , 둘 이 : 둘이 아님은

信心: 믿을 , 마음 심: 믿는 마음이다.

*단비구도(斷臂求道): 팔을 잘라 도를 구하다. 혜가는 진리를 얻고자 자신의 팔을 잘라 도를 구했다는 의미로 간절한 구도심을 대표하는 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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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1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분별심의 깨달음일까요?
간절한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순간입니다.

마힐 2026-03-12 17: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진심은 통한다고 하잖아요.
간절한 마음은 어디에도 통함을 믿어야죠.
분별심이란 본래 없는데 우리가 만드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계속 속고 사는 것 같아요. ^^
잉크냄새님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호시우행 2026-03-1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비구도, 정말 이렇게까지? 난 아직도 거짓말 같아요. 난 아직 한참 먼 재가불자인가 봅니다.

마힐 2026-03-12 17:37   좋아요 0 | URL
저도 호시우행님처럼 그렇다고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습니다.
오래전 부터 도를 구하고자 신체의 일부를 태우는 소지 공양 전통도 있었어요.
예전 베트남에서 ‘틱광득‘ 이란 스님은 전신을 불태우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답니다.
틱광득 스님은 독재정부의 불교 탄압에 반발하여 전신소지 공양을 했었답니다.
아마 당시 전세계에 보도가 되었을 때는 다들 충격이었답니다.
지금보면 너무 과격하고 잔인한 것 같지만 당시 구도자들에겐 세속적인 미련이 없었던 관계로 몸의 집착을 던진 것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하루하루 감사히 사는 것도 훌륭한 수행이니, 너무 자책 마세요. ^^
성불하십시요 _()_

yamoo 2026-03-1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네요...단비구도는 정말 아닌 거 같은데...확실히 제가 불자가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ㅎㅎ

마힐 2026-03-12 17:2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끔찍한 광경이 연상 되지만, 도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 정도까지 간절하다는 마음이란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죠. 그래서 중국 소림사 스님들 보면 한 손으로 합장하잖아요. 그게 다 혜가스님 이후에 한 손으로 합장하는 것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전해졌다는 속설도 있더라구요. ㅎㅎ
 

- 다시, 100일 정진  71일차

<但能如是/단능여시/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하면

  何慮不畢/하려불필/마치지 못할까 무엇을 걱정을 하랴>

 

화려한 누각 아래 황금 나는 곤룡포를 입은 황제가 자신에 목소리로 말했다.


짐은 살아있는 부처와 다름 없소.

황금 불상을 모든 절마다 크게 안치하고, 많은 불경들을 편찬했으며, 수 많은 스님들을 공양하고 있기 때문이요. 나의 이러한 공덕은 불법을 널리 흥하게 하고 나라를 번성하게 할 것이오.

그대가 그토록 서역에서 대단한 인물이라면 나의 공덕을 알아 있을 것이오.


앞의 누더기를 눌러 파란눈의 이역의 수행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없소, 이처럼 불법을 흥하게 한 나의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빈승이 , 대왕의 공덕은  () 입니다.

()? 아니 무라고, 그럼 아무 공덕이 없다는 말이오?


수행자는 아무 없이 합장만 뿐이었다.

황제는 화가 났다. 자신의 공덕을 인정해 주지 않다니. 생긴 것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천축 제일의 승려라고?

얼굴은 산적처럼 생겼고, 하는 짓도 못 마땅하다. 아마 소문은 거짓임이 틀림없다.

그대는 나랑 맞는가 보오, 그냥 물러 가시오.


왕에게 핀잔을 들은 수행승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숭산 소림사로 향했다.

수행승은 나지막히 읖조렸다.

아직은  ... 하지만 곧 시절 인연은 도래 하리라.


일즉일체(一即一切) 하나가 일체요

일체즉일(一切即一) 일체가 하나이니

단능여시(但能如是) 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하면

하려불필(何慮不畢) 마치지 못할까 무엇을 걱정을 하랴

 

소실산 기슭 동굴 속으로 들어간 수행자는 동굴 벽을 향해서 앉았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자신이 서역에서 동쪽으로 왔는지 부터 다시 생각했다.

, 스승님,

스승님께서는 일찍이 불타의 가르침이 자신의 대에서 끊어지는 것을 염려하셨다.


가라, 동쪽으로, 그대가 동쪽으로 가서 희미해져가는 불을 이어지게 하라.

동쪽에는 분명 법을 좋아하고 깨닫는 자가 많을 것이다.

두려워 하지 말고 염려도 말고 그냥 떠나시게.  내 그대에게 붓다로 부터 이어진 법을 전수하노라.

그렇게 스승 반야다라에게서 이어진 법은 달마에게 전해졌다.


꽃이 피고, 떨어지는 비에 꽃도 지고, 바람이 불어, 낙엽이 흩어진다.

눈이 내리고, 어쩌다 다가오던 산짐승의 발자국도 조용해진다.

동굴 밖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오직 동굴 안에만 깊은 고요함으로 시간이 멈춘 했다.

()는 곧 무() 돌아가고 있다. 변하고 있다.

이제 달마는 소림굴에서 시절인연이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

여시여시(如是如是)!

결국 그러할 일은 그러하게 되어지라.

 

: 但能: 다만 , 능할 능 : 다만 ~할 수 있다면

如是: 같을 , 바를 시 :  이와 같다.

何慮: 어찌 , 생각할 려 : 어찌 ~생각하겠는가

不畢: 아닐 , 마칠 필: 마치지 아니 함을, 즉 끝내지 못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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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70일차

<一即一切/일즉일체/하나가 일체요

 一切即一/일체즉일/일체가 하나이니>

 

밤에 그렇게 달고 시원했던 물이 아침에 보니 더럽고 역겨운 해골 바가지에 담긴 구정 물이었다니.

같은 물인데 밤에는 맛있었고 아침에는 구역질이 났는가.

해골물의 실체를 체험한 스님은 당나라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마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효(元曉, 617~686), 이제 진리를 찾아 이상 밖으로 구할 필요가 없어졌다.

도반으로 함께 차례 고난을 만났어도 의지가 되었던 원효스님이 돌아간다는 말에 의상은 흔들렸다.


결국 홀로 가야 하는 구나. 그래, 진리를 체험하는 것은 본래 혼자다.

의상과 원효는 본래 모두 화랑 출신이며 출가하여 스님이 이후 깨달음을 얻어 백성을 구제하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원을 세웠었다.

때마침, 현장 법사가 죽음을 무릎 쓰고 마침내 서역의 경전을 가지고 당나라로 들어 왔단다.

우리도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현장 스님에게 법을 구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10년의 세월 동안 바다를 건너다 풍랑을 만나 겨우 목숨만 건져 돌아오거나, 고구려 군사에게 붙잡혀 겨우 빠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러한 시련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법을 구할 수만 있다면... 중생을 위해, 나라를 위해서라면...

이제 바다만 건너면 드디어 당나라에 도착하는데...

의상(義湘, 625년 ~ 702년) 도반 원효스님의 결정을 받아 들이고 홀로 당나라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의상과 원효는 서로 다른 길을 갔던 것인가.


일즉일체(一即一切) 하나가 일체요

일체즉일(一切即一) 일체가 하나이니

 

의상스님은 당나라에 도착 동경하였던 삼장 현장법사께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현장법사의 천축을 향해 법을 구하는 여정과 의상스님이 당에 가겠다는 구도심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연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의상스님이 당나라에 도착한 얼마 안가서 현장법사는 열반에 드셨다.

의상스님의 인연은 삼장 현장 법사가 아니었다.

그의 인연은 화엄종(華嚴宗)이었다.

화엄경의 <입법계품>에는 선재동자가 법을 구하기 위해 선지식 53인을 만난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의상스님은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만나듯 화엄종의 초조인 지상지엄(至相智儼602~668) 스님에게 화엄의 법통을 이어 받게 된다.

그때 탄생 것이 바로 법성계(法性偈)이다.


법성계는  화엄경 80권의 막대한 분량 단지 7언 30구 210자로 뽑아낸 정수중의 정수에 해당된다.

화엄의 핵심 구절,  일중일체 다중일,일즉일체 다즉일(一中一切多中一,一卽一切多卽一)

하나안에 일체가 있고, 일체안에 하나가 있다.

신심명의 일즉일체, 일체즉일(一即一切,一切即一) 만나는 지점이다.


승찬스님은 현장법사나 의상조사 처럼 법을 구하러 떠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심명은 화엄의 핵심을 포함하고 있다.

어쩌면 승찬스님은 원효스님처럼 일체유심조를 깨달았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승찬스님 또한 일체유심조를 앞서서 깨달았던 것이다.

승찬에서 현장 그리고 의상과 원효가 모두 하나의 법으로 이어진다.


: 一即: 하나 , 곧 즉 : 하나가 곧

一切: 하나 , 온통 체 :  일체라

一切: 하나 , 온통 체: 일체가

即一: , 하나 일:  하나라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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