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67일차

<極大同小/극대동소/지극이 큰것은 작은것과 같아서

不見邊表/불견변표/ 끝과 겉을 볼수 없음이라>

 

경계가 보이질 않는다.

경계가 사라진 것인가.

경계는 본래 있지도 않았다.

다만 스스로 경계를 만든 것이다.

물질적 경계는 눈으로 보인다.

비물질적 경계는 보이지 않지만 강력하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보이지 않는 경계에 해당된다.

본래 경계는 없음을 잊지 말자.

 

극소동대(極小同大) 지극이 작은것은  것과 같아서

망절경계(忘絶境界)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극대동소(極大同小) 지극이  것은 작은것과 같아서

불견변표(不見邊表) 끝과 겉을 볼수 없음이라

 

지극이 작은 것과 지극히 것은 서로 상대적이다.

상대성으로 보면 것과 작은 것이 분명있다.

그러나 경계가 본래 없음을 안다면 작은 것과 것은 이상 다르지 않다.

대소불이(大小不二) 되는 순간이다.

법성계에 아래의 구절이 있다.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一切塵中亦如是)

티끌 가운데 우주를 머금었고, 낱낱의 티끌마다 온 우주가 다 들어있네.

 

미진(微塵) 은 먼지와도 같은 아주 작은 단위다.

먼지와도 같은 곳에도 우주가 들어있고, 그 개별적 티끌마다 온 우주가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아주 큰가, 아니다. 태양계에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태양계는 아주 큰가. 아니다. 은하계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은하계는 아주 큰가. 아니다. 우주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광대한 우주도 티끌 안에 들어 있다면 믿겠는가.

미진(微塵).

아주 작은 티끌일지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자.

우주 속의 미진같은 ,

미진 안에 우주가 들어있다.

우리는 티끌이기에 교만할 없고, 우주이기에 비굴할 수 없다.

 

 


: 極大: 다할 , 클 대 : 지극히 큰 것

同小: 같을 , 작을 소:  작은 것과 같다.

不見: 아닐 , 볼 견: 끊어지고 잊는다.

邊表: 가장자리 , 겉 표: 겉 면, 즉 가장 자리 겉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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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66일차

<極小同大/극소동대/지극이 작은것은 큰것과 같아서

忘絶境界/망절경계/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눈앞에 놓인 노트북.

분명 물질이다.

빛을 반사해 눈에 들어오는 화면에서 움직이는 커서 그리고 손으로 느껴지는 자판의 감촉.

분명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이다.

그러나 물질을 해체하고, 분리하고 또 나누고 쪼개다보면 어느새 물질이라 할 수 없는 입자로 변한다.

그리고 입자마저 나눌 없는 분자 원자 단위가 되면 앞에 보이기는 커녕 만질 수도 없다.

분명 보이고 만져졌던 물질이 사라졌다.

물질이라는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물체라도 언젠가는 결국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상태가 있다.

, 내가 사는 지구, 그리고 광대한 우주까지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무재부재(無在不在)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시방목전(十方目前) 시방이 바로 앞이로다

극소동대(極小同大) 지극이 작은것은 큰것과 같아서

망절경계(忘絶境界)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그러나 당분간 내가 사라지거나, 지구가 없어지거나, 우주가 폭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경계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경계는 매일 생겨난다.

마음 속에서 지어내는 온갖 상념들, 그중 대부분은 일어났다 꺼지고 마는 신기루와 같다.

그러나 신기루를 진짜로 착각하며 경계에 속는다.

보이지도 않던 마음의 경계가 어느새 물질의 경계로 막아서 버린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과연 둘인가.

그럼 무엇이 경계인가.

순간 순간 나타나는 경계에 어떻게 속지 않을 것인가.

경계는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 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極小: 다할 , 작을 소: 지극히 작은 것.

同大: 같을 , 큰 대:  큰 것과 같다.

忘絶: 잊을 , 끊을 절: 끊어지고 잊는다.

境界: 지경 , 경계할 계: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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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65일차

<無在不在/무재부재/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十方目前/시방목전/시방이 바로 앞이로다>

 

화엄(華嚴) 세계가 바로 앞에 있다고 한다.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고, 가벼운 바람이 선선히 부는 평화로운 세계가 화엄의 세계인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고통의 사바 세계라 하는데 과연 사바 세계와 화엄의 세계는 다른 것인가.

유마 소설 보면 우리가 사는 곳에 바로 불국토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우리 눈이 밝지 못해서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 자체가 불국토인줄 모른다는 것이다.

뭔가 따로 어딘가에 불국토가 있는게 아니라 우리의 눈이   바로   있다는 것이다.

 

십방지자(十方智者) 시방에 지혜로운 이들은

개입차종(皆入此宗) 모두 종취로 들어옴이라

종비촉연(宗非促延) 종취란 짧거나 긴것이 아니니

일념만념(一念萬念)  생각이 만념이요

무재부재(無在不在)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시방목전(十方目前) 시방이 바로 앞이로다

부터 밝아져야 한다.

내가 바로 하나의 세계이다.

안에 많은 세포들과 나를 구성하는 각각의 기관들.

물질적인 안의 오장육부 그리고 뇌를 포함한 내가 일으키는 마음속 세상까지 모두가 나의 세계이다.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 포함되어 있으면서 어떨 때는 초월하기도 한다.

그러니 스스로 밝혀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지, 잘 살아 갈 수 있는지. 나는 잘 살 수 있음을 믿는가.

지금  순간 현재에서 지나간 아쉬운 과거에 대한 집착 놓아버리고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도 잠시 놓아 버리고,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순간   있게.

화엄의 빛은 부터 빛나야 한다.

 

: 無在: 없을 , 있을 재: 있음이 없다.

不在: 아닐 , 있을 재:  있지 않다.

十方:  , 모 방: 시방, 동서남북,동남,동북, 서남, 서북, 상하 방향 모두 열 방향.

目前: , 앞 전: 눈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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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64일차

<宗非促延/종비촉연/종취란 짧거나 긴것이 아니니

一念萬念/일념만념/ 생각이 만념이요>

 

어제 선종에서 종취란 마음 도리의 근본을 뜻한다고 했다.

이제 부터 신심명은 마지막 구절까지 근본 마음자리에 대해서 말한다.

불이가 분별이전의 근원자리 이니 체가 되고

상응이 고정됨이 없이 변하는 용이 되었다.

이제 종취라는 표현도 결국 불이와 같은 근원이 되는 자리를 말한다.

따라서 근원이 되는 것은 짧거나 것이 아니며

오직 생각을 말한다.


십방지자(十方智者) 시방에 지혜로운 이들은

개입차종(皆入此宗) 모두 종취로 들어옴이라

종비촉연(宗非促延) 종취란 짧거나 긴것이 아니니

일념만념(一念萬念)  생각이 만념이요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근원이란 본래자리는 이해로 아는 자리가 아니다.

오직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는 순간에 알게 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일념은 근본마음에서 나온  생각이고, 그 한 생각에서 만가지 법이 나온다는것을 .

법성계의 일중일체 다중일,일즉일체 다즉일(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하나안에 일체가 있고, 일체 안에 하나가 있으니,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신심명이 화엄(華嚴) 연결되는 순간이다.

오직 일념이다.

 


: 宗非: 마루 , 아닐 비: 종은 ~이 아니다.

促延: 재촉할 , 지체 될 연:  재촉하거나 지체 되는 , 즉 짧아지거나 길게 되는 것

一念:  , 생각할 념: 일념, 즉 한 생각이

萬念: 일만 , 생각할 념: 만념, 즉 만가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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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63일차

<十方智者/십방지자/시방에 지혜로운 이들은

皆入此宗/개입차종/모두 종취로 들어옴이라>

 

이제 신심명은 불이(不二) 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불이는 단순히 '둘이 아님' 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별 이전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분별하기 이전, 그 근원을 지칭하는 것이 바로 불이이다.

그래서 불이를 한다는 것은 도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다.

도는 포용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시방의 도를 구하는 지혜로운 자들은 종취에 들어온다고 했다.

 

불이개동(不二皆同) 아님은 모두가 같아서

무불포용(無不包容) 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십방지자(十方智者) 시방에 지혜로운 이들은

개입차종(皆入此宗) 모두 종취로 들어옴이라

종취(宗趣) 무엇인가.

원래 ( ) 지붕 아래에 보일 (示) 써서  집안에서 제사를 모실때의 제단을 형상화한 모습이라고 한다.

선에서 종은 마음 도리의 근본을 뜻한다.

따라서 둘아닌 도리를 알고, 모두를 포용하는 자비심을 갖게 되면, 자연히 지혜가 생기고 그것이 바로 근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으로 풀이 있다.

불이가 세상을 포용하는 것인지, 원래 불이가 자비심을 갖게 하는지, 선후 관계는 알 수 없지만 불이는 곧 자비심의 다른 말로 읽힌다.

그러니 자비가 있으니 지혜도 생기는 것이라.

결국 불이는 지혜와 자비를 모두 구족하니 과연 () 부처님 마음임은 틀림없다.

 

 

: 十方:  , 방향 방: 열 가지 방향, 동서남북과 동남, 동북, 서남, 서북 그리고 다시 상하를 포함하면  열개의 방향이 된다. 읽을 때는 십방이라 하지 않고 시방이라 읽음.

智者: 지혜로울 , 사람 자:  지혜로운 사람

皆入: 모두 , 들어올 입: 모두 들어오다.

此宗: 이를 , 마루 종: 이 종문에 즉, 선종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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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6-03-02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자비심을 베풀면 그 상대방도 똑같이 대하면 생각의 차이가 있어도 어느 정도 대화가 될 텐데, 이를 악용하고 본인의 우월함을 더 내세워서 상대방의 생각을 뭉개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

마힐 2026-03-03 07:58   좋아요 0 | URL
Cyrus님 말씀처럼 자비가 오해받는 순간들이 있지요. 자비심을 내어 본 사람만이 마주할 수 있는 아픈 시험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지혜없는 자비는 무능이 되기 쉽고, 자비 없는 지혜는 우월감에 갇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중도의 길인데 참으로 참으로 어렵습니다. ㅜㅜ
그래서 불이의 자리는 자비와 지혜가 따로 움직이지 않는 자리라고 생각됩니다.
거친 인연들조차도 포용하여 지혜로 바꾸어내는 그 어려운 길의 경험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