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4년 12월27일
오늘의정진: 絶學無爲休道人(절학무위휴도인) 배움이 끊어지고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
u 100일 정진, 2일차
먼저 어제 언급했던 見견은 '보여지는' 약간의 수동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보는 단계를 觀(관) 이라고 했다.
오늘 見견에 대해 더 깊이 보는 觀(관) 을 해보면 볼 見은 나타날 現에 가깝다.
예를 들어보면 어두운 밤에 혼자 깜깜한 방에 들어가게 되면 눈으로 방안을 보면 어둡기 때문에 잘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방문 옆 전등 스위치를 켜는 순간 밝아지면서 눈 앞에 방의 전체 모습이 전부 드러나게 된다. 이때 비로소야 드러난 방의 실체를 눈으로 똑똑히 전부를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見견이고 깨달음이다.
다시말해 견은 바로 나타나져(現) 보이는(見) 것을 뜻한다. 그래서 君不見 군불견, 즉 그대 보이지 아니한가 의 뜻은 그대의 눈 앞에 깨달음이 보이지 않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깨달음은 나타나져야 볼 수 있는 것인데 '그대 이제는 보이는가' 로 영가(永嘉) 스님(674~713)은 첫 구절을 시작했다.
오늘은 증도가(證道歌)의 두번째 구절이다.
絶學無爲休道人(끊길 절, 배울 학, 없을 무, 할 위, 쉴 휴, 길 도, 사람 인)
절학무위휴도인 (배움이 끊어지고
함이 없는 한가운 도인은)
不除妄想不求眞 (아닐 부, 제거할 제, 망령 망, 생각할 상, 아닐 불, 구할 구, 참 진)
불제망상불구진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참을 구하지도 않는다.)
증도가 전체를 들어 가장 많이 알려진 구절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이다.
이 구절은 승찬대사(僧璨510~606)의 신심명(信心銘)의 첫 구절
<至道无难 지도무난 (이를 지, 길 도, 없을 무, 어려울 난)
唯嫌拣择 유혐간택 (오직 유, 꺼릴 혐, 가릴 간, 가릴 택)
도에 이르는것은 어렵지 않나니, 오직 가리고 택하는 마음만 꺼릴뿐이다.>
과 더불어 선어록 중에 가장 유명하다.
어쩌면 증도가는 군불견 다음의 사실상 첫 구절인 '절학무위휴도인'과 신심명의 첫
구절 '지도무난' 은 의미로 볼 때 쌍둥이 처럼 서로 닮았다.
배움이 끊어지고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은 말 그대로 깨우친 사람을 말한다.
이것은 신심명의 도에 이르는 것 과 서로 상통한다.
그리고 그 경지는 어떻게 해야 도달하는가?
증도가에서는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참, 즉 진리를 따로
구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신심명은 오직 가르고 택하는 마음, 즉 분별심을 꺼린다고
했다.
결국 도에 이르고, 도인이 된 사람들은 망상을 제거하거나, 진리를 얻고자 애를
쓰는게 아니다. 즉 분별하지
않는 사람을 바로 도인 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어서 원죄를 지은게 아니다.
선악과를 먹고서 분별을
했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다.
모든 죄의 근원은 분별심이다.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렸다.
즉 옳다.그르다, 좋다, 싫다로 나누는 그
분별심 이야말로 업을 지는 것이다.
그래서 승찬대사와 영가스님은 분별하지 않는 것이 도라고 하셨다.
도인이 되고자 해서 도인이 되는게 아니다.
그러니 배움이 끊어진 絶學 절학의 경지는 배울게 더 이상 없거나 배울 필요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배워야 한다는 마음 자체, 즉 분별이 끊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뭔가를 일부러 지어서 할려고 하는 마음을 有爲 유위 라고 한다.
無爲 무위는 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 저절로, 자연 스럽게. 그러한 경지.
이 역시 수동에 가깝다. 그런데 이 수동은 수동이 되고자
해서 되는 건 또 아니다.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하게 되는 경지다.
분별이 사라지는 경지는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경지다.
내가 분별을 하지 말아야지 해서 이루어지는 경지가 아닌 것이다.
노자(老子)의 사상을 접했다면 무위는 이해가 되는 단어다.
함이 없이 ,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닌 行행 하는 가운데 한다는 생각 없이. 그냥.
쉽게 말하면 그냥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 마르면 물 마시고, 배 아프면 화장실
가고, 졸리면 자는 행위가 바로 그냥 하는 무위이다.
그냥 하는 경지. 분별이 없는 경지 그게 바로 무위다.
신심명과 증도가는 도의 경지를 글의 맨 앞 구절에 확실히 선포를 해버렸다.
깨달음의 상태에서 바로 그대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마치 베토벤 운명 교향곡의 서곡과 같은 강한 충격과 인상을 마음 속에 새겨 놓는다.
증도가와 심신명의 첫, 두 구절뒤에 이어지는 구절들은
앞의 구절을 전부 변주하며 이어지는 것 과 같다. 깨달음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지는 것이다.
絶學無爲休道人 절학무위휴도인 ( 배움이 끊어지고
함이 없는 한가운 도인은)
不除妄想不求眞 불제망상불구진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참을 구하지도 않는다.)
2000년 1월 7일은 내가 중국으로 처음 취업을 해서 오게 된 날이다.
지금이 2024년 12월 이니 벌써 25년이 지났다.
25년전 집을 떠날 때 나의 스승님께서 손수 그리시고 써주신 구절이 바로 증도가의 '絶學無爲休道人' 이였다.
화선지에는 옛 사람이 크고 둥근 달 빛 아래 낚시대를 드려놓고 앉았고, 맞은편 멀리 초가집
한채가 옛 사람를 기다리고 있다.
그림 아래 써 주셨던 '絶學無爲休道人' 구절은 지금도 내 마음 속에 간직되고 있다.
어쩌면 이번 100일 정진은 그 시절 , 그 마음 상태로 환본(還本)하는 정진이 될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