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60206      (출생189609일 중국생활 9528일)

오늘의정진:  지혜와 자비


- 다시, 100일 정진,  40일차

<智者無爲/지자무위/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偶人自縛/우인자박/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 매트릭스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눈귀코혀몸이라는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세상이 진짜가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번의 선택으로 세상의 실체를 알게 것이다.

하지만 붓다의 빨간 약은 단번에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한다.

선택 끊임없는 수행이 병행이 되어야만 비로소 어느 순간 붓다가 설한바를 알게 된다.

단번에 알지 못하는가.

붓다의 빨간 약은 지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혜는 단번에 얻을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머리로 쌓는 지식조차도 단번에 얻을 없는데 어찌 지혜를 단번에 얻기를 바라는가.

지혜는 지식과 달리 머리에 국한되지 않았다.

지혜는 육진을 바탕으로 삼아 오감과 말나식과 아뢰야식 까지로 이어진다.

그래서 지혜는 인식의 깊이가  지식과는 다르다.

그러한 지혜에서는 어느 순간 자비로 변한다.

지혜와 자비는 빨간 약의 엑기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진이 인식의 티끌이라고 해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욕취일승(欲趣一乘)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물오육진(勿惡六塵)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육진불오(六塵不惡)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환동정각(還同正覺)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니라

지자무위(智者無爲)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우인자박(偶人自縛)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지혜와 자비는 결국 무위 함이 없는 경지로 이어진다.

지혜 없는 자비는 감정일 뿐이고, 자비 없는 지혜는 분별이 될 뿐이다.

알음알이로는 경지를 수가 없다.

 

: 智者: 지혜로울 지, 사람 자: 지혜로운 사람은

無爲: 없을 , 할 위:  함이 없다.

偶人: 어리석을 , 사람 인 : 어리석은 사람은

自縛: 스스로 , 묶을 박: 스스로 묶는다. 즉 스스로 얽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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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39일차

<六塵不惡/육진불오/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還同正覺/환동정각/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니라>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에서 주인공 네오(Neo)는 세상이 매트릭스임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때 그에게 선택지가 주어진다.

파란 약을 먹으면 그동안 살아왔던 대로 일 없이 계속 평소와 다를 없는 일상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빨간 약을 먹게 되면, 그 동안 살아왔던 것에서 벗어나 세상의 실체를 알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만약 나에게 파란 약과 빨간 약의 선택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세상이 연극의 무대였음을 깨닫는 순간이 언제 일까.

아마도 우리는 사는 동안에는 알아 차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 이르러서야 어쩌면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을 생각해 , 내 죽음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한 번 뿐이다.

나의 죽음을 체험할 있는 순간이 태어나서 한번 뿐이라니.

 

붓다는 이러한 세상의 구조를 깊이 관조한 마지막에 결론을 내렸다.

세상은 고해(苦海), 즉 '고의 바다' 라고 했다.

가난하고, 비참하고, 억울하게 사는 것만이 고통이 아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물질적인 부를 쌓고, 미남 미녀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도 바로 고통이라고 한 것이다.

붓다는 세상을 고라고 했을까.

우리는 생노병사(生老病死)를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붓다는 이러한 질문에 빨간 약을 내놓았다.

 

마치 네오가 먹게 되는 빨간 처럼 말이다.

붓다는 세상이 연극이자 환상임을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냈다.

그리고 그의 깨달음은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수행자들에 의해 다듬어져 이어져왔다.

붓다는 사성제를 비롯한 팔정도를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의 체질에 따라 맞는 빨간 약을 만들었다.

그래서 불교의 빨간 약은 너무나도 많다.

신심명도 그러한 빨간 중에 하나이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느끼는 감각들을 통해서 밖에 할 수 없다.

감각은 내가 있음과 내가 경험하는 세상을 생생하게 인식하는 도구이자 자신과도 같다.

그러나 그렇게 인식되는 나와 세상이, 사실은 하나의 무대이고, 꿈과 같은 환영이라면.

어느 누가 믿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붓다와 그의 후예들이 남겨 놓은 가르침을 통해 그와 같은 사실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그대는 빨간약을 먹을 것인가.

 

욕취일승(欲趣一乘)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물오육진(勿惡六塵)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육진불오(六塵不惡)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환동정각(還同正覺)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육진이라는 번뇌의 티끌이라면 육진을 버려할 것인가.

신심명은 단호히 말한다.

육진을 미워하지 마라.

그랬을까.

이것이 바로 빨간 약을 먹어야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六塵: 여섯 육, 티끌 진: 여섯 가지 티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가지 인식의 뿌리에 해당하는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 즉, , 소리, 냄새, 맛, 감촉,  육경(六境)  만나서 생기는 번뇌의 티끌.

不惡:: 아닐 , 미워할 오:  미워하지 아니하면  

還同: 돌아올 , 같을 동 : 같이 돌아온다. 즉 하나로 돌아온다.

正覺: 바를 , 깨달을 각: 바르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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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38일차

<欲趣一乘/욕취일승/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勿惡六塵/물오육진/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이란 공간과 시간의 무대에 올라서게 된다.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무대의 막이 내릴 때 까지 한 바탕 연기를 해야 한다.

우리 인간이란 배우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연극 무대에서 우리의 연기는 짜여진 극본대로 대사를 외우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즉흥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

배우인 우리 자신은 이게 연극인지 전혀 모르며 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연극의 무대를 지켜 보는 관객이 도대체 누구인지는 우리는 모른다.

무대 위의 연기자인 우리는 연극 무대에 펼쳐진 소품들이 소품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을 움직이는 그 가운데 그 모든 등장 인물과 사물들이 전부 생생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 대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대본은 이미 우리가 펼치는 연기 속에 이미 들어가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외운 대본이 아닌  우리의 심연에 대본이 이미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말나식과 아뢰야식이라 불리는 나라는 아집과 무의식이 바로 대본이다.

 

이러한 연극의 구조를 눈치를 사람들이 우리 중에 일부가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붓다였다.

붓다는 이러한 매트릭스 같은 현실 구조를 간파하고 구조를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의 세상이 매트릭스 같은 구조였음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구조 안에 벌어지는 모든 것이 실제라고 믿고 있는 벗어 없다.

왜냐면 우리의 감각 기관은 너무나 생생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픔이란 통각(痛覺)은 너무나 사실적이라 이것이 연극의 과정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벗어나야 하는가.

 

욕취일승(欲趣一乘)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물오육진(勿惡六塵)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이제부터는 매트릭스 실체에 접근할 차례다.

 

: 欲趣: 바랄 , 향할 취: 향하고자 바란다면

*一乘:  , 탈 승:   승은 수레에 태우는것을 뜻한다.

대승(大乘), 소승(小乘) 불교 할 때의 '승()'은 중생들을 수레에 태우고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것을 의미한다. 대승은 수많은 중생들을 태우는것이고 소승은 그보다는 적은 수의 중생들을 태우고 가는것 이다. 따라서 여기서 일승은 깨달음의 세계로 수레를 타고 가는것 말한다.

勿惡: 금할 , 미워할 오 : 미워하지 말라

*六塵:여섯 , 티끌 진: 여섯 가지 티끌, 여기서 여섯까지 티끌이란 우선 우리 인간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가지 인식의 뿌리에 해당하는 육근(六根)을 뜻한다. 이러한 육근은  , 귀,코, 혀, 몸, 뜻을 가지고  육경(六境) ,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 즉, , 소리, 냄새, 맛, 감촉,  만나서 생기는 번뇌의 티끌이 바로 육진(六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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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무대-연기-대본-매트릭스로 이어지는 비유의 줄기가 너무 적절하네요. 몇해 전 읽은 팃낙한 스님의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내용이 다시 떠오르네요.

마힐 2026-02-06 09:43   좋아요 1 | URL
잉크 냄새님도 이제 세상이 현실 같은 가짜임을 서서히 알아 차리시는가 봅니다.
이제 빨간 약 드실 시간인가요? ㅎㅎ
잉크냄새님은 일부러 파란 약 드실 것 같은데요. ^^

잉크냄새 2026-02-06 20:24   좋아요 1 | URL
전 이미 빨간 약 한번 먹었어요. ㅎㅎ
 

- 다시, 100일 정진,  37일차

<不好勞神/불호노신/좋아하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何用疏親/하용소친/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 것인가>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똑 같은 상황을 경험했어도, 그 경험의 감정이 전혀 다를 때가 있다.

시인 이백과 두보는 동시대 사람 이면서, 같은 공간에서 함께 교류를 했었다.

하지만 이백이 경험한 세상과 두보가 경험한 세상은 전혀 달랐다.

이건 이백과 두보 뿐만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같은 경험을 했음에도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이 남겨졌지만, 우리는 늘 내게 남겨진 기억과 감정이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서 사는 자폐증 환자와 다를 없는 것인가.

그런 것인가.


불교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 이란 용어로 풀어냈다.

현대 심리학의 의식과도 같은 개념인데, 불교의 식은 그 의식을 넓게 확장 시켰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을 움직이는 그 가운데, 의미를 내가 지니게 된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의식이 합한 것을 육식(六識)이라고 부른다.

거기에  라는 것에 집착하는 말나식과 나의 모든 무의식의 경계인 야뢰야식이 더해지면 8식이 된다.


이러한 식의 작용에 의해 우리의 세계는 주관적으로 밖에 느낄 없다.

우리는 각자의 8식이 바로 주관적이기 때문에 각자의 인식하는 세계가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이백의 세상과 두보의 세상은 같은 당나라 시인이지만 다른 세상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도 같은 시대, 같은 나라, 같은 가족으로 살고 있지만 결국은 혼자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모두 자폐증 환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이런 이해의 바탕에서 우리는 다시 세상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각자의 8식속에 살아가는, 끝내 서로의 세계를 완전히 건너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계념괴진(繫念乖眞)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불호(昏沈不好)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불호노신(不好勞神) 좋아하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하용소친(何用疏親)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것인가

 

생각에 얽매이면 혼침에 빠지고 그것은 좋지 않다.

 혼침은  정신을 피곤하게 한다.

그러니 어찌 도에 가깝고 멀고를 따지며   있겠는가?  

결국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의 육식은 피곤하다.

게다가 보이지도 않는 나라는 아집과 무의식 까지 나를 붙잡고 있으니 얼마나 무거운가. 

생각도 많아 자주 혼침에 빠지고, 정신도 아득히 피곤하니 얼마나 괴롭겠는가?


, 어쩌란 말이냐.

그러니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일단은  모르겠다하고 그냥 놔야 한다.

놓는 , 어쩌면 이것 밖에 다시 제대로 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 不好: 아닐 , 좋을 호: 좋지 않다.

勞神: 괴로할 , 귀신 신:  신명이 괴롭다.

何用: 어찌 , 쓸 묭 : 어찌 ~ 쓸 것인가.

疏親:멀리 , 친할 친: 멀리하고  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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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36일차

<繫念乖眞/계념괴진/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昏沈不好/혼침불호/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당나라 시인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묻는다면, 대개 열 중 아홉은 이백(李白701~762)을 답할 것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하고 불려지던 시선(詩仙) 이백 말이다.

시성(詩聖) 두보(杜甫: 712~770) 이백과 동시대에 살았던 시인으로 쌍벽을 이루지만 이백과는 전혀 다른 시풍를 지니고 있다.

두보의 시는 불우한 시대의 슬픔과 연민 같은 애절함이 담겨 있는 현실주의적 특징이 있으나 

이백의 시는 자유분방하며 호방한 낭만적인 시풍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시인은 서로 다른 세계를 노래 했을까.

이백이 남긴 시중 <장진주(將進酒)> 라는 시가 있다.

시는 단순히 술을 권하는 내용이지만 스케일은 하늘과 바다, 천지를 오가며 인생의 참뜻을 묻는다.


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奔流到海不復回。(군불견, 황하지수천상래, 번류도해불복회)
그대 않는가? 황하의 물 하늘에서 내려와서, 힘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고 다시 오지 못함을.

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朝如青絲暮成雪。(군불견,고당명경비백발, 조여청사모성설)

그대 않는가? 귀한 집 거울속 흰 머리 슬퍼하노니, 아침에 검던 머리 저녁에 눈같이 희어짐을.

人生得意須盡歡,莫使金樽空對月。(인생득의수진환,막사금준공대월)

인생에 뜻을 얻었으면 모름지기 길지니, 금 술잔이 빈 채로 달을 마주보게 하지 말라.

天生我材必有用,千金散盡還復來。(천생아채필유용, 천금산진환부래)

하늘이 내게 주신 재주 반드시 쓰일 것이며, 많은 돈을 다 써 버리더라도 다시 돌아오리라.

烹羊宰牛且爲樂,會須一飲三百杯。(팽양재우차위락, 회수일음삼백배)

양고기 삶고,  잡아 우선 즐기리니, 모름지기 한 번 마시면 삼백 잔은 마셔야 하리라.

岑夫子,丹丘生,將進酒,杯莫停。(잠부자,단구생, 장진주,배막정)

잠부자, 단구선생이여 술을 권하니, 그대들은 거절하지 말게나.

與君歌一曲,請君爲我傾耳聽。(여군가일곡, 청군위아경이청)

그대들 위해  노래 부르리니, 그대들 날 위해 귀 기울여 주.

鐘鼓饌玉不足貴,但願長醉不復醒。(종관옥부족귀,단원장취불부성)

음악과 귀한 안주 아끼지 말고, 단지 오래 취하여 깨지 말기를 바랄 이네.

古來聖賢皆寂寞,惟有飲者留其名。(고래성현개적막, 유유음자류기명)

옛날의 성인과 현자들은 잊혀졌으나, 술꾼들의 명성은 전하여 오네.

陳王昔時宴平樂,斗酒十千恣歡謔。(진왕석시안평락, 두주십천자환학)

진왕은 옛날 평락궁 잔치 열고서, 한 말에 만 냥이나 하는 술 마음대로 즐겼다네.

主人何爲言少錢,徑須沽取對君酌。(주인하위언소전, 경수고취대군작)

주인이 어찌하여 돈이 적다 말하시오? 어서 빨리 와서 우리 같이 대작합시다.

五花馬,千金裘,呼兒將出換美酒,與爾同銷萬古愁。(오화마, 천금구,호아장출환미주,여이동수만고수)

나의 오화마와 천금구를 아이 불러 맛있는 술로 바꿔 와서, 우리 모두 만고의 시름을 삭여보세나.


이백의 명성은 지금으로 치면 당대 최고의 가수에 해당 한다.

일반 백성부터 고위 관료들 심지어는 황제까지 그의 시를 읊고 그의 재능을 칭송했다.

각박한 현실과 맞지 않는 화려하고 초월적인 스케일의 시를 남여노소가 좋아했다.

특히 장진주에서는 이백의 자신의 사유의 크기를  시적 재능으로 유감없이 발휘된다.

장진주의 모든 구절 하나하나가 소위 거를 타선이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그러나 장진주의 최고의 구절은 바로 소절이 아닌가 싶다.

 

君不見, 군불견, 그대 보이지 아니한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화지수천상래. 황화의 물은 천상에서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回 , 번류도해불복회. 바다로 흘러 들어가 돌아 오지 못하는 것을.

君不見,군불견, 그대 보이지 아니한가.

高堂明鏡悲白髮,고당명경비백발. 귀한 집 거울속 백발을 보고

朝如青絲暮成雪 , 조여청사모성설. 아침에 검던 머리가 저녁이 되어 눈처럼 희는 것을.


하늘에서 부터 쏟아져 내리는 황화의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귀한 집에 태어나 아침에 검던 머리 카락이 저녁엔 백발이 되어 버리는 슬픔을,  

그대 보이지 아니 한가   풀이 된다.

단지 술이나 마시며 즐기며 놀아 보세 라고 하며 부른 노래 치고는 자연과 인생의 없음 그리고 무상함을 깊이 담았다.

장진주는 세상의 없음을 그대들은 보이지 아니한가  물으며 시작한다.

시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술이나 마시자고 부른 노래의 형식이지만 안에 자신의 경지가 감춰져 있다.

君不見,군불견, 그대 보이지 아니 한가.


보는 , 은 보려고 하는   저절로 보여지는  으로 나뉘어 진다.

중국어로 () 보려고 하는 의지 있는 상황에서 사용하고,

()  나의 의지가 없이 보여지 상황에서 사용한다.

영가현각 (永嘉玄覺, 665~713) 스님의 깨달음을 노래한 <증도가(證道歌)> 구절도 바로 이백의 장진주와 같이 '君不見(군불견)' 으로 시작한다.


君不見, 군불견, 그대 보이지 아니한가.

絶學無爲閑道人, 절학무위휴도인, 배움이 끊어진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은.

不除妄想不求眞, 부도망상불구진, 망상도 없애지 않고 배움도 구하지 않나니


이백보다 세대를 먼저 살았던 영가스님 역시 깨달음을 노래한 시에 君不見(군불견) 으로 시작했다.

깨달음이란 때가 되면 저절로 오는 시절인연(時節因緣) 가깝다.

억지로 구하고자 해서 구해지고, 찾으려고 해서 찾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망상을 없애려 하거나, 참된 도를 구하고자 하려고 하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배움이 끊어진, 이것 또한 억지로 끊어진 것이 아닌 저절로 끊어지는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무위 , 함이 없이 하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경지는 볼려고 해서 봐지는 경지가 아니라 저절로 보여 져야 하는 경지이다.

君不見,군불견, 그대 보이지 아니 한가.


임성합도(任性合道)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여

소요절뇌(逍遙絶惱) 소요하여 번뇌가 끊기고

계념괴진(繫念乖眞)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불호(昏沈不好)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신심명 또한 증도가의 구절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다시 장진주로 돌아와 이백은 술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술을 마시면 최소한 삼백잔을 마셔야 하고, 늘 취한 상태로 있었으며, 말년에는 너무나 술에 취해 강 속에 빠진 달을 건지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전설처럼 혹은 신화처럼 살았던 시인은 어쩌면 자신의 재능과 경지를 단지 술을 마시는 것으로 허비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강에 빠진 달을 건지려 했던 마음을, 우리는 이제 조금 이해할 것만 같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너 어찌 물 속에 잠겨 있느냐. 내 너를 건져 올리마

 

: 繫念:  , 생각할 념: 생각에 메이다. 즉 생각에 얽매이다.

乖眞: 어그러질 , 참 진:  참됨이 어그러진다. 즉 참됨이 어긋난다.

昏沈: 어두울 ,  잠길  : 어둡게 잠긴다. 즉 마음이 맑지 않은 상태

不好: 아닐 , 좋을 호: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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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3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君不见,这一杯酒天上来,奔流到胃不复回
이백은 시선诗仙이자 주신酒神이어서 이렇게 변형해 외우고 있어요.ㅎㅎ

마힐 2026-02-03 22:37   좋아요 1 | URL
그대 못 보았는가?
이 잔의 술은 하늘로부터 왔나니,
위로 들어가서는 다시 나오지 않는 구나.
카~ 소주의 맛이네요.
멋진 주신의 개작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