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70일차

<一即一切/일즉일체/하나가 일체요

 一切即一/일체즉일/일체가 하나이니>

 

밤에 그렇게 달고 시원했던 물이 아침에 보니 더럽고 역겨운 해골 바가지에 담긴 구정 물이었다니.

같은 물인데 밤에는 맛있었고 아침에는 구역질이 났는가.

해골물의 실체를 체험한 스님은 당나라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마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효(元曉, 617~686), 이제 진리를 찾아 이상 밖으로 구할 필요가 없어졌다.

도반으로 함께 차례 고난을 만났어도 의지가 되었던 원효스님이 돌아간다는 말에 의상은 흔들렸다.


결국 홀로 가야 하는 구나. 그래, 진리를 체험하는 것은 본래 혼자다.

의상과 원효는 본래 모두 화랑 출신이며 출가하여 스님이 이후 깨달음을 얻어 백성을 구제하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원을 세웠었다.

때마침, 현장 법사가 죽음을 무릎 쓰고 마침내 서역의 경전을 가지고 당나라로 들어 왔단다.

우리도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현장 스님에게 법을 구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10년의 세월 동안 바다를 건너다 풍랑을 만나 겨우 목숨만 건져 돌아오거나, 고구려 군사에게 붙잡혀 겨우 빠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러한 시련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법을 구할 수만 있다면... 중생을 위해, 나라를 위해서라면...

이제 바다만 건너면 드디어 당나라에 도착하는데...

의상(義湘, 625년 ~ 702년) 도반 원효스님의 결정을 받아 들이고 홀로 당나라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의상과 원효는 서로 다른 길을 갔던 것인가.


일즉일체(一即一切) 하나가 일체요

일체즉일(一切即一) 일체가 하나이니

 

의상스님은 당나라에 도착 동경하였던 삼장 현장법사께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현장법사의 천축을 향해 법을 구하는 여정과 의상스님이 당에 가겠다는 구도심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연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의상스님이 당나라에 도착한 얼마 안가서 현장법사는 열반에 드셨다.

의상스님의 인연은 삼장 현장 법사가 아니었다.

그의 인연은 화엄종(華嚴宗)이었다.

화엄경의 <입법계품>에는 선재동자가 법을 구하기 위해 선지식 53인을 만난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의상스님은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만나듯 화엄종의 초조인 지상지엄(至相智儼602~668) 스님에게 화엄의 법통을 이어 받게 된다.

그때 탄생 것이 바로 법성계(法性偈)이다.


법성계는  화엄경 80권의 막대한 분량 단지 7언 30구 210자로 뽑아낸 정수중의 정수에 해당된다.

화엄의 핵심 구절,  일중일체 다중일,일즉일체 다즉일(一中一切多中一,一卽一切多卽一)

하나안에 일체가 있고, 일체안에 하나가 있다.

신심명의 일즉일체, 일체즉일(一即一切,一切即一) 만나는 지점이다.


승찬스님은 현장법사나 의상조사 처럼 법을 구하러 떠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심명은 화엄의 핵심을 포함하고 있다.

어쩌면 승찬스님은 원효스님처럼 일체유심조를 깨달았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승찬스님 또한 일체유심조를 앞서서 깨달았던 것이다.

승찬에서 현장 그리고 의상과 원효가 모두 하나의 법으로 이어진다.


: 一即: 하나 , 곧 즉 : 하나가 곧

一切: 하나 , 온통 체 :  일체라

一切: 하나 , 온통 체: 일체가

即一: , 하나 일:  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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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69일차

<若不如此/약불여차/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不必須守/불필수수/반드시 지켜서는 안 되느니라>

 

주성치의 홍콩 영화중에 <선리기연>,<월광보합> 이란 영화가 있다.

서유기를 모티브로 B급 감성의 영화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코메디는 주성치 표라는 독특한 유모 코드로 관객을 웃긴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코메디 영화가 아니다.

불교에서 다루는 전생과 업보 그리고 인연의 소중함과 깨달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제천대성 손오공이 되기 지존보라는 도둑 무리의 우두머리로 전생을 살았다.

지존보는 자신이 손오공임을 알지 못한 인연과 업보의 굴레를 헤메게 된다.

과정이 코믹하고 유치한 장면들의 연속이지만 맥락은 과거 생과 현재 그리고 미래 생으로 이어지는 인연과 업을 표현했다.

손오공의 스승인 삼장 현장도 등장하는데 삼장이 수다쟁이 설정으로 나온다.

손오공은 스승 삼장의 잔소리가 결에 들리는 모기소리처럼 여기며 아주 질색을 하며 귀찮아 한다.

마침내 급기야 삼장은 오공을 위해 유명한 프레터스의  Only you 노래를 개사곡으로 부른다.



그러나 지존보에서 손오공으로 각성한 보여지는 삼장은 전혀 달랐다.

본래 삼장은 말이 별로 없다.

단지 깨닫지 못한 입장에서 삼장의 모든 말들이 잔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우리는 현실 속의 소란함에 불만을 토로한다.

사실 소란스러운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이 아니였을까.


유즉시무(有即是無) 있음이 없음이요,

무즉시유(無即是有) 없음이 있음이니

약불여차(若不如此)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불필수수(不必須守) 반드시 지켜서는 안되느니라


영화의 백미는 지존보에서 손오공으로 각성하며 손오공의 상징인  머리 , 즉 금고아를 쓰는 장면이다.


하늘이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난 그녀에게 사랑한다 말해 주겠소.

사랑에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년으로 하겠소 

못다 이룬 사랑에 대한 후회의 감정을 표현하며, 인연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손오공은 자신의 인연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또한 받아 들이지도 않았다.

석양이 지는 사막의 도시를 떠나는 삼장 법사일행, 그 뒤를 쫓아 여의봉을 어깨에 걸치고 돌아서는 손오공의 뒷 모습은 많은 여운을 준다.



오늘도 우리 안의 삼장은 우리안의 손오공에게 간절히 노래를 한다.


Only you, 너만이 나와 함께 서역에 불경을 구하러 갈 수 있어.

Only you, 너만이 수 많은 요괴를 무찌를 수 있어.

Only you, 너만이 나를 슬프지 않게 할 수 있다.

오늘도 안의 서유기는 이렇게 써지고 있는 중이다.


: 若不: 만약 , 아닐 불 : 만약에 ~가 아니라면

如此: 같을 , 이를 차:  이와 같다.

不必: 아닐 , 반드시 필: 받드시 ~ 가 아니다.

須守: 모름지기 , 지킬 수: 지켜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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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68일차

<有即是無 /유즉시무/있음이 없음이요,

無即是有/무즉시유/없음이 있음이니>

 

사막의 모래 바람이 일어난다.

태양의 강렬한 마저 가릴 정도로 모래는 바람으로 변하여 맹렬해진다.

어디가 앞이며 뒤인지 수없다.

동서도 없고 남북도 없다.

사막 가운데 서있는 나그네는 앞의 모래 바람 속에서 안간힘을 내며 겨우 버틸 뿐이다.

낮에는 모래 바람과 내리쬐는 태양의 칼날 같은 뜨거움을 견뎌야 하고

밤에는 얼어 붙을 정도의 차가운 기온의 변화에 떨어야 했다.

걷고 걷고 걷지만, 사막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은 달팽이 보다도 더 느리게 느껴진다.

봐도 봐도 물이 있는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죽어 있는 어느 동물의 사체의 뼈만 간혹 눈에 뜨일 뿐이다.

저기 유골이 어쩌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전에

그저 두손을 모아 합장할 뿐이다.

사막의 경계는 나그네를 안에 가뒀지만 나그네는 오히려 사막의 경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극소동대(極小同大) 지극이 작은것은  것과 같아서

망절경계(忘絶境界)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극대동소(極大同小) 지극이  것은 작은것과 같아서

불견변표(不見邊表) 끝과 겉을 볼수 없음이라

유즉시무(有即是無) 있음이 없음이요,

무즉시유(無即是有) 없음이 있음이니


얼마나 걸릴지, 가다가 죽을 지도 모르는 사지를 벗어났다.

거친 사막의 죽음의 경계를 벗어난 나그네는 그토록 바라던 천축이 앞에 있음을 알았다.

나그네는 모든 것이 자신이 걸어온 것이 아니라 불보살의 인도였음을 깨닫게 된다.

나그네는 지나왔던 사막을 향해 아니, 자신을 돌봐줬던 불보살님을 향해, 아니 스스로를 향해

지극히 삼배를 한다.

그가 바로 제천대성 손오공(齊天大聖, 孫悟空) 스승, 삼장 현(三藏 玄奘, 602~664)이다.

있음이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라.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이즉 공이요, 공이즉 색이어라.

신심명의 구절과 반야심경 구절이 만나는 지점이다.

반야심경은 당나라 현장 법사가 고비사막을 건너 인도로 가서 가져온 대승경전 중의 하나이다.

신심명은 수나라 승찬(僧璨, ?년 ~ 606년)대사가 선()  통해 얻은 깨달음을 노래한 것이다.

선이 대승경전의 경지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승찬 대사는 천축을 가지도 않았고, 경전을 보지도 않았다.

현장이 죽음을 무릎쓰고 건너간 천축에서 가져온 경전의 내용과 몸의 문둥병을 극복하고 마침내 얻은 깨달음의 경지가 서로 같음을 승찬 대사는 알고 있었을까.

진리는 여여(如如)하기 때문이라. 그러하니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모래 바람이 어느새 하늘에서 내리는 잎으로 흩어진다.

오공(悟空)이여!

본래 비어 있음을 깨달았는가.

현장의 물음에 오공은 말을 잊었다.

 


: 有即: 있을 , 곧 즉 : 있음이 곧

是無: 바를 , 없을 무:  없음이다.

無即: 없을 , 곧 즉: 없음이 곧

是有: 바를시, 있을 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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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67일차

<極大同小/극대동소/지극이 큰것은 작은것과 같아서

不見邊表/불견변표/ 끝과 겉을 볼수 없음이라>

 

경계가 보이질 않는다.

경계가 사라진 것인가.

경계는 본래 있지도 않았다.

다만 스스로 경계를 만든 것이다.

물질적 경계는 눈으로 보인다.

비물질적 경계는 보이지 않지만 강력하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보이지 않는 경계에 해당된다.

본래 경계는 없음을 잊지 말자.

 

극소동대(極小同大) 지극이 작은것은  것과 같아서

망절경계(忘絶境界)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극대동소(極大同小) 지극이  것은 작은것과 같아서

불견변표(不見邊表) 끝과 겉을 볼수 없음이라

 

지극이 작은 것과 지극히 것은 서로 상대적이다.

상대성으로 보면 것과 작은 것이 분명있다.

그러나 경계가 본래 없음을 안다면 작은 것과 것은 이상 다르지 않다.

대소불이(大小不二) 되는 순간이다.

법성계에 아래의 구절이 있다.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一切塵中亦如是)

티끌 가운데 우주를 머금었고, 낱낱의 티끌마다 온 우주가 다 들어있네.

 

미진(微塵) 은 먼지와도 같은 아주 작은 단위다.

먼지와도 같은 곳에도 우주가 들어있고, 그 개별적 티끌마다 온 우주가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아주 큰가, 아니다. 태양계에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태양계는 아주 큰가. 아니다. 은하계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은하계는 아주 큰가. 아니다. 우주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광대한 우주도 티끌 안에 들어 있다면 믿겠는가.

미진(微塵).

아주 작은 티끌일지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자.

우주 속의 미진같은 ,

미진 안에 우주가 들어있다.

우리는 티끌이기에 교만할 없고, 우주이기에 비굴할 수 없다.

 

 


: 極大: 다할 , 클 대 : 지극히 큰 것

同小: 같을 , 작을 소:  작은 것과 같다.

不見: 아닐 , 볼 견: 끊어지고 잊는다.

邊表: 가장자리 , 겉 표: 겉 면, 즉 가장 자리 겉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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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00일 정진  66일차

<極小同大/극소동대/지극이 작은것은 큰것과 같아서

忘絶境界/망절경계/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눈앞에 놓인 노트북.

분명 물질이다.

빛을 반사해 눈에 들어오는 화면에서 움직이는 커서 그리고 손으로 느껴지는 자판의 감촉.

분명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이다.

그러나 물질을 해체하고, 분리하고 또 나누고 쪼개다보면 어느새 물질이라 할 수 없는 입자로 변한다.

그리고 입자마저 나눌 없는 분자 원자 단위가 되면 앞에 보이기는 커녕 만질 수도 없다.

분명 보이고 만져졌던 물질이 사라졌다.

물질이라는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물체라도 언젠가는 결국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상태가 있다.

, 내가 사는 지구, 그리고 광대한 우주까지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무재부재(無在不在)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시방목전(十方目前) 시방이 바로 앞이로다

극소동대(極小同大) 지극이 작은것은 큰것과 같아서

망절경계(忘絶境界)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그러나 당분간 내가 사라지거나, 지구가 없어지거나, 우주가 폭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경계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경계는 매일 생겨난다.

마음 속에서 지어내는 온갖 상념들, 그중 대부분은 일어났다 꺼지고 마는 신기루와 같다.

그러나 신기루를 진짜로 착각하며 경계에 속는다.

보이지도 않던 마음의 경계가 어느새 물질의 경계로 막아서 버린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과연 둘인가.

그럼 무엇이 경계인가.

순간 순간 나타나는 경계에 어떻게 속지 않을 것인가.

경계는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 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極小: 다할 , 작을 소: 지극히 작은 것.

同大: 같을 , 큰 대:  큰 것과 같다.

忘絶: 잊을 , 끊을 절: 끊어지고 잊는다.

境界: 지경 , 경계할 계: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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