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달빛 담요 너른세상 그림책
에일런 스피넬리 글 그림, 김홍숙 옮김 / 파란자전거 / 2001년 11월
구판절판


참 이쁜 책을 만났다. 바로 지금 소개하는 <소피의 달빛 담요>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보니 우리나라에 처음 펴낸 것은 2001년 12월이다. 그러고 보니 약 10년 전이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 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생각하면서도 지금이라도 함께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소피는 집거미 이다. 그렇지만 보통 집거미와는 다르다. 보통 거미하면 많이 놀라기도 하고 겁도 많이 먹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집에서는 나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집에 있는 집거미에게는 그다지 겁을 먹지 않는다. 이 책의 영향이라기 보다는 어렸을 때 부터 집거미는 무서워하거나 잡는 것이 아니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경 1~3m 이내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항상 거미가 살고 있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싶다. 하여튼 소피는 집거미 이지만 보통 거미가 아닌 '예술가'이다. 물론 보통 거미들도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샬롯의 거미줄>에서도 샬롯은 정말 대단한 거미였다고 생각한다.


소피의 거미줄은 이 세상 어떤 거미줄보다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친구들은 소피를 놀라운 아이(?)라고 불렀다. 소피의 거미줄은 모두가 작품이다. 소피는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비이크맨 씨의 하숙집으로 이사를 한다. 독립(?)을 한 것이다. 새 집은 칙칙한 녹색 벽, 색 바랜 카페트 그리고 낡은 커튼이 있었다. 이럴때 일수록 소피의 예술이 필요한 때 일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거미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 거미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절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소피를 싫어하는 것 같다. 소피는 아주머니를 떠나 선장 아저씨가 머무는 다락방으로 이사(?)를 한다. 이사가 쉬운게 아닌데...


선장 아저씨의 다락방. 온통 회색으로 가득찼다. 셔츠, 바지, 스웨터... 회색만 있는 세상인 것 같다. 소피는 회색만 있는 이 공간을 하늘처럼 밝은 색의 파란색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선장 아저씨 역시 소피 아니 거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소피는 요리사가 있는 곳, 그중에서도 슬피퍼 속으로 들어갔다.


요리사의 슬리퍼? 왜 하필 슬리퍼로 들어갔을까? 소피는 요리사에게 슬리퍼를 짜주고 싶었다. 소피는 마음도 참 넓은 것 같다. 그렇지만 소피의 마음과 상관없이 요리사는 소피의 배려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소피는 또다시 이사를 해야했다. 이번에는 3층의 뜨개질 바구니 속이다.


소피는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것 같다. 아니 거미의 시간으로 오랜시간이 지났다. 소피는 어느덧 할머니가 되었다. 자신의 여덟 개 다리를 따뜻하게 감싸는 여덟 가지 색깔의 양말도 만들었다. 어느날인가 3층의 젊은 여인도 소피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여인은 소피를 마주하며 미소만 짖는다.

여인은 아기 털신을 뜨고 있다. 아기에게 덮어 줄 담요가 필요했다. 오래되고 너덜너덜한 담요가 있기는 했지만, 소피는 자신이 아기 담요를 짜야겠다고 생각했다. 소피는 이제 젊지 않다. 힘겨운 하루 하루가 지나고 있지만 소피는 달빛과 별빛을 섞어 담요를 짜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담요를 짰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담요를 만들 생각으로 소피는 담요만을 짜고 또 짰다. 그리고 악가 막 태어난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 소피 역시 담요의 마지막 귀퉁이를 짜고 있었다. 자신의 가슴을, 소피 자신의 사랑을 담아 담요를 짰다. 사랑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여인은 잠든 아기에게 그 담요를 덮어 주었다. 소피의 사랑으로 채운 담요를... 소피 생애 최고의 작품을...


그냥 거미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은 아이들의 맘을 너무나 잘 아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른들도 감동을 받고 어렸을 때 추억속으로 빠져든다. 나에게 우리에게 소피와 같은 거미가 혹은 친구가 있는가... 아직 없다면 나를 다시 되돌아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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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할머니
베스 크롬스 그림, 필리스 루트 글, 강연숙 옮김 / 느림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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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이들과 함께 읽은 <겨울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 할머니와는 다른 분이였다. 오히려 느낌은 다르지만 <눈의 여왕>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겨울 할머니는 혼자 살고 계신다. 그렇지만 하얀 거위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혼자라고 하기에도 뭔가 다를 것 같다. 겨울 할머니라고 해서 겨울에만 사실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겨울 할머니는 우리의 할머니들과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분명 우리네 사계절 같이 보내는 할머니 였다. 봄이되면 눈보라처럼 하얀 깃털을 날리는 거위들과 함께 다닌다.

겨울 할머니는 여름내내 거위들의 하얗고 빛나는 깃털을 모은다. 왜일까? 책장을 넘기면서 아이들이 궁금해 한다. '따뜻한 이불을 만들라고요' 라고 한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따뜻한 이불을 덮을 수 있으면 겨울을 보내기 좋으니까. 그게 아니면 거위털을 넣은 옷을 만드실려나. 라는 생각을 해보면 책장을 넘긴다.

그런데... 아이들의 생각이 맞았다. 할머니는 가을이 오면 거위의 깃털을 가득 채워 넣은 이불을 만들었다. 이불을 꿰매는 모습에서 나의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렇게 직접 이불도 꿰매어 가족 모두가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겨울 할머니는 그런데 이불을 꿰어 무엇을 하시려는 것일까? 궁금하다.


겨울 할머니는 이불을 꿰매어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에 깃털 이불을 펼쳐 흔든다. 먼지가 날릴까? 아니다. 그것이 아니였다. 바로 한 송이 한 송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였다. 아하!~ 그래서 겨울 할머니 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눈의 여왕>이 떠올랐던 것일까? 눈이 내리면 아이들은 입을 벌려 차갑지만 하이얀 눈송이를 받는다. 나도 그랬었는데... 아이들은 신기해 한다. 왜냐면, 요즘의 눈은 만지기는 해도 입안에 넣지 못하게 하고 받아 먹지도 못하게 하니 말이다. 설명을 해준다. 아빠 어렸을 때에는 그렇게 하이얀 눈을 받아 먹기도 했다고...


깃털 이불은 하이얀 눈 송이를 온 세상에 나눠준다. 홍관조도 박새도 그리고 산토끼와 족제비도 눈 송이가 세상을 덮을 때를 맞추어 그에 맞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도 바다의 물고기들도 이 시기를 기다린 것 같다. 그리고 검은 곰은 하품을 하며 동굴로 들어간다. 아마도 겨울잠을 청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아이들만이 신나게 뛰어논다. 아이들도 잠자리에 들고 눈 위에서의 즐거운 상상을 꿈속에서도 만나본다. 겨울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불을 턴다. 소나무에 있던 바람도 '쉿!' '조용히 하라고 속삭인다.' 누구에게 속삭이는 것일까?



겨울 할머니는 그렇게 이불을 털고 나면 무얼 하실까? 그리고 거위들은... 겨울 할머니는 잠을 청한다. 거위들은 봄을 기다린다.


겨울 할머니는 어린이들에게 겨울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눈의 여왕> 이였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어렸을 때도 추운 줄 몰랐던 것은 그 분이 함께 있어서 였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이 추운 겨울도 밖에서 뛰어 놀 수 있는 것이 아마도 그 분과 함께 하기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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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게 공부야 재미난 책이 좋아 11
이상교 지음, 서영경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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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평소 아이들과의 책읽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의 몫(?) 또는 가족이 나의 역할을 대신해 왔다. 그런데 어제는 그러한 일련의 행사들을 내가 했다. 대신 아이들과 가족은 오늘 초콜릿과 브라우니를 만든다고 늦은 오전부터 북적북적 난리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읽고자 했던 책 한권을 손에 집어 읽으려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아 가족들과 함께 초콜릿과 브라우니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고 잠시 휴식을 가지고 모두가 나간 이시간 혼자서 카페를 한바퀴(?) 돌아보고 어제 읽었던 책들에 대해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어제 함께했던 첫번째 책은 <노는게 공부야!>라는 책이다. 이 책을 큰아이 (올해 초등3 올라감)가 먼저 읽지 말아야 할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책을 받아들고 먼저 읽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노는게 공부래요!'라고 한다. 그래서 '그래 맞아! 노는게 공부지! 아들 말이 맞다! 그런데 어떻게 노느냐가 관건 아니겠니?'라고 했더니 잠잠하다. 혹시나 해서 내가 먼저 읽었어야 하는건데.... 아이 두녀석과 함께 책을 읽다보면 큰아이의 집중력에 비해 작은 아이의 집중력은 금방 떨어진다. 그래서 또 놀자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책 읽는 것도 노는거다!'라고 했더니 '그것도 노는거예요?'라고 한다. (우리집에서는 내게 아이들은 존댓말을 사용한다.)



이 책 <노는게 공부야!>는 '이상교' 선생님이 글을 쓰셨다. 역시 아이들을 이해하는 작가는 틀리기는 틀린가 보다. 눈을 뜨면서부터 놀이는 시작이다. 주인공 윤종백, 아침부터 놀이로 시작해서 놀이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네 어렸을 때도 항상 그랬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나만 그랬나? ㅎㅎ

'덜렁이' 종백이는 덜렁이 중에 덜렁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모들은 모두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구? 우리 아이들에게도 너같은 아이는 없을 거다 라고 한다. 엄마, 아빠는 좋은 점만 닮으라고 하지만 어디 그게 말이 되는가? 부모의 좋은점과 나쁜점 모두를 닮는 것이 기본중에 기본 아닌가? 물론 장점만 닮는다면 그것은 정말 우성 유전자만을 취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친구 기범이를 닮았으면 하지만 생각해보면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고양이를 잡으려다가 떨어져 결국 목발을 하게된 종백이. 그래도 놀이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아홉 살이라서 거실을 아홉번 왔다 갔다한다. 그것도 하나의 놀이가 되는 종백이. 학교에서는 이 목발이 하나의 놀이(?)로 아이들에게 인기 만발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국민학교(나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가 아니였다.) 때 교단에서 장난치다가 교단 철봉에서 떨어져 왼쪽 팔을 기부스를 하고 다녔었다. 그런데 종백이처럼 기부스를 하고서도 얼마나 놀았는지 석고붕대를 풀었을 때 부모님들은 속이 많이 상하셨었다. 왜냐구? 완전히 붙지 않고 조금 틀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살아가는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ㅋㅋ


그런데... 이런 녀석이 다 있을까요? 아니 우리 어렸을 때야 워낙 이런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을지 모르지만 요즘에 이런녀석이 있다면 부모들은 정말 속상할 것 같습니다. 참새 한마리로 인해 반대쪽 발 역시 석고붕대를 하고만다. 그러면서도 나름 즐겁다. 병원에서 복숭아뼈를 엑스레이 필름으로 촬영한 것을 보면서 왜 하필 복숭아뼈인지 궁금해 하는 녀석. 하긴 누구나 궁금해 할 수도 있다. 부모들이나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자세(?)를 항상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역시 그런 자세를 항상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이가 놀기만한다? 그게 아이의 탓일까? 부모의 탓일까? 아이에게는 부모의 유전자가 들어있는데 그리고 생각해보면 부모를 닮는다고 했는데 놀기만 한다? 아니면 책을 멀리한다? 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던 되돌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이에게 그것들도 하나의 놀이고 부모의 장정을 모아 놓은 것이 너야!!! 라고 얘기 해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를 믿고 아이의 바램이 무엇인지, 무엇을 가지고 놀고, 공부하고 싶은지 함께 동참해보자.


짝꿍을 바뀌는 날! 내게도 그런날들이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그런데 종백이 처럼 아무도 자기 짝꿍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하면 얼마나 슬플까? 단지 놀기 좋아해서 그렇다고 하면 더욱 그럴것 같다. 옛날에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 한다고 했는데... 종백이는 너무 놀기만 한 것일까? 아니면 놀기는 하는데 그 안에서 배우는게 아무것도 없었을까? 그래도 종백이에게는 기범이가 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친구인 것이였다.

기범이의 엄마의 오해아닌 오해가 결국 결론에 접근한다. 책은 읽기 좋아하지 않지만 고양이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 종백이. 종백이에게 고양이를 더 잘 알 수 있다면 그것이 책이라도 그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종백이는 고양이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다. 물론 고양이가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과 친해지기 위해 논다(?)

가끔 큰아이에게 책 그만보고 자라고 한다. 둘째에게는 책 좀 봐라고 한다. 그런데 반대로 큰아이는 책을 빼면 특별히 하고 싶은것도 잘하는 것도 많지 않다. 반대로 작은아이를 보면 요즘들어 책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책 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말이다. 이 책처럼 잘 노는게 공부라는 말도 맞는것 같다. 다만, 놀 때 제대로 놀게끔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놀라야 그것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해서 전적으로 놀기만 한다고해서 그게 공부의 전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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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소설 37 - 개정 23종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권복연 외 지음 / 리베르스쿨 / 2010년 7월
품절


요즘 부쩍 소설을 많이 만나보게 된다. 오늘 아니 이번주는 이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평소보다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의 한계 아닌 한계로 인해 진행이 늦어진 것도 변명이라고 하면 변명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주 만난 책은 <개정 23종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한국대표소설 37>로 분량이 무려 679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잠시 생각해 보면 굉장히 대단한 책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한국의 대표 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 <메밀꽃 필 무렵>, <소설 동의보감> 등 37편을 다루었는데 679페이지에 담을 수 있다니 말이다.


이 책은 개정 23종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모음집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중학교 교과서의 모든 작품이 수록되지는 못했지만 수록 빈도가 가장 높은 대표 작가 25분의 37편의 작품 세계를 만나 볼 수있다. 37편의 소설을 '애틋한 사랑', '성장의 아픔' 등 열세가지의 주제로 나뉘어 살펴 볼 수 있다. 짧게는 두편의 소설에서 많게는 다섯편의 소설까지 한 주제로 엮어 비슷한 주제로 서로다른 작품을 살펴 볼 수 있다. 각 주제에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제에 맞는 옅보기(?)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애틋한 사랑'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사랑의 유형에 대해 짧게 소개하며 주제에서 보는 '사랑'이 어떤 사랑을 보여주는지, 어떤 사랑에 공감하는지 묻기도 한다.

37편의 소설의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작가에 대한 소개와 '작품정리'라고하여 갈래, 배경, 시점, 주제, 출전을 보여준다. 또한, 주요 등장인물 그리고 구성과 줄거리를 소개하고 있다. 작가 소개에서는 작가의 대표작과 주요한 내용들을 보여주고 있다. 학창시절의 참고서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일까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작가와 그 작품에 대해 기존에 알고 있는 작품이 아닌 좀 더 깊이 있는 해설을 겸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이점이 오히려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이미 해설이나 줄거리를 읽기에 나의 생각을 펼치기 전에 그 내용에 흡수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익혀 둘 개념'을 통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키포인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이부분도 내게는 오히려 내 생각과 상충되는 부분이면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기에 나름 좋았다고 본다. '함께 읽을 작품'을 통해서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다른 작가의 비슷한 분류의 작품을 소개받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또한, '생각해 볼 문제'를 통해 다시한번 작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다만, 작품이 끝나고서 뒤에 넣었다면 미리 해설을 보지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을 좀 더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바쁜 중,고등학생 및 수험생들을 위한 배려일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조금 아쉽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별 생각없이 읽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에 대해 뒷날개를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는 이런 선정 기준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였다.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 한권으로 37편의 한국 대표 소설을 읽어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37편의 작품을 읽다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도 있다. 바로 옆에 작은 글씨로 주석이 달리기는 했지만 그것은 책을 읽는 가속도를 오히려 떨어뜨렸던 것 같다. 단어도 쉽지 않고 사투리나 지금은 쓰지 않는 단어들로 인해 조금 어려웠고 힘들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무심코 읽었던 소설들의 갈래가 이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단편소설이나 장편소설이 아닌 세부 갈래 속에 특정분야나 장편동화로도 구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들고 다니면서 책을 읽기에는 꽤나 무거웠다. 읽는 시간을 많이 만들기 위함이라지만 정말 책의 무게는 무시 못했다. 그래도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을 다시한번 읽어보고 몰랐던 작품에 대해서는 첫 만남을 통해 그 작품의 작가와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어 좋은 한주간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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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비룡소 클래식 16
루이스 캐롤 지음, 존 테니엘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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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 <시크릿가든> 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아니 지금도 케이블 방송을 통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또한 그 주인공 배역의 '현빈'의 해병대에 관련한 소식으로 시끌버끌하다. 책 서평과는 좀 먼 이야기지만 군 입대를 지원하는 연예인들로 인해 군대에 대한 긍정적 바람이 계속 불었으면 한다.

 

1855년에 루이스 캐럴은 크라이스트 처치의 학장인 헨리 조지 리델의 네 살짜리 딸인 앨리스를 만났고, 그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열성적으로 들은 앨리스 리덜에게서 영감을 얻어 1865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했던 그는 꼬마 친구 앨리스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또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시대를 풍자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시대상을 등장하는 인물들과 대화 내용을 통해 애둘러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라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과 아이들에게 함축된 내용의 동화책으로 읽어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을 받았다. 오늘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말장난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번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책 뒤의 옮긴이의 말을 읽다보니 무척이나 신경써서 옮기려고 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얼만큼의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원작을 읽었던 것이 너무나 오래되어서 일까? 아니면 동화책이나 함축된 내용의 서적이나 동영상을 보아와서 일까? 그동안 읽었던 내용보다 더 많은 내용 그리고 말장난(?) 속에서 그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할 것 같다.

 

토끼가 혼잣말을 하는데도 그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은 앨리스는 이미 이상한 나라에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앨리스에게는 신기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다. 동화책이든 함축하여 들려주는 책이든 공통적으로 나오는 부분 중에서 토끼가 혼잣말을 하는 부분과 '날 마셔요'라고 적혀있는 병에 대한 부분은 똑같은 것 같다. 이미 이상한 나라이지만, 바로 '날 마셔요'라고 하는 병을 통해 진정 이상한 나라에 합류(?)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앨리스는 생각보다(?) 똑똑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충고를 잘한다. 그렇지만 그 충고를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네 가정의 유아들을 보는듯하다. 혼잣말도 잘하고 떠들고 인형 혹은 로봇들과 대화도 한다. 앨리스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개구리 하인과 물고기 하인 그리고 돼지로 변하는 애기. 이상한 나라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다. 아니 이미 이상하기에 그것이 정상일 것이다. 이상한 형체들과 이상한 대화들 그런데도 대화가 가능한 것이 더 이상하다. 모자 장수와 고양이 그리고 3월의 토끼는 모두 미쳤다. 어쩌면 앨리스도 함께 미쳤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미쳐야 미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자 장수, 3월의 토끼 그리고 모자 장수와 3월의 토끼 사이에 있는 겨울잠쥐와 함께 이상한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앨리스는 두번다시 이런 엉터리 다과회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난다. 어쩌면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의 끝없는 말장난의 세계를 표현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말도 안되는 정치판을 풍자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앨리스는 또다른 곳을 향해 자리를 떠난다.



 



 

 

 

 

여기 장미 이야기가 나온다. 하얀 장미를 모두 빨간색으로 칠하는 카드 정원사 셋. 여왕의 '목을 쳐라' 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여왕뿐만 아니라 왕도 나온다. 그랬던가? 그렇다면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모두 동화책이거나 함축적인 내용만을 담은 여왕만 나왔던 책이였던 것 같다. 아니면 정말 기억을 못하는 나의 두뇌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원작 혹은 원작에 충실한 책을 읽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된다. 그렇지않고 내용의 전달을 쉽게만 하려고 함축적으로 만든 책만을 보면 원작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많은 부분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펀을 통해 여왕이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치는 캐릭터임을 알게 된다. 시대적으로 보면 여왕의 권력, 힘을 비유한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앨리스를 제외한 모든 등장 인물들은 명령을 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어른들이 하는 말들이 모두 명령일 수도 있을 것이고, 지배계층을 비유하고자 했던 저자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펀이 일어나 앉아 눈을 비볐다. 그러다니 여왕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낄낄거렸다. 그리고 혼잣말인지 앨리스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게 "우스워 죽겠네!"라고 말했다.

 앨리스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그야 여왕이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것뿐이야. 사실은 아무도 처형당하지 않지. 이리 와."

 앨리스는 그리펀을 천천히 따라가며 생각했다.

 '여기서는 모두가 '이리 와'라고 하네. 내 평생 이렇게 명령을 많이 받아 본 적은 없어. 절대로!' - p. 147

 



 

 

 

 

잠깐 눈을 감고 앨리스가 다녀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려 보자. 앨리스는 자신의 꿈을 언니에게 모두 이야기 한다. 그리고 앨리스의 언니 역시 이상한 나라를 만난다. 눈을 뜨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나는 눈을 감으면 이상한 나라에 다가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다가가지 못해도 우리의 아이들은 그럴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다시 읽어보게 된 이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렸을 때의 몽상이나 망상을 떠오르게 한다. 수많은 생각들.... 그렇지만 그 중에서 지금 떠오르는 것은 거의 없다. 아니 그 때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이상한 나라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상한 나라를 보여달라고 해야겠다. 아이들에게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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