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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스탈린 - 독소전쟁 4년의 증언들
로런스 리스 지음, 허승철 옮김 / 페이퍼로드 / 2025년 1월
평점 :
예전에 <스탈린이 죽었다!(The Death of Stalin)>라는 블랙 코메디 영화를 재미있게 본 것이 기억난다. 프랑스 출신의 만화가인 파비앵 뉘리과 티에리 로뱅가 그린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3월 5일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전날 한 여성이 보낸 저주의 편지를 읽고 분노한 나머지 급성 뇌출혈로 쓰러지자 후계자 자리를 놓고 흐루쇼프를 비롯한 측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웃픈 해프닝을 코믹하면서 신랄하게 조롱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영화 초반에 이런 장면이 있다. 스탈린이 죽기 전날 그의 다챠에 모인 측근들이 수령 앞에서 온갖 재롱을 부리면서 적어도 겉으로는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흐루쇼프가 예전 동료의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화기애애한 저녁 만찬이었지만 말렌코프가 무심코 "그 녀석 지금은 어떻게 되었지?"라고 묻자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 스탈린이 똥씹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나?" 여기에 비밀경찰 수장 베리야 또한 "그기에 가고 싶은 모양이지."라고 이죽거린다.


눈치 없는 한마디에 스탈린과 주변 동료들의 눈총을 잔뜩 받고 데꿀멍하는 말렌코프. 등골이 서늘하고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을 듯.
이 공산주의식 유머가 담긴 짧은 장면은 보는 이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스탈린 체제라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셈이다. 게오르기 말렌코프는 적백내전 시절부터 평생 스탈린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심복 중의 심복이며 각료 평회의 부의장으로서 스탈린 다음의 2인자였다. 실제로 스탈린이 죽자 서기장이자 각료 평의회 의장이 되어서 새로운 철권 독재자가 될 뻔했을 정도이다. 물론 스탈린에 비하면 훨씬 유약하고 물렁했기에 금새 흐루쇼프에게 권력을 빼앗긴 채 몰락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거물조차 스탈린의 변덕 앞에서는 한칼에 나가떨어질 수 있는 파리 목숨으로 눈치 보면서 숨 죽이고 사는 처지였다는 얘기이다. 스탈린은 파라오조차 누리지 못한 절대신이자 그의 말은 법이고 진리였기 때문이었다. 감히 말대꾸조차 신성모독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영화가 있다. 히틀러의 마지막 여비서였던 트라우들 융에의 관점에서 바라본 나치 최후의 14일을 다룬 <몰락(The Downfall)>이다. 히틀러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펠릭스 슈타이너의 무장친위대가 반격에 실패했다는 말을 듣자 그때까지 쌓아두었던 분노가 한방에 폭발한다. 4분에 걸쳐 장군들을 향해 터뜨리는 광기어린 모습은 진정한 맨탈 붕괴가 어떤 것인지 보여줌으로서 인터넷의 수많은 패러디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영혼이 붕괴된 채 장군들을 미친 듯이 비난하는 총통 앞에서 말이 심하다며 따박따박 말대꾸를 늘어놓는 빌헬름 부르크도르프 대장.
하지만 히틀러의 분노는 스탈린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는 심복들을 위협한다기보다 자포자기한 사람의 넋두리에 가깝다. 듣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말렌코프처럼 겁에 질리거나 오금이 저리기는 커녕 총통의 히스테리가 또 발동했다는 식이다. 심지어 부르크도르프는 총통을 향해 "군대를 비난하지 마시죠"면서 맞받아치지만 그런다고 히틀러가 등 뒤에 있는 괴벨스더러 저 놈을 당장 끌고 나가서 게슈타포의 손에 처리하라고 명령하지는 않는다. 그저 무력하게 울먹거릴 뿐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부르크도프르만이 아니라 구데리안이나 만슈타인을 비롯하여 히틀러와 끝짱 토론을 벌였던 장군들 역시 그 때문에 목이 달아났을지는 몰라도 히틀러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강제로 계급장 떼이고 다하우 정치범 수용소에서 혹독한 경험을 보내거나 처형당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보직을 잃었을 뿐, 여전히 군부의 원로로서 우대받았고 월급과 두둑한 상여금도 꼬박꼬박 나왔으며 때로는 히틀러와의 만찬 자리에 참여하여 마음에 담아 둔 말을 털어내기도 했다. 일부 장교들의 히틀러 암살 작전이었던 발키리 작전으로 죽다 살아난 뒤에도 히틀러는 관련된 사람들만 무자비하게 처벌했고 군부 전체와는 여전히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하물며 평화로운 시기에 독일 장군들은 소련 장군들마냥 루반카로 끌려가서 굴욕적인 처우와 고문을 받을까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장군들에게 있어서 스탈린이 이름만 들어도 울음이 뚝 거치는 공포의 마왕이라면, 히틀러는 벼락 출세한 보헤미아의 상병이자 베알은 좀 꼬이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존재였다랄까.
20세기 최악의 철권 독재자로서 불후의 이름을 남긴 히틀러와 스탈린은 닮은 듯하면서도 달랐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 모두 여색을 밝히지 않고 음주향락과 사치를 즐기지 않았으며 개인적인 치부에 쌓는데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또한 인민들에게는 당에 충성하기를 요구했을 뿐, 북쪽 김씨 왕조마냥 베를린과 모스크바 한가운데에 황금으로 된 거대한 동상을 세우고 자기 우상화에 열을 올리지도 않았다. 수십명의 후궁들 속에서 온갖 주지육림을 즐기며 공식석상에서는 화려하게 장식한 제복을 입고 나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남미와 아프리카 독재자들의 행태에 비하면 훨씬 소박한 셈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살육했음에도 막상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는 일은 없었다는 점도 같았다. 그 역할은 부하들의 몫으로 떠넘겼다.

구소련의 일원이었던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6m짜리 삐까번쩍한 황금동상. 히틀러와 스탈린은 정복과 살육에 대한 욕심은 징기스칸조차 능가했지만 의외로 이런 치장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서구 지도자들이 혼란스러웠던 것도 이 때문.
이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부드럽고 소탈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이디 아민처럼 마체테를 들고 마음에 안 드는 장관 거시기를 손수 자르는 따위의 기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히틀러와 스탈린을 직접 만났던 서방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존재감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뮌헨 회담에서 영국 총리였던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호텔 보이로 착각했다고. 흔히 독재자라고 하면 비만 체구에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수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며 거드름 부리면서 주변을 위압하는 조폭 두목같은 존재를 떠올리는 사람들로서는 히틀러와 스탈린은 여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이었음이 틀림없다. 독재도 시대에 맞추어 끊임없이 진화하는지도.
하지만 두 사람이 닮은 꼴이라기에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성장과정도 달랐고 성격도 달랐으며 권력을 잡는 과정도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스탈린의 특징은 끝없는 의심이었다. 타고난 성격도 있었겠지만 밑바닥에서 시작하여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경쟁자들을 묻어버려야 했을 것이며 한발짝만 잘못 내딛어도 자신 또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학습 효과가 그를 역사상 보기 드문 괴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소련 인민 전체를 자기 목숨을 노리는 잠재적인 위험분자로 여겼던 그는 공포와 위협으로 맹목적인 복종만을 강요했다. 희대의 괴물이라는 점에서는 히틀러 또한 스탈린 못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독일 국민들이 숨도 못 쉴 만큼 사정없이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총칼이 아니라 선거로 권력을 잡은 그는 유태인과 전쟁의 패배자들에게는 가혹했지만 적어도 독일 국민의 환심을 사려고 애를 썼다. 패전 직전까지도 대부분의 독일 국민은 총통에게 충성했고 적어도 바르바로사 작전 초반 독일군을 만난 소련 인민들처럼 점령군을 '해방자'라며 반기는 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소련군은 물론, 서방연합군에게도 말이다. 실제로 스탈린 때문에 죽은 수백만명의 대부분은 소련인이지만 히틀러 때문에 죽은 수백만명은 대부분 소위 '아리아인'은 아니었다. 만약 스탈린 치하의 소련인과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유태인을 제외하고) 중 양자택일하라면 답은 뻔하지 않을까.

1939년 10월 9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 스타(The Washington Star)에 실린 만평. 저자는 퓰리처상 수상자이기도 한 클리포드 베리만(Clifford K. Berryman)이라는 저명한 만화가라는데 요즘같으면 'PC 논란'이 벌어졌을지도. 언제부터 동성애가 대세가 된 듯한.
이것만은 분명했다. 두 사람 모두 권력에 대한 집착과 끝없는 정복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사실이다. 남에게 그것을 내줄 바에는 차라리 온 세상을 없애겠다는 쪽이었다.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었고 5천만명을 죽게 만들었다. 하필이면 두 괴물이 동 시대에 등장하여 라이벌이 된 것은 악마의 장난은 아니었을까 싶다.

페이퍼로드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도서 <히틀러와 스탈린 - 독소전쟁 4년의 증언들>은 두 괴물이 보여준 강점과 결점, 그리고 독소전쟁에서 스탈린이 초반의 수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를 꺾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들을 직접 보고 겪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담은 책이다. 그런데 영어판 부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폭군들(the tyrants and the second world war)'이라는.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본문이 독소전쟁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간 핀트가 맞지 않는 느낌. 저자인 로런스 리스(Laurence Rees)는 영국 옥스퍼드 출신 역사학자이자 BBC 다큐멘타리 제작자이기도. 제2차 세계대전이 전문인 듯.

저자인 로런스 리스 영감님. 연출이겠지만 뒤에 있는 국기와 사진만 보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 덕후스러운 삘이 와닿는 느낌이랄지.
이 책은 1939년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으로 히틀러와 스탈린이 처음 손을 잡는 순간부터 스탈린의 사망까지 14년의 시간 동안 루스벨트와 처칠같은 서방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최측근부터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동 시대를 함께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거나 직접 대면했던 사람들의 1,248개에 달하는 증언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두 악마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이들은 닮은 꼴이면서 달랐고 다르면서 닮은 꼴이었다. 한때 든든한 맹우를 약속하면서 손을 잡았으면서 결국 서로를 용납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단순히 이념이나 정복욕 때문이라기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본능적인 동족 혐오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독일-소련군이 폴란드를 양면 침공하고 1945년 4월 소련군의 베를린 점령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시작하여 끝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들 덕분에 겪지 않아도 될 소동에 휘말린 셈.
스탈린이 리벨트로프와 협상을 진행한 모습과 히틀러가 그 전날 독일 장군들을 상대로 연설을 빙자한 허풍을 떠는 모습은 명확히 대조적이었다. 히틀러는 허영심이 가득한 고성을 반복했지만 스탈린은 조용하고 신중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중요성을 떠벌리기 급급했으나 스탈린은 회담에 몰로토프를 참여시켜 소련 지도부의 집단적 결정이라는 거짓된 인상을 심어주었다. 히틀러는 이념적 버전을 설교한데 반하여 스탈린은 실용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자신을 희화화할 줄도 알았지만 히틀러에게는 이런 면이 전혀 없었다. - p.83 |
양국은 각각 차지한 폴란드 지역을 자국에 복속시키는데 집중했다. 양측이 이 과제를 수행한 방법을 살펴보면 두 정권의 성격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정권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일례로 양측 모두 고문을 마음껏 자행했다. 바르샤바의 한 공장에서 독일인들은 노동자를 집단으로 나누고 서로 싸우도록 부추겼다. 소련 당국 특히 악명높은 비밀경찰인 NKVD는 대규모로 고문을 자행했다. 루브프의 지하 학생 조직 일원인 올가 포파딘은 소련 비밀경찰에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주먹으로 그녀를 가격했고 다음으로 고무 몽둥이로 때렸다. - p.99 |
소련군의 능력을 향한 스탈린의 믿음은 핀란드와의 겨울전쟁으로 크게 약화했다. 그래서 스탈린은 다시는 그런 굴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보로실로프 원수가 국방인민위원에서 해임되고 문화적 업무를 다루는, 즉 소련군에 해를 끼칠 수 없는 자리로 좌천되었다. 그 대신 수천명의 소련군 장교들이 석방되었다. 장교들의 석방과 함께 '승진 사태'가 일어났다. 무더기 승진의 혜택을 본 장교 중 한 사람은 게오르기 주코프였다. 그는 훗날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소련군 지휘관이 되었다. - p.183 |
히틀러는 스탈린처럼 모든 정보를 보고 받고 검토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보고서를 읽더라도 스탈린처럼 서류에 상스러운 말을 적지 않았다. 자신의 특별한 지위에 관한 자의식이 투철했기에 그는 천박한 말투를 쓰지 않았다. 크램린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스탈린을 둘러싼 야심 찬 아첨꾼들이 그에게 듣기 좋은 소식만 보고한 모습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이런 면에서 독보적인 인물이 라브렌티 베리야였다. 그는 보스의 의심병에 영합하는 방식으로 출세한 인물이었다. - p.235 |
영국 정치인들은 1938년 뮌헨 회담을 포함하여 히틀러를 상대한 경험이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스탈린과 다르게 회의 중 오랜 시간 침묵을 지키지 못했고 외국 정치인들에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히틀러와 달리 스탈린은 꾸밈없이 굴었다. 1941년 12월 회의에서 스탈린의 꾸밈없는 태도는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낳는데 일조했다. 외국 외무장관 이든은 스탈린이 전후 소련의 국경 문제가 "양국 사이의 진정성을 쌓은 시금석"이 될 거라고 확신한 채 모스크바를 떠났다. - p.368 |
1942년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위기의 순간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아랫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다. 히틀러는 석탄 협회 의장 플라이거에게 호소 내지는 간청을 하여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도록 다그쳤다. 그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고 대꾸한 플라이거가 히틀러 본인의 요구대로 시도하겠다고 입장을 바꿀 때까지 감정적으로 압박했다. 이와 달리 스탈린은 '감정 게임'을 하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위협의 힘을 믿었다. 스탈린은 소련의 애국주의에 호소하기는 했으나 그의 호소에는 인간 생애를 바라보는 스탈린의 냉철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다름 아닌 인간은 폭력적 위협에 가장 잘 반응한다는 적나라한 진실이 스탈린의 호소 아래에 놓여 있었다. - p.466 |
1943년 7월 온갖 재난이 히틀러에게 찾아왔으나 그는 재난이 겹친 달의 말미까지 아무런 흔들림 없이 권좌를 지켰다. 그의 운명은 왜 무솔리니와 달랐던가? 한가지 이유는 독일 국민이 동쪽으로부터의 위기를 자국의 존재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소련군이 점령한 독일과 서방 연합군이 점령한 이탈리아를 똑같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스탈린과의 전쟁에서 쉽사리 빠져 나갈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히틀러가 권력을 유지한 이유는 또 있었다. 그는 나치 정권의 권력 구조에서 도움을 받았다. 무솔리니와 달리 히틀러는 국가원수였기에 그를 비판하거나 해임한 군주가 없었다. 이탈리아 파시즘 대평의회와 같은 히틀러에게 책임을 물을 정치적 기구도 없었다. - p.591 |
스탈린은 중간중간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풀었으나 공포를 유발하는 그의 분노도 순간순간 드러나곤 했다. 스탈린은 총참모부의 알렉세이 안토노프 장군에게 "왜 특정 독일 정유공장이 아직도 폭격받지 않았는가?"라고 물으며 이유를 확인했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안토노프 장군이 다리를 떨면서 대답했다. 나는 스탈린이 체제를 통치하는데 활용하는 공포의 단면을 인상적으로 엿보았다. - p.717 |
히틀러가 타인을 비난하는 문화를 구축하긴 했어도, 스탈린이 저지른 개인적 응징에 버금가지는 못했다. 병사와 민간인을 막론해 수많은 독일인이 처형당하기는 했어도, 히틀러는 측근과 동료들에게 죽음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군 지휘관을 제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은퇴, 병가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구데리안은 3월 말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나 6주 동안 요양 휴가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해 2월 두 사람이 격렬한 논쟁을 벌인 이후의 조치였다. 소련군 총사령관이 스탈린을 화나게 했다고 상상해 보라. 요양 휴가를 보내는 것은 스탈린 식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 p.753 |
스탈린이 주코프를 즉시 파괴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다고 해서 주코프가 안전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스탈린은 희생자가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도록 명성을 천천히 훼손한 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니콜라이 부하린을 파괴한 과정을 보면 스탈린의 수법을 알 수 있다. 이 유명한 볼셰비키 혁명가는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이후 결국에는 스탈린에게 살려달라고 청원했다. 스탈린은 그 청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니콜라이 부하린은 1938년 3월 처형되었다. 부하린처럼 주코프도 몇 년에 걸쳐 스탈린의 핍박에 시달렸다. - p.784 |
두 사람 사이의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히틀러와 스탈린은 자신들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수백만명의 사람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동일하다. 두 사람은 이념이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성실하게 순종하는 사람조차 기꺼이 죽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 당신이 그 시절에 있었다면 소련군에 입대해 용감하게 싸운 군인도 특정 민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죽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수많은 동료가 당신 눈앞에서 학대 당하고 죽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당신이 나치독일에서 건실하게 생활했더라도 유대인으로 태어났거나 유대인으로 분류된다면 반드시 죽음의 수용소로 가야 한다. - p.800 |
히틀러와 스탈린이 얼마나 닮았건 또는 달랐건 간에 결과적으로 전쟁의 승자가 스탈린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과연 히틀러보다 스탈린이 더 합리적인 지도자였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물론 히틀러는 많은 부분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스탈린에 비하여 지나치리만큼 방만하게 국가를 운영하여 독일의 힘을 완전히 끌어내지 못했고 본문 내내 언급되는 것처럼 말이 너무 많았다. 또한 아리아 민족만이 최고라는 독선적인 사고는 스탈린 체제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소련 인민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어떤 타협도 거부함으로서 결국 세상 전체를 적으로 돌린 쪽은 히틀러이지 스탈린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수라는 측면에서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41년 6월의 재앙은 명백히 스탈린이 자초한 것이었다. 비록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아슬아슬한 역전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1942년 여름에도 장군들의 조언을 무시하여 또 한번 재앙을 초래했다. 소련의 승리는 단순히 스탈린과 히틀러의 인간적인 차이보다도 소련이 훨씬 더 많은 인구와 자원을 가졌고 전시 동원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더 유리했다는 점, 독일이 결코 누릴 수 없었던 서방의 든든한 지원, 여기에 여러 행운까지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였다. 또한 스탈린이 히틀러에게 이겼다고 해서 그가 역사의 승자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를 가졌음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되었던 그는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먼 나머지 히틀러에게 침공의 빌미를 제공했고 뒤이어 서방이 모처럼 내민 손길 또한 폴란드 문제를 이유로 스스로 걷어차 버림으로서 소련의 고립을 자초했다. 스탈린이 건설한 크고 알흠다운 제국이 자신의 정복욕을 채워주었을지는 몰라도 후계자들에게는 도리어 짐짝이 되었고 엄청난 재정적 부담은 결국 반 세기 뒤 소련의 붕괴에 일조했다.
두 사람에게 가장 큰 공통점이 있다면 한때나마 서방 지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이들을 자기 손바닥 위에 놓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제2차 세계대전도, 냉전도 없었을 것이다. 뮌헨 회담에서 히틀러는 산전수전 겪은 체임벌린을 농락했으며 스탈린은 테헤란과 얄타에서 처칠, 루스벨트를 농락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서방 지도자들이 부당한 위협에 비굴하게 굴복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카리스마에 매료되었고 뒤늦게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는 점이다. 하물며 트럼프와 같은 3류 협잡꾼이 아니라 서방 진영에서는 최고의 정치인들이었고 머리가 꽃밭이 아니라 속이 검기로는 누구 못지 않은 능구렁이들이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진흙탕 정치라고 해도 민주주의는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기 마련이며, 목숨이 판돈인 데스 게임을 통해 그 자리까지 올라온 독재자의 상대가 되기는 역부족인지도 모르겠다.
처칠과 클라크-커(모스크바 주재 영국대사)는 모두 대단한 자의식의 소유자였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타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거기다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자만했다. 그들은 '초라한 배경'에서 성장한 스탈린을 상대적으로 경멸했고 그들의 비대한 자의식은 스탈린을 향한 경멸을 증폭시켰다. 처칠이 보기에 스탈린은 "보잘 것 없는 농민"이었고 클라크-커가 보기에 "아주 좋아하는 주머니쥐이지만 나를 눈여거보다가 내가 나쁜 짓을 할 때는 나의 엉덩이를 물 수 있는" 존재였다. - p.475 |
괴벨스는 나치 엘리트 중 가장 지적이고 가장 냉소적이며 감정에 쉽게 휘말리지 않았다. 1926년 바이에른 북부의 밤베르크 지역에서 열린 나치당대회에서 괴벨스는 히틀러의 정책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자신의 일기에 "낙담해서 히틀러를 더는 신뢰할 수 없다."라고 썼다. 그러나 두 달 후 히틀러가 괴벨스에게 베를린으로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뜻을 전한 뒤 괴벨스는 히틀러를 향한 신뢰를 회복했다. "아돌프 히틀러 당신은 위대하면서 동시에 단순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 p.538 |
스탈린은 루스벨트, 처칠과 개인적인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데 신경쓰지 않았다. 앞서 보았듯이 스탈린의 이런 성격은 처칠처럼 감정이 풍부한 사람의 눈에는 스탈린을 수수께끼같은 존재처럼 보이게 했다. 처칠은 "두 명의 스탈린이 있다"라고 생각했다. "첫번째 편지는 나와 좋은 관계를 맺기를 간절히 원하는 스탈린이 보냈고 두번째 편지는 주변의 영향을 받은 스탈린이 보낸 것이다. 스탈린은 권력이 막강한 '조언자들'이 그의 뒤에서 행사하는 어두운 영향력을 감내하는 중이다." 처칠의 판단은 대단히 잘못되었다. 그러나 그가 왜 그런 실수를 범했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처칠은 스탈린과 다르게 유혈이 낭자한 숙청을 주도하지도, 수백만명이 굶어 죽는 기아 또는 스탈린이 저지른 범죄를 시행한 적도 없었다. 스탈린의 배후에서 '어두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따위는 없었다. 바로 스탈린이 그 주범이었다. - p.556 |
본인의 매력을 과신한 루스벨트의 오만은 스탈린의 뛰어난 협상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스탈린은 테헤란 회담에서 본인이 원했던 것을 거의 다 얻어내며 소련으로 돌아갔다. 루스벨트는 테헤란 회담 초반부터 스탈린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루스벨트와 미국 대표단은 테헤란의 소련 대사관으로 찾아와 체류하라는 스탈린의 제안을 선뜻 수용했다. 루스벨트는 스탈린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했다. 그러나 이런 결정으로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미국 대표단은 소련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소련 측은 루스벨트의 사적인 대화 전부를 도청했다. - p.614 |
자신의 외양은 물론, 내면 깊숙한 영혼마저 위장하며 평생을 살아온 스탈린은 모든 사람에게서 장애와 위협을 발견하고자 감상, 연민, 진정성을 모두 없앴다. 그는 전략, 의심, 고집의 대가였다. 원수로 위장한 공산주의자인 그는 간교한 속임수를 좋아하는 독재자이고 순진한 미소를 드러내는 정복자이며, 기만의 명수였다. 그러나 그의 열정이 너무도 강렬한 나머지 그의 속셈은 사악한 매력과 함께 가끔씩 그의 갑옷을 뚫고 나왔다. - p.720 |
스탈린의 어투는 흥분한 아이를 달래는 부모의 말투와 같았다. 또한 이 편지로 인해 스탈린, 그리고 영국과 미국의 지도자 사이의 차이가 확인히 부각되었다. 루스벨스와 처칠은 스탈린과의 관계에서 위험한 패턴을 답습했다. 두 사람은 스탈린이 자신들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면 거래가 쉬워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스탈린은 두 지도자와의 감정적 교류는 신경쓰지 않았다. 관계의 '비대칭성' 덕분에 스탈린을 처칠을 질책할 수 있었다. 스탈린의 위엄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그는 교신할 때마다 감정에 치우친 적이 거의 없었으며 자신의 불쾌함을 철저한 계산에 따라 표현하여 자신의 약점은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 p.750 |
훗날 드골은 스탈린에게서 느낀 인상을 회고록에 남겼다. 그는 "스탈린은 권력욕에 사로잡혔다."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외양은 물론, 내면 깊숙한 영혼맞저 위장하며 평생을 살아온 스탈린은 모든 사람에게서 장애와 위협을 발견하고자 감상, 연민, 진정성을 모두 없앴다. 그는 전략, 의심, 고집의 대가였다. 대원수로 위장한 공산주의자인 그는 간교한 속임수를 좋아하는 독재자이고 순진한 미소를 드러내는 정복자이며, 기만의 명수였다. 그러나 그의 열정이 너무도 강렬한 나머지 그의 속셈은 사악한 매력과 함께 가끔씩 그의 갑옷을 뚫고 나왔다." - p.720 |
예전에 소설 대망이 한창 유행할 때 유명한 문구가 있었다. 센코쿠 3영걸인 오다 노부나가를 가리켜 "울지 않는 새는 죽인다"라고 한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새를 울게 만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지 않더라도 울 때까지 기다린다."라던가. 물론 이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200여년 뒤인 19세기의 어느 작가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 당사자들이 정말로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세 사람의 캐릭터성을 각인시키는데 일조했다. 스탈린과 히틀러는 어떨까. 스탈린은 오다 노부나가만큼이나 냉혹하고 무자비한 인물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울지 않아도 물론 죽이지만 너무 울어도 인민의 적"이라는 식. 아랫사람들로서는 변화무쌍한 그의 심기를 끊임없이 살피면서 비위를 조금만 거슬리거나 편집광적인 의심을 자극해도 본인 목숨은 물론, 가족과 친척들까지 시베리아로 갈 판이니 노부나가의 변덕 따위는 기껏해야 어린 아이 칭얼거림이랄까. 하물며 아케치 미쓰히데가 소련판 혼노지 변을 일으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반면, 타고난 자뻑 기질에 스스로를 불세출의 천재로 여겼던 히틀러는 "새가 울건 말건 신경끄고 내가 울면 된다"라고 할 듯.
그러고보니 올해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더라. 시중에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서적들이 줄줄이 나오지 않을까 밀덕으로서 벌써부터 기대가 앞선다. 나도 하반기에 신작 도서를 준비 중이지만 말이다. 시중에는 이안 커셔의 저서를 비롯하여 히틀러와 스탈린 평전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은 동시대를 살면서 닮은 꼴이자 최강의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을 흥미롭게 비교하고 있다. 한 사람은 한 때 놀라운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패배하여 비참하게 자살했고 또 한 사람은 승리자가 되어 천수를 누렸지만 대다수 인민들 입장에서는 그가 숨쉬는 내내 지옥같은 삶을 보내야 했다. 그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저자의 뛰어난 필력 덕분에 800여 페이지의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읽는 내내 손을 뗄 수 없었다. 올해 최고의 서적 중 하나라고 감히 손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