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이산의 책 46
사타케 야스히코 지음, 권인용 옮김 / 이산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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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의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
- 사마천의 [사기] 속의 유방(劉邦)과 변증법적 유물론 ‘재건’을 위한 슬라보예 지젝의 ‘시차적 관점’


두 개의 양립 불가능한 현상을 동일한 차원에 배치하는 허상은 칸트가 ‘초월론적 가상’이라고 부른 것, 상호번역이 불가능하며, 어떠한 종합이나 매개도 불가능한 두 지점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일종의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현상들에 대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가상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두 층위 간에는 어떠한 관계도 성립하지 않으며 어떠한 공유된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일치한다 할지라도 말하자면 그것들은 뫼비우스 띠의 상반된 양면에 있는 셈이다. 

                                                                                - 슬라보예 지젝, [시차적 관점] 중.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는 사마천(司馬遷)이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업무를 이어받아 전한(前漢) 왕조 중엽인 서기전 1세기 초 무렵에 완성한 중국 통사(通史)인데, 편년체(編年體)가 아닌 기전체(紀傳體) 서술의 시초이다. 즉, 편년체로 불리는 대부분의 통사들의 연대기적 사건 나열과는 달리 ‘본기(本紀)’,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列傳)’ 등으로 역사서술을 구분하여 씨실과 날실을 엮듯 사건과 인물들을 교차하여 다각적인 역사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 역사에서 고려시대에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또한 사마천 [사기]의 기전체를 그대로 본떠 그 당시까지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물론, 역사를 보는 시각은 많이 다르지만.

‘본기’는 ‘오제(五帝)’로부터 시작하여 사마천 당시의 한무제 까지 황제의 역사를 편년체 식으로 다루고 있고, ‘표(表)’는 말 그대로 역사 연표이며, ‘서(書)’는 예(禮), 악(樂), 봉선의식 등의 문화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독특한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서 ‘세가(世家)’는 제후들의 역사, ‘열전(列傳)’은 천하에 명성있는 개인들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열전’의 마지막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는 글쓴이의 역사관과 심경 등을 나타내고 있는데, 궁형을 받은 상황에서 부친의 업을 이어 [사기]를 서술한 사마천 본인의 심경은 물론, 부친 사마담이 못다 이룬 역사서술을 완성한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자기 이야기인 ‘自序’에서 ‘태사공(太史公)’은 사마천 자신이라기 보다는 부친 사마담이다.

[사기]는 역사서로서 당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사기]에서 가장 주요한 대목이 바로 한(漢)나라의 창건과정을 다루는 ‘초한전쟁(楚漢戰爭)’의 기간인 바, 한나라 시조인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다룬 ‘고조본기’, ‘항우본기’의 기록이 그 부분이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초한지(楚漢誌)]의 기본 뼈대이다.
중국 역사에서 ‘서민황제’는 공식적으로 두 명이 있다. 유방은 풍읍 패현 출신의 건달에서 통일중국 황제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인 바, 중국 역사 최초 서민황제이다. 두 번째로 약 1세기 이상 지난 후 명(明)나라를 건국한 주원장(朱元璋)은 ‘서민황제 2호’로서 유방과 같은 패현 출신이나 건달 우두머리격이었던 유방의 ‘가문’에 비해 다 쓰러져가는 농가의 자식이었으므로 ‘빈민황제’에 더 가깝기는 하다. 당나라 말기 후량을 건국하여 장안 일대를 잠시 평정했던 주온 또는 주전충도 서민 출신이기는 하나 황제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고, 또다른 ‘황제’ 모택동도 서민 출신 아니냐고 하는 시각도 있기는 하다.

어쨌든, [사기]는 후한(後漢) 시대 반고(班固)가 쓴 [한서(漢書)]로 계승되는 한나라 정권의 역사서로서 유방의 건국과 창업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는 시각으로 쓰여진 면이 농후하다. 아니, 그렇게 역사 속에서 수정되어 왔을 것이다. 관변 언론의 이러한 역사서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서]의 경우 [사기]에 없는 내용은 없고 한나라 고조 유방에 관한 한 철저하게 미화하고 있는 반면, [사기]의 경우에는 고조본기, 항우본기, 뿐만 아니라 동시대 제후들의 세가 또는 열전을 보면 모순되는 서술이 자주 보임으로 인해서 정권 미화의 시대적 압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한다.

하나의 예로, 유방이 항우를 죽이고 초한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해하 또는 진하’의 결전 후 제왕(齊王) 한신의 군대를 접수한 사건을 보자. ‘고조본기’에서는 ‘해하 또는 진하’의 결전으로 “참수가 8만 급, 드디어 대략 초 지방을 평정했다”고 기록하면서 초군이 사방으로 흩어진 후 유방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패잔병을 추격하여 노(魯)나라 지방에 이른 후 정도(定陶)라는 곳으로 돌아와 한신의 지휘권을 박탈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조본기’는 “정도로 돌아와 말을 달려 제왕(한신)의 성에 들어가 그 군을 빼앗았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한신의 일대기인 ‘회음후열전’에는 “항우가 깨진 뒤, 고조는 기습하여 제왕의 군을 빼앗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누구라도 후자인 ‘회음후열전’이 더욱 사실에 가까움을 짐작할 수 있다.

한신(韓信)이 누구인가. 항우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여 유방군에 가담했으나 유방 또한 신임을 주지 않음에 실망하여 도망쳤지만 유방 정권 제1 공신 소하의 인정을 받아 유방군 지휘권을 얻어 옛 주나라 본지라 하는 삼진은 물론 제나라까지 평정함으로써 바야흐로 유방, 항우와 함께 천하를 삼분할 수도 있었던 인물 아니었던가. 또한 한신군은 신병들을 모집하여 강군으로 양성 후 여러 전쟁에서 참패하여 자신의 군영으로 도망친 유방에게 그 훈련된 병력을 주고 자신은 또 다시 신병들을 이끌고 출전함으로써 유방군의 병력에 있어 ‘마르지 않는 샘’과도 같았다. 이러한 한신의 참모 괴통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한신에게 권하였음에도 정치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실무적인 인물이었던 한신은 이를 거절하고 유방을 위해 혼신을 다하여 공을 세웠고, 결국 제왕에서 회음후로, 즉 왕에서 제후로 격하되다가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명언을 남긴 채 반역죄로 죽임을 당한 인물이었다. 항우를 제압한 유방에게는 최대의 적수가 아닐 수 없었으므로 유방은 필연적으로 한신을 제거할 수 밖에 없었으며 애초부터 계획적으로 한신의 병력을 접수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기]는 ‘고조본기’가 아니라 ‘회음후열전’을 통해 유방의 한신 ‘기습작전’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식과 서술에서 유물변증법과 ‘시차(視差,Parallax)’의 관계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시차(視差,Parallax)’란 두 층위 사이에 어떠한 공통언어나 공유된 기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고차원적인 종합을 향해 변증법적으로 매개/지양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율배반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시차적 간극이라는 개념은 결코 변증법에 되돌릴 수 없는 장애물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그 전복적 핵심을 간파할 수 있게 만드는 열쇠를 제시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러한 시차적 간극을 적절히 이론화하는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을 재건하기 위해 필수적인 첫 단계이다. 

                                                                                - 슬라보예 지젝, [시차적 관점] 중.

구 유고슬라비아 출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현대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재건하기 위하여 기존 헤겔식의 정반합적 구조를 해체하고 애초부터 다른 기반에 입각한 시각들의 끊임없는 긴장과 그 속에서의 관계정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시각을 전제로 하여 철학, 과학, 정치 분야에서 각 사안들을 다루고 있는 바, 변증법적 유물론의 도식화를 철저히 배제한다. 슬라보예 지젝에게 이전 마르크스주의 도식화는 문학과 영화, 뮤지컬 등의 구체적인 분야에서 전반적으로 해체되며 항상 새롭게 분석되어야 한다.

역사서로서 [사기]를 보는 유물론적 해석은 이렇다. 본기와 세가, 열전을 넘나드는 서술의 모순과 불일치는 사마천의 원래 의도 여부와는 무관하게 [사기]가 하늘이 내린 한나라 정권의 합리화의 도구도 아니고 확인불가한 역사적 사실 그대로의 기술도 아닌, 춘추전국시대와 진(秦)나라를 거쳐 동양적 봉건양식을 넘은 중앙집권적 군주제 확립이라는 ‘경제발전단계’의 필연성을 토대로 하여 역사 속에서 내재된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는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방법론에 관하여 지젝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에 관하여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방법론은 사건을 실제로 그러했던 바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혁명의 현실과 그 마지막 결과에서 배반된 숨겨진 잠재력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요점은… 어떻게 이렇게 배반된 급진적 해방의 잠재력들이 역사적 유령들로서 끈질기게 ‘존속’되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혁명적 기억을 일깨워 그 실현을 요구함으로써 이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또한 이 모든 과거의 유령들을 구원하도록(영면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 슬라보예 지젝, [시차적 관점] 중.

다시 [사기]의 초한전쟁으로 돌아가자. 유방과 항우로 대표되는 영웅들의 천하쟁패는 이후 중국의 여러 역사속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후한 말기의 황건농민반란을 거쳐 위촉오(魏蜀吳) 삼국전쟁, 위진(魏晉) 이후 5호16국은 이민족의 경쟁을 통해 중국문화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한 점, 수나라 말기의 군웅전쟁, 당나라 이후 5대10국은 분열왕조 중 권력유지가 최상의 문화가치가 되었던 최대의 암흑기였던 점, 한족 재부흥의 송나라 건국과 원나라의 침입, 원나라 말기 홍건농민반란 및 빈민혁명가 주원장의 명나라 건국과 민중배반 등의 역사는 진(秦) 말기 유방, 항우 초한전쟁에 관한 [사기]의 모순된 기술들 속에 대략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남아 있는 기술상의 모순은 바로, [사기]를 유물변증법적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주요한 조건이고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관점정립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요소이며, 이로 인해 사마천의 역사의식은 현대에 이르러 한껏 빛을 발하지 않겠는가.


***

1. [유방(劉邦)], 사타케 야스히코 지음, 권인용 옮김, <이산>, 2004.
: 사마천 [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한고조 유방의 일대기를 서술한 일본 문학자 사타케 야스히코의 저서로 [사기]에 자주 보이는 서술상 모순은 사마천이 반고 등과 같은 관변 역사학자를 초월한 뛰어난 역사학자임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한고조 유방의 생애는 물론, [사기] 뿐만 아니라 역사서 속에 내재한 역사의 생생한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시각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2.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마티>, 2009.
: ‘현대 철학이 처한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는 지젝의 도전’이라는 슬로건으로 도식주의에 빠진 변증법적 유물론을 재건하려는 구 유고슬라비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지적 도발이 담겨 있는 저서라고 볼 수는 있으나 솔직히 너무 어려워서 ‘철학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접하기에는 무리가 많이 따르는 책이다. 기존 헤겔식 정반합 도식을 벗어나 ‘시차적 관점’을 통해 ‘상호번역이 불가능하며 어떠한 종합이나 매개도 불가능한 두 지점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현상들에 대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가상’과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 대략의 내용인데, 이러한 시차적 간극을 ‘적절히 이론화’하기 위하여 철학, 과학, 정치 분야에서 각 사안들을 지루하고도 최대한 어렵게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따른다면, 결국 시차적 간극을 최대한으로 좁히는 것이 변증법적 유뮬론자들의 최대강령이 될지도 모른다. 영화나 뮤지컬, 문학 등의 개입도 많이 언급한 철학서이기는 하나 영화 매트릭스의 철학적 관점을 논한 [매트릭스로 철학하기]가 그나마 읽기 편하다.

3. [사기], 사마천 지음, 김진연 편역, <서해문집>, 2002.
: 총 3권에 걸쳐 중국 통사를 뼈대로 하여 [사기]의 ‘표’와 ‘서’를 제외한 ‘본기’, ‘세가’, ‘열전’에 나온인물들을 엮어 서술하고 있다. 사마천의 역사의식, [사기] 관련 고사성어 등을 잘 정리해 놓은 책.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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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파업론 - 풀무질신서 4
로자 룩셈부르크 지음 / 풀무질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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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와 ‘대중파업론’
- [대중파업론]을 중심으로 본 [반자본주의 선언], [반자본주의]

"대중파업은, 러시아 혁명에서 나타났듯이,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효과를 높이려고 머리에서 쥐어짜 낸 교묘한 방법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운동방식이며, 혁명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현상형태이다… 대중파업은 몇 년 동안, 아마도 몇 십 년 동안 지속된 계급투쟁의 모든 시기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 로자 룩셈부르크, [대중파업론] 중.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계급의 경제투쟁과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정치투쟁 간에는 예나 지금이나 괴리가 있습니다. 물론 유물변증법의 사유방식에 따라 정식화해 버리면 양자는 변증법적 관계로서 상호대립하지만 상호침투하면서 결국 통일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관념의 영역, 철학적 테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철학은 언제나 새롭게 ‘실천’되어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반자본주의’의 기치를 내건 우리의 노동계급 운동은 현재 경제투쟁에 더욱 침잠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던 이 땅 최초의 ‘노동계급 정치세력화’, ‘사회주의 이상 실현’이 일단의 실패를 겪으며 진보정치의 질적 전화가 좀처럼 쉽지 않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어둡게 드리운 와중에 자본가와 그들의 정권은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협박하고 있습니다. 더욱더 일만 열심히 하라고요.
 

한편으로는 미국 주도의 세계화와 그에 대한 ‘저항의 세계화’로서 ‘반세계화’ 운동이 진정 세계적으로 활발한 듯 합니다. 급진적 맑시스트들은 이 운동 속에서 사회주의적 경향을 옹호하면서 시장경제가 판치는 세상에서 분배와 계획의 세계정치를 기획함으로써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초보적인 수준에서는 사이먼 토미의 [반자본주의]가 있고, 좀더 좌익적으로는 앨릭스 캘리니코스의 [반자본주의 선언]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한 세계사회포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팻 데바인의 ‘민주적 참여계획 사회주의(DPPS)’ 등을 예로 들면서 전세계적 민중적 코뮌 지도부 같은 것을 구상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반자본주의’ 운동이 활성화되는 것, 더군다나 사회주의적 기획으로 이 운동을 이끌려는 노력이 지속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땅 노동계급은 아직 미래를 기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후퇴가 원인일 것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06년의 저작 [대중파업론]에서 (사회민주주의)당의 정치투쟁과 그 부분으로서의 경제투쟁간 상호관계를 분석하면서 이를 잇는 가교로서 ‘대중파업’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운동의 발전이란 최초의 경제적 단계가 생략된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시위의 모든 단계를 관통하는 빠른 속도와 파업이 전진하면서 다다르는 절정 속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정치투쟁의 모든 활발한 공격과 승리는 경제투쟁에 강력한 자극을 준다
자본에 맞선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이 휴지기를 맞이할 때마다 노동자들을 지탱해 준다. 말하자면,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에 언제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노동자계급 역량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이다…
한마디로 경제투쟁은 운동을 하나의 정치적 촛점에서 다른 촛점으로 나아가게 하는 장치이다. 정치투쟁은 경제투쟁의 토양을 주기적으로 기름지게 한다. 여기서 원인과 결과는 끊임없이 자리를 바꾼다… 이 두 요소의 통일이 바로 대중파업인 것이다."

-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책.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자는 운동의 미래를 대변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굳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쟁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경제투쟁을 넘어 정치투쟁의 장을 반드시 열어야 합니다. 
 

현재의 ‘반세계화’, ‘반자본주의’ 운동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 또한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일 것이라는 생각을 당최 버릴 수가 없습니다.  

 ‘1999년 시애틀’과 같은 반세계화 시위, 우리의 대규모 촛불시위 등도 넓게는 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대중운동입니다. 더 나은 다른 세상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중운동이 반드시 노동계급의 ‘대중파업’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히 노동계급 정치세력화는 폐기할 수 없는 전략일 것입니다. 
 

"노동조합 투쟁은 노동운동의 직접적인 이해를 포함하지만 사회민주주의적인 투쟁은 미래의 이해를 포함한다
노동조합 활동의 중요성과 절대적인 필연성을 강조하지만 이러한 활동의 한계와 그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두는 사회민주주의의 총체적 진리에서 일상적 투쟁의 적극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노동조합의 부분적 진리가 나온다.   

노동조합 운동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불합리한 몇몇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환상 속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에서 승리해 온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의식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 속에서 노동조합 운동은 사회민주주의의 한 부분이다."  

-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책.

 

***

 

1. [대중파업론], 로자 룩셈부르크 지음,  최규진 옮김, <풀무질>, 1995.
: 1906년의 저자는 노동계급의 파업을 경제투쟁에 한정지으려는 선진 자본주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의식과 운동의 미래를 포함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정치투쟁 및 당운동을 별개로 구분하는 인식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계급투쟁의 모든 시기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개념이자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통일된 현상형태로서 대중파업을 정의하고 있다. 당시 선진적이었던 독일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경제투쟁을 우선하는 후진적인 인식에 비해 후진적이었던 러시아 노동계급의 대중파업의 역사적 역할을 고찰하면서 혁명의 시기에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경제투쟁과 계급투쟁의 미래를 담보하는 (사회민주주의)당운동의 공동행동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양자를 이어주는 중요한 장치로서 대중파업을 강조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표 저작이다.
 

2. [반자본주의], 사이먼 토미 지음,  정해영 옮김, <유토피아>, 2007.
: 영국의 정치이론가인 사이먼 토미가 1999년 시애틀 사건 등으로부터 촉발된 반세계화 운동을 초보자(beginner)를 대상으로 소개한 책이다.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시장독재, 즉 시장만이 존재하는 지구 엘리트들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기초적인 소개와 반세계화 운동을 질적으로 변화시킨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의 역사적 의의에 대하여 서술하고, 개혁주의에서부터 반자본주의, 멕시코의 사파티즘까지 아우르는 반세계화 운동, 이들 운동들의 운동을 소개 및 분석하고 있으며, 미국이 중심인 세계화 흐름에 대한 저항으로서, 시장경제에게 빼앗긴 세계정치의 복원을 기원하면서 이 운동들의 운동을 정리하고 있다. 지구 엘리트들의 세계경제포럼(WEF)에 대항한 세계사회포럼(WSF)의 중요성, 권력쟁취를 위한 종적인 다수의 정치보다는 인터넷 등의 횡적인 소수의 정치 또는 네트워크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면서 현재 하나의 경향으로 통일되지 않은 반자본주의 운동의 불확실성 자체가 운동의 미래와 성공을 방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3. [반자본주의 선언], 앨릭스 캘리니코스 지음,  정성진/정진상 옮김, <책갈피>, 2003.
: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이자 유명한 트로츠키주의자인 저자는 1999년 시애틀 사건 이후 질적으로 촉발된 반세계화 운동들의 다양한 흐름과 전망을 분석하면서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의 이념을 준거점으로 하여 이들 운동을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정식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공산당 선언]은 맑스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비판 중 가장 유명한 정식화로서, 작금의 반자본주의 운동은 다시 이러한 비판을 이론과 실천 양자에서 다시금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맑시즘의 입장에서 사회주의적 반자본주의를 옹호하며 지구를 망치는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부르주아적, 지역주의적, 개량주의적, 자율주의적, 사회주의적으로 다양한 전략들을 소개하고 다른 세계의 구상으로서 팻 데바인의 민주적 계획 모델을 조심스레 제시하고 있는 바, 저자의 이와 같은 사상적 경향은 경제만이 판을 치고 있는 세계화 공간에서 분배와 계획의 틀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감으로써 더 나은 세계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다. 
 

4. [역사의 복수], 앨릭스 캘리니코스 지음,  김택현 옮김, <백의>, 1993.
: 가장 강력한 서기장의 보복보다 역사의 보복이 더 무섭다고 한 레온 트로츠키를 인용하면서 저자는 동유럽을 포함한 이른바 공산주의의 몰락이 결국 국가자본주의에 불과한 스탈린주의의 몰락에 불과하며 시장만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라는 고전 맑시즘을 옹호하고 있다. 공산진영의 몰락은 좌파의 위기가 아닌 사회주의를 마침내 스탈린주의의 악몽으로부터 해방시킬 기회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과 근거를 담고 있는 학술적 논문으로서 독서가 그리 용이하지는 않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5. [좌익 공산주의], 오세철 엮음,  <빛나는전망>, 2008.
: 현재 독자적인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을 주장하고 있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운영위원장인 오세철 교수가 혁명적 공산주의 입장들을 엮어낸 책이다. 혁명적 공산주의 그룹인 국제공산주의흐름(ICC) 등의 이념과 강령 등을 소개하면서, 레닌 말년의 팜플렛인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은 유아적 무질서의 오역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함께 스탈린주의 뿐만 아니라, 현존 사회주의 체제 전체를 개량으로 해석하고 진정한 좌익 공산주의의 세계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혁명적좌익 공산주의의 현재 흐름 및 입장을 일별해볼 수 있는 책이다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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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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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대항하라!

- 경제학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자유무역이라는 신화와 자본주의의 은폐된 역사(The Myth of Free Trade and the Secret History of Capitalism)

 

 


‘시장에 대항하라’는 말이 과격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장에 대항하는 것은 기업가들이 항상 하는 일이다. 물론 기업가들은 결국에는 시장에 의해 심판 받는다. 하지만 기업가들, 특히 성공한 기업가들은 시장의 힘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회사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시장의 흐름을 거스를 필요가 있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이 진출하고자 하는 새로운 부문에 세운 자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본다. 기존 회사에서 나온 이익으로 그 손실을 메우는 등의 방법을 통해 말이다. 노키아는 벌목, 고무장화,그리고 전선 사업에서 번 돈으로 17년에 걸쳐 전자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삼성은 직물과 제당 사업에서 번 돈으로 10년이 넘도록 전자 사업에 투자했다. 이들이 만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권하는 것처럼 시장의 신호에 충실했더라면, 노키아는 아직도 나무나 베고 있고, 삼성은 여전히 수입된 사탕수수나 정제하고 있을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항하여 보다 어렵고 좀 더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부문에 진입해야 한다…

요컨대 신자유주의는 경제 발전을 어렵게 만들고,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능력의 획득을 까다롭게 하는 것이다.

-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에필로그 중.


 

일반적으로 사마리아인들은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오래된 인식이었다고 하는데요, 성경은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한 한 남자가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는 사건을 인용하면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인이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나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 장하준은 자신의 저서에 성경의 이야기를 패러디하여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습니다

 

초국적 자본의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전세계적으로 경계를 허무는 자유무역을 통해 자본의 무한한 이윤증식 운동을 기획하고 보장한다는 점에서 현재 자본주의 경제학의 주류인데요, 체급이 다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무한 타이틀매치를 조장하고 이를 냉정하게 지켜보면서 선진국과 그 배후에 있는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충실히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마리아인과 닮았습니다. 이번 17대 대선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부르짖는 착한 신자유주의자가 하나 불쑥 나타나서 130만표 이상을 얻기도 했습니다만, 이는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노동유연성을 지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상과 화해할 수 없는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자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나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도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신자유주의의 위선을 비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은 신자유주의의 해악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 신자유주의자들을 사마리아인들로, 그것도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선진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자유무역을 시행한 적도 없으면서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유무역만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교하고 다니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를 주도하는 사악한 삼총사 IMF, 세계은행, WTO를 들고 있습니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1997년말 이후 우리 사회는 대대적인 신자유주의적인 재편이 진행되었는데요, IMF는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제도개편과 구조조정을 강력한 조건으로 한 구제금융정책을 성공적으로 시행하였고, 급기야 지금의 남한은 한미FTA라는 미국과의 급진적인 양자협정 체결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미FTA 체결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하는 노동자들은 이미 지난 10년간의 고된 삶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강고한 현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FTA 체결에 동의하는 것일 테고, 이는 결국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신자유주의의 전세계적 공세의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 남한 사회 구석구석으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운동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명한 경제학자가 펼치는 논쟁의 중심에는 자본이 아니라 시장이 있습니다.

몇 해전 지식의 소매상을 자처하던 유시민은 [경제학 카페]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시장경제도 계획경제다라고 말하면서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였던 구 사회주의경제의 파산 이후 고도 분업사회에 어울리는 경제적 기본질서는 분권적 계획경제인 시장경제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좌파적 케인즈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에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결론은 차치하더라도 시장은 역시 통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유시민의 견해에 동의할 만 합니다

 

장하준 또한 영국이나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 심지어 핀란드까지도 자유무역시장을 믿은 것이 아니라 철저한 보호무역제도 및 조치 등을 통해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으며, 남한의 포철(현재 포스코)이나 삼성도 동일한 방식으로 자본의 이익을 증대하여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짓습니다. 선진국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철저한 보호무역으로 우리 제조업에 투자해야 그들처럼 될 수 있다고.

영국에서 공부한 저명한 경제학자인 그의 눈에도 역시 시장, 철저히 통제되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영기업 또는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 즉, 자연 독점이나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의 경우 정부의 적절한 관리 능력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영화가 이루어지면,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정치적 통제가 가능하던 공적 독점이 비효율적이면서도 통제도 되지 않는 민간 독점으로 대체되어 그 이익이 몇몇 소수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나, 선진국이 되기 이전의 독일이나 일본인들은 당시 선진국 사람들 눈에 게으르고 나태한 민족성을 지닌 사람들로 보였으나 이는 당시 경제발전상황에 따른 현상일 뿐,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 민족성 따위가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유무역 도입 이전 개발도상국들의 부정부패를 문제삼고 있지만, 자유시장 내에 있는 민간자본의 부정부패와 회계조작 또한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 등. 저자는 정치, 사회, 문화의 다방면에서 자유무역시장의 확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유)시장의 확대가 탈이라고 하면서 시장에 대항하고자 하는 저명한 경제학자의 견해에는 분배나 대다수 노동계급의 이익이 끼여들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자유무역시장에 대항하여 제조업 중심의 보호무역조치를 통해 선진국에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사회 내 분배나 노동계급의 이익 쟁취의 문제는 시장에 대한 대항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 계급간 불균형의 폭을 넓히고 사회적 부가 극단적으로 편중되는 현상의 본질은 여전히, 자본생산수단의 소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대다수가 부를 창출하는 사회적 생산자본생산수단은 소수가 지배하는 사적 소유와의 모순 해결이 결국 무엇보다 본질적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시장에 대한 대항을 넘어선 자본의 통제입니다

 

***

 

 

1.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부.키>, 2007.

 

: 저자는 영국 케임브릿지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명한 경제학자로서, 자유무역자유시장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시도는 훌륭해 마지 않습니다. 이는 시장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유시민이나, 체급이 다른 남한과 미국을 같은 경기장에서 싸우도록 하는 신자유주의는 기만이므로 당장 한미FTA를 멈추라고 이야기하는 국제경제학자 우석훈과 비슷한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나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무역시장의 은폐된 역사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기에는 좋은 책인 듯 하여 추천합니다. 

 

2.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02.

 

: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쓴 책입니다. 시장경제는 계획경제이며, 문제가 많기는 해도 현실적으로 분권적 계획경제시장경제 외 다른 유망한 모델이 없으니 잘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원래 실험할 수 없는 사회과학으로서 머릿속에나마 완전한 이상을 전제로 하여 이론을 전개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수요와 공급의 미시경제학이나 성장과 물가, 실업률 등 국가경제 현상들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거시경제학 모두 ceteris paribus(세테리스 파리부스), 즉,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전개되므로 이런 학문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자들을 비난할 지언정 경제학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 [경제대공황과 IMF 신탁통치] ,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지음, <한울>, 1997.

 

: IMF 구제금융의 도래를 앞둔 정세분석을 위한 저서로서, IMF 구제금융을 신탁통치로 규정하면서 당시 상황을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듯 일시적 경제침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인 공황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그 흐름을 주도하는 주구로서 사악한 삼총사 IMF, 세계은행, WTO가 등장하는데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공황에 대한 대응으로서 초국적 자본에 대한 예속성을 떨치고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연합을 통한 공동대응과 정권 퇴진 후 거국적 민중정부 구성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공세와 남한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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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사 서남동양학술총서 25
김한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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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 관한 또 다른 ‘오해’
- 발해, 고구려와 고조선의 제국적 기억

"옛날 시조 추모왕께서 창업하신 터다. 왕은 북부여에서 오셨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따님이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셨는데…"

- [광개토태왕릉비문] 첫머리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 민족의 문화적 반격이 한창입니다. 고대 요동의 주인으로서의 고구려에 대한 재조명으로서 적지않은 연구서들이 발간되고, 무엇보다 TV에서 방영하는 사극들은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제도교육의 국사과목에서도 위 광개토태왕의 위대함은 익히 칭송되어 왔으니 더 말할 나위 없겠습니다. 세계시장에 팔아먹기 위해 판타지화시킨 <태왕사신기>의 인기 또한 우리가 익히 배워온 광개토태왕의 업적에 힘입은 바 클 것이나, 역사적 시각이나 연구와는 무관하게 너무 신화적이라 해서 드라마를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냥 보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신화화시키지는 않았지만, 9할 이상이 픽션인 대조영 또한 그렇겠지요. 발해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너무도 초라해서 저도 대조영을 발해의 시조라는 것 외에는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대조영>이 시작할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요동사]라는 연구서를 집어들었더랬습니다. 서강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요동을 한국의 한(韓)족과 중국의 한(漢)족, 이 양자구도가 아닌 제3의 역사공동체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고대 요동을 지배하고 있던 민족은 예맥계, 동호계, 숙신계라는 계보를 이어가면서 소위 말하는 중원과 한반도가 아닌 요동의 주인으로서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예맥계는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동호계는 거란, 숙신계는 여진으로 각각 대표됩니다. 각자 자신의 역사를 중심의 역사라고 주장하려 하는 제국적 패권주의를 달가워하지 않는 저 개인적 입장에서는 일면 타당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려운 연구서였지만 이해해보려고 기를 쓰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발해의 시조 대조영에 대한 우리 역사의 기록은 보잘 것 없고, 중국인들이 성의없이 갈겨쓴 [구당서], [신당서] 등에 몇 줄이 고작인 상황에서 우리의 대하사극은 말 그대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결국 드라마의 끝은 천하의 중심으로 우뚝선 발해 제국의 건설이겠지요. 발해가 잊혀진 사실 또한 요동사가 3의 역사라는 반증 아닐까 하는 짧은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좀더 몇 백년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제국이 등장하지요. 바로 고구려입니다. 이덕일 소장은 우리 역사계 비주류의 시각에서 역사적 진실을 꾸준히 밝히려고 노력하는 훌륭한 역사학자라고 생각하는데요, 동북공정의 공세에 가만히 있을 지식인이 아니지요. 그래서 한반도와 만주 일부, 더 심하게는 한반도 북부 일대로만 축소되고 있는 고구려를 제국으로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여러 연구서가 있겠지만, 최근에 정리한 책은 바로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입니다. 우선, 일본에서 우리 역사를 연구하고 식민사학의 대장을 먹은 이병도라는 1940년대 쓰레기 역사학자를 철저히 배척하려는 시각에는 완전 동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땅 모든 젊은이들한테 역사적 패배주의를 세뇌시킨 식민사학은 당장 없어져야 옳습니다. 레닌이 말했던가요. 구부러진 막대기를 바로 펴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힘을 사용해서 반대로 구부려야 한다고요. 그래서 레닌에게는 유물변증법이 종교 이상이었겠고요. 이덕일 또한 고구려의 독자적 천하관을 강조하며 제국으로서의 고구려를 우리 앞에 펼쳐놓습니다. 3대 대무신왕에서부터 6대 태조대왕까지의 통치시기에 여러 속국을 거느린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5대 모본왕은 당시 중국의 중원은 아니었지만 북경 부근까지 침공했다는 사실, 내부 귀족세력의 통합을 위해서 정복전쟁이라는 공세적 대외정책을 펼친 광개토태왕, 아버지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광개토태왕릉비를 세운 장수왕이 수도를 한반도내인 평양으로 옮긴 이유는 정복전쟁에도 불구하고 계속 분열하는 국내성 토착 귀족세력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사실 등 책의 부록인 고구려 최대강역도는 펼치자 마자 눈이 확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고구려의 영역은 웬만한 중국왕조의 강역 못지 않게 넓습니다. 제일 먼저 제 아들에게 보여준 이유는 제 가슴이 너무도 뛰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감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천년 이상을 더 올라가면 우리민족의 시조로 추앙되는 단군조선이 있으니까요. 이덕일 소장은 고구려를 정리하기 이전에 고조선을 추적했던 것이지요. 바로 위 책보다 1년 전에 발간한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라는 책입니다. 중국인들이 고조선-엄밀히 말하면 그냥 조선이지요-의 역사는 은나라 왕족이 망명하여 세운 기자조선, 전국시대 연나라 사람이 망명해서 세운 위만조선이 주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더 오랜 옛날 중국의 전설속 오제 중 하나인 헌원씨와 천하를 다투던 동이족의 조상, 치우천왕 시기를 거쳐 단군조선은 역시 독자적 천하관을 가진 제국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입증의 기제는 바로 문화입니다. 화폐와 비파형청동검, 그릇, 그리고 고인돌 등 고조선의 일상용품과 문화적 자취가 발견된 영역은 북경의 바로 옆동네에서부터 내몽골자치치구를 거쳐 북으로는 흑룡강을 경계로 하는 러시아에 접하며 동으로는 하바로프스키까지 펼쳐집니다. 지도로 보면 고구려의 강역과 비슷하거나 좀더 넓습니다. 고조선 영토의 감동이 오히려 고구려로부터 받은 그것보다 더 컸던 이유는 식민사학이 그만큼 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증거겠지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가슴뛰는 기억들은 정말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한때 이랬는데, 지금 작다고 기죽으면 안되겠다, 는 생각도 들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제 아들 앞에 지도를 펴고 막 설명을 할 만합니다. 아들의 눈망울에 이미 요동벌판이 펼쳐지고 있다는 상상 역시 심장을 고동칩니다.

다만, 그 가슴뛰는 기억이, 우리민족이 바로 천하의 중심이라는 또 다른 오해에 기반한 제국적 기억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신자유주의 패권을 휘두르는 현대의 제국인 미국을 몰아낸 후 제국적 기억을 붙잡고 밀어붙이다 보면 나중에 약소국과의 FTA를 찬성하게 될지도 모르고,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는 노동계급 위에 군림하게 되는 진짜 제국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

 

1. [요동사,遼東史], 김한규 저, <문학과지성사>, 2004.
: 중국이나 한국을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역사공동체의 개념으로 보고, 그 상충지대로서의 또 하나의 역사공동체인 요동을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땅따먹기에 익숙한 민족주의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요동은 서로 차지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만, 그곳은 한(韓)족도 한(漢)족도 아닌 그 자체의 민족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온 지역이었다는 것이지요. 고조선, 고구려에 이어 예맥족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발해말갈을 정리하는 부분에서 대조영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악의적으로 서술해온 중국의 역사서에서조차 대조영은 용병에 능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역시 인물은 인물이었나 봅니다.
대조영에 대해 서술한 대표적인 내용 몇 줄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구장(高麗舊將) 조영(祚榮) [삼국유사]
발해말갈(渤海靺鞨) 대조영(大祚榮)은 본래 고려(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 [구당서]/[신당서], <발해말갈전>
무후(측천무후) 때에 고려의 별종 대걸걸중상(大乞乞仲象)은 말갈추장 걸사비우(傑四比羽)와 같이 요동으로 도주하여 고려 고지(故地)를 나누어 왕이 되었다 중상의 아들 조영이 즉위하고 비우의 무리를 아울러 가졌다. [오대사], <고려전>
만세통천 중에 거란 이진충의 손자 만영이 모반하여 영주도독부를 공격하니, 고려별종 대걸걸중상이 말갈 반(反)인 걸사비우와 함께 요동으로 도망하여 살면서 고려의 고지를 나누어 왕 노릇하였다. [오대회요], <발해>
처음 고려가 망한 뒤에 그 별종인 대조영이 말갈 걸사비우와 무리를 모아 동쪽으로 도망하였다. [자치통감], <현종 개원 원년조>
대조영은 용맹하고 용병을 잘해서, 말갈의 무리와 고려의 유민이 차츰 그에게 귀부하였다. [구당서], <발해말갈전>

 

2.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이덕일 외 공저, <역사의아침>, 2007.
: 이덕일 소장은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이병도 무리의 식민사관에 전쟁을 선포했기에 멋진 역사학자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당쟁으로 망했다고 이해되어온 조선사회로부터 당쟁의 사대부 정당정치, 이념정치적 성격을 조명하기 위한 노력도 그랬고, 그런 건전한 정당정치를 왜곡시킨 송시열이라는 거목을 통렬하게 씹은 것도 그러하며, 더 크게 고조선과 고구려가 독자적 제국이었음을 밝혀내는 방대한 작업에 일개 노동자인 저의 입장에서는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3.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이덕일 외 공저, <역사의아침>, 2006.
: 고구려를 제국으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조선의 실체를 밝힐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또 다른 제국 고조선의 기억을 일깨우는 작업은 더 어려웠을 텐데요. 저자들이 발로 뛰어다닌 현장 중심으로 고조선은 고구려 못지 않은 대제국으로 거듭납니다. 많은 사진들과 함께 읽는 이야기는 국사교과서를 거꾸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충분하더군요.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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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전집 - 전6권 김소진 문학전집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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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90년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 故김소진, 추모10주기 기념, [소진의 기억]

 

"이데올로기(사상)의 중재로 문학작품은 사회형성의 역사와 관계를 가지며, 또한 작가의 개인적 삶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고유한 지위에 의해서도 그러한 관계를 가지며, 결국 특수한 문학작품은 문학연구의 본질적인 수단을 전달하는 문학생산의 역사의 적어도 한 부분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할 따름이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1966.

 프랑스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마슈레는 철학과 과학의 관계를 정립한 1960년대 루이 알튀세 이론의 영향을 받아 문학의 '과학적 비평이론'을 정립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 문학 또한 '총체성'을 지향하는 철학과는 다르기에 총체적 역사를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회, 역사적 조건을 반드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견지하고 19세기 서구에서 '사실주의' 혹은 '리얼리즘'이 등장했는데요, 문학적 '리얼리즘'의 성과는 분명, 문학과 예술의 '편협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시대를 좀더 총체적, 비판적으로 그려내는 '문학적 기술'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오래전, 문학에 관심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할 때면, 항상 떠올리던 이름이 있었습니다. 바로 1997년에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소설가 김소진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그의 첫 단편소설집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선물하면서 그 속지에 이렇게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1970년대, 황석영,
1980년대, 방현석이 있었다면,
1990년대에는 김소진이 있습니다... 라고요.

[객지]로 유명한 황석영, 1980년대 노동현장소설가 방현석, 그리고 김소진... 나름대로 연대별 대표작가를 추천한 기준은 단연 '리얼리즘'이었습니다. 

1980년대를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착각하던 후일담류 소설들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분단과 착취, 성적 억압의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극복하고자 했던 수 많은 문학적 '아버지'의 관념적 이미지를 바로 '비루하기 그지없는' 우리 옆자리의 실재로서 구체화시켰던 김소진의 '리얼리티'는 오랜 세월 우리역사와 함께해 왔던 우리 민중 주변의 이야기 자체였습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내내 길음동과 미아리 산동네에서 자라난 작가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들, 역사와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난 도시빈민의 이야기는 바로 저의 이야기였기에 한때 주접스레 단편소설 몇 편을 쓰지않고는 못베기게 했던, 우리시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김소진을 오랜만에 기억해 봅니다.

***

1. [소진의 기억], 김소진의 지인들 엮음, <문학동네>, 2007.
: 1990년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김소진 작고 10주기를 맞아 고인의 문우들이 주축되어 동료작가들로부터 글을 받아 묶어낸 책입니다. 1997년에 군에서 김소진의 죽음을 신문을 통해 전해들은 후 얼마간 꿈에 많이도 등장하더군요. 10년 후 지금 신문을 통해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몇 번 꿈에 나타난 걸 보니 아직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제게 조금은 남아있나 봅니다. 대부분의 글들은 작가들이 자기들끼리 지닌 기억이나 회한 등을 나누는 이야기들이라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거지로 추모글을 쓴 것처럼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그 중 볼만한 것들은 오랜만에 읽어보는 김소진에 대한 비평 몇 편이었고요, 무엇보다 읽는 내내 즐거웠던 것은 한때 그를 동경했던 지난 시절을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2. [열린사회와 그 적들], 김소진 창작집, <솔>, 1993.
: 김소진 최초 단편소설집입니다. 199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작 [쥐잡기]부터 미발표작까지 총 11편이 수록되어 있고요, 표제작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반동의 대표텍스트인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저서를 패러디하여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1990년대의 민주화운동권 세력이 군부독재 못지않게 배제했던 이 사회 최하층 민중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김소진이 낸 창작집 중 단연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3. [고아떤 뺑덕어멈], <솔>, 1995. / [자전거도둑], <강>, 1996. /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강>, 1997. / [장석조네 사람들], <고려원>, 1995. / [양파], <세계사>, 1996.
: 이상의 책들이 제가 군에서 몰래 읽었던 김소진 소설들이었는데요, 지금 제게 없는 걸 보니 아는 사람들한테 이미 다 선물한 듯 싶습니다. 장편소설 [양파] 빼고 나머지 책들은 다 추천하고 싶습니다만, 단편소설집 중 [자전거도둑], 연작장편인 [장석조네 사람들]을 좀더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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