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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기원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기후가 만든 한국인의 역사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 2024년 9월
평점 :
우리의 본질은 결국, '기후 난민'
- [한국인의 기원], 박정재, 2024.
"... 인간의 이동을 자극한 주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지리학자로서 나는 그 답이 '기후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기후 변화'였을 가능성이 높다."
- [한국인의 기원], <1-3. 사피엔스가 동쪽으로 간 까닭>, 박정재, 2024.
생물지리학과 고기후학을 전공한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는 2021년의 저서 [기후의 힘]을 통해 '기후의 힘'을 통제해야 인류가 산다는 주장을 했다. 오랜 빙하기를 지난 후 하나의 거대한 간빙기에 해당하는 '홀로세'(11,700년 전 ~ 현재) 동안에도 정기적인 한랭기 및 소빙기와 온난기의 반복이 있었는데, 인류 문명의 발전으로 그러한 자연의 규칙이 교란되어 그 주기 또한 불규칙해지고 있으니 예상치 못한 자연의 대재난을 피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무자비한 '기후의 힘'을 억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20만년 동안 혁신의 지혜로 살아남은 슬기로운 '호모 사피엔스(슬기롭고 지혜로운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믿음이 그 근거였다.
자연 생태와 기후 이야기를 통해 인류 문명의 변천사를 '빅 히스토리'처럼 다루었던 박정재 교수는 전작 [기후의 힘]에서 다 하지 못한 우리 한반도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쳐낸다.
2024년작 [한국인의 기원]이다.
"마지막 빙기 말 수렵채집민들이 지구 대부분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추운 빙기가 끝나고 온난한 홀로세로 접어들면서 농경이 시작되었고 인구는 늘어났다. 인구압박에 못이긴 농경민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만난 수렵채집민을 인구수를 앞세워 제압했다. 한편 내륙의 건조한 초원으로 이동한 농경민은 작물재배를 포기하고 유목생활에 집중했다. 말을 능숙하게 다루게 된 유목민은 기후가 나빠져 먹을 것이 부족할 때마다 기동성을 살려 정주사회를 공략하고 무너뜨렸다. 점령지에서 유목민은 정주민의 생활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고 유목문화는 점차 위력을 잃어갔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수렵채집민, 정주농경민, 유목민의 유전자는 복잡하게 섞였다."
- [한국인의 기원], <2-6. 홀로세에도 인류의 이동은 멈추지 않았다>, 박정재, 2024.
[기후의 힘](2021)이든 [한국인의 기원](2024)이든 '사피엔스'의 거대한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유럽 및 유라시아와 동북아시아를 거쳐 이동해 온 인류와 그 인류가 일구어 온 다양한 문명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한국인의 기원]은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와 한반도 및 일본열도에 정착한 사람들에 집중하고 있다.
우선, 큰 틀에서의 시대 구분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고생대와 중생대, 신생대 중 포유류가 득세한 신생대는 6,500만년 전이고, 신생대 중 온난기였던 제3기를 지나 260만년 전부터 현 시기인 제4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아는 빙하기는 260만년 전부터 대략 1만2천년 전까지의 '플라이스토세'를 이른다. 250만년이 넘는 플라이스토세 동안 빙기와 간빙기가 20회 정도 반복되었다고 하는데, 1만1천7백년(1.17ka) 전부터 시작된 지금의 '홀로세'는 2만5천년 전부터 1만년 훨씬 넘게 지속된 '마지막 빙기 최성기' 이후 나타난 하나의 간빙기에 해당한다.
여기에 지구의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구의 '세차운동'과 태양의 '흑점수 변화', 바다의 '열염순환' 등을 들 수 있다.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기울기로 인해 태양열의 양에 차이가 나면 약 2만5천년 주기로 해당 지역의 환경과 식생에 변화가 온다. 사막이 초원스텝이 되고 초원이 빙하가 될 수도 있다. 그레이엄 핸콕이 [신의 지문](1995)에서 현재 인류문명의 기원으로 현재의 빙하가 아니라 오래전 스텝지대였을 것으로 추측하는 남극대륙으로 지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외 태양의 흑점수가 많아지는 활발한 태양열 증가시기와 빙하가 녹아 대서양과 태평양 같이 큰 바다의 염도와 온도가 교란되는 '열염순환'(엘니뇨 같은) 등이 박정재 교수가 지목한 46억살 지구의 기후 변동 요인이다.
빙하기 최전성기가 지나고 온 약 1만년 전의 홀로세는 간빙기로서 온난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지구의 '세차운동'과 태양의 '흑점수 변화' 및 대양의 '열염순환'에 인류의 농경문화 발전 등이 겹치면서 홀로세 초기의 8,200년(8.2ka) 전과 중기의 4,200년(4.2ka) 전, 후기의 2,800년(2.8ka) 전에 각각 엄청난 강추위와 작은 빙기들이 나타났다. 'ka'는 'kilo-annum'으로 1천년을 의미하니 예를 들어 '8.2ka 한랭기 이벤트'는 지금으로부터 8,200년 전, 즉 기원전 약 6천년 전의 빙기를 말한다. '4.2ka 이벤트'는 기원전 2천년, '2.8ka 이벤트'는 기원전 7~8백년이다.
박정재 교수가 홀로세 중 '인류세'로 지정하는 기점인 핵실험으로 대기상태를 바꾼 1950년대를 기준으로 기원전후 기점을 잡는다 해도, 지금은 1950년 이후 1세기도 지나지 않았으므로 아직 이 책이 기준으로 삼은 기원전후와 우리가 익히 아는 서양 기독교식 기원전후 연도의 차이는 없다.
이를 대입해 보면, 20만년 동안 동아프리카에서 초원으로 나간 사냥감 대형동물을 쫓아 유럽과 유라시아의 초원지대로 이동하면서 유럽의 네안데르탈인과 아시아의 데니소바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교잡하며 살아남은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빙하기의 수렵채집 구석기를 거친 인류가 홀로세 초기에 맞이한 '8.2ka 이벤트'는 1만년 전 시작된 '신석기'와 농경정착 시기에서의 한랭기, '4.2ka 이벤트'는 '청동기'와 농업에 기초한 고대국가 시기의 한랭기, '2.8ka 이벤트'는 이른바 '철기 저온기'에 해당된다.
1만년 전 시작된 신석기와 농경정착 문명 이후 '8.2ka 한랭기 이벤트' 시기는 북방의 아무르강 문화를 일군 인류가 따뜻한 남방으로 이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때 산동 반도와 만주, 요동과 요서 등지의 동북아시아 농경민은 한반도로 내려왔다. 고립된 한반도에 신석기와 농경이 도입된 기원전 6천년경의 이야기다. 이후 다시 한반도가 온난해지고 초원이 다시 숲으로 변하면서 인류는 사피엔스의 본능대로 초원과 사냥감을 찾아 북으로 다시 거슬러 오른다. 아직 농사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었고 조개를 주워먹으려 다들 해안가와 강가로만 몰려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지 않고 잔류한 문화가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로 넘어간 조몬인 문화다.
'4.2ka 한랭기 이벤트' 이후 유라시아에서 내려온 북방인들은 한반도에 청동기 문화와 밭벼가 아닌 물을 댄 논에 재배하는 벼농경 문화를 가져왔다. 한반도 중기 충남 금산의 민무늬 토기로 대표되는 송국리 문화다.
'2.8ka 저온기 이벤트'는 중국의 춘추전국 열국시대와 일치한다. 이로 인해 북방에서 다시 내려온 철기 문화는 송국리 문화 같은 한반도의 청동기 농경인들을 남쪽으로, 더 나아가 일본 남부로 몰아낸다. 한반도 중부의 송국리 문화와 한반도와 일본 남부의 조몬 문화가 일본에서 섞이는 과정이다. 야요이 문화의 시작이다. 일본 남부에 있던 기존의 조몬 문화는 일본 열도의 북쪽으로 쫓겨나 원주민과 섞이면서 일본 북쪽의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이 된다.
언어적으로도 '4.2ka' 송국리 문화는 원시 일본어를 사용했고, '2.8ka' 북방인은 원시 한국어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차이처럼 이들 선사시대 2천년 이상의 문명은 유전자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직접적 연관이나 교류가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단다.
"결론적으로 약 8,200년 전 추위를 피해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온 수렵채집민 집단, 중기 청동기 저온기와 약 3,200년 전 산둥, 랴오둥, 랴오시 등에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 철기 저온기에 랴오시와 랴오둥에서 남하한 점토대토기 문화집단, 중세 저온기에 북방에서 내려온 고조선과 부여의 유민이 혼합하여 현대 한국인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 [한국인의 기원], <5-14. 기후가 만든 한국인>, 박정재, 2024.
동양의 왕조 교체기나 서양의 그리스-로마 문명 일체는 서로 지지고 볶는 인간사 뿐만이 아니라 '기후 변화'의 주기와 정확할 정도로 거의 일치한다.
그리스 미케네 문명이나 로마 공화정의 몰락도 기후 변동으로 인한 식량 위기였고 오현제의 치세는 온난기의 주기와 일치했으며 로마의 멸망 또한 먼 동북방으로부터 따뜻한 곳을 찾아 서진한 훈족과 이로 인해 도미노 현상처럼 연쇄적으로 남하한 게르만과 고트족의 대량이주로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유목민족의 이동은 기원전 3천년 전 중앙아시아의 '얌나야 문명'부터 시작하여 약 1천년 주기로 대량이동하며 각지의 농경정착 문화를 위협했다. 기원전 18세기 히타이트, 기원전 9세기 스키타이와 흉노 또는 동호족, 기원후 4세기 훈족이나 돌궐 또는 선비족, 마지막 유목민인 12~13세기 몽골족과 거란 및 여진족 등의 출현이 그렇다.
동아시아에서도 200~400년 이어진 왕조들은 그 교체 시기가 철기 저온기('2.8ka 이벤트') 이후 발생한 약 500년 주기의 소빙기와 겹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진한교체기 및 한나라 전성기가 그 시작이고, 중국 삼국시대와 연이은 5호16국 시대 또한 소빙기로 인한 식량 부족과 북방 유목민족의 남하가 그 원인이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이후 장수왕의 남진 또한 5세기 소빙기와 무관하지 않다. 북방에서 멸망한 고조선과 한참 후 발흥한 고구려에 밀려난 부여족이 한반도로 내려온 후 마한 지역과 가야 지역에 철기 및 기마 문화가 전해진 것도, 신라 내물왕 이후 김씨 왕조 세습이 북방 숙신족의 남하로 인한 것이라는 설도 모두 기후 변동의 소빙기에 밀려 내려온 유목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박정재 교수는 사피엔스의 이동과 유목민의 이동이 '기후 변동'의 결과라는 가설을 확고한 중심 테마로 설정하고 논의를 이어간다.
한반도는 북방의 만주와 요동, 요서의 아무르강 문명이 내려와 자리를 잡고 이후 정기적인 기후의 '맥박'에 따라 내려온 북방의 문명이 기존 문명을 일본 등지로 밀어내거나 서로 섞인 결과였다. 한반도와 일본 같은 언어적, 유전자적 단절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갖춰지기 전에는 '기후 변화'와 '식량 위기'를 맞아 북방에서 남하한 문명이 농경이나 청동기, 철기와 기마 등의 신문명을 한반도에 전달하면서 기존 사람들과 섞였다.
고대국가 문명이 굳어진 후에는 단순한 소부족 단위의 잦은 이동이 아닌 국가간 전쟁에서 패망국의 대량이주가 이뤄지는 '인류세'의 징후가 보이기는 하나, 인류와 문명의 결정적인 이동 요인이 '기후 변화'와 이에 따르는 '식량 위기'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기원]의 결론은 원래부터 한반도에 고립되어 살아 온 '단일민족'이나 '한민족'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질은 결국,
'사피엔스'의 발자취를 따르는,
'기후 난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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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인의 기원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기후가 만든 한국인의 역사],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4.
2. [기후의 힘 - 기후는 어떻게 인류와 한반도 문명을 만들었는가],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