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의 기원 사회주의 역사 탐색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손규태 감수 / 동연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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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 ''이 아닌 '반란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1602)

 

 

 

"... 역사의 연구, 장기간에 걸친 사회의 발전 경로에 대한 개관과 이해보다 이를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좀처럼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사회적 통찰, 자아의식, 정치적 성숙, 거시적 사고를 가져다 주려면 '유물사관'의 도움을 받아 역사적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과거의 연구는 단지 호사가의 골동품 수집 취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의 달성을 재촉하기 위한 현재의 투쟁에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 <서문>, 1908.

 

영국 BBC 다큐멘터리 작가 헨리 링컨은 [성혈과 성배](1981)를 통해 구세주(메시아) 예수를 ''이 아닌 '인간'으로서, 그것도 4세기 유럽의 메로빙거 왕조를 통해 자손을 잇고 현대 유럽에서 '유태왕국'의 재림을 도모하기 위해 '유력자' 가문들을 장악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추적한 바 있다. 로마 제국에 대항한 '유태왕족' 예수의 반란 실패 후, 그의 '부인' 마리아는 예수의 자손(성혈)을 잉태한 '성배'로서 유럽 왕가에 침투했고, 예수를 사이에 두고 마리아 집안과 '경쟁적 제자' 관계에 있던 베드로는 예수의 '신격화' 교리를 전세계에 유포하며 현재의 '종교권력'이 되는 등 예수 종파를 분화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은 예수 후손의 가계도(성혈과 성배)를 추적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예수'라는 가설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역사가 칼 요한 카우츠키는 그보다 이전인 1908년에 [그리스도교의 기원]이라는 저작으로 '반란자로서의 예수'라는 가설을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종교적 본질을 파헤친다. 카우츠키는 유태계에서 흔한 이름인 '예수'라는 '인간'이 어떻게 '메시아'로서 출현했고 어떻게 이례적으로 부각될 수 있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당시 로마 제국의 '노예경제'라는 사회구성체의 토대와 '국가제도(고리대금업과 속주약탈)' '사상과 정서(개인주의 철학)'의 상부구조에 대한 분석을 선행한다. 이것이 '역사가'인 카우츠키가 말한 '거시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유물사관' '역사의 연구'이다.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많지 않았던 대도시는 없었다. 로마 다음으로 예루살렘이 적어도 상대적으로는 그런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가장 많이 몰려있던 도시였다."

-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 3부 제2, 1908.

 

'무산계급'을 이르는 프롤레타리아는 로마 시대 노예에서 면천된 후 도시에 운집하며 로마 민주정(공화정)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다수를 이루던 계층(소상인,걸인,자유노동자)에서 유래하는데 이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대다수가 된다는 것은 노예경제의 몰락을 징후한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대산업 생산양식에서 일체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로부터 배제된 채 일체의 '사회적 노동'을 담지하는 '노동계급'이라는 점에서 자손생산 기능 밖에 없던 로마의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다르다.

초기의 원시 그리스도교는 로마 시대 프롤레타리아의 공동체에서 출발하면서 반로마 기치를 내건 민족주의적이고 계급증오에 기반한 메시아적이고 폭력적 민주주의 이념에 기반한다.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의 그리스어)의 십자가 처형 이후 4(마가,누가,마태,요한) 복음서들은 최초 '폭력적 반란의 지도자'였던 예수의 출생과 죽음, 부활에 대해 상호모순된 보도를 하면서 결국 예수의 '폭력성' '평화주의'로 기록하는데, 이는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의 몰락과 로마 제국지배의 공고화에 기인한다. , 로마 제국의 지배가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민족적 메시아주의'가 유태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메시아주의'가 되고, 나아가 '국제적 메시아주의' 양태를 띄며 '신격화' '평화주의' 외피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모순이 없는 종교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만큼 모순과 엉터리투성이인 다른 종교는 좀처럼 없다... 그리스도교는 유태교에서 로마 양식으로, 프롤레타리아 공동체에서 세계 지배자로, 공산주의 조직에서 모든 계급들에 대한 착취의 조직으로 진화했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2, 1908.

 

헨리 링컨의 [성혈과 성배] '과격성' '급진성'으로 인해 유태인들로부터도 박해받고 고립되면서 로마를 당장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예수의 반란조직이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의 '타협'을 통해 '십자가 처형' '부활' '연극'을 연출함으로써 훗날을 도모한다는 음모적 가설까지 내세운다.

한편, 카우츠키는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는데 탁월하게 적합한 제도들을 갖춘 조직을 물려준 점(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2)"에서 당시 다른 메시아주의와 차별성이 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진화를 설명하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교는 300년 이상 투쟁하고 변화 및 발전하면서 로마로부터 국교로 공인된다.

 

"유태공동체가 왕족혈통을 지닌 그 메시아에게서 바랐으나 헛수고였던 것이 프롤레타리아 출신의 십자가에 매달린 메시아에 의해 달성되었다. 그는 로마를 제압했고 황제들을 무릎 꿇게 했으며, 세계를 정복했다. 그러나... 그 승리로 돌아간 싸움의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적... 조직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배와 착취의 기계(교회)로 변형되었다. 이 변증법적 과정은 전례가 없지 않다... 카이사르와 나폴레옹도 민주주의의 승리에서 등장했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2, 1908.

 

'십자가 처형' '부활'이라는 '투쟁교리'(같은책, 3부 제2)를 가능하게 한 '반란자' 예수의 '수난' "유태 민족의 수난사의 증거"(같은책, 4부 제4)에 불과하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확대발전 과정에서 '주교'의 권한이 강화되고 결국 가톨릭 교회(Katholikos;'전체교회' 또는 '보편적 교회') 체제가 확립된다.

 

"현대의 절대왕정이 봉건귀족 계층과 부르주아지간의 계급전쟁에서 성장했듯이, 교황의 절대왕정은 주교 귀족계층과 수도자들, 곧 수도원식 대농장 소유자들간의 계급투쟁에서 성장했다. 교회의 상승적 발전은 교황권의 공고화로 결말을 맺는다... 교회는 철저히 반동적인, 사회에 유해한 제도가 된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5, 1908.

 

''이 아닌 '인간'이자 '반란자'로서의 예수를 역사적으로 규명하면서 카우츠키는, 20세기초 "사회민주주의는 그리스도교와는 완전히 다른 경로로 집권(같은책, 4부 제6)"하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지극히 낙관적인 결론에 이른다.

 

"현대의 공산주의는... 오직 전체의 사회생활을 지배하고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의 획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런 힘은 국가권력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통함 힘의 쟁취가 현대 공산주의 실천의 첫번째 조건이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6, 1908.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민주주의의 붕괴와 일치한다. 그것이 공인되기까지 300년간의 발달기간은 자치의 모든 흔적의 지속적인 퇴화시기였다. 이는 그 시대가 생산력의 지속적인 퇴화시기였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노동자 운동은 민주주의의 가공할 승리인 프랑스 대혁명에서 출발한다. 그 이후로 흘러간 한 세기는 온갖 변천과 격동을 거치면서도 민주주의의 끊임없는 전진, 생산력의 그야말로 거짓말같은 증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크기만이 아닌 독립성과 현명함의 증대도 가리켜 준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6, 1908.

 

(2016 2)

***

1. [그리스도교의 기원],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 “…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흥기를 자신의 필생의 업으로 삼은 모든 이들의 의무는프롤레타리아들에게 거시적 관점, 거시적 관계들, 거시적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의 연구, 장기간에 걸친 사회의 발전 경로에 대한 개관과 이해보다 이를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좀처럼 없다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사회적 통찰, 자아의식, 정치적 성숙, 거시적 사고를 가져다 주려면 유물사관(역사적 유물론)의 도움을 받아 역사적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과거의 연구는 단지 호사가의 골동품 수집 취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의 달성을 재촉하기 위한 현재의 투쟁에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서문>과 함께, 사회민주주의 역사가 칼 요한 카우츠키는 로마 제국의 하부구조로서 노예경제의 쇠퇴를 토대로 하여 고리대금업과 제국의 속주 수탈(세금 및 노예노동력)두 가지 착취제도에 기반한 국가제도독점성과 개인주의, 신비주의 철학이 팽배한 사상과 정서등 상부구조 분석을 선행한다.

“(로마) 공화정 말기에 주로 정치적 목적에서였지만 또한 상부상조의 목적에서도 클럽과 협회를 결성하는 추세가 두드려졌다. 황제들은 그것들을 해체했다. 사회적 조직체들보다 독재권력이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국가권력이 유일한 사회의 조직체이고, 국민은 국가에 대하여 뿔뿔이 흩어진 개인으로서만 존재할 때 그 권력을 가장 크다그런 상황에서 조직 열망은 비밀결사에 의존하게 되었다우리는 그리스도교에서 형성된 유일신상에는 플라톤 이래로 점점 더 유일신론을 향해 가던 철학보다 황제의 독재가 적지 않게 기여한 것을 보게 된다.”(2부 제3)

이스라엘에서 농민층의 몰락과 따라서 국가의 몰락은 나중에 로마에서도 그러했듯이 불가항력이었다.”(3부 제1)면서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생성과 그의 원인으로서 노예경제의 쇠퇴를 분석하면서 예루살렘 또한 그러한 사회체제였음을 밝힌다.

그러한 무산 민중계층들(프롤레타리아)은 다수가 몰려든 곳에서는 (로마처럼) 특히 전투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그들에게는 가진 자들처럼 잃을 것이 없다다수거리투쟁의 두각평상시에 프롤레타리아들은 바리사이파(부르주아 민주주의?) 사람들의 지도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로마간의 대립이 첨예화되고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소심해졌으며 앞으로 나서는 프롤레타리아 계층과 점점 더 갈등관계에 들어갔다농민의 지지… (사두가이파의 가혹한) 세금과 고리대금산적들이 내걸고 싸운 기치는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메시아) 부활에 대한 믿음은 투쟁의 교리였다.”(3부 제2)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의 파괴 후 로마의 지배가 공고해지자, 기원전 150년부터 공산주의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던 에세네파를 제외한 다수 유태종파(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는 로마와 타협하게 되는데, 이른바 열심당이라는 정파로서 젤롯당과 예수의 반란조직 또한 유태종파로부터 박해를 받아 고립되는 처지에 있었다. 후대 복음서들의 보도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 당시 잔인하기로 유명한 당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의 죄명을 밝히지 못하였으나 다수 유태인들의 기소를 토대로 예수를 십자가 처형했다고 한다. 이후 부활의 투쟁교리를 통해 존속하던 예수 반란조직은 부유한 동지들을 끌어들여 계급증오를 탈색하고 기회주의적, 수정수의적으로 변질되는 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확장되면서 기존의 사도예언자들 대신 부유하고 교육받은 교사들의 입지가 넓어지고 조직의 행정관리 필요에 따라 주교”, “부제”, “장로지도자들의 독재가 강화된다. 한편으로 노예경제붕괴의 흐름을 타고 수도원조직이 기존 노예의 노동에 기반했던 대농업(라티푼디움)을 물려받아 농촌에서 대농장을 운영함으로써 농노의 노동에 기반한 봉건경제의 토대를 세우게 된다. 전유럽적 교회권력과 대농업의 발전이 결합한다.

“… 다수의 결정이 대표(주교)를 파견한 모든 공동체들에게 구속력을 갖게 되었으며, 그 공동체들을 통일된 탄탄한 몸으로 융합그리하여 가톨릭 교회(Katholikos;전체교회,보편적 교회)가 만들어졌다.”(4부 제5)

이 책의 결론과 같은 제4부 제6 <그리스도교와 사회민주주의>에서 카우츠키는,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그 근원적 본질의 정반대로 변했을 때 비로소 성공을 거둔 것, 그리스도교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아니라 이들을 착취하고 지배한 성직자 계층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그리스도교는 전복세력이 아닌 보수세력으로 억압과 착취의 새로운 버팀목으로서 승리했다는 것, 그것은 황제의 권력, 노예제, 민중의 헐벗음, 소수의 손아귀에 부가 집중되는 것을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공고화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스도교의 조직인 교회는 그 원래의 목표들을 포기하고 그 반대의 것을 감싸는 것으로써 승리했다.”면서, 로마 제국과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차이로 인해 로마 제국에서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투쟁능력과 투쟁의욕이 계속 감퇴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상승하며, 계급대립은 때를 기다리며 날카로워져 간다.”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 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확고히 한다. 카우츠키의 결론은 이렇다.

발흥하는 그리스도교의 시대가 슬프기 짝이 없는 정신적 쇠퇴의 시대, 우습기 그지없는 무지와 극히 우둔한 미신이 급증하던 시대라면, 사회주의의 발흥시대는 자연과학의 눈부신 진보시대, 사회민주주의에 사로잡힌 민중에게서 교양의 급속한 증대시대이다그리하여 사회민주주의는 그리스도교와는 완전히 다른 경로로 집권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완전히 다른 영향력 행사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은 일체의 계급지배를 영원히 종식시켜야 한다.”

2. [성혈과 성배], 헨리 링컨, 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지음, 이정임, 정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2005.

: 1880년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인 렌르샤토의 사제였던 베랑제르 소니에르가 지역의 교회유물에서 가톨릭 교회 전체를 뒤흔들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BBC 방송작가 헨리 링컨과 이단적사진작가 마이클 베이전트,‘이단적작가 리처드 레이는 이 책을 통해 소니에르 신부가 발견한 것은 예수 집안의 가계도였다는 추정을 하면서,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예수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가톨릭 교회의이단이기도 했던 시온수도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카우츠키처럼 유물사관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4대 복음서를 비롯한 성경의 보도들이 편집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조명하고 현재에도 예수의 자손들이 유럽을 넘어 전세계에 퍼져 있다고 주장한다.

기름부어진 자(메시아)’로서의 예수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가난하지 않고 부유했으며 교육을 받은 랍비(바리사이파)였는데 그가 랍비였다는 사실은 그가 결혼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의 아내는 그에게 기름을 부은마리아(어머니 마리아와는 다른)였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모호한 예수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는 그의 부인 마리아와 그의 처남 라자로였다는 것, 베드로는 예수의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의 가족인 마리아, 라자로와 대립했다는 것, 결국 예수의 봉기가 실패한 후 예수 일가는성혈이 든 성배’, 아이를 임신한마리아를 유럽으로 도피시켜 유태왕국의 재림을 도모했던 한편,베드로 같은 제자들은 신격화된 예수의 교리를 전유럽에 설파하며 현실적 종교권력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 등의 내용이 전개된다. 또한 예수가 다윗의 유태왕조재림의 중심이었으므로 다윗왕의 자손이 되어야 했고, 그로 인해 그의 출생지가 나자렛이 아닌 베들레헴으로 위조되어야 했다는 것은 예수 탄생 즈음 로마에서 실시되었다는 인구조사가 거짓이라는 사실로도 바로 증명된다. 또한 이 책은 예수의십자가 처형부활또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의 거래를 통해 당시 관행과 다르게 진행된 십자가 처형쇼를 거쳐 거짓 죽음 후 부활하였으며 마리아와 함께 도피한 예수는 이후 다른 지역 어딘가에서 천수를 누렸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결국 성배로 이어져 온 성혈은 기원후 4세기경 게르만계 고트족 일파 중 하나인 메로빙거 왕조로 이어져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제1차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여 예루살렘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예루살렘 성전에 숨겨져 있던 예수의 가계도를 지키기 위해 신비로운 성당기사단이 창설되었다는 이야기, 이슬람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 이 기사단은 성배(가계도)’를 지키기 위해 유럽의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는 시온수도회를 장악하고 장미십자회등을 결성하면서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로버트 보일, 빅토르 위고 등 유명한 인물들이 시온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를 역임했다는 이야기 등등. 가톨릭 교회가 시온수도회’, ‘장미십자회’, ‘성당기사단등을이단으로 탄압한 이유는 예수의 혈통과 가문이 드러나면 예수는 더 이상 이 아니라 인간이 되므로 수 세기 동안 굳건히 유지해 온 가톨릭 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가톨릭 교회는 이단들과 타협하고 이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며, 렌르샤토의 소니에르 사제가 가톨릭 교회와 거래하고 죽기 전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력한 일가와도 모종의 거래를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합스부르크 왕가도 예수의 가문일 수 있다는 것.

예수 가문과 혈통은 지금까지도 시온수도회의 엄호를 받으며 전세계 곳곳 유력한 위치에서 활약하고 있을 수도 있고, 인류는 이러한 예수 재림과 같은 사제왕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으로 이 책은 결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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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전트 외 지음, 정미나 외 옮김 / 자음과모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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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과 성배] + [검은 사제들] '다양성'은 역사를 견인하는 힘!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반동 쿠데타로 꺾여 공화정이 황제 나폴레옹의 제정으로 대체된 후, 모든 집회와 시위, 반란과 '소요'는 가톨릭으로부터 '이단'이라 규정된 '비밀결사단이 배후'라는 '음모론'이 횡행했다.
([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머, 헨리 링컨, 1986.)

가장 교조적이고 근본적인 집단으로서 '성단기사단(템플기사단, 튜턴기사단 등)'은 가톨릭 교단의 무리한 십자군전쟁 책임의 희생양이 되어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파문당하고 절멸되었으나, 과학의 발전과 철학적 각성, 시민적 계몽을 '이단'으로 규정했던 교황청의 독단에 맞서 새로운 의식과 사상은 '이단적인 비밀결사체'로 흡수되었다.

5백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구마(퇴마)의식'의 배후로 등장하는 '장미십자회' 또한 이러한 '이단'의 흐름 중 하나인데, 하나의 체제가 확립되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다양성'은 '이단'의 이름으로 탄압받고 부정되지만 결국, '역사를 견인하는 힘'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오래된 사례이다.

역사는 체제의 '획일성'과 '다양성'간 투쟁에 의해 발전한다는 사실은,
'노동개악 반대'를 '소요죄'로 기소하고,
역사교과서를 '하나의 해석'에 가두는 일이 '반역사적 행위'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단'적 구마(퇴마) 의식 후 쇠고랑차는 '장미십자회' 신부(김윤식)와 악마를 안고 한강에 투신했다가 살아나오는 부사제(강동원)는 내가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속편'을 암시하는, 나아가 2편 시나리오를 직접 써볼까 싶은 망상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ㅋ

속편의 시작은 이렇다.

'체제의 법정에서 싸우는 '이단의 신부'와 물에 빠진줄 알았던 악마가 죽지않고 남아있는 '부마자'로서 '부사제'

결국 퇴마과정에서 한국판 '토미리존스'와 '윌스미스'의 '맨 인 블랙'으로 흥행하는 망상.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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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스탈린 - 강철 인간의 태동, 운명의 서막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김병화 옮김 / 시공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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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스탈린은 황제의 행차를 어떻게 기억했을까?
- [젊은 스탈린 - 강철인간의 태동, 운명의 서막],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저, 김병화 역, <시공사>, 2015.

"1848년부터 통치해온, 콧수염을 기른 합스부르크의 늙은 황제(프란츠-요제프)는 백마 여덟 필이 끄는 금박마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1913년 정월에 (오스트리아) 빈에 있던 20세기 거물들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곳에 있던) 스탈린의 좀더 거창한 주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인 브리게테나우 구역의 멜데만슈트라세에 있는 남자용 값싼 하숙에는 실패한 화가인 젊은 오스트리아인이 살았다. 스물세살의 아돌프 히틀러였다. 
소소(스탈린)와 아돌프(히틀러)가 공통적으로 본 빈의 광경 하나가 있다. 히틀러의 가까운 친구인 쿠비제크는 이렇게 기억한다. '우리는 늙은 황제가 쇤부른에서 나와 호프부르크로 가기 위해 마차에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하지만 미래의 두 독재자(스탈린과 히틀러) 모두 그에게 감동받지 않았고, 경멸감까지 느꼈다. 스탈린은 이 기억을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아돌프는 황제에게 흥미가 없었으므로 그 광경을 대단찮게 여겼다. 그저 황제가 대표하는 국가에만 관심이 있었다.'"

- [젊은 스탈린 - 강철인간의 태동, 운명의 서막] 중.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서 항우는 진시황이 초나라 회계땅을 유람하는 장면을 숙부 항량과 지켜보다가 "내 저 놈의 자리를 빼앗아 차지하고 말리라!"고 일갈한 반면,
<고조본기>의 유방(한고조)은 진나라 수도 함양에서 부역을 살다가 역시 진시황의 행차를 보고 "아, 대장부란 마땅히 저래야 하는데!"라고 부러워 했단다.
주지하다시피, 중국 진말한초의 '초한전쟁'에서 최후 승자는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이다.

1914년 '사라예보의 총격'은 1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되었는데, 그때 피살된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삼촌인 프란츠-요제프 황제가 거창하게 행차하던 1913년의 오스트리아 빈에는 스탈린, 히틀러, 티토 같은 '20세기 정치적 거인'들이 동시에 살고 있었고, 히틀러는 황제의 행차를 통해 '국가주의'를 보았다.

[젊은 스탈린]은 이후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 '국가주의(나치즘)'을 패퇴시킨 소련의 '국가주의(일국 사회주의)' 독재자 스탈린이 2천만 명 이상 대숙청을 실행한 "무자비한 독재자" 이전에 "가난한 우등생, 이상주의적 신학생, 낭만주의 시인에서 은행강도, 해적, 음모가, 살인자"로서 성장한 '운명의 서막'을 서술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수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 같은 '영웅'들의 '서막'을 파헤치는 '헐리우드 히어로물(수퍼맨 리턴즈, 배트맨 비긴즈, 어매이징 스파이더맨)'의 요즘 세태를 닮았으되, 왜 주인공(스탈린)이 그렇게 괴물이 되어갔는지에 관한 역사적 시각이 부족한 듯 하여 '헐리우드 히어로물'보다도 못한 점이 아쉽기도 하다.

다만,
"두뇌, 확신, 지적 집중, 정치적 재능, 폭력에 대한 믿음과 경험, 까다로움, 보복심, 매력, 감수성, 무자비함, 감정이입 능력의 결여 등... 전적으로 괴이한 특이성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지만 활약할 무대가 없었던" 스탈린이 1917년 10월 러시아 소비에트혁명에서 "그 무대를 발견"했다고 스탈린 '운명의 서막'을 파헤치면서 저자는 "스탈린주의는 레닌주의의 왜곡이 아니라 그것의 발전 형태였다"고 결론짓는다.

20세기 거대한 세계사적 흐름과 혁명은 이렇게 인물들 개개인, 즉 '레닌의 편집증'과 '스탈린의 괴이한 특이성'으로 인해 '운명'적으로 희화되어 가고, 이러한 역사해석의 '우연성' 속에서 문득 궁금해진다.

스탈린은 1913년 황제의 행차를 과연 어떻게 기억했을까?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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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상상 - 데모당 당수 이은탁의 좌파보고서
이은탁 지음 / 디스커버리미디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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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상상] '불온'한 것이 역사를 바꾼다!
- '데모당' 이은탁 당수의 저작, [불온한 상상],2015,<디스커버리미디어>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단 말인가.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메이데이' 시발점이 된 1886년 5월 25만명의 시카고 총파업을 지휘한 노동자 어거스트 스파이스(August Spies)의 사형선고전 최후 법정진술이다(책 70pg 재인용).

교문이 없어진 모교를 들러 80년대 '교투' 할때는 없었으면 했던 그 "교문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교문을 뚫고 데모하러 거리로 나올 "교문박치기를 할 학생들이 없다"고 책에서 아쉬움을 살짝 표하는 '데모당' 이은탁 당수를 광화문에서 우연히 만나 그의 저작 즉석사인회를 열고 '직구' 및 2권 '공구'하여 나의 앞자리 김동지에게 전달했다.

자본과 정권이,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명목으로 밀어붙여도,
'좌파척결', '종북몰이'를 하면서까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해도,
결코 굴하지 않고 대항해 싸워야 함을,
저자는 삶의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함께 모이고 싸우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더 많이 갖기를 바란다.

역사도, 철학도, 상상력도 없는 소수 자본과 정권만 빼고 다수 민중들은 다 알고 있다.

'불온한' 것이 역사를 바꿔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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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평전 - 사람을 얻어 난세를 평정한 용인술의 대가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쭤야오 지음, 남종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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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회] '난세의 영웅이자 간웅'으로서의 조조와 유비
- [조조 평전]과 [유비 평전], 장쭤야오 저, 남종진 역, <민음사>

"항간에서는 아이들이 몰려가는 바람에 집집마다 골머리를 앓았다. 그들은 걸핏하면 엽전을 내고 모여 앉아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삼국 시대 이야기를 들을 때면 유비가 패배하는 대목에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물을 흘렸고, 조조가 패하는 대목에서는 기뻐하며 쾌재를 불렀다." 
- 북송시대 시인 소식, [동파지림] 기록 중

조조와 유비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북송시대 어린이 청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이문열의 [삼국지] '평역' 뿐만 아니라 2천년대 초중반 황석영의 [삼국지] '정역'이나 장정일 류의 [삼국지] '주변부 해석' 등으로 인해 '촉한정통론'을 벗어나 유비 외 인물들에 대한 '대중적 재조명'이 확산되었다.

조조나 유비나 어렸을 적에는 책도 안 읽고, 특히 조조는 역사기록에도 원소랑 같이 '하루종일 놀았다'고 한다. 
유비는 한나라 황족이라는 것을 죽을 때까지 울궈먹으며 '유가(유학)'를 내세웠으나 죽을 때까지 공부는 안하면서 평생 대업을 위해 승률도 상당히 낮은 전장을 돌아다녔고, 
조조는 장성한 후 아들 조비의 증언에 의하면 전장을 떠돌면서도 낮에는 병법서를, 밤에는 유교경전과 역사서를 손에서 놓지 않는 노력으로 결국 중원을 차지했다.

정사 [삼국지]를 쓴 진수는,
유비를 '백절불요', 즉 "숱한 좌절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한번도 대업을 이루려는 자신의 의지를 꺾고 굴복하거나 안주하지 않았다"고 평가하였고,
조조를 "신불해와 상앙의 치국술을 선택하고, 한신과 백기의 기이한 책략을 받아들였으며, 서로 다른 재능을 지닌 자의 각각이 지닌 능력을 이용, 마침내 대업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가 책략 면에서 남들보다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라며 조조는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라 평한다.

후한 말기 군웅이 할거하던 시기는 그로부터 수백년 이전의 전국시대와 다르지 않았으므로 '제자백가' 사상이 난무했을 것이다. 
유비나 조조 모두 전장에서는 '병법', 치국으로서 '법가'를 우선으로 대업을 기획했을 것으로 보이나 결국은 '덕치'를 중심으로 하는 '유가'를 근본으로 했을 터, 이들의 '유학'은 우리나라에 '유교'로 익숙한 중국 남송시대 주희의 교조적 '주자학'과 거리는 멀다. 엄격한 '촉한정통론' 입장에서 "유비는 영웅, 조조는 간적"의 정식화가 이루어진 것이 여진의 금나라로부터 핍박받던 남송시대부터였으며, 그 이데올로기가 바로 '주자학'인 것이다.

조조는 "다스리는 자는 부족함을 근심하지 않고 공평하지 못함을 근심한다(불환과이환불균)"는 [논어]의 정신으로 군사력을 이용한 둔전제를 통해 균등한 생산력 발전을 기획했고,
유비는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정사 [삼국지]의 기록에서 보듯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민심'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기에 전투에도 치국에도 능력이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변방 촉나라 황제가 되어 삼국의 '정족지세' 구도를 구축한 결과 이후 천하통일의 정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삼국지연의]의 3걸인 조조(위), 유비(촉),손권(오) 그 누구도 천하를 통일하지 못하였고, 이들이 정리한 '천하삼분지세'를 토대로 위나라 재상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천하를 '진'나라로 통일한다.

중국문학사에도 기록되는 '다재다능'한 조조(위무제)가 자식교육도 잘해서 이후 조비(위문제), 조예(위명제)까지 최소 3대를 이었고(그의 고차원적 '선양' 방식은 5호16국 시대를 거쳐 이후 중국 역사에서 '선양'의 전형이 되었다),
출신은 비천하나 '의지의 화신' 유비(촉선주)가 자식교육에 실패하여 제갈량의 충절에도 불구하고 유선(촉후주)의 우둔함으로 국가를 멸망하게 한 사실(유비는 한나라 황족으로 추정되나 여러대가 끊겨 후한말 유력 군벌이던 원소, 원술 형제의 원씨가문이나 손책, 손권 형제의 손씨가문, 조조의 환관가문 등과 달리 출신이 비천했다) 등은,
어찌보면 부차적인 문제다. 

부끄럽게도 한반도의 '21세기 남북조'는 '국가의 역사'가 박씨와 김씨 각각의 '가정사'가 되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권력을 세습하는 세상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난세의 영웅이자 간웅'으로서 조조와 유비의 중심에는,
'덕치'와 '민심'이라는 근본이 있었을 것이라는 나름의 평가만 가져갈 일이다.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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