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략 - 쉽게 읽는 중국사 입문서 현대지성 클래식 3
증선지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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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아시아'의 역사 중 하나로서 '중국'
- [십팔사략], 증선지, 소준섭 편역, <현대지성>, 2018.


"... 진회는 엄청난 고문을 가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악비에게 모반하려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려 했으나 악비는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그는 조용히 윗옷을 벗어 등을 보였다. 거기에는 '진충보국(盡忠報國 : 모든 정성과 충성을 다해 국가에 보답하리라)'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문신되어 있었다. 악비의 모반죄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회는 단 하나의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다만, '그에게... 아마 무언가... 모반죄가 있을 것입니다'라며 말끝을 흐릴 뿐이었다... (남)송나라의 충신 악비 장군은 이렇듯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때 악비의 나이 39세였다."
- 증선지, [십팔사략], <남송시대>

중국의 '정사(正史)'는 17세기 청나라 건륭 연간에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범엽의 [후한서]와 진수의 [삼국지] 등 '4사'와 청나라 장정옥의 [명사]까지 이후 기전체 '단대사'들을 포함한 '24사(二十四史)'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특징은 기전체 형식으로 당시 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이전 왕조의 역사를 당시 왕명에 의해 기술된 역사서라는 것인데, 유일하게 사마천의 [사기]는 '왕명'이 아닌 사마천의 굳은 의지로 '중국 민족'의 주체적 '통사'로서  거대한 '족보' 정리 작업이었고, 나머지 '단대사'는 이전 왕조를 뒤집어 엎고 역성혁명를 했으나 '천자'로서 하늘의 계시를 받은 정통성이 있음을 조작하기 위함이었다.
역성혁명를 통해 새왕조를 열었던 조선의 세종이 김종서, 정인지 등에게 명해 [고려사]를 편찬한 이유도 같다.
청나라 '르네상스' 건륭제가 '이민족' 여진이었음에도 결국 '중국'의 정통성 있는 정권이었음을 애써 과시하기 위해 '정사 24사'를 확정한 것이었다. 

'정사'는 아니지만, 13세기 중국에는 [십팔사략(十八史略)]이 있다.
청나라의 선조인 여진족 금나라에 의해 멸망한 북송시대 이후 강남에 자리잡았다가 칭기즈칸의 몽골제국(그 중 원나라)에 의해 멸족된 남송시대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증선지가 이전 18종의 '정사'를 간략히 정리한 역사서다.
나열하면,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범엽의 [후한서], 진수의 [삼국지], 방현령의 [진서], 심약의 [송서], 소자현의 [남제서], 요사렴의 [양서]와 [진서], 위수의 [후위서], 이백약의 [북제서], 영호덕분의 [후주서], 위장의 [수서], 이연수의 [남사]와 [북사], 구양수의 [당서]와 [오대사], 탁극탁의 [송사], 이렇게 '고금역대' 18종의 '정사'들을 요약한 것인데, 하나의 왕조를 기록한 것은 '서'로, 남북조 시대나 5대10국 시대처럼 여러 왕조의 기록은 '사'로 이름지었으며, 그 기록자들은 바로 다음 왕조의 저자들이었다.

사마천의 작업 덕택에 증선지도 중국의 시조로서 '삼황오제'로부터 시작하면서 각 왕조들의 '약사'를 서술하고 있어 남송시대까지 중국의 전체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수많은 인물군상들이 명멸하는 역사기록이나 [십팔사략]의 클라이막스 또는 '주인공'은 악비 장군일 것이다. 다른 단대사들에서는 볼 수 없겠지만, 사마천의 [사기]의 절정이 '초한전쟁'의 영웅 유방과 항우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증선지는 멸망한 남송을 외세로부터 끝내 지키고자 했던 '한족의 영웅' 악비와 '매국의 간신' 진회를 대비시키고 있다.
'정사'는 아니지만 [삼국지연의]를 지은 원말명초의 '독립투사' 나관중이 '촉한정통 춘추필법'으로 촉한황제 유비를 부각했듯이 말이다.

금나라와 원나라가 유일하게 두려워 했던 악비 장군은 중국인들에게 쉽게 말해 임진정유왜란 시기 왜국이 유일하게 두려워 했던 우리의 이순신 장군과 같다. 악비를 모함해 죽인 추밀부사 진회도 처음부터 간신은 아니었다지만 금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한 '화친파'였고, 악비는 '주전파'였다. 우리의 병자호란 시기 '남한산성 농성'과 같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병자호란에서는 악비 같은 명장이 없다.

결국, 당대에는 간신 진회가 '승리'했지만, 악비의 고향을 비롯한 후세 중국인들에게 진회는 두고두고 모욕을 당하고 있다.

[십팔사략]의 저자 증선지는 남송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가 원세조 쿠빌라이에게 사형당한 충신 문천상의 후배였다고 한다. 선배 문천상은 나라를 위해 의병을 모으고 잡혀가서도 충절을 지키다가 죽었고, 후배 증선지는 원나라 초까지 살아 '중국 민족의 통사'를 [십팔사략]으로 정리했다.

우리에게 '십팔사략' 이야기는 [고우영의 십팔사략] 만화로 나오기도 했는데, '편역서'는 2015년에 출간되었다.


"'남선북마'라는 표현이 있다... '중국'은 원래 '가운데 있는 나라'가 아닌 '나라의 가운데'를 의미했다... 중화는 '문화의 중심', 다시 말해 수도권을 말한다... '관동은 상(재상)을 내고, 관서는 장(장군)을 낸다'는 표현이 있다... 중국은 광대하고 사람이나 물건의 경관도 다양하다... 남과 북, 동과 서가 마치 서로를 보완하듯 하나의 완성된 천하를 만드는 것이 이상이었다. 분열의 시대는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 상태에 안주하지 않았다. 항상 통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고 마침내는 달성했다."
- 진순신, [중국 오천년], 1983.

아시아의 역사를 문학적 형태로 표현한 일본 작가 진순신은 [중국사 오천년 1~2]에서 [십팔사략]처럼 삼황오제부터 시작하는 중국의 5천년 전역사를 서술한다. 그는 "1949년 10월 1일 톈안먼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을 선포한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붓을 놓기로 한다"며 긴 이야기를 마치는데, 아마도 현대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맡기기로 한 듯 하다. 하긴, 지금의 중국이 '국가사회주의'인지,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불과한지, '시장사회주의'라는 별종인지 평가는 불가하다. 

진순신에 의하면, 중국은 '중화'라는 '나라 가운데' 문명과 동서남북 사방의 이질적 문화가 오랫동안 함께 어우러진 거대한 복합문화인데, 황하를 중심으로 북쪽은 말을 타고 남쪽은 배를 타며, 함곡관을 기준으로 동쪽은 문인(재상)을, 서쪽은 무인(장군)을 내면서 분열과 통일을 반복해온 역사라는 것이다.
즉,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중화주의'의 중국과 동서남북 다양한 문화의 발자취로서 '아시아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중국' 또한 다양한 '아시아 역사'의 일부다.

동북쪽에서 말을 달리고 동남쪽에서 해상을 장악했던 우리 요동과 한반도의 역사는 결국, '중국'의 변방이 아니라 '아시아 역사'의 당당한 한 부분인 것이다.

***

1. [십팔사략], 증선지, 소준섭 편역, <현대지성>, 2018.
2. [중국 오천년 1~2], 진순신, 이혁재 옮김, <다락원>, 2002.
3. '최고 수준의 중국 역사문화답사기 시리즈 9권', 진순신 외, <솔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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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선집 1 중국 문화 총서 5
모택동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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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2단계 혁명발전론'은 어떻게 혁신되는가
- [신민주주의론](1940),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1905), 레닌, 이채욱/이용재 옮김, <돌베개>, 1992.


"중국혁명의 역사과정은 반드시 두 단계 발걸음으로 나뉘어 나아가야 한다. 그 첫째 단계는 '민주주의 혁명'이고, 둘째 단계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것은 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혁명과정이다. 이른바,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이미 구 범주의 민주주의, 즉 '구민주주의'가 아니라 신 범주의 민주주의, 즉 '신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중화민족의 새로운 정치는 바로 '신민주주의 정치', 중화민족의 새로운 경제는 '신민주주의 경제', 중화민족의 새로운 문화란 '신민주주의 문화'라 잘라 말할 수 있겠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1940.

중국은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중화민국)을 세웠는데, 중국의 부르주아(자산계급) 혁명은 '민족', '민생', '민권'의 소위 '삼민주의'로 정리된다. 
항일 투쟁의 전선에서 쑨원의 신해혁명으로 집권한 중국 국민당과의 '국공합작'을 시도했던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뚱은 1919년 중국 5.4 운동을 기점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하는데, 바로 '신민주주의론'이다.

1918년 중국 5.4 운동은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수탈당하는 식민지 민족문제에 대한 대대적 대응이었다. 우리의 3.1 항쟁이 그랬듯, 기존의 '반봉건' 운동에 '반제국주의' 투쟁이 전면화되면서 식민지 민중들은 각성했고 '민주주의 혁명'의 내용도 새롭게 혁신된다.

마오쩌뚱은 민중이 주인되는 국가건설을 위해 1단계로 '자산계급'에 의한 '민주주의 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자산계급'에 의한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긍정한다. 당시 중국의 발전단계가 후진적이고 봉건적이었기에 필수적인 단계이되, '자산계급의 독재'가 아닌 농민과 노동자의 '무산계급'의 광범위한 '혁명적 독재'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의 이론화가 바로 '신민주주의론'인데, 2단계로서 '사회주의 혁명'은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다. 

'신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신민주주의' 정치는 '반제국주의 계급연합독재'다.

"반제국주의 계급의 연합에 의한 공동독재의 '신민주주의' 국가... 국체는 각 혁명계급 연합전정, 정체는 민주집중제, 이것이 바로 '신민주주의' 정치이며 '신민주주의' 공화국이고 항일통일전선 공화국이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정치>

2. '신민주주의' 경제는 '대은행, 대공업, 대상업의 국유화'와 쑨원의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지주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이 소유하게 한다.

"무산계급 영도 하의 '신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국영경제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며, 이는 국민경제의 지도적 역량을 갖는다. 그렇지만 '신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을 몰수하지 않으며, '국민생계를 마음대로 뒤흔들 수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금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경제가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경제>

3. '신민주주의' 문화는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지탱하는 반혁명 구세력과 투쟁하는 '반제/반봉건'을 기치로 내건 혁명적 신세력의 문화다.

"이른바 '신민주주의' 문화는 곧 인민대중의 반제/반봉건 문화이며 오늘날에 있어서는 곧 항일통일전선의 문화이다... '신민주주의'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산계급이 영도하는 인민대중의 반제/반봉건의 문화이다."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문화>

"모든 사상에는 계급적 낙인이 찍혀 있다([실천론])", "복잡한 사물의 발전과정에는 많은 모순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는 하나의 주요 모순이 있으며 이 주요 모순의 존재와 발전에 의해 다른 모순의 존재와 발전이 규정되거나 영향을 받는다([모순론])" 등의 간략하고 쉬운 문장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설명하는 마오쩌뚱답게 항일투쟁의 '주요 모순' 국면에서 계급투쟁의 '기본 모순' 일소를 위한 '혁명론'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한 개념이 [신민주주의론]인 것이다.


"'차리즘(러시아왕정)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인민' 곧,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뿐이다... 농촌 및 도시의 프티부르주아지를 두 세력에 포함...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는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의 수립을 뜻한다."
- 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1905.

러시아왕정 '차르'를 무너뜨리고 러시아 공화국을 세운 1905년 '1차 러시아혁명'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 혁명'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 문제를 두고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로 대립하고 분화된다.
'온건파' 멘셰비키는 부르주아 세력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협력하고자 한 반면, '급진파' 볼셰비키는 '민주주의 혁명'에서도 노동자-농민 계급의 '혁명적 독재'를 주장했다.
1848년 프랑스 4월 혁명 등의 교훈은 '민주주의 혁명' 후 부르주아지의 다수 노동자-농민 계급에 대한 배신이었기 때문인데, 레닌의 볼셰비키는 케렌스키의 민주주의적 '임시정부'에 대항하여 노동자-농민-병사 소비에트의 '이중 권력'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반전평화와 노동권 쟁취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1917년 '2차 러시아혁명(소비에트혁명)'을 이루어낸다.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은 단번에 성취한 것이 아니다. 다수 노동대중의 '혁명적 독재'와 그 주체성(영도성)을 결코 놓지 않은 여러 단계의 '혁명발전론'의 결과다. 
러시아에서는 노동자-농민-병사 등 광범위한 노동대중의 '혁명적 독재'에 의한 '이중 권력'으로, 중국에서는 다수 '무산계급'의 '반제/반봉건 계급연합독재'로 나타난 '혁명발전론'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혁신되어야 할 것인가.

***

1. [신민주주의론](1940),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2. [실천론/모순론](1937),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3.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1905), 레닌, 이채욱/이용재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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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문고 2
레닌 지음 / 돌베개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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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2단계 혁명발전론'은 어떻게 혁신되는가
- [신민주주의론](1940),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1905), 레닌, 이채욱/이용재 옮김, <돌베개>, 1992.


"중국혁명의 역사과정은 반드시 두 단계 발걸음으로 나뉘어 나아가야 한다. 그 첫째 단계는 '민주주의 혁명'이고, 둘째 단계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것은 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혁명과정이다. 이른바,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이미 구 범주의 민주주의, 즉 '구민주주의'가 아니라 신 범주의 민주주의, 즉 '신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중화민족의 새로운 정치는 바로 '신민주주의 정치', 중화민족의 새로운 경제는 '신민주주의 경제', 중화민족의 새로운 문화란 '신민주주의 문화'라 잘라 말할 수 있겠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1940.

중국은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중화민국)을 세웠는데, 중국의 부르주아(자산계급) 혁명은 '민족', '민생', '민권'의 소위 '삼민주의'로 정리된다. 
항일 투쟁의 전선에서 쑨원의 신해혁명으로 집권한 중국 국민당과의 '국공합작'을 시도했던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뚱은 1919년 중국 5.4 운동을 기점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하는데, 바로 '신민주주의론'이다.

1918년 중국 5.4 운동은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수탈당하는 식민지 민족문제에 대한 대대적 대응이었다. 우리의 3.1 항쟁이 그랬듯, 기존의 '반봉건' 운동에 '반제국주의' 투쟁이 전면화되면서 식민지 민중들은 각성했고 '민주주의 혁명'의 내용도 새롭게 혁신된다.

마오쩌뚱은 민중이 주인되는 국가건설을 위해 1단계로 '자산계급'에 의한 '민주주의 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자산계급'에 의한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긍정한다. 당시 중국의 발전단계가 후진적이고 봉건적이었기에 필수적인 단계이되, '자산계급의 독재'가 아닌 농민과 노동자의 '무산계급'의 광범위한 '혁명적 독재'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의 이론화가 바로 '신민주주의론'인데, 2단계로서 '사회주의 혁명'은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다. 

'신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신민주주의' 정치는 '반제국주의 계급연합독재'다.

"반제국주의 계급의 연합에 의한 공동독재의 '신민주주의' 국가... 국체는 각 혁명계급 연합전정, 정체는 민주집중제, 이것이 바로 '신민주주의' 정치이며 '신민주주의' 공화국이고 항일통일전선 공화국이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정치>

2. '신민주주의' 경제는 '대은행, 대공업, 대상업의 국유화'와 쑨원의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지주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이 소유하게 한다.

"무산계급 영도 하의 '신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국영경제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며, 이는 국민경제의 지도적 역량을 갖는다. 그렇지만 '신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을 몰수하지 않으며, '국민생계를 마음대로 뒤흔들 수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금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경제가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경제>

3. '신민주주의' 문화는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지탱하는 반혁명 구세력과 투쟁하는 '반제/반봉건'을 기치로 내건 혁명적 신세력의 문화다.

"이른바 '신민주주의' 문화는 곧 인민대중의 반제/반봉건 문화이며 오늘날에 있어서는 곧 항일통일전선의 문화이다... '신민주주의'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산계급이 영도하는 인민대중의 반제/반봉건의 문화이다."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문화>

"모든 사상에는 계급적 낙인이 찍혀 있다([실천론])", "복잡한 사물의 발전과정에는 많은 모순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는 하나의 주요 모순이 있으며 이 주요 모순의 존재와 발전에 의해 다른 모순의 존재와 발전이 규정되거나 영향을 받는다([모순론])" 등의 간략하고 쉬운 문장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설명하는 마오쩌뚱답게 항일투쟁의 '주요 모순' 국면에서 계급투쟁의 '기본 모순' 일소를 위한 '혁명론'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한 개념이 [신민주주의론]인 것이다.


"'차리즘(러시아왕정)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인민' 곧,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뿐이다... 농촌 및 도시의 프티부르주아지를 두 세력에 포함...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는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의 수립을 뜻한다."
- 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1905.

러시아왕정 '차르'를 무너뜨리고 러시아 공화국을 세운 1905년 '1차 러시아혁명'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 혁명'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 문제를 두고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로 대립하고 분화된다.
'온건파' 멘셰비키는 부르주아 세력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협력하고자 한 반면, '급진파' 볼셰비키는 '민주주의 혁명'에서도 노동자-농민 계급의 '혁명적 독재'를 주장했다.
1848년 프랑스 4월 혁명 등의 교훈은 '민주주의 혁명' 후 부르주아지의 다수 노동자-농민 계급에 대한 배신이었기 때문인데, 레닌의 볼셰비키는 케렌스키의 민주주의적 '임시정부'에 대항하여 노동자-농민-병사 소비에트의 '이중 권력'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반전평화와 노동권 쟁취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1917년 '2차 러시아혁명(소비에트혁명)'을 이루어낸다.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은 단번에 성취한 것이 아니다. 다수 노동대중의 '혁명적 독재'와 그 주체성(영도성)을 결코 놓지 않은 여러 단계의 '혁명발전론'의 결과다. 
러시아에서는 노동자-농민-병사 등 광범위한 노동대중의 '혁명적 독재'에 의한 '이중 권력'으로, 중국에서는 다수 '무산계급'의 '반제/반봉건 계급연합독재'로 나타난 '혁명발전론'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혁신되어야 할 것인가.

***

1. [신민주주의론](1940),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2. [실천론/모순론](1937),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3.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1905), 레닌, 이채욱/이용재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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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전론/신민주주의론 - 두레문고 2
모택동 / 두레 / 1989년 7월
평점 :
절판


고전적인 '2단계 혁명발전론'은 어떻게 혁신되는가
- [신민주주의론](1940),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1905), 레닌, 이채욱/이용재 옮김, <돌베개>, 1992.


"중국혁명의 역사과정은 반드시 두 단계 발걸음으로 나뉘어 나아가야 한다. 그 첫째 단계는 '민주주의 혁명'이고, 둘째 단계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것은 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혁명과정이다. 이른바,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이미 구 범주의 민주주의, 즉 '구민주주의'가 아니라 신 범주의 민주주의, 즉 '신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중화민족의 새로운 정치는 바로 '신민주주의 정치', 중화민족의 새로운 경제는 '신민주주의 경제', 중화민족의 새로운 문화란 '신민주주의 문화'라 잘라 말할 수 있겠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1940.

중국은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중화민국)을 세웠는데, 중국의 부르주아(자산계급) 혁명은 '민족', '민생', '민권'의 소위 '삼민주의'로 정리된다. 
항일 투쟁의 전선에서 쑨원의 신해혁명으로 집권한 중국 국민당과의 '국공합작'을 시도했던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뚱은 1919년 중국 5.4 운동을 기점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하는데, 바로 '신민주주의론'이다.

1918년 중국 5.4 운동은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수탈당하는 식민지 민족문제에 대한 대대적 대응이었다. 우리의 3.1 항쟁이 그랬듯, 기존의 '반봉건' 운동에 '반제국주의' 투쟁이 전면화되면서 식민지 민중들은 각성했고 '민주주의 혁명'의 내용도 새롭게 혁신된다.

마오쩌뚱은 민중이 주인되는 국가건설을 위해 1단계로 '자산계급'에 의한 '민주주의 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자산계급'에 의한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긍정한다. 당시 중국의 발전단계가 후진적이고 봉건적이었기에 필수적인 단계이되, '자산계급의 독재'가 아닌 농민과 노동자의 '무산계급'의 광범위한 '혁명적 독재'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의 이론화가 바로 '신민주주의론'인데, 2단계로서 '사회주의 혁명'은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다. 

'신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신민주주의' 정치는 '반제국주의 계급연합독재'다.

"반제국주의 계급의 연합에 의한 공동독재의 '신민주주의' 국가... 국체는 각 혁명계급 연합전정, 정체는 민주집중제, 이것이 바로 '신민주주의' 정치이며 '신민주주의' 공화국이고 항일통일전선 공화국이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정치>

2. '신민주주의' 경제는 '대은행, 대공업, 대상업의 국유화'와 쑨원의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지주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이 소유하게 한다.

"무산계급 영도 하의 '신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국영경제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며, 이는 국민경제의 지도적 역량을 갖는다. 그렇지만 '신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을 몰수하지 않으며, '국민생계를 마음대로 뒤흔들 수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금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경제가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경제>

3. '신민주주의' 문화는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지탱하는 반혁명 구세력과 투쟁하는 '반제/반봉건'을 기치로 내건 혁명적 신세력의 문화다.

"이른바 '신민주주의' 문화는 곧 인민대중의 반제/반봉건 문화이며 오늘날에 있어서는 곧 항일통일전선의 문화이다... '신민주주의'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산계급이 영도하는 인민대중의 반제/반봉건의 문화이다."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문화>

"모든 사상에는 계급적 낙인이 찍혀 있다([실천론])", "복잡한 사물의 발전과정에는 많은 모순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는 하나의 주요 모순이 있으며 이 주요 모순의 존재와 발전에 의해 다른 모순의 존재와 발전이 규정되거나 영향을 받는다([모순론])" 등의 간략하고 쉬운 문장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설명하는 마오쩌뚱답게 항일투쟁의 '주요 모순' 국면에서 계급투쟁의 '기본 모순' 일소를 위한 '혁명론'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한 개념이 [신민주주의론]인 것이다.


"'차리즘(러시아왕정)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인민' 곧,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뿐이다... 농촌 및 도시의 프티부르주아지를 두 세력에 포함...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는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의 수립을 뜻한다."
- 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1905.

러시아왕정 '차르'를 무너뜨리고 러시아 공화국을 세운 1905년 '1차 러시아혁명'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 혁명'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 문제를 두고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로 대립하고 분화된다.
'온건파' 멘셰비키는 부르주아 세력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협력하고자 한 반면, '급진파' 볼셰비키는 '민주주의 혁명'에서도 노동자-농민 계급의 '혁명적 독재'를 주장했다.
1848년 프랑스 4월 혁명 등의 교훈은 '민주주의 혁명' 후 부르주아지의 다수 노동자-농민 계급에 대한 배신이었기 때문인데, 레닌의 볼셰비키는 케렌스키의 민주주의적 '임시정부'에 대항하여 노동자-농민-병사 소비에트의 '이중 권력'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반전평화와 노동권 쟁취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1917년 '2차 러시아혁명(소비에트혁명)'을 이루어낸다.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은 단번에 성취한 것이 아니다. 다수 노동대중의 '혁명적 독재'와 그 주체성(영도성)을 결코 놓지 않은 여러 단계의 '혁명발전론'의 결과다. 
러시아에서는 노동자-농민-병사 등 광범위한 노동대중의 '혁명적 독재'에 의한 '이중 권력'으로, 중국에서는 다수 '무산계급'의 '반제/반봉건 계급연합독재'로 나타난 '혁명발전론'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혁신되어야 할 것인가.

***

1. [신민주주의론](1940),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2. [실천론/모순론](1937),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3.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1905), 레닌, 이채욱/이용재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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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선집 2 중국 문화 총서 6
모택동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로서의 '국가'를 둘러싼 '지구전'
- [옥중수고](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 [지구전론](1938),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현대의 군주, 즉 신화, 군주는 실제의 한 인격,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일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이미 인정받고 있으며 또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인한 하나의 집단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체 혹은 복합적 사회요소일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이미 이러한 유기체를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정당(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1](1929~1935), <현대의 군주>,
‘마키아벨리 정치학에 대한 간단한 주석’ 중.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신의 [옥중수고]에서 이탈리아 사람답게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에 주목한다. 
즉,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정치과학이 유토피아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거나 현학적인 논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었으나 "마키아벨리는 이 양자를 결합하여, 교의적, 합리적 요소를 ‘대장’이라는 인격체 속에 육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개념에 상상적이고 예술적인 형식을 부여"하였으며, '순수히 이론적인 추상'으로서의 군주를 통해 궁극에는 민중과 하나가 되고, 이 과정에서의 발화된 정치적 정열과 신화의 요소들이 실존하는 '군주'를 통해 이상적인 '군주론'이라는 '정치적 선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에게 정치는 지배와 피지배의 전제하에 존재하는 것이고, 군주제 또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전체주의적 시도를 '군주'라는 한 개인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정치체제인 것이며, 현대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로서 '정치정당'이 실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정당의 역사는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의 역사일 수 밖에 없으나", "이 사회집단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친척집단과 반대파와 적을 가지고 있어" "주어진 정당의 역사는 오직 사회와 국가의 총체성에 대한 복합적인 기술 속에서만 드러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람시는 당연히 정당을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 즉 '계급'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 바, 결국, "모든 정당은 어떤 계급의 학명(學名)에 불과한 것이므로 계급분열의 종언을 지향하는 정당은,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계급의 표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써 정당 자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자기충족을 달성할 것"(이하 [옥중수고])이라고 정당의 정치성을 '육화'시키고 있다.

[옥중수고]는 '국가는 강제의 갑옷을 입은 헤게모니', '국가와 시민사회', '강제와 헤게모니론', '기동전, 진지전' 등의 이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옥중에서 각 테마별로 저술한 기록을 엮은 것이다. 
<현대의 군주>-정당, 정치 등, 
<국가와 시민사회>-헤게모니론, 
<미국주의와 포드주의>, 
<역사와 문화>-지식인, 교육, 
<이탈리아 역사>, 
<실천철학> 등 
각 주제별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전' 전략을 채택하지만 전장에서는 속전속결('기동전')을 원칙으로 싸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적의 속전속결 전략은 수많은 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부득불 '지구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기동전'이란 광대한 전선과 전투지역에서 정규부대가 외곽전선에 위치하여 속전속결식의 공격전을 전개하는 형식을 뜻한다. 아울러 이러한 공격전을 전개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혹은 필요한 시기에 행하는 '기동성 있은 방어전'도 이에 포함된다. 또 때로는 보조작용으로서의 '진지공격전'과 '진지방어전'도 이에 포함되기도 한다."
- 마오쩌뚱, [지구전론], 1938.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뚱은 항일투쟁이 한창이던 1938년의 강의록 [지구전론]에서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는 유명한 테제를 인용하며,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정치적으로 패망할 것이라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세계 정세 분석에 기초하여 중국이 망할 것이라는 자산계급의 '망국론'을 반박하고 소자산계급의 '타협론'도 비판하면서 중국 민중의 항일투쟁은 결국 광범위한 통일전선과 대규모 정치적 민중동원을 기반으로 승리할 것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모든 전투에서 속전속결의 '기동전'이 주가 되고 '진지전'은 보조적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속승론' 또한 경계하면서 '진지전'을 통한 '지구전론'을 펼친다.

동시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감옥에서 그람시가 쓴 '진지전'에 대해 들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민중의 광범위한 정치적 동원'을 통한 '진지전'과 '지구전론'을 설파한 주장은 역시 그람시의 '헤게모니 투쟁'과 맞닿아 있다.
'기동전'을 통한 '정치국가' 영역에서의 '혁명'적 속전속결이 결정적이기는 하나, 실제에서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광범위한 '헤게모니 투쟁과 장악'을 이루어내는 수많은 '진지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내용인 것이다.
'국가'는 "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이고, 반파시즘, 반자본주의 투쟁은 결국 '지구전'이다.


그람시의 사상에 관한 해설서는 많지만, 그 자신의 저서는 '옥중의 기록'인 이 [옥중수고] 외 별도로 없다. 
그람시가 한 말을 직접 듣고 싶다면 [옥중수고]를 직접 읽기를 권한다.

***

1. [옥중수고 1~2](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2. [지구전론](1938),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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