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듀링론 - 오이겐 류링씨의 과학혁명, 개정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민석 옮김 / 새길아카데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노동계급운동은 진정한 '철학'의 '상속자'이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모든 철학, 특히 현대 철학의 중요한 근본문제는 '사유'와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사유'가 차지하는 위치의 문제, 중세시대의 스콜라철학에서도 매우 커다란 역할을 했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정신'과 '자연' 가운데 어느 것이 '일차적'인 것인가? 이 문제는 교회와의 관계에서 이렇게 첨예화된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는가, 아니면 세계는 영원히 존재해 왔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진다."
-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1888.

칼 마르크스의 동지이자 마르크스 사후 그의 '악필' 초고들을 편집하여 [자본론] 2권과 3권을 출간하였으며, 유럽 사회민주주의 연대체인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청년 시절 마르크스를 만나 [독일이데올로기 초고](1844)와 [공산당선언](1848)을 공동 집필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다.
그는 마르크스 사후 자본주의 본격적 축적으로 인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목도했고, 전세계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경제주의'의 오명도 받고 있다. 결국, 만년의 엥겔스는 그 제자 칼 카우츠키가 그랬듯, '과학적 사회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면서 사상적 여로를 마치는데, 그의 중간 시기는 온갖 '사이비'에 맞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옹호한 '철학'적 투쟁의 시간이었다.

1888년 만년의 엥겔스는 칸트로 시작하여 헤겔로 완성된 '독일고전철학(사변철학-관념철학)'은 포이어바흐라는 반쪽짜리 '유물론자'를 거쳐 진정한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담지자인 독일노동계급에게 "상속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져 투쟁한 '철학의 역사'를 정리하고 '존재'보다 '정신'이 일차적이라는 '관념론'이 객관적 사회경제체제의 토대 위에서 '존재'가 '정신'보다 일차적이라는 '유물론'에 의해 대체되고 "상속"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엥겔스가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승리'로 결론지을 수 있었던 강력한 근거는 19세기 당시의 자연과학의 발전이었다.


"'잉여가치'의 발견... 부불노동을 전유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및 이로 인해 완성된 노동자 착취의 기본형태라는 것, 자본가가 가령 노동자의 노동력을, 그것이 상품으로서 상품시장에서 갖고 있는 충분한 가치 그대로 구입하였을 경우에도 그는 지불한 대가 이상의 가치를 노동자에게서 회수한다는 것, 그리고 이 '잉여가치'가 결국에는 가치총액이 되는 바, 유산자계급의 수중에 부단히 축적되는 대자본의 출처는 바로 여기('잉여가치')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상의 두 가지 위대한 발견, 즉 '유물론적 역사관'과 '잉여가치'를 통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의 폭로야말로 마르크스의 공적이다. 이것들이 발견됨으로써 '사회주의'는 하나의 '과학'이 되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과학'을 그 모든 개별들과 그것의 총체적 연관 속에서 더욱 완성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 F. Engels, [반뒤링론], <1장 개관>, 1878.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위대한 발견으로 '잉여가치'와 '유물론적 역사관' 두 가지를 든다.

'노동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상품'으로서 '노동의 교환가치', 즉 '노동력의 가치(가격)'만을 임금으로 지불한 자본가가 지불하지 않는 '노동의 가치'인 '부불노동'으로 '잉여가치'를 남기는데, 이 과정이 바로 '착취'다. '착취'는 자본주의에서 '합법적' 과정이며, 새로운 사회에서는 철폐되어야 할 것인데, 자본주의에서 '불법적'인 것은 '착취'가 아니라 '수탈'이다(김규항, [혁명노트]). '착취'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력의 교환가치(가격)'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한 자본주의 본질로 현상하며, '수탈'은 20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과 억압적 지배에서 보인 '강화된 불법착취'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유물론적 역사관'은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도식화'되었는데, 인류의 사회역사에는 '역사적 유물론', 그 외 자연 전체에 대한 사유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보면 되는 바, 결국 양자의 공통지점은 '유물론'이라는 '철학'이다.
청년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뒤집어 유물론적으로 해석한 루드비히 포이어바흐가 '사이비 유물론자'임을 '11개 테제'로 남겼는데, 그 내용은 '진정한 유물론'과 '해석'이 아닌 '변혁'의 철학이었다.
엥겔스는 1878년에 당시 '사이비' 사회주의자이자 '강단 좌파'인 오이겐 뒤링이라는 인물의 주장들을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 분야로 나누어 조목조목 인신공격과 각종 역설(또는 '욕설')을 섞어 비판한다.
특히, 1부 '철학'의 영역에서는 당시 따로 집필 중이었을 [자연변증법](1873~1883)의 자료들을 가지고 비판한 듯 한데, [자연변증법]은 19세기 당시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발전을 토대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철학'이 객관적 자연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일종의 '필연의 증명' 작업이었다. 
[반뒤링론]에서 엥겔스는 '자연철학'으로서 수학(미적분), 우주발생론, 물리학, 화학, 유기체(생물학), 그를 기반으로 파생되는 '도덕'과 '법', 그리고 '양질전환'과 '부정의 부정'으로서 '변증법' 등의 영역에서의 무지막지한 비판으로 '오이겐 뒤링씨'를 깔아 뭉개버리고 있다.

엥겔스의 [반뒤링론]은 마르크스의 푸르동(공상적 사회주의자) 비판([철학의 빈곤])의 '논쟁 저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그 영역은 '온 우주'를 망라하는 바, '변증법적 유물론'을 수호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이는 저작이다. 
이러한 '논쟁을 목표로 쓴 저작'의 전통은 1908년 '유물론'의 외피를 쓴 오스트리아 마흐주의를 비슷한 방식으로 비판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컨대, '국가'라는 것은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일정한 발전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국가'는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자기 모순에 빠졌으며, 자기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불상용적인 대립으로 분열했다는 것을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대립, 즉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에서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하려면 외관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즉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를 '질서'의 한계 내에 유지시킬 권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로부터 발생했으나, 그 위에 올라서서 사회와는 더욱더 멀어져 가는 권력이 바로 '국가'이다."
- F. Engels,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1884.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원천,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에서 엥겔스는 원시 씨족사회를 연구하던 루이스 모건의 [고대사회](1877)라는 저서를 바탕으로 씨족에서 부족, '원시공동체'에서 생산력 발전의 과정 속 '잉여생산'과 '사유재산'의 축적, '계급사회'의 등장과 그 결정체인 '국가'의 기원을 추적한다. 
이 고전적 '국가론'은 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주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으로 이어진다.


[자연변증법]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의 거대한 영역에서, '사이비 사회주의자' 뒤링을 잠시 비판한 [반뒤링론], 씨족사회에서 '국가'의 기원까지 추적한 '역사적 유물론'을 거쳐 만년의 엥겔스는 '과학적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 "독일고전철학의 상속자"인 노동계급에게 '고전적 관념론 철학의 종말'을 고한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은 다름아닌 [자연변증법]이라는 방대한 연구, 그 '빅 히스토리'를 위한 '메모'였다.

"... 변증법적 자연관이 모든 자연철학을 불필요하고 불가능하게 만들었듯이 이러한 견해는 역사의 영역에서 '철학의 종말'을 고한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어느 곳에서든 우리 두뇌로부터 상호연관을 발명해 내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 속에서 상호연관을 발견하는 문제이다. 자연의 역사로부터 추방된 '철학'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순수한 사유의 영역, 즉 사유과정 자체의 법칙에 관한 이론인 '논리학'과 '변증법'만이 있을 뿐이다...
사회의 역사 전체를 이해하는 관건은 노동의 발전사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새로운 경향은 처음부터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독일 노동계급운동은 독일고전철학의 '상속자'이다."
-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1888.

엥겔스에 의하면, 헤겔은 [법철학]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고 했는데 '현실'을 '절대이성'화하는 '보수성'이 있었던 한편으로, 그 다음 명제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이라면서 '필연'의 변화에 '이성'을 포함시켜 '진보성'의 맹아를 품고 있다. 
포이어바흐는 자연철학에서는 헤겔을 뒤집었으나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하지 못해 '철학'에서는 '인류의 사랑'만을 발견했다. 
결국, '독일고전철학'이라는 '관념론' 일체는 다수 노동계급의 각성과 함께 '종말'을 고하면서, 노동계급운동은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으로 "상속"받는다.

***

1. [반뒤링론(Anti-During)](1878), F. Engels, 김민석 옮김, <새길>, 1987.
2.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 F. Engels. 김대웅 옮김, <아침>, 1987.
3.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4.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V. I. Lenin,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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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강유원 옮김 / 이론과실천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노동계급운동은 진정한 '철학'의 '상속자'이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모든 철학, 특히 현대 철학의 중요한 근본문제는 '사유'와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사유'가 차지하는 위치의 문제, 중세시대의 스콜라철학에서도 매우 커다란 역할을 했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정신'과 '자연' 가운데 어느 것이 '일차적'인 것인가? 이 문제는 교회와의 관계에서 이렇게 첨예화된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는가, 아니면 세계는 영원히 존재해 왔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진다."
-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1888.

칼 마르크스의 동지이자 마르크스 사후 그의 '악필' 초고들을 편집하여 [자본론] 2권과 3권을 출간하였으며, 유럽 사회민주주의 연대체인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청년 시절 마르크스를 만나 [독일이데올로기 초고](1844)와 [공산당선언](1848)을 공동 집필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다.
그는 마르크스 사후 자본주의 본격적 축적으로 인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목도했고, 전세계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경제주의'의 오명도 받고 있다. 결국, 만년의 엥겔스는 그 제자 칼 카우츠키가 그랬듯, '과학적 사회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면서 사상적 여로를 마치는데, 그의 중간 시기는 온갖 '사이비'에 맞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옹호한 '철학'적 투쟁의 시간이었다.

1888년 만년의 엥겔스는 칸트로 시작하여 헤겔로 완성된 '독일고전철학(사변철학-관념철학)'은 포이어바흐라는 반쪽짜리 '유물론자'를 거쳐 진정한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담지자인 독일노동계급에게 "상속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져 투쟁한 '철학의 역사'를 정리하고 '존재'보다 '정신'이 일차적이라는 '관념론'이 객관적 사회경제체제의 토대 위에서 '존재'가 '정신'보다 일차적이라는 '유물론'에 의해 대체되고 "상속"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엥겔스가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승리'로 결론지을 수 있었던 강력한 근거는 19세기 당시의 자연과학의 발전이었다.


"'잉여가치'의 발견... 부불노동을 전유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및 이로 인해 완성된 노동자 착취의 기본형태라는 것, 자본가가 가령 노동자의 노동력을, 그것이 상품으로서 상품시장에서 갖고 있는 충분한 가치 그대로 구입하였을 경우에도 그는 지불한 대가 이상의 가치를 노동자에게서 회수한다는 것, 그리고 이 '잉여가치'가 결국에는 가치총액이 되는 바, 유산자계급의 수중에 부단히 축적되는 대자본의 출처는 바로 여기('잉여가치')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상의 두 가지 위대한 발견, 즉 '유물론적 역사관'과 '잉여가치'를 통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의 폭로야말로 마르크스의 공적이다. 이것들이 발견됨으로써 '사회주의'는 하나의 '과학'이 되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과학'을 그 모든 개별들과 그것의 총체적 연관 속에서 더욱 완성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 F. Engels, [반뒤링론], <1장 개관>, 1878.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위대한 발견으로 '잉여가치'와 '유물론적 역사관' 두 가지를 든다.

'노동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상품'으로서 '노동의 교환가치', 즉 '노동력의 가치(가격)'만을 임금으로 지불한 자본가가 지불하지 않는 '노동의 가치'인 '부불노동'으로 '잉여가치'를 남기는데, 이 과정이 바로 '착취'다. '착취'는 자본주의에서 '합법적' 과정이며, 새로운 사회에서는 철폐되어야 할 것인데, 자본주의에서 '불법적'인 것은 '착취'가 아니라 '수탈'이다(김규항, [혁명노트]). '착취'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력의 교환가치(가격)'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한 자본주의 본질로 현상하며, '수탈'은 20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과 억압적 지배에서 보인 '강화된 불법착취'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유물론적 역사관'은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도식화'되었는데, 인류의 사회역사에는 '역사적 유물론', 그 외 자연 전체에 대한 사유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보면 되는 바, 결국 양자의 공통지점은 '유물론'이라는 '철학'이다.
청년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뒤집어 유물론적으로 해석한 루드비히 포이어바흐가 '사이비 유물론자'임을 '11개 테제'로 남겼는데, 그 내용은 '진정한 유물론'과 '해석'이 아닌 '변혁'의 철학이었다.
엥겔스는 1878년에 당시 '사이비' 사회주의자이자 '강단 좌파'인 오이겐 뒤링이라는 인물의 주장들을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 분야로 나누어 조목조목 인신공격과 각종 역설(또는 '욕설')을 섞어 비판한다.
특히, 1부 '철학'의 영역에서는 당시 따로 집필 중이었을 [자연변증법](1873~1883)의 자료들을 가지고 비판한 듯 한데, [자연변증법]은 19세기 당시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발전을 토대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철학'이 객관적 자연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일종의 '필연의 증명' 작업이었다. 
[반뒤링론]에서 엥겔스는 '자연철학'으로서 수학(미적분), 우주발생론, 물리학, 화학, 유기체(생물학), 그를 기반으로 파생되는 '도덕'과 '법', 그리고 '양질전환'과 '부정의 부정'으로서 '변증법' 등의 영역에서의 무지막지한 비판으로 '오이겐 뒤링씨'를 깔아 뭉개버리고 있다.

엥겔스의 [반뒤링론]은 마르크스의 푸르동(공상적 사회주의자) 비판([철학의 빈곤])의 '논쟁 저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그 영역은 '온 우주'를 망라하는 바, '변증법적 유물론'을 수호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이는 저작이다. 
이러한 '논쟁을 목표로 쓴 저작'의 전통은 1908년 '유물론'의 외피를 쓴 오스트리아 마흐주의를 비슷한 방식으로 비판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컨대, '국가'라는 것은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일정한 발전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국가'는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자기 모순에 빠졌으며, 자기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불상용적인 대립으로 분열했다는 것을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대립, 즉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에서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하려면 외관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즉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를 '질서'의 한계 내에 유지시킬 권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로부터 발생했으나, 그 위에 올라서서 사회와는 더욱더 멀어져 가는 권력이 바로 '국가'이다."
- F. Engels,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1884.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원천,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에서 엥겔스는 원시 씨족사회를 연구하던 루이스 모건의 [고대사회](1877)라는 저서를 바탕으로 씨족에서 부족, '원시공동체'에서 생산력 발전의 과정 속 '잉여생산'과 '사유재산'의 축적, '계급사회'의 등장과 그 결정체인 '국가'의 기원을 추적한다. 
이 고전적 '국가론'은 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주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으로 이어진다.


[자연변증법]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의 거대한 영역에서, '사이비 사회주의자' 뒤링을 잠시 비판한 [반뒤링론], 씨족사회에서 '국가'의 기원까지 추적한 '역사적 유물론'을 거쳐 만년의 엥겔스는 '과학적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 "독일고전철학의 상속자"인 노동계급에게 '고전적 관념론 철학의 종말'을 고한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은 다름아닌 [자연변증법]이라는 방대한 연구, 그 '빅 히스토리'를 위한 '메모'였다.

"... 변증법적 자연관이 모든 자연철학을 불필요하고 불가능하게 만들었듯이 이러한 견해는 역사의 영역에서 '철학의 종말'을 고한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어느 곳에서든 우리 두뇌로부터 상호연관을 발명해 내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 속에서 상호연관을 발견하는 문제이다. 자연의 역사로부터 추방된 '철학'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순수한 사유의 영역, 즉 사유과정 자체의 법칙에 관한 이론인 '논리학'과 '변증법'만이 있을 뿐이다...
사회의 역사 전체를 이해하는 관건은 노동의 발전사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새로운 경향은 처음부터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독일 노동계급운동은 독일고전철학의 '상속자'이다."
-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1888.

엥겔스에 의하면, 헤겔은 [법철학]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고 했는데 '현실'을 '절대이성'화하는 '보수성'이 있었던 한편으로, 그 다음 명제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이라면서 '필연'의 변화에 '이성'을 포함시켜 '진보성'의 맹아를 품고 있다. 
포이어바흐는 자연철학에서는 헤겔을 뒤집었으나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하지 못해 '철학'에서는 '인류의 사랑'만을 발견했다. 
결국, '독일고전철학'이라는 '관념론' 일체는 다수 노동계급의 각성과 함께 '종말'을 고하면서, 노동계급운동은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으로 "상속"받는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철학'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현대화해야 한다.

***

1. [반뒤링론(Anti-During)](1878), F. Engels, 김민석 옮김, <새길>, 1987.
2.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 F. Engels. 김대웅 옮김, <아침>, 1987.
3.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4.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V. I. Lenin,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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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팡세총서 2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대웅 옮김 / 두레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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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운동은 진정한 '철학'의 '상속자'이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모든 철학, 특히 현대 철학의 중요한 근본문제는 '사유'와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사유'가 차지하는 위치의 문제, 중세시대의 스콜라철학에서도 매우 커다란 역할을 했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정신'과 '자연' 가운데 어느 것이 '일차적'인 것인가? 이 문제는 교회와의 관계에서 이렇게 첨예화된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는가, 아니면 세계는 영원히 존재해 왔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진다."
-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1888.

칼 마르크스의 동지이자 마르크스 사후 그의 '악필' 초고들을 편집하여 [자본론] 2권과 3권을 출간하였으며, 유럽 사회민주주의 연대체인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청년 시절 마르크스를 만나 [독일이데올로기 초고](1844)와 [공산당선언](1848)을 공동 집필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다.
그는 마르크스 사후 자본주의 본격적 축적으로 인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목도했고, 전세계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경제주의'의 오명도 받고 있다. 결국, 만년의 엥겔스는 그 제자 칼 카우츠키가 그랬듯, '과학적 사회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면서 사상적 여로를 마치는데, 그의 중간 시기는 온갖 '사이비'에 맞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옹호한 '철학'적 투쟁의 시간이었다.

1888년 만년의 엥겔스는 칸트로 시작하여 헤겔로 완성된 '독일고전철학(사변철학-관념철학)'은 포이어바흐라는 반쪽짜리 '유물론자'를 거쳐 진정한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담지자인 독일노동계급에게 "상속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져 투쟁한 '철학의 역사'를 정리하고 '존재'보다 '정신'이 일차적이라는 '관념론'이 객관적 사회경제체제의 토대 위에서 '존재'가 '정신'보다 일차적이라는 '유물론'에 의해 대체되고 "상속"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엥겔스가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승리'로 결론지을 수 있었던 강력한 근거는 19세기 당시의 자연과학의 발전이었다.


"'잉여가치'의 발견... 부불노동을 전유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및 이로 인해 완성된 노동자 착취의 기본형태라는 것, 자본가가 가령 노동자의 노동력을, 그것이 상품으로서 상품시장에서 갖고 있는 충분한 가치 그대로 구입하였을 경우에도 그는 지불한 대가 이상의 가치를 노동자에게서 회수한다는 것, 그리고 이 '잉여가치'가 결국에는 가치총액이 되는 바, 유산자계급의 수중에 부단히 축적되는 대자본의 출처는 바로 여기('잉여가치')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상의 두 가지 위대한 발견, 즉 '유물론적 역사관'과 '잉여가치'를 통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의 폭로야말로 마르크스의 공적이다. 이것들이 발견됨으로써 '사회주의'는 하나의 '과학'이 되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과학'을 그 모든 개별들과 그것의 총체적 연관 속에서 더욱 완성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 F. Engels, [반뒤링론], <1장 개관>, 1878.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위대한 발견으로 '잉여가치'와 '유물론적 역사관' 두 가지를 든다.

'노동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상품'으로서 '노동의 교환가치', 즉 '노동력의 가치(가격)'만을 임금으로 지불한 자본가가 지불하지 않는 '노동의 가치'인 '부불노동'으로 '잉여가치'를 남기는데, 이 과정이 바로 '착취'다. '착취'는 자본주의에서 '합법적' 과정이며, 새로운 사회에서는 철폐되어야 할 것인데, 자본주의에서 '불법적'인 것은 '착취'가 아니라 '수탈'이다(김규항, [혁명노트]). '착취'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력의 교환가치(가격)'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한 자본주의 본질로 현상하며, '수탈'은 20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과 억압적 지배에서 보인 '강화된 불법착취'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유물론적 역사관'은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도식화'되었는데, 인류의 사회역사에는 '역사적 유물론', 그 외 자연 전체에 대한 사유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보면 되는 바, 결국 양자의 공통지점은 '유물론'이라는 '철학'이다.
청년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뒤집어 유물론적으로 해석한 루드비히 포이어바흐가 '사이비 유물론자'임을 '11개 테제'로 남겼는데, 그 내용은 '진정한 유물론'과 '해석'이 아닌 '변혁'의 철학이었다.
엥겔스는 1878년에 당시 '사이비' 사회주의자이자 '강단 좌파'인 오이겐 뒤링이라는 인물의 주장들을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 분야로 나누어 조목조목 인신공격과 각종 역설(또는 '욕설')을 섞어 비판한다.
특히, 1부 '철학'의 영역에서는 당시 따로 집필 중이었을 [자연변증법](1873~1883)의 자료들을 가지고 비판한 듯 한데, [자연변증법]은 19세기 당시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발전을 토대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철학'이 객관적 자연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일종의 '필연의 증명' 작업이었다. 
[반뒤링론]에서 엥겔스는 '자연철학'으로서 수학(미적분), 우주발생론, 물리학, 화학, 유기체(생물학), 그를 기반으로 파생되는 '도덕'과 '법', 그리고 '양질전환'과 '부정의 부정'으로서 '변증법' 등의 영역에서의 무지막지한 비판으로 '오이겐 뒤링씨'를 깔아 뭉개버리고 있다.

엥겔스의 [반뒤링론]은 마르크스의 푸르동(공상적 사회주의자) 비판([철학의 빈곤])의 '논쟁 저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그 영역은 '온 우주'를 망라하는 바, '변증법적 유물론'을 수호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이는 저작이다. 
이러한 '논쟁을 목표로 쓴 저작'의 전통은 1908년 '유물론'의 외피를 쓴 오스트리아 마흐주의를 비슷한 방식으로 비판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컨대, '국가'라는 것은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일정한 발전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국가'는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자기 모순에 빠졌으며, 자기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불상용적인 대립으로 분열했다는 것을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대립, 즉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에서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하려면 외관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즉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를 '질서'의 한계 내에 유지시킬 권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로부터 발생했으나, 그 위에 올라서서 사회와는 더욱더 멀어져 가는 권력이 바로 '국가'이다."
- F. Engels,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1884.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원천,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에서 엥겔스는 원시 씨족사회를 연구하던 루이스 모건의 [고대사회](1877)라는 저서를 바탕으로 씨족에서 부족, '원시공동체'에서 생산력 발전의 과정 속 '잉여생산'과 '사유재산'의 축적, '계급사회'의 등장과 그 결정체인 '국가'의 기원을 추적한다. 
이 고전적 '국가론'은 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주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으로 이어진다.


[자연변증법]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의 거대한 영역에서, '사이비 사회주의자' 뒤링을 잠시 비판한 [반뒤링론], 씨족사회에서 '국가'의 기원까지 추적한 '역사적 유물론'을 거쳐 만년의 엥겔스는 '과학적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 "독일고전철학의 상속자"인 노동계급에게 '고전적 관념론 철학의 종말'을 고한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은 다름아닌 [자연변증법]이라는 방대한 연구, 그 '빅 히스토리'를 위한 '메모'였다.

"... 변증법적 자연관이 모든 자연철학을 불필요하고 불가능하게 만들었듯이 이러한 견해는 역사의 영역에서 '철학의 종말'을 고한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어느 곳에서든 우리 두뇌로부터 상호연관을 발명해 내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 속에서 상호연관을 발견하는 문제이다. 자연의 역사로부터 추방된 '철학'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순수한 사유의 영역, 즉 사유과정 자체의 법칙에 관한 이론인 '논리학'과 '변증법'만이 있을 뿐이다...
사회의 역사 전체를 이해하는 관건은 노동의 발전사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새로운 경향은 처음부터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독일 노동계급운동은 독일고전철학의 '상속자'이다."
-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1888.

엥겔스에 의하면, 헤겔은 [법철학]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고 했는데 '현실'을 '절대이성'화하는 '보수성'이 있었던 한편으로, 그 다음 명제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이라면서 '필연'의 변화에 '이성'을 포함시켜 '진보성'의 맹아를 품고 있다. 
포이어바흐는 자연철학에서는 헤겔을 뒤집었으나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하지 못해 '철학'에서는 '인류의 사랑'만을 발견했다. 
결국, '독일고전철학'이라는 '관념론' 일체는 다수 노동계급의 각성과 함께 '종말'을 고하면서, 노동계급운동은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으로 "상속"받는다.

***

1. [반뒤링론(Anti-During)](1878), F. Engels, 김민석 옮김, <새길>, 1987.
2.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 F. Engels. 김대웅 옮김, <아침>, 1987.
3.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4.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V. I. Lenin,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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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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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혁명'은 '안단테'로!
- [혁명노트], 김규항, <알마>, 2020.



"연민은 자선을 낳고 분노는 싸움을 낳으며 다시 그 둘은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자선도 싸움도 별 소용이 없다는 깨우침을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가 된다. 말하자면 사회주의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는 '정서가 생략된 과학'의 문제이기도 했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과 지성에 대한 모욕이며, 오늘 인류가 미래를 희망하는 일이란 바로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의 문제다... 대체 우리가 새로운 사회주의를 처음 시작할 자격을 갖지 않아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과거의 실패가 짐스럽다면 사회주의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임을 잊지 말고 느리게 '안단테'로 가면 된다. '안단테'라면. 우리가 혁명을 회피할 이유는 정말 적어진다. 안 그런가."
- 김규항, [B급 좌파], <혁명은 안단테로>

사회문화비평가이자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씨네21]에 기고한 칼럼들을 모아 [B급 좌파]로 엮은 바 있다.
'386' 세대로 불렸던 지식인 엘리트들이 80년대에 군부독재에 저항하면서 '체제 변혁'을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열성적으로 수입하고 소개하다가 동구권 공산주의 진영의 몰락을 맞아 '사회주의' 자체의 문제로 규정하고 일제히 청산한 행태는 그의 주된 비판의 대상이다. 아마도 그 엘리트들은 스스로를 'A급 좌파'라 생각했겠지만, 김규항이 보기에는 "앙상한 사회주의자들"에 불과했다.
이론으로만 향유했을 뿐, 다수 노동인민대중의 '정서'를 재료로 하지 못했던 'A급'보다는 다수대중의 'B급'이 훨씬 혁명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역사는 무수히 많다.
"정서가 생략된 과학"으로서 "연민과 분노가 사라진 이론과 사상"은 결국 다수 인민에게 무섭고 살벌한 얼굴로 다가가곤 했는데, 이러한 'A급'들과 '스탈린주의'는 쌍둥이였다.


"변화는 '질문의 재개'로 시작한다. 예컨대 다들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를 맞아...'라 말할 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인간이 그것들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것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질문이다. 다들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어지는 세상를 맞아...'라고 말할 때 '모든 인간은 노동할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줄어야 할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시간이 아닌가?' 질문이다... 또한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의 재개'다. '물신세계'에서 인간은 모든 '첫 질문'을 잊는다... '첫 질문의 재개'를 통해 개인은 시스템 속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 김규항, [혁명노트], <113>, 2020.

거의 이십 년 정도 지나 'B급 좌파' 김규항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다시 연구한 후 돌아왔다. 그 동안은 아마도 '사회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전향하여 대중들에게 훈계질하던 '386'에서 어느덧 '486', '586'으로 이론적으로는 '진화'를 표방하나, 인간적으로 '퇴화'한 지식인 엘리트들과 지속적으로 투쟁해 왔을 것이다. 이제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가 질곡에 빠진 2000년대 후반부터 아마도 1914년의 위기 상황에서 레닌이 '헤겔 철학'을 그 근본부터 연구하고 '철학노트'를 작성했듯이, 김규항은 마르크스 [자본론]을 더 철저히 파고들어 2020년에 [혁명노트]를 작성한 듯 하다.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에 의한 '안단테적 혁명'은 이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이행되는 과정이다.

"'혁명'은 현재 사회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일로만 이해되어왔다. 그렇게 건설된 건 고작 새로운 정부이거나 새로운 지배 시스템이다. 혁명은 건설이자 '이행'이다. 투쟁하는 자유인은 미래에 속한 사람이며 또한 새로운 사회의 담지자다. 투쟁하는 자유인의 삶과 생활양식에 선취된 새로운 사회의 조각들이 현재 사회에 균열을 만들며 새로운 사회로 이행해간다. 누군가 새로운 사회가 정말 가능한가 물을 때, 투쟁하는 자유인은 먼저 묻는다. '내 안에 새로운 사회가 있는가?'"
- 김규항, [혁명노트], <119>

비인간적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세상'은 단 번에 오지 않는다. '투쟁하는 자유인'은 더 이상의 '노예'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스파르타쿠스처럼 주체적인 '자기해방'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며, 현재 시스템에서 볼 수 없는 '미래의 것'을 조금씩 선취하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 일상을 만들어간다. 
'내 안의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혁명'이 없다면, 지배계급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으며, 그 어떤 '개혁'도 없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계급타협' 또한 '혁명'의 이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혁명노트]는 '혁명' 외에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본모순은 물론, '인간들간의 사회적 관계가 상품이라는 물적 관계로 표현'되는 '물신성'을 강조한다. 김규항에게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에서 가장 주목할 개념이 바로 '물신성(Fetishism)'이다.

"'물신성'은 피지배계급과 지배계급을 막론하고 사로잡혀 살아가는 '자본주의적 환상'이다. '물신성'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원자인 상품에 실재한다. '상품 생산 사회'로서 자본주의가 지속하는 한 '물신성'은 지속하며, '물산성'이 지속하는 한 자본주의도 지속한다."
- 김규항, [혁명노트], <61>

마르크스 [자본론]은 '상품'이라는 '개별성'의 '자기운동'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라는 '보편성'을 보여주는 헤겔식의 변증법적 서술방식에 따라 '자본주의'를 분석하는데, 인간의 '노동(력)' 조차도 '상품'이다. 그리하여 실제 '노동의 (사용)가치'는 은폐되고 '노동력의 교환가치'만이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 '인적 관계' 일체가 '물적 관계'로 대체되는데, 이것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말한 '물신성'의 단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계급'을 이미 '인격화된 자본'이라 정의한 바 있으나, 현대 자본주의는 마르크스 시대에는 볼 수 없는 현상, 즉 지배계급이 '자본가'가 아니라 '자본' 자체이며, 계급을 망라하여 시스템 내 모든 사람이 '물신성'에 사로잡혀 있다. 'A급 좌파' 조국의 '물신성'을 우리는 최근에 본 바 있다.


결국, '혁명'은 시스템의 전복이나 새로운 정부로의 대체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첫 질문을 재개'하는 '철학'의 복원과 함께 '물신성'을 극복하고 '노예'를 벗어나고자 하는 '투쟁하는 개인'들의 끊임없는 '자기해방'을 통해 선취되는 것이다.
체제가 인간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이행 과정'에서 각성한 인간들에 의해 체제가 극복되는 것이다.

'혁명'은 '안단테'로, 투쟁하고 각성하는 개인들의 '연대'다.

***

1. [혁명노트], 김규항, <알마>, 2020.
2. [B급 좌파], 김규항, <야간비행>,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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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노트
김규항 지음 / 알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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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혁명'은 '안단테'로!
- [혁명노트], 김규항, <알마>, 2020.



"연민은 자선을 낳고 분노는 싸움을 낳으며 다시 그 둘은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자선도 싸움도 별 소용이 없다는 깨우침을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가 된다. 말하자면 사회주의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는 '정서가 생략된 과학'의 문제이기도 했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과 지성에 대한 모욕이며, 오늘 인류가 미래를 희망하는 일이란 바로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의 문제다... 대체 우리가 새로운 사회주의를 처음 시작할 자격을 갖지 않아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과거의 실패가 짐스럽다면 사회주의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임을 잊지 말고 느리게 '안단테'로 가면 된다. '안단테'라면. 우리가 혁명을 회피할 이유는 정말 적어진다. 안 그런가."
- 김규항, [B급 좌파], <혁명은 안단테로>

사회문화비평가이자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씨네21]에 기고한 칼럼들을 모아 [B급 좌파]로 엮은 바 있다.
'386' 세대로 불렸던 지식인 엘리트들이 80년대에 군부독재에 저항하면서 '체제 변혁'을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열성적으로 수입하고 소개하다가 동구권 공산주의 진영의 몰락을 맞아 '사회주의' 자체의 문제로 규정하고 일제히 청산한 행태는 그의 주된 비판의 대상이다. 아마도 그 엘리트들은 스스로를 'A급 좌파'라 생각했겠지만, 김규항이 보기에는 "앙상한 사회주의자들"에 불과했다.
이론으로만 향유했을 뿐, 다수 노동인민대중의 '정서'를 재료로 하지 못했던 'A급'보다는 다수대중의 'B급'이 훨씬 혁명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역사는 무수히 많다.
"정서가 생략된 과학"으로서 "연민과 분노가 사라진 이론과 사상"은 결국 다수 인민에게 무섭고 살벌한 얼굴로 다가가곤 했는데, 이러한 'A급'들과 '스탈린주의'는 쌍둥이였다.


"변화는 '질문의 재개'로 시작한다. 예컨대 다들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를 맞아...'라 말할 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인간이 그것들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것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질문이다. 다들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어지는 세상를 맞아...'라고 말할 때 '모든 인간은 노동할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줄어야 할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시간이 아닌가?' 질문이다... 또한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의 재개'다. '물신세계'에서 인간은 모든 '첫 질문'을 잊는다... '첫 질문의 재개'를 통해 개인은 시스템 속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 김규항, [혁명노트], <113>, 2020.

거의 이십 년 정도 지나 'B급 좌파' 김규항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다시 연구한 후 돌아왔다. 그 동안은 아마도 '사회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전향하여 대중들에게 훈계질하던 '386'에서 어느덧 '486', '586'으로 이론적으로는 '진화'를 표방하나, 인간적으로 '퇴화'한 지식인 엘리트들과 지속적으로 투쟁해 왔을 것이다. 이제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가 질곡에 빠진 2000년대 후반부터 아마도 1914년의 위기 상황에서 레닌이 '헤겔 철학'을 그 근본부터 연구하고 '철학노트'를 작성했듯이, 김규항은 마르크스 [자본론]을 더 철저히 파고들어 2020년에 [혁명노트]를 작성한 듯 하다.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에 의한 '안단테적 혁명'은 이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이행되는 과정이다.

"'혁명'은 현재 사회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일로만 이해되어왔다. 그렇게 건설된 건 고작 새로운 정부이거나 새로운 지배 시스템이다. 혁명은 건설이자 '이행'이다. 투쟁하는 자유인은 미래에 속한 사람이며 또한 새로운 사회의 담지자다. 투쟁하는 자유인의 삶과 생활양식에 선취된 새로운 사회의 조각들이 현재 사회에 균열을 만들며 새로운 사회로 이행해간다. 누군가 새로운 사회가 정말 가능한가 물을 때, 투쟁하는 자유인은 먼저 묻는다. '내 안에 새로운 사회가 있는가?'"
- 김규항, [혁명노트], <119>

비인간적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세상'은 단 번에 오지 않는다. '투쟁하는 자유인'은 더 이상의 '노예'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스파르타쿠스처럼 주체적인 '자기해방'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며, 현재 시스템에서 볼 수 없는 '미래의 것'을 조금씩 선취하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 일상을 만들어간다. 
'내 안의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혁명'이 없다면, 지배계급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으며, 그 어떤 '개혁'도 없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계급타협' 또한 '혁명'의 이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혁명노트]는 '혁명' 외에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본모순은 물론, '인간들간의 사회적 관계가 상품이라는 물적 관계로 표현'되는 '물신성'을 강조한다. 김규항에게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에서 가장 주목할 개념이 바로 '물신성(Fetishism)'이다.

"'물신성'은 피지배계급과 지배계급을 막론하고 사로잡혀 살아가는 '자본주의적 환상'이다. '물신성'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원자인 상품에 실재한다. '상품 생산 사회'로서 자본주의가 지속하는 한 '물신성'은 지속하며, '물산성'이 지속하는 한 자본주의도 지속한다."
- 김규항, [혁명노트], <61>

마르크스 [자본론]은 '상품'이라는 '개별성'의 '자기운동'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라는 '보편성'을 보여주는 헤겔식의 변증법적 서술방식에 따라 '자본주의'를 분석하는데, 인간의 '노동(력)' 조차도 '상품'이다. 그리하여 실제 '노동의 (사용)가치'는 은폐되고 '노동력의 교환가치'만이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 '인적 관계' 일체가 '물적 관계'로 대체되는데, 이것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말한 '물신성'의 단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계급'을 이미 '인격화된 자본'이라 정의한 바 있으나, 현대 자본주의는 마르크스 시대에는 볼 수 없는 현상, 즉 지배계급이 '자본가'가 아니라 '자본' 자체이며, 계급을 망라하여 시스템 내 모든 사람이 '물신성'에 사로잡혀 있다. 'A급 좌파' 조국의 '물신성'을 우리는 최근에 본 바 있다.


결국, '혁명'은 시스템의 전복이나 새로운 정부로의 대체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첫 질문을 재개'하는 '철학'의 복원과 함께 '물신성'을 극복하고 '노예'를 벗어나고자 하는 '투쟁하는 개인'들의 끊임없는 '자기해방'을 통해 선취되는 것이다.
체제가 인간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이행 과정'에서 각성한 인간들에 의해 체제가 극복되는 것이다.

'혁명'은 '안단테'로, 투쟁하고 각성하는 개인들의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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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명노트], 김규항, <알마>, 2020.
2. [B급 좌파], 김규항, <야간비행>,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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