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 천재 동양 철학자들의 생각의 향연을 듣다
이중텐 지음, 이지연 옮김 / 보아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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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기에 '백가', 활약했기에 '쟁명'
-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이중톈, 2006.


"아마도 가장 먼저 한 사람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는 '제자백가(諸子百家)' 가운데 첫번째 인물이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기도 하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은 바로 그로 인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종결되었다. 그는 선대의 유업을 계승해 발전시켜 미래를 개척했다. 또한 그는 새로운 기풍의 선구자이면서 뭇사람의 비판의 표적이었다. 넘어설 수 없지만 반드시 넘어서야 할 대상이었고, 말로 다 할수 없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누구일까? 바로 '공자'다."
-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머리말>, 이중톈, 2006.


왜 국역본 제목을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로 지었을까.

공자로부터 시작해서 유가와 묵가, 유가와 도가, 유가와 법가의 사상 비교를 서술한 책의 중간을 넘어설 때까지도 나는 궁금했다.

중국의 대중 역사학자 이중톈(易中天)의 [선진제자백가쟁명(先秦諸子百家爭鳴)](2006)은 '선진(先秦)', 즉 진(秦)의 중국 통일 이전인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사상투쟁 과정을 서술하며 공자의 유가를 중심으로 한 '다양성의 조화'를 강조한 책이다. 
이후 이중톈의 중국 통사 시리즈 6권인 [백가쟁명(百家爭鳴)](2014)에서는 그 특유의 서술기법에 따라 장황하지 않게 각 사상학파의 특징만 짚어서 설명하는 원숙함을 보여주게 되는데, 아마도 2006년에 이미 [선진제자백가쟁명]을 심도 깊게 쓴 바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중톈도 좋아하고, 명목상 '주간 문사철'이라 하여 '인문학'적 서평을 앞세운 내가, '인문학'이라는 제목에 끌려 읽게된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이 왜 '인문학'인 건지 이 책의 <4장>까지 읽으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의아했던 거였다.


"... 그래서 만약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인도주의'를 체현한 것이고, '신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이성적 태도'의 발현이라고 한다면, '사람을 신으로 보는 것'은 '도덕정신'의 표현이다. '인도주의', '이성적 태도', '도덕정신' 이 세 가지를 합쳐 '인간을 근본으로 삼는 것(人本主義)'이라 한다."
-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5-2. 사람을 근본으로 삼다>, 이중톈, 2006.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쟁명(사상투쟁)의 시작은 공자의 '인애'와 '덕치'였다. 

주나라 문명기초를 세운 주공 단을 동경하며 춘추 열국의 분열을 극복하려던 공자의 유가적 처방은 묵가와 도가, 법가 등에 의해 집중 포화를 받듯 반박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근 3백년에 걸친 '세기를 뛰어넘는 거대한 논쟁', 즉 '선진제자백가쟁명'이었던 것이다([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1-6>).

유가가 당시의 귀족을 대변하며 가까운 친족부터 사랑하면서 타인에게 획장하는 '인애(仁愛)'를 주장한 것에 반대하여, 묵가는 사해평등 원리에 기초한 '겸애(兼愛)'로 맞섰다. 그러나 수도승 같은 묵자의 삶과 주장은 '의협'과도 같아 높은 이상향을 제시했음에도 일반인들이 감히 실천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이중톈은 묵가가 '사회주의'적이기는 했다지만, "그의 사회주의는 빈곤의 사회주의, 공상의 사회주의, 전제적 사회주의"로서 빈곤과 공상, 전제독재는 사회주의가 될 수 없으므로 "그래서 묵자의 주장은 사회주의가 아니다(같은책, <6-2>)"라고 강조한다. 주나라보다 더 오랜 과거의 '겸애'와 '평등'을 동경했던 묵가는 지고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금욕했고 역설적으로 20세기 현대의 민주집중제 같은 고대의 전제적 독재권력을 상정했기에 사회주의적 지향에도 불구하고 진짜 사회주의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양주로부터 노자와 장자로 이어지는 도가는 한 발 더 나아가 태고적 원시 또는 씨족사회의 '완전평등사회'를 지향한다. 도가는 기본적으로 인류 문명 이래 뭔가 해보려는 일체의 노력들을 '유위(有爲)'로 보며, 이를 일체 거부하는 '무위(無爲)'의 삶을 지향한다. 공산주의의 역사유물론이 역사발전단계에서 최초의 '원시공산제'를 상정했던 것처럼 '완전평등'을 지향한 듯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도가의 주장은 '평등'보다는 '자유'였다. 문명이든 과학이든 진보든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인 것이다. '무위'의 끝은 바로 철저한 개인의 '자유'다. '개인의 자유가 만인의 자유의 기본전제'가 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로서의 이상사회를 그리는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처럼 오히려 도가가 묵가보다 더 '사회주의'적인 경향도 있다.


"...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기 서로 논쟁했던 이유... 첫째는 '사고의 성숙'이다. 사고력이 성숙됨으로써 봉건, 종법, 예악의 세 가지 중요한 제도를 창안해 이전 사람들과 다른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 두번째는 '사회의 격변'이다. 국가제도, 정치제도, 사회제도, 그리고 문화제도 모두가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다수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이 필요했다. 세번째는 '사인(士人)의 부상'이다. 사상가를 배출할 수 있는 계층, 즉 '사인'들이 이미 존재했다. 이들은 이때 가장 자유롭고 가장 활약한 중심 역량이었다. 자유로웠기 때문에 '백가(百家)'가 존재할 수 있었고, 활약할 수 있었기에 '쟁명(爭鳴)'이 가능했던 것이다."
-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5-5. 말단 귀족, 사인의 부상>, 이중톈, 2006.


이렇듯, 유가와 묵가, 도가는 그 사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랜 옛날을 동경하며 이상사회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여기에는 묵자와 맹자처럼 인간이 '선(善)'을 지향하거나 그 가능성을 담지한다는 기본전제가 있었다. 그러나 전국시대 후기의 법가는 이런 전제 자체를 뒤집는다. 우리가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로 알고 있는 이 전제는 이중톈에 의하면 그리 단순하지도 않고 막상 그 사상가들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규정한 적도 없다지만, 공자와 맹자에 이어 제자백가의 3대 성인으로서 순자의 제자인 한비자가 집대성한 법가는 이상향 따위는 집어치우고 당장의 현실만을 보았다. 서로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전국시대에는 오로지 군왕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권세와 술수, 제도와 법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민주적 '법치'와는 확연히 다른 기원전 중국 전국시대의 '법치'다. 이렇게 법가는 유가의 너그러운 '덕치'를 잔혹한 '법치'로 대체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중요한 주체가 하나 있다.
바로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사인(士人)'이었다.
이들은 왕족이나 귀족 같은 적자와 차자 등의 지배계급의 직계와 거리가 먼 서자 또는 방계로부터도 또 한참 더 내려온 후손들로서 세습 봉토도 없고, 부동산도 없으며, 농사나 상공업에도 종사할 수 없어 먹고 살기 위해 '지식'을 팔아야 하는 모종의 참모 또는 모사들이었다. 이렇게 선진시대 제자백가의 모든 학파는 이런 '사인'들이 그 주체가 되었는데, 유가는 귀족선비 '문사', 묵가는 의협선비 '무사', 도가는 은둔선비 '은사', 그리고 법가는 군주의 참모 '모사'였던 것이다.

결국, 난세를 맞은 '지식인'들이 '제자백가쟁명'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러한 지식인 선비 '사인'들은 다양성을 표현하는 '자유'로 인해 '백가(百家)'였으며, 국경을 건너고 나라를 초월하는 '활약'을 통해 '쟁명(爭鳴)'했다.

이제, 이 책의 <1장> 공자부터, <2장> 유가와 묵가, <3장> 유가와 도가를 거쳐 <4장> 유가와 법가의 '쟁명'과 그 사상적 차이를 읽다가 보니, 조금씩 [선진제자백가쟁명]에 담긴 '인문학'의 정체를 알게 된다.

즉, 사상이란 시대를 앞설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중국 고대 최초의 국가 하나라는 권력의 정당성을 위해 천명을 구했지만 아직 부족사회로서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인도주의'의 길을 열었고, 은(상)나라는 귀신을 믿은 나머지 '신을 사람처럼' 보았지만 '이성적 태도'의 시작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인간을 귀신에게 바치는 은나라의 '인신공양제'를 전격 폐지하고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세운 주나라 주공 단의 업적으로 비로소 '사람이 신처럼' 여겨지게 되는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도덕정신'과 '인문주의'가 등장하게 되는 중국 역사문명 단계가 그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선진제자백가쟁명]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는 공자는 바로 이 주나라 문명, '인본주의' 또는 '인문주의'의 문을 열었던 '창시자' 주공 단의 부활을 꿈꾸었던 사람으로 중국 사상사에서 기원전에 이미 '르네상스(인문학의 재부흥)'를 재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역시, '인문학'의 끊임없는 부활을 시도하는 '르네상스(Re-naissance)'는 인류 역사가 존속되는 한 언제든 다시 등장하는 주요한 주제거리가 된다.


"... 선진(先秦) 제자(諸子)의 사상문화 유산을 총결... 묵가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두어 이상사회의 모습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평등, 호혜, 박애'다. 도가는 '인생'에 관심을 두어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바로 '진실, 자유, 관용'이다. 법가는 '국가'에 관심을 두어 치국의 이념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공개, 공평, 공정'이다. 유가는 '문화'에 관심을 두어 핵심 가치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인애, 정의, 자강'이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묵가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아름다운 이상을, 도가는 인생의 길을 제시하는 지혜의 결정을, 법가는 변혁에 대응하는 사상자원을, 유가는 민심을 모으는 가치체계를 남겼다.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정신적 자산이다. 우리가 이러한 유산을 '추상적으로 계승'할 때 인류의 '공동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공동의 이상'이란 바로 '조화'다."
-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6-6. 영원히 꺼지지 않을 위대한 정신의 횃불>, 이중톈, 2006.


이중톈은 [선진제자백가쟁명]을 총결산하면서 인류의 '공동의 이상'으로서 '조화'를 강조한다. 시대의 격변을 배경으로 한 사상의 다양성은 조화롭게 통일되어야 하는데, 그 방법론은 분석과 재해석을 통한 '추상적 계승'(같은책, <6-1>)인 것이다.

그렇게 이제, 
이중톈의 [창시자(奠基者)](2013)를 펼칠 때가 되었나 보다.

아마도,
그곳에 중국 역사 속 '인문학'의 원초적 배경이 있을는지도 모를테니.

***

1.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先秦諸子百家爭鳴)](2006), 이중톈(易中天), 이지연 옮김, <보아스>, 2015.
2. [백가쟁명(百家爭鳴) - 이중톈 중국사 6](2014),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5.
3.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이상수 지음, <길>, 2001.
4. [상나라 정벌(翦商/전상/Conquest of the Shang Dynasty)](2022), 리숴(李碩), 홍상훈 옮김, <글항아리>, 2024.
5. [창시자(奠基者;전기자) - 이중톈 중국사 3](2013),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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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음모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5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박계수 옮김 / 한길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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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한계에 부딪힐 때
- [파라오의 음모], 필리프 반덴베르크, 1990.


이제, 반덴베르크와 작별할 시간이다.

독일의 역사추리작가 필리프 반덴베르크(Philipp Vandenberg : 1941~)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이 2025년 5월 초였으니, 이제 한달 반 정도를 그의 책을 들고 다니며 밤낮으로 함께 했다. 
그리고 그의 책이 우리 말로 번역된 것이 총 4권 뿐이니, 이제 더 함께 다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필리프 반덴베르크에 관한 정보는 우리나라에 그리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독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하다가 기자직에 잠시 종사했고, 1973년에 '파라오' 관련 소설을 처음 발표한 후 1975년부터 본격적인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왔다는 그의 삶은, 실은 내가 관심있는 모든 분야가 녹아있는 삶 그 자체였다. 나도 문학을 전공했고 이십대에 소설을 쓰고 싶었으며, 미술사에 관심이 깊은데다가 하물며 어린 시절 잠시 꿈이 고고학자였다. 그리고 지금의 꿈은, 그냥 인류의 고전들을 중심으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끊임없이 글도 쓰다가 또 여가로 종이접기나 하면 좋겠다는 것이니, 종이접기 취미만 뺀다면 필리프 반덴베르크는 정확히 나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종이접기에 너무 매진하다가 4월 들어 갑자기 읽을 책이 궁색해졌고 그래서 들어가 보았던 아버지의 오랜 책장에서 발견한 시오노 나나미의 [세 도시 이야기]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필리프 반덴베르크를 알게 되지 못했을 거다. 아버지 책장에 있던 [세 도시 이야기]를 읽다가 그 출판사인 <한길사>의 책소개 부록에서 반덴베르크를 알게 되었으니까, 결국 필리프 반덴베르크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인도로 만나게 된 거였다.
아버지, 잘 계시지요? ^^*

우리나라에 소개된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소설은 내가 읽은 순서대로 하면, [미켈란젤로의 복수](1988)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실](1993), [구텐베르크의 가면](1998)과 마지막으로 내가 읽은 [파라오의 음모](1990), 
이렇게 4권이다.

2000년도에 번역된 [미켈란젤로의 복수]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실]은 로마 바티칸 가톨릭 교황청이 은폐하려는 '제5복음서'의 존재를 암시하는 종교적 '이단' 이야기, 
2001년도에 번역된 [구텐베르크의 가면]과 [파라오의 음모]는 기독교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인류 문명적 '이단'에 관한 소설이다.

[성경]이 전하는 정통 '4대 복음서'와 달리,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제5복음서'의 숨은 저자처럼, 
[파라오의 음모](1990)에서도 숨어서 결코 나오지 않는 인류 문명의 '이단'적 인물이 하나 등장한다.

그가 바로,
'임호테프'다.


"'임호테프'는 의사이며 설계사, 그리고 사제이면서 현자였어. 그는 기원전 2,500년, 파라오 조세르가 통치하던 때에 살았지. 그리고 피라미드의 창시자로 평가받으며 가장 오래된 이집트의 지혜론도 그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는 파라오 조세르를 위해 그의 신분에 걸맞는 무덤, 즉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를 건축했단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생각하지. 이 피라미드 주위에서 고고학자들이 그의 이름이 들어있는 수많은 조각들을 발견했어. 그래서 이 근처에서 그의 묘지가 있을 거라는 추측이 나오곤 하지. 다른 말로 하자면 신의 묘지지!"
- [파라오의 음모], <고양이 낙인의 비밀> 중 '크리스토퍼 셸리의 설명', 필리프 반덴베르크, 1990.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첫 작품이 '파라오' 관련이었다는데, 아마도 이 책 [파라오의 음모(Das Pharao-Komplott)]가 아닐까 나는 추측한다. 1973년에 그 동안 고대 이집트 유물 발굴과 관련하여 통속적으로 전해지던 '파라오의 저주'를 모티브로 한 소설을 썼고, 1990년에 이 작품을 수정증보한 게 아닐까 하는. 아마도 관련 정보를 더 찾지 못한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소설 속 본문이 되는 일기의 저자인 이집트인 오마르 무사를 쫓아가게 된 마지막 장 <흔적이 끝나는 곳>의 말미가 '1990년 8월'인 것이 1973년에 예측한 미래 시간인지, 1990년에 오마르의 일지의 앞뒤로 덧붙인 소설 속 화자의 기록인지는 불분명하다. 아무튼, 내가 읽은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역사추리소설 4권 모두 모종의 신비로운 화자의 회상이나 기록을 통해 본문이 전개되는 '액자식 구성'이라는 일관성은 있다.

역사추리소설이라 각 이야기 속에는 실존인물들이 나온다. [파라오의 음모]에서는 이집트의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 : 1874~1939)가 등장한다. 영화 [미이라]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주인공처럼 대학에서 정식으로 고고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17세부터 이집트로 가서 꾸준히 유적 발굴의 경험을 쌓고 1922년 결국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하면서 '이집토마니아' 전성기를 열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모든 고고학적 문명 유산들이 그럴 것이지만, 고대 지배계급의 무덤은 온갖 보물로 가득했을 것이고 현대 고고학자들을 후원했던 부자들의 동기가 그렇듯, 도굴은 도둑질만큼 인류의 오랜 문화적 습성이었을 게다. 실제로 하워드 카터가 고대 이집트 무덤을 발굴할 당시에도 유명한 파라오(왕)의 무덤들은 발견해 봤자 이미 오래전에 도굴된 상태였고 그나마 투탕카멘 같은 요절하여 역사적으로 존재감이 거의 없던 파라오의 무덤은 도굴꾼들 조차도 무시해버린 무덤이었다. 오랜 세월 잊혀진 유물의 문을 수천 년만에 처음 열었기에 하워드 카터와 투탕카멘이 현대에 더욱 유명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임호테프'가 등장한다.
현대의 '도굴업자'인 고고학자와 그 후원자를 비롯한 역사 속 모든 '도굴꾼'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말이다.

소설 [파라오의 음모] 속 주인공 오마르를 하인으로 고용하여 고고학적 경험을 겪게 해주는 영국의 학자이자 첩자 크리스토퍼 셸리가 위에서처럼 소개하듯 고대 이집트의 의사이자 건축가, 기술자인 동시에 철학자로서 계단식 피라미드의 설계자로 알려진 '임호테프'는 파라오의 무덤 속 문장을 통해 왕의 보물을 훔친 자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무서운 주체로 나타난다. 하워드 카터의 투탕카멘 발견 직후 감염으로 죽은 카터의 오랜 후원자 카나번 경의 이야기는 반덴베르크의 [파라오의 음모]에도 등장한다. 발굴자 카터 본인은 64세까지 살았지만 후원자 카나번의 저주받은 죽음의 배후에는 임호테프가 고대에 이미 발견한 '바이러스'가 무덤의 침입자들을 공격했다는 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였던 소설 속 배경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의 분할과 재분할 문제를 두고 각축을 벌이던 때다. 
소설 속 일기의 주인공 오마르 무사는 이집트 대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지역 출신의 낙타몰이꾼 청년으로 영국인 학자이자 첩자 크리스토퍼 셸리의 하인으로 들어가 있던 중 우연히 이집트 극단적 민족주의 단체인 '타다만'의 고양이 낙인이 찍히게 되면서 갖은 고초 끝에 독일의 부자 노스티츠 남작의 후원 아래 실종된 고고학자 에드워드 하트필드를 추적하게 된다. 하트필드는 카터처럼 실존 인물이 아닌 소설 속 가상의 고고학자로서 파라오가 아닌 고대의 실질적 실력자 '임호테프'의 무덤으로 가는 길을 처음 발견하여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발굴함으로써 세계 지배의 길을 열고자 했던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임호테프' 무덤의 비밀을 발견한 실종된 고고학자 에드워드 하트필드를 서로 먼저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지만, 결국 하트필드를 찾은 건 이집트인 오마르 무사였고, 그럼에도 고대 이집트 문명의 설계자 '임호테프'에게로 가는 길을 막은 사람 또한 이집트인 오마르 무사가 된다.


"... 학문은 때때로 신앙이 넘어서는 것을 금하는 그런 인식의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인간은 그것을 통찰할 수는 있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신을 믿는 인간은 자신의 불손을 억제하게 됩니다. 하지만 교만은 인간의 근원적인 성격이죠. 구약에서 이미 인간은 신과 같이 되려고 시도했어요. 그러나 신은 그들에게 벌을 주었죠. '임호테프'는 그런 인간이었어요. 그는 신에게 받은 재능으로 인간에게 금지된 일을 하려고 했던 겁니다. 임호테프는 이집트 사람들이 수백년 동안 상징적인 방식으로 시도했던 것을 현실로 전환시켰죠. 즉 그의 육체 안에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생명력인 '카(영혼)'를 보유하는 것입니다. 그는 영원함의 형태, 즉 영원한 생명을 추구했죠. 그는 비밀스런 약제를 발견했어요. '박테리아', 우리 말로 하자면 '바이러스'죠. 이 문제에 있어서 고대 이집트인의 지식은 우리가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합니다."
- [파라오의 음모], <피라미드의 그림자> 중 '에드워드 하트필드의 설명', 필리프 반덴베르크, 1990.

필리프 반덴베르크와 같이 역시 언론인이자 기자 출신의 역사추리작가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1995)에서는 신비스럽지만 수학적으로 정확한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 등 고대 문명의 비밀이 그보다 더 오랜 고대의 남극대륙으로부터 바다 건너온 선지적이고 구세주적인 문명인이 남긴 일종의 '신의 지문'일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이 피라미드 같은 문명을 개척한 인물로 '임호테프(Imhotep : 기원전 26세기)'라 전해왔고, 소설 [파라오의 음모] 속 가상의 고고학자 에드워드 하트필드는 '임호테프' 무덤을 발견했다가 그 무서운 저주의 비밀을 안고 실종된 것이다.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은밀하지만 치열한 첩보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인 오마르와 나깁 일행이 독일 남작의 후원으로 이집트의 기독교 '이단' 단체인 '콥트교' 수도원에 갇혀있던 하트필드를 구출해 왔으나 하트필드는 그의 유산을 노리던 영국인 첩자 윌리엄 칼라일에 의해 살해당하고 마는데, 하트필드가 죽기 전에 오마르 일당에게 했던 위와 같은 설명은 말 그대로 현대판 '임호테프'의 경고가 된다.

인간은 '신'의 영역을 함부로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어찌 읽으면 구닥다리 같은 잠언은, 
자연과 역사 앞에 선 인간에게 교만해지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임호테프'가 '신' 또는 '자연', 아니면 '순리' 같은 것을 초월하려는 당대의 교만한 자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랬던 그의 무덤은 후세에게 교만하지 말라는 무서운 경고장 자체가 되면서 인간이 함부로 그 '신'의 영역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상징으로 남는다.
이집트인 오마르 일행은 현명하게 이 경고를 듣고 '암호테프'로 가는 길을 스스로 막았고 끝까지 그 비밀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의 후원자인 독일 제국주의자 구스타프 노스티츠 발니츠 남작은 홀로 '임호테프' 무덤을 파내려고 하다가 죽음으로써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만다.

'음모(Komplott)'의 주체가 '파라오(Pharao)'가 아닌 '임호테프(Imhotep)'이기에 [파라오의 음모(Das Pharao-Komplott)]라는 제목과는 정확히 맞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인식의 한계에 부딪힐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암시하는 독일의 역사추리작가 필리프 반덴베르크(Philipp Vandenverg)의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는지.

생사 조차도 알 수 없는 독일의 역사추리작가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역작들과 그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이제, 그의 책들을 떠나 보낸다.

***

1. [파라오의 음모(Das Pharao-Komplott)](1990), Philipp Vandenbeg, 박계수 옮김, <한길사>, 2001.
2. [구텐베르크의 가면(Der Spiegelmacher)](1998), Philipp Vandenberg, 최상안 옮김, <한길사>, 2001.
3. [미켈란젤로의 복수 - 시스티나 천장화의 비밀](1988), Philipp Vandenberg, 안인희 옮김, <한길사>, 2000.
4.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 제5복음서의 숨겨진 비밀](1993), Philipp Vandenberg, 안인희 옮김, <한길사>, 2000.
5. [세상 모든 것의 기원(The Origin of Everything)], 강인욱, <흐름출판>, 2023.
6. [제국주의 -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로서](1916), 레닌, 박상철 옮김, <돌베개>, 1992.
7. [신의 지문 -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Fingerprints of the Gods - The Evidence of Earth's Lost Civilization)](1995), Graham Hancock, 이경덕 옮김, <까치>,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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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Andrews with Shamela and Related Writings: A Norton Critical Edition (Paperback)
Fielding, Henry / W W Norton & Co Inc / 198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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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적 '벌레스크(Burlesque)' 선언
-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1839 / [Joseph Andrews], Henry Fielding, 1741.


6개월 전 읽었던 [두 도시 이야기](1859)는 내가 읽은 찰스 디킨스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아마도 영문학사에서 19세기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 1812~1870)는 16세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꼽히는 영국의 대표적 작가일 것인데, 막상 영문학 전공자인 나는 어릴적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1843)을 읽은 게 그의 작품의 전부였다.

영어가 좋아서 대학의 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영자 신문사를 한 달도 안되어 그만두고 이후 학부 시절 내내 영문학 공부를 하지 않았던 건, 스무살이 되어 보니 '노동계급'의 아들인 내가 '한가하게' 영어 공부나 할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생각해서였다. 시대는 군사독재가 이어지던 1980년대도 아닌, 소련이 무너진 후인 1990년대 초였지만, 자본주의의 전세계적 승리로 인해 '계급 착취'는 더욱 고도화되고 한층 더 정교해졌다고, 나는, 그리고 '우리'라는 것이 당시에 있었다면, 소수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판단했다.

말이 길었질 뻔 했지만, 결국 영문학과를 다니면서도 나는 찰스 디킨스를 읽지 않았다. 아니 읽을 생각을 못했다. 한때 '사실주의' 소설에 빠지게 되었던 이십대 중후반의 시절에서 조차도 그랬다.

그러다가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는 유명한 첫 문장에 이끌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펼쳤을 때는, 난 이미 '사실주의' 소설을 언급하던 문학청년이 아니라 오십줄에 접어든 회사원 아저씨였다. 그리고 [두 도시 이야기]에 관한 내 서평 블로그에 찰스 디킨스 연구자 한 분이 댓글로 올린 설문에 답하는 동안, 찰스 디킨스를 읽지 못했던 영문학도인 나 자신이 아쉬워서라도 디킨스의 작품 하나는 더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던 거였다.

그렇게 고른 게,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1839)였다.

"미덕이 어떻게 더러운 스타킹을 외면하고, 악덕이 어떻게 작은 리본들과 화려한 복장과 결혼하여, 마치 혼인한 부인들이 그 이름들을 바꾸듯이 자기 이름을 '로맨스'로 바꾸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추하고 역겨운) 것들을 볼 수 없다고 하는 '우아한 취향'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전향시킬 의도가 없다. 나는 그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들의 견해를 존중하지 않으며, 그들의 승인을 안달하며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즐겁게 하려고 글을 쓰지 않는다... 비천한 배경의 작품에서 내가 시도한 것은, 현실에서 실재하면서 거짓 광채로 둘러싸인 무언가에 대해, 그것의 추하고 역겨운 모습의 실체를 보여줌로써, 그 광채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 [올리버 트위스트], <저자 서문>, 찰스 디킨스, 1841.

1839년에 한 권의 소설로 출간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는 1837년부터 2년간 한 월간지에 실렸던 연재소설의 단행본이었는데, 1841년의 <저자 서문>에서 디킨스는 이 소설과 자신의 작풍에 대한 세간의 비평을 의식한 듯 작심하고 본인의 소설관을 피력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작가 본인은 현실의 인간사를 미덕이나 교양 따위로 포장하지 않을 것이며 '추하고 역겨운' 그 모습 그대로 묘사하겠다 선언한다. 

얼핏 들으면 '사실주의(Realism) 선언' 같지만, 
사실은 '벌레스크(Burlesque) 선언'이다.

"저자의 몇몇 친구들은 이렇게 외친다. '보라, 신사 양반들이여, 주인공은 악한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적이다.' 당대의 젊은 비평가들, 사무원들, 초보 견습생들은 그것을 저속하다 평하면서 한편으론 앓는 소리를 낸다."
- [올리버 트위스트], <저자 서문> 중 'Henry Fielding' 인용문, 찰스 디킨스, 1841.

<저자 서문>을 시작하면서 찰스 디킨스가 인용한 작가는 18세기 영국의 소설가 헨리 필딩(Henry Fielding : 1707~1754)이다. 헨리 필딩은 '기사도' 자체를 비꼬아 버린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를 따라 당대의 고귀한 신사숙녀의 미덕을 확실하게 비틀어 버린 작가였다. 그의 소설 [조셉 앤드류스(Joseph Andrews)](1741)는 내가 대학 3학년 2학기에 수강했던 '18세기 영국소설'의 교재였고 아직 내 오랜 책장에 <노튼> 출판사의 그 원서가 있었는데, 필딩은 이 책의 <서문>에서 '벌레스크(Burlesque)' 소설을 정의하고 있다. 

18세기 당시는 아직 '소설(novel)'이 본격 장르로 등장하지 않았고 고전적으로 이어져 온 '서사시(epic)'가 '희곡(drama)'처럼 '희극(comic)'과 '비극(tragedy)'으로 구분되었는데, 일종의 '산문으로 된 서사시(Epic-Poem in Prose)'로서의 '로맨스(Romance)' 중 '코믹 로맨스'는 웃기는 내용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자연스러운(natural)' 특징이 있다고 헨리  필딩은 쓴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를 따라 헨리 필딩 본인이 쓴 '소설'은 그런 '자연스럽게' 읏긴 '코믹'이 아니라 특별히 '벌레스크'로 명명하고 있는데, '벌레스크(Burlesque)'가 '코믹(Comic)'과 구분되는 특징이 바로 '부자연스러운(un-natural)' 작법이다. 상황을 묘사하되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거나 과장되게 그리면서 현실을 비웃고 비틀면서 보여주는 '사실주의'의 한 모습인 것이다.

'벌레스크(Burlesque)'는 현실을 '풍자(satire)'하는 작품이자, 우리식으로 보면 '해학극'에 해당된다.

[조셉 앤드류스]의 실제 제목은 '조셉 앤드류스와 그의 친구 에이브리엄 애덤스 씨의 모험의 역사(The History of the Adventures of Joseph Andrews and of his Friend Mr. Abraham Adams)'인데, 신사인 척 하는 주인공들의 행태를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 당대 상류계층(gentry)의 위선을 보여준다. 헨리 필딩은 역시 동시대 작가 새뮤얼 리처드슨의 조신한 숙녀 이야기 [파멜라(Pamela)]를 [샤멜라(Shamela)]로 패러디하여 비웃기도 한다. 정숙한 척 하는 '파멜라'를 '수줍음(Shy)' 또는 '창피함(Shame)' 같은 걸 떠는 척 하는 '샤멜라'로 비틀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벌레스크(Burlesque)'의 핵심 요소는 '패러디(Parody)'이기도 하다.

이렇게 18세기 작가 헨리 필딩의 '벌레스크(Burlesque)'를 앞세운 19세기 작가 찰스 디킨스의 '사실주의'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게 된다. '자연스럽게(naural)' 그리지 않고 '해학'적으로 '풍자(satire)'하겠다는 것이다. 최대한 '부자연스럽게(un-natural)', 어색하고 과장되게 현실을 묘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사실에 접근하겠다는 선언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아무리 콧대 높은 귀족이라 할지라도 담요 한 장에 감싸인 아기라면 어떤 사회 계급의 아기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 터였다. 그러나 이제 누렇게 변색된 낡은 무명옷을 입게 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한순간에 계급이 결정되어 낙인찍혀 버렸다."
- [올리버 트위스트], <1부 1장>, 찰스 디킨스, 1839.

나중에 알고 보니 귀족의 피를 물려받은 고귀한 몸이었지만 세상 나올 때부터 온갖 고난을 겪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의 탄생 장면이다. 

또한 <2부 14장>의 제목은 '앞서 나온 상황과 완전히 달라졌지만 그리 드물지 않은 결혼생활의 모습'인데, 거의 모든 장의 제목이 이렇게 긴 설명인 특징도 있지만 그 자체로도 현실의 패러디다. 즉, 올리버 트위스트가 고아로 태어난 19세기 영국의 구빈원 말단 교구관리 범블 씨가 구빈원장이 되기 위해 간호부장 코니 부인을 꼬시던 이전 장과는 달리 막상 결혼 후 구박받는 모든 남편들의 평범한 모습을 과장되게 묘사하면서 '그리 드물지 않은 결혼생활'이라 제목을 통해 길지만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어린이들의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페이긴은 시종일관 '친절한 유대인 노인'이라는 수식어로 소개되고 여주인공 낸시의 일관된 순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종국에 때려죽이는 최강 악당 사익스는 그 무슨 나라를 구한 영웅 비슷하게 용모를 묘사하기도 하는 식이다.

"... 이런 상황 전개는 우리에게 아주 매력적인 명상거리를 던져준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가장 훌륭한 귀족에서부터 가장 비천한 자선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이 '아름다운 본성'은 아주 공평하게 나눠 갖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 [올리버 트위스트], <1부 5장>, 찰스 디킨스, 1839.

구빈원을 나와 장의사 소어베리의 집으로 팔려간 후 그 집에서 만난 자선학교 학생이자 나중에 우연히 다시 만나는 악연인 노아로부터 비천한 고아라며 놀림을 받는 장면에서, 사실 노아는 불쌍한 자선학교에서 조차 왕따를 당하는 더더욱 불쌍한 신세지만 구빈원 고아인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노아 본인보다 조금이라도 더 불우한 사람을 보면 언제든 자기가 당한 것 이상으로 괴롭혀줄 용의가 충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주 공평하게' 나눠 갖게 되는 '아름다운 본성'에 대해 쓰고 있다.

"비록 올리버가 '철학자들'의 손에 키워지긴 했지만, 자기보호가 자연의 제1법칙이라는 '아름다운 공리'에 대해 이론적으로 잘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이런 일에 잘 대비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미처 대비하지 못한 터라, 올리버는 더더욱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올리버 트위스트], <1부 10장>, 찰스 디킨스, 1839.

이런 묘사는 많은 인간들이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팔아먹고 등쳐먹는 또 다른 '아름다운 본성'에 관해 논평하는 디킨스의 문장인데, 소매치기인 '미꾸라지' 일당을 따라 나가 처음 도둑질 현장을 목격하고는 무서워서 도망치는 올리버를 쫓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함께 '도둑 잡아라!'를 외치는 소매치기 '미꾸라지' 일당의 임기응변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논평의 시작에서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키운 고아원과 구빈원의 막장 인생들이 고귀한 '철학자들'로 소개되고 있다.

19세기까지 이어진 영국소설의 '벌레스크'적 전형이다.

계명대 영문과 계정민 교수는 추리소설의 계보를 논한 [범죄소설의 계보학](2018)에서 추리소설의 선조격인 범죄소설의 초기 형태로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언급하기도 한다. 

중범죄자들을 격리수감하고 교수대에 매달던 '뉴게이트' 교도소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도 수없이 언급되는데, 악당 사익스도 다녀온 듯 하고 페이긴은 결국 여기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19세기 '뉴게이트 소설'이란 중범죄자들을 경계하라고 국가권력이 펴낸 범죄자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일종의 영웅담이 되어버린 역설 자체였다. 당시 지배계급의 위선을 비웃던 다수 민중들의 '벌레스크'이자 '사실주의'적 독법이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알고 보니 귀족의 자손인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의 모험' 이야기로서 결국 주인공의 태생적 신분을 추적해 가는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범죄소설'도, '뉴게이트 소설'도, 본격적인 '추리소설'도 아니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19세기 초기 자본주의 영국 사회에서 비천한 바닥생활을 하던 빈민들의 모습을 과장되고 부자연스럽지만 '패러디'와 '역설'을 통해 사실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사실주의'적 '벌레스크(Burlesque)' 소설이었던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는 원전의 완역본으로 읽어야 그 '벌레스크'의 진면모를 알 수 있다.
옮긴이 유수아 선생의 번역은 마치 원서를 읽는 듯 생생하고, 찰스 디킨스 원서의 삽화를 그린 조지 크룩생크(George Cruikshank : 1792~1878)의 삽화와 함께 읽으니 더욱 그럴 듯 하다.

***

1.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1839), Charles Dickens, 유수아 옮김, <현대지성>, 2020.
2. [Joseph Andrews & Shamela](1741), Henry Fielding, <Norton>, 1987.
3.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소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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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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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적 '벌레스크(Burlesque)' 선언
-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1839.


6개월 전 읽었던 [두 도시 이야기](1859)는 내가 읽은 찰스 디킨스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아마도 영문학사에서 19세기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 1812~1870)는 16세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꼽히는 영국의 대표적 작가일 것인데, 막상 영문학 전공자인 나는 어릴적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1843)을 읽은 게 그의 작품의 전부였다.

영어가 좋아서 대학의 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영자 신문사를 한 달도 안되어 그만두고 이후 학부 시절 내내 영문학 공부를 하지 않았던 건, 스무살이 되어 보니 '노동계급'의 아들인 내가 '한가하게' 영어 공부나 할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생각해서였다. 시대는 군사독재가 이어지던 1980년대도 아닌, 소련이 무너진 후인 1990년대 초였지만, 자본주의의 전세계적 승리로 인해 '계급 착취'는 더욱 고도화되고 한층 더 정교해졌다고, 나는, 그리고 '우리'라는 것이 당시에 있었다면, 소수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판단했다.

말이 길었질 뻔 했지만, 결국 영문학과를 다니면서도 나는 찰스 디킨스를 읽지 않았다. 아니 읽을 생각을 못했다. 한때 '사실주의' 소설에 빠지게 되었던 이십대 중후반의 시절에서 조차도 그랬다.

그러다가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는 유명한 첫 문장에 이끌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펼쳤을 때는, 난 이미 '사실주의' 소설을 언급하던 문학청년이 아니라 오십줄에 접어든 회사원 아저씨였다. 그리고 [두 도시 이야기]에 관한 내 서평 블로그에 찰스 디킨스 연구자 한 분이 댓글로 올린 설문에 답하는 동안, 찰스 디킨스를 읽지 못했던 영문학도인 나 자신이 아쉬워서라도 디킨스의 작품 하나는 더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던 거였다.

그렇게 고른 게,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1839)였다.

"미덕이 어떻게 더러운 스타킹을 외면하고, 악덕이 어떻게 작은 리본들과 화려한 복장과 결혼하여, 마치 혼인한 부인들이 그 이름들을 바꾸듯이 자기 이름을 '로맨스'로 바꾸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추하고 역겨운) 것들을 볼 수 없다고 하는 '우아한 취향'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전향시킬 의도가 없다. 나는 그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들의 견해를 존중하지 않으며, 그들의 승인을 안달하며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즐겁게 하려고 글을 쓰지 않는다... 비천한 배경의 작품에서 내가 시도한 것은, 현실에서 실재하면서 거짓 광채로 둘러싸인 무언가에 대해, 그것의 추하고 역겨운 모습의 실체를 보여줌로써, 그 광채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 [올리버 트위스트], <저자 서문>, 찰스 디킨스, 1841.

1839년에 한 권의 소설로 출간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는 1837년부터 2년간 한 월간지에 실렸던 연재소설의 단행본이었는데, 1841년의 <저자 서문>에서 디킨스는 이 소설과 자신의 작풍에 대한 세간의 비평을 의식한 듯 작심하고 본인의 소설관을 피력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작가 본인은 현실의 인간사를 미덕이나 교양 따위로 포장하지 않을 것이며 '추하고 역겨운' 그 모습 그대로 묘사하겠다 선언한다. 

얼핏 들으면 '사실주의(Realism) 선언' 같지만, 
사실은 '벌레스크(Burlesque) 선언'이다.

"저자의 몇몇 친구들은 이렇게 외친다. '보라, 신사 양반들이여, 주인공은 악한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적이다.' 당대의 젊은 비평가들, 사무원들, 초보 견습생들은 그것을 저속하다 평하면서 한편으론 앓는 소리를 낸다."
- [올리버 트위스트], <저자 서문> 중 'Henry Fielding' 인용문, 찰스 디킨스, 1841.

<저자 서문>을 시작하면서 찰스 디킨스가 인용한 작가는 18세기 영국의 소설가 헨리 필딩(Henry Fielding : 1707~1754)이다. 헨리 필딩은 '기사도' 자체를 비꼬아 버린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를 따라 당대의 고귀한 신사숙녀의 미덕을 확실하게 비틀어 버린 작가였다. 그의 소설 [조셉 앤드류스(Joseph Andrews)](1741)는 내가 대학 3학년 2학기에 수강했던 '18세기 영국소설'의 교재였고 아직 내 오랜 책장에 <노튼> 출판사의 그 원서가 있었는데, 필딩은 이 책의 <서문>에서 '벌레스크(Burlesque)' 소설을 정의하고 있다. 

18세기 당시는 아직 '소설(novel)'이 본격 장르로 등장하지 않았고 고전적으로 이어져 온 '서사시(epic)'가 '희곡(drama)'처럼 '희극(comic)'과 '비극(tragedy)'으로 구분되었는데, 일종의 '산문으로 된 서사시(Epic-Poem in Prose)'로서의 '로맨스(Romance)' 중 '코믹 로맨스'는 웃기는 내용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자연스러운(natural)' 특징이 있다고 헨리  필딩은 쓴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를 따라 헨리 필딩 본인이 쓴 '소설'은 그런 '자연스럽게' 읏긴 '코믹'이 아니라 특별히 '벌레스크'로 명명하고 있는데, '벌레스크(Burlesque)'가 '코믹(Comic)'과 구분되는 특징이 바로 '부자연스러운(un-natural)' 작법이다. 상황을 묘사하되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거나 과장되게 그리면서 현실을 비웃고 비틀면서 보여주는 '사실주의'의 한 모습인 것이다.

'벌레스크(Burlesque)'는 현실을 '풍자(satire)'하는 작품이자, 우리식으로 보면 '해학극'에 해당된다.

[조셉 앤드류스]의 실제 제목은 '조셉 앤드류스와 그의 친구 에이브리엄 애덤스 씨의 모험의 역사(The History of the Adventures of Joseph Andrews and of his Friend Mr. Abraham Adams)'인데, 신사인 척 하는 주인공들의 행태를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 당대 상류계층(gentry)의 위선을 보여준다. 헨리 필딩은 역시 동시대 작가 새뮤얼 리처드슨의 조신한 숙녀 이야기 [파멜라(Pamela)]를 [샤멜라(Shamela)]로 패러디하여 비웃기도 한다. 정숙한 척 하는 '파멜라'를 '수줍음(Shy)' 또는 '창피함(Shame)' 같은 걸 떠는 척 하는 '샤멜라'로 비틀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벌레스크(Burlesque)'의 핵심 요소는 '패러디(Parody)'이기도 하다.

이렇게 18세기 작가 헨리 필딩의 '벌레스크(Burlesque)'를 앞세운 19세기 작가 찰스 디킨스의 '사실주의'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게 된다. '자연스럽게(naural)' 그리지 않고 '해학'적으로 '풍자(satire)'하겠다는 것이다. 최대한 '부자연스럽게(un-natural)', 어색하고 과장되게 현실을 묘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사실에 접근하겠다는 선언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아무리 콧대 높은 귀족이라 할지라도 담요 한 장에 감싸인 아기라면 어떤 사회 계급의 아기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 터였다. 그러나 이제 누렇게 변색된 낡은 무명옷을 입게 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한순간에 계급이 결정되어 낙인찍혀 버렸다."
- [올리버 트위스트], <1부 1장>, 찰스 디킨스, 1839.

나중에 알고 보니 귀족의 피를 물려받은 고귀한 몸이었지만 세상 나올 때부터 온갖 고난을 겪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의 탄생 장면이다. 

또한 <2부 14장>의 제목은 '앞서 나온 상황과 완전히 달라졌지만 그리 드물지 않은 결혼생활의 모습'인데, 거의 모든 장의 제목이 이렇게 긴 설명인 특징도 있지만 그 자체로도 현실의 패러디다. 즉, 올리버 트위스트가 고아로 태어난 19세기 영국의 구빈원 말단 교구관리 범블 씨가 구빈원장이 되기 위해 간호부장 코니 부인을 꼬시던 이전 장과는 달리 막상 결혼 후 구박받는 모든 남편들의 평범한 모습을 과장되게 묘사하면서 '그리 드물지 않은 결혼생활'이라 제목을 통해 길지만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어린이들의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페이긴은 시종일관 '친절한 유대인 노인'이라는 수식어로 소개되고 여주인공 낸시의 일관된 순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종국에 때려죽이는 최강 악당 사익스는 그 무슨 나라를 구한 영웅 비슷하게 용모를 묘사하기도 하는 식이다.

"... 이런 상황 전개는 우리에게 아주 매력적인 명상거리를 던져준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가장 훌륭한 귀족에서부터 가장 비천한 자선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이 '아름다운 본성'은 아주 공평하게 나눠 갖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 [올리버 트위스트], <1부 5장>, 찰스 디킨스, 1839.

구빈원을 나와 장의사 소어베리의 집으로 팔려간 후 그 집에서 만난 자선학교 학생이자 나중에 우연히 다시 만나는 악연인 노아로부터 비천한 고아라며 놀림을 받는 장면에서, 사실 노아는 불쌍한 자선학교에서 조차 왕따를 당하는 더더욱 불쌍한 신세지만 구빈원 고아인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노아 본인보다 조금이라도 더 불우한 사람을 보면 언제든 자기가 당한 것 이상으로 괴롭혀줄 용의가 충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주 공평하게' 나눠 갖게 되는 '아름다운 본성'에 대해 쓰고 있다.

"비록 올리버가 '철학자들'의 손에 키워지긴 했지만, 자기보호가 자연의 제1법칙이라는 '아름다운 공리'에 대해 이론적으로 잘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이런 일에 잘 대비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미처 대비하지 못한 터라, 올리버는 더더욱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올리버 트위스트], <1부 10장>, 찰스 디킨스, 1839.

이런 묘사는 많은 인간들이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팔아먹고 등쳐먹는 또 다른 '아름다운 본성'에 관해 논평하는 디킨스의 문장인데, 소매치기인 '미꾸라지' 일당을 따라 나가 처음 도둑질 현장을 목격하고는 무서워서 도망치는 올리버를 쫓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함께 '도둑 잡아라!'를 외치는 소매치기 '미꾸라지' 일당의 임기응변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논평의 시작에서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키운 고아원과 구빈원의 막장 인생들이 고귀한 '철학자들'로 소개되고 있다.

19세기까지 이어진 영국소설의 '벌레스크'적 전형이다.

계명대 영문과 계정민 교수는 추리소설의 계보를 논한 [범죄소설의 계보학](2018)에서 추리소설의 선조격인 범죄소설의 초기 형태로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언급하기도 한다. 

중범죄자들을 격리수감하고 교수대에 매달던 '뉴게이트' 교도소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도 수없이 언급되는데, 악당 사익스도 다녀온 듯 하고 페이긴은 결국 여기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19세기 '뉴게이트 소설'이란 중범죄자들을 경계하라고 국가권력이 펴낸 범죄자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일종의 영웅담이 되어버린 역설 자체였다. 당시 지배계급의 위선을 비웃던 다수 민중들의 '벌레스크'이자 '사실주의'적 독법이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알고 보니 귀족의 자손인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의 모험' 이야기로서 결국 주인공의 태생적 신분을 추적해 가는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범죄소설'도, '뉴게이트 소설'도, 본격적인 '추리소설'도 아니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19세기 초기 자본주의 영국 사회에서 비천한 바닥생활을 하던 빈민들의 모습을 과장되고 부자연스럽지만 '패러디'와 '역설'을 통해 사실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사실주의'적 '벌레스크(Burlesque)' 소설이었던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는 원전의 완역본으로 읽어야 그 '벌레스크'의 진면모를 알 수 있다.
옮긴이 유수아 선생의 번역은 마치 원서를 읽는 듯 생생하고, 찰스 디킨스 원서의 삽화를 그린 조지 크룩생크(George Cruikshank : 1792~1878)의 삽화와 함께 읽으니 더욱 그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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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1839), Charles Dickens, 유수아 옮김, <현대지성>, 2020.
2. [Joseph Andrews & Shamela](1741), Henry Fielding, <Norton>, 1987.
3.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소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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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 로마 세계의 그리스도교화에 관하여 비아 제안들 시리즈
피터 브라운 지음, 양세규 옮김 / 비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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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나, '혁명'이나...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피터 브라운, 1995.


"...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고대 후기'라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대부분 자신을 그리스도교인이라 여겼지만, 자신들의 후예들처럼 현재의 자신과 과거(이교 세계)의 경계를 명확하게 긋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호한 현재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부록 : 배우는 삶>, 피터 브라운, 1995.


1.

이번 대선에서 쿠데타 내란 세력을 압도적으로 제압하고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면 세상이 얼마나 바뀌게 될까,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거대 보수 양당이 반 세기 이상 지배한 우리의 정치사회 역사에서 집권당의 교체로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은 종종 잊혀진다.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를 보듯 거대 양당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개표 방송을 관람하지만, 지금껏 세상을 바꿔 온 건 대다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거대 양당 중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정치를 스포츠 경기처럼 만드는 게 아니라 다수 민중들을 조직하고 스스로를 대표하게 만드는 진보정당이 언제나 필요한 이유다. 정치인 한 명의 개인기와 대표성으로 생래적 차이인 세대와 젠더를 갈라치기하면서 정치적 야욕을 채우려는 포퓰리스트들이 아무리 설쳐대도, 생물학적 차별이 아닌 사회적 계급 관계에 기초하여 다수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진보정당의 포퓰리즘은 항상 정당하다.


2.

"... 그(아우구스티누스)가 한 일은 '권위(Authority)'와 관련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주장(그리스도교의 이분법적 '승리 서사')을 함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동료 성직자들은 무엇이 '이교'이며 그 영향이 교회 생활 어디에 남아 있는지를 판단할 '권위', 권한을 자신들에게 돌렸습니다."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1. 그리스도교화 - 서사와 과정>, 피터 브라운, 1995.

보통 '혁명'은 단 번에 세상을 확 바꿔 버리는 것으로 인식된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소비에트 혁명 등 역사적 대혁명들은 그러한 단 칼의 '승리 서사'로 기록되었는데, '고대 후기'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화' 과정 또한 그러하다.


'고대 후기(Late Antiquity)' 전문가인 영국 출신의 미국 역사가 피터 브라운(Peter Brown : 1935~)의 1995년 저작 [권위와 성자들(Authority and the Sacred)](1995)은 국역판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2025)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반가톨릭적 '이단'의 상상력을 담은 책 몇 권을 읽었던 탓도 있었지만 이 얇은 책을 선뜻 읽게 된 이유는 실은 국역판 제목에 끌려서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은 고대 로마 후기였던 4세기에 그리스도교가 공식화되었을 때,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와 같이 다신교적 전통을 이어왔던 신앙을 패배시키고, 이후 중세 유럽의 유일교이자 '보편적 종교' 즉 '가톨릭'이 되었던 '그리스도교'가 단 번에 승리했다는 '혁명'적 서사가 알고 보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중세 그리스도교 신학의 교리적 원천이 되었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와 같은 신학자들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에서 전통적 이교를 단 칼에 척결한 그리스도교의 혁명적 '승리 서사'를 대표한다. 그러나 '고대 후기'는 물론 역시 '아우구스티누스' 전문가로 알려진 역사가 피터 브라운은 이 책에서 고대 후기 그리스도교가 '로마를 바꾸어 갈 때' 결코 단 번에 '혁명'적으로 바꾼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한다.

고대 다신교를 믿던 다수 로마 민중들은 물론 신흥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은 '배교자' 황제 등과 동떨어진 '혁명'은 없었다는 말이다. 피터 브라운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의 가장 빛나는 성과는 기존의 전통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제국에 맞게 과감하게 바꾸고 조합해 권력의 상징 체계를 만들어낸 것'(같은책, <1장>)이라면서 고대 후기 로마 제국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교도적 전통과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현장에서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민중 문화에 스며들어 궁극에는 '고대(antiquity)' 자체를 '만악의 어머니'로 만들어 갔다는 것이다. 그 고대 사회 대전환의 과정에서 그리스도교인들은 고대 후기 종교 '혁명'의 주도권을 철저히 독점하고자 했다.

이 책의 원제인 [권위와 성자들] 중 그 <1장>은 '권위(Authority)'에 관한 이야기다.


"... 예측불가능한 '폭력'은 고도의 통치체제에 입각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영속적이고 통제된 '폭력'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 '폭력'을 행사해야 한다면, 그 '폭력'은 반드시 전통적인 상류층이 독점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예측불가능한 외부자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2. 불관용의 한계>, 피터 브라운, 1995.

흔히 고대 후기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화의 '승리 서사'는 고대의 전통적 '이교'에 대한 단호한 '불관용'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피터 브라운은 이 책의 <2장. 불관용의 한계>에서 사실 당시 로마 제국의 관심은 '종교'나 '철학' 같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징세'라는 다분히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사안에 있었으며, "종교 문제에서 (그리스도교의) 불관용 정책에 힘을 실어줄 여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같은책, <2장>)고 말한다. 

로마 제국의 광범위한 통치와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었던 각 지역의 세금만 제대로 걷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교 황제라 해도, 그의 대리인으로서 파견된 주교 조차도, 지역의 '이교도'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타협했다는 이야기다. 단, 이 '관용'의 주체는 여전히 그리스도교 권력자들이어야 했기에, 다수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이교 신전 파괴 등의 '혁명'적 행위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 책의 <2장>에서 말하는 '불관용의 한계'는 고대 후기 그리스도교의 단호한 '불관용'이 실은 그들의 '승리 서사'와 다르다는 점을 증명한다.


"... '성자들(the Sacred)'은 큰 어려움 없이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원래라면 (고대 이교적) 신전을 파괴하고, 공적 제의를 강제로 폐지하는 등 거친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전환 과정에서 '성자'는 지역 사람들의 자발성과 동의(헤게모니)를 끌어내는 요소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처럼 고대 후기 그리스도교 '성자들(the Sacred)'은 하늘과 땅의 간극을 연결하는 기도의 가교가 들어설 수 있는 상상 세계를 마련하는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3. 거룩함의 중재자 - 고대 후기 그리스도교의 성자>, 피터 브라운, 1995.

고대 후기 "불관용의 한계"(같은책, <2장>)를 여실히 보여주는 종교적 타협의 현장과 달리,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그리스도교의 주요 교부들은 여전히 이분법적 '승리 서사'를 주장했지만, 각 지역의 '이교도'인 민중들과 함께 했던 '성자들(the Sacred)'은 그럴 수가 없었다.

기둥 위에서 살아간 4~5세기의 시메온 같은 성자들과 각종 은둔 성자들은 하느님의 유일신 세계관만이 아닌 고대의 여러 신들이 각자 천상을 분할지배한다는 다신론적 '문두스' 세계관 및 지역의 이교적 주술과 마법, 치료법 등을 받아들여 민중들과 함께 했다. 피터 브라운이 말한 '성자들(the Sacred)'은 '성인(Saint.)'과는 다르다. 피터 브라운의 '성자들'은 '순교'나 '박해' 대신 '민중들'과 함께한 수도자 또는 각지의 은둔 신부 같은 이들이었다.

결국 이 '성자들'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에 스며들어 다수 민중들의 '자발적 동의', 즉 '헤게모니'를 그리스도교의 '권위'에게가져다 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이 책의 원제 [권위와 성자들]에서 '성자들(the Sacred)'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의 '승리 서사'가 결코 '혁명'적이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피터 브라운의 책 [권위와 성자들(Authority and the Sacred)]의 국역판 제목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가 참으로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화 과정에서 언급되는 '승리 서사'의 허구성을 정확하게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은 다수의 힘과 함께 녹아들어 '마침내 바꾸어' 가는 과정이지, 단 한 번의 건곤일척 '승리 서사'가 아닌 것이다.


3.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도 난 진보정당을 지지한다.

그 어떤 '혁명'적인 상황이나 인물이라도 단 한 번의 대선으로 '승리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거대 보수 양당은 다수 민중들의 의지를 독점하면서 집권 후에는 새로운 세상이나 사회 대전환으로부터 등을 돌려 왔다. 거대 양당의 유일한 목적은 장기적 정권 재창출 단 하나다. 그들은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상생 관계일 뿐이다.

그 와중에서 생래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생물학적 세대나 젠더의 차이를 '혐오'와 차별의 더러운 전장으로 만들며 개인의 정치력을 확장하려는 청년 정치인은 그냥 젊은 파시스트일 뿐이다. 그 젊은이도 나이가 들 것이고 그렇게 늙은 정치인은 '태극기 부대' 못지 않게 위험하다.

노동의 현장에서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을 철폐해야 하는 진보정치 세력은 이번 대선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 항상 필수불가결한 정치적 조건이다. 
정치란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보는 '이상'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고대 후기'가 아닌 지금의 '헤게모니'는 소수가 아닌 다수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나 '혁명'이나,
거룩하고 위대한 단 한 번의 '승리 서사'는 없다.

***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 로마 세계의 그리스도화에 관하여(Authority and the Sacred : Aspects of the Christianisation of the Roman World)](1995), Peter Brown, 양세규 옮김, <비아>,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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