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 자본론으로 21세기 경제를 해설하다
한지원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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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정표
-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한지원, <한빛비즈>, 2021.


"이 책은 오늘날의 경제상태가 지속적 '성장론'이 아니라 [자본(론)]의 '작동중지(breakdown)'론을 통해 좀더 잘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
[자본]의 정수는 생산과 분배의 체계가 작동하는 근본적 원리를 탐구하는데 있다. 오늘날의 경제학 교과서들은 이를 상품시장, 요소시장을 다루는 미시경제학과 금융, 경기순환, 경제성장을 다루는 거시경제학으로 설명한다. [자본] 역시 이 주제를 모두 다룬다. 다만, (주류)경제학의 프레임과 달리 화폐론(금융), 착취론(생산), 축적론(성장)으로 그 주제들을 다룰 뿐이다. 이 셋을 잘 엮어야 경제적 현상들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자본]이 '착취받는 노동자를 위한 (철학적) 위안'이 아니라, 오늘날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노동하는 시민을 위한 과학'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서문>, 한지원, 2021.


70세가 넘은 연세에 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전 지하철공사 노동조합 위원장 정윤광 선생께서는 해당 박사학위 논문([1929년 공황과 2008년 공황의 비교연구])을 통해 칼 마르크스는 1857~1858년에 걸쳐 [정치경제학 비판요강]을 집필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고 비판하기 위한 총 6부의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1) 자본, 2) 토지소유, 3) 임금노동, 4) 국가, 5) 외국무역, 6) 세계시장과 공황 등이 그것인데, 이 플랜은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수록 및 발표되었고 1867년 [자본론] 1권 출판에 이르기까지 수정되고 보완되었다. 마르크스 사후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연구 초고들을 정리하여 [자본]의 2권과 3권 및 '잉여가치학설사' 등을 편찬하였으나 마르크스의 장대한 '6부작 정치경제학 비판' 계획은 전반 3부에서 멈추었고 '국가', '외국무역', '세계시장과 공황'의 후반 3부는 이후의 과제로 남겨졌다고 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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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1권은 '상품'이라는 자본주의 최초의 '세포'이자 '맹아'로부터 분석을 시작하여, '상품'과 '화폐', 개별 상품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운동과 노동가치의 이중성 및 그로 인한 착취론 도출과 '물신성' 등을 다룬다. 엥겔스가 정리하기 시작한 [자본] 2권은 자본의 사회적 순환과 확대재생산을 분석하며 결국 가치증식된 자본(화폐)의 비밀은 생산과정에 투입된 '노동의 (사용)가치'의 착취(부불노동)가 근원임을 밝힌다. 이후 [자본] 3권은 개별생산과 순환을 넘어 총자본의 운동을 분석대상으로 하면서 지대(토지), 이자(금융) 등의 가치증식 또한 상품생산 과정에서 '노동'을 통해 발생한 가치의 이전임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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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노동'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임금/가격)'의 이중성 폭로, 그로 인한 '이윤'의 원천으로서 '착취론'과 '잉여가치론', 인간의 사회적 생산관계가 '상품'과 그 '일반적 등가물'인 '화폐'의 관계로 은폐되는 '물신성(fetishism)'으로 정리되는데, [자본론]을 심도깊게 다시 공부한 'B급좌파' 김규항 선생은 최근작 [혁명노트]에서 이 '물신성'을 최대의 화두로 삼았고, 좀더 공부한 사람들은 [자본론] 3권 3편의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을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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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2권 <서문>에서 "선학들이 '해답'을 본 곳에서 마르크스는 '문제'를 보았다"고 했던 엥겔스가 본 [자본론]의 '철학적' 시각을 나는 따랐는데, 자본주의 체제를 거대한 플랜에 따라 분석하고 해부하고자 한 마르크스 본인의 '정치경제학적' 시각을 따라 더 연구한다면 [자본론]의 결론은 '평균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에 따라 '작동중지(breakdown)'하는 자본주의 내적 모순과 그의 실현태인 '공황(economic crisis)'이 된다. 1994년 남한을 뒤흔든 지하철 총파업을 이끈 정윤광 박사에 의하면 자본주의 체제적 '공황'은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비판플랜의 결론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정윤광 박사님은 나의 결혼식 주례선생님이시기도 했다. ^^*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한지원 실장은 [매일노동뉴스] 칼럼으로 내게는 '믿고 읽는' 지식인이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이나 '국가재정' 등의 사안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현실 정책에 대한 다소 '양비론'적 언급으로 읽히기도 했으나 한지원 실장의 제안은 현재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엄밀하고 냉정한 분석을 토대로 일체의 '기득권'과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관점임을 알기에 '무조건 믿고 읽는' 저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지원 실장은 2021년에 세계를 보는 그의 관점을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라는 저서로 출간했는데, 이 책의 부제는 '[자본론]으로 21세기 경제를 해설하다'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와 지난 현실사회주의경제 등을 망라하며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분석틀로 현대경제를 분석하고 관련 이론들을 비판한다. 관점은 '철학적'이고 '문과적'인 시각을 넘어 '경제학적'이고 수량적인 '이과적' 시각도 강하다. '공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비유도 '이과적'이다.


"노동가치론의 논리 전개에 따르면 화폐의 본질은 상품에 대한 '보편적 등가물'이다... 길이의 보편적 등가물은 빛의 속도다.., 상품세계에서 빛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화폐다... 화폐는 인간노력을 사회적인 노동 한 단위로 양자화한다."
- 같은책, <1부 상품과 화폐>, 한지원.


마르크스에 의해 더욱 확고해진 '노동가치론'에 철저하게 입각하여 현대 경제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상품들의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화폐'의 본질을 설명하는 저자는 사회과학의 개념에도 자연과학의 비유를 하는데, 자본의 순환운동을 '보일러'의 난방운동에 비유하기도 한다. 



"... 사물을 파악하는 자본가적 방식의 미치광이 같은 성격은 여기('가공/의제자본')에서 그 절정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본의 가치증식을 노동력의 착취로부터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노동력의 생산성을 노동력 자체가 가진 이자낳는 자본이라는 신비한 속성으로부터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자본론] 3권, '5편 28장 은행자본의 구성', 칼 마르크스,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0.


'불평등'의 문제에 관하여 근원을 '기술혁신'이나 '불공정 시장' 등에서 찾는 것이 아닌 '자본' 자체로부터 규명하고 추적하는 토마 피케티 또한 한지원 실장에 의하면, "생산 측면이 이니라 분배와 거래 측면에서(같은책, <4부>)" 자본을 재정의하다보니 자산 일반이 모두 자본이 됨으로써 "배가 산으로 간 경우(같은책, 같은장)"가 된다. 저자에 의하면 "요컨대, 피케티의 불평등 이론은 법칙이라기 보다는 금융화의 힘 또는 자본가의 사회적 힘을 묘사하는 것에 불과하다(같은책, 같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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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 책의 특징은 매우 방대한 데이터와 장황한 설명을 하면서 "요약"을 통해 주제별로 결론단락을 두는 것인데, 한지원 실장도 "요컨대"를 통해 일련의 설명을 요약하는 특징이 있다. 저자가 요약한 피케티는 체제에 대한 현상의 '묘사'일 뿐 자본에 관한 본질적 분석이 아니다. 미국의 '불공정 시장 비판론자'이자 케인스주의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또한 저자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하는데 그 자신만만한 이론적 근거는 바로 [자본론]의 분석틀이다. 젊은 지식인의 탄탄한 자신감이 부럽다. 그만큼 '비트코인'에서부터 '임금공정성'이나 '임금(소득)주도성장론' 등 주요 논쟁점들의 허구성을 파헤치는 실력도 만만치 않다. 지속적인 '경제성장론'을 가상적으로 전제하는 위 이론들을 대차게 비판하는 주요근거 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결론인 '자본주의 작동중지론'이다.

내가 읽기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하나 고르라면 바로 '가공자본(fictitios capital/의제자본)'이다. 


"경제에서 '가공자본'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자본소유자가 생산물을 차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소유자가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미래로도 확장된다. 소유법칙은 이제 자본소유자가 미래 노동에 대해서도 청구할 권리로 확장된다... 자산소유자는 '가공자본'을 통해 현재의 노동만이 아니라 미래의 노동까지도 착취할 수 있다."
- 같은책, <3부 9장>, 한지원.


[자본론]이 나온 19세기는 '금융자본주의' 이전이었다. 3권에서 분석하는 지대(토지), 이자(금융) 등은 생산과정에 투입된 노동가치가 이전된 형태이며, 그 중 '이자' 또한 '금융자본'이었다기 보다는 당시 자본주의 '이상적 평균([자본론을 읽는다], 루이 알튀세르)'으로서 영국의 '영란(잉글랜드)은행'으로 대표되는 '은행자본'이었다. [자본론] 3권에 나오는 '가공자본(架空資本)' 또는 '의제자본(擬制資本)'은 '노동'과 결합하여 가치를 증식하는 생산자본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가 이전되거나 이에 기생하여 '자본' 구실을 하는 '가짜자본'이라는 뜻일 텐데, 어쨌든 현대 금융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가공(의제)자본' 형태가 자본의 주된 모습으로 현상하므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자산)론'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지원 실장은 '작동중지'의 내부모순으로서 '실제(생산)자본'에서 파생된 '가공자본'은 "미래의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그 필연의 운동을 가속화한다.


"21세기, 자본의 '작동중지(breakdown)' 상태에서 자본의 무능과 진보진영의 실패로 말미암아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적 공멸이라는, 체제의 극한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 같은책, <4부 14장>, 한지원.


'미래의 노동'까지 땡겨서 착취하는 '가공자본'이 대세가 된 현대자본주의는 결국 '평균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을 막을 수도 없고 오히려 더 강화한다. 고전적으로는 자본투자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분모인 불변자본(C) 몫이 커지면 분자의 가변자본(V) 몫에 비해 저하되는 개별자본의 이윤율(V/C+V)이 자본투자를 통한 '산업혁명' 급 기술혁신이 없는 한 전체 평균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회자되나 이 인공지능화와 자동화 등은 아직 기존 자본과 산업의 구조를 파괴하고 혁신하는 '혁명성'이 없다. 단지 '노동'의 파괴와 일자리 감소 등의 '협박질'로 불확실성만 키우고 이를 이용하는 자본의 이윤만 늘리고 있다. 

정윤광 선생은 예의 박사논문에서 1929년 공황과 2008년 공황을 비교분석하면서 '대공황'이 자본의 가치증식 운동의 필연적 결과임을 전제로, 1929년 공황 이후 2차 세계대전이라는 광범위한 자본파괴와 재건 및 혁신, 대규모 노동착취 강화를 발판으로 인류사 최고의 이윤율 성장을 기록하고 위기를 극복한 반면, 2008년 최근의 공황은 정부의 발빠른 개입으로 위기는 넘겼으나 신자유주의적 기조가 변함없어 여전히 이윤율 저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공황'의 연속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이 겹쳐져 우리 시대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일대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의 기본 '경전'이 다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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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자본론]을 처음 번역한 고(故)김수행 선생은 2014년 그의 마지막 저서 [자본론공부]에서 이 '평균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을 이윤율 저하의 경향과 산업혁명급 혁신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확대로 사회가 한 발 더 전진하는 경향이 현실적으로 복합작용하는 '법칙'으로 이해하자는 유언과도 같은 당부를 한다. 즉,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은 옳지만, 이 분석틀은 역사와 현실에 맞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지원 실장의 이 책은 [자본론]의 '공부'나 '해설'을 넘어 현시대에 맞는 "[자본론]의 현재화(같은책, <서문>)"라는 '또 다른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자본]의 현대화와 철학자 이진경의 말대로 자본주의 체제 '이후'를 상상하고 내다볼 수 있는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 필요하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0

자본이 '작동중지'와 '공황'으로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정표로서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새로운 세대에게 '철학'적 신념은 물론 이를 넘어선 '과학'적 무기가 된다.


칼 마르크스의 후예들로서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굽힘없이 현대화시키는 이 '천재'들이 화려한 주류경제학으로 가지 않고 노동계급의 편에 남아 있음에 이 시대 임금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감사한다.

***

1.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 자본론으로 21세기 경제를 해설하다], 한지원, <한빛비즈>, 2021.
2. [자본론], 칼 마르크스,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0~1996.
3. [자본론 공부], 김수행, <돌베개>, 2014.
4.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그린비>, 2004.
5. [혁명노트], 김규항, <알마>, 2020.
6. [1929년 공황과 2008년 공황의 비교연구], 정윤광, <경상대 정치경제학과 박사학위논문>, 2020.
7. [자본론을 읽는다](1966), 루이 알튀세르, 김진엽옮김, <두레>, 1991.
8.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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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중산층 사회 -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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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덫을 벗어나는 다수 '노동'의 연대
- 미국의 [엘리트 세습]과 한국의 [세습중산층 사회]



"신소유주의(신자유주의)는 주로 과도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능력주의' 언술은 경제체계의 승자를 찬양하며 패자를 본인의 능력과 덕성과 근면의 부족 탓이라고 간주하고 매도한다. 이것은 당연히 오래된 이데올로기로, 모든 엘리트가 어떤 풍토에서든 자신들의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활용해온 것이다...
...
'불평등'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적이다. 현재의 신소유주의는 19세기 초의 고전시대 소유주의와는 다르게 더 이상 명시적으로 '납세유권자'적일 수 없기에 그만큼 더 '능력주의'를 고취하려 한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3부 20세기의 거대한 전환 - 13장 하이퍼자본주의 : 현대성과 의고주의 사이에서', 토마 피케티, 2019.


2013년에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갈수록 높아지는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는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21세기 자본], <결론>)" 사회라 규정하며 현대의 '불평등' 문제에 천착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9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좀더 좌파적인 시선으로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를 '신소유주의'로 부르며 분석한다. 그가 추적하는 '불평등'의 기원은 가치증식(이윤)을 위해 '형성기'에는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21세기 자본], <2부 3장>)"이나 "충분히 축적되면...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같은책, 같은장)"으로 '변신'하는 자본이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규정한 자본의 본질은 '끊임 없는 자기증식 운동'인데 피케티는 이 운동형태의 '지대추구성'을 보며 '자본의 변신(같은책, 같은장)'을 갈수록 심화되는 현대 '불평등'의 한 조건으로 전제한다. 

피케티의 '신소유주의(신자유주의)' 분석에는 여러 개념이 사용되는데, 그 중 '브라만좌파'와 '상인우파' 이야기가 있다. 전통적인 자본가나 지주계급에 뿌리를 둔 '상인우파'는 원래부터 '불평등'의 근원인 반면,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브라만좌파'는 기존 산업시대 생산력 발전의 주력이었던 '노동계급'의 자녀들로서 평등교육의 혜택을 입고 유럽의 사회민주당과 미국의 민주당의 주력이 된 '좌파' 세대를 이른다. 우리의 '강남좌파'와 '86 세대'와 같다.
이 '교육'을 통해 '지식인' 계층을 형성한 '브라만(힌두교 성직자/지식인) 좌파'는 체제의 기득권을 형성하면서 기존 권력층인 '상인우파'와 결탁하고 신자유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권력동맹으로 굳게 결탁된다. '정치'적으로는 싸우는 것 같지만 '경제'적으로는 이익을 공유하는 양당제 거대정당 과두지배의 맨얼굴이다. 정확히 우리 사회 민주당의 모습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또 하나의 개념이 파생적으로 연결되는데, 바로 '능력주의(meritocracy)'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결론인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의 조건 중 '누진적 조세제도' 외에도 '교육'과 기회의 평등 및 공공재 소유의 확산이 제기된다. 피케티의 관점에 '능력주의'는 엘리트 계층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조해 온 이데올로기다. 이 '능력주의'라는 '허위의식(ideology)'은 '불평등'의 정치경제적 근원을 은폐한다.


"모든 문명사회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속임수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부와 특권의 집중과 세습을 대대손손 유지하는 메커니즘이자 원한과 분열을 불러일으키는 계층제도가 된 것이다. 심지어 새로운 '귀족제도(aristocracy)'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고통이 '능력주의'가 불완전하게 구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능력주의' 그 자체 때문이라는 점이다... '능력주의'는 시민 대다수를 사회 주변부로 몰아내고 중산층 어린이들을 무기력한 학교로, 중산층 성인들을 장래성 없는 직장으로 보낸다...
다시 말해 '능력주의'는 조직적인 계층 갈등을 조장해 사회적, 정치적 생활을 망가뜨린다... '능력주의'에 힘입은 엘리트들은 제 아무리 순수한 동기를 지니며 양심적인 방법으로 성공을 거둔다 해도 포부와 성과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비판하는 '불평등'에 관여하게 된다."
- [엘리트 세습], '서문', 대니얼 마코비츠, 2020.


예일대 수학과, 런던 정경대 경제학과 석사와 옥스포드대 철학과 박사 학위를 얻은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이자 사법연구소 소장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천재'로 불린단다. 학위와 직업 소개에도 숨이 막히게 재수없는 이 엘리트가 토마 피케티의 '불평등' 연구에 뒤질세라 본인이 속한 미국사회 엘리트 계층의 주요 이데올로기인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깐다. 세부 내용 하나하나 수긍할 만 하나 나는 사실,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어 사서 읽었다. 고대 로마의 제국 팽창과 공화국의 몰락의 근본 토대는 고대 노예제 정치경제체제의 모순이었겠으나, 표면적으로는 부와 성공, 벼락출세자들에 대한 숭배도 원인이었으며 그 지배 이데올로기가 '능력주의'였다 생각했고, 마침 이 책 표지에 그려진 상상의 동물 '그리핀(Griphios)'이 고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매개 같았다.

마코비츠는 [엘리트 세습]에서 미국 사회를 분석하면서 미국의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금융업 고위직 종사자들은 '기술혁명'과 궤를 같이 하면서 기존 미국의 '산업민주주의'를 만들어온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는데 이를 가속화시킨 핵심 분야가 '교육'과 '직업'이라고 한다. 부자집안 아들 부시와 중산층 클린턴은 재산의 차이 외에는 교육이나 사회진출의 기회 또는 생활에서 큰 차이가 없었으나 이후 기득권이 된 클린턴 부부나 오바마 등의 민주당 정치권력자들 부류는 자식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인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거나 이용하여 '엘리트 세습' 체제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마코비츠는 [엘리트 세습] 곳곳에서 피케티를 의식하는데, 마치 '불평등'의 기원을 '자본'에서 찾는 피케티의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함이다. 어차피 사라져가는 미국 '중산층'을 염려하며 오랜 미국의 영화를 되살리고 싶은 이 미국 엘리트 '천재'에게 마르크스나 사회주의 같은 지난 서사담론은 안중에 없을 것이니, 주류 엘리트에 도전하는 신세대 정치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같은 '엘리트'로서 '경계'의 대상일 수 있겠다. 
마코비츠에 의하면 미국 산업의 전성기를 통과한 '중산층'은 미국의 상위 '엘리트'들에 의해 '교육'에서도 밀려나고 '직업' 또한 '번지르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게으른 삶'을 강제당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엘리트' 또한 재능 없이 물려받은 재산만으로 '여가'를 즐기며 일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전통적인 '귀족'들과 달리 고수익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는 '자기착취'를 통해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므로 "이제 중산층 노동자와 상위 (엘리트) 노동자를 포괄하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같은책, <결론>)"는 선언으로 "오래된 구호([공산당선언])를 새롭게 인용(같은책, <결론>)"하며 책을 끝맺는다. 

고소득을 받지만 쉬지않고 일을 하는 현대의 '귀족' 엘리트는 어려서부터 상위권 교육환경에서 살인적인 경쟁에 시달려 왔고 '번지르한' 직업에 진입해서도 쉼없는 '자기착취'로 피폐한 삶을 산다. 한편으로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을 성장시킨 '중산층'은 중간관리직 일자리가 고위 엘리트들의 '기술혁신'에 의해 줄어들고 소득이 줄어 소비도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빈민계층과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 
수학과 경제학, 철학까지 전공하고 명문대 로스쿨에서 상위 엘리트층 자녀들을 가르치는 '천재' 마코비츠의 뛰어난 수치분석과 비교 그래프들은 화려하기는 하나 미국사회의 분석이므로 저자의 '진보'스러운 수사에도 불구하고 공허하다. '중산층'을 복원하고 '엘리트'를 연민하며 미국 노동자들을 '단결'시켜 얻을 '새로운 세상'이라 해봐야 결국 18~20세기 미연방 공화국의 영광 뿐 아니겠는가.
'불평등'의 정치경제학적 근본 분석은 피해가면서 미국사회가 빠진 '능력주의의 덫' 자체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서술을 지루하게 읽다보니 얼마전 꼭 읽어야겠다 생각한 우리 책, [세습중산층 사회]가 떠올라 바로 주문하였다.
마코비츠 책, [엘리트 세습]의 원제는 '능력주의 덫(The Meritocracy Trap)]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시기에 이르러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테크노크라트에 가까운 집단을 대규모로 창출했다. 이들은 이전 세대인 50년대생과 비교해 전문직이나 대기업 내 관리직 비율이 높았다. 또 시대에 맞는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추었기 때문에 1990년 중반 이후 금융과 IT 산업에서 1세대 엘리트층을 구성하게 된다... 또 386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보다 동일 연령대에서 자산 축적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자신의 계층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분투하면서 '세습중산층 사회'를 만들어냈다."
- [세습중산층 사회], '6장 세습중산층의 기원', 조귀동, 2020.


경제학 박사과정에서 '인적자본'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는 저자 조귀동은 [세습중산층 사회]에서 한국사회 기득권이 된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와 그들의 자녀들인 '90년대생'들을 통틀어 '세습중산층'으로 본다. 이 책은 아마도 경제학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나온 마코비츠의 [엘리트 세습] 못지 않게 온갖 수치와 그래프 및 수학적 비교분석이 대부분인데, 결국 '86세대'가 한국의 노동시장을 석권하고 부동산시장을 점령하였으며 그럼에도 자산 뿐만 아니라 90년대생 자녀들을 엘리트 교육시장에까지 진출시키면서 '중산층'의 지위를 세습하는 사회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조귀동의 '세습중산층'은 마코비츠의 '중산층'과 다르고 상위 엘리트층이 약간 확대된 것으로 보면 된다. 한 세대 전 '교육(명문대)'을 통해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금융직 등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들의 앞세대처럼 물적자산을 물려주기 보다는 효율성 높은 인적자산을 키워주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 마코비츠의 '중산층'은 '세습중산층 사회'에서는 '중하위 80%'에 해당하는 계층 일반으로 보면 된다.
자녀들이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치열한 입시경쟁 '교육'에 투자하는 '세습중산층 사회'의 분석에 앞서 조귀동은 '노동시장' 분석부터 시작하여 20대 세대 분석, '세습중산층'의 기원인 '86세대' 분석, 그로 인해 세습되는 '계급의식'과 20대 정치성향 분석 등을 수많은 수치비교를 통해 전개하면서 '세습중산층 사회'의 진화를 예측한다. 
조국 전장관 자녀 특혜 비리에 대해 분노한 20대라고 해봐야 그 사건을 통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위층 자녀들이고, 나머지 다수 20대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난 용'이었던 '86세대'가 부동산과 교육, 노동시장을 다 독식한 결과 그 비슷한 '중산층'의 삶을 물려받는 90년대생  자녀들 이후로는 이 망할 '세습중산층 사회'가 더욱 강화된다는 전망 앞에서는 그냥 책을 덮고 싶었다.


"오히려 문제는 명문대를 나오고,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 인정과 경우에 따라 명망까지 가진 '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90년대생'인 자신의 자녀들이 적합한 '능력'을 갖추도록 독려하고, '교육' 제도를 잘 이용해 새로운 경제 여건과 시대 상황에  걸맞는 '인재'로 키워내는 데 성공하는 것 그 자체다."
- [세습중산층 사회], '에필로그 : 세습중산층의 진화', 조귀동, 2020.


[세습중산층 사회]의 저자 조귀동은 이런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가 된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책의 결론(에필로그)에서 '기회의 평등'과 '누진적 조세'를 제안하는데 다수인 90%가 상위 10%가 접근할 수 있는 공공교육과 상위 10%의 소득에 대한 세금 확대가 그것이다. 결국 '능력주의'의 문제도 '교육'과 '직업(노동)'이며, 해법도 '교육'과 '노동(직업/조세)'에서 찾는다. '자본'이 만든 '능력주의'는 여전히 이윤을 찾아 우리 삶 전 영역을 헤맨다.


"'능력주의'는 귀족제도를 해체하기보다 재편해 부가 토지나 공장이 아닌 인적자본, 즉 숙련 노동자의 자유로운 형태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카스트와 같은 계층질서를 만들어낸다... 능력은 능력으로 대체된 귀족의 가치처럼 자연스럽거나 보편적인 덕목이 아니라 앞서 존재한 '불평등'의 결과물이다. 능력은 인적자본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부당한 분배를 눈가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구조물이다."
- [엘리트 세습], '1부 3장 다가오는 계층전쟁', 대니얼 마코비츠, 2020.


피케티나 마코비츠나 조귀동 모두 '불평등' 문제에 주목하고 방대한 조사와 데이터 연구분석을 통해 원인을 규명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한다. '불평등'의 토대가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라는 근본적 분석에 동의하든 말든, 미국의 '엘리트-중산층' 대립이나 우리의 '86세대-90년대생' 세습관계 등의 계층이나 세대 분석적 접근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다. 그리고 그 다양한 분석들을 망라하는 변혁의 방식으로 이들 모두가 제출하는 것은 '연대'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자본'과 '시장'의 무한증식 팽창을 다수가 통제하기 위한 '노동'의 '연대'라면 더욱 좋겠다. 
LG 자본에 의해 쫓겨나는 청소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능력주의의 덫'이든 뭐든 중요한 게 아니라 오로지 인간답게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노동'하는 다수의 광범위한 연대를 통한 '평등' 지향이라는 방향성이 없다면, 우리 사는 이 세계는 너무도 절망적이다.

***

1. [엘리트 세습](2020), 대니얼 마코비츠, 서정아 옮김, <세종>, 2020.
2. [세습중산층 사회], 조귀동, <생각의힘>, 2020.
3.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4.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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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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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덫을 벗어나는 다수 '노동'의 연대
- 미국의 [엘리트 세습]과 한국의 [세습중산층 사회]



"신소유주의(신자유주의)는 주로 과도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능력주의' 언술은 경제체계의 승자를 찬양하며 패자를 본인의 능력과 덕성과 근면의 부족 탓이라고 간주하고 매도한다. 이것은 당연히 오래된 이데올로기로, 모든 엘리트가 어떤 풍토에서든 자신들의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활용해온 것이다...
...
'불평등'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적이다. 현재의 신소유주의는 19세기 초의 고전시대 소유주의와는 다르게 더 이상 명시적으로 '납세유권자'적일 수 없기에 그만큼 더 '능력주의'를 고취하려 한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3부 20세기의 거대한 전환 - 13장 하이퍼자본주의 : 현대성과 의고주의 사이에서', 토마 피케티, 2019.


2013년에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갈수록 높아지는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는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21세기 자본], <결론>)" 사회라 규정하며 현대의 '불평등' 문제에 천착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9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좀더 좌파적인 시선으로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를 '신소유주의'로 부르며 분석한다. 그가 추적하는 '불평등'의 기원은 가치증식(이윤)을 위해 '형성기'에는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21세기 자본], <2부 3장>)"이나 "충분히 축적되면...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같은책, 같은장)"으로 '변신'하는 자본이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규정한 자본의 본질은 '끊임 없는 자기증식 운동'인데 피케티는 이 운동형태의 '지대추구성'을 보며 '자본의 변신(같은책, 같은장)'을 갈수록 심화되는 현대 '불평등'의 한 조건으로 전제한다. 

피케티의 '신소유주의(신자유주의)' 분석에는 여러 개념이 사용되는데, 그 중 '브라만좌파'와 '상인우파' 이야기가 있다. 전통적인 자본가나 지주계급에 뿌리를 둔 '상인우파'는 원래부터 '불평등'의 근원인 반면,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브라만좌파'는 기존 산업시대 생산력 발전의 주력이었던 '노동계급'의 자녀들로서 평등교육의 혜택을 입고 유럽의 사회민주당과 미국의 민주당의 주력이 된 '좌파' 세대를 이른다. 우리의 '강남좌파'와 '86 세대'와 같다.
이 '교육'을 통해 '지식인' 계층을 형성한 '브라만(힌두교 성직자/지식인) 좌파'는 체제의 기득권을 형성하면서 기존 권력층인 '상인우파'와 결탁하고 신자유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권력동맹으로 굳게 결탁된다. '정치'적으로는 싸우는 것 같지만 '경제'적으로는 이익을 공유하는 양당제 거대정당 과두지배의 맨얼굴이다. 정확히 우리 사회 민주당의 모습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또 하나의 개념이 파생적으로 연결되는데, 바로 '능력주의(meritocracy)'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결론인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의 조건 중 '누진적 조세제도' 외에도 '교육'과 기회의 평등 및 공공재 소유의 확산이 제기된다. 피케티의 관점에 '능력주의'는 엘리트 계층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조해 온 이데올로기다. 이 '능력주의'라는 '허위의식(ideology)'은 '불평등'의 정치경제적 근원을 은폐한다.


"모든 문명사회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속임수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부와 특권의 집중과 세습을 대대손손 유지하는 메커니즘이자 원한과 분열을 불러일으키는 계층제도가 된 것이다. 심지어 새로운 '귀족제도(aristocracy)'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고통이 '능력주의'가 불완전하게 구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능력주의' 그 자체 때문이라는 점이다... '능력주의'는 시민 대다수를 사회 주변부로 몰아내고 중산층 어린이들을 무기력한 학교로, 중산층 성인들을 장래성 없는 직장으로 보낸다...
다시 말해 '능력주의'는 조직적인 계층 갈등을 조장해 사회적, 정치적 생활을 망가뜨린다... '능력주의'에 힘입은 엘리트들은 제 아무리 순수한 동기를 지니며 양심적인 방법으로 성공을 거둔다 해도 포부와 성과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비판하는 '불평등'에 관여하게 된다."
- [엘리트 세습], '서문', 대니얼 마코비츠, 2020.


예일대 수학과, 런던 정경대 경제학과 석사와 옥스포드대 철학과 박사 학위를 얻은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이자 사법연구소 소장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천재'로 불린단다. 학위와 직업 소개에도 숨이 막히게 재수없는 이 엘리트가 토마 피케티의 '불평등' 연구에 뒤질세라 본인이 속한 미국사회 엘리트 계층의 주요 이데올로기인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깐다. 세부 내용 하나하나 수긍할 만 하나 나는 사실,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어 사서 읽었다. 고대 로마의 제국 팽창과 공화국의 몰락의 근본 토대는 고대 노예제 정치경제체제의 모순이었겠으나, 표면적으로는 부와 성공, 벼락출세자들에 대한 숭배도 원인이었으며 그 지배 이데올로기가 '능력주의'였다 생각했고, 마침 이 책 표지에 그려진 상상의 동물 '그리핀(Griphios)'이 고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매개 같았다.

마코비츠는 [엘리트 세습]에서 미국 사회를 분석하면서 미국의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금융업 고위직 종사자들은 '기술혁명'과 궤를 같이 하면서 기존 미국의 '산업민주주의'를 만들어온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는데 이를 가속화시킨 핵심 분야가 '교육'과 '직업'이라고 한다. 부자집안 아들 부시와 중산층 클린턴은 재산의 차이 외에는 교육이나 사회진출의 기회 또는 생활에서 큰 차이가 없었으나 이후 기득권이 된 클린턴 부부나 오바마 등의 민주당 정치권력자들 부류는 자식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인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거나 이용하여 '엘리트 세습' 체제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마코비츠는 [엘리트 세습] 곳곳에서 피케티를 의식하는데, 마치 '불평등'의 기원을 '자본'에서 찾는 피케티의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함이다. 어차피 사라져가는 미국 '중산층'을 염려하며 오랜 미국의 영화를 되살리고 싶은 이 미국 엘리트 '천재'에게 마르크스나 사회주의 같은 지난 서사담론은 안중에 없을 것이니, 주류 엘리트에 도전하는 신세대 정치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같은 '엘리트'로서 '경계'의 대상일 수 있겠다. 
마코비츠에 의하면 미국 산업의 전성기를 통과한 '중산층'은 미국의 상위 '엘리트'들에 의해 '교육'에서도 밀려나고 '직업' 또한 '번지르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게으른 삶'을 강제당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엘리트' 또한 재능 없이 물려받은 재산만으로 '여가'를 즐기며 일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전통적인 '귀족'들과 달리 고수익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는 '자기착취'를 통해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므로 "이제 중산층 노동자와 상위 (엘리트) 노동자를 포괄하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같은책, <결론>)"는 선언으로 "오래된 구호([공산당선언])를 새롭게 인용(같은책, <결론>)"하며 책을 끝맺는다. 

고소득을 받지만 쉬지않고 일을 하는 현대의 '귀족' 엘리트는 어려서부터 상위권 교육환경에서 살인적인 경쟁에 시달려 왔고 '번지르한' 직업에 진입해서도 쉼없는 '자기착취'로 피폐한 삶을 산다. 한편으로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을 성장시킨 '중산층'은 중간관리직 일자리가 고위 엘리트들의 '기술혁신'에 의해 줄어들고 소득이 줄어 소비도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빈민계층과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 
수학과 경제학, 철학까지 전공하고 명문대 로스쿨에서 상위 엘리트층 자녀들을 가르치는 '천재' 마코비츠의 뛰어난 수치분석과 비교 그래프들은 화려하기는 하나 미국사회의 분석이므로 저자의 '진보'스러운 수사에도 불구하고 공허하다. '중산층'을 복원하고 '엘리트'를 연민하며 미국 노동자들을 '단결'시켜 얻을 '새로운 세상'이라 해봐야 결국 18~20세기 미연방 공화국의 영광 뿐 아니겠는가.
'불평등'의 정치경제학적 근본 분석은 피해가면서 미국사회가 빠진 '능력주의의 덫' 자체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서술을 지루하게 읽다보니 얼마전 꼭 읽어야겠다 생각한 우리 책, [세습중산층 사회]가 떠올라 바로 주문하였다.
마코비츠 책, [엘리트 세습]의 원제는 '능력주의 덫(The Meritocracy Trap)]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시기에 이르러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테크노크라트에 가까운 집단을 대규모로 창출했다. 이들은 이전 세대인 50년대생과 비교해 전문직이나 대기업 내 관리직 비율이 높았다. 또 시대에 맞는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추었기 때문에 1990년 중반 이후 금융과 IT 산업에서 1세대 엘리트층을 구성하게 된다... 또 386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보다 동일 연령대에서 자산 축적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자신의 계층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분투하면서 '세습중산층 사회'를 만들어냈다."
- [세습중산층 사회], '6장 세습중산층의 기원', 조귀동, 2020.


경제학 박사과정에서 '인적자본'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는 저자 조귀동은 [세습중산층 사회]에서 한국사회 기득권이 된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와 그들의 자녀들인 '90년대생'들을 통틀어 '세습중산층'으로 본다. 이 책은 아마도 경제학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나온 마코비츠의 [엘리트 세습] 못지 않게 온갖 수치와 그래프 및 수학적 비교분석이 대부분인데, 결국 '86세대'가 한국의 노동시장을 석권하고 부동산시장을 점령하였으며 그럼에도 자산 뿐만 아니라 90년대생 자녀들을 엘리트 교육시장에까지 진출시키면서 '중산층'의 지위를 세습하는 사회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조귀동의 '세습중산층'은 마코비츠의 '중산층'과 다르고 상위 엘리트층이 약간 확대된 것으로 보면 된다. 한 세대 전 '교육(명문대)'을 통해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금융직 등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들의 앞세대처럼 물적자산을 물려주기 보다는 효율성 높은 인적자산을 키워주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 마코비츠의 '중산층'은 '세습중산층 사회'에서는 '중하위 80%'에 해당하는 계층 일반으로 보면 된다.
자녀들이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치열한 입시경쟁 '교육'에 투자하는 '세습중산층 사회'의 분석에 앞서 조귀동은 '노동시장' 분석부터 시작하여 20대 세대 분석, '세습중산층'의 기원인 '86세대' 분석, 그로 인해 세습되는 '계급의식'과 20대 정치성향 분석 등을 수많은 수치비교를 통해 전개하면서 '세습중산층 사회'의 진화를 예측한다. 
조국 전장관 자녀 특혜 비리에 대해 분노한 20대라고 해봐야 그 사건을 통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위층 자녀들이고, 나머지 다수 20대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난 용'이었던 '86세대'가 부동산과 교육, 노동시장을 다 독식한 결과 그 비슷한 '중산층'의 삶을 물려받는 90년대생  자녀들 이후로는 이 망할 '세습중산층 사회'가 더욱 강화된다는 전망 앞에서는 그냥 책을 덮고 싶었다.


"오히려 문제는 명문대를 나오고,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 인정과 경우에 따라 명망까지 가진 '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90년대생'인 자신의 자녀들이 적합한 '능력'을 갖추도록 독려하고, '교육' 제도를 잘 이용해 새로운 경제 여건과 시대 상황에  걸맞는 '인재'로 키워내는 데 성공하는 것 그 자체다."
- [세습중산층 사회], '에필로그 : 세습중산층의 진화', 조귀동, 2020.


[세습중산층 사회]의 저자 조귀동은 이런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가 된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책의 결론(에필로그)에서 '기회의 평등'과 '누진적 조세'를 제안하는데 다수인 90%가 상위 10%가 접근할 수 있는 공공교육과 상위 10%의 소득에 대한 세금 확대가 그것이다. 결국 '능력주의'의 문제도 '교육'과 '직업(노동)'이며, 해법도 '교육'과 '노동(직업/조세)'에서 찾는다. '자본'이 만든 '능력주의'는 여전히 이윤을 찾아 우리 삶 전 영역을 헤맨다.


"'능력주의'는 귀족제도를 해체하기보다 재편해 부가 토지나 공장이 아닌 인적자본, 즉 숙련 노동자의 자유로운 형태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카스트와 같은 계층질서를 만들어낸다... 능력은 능력으로 대체된 귀족의 가치처럼 자연스럽거나 보편적인 덕목이 아니라 앞서 존재한 '불평등'의 결과물이다. 능력은 인적자본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부당한 분배를 눈가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구조물이다."
- [엘리트 세습], '1부 3장 다가오는 계층전쟁', 대니얼 마코비츠, 2020.


피케티나 마코비츠나 조귀동 모두 '불평등' 문제에 주목하고 방대한 조사와 데이터 연구분석을 통해 원인을 규명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한다. '불평등'의 토대가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라는 근본적 분석에 동의하든 말든, 미국의 '엘리트-중산층' 대립이나 우리의 '86세대-90년대생' 세습관계 등의 계층이나 세대 분석적 접근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다. 그리고 그 다양한 분석들을 망라하는 변혁의 방식으로 이들 모두가 제출하는 것은 '연대'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자본'과 '시장'의 무한증식 팽창을 다수가 통제하기 위한 '노동'의 '연대'라면 더욱 좋겠다. 
LG 자본에 의해 쫓겨나는 청소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능력주의의 덫'이든 뭐든 중요한 게 아니라 오로지 인간답게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노동'하는 다수의 광범위한 연대를 통한 '평등' 지향이라는 방향성이 없다면, 우리 사는 이 세계는 너무도 절망적이다.

***

1. [엘리트 세습](2020), 대니얼 마코비츠, 서정아 옮김, <세종>, 2020.
2. [세습중산층 사회], 조귀동, <생각의힘>, 2020.
3.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4.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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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 그림과 함께 읽는
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엮음, 황건 옮김 / 까치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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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의 탈을 쓴 '제국'의 '쇠망사'
- [로마제국 쇠망사](1776~1788), 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편집, 황건 옮김, <까치>, 2010.
- [공화국의 몰락](2003), 톰 홀랜드, 김병화 옮김, <웅진닷컴>, 2004.


"일개 도시가 하나의 제국으로 팽창하게 된 경이는 철학자의 관심을 끌 만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로마가 쇠망한 것도 이 무절제한 팽창이 가져온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였다. 번영은 쇠망의 원리를 성숙시켰고, 정복의 확대에 의해서 파괴의 원인이 증가했으며,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는 우연히 인위적 기둥들이 허물어지게 되자 그 방대한 구조물은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졌다. 그 붕괴의 이야기는 간단명료하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제국이 왜 멸망했는가를 묻기보다는 오히려 그처럼 오랫동안 존속했다는 데 놀라게 되는 것이다... 
로마의 통치권력은 (수도 이전으로) 이전되었다기 보다는 (동서로) 분할되었다."
- [로마제국 쇠망사], <15장>, 에드워드 기번, 1787.


'제국'의 몰락 또는 그 쇠망을 이야기할 때 보통 마지막 황제가 혐의를 쓴다. 그러나 북송은 사치군주 휘종 전에 신법 개혁을 하고자 했던 신종 때부터 쇠망의 기운이 있었고, 명나라는 숭정제가 목매달기 전에 만력제의 오랜 통치기간에 이미 기울어지고 있었으며, 한나라의 가장 강력했던 무제 시기에 제국의 내리막길은 시작되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로마는 보통 서양 역사에서 '제국'의 대명사다. 한편으로 '공화국' 체제, 즉 '공화정'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사실, 로마 시대 '공화국'과 '제국'의 구분은 근현대사의 그것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두 개념 모두 근대 이후에 확립된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고대시대 모든 로마 황제(Emperor)들의 명분상 임무는 '공화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영국의 18세기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 1737~1794)은 유럽대륙을 여행하던 중 이탈리아 로마의 카피톨리움 폐허를 보고 장대한 로마제국 역사의 집필을 구상했다. 1776년부터 1788년까지 지어진 전체 6권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탁월하고 재치있는 문장으로 영문학사에서도 높이 평가된단다. 인도 네루 수상이 감옥에서 열심히 탐독했고 영국 처칠 수상의 재치와 유머의 원천이기도 했다는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누가 봐도 진지하기만 한 역사에 관한 전혀 진지하지 않은 잡답이자 길고 긴 수다에 가깝다. 예를 들어 무능한 군주 막센티우스를 두고 "오랫동안 군주가 자리를 비워 섭섭해했던 로마인들도 그의 재위 7년 동안은 군주의 로마 거주를 개탄(7장)"했으며, 기원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의 승리로 동방의 기독교 아리우스파를 몰아냈으나 이후 끊임없는 종교분쟁으로 정치적 고난을 겪는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타나시우스의 모험은 한 장의 우스꽝스러운 일대기로 서술하면서 콘스탄티누스의 아들 황제는 그 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장 격렬한 정치권력의 행사에도 저항할 수 있는 기독교 교리의 힘을 경험한 최초의 기독교 황제였다(10장)"는 식의 풍자 일색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웃기는 서술이 이어지는 장은 <13장>의 '유목민의 풍습' 등인데 편집본에서 이 장은 기번의 원문에서는 <26~29장>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러나 저러나 권력자의 탐욕이나 민중들의 '냄비정신' 등 인간군상은 기번에게 전지적 후대 역사가의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된다. 
기원후 1세기 로마 '5현제(五賢帝)'부터 5세기 서로마 멸망 이후에도 1천년 이상의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역사를 만연체로 서술했다는 6권은 너무도 길기에 언론인 데로 손더스가 1952년에 발췌하고 요약한 판본으로도 일반인들은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충분히 읽어볼 수 있다. 손더스의 요약본은 원문을 그대로 발췌했으므로 기번의 문장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는데, 장황한 사설들은 과감히 생략하고 각주를 달았으며 부득이한 요약만 편집자 본인이 썼단다. 또한 기번 자신도 서술을 멈추고자 했던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충실하게 발췌한 후 나머지 15세기 콘스탄티노플 멸망의 과정 1천년은 '원서 후반부 발췌(16장)'로 정리했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의 주요내용은 원서 전반부 98년 '5현제'의 시작인 트리야누스부터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까지, '공화국'이 몰락하고 '제국'이 모습을 갖추자 마자 '쇠망'의 씨앗을 배태하고 쇠퇴해가면서 결국 일부(서로마)가 멸망한 약 4백년의 역사다.




"공화국은 야만스러울 정도로 '능력' 위주의 사회였다. 로마인이 생각하는 자유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들에게 역사는 노예가 될 신세에서 벗어나는, 영구적 경쟁의 동력을 기초로 하는 자유에로 나아가는 진화과정이었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런 위선이 공화국의 정체를 규정했다. 그것은 공화국 헌법의 부산물이 아니라 본질 그 자체였다."
- [공화국의 몰락], <1장. 모순적인 공화국>, 톰 홀랜드, 2003.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사실상 로마 '공화정'을 실질적으로 끝낸 카이사르의 양자 아우구스투스의 죽음 이후부터의 이야기다. 칼리굴라, 네로 등의 병적인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존엄자) 옥타비아누스와 다섯명의 현명한 황제(5현제) 사이의 기간으로서 굳이 '역사가' 입장에서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다. 
로마공화국의 몰락에 관해서 영국 역사가 톰 홀랜드(Tom Holland)는 2003년에 기원전 6세기 로마공화국의 시작부터 기원후 24년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의 죽음까지의 역사를 카이사르(Caesar)가 루비콘 강을 건넌 사건을 전후하여 서술한다. 원제목 [루비콘(Rubicon)]은 국역으로 [공화국의 몰락]이 되었다. 그만큼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루비콘 도강'은 공화국의 몰락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왔노라, 보았노라, 정복했노라!(Veni, vidi, vici!)"의 실력을 갖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어렸을 적 '주사위' 놀이를 좋아한 만큼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도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iacta est!)"는 명언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고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지지와 명성을 얻으려면 이 정도 '도박(주사위)'이나 유행어 쯤에는 능수능란해야 한다는 점은 고대와 현대를 막론한다.





로마는 늑대 젓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레무스 쌍둥이 형제가 기원전 753년에 건국 후 군사력으로 주변 지역을 점차로 복속시키면서 군주국이 되었으나, 기원전 509년 타르퀸이라는 독재자가 시빌(Sibyl)이라는 노파의 예언을 무시한 후 쫓겨나고 시민투표에 의한 '민주정'을 세웠으며 이후로도 이 '공화정'이 위기에 처하면 원로원이 보관해온 '시빌 예언서'를 들춰보며 시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공화국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주 고대의 '시빌 예언서'는 독재에 항거한 민중폭동의 은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공화국'에서 원로원으로부터 선출된 임기 1년의 집정관은 2명이 서로 견제했고 호민관은 귀족이 아닌 시민이 뽑은 대표로서 서민정책을 펴는 귀족이었단다. 로마 창시자 로물루스는 카피톨리누스 언덕을 중심지 삼아 아벤티누스 지역의 동생 레무스를 살해하고 로마를 차지했다는데 위례(서울)를 기반 삼아 형제 비류를 죽이고는 미추홀(인천)을 먹은 백제 시조 온조 이야기와 닮았다. 로마는 승자 로물루스 지역 카피톨리누스가 귀족들의 대저택, 패자 레무스의 지역 아벤티누스 서민들의 '쪽방촌' 또는 '닭장촌'으로 나뉘기도 했는데 이 서민아파트 값 또한 엄청나게 비쌌으며 로마 전성기 인구가 고대 당시에 이미 100만명이 넘었다는 기번의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의 서울, 현대사회 대도시의 모습과 꼭 닮았다. 트로이 전쟁 후 피난온 아에네이아스(Aeneas) 후손인 율리우스 가문은 로마의 근본있는 귀족인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마도 이 집안 출신 정치인이었던 것 같다.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빚내서 돈과 금품을 막 뿌려대고 남유럽 지역인 갈리아 원정 등의 군사적 성과를 통해 명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카이사르는 1차 삼두정치 과정에서 당연히 당대 실력자들로부터 견제를 받았는데 경쟁자들을 치기 위해 카이사르가 던진 '주사위'가 바로 '루비콘 도강'이었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토 등을 제압한 카이사르는 이전 세대 술라가 역임한 '독재관' 10년 임기 시작 초반에 "부르투스, 너마저?(Et tu Brute?)" 한마디 남기고 살해되었다는데, 그만큼 '공화국'을 애정했던 카이사르의 동료 부르투스가 로마 광장에서 만세를 부를 때 이를 보는 로마 시민들의 시선은 차가웠단다.

[공화국의 몰락]은 카이사르 같은 독재관들이 초래한 것이 아니었다.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자유를 누리던 로마인들이 명예와 능력을 통해 성공하고 부를 독차지한 카이사르 같은 인물들을 숭배하고 스스로 문명과 풍요, 사치와 향락의 노예가 기꺼이 되고자 하면서 스스로 '공화국'의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라쿠스 형제의 운명은 '공화국'의 근간에 대한 개혁을 행하려는 시도는 모두 '전제주의'로 해석될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급진적인 변화 프로그램은 제 아무리 이상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경쟁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다. 이 사실을 죽음으로 입증함으로써 그라쿠스 형제는 궁극적으로 자기들 목숨을 바친 바로 그 개혁을 좌절시켰다. 그들 이후의 호민관들은 목표를 더욱 신중하게 선택하게 되었다. 사회혁명은 영구히 유보되게 된다."
- [공화국의 몰락], <1장. 모순적인 공화국>, 톰 홀랜드.


기원전 130년대 토지를 민중에게 나눠주는 토지개혁을 단행하려다가 차례로 살해당한 호민관 그라쿠스 형제는 평민이 아니라 귀족이었다. 로마는 군사적 성과를 통해 출세한 자들의 '능력주의'가 숭배된 사회로 출신이 노예든 평민이든 '제국'의 팽창과정에서 전공을 세운 자는 부와 명예를 얻어 귀족이 되고 원로원 의원도, 집정관이나 호민관도 될 수 있었다. 물론, 이 '능력주의'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에 엄청난 금품과 뇌물을 뿌리고 경쟁적으로 대외팽창 전쟁을 일으켜야 했다. 역사적 경제토대가 노예체제냐 자본주의체제냐 차이만 있을 뿐, 지금은 허위에 불과한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현대 미국이나 지금의 우리 사회와 같다. 
벼락성공을 위해 서로 밟고 밟히는 이 문명적 정글인 '능력주의' 사회에서 그나마 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가 있었으니 '공화국'이 바로 그것이다. 공화국 한창 때인 기원전 2세기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개혁의 명분도, 이들의 개혁을 저지한 귀족들의 반개혁 명분도 모두, '공화국 사수'였다. 그 어떤 실력자도 '황제'나 '독재관' 또는 '아우구스투스(존엄자)'가 될 수 있었지만 전제적 '독재군주'가 될 수 없었다. '독재관' 술라도, '황제(Kaiser)'의 어원이 된 카이사르(Caesar)도, '존엄자' 옥타비아누스도 스스로를 '전제군주'로 부르지 않았다. 다만,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는 군사력보다는 관용적 정치력으로 원로원으로부터 '존엄자(아우구스투스)'라는 호칭을 부여받으며 '원수정(元首政)'이라는 로마 제정(帝政)의 정치적 틀을 만들었다. 이후 동로마가 멸망하는 15세기까지 '로마공화국'이라는 이데올로기는 허울 뿐인 원로원과 끝까지 명목상 함께 했으나 이 귀족들은 실질적으로 '로마제국' 황제들의 신하들에 불과했다. 
톰 홀랜드의 [공화국의 몰락]은 기원후 24년 아우구스투스의 죽음으로 끝맺는데 그의 죽음은 바로 '공화국'의 정치적 몰락이었다. 
로마 시대 진정한 반란이자 혁명은 노예경제체제를 흔드는데는 실패했지만, 기원전 73~71년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반란 뿐이었다. 


"역사가는 이런(형이상학적/종교적) 고매한 고찰이 옳으냐 그르냐를 주제넘게 논하지 않고, 다만 경험에 의해서 입증할 수 있는 관찰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격변(365년경)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격정에 따른 재앙을 더욱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진이나 해일, 태풍이나 화산폭발로 인한 재난은 일반적인 전쟁의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발렌스 황제의 치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로마제국의 몰락 과정에는 개인의 행복과 안전이 직접적으로 침해받았으며, 당대의 기술도 노동의 성과들도 모두 스키타이와 게르마니아의 야만인들에 의해서 난폭하게 손상되었다. 훈족(흉노족)의 침입으로 서로마의 여러 지방으로 쫓겨간 고트족은 40년도 못되는 기간에 도나우 지역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들의 군사적 승리로 자기들보다 훨씬 더 야만적인 수많은 부족들의 이동과 침입의 길을 열게 되었다."
- [로마제국 쇠망사], <13장>, 에드워드 기번.


스스로를 시종 '역사가'로 칭하고 혹은 '철학자'로도 암시하는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의 역사를 '경험에 의해 입증할 수 있는 관찰'에 의해 장황하지만 재치있게 풀어낸다. '5현제' 이후 제국의 팽창과 함께 기원후 3세기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를 동서로 분할하면서 '전제군주정(專制君主政)'을 확립했다. 이미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 반도는 물론 서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에 속주를 둔 '로마제국'은 허울 뿐인 '공화정'이나 배우(actor)처럼 연극적 웅변이나 해대는 기만적인 '원수정'으로 지배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해졌고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결국 제국을 분할한다. 밀라노 중심의 서로마와 니코메디아 중심의 동로마는 2명의 '황제(아우구스투스)'가 다스리고, 나머지 갈리아와 아프리카는 2명의 '부황제(카이사르)'가 다스리는 방식이다. 
기번이 본 '쇠망'의 키워드인 '분할'은 사실 그 어떤 '세계제국'으로도 운영할 수 없는 로마의 '팽창주의'의 다른 말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기번의 말은 정정되어야 한다. '로마는 분할로 쇠망한 것이 아니라 팽창으로 망한 것'이라고.



기원후 4세기에는 전세계 기후변화가 있었던 듯 하다. 북쪽의 게르만, 고트족이 먹을 것을 찾아 급격히 이동했고 아시아에서도 흉노,선비, 갈, 저, 강족의 이른바 '다섯오랑캐'가 중원을 차지하려고 엎치락뒤치락하는 '5호16국'의 시대와 겹친다. 다신교 로마사회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기원후 313년 '밀라노 칙령'의 콘스탄티누스가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330년)한 후 발렌티아누스와 그의 사촌동생 발렌스 시기 로마제국은 아시아의 페르시아적(또는 중국) 영향으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제국'으로 변모해 갔고 주요한 속주의 군사력과 나아가 정치권력까지 이 밀려드는 서고트족 군왕 알라리크에게 맡김으로써 '제국'의 '쇠망'을 가속화한다. 화려한 '태평성대' 전성기에 이미 '쇠망'과 '몰락'의 씨앗은 충분히 자라고 있었다. T.S.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말한 것처럼 만발의 시기에 이미 죽어갈 운명을 배태하여 슬픈 역사의 '변증법(辨證法)'이 바로 에드워드 기번과 톰 홀랜드의 역사관이다.


"'자유를 너무 많이 누리다 보면 끝내는 노예 신세가 된다'는 것이 키케로의 비통한 판단이었다. 그의 세대, 자유 공화국의 마지막 세대가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노예제의 귀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세대, 새로운 시대가 밝혀내야 할 사실이었다."
- [공화국의 몰락], <11장. 공화국의 죽음>, 톰 홀랜드.


로마시민은 '공화국의 자유'를 5백년 간 누리면서 '능력주의'와 부를 숭배했고 이를 실현한 벼락출세자들을 찬양했다. 로마의 쪽방 서민아파트 값을 천정부지로 올리면서 권력의 주변에서 서성대며 떡고물을 받아먹고 무리한 팽창을 통해 스스로도 감당못할 '제국'을 건설했으나 결국 로마제국의 긴 역사는 그 자체로 '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가 되었다. 
노예경제체제에서 '제국주의'적 팽창의 원인은 노예노동력 확보를 통한 생산력 발전과 부의 축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국의 쇠망사'는 그 자체로 노예제 사회의 역사단계적 모순을 반영한다.
그렇게 모든 역사적 문명체제는 그 전성기와 함께 이미 다음 체제로의 이행을 준비한다.
물론, 현재 자본주의체제 또한 이 역사의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로마공화국의 사상가이자 웅변가로 그 연극적 요소로써 당연히 정치가이기도 했던 키케로가 [공화국]에서 말했다는 '노예'는 체제적 노예가 아닌 사상적 노예였다. 로마공화국 시민의 '자유'가 확장하면서 본인들 스스로도 감당못할 체제를 만들고 이에 굴종하는 '노예'적 삶은 당대 로마인으로서는 극복할 수 없었다. 진정한 '평등주의'를 지향한 스파르타쿠스 노예반란은 물론 그라쿠스 형제의 호민관개혁 조차도 이 '자유시민'들에 의해 '공화국'의 이름으로 좌절되고 말았으며, 결국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맞아 변화시켰다. 로마제국의 팽창과 이로 인했을 기후변화의 시대를 맞아 아시아에서 밀려온 유목민족과 북쪽의 야만인들의 새로운 세대가 만든 역사적 변화와 혁명의 토대에는 노예경제체제의 변화라는 거대한 저변의 흐름이 있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과 동시에,
하루아침에 망하지도 않았다.

***

1. [로마제국 쇠망사](1776~1788), 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편집, 황건 옮김, <까치>, 2010.
2. [공화국의 몰락](2003), 톰 홀랜드, 김병화 옮김, <웅진닷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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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의 몰락
톰 홀랜드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공화국'의 탈을 쓴 '제국'의 '쇠망사'
- [로마제국 쇠망사](1776~1788), 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편집, 황건 옮김, <까치>, 2010.
- [공화국의 몰락](2003), 톰 홀랜드, 김병화 옮김, <웅진닷컴>, 2004.


"일개 도시가 하나의 제국으로 팽창하게 된 경이는 철학자의 관심을 끌 만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로마가 쇠망한 것도 이 무절제한 팽창이 가져온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였다. 번영은 쇠망의 원리를 성숙시켰고, 정복의 확대에 의해서 파괴의 원인이 증가했으며,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는 우연히 인위적 기둥들이 허물어지게 되자 그 방대한 구조물은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졌다. 그 붕괴의 이야기는 간단명료하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제국이 왜 멸망했는가를 묻기보다는 오히려 그처럼 오랫동안 존속했다는 데 놀라게 되는 것이다... 
로마의 통치권력은 (수도 이전으로) 이전되었다기 보다는 (동서로) 분할되었다."
- [로마제국 쇠망사], <15장>, 에드워드 기번, 1787.


'제국'의 몰락 또는 그 쇠망을 이야기할 때 보통 마지막 황제가 혐의를 쓴다. 그러나 북송은 사치군주 휘종 전에 신법 개혁을 하고자 했던 신종 때부터 쇠망의 기운이 있었고, 명나라는 숭정제가 목매달기 전에 만력제의 오랜 통치기간에 이미 기울어지고 있었으며, 한나라의 가장 강력했던 무제 시기에 제국의 내리막길은 시작되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로마는 보통 서양 역사에서 '제국'의 대명사다. 한편으로 '공화국' 체제, 즉 '공화정'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사실, 로마 시대 '공화국'과 '제국'의 구분은 근현대사의 그것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두 개념 모두 근대 이후에 확립된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고대시대 모든 로마 황제(Emperor)들의 명분상 임무는 '공화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영국의 18세기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 1737~1794)은 유럽대륙을 여행하던 중 이탈리아 로마의 카피톨리움 폐허를 보고 장대한 로마제국 역사의 집필을 구상했다. 1776년부터 1788년까지 지어진 전체 6권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탁월하고 재치있는 문장으로 영문학사에서도 높이 평가된단다. 인도 네루 수상이 감옥에서 열심히 탐독했고 영국 처칠 수상의 재치와 유머의 원천이기도 했다는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누가 봐도 진지하기만 한 역사에 관한 전혀 진지하지 않은 잡답이자 길고 긴 수다에 가깝다. 예를 들어 무능한 군주 막센티우스를 두고 "오랫동안 군주가 자리를 비워 섭섭해했던 로마인들도 그의 재위 7년 동안은 군주의 로마 거주를 개탄(7장)"했으며, 기원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의 승리로 동방의 기독교 아리우스파를 몰아냈으나 이후 끊임없는 종교분쟁으로 정치적 고난을 겪는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타나시우스의 모험은 한 장의 우스꽝스러운 일대기로 서술하면서 콘스탄티누스의 아들 황제는 그 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장 격렬한 정치권력의 행사에도 저항할 수 있는 기독교 교리의 힘을 경험한 최초의 기독교 황제였다(10장)"는 식의 풍자 일색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웃기는 서술이 이어지는 장은 <13장>의 '유목민의 풍습' 등인데 편집본에서 이 장은 기번의 원문에서는 <26~29장>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러나 저러나 권력자의 탐욕이나 민중들의 '냄비정신' 등 인간군상은 기번에게 전지적 후대 역사가의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된다. 
기원후 1세기 로마 '5현제(五賢帝)'부터 5세기 서로마 멸망 이후에도 1천년 이상의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역사를 만연체로 서술했다는 6권은 너무도 길기에 언론인 데로 손더스가 1952년에 발췌하고 요약한 판본으로도 일반인들은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충분히 읽어볼 수 있다. 손더스의 요약본은 원문을 그대로 발췌했으므로 기번의 문장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는데, 장황한 사설들은 과감히 생략하고 각주를 달았으며 부득이한 요약만 편집자 본인이 썼단다. 또한 기번 자신도 서술을 멈추고자 했던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충실하게 발췌한 후 나머지 15세기 콘스탄티노플 멸망의 과정 1천년은 '원서 후반부 발췌(16장)'로 정리했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의 주요내용은 원서 전반부 98년 '5현제'의 시작인 트리야누스부터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까지, '공화국'이 몰락하고 '제국'이 모습을 갖추자 마자 '쇠망'의 씨앗을 배태하고 쇠퇴해가면서 결국 일부(서로마)가 멸망한 약 4백년의 역사다.




"공화국은 야만스러울 정도로 '능력' 위주의 사회였다. 로마인이 생각하는 자유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들에게 역사는 노예가 될 신세에서 벗어나는, 영구적 경쟁의 동력을 기초로 하는 자유에로 나아가는 진화과정이었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런 위선이 공화국의 정체를 규정했다. 그것은 공화국 헌법의 부산물이 아니라 본질 그 자체였다."
- [공화국의 몰락], <1장. 모순적인 공화국>, 톰 홀랜드, 2003.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사실상 로마 '공화정'을 실질적으로 끝낸 카이사르의 양자 아우구스투스의 죽음 이후부터의 이야기다. 칼리굴라, 네로 등의 병적인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존엄자) 옥타비아누스와 다섯명의 현명한 황제(5현제) 사이의 기간으로서 굳이 '역사가' 입장에서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다. 
로마공화국의 몰락에 관해서 영국 역사가 톰 홀랜드(Tom Holland)는 2003년에 기원전 6세기 로마공화국의 시작부터 기원후 24년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의 죽음까지의 역사를 카이사르(Caesar)가 루비콘 강을 건넌 사건을 전후하여 서술한다. 원제목 [루비콘(Rubicon)]은 국역으로 [공화국의 몰락]이 되었다. 그만큼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루비콘 도강'은 공화국의 몰락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왔노라, 보았노라, 정복했노라!(Veni, vidi, vici!)"의 실력을 갖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어렸을 적 '주사위' 놀이를 좋아한 만큼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도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iacta est!)"는 명언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고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지지와 명성을 얻으려면 이 정도 '도박(주사위)'이나 유행어 쯤에는 능수능란해야 한다는 점은 고대와 현대를 막론한다.





로마는 늑대 젓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레무스 쌍둥이 형제가 기원전 753년에 건국 후 군사력으로 주변 지역을 점차로 복속시키면서 군주국이 되었으나, 기원전 509년 타르퀸이라는 독재자가 시빌(Sibyl)이라는 노파의 예언을 무시한 후 쫓겨나고 시민투표에 의한 '민주정'을 세웠으며 이후로도 이 '공화정'이 위기에 처하면 원로원이 보관해온 '시빌 예언서'를 들춰보며 시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공화국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주 고대의 '시빌 예언서'는 독재에 항거한 민중폭동의 은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공화국'에서 원로원으로부터 선출된 임기 1년의 집정관은 2명이 서로 견제했고 호민관은 귀족이 아닌 시민이 뽑은 대표로서 서민정책을 펴는 귀족이었단다. 로마 창시자 로물루스는 카피톨리누스 언덕을 중심지 삼아 아벤티누스 지역의 동생 레무스를 살해하고 로마를 차지했다는데 위례(서울)를 기반 삼아 형제 비류를 죽이고는 미추홀(인천)을 먹은 백제 시조 온조 이야기와 닮았다. 로마는 승자 로물루스 지역 카피톨리누스가 귀족들의 대저택, 패자 레무스의 지역 아벤티누스 서민들의 '쪽방촌' 또는 '닭장촌'으로 나뉘기도 했는데 이 서민아파트 값 또한 엄청나게 비쌌으며 로마 전성기 인구가 고대 당시에 이미 100만명이 넘었다는 기번의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의 서울, 현대사회 대도시의 모습과 꼭 닮았다. 트로이 전쟁 후 피난온 아에네이아스(Aeneas) 후손인 율리우스 가문은 로마의 근본있는 귀족인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마도 이 집안 출신 정치인이었던 것 같다.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빚내서 돈과 금품을 막 뿌려대고 남유럽 지역인 갈리아 원정 등의 군사적 성과를 통해 명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카이사르는 1차 삼두정치 과정에서 당연히 당대 실력자들로부터 견제를 받았는데 경쟁자들을 치기 위해 카이사르가 던진 '주사위'가 바로 '루비콘 도강'이었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토 등을 제압한 카이사르는 이전 세대 술라가 역임한 '독재관' 10년 임기 시작 초반에 "부르투스, 너마저?(Et tu Brute?)" 한마디 남기고 살해되었다는데, 그만큼 '공화국'을 애정했던 카이사르의 동료 부르투스가 로마 광장에서 만세를 부를 때 이를 보는 로마 시민들의 시선은 차가웠단다.

[공화국의 몰락]은 카이사르 같은 독재관들이 초래한 것이 아니었다.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자유를 누리던 로마인들이 명예와 능력을 통해 성공하고 부를 독차지한 카이사르 같은 인물들을 숭배하고 스스로 문명과 풍요, 사치와 향락의 노예가 기꺼이 되고자 하면서 스스로 '공화국'의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라쿠스 형제의 운명은 '공화국'의 근간에 대한 개혁을 행하려는 시도는 모두 '전제주의'로 해석될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급진적인 변화 프로그램은 제 아무리 이상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경쟁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다. 이 사실을 죽음으로 입증함으로써 그라쿠스 형제는 궁극적으로 자기들 목숨을 바친 바로 그 개혁을 좌절시켰다. 그들 이후의 호민관들은 목표를 더욱 신중하게 선택하게 되었다. 사회혁명은 영구히 유보되게 된다."
- [공화국의 몰락], <1장. 모순적인 공화국>, 톰 홀랜드.


기원전 130년대 토지를 민중에게 나눠주는 토지개혁을 단행하려다가 차례로 살해당한 호민관 그라쿠스 형제는 평민이 아니라 귀족이었다. 로마는 군사적 성과를 통해 출세한 자들의 '능력주의'가 숭배된 사회로 출신이 노예든 평민이든 '제국'의 팽창과정에서 전공을 세운 자는 부와 명예를 얻어 귀족이 되고 원로원 의원도, 집정관이나 호민관도 될 수 있었다. 물론, 이 '능력주의'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에 엄청난 금품과 뇌물을 뿌리고 경쟁적으로 대외팽창 전쟁을 일으켜야 했다. 역사적 경제토대가 노예체제냐 자본주의체제냐 차이만 있을 뿐, 지금은 허위에 불과한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현대 미국이나 지금의 우리 사회와 같다. 
벼락성공을 위해 서로 밟고 밟히는 이 문명적 정글인 '능력주의' 사회에서 그나마 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가 있었으니 '공화국'이 바로 그것이다. 공화국 한창 때인 기원전 2세기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개혁의 명분도, 이들의 개혁을 저지한 귀족들의 반개혁 명분도 모두, '공화국 사수'였다. 그 어떤 실력자도 '황제'나 '독재관' 또는 '아우구스투스(존엄자)'가 될 수 있었지만 전제적 '독재군주'가 될 수 없었다. '독재관' 술라도, '황제(Kaiser)'의 어원이 된 카이사르(Caesar)도, '존엄자' 옥타비아누스도 스스로를 '전제군주'로 부르지 않았다. 다만,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는 군사력보다는 관용적 정치력으로 원로원으로부터 '존엄자(아우구스투스)'라는 호칭을 부여받으며 '원수정(元首政)'이라는 로마 제정(帝政)의 정치적 틀을 만들었다. 이후 동로마가 멸망하는 15세기까지 '로마공화국'이라는 이데올로기는 허울 뿐인 원로원과 끝까지 명목상 함께 했으나 이 귀족들은 실질적으로 '로마제국' 황제들의 신하들에 불과했다. 
톰 홀랜드의 [공화국의 몰락]은 기원후 24년 아우구스투스의 죽음으로 끝맺는데 그의 죽음은 바로 '공화국'의 정치적 몰락이었다. 
로마 시대 진정한 반란이자 혁명은 노예경제체제를 흔드는데는 실패했지만, 기원전 73~71년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반란 뿐이었다. 


"역사가는 이런(형이상학적/종교적) 고매한 고찰이 옳으냐 그르냐를 주제넘게 논하지 않고, 다만 경험에 의해서 입증할 수 있는 관찰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격변(365년경)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격정에 따른 재앙을 더욱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진이나 해일, 태풍이나 화산폭발로 인한 재난은 일반적인 전쟁의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발렌스 황제의 치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로마제국의 몰락 과정에는 개인의 행복과 안전이 직접적으로 침해받았으며, 당대의 기술도 노동의 성과들도 모두 스키타이와 게르마니아의 야만인들에 의해서 난폭하게 손상되었다. 훈족(흉노족)의 침입으로 서로마의 여러 지방으로 쫓겨간 고트족은 40년도 못되는 기간에 도나우 지역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들의 군사적 승리로 자기들보다 훨씬 더 야만적인 수많은 부족들의 이동과 침입의 길을 열게 되었다."
- [로마제국 쇠망사], <13장>, 에드워드 기번.


스스로를 시종 '역사가'로 칭하고 혹은 '철학자'로도 암시하는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의 역사를 '경험에 의해 입증할 수 있는 관찰'에 의해 장황하지만 재치있게 풀어낸다. '5현제' 이후 제국의 팽창과 함께 기원후 3세기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를 동서로 분할하면서 '전제군주정(專制君主政)'을 확립했다. 이미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 반도는 물론 서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에 속주를 둔 '로마제국'은 허울 뿐인 '공화정'이나 배우(actor)처럼 연극적 웅변이나 해대는 기만적인 '원수정'으로 지배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해졌고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결국 제국을 분할한다. 밀라노 중심의 서로마와 니코메디아 중심의 동로마는 2명의 '황제(아우구스투스)'가 다스리고, 나머지 갈리아와 아프리카는 2명의 '부황제(카이사르)'가 다스리는 방식이다. 
기번이 본 '쇠망'의 키워드인 '분할'은 사실 그 어떤 '세계제국'으로도 운영할 수 없는 로마의 '팽창주의'의 다른 말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기번의 말은 정정되어야 한다. '로마는 분할로 쇠망한 것이 아니라 팽창으로 망한 것'이라고.



기원후 4세기에는 전세계 기후변화가 있었던 듯 하다. 북쪽의 게르만, 고트족이 먹을 것을 찾아 급격히 이동했고 아시아에서도 흉노,선비, 갈, 저, 강족의 이른바 '다섯오랑캐'가 중원을 차지하려고 엎치락뒤치락하는 '5호16국'의 시대와 겹친다. 다신교 로마사회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기원후 313년 '밀라노 칙령'의 콘스탄티누스가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330년)한 후 발렌티아누스와 그의 사촌동생 발렌스 시기 로마제국은 아시아의 페르시아적(또는 중국) 영향으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제국'으로 변모해 갔고 주요한 속주의 군사력과 나아가 정치권력까지 이 밀려드는 서고트족 군왕 알라리크에게 맡김으로써 '제국'의 '쇠망'을 가속화한다. 화려한 '태평성대' 전성기에 이미 '쇠망'과 '몰락'의 씨앗은 충분히 자라고 있었다. T.S.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말한 것처럼 만발의 시기에 이미 죽어갈 운명을 배태하여 슬픈 역사의 '변증법(辨證法)'이 바로 에드워드 기번과 톰 홀랜드의 역사관이다.


"'자유를 너무 많이 누리다 보면 끝내는 노예 신세가 된다'는 것이 키케로의 비통한 판단이었다. 그의 세대, 자유 공화국의 마지막 세대가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노예제의 귀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세대, 새로운 시대가 밝혀내야 할 사실이었다."
- [공화국의 몰락], <11장. 공화국의 죽음>, 톰 홀랜드.


로마시민은 '공화국의 자유'를 5백년 간 누리면서 '능력주의'와 부를 숭배했고 이를 실현한 벼락출세자들을 찬양했다. 로마의 쪽방 서민아파트 값을 천정부지로 올리면서 권력의 주변에서 서성대며 떡고물을 받아먹고 무리한 팽창을 통해 스스로도 감당못할 '제국'을 건설했으나 결국 로마제국의 긴 역사는 그 자체로 '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가 되었다. 
노예경제체제에서 '제국주의'적 팽창의 원인은 노예노동력 확보를 통한 생산력 발전과 부의 축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국의 쇠망사'는 그 자체로 노예제 사회의 역사단계적 모순을 반영한다.
그렇게 모든 역사적 문명체제는 그 전성기와 함께 이미 다음 체제로의 이행을 준비한다.
물론, 현재 자본주의체제 또한 이 역사의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로마공화국의 사상가이자 웅변가로 그 연극적 요소로써 당연히 정치가이기도 했던 키케로가 [공화국]에서 말했다는 '노예'는 체제적 노예가 아닌 사상적 노예였다. 로마공화국 시민의 '자유'가 확장하면서 본인들 스스로도 감당못할 체제를 만들고 이에 굴종하는 '노예'적 삶은 당대 로마인으로서는 극복할 수 없었다. 진정한 '평등주의'를 지향한 스파르타쿠스 노예반란은 물론 그라쿠스 형제의 호민관개혁 조차도 이 '자유시민'들에 의해 '공화국'의 이름으로 좌절되고 말았으며, 결국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맞아 변화시켰다. 로마제국의 팽창과 이로 인했을 기후변화의 시대를 맞아 아시아에서 밀려온 유목민족과 북쪽의 야만인들의 새로운 세대가 만든 역사적 변화와 혁명의 토대에는 노예경제체제의 변화라는 거대한 저변의 흐름이 있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과 동시에,
하루아침에 망하지도 않았다.

***

1. [로마제국 쇠망사](1776~1788), 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편집, 황건 옮김, <까치>, 2010.
2. [공화국의 몰락](2003), 톰 홀랜드, 김병화 옮김, <웅진닷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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