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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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를 타파하는 진보정당]
- 토머스 프랭크,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2004.


"철학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다."
- 루이 알튀세


프랑스 철학자이자 구조주의 맑스주의자 알튀세의 사상은 위 한 줄의 명제로 함축됩니다.


자본주의 현실은 계급투쟁이고 현실의 반영인 철학은 계급투쟁의 이론적 실천이라는 말인데, 맑스의 새로운 테제 중 '해석이 아닌 새로운 실천적 철학'(포이어바흐에 관한 12번째 테제)이 사실은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며, 철학은 계급투쟁으로 새롭게 실천되어야 하지만 그 관념적 본질상 세계를 '계급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알튀세를 인용한 이유는 바로 '계급투쟁'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미국의 선거를 다룬 책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토머스 프랭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잊혀진 '계급투쟁'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이제 더 이상 하루하루 점점 더 포악해지고 점점 더 오만해지는 자유시장 체제의 파국적 종말에 대해서 민중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한때 자신들과 공화당을 확연하게 구분했던 계급용어를 폐기함으로써 지금까지 물질적 관심사인 경제문제에 가려져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던 환각적 호소력을 지닌 총기 소지나 낙태 문제와 같은 문화적 분열 쟁점에 스스로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계급에 대해서-확실히 말하자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반면에 민주당은 계급 이야기를 불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에필로그> 중


미국 공화당은 유럽의 보수당처럼 왕정이나 귀족, 봉건지주를 토대로 하는 보수가 아니라 당명 그대로 미국의 '민주적 공화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보수당입니다.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보수주의 자체가 '공화주의'라는 것입니다.
왕조와 식민지를 거치면서 친일-친미-사대를 뿌리로 하는 우리의 수구반동과 다른 점입니다.


공화당은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미국 중서부 노동계급에게 기독교 사상과 낙태 반대 등의 사안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계급투쟁'을 은폐하고 '문화전쟁'을 촉발하여 지지세를 얻습니다.
미국을 성장시킨 '산업역군'(우리에게 참 익숙한 세대론)은 신의 계시에 따라 우둔하나 믿음직하게 미국을 지키는 반면, 유럽에 가까운 미국 동부의 '지식인', 엘리트들은 반전평화, 여성주의, 히피적 행태로 '잘난체 하며' 미국을 흔든다는 것이지요.


미국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사회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있었습니다. 전설적 철노노동자 유진 뎁스, 사회주의적 목사 노먼 토머스, 진보정치인 로버트 라폴레트 등의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민주당을 왼쪽으로 이동시켰고,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케인즈주의와 뉴딜정책을 가능케 했으며, 미국 민주당의 '계급적' 입장을 강화시키기도 했지요.


토머스 프랭크는 공화당을 비판하기 보다, 그들의 단순한 '문화전쟁'을 통해 굳어진 '영웅주의'와 '반지성주의'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계급투쟁'을 져버린 민주당의 패착이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단순무식 '문화전쟁'이 아니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diot, It's the Economy!)"라은 슬로건으로 성공한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에서부터 노동계급을 버리고 월스트리트를 등에 업고 친기업 정책을 선택한 과오가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당은 유럽의 사회민주(노동)당들과 다르게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만들지 못했기에 단명했고, 이제 불가역적인 거대 양당체제로 인해 이 책의 대안은 얼핏 민주당의 '계급투쟁'을 복원하여 공화당의 '영웅주의'와 '반지성주의'를 타파하자는 것으로 확대해석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주의' = '반지성주의' = '영웅주의'를 타파하는 대안은 '빅텐트' 거대 양당체제가 아닌 강력한 진보정당 운동이며, 지금의 진보정당이 전통적인 거대한 '운동형 진보정당'(독일과 스웨덴의 사민당이나 브라질 노동자당 등)일지 선거연대블록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형 진보운동'(그리스 '시리자'나 스페인 '포데모스' 등)일지는 아직 알 수 없을지 모릅니다.
또한,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지, '큰 개혁과 작은 혁명'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계급투쟁'을 버리지 않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불가역적 승리를 단호하게 옹호하는 진보정당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강력한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반지성주의'를 타파하고 '계급투쟁'에 복무하는 '새로운 철학적 실천'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브렉시트 국면에서 영국 노동계급을 단순화시켜 노동당을 패배시킨 영국 보수당의 선거방침,
'빨갱이' 타령으로 연명하는 한국의 수구보수 집단과 '조국사태', '문빠' 양산으로 재미보는 한국의 민주당의 모습도 이 책과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듯 합니다.


(2020년 2월)


***


참고 -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 ‘큰 개혁’과 ‘작은 혁명’들의 이야기], 장석준 지음, <서해문집>, 2019.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8세기 말 ~ 19세기 초의 세계사를 기술하면서 ‘이중혁명’의 시대라 규정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극적으로 전개된 민주주의 혁명과 영국(산업혁명)에서 본격 시작된 자본주의 혁명, 이 두 혁명이 동시에 전개됐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두 개의 큰 운동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확산과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갱신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혼란의 밑바탕에는 민주주의 혁명과 자본주의 혁명의 격렬한 충돌이 있다. (진보)좌파정당이란 바로 이 충돌에서 단호히 민주주의 혁명의 편에 서는 정당이다. 민주주의 편에서 자본주의에 맞서고, 타협을 만들어 내더라도  민주주의 원리가 우위에 선 타협을 위해 노력하며, 종국에는 민주주의 혁명이 자본주의 혁명을 제압하고 극복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정당이다.”


- 같은책, <서문>


우리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석준 선생의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는 현재의 ‘진보정당’을 이해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역사’를 다루고 있으니 이야기책을 보듯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재미있게 읽었는데, 수구 자유한국당과 보수중도를 못 벗어난 민주당의 실질적 양당구도인 우리 정치에서 ‘진보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기에 강력한 산별노조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진보정당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진보정당’ 형태일 수 있는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와 스페인 ‘포데모스(할 수 있다)’보다 지난 역사로서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브라질 노동자당의 역사를 서술한 장이 더 잘 읽힌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진보정당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논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다룬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읽은 것일지는 모르나, 세계 진보정당의 소중한 역사를 저자의 방대한 참고문헌과 연구를 바탕으로 더 넓고 깊게 증보하기를 기대한다.
E.H.카가 ‘러시아혁명사’를 연구하고 방대한 저술로 남겼듯이.


끝날 수 없는 진보정당 운동사의 ‘중간 정리’로서 ‘결론’을 독자로서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본다.


‘지금도 반복되는 진보정당의 고뇌’인 ‘작은 개혁’과 ‘큰 혁명’의 관계는 이제 이 책의 부제에 나온 것처럼 ‘큰 개혁’과 ‘작은 혁명’으로 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큰 테마다. 민주주의 무대에서 ‘혁명’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개혁’하자는 것이 하나의 ‘이론적 결론’이다.


또한, 현재의 진보정당은 진보의 다원성을 강화하고 연대하는 ‘좌파블럭’을 변혁의 주체로 하여 당시 정세에 맞는 ‘진보적 대중연합’(그람시의‘역사적 블록’)을 구축해야 하며, 다수 대중이 이러한 사회변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기’는 여전히 ‘진보정당’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역사적 (잠정)결론’이다.


“소수의 자본 소유자와 다수의 노동대중 사이에는 뿌리 깊은 구조적 차원을 지닌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는 이 권력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 시기에 기존 세력균형을 끊임없이 격동시키고 조금이라도 변형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계급 권력관계의 심층에 자리한 구조들에 손을 대는 급진개혁으로 발전해야 한다. 선거를 통한 집권은 이러한 과정을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계급권력구조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화’하여 견지해야 할 마르크스-엥겔스 정치이론의 핵심 메시지일 것이다.”


- 같은책, <결론>


지난 150년의 역사 속에서 ‘운동형 정당’으로 현상했던 진보정당의 형태가 21세기에는 대중의 분노와역동성을 더욱 기반으로 하는 대중연합적 ‘정당형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개혁’이라는 ‘최소강령’만을 목표로 타협하고 균형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강한 소수에 비해 약한 다수에게 세력관계가 ‘불가역적으로’ 역전되는 것이 바로 ‘혁명’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는 그람시의 말대로 ‘현대의 군주’인 ‘(진보)정당’이다.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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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 큰 개혁과 작은 혁명들의 이야기
장석준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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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시, ‘현대의 군주’인 ‘진보정당’이 다수의 ‘무기’다!
-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 ‘큰 개혁’과 ‘작은 혁명’들의 이야기], 장석준 지음, <서해문집>, 2019.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8세기 말 ~ 19세기 초의 세계사를 기술하면서 ‘이중혁명’의 시대라 규정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극적으로 전개된 민주주의 혁명과 영국(산업혁명)에서 본격 시작된 자본주의 혁명, 이 두 혁명이 동시에 전개됐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두 개의 큰 운동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확산과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갱신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혼란의 밑바탕에는 민주주의 혁명과 자본주의 혁명의 격렬한 충돌이 있다. (진보)좌파정당이란 바로 이 충돌에서 단호히 민주주의 혁명의 편에 서는 정당이다. 민주주의 편에서 자본주의에 맞서고, 타협을 만들어 내더라도  민주주의 원리가 우위에 선 타협을 위해 노력하며, 종국에는 민주주의 혁명이 자본주의 혁명을 제압하고 극복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정당이다.”

- 같은책, <서문>

우리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석준 선생의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는 현재의 ‘진보정당’을 이해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역사’를 다루고 있으니 이야기책을 보듯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재미있게 읽었는데, 수구 자유한국당과 보수중도를 못 벗어난 민주당의 실질적 양당구도인 우리 정치에서 ‘진보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기에 강력한 산별노조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진보정당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진보정당’ 형태일 수 있는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와 스페인 ‘포데모스(할 수 있다)’보다 지난 역사로서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브라질 노동자당의 역사를 서술한 장이 더 잘 읽힌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진보정당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논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다룬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읽은 것일지는 모르나, 세계 진보정당의 소중한 역사를 저자의 방대한 참고문헌과 연구를 바탕으로 더 넓고 깊게 증보하기를 기대한다.
E.H.카가 ‘러시아혁명사’를 연구하고 방대한 저술로 남겼듯이.

끝날 수 없는 진보정당 운동사의 ‘중간 정리’로서 ‘결론’을 독자로서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본다.

‘지금도 반복되는 진보정당의 고뇌’인 ‘작은 개혁’과 ‘큰 혁명’의 관계는 이제 이 책의 부제에 나온 것처럼 ‘큰 개혁’과 ‘작은 혁명’으로 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큰 테마다. 민주주의 무대에서 ‘혁명’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개혁’하자는 것이 하나의 ‘이론적 결론’이다.

또한, 현재의 진보정당은 진보의 다원성을 강화하고 연대하는 ‘좌파블럭’을 변혁의 주체로 하여 당시 정세에 맞는 ‘진보적 대중연합’(그람시의‘역사적 블록’)을 구축해야 하며, 다수 대중이 이러한 사회변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기’는 여전히 ‘진보정당’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역사적 (잠정)결론’이다.

“소수의 자본 소유자와 다수의 노동대중 사이에는 뿌리 깊은 구조적 차원을 지닌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는 이 권력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 시기에 기존 세력균형을 끊임없이 격동시키고 조금이라도 변형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계급 권력관계의 심층에 자리한 구조들에 손을 대는 급진개혁으로 발전해야 한다. 선거를 통한 집권은 이러한 과정을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계급권력구조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화’하여 견지해야 할 마르크스-엥겔스 정치이론의 핵심 메시지일 것이다.”

- 같은책, <결론>

지난 150년의 역사 속에서 ‘운동형 정당’으로 현상했던 진보정당의 형태가 21세기에는 대중의 분노와 역동성을 더욱 기반으로 하는 대중연합적 ‘정당형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개혁’이라는 ‘최소강령’만을 목표로 타협하고 균형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강한 소수에 비해 약한 다수에게 세력관계가 ‘불가역적으로’ 역전되는 것이 바로 ‘혁명’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는 그람시의 말대로 ‘현대의 군주’인 ‘(진보)정당’이다.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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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신정완 지음 / 사회평론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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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신정완 저, <사회평론>, 2012.


“애초의 기금안은 스웨덴 사민주의 운동의 전통적 정치노선이었던 국민정치 노선으로부터 이탈하여 계급정치적 의제를 전면에 부각시킨 계획이었다...
1975년 (마이드너 그룹의) 기금안 시안에서, 기금안정당화 논변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재산과 경제적 권력의 재분배 문제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1976년 LO총회에 제출된 기금안에서는 연대임금 정책으로 인한 초과이윤 문제가 가장 강조되었고, LO와 사민당이 공동으로 입안한 1978년 기금안과 1981년 기금안에서는 경제침체 극복을 위한 집단적 자본형성의 필요성이라는 새로운 정당화 논변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시간이 경과할 수록 기금안 정당화 논변에서 계급정치적 문제의 비중은 약화되고, 전통적인 개혁주의적, 국민정치적 문제의 비중이 커져간 것이다.”

- 같은책, 3장 <스웨덴 모델과 임노동자기금안>


읽고 싶은 책이 없어 예전 책들을 뒤지다가 몇 년전에 읽었던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를 다시 읽었는데,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

그 ‘꽃’이 바로 저자가 결론적 대안으로 지지하는 ‘중앙집권적 시민기금안’인데, 몇 년전 처음 읽을 때는 비록 스웨덴 모델에서 실패했지만 노동계급 중심의 배타적 ‘임노동자기금안’만 머릿속에 남았더랬다.
‘임금노동자기금안’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한 스웨덴 ‘연대임금 모델’에서 고수익 대기업의 ‘초과이윤’을 기금으로 하여 대기업의 주식을 점진적으로 소유하면서 궁극에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이룬다는 체제이행의 거대한 기획이다.
아마도 ‘임노동자기금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전투적 노동계급이 살아있고 ‘재벌개혁’이 경제 민주화의 주요 테마인 한국 모델에서는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한, 스웨덴 정치이념 중 그나마 마르크스주의를 버리지 않았던 비그포르스와 그들의 사상을 구현하는 마이드너의 사회개조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 임노동자기금안 입안자들이 구상했던 경제체제 모델은, (1) 시장경제의 존속을 통해 경제적 효율이 확보되며, (2) 복지국가의 유지를 통해 시장경제의 문제점들이 완화되고, (3) 임노동자기금을 통해 노동조합이 민간 대기업들을 소유함으로써 직접 생산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사회주의의 고전적 이상이 구현되는 경제체제였던 것이다.”

- 같은책, 4장 <기금사회주의 모델>


아마도 성년이 된 후 처음으로 겪었던 촛불 ‘시민’ 항쟁의 기억 때문이리라. ‘배타적’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시민대중이 함께 하는 것이 ‘혁명’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알튀세의 제자였던 발리바르는 어디에선가 말했다.
“공산주의 혁명은 비공산주의자 대중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산수단의 사회적 전면 쟁취가 아니라 그 다양한 ‘기능’에 따른 분산 점유를 주장한 스웨덴 ’기능사회주의자’ 칼레비의 좌파적 계승안으로서 ‘중앙집권적 시민기금안’은 아마도 ‘생산수단 사회화’라는 고전적 체제이행 과제를 공세적으로 내건 노동계급의 ‘임노동자기금안’의 ‘배타성’을 견제하기 위해 일련의 ‘자유주의자’들이 내놓은 반대안이었을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는 다시금 논쟁할 수 있는 체제이행의 대안 중 하나 아닐까 한다.


“중앙집권적기금안은 스웨덴 사민주의 운동의 주류 입장이었던 복지국가주의 또는 기능사회주의 노선에 한층 밀착해 있다. 민주적 방식으로 구성된 국가의 개입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들을 완충, 해소한다는 복지국가주의의 논리를 생산수단의 소유 문제에까지 연장 적용시킨 것이다.”

- 같은책, 4장 <기금사회주의 모델>


지금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거쳐 ‘사회적 민주주의’로서 ‘복지국가’ 논쟁을 또 넘어서 ‘경제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 사회화 계획의 내용은 가능한 한 사민주의 정치의 전통적 노선인 국민정치 노선에 잘 부합되는 형태로 마련하고, 사회화 기획을 관철하는 방식으로는 이념적, 정치적 정면대결 노선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먼저 사회화의 주체는 노동조합 등 임노동자 집단만을 대표하는 조직보다는 국가나 준국가적 공동기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존하는 유일한 제도는 정치적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구성, 운영되는 국가다. 또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존재론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적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할 때, 국민대중의 일반적 이익을 담지하는 공적조직으로서 정치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조직은 국가 외에 달리 없기도 하다. 또 사회화는 대다수 사회 성원의 삶의 조건을 크게 바꾸는 기획이기 때문에, 사회화된 생산수단의 소유와 관리 문제는 모든 사회 성원에 의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범위 내에 있도록 하는 것이 규범적으로 바람직하다.”

- 같은책, 5장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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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초한지 1~3 세트 (전3권 + 가이드북) 원본 초한지
견위 지음,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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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풍가(大風歌)]와 [해하의 노래(垓下歌)]
- 꽉막힌 항우와 방만한 유방

알라딘에서 읽어볼 책을 검색하다가 ‘초한지 원본번역’이 떠서 급궁금하여 더 찾아보니,
2000년대 중반에 동아일보에서 연재할 때 다음 회를 기대하며 재미있게 읽었던 이문열의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가 [이문열 초한지] 총 10권으로 나와 있었다.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는 한고조가 된 유방이 고향 패현으로 놀러가서 고향 선후배,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전쟁터에서 지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은 시의 첫 구절이다.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大風起 雲飛揚 : 대풍기 운비장)
위세가 해내에 떨쳐 고향에 돌아왔네 (威加海內 歸故鄕) : 위여해내 귀고향)
어떻게 하면 맹사를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할까 (安得猛士 守四方 : 안득맹사 수사방)”

한고조 유방의 인생 절정기에 지어 부른 이 노래의 제목은 [대풍가(대풍의 노래)]다.
유방은 이 노래를 부른 다음해에 53세의 나이([초한연의]에는 61세, 진순신은 53세라 한다)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한다.

유방 최후의 적수 초패왕 항우도 해하에서 ‘사면초가’를 듣고는 유방에게 패배를 인정한 후 총애하는 우미인과 준마 추를 앞에 두고 독주 한 잔 마시면서 시를 한 수 읊는데 이 노래는 유방의 [대풍가]보다 유명한 [해하의 노래(해하가)]다.
31세의 항우는 이날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는 하늘을 탓하며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어도 (力拔山 氣蓋世 : 역발산 기개세)
때가 이롭지 않아 추가 나아가지 않네 (時不利 騅不逝 : 시불리 추불서)
추가 나아가지 않음을 어찌하랴 (騅不逝 可奈何 : 추불서 가내하)
우야 우야 너를 어찌한단 말이냐 (虞兮虞(兮) 奈若何 : 우혜우(혜) 내약하)

어조사 ‘혜(兮)’는 뜻은 없이 음율을 맞추기 위함인데 일종의 쉼표와 같다. 예를 들어 ‘대풍기 운비장’ 중간에 넣어 ‘대풍기혜운비장(大風起兮雲飛揚)’과 같이 부르는데 우리 어릴적 중국에서 온 ‘비단장사 왕서방’이 “우리 사람 ‘혜’ 명월이한테 반했어~”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래전인 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중국 하북지역은 ‘2+2=4’글자 시를 지어 불렀고, 춘추전국시대 중국 남방 초나라 지역의 ‘초사’는 ‘1+2(역+발산) 또는 2+1(대풍+기)’ 운율이 전해지다가 진시황의 전국 통일 후 섞이고 섞여 ‘2+3 또는 3+2’에 ‘2 또는 2+2+4’가 붙어 5글자 또는 7글자 운율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시조를 보며 익히 들어온 ‘4언절구’, ‘5언절구’, ‘7언절구’ 등일 것이다.
아마도 ‘3언절구’가 없는 것이 항우의 초나라가 망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은 것은 오로지 나의 추측이다.

초패왕 항우는 초나라 사람으로 정통 ‘초사’에 따라 ‘3+3=6’을 철저히 따른 반면,
한고조 유방은 그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성정 그대로 술이 꽐라되어 남방의 ‘3+3=6(대풍기+운비장)’으로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2+2+3(위여+해내+귀고향 / 안득+맹사+수사방)’으로 형식에 구애없이 막 부른 듯 하다.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 ‘7언절구’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역시 나만의 추측이다.

여기서도 꽉막힌 항우의 형식주의와 방만한 유방의 자유주의적 성정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참고 : [패권], 진순신/오자키 호츠키 편, <솔>, 2000.

명나라 말기 ‘종산거사’ 견위가 정리한 ‘서한연의’ 원본번역을 읽어보니 정사에 기초한 평역으로서의 이문열의 작품과는 역시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와 황석영의 ‘원본번역’ [삼국연의]의 차이가 그대로 전이된 듯 하다.
해하의 대회전에서 한고조 유방과 대원수 제왕 한신이 초패왕 항우를 대패시킨 ‘극적 장치’로서 ‘구리산 십면매복’을 배치시킨 이 원본완역은 조선후기 언문번역으로부터 350년만이라고 한다. 이문열은 ‘초한지’를 ‘평역’하면서 ‘구리산 십면매복’을 인위적인 허구로 치부하여 과감히 삭제하고는 ‘역사적 리얼리티’를 위해 사마천 [사기]의 내용으로 대체했다.
이제 원본완역자 김영문에 따르면 우리 ‘초한지’는 ‘구리산 십면매복’이 있는 초한지와 없는 초한지로 구분된다.

350년만에 원본을 번역한 김영문의 [초한지(서한연의)]는 중간중간 삽입된 시들과 견위의 ‘역사논평’ 일체를 전부 번역한 우리 최초의 ‘원본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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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문열 초한지 세트 (전10권)
이문열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대풍가(大風歌)]와 [해하의 노래(垓下歌)]
- 꽉막힌 항우와 방만한 유방

알라딘에서 읽어볼 책을 검색하다가 ‘초한지 원본번역’이 떠서 급궁금하여 더 찾아보니,
2000년대 중반에 동아일보에서 연재할 때 다음 회를 기대하며 재미있게 읽었던 이문열의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가 [이문열 초한지] 총 10권으로 나와 있었다.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는 한고조가 된 유방이 고향 패현으로 놀러가서 고향 선후배,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전쟁터에서 지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은 시의 첫 구절이다.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大風起 雲飛揚 : 대풍기 운비장)
위세가 해내에 떨쳐 고향에 돌아왔네 (威加海內 歸故鄕) : 위여해내 귀고향)
어떻게 하면 맹사를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할까 (安得猛士 守四方 : 안득맹사 수사방)”

한고조 유방의 인생 절정기에 지어 부른 이 노래의 제목은 [대풍가(대풍의 노래)]다.
유방은 이 노래를 부른 다음해에 53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한다.

유방 최후의 적수 초패왕 항우도 해하에서 ‘사면초가’를 듣고는 유방에게 패배를 인정한 후 총애하는 우미인과 준마 추를 앞에 두고 독주 한 잔 마시면서 시를 한 수 읊는데 이 노래는 유방의 [대풍가]보다 유명한 [해하의 노래(해하가)]다.
31세의 항우는 이날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는 하늘을 탓하며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어도 (力拔山 氣蓋世 : 역발산 기개세)
때가 이롭지 않아 추가 나아가지 않네 (時不利 騅不逝 : 시불리 추불서)
추가 나아가지 않음을 어찌하랴 (騅不逝 可奈何 : 추불서 가내하)
우야 우야 너를 어찌한단 말이냐 (虞兮虞(兮) 奈若何 : 우혜우(혜) 내약하)

어조사 ‘혜(兮)’는 뜻은 없이 음율을 맞추기 위함인데 일종의 쉼표와 같다. 예를 들어 ‘대풍기 운비장’ 중간에 넣어 ‘대풍기혜운비장(大風起兮雲飛揚)’과 같이 부르는데 우리 어릴적 중국에서 온 ‘비단장사 왕서방’이 “우리 사람 ‘혜’ 명월이한테 반했어~”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래전인 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중국 하북지역은 ‘2+2=4’글자 시를 지어 불렀고, 춘추전국시대 중국 남방 초나라 지역의 ‘초사’는 ‘1+2(역+발산) 또는 2+1(대풍+기)’ 운율이 전해지다가 진시황의 전국 통일 후 섞이고 섞여 ‘2+3 또는 3+2’에 ‘2 또는 2+2+4’가 붙어 5글자 또는 7글자 운율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시조를 보며 익히 들어온 ‘4언절구’, ‘5언절구’, ‘7언절구’ 등일 것이다.
아마도 ‘3언절구’가 없는 것이 항우의 초나라가 망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은 것은 오로지 나의 추측이다.

초패왕 항우는 초나라 사람으로 정통 ‘초사’에 따라 ‘3+3=6’을 철저히 따른 반면,
한고조 유방은 그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성정 그대로 술이 꽐라되어 남방의 ‘3+3=6(대풍기+운비장)’으로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2+2+3(위여+해내+귀고향 / 안득+맹사+수사방)’으로 형식에 구애없이 막 부른 듯 하다.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 ‘7언절구’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역시 나만의 추측이다.

여기서도 꽉막힌 항우의 형식주의와 방만한 유방의 자유주의적 성정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참고 : [패권], 진순신/오자키 호츠키 편, <솔>, 2000.

명나라 말기 ‘종산거사’ 견위라는 사람이 적었다는 ‘서한연의’ 원본번역을 읽어봐야겠다.

이문열의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중 인상깊은 고사인 ‘說者同而得失異者(설자동이득실이자)’ 관련 2006년 글을 첨부한다.

***

같은 말에도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다르다
(說者同而得失異者)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통해 보는 고사성어(故事成語)(10)
: ‘항우본기(項羽本記)’, ‘고조본기(高祖本記)’를 통해 본 초한전쟁(楚漢戰爭) - 2


사학법(私學法) 개정을 반대하며 수구세력(守舊勢力)이 국회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치권에서 ‘연회(宴會)’를 열었다. 연회의 시작은 단연 여당인 열린우리당이었다. 2006년 1월의 내각인사 이후 원내대표와 당의장을 새로 선출한답시고 한창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신임 여당 원내대표와 역시 새로 뽑힌 야당의 원내대표가 설날 다음날에 북한산에 오르면서 정치적 연회의 절정을 이루었다. 북한산 정상에서의 양당 원내대표의 합의. 사학재단의 ‘사유재산(私有財産)’을 지키고 ‘국가정체성(國家政體性)’을 ‘수호(守護)’하고자 국회문을 박차고 나갔던 수구야당은 다시 국회 등원을 선택했고, 여당에서는 사학법의 재개정을 전제로 한 합의가 아니었다고 손을 내젓는다.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제도를 통해 자신의 ‘사유재산’을 더욱더 불리고 ‘교육(敎育)’이라는 허울을 빌어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한 온갖 비리를 일삼던 사학재단을 개혁하고자 했던 애초의 취지는 사학법의 재개정의 가능성과 더불어 이미 민중들로부터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 시작했다. “‘일점일획(一占一劃)’도 고치지 않겠다”는 여당 지도부의 수사(修辭)에도 이 땅 민중들은 별로 수긍을 하지 않는 듯 하다. 정치(政治)는 결국 ‘타협(妥協)의 예술(藝術)’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206년, 진(秦)나라의 수도 함양(咸陽)을 항우(項羽)보다 먼저 점령한 유방(劉邦)은 뒤따라오는 항우의 세력에 겁을 먹고 일단 근처 패상(覇上)이라는 지역으로 물러나 있었고, 뒤늦게 함양에 도달한 항우는 홍문(鴻門)이라는 곳에 40만의 군사를 주둔시키고 10만에 불과한 유방의 군사를 치려 하고 있었다. 이에 항우의 숙부인 항백(項伯)은 오래전 유방의 책사(策士) 장량(張亮;張子房)으로부터 신세를 진 바 있어 다음날의 참사를 미리 알려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돕고자 유방의 진채로 찾아든다. 하지만 장량은 유방을 버리고 도망갈 수는 없다며, 항우에게 항복할 것을 유방에게 권유하였고, 유방은 항백을 맞아 자신은 원래부터 함양을 들어 항우에게 바칠 의사였노라고 말한다. 이에 항백은 유방에게 그 다음날 직접 항우를 찾아가서 그 뜻을 전하라고 권하지만, 천하를 차지하려는 유방의 큰 뜻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항우의 책사 범증(笵增)은 유방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꺾지 않는다.
다음날, 항우를 찾아간 유방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사죄하는 한편, 범증은 항우의 사촌동생 항장(項莊)으로 하여금 검무(劍舞)를 추게 하여 유방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검무의 짝을 맞추면서 이를 교묘하게 제지한 항백과 당시에는 항우를 위해 일했으나 후에 유방의 또 다른 책사로 활약한 진평(陳平)의 도움으로 유방은 술에 취한 척 하며 자리를 떠남으로써 항우를 속이고 무사히 목숨을 보전하게 된다. 유방이 슬그머니 도망갔음을 알아챈 범증은 유방이 헌상한 옥두(玉斗;옥으로 만든 국자)를 칼로 내리치며 분개했지만 이미 항우의 마음은 풀어졌으며 유방은 40리나 떨어진 패상으로 도주하고 난 후였다.

‘홍문연회(鴻門宴會)’는 유방의 언사에 속아 넘어간 항우가 헛되이 베푼 잔치인 동시에 유방을 유인하여 모살(謀殺)하려는 범증의 살육제(殺戮祭)였으며, 궁지에 몰린 유방이 후일을 기약하며 일단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처절한 정치적 타협의 장이었다.

鴻門宴會 (鴻門:홍문, 지역이름 / 宴:잔치 연 / 會:모이다 회)

홍문의 연회, 유방을 제거하려는 범증의 계략(計略)이 화려한 검무로 위장되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순간에 자신의 속내를 감춘 유방이 항우를 회유하여 속이는 한편, 강한 상대 앞에서 비굴한 모습도 불사하면서 술에 취한 척 도주함으로써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여 후일을 꾀할 수 있게 한 잔치였으며, 고대로부터 타협의 극치인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다음 해인 기원전 205년, 스스로 옹립한 초(楚)나라 의제(義帝)를 죽이고 항우는 패왕(覇王)이 되었고 이에 항우의 토벌(討伐)을 선언한 한왕(漢王) 유방은 각 지역의 제후(諸侯)들을 모아 항우의 본거지 팽성(彭城)을 공격하였으나 항우의 3만 군사에게 56만의 대군을 잃고 퇴각하던 중 형양(滎陽)에 머물게 되는데, 형양을 기점으로 하여 동서로 땅을 나눠 갖고 휴전을 하자는 제의도 거절당한 채 고단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유방의 측근 중에는 역생(易生) 또는 역이기(易餌其)라고 불리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한왕 유방에게 오래 전 은(殷)나라 시조(始祖) 탕왕(湯王)이 하(夏)나라의 폭군(暴君) 걸왕(桀王)을 끌어내린 후 그 후손에게 기(杞)나라의 봉지(封地)를 하사한 일, 주(周)나라를 일으킨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무찌르고 나서 그 후손에게 역시 송(宋)나라의 봉지를 나누어 준 일을 상기시키면서 진(秦)나라 이전 육국(六國)의 후손들을 찾아내어 봉건제를 다시 세우며 한왕의 관인(官印)을 내리면 모두가 한왕 유방을 우러르면서 마침내 초나라의 항우도 한왕 유방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방책(方策)을 제시한다. 이는 진나라의 폭정에 최초로 반란을 일으켰던 진승(陳勝;陳涉)과 오광(吳廣)에게 각 영지의 제후들과 그 측근들이 헌책(獻策)했던 내용으로서 극악한 진나라 황실에 대한 반란을 전국적으로 조직할 수 있게끔 하였던 계책이었다. 이 말을 듣고 즉시 육국의 관인을 제조하라고 지시한 유방은 그의 책사 장량(張亮;張子房)에게 그 헌책의 장중함을 자랑하게 되는데, 장량은 역이기의 시대착오적인 정세분석이 왜 잘못되었는가에 대하여 유방의 밥상에 있던 젓가락 여섯 개를 가지고 조목조목 설파한다.

첫째, 은나라 탕왕이나 주나라 무왕이 걸왕이나 주왕의 후손을 왕으로 봉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든 상대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였는 바, 유방은 지금 항우의 생사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가의 물음.
유방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장량은 천하를 힘으로 장악(掌握)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후들을 왕으로 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고는 첫번 째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둘째,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공격하면서 태행산(太行山)에 은거(隱居)하던 현인(賢人) 상용(商容)이 살던 마을 어귀에서 그의 밝고 어짐을 칭송하였고, 주왕에게 바른 말을 하다가 옥에 갇힌 기자(箕子)를 풀어주었으며, 역시 주왕에게 직언(直言)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비간(比干)의 무덤에 봉분을 키워주었는데, 지금 유방은 성인의 무덤을 돌보거나 현자를 널리 칭송할 만한 상황인가.
아직 그럴 겨를이 없다고 대답하는 유방.
즉, 아직 천하 만민의 마음을 두루 어루만지지 못한 상황에서 제후를 왕으로 봉할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두번 째 젓가락이 밥상 위에 올려진다.

셋째,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의 창고를 열고 재물을 흩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며 천하의 지지기반을 닦았는데, 과연 지금 유방은 천하 모든 창고의 돈과 곡식을 꺼내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도 아직 천하의 창고를 모두 얻지 못한 유방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즉, 천하의 모든 재물과 곡식을 풀어 가난한 민중들에게 나눠줄 수 없는 상황에서 제후를 왕으로 봉할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세번 째 젓가락이 소리를 내었다.

넷째,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주왕을 끌어내린 후 전투수레를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타는 수레로 바꾸고 창칼에 호랑이 가죽을 씌워 거꾸로 매달았으며, 전투에 쓰였던 우마(牛馬)를 풀어주면서 다시는 전쟁에 사용하지 않겠노라고 천하에 선언하였는데, 과연 지금 유방도 무력(武力)을 포기하고 문교(文敎)를 우선시할 수 있는가라는 네번 째 젓가락 소리에도 역시 천하 형세를 결정짓는 싸움을 다 끝내지 못한 유방은 긍정적으로 답할 수 없었다.

다섯째, 현재 한왕 유방을 따라 천하를 떠도는 수많은 호걸들에게는 유방이 천하를 얻은 후에 봉지를 받아 제후가 되고자 하는 목적이 있을 터, 육국의 후손들을 왕으로 봉하게 되면 유방과 생사를 같이 하기로 결의한 호걸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땅이 없음을 알고는 유방의 곁을 떠날 것이니 그들이 없이는 유방이 천하를 얻을 수 없기에 지금 제후들을 왕으로 봉할 수 없는 다섯번 째 이유가 그것이다.

여섯째로, 한나라와 초나라의 형세가 저울질되는 판에 만약에 유방이 뜻한 바와 다르게 초나라가 강성해지게 되면 육국의 후손들을 초나라를 섬기게 될 것이니 한왕으로서는 지금 그 제후들을 왕으로 봉해서는 안된다는 설명을 마지막으로 여섯번 째 젓가락이 유방의 밥상 위에서 소리를 내었다.

장량의 정세판단에 유방은 육국의 관인을 즉시 녹여 없애라 명하였으며, 역이기는 한참 동안 그의 거처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장량은 역이기와 다른 정세분석을 내놓고 있는데, 한왕 유방이 항우와 자웅(雌雄)을 겨루던 당시는 수백 년에 걸친 봉건제(封建制)의 모순(矛盾)이 극에 달한 후에 진나라에 의해서 초석이 세워진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음을 간파한 장량의 명석한 정세판단 능력을 보여준다. 객관적으로 같은 조건에도 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이후 북송(北宋) 시대의 역사가 사마광(司馬光)이 저술한 편년체의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는 역이기의 시대착오적인 헌책을 두고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고 한다.

說者同而得失異者
(說;이야기 설/者;접미사 자/同;같을 동/而;부정접속 이/得;얻을 득/失;잃을 실/異;다를 이/者)
같은 말에도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다르다. 즉, 객관적 정세에 대한 판단의 차이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으로서, 역시 객관적 인식이 모든 판단의 우선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자치통감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고 한다(이문열의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에서 인용).

“일찍이 장이와 진여가 진승을 찾아가 육국을 되일으켜 한편으로 삼으라고 한 것과 역이기가 한왕을 찾아가 헌책을 한 것은 그 말한 것은 같지만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다르다(說者同而得失異者). 진승이 일어날 때는 천하가 모두 진나라가 망하기를 바랐으나, 초나라와 한나라가 나뉘어 형세가 정해지지 않은 당시에는 천하가 반드시 항씨(項氏;項羽)가 망하기만을 바라지는 않았다.
따라서 진승에게는 육국을 되세우는 것이 말하자면 자기편을 늘리고 진나라의 적을 더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거기다가 진승은 아직 천하의 땅을 오로지 얻지 못했으니 제 것이 아닌 것을 남에게 주어 속빈 은혜로 알찬 복을 얻어낸 셈이었다. 그러나 한왕에게 육국을 되세우게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잘라내 적에게 보태주는 꼴이요, 헛된 이름을 내세워 실제의 화를 얻는 길이었다…”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인 새로운 체제가 등장해야 하는 단계에서, 이전 시대 역사발전의 질곡(桎梏)이었던 봉건제의 부활을 통해 현재의 얽킨 실타래를 풀려고 했던 선비 역이기는 북송시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당(新法黨)의 개혁적 당파에 대립하여 보수적인 구법당(舊法黨)의 영수(領袖)의 위치에 있던 사마광이 보기에도 현실을 타개(打開)하는 대안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유재산’과 ‘국가정체성’ ‘수호’라는 명목 하에 언제까지 사학재단의 비리와 구태가 반복될 수는 없다. 수구세력은 ‘타협의 정치’를 통해 사학재단의 재산을 굳게 지킬 방법을 모색할 것이고, ‘정치적 타협’을 위해 연회를 마련한 중도개혁세력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적당한 선에서 재개정을 의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객관적인 조건을 보자. 교육을 빙자한 소수의 ‘사유재산’ 지키기에 손을 들어줄 사람이 많을 것인가, 아니면 대다수 민중을 위해 보다 공공성(公共性)을 담보한 제도 속에서 아이들이 교육받기를 바라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인가.
같은 말이라 해도 객관적 인식의 차이에 따라 그 의미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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