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 김춘추에서 노무현까지
이덕일 지음 / 마리서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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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을 놓치 않는 한, '변혁'은 실패하지 않는다.
-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이덕일, <마리서사>, 2005.
-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석필>, 1997.



"중종 임금에게 한 궁녀가 나뭇잎 하나를 가져다 바친다. 벌레가 갉아먹은 자리를 따라 나뭇잎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走+肖=趙)가 왕이 된다는 글귀이다. 훈구파의 사주를 받은 궁녀는 덧붙인다. 
'조광조의 역심(逆心)을 하늘이 알려준 것이옵니다.'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은 조광조를 의심하나, 나뭇잎의 글씨는 궁녀가 과일즙을 발라놓은 자리를 개미들이 파먹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말하자면 음모이다... 중종은 조광조, 김식, 김구 등 사림파를 투옥시킨다. 나아가 의심 많은 왕 중종은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린다. 풍운의 개혁 정치가 조광조는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것이 이른바 '기묘(己卯)사화'이고 사약을 마실 당시 조광조는 38세의 젊은 나이였다."
-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사림의 집권과 동서 분당>

아직 조선 시대 '당쟁'이 시작되기 전이다. '당쟁', 즉 권력을 중심으로 '정파'를 만들어 수행하는 '정치투쟁'은 '사림파'가 조선의 정치를 장악한 이후인 선조대부터 이야기다.

고려말, 권문세족에 대항한 '신진사대부'는 민본적 이상사회 실현을 위한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하고 사회 '개혁'을 중심으로 두 정파를 형성하는데, 하나는 정도전의 급진적 '역성혁명파'이고, 다른 하나는 정몽주의 온건적 '고려개혁파'였다. 
전자는 조선을 건국하고 100년의 기득권 기간을 거쳐 보수적 '훈구파'가 되었고, 후자는 현실정치에서 배제된 채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며 진보적 '사림파'를 형성한다. 이후 출사한 사림파 선비들은 기득권 훈구파와 투쟁하며 연산군대에는 '폐비 윤씨 사건' 등을 둘러싸고 두 차례의 '사화(무오, 갑자)'를 겪고 패배하는데 '사화'는 '선비들이 화를 당하는 사건'이다. 그것도 대규모 숙청이다. 이후 사림파가 집권하기까지 두 번의 '사화(기묘, 을사)'가 더 반복되는데, 세 번째 '기묘사화'의 주인공이 바로 정암 조광조이다.

연산군을 폐하고 반정을 일으킨 훈구파 대신 3인방 공신(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이 죽은 후 중종은 '개혁'을 명목으로 공신 세력 견제를 위해 개혁적 사림파 조광조를 천거받는데, 중종 10년(1515년)에 천거받은 조광조는 그 해 문과에 응시하여 원칙적 '도학정치'를 설파한 '책문'으로 급제한다.
급진적 '정치 개혁'을 추진한 조광조는 가짜 공신을 없애는 '위훈삭제'와 이전 사화로 희생된 스승 김굉필과 더 거슬러 정몽주의 성균관 문묘종사에 올리는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결국 중종과 뜻이 맞지 않아 사사당하고 만다.
개혁의 명분과 이념은 시대에 따라 다르므로 그 한계는 이해해야 하지만, '적폐 세력'의 씨를 말릴 힘이 없음에도 비타협적 '정치투쟁'만 한 결과 '기묘사화'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정도전이 그랬고, 왕안석이 그랬으며, 로베스피에르와 트로츠키도 같은 길을 갔으니 '실패한 개혁가'의 한 표상이고, 당시는 잊혀졌으되 현재의 역사에서는 그래서 더 기억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극히 원칙적이었고 협잡하지 않았으며 실력이 부족해 쓰러질 지언정 적에게 굴복하지 않은 점이다.
<중종실록>은 조광조 개혁 4년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조광조들이 일을 행할 때 탄핵과 논박을 크게 하여 조정의 재상들이 주현을 범할 수 없었고, 주현의 관리들도 역시 각기 스스로를 삼가니 백성들 사이에 침어의 괴로움이 없어지고 조정에서도 또한 뇌물을 쓰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런데 사류가 화를 입음에 이르러 염절(청렴과 절제)이 따라서 무너지니 조정은 재물에 때가 끼고 군현도 그 바람을 타서 이를 데가 없게 되었다."
-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이덕일, <중종실록, 15년 10월>


일제시대 '식민사관'은 조선인들을 모이기만 하면 '붕당'을 만들어 싸우는 하급 민족이라 폄하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사대부들의 '사화'와 '당쟁'이었다.
물론, 조선의 '송자'로 불라면서 서인 노론의 '일당독재'를 구축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하다가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던 숙종에 의해 사약을 받은 우암 송시열 같은 인물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재야 역사학자 이덕일은 당시의 '다당제'라 할 수 있는 '당쟁'을 통해 기득권을 견제하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음을 설파한다.
조선 '당쟁사'의 '문제적 인물' 송시열을 비판하고 그 역사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 쓴 책이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1997)이다.


"이조정랑 자리를 놓고 싸움이 발생한 것은 선조 임금 때였다. 선조 7년(1574) 전랑으로 있던 오건이 다른 자리로 가면서 김효원을 자신의 후임으로 이조정랑에 추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김효원이 이조정랑이 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선 인물이 있었다. 바로 심의겸이었다."
-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조선의 '이조정랑'은 '3사' 관리 추천권을 지닌 자리인데, '3사'는 사헌부(감찰), 사간원(언론), 홍문관(학술정책) 등의 임무로 '도학정치'를 추구하는 사림파에게는 중요한 직책이었으니, 이 자리의 추천권을 두고 첫 '분당'이 이루어진다.
김효원은 한양 동쪽에 살아 '동인', 심의겸은 서쪽에 있어 '서인'이 되는데, 이후 상대당을 몰아내고 처단 수위의 강경-온건에 따라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북인'이 광해군과 함께 패배한 뒤에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의 장기집권이 시작되었고, 장례복식 등의 쓰잘데기 없는 '예송논쟁' 등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최후의 승자 '노론'은 다시 강경파인 '벽파'가 끝까지 살아남아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아니 아마도 지금까지 기득권을 누린다. 
이덕일이 보기에 현재 우리나라 '적폐'와 '수구보수'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어쩌면, '송자' 우암 송시열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김육은 효종에게 '삼남에는 부호가 많습니다. 이 법의 시행을 부호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영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마땅히 소민들의 바람을 따라야 합니다. 어찌 부호들을 꺼려서 백성들에게 편리한 법을 시행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라며 확대 실시를 주장했으나 양반 지주들의 반대에 부딪힌 효종은 확대 실시를 주저했다. 그러자 김육은, '대동법은 지금 모든 조례를 올렸으니, 전하께서 옳다고 여기시면 행하시고 불가하면 신을 죄주소서'라고 배수진을 쳤다."
- [성공한 개혁, 실패항 개혁], 이덕일, <100년 동안의 조세개혁, '대동법'>

조선 시대 '성공한 개혁'은 단연 '대동법'이다. 공납의 폐해를 없애고 토지에 따라 쌀로 세금을 내는 제도로 '근대국가'의 기틀이 되고 다수 민중들에게도 공평한 조세제도로 당시 지배계급인 대지주에게만 불리한 법이었다. 
당연히 지주와 관료, '토호열신'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전국 확대에만 100년이 걸렸고 그 중심에 김육이라는 '서인' 정치가가 있다.
잠곡 김육은 왜란으로 부모를 잃고, 호란으로 출사 기회를 잃기도 하고 성균관에서는 상소운동 등의 '학생운동'도 주도했다는데, 본인의 자리와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결국 숙종대에 대동법이 전국 확대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또한 김육의 새로운 역법과 상평통보 주조 등의 경제관은 조선 후기 실학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대동법 시행 과정에서도 '서인'은 '한당'과 '산당'으로 분열하는데, 김육은 '한당'의 지도자였고 '산당'의 우두머리는 송시열이었다.
대동법은 광해군대에 경기도, 효종대 충청도, 숙종대에 전국 확대된 바, 효종이 호서지역 민심을 묻자, 대동법 반대파 송시열 조차도 "편리하게 여기는 자가 많으니 좋은 법"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도도한 '시대정신'이었다.
역사학자 이덕일은 '개혁'은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있다"는 대원칙 아래
소득과 자산에 따라 공정하게 세금을 부과하고 민중의 '보편복지'를 위해 평등하게 분배하는 '시대정신'은 대동법의 조선이나 현재의 대한민국이나 보편적인 것 아닐는지.

다수 민중을 위한 '보편복지'의 '시대정신'을 놓지 않는 한, '개혁'이든 '혁명'이든 사회 변혁의 시도는 '실패'하지 않는다.

***

1.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이덕일, <마리서사>, 2005.
2.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석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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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낭 - 상
풍몽룡 지음, 이원길 옮김 / 신원문화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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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謀略)'은 나이든 자의 '지낭(智囊)'인가
- [모략(謀略)], 차이위치우 외, 김영수 편역, <들녘>, 1996.



"대지약우(大智若愚). [노자]를 보면 '가장 떳떳한 사람은 마치 겸손한 것 같고, 가장 재주 있는 사람은 마치 졸렬한 것 같고, 가장 말 잘하는 사람은 마치 말더듬이 같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장자]에서도 노자의 말을 끌어다 '위대한 기교는 졸렬하게 보인다'는 말을 하고 있다... 송나라 때 소식(소동파)은 벼슬길에 오르는 사람을 위한 축하의 글에서 '위대한 용기는 겁을 먹은 것 같고, 위대한 지혜는 어리석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본래 지모가 뛰어난 사람은 일부러 멍청하게 보이려 한다. 이 모략은 마음 속에 품은 원대한 포부를 감추고 특정한 정치, 군사적 의도를 실현시키려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지혜로우면서도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이고, 할 수 있으면서도 못하는 것처럼 꾸며 상대를 속이고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 [모략(謀略], <정치모략 - 큰 지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모략(謀略)'이라 하면 보통 위 인용문과 같이 여겨진다. 상대를 속이고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속임수' 같은 것. [손자병법] <시계편>에는 "병(兵)이란 궤도(詭道)"라고 하는데, 군사작전은 다름아닌 '속임수'라는 의미다.
유방이 항우가 초대한 '홍문연'에서 굽신거리고, 조조의 휘하에 의탁하던 시절 유비가 텃밭이나 가꾸다가 "천하 영웅은 그대와 나 둘 뿐"이라는 조조의 말에 크게 놀라는 척 하며 나중에 삼국을 정립하는 과정 따위가 그렇다.


"'모략'은 대단히 친숙하면서도 신비한 단어다. 수천년 동안 이 단어는 인류의 사회적 실천, 사유의 발전과 발걸음을 함께 해 왔다... 파란만장한 인류 발전사는 모략의 창조사이자 실천사로, 시공을 초월해서 인류 지혜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인류 사유의 긴 흐름은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인간은 실천 속에서 점차 자신의 사유를 발전시키고 완전하게 다듬어 각종 '기모묘계(奇謀妙計)'를 창조해 냈다. 뒷사람들은 앞사람의 사유 성과를 몸소 실천하고 운용하여 앞사람들이 남긴 모략의 이론과 실천을 총결했다. 인류의 '모략사유'에 대한 연구와 총결은 지금까지 멈춰본 적이 없다. 옛사람들이 남겨놓은 '지혜의 창고' 속을 구경하다 보면 모략이 놀랍게도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중요한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음모'건 '양모'건 간에... 뛰어난 모략은 아주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 [모략(謀略], <'모략총서'를 펴내며>

중국의 군사학자 차이위치우를 필두로 한 일련의 학자들이 1992년에 수천년 인류 사유의 발전 사례로서 [모략론], [모략고], [모략가]의 '모략 3부작'을 기획해서 집필했고, 그 중 [모략고]를 우리나라에서 편역한 [모략] '3부작'은 '정치', '통치', '외교', '언변', '간사', '경제', '군사' 분야별 정리하여 각종 고사와 고전의 문장, 사례 등을 총망라한다.
물론, 인류 사유의 발전 과정에서 '음모'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과정이다. 인류 '지혜의 보고'로서 '모략'은 '양모(좋은 꾀)'와 '음모(나쁜 꾀)'의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끊임없이 모순되고 대립하며 변화발전함으로써 후대로 이러지며, 이러한 인류 사유와 지혜, 철학의 발전이 거대하게 이루어진다. 
'모략'은 인류 사상사의 '빅데이터'인 것이다.


화원위엔이란 중문학 박사는 2003년 이러한 '모략'들을 [책략(策略)]과 [권력(勸力)]이라는 나름의 분류법으로 재편했는데, [책략]은 '모책', '심책', '정책', '기책', '술책', '방책' 등으로, [권력]은 '권모', '용권', '제권', '분권' 등 세부항목으로 나눠 역사 속 인물들의 고사를 소개한다. 역시 중문학자인 자오촨둥은 앞서 1999년에 춘추전국의 '백가쟁명'과 통일왕조의 '궁정논변', 소수민족 분열기와 집권기의 '격변기'의 분류법으로 [쟁경] 같은 책을 출간했다. 이 모든 테마가 다름아닌 '모략론'인 것이다.


"... 진정한 큰 지혜는 기실 '무심(無心)'이다. '무심'이란 기존의 그 어떤 원칙이나 경험 그리고 사고방식에 국한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런 ('무심'의) 지혜를 지혜 중의 상등 지혜인 '상상지혜(上上知慧)'라고 하는데, 이런 상상지혜는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오로지 그와 유사한 지혜로운 일들을 많이 알거나 경험해야 현실적인 문제들에 봉착하여 그런 지혜들을 유효하게 키울 수가 있다."
- 풍몽룡, [지낭(智囊)], <상등의 지혜 - 서언>, 1626.

춘추전국시대를 소설화한 [동주열국지]로 유명한 명말청초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풍몽룡은 명나라 희종대에 역사 속 인물의 고사와 이에 대한 저자의 '평어(논평)'을 붙이는 형식으로 [지낭(智囊)]을 편찬했고 이 책은 당대 지배계급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 혁명가 마오쩌뚱도 대장정 시기에도 늘 가지고 다니며 읽고 또 읽었다고 하는데, 과연 마오의 저작 중 수많은 중국 역사 사례의 원천이 풍몽룡의 [지낭]일 수도 있다.
또한, 풍몽룡의 [지낭]은 중국 '모략론'의 시초이기도 하겠다.


"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내 도와 마음이 성실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나뉘는 것입니다... 정치원리를 잘 아는 사람은 반드시 사전에 근본에 속하는 일과 말단에 속하는 일을 구별해서, 먼저 근본을 바로잡습니다... '근본'이라는 것은... 바로 도의 실현을 정치의 목표로 삼고, 마음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아, 성실하게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거는 도 밖에 없으며, 도는 본성을 따르는 것일 뿐입니다. 본성이 없는 것은 없으니, 도는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 [책문(策文) - 시대의 물음에 답하다], 김태완, <5장. 조광조의 대책>

조선 중기 '개혁가' 정암 조광조가 1515년(중종 10년) 알성시에 제출한 '책문'의 내용이다. 반정으로 집권한 중종이 기득권을 견제하기 위해 '개혁 세력'의 포섭이 필요했고 심지굳은 '도학정치'를 표방한 조광조를 등용했으나 송나라 왕안석의 '신법당'처럼 기득권과의 타협을 거부하면서 기묘사화의 희생자가 된 조광조는 중종의 과거시험 마지막 질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가 다르지 않다"는 취지의 대책문을 제출한다.
조광조의 '책문' 또한 상당한 원리원칙을 토대로 한 인류 사유의 총결으로서 '모략'이며, 그 핵심은 '이상사회' 건설을 위한 공자의 '도학정치'이다. 


중국은 수천년의 문자역사를 통해 아시아의 '노인'으로 살아왔다. 우리의 요동과 한반도 역사도 그와 같지만 중국과 같은 기록이 없어 이 '아시아 노인'의 고사를 많이 인용해 왔다.
중국인들은 '모략'을 수천년 '역사의 지혜'로 정리하면서 전수해 왔고, 문자기록에 뒤진 우리는 그들의 '지혜주머니(지낭)'에서 수많은 '대책'을 뒤지고 있다. 조광조의 '대책' 또한 그렇다.

궁금해 진다.
과연, '모략(謀略)'은 나이든 자의 '지낭(智囊)'인 것인가.

***

1. [모략(謀略)], 차이위치우 외, 김영수 편역, <들녘>, 1996.
2. [책략(策略)], 화원위엔, 박미애 옮김, <한스미디어>, 2005.
3. [권력(勸力)], 화원위엔, 정광훈 옮김, <한스미디어>, 2005.
4. [쟁경(爭經)], 자오촨둥, 노만수 옮김, <민음사>, 2013.
5. [지낭(智囊)](1626), 풍몽룡, 이원길 옮김, <신원문화사>, 2004.
6. [책문(策文)], 김태완, <소나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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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움직이는 힘 정치모략 들녘 모략 총서
차이위치우 외 34인 지음, 김영수 옮김 / 들녘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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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謀略)'은 나이든 자의 '지낭(智囊)'인가
- [모략(謀略)], 차이위치우 외, 김영수 편역, <들녘>, 1996.



"대지약우(大智若愚). [노자]를 보면 '가장 떳떳한 사람은 마치 겸손한 것 같고, 가장 재주 있는 사람은 마치 졸렬한 것 같고, 가장 말 잘하는 사람은 마치 말더듬이 같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장자]에서도 노자의 말을 끌어다 '위대한 기교는 졸렬하게 보인다'는 말을 하고 있다... 송나라 때 소식(소동파)은 벼슬길에 오르는 사람을 위한 축하의 글에서 '위대한 용기는 겁을 먹은 것 같고, 위대한 지혜는 어리석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본래 지모가 뛰어난 사람은 일부러 멍청하게 보이려 한다. 이 모략은 마음 속에 품은 원대한 포부를 감추고 특정한 정치, 군사적 의도를 실현시키려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지혜로우면서도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이고, 할 수 있으면서도 못하는 것처럼 꾸며 상대를 속이고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 [모략(謀略], <정치모략 - 큰 지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모략(謀略)'이라 하면 보통 위 인용문과 같이 여겨진다. 상대를 속이고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속임수' 같은 것. [손자병법] <시계편>에는 "병(兵)이란 궤도(詭道)"라고 하는데, 군사작전은 다름아닌 '속임수'라는 의미다.
유방이 항우가 초대한 '홍문연'에서 굽신거리고, 조조의 휘하에 의탁하던 시절 유비가 텃밭이나 가꾸다가 "천하 영웅은 그대와 나 둘 뿐"이라는 조조의 말에 크게 놀라는 척 하며 나중에 삼국을 정립하는 과정 따위가 그렇다.


"'모략'은 대단히 친숙하면서도 신비한 단어다. 수천년 동안 이 단어는 인류의 사회적 실천, 사유의 발전과 발걸음을 함께 해 왔다... 파란만장한 인류 발전사는 모략의 창조사이자 실천사로, 시공을 초월해서 인류 지혜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인류 사유의 긴 흐름은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인간은 실천 속에서 점차 자신의 사유를 발전시키고 완전하게 다듬어 각종 '기모묘계(奇謀妙計)'를 창조해 냈다. 뒷사람들은 앞사람의 사유 성과를 몸소 실천하고 운용하여 앞사람들이 남긴 모략의 이론과 실천을 총결했다. 인류의 '모략사유'에 대한 연구와 총결은 지금까지 멈춰본 적이 없다. 옛사람들이 남겨놓은 '지혜의 창고' 속을 구경하다 보면 모략이 놀랍게도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중요한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음모'건 '양모'건 간에... 뛰어난 모략은 아주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 [모략(謀略], <'모략총서'를 펴내며>

중국의 군사학자 차이위치우를 필두로 한 일련의 학자들이 1992년에 수천년 인류 사유의 발전 사례로서 [모략론], [모략고], [모략가]의 '모략 3부작'을 기획해서 집필했고, 그 중 [모략고]를 우리나라에서 편역한 [모략] '3부작'은 '정치', '통치', '외교', '언변', '간사', '경제', '군사' 분야별 정리하여 각종 고사와 고전의 문장, 사례 등을 총망라한다.
물론, 인류 사유의 발전 과정에서 '음모'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과정이다. 인류 '지혜의 보고'로서 '모략'은 '양모(좋은 꾀)'와 '음모(나쁜 꾀)'의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끊임없이 모순되고 대립하며 변화발전함으로써 후대로 이러지며, 이러한 인류 사유와 지혜, 철학의 발전이 거대하게 이루어진다. 
'모략'은 인류 사상사의 '빅데이터'인 것이다.


화원위엔이란 중문학 박사는 2003년 이러한 '모략'들을 [책략(策略)]과 [권력(勸力)]이라는 나름의 분류법으로 재편했는데, [책략]은 '모책', '심책', '정책', '기책', '술책', '방책' 등으로, [권력]은 '권모', '용권', '제권', '분권' 등 세부항목으로 나눠 역사 속 인물들의 고사를 소개한다. 역시 중문학자인 자오촨둥은 앞서 1999년에 춘추전국의 '백가쟁명'과 통일왕조의 '궁정논변', 소수민족 분열기와 집권기의 '격변기'의 분류법으로 [쟁경] 같은 책을 출간했다. 이 모든 테마가 다름아닌 '모략론'인 것이다.


"... 진정한 큰 지혜는 기실 '무심(無心)'이다. '무심'이란 기존의 그 어떤 원칙이나 경험 그리고 사고방식에 국한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런 ('무심'의) 지혜를 지혜 중의 상등 지혜인 '상상지혜(上上知慧)'라고 하는데, 이런 상상지혜는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오로지 그와 유사한 지혜로운 일들을 많이 알거나 경험해야 현실적인 문제들에 봉착하여 그런 지혜들을 유효하게 키울 수가 있다."
- 풍몽룡, [지낭(智囊)], <상등의 지혜 - 서언>, 1626.

춘추전국시대를 소설화한 [동주열국지]로 유명한 명말청초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풍몽룡은 명나라 희종대에 역사 속 인물의 고사와 이에 대한 저자의 '평어(논평)'을 붙이는 형식으로 [지낭(智囊)]을 편찬했고 이 책은 당대 지배계급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 혁명가 마오쩌뚱도 대장정 시기에도 늘 가지고 다니며 읽고 또 읽었다고 하는데, 과연 마오의 저작 중 수많은 중국 역사 사례의 원천이 풍몽룡의 [지낭]일 수도 있다.
또한, 풍몽룡의 [지낭]은 중국 '모략론'의 시초이기도 하겠다.


"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내 도와 마음이 성실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나뉘는 것입니다... 정치원리를 잘 아는 사람은 반드시 사전에 근본에 속하는 일과 말단에 속하는 일을 구별해서, 먼저 근본을 바로잡습니다... '근본'이라는 것은... 바로 도의 실현을 정치의 목표로 삼고, 마음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아, 성실하게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거는 도 밖에 없으며, 도는 본성을 따르는 것일 뿐입니다. 본성이 없는 것은 없으니, 도는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 [책문(策文) - 시대의 물음에 답하다], 김태완, <5장. 조광조의 대책>

조선 중기 '개혁가' 정암 조광조가 1515년(중종 10년) 알성시에 제출한 '책문'의 내용이다. 반정으로 집권한 중종이 기득권을 견제하기 위해 '개혁 세력'의 포섭이 필요했고 심지굳은 '도학정치'를 표방한 조광조를 등용했으나 송나라 왕안석의 '신법당'처럼 기득권과의 타협을 거부하면서 기묘사화의 희생자가 된 조광조는 중종의 과거시험 마지막 질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가 다르지 않다"는 취지의 대책문을 제출한다.
조광조의 '책문' 또한 상당한 원리원칙을 토대로 한 인류 사유의 총결으로서 '모략'이며, 그 핵심은 '이상사회' 건설을 위한 공자의 '도학정치'이다. 


중국은 수천년의 문자역사를 통해 아시아의 '노인'으로 살아왔다. 우리의 요동과 한반도 역사도 그와 같지만 중국과 같은 기록이 없어 이 '아시아 노인'의 고사를 많이 인용해 왔다.
중국인들은 '모략'을 수천년 '역사의 지혜'로 정리하면서 전수해 왔고, 문자기록에 뒤진 우리는 그들의 '지혜주머니(지낭)'에서 수많은 '대책'을 뒤지고 있다. 조광조의 '대책' 또한 그렇다.

궁금해 진다.
과연, '모략(謀略)'은 나이든 자의 '지낭(智囊)'인 것인가.

***

1. [모략(謀略)], 차이위치우 외, 김영수 편역, <들녘>, 1996.
2. [책략(策略)], 화원위엔, 박미애 옮김, <한스미디어>, 2005.
3. [권력(勸力)], 화원위엔, 정광훈 옮김, <한스미디어>, 2005.
4. [쟁경(爭經)], 자오촨둥, 노만수 옮김, <민음사>, 2013.
5. [지낭(智囊)](1626), 풍몽룡, 이원길 옮김, <신원문화사>, 2004.
6. [책문(策文)], 김태완, <소나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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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대중심리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3
빌헬름 라이히 지음, 황선길 옮김 / 그린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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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파시즘'을 만든 건, 다수 대중이었다"
-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 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옮김, <그린비>, 2006.



"사회적 조건과 변동이 인간의 원초적, 생물학적 요구를 변화시켜 그것을 성격구조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놓은 다음에야, 그 성격구조는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사회적 구조를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파시즘'은 권위적인 기계문명과 이 문명의 기계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인생관의 억압을 받은 인간이 지니는 기본적인 감정적 태도이다. 우리 시대 인간들의 기계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격이 파시스트당을 만든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정치적 운동으로서 파시즘은 그것이 인민대중에 의해 탄생되고 대변되었기 때문에 다른 반동적 정당과는 다르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머리글(증보개정 3판)>, 1942.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분석 의사 빌헬름 라이히는 인민대중의 생물학적 성에 기초한 성격분석을 통해 독일 히틀러의 '나치당'이나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을 정의한다.
프로이트와 친했으나 결별한 후, 1927년 오스트리아 빈의 봉기를 경험하고는 공산당원이 되기도 했으나 그의 '성정치'가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공산당으로부터 축출당하고 해외를 떠돌다가 1957년 미국에서 사망한다.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요약하면, 파시즘은 자생적 '정치체제'가 아니라 '국가(독점)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이를 '신비주의'적으로 체화한 '비합리적' 인민대중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합리적인 노동민주주의' 자치성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켄크로이츠는 맨처음 셈족에게서 발견되었고... 하인리히는 동요르단 게네사렛 호수가에 있는 에드-디케 유태교회당의 폐허에서 하켄크로이츠를 발견했다... 말하자면 '하켄크로이츠'는 원래 성적 상징이었다... 나중에는... 특히 노동의 상징인 물레방아 바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정서적으로 '노동'과 '성'은 동일한 것이기에... 이때 풍요로움은 어머니인 대지와 아버지인 하느님 사이의 성행위로 묘사된다... 고대 인도의 사전 편찬자들은 음경이나 음탕한 사람을 성적 욕구를 뜻하는 '구부러진 십자가, 즉 '하켄크로이츠'라고 지칭했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4장. 하켄크로이츠의 상징적 의의>

화가 지망생 히틀러는 '정치가' 이전에 '예술가'였다. 미술을 좋아했고, 고전음악과 건축물에 심취했으며, '예술의 정치화'를 꿈꾸었다. 이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었는데, '정치의 예술화', 즉 우리 삶을 '예술적'으로 바꿔주는 '정치'가 아니라, '예술'의 '신비주의'적 외피를 쓴 가짜 '정치'였기 때문이다.
나치당의 상징인 '구부러진 십자가', 즉 '하켄크로이츠'는 이러한 대중선동의 '강력한 보조수단'으로서 게르만족의 시조인 아리아인들의 유물에서 발견해낸 것인데, 남녀가 얽혀 누운 형태에서 어머니 대지와 아버지 하늘의 교합이라는 '신비주의'적 상징을 창조했다.
물론, 파시즘의 근본은 성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도와 배타적 인종주의인데, '하켄크로이츠'의 '신비주의'로써 그 본질을 은폐하고 신성화한다.


"정치적 '비합리주의'에 의해 심하게 방해받지 않는 노동하는 인간이 '합리적'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바로 그 생활영역을 정치가는 '비합리적'으로 지배한다. 동일한 생활영역에 '합리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거나 '비합리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는 있지만, 이 둘은 정반대의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대체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실천에서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이다. 인간 사회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국가의 권위주의적 규율은 항상 자연스러운 사회성과 노동의 즐거움을 파괴해 왔다는 사실... 즉 권위적 국가규율은 사회를, 가정의 강제적 신성시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 간의 사랑을, 강제적 도덕성은 생활의 기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예절을, 그리고 정치가는 일하는 사람들을 파괴해 왔던 것이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13장. 자연스러운 노동민주주의에 관하여>

라이히는 '파시즘'을 '나치당'과 같은 특정 체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보편형태로 본다. '노동자국가' 소비에트러시아의 '스탈린주의'도 마찬가지다. 즉, 생산수단의 국유화로 사회체제가 변했다고 하여 '자유'와 '해방'이 온 것이 아니다. '대중'들은 여전히 '비합리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파시즘'을 양산해내고 '정치가'는 끊임없이 노동대중의 '합리성'과 '자유'를 억압하고 규율하며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결론은 '합리'적 '노동'에 기초한 '자율성', 즉 '노동민주주의'의 관점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맨 앞장에 "사랑, 노동, 지식은 우리 생활의 원천이며, 이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고 쓴 문장이 곧 '노동민주주의'다.


2008년부터 이명박 정권을 겪은 우리 대중들이 2012년에 박근혜 정권을 '선택'했을 때,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다시금 뒤적이며, "결국 '파시즘'을 만든 건 우리들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2016년 '촛불 항쟁'을 거쳐 정치적 '파시즘' 체제를 타도하고 문재인 정부를 세웠으나, '대깨문', '문빠'라는 우리 안의 '파시즘'은 여전하여 결국,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거대양당의 '자회사'인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라는 초법적인 '민주주의 도적질'을 목도하는 지금, 다시 라이히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

"사회적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노동하는 대중들이 구조적으로 성숙될 때, 즉 그들이 생산수단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을 의식한 후에야 비로소 결정될 수 있고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머리글>


'자연스러운 노동민주주의'에 기초한 다수대중의 '자치성'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금 우리가 주인이 될 시간이 한참 지나고 있다.

***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 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옮김, <그린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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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강의 -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삼국지의 진실을 만난다!
이중텐 지음, 양휘웅 외 옮김 / 김영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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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삼국지]를 '품평'하다.
- [삼국지강의(品三国)], 이중텐, 김성배/양휘웅 옮김, <김영사>, 2007.



"실제로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세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정사'에 기록된 얼굴로, 일반적으로 '역사상의 이미지'라고 부릅니다... 두번째는 소설과 희극을 포함한 문예 작품 속의 얼굴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문학상의 이미지'라고 부릅니다... 세번째는 일반 백성들이 주장하는 모습으로, 일반 민중들의 마음 속에 있는 얼굴입니다. 이것은 '민간의 이미지'라고 불리는데... 문학상의 이미지와 민간의 이미지의 형성도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루쉰 선생이 말한 것처럼 '땅 위에 원래 길이 없었는데,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길이 되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미지는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면 가짜 이미지에서 진짜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 <서문>

문학과 역사학 등을 접목하여 역사의 '대중화'를 이끈 중국 인문학자 이중텐은 2006년 중국 CCTV에서의 [삼국지강의]를 통해 다시금 중국의 삼국지 '르네상스'를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 내용이야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사실'과 '허구'를 경계로 우리의 선택과 해석을 풀어내는 진부한 방식임에도, 기실 '르네상스'의 핵심은 '혁신'이겠으나 그 모티브는 '고전적 진부함'이기 때문이다.


"[후한서] <허소전>에서는 '조조가 아직 벼슬을 하지 않았을 때, 늘 공손한 말과 많은 예물로써 자신을 평가해주기를 구하였다. 허소는 그를 하찮게 여겨서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조조가 빈틈을 노려 허소를 협박하자, 허소는 어쩔 수 없어서 "그대는 태평한 시대에는 간적, 혼란한 시대에는 영웅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조조는 매우 즐거워하며 떠났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런데 [삼국연의]는 이 배경을 삭제해 버립니다. 표현은 또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고 한 손성의 [이동잡어] 것을 가져옵니다... '간'이냐 '능'이냐의 여부는 조조의 주관적인 희망에 달린 것입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 <1부-2강>

이중텐도 역시 '삼국지' 최대 '문제적 인물' 조조로부터 시작한다. 조조라는 인물의 '역사적 이미지' 또한 대부분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와 배송지의 방대한 '주석'을 바탕으로 한다. 한편으로 '문학적 이미지'와 민간적 이미지'는 그를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으로 전해왔는데, '난세'였던 삼국시대에는 '간사한 영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정사'인 범엽의 [후한서]에는 삼국시대 당시 최고의 '인물평론가' 허소의 입을 빌어 "태평한 시대(치세)에는 '간적', 혼란한 시대(난세)에는 '영웅'"이라 적고 있다. 이 점에 대해 배송지의 [삼국지 주석]에서는 '민간적 이미지'를 택하고 있어 이중텐은 조조의 '역사적 이미지'의 근거로 또 다른 '정사'인 [후한서]를 언급한다.
이렇게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럴 경우 조조의 '주관적 희망', 즉 그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바랬을까 추측해 볼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조조가 활약했던 당시는 '치세'가 아닌 '난세'였으므로 결국 조조는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고 크게 웃으며 돌아간 것이다.


"제갈량의 선택 기준... 첫째, 그 사람은 반드시 새로운 정권, 새로운 국가, 새로운 왕조를 세울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 이러한 포부를 갖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조건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그 사람의 이러한 포부와 조건은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잠재적인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포부가 명확하지 않고 조건이 부족해야, 비로소 제갈량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래야, 제갈량이 간 이후에 실력을 발휘하여 천하를 장악할 신하가 되는 것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 <2부-15강>

주지하다시피, 제갈량이 선택한 인물은 유비였다. 나관중의 [삼국연의]에서 '장량'급 이상으로 신격화된 인물, 제갈량은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유하며 주군을 기다리지만, 이미 '영웅'이 된 조조나 강동의 기반을 갖춘 손권 가문에는 가봐야 빛을 보기 힘들다는 판단 하에 당시 포부는 있으나 별 볼일 없던 유비라는 '틈새'를 파고 든다.
우리가 소설을 통해 익히 들은 '삼고초려'는 제갈량이 유비 사후 후주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에서 그 스스로 한 말이다. 제갈량이 찾아간 것이 아니라 유비가 본인을 찾아왔다는 것인데, 세 번 가서 한 번 본 게 아니라 세 번 이상 만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융중대' 이론이 정립된 과정이다.
'허구'와 달리 '사실'은 강동의 노숙도 손권에게 비슷한 '천하삼분지계'를 내놓는데, 제갈량의 '융중대'의 주인공이 '조조-유비-손권'인데 비해 노숙의 그것은 '조조-유표(형주자사)-손권이라는 점이 다르다. 유비가 자립을 시작한 형주는 삼국시대 최고의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고 유비가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유표의 아들을 쫓아내고 배신하면서까지 차지해야 했던 이유였다.
여기서도 유비는 아직 '영웅'이 아니었다는 점이 보이는데, 이 또한 제갈량이 유비를 택한 이유였을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오고가면서 인물평을 하기에 [삼국지]만한 주제가 없을터, 이중텐 교수가 [삼국지강의]를 통해 진부하지만 다시금 '품삼국(品三国)'을 한 이유다. '고전적 진부함'의 복권이야말로 '르네상스'의 주요한 동기다.


원말명초 '한족 부흥(르네상스)'을 위해 독립투쟁에 몸담은 나관중 [삼국연의]의 '촉한정통론'을 이민족의 다양한 시각에서 근본적 비판과 해석을 가한 [장정일 삼국지](2004)와 그 방대한 '준비작업'으로서 [삼국지 해제](2003)는 우리에게 귀중하고 독자적인 시도이자 성과인데, [삼국지]의 본산인 중국에서 그 '르네상스'가 어떠한지 이중텐의 [삼국지강의(品三国)]를 통해 읽어볼 수 있다.


"한나라 때 긴 창의 종류로 '극(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창의 일종)'과 '모(일직선 창)'가 주종을 이루었다면, 관우 역시 청룡(언월)도가 아니라 '극'이나 '모'와 같은 무기를 사용했던 것은 아닐까?... '언월도'는 반달모양을 하고 있는데, 왕조춘([중국고대병기] 저자)은 이 무기가 송나라 때에 와서야 등장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나관중도 몰랐던 삼국지 이야기], 김재웅.

1990년대 '천리안', '하이텔'을 통해 '삼국지'를 연구하여 대중적으로 '삼국지'의 '허와 실'을 파헤친 김재웅은 위나라(66만호)나 촉나라(28만호)가 고구려(69만호)나 백제(76만호)보다 작았고, 장비는 장판파에서 80만 대군을 만난 적 없이 다리를 끊고 나서 소리만 친 것에 불과하며, 관우는 한참 후인 송나라대에 나온 청룡 '언월도'를 사용할 수 없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전문가 아닌 일반인이 풀어내기에 쉽지 않은 주제를 2000년도에 이미 망라하고 있다.

[삼국지]는 그 유명세 만큼 역사에서 '사실'과 '허구'의 교차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어 '역사 품평'의 화수분이다.
'역사'는 이처럼, '사실'과 '허구', '정사'와 '소설'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품평'된다.

***

1. [삼국지강의(品三国)], 이중텐, 김성배/양휘웅 옮김, <김영사>, 2007.
2. [삼국지 해제], 장정일/김운회/서동훈, <김영사>, 2003.
3. [나관중도 몰랐던 삼국지 이야기], 김재웅, <청년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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