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 과거, 현재, 미래 경상국립대학교 SSK 연구단 연구총서 2
박노자 외 지음, 김미경 외 옮김 / 진인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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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 [동아시아 자본주의] /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2023.


"21세기 들어 '국가자본주의'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귀환했다... '국가자본주의'의 귀환, 즉 '신국가자본주의'가 대두하게 된 주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위기 국면에서 드러난 '자유시장'과 '신자유주의'의 실패이다... '신국가자본주의론'은 기존의 '국가자본주의론'과 달리 국가분석을 사회계급 권력분석과 분리한다... 
오늘날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를 해명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신국가자본주의론'이 환기한 고전 마르크스주의 시각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업데이트하여 동아시아의 새로운 조건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 [동아시아 자본주의], <3장.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평가와 과제>, 정성진, 2023.


1.

'국가사회주의'가 무엇입니까?
1학년 후배가 대뜸 물었다.

그것도 모르느냐,
그는 그렇게 반문하고는 학생회실을 박차고 나왔다.

학회 세미나 시간이 끝난 후였던가.
현대철학반 1,2학년 여럿이 모여 잡답하던 중 어느 1학년 여자후배가 던진 질문에 2학년 학회장이었던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고, 아무도 모르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국가사회주의'가 뭔지 모르는 게 아니었으나, 
고작 2학년이었음에도 명색이 '학회장'이었으므로, 
그래도 정확히 설명해야 하는데, 
갑자기 그는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본인도 모르게 화를 버럭 내고는 몰래 도서관 가서 관련 문헌을 찾아보고 정확히 정리해본 후 다음날 조용히 그 후배를 불러 설명할 생각이었지만, 아마도 학생회실에 벙쪄서 남겨진 동료와 후배 학회원들은 자고로 '철학' 학회장이란 자가 그것도 몰라서 내뺐다고 생각할 거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그는 부끄러워졌다.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철학' 학회장이 '국가사회주의'를 몰라서 그랬던 건 진짜로 아니었다. 
질문을 받자마자 갑자기 '국가자본주의'가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2. 

"오랜 관료주의적 질서의 근본적인 힘은 '능력'을 바탕으로 한 임용관행과 함께 제국의 질서회복에 기여하게 되었다... 탈귀족주의와 '능력' 중심적 관직 임용은 중세 중국 역사의 진화에 매우 중심적인 요소들이었다... 객관적인 등용, 고과의 기준은 공공성, 공익 같은 관념들을 공고화시키고 공적인 기관으로서의 정부의 위상을 정립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당대 유럽에서 정부의 권력이 특정 귀족가문의 사적소유로 인식되었던 것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좀더 긴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국가의 이미지는 '공적인 영역'이라는 현대적 개념의 전조였다...
다양한 형태의 '능력주의'를 포함한 '관료제도'에 기반한 국가경영의 장기적인 지속성은 서구가 보다 일찍 달성한 자본주의의 축적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따라잡는 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동아시아 자본주의], <1장. 동아시아 관료국가의 형성과 그 특성>, 박노자, 2023.


경상대학교 '한국사회과학연구단(SSK)'에서 2023년에 중국과 한국 및 일본 등 동아시아의 체제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한 '연구총서'를 냈다. 
우리 사회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인 SSK연구단장 정성진 교수가 엮은 이 총서는 박노자와 인도 및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 한국의 학자들이 국가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와 노동,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테마를 가지고 동아시아 정치경제체제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연구총서의 첫째 권은 [동아시아 자본주의]다.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을 피해갈 수 없다. 인도의 마르크스주의자 안잔 차크라바티와 사요네 마줌다르는 <2장.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 전환과 발전~>에서 중국 체제를 분석한 후 이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다.
겉으로는 '사회주의'지만 결국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적극 편입한 자본주의 체제 중 하나에 불과하며 국가권력이 노동계급 착취의 주체로서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전형적인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동아시아식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북한 모두 마크스주의적 관점에서는 '사회주의'일 수가 없다. 
'사회주의'는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계급이 창출된 노동가치를 전유해야 한다. 어떤 식이든 '착취'로 돌아가는 체제는 '사회주의'일 수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는 20세기 중후반 신흥공업국으로서 일본과 한국, 대만 등의 나라들도 동일한 모델이다. 즉, '경제 발전'을 이룬 동아시아 나라들 대부분이 '국가자본주의'인 것인데, 정성진 교수는 <3장. 동아시아 자본주의론의 평가와 과제>에서 이들의 진화단계를 1) '국가자본주의' - 2) '발전국가' - 3) '포스트 발전국가' - 4) '신국가자본주의'로 구분한다. 

최초로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부터 1961년까지의 냉전 초기 아직 마르크스주의적 사회 분석과 '종속이론'이 지배적이었던 시절 국가 주도의 산업과 기업 육성을 통해 국가 자체가 자본축적의 주체가 되었던, 현재의 중국과 같은 '국가자본주의' 단계에서 시작한다. '국유화'를 중심으로 제3세계의 '국가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발전'으로 규정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발전국가'는 국가의 금융업 지배를 통해 국가권력의 자본주의 개발계획이 적극 수립되고 집행되던 경쟁적 냉전시대의 모델이다. 소련을 중심으로 했던 당시의 공산국가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이 '발전국가'는 1997년 IMF 세계금융지배 체제로 인해 해체된다. 
20세기 말 새로운 세계체제론과 함께 동아시아에 등장한 '포스트 발전국가'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발전국가'의 말기적 현상으로 자본주의 계급모순과 불평등이 심화된 단계다. '후기'로 번역되곤 하는 '포스트~(post~)'는 보통 연속을 의미하면서도 이탈을 내포하는 '~이후'를 뜻하기도 하는데, '발전국가 이후'로서의 '포스트 발전국가' 체제는 알다시피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함께 휘말리게 된다. 
자본주의는 살아남기 위해 '국가자본주의'를 다시금 소환한다. 자본축적의 무한자유를 보장하되 또 다시 국가권력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를 정성진 교수는 '신국가자본주의'라 말한다. '국가자본주의'처럼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의 결합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유화'를 무덤에서 살려낼 엄두는 내지 못하지만 21세기의 국가권력은 자본 일체의 무한확장과 축적 일체를 규율하고 통제하며 총괄한다. 이 강력한 '신국가'는 필요하다면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도 자처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모순인 계급투쟁을 철저히 은폐한다. 계급투쟁을 노골화시켰던 '국가자본주의'의 현대화된 형태로서 손색이 없다. 세련된 21세기 '신국가자본주의'에서 계급투쟁을 말하면 왠지 촌스럽게 여지기도 한다. 계급간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음에도 말이다.

한편, '신국가자본주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효율적 방역체계로도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동아시아 국가권력의 목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완전한 편입이며, '국가자본주의'의 완성이다. 
연구총서는 21세기 '신국가자본주의'는 20세기 '국가자본주의'를 다시금 소환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계급투쟁론의 부활 또한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하며동아시아의 미래 대안으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자본주의 불평등 체제에서 계급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1장. 동아시아 관료국가의 형성과 그 특성>이라는 박노자 교수의 글은 이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론'의 기본배경을 의미심장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의 비약적이고 효율적인 발전과 성장의 정치적 배경으로 동아시아의 오래된 '관료주의'를 전제한다. 
중국의 고대 한나라에서는 효렴과 천거 등의 추천 형태였고 수당시대를 거치며 발전한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된 동아시아의 사대부 또는 신사계층 관료들은 경학이든 논술이든 국가경영의 '능력'을 인정받은 자들로서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갱신을 통해 국가의 안정적 경영을 이룬 자들이었다. 세습귀족들만의 사유물이었던 서양의 국가들과 달리 동아시아 '관료제'의 '능력주의'와 '효율성'은 비록 왕조국가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의 '공공성'을 오래전부터 공고히 다졌고, 현대에 이르러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의 발전을 담보하는 정치문화적 배경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점에서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중국 조차도 '국가자본주의'다. 
경제발전은 물론 세계체제 편입과는 거리가 먼 북한의 세습봉건왕조는 아예 연구대상도 못되지만, 마르크스주의자가 보기에는 파시즘이나 나치즘이 표방했던 '국가사회주의' 조차도 못되지 않을까 싶다.


3.

"식민지는 주로 원자재 공급지의 역할과 식민종주국의 공산품 판매를 위한 시장의 역할을 강제로 강요받았다는 논리... 동시에, 식민지 착취의 메커니즘을 통해 발생한 '초과이윤'은 '선진국'에서 고임금 노동자계층('노동귀족')이 '혁명' 대신에 '개혁'을 지향하도록 매수하기 위해 그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데 사용되었다.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은 식민주의를 주변부의 자원과 시장에 대한 통제와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결속과 연결시켰고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에 레닌이 공헌한 매우 큰 부분이다. 레닌의 이런 이론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월러스타인이 '세계체제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실제로 '세계체제'라는 용어는 레닌의 주요 논문들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상당히 잦은 정책변화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이론적 근거는 일반적으로 동일했는데 물품의 시장, 자원공급원, 값싼 노동력의 창고로서의 악착같은 식민지 착취는 세계 제국주의 체제의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다."
-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1장. 조선적 특색을 가진 마르크스주의>, 박노자, 2023.


연구총서의 두번째 권은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다.
앞서 동아시아 주요국들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박노자 교수와 한국 및 인도와 일본 등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동아시아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어 분석한다.

박노자 교수는 <1장. 조선적 특색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에서 식민지 조선 시기 소련 등지에서 조국을 분석했던 '디아스포라(망명)'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조선 체제 분석이 얼마나 정교했으면서도 현실적이었는지 문헌연구를 토대로 소개한다. 1916년 [제국주의론]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불균등발전론'을 이론화한 레닌의 사상에 입각했던 이들의 마르크스주의적 체제 분석은 해방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남북한의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명시하지는 않았다 해도 식민지 시대 조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구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해방 후 남북한 양측에서 공히 이 조선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잊혀졌다. 남한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성지가 되었고, 북한의 스탈린주의 또한 이들 조선식 '디아스포라' 마르크스주의를 숙청했다.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과거'를 거쳐 '현재'는 또 어쩔 수 없이 중국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결국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된, 더 나아가 동아시아를 '세계의 공장(글로벌 공장)'이자 '노동의 대륙'으로, 대다수 동아시아 노동계급을 거대한 세계체제 피착취의 대상으로 노골화시키는 '국가자본주의' 또는 '신국가자본주의'가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의 '현재'인 것이다. 연구논문은 길고 복잡하지만, 결국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분석이다.
연구총서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적 모순을 타파하는 '미래' 대안으로 세계체제에 종속적으로 편입되는 '세계의 공장(글로벌 공장)'을 벗어나, 불안정/비정규 노동과 인종혐오를 넘어서는 반제국주의적 노동계급 투쟁의 집단적 행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동아시아 자본주의], <4장>).

그 외, '신자유주의' 이야기는 다소 진부하다. 다만, 1980년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는 '신보수주의'에 불과하며, '신자유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보기에 불완전노동과 복지축소로 변질된 '새로운 케인스주의'까지도 포괄할 정도로 유연하고 총체적이라는 점을 기억할만 하다. '신자유주의'는 어떤 사상이나 이념이라기 보다는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 마르크스주의는 그 전통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신세대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의 [인류세의 자본론]에서 강조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의 역할과 자연철학적 '물질대사'로까지 자본의 물신성을 밀어붙이려던 [자본론] 1권 이후의 노년의 마르크스에 대한 재조명 정도로 주목해보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도 사이토 고헤이 정도로 연구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4.

대학 2학년의 어수룩한 철학 '학회장'이었던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었지만,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국가사회주의'를 설명하기 전에 '국가자본주의'를 먼저 꺼내야 한다는 걸 몰랐다.

후배들 앞에서 완벽하고 싶었던 스물한살의 철학 학회장은 당시 동료후배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결국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를 몰라서 자리를 피한 거였다.


그렇다면, 
동아시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결국, 
'신자유주의'처럼 또다시 진부한 얘기 같지만,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동아시아 체제는,
우파 자유주의자가 보면 '국가사회주의'일 수도,
좌파 사회주의자의 눈에는 '국가자본주의'일 수도.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

1. [동아시아 자본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접근],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진인진>, 2023.
2.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 과거,현재,미래],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진인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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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자본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접근 경상국립대학교 SSK 연구단 연구총서 1
박노자 외 지음, 정성진 엮음, 김미경 외 옮김 / 진인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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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 [동아시아 자본주의] /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2023.


"21세기 들어 '국가자본주의'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귀환했다... '국가자본주의'의 귀환, 즉 '신국가자본주의'가 대두하게 된 주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위기 국면에서 드러난 '자유시장'과 '신자유주의'의 실패이다... '신국가자본주의론'은 기존의 '국가자본주의론'과 달리 국가분석을 사회계급 권력분석과 분리한다... 
오늘날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를 해명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신국가자본주의론'이 환기한 고전 마르크스주의 시각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업데이트하여 동아시아의 새로운 조건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 [동아시아 자본주의], <3장.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평가와 과제>, 정성진, 2023.


1.

'국가사회주의'가 무엇입니까?
1학년 후배가 대뜸 물었다.

그것도 모르느냐,
그는 그렇게 반문하고는 학생회실을 박차고 나왔다.

학회 세미나 시간이 끝난 후였던가.
현대철학반 1,2학년 여럿이 모여 잡답하던 중 어느 1학년 여자후배가 던진 질문에 2학년 학회장이었던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고, 아무도 모르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국가사회주의'가 뭔지 모르는 게 아니었으나, 
고작 2학년이었음에도 명색이 '학회장'이었으므로, 
그래도 정확히 설명해야 하는데, 
갑자기 그는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본인도 모르게 화를 버럭 내고는 몰래 도서관 가서 관련 문헌을 찾아보고 정확히 정리해본 후 다음날 조용히 그 후배를 불러 설명할 생각이었지만, 아마도 학생회실에 벙쪄서 남겨진 동료와 후배 학회원들은 자고로 '철학' 학회장이란 자가 그것도 몰라서 내뺐다고 생각할 거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그는 부끄러워졌다.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철학' 학회장이 '국가사회주의'를 몰라서 그랬던 건 진짜로 아니었다. 
질문을 받자마자 갑자기 '국가자본주의'가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2. 

"오랜 관료주의적 질서의 근본적인 힘은 '능력'을 바탕으로 한 임용관행과 함께 제국의 질서회복에 기여하게 되었다... 탈귀족주의와 '능력' 중심적 관직 임용은 중세 중국 역사의 진화에 매우 중심적인 요소들이었다... 객관적인 등용, 고과의 기준은 공공성, 공익 같은 관념들을 공고화시키고 공적인 기관으로서의 정부의 위상을 정립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당대 유럽에서 정부의 권력이 특정 귀족가문의 사적소유로 인식되었던 것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좀더 긴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국가의 이미지는 '공적인 영역'이라는 현대적 개념의 전조였다...
다양한 형태의 '능력주의'를 포함한 '관료제도'에 기반한 국가경영의 장기적인 지속성은 서구가 보다 일찍 달성한 자본주의의 축적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따라잡는 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동아시아 자본주의], <1장. 동아시아 관료국가의 형성과 그 특성>, 박노자, 2023.


경상대학교 '한국사회과학연구단(SSK)'에서 2023년에 중국과 한국 및 일본 등 동아시아의 체제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한 '연구총서'를 냈다. 
우리 사회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인 SSK연구단장 정성진 교수가 엮은 이 총서는 박노자와 인도 및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 한국의 학자들이 국가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와 노동,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테마를 가지고 동아시아 정치경제체제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연구총서의 첫째 권은 [동아시아 자본주의]다.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을 피해갈 수 없다. 인도의 마르크스주의자 안잔 차크라바티와 사요네 마줌다르는 <2장.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 전환과 발전~>에서 중국 체제를 분석한 후 이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다.
겉으로는 '사회주의'지만 결국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적극 편입한 자본주의 체제 중 하나에 불과하며 국가권력이 노동계급 착취의 주체로서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전형적인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동아시아식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북한 모두 마크스주의적 관점에서는 '사회주의'일 수가 없다. 
'사회주의'는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계급이 창출된 노동가치를 전유해야 한다. 어떤 식이든 '착취'로 돌아가는 체제는 '사회주의'일 수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는 20세기 중후반 신흥공업국으로서 일본과 한국, 대만 등의 나라들도 동일한 모델이다. 즉, '경제 발전'을 이룬 동아시아 나라들 대부분이 '국가자본주의'인 것인데, 정성진 교수는 <3장. 동아시아 자본주의론의 평가와 과제>에서 이들의 진화단계를 1) '국가자본주의' - 2) '발전국가' - 3) '포스트 발전국가' - 4) '신국가자본주의'로 구분한다. 

최초로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부터 1961년까지의 냉전 초기 아직 마르크스주의적 사회 분석과 '종속이론'이 지배적이었던 시절 국가 주도의 산업과 기업 육성을 통해 국가 자체가 자본축적의 주체가 되었던, 현재의 중국과 같은 '국가자본주의' 단계에서 시작한다. '국유화'를 중심으로 제3세계의 '국가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발전'으로 규정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발전국가'는 국가의 금융업 지배를 통해 국가권력의 자본주의 개발계획이 적극 수립되고 집행되던 경쟁적 냉전시대의 모델이다. 소련을 중심으로 했던 당시의 공산국가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이 '발전국가'는 1997년 IMF 세계금융지배 체제로 인해 해체된다. 
20세기 말 새로운 세계체제론과 함께 동아시아에 등장한 '포스트 발전국가'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발전국가'의 말기적 현상으로 자본주의 계급모순과 불평등이 심화된 단계다. '후기'로 번역되곤 하는 '포스트~(post~)'는 보통 연속을 의미하면서도 이탈을 내포하는 '~이후'를 뜻하기도 하는데, '발전국가 이후'로서의 '포스트 발전국가' 체제는 알다시피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함께 휘말리게 된다. 
자본주의는 살아남기 위해 '국가자본주의'를 다시금 소환한다. 자본축적의 무한자유를 보장하되 또 다시 국가권력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를 정성진 교수는 '신국가자본주의'라 말한다. '국가자본주의'처럼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의 결합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유화'를 무덤에서 살려낼 엄두는 내지 못하지만 21세기의 국가권력은 자본 일체의 무한확장과 축적 일체를 규율하고 통제하며 총괄한다. 이 강력한 '신국가'는 필요하다면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도 자처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모순인 계급투쟁을 철저히 은폐한다. 계급투쟁을 노골화시켰던 '국가자본주의'의 현대화된 형태로서 손색이 없다. 세련된 21세기 '신국가자본주의'에서 계급투쟁을 말하면 왠지 촌스럽게 여지기도 한다. 계급간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음에도 말이다.

한편, '신국가자본주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효율적 방역체계로도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동아시아 국가권력의 목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완전한 편입이며, '국가자본주의'의 완성이다. 
연구총서는 21세기 '신국가자본주의'는 20세기 '국가자본주의'를 다시금 소환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계급투쟁론의 부활 또한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하며동아시아의 미래 대안으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자본주의 불평등 체제에서 계급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1장. 동아시아 관료국가의 형성과 그 특성>이라는 박노자 교수의 글은 이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론'의 기본배경을 의미심장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의 비약적이고 효율적인 발전과 성장의 정치적 배경으로 동아시아의 오래된 '관료주의'를 전제한다. 
중국의 고대 한나라에서는 효렴과 천거 등의 추천 형태였고 수당시대를 거치며 발전한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된 동아시아의 사대부 또는 신사계층 관료들은 경학이든 논술이든 국가경영의 '능력'을 인정받은 자들로서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갱신을 통해 국가의 안정적 경영을 이룬 자들이었다. 세습귀족들만의 사유물이었던 서양의 국가들과 달리 동아시아 '관료제'의 '능력주의'와 '효율성'은 비록 왕조국가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의 '공공성'을 오래전부터 공고히 다졌고, 현대에 이르러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의 발전을 담보하는 정치문화적 배경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점에서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중국 조차도 '국가자본주의'다. 
경제발전은 물론 세계체제 편입과는 거리가 먼 북한의 세습봉건왕조는 아예 연구대상도 못되지만, 마르크스주의자가 보기에는 파시즘이나 나치즘이 표방했던 '국가사회주의' 조차도 못되지 않을까 싶다.


3.

"식민지는 주로 원자재 공급지의 역할과 식민종주국의 공산품 판매를 위한 시장의 역할을 강제로 강요받았다는 논리... 동시에, 식민지 착취의 메커니즘을 통해 발생한 '초과이윤'은 '선진국'에서 고임금 노동자계층('노동귀족')이 '혁명' 대신에 '개혁'을 지향하도록 매수하기 위해 그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데 사용되었다.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은 식민주의를 주변부의 자원과 시장에 대한 통제와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결속과 연결시켰고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에 레닌이 공헌한 매우 큰 부분이다. 레닌의 이런 이론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월러스타인이 '세계체제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실제로 '세계체제'라는 용어는 레닌의 주요 논문들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상당히 잦은 정책변화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이론적 근거는 일반적으로 동일했는데 물품의 시장, 자원공급원, 값싼 노동력의 창고로서의 악착같은 식민지 착취는 세계 제국주의 체제의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다."
-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1장. 조선적 특색을 가진 마르크스주의>, 박노자, 2023.


연구총서의 두번째 권은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다.
앞서 동아시아 주요국들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박노자 교수와 한국 및 인도와 일본 등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동아시아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어 분석한다.

박노자 교수는 <1장. 조선적 특색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에서 식민지 조선 시기 소련 등지에서 조국을 분석했던 '디아스포라(망명)'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조선 체제 분석이 얼마나 정교했으면서도 현실적이었는지 문헌연구를 토대로 소개한다. 1916년 [제국주의론]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불균등발전론'을 이론화한 레닌의 사상에 입각했던 이들의 마르크스주의적 체제 분석은 해방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남북한의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명시하지는 않았다 해도 식민지 시대 조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구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해방 후 남북한 양측에서 공히 이 조선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잊혀졌다. 남한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성지가 되었고, 북한의 스탈린주의 또한 이들 조선식 '디아스포라' 마르크스주의를 숙청했다.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과거'를 거쳐 '현재'는 또 어쩔 수 없이 중국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결국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된, 더 나아가 동아시아를 '세계의 공장(글로벌 공장)'이자 '노동의 대륙'으로, 대다수 동아시아 노동계급을 거대한 세계체제 피착취의 대상으로 노골화시키는 '국가자본주의' 또는 '신국가자본주의'가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의 '현재'인 것이다. 연구논문은 길고 복잡하지만, 결국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분석이다.
연구총서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적 모순을 타파하는 '미래' 대안으로 세계체제에 종속적으로 편입되는 '세계의 공장(글로벌 공장)'을 벗어나, 불안정/비정규 노동과 인종혐오를 넘어서는 반제국주의적 노동계급 투쟁의 집단적 행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동아시아 자본주의], <4장>).

그 외, '신자유주의' 이야기는 다소 진부하다. 다만, 1980년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는 '신보수주의'에 불과하며, '신자유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보기에 불완전노동과 복지축소로 변질된 '새로운 케인스주의'까지도 포괄할 정도로 유연하고 총체적이라는 점을 기억할만 하다. '신자유주의'는 어떤 사상이나 이념이라기 보다는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 마르크스주의는 그 전통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신세대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의 [인류세의 자본론]에서 강조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의 역할과 자연철학적 '물질대사'로까지 자본의 물신성을 밀어붙이려던 [자본론] 1권 이후의 노년의 마르크스에 대한 재조명 정도로 주목해보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도 사이토 고헤이 정도로 연구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4.

대학 2학년의 어수룩한 철학 '학회장'이었던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었지만,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국가사회주의'를 설명하기 전에 '국가자본주의'를 먼저 꺼내야 한다는 걸 몰랐다.

후배들 앞에서 완벽하고 싶었던 스물한살의 철학 학회장은 당시 동료후배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결국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를 몰라서 자리를 피한 거였다.


그렇다면, 
동아시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결국, 
'신자유주의'처럼 또다시 진부한 얘기 같지만,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동아시아 체제는,
우파 자유주의자가 보면 '국가사회주의'일 수도,
좌파 사회주의자의 눈에는 '국가자본주의'일 수도.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

1. [동아시아 자본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접근],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진인진>, 2023.
2.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 과거,현재,미래],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진인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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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영웅 관우 더봄 평전 시리즈 4
마바오지 지음, 양성희 옮김 / 더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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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신무영우... 관성대제
- [신이 된 영웅, 관우], 마바오지, 2017.


"관우와 장비는 모두 1만 명을 상대할 만하며 그 시대의 용맹한 신하이다. 관우는 조조에게 보답하였고, 장비는 대의로써 엄안을 풀어주었으며 이들은 모두 국사(國士)의 풍모를 지녔다. 그러나 관우는 굳세고 교만하며, 장비는 포학하고 은혜를 베풀지 않았는데 그 단점 때문에 실패하게 되었으니 이치상 당연한 것이다."
- 진수, [정사 삼국지], <촉서>, '관장마황조전', '평왈(評曰)', 3세기.


진수의 정사 [삼국지] <촉서>의 '관우전'은 유비의 '선주전'으로부터 그 차례를 보면 그의 아들 유선의 '후주전'과 유씨 황후들과 가문사람 몇 명, 공명의 '제갈량전' 다음으로 바로 이어지지만 그 분량은 상당히 짧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나 그 전부터 민간에 만화처럼 읽혀 내려오던 [전상삼국지평화] 같은 이야기 속 관우의 존재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략에 불과한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인 "관우는 자가 운장이고 본래 자는 장생이며, 하동군 해현 사람이다. 망명하여 (유비의 고향) 탁군으로 달아났다." 말고는 진정 인용할 만한 인상적인 문장 한 줄 없이 매우 무미건조하기까지 하다.

진수의 [삼국지] <촉서> '관우전'을 요약하면, 관우운장은 유비현덕의 용맹한 수하장수로서 "잠잘 때도 함께 할" 정도의 형제와 같은 깊은 정을 나누었지만 시종 그의 곁을 시립하며 의리로서 유비를 지켰던 최측근 부하였다. 

관우와 장비, 마초 및 황충과 조운의 이야기인 '관장마황조전'의 말미에 게재된 [삼국지] 편저자 진수의 평론인 '평왈(평하여 말하다)' 기사에 따르면, 관우는 "용맹"한 "국사의 풍모"로서 굳세었으나 "교만"하여 결국 실패하게 되었으나 "이치상 당연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역사에서 실패한 위인으로 '정사'는 관우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대의 민간만화 [전상삼국지평화]와 원말명초 나관중의 [삼국연의] 등의 논픽션 드라마 및 관우가 최후까지 지키려다가 죽은 중국 남방의 형주 지역 범신론 사상 등의 영향으로 현재는 중국 최고의 '무신(武神)'이 되었다.

관우는 '문성(文聖)' 공자에 비견되는 '무성(武聖)'으로서 '관성대제(關聖大帝)'로 불리는데,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훗날 주해한 배송지에 의하면 사실 고대의 역사서 [춘추좌씨전]을 늘 읽고 "입으로 줄줄 외울" 정도로 문무를 두루 겸비하였고, 과연 이천년간 인구에 회자되며 '제왕'의 반열에 올랐다.


"북송 시대 양산박 농민반란의 영웅 대도 관승은 관우의 후손으로 추앙받았고, 원나라 말기 홍건군을 이끈 유복통, 명나라 말기 농민반란군을 이끌었던 고영상, 이자성, 장헌충,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군을 이끈 홍수전 등이 관우를 자신의 롤모델이자 필승의 수호신으로 삼아 군대를 이끌었다. 관우의 용맹과 전투력이 신격화된 것은 바로 이런 역사배경 때문이었다."
- [신이 된 영웅, 관우], <들어가는 말>, 마바오지, 2017.


중국 허창대학에서 삼국문화 및 위진남북조 문화 등을 연구한 역사학자 마바오지(馬寶記) 교수는 평생 관우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30년 연구 업적으로 '관우평전'을 2017년에 새로 썼는데, 원저는 [관우도전(關羽圖傳)]으로 2023년 국역본은 [신이 된 영웅, 관우]다.

관우는 하동군 해현 출신으로 그의 고향 해현은 산서성 남부 지역인데 고대에 황제가 치우를 죽이고 치우의 머리와 사지를 잘라 버린 곳이란다. 치우의 피가 말라 소금의 염지가 된 땅이며 치우의 사지가 '분해'된 땅이라 '해(解)'라고 불리는데, 오래된 전략적 요충지라 동한말 황건농민반란 시기에도 혼란의 지역이었단다.

관우 가문의 기원으로 올라가면, 그가 아주 더 먼 오래전 하나라 시대 직언을 올리다가 죽은 충신 관용봉 가문의 자손이라고 구양수의 [당서]에서 전한다지만 근거는 없다고 한다.
어쨌든, 17세에 가정을 꾸리고 18세에 훗날 형주에서 손권에게 함께 참수당한 큰아들 관평을 얻었으며 23세인 183년에 해현의 악덕지주 여웅을 때려죽이고 탁군으로 도주한 관우는 탁군 탁현의 실력자 유비와 장비를 만나 '도원결의' 전설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 이야기를 펼쳐간다.

마바오지의 '관우평전'은 '삼국지'의 오랜 이야기를 아는 이들에게는 매우 익숙하여 책장을 다 덮는데까지 채 하루도 안 걸린다.
진수의 정사에 따르면 '무신' 관우는 용맹하고 의리 있는 굳센 장수이자 국사의 풍모를 지녔으나 성품이 교만하고 거만하여 역사의 실패자가 되었음에도 중국민중들에 의해 끊임없이 '충의'와 '용맹', '의리'의 화신이 되어왔다.

관우는 초기 유비로부터 '별부사마'로 임명되었고, 잠시 조조에게 의탁했을 때 원소군의 명장 안량을 벤 후 후한 황제(실권자는 조조)로부터 받은 '한수정후'를 시작으로 촉한 시기까지 '5호장군' 중 '탕구장군 한수정후' 같은 제후급 명함이 그의 공식 직함이었다. 
손권의 군대에게 패하여 형주에서 참수된 직후에는 유비 황제에 의해 '장무후'로 추존되었다.

그런 관우는 사후 오랜 시간 동안 유교 및 불교와 도교(유-불-선)의 '신(神)'으로 추앙받다가 유-불-선의 마지막 종교인 도교가 국가종교로 정착된 당나라 시기부터 도교의 지존인 '진군'으로 추존되었고, 도교에 미쳐있던 북송의 마지막 군주 휘종 시기에는 도교의 명실상부한 최고신이 되었다. 
여진의 금나라와 몽골의 원나라 지배 시절에도 관우는 끊임없이 '충의'와 '용맹'의 무신으로 존재감을 잃지 않다가 명나라를 거쳐 19세기 청나라 말기였던 1879년에는 아래와 같은 스물여섯 글자의 최종 시호를 얻었다.

"충의신 무영우 인용 위현 호국 보민 정성 수정 익찬 선덕 관성대제"
- 청나라 덕종 광서5년인 1879년.

의미는 '충의'와 '무용', '인덕'과 '용맹', '지혜'와 '호국보민', 유교적 '성의'와 '정심', 불교와 도교적 '선덕'까지 갖추신 '성인'이자 큰 '제왕' 되시겠다.


"이처럼 고대 중국 종교의 중심이었던 유교, 불교, 도교가 모두 관우에게 막강한 지위를 부여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봉건 시대의 유일무이한 절대신으로 등극한 관우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 [신이 된 영웅, 관우], <12장. 신이 된 관우>, 마바오지, 2017.


중국 고대로부터 지배적 이데올로기로서 유교는 관우의 '충의'와 '용맹'을 높이 평가했는데, 유교 왕조 정권이 민중을 통치하는데 효율적인 기제로서 '충의'를 강조했다.

동한 명제 시기 전래된 불교는 위진남북조 시대 지배적 민간종교가 되었고 수나라 시기부터 관우는 본격적으로 보살이나 부처의 반열로 현성되었단다.

불교보다 70년 정도 늦었지만 비슷한 시기인 동한 순제 시기 형성된 도교는 후한말 황건농민반란 시기 최초로 조직종교의 형태를 갖추었다. 북송 말기 휘종 시기 관우의 대표무기 '청룡언월도'가 본격적으로 들려진다. 사실 후한말 삼국시대 관우의 무기는 '청룡언월도'일 수가 없었다. 이 무기는 북송 시대에 이르러서야 등장했기 때문이다.

도교에서 큰 신선인 '진군'이 된 북송의 관우신은, 원말명초 시기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거쳐 크게 유명해졌고, 결국 명나라 신종 만력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제왕'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로 도교 신도들에게 관우는 '제왕'의 '지존'이 된다.


<더봄> 출판사의 중국사 '평전' 시리즈는 믿고 읽어볼 만 하다.
[결국 이기는, 사마의](친타오,2017), [제왕의 스승, 장량](위리,2008), [난세의 리더, 조조](친타오,2013)에 이어 네 번째 작품인 이 책 [신이 된 영웅, 관우](마바오지,2017)는 내용으로는 앞선 세 권에 비교하면 너무 대중적이고 새로울 내용은 없을지 모르지만, 이천년간 민중신앙에서 제왕신이 되어온 관우운장에 관한 본격적인 대중평전으로서 한 번 흥미를 가지고 읽어볼 만 하다.

***

1. [신이 된 영웅, 관우](2017), 마바오지, 양성희 옮김, <더봄>, 2023.
2. [결국 이기는, 사마의](2017), 친타오, 박소정 옮김, <더봄>, 2018.
3. [제왕의 스승, 장량](2008), 위리, 김영문 옮김, <더봄>, 2021.
4. [난세의 리더, 조조](2013), 친타오, 양성희 옮김, <더봄>, 2022.
5.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진수,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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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난단티 -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 의식 교유서가 어제의책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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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마법'에 걸리지 않는 이유
- [베난단티], 카를로 긴즈부르그, 1966.


"왜 네가 마법에 걸리지 않는지 아는가?
왜냐하면 너는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야."
- 올리보 칼도, 1644.


1.

중세시대 마녀사냥 하면, '광기'가 떠오른다.
'마녀'가 광인이었는지, 광인을 '마녀'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이들을 심문하고 화형시킨 가톨릭 권력이 미쳤던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단일 사상이나 종교로 '차이'와 '소수'를 단죄하는 시대 자체가 '광기'다.

'미시사(微視史)'라는 말이 있다.
거대담론이나 대의, 위인과 영웅의 '거시'적 역사가 아니라 개인이나 소수의 역사를 주제로 한단다.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철학자 헤겔의 말이 떠오른다.
작은 것들 속에도 역사의 '보편성'이 흐른다.

이탈리아 역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가 27세였던 1966년에 쓴 박사학위논문은 [베난단티(I Benandanti)]인데, '미시사'의 대표적 저서라고 한다.

생소한 단어인 '베난단티'는 중세 '마녀'와 싸워 농작물의 풍요와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종의 '전사'다. 긴즈부르그의 '미시사'는 이 '베난단티'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다.


2.

"... 고대의 민중신앙이 심문관의 무의식적인 압박을 받아 마침내 기존의 악마적 '사바트(Sabbath)'라는 틀 속으로 서서히 지속적으로 짜맞춰 들어가는 변형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 마녀의 '밤의 모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악마의 찬미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신비로운 여신인 '디아나(Diana)'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14세기 말부터 이탈리아에 존재했던 이 신앙에는 '마법'이 관련되어 있지만, 악마와는 상관이 없이 무해하다... 1523년에 이르러서야 십자가와 성체 모독, 그리고 악마와의 성교 같은 묘사가 나타난다."
- [베난단티], <밤의 전투>, 카를로 긴즈부르그, 1966.

가톨릭에서 사계절마다 신앙으로 심신을 닦는다는 '사계재일(四季齋日)'이 되면,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독일의 '브로켄' 산이나 이탈리아 '조사파트' 또는 '요사파트(하느님의 심판이 내릴 땅)' 계곡 등지로 '마녀'들이 모였단다.

'악마'의 부름을 받은 이 '마녀'들은 염소나 고양이, 산토끼 등의 동물을 타고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며 난교를 벌인다는데 사실 이 광란의 잔치인 '사바트(Sabbath)'에는 '마녀'만 초대받은 게 아니었다. 
'베난단티'는 태어날 때부터 '양막'을 목에 두르고 알 수 없는 별자리 아래 태어난 자들로 성년이 되면 누군가의 오더로 소집되는 일종의 '군인'과도 같다. 이들은 이 '사바트'에서 '마녀들'과 '밤의 전투'를 벌이는데, '베난단티'가 이기면 풍작이, '마녀'가 이기면 흉작이 든다고 한다. '베난단티'는 회향나무를 묶은 회향단으로 싸우고 '마녀'는 불쏘시개로 쓰는 시커먼 나무대기로 싸운다. 치료의 효과가 있는 회향나무를 든 '베난단티'는 '마녀'들이 피를 빨아먹으려는 어린이들의 생명도 구하는 임무도 있다.

긴즈부르그는 이런 이야기를 중세 16~17세기 마녀 심문기록 등을 파헤치고 연구하여 '미시사'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긴즈부르그 일생을 지배한 이 '밤의 전투' 기록의 목적은 '마녀재판' 사실의 새삼스런 폭로는 아니다. 
저자의 목적은 '민중신앙'의 변형에 관한 서술이다.

사실 '베난단티'와 '마녀'와의 '밤의 전투'는 기독교가 '보편적 교회(Katholikos)'로서 '가톨릭'이 되기 이전의 이교도적 전통이었던 '민중신앙'이 기원이다. 우리가 아는 '풍요제'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알려진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 '동맹' 따위의 그런 제례 같은 거다. 동서양을 막론한 민중들은 이 풍요제에서 선악을 나눠 싸움을 벌였고 풍요를 기원하며 권선징악을 기원했을 게다. 동양은 토템이나 샤먼이 있었을 테고, 서양은 '디아나' 같은 신이 있었을 것이다.

중세 기독교 가톨릭이 공격한 지점이 바로 이 '이교도' 의식이었다. '마녀'는 소수 이교도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 '마녀'를 체포하고 기소하기 위해 심문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풍요와 정의의 전사 '베난단티'였던 거다. 아마도 '베난단티'는 민중신앙에서는 '마녀'의 적수였을지 모르지만, 단일 종교의 폭력 앞에서는 '마녀'와 한 패가 되는 소수 민중신앙의 수호자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베난단티'는 가톨릭에 굴복하고 만다.


3.

"마법과 일반적인 마술적 현상에 대해 다양하고 더 회의주의적이고 동시에 더 합리적인 태도가 확산되면서 '베난단티' 신화의 붕괴와 몰락은 필연적으로 다가왔다. '마녀'나 마법사에게 희생된 적이 전혀 없으며, 그들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고 말한 친구에게 (1644년에 기소된 농민) 올리보 칼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왜 네가 마법에 걸리지 않는지 아는가? 왜냐하면 너는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야.' '베난단티' 신화의 붕괴와 몰락은 바로 이러한 원리가 양식있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된 사실의 단순한 결과였을 뿐이다."
- [베난다티], <사바트에 간 베난단티>, 카를로 긴즈부르그, 1966.

'베난단티'들과 '마녀'들의 진술에 의하면 그들은 '사바트'에 '영혼'만 간다. 육신은 죽은 듯 반듯하게 누워있고 '영혼'만 드나드는데 동물을 타거나 그것들로 변신하여 간다. 
짐승이나 벌레, 장애 또는 불구의 형상은 고대로부터 이승과 저승을 잇는 상징이라고 한다.
페르세우스 같은 '반신반인'이 아닌 순수한 인간 혈통으로 오로지 인간의 지능으로서 신의 영역을 오가는 '오이디푸스'의 이름은 '부어오른 발'이란 뜻으로, 실제로 그는 절름발이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정신분열'이나 '간질'을 앓는 환자들로 간주되었거나, 이들 소수의 환자들이 '마녀'로 격리대상이 되었으며, '베난단티' 또한 '마녀'와 구분없이 여겨졌다. 참고로, '프리울리' 같은 이탈리아 북부 변두리 지방에 잔존하던 민중신화 '베난단티'처럼 독일의 민간전설 '늑대인간'도 최초의 선한 신화와 다르게 이 시기에 악마의 추종자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이는 '마녀'로 기소된 '베난단티'들의 일관성 없이 모순된 진술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상 가톨릭에 완전히 패배한 민중신앙의 실체였다. 풍요제의 전통이었던 '사바트'는 "춤과 성적 음란이 있는 비밀모임"이라는 "초라하고 진부한 실재"로 남았다(같은책, <사바트에 간 베난단티>).

긴즈부르그는 17세기 중반이던 1644년 농부 올리보 칼도라는 '베난단티' 혐의자에 대한 재판과 함께 이 '베난단티' 이야기는 이론적으로 종착점에 도달했다"(같은책, 같은곳)며 이 책을 마무리하는데, '베난단티'라는 풍요제 민중신앙이 '마법'이나 '마녀'와 동일한 것으로 변모한 이유로 이 신화의 "내재적인 취약성"(같은책, 같은곳)을 든다. 

그러나 결국 낡은 문명과 새로운 문명과의 충돌에서 낡은 것이 사라지는 것은 필연이다.
민중들이 믿음을 저버린 문명이나 신화, 이데올로기는 소멸된다.
민중들이 '마법'을 믿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마법'에 걸리지 않았고,
'베난단티'는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마녀사냥'으로 소수를 억압했던 중세 가톨릭은 영원할 수 없었다.
근대의 '과학'에 의해 지배사상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새로운 문명은 언젠가 낡은 것이 되고 또 다른 신문명에 의해 전복된다.

'과학'은 항상 신문명을 부른다.
그러나 또 누가 아는가.
'베난단티' 같은 '민중신앙'이 앞으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새롭게 또 인류 역사에 나타날는지.
'늑대인간'은 지금도 보름달밤에 울부짖는다.

물론, 긴즈부르그의 '미시사'의 결론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

1. [베난단티(Benandanti)]()](1966), Carlo Ginzburg, 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3.
2. [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2020), 나카노 교코, 황혜연 옮김, <브레인스토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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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 레이 -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
민태기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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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유전(萬物流轉) : 소멸되지 않고 전환되는 힘
- [판타 레이], 민태기, 2021.


"'판타 레이(Panta rhei)'와 '보텍스(vortex)'라는 개념을 가지고 근대 과학사를 들여다보면 혁명과 낭만의 시대에 탄생했던 물리학, 화학, 생물학, 다양한 공학 분야와 그 선구자들의 고민과 논쟁을 보다 일관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과학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이 시기를 주저없이 '판타 레이'의 시대라고 부르고자 한다."
- [판타 레이], <프롤로그>, 민태기, 2021.


1.

13세기에 이탈리아 상인 폴로 부자형제들이 동방의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을 만났을 때, 이 동아시아 대륙의 황제에게는 진정 더 필요한 게 없었다. 동양은 이미 기원전에 종이를 발명했고 중세에는 화약을 개발했으며 결국 동서양 문명을 매개했던 오스만 투르크는 대형 화포로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서양 '르네상스'의 기점이다.
13세기 서양 상인들은 동양을 동경하였고, 동방 '황제들'의 사치향락은 이방인들에게는 막대한 이익의 기회이기도 했다.

18세기에 영국의 대사 조지 매카트니가 청나라 건륭제를 만났을 때, 청나라 황제는 '짐은 더 이상 필요한 게 없노라'라며 이 서양인을 무릎 꿇리고 머리를 조아리게 하려 했지만 매카트니 경은 이를 거부했다. 
오히려 서양의 과학기술 발전을 알지 못했던 동아시아의 '황제'나 중앙아시아의 '술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양의 과학에 무릎을 꿇었다.

"1776년 3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진다. 같은달, 수년간 자신의 특허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제임스 와트의 첫번째 증기기관이 완성되고, 같은해 7월, 제퍼슨과 프랭클린이 기초한 기초한 [독립선언서]가 발표된다. 이 세 사건으로 서양에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시작되었다. 비로소 '서양'이 '동양'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 [판타 레이], <2-5. 서양이 동양을 넘어서는 1776년>, 민태기, 2021.

서양은 18세기의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동양을 이미 넘어선지 오래였다.


2.

한국형 우주항공기 발사체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 민태기 박사가 르네상스 이후 서양의 근현대 과학사를 엮은 책 [판타 레이(Panta rhei)](2021)는 비단 '과학'의 역사만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인 '판타 레이'는 '모든 것은 운동한다'는 뜻의 '만물유전(萬物流轉)'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나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지 않는다'며 만물의 흐름과 변화를 정의한 바로 그 '만물유전'의 법칙이다. 저자는 이를 테마로 서양 근현대사를 조망하는데 이 책의 부제는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다.

"데카르트는 사람들이 믿고 있던 신비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서만 작용하는 기계적인 인과율을 과학의 기본으로 삼았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는 행성을 움직이는 힘의 전달매개로 우주를 가득 채운 유체 '에테르'가 필요했고, '에테르'의 소멸하지 않는 운동인 '보텍스'가 행성운동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뉴턴은 유체의 점성저항을 도입하여 유체운동은 지속하지 못하고 소멸한다고 지적했다. 대신 행성은 '에테르'의 '보텍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턴 역시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중력이 작용하려면 물질의 접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더 나아가 자력이나 전기력에도 마찬가지로 힘의 매개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 [판타 레이], <3-15. 원격통신의 시작>, 민태기, 2021.

근세 당시는 과학자와도 같은 의사였던 철학자 데카르트는 만물이 직접 접촉을 통해 상호 운동을 하니 물체 사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물질'로서 '에테르'를 상정했고 물질운동의 기원으로서 역동적인 소용돌이 '보텍스'를 만들었다. 
과학자 뉴턴은 연금술에도 정통했고 당시에는 '신비주의자'로 오인받기도 했는데 물질의 직접 접촉 없는 역학(물리학)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직접 접촉은 마찰과 저항으로 그 힘이 소멸될 수 밖에 없으므로 직접 닿지 않고도 소멸되지 않는 힘으로서 '만유인력'과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역시 과학자들간 논쟁을 통해 '신비주의'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만물에 '보편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인정받으면 이는 '과학'이 된다([판타 레이], <2-6>). '에테르'는 이제 사라졌지만 뉴턴의 '만유인력'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현대과학의 총아 '양자역학'은 그렇게 '과학'이 되었다.
한편, '보편성'을 지향하는 '과학'은 궁극적으로 '보편성'의 학문인 '철학'으로 수렴된다.
'과학'과 '철학'의 결합과 융합은 필연이다.

근대의 과학사는 '에테르'의 존재와 그 증명의 반복이었다. 데카르트는 '에테르'를 만들었고 뉴턴은 이를 극복하려 했으며 결국 '에테르'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지만, 현대 과학은 '파장'의 양자역학으로 다시금 이 '에테르'와 '엔트로피' 등과 같이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를 부활시키고 있다. 그 명칭이 무엇이 되었든 '소멸되지 않고 전환되는' 힘의 실체로서의 그것 말이다.
철학적 '유물론' 또한 이 모든 역학의 원천들로까지 '물질'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과학을 부정할 수 없는 현대철학에서 이제 '관념론'은 신학과 종교 뿐이다.

[판타 레이]에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온갖 수학 천재들, 과학과 실험의 대가들이 등장한다. 놀라운 것은 과학자들 외에도 철학자와 경제학자, 정치가와 음악가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인데, 이 책을 보면 인류의 역사가 이들 소수 지식인들의 손에 좌지우지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알만한 유명인사들이 깨알같이 역사적 장면에 '갑툭튀'로 등장한다. 자동차회사를 차리게 되는 포르셰는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 총성으로 죽은 합스부르크가 페르디난트 공의 운전병으로 근무했고, 찰스 다윈을 배에 태워 원양항해를 할 수 있게 한 토머스 헉슬리는 '고디바 부인'을 그린 유명화가 존 콜리어의 장인이자 [멋진 신세계]를 쓴 유명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조부였으며,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은 각국의 지배권력으로 흩어진 영국 빅토리아 왕조 가문 후손들간의 이익다툼이기도 하단다. 
굳이 이런 인맥관계들만 본다면 세상은 소수의 잘난 지들끼리의 역사로도 보일테지만, 이는 이 책이 유명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과학사'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심심치 않게 칼 마르크스도 등장시키고 있다. 
1848년 유럽혁명을 서술하면서 [공산당선언] 언급을 잊지 않고, [성경] 다음으로 인류가 많이 읽은 책이 [자본론]이라고 소개하며(3위는 [어린왕자]), 책의 마지막 문장 또한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발췌한 글을 인용한다. 즉, '과학'은 개별 학문이 아니라 인류의 전체적이고 통합적 사고의 산물이며 과학사 자체가 세계사라는 결론(같은책, <에필로그>)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문장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판타 레이]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정치경제학에 적용한 '가치 보존'의 법칙과도 같고, 
뉴턴 전문가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일반 이론]은 뉴턴의 [프린키피아(수학 원리)]에 대한 오마쥬와도 같다.

"패러데이가 죽은 해(1867년), 칼 마르크스는 런던에서 [자본론]을 출판했다...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자신들의 (정치)경제학에 (제임스) 줄의 (열역학) 성과를 반영하여 '노동'이 '상품'이 되고 '상품'이 '화폐'가 되고 '화폐'가 '상품'으로서의 '노동'을 구매하는 과정을 보존량으로서의 '가치'가 형태를 바꾸어가며 전환된다는 물리학적 개념으로 분석한다... '노동'과 '노동력'의 구분은, 같은 시기 동년배 사업가 줄의 연구를 잘 알던, 맨체스터에서 줄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기계로 돌아가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자본가' 엥겔스의 관점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잉여가치설'의 핵심은 사용자가 구매한 '동력(노동력)'과 실제 수행되는 '일(노동시간)'이 동일한 물리량이 아님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후 잉여가치설에 기반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실천은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 [판타 레이], <3-17.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전환되는 것>, 민태기, 2021.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던 1936년, 케인스 불후의명저 [고용, 이자와 화폐에 대한 일반 이론]이 출판된다. 케인스의 사상이 집대성된 '일반 이론'이라는 명칭은 당시 과학계 최대의 화두였던 아인슈타인의'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따 왔다. 뉴턴 역학이 상대성이론의 특수한 형태이듯이 '시장 경제학'이 케인스의 일반 이론의 특수한 형태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아인슈타인이 뉴턴 역학을 부정하지 않았듯이 케인스 역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부정한 것이 아니었으며, '일반 이론'에서 정부의 시장 개입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예외적인 조치로 한정했다. 케인스는 공황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사회주의 이념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자본주의를 구원했다."
- [판타 레이], <5-31. 유동성과 경제 대공황>, 민태기, 2021.


3.

"코페르니쿠스의 레볼루션과 뉴턴 이후 과학이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배경에 무관하지 않았듯이, 경제학 역시 현실 정치와 결합한 지배계급의 관점이 철저히 투영되었다."
- [판타 레이], <5-31. 유동성과 경제대공황>, 민태기, 2021.

과연 '천재'들인 과학자들이 이끈 역사에 관한 이 '과학사' 책은 어려운 수학과 과학의 원리는 물론 철학과 정치경제학 및 음악까지 아우르는 매우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다. 가히 저자 민태기는 만물박사에 '천재'와도 같다.
굳이 이런저런 유명인사들을 연결시켜 소개하나 싶기도 하지만 저자가 '참고로,...' 라며 언급한 이야기들은 어디가서 깨알같이 아는 척 하기에 알맞는 이른바 '알쓸신잡' 사전과도 같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적 정의나 공식, 과학이론 등은 이해가 안되더라도 읽고 넘기지만, 과학사의 배경이 되는 유럽 근현대사는 이 책 [판타 레이]가 한 권의 세계사 책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이 책 [판타 레이] 또한 '낭만주의'와 '혁명'으로 점철된 유럽의 역사를 우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만물유전'의 '판타 레이'로 관통하는 세계사에서도 역시, 나는 만물의 '혁명'적 전환을 본다.

본래 천체의 '회전'을 의미하던 '레볼루션(revolution)'이 지금과 같이 '혁명'을 뜻하게 된 건 1688년 영국 '명예 혁명'에서부터라는데(같은책, <1-1>),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적 과학 성과가 세계사에서 '혁명'적 전환의 대표적인 상징이 된 것 또한 인류의 역사에서 과학과 사상과의 관계를 증명한다. 
저자 민태기 박사는 "분명한 것들이 사라져야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역사의 '혁명'적 원리에 따라 과학사에서도 "마지막 유체 에테르가 사라지며 새로운 과학이 출발한다"는 말로 이 책 [판타 레이]의 마지막 <5부>를 연다.

'만물유전'의 요점 역시 '혁명'의 역사다.
'혁명' 또한 "소멸되지 않고 전환되는'([같은책, <3-17>) 힘이다.

***

- [판타 레이(Panta rhei)], 민태기, <사이언스북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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