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동화 1~2 세트 - 전2권
그림 형제 지음, 오토 우벨로데 그림, 전영애.김남희 옮김 / 민음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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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멸종'하지 않는다
- [그림 동화], 그림 형제, 1812~1819.


"... 동화를 읽는 인간은 멸종해 가지만, 인간에게는 동화가 결코 멸종하지 않기 때문...  
바로 그러한 점을 '시(詩)'가 모든 영원한 것과 공유한다...
그것(동화)은 좋은 말 한 마디와 똑같이 우리 심성의 증언이다."
- [그림 동화], <2판 서문>, 그림 형제, 1819.7.3.


신기했다.
오래 전인 19세기 초에도 '동화'를 읽는 인간들이 '멸종'해 갔다니.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이 되어 왔고,
어른이 된 인간은 대부분 '동화'를 읽지 않았다.


1.

내가 '동화'를 다시 읽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인가 대략 열살이 넘었을 때부터 친다면,
첫 아이를 만난 서른셋까지 대략 20년 이상이 지난 후였다.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으니 책 속의 삽화를 보기 위해 '동물백과사전'을 들고 다녔고 '세계문학전집'을 펼쳤다. 
몇몇 이야기는 TV에서 방영해 주던 일본 애니메이션 '세계명작동화'를 통해 대강 알았고, 오랜 시간 노란색 표지의 전집 앞에서 책등에 적힌 제목들을 주로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러다 집어든 동화책의 흑백삽화를 보며 어린 나는 상상을 펼쳤다.
초등학교 4학년 특활시간 독서반에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한 학기 내내 들고 다녔던 이유는 그 나이까지 책 한 권을 이어서 읽을 줄을 몰라서였다.

이후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의 집에서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들을 빌려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단편이나마 책 한 권을 온전히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사실 어린 시절에 제대로 읽은 동화책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했던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조차도 아마 나중에서야 온전히 읽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세계명작동화' 전집에 수록된 아주 짧은 이야기들은 그 어린 나이에도 몇 편 읽기는 했으리라.

[이솝 우화]나 [그림 동화] 같은.


2.

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지만,
실은 내가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애기들 잠들기 전 40페이지 짜리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세계명작동화'를 주로 읽어주다가, [보물섬]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빨간머리 앤], [오즈의 마법사] 등은 성인판으로 구해서 다시 읽었다. 국역으로도 읽고 영문판을 보기도 했다. 

한스 안데르센을 포함하여 장편 동화들은 비단 어린이들만을 위한 서사가 아니었다. 

이들 고전동화들은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이솝이나 그림 형제의 동화는 그닥 관심이 가지 않다가,
어느날 문득 유럽의 [신데렐라]와 우리의 [콩쥐팥쥐] 사이에서 동서양 구전동화의 '양자역학'을 떠올렸다.
서로 접촉이 없었을 것 같은데도 동일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신데렐라]는 프랑스 동화수집가 샤를 페로를 통해서도 전한다지만, 독일의 학자 그림 형제의 수집본에서도 볼 수 있다. 
제목은 [재투성이]다.


법학을 공부했다는 독일의 인문학자 야코프 그림(Jacob Grimm : 1785~1863)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 1786~1859)은 독일 각 지역의 방언으로 구전되는 민담을 수집했다. 이들은 '그림 형제'로 불렸고 그림 형제가 모아서 엮은 이야기는 [그림 동화]로 우리에게 알려져 왔다.
독일 최초의 이 동화 모음집의 독일어판 원제는,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Kinder und Hausmärchen)]다.

1812년에 1권을, 1815년에 2권을 출간한 그림 형제가 [그림 동화] 2판을 내던 1819년 7월에 쓴 '서문' 격의 글 <민중문학의 바탕은 초록풀밭과 같다>에서 19세기 초반 당시에도 "동화를 읽는 인간은 멸종해 가지만..."이라는 요즘 들어도 익숙한 문장을 읽었다. 더 읽어보니 당시에도 시대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이야기 전승의 풍속이 사라지고 있는 풍토가 염려되었던 거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어른들은 당시 젊은 것들이 싸가지가 없어서 세상 말세라고 했다더니, 어쨌건 간에 오래 전부터 '동화를 읽는 어른'들이 이미 '멸종'해 가고 있었다니 새삼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세태에도 불구하고 그림 형제는 동화 같은 구전 이야기가 '초록풀밭'의 이삭과 씨앗들처럼 '시(詩)'의 모습으로 노래처럼 구비구비 전해져왔다고 쓰고 있다.
문자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이어진 이야기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훈을 담고 있기도 하고 흐지부지한 결론의 전개 후에 뭔가 여운을 남기는 '동화'로 남기도 하는데, 그림 형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인간의 맑은 영혼과 심성을 '증언'한다고 말한다.

추운 겨울에 화롯불 앞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들려주시던 독일 '가정의 동화(hausmärchen)'는 내 어머니가 어린 나를 아랫목에 앉혀놓고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시던 동아시아의 도깨비불이나 구미호 이야기와 같이 따뜻하고 포근하다.

그림 형제의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Kinder und Hausmärchen)]는 19세기 당시 독일 각 지역의 방언을 그대로 살리고 표준어를 두루 쓰면서 이후 독일어사전 편찬 작업 등에 큰 기여를 했단다. 그림 형제는 인문학자답게 1~2권은 이야기 모음집으로, 3권은 구전민담에 관한 방대한 연구논문으로 남겼다는데, [그림 동화]는 독일어 뿐만 아니라 독일문학에서도 아마 중요한 문헌일 수도 있겠다.

우리의 독문학자인 서울대 전영애 명예교수와 경북대 김남희 교수가 함께 지금껏 우리에게 익숙해 온 각색된 내용이 아닌 그림 형제가 채집하여 편찬한 독일어 원본 이야기 1~2권을 그대로 우리말 번역한 [그림 동화]를 펼치면 '날 것 그대로'의 동화를 접하게 된다.


[재투성이]에서 신데렐라의 가짜 언니들은 유리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발가락과 뒷꿈치를 잘라 피바다를 연출하다가 악의 축이었던 새엄마의 거취는 온데간데 없이 새언니들만 신데렐라와 왕자의 결혼식에 가서 아양을 떨던 중 비둘기들에게 두눈을 쪼이고,

[눈처럼 하얀]에서 백설공주의 간과 심장이라고 착한 사냥꾼이 거짓으로 가져다 준 걸 남김없이 먹어치운 새엄마는 몇 차례 '미녀살해' 시도를 실패한 후 궁극에는 백설공주와 왕자의 결혼식에 굳이 또 구경갔다가 갑자기 나타난 불에 달궈진 쇠구두를 뜬금없이 신더니 뜨겁다고 춤추다 죽는다.

[라푼첼]의 결말은 라푼첼을 탑에 가둔 새엄마에게 속아 왕자님은 역시 두눈을 멀게되고 권선징악은 건너뛴 채 그냥 버려진 황무지에서 어쩐 일인지 이미 쌍둥이의 엄마로 살고 있던 라푼첼과 왕자가 다시 만나 심봉사와 심청이 부녀처럼 광명 찾고 잘 산다고 하면서 '갑분싸'로 끝나기도 하고,

[가시장미]에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운 건 왕자의 목숨을 건 용맹이 아니라 마녀의 예언대로 공주가 물레에 손을 찔려 잠든지 100년이 지나 마법이 풀린 순전한 운발이었는데 그 전에는 수많은 왕자들이 잠든 왕국의 문을 열다가 죽어갔지만 주인공인 운좋은 왕자는 하필 왕국이 잠에서 깰 때 들어간 거였다.

[헨젤과 그레텔]이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애초에 식량이 없다며 남매를 숲에 버리자고 했던 새엄마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 한 줄로만 적힌 건 권선징악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당시 기근의 무서움을 은연 중에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는데 아동 유기로 입을 줄였음에도 역시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던 비참한 현실의 은유일 수도 있겠다.

그 외에도 [브레멘 시립음악대]나 [빨강 모자]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는 그림 형제가 수집한 구전이야기 원작은, 그럼에도 우리가 읽어 온 '세계명작동화'와 다르다.
인위적인 훈육의 내용으로 수렴된다거나 명확하게 남기는 교훈의 메시지 같은 건 없다.


3.

그렇게 '교훈'이란 근엄한 지시와 통제 같은 기제로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동화'의 교훈을 읽는 인간들이 멸종의 위기에 매번 봉착한다 해도,
날 것 그대로의 그림 형제 구전동화는,
노래처럼 수세기를 전해져 내려온 서사의 힘을 증거해주고 있다.

때 되면 흥얼거리는 시처럼 노래처럼,
'동화' 같은 인류의 옛날 이야기는,
'초록풀밭'처럼 결코 '멸종'하지 않는다.

***

- [그림(Grimm) 동화 :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Kinder und Hausmärchen)](1812~1815), 야코프/빌헬름 그림 형제, 전영애/김남희 옮김, <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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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 온 여정
이상희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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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 [인류의 진화], 이상희, 2023.


과학은 '가설(假說)'로부터 시작한다.
연역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과학'은 일차적으로 자료조사를 통해 어떤 대상을 설명하는 명제를 구성한다. 이 명제가 '가설'로 상정되어 본격적인 조사와 발굴, 비교검토를 통해 이 주장을 검증한다. 반증이 없다면 이 '가설'은 현재의 증거들을 통해 하나의 과학적 '사실'로 확정된다.
그러나 다른 과학적 성과가 새롭게 이뤄지면 이 오래된 '진리'는 깨진다.
따라서 엄밀하게 '과학적 진리'는 모두 '상대적 진리'다.
'가설'은 깨질 수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절대적 진리'다.
레닌은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이러한 '진리의 상대성'이라는 '절대적 진리'가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과학'적 '가설'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계단(사다리)이 아닌 나뭇가지(덤불)처럼 뻗어나가는 모습이 20세기 후반에 자리잡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작은 물줄기에서 큰 물줄기로 모여 지구 전체를 덮고 있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기원이 만들어낸 모습입니다."
- [인류의 진화], <들어가며 : 흐르는 강물처럼>, 이상희, 2023.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인류학과 이상희 교수는 2018년 한마음평화연구재단으로부터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고인류를 연구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2023년 [인류의 진화]라는 책을 출간했다.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는 현생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는 고인류학계의 유럽식 주류에서 탈피해 연구를 아시아로 확장하는 시도 중 하나다.
다른 말로는 유럽이 발상지인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호모 사피엔스)'의 관계에 관한 고인류학계의 오래된 '가설'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진화]를 읽기 전,
일반인 독자들은 우선 기본 '가설'부터 깰 준비를 해야 한다.

인류 진화를 과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인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도식화한 '가설'이 있다.

대략 600만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등장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300만년 정도 아프리카 초원지대에서 살다가 200만년 전에는 '직립보행'을 하면서 유럽으로 이동했다.
100만년 전에는 석기로 대표되는 '도구 사용'의 '호모 하빌리스'가 등장하고, 그 즈음 '불'을 발견한 고인류는 70만년 전에는 '의무 직립보행'의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하면서 지구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40만년 전 쯤 되면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하고 10만년 전부터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되어 거의 그대로 현생인류로 이어져 왔다.

'계단'이나 '사다리'처럼 한 줄로 이어지는 인류 진화의 '가설'인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오스트랄로 피테쿠스(600만년 전) - 호모 하빌리스(100만년 전) - 호모 에렉투스(70만년 전) - 네안데르탈인(40~20만년 전) - 호모 사피엔스(15~10만년 전) 
2. 구석기 시대 및 수렵채집사회(200~3만년 전) - 신석기 시대 및 농경정착사회(1만년 전) 
3. 플라이스토세(5~1만년 전 대빙하기) - 홀로세(1만년 전~현재까지 간빙기) 등.

일반인들이 대중적으로 공개된 유물조사 결과를 통해 이해한 '가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도식화된 '가설'은 얽히고 설킨다.


"고인류학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 얼마나 특별하지 않은지'를 밝혀온 역사이기도 합니다."
- [인류의 진화], <1장. 네 이름은 호미닌>, 이상희, 2023.


이와 같은 '가설'의 주요 배경은 19세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한 '사람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고인류학의 대전제였다. '창조론'이 사람은 원래부터 이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과학적 반증을 하지 못하는 한 '인류 진화'의 '잠정적 가설'은 '상대적'일지라도 아직 '진리'다.
'진화는 사다리가 아니라 덤불'이라고 논증한 미국의 고인류학자 도널드 프로세로에 의하면, 진화는 '잠정적 가설'이기도 하지만 현재도 진행되는 '사실'이다.


"'중력'이 일어나는 방식을 우리는 아직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물체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어쩌면 완전히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생명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은 '신다윈주의'가 전부는 아니다. '진화'는 과거에도 일어났고 바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 [화석은 말한다], <4. 진화론의 진화>, 도널드 프로세로, 2017.


이상희 교수에게도 고인류학의 역사는 인류도 특별하지 않게 진화해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이냐 아니냐의 논란은 더 이상 의미없는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21세기에 밝혀진 팩트는 우리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지극히 '사람다운' 고인류종이었습니다."
- [인류의 진화], <12장. 또! 네안데르탈인>, 이상희, 2023.


고인류학의 과학에서도 '가설'은 계속 깨진다.

원래 제2차 대전 이전까지는 인류 기원이 동아프리카가 아닌 아시아였다.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던 인도네시아 '자바원인'과 중국 북경의 '베이징 원인'이 한때 인류의 '기원'으로 여겨졌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인류와는 다른 존재였다.

그러던 중 유럽 고인류학계에서 '네인데르탈인' 유물에 대한 조사연구가 발전했다.
1960년대 즈음에는 그 동안의 유물조사 결과를 토대로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유럽에서 네인데르탈인이 되었고 이후 크로마뇽인이라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는 '가설'이 우세하면서 인류의 '기원'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옮겨진다.

'가설'은 또 다시 깨진다.

1990년대에는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에게 유전적 영향을 남기지 않았다는 유물연구가 진전되면서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종이라는 주장이 '가설'이 된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하여 다른 종들을 멸종시킨 '학살자'로 규정한 주요 근거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가설'이다.

그러다가 21세기가 되어 유전자 연구가 발전하면서 현생 인류 유전자 중 1~4퍼센트 정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발견된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이종교배설이 등장한다.

즉, 교배를 통해 후손을 생식하는 것이 동종 뿐만 아니라 다른 종끼리 가능하다는 '가설'로 인해 '네안데르탈인'이 다시금 인류의 '조상' 범위에 들어오게 된다.

20세기 초에 '필트다운인'이라는 조작된 인류 '조상' 유물까지 내세우며 유럽인의 인류기원설을 주장하려던 유럽식 고인류학계에 또 다시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고인류학이라는 과학의 '가설' 또한 여지없이 깨질 수 있다고 논증하는 이상희 교수가 이 책 [인류의 진화]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고인류학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제가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인류)가 되어온 여정'인 이 책 [인류의 진화]의 목적 중 하나가 유럽 주류 '네안데르탈인 불패의 신화'(같은책, <나가며>)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가설'은 깨졌다가 다시 '불패의 신화'로 되살아날 수도 있지만,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과학적 성과는 무한하게 진보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이 인류의 조상으로 다시금 부활한들, 예전처럼 '사피엔스'의 전단계가 아니라 우리 안의 소량의 유전자로 부활한다.
이 '불패의 신화'는 옛날처럼 배타적일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유전자를 남긴 종이 유럽의 '네안데르탈인'(40~20만년 전) 뿐만 아니라 더 오래전 아시아 알타이 산맥의 '데니소바인'(80만년 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마저 발굴되지 못한 다른 종들도 있을 수 있다.

'가설'이 깨진 자리에 다시 부활한 '가설'이 예전의 그 '가설'일 수는 없는 것이다.


"... 우리는 지난 17세기부터 동의한 '종(種)'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다양한 '종'이 섞여 하나의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는 관점은 하나의 '종'에서 두 '종'으로 분화해야만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에 전면적으로 도전합니다. 20세기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던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이 21세기에서는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 [인류의 진화], <14장. 사피엔스의 기원>, 이상희, 2023.


인류의 '기원'이나 '종(種)'의 개념도 필연적으로 깨질 운명의 '과학적 가설'처럼 다시금 재정립된다.

아시아를 거쳐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고인류학을 조명한다는 말이 아프리카와 유럽의 고인류학을 대체한다는 것일 수는 없다. 
인류의 '기원'이나 '조상'으로서의 아직 미지의 수많은 종들이 지구의 기후환경 변화에 따라 각지로 퍼지는 과정에 대한 확장된 연구인 것이다. 
아시아는 추위를 피하고 대형사냥감을 쫓아 이동하던 우리 조상들이 한때는 육지였던 북극의 베링해협을 통해 아메리카로 건너가거나 남방의 오세아니아로 내려가던 중간지대였고, 아직은 미약하지만 한반도 지역의 고인류학 연구는 '한민족'의 '조상'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명멸하면서 우리 인류에게 '유전자'를 남긴 수많은 종들을 찾는 작업 중 하나인 것이다.


"'조상'이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그것은 사실 '허상'일 뿐입니다. 생물학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문화적 개념입니다. 
한반도의 고인류를 찾고 연구하는 일은 단일민족의 기원을 찾는 일이라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경이 없던 시절, 바다(서해/남해)가 땅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한반도에서 살고 있던 고인류는 '한민족'이 아니라 '인류'였다는 사실을 다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인류의 진화], <19장. 단군의 자손>, 이상희, 2023.


'가설'도 '약속'처럼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과학은 '가설'을 깨고 다시 세우기 위해 미지의 땅을 계속 발굴해 가는 과정이다.

인류진화사도 그렇고,
이를 연구하는 과학인 고인류학도 그렇다.

***

1. [인류의 진화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온 여정], 이상희, <동아시아>, 2023.
2. [화석은 말한다 - 화석이 말하는 진화와 창조론의 진실(EVOLUTION : What the Fossils Say and Why It Matters)](2017), Donald R. Prothero, 류운 옮김, <바다출판사>, 2019.
3.  [루시의 발자국](2020),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남진희 옮김, 김준홍 감수, <틈새책방>, 2021.
4.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조현욱 역, <김영사>, 2011.
5. [기후의 힘],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
6. [로마의 운명(The Fate of Rome)](2017), Kyle Harper,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7. [지정학의 힘], 김동기, <아카넷>,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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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0-19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설은 깨진다는 과학적 접근에 동의합니다.

beatrice1007 2023-10-19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과학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당최 우길 수가 없잖아요. ^^*
 
초판본 프랑켄슈타인 - 188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메리 셸리 지음, 구자언 옮김 / 더스토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인간의 '확신'에 대한 경고
-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1818.


고등학교 시절에는 토요일 방과 후 친구들 중 빈 집에 떼거지로 몰려가 천원 짜리를 모아서 라면을 사다 끓여먹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를 빌려봤다. 우리 집은 반지하에다가 어머니가 늘 안방에서 악세사리 같은 걸 만드는 등 부업을 해서 집이 비어 있지도 않았거니와 결정적으로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어서 친구들이 몰려올 일은 없었다. 당시 라면은 인당 두 세 개 기준에 비디오는 대놓고 성인물을 빌릴 만한 친구가 없어 남녀 애정행각이 잠시라도 꼭 나오던 '13일의 금요일' 류의 슬래셔 무비를 주로 시청했다.

제목도 기억 안 나고 주제는 더 기억 안 나지만 여배우가 예뻤던 어느 미국 공포영화는 비행청소년 본분에 충실하다가 죽은 여친을 살리기 위해 여기저기 시체들의 쓸만한 부분을 이어 붙여 되살린다는 내용이었는데, 다시 살아난 여친은 정신머리도 없고 자력행동이 불가했음에도 남친이 헌신적으로 애정애정하며 데리고 다니다가 결국 다시 골로 보낼 수 밖에 없던 슬픈 결말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역시 예쁜 여자는 누더기로 부활해도 여전히 예뻐서 비디오가 다 돌아간 후에도 나의 사춘기적 감성에 오래 각인되었다.


"자연철학은 내 운명을 지배했다."
- [프랑켄슈타인], <1-1>, 메리 셸리, 1818.

시체들을 이어 붙여 생명을 (다시) 만든다는 발상은 '프랑켄슈타인'이었다. '90년대 초 당시 나는 드라큘라나 늑대인간 등 유럽의 괴물들과 같이 노는 덩치 큰 괴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이미지는 오락실과 만화 등을 통해 본 대로 초록색 피부에 머리통에는 긴 나사가 관통해 있으며 기럭지가 짧은 누더기 양복이나 멜빵바지 같은 걸 입은 '헐크' 비슷한 거였다. 이런 비슷한 이미지는 1931년 미국 헐리우드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원조라고 한다.

이 '시체접합부활 활극'의 원작자는 19세기 영국의 여성 작가 메리 셸리(Mary Shelley : 1797~1851)다.
영국 3대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의 두번째 아내로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기 위해 제네바로 도피행각을 벌이는 동안 친구들과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영감을 얻어 메리 셸리가 19세가 되던 1818년에 쓴 소설이라고 한다. 세간에는 공상과학 SF 소설의 시조새 정도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이후 영국 소설은 대부분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제목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소설이 대표적이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주인공 이름이다. 이 소설의 원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인데, '프랑켄슈타인'은 피조물인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창조자, 즉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제네바 고위직 정치관료의 아들이다. 귀족 가문의 자제인 그는 19세기 초 당대의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화학 같은 첨단 과학의 태동기로서 당시의 '과학'은 '자연철학'에서 갓 분류되어 나오던 시기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시절 우연히 중세 연금술사들의 책을 접하고 이에 심취했던 주인공 빅터는 과학공부를 위해 다른 지역에 가서도 이 연금술사들을 흠모했는데 훗날 비극의 주인공이 된 후 반추하길 부친을 포함한 많은 선생들이 이 중세의 연금술을 '쓰레기'니까 보지 말라는 말 대신 화학과 같은 '현대과학'에 의해 타파된 오래전 '자연철학'임을 상냥하게 지적했더라면 본인은 그런 괴물을 만들지 않았을 거라 변명을 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현대의 '자연철학'을 경멸했다. 예전의 학자들이 불멸과 힘을 쫓던 시대와는 너무 많이 달랐다. 당시 학자들의 시각은 현실적으로 헛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원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판도가 확 바뀌어 버린 것이다."
- [프랑켄슈타인], <1-2>, 메리 셸리, 1818.

이게 중세 연금술 '자연철학'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빅터의 주된 생각이었다. 과학자로서 재능은 있어 현대 과학의 성과를 누구보다 먼저 습득했으나, '원대'하게 '불멸'을 쫓던 예전 과학의 꿈을 버릴 수가 없었던 거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으나 아무리 19세기라도 19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가 쓴 소설이라 과학을 다루되 과학적이진 않다. 어떤 원리와 기술로 생명이 창조되었는지 단서 따윈 없다. 그냥 우수한 과학자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어느 11월 밤에 시체 조각들을 이어붙여 생명을 창조했고, 생각보다 추한 몰골의 괴물이 일어난 걸 보고는 대책없이 도망쳐 버린다. 과학이고 뭐고 선택의 기준이 바로 '미(美)'였던 거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추구한 '자연철학'의 본질이 아마도 '미학(美學)'이었나 싶어 나도 모르게 책을 덮고 이중톈의 책  [미학강의(講美學)]를 주문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 꺼져 가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내 창조물이 그 누런 눈을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숨을 거칠게 쉬더니 사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육과 혈관들이 누런 피부 위로 훤히 내비쳤다. 새까만 머리카락은 풍성하고 윤기가 흘렀으며 이빨은 진주처럼 새하얀 빛이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치장은 오히려 허연 눈동자와 창백한 흰자위, 쭈글쭈글한 얼굴, 일자로 쭉 찢어진 시커먼 입술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끔찍할 뿐이었다."
- [프랑켄슈타인], <1-4>, 메리 셸리, 1818.

세부적이지는 않아 또렷하세 이미지화 될 수는 없지만 원작에서 그려진 괴물의 형상은 동양인의 특징인 누런 피부에 검은 머리, 부분부분 아주 좋은 시체의 재료들을 골라서 모았다지만 합쳐보니 결국 무섭고 일그러진 얼굴에 불균형하게 긴 팔과 덩치 등으로 묘사된다. 더욱 놀라운 건 이 피조물이 도바리 치는 창조자 빅터를 쫓아 초인적인 신체능력으로 산과 바다를 넘고 건너며 전 유럽을 헤집고, 믿을 수 없는 지능으로 단 몇 달만에 인간의 언어와 글을 익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나 존 밀턴의 [실낙원] 등을 독파하며 삶과 죽음, 인생을 자신의 창조주 앞에서 상당히 유창하게 논하게 된다는 거다. 
빅터는 여친 괴물을 하나 더 만들어주면 그녀와 함께 남미의 미개척지로 가서 아예 속세를 떠나겠다는 자신의 피조물의 말에 설득되어 그의 여친을 새로 만들기 위해 제네바에서 영국까지 건너가기도 하지만, 한참 만들던 중 이내 정신차리고는 작업을 중단하면서 괴물의 분노를 사게 되고 그 결과 영국행에 동행한 절친을 잃기도 한다.

창조주 빅터가 어디에 있건 그의 가족과 친구, 연인을 차례로 죽이며 그의 앞에 나타나는 괴물에게 빅터는 불타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저주를 퍼붓고 죽기살기 결판을 짓기 위해 도망치는 괴물을 되쫓길 반복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초인적인 괴물이 그런 빅터를 쫓는 형국은 변함이 없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를 창조하고 불을 주었지만 이 불은 유용하면서 위험한 것처럼,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이 생명체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음에도 너무도 몰골이 추해서 인간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면서 그 잘난 초인성을 썩히고 있는 것은 물론 오히려 살인이라는 악행으로 몰린다.

괴물이 원래 악마였는가, 아니면 배척과 고립, 그리고 못생겨서 미움받았기에 악당이 되었는가 되짚어보면, 원래 선한 생명이 왕따를 당해서 악당이 된 게 맞다. 
과학이고 뭐고 원초적 기준은 역시 '외모'인 슬픈 현실이다.

소설은 자신의 피조물에게 복수를 하지 못한 채, 실은 그 괴물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다가 죽음을 맞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으로 끝난다. 그의 주검 앞에 나타난 괴물은 이제 자기의 할 일은 다 했으니 세상의 북쪽으로 가서 셀프 화형으로 자살을 하겠다고 선언하고는 사라진다.
창조주나 피조물이나 서로 거울 같이 살던 두 주인공 모두의 파멸이 소설의 결말이다.


오래 전 '시체접합괴물'이라도 예쁘면 용서하던 나는, 공상과학소설의 '고전'이라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이제야 읽고는 무엇을 다시 잔상으로 남겼던가.

어떤 이는 인간세상은 물론 창조주로부터도 배척당한 괴물의 모습에서 소외된 '여성성'을 보기도 하고(같은책, <작품 해설>), 세간에는 '과학' 발전에 대한 맹신은 비극을 낳을 수도 있다는 평도 많다지만, 고전을 읽은 독자로서 내 생각은 인간의 '확신'에 대한 경고였다.

당시 최신 과학에 정통했지만 '원대한 불멸의 힘'을 바라던 '자연철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확신', 즉 완벽한 신인류를 창조할 수 있다는 망상적인 그 '확신'이 괴물을 창조했고, 신체적으로나 지능적으로 초인성을 '확신'하게 된 괴물은 본인을 저버린 창조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파멸로 몰아 너도 죽고 나도 죽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그래서,
'과학'이고 뭐고, 
'미학(美學)'이고 뭐고,
'확신'은 뜻하지 않게 망상 또는 비극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고전소설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읽는다.

***

-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1818), Mary Shelley, 구자언 옮김, <더스토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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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16 : 안사의 난 이중톈 중국사 16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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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治' ; 興 百姓苦, 亡 百姓苦
- [안사의 난], 이중톈, 2016.


"그 상황은 실로 '흥해도 백성은 고생이고 망해도 백성은 고생이다(興 百姓苦, 亡 百姓苦)'라는 말과 딱 맞아떨어졌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낙양 '민중'의 고난은 사실 '제국'의 미래가 순탄치 못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단지 당사자들은 아직 그 점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들은 잘못된 길로 계속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한 문명이 부패하다가 완전히 몰락할 때까지."
- [안사의 난], <3장. 반란의 전말>, 이중톈, 2016.


이제 기원전후 수백년을 거쳐 세계지도 위 동서양 '데칼코마니'를 찍던 [두 한나라와 두 로마]를 지나 왔으니, 중국 통사 시리즈의 기획자 이중톈의 '전공'인 '제2제국'의 절정 '당(唐)'나라 '제국'을 다시금 돌아볼 때가 되었다.

유발 하라리처럼 이중톈 역시 인류의 역사에서 '제국'이라는 정치체제와 국가제도를 높게 평가한다.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에 실로 직접 지배할 수 없는 광대한 영토에 폭압만이 아닌 관용을 베풀었고 '전투에서는 져도 전쟁에서는 이기는' 넓은 품으로 다양한 문화를 '용광로'처럼 녹여내며 결과적으로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빅히스토리' 역사가 유발 하라리는 '제국' 일반으로, 중국 역사가 이중톈은 '제1제국' 한나라와 로마와의 비교를 거쳐 궁극의 '제2제국'인 [수당의 정국]으로 말이다. 이후 송나라와 같은 대제국의 기반은 이중톈에 의하면 이른바 "문화의 항공모함"([수당의 정국], <5장>)으로서 관용과 포용을 갖춘 '당' 제국이었다.

그러나 당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든, 당현종 이융기의 '개원의 치'든 이 모든 빛좋은 '제국의 치(治)'는 쇠락으로 향하기 전 잠깐 빛나던 찰나였고 그나마 다수 민중의 고생은 변함이 없었을 터였다.

그리하여,
증국 속담 '興 百姓苦, 亡 百姓苦', 
즉 '흥해도 백성은 고생이고, 망해도 백성은 고생'이라는 말은 역사의 진리다.
적어도 '황제'와 '제국'이 살아 있는 한.

"그때 거의 모든 사람이 안녹산이 곧 반란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알았다.
단지 현종만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모든 조짐을 양국충과 안녹산의 갈등 탓으로 돌렸고 그것이 어쨌든 둘이 작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정, 인사, 재정의 권력을 독점한 양국충과 제국 최고의 무력을 갖춘 안녹산의 대립이 장차 '제국'의 분열을 초래하리라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 [안사의 난], <2장. 잠재된 위기>, 이중톈, 2016.


적어도 근대 민중민주주의와 현대 공화정체제가 정착되기 전까지 '제국'의 중심인 '황제'는 '공공성'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한 번 정당성을 얻은 왕조를 멸하고 새 왕조를 열기 위해서는 그 '공공성'을 보증받을 명분이 필요했다. 대부분 '천명'을 조작했지만 그 모든 시작은 '제국' 내부의 모순이었고 과정은 다수 농민반란이었으며 결론은 '천하' 즉 '공공성'을 훔치는 '찬탈'로 귀결되었다.

무측천의 사후 왕자 이융기는 권력 주변 여인들을 연달아 살해하고 다시금 당나라를 재건한다. 20대 후반의 이융기가 당나라 현종이 되어 713년부터 약 20년간 연 '개원의 치'다. 처음의 그는 자신의 측근인 요숭, 송경, 장열과 우문겸 등의 재상을 두루 등용하며 그 동안 정체된 제국의 제도를 혁신하기도 했다. 

그러던 당 현종이 며느리였던 '양귀비'(양옥환)를 온천탕으로 끌어들인 것이 740년이었다. 2년 뒤 연호는 '개원'에서 '천보'로 바뀌었고 이듬해 '천보의 난'의 주역 소그드인 이민족 장수 '안녹산'(알락산;빛)이 입조했으며 양귀비의 먼 친척오빠 '양국충(양소)'이 세족의 권신 이임보의 뒤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양귀비', '양국충', '안녹산' 이 세 사람에 의해 당 제국은 멸망의 길로 치달았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중심은 '제국'의 '황제', 당 현종이었다.

"이세민과 이융기, 앞뒤로 시차가 100년 정도 나는 이 두 이씨 황제는 아주 비슷한 경력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맏아들이 아니었지만 정변에 성공하여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한때 '정관의 치'와 '개원의 치'라는 찬란한 역사를 연출했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라면 이세민은 50을 갓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반면, 이융기는 78세까지 장수했다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이세민의 단명은 '명군'이라는 그의 영광스러운 호칭을 보전시켜 주었지만, 그보다 20년 이상을 더 산 이융기는 그 시간 때문에 '명군'에서 무도한 '혼군'으로 바뀌어 전형적인 이중 인물이 되고 말았다."
- [황제들의 중국사], <당 현종 이융기, 양귀비를 죽인 냉혹한 카사노바>, 사식, 2004.


26세에 기치를 들고 29세에 혁신군주가 된 당 현종이 50대 후반이 되었다. 수양제와 기질적으로 닮았고 찬탈 배경도 비슷했던 당 태종 이세민은 상대적으로 일찍 죽어 그나마 '정관의 치'로 기록되었지만 그 나이보다 더 산 당 현종 이융기는 예쁜 며느리를 강탈해서 '양귀비'로 삼았고, 도박을 잘한다 하여 건달 '양국충'에게 '제국'의 재정을 맡겼으며, '제국'의 '포용'이나 '관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중앙권력 견제를 막기 위해 이민족 장수를 기용하자는 양국충의 건의에 따라 민족간 국제 브로커 '안녹산'과 그의 사기공범 사사명을 중용했다. 
실로 '양귀비'는 현종을 정치로부터 멀리 떼어 놓았고, '양국충'은 중앙정치 독점을 위해 공을 세우는 변방장수들을 내쳤으며, 북동서 일대의 '3진' 절도사가 된 '안녹산'은 거란과 실위, 해족 등 북방민족과 없는 전쟁을 만들면서까지 공로를 조작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공공성'과 무관하게 부정과 부패로 지방권력을 전횡하는 절도사와 변방의 무력을 배제하면서 당시 유일 '공공성'의 상징인 '황제'를 고립시킨 환관권력 등을 키운 국가경영에 무능한 중앙권력의 시작은 '안녹산과 사사명의 난' 즉 '안사의 난(安史之亂)'이었던 것이다.

안사의 난은 비록 755년부터 763년까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진압되었지만, 중앙권력은 고립되고 지방권력인 절도사 군벌세력은 독립했다. 회흘족 같은 소수 이민족의 반란이 이어졌으며 산동의 소금장수 왕선지를 이은 황소의 농민반란군이 '황금갑옷'을 두르고 당 제국 수도 장안을 점령했다.

"사실 태종부터 현종까지, 심지어 무측천의 시대에도 '제국'의 꿈은 줄곧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꿈을 가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장안은 로마와 마찬가지로 한때 세계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단지 전자는 동양의, 후자는 서양의 수도였을 뿐이다.
변방에서 무공을 세우라고 장려한 것은 그 꿈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 [안사의 난], <5장. 당시의 정신>, 이중톈, 2016.


그러나 당제국을 멸망시킨 자는 황소가 아니었다. 그의 수하였던 주온이 황소를 배신하면서 '황제'에 붙어 반란의 진압에 협조했고 반란군 지도자 황소는 '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자결했다.

당 제국으로부터 '주전충'이라는 이름을 얻은 주온은 제국의 절도사가 되었고 중앙권력의 환관과 사대부를 전부 몰살시키면서 '황제'도 갈아치웠다.
[오대사] 등의 기사에 따르면 최고의 '살육 황제'였던 '후량 태조' 주전충은 당 제국을 멸하고 '5대10국'의 시대를 열었지만 너무 잔혹한 나머지 아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태평천국운동이 '전공'인 중국 역사가 사식(史式)이 쓴 [황제들의 중국사](2004)에 의하면, '후량 태조' 주전충이나 당 현종 이융기 같은 인생 궤적은 거의 모든 '황제'들의 보편적 본질이다.


"중국 역사상 '황제' 제도는 정말이지 가장 황당한 제도였다. 수많은 직업들 중 어떤 직업에 종사하건 일정한 자질과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로지 '황제'라는 직업은 아무런 자질이나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누구든 쫓아가 빼앗으면 그만이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라도 빼앗아 손에 넣기만 하면 모두들 납작 엎드려 만세를 부르며 섬기려 들었다.
중국 역사서 중 특히 '기전체' 역사가 가장 웃긴다. 그 자가 부랑아가 되었건 도적놈이 되었건 부모형제도 몰라보는 빌어먹을 놈이 되었건 용좌에 단 며칠,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으면 사관은 즉시 '제(帝)'니 '상(上)'이니 하는 존칭을 갖다 붙이면서 하늘과 땅에 버금가는 덕을 가진, 고금에 둘도 없는 거룩한 분이라며 공적을 칭송한다... 이에 따라 주온 같이 짐승 축에도 끼지 못할 물건조차도 '황제'로 인정하여 '후량 태조'([구오대사], <양서>, '태조기')로 불러야 하니, 이것이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황제들의 중국사], <후량 태조 주온, 황제가 된 살인마>, 사식, 2004.


당제국을 쇠망케 한 '양귀비'와 '양국충', '안녹산'과 '사사명'을 이용하고자 권력투쟁의 한복판으로 중용한 자는 '제국'의 '황제', 당 현종 바로 자신이었다.

'살인마 황제' 주전충을 기용한 자도 당나라 '제국'의 '황제'였다.

또 다른 관점으로,
흥하거나 망하거나 민중들만 고생시키는(興 百姓苦, 亡 百姓苦) '제국의 치(治)'는,
현대의 '공공성'인 '민주주의' 또한 지나친 신화화를 경계해야 하는 다른 한편의 반면교사일 수도 있겠다.

***

1. [안사의 난(安史之亂)], 이중톈 중국사 16](2016),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3.
2. [황제들의 중국사](2004), 사식, 김영수 옮김, <돌베개>, 2005.
3. [두 한(漢)나라와 두 로마(Roma) - 이중톈 중국사 9](2014), 이중톈, 한수희 옮김, <글항아리>, 2016.
4. [위진풍도 - 이중톈 중국사 11](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8.
5. [남조와 북조 - 이중톈 중국사 12](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0.
6. [수당의 정국 - 이중톈 중국사 13](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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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9 : 두 한나라와 두 로마 이중톈 중국사 9
이중텐 지음, 한수희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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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양자역학'과 '데칼코마니' 제국문명
- [두 한나라와 두 로마], 이중톈, 2014.


"중화와 로마는 '신본(神本)'이 아니라 '인본(人本)'을 따랐다. 그랬기 때문에 중화는 '예치(禮治)'를, 로마는 '법치(法治)'를 발명했다. '법치'든 '예치'든 둘 다 '인간의 자치'였고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았다.
...
한(漢)나라의 공헌은 중화 제국의 기초를 닦은 것이었다... 두 개의 한(漢)나라는 '군주제도'의 표본이다.
로마(Roma)는 현대 국가에 원형을 제공했다... 사실상 '공화제'와 '법치'를 견지하면 시민 민주주의든 입헌군주든 현대 문명이다. 이것이 로마의 공헌이다."
- [두 한나라와 두 로마], <저자 후기>, 이중톈, 2014.


중국의 역사학자이자 대중저술가인 이중톈(易中天)은 역사를 '추리소설' 기법으로 풀어낸다. 사실 '역사학자'는 문헌이나 유물 등의 단서를 가지고 해당 시대의 사건과 인물 등을 추적하고 조사하며 추리하여 인과관계를 밝히는 일종의 '탐정'이다. 여기에 더해 이중톈의 장점은 역사라 하여 학술적이거나 장황하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만연체의 대가인 나라면 이야기를 더 늘어놓을 텐데, 이중톈의 역사 '추리'는 간략하다.
즉, 군더더기 없이 할 이야기만 적는다.

이미 2006년에 [삼국지] 이야기(국역은 [삼국지강의])로 중국 전역에서 선풍을 일으킨 이중톈은 현재 총 36권의 얇은 책으로 선사로부터의 중국 통사를 쓰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6권까지 번역되었는데, 36권은 총 6부에 각 부당 6권씩 배정되어 '6x6=36'이라는 고전적인 '36계' 구조를 갖추려는 듯 하다. '완전한 수'인 '3의 배수'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36'은 각 개별단위들의 교차와 조합으로 사실상 '무한'을 의미한다고 나는 본다.

사마천이 [사기]를 통해 '삼황오제'부터 계보를 갖춰 온 이래 2천 년간 이어진 역사관 대로 약 1만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1부 '중국의 뿌리'로부터 아마도 '일대일로'의 현대 중국까지 기획하고 있으리라. 

뻔한 남의 나라 역사 이야기를 다 읽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 흥미로운 작가 이중톈의 '전공'이라는 '수(隋)-당(唐)' 제국 이야기는 궁금했다. 뛰어난 글솜씨로 중국 '정사'들에 실린 이야기를 아주 간략한 요점으로 정리해내는 이 중국의 실력자가 자신의 '전공'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말이다. '수-당' 제국을 알기 위한 사전 지식으로 '위-진 남북조'에 관한 책까지 덤으로 읽은 이유다. 

역시 이중톈은 나 같은 글쓰기 생초보는 흉내낼 수 없는 실력으로 독자대중에게 중국 '정사'들을 읽어주고 있었다. 추리소설처럼 마냥 읽다보면 어느새 [사기]나 [한서] 및 [후한서]와 [신/구당서] 등의 해당 시기 기전체 '정사'들의 <열전> 내용이나 편년체 [자치통감]의 그 시기 기사들을 읽는 셈이 되었다.

그럼에도 저자가 중국인인지라, '중화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의 '전공' 당나라 제국은 '제1제국'인 '진(秦)-한(漢)' 시대에 이어 '제2제국'으로 불리지만, 36권 이중톈 중국 통사 시리즈 '3부'의 표제는 '제2제국'이 아니라 '세계문명권'이다. 즉, 중국은 당나라에 이르러 완연한 '세계문명'을 완성했다는 시각인데, 역사란 힘있는 자의 서술과 해석일 수도 있기에 학자가 아닌 나로서는 그의 관점에 따로 논평을 할 수는 없다. 
일면 맞기도 하나 다 인정하기에는 한반도의 '소수민족'으로서 한편으로는 석연찮기도.

이중톈에게 중국의 '세계문명'적 형태는 당나라에서 갑자기 얻어진 것이 아니다. 바로 기원전부터 지속된 통일제국 '한(漢)'나라가 본격적인 기원이다. 
최초의 '제국'은 진시황이 열었지만 진(秦) 제국은 폭정으로 인해 단명했고 한고조 유방의 한나라 제국은 전한과 후한을 거쳐 4백년 동안 유지되었으므로 '세계문명'적 보편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두 한나라'로 지칭된 한고조 유방의 전한과 광무제 유수의 후한은 중앙집권적 '군주제도'의 보편적 표본의 시작이었다는데, 역시 석연치 않다. 세계 최초의 '제국'인 서아시아의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폭정만 일삼아서 그렇다 쳐도 그들에 이은 '페르시아' 제국의 '관용'도 있었고, 그 외 개인의 '자유'를 외친 그리스 민주정 같이 제국과 다른 국가제도도 있었기에 '군주'의 '제국'이 '세계문명'을 대표하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중톈 역시 유발 하라리처럼 인류 역사에서 '제국'이 가장 효율적인 국가제도로 보고 있다.


"후한 환제 연희 9년(기원후 166), 즉 조조가 11세였던 해에 외국 사절단이 낙양에 왔다. 그들은 상아, 무소뿔과 거북 껍질을 가지고 와서 낯선 제국에 숭고한 경의를 표했다([후한서], <서역전> 참고)..
이들이 얼마나 오래 걸어왔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분명히 쉽지 않았을 것이다.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라서 당시의 중국인들은 해서국, 이간이라 불렀고 후한의 공식 역사책에 기록된 명칭은 '대진'이다.
'대진'은 바로 '로마'다.
파견된 사절단의 '대진왕 안돈'은 로마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였을 가능성이 높다."
- [두 한나라와 두 로마], <1장. 세계 - 로마인이 왔다>, 이중톈, 2014.


그렇기에, 이중톈은 유럽의 '로마(Roma)'를 끌어들여 세계지도의 동쪽은 중국의 '두 한나라(전한-후한)'와 서쪽은 유럽과 서아시아의 '두 로마(서로마-동로마)'로 놓고 세계사의 '데칼코마니'를 만든다.

비슷한 시기, 
전후로 나뉘고 동서로 분할되는 중국 한나라와 유럽 로마의 비교다.
두 제국의 차이점은,
중국은 유학의 '예'로써 국가를 다스렸기에 중앙집권적 군주제의 '표본'을 만들었고 주기적 폭정과 농민반란으로 왕조가 교체되기는 했지만 대개 '인의'와 '덕치'로 집권했다는 것과,
로마는 공화제의 신념으로 황제들조차 구속하며 시민의 권익을 향상시킨 '법치'의 전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 두 문명의 공통점은,
창조주나 유일신을 배제한 '인간의 자치'였다는 것인데,
이중톈에 의하면,
한나라는 '유학'의 '무속화'로 인해 망했고,
로마는 '기독교'의 '유일신'에 의해 쇠락했다.
즉,
후한의 건국자 광무제 유수가 칼을 내려놓고 '문치'를 확립하며 후한 개국의 정통성 확립을 위해 겉으로 내세운 '도참사상'은 중국 역사에서 뿌리깊은 '도가' 사상과 결합하여 후한 말기 황건 농민군의 지도 이념이 되었다. '무속화'된 한나라 정치가 '종교화'된 농민반란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로마 황제권 확립을 위해 국교로 공인된 '유일신' 사상의 선구자 '기독교'는 신처럼 무소불위가 되고자 했던 로마황제를 무릎 꿇리며 결국 로마 자체를 잡아먹었다.
이 두 제국의 '세계문명'은 4~5세기 소빙하기를 거치면서 이민족과의 결합을 통해 세계사를 또 한 단계 발전시키게 되는 점에서 또 한 번 '양자역학'적 '데칼코마니'를 그려낸다.
중국은 위촉오 [삼국지]와 서진 '팔왕의 난'을 거쳐 '5호16국'의 역동으로, 
로마는 '동로마' 비잔틴으로의 문명확대를 한편으로 서유럽은 '게르만'의 열국으로,
세계지도의 좌우 '데칼코마니'를 찍어낸다.

이중톈의 중국사 시리즈 2부 '제1제국' 중 9권 [두 한나라와 두 로마]의 주제는,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5세기 세계사의 '양자역학'과도 같이 서로 직접적인 접속이나 영향이 없었음에도 다른 듯 닮은 양대 거대 제국의 필연적 종말이다.

시리즈를 다 읽을 마음은 없지만 한나라 '제국'의 전통을 이은 이중톈의 '전공'인 '세계문명' 당나라의 쇠망을 다시 한 번 읽을 차례다.

그래서 다음은,
무측천 쿠데타는 별 관심은 가지 않으니,
시리즈의 3부 '세계문명권'의 16권,
8세기 안녹산과 사사명의 반란,
[안사의 난] 이야기다.

***

1. [두 한(漢)나라와 두 로마(Roma) - 이중쳰 중국사 9](2014), 이중톈, 한수희 옮김, <글항아리>, 2016.
2. [안사의 난 - 이중톈 중국사 16](2016),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3.
3. [위진풍도 - 이중톈 중국사 11](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8.
4. [남조와 북조 - 이중톈 중국사 12](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0.
5. [수당의 정국 - 이중톈 중국사 13](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1.
6. [삼국지강의(品三国)](2006), 이중톈, 김성배/양휘웅 옮김, <김영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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