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기원 - 옛 인류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줄리언 제인스 지음, 김득룡.박주용 옮김 / 연암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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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음성'을 들었던 흔적을 찾아서
- [의식의 기원](1976), 줄리언 제인스, 김득룡/박주용 옮김, <연암서가>, 2017.



"의식은 문화적으로 학습된 사건이고 초기 심리상태('양원적 정신')의 억압된 흔적이다."
- [의식의 기원], 줄리언 제인스, 1976.


'의식(Consciousness)'은 주체가 객체를 인식하는 행위로서 인간의 주관적 정신의 영역이다. '의식'의 기원을 추적한다는 것은 얼핏 인간의 '주관'이 우선한다는 '관념론'과 '정신'이나 '의식' 조차도 뇌라는 '물질'이 생산한 "최고의 산물(레닌)"이라는 극단적 '유물론' 간의 철학적 투쟁을 예고하는 듯 하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의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Julian Jaynes)는 '철학'적 고찰 대신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이며 '문화'적 접근방식으로 '의식'의 기원을 파헤친다.


"본래 의식의 본성 탐구는 장황한 철학적 해답들로 가득차 있는 심신관계의 문제로 알려졌다. 그러나 진화론이 등장한 이래, 이 문제는 더욱 과학적인 문제가 되어 버렸다. 정신의 기원 문제, 좀더 세부적으로 말하면 '진화 상에서의 의식의 기원'이라는 게 문제가 된 것이다."
- [의식의 기원], <서론 - 의식의 문제>, 줄리언 제인스, 1976.


'의식'이라는 철학적 주제는 오랜 동안 신화적이고 종교적이며 신비의 영역에 있었다. 근대에 들어 과학이 발전하고 특히 '진화론'의 영향으로 인해 '의식'이 인간의 생물학적인 요소라는 견해가 우세해 지기도 했다. 그러나 줄리언 제인스는 "뇌 지식만으로는 그 뇌가 우리와 같은 '의식'이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같은책, 서론)며 우리의 '의식'이 무엇인지의 개념부터 서술하면서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그리하여 [의식의 기원]의 독해에서 가장 주요 개념은 '양원적 정신(Bicameral mind)'과 '내성(Introspect)'다. 

[의식의 기원]의 원제는 '양원적 정신의 붕괴과정에서 의식의 기원(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이다.


"... '의식의 기원' 문제... 의식이 (은유적) 언어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그 말은 곧 의식은 이제까지 주장되어 온 것보다 훨씬 더 최근에야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는..."
- [의식의 기원], <1권 인간의 정신 - 2장 의식>, 줄리언 제인스.


'양원적 정신'은 인간의 정신 또는 마음이 '신'의 영역인 '집행부'와 '인간'의 영역인 '실행부'로 나뉘어진 시기의 개념이다(같은책, 1권-4장). 즉, 인류가 '신'으로부터 매개 없이 직접 지시를 받고 고민 없이 실행하던 기원전 2000년 전 이야기다. 이 시기를 지나면 인간은 '사제'나 '영매', '무당' 등의 매개자를 통해 신을 접하게 되는데, 이 때는 이미 주관적 '정신'이 생기고 이것이 은유적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소통되면서 비로소 '의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면, 고대의 인류는 '어린 아이'와 같아서 의사결정의 스트레스를 신의 지시로 직접 들었는데, 인류가 성장하면서 '어른'처럼 '자기 주관'이 생긴다는 것이다. '신'에 직접 의지하는 '양원적 정신'이 붕괴하면서 그 자리를 '스스로 자기성찰'하는 '내성(Introspect)'을 특성으로 하는 '의식'이 생겨났다는 말이다. 
줄리언 제인스가 말하는 '의식'은 넓은 의미의 인간 정신, 관념이 아니라 '내성'하는 언어적 정신의 좁은 의미이다.

고대 그리스 '트로이 전쟁' 이야기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의식은 은유적 언어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줄리언 제인스의 가설을 평가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확실하게 번역할 수 있는 "최초의 언어기록(1권-3장)"이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 헥토르 등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는 개념도, 자유의지도 없다. 그저 '신'들이 '의식'의 자리를 대신한다. 이 고대 미케네인들의 정신구조 자체가 '양원적 정신'이다. 그들에게 '신'은 '유일신'도 아니고 천상에 있지도 않다. 모든 만물에 깃든 '신'들이 '의식' 대신 차지하고 있다. 미케네인들은 '신'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들이었다. 물론, '어린 아이' 같았던 고대인들이 만든 '신'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철저히 지배당하면서 의사결정의 스트레스를 견뎠다.
인간 개인으로 봐도 3~7세에는 '상상의 친구'와 논다. 8~10세에는 '최면' 감수성이 절정, 즉 최면에 잘 걸린다고 하는데, '정신분열'과 함께 '양원적 정신'의 현대적 흔적인 '최면'은 '신'과 '나'를 매개하는 단계와 같다고 한다. '양원적 정신', '상상의 친구' 따위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양원적 정신은 사회적 통제양식으로, 이는 인류에게 소규모 수렵-채취 집단에서부터 대단위 농경공동체로 이행하게 한 사회통제 양식인 것이다. (자체 내에) 자신을 통제하는 신을 갖고 있던 양원정신은 진화하여 최종단계의 언어 진화에 이른다. 그리고 문명의 기원은 바로 이 (언어의) 발달에서 비롯된다."
- [의식의 기원], <1권 - 6장 문명의 기원>, 줄리언 제인스.


'양원적 정신' 구조를 갖고 있던 고대 인류는 주로 '신의 목소리'를 '청각'적으로 들었다. [일리아드]에서 번역하기 모호한 '투모스'는 '신'이 불어 넣어주는 '충동질', '용기' 등을 의미한다는데, 신체적으로는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을 조절하는 간이나 부신 등으로 볼 수 있다. 그 다음 많이 나온다는 '프레네스'는 '호흡'이자 복수형으로서 허파, '크라디'는 심장, '에토르'는 위장, '누스'는 지각, '사이키'는 생명 등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이처럼 '양원적' 고대인에게 '신'은 신체기관과 직접 연결되어 지시를 내리고 인간은 청각으로 전달받은 지시를 그대로 이행한다. 그냥 '어린이' 자체다.

기원전 2000년경이 되면 인류는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 등으로 나타나듯 사회조직을 '문자'로 표현하고 유지한다. 어찌보면 '정신분열' 환자 같던 '양원적' 고대인들은 그냥 '미친놈들'이 아니었다. 거대한 사회조직의 '집단적 규범'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제 문자와 같은 '문명'은 그 자체로 인간 개인의 '의식'을 발생시켰고, 거대한 사회를 조직하는 '사회통제' 기제로서 인간은 한단계 성장하여 '내성'을 하게 된다. 
청각적인 '양원적 정신'이 붕괴된 자리에 문자를 시각적으로 보는 '의식'이 들어선다.

줄리언 제인스가 주요 근거로 삼지는 않으나 우리의 뇌구조와 비교하면 '양원적 정신'의 이해가 더 쉽다. 우리 뇌의 좌반구는 언어와 말, 우반구는 종합적 사고와 노래 등의 감성적 영역일 텐데 '의식'이 우세한 현재 인류는 좌반구가 우세하나, '신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고대인들에게는 우반구도 활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반구는 '신'의 영역, 좌반구는 '인간'의 영역. 이 '2중 뇌(1권-5장)'는 '양원적 정신'의 흔적이다.


"진정한 양원 시대에서는 그 어떤 '신'도 인간의 입술을 통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400년에 이르렀을 때 요즈음 우리 주위에 많은 교회가 있듯이, 신들림은 그리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신탁들과 개개인에게 빈번히 나타났다. 양원적 정신은 사라지고 신들림이 그 흔적으로 남았던 것이다... 양원적 정신에서는 환상이 우반구에서 만들어져 그것에서 들리고, 신들린 상태에서 하는 말은 정상적인 경우에서처럼 좌반구에서 생성되지만 우반구에 의해 조종된다... 우반구의 베르니케 영역에 대응하는 영역이 좌반구의 브로카 영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 [의식의 기원], <3권 - 2장>, 줄리언 제인스.


1권 '인간의 정신'에서 '의식'의 개념을 정의하고, 2권 '역사의 증언'에서 그리스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와 '카비루(히브루)'의 구약 등을 통해 역사적 사례를 소개한 후, 저자는 3권 '현대세계에서의 양원정신의 흔적'으로 시와 음악, 최면과 정신분열 등의 흔적들을 일별하는데 3권은 불필요한 장광설에 불과한 듯 하나 마지막 '과학'에 관한 장은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한다.

'양원적 정신'의 붕괴에 대한 직접적 결과로서 '과학 혁명'은 그 자체로 '사실'에 기반한다 해도 근본적으로는 '신의 의지'를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과학'도 '종교'도 모두 '종교적'이라는 것이다(3권-6장).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종교는 그 시대의 '과학'이었으므로 '종교'와 '과학'의 대립은 "예전의 과학과 지금의 과학이 대립"하는 것이라 규정했듯,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는 양자 모두 '종교'라 규정한다. 
결국, 성장한 현대 인류의 '의식'은 이러한 '종교적' 행위로써 아서왕과 기사들이 성배를 찾듯 '우주의 안정성'과 '총체성', '잃어버린 신의 음성'을 끊임없이 찾는다고 한다. 
고대에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던 인류는 이제 현대에 이르면서 '의식'을 통해 '과학'적으로 '신의 음성'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적대적인 것은 교회와 과학이지 종교와 과학이 아니다. 종교와 과학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지 상반되는 관계가 아니다. 둘 다 '종교적'이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잃어버린 권한위임을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고대 예언자에서부터 지속되어 온 사제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지, 아니면 사제의 매개 없이 객관적 세계에서 우리의 현재 경험을 통해 '천국'을 찾을 수 있는지였다."
- [의식의 기원], <3권 - 6장 과학이라는 복신술>, 줄리언 제인스.


***

- [의식의 기원](1976), 줄리언 제인스, 김득룡/박주용 옮김, <연암서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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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기둥 1
송대방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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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이면서 동시에 전체인 것은 무엇이냐?"
- [헤르메스의 기둥 1~2], 송대방, <문학동네>, 1996.


"이 작품은 일명 [긴 목의 마돈나(성모)]라고 불리는데, 그 까닭은 이 화가가 성모를 자기 나름대로 우아하고 고상하게 표현하려고 애쓴 나머지 성모의 목을 마치 백조의 목처럼 길쭉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파르미자니노는 자기가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인 형태를 좋아한다는 것을 열심히 보여주려고 했다. 이런 효과를 보다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이 그림의 배경에 인체와 마찬가지로 이상한 비례를 가진 괴상한 모양의 높은 원주를 세워놓았다... 이 화가는 전통적인 수법을 피하고 싶어했다. 그는 완벽한 조화에 관한 고전적인 해결 방식만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했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8. 미술의 위기>, 1950.


1995년 10월에 처음 써 본 단편소설 습작을 학보사에 버리듯 응모하고 군에 입대했다. 창피함에 아무에게도 말은 안 했는데, 결과는 궁금했기에 복학생 선배 한 명에게는 확인해 달라 살짝 부탁을 했다. 휴가 때 그 형한테 들은 얘기로는 "입대를 앞둔 한 젊은이의 넋두리"라는 한 줄 평이었다는데 부러 확인하지는 않았다. 
본부대 근무로 부대 밖에서 책을 들여와서 읽을 수 있었다. 1996년에 읽은 소설 중 하나가 [헤르메스의 기둥]이었다.
기갑여단 '민사심리처'에서 예하부대에 신문을 돌리던 나는 아마도 부대내 민간 일간지의 '신간 안내'를 통해 그 책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내가 좋아했던 그리스 신화 속 '헤르메스(머큐리)' 이름을 보고 구입했을 거다.

스물세살의 '소설가 지망생'이 군대에서 읽은 스물일곱살 미술사 전공생의 미스테리 소설은 놀라웠다. 집에 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원서는 먼지만 쌓여 있었고 '추리소설'은 중학교 때 이후로 읽어본 기억이 없었다. 한참 후인 2003년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보다 앞선 우리 작가의 '미스테리 걸작'이었다. 
[헤르메스의 기둥]에서는 하나의 소재로부터 수백년 전의 문예와 역사, 그리고 철학 등 인문학의 향연이 꼬리를 물고 펼쳐졌다. 

제대 후 3일만에 단편소설 습작을 한 편 쓴 것도, 다음달에 또 하나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송대방 작가의 [헤르메스의 기둥] 덕이리라. 20대 특유의 조절되지 않는 감성적 문장과 아는 거 다 끌어다가 인용하고 적용하려는 지적인 의욕이 20대의 내 습작들에서도 난무했다. 내 단편들의 모티브는 단연 1996년에 만난 송대방의 소설, [헤르메스의 기둥]이었다.


"파르미자니노, [긴 목의 성모], 1535년경 작, 우피치 미술관 소장.
파르미자니노의 대표작이며 매너리즘 미술의 대표작. 기다랗게 기둥처럼 그려진 성모의 옷은 젖은 옷의 드레이퍼리(drapery) 양식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그 위에는 아기 예수가 누워 있다. 왼쪽에는 목동들이 있으며 한 명은 암포라(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몸통이 불룩나온 항아리)를 들고 있다. 성모의 오른쪽으로는 작은 예언자와 기둥이 있으며 그 의미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기둥은 곰브리치에 의하면 길게 늘여진 신체의 미를 좋아했던 파르미자니노의 미학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처럼 뱀 모양의 S자 곡선으로 길게 늘여진 양식을 '스틸레 세르펜티나타(Style Serpentinata)', 곧 '뱀의 양식'이라고 부른다. 파르미자니노는 16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북부 파르마에서 활동했던 작가다. 그는 이외에도 [자화상]이라는 독특한 그림을 남겼다."
- 송대방, [헤르메스의 기둥 1], <1장>, 1996.


아마도 르네상스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유학을 간 작가의 논문 주제는 16세기 이탈리아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 화가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1503~1540)였을 것이며, 본격적인 '픽션'이 시작되기 전 대부분의 배경 이야기는 '자전적' 내용일 것이다. 나의 단편 습작들도 그랬고 대부분의 소설가들 초기작은 '자전적 소설'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외 다른 인물들은 주변 사람들의 형식에 나 자신의 분열된 의식을 나누어 인격화된 내용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르네상스의 엄격한 규범을 비틀어 기이한 형태로 표현했던 '매너리즘' 화가 파르미자니노의 대표작은 [긴 목의 성모]다. '이교도'적인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았으나 더욱 신비주의적으로 빠진 파르미자니노는 37세에 요절했는데 죽기 전에는 연금술에 빠졌고 [긴 목의 성모]는 죽기 전 6년 동안 그렸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우측 기둥의 기단에 서명을 남겼다고 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푸코의 진자](1988)라는 소설에서 던진 메시지는 "세상에 중심은 없다"였다. 즉, 거대한 만물의 진자를 지탱하는 거대한 하나의 축이라는 건 없다는 것. '일자'나 '유일신'이 아닌 '다원성'의 세계를 부각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였다. 송대방의 모티브는 분명 움베르토 에코였다. '일자(일원성)'가 아닌 '다자(다원성)', 획일적인 규범이 아닌 구체적인 다양성, '일탈'이 아닌 하나의 양식으로서의 매너리즘과 이를 은유하는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 
"하나이면서 동시에 전체"인 이 모든 것의 미학적 출발이 되는 그림이다.

그리스 신화 속 '전령의 신' 헤르메스(머큐리)가 그렇다. 고대 그리스의 신들 자체가 인간의 다른 모습이었으므로 기독교식 유일신 같은 전지전능함이 아니라 좌충우돌 모순 덩어리였는데, 그래도 하나의 신은 하나의 표상이 있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처럼. 그러나 헤르메스는 사기꾼, 장사꾼, 도박꾼, 이야기꾼, 운동선수 등을 대표하는 신으로 가장 예측불허한 신이다. 이 헤르메스(Hermes)는 아프로디테(Aprodite)와 교합해서도 특이한 자식을 낳게 하는데, 남성과 여성을 한 몸에 지닌 '자웅동체(雌雄同體)' 헤르마프로다이트(Herma-prodite)'다. 내 전공이 영문학이라 그리스 신화는 관심이 조금 있었음에도 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을 통해 기억하게 되는 르네상스 인문학 지식이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이후 글쓰기의 소재로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

아무튼, 서양미술사 시간에 접한 파르미자니노의 그림에 관심을 갖고 비록 성적은 'B+'였지만 전공논문의 주제로 채택했을 작가 송대방은 관련 자료와 지식을 총망라하여 흥미진진한 내용을 전개해 간다. 오래 전 읽은 소설이라 세부 내용은 잊혀졌으되, 목이 길어 슬퍼보이던 성모 마리아의 좌측 기둥이 지닌 메타포는 남는다. 성모의 옷자락을 기준으로 위로는 하나의 기둥이나 아래로는 여러 개의 기둥들의 형태로 기존 르네상스식 규범을 깬 성 모자(聖母子)에게 기이하게 작은 예언자 히에로니무스(제롬)가 말하는 듯 하다. "하나는 없으며 전체가 하나다"라고. 물론, 이 사상을 대변하는 '이교도'적 신은 말할 것도 없이 '헤르메스' 밖에 없다.


"그리스 태생의 이탈리아계 미술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 1888~1978)는 예기치 못한 것이나 완전히 수수께끼 같은 것과 마주쳤을 때 우리에게 엄습해 오는 낯선 느낌을 포착하고자 했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27. 실험적 미술>, 1950.


작가 송대방은 이 소설 발표 후 나의 기대와는 달리 '종적을 감추었다'. 난 사실 그의 지적인 여행이 계속되기를 기대했고 제대 후 단편소설 몇 편을 끄적일 때도, 졸업 후 '소설가'의 꿈을 접은 후에도 가끔 그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나 역시 파르미자니노의 '이단'적 매너리즘과 조르조 데 키리코의 '신비'적 초현실주의에 주목했던 그의 소식을 더 찾을 수는 없었다. 


현대 초현실주의 화풍을 선구했던 조르조 데 키리코는 20대에 [거리의 신비와 우울](1914) 같은 그림으로 당대의 주목을 받았다. 1차 대전의 먹구름이 다가올 때의 불안과 우울 등을 그려냈다는 평을 들었으나 그 진위는 작가 본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이후 후기에는 그런 화풍을 접음으로써 "초현실주의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기도 했다지만, 그의 20대 초기의 작품들은 이후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등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다. 작가 송대방은 [헤르메스의 기둥] 초반에 조르조 데 키리코의 초반 작품 중 [위대한 형이상학자](1916)를 인용한다. 즉, 그의 이야기가 상당한 '형이상학'적 사고에 기반한다는 것을 암시라도 한다는 듯이. 역시나 [헤르메스의 기둥]을 읽고 난 사람들의 후기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이며 지적 유희에 기반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나처럼 '글쓰기'에 무한한 모티브를 제공했던 매우 흥미로운 그것으로 말일테다. 

20세기 초, '초현실주의'자들은 '다다이즘'의 무의식적 '자동기술' 기법에 이어 '콜라주(붙이기)'와 '데페이즈망(추방하기)' 기법 등으로 새로운 작법을 선보이는데, 사물을 현실의 익숙한 장면에서 분리시켜 생뚱맞은 다른 사물과 결합하는 양식이다. 시쳇말로 "니가 왜 거기서 나와?"다. 꿈에서 본 것일 수도, 무의식의 흐름에 따른 표현일 수도 있는데, 현실을 넘어서는 표현으로 '초현실주의'의 특징이다.
1924년에 정립되지 않은 '다다'를 넘어선 하나의 새로운 문예이론으로 '초현실주의'를 선언한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조르조 데 키리코가 '초현실주의'에 미친 결정적인 영향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키리코의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어떤 황홀한 순간을 기다리는 듯 하다. 엇갈린 원근법, 길게 늘어진 그림자, 정체불명의 광원이 만들어내는 신비스러운 분위기. '초현실주의자'들은 거기서 수수께끼 같은 '경이'를 보았다."
- 진중권,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8.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 기법 중 '오브제'는 전통적 조형물의 '초현실주의'적 대체물인데, 조르조 데 키리코는 '폐허'와 얼굴없는 '마네킹'을 통해 전통적인 조형을 대체한다. 그의 작품 [위대한 형이상학자]는 이 무면 마네킹과 폐허를 이루는 사물들의 결합체로 인문학적 유희의 '초현실성'을 표현하는 듯 하다.

1995년 10월 입대 전 응모했던 학보사 당선작은 흡혈귀가 나오는 SF식 소설이었다는 말을 건너건너 전해 들었다. 나는 사실 '지적 유희'를 동반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마지막 단편소설에서는 '무의식'과 '살인사건',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4차원에서 넘나들었다. 내 마지막 소설의 모티브는 시인 임화의 '4차원'인 '제4의 점령(占領)'이었다.


인간이 표현하려는 그 어떤 '초현실'도 '현실'에 근거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나는 문학과 예술에 어떠한 '이론'이나 '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적 유희'든 흰소리든 일상을 비틀고 경계를 넘어 다니며 한 바탕 놀면 그만이다. 어차피, 그 어떤 글이 나오든 그 배경은 견고한 지금의 정치경제 현실체제일 테니.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사라졌으나 "하나이면서 동시에 전체인 것은 무엇이냐?" 묻던 뛰어난 작가 송대방이 다시금 소설을 쓴다면 과연 어떤 내용과 형식일지 문득 궁금하다.


***

1. [헤르메스의 기둥 1~2], 송대방, <문학동네>, 1996.
2. [서양미술사](1950), 에른스트 곰브리치, 백승길/이종숭 옮김, <예경>, 2013.
3.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진중권, <휴머니스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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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기술 - 명화의 구조를 읽는 법
아키타 마사코 지음, 이연식 옮김 / 까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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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보이는 명화의 '질서'
- [그림을 보는 기술](2019), 아키타 마사코, 이연식 옮김, <까치>, 2020.


"현대 미술의 대다수는 이렇게 상식을 파괴함으로써 태어났지만, 기존 규칙 자체를 알지 못하면, 무엇을 부수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 아키타 마사코, [그림을 보는 기술], <3. 균형을 보는 기술>, 2019.


피카소는 한 방향 시선에서 다양한 각도를 그려낸 '후기 인상주의' 선구자이자 미학자 진중권의 표현대로 "마지막 고전주의자이자 최초의 현대주의자"([진중권의 서양미술사])인 폴 세잔의 영향을 받은 '입체파'로 분류된다.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담고자 했기에 그의 그림은 기괴하다. 그러나 피카소도 '정상적인'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 미술가의 '파괴'와 '혁신'은, '무엇'을 파괴하고 혁신하는지 알아야 가능하다.


미국에서 메소포타미아 미술을 공부한 일본의 미술사 연구자 아키타 마사코는 '명화의 구조를 읽는 법'으로써 [그림을 보는 기술]을 정리한다. 그는 영국 탐정 셜록 홈즈가 친구 왓슨에게 한 말, "자네는 보고는 있지만, 관찰하고 있지는 않다네."([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 코난 도일)라는 문장으로 <서문>을 시작하는데, 명화를 감상하는 우리가 '탐정'이 되어 그림의 구조를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유홍준 선생의 '미술사'나 역사기행처럼 "알고 보면 보인다". 
우리는 '파괴'나 '혁신' 이전에 먼저 '탐정'처럼 관찰하고 알아야 한다.


[그림을 보는 기술]을 요약하면,
1) 그림의 '초점', 즉 주인공을 찾는다.
2) 보는 이의 시선이 '초점'을 중심으로 따라가는 '경로(leading line)'를 나타낸다.
3) 그림의 척추에 해당하는 '구조선'을 찾아 '균형'을 본다(linear scheme).
4) 색상, 채도, 명도, 명암과 배색 등의 '색'을 본다.
5) '구도'를 통해서 그림의 의미를 알고 '비례' 결정의 기준을 본다.
6) 위와 같이 '초점'-'경로'-'균형'-'색'-'구도/비례'를 통해 본 그림의 '구조'를 바탕으로 그림의 '표면'적인 특징인 '통일감'을 본다.


초보자인 우리가 그림을 볼 때 일단 위의 순서로 아래와 같이 접근해 보자. 
1) 중심이든 구석이든 주인공(초점)을 찾고,
2) 그 주인공을 강조하는 시선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데 '회전형'일 수도, '지그재그'일 수도, '방사형'일 수도, 복합적일 수도 있다.
3) 가로든 세로든 가상의 '구조선'을 그어 그림의 균형을 잡는데, 이 '선'들의 관계를 '리니어 스킴(linear scheme)'이라 한다.
4) 색의 종류인 '색상', 색의 선명함인 '채도', 밝기인 '명도'와 전체 '명암'의 관계를 본다.
5) '구조선'들의 복합관계로서 '십자선'과 '대각선' 등 구도의 '마스터 패턴(master patern)'을 읽는다.
6) 위 '구조'를 바탕으로 그림의 전체적인 '표면'적 '통일감'을 관상한다.


이 '그림을 보는 기술'을 토대로 진품 명화를 찾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탐정'이 되어 몇 개의 그림을 읽어보자.


1. [비너스의 탄생], 산드로 보티첼리, 15세기.

그리스 신들의 반란으로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자신의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 내다버린 먼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미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가 조개를 타고 육지로 올라오는 유명한 장면이다. 제우스와의 사이에 큐피드를 낳고 헤르메스와 관계하여 자웅동체인 헤르마프로디테를 낳고 전쟁의 신 마르스와 동침하여 공포의 신 포보스, 술의 신 바커스와도 바람 피우고 나서 남편인 헤파이스토스에게로 돌아간 미의 여신이다.
조개를 탄 비너스는 그림의 주인공으로서 '초점'이자 그 자체로 화면을 반으로 가르는 '구조선'이며, 좌측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우측 계절의 신 호라이의 몸짓을 통해 '회전형 경로'를 그린다. 세로로 삼등분된 '삼분할 구도'로 전체 균형을 맞추면서 '직사각형 속 정사각형'을 구분하는 '래버트먼트(rabatment)' 선을 중심으로 대각선을 그어보면 그 교차되는 안정된 구역에 주인공(초점)이 안착되어 전체적인 안정감을 준다. 마지막으로 좌우 등장인물들은 '황금비율'과 '프랙탈(같은 모양의 반복)'로 수렴된다.


2. [성 가족],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6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산치오 등과 같이 16세기 르네상스 전성기(친퀘첸토)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는 회화와 조각, 건축 등에서 거대한 스케일로 유명하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대작 [최후의 심판]을 거의 혼자 완성했을 정도로 무리했으나 90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피렌체의 거상 도니 가문은 20대에 이미 [피에타] 상과 [다비드] 상을 만들어 명성을 떨치던 미켈란젤로에게 젊은 부부에게 아이가 생긴 것을 축하하기 위해 '톤도(원형 그림)' 형식의 그림을 의뢰했고, 미켈란젤로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고 요셉이 등장하는 [성 가족]을 완성했다. 그림의 가로선 너머의 '이교도'적인 그리스식 청년들을 배경으로 이 가로선을 넘으면 '기독교' 세계로 진입한다. 그 경계에 앉은 아이는 세례 요한이다. 동정녀 마리아는 중앙에서 르네상스식 육체를 자랑하며 아기 예수를 어색하게 받고 있는데,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은 지나치게 늙었다. 이후 '성 가족' 작품에서도 그는 갈수록 늙어가는데, 마리아와 잠자리도 들기 전 '수태고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신'의 명령으로 파혼도 못한 채 예수를 키워야 했던 그는 마리아의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 명화 속에서 '늙은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냥 '마스터 패턴'으로서 '십자선'과 '대각선'만 그려 넣으면 주인공(초점) '성 가족'이 균형있게 배치된다. 거기에 가로세로 '삼등분' 선들을 그으면 마리아가 쏙 들어간다. '이교도' 청년들은 원근법과 좌우 대칭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3. [파리스의 심판] 연작, 파올로 루벤스, 17세기.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의 부모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식장에 던진 황금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꼬리표가 달렸고, 서로 예쁜 척 하는 세 여신인 헤라, 비너스, 아테나가 서로 사과를 차지하려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다. 비너스는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강탈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조로 사과를 차지했고 결국 트로이 전쟁으로 치달은 이야기의 발단인 '파리스의 심판'을 바로크 거장 파올로 루벤스는 연작으로 몇 편 그렸다. 
그 중 두 편의 그림의 주인공은 비너스일 수도, 파리스(또는 사과)일 수도 있다. 이 두 '초점'을 중심으로 큐피드는 회전하며 어머니 비너스를 따라 흐르고, 파리스(사과)는 양치기 친구와 큰 나무를 배경으로 좌우 균형을 잡는다. 이 두 '초점'은 역시 '래버트먼트' 패턴에 따라 직사각형의 대각선과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교차점에서 중심이 안착되는데, 한편은 파리스가 들고 있는 황금사과가 있고 한편에는 비너스가 손으로 가린 성기가 있다. 전형적인 비너스의 자세는 한손은 가슴을, 한손으로 음부를 가린 '푸티카(putica:정숙한)'라고 하며 한눈으로 비너스임을 알 수 있는 '중심'이자 '초점'이다. 그외 헤라임을 알 수 있는 공작새, 아테나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투구와 방패 등이 있다. 이런 '아이콘(도상)'을 찾는 것도 '탐정'의 역할이다.


4. [당대의 결혼 풍속도] 연작, 윌리엄 호가스, 18세기.

지금은 영국의 유명 화가로 남았지만 혁명으로 들끓기 전 18세기 당시 '로코코' 유럽의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는 '만화 작가' 같이 알려져 있었다. '만화'도 '영화'도 없던 당시에 비해 현대로 치면 한 편의 '영화' 또는 시사풍자 '만화'를 상영하듯 호가스는 연작을 그렸다. 싸구려 술인 '진'이 애기들 우유보다 더 싸서 런던의 모든 빈민이 물처럼 마시다가 지옥처럼 변해가는 '진의 거리'나, 귀족으로서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술, 도박, 여자로 탕진하고 정신병원에 갇혀 생을 마감하는 '방탕아 일대기'는 당대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몰락하는 귀족 집안에 딸을 강제로 시집보내 명예를 얻으려는 졸부가 있었는데, 애초에 사랑 없이 맺어진 이 젊은 부부는 각자의 사치스러운 삶을 살던 중 부인이 불륜을 저지른 장면을 목격한 남편이 결투 중 살해당하고 결국 부인은 매독균에 감염된 어린 아들을 두고 시골에서 자살로 파국을 맞는다는 아주 우울한 이야기가 호가스의 [당대의 결혼 풍속도] 연작이다. 
주인공은 젊은 부인으로 꼭 그림의 가운데 중심에 있을 필요는 없다. 이미 중세와 르네상스를 넘어 후기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나 그의 제자인 초기 바로크 시대 틴토레토, 매너리즘의 엘 그레코 등은 주인공(초점)을 구석이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고 그림의 전체 균형을 맞추었다. 모든 인물들의 등장은 주인공 젊은 부인 또는 그의 정부인 사기꾼 변호사의 주고받는 시선을 알 듯 모를 듯 암시하며 흐른다. 역시 '래버트먼트' 패턴에 따라 가상의 대각선을 교차하면 이 불륜 남녀의 시선으로 집중된다. 어수선하고 사치스런 당대 귀족의 일상을 '만화영화' 같이 그려냈으나 전체적 통일성을 지닌 균형을 갖춰 호가스의 연작들은 현재 '명화'로 남았다.


5. [이삭 줍기], 장 프랑수아 밀레, 19세기.

프랑스 시골 바르비종의 먼 배경을 등지고 이삭을 줍는 세 여인은 그림의 주인공이되, 현실에서는 저 멀리 추수를 하는 농부들로부터 소외된 시골의 과부들일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모두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이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는 말처럼 밀밭의 구석에서 '찌꺼기'들을 거두고 있는 세 주인공은 성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금색, 빨강과 파랑색의 모자를 쓰고 있다. 동시대 프랑스 귀족 시인 보들레르는 '육체 노동자'를 신성하게 그림으로써 지배계급을 위협한다며 밀레를 매우 싫어했다는데, 사실주의 작가 구스타프 쿠르베 못지 않게 바르비종파이자 인상주의 작가 장 프랑수아 밀레 또한 그림을 현실에 대한 '사실적 묘사'의 무기로 썼다. 
그림을 가로세로 '삼등분' 하고 십자선을 그려서 보자. 가로 삼등분선 위쪽은 먼 지평선이 있다. 세로 삼등분선에는 세 명의 과부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래버트먼트' 패턴으로 그은 대각선의 교차점에는 각각 좌우의 여인들이 안착되어 있다. 이는 밀레의 다른 작품 [만종]에서도 비슷하게 보이는 구도와 균형이다.


이외에도 '명화'는 그냥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림을 보는 기술]을 통해 '탐정'처럼 볼 수 있다. 
물론, 이 '기술'들은 너무 '도식화'시켜서 기계적으로 도입하는 공식이 아니다. 다만, 막연하게 느끼는 '균형'과 '안정감'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기술'은 일반인인 우리에게 '명화'를 '명화'로 식별하고 구분하는 안목을 준다.

예술이나 미술에 반드시 '이론'이나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대의 배경에 대한 '지식'과 그림을 종합적으로 보는 '이론'을 바탕으로 보는 그림은 어디서나 '명화'가 될 수 있다.
'알고 보면' 명화가 담고 있는 '질서'가 보이는 것이다.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거장이 역사 속에서 만들어낸 질서를 파악하고 감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아키타 마사코, 같은책, <5. 구도와 비례>.


***

1. [그림을 보는 기술](2019), 아키타 마사코, 이연식 옮김, <까치>, 2020.
2. [무서운 그림 3 - 위험한 진실의 명화들](2009), 나카노 교코, 이연식 옮김, <세미콜론>, 2010.
3. [新 무서운 그림 - 명화 속 숨겨진 어둠을 읽다](2016), 나카노 교코, 이연식 옮김, <세미콜론>, 2019.
4. [운명의 그림 - 명화로 풀어내는 삶의 불가사의한 이야기](2017), 나카노 교코, 최재혁 옮김, <세미콜론>, 2020.
5.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진중권, <휴머니스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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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리지린 지음, 이덕일 해역 / 도서출판 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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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고조선(古朝鮮)'을 찾아서
- [고조선 연구](1962), 리지린, 이덕일 해역, <도서출판 말>, 2018.



"필자는 우리 고대국가들에서의 계급투쟁의 력사를 찾아보려고 시도하였다. 계급투쟁은 결코 계급적 모순이 첨예화된 때에 비로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대립이 생긴 첫날부터 진행된 것이다...
필자는 위만정권의 수립은 고조선 사회의 발전의 계기로 되었다고 인정하며, 그의 정변은 고조선 사회의 계급투쟁의 반영이라고 보려고 한다...
고조선의 위치에 대해서 필자는 기원전 3세기 초까지 오늘의 료동, 료서 지역에 걸쳐 있었고, 서변은 우북편 지역에까지 이르렀다가 기원전 3세기초 연에게 패전한 후는 오늘의 대릉하(패수) 이동으로 축소되었다고 인정하며,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은 오늘의 중국 요령성 개평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종래 옥저는 다만 함경남북도에만 위치한 것으로 인정한 설에 대하여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문헌사료를 세밀히 검토한 바, 옥저는 옥저, 동옥저, 북옥저의 3개 옥저가 있었고, 옥저 지역은 오늘의 중국 즙안(집안)에서 압록강 밑으로 위치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예맥'이 강원도에 위치했고, '예'는 그 밑(압록강 하류지역)에서 료동반도 동변에 걸쳐 위치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예맥'이 강원도에 위치했다는 력대의 설이 근거가 매우 박약함을 인정하면서 필자의 견해를 내놓으려 한다. 그리고 고대 숙신은 3세기 이후 읍루, 물길, 말갈족과는 완전히 다른 종족이며, 그것은 곧 '고조선족'이였다는 것을 론증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 리지린, [고조선 연구], <머리'말>, 1962.


1961년 6월부터 9월까지 북한의 과학원 '력사연구소'는 7차례에 걸쳐 '고조선에 관한 과학토론회'를 개최하여 '낙랑군=평양설'과 '고조선=요동설' 사이의 끝장토론을 벌인다. 도유호와 같은 고고학자들은 평양 일대의 청동기 유물를 중심으로 고조선의 중심지는 대동강 유역의 평양이며 '패수'는 청천강이라는 주장, 반대편 문헌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영역이 요동 지역이라는 주장의 일대 격돌이었다.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자들이 축소시킨 고조선의 강역을 벗어나려는 북한 역사학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도 고고학 유물을 근거로 하는 '실증주의' 역사관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 '력사과학토론회'에 한 역사학자의 논문 한 편이 제출되면서 결국 '고조선=요동설'로 급작스레 종결된다. 
북한 세습정권이 반동화되면서 '평양' 중심의 '대동강 인류문명설' 따위의 어용 역사학이 지금 이북에서 득세하고 있다지만, 해방 후와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려던 역동적인 시대인 1960년대에는 '과학'적이고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이 북한의 역사학계를 이끌었다.
'실증주의' 역사과학를 넘어서 고대 문헌들과 당대의 정치경제 사회구성체 분석을 통한 '과학'적 역사유물론을 토대로 고조선의 강역을 최대한으로 넓히면서 위 토론에 종지부를 찍은 논문이 바로 1960년대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 박사의 [고조선 연구]다.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 박사(1916~?)는 1958년부터 중국 북경대에서 위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그는 중국의 '고사변학파'로 불리는 고힐강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는데 이 학파는 중국내에서는 진보적 학파였으나 대외적으로는 '중화주의'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대륙고조선설이 마뜩치 않았음에도 리지린의 철저한 중국 고대문헌 분석에 반박하지 못한 채 박사학위 논문을 승인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즉, 리지린은 중국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북경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역사왜곡의 본산지에서 당당하게 우리 고조선의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 북경대 박사학위에 도전한 것이었다. 그는 결국 중국의 대역사가 고힐강조차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철저한 문헌조사와 고증을 통해 중국을 딛고 귀국하여 '실증주의' 역사학을 무릎 꿇렸다.

위 <머리말>은 결국 이 논문 [고조선 연구]의 요약 서문이자 결론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리지린 박사는 '고조선=평양설'을 뛰어넘은 '고조선=요동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고대의 요동과 요서 지역 자체를 서쪽으로 더 확장하였고, 그에 따라 옥저와 진국(辰國/삼한:三韓)까지도 한반도 북부로 더 끌어올렸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는 우리가 아는 고조선 강역도 중 가장 넓은 영토를 그리고 있다.


"... '습(濕)'자 음이 '숙(肅)', '식(息)', '직(稷)' 음과 통하며, '숙신(肅愼)'(식신,직신; 息愼,稷愼)이 '습수(濕水)', '렬수(洌水)', '선수(汕水)'가 합하여 '렬수(洌水)'를 이루는 강 명에 유래했다는 고대의 설이 '조선(朝鮮)'의 명칭의 유래로 된 것으로 바뀌여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 리지린, 같은책, <1. 고조선의 력사지리>.


우리 역사의 시작 고조선(古朝鮮)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이 건국하여 청동기 시대를 거쳐 철기 '열국시대'를 지나 고대국가 '삼국시대'의 기초가 되는 우리 역사 고대 노예제 사회였다. 원래 국명은 '조선'인데, 이후 이씨 조선과 구분을 위해 '고조선'이라 부른다. [사기], [한서] 등의 중국 고대문헌에는 '조선'이라 부르면서 <조선열전>을 따로 전한다. 물론, '조선'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 한나라 왕조 및 전국시대 왕국들과 관련된 역사로서 서술되고 있다.

'조선(朝鮮)'. 
14세기말에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정도전 등의 급진적 사대부들은 우리 역사의 뿌리이자 '동방의 해뜨는 나라'라는 식의 국명으로 '조선'을 채택했을 수도 있으나, 애초 중국 고대 문헌에서 부른 '조선'은 뜻을 지닌 말이 아니라 동북방의 고대 '조선어'의 음을 한자로 옮긴 것이었다. '렬수'라는 큰 강을 중심으로 번성한 '습수(濕水)' 등의 음과 그와 비슷한 '숙신(肅愼)' 등의 음을 중국의 한자로 번역한 말이 '조선'이라는 것인데 우리글이 아직 없던 시절의 이두식 표현인 것이다. [사기] 등에는 '조선', '발(發).조선' 식의 표현도 있는데, 고대 조선어로 '발(發)', '불(不)'은 '국가' 또는 '지역'을 뜻한다. 고구려의 기원후 1세기 수도 '국내성'은 '불내성'이라고도 쓰며, '부여'라는 고구려 이전 열국 중 하나의 국명은 '지역국가'라는 의미의 '불여(不與)'라는 설도 있다.
그리하여 '(고)조선'이라는 국명이 등장하기 전 오랜 문헌에 나오는 '숙신'은 한참 후 두만강 유역에서 야만생활을 하던 '여진족'의 선조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고조선족'을 이르는 말이었다.

나는 중국의 '동북공정' 따위 제국주의 역사관에 대항한 우리의 주체적 역사관은 긍정한다. 반면, 식민사학자 이병도 무리의 '실증주의 사학'은 맹목의 '과학'에 불과하며 심각한 '철학의 빈곤'이 그 본질이라 보고 있다. 한편으로 '대동강 인류문명설'이나 고조선 또는 고구려 '대제국설' 따위는 문헌이나 고고학의 역사과학적 성과를 정치로서 왜곡하는 '유사역사학'이라 불린다. '고조선 연방제국'이 이후 흉노와 섞이고 결국 훈족의 일부로 유럽 문명까지 만들었다는 식의 몽상이 아니라 사료로 말하는 '과학'으로서 역사학의 본연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고조선 연구]의 리지린 박사와 이 논문을 역해한 <한가람역사연구소>의 이덕일 소장의 한목소리 주장이다. 그만큼 리지린의 중국 고대문헌 분석은 중국인 역사학자도 반박 못할 정도로 철저했다고 한다. 

리지린의 고조선이 서쪽으로 더 나아간 이유는 바로 '조선(숙신)'이라는 국명의 바탕이 된 강물, 즉 '열수(洌水)'의 위치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열수'는 '요하' 또는 '요수'인데 현재의 요동과 요서를 가르는 '요하'가 아니라 그보다 더 서쪽에서 흐르는 '난하'라고 한다. '난하'는 북경에서 가까운 북쪽의 강이다. 기존 '고조선=요동설'은 고대의 요동과 현재의 요동을 같은 지역으로 보았으나, 리지린은 '열수(요수)'를 더 서쪽의 '난하'로 보면서 고대 요동을 현재 요동보다 훨씬 더 서쪽으로 비정한 '대륙 고조선설'의 주요 이론가였다. 리지린에 따르면 기원전 7~5세기경 고조선은 극동아시아의 동북지역 전체를 석권하고 있다. 중국 고대 문헌에 "열수는 요동에 있고, 열수 동쪽에 왕검성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므로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은 '평양'이 아니라 고구려의 개모성 또는 개평으로 발해만에 인접한 도시였다. 

기원전 5세기에는 청동기 말기로 '구리의 나라', '고리국'이 고조선의 서쪽에 인접해 있었다. '고리국'의 민족은 '맥(貊)'족으로 표범 비슷한 '맥(貊)'이란 짐승을 사냥하던 민족이었다는 설도 있는데, 중국 전국 중 연나라 장군 진개(秦開)에 의해 멸망한 듯 하다. 이때 흩어진 '맥족'이 고조선을 이루던 '예(濊)'족과 섞여 '예맥(濊貊)'족을 이룬다. 이들이 바로 선비족, 부여국, 오환족 등의 선조가 되는 동호(東胡)족(동쪽 '오랑캐')이며 고조선인들이었다. '예(濊)'족의 한자는 '더럽다'는 뜻인데 고조선인들이 스스로 이런 한자를 썼을리는 만무하다. 북방 유목민 '흉노(匈奴:흉칙한 노예)'처럼 중국인들이 지칭한 차별적 언어였을 것인데, 고조선족인 '예'족은 원시야만의 나라가 아니라 주도적 철기 문명을 지닌 동북방 일대의 거대한 고대 '연방국가'를 이룬 사람들이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은 이미 '8조 금법' 등을 보아도 '원시공동체'를 벗어나 국가권력이 인민 개인을 법으로 통제하던 고대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결국, 고조선의 지배민족은 엄밀히 따지면 '예'족이었고, 부여와 고구려의 지배민족은 '맥'족이라는데 '예맥'족으로 섞인 이들은 아시아의 동북방 또는 고대 요동을 지배한 민족들이다.


"예와 맥은 일찍이 신석기 시대, 늦어도 기원전 2천여 년 이전에 오늘의 료동, 료서 지역에 정착하였다고 보여진다. 예는 료동 개평을 수도로 하여 국가를 형성하였다. 예의 여러 부족들은 국가 형성 이전에 이미 료서와 조선반도로 퍼져 나갔고, 그 일부는 오늘의 하북성 남부인 청장수 지역에까지 진출하였던 것이다. 맥은 처음부터 예의 지역의 북방에 거주하면서 기원전 10세기 이전 시기에는 이미 그 일부가 중국 북부에까지 진출하였던 것이며, 늦어도 기원전 5세기에는 료서의 열하, 릉원, 조양 지역, 고 료동의 고조선 지역 북부에 걸쳐서 계급국가인 맥국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 리지린, 같은책, <3. 예족과 맥족에 대한 고찰>.


후대 조선을 건국한 사대부 '혁명가'들조차 사대주의로 인해 '기자조선'을 근본으로 삼았다. 원래 천제 환인의 아들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이 아니라 중국 은나라의 신하 기자(箕子)가 요동으로 망명하여 세운 중국식 왕조인 '(고)조선'이라는 것인데, 리지린의 문헌 분석에 따르면 '기자'는 동북방 요동으로 오지 않았다. 고조선의 왕족 성씨가 '기'씨였기에 혼동이 전설이 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3세기 북방 유목민의 대명사 '흉노'족의 왕은 '선우(單于)'인데, 동북방 정착민 '예맥(동호)'족의 왕인 '단군(檀君/단간:單干)'의 한자가 비슷하다. 즉 1,900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렸다는 '단군왕검'은 개인이 아니라 곰을 숭상하던 부족의 왕을 뜻하며 고조선이 1,900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의미다. '단군'은 '선우', '왕'은 '왕', '검(험)'은 '곰'을 의미한다.

이후 맥국(고리국)을 멸망시킨 연나라 장수 진개는 중국 한족이 아니라 연에 귀순한 맥족이었고, 고조선 준왕을 진국 마한으로 쫓아낸 위만도 중국 한(漢)족이 아니라 맥족이었기에 고조선에 귀순한 후 준왕이 위만에게 맥의 지역을 지키게 한 것이었다. 
결국, 동북방 요동과 요서 지역을 장악한 민족은 중국 한족이나 한반도인들이 아닌 그 지역의 오랜 정착 '예맥족'이었다. 요동은 요동만의 역사와 문화가 이어져 왔으므로 '요동사' 자체가 인정되어야 하는 이유다.
위만의 반란 후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과 한반도 일대에서 이 부족국들을 망라한 '진국'으로 고조선의 예맥족이 넘어와 '한(韓)'족과 섞이면서 '요동사'는 우리 역사가 된다. 북방의 역사는 중국보다는 한반도와 더 가깝다.

고대 아시아 동북방의 '예맥(동호)' 이전의 원시민족은 '조이(鳥夷)'족이었는데, 하늘의 새를 숭상하던 풍습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새에게 바치는 '조장(鳥葬)'을 시행하기도 하며 건국신화의 영웅들이 전부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卵生)' 신화의 공통점이 있다. 부여와 고구려, 신라와 가야의 시조들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우리말 '아씨'는 흉노 선우의 부인 '알씨'와 같은 어원이다. 또한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부여의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의 '제가회의(諸家會議)'에서 '가(加)'는 '가한(可汗)', 즉 '칸(Khan)'이며 이후 돌궐, 몽골 등의 서북방 유목민과도 연결되는 증거다. 고구려 또한 이러한 '칸국'을 거느린 '5부족 연맹체'를 정치체제로 물려받았다.


"위만이 들어온지 얼마 안되어 왕권을 탈취했다는 사실은 고조선의 계급투쟁이 첨예화되였으며, 거기에는 그 계급투쟁을 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급, 즉 봉건 지주계급이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요컨대, 고조선에서는 기원전 3세기 말에는 호민 계층이 지주계급을 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위만은 그 계층과 결합하여 하호와 노예의 폭동을 리용하여 고조선 왕권을 전취하였다고 인정된다."
- 리지린, 같은책, <9. 고조선의 국가 형성과 그 사회 경제 구성>.


고조선은 기원전 12세기 중국 서주 시대부터 흩어져 있던 부족국가들이 기원전 8~7세기경에는 '고조선'으로 '예맥'의 통합국이 된 '고대 노예제 사회'였고, 독자적인 철기 문화를 주도하면서 중국 제나라와 활발한 교역도 했다. 노예와 같은 처지의 소작빈민인 '하호(下戶)'가 기본계급이었으나 중소지주에 해당하는 '호민(豪民)'들이 봉건 지주계급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위만은 이 '호민'과 '하호' 세력의 지지 하에 고대 노예제 국가 고조선을 뒤집어 엎고 '봉건지주 혁명'을 완수하면서 과도기적 정치경제 체제를 건설했다는 것이 리지린의 주장이다. 
즉, 위만(衛滿)은 '예맥'인으로서 고조선인이었고, 고조선 왕조의 교체는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진보적 '력사학자'답게 리지린에게 우리의 역사, 고조선의 고대사 또한 "계급투쟁의 역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존 문헌 자료 상의 고조선 사회 경제 구성은 아세아적 공동체가 파괴되였으나 여전히 총체적 노예제의 유제가 강인하게 잔존한 노예 제도가 지배적 지위를 차지한 노예제 사회이였고, 위만 이후 점차적으로 봉건사회에로 이행하였다고 인정한다."
- 리지린, 같은책, <9장>.

***

- [고조선 연구](1962), 리지린, 이덕일 해역, <도서출판 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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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
조지프 캠벨 지음, 권영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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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없는 '신화'의 새로운 '지평' 열기
-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1972), 조지프 캠벨, 권영주 옮김, <더퀘스트>, 2020.



"... 신화는 말하자면 집단의 꿈이요, 꿈은 개인의 신화다."
- 조지프 캠벨,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1. 신화가 과학을 만났을 때', 1961.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1904~1987)은 1958년부터 1971년까지 뉴욕에서 행한 신화 관련 강연록을 정리하여 [Myths To Live By]라는 책을 낸다.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이라는 국역본의 이 원제는 우리말로 "우리가 삶의 신조로 삼을 신화 이야기" 정도 될 듯 한데, 그리스-로마 신화를 비롯한 각 지역의 흥미진진한 신화 이야기인 줄 알고 펼치니, '신화 일반'에 관한 이야기였다. 유럽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인도 경전 [우파니샤드]를 번역한 저자는 동양, 더 세부적으로 인도 신화 이야기를 많이 언급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주의 법칙'을 묘사한 '신화' 일반은 우리들 인간 '마음의 법칙'에 다름 아니라는 내용인데, 인류의 사유의 역사로부터 시작되는 '신화' 이야기는 '종교'와 '과학'을 비껴갈 수 없다.


"이전부터 사회의 도덕질서는 종교화된 신화가 바탕이 됐고, 과학이 신화에 영향을 끼쳐 불가피하게 도덕질서에 혼란을 야기한다면, 이제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신화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1강'.


인류가 아직 '문명'을 깨우치기 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근원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고대에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개인의 상상이라면 '꿈'이겠지만 여러 개인들이 모인 집단의 이야기는 '신화'가 되었다. 비록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모두에게 "널리 사랑받은 신화적 상상"이라면 "정신의 사실(캠벨, 같은책, 1강)"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바로 '이데올로기'의 시작이다.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에게는 '허위의식'이자 '관념'이었고, 알튀세르에게는 현실적인 힘을 갖는 계급투쟁의 '무기'였으며, 하라리에게는 호모 사피엔스의 최초 '인지 혁명'의 요체다. 
그러므로 '집단의 꿈'인 '신화'는 '이데올로기'로서 해당 사회의 '도덕질서'를 규정했고, '종교'로서 다수에게 절대적 믿음의 교리를 선사했으며 이에 반대 사실을 밝혀낸 '과학'과 대립하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이단'을 양산했다.
그리하여 '종교'는 '정신적 사실'로서 더욱 확고해지려고 하지만, 결국 '과학'에 의해 밀려난다는, '종교'와 '과학'의 대립의 역사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캠벨에 의하면, '과학' 또한 완결될 수 없는 가설의 연속이며 '신화'나 '종교'는 어느 면에서는 당시의 '과학'이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아닌, 2천년 전의 '과학'과 현재의 '과학' 사이의 대립으로 보아야 한다. 
역시 동양(인도) 사상답게 '신화'도 '종교'도 '과학'도 하나로서 '합일'된다.


"... 새로운 지혜는 공상하는 젊음이 아니라, 경험 많은 노년의 지혜이며,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 모두가 흡수해야 하는 것이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5. 동서양 종교는 어떻게 대립하는가'.


'신화' 또는 '이데올로기'로 유발 하라리식 표현으로 하면 '인지 혁명'을 이룬 호모 사피엔스의 발자취를 훑은 캠벨은 '동양과 서양의 분리'에 주목한다. '신화'의 동기가 되는 '만물을 지배하는 거대한 우주법칙'을 이집트어로는 '마트(Maat)', 수메르어로는 '메(Me)', 중국어로는 '도(道)', 산스크리트어로는 '다르마(Dharma)'라고 하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 또는 지금의 중근동 지역인 '레반트' 지역에서는 이러한 '거대한 우주법칙'이나 자연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닌 "얼마든지 마음이 변할 수 있고 실제로 자주 변하는 개인"을 중심으로 '신화'를 구축해 왔다. 캠벨은 여기서 유럽 또는 서양 고유의 '개인주의'를 본다.

동양은 '도' 또는 '하늘', '천자', '텡그리' 등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집단화'하는 반면, 서양은 이 모두를 '인격화'시킨 신을 통해 '개인화'한다. 천국과 지옥, 신과 악마, 선과 악 등의 고전적 이분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 페르시아 제국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가 근원인데, '불'을 숭상하며 '빛'과 '어둠'의 대립을 중심사상으로 했던 교리가 이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 신화의 뿌리였던 것이다. 이를 구제하는 자가 바로 '메시아', '그리스도', '구세주'다. 한편, 동양의 불교에서도 '메시아'와 비슷한 '미륵불'도 있고 깨달은 자도 있으며, 극락과 지옥도 있고 부처와 악귀 역시 존재하나, 이들은 이분법적으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동양은 외부의 신이 아닌 "자신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강조하면서 모든 것은 하나라는 '합일'을 강조한다.

대승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중심개념인 '선(禪)'의 최종 목표는 '개념의 그물을 끊는 무심(無心)의 철학'이며, '부처'를 뜻하는 '여래(如來)'는 무엇을 설교하는 자가 아니라 무의미하게 그냥 '그처럼 다가오는 자'라는 의미다. '존재(sattva)'가 '깨달은(bodhi)' 자로서 '보살(Bodhisattva)'은 현세에서 '자비'로서 중생을 구제하면서도 속세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것에는 무심하다. 선악과 옳고 그름 등의 이분법 조차 '자비'라는 "형이상학적 충동 속에 사라진다(캠벨, 같은책, 8강)."


"... 수행자와 성자는 그 (지복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데 반해, 조현병 환자는 그저 바다에 빠진 셈이다... 모험에서 돌아오려면 모험의 최종목적이 자기자신을 위한 해방이나 황홀경이 아니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지혜와 힘이어야 한다... 신화의 영웅, 샤먼, 신비주의자, 조현병 환자의 내적 여행은 원칙적으로 동일하다. 그들의 귀환 또는 증세의 완화는 '재생'으로 체험된다. 다시 말해 현실의 '지평'에 더는 구속되지 않는 '거듭난' 자아가 탄생하는 것이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10. 내면으로 떠난 여행 : 조현병의 연구'.


캠벨은 이후 신화적 '영웅'과 정신분열(조현병)의 심리학을 비교하는데, 신화적 '영웅'은 기존 질서에서 일탈하는 자기부정 과정에서 집단적 공공선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민중들을 구원하고 '영웅'이 되는 반면, 조현병자도 비슷한 일탈을 겪지만 공적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병리현상에 머문다. 


"... 불의 사용... 불에의 매료... 하지만 인간의 생각과 삶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밤하늘을 관측하던 신관들을 사로잡은 일로, 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우주질서에 맞춰 사회질서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계급구조를 갖춘 도시국가가 등장해 그 뒤로 수천년간 모든 고대문명의 모델이 됐다. 다시 말해 그때 인간에게 문명화된 삶을 준 종교와 예술, 문학, 과학, 도덕, 사회질서는 '경제'가 아니라 '천체과학'에서 시작됐다는 뜻이다. '우리를 속여 한계를 넘게 해서' 경제나 정치로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을 달성하게 해주었다.
...
선사시대의 동굴에서, 산 위의 절, 그리고 이제 달에 이르기까지 '지평'의 확장은 언제나 의식의 확장을 가져왔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위대한 도약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 내 논지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11. 세상 바깥으로 떠난 여행 : 달 위를 걷다'.


이제 캠벨의 '신화 일반'에 대한 생각의 결론까지 왔다. 1969년 달 위에 인류의 발자취를 남긴 역대사건에 대한 감동과 얼핏 보이는 미국인으로서의 '미국주의'는 살짝 거슬리기는 하나, 캠벨의 논지는 '종교'나 '경제'나 '정치' 등의 '현실적 지평' 너머까지 인류를 인도했던 '과학'과 '신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기로는 '신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발전을 통해 현실의 '지평'들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결론이며, '과학' 진보의 길에서 "다시, 신화를 읽을 시간" 또는 '과학'과 합일되어 '지평'을 열어가는 '신화'가 바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신조로 삼아야 할 신화([Myths To Live By])라는 내용일 것이다.


"새로운 신화는 무엇인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
지혜 전승의 상징이 특정한 역사적 실존인물과 실제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잠재가능성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심리학적으로 올바른 의미에서 '영적으로' 해석할 때, 그 모든 것에서 진정한 '구원의 철학'이 나타날 것이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12. 끝맺으며 : '지평'의 소멸'.


과거에는 각 지역이나 분야, 다른 문화의 '지평'에서 '신화'가 만들어졌지만, 캠벨이 이 책을 낸 1960년대에 이미 그런 '지평'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21세기인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캠벨이 말하는 '지금의 신화'는 우리 하나하나가 세상의 중심이고 우리 안에 각자 해방된 마음이 있으며 이 '마음의 법칙'이 모든 '우주의 법칙'이기에 우리 개인을 깨워 자기 스스로를 알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쉽게 말해 인도식으로 '요가'를 하면서 우주와 자기를 '합일'시키기라도 하라는 것 같지만, 수천 년전 '과학'이었던 '신화'와 오늘날의 '과학'이 하나이므로 결국 외부로 '지평'을 확대하는 '과학'의 길에서 내부의 우리 인류 '자기'를 함께 들여다 봐야 한다는 20세기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메시지는 21세기까지 [코스모스] 계획을 집대성하는 앤 드루얀(칼 세이건의 동료이자 배우자인 천체물리학자)의 마지막 문장들과 같다.


"우리는 서서히 자연의 책을 읽는 법을, 자연의 법칙을 배우는 법을, 나무를 보살피는 법을 익혔다. 우리가 코스모스라는 망망대해에서 언제,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코스모스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수단이, 별로 돌아가는 길이 되었다."
- 앤 드루얀, [코스모스], 2020.


20세기의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 외부로 나아가는 길을 밝혔다면, 21세기의 앤 드루얀은 그 방식을 따라 인류라는 또 하나의 '별'로 돌아오는 길을 함께 밝히고자 한다. 
그리하여 캠벨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맺는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의 방식으로 모든 것과 하나인 이 세계에 '지평'은 없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12강', 1971.

***

1.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1972), 조지프 캠벨, 권영주 옮김, <더퀘스트>, 2020.
2. [코스모스](2020), 앤 드루얀,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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