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평전 - 시대의 모순과 대결한 불온한 경제학자의 초상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삼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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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민중의 자주적 공동체를 향한 진정한 지성

- ‘민족경제론학자 박현채 : [박현채 평전],김삼웅 지음,<한겨레출판>,2012. -

 

 

(민족경제론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국주의 침략과 맞닥뜨린 상황에서는 반제국주의적 경제이론이 민족경제론이며, 경제종속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탈종속의 경제이론이 민족경제론인 것이다. 시장과 무역자유화 때문에 민족경제가 받는 피해가 이득보다 크다면 보호무역주의 경제이론, 반대로 민족경제의 활로가 무역자유화에 있다고 판단되면 자유무역론이 민족경제론이 될 것이다. 또한 계급갈등과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실업증대, 환경파괴, 민족분열의 조장으로 기존 체제의 의미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체제 변혁을 위한 혁명의 경제학이 민족경제론으로 등장할 것이다.

- 박영호 [역사적 맥락에서 본 민족경제론] 참고한 [박현채 평전] .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김영삼이 주창했던 ‘40대 기수론의 분위기에서 치열한 경선 끝에 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김대중 후보는 대중경제연구소를 세우고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를 비롯한 여러 재야 학자들에게 의뢰하여 대중경제론을 확립한다.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의 경제체제로 선언되는 대중경제론대중이 참여하는 시장경제를 모델로 만들어본 것으로, ‘우리 정치사에서는 정책 대결의 장을 여는 획기적인 정책 이론이자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인 이론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는 훗날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앞세운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경제이론으로서 대중경제론의 뿌리였으며,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가 설파한 민족경제론의 근원이라고도 한다.

 

1970년대 민족경제론으로 성장위주의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대한 대항담론을 형성했던 경제학자 박현채는 정희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삶의 궤적은 정반대였다.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였던 박정희 10대에 이미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섭렵하고 17세에 지리산에서 소년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박현채, 부정부패와 장기집권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했던 독재자 박정희와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행동하는 진정한 지성의 길을 택한 채 안정된 교수 자리를 마다하고 지식보따리상을 자처했던 박현채. 1978년에 출간한 [민족경제론]은 우리 현대사에서 저항의 삶을 살았던 그의 젊은 날과 1960~70년대의 장년기 그의 삶을 관통한 대다수 민중에 기초한 역사관을 굳건한 토대로 했던 경제학 논문들을 엮은 저서이다. ‘민족경제론이라는 제목은 박현채 자신이 아닌 편집자가 급조한 것으로서, 박정희 개발독재시대에서 그의 민족경제론은 다름 아닌 체제 변혁을 위한 혁명의 경제학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있어서 민중의 상황은 그 역사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주체적, 능동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경제의 상황에서 경제성장 결과의 광범한 민중소외로 사회적 불균형을 확대시키고 있다. 국민경제에 있어서 민중의 소리는 근원적인 국민경제의 구조에서 이미 주어지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 국민경제의 성장유형은 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되고 있다.

오늘 우리나라 민중이 당면한 문제는 많다. 그것은 민주주의, 평화, 민족과 통일, 인권에 이르는 광범한 자기 과제에서 제시된다. 계급적, 계층적 이해의 조정에서 공동의 자기요구를 정립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대처하는 중요한 계기다.

- 박현채, [민중과 경제](1978) .

 

대다수 민중의 자주적 공동체를 향한 혁명의 경제학을 연구한 학자로서 박현채와 그의 민족경제론은 이후 1980년대 중반 우리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사회구성체 논쟁을 촉발하기도 하였다. 1985 [창작과 비평]에서 박현채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주장하면서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이나 주변부 자본주의론을 비판한다. 이는 민족경제론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이론으로서 우리 경제체제를 종속성 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 단계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는 이론적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사회구성체 논쟁은 관념적 형태로 변질되어 가기도 했지만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된 계급투쟁의 기본모순과 예속적 분단국가 민족모순으로서 주요모순의 치열한 선후논쟁의 결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신식민지반봉건론또는 신식민지반자본주의론으로 대략 수렴하기도 하는데, 마르크스의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성격 규정을 하고자 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의 출발점 또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현채 평전]에 따르면 박현채는 민족경제론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이론적 연관성을 완전히 제시하지는 못한 바, 그가 못다 이룬 연구와 과제는 후학의 역할로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평전]은 결말을 맺는다.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대처하는 중요한 계기로서 계급적, 계층적 이해의 조정에서 공동의 자기요구를 정립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일 것이며, 박현채는 대다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정치경제학을 설파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지성임을 지금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진정한 지성은 역사에서의 충실을 위한 현실적인 반역행위와 지배계급으로부터의 억압과 소외에 의해 규정짓는다.

- 박현채, [시대와 지성](1988) .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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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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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피 흘리지 않는 전쟁,

전쟁은 피 흘리는 정치

-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1,2,3],송태욱 옮김,<문학동네>,2012. -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이다

 

[전쟁론]으로 유명한 독일의 클라우제비츠와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뚱이 그의 저서 [지구전론]에서 했던 말이다. 클라우제비츠가 먼저 활동했던 사람이니 마오쩌뚱이 그를 인용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현대사회인 지금도 전쟁의 본질은 정치이고, 가끔 정치는 전쟁으로 현상하고 있다. 정치는 내치와 외교가 있겠지만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정치의 실현체였던 전쟁은 참혹하기는 하지만 과학의 진보 뿐만 아니라 문화의 교류와 발전을 수반하기도 했다.

 

대륙을 기준으로 보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우 위,,오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의 진()나라가 분열한 후 흉노, 선비, , , 강족 등의 다섯 오랑캐들이 서로 싸우면서  중원에 열여섯 나라를 세운 이른바 ‘516시대가 있었고, 이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 대륙의 문화가 더욱 발전했다는 역사학적 견해도 있다. ‘중화주의라는 왜곡된 중심주의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대립, 침투하면서 사회가 발전했다는 역사관이다.

 

유럽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아랍도 아직 없었던 중세 서구, 로마교황은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현세에서 신의 대리인이었고 신성로마제국황제와 프랑스왕, 각국의 제후들은 속세의 권력자로서 교황의 교시로 군사를 움직이고 정치를 하던 시기, ‘카노사의 굴욕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는 교황 그레고리 7세로부터의 파문은 면하지만 지능적으로 교황을 고립시켜 로마로부터 떠나도록 한 후 대립교황까지 내세워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켰고, 1095 11,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는 말로 민중들을 선동하여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피로써 탈환하자는 교시를 내린다. 물론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므로 십자군 전쟁의 본질은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교황 우르바누스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제국을 지키려는 비잔틴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의 정치외교적 결과이기도 했다.

 

유럽의 중세는 제후기사의 시대라고 한다. 왕과 제후들의 수많은 영토확장 전쟁 속에서 여러 유명한 왕들이 있었다. 영국의 사자심왕 리처드’, 프랑스 카페왕조의 존엄왕 필리프’, ‘성왕 루이’, ‘미남왕필리프, 신성로마제국의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와 그의 손자 프리드리히, 이들은 유럽 내에서도 영웅이었으나 총8차례를 거친 십자군 원정 과정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가장 순수했고 열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는 왕은 출전하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제후 영웅들이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이슬람 세력이 형제간에도 영토를 놓고 분열이 끊이지 않은 상황에 유럽과 아랍의 개념도 없었으니 각각 서로를 프랑크인사라센인으로 칭하던 시기에,  프랑크인의 십자군은 사라센인이교도를 성전의 이름으로 타도하기 위해 1차 십자군 원정을 시작했고, 종교전쟁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내부 분열만 거듭하던 이슬람 세력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모두의 성지였던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만다. 이 과정에서 북유럽 로렌 출신 고드푸르아 드 부용과 보두앵, 남부 이탈리아 노르만의 보에몬드와 탄크레디, 프랑스 툴루즈의 레몽 등의 십자군 영웅들이 등장했고, 이들이 바로 중근동에서의 그리스도교 영지 약200년의 역사를 연 주인공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운동에는 대립물이 있는 것,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이슬람 측에서도 내부분열을 극복하고 이슬람 통일의 기초를 다진 태수 장기와 그의 아들 누레딘, 바그다드 아바스 왕조의 실질적 지도자 누레딘으로부터 이집트 파티마 왕조에 파견된 후 파티마 왕조를 멸하고 아이유브 왕조를 연 후 지하드’, 즉 성전을 명분 삼아 이슬람 세력을 하나로 통일한 살라딘이라는 이슬람 영웅에 의해 그리스도교들은 예루살렘을 다시 빼앗긴다. 이슬람 최고의 영웅이자 술탄 살라딘은 이후 계속된 십자군 원정 과정에서 사자심왕리처드와 치열한 전투 끝에 강화를 맺게 되고, 십자군 전쟁 약200년 간 대부분의 시간은 중근동에서 프랑크인사라센인들의 공존의 시간이 지속된다.

 

결론적으로,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를 멸한 노예왕조맘루크 왕조의 술탄들의 성전인 지하드에 의해 중근동의 그리스도교가 모두 쫓겨나면서 총8차례에 걸친 약200년간의 십자군 전쟁은 막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이전에 경제인으로서 지중해의 제해권을 통해 세력을 확장했던 베네치아, 제노바 등의 경제강소국들의 문화적 중개 역할, 템플기사단과 성 요한 기사단, 튜턴 기사단 등의 신비스런 종교기사단의 헌신적인 역할 등이 빛을 발한다. 특히, 교황을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납치한 아비뇽 유수를 통해 교황권을 약화시킨 프랑스 미남왕필리프가 오랜 십자군 전쟁의 책임을 가장 헌신적이고 원칙적이었던 템플기사단에게 뒤집어 씌워 잔인하게 말살한 과정은 종교기사단의 신비로움을 가중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장면이기도 하다.  

 

고대와 중세의 정치는 근현대에 비해 더더욱 피를 흘려야 하는 전쟁으로, 그 당시의 국가는 피를 매개로 한 폭력으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보통 암흑의 시대라 불리는 중세에는 종교와 신앙의 이름으로 유럽과 서아시아의 문화권이 각각 고립되어 있었지만, ‘십자군 전쟁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유럽과 아랍이 다양한 문화적 공존과 교류를 이루었고, 나아가 유럽과 동아시아 연결의 매개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간접적이나마 르네상스라는 몇 백 년 후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가능케 한 작은 돌파구를 내는 역사 발전의 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당시 권력자들이 저지른 피 흘리는 정치로서의 전쟁과 대규모 살육에 대한 역사적 책임은 별개로 본다는 조건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지만.

 

 (20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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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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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으로 진화한 국가의 폭력

- 작가 공지영의 쌍용자동차 르포르타주 : [의자놀이],<휴머니스트>,2012. -

 

   

이탈리아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현대의 국가를 강제의 철갑을 입은 헤게모니라고 규정했다. 국가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에서 사유재산이 발생한 후 이를 지키기 위한 공동체였던 씨족’, ‘부족등 또는 이들의 동맹체였다. 사유재산은 독점을 통해 사회계급을 수반했고 근현대 이전의 국가는 폭력으로써 이 체제를 지켜왔다. 근현대 이전의 국가권력이 정당화했던 ’, ‘하늘등을 근현대 국가는 으로 치환했고 지금의 국가는 더 이상 폭력으로만 통치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그람시의 규정은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에 이르러 강제의 철갑은 군대, 경찰, 감옥 등의 직접적 폭력, ‘헤게모니는 학교, 교회, 직장 등의 각종 이데올로기 시스템으로 진화한다. 국가의 본질에 폭력이 있지만, 국가는 폭력으로만 존립할 수 없게 되었다. , 국가의 폭력도 진화한다.

 

용산 철거민 사태를 보고도 국민들이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에 쌍용자동차 사태가 발생했다.”

 

공지영 작가의 쌍용자동차 르포르타주 [의자놀이] 2012 8월 발간되었다. 작가는 2009년 쌍용자동차의 회계조작에 의한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 그 해 더운 여름 77일간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옥쇄파업과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살인적인 진압 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및 무급휴직자들과 그 가족들의 자살 및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문제 등의 심각성을 뒤늦게 접하고 나서, 이 문제를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도가니로 보아 진실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글을 썼다고 한다.

 

의자놀이는 사람들보다 적은 수의 의자를 중심에 두고 주변을 돌다가 신호를 하면 자기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게임이다. 쌍용자동차 생산직 직원의 약40% 이상 된다는 2,646명의 정리해고는 그런 우리 사회 현상의 극단적 단면인데, 그 전에 작가는 국민기업 쌍용자동차를 상하이차라는 중국 자본에게 헐값에 넘겨준 정권과 대형 회계법인 등과 짜고 부채비율 160%대를 500%대 이상으로 회계조작하여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 신차기술을 빼돌린 후 인도의 마힌드라 자본에게 다시 팔아치운 유령과도 같은 자본과 그 하수인들, 살기 위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저항을 동료 노동자인 구사대와 요즘 사회적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설용역업체까지 적극 동원하여 잔인하게 진압한 국가 공권력의 본 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작가는 말한다. “언론이 소설을 쓰니, 작가가 기사를 썼다.

 

이명박 정권은 2009년 초 용산철거민 참사 때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국가권력을 시험했다. 그리고 전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보수언론, 사법탄압 등의 이데올로기적인 방법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한 결과, 또 다시 광주학살과도 같은 야만적 폭력을 통해 지배해도 될 것 같다는 것을 학습했다. , “용산참사 때는 간을 봤고”,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은 살인을 작정하고 달려든것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직접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우리 국민들조차 국가의 폭력이 야만적으로 진화하는 것을 지켜만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야만적으로 진화한 국가의 폭력을 두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정치권에서의 쌍용자동차 특위 구성,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조탄압에 대한 노동자들의 연대투쟁,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각종 시민사회 연대단체들도 있고 유명작가 공지영 [의자놀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함께 살자!”고 외치고 있다.

 

야만적으로 진화한 국가의 폭력, 이 거대한 괴물인 리바이어던에 맞서, 사회 대다수 약자들이 함께 살기위한 유일하고도 역사적으로 입증된 최선의 방법은 약자들의 광범위한 연대일 것이다.

 

[의자놀이]의 수익금 전액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후원금으로 쓰인다고 한다.

 

 (20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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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푸르트 강령 범우사상신서 58
칼 카우츠키 지음, 서석연 옮김 / 범우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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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폐기와 ‘의회주의’ 정치 

- 칼 카우츠키의 [에르푸르트 강령]에서 ‘의회주의’ 

 

 

비단 직접 노동자계급에 특별한 관계가 있는 법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부분의 법규의 대다수가 많건 적건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일체의 계급과 같이 노동자계급도 정치적 세력과 정치적 권력의 획득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근대적 국가에 있어서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두 가지의 길이 있다. 첫째는 국가 수장에게 개인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이다… (둘째) 국민 중의 나머지 일체의 계급은 근대적 대국가에 있어서는 그들이 선출한 의회를 통해서만 국가 시정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국민에 의한 직접적인 입법을 논외로 해도 무방하다. 적어도 근대적 대국가에서는 국민에 의한 직접적 입법은 의회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는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의회와 병립해서 개별적인 경우에 있어서 의회를 보정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불과하다. 이것에 의해서 국가적 입법 전체를 처리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근대적 대국가가 존재하는 한, 정치적 활동의 난점은 항시 그 의회에 존재할 것이다. 

 

- K. J. Kautsky. [에르푸르트 강령],

제5장 <계급투쟁> 제9절 ‘정치적 투쟁’ 중

 

 

2011년 11월 22일, 한미FTA 국회비준안이 우리 국회 역사 초유의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한미FTA 협정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이식의 종결판으로 사회 양극화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며, 한미 양자간 불평등으로 점철된 협정으로 날치기 비준 이후 의회가 저버린 민중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동자·시민들은 우리 역사에서 늘 그래왔듯 거리로 나섰다. 

우리 현대사를 돌아봐도 질적인 전환의 계기는 언제나 ‘거리’였다. ‘의회’는 민중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었고 대다수 민중들은 변혁의 열망을 ‘거리’에서 분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이 민중들의 열망을 배반하면서 일시적으로 마무리된 장소 또한 언제나 ‘의회’이기도 하다. 

 

1917년 소비에트 혁명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권력을 쟁취했던 러시아 혁명 지도자 레닌의 볼셰비즘이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고 격렬하게 비판했던 독일 사회민주당 이론적 지도자 칼 요한 카우츠키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의 영향 하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혀 왔고, 적어도 우리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의회주의’로 대표되는 기회주의, 개량주의의 영역에서 머물다가 21세기를 넘어서면서 우리 사회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나 칼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주의 정통파 이론을 대표하였고 초기 레닌의 마르크스주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당시 사회민주주의는 현재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사회민주주의와는 달리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을 견지하는 대표적인 당파였다. 카우츠키는 독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명실상부한 대표자였고 1875년 ‘고타강령’으로 유명한 독일사회주의노동당 창당 후 1890년에 독일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 사회민주당이 1891년에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더욱 발전시킨 ‘에르푸르트 대회’에서 ‘에르푸르트 강령’을 기초한 초안자였다. 그는 이 에르푸르트 강령이 당시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자부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처럼 과학적 사회주의를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른바 ‘사회주의 문헌 중에서 팸플릿과 특수저서 사이에 중간적인 저서’로서 ‘에르푸르트 강령’ 해설서를 작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에르푸르트 강령]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에르푸르트 강령에 따라서 ‘사회주의적 관념계 중에서 본질적이면서도 또한 사회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을 알기 쉽게 서술’하면서 소경영의 몰락, 프롤레타리아, 자본가계급, ‘미래국가’, 계급투쟁 등으로 개념을 분류하여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에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문헌, 기존의 여러 반대파에 관한 공산주의자의 입장의 순서로 저술한 방식을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은 1892년 카우츠키의 초판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무튼, 대중들에게 사회민주주의를 선전·선동하는 당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저술하였으므로 학문적인 이야기보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본질적인 개념들을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여 분석하고 각 장의 각 절을 이루는 개념들이 쉽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서술한 점은 다른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서와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자본의 독점에 의해 소경영은 몰락하고 있지만 소자본은 대자본에게 철저하게 의존하면서 파산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화하여 언제든 노동력을 제공하는 ‘산업예비군’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이러한 소경영을 몰락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소경영의 증가를 촉진’시키고 있으며 대다수 노동하는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 내에서 다수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의 선진적인 부분이 노동조합운동으로 실현되고 이러한 계급투쟁은 사회주의와 접목하면서 사회민주주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것의 실현체가 사회민주당이며 그 정신이 바로 ‘에르푸르트 강령’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을 가급적 (사회주의적) 목적의식적 또는 가급적 활동목적으로 형성하는 것이 사회민주당의 임무이다. 

 

- K. J. Kautsky. [에르푸르트 강령], 

제5장 <계급투쟁> 제12절 ‘사회민주주의: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중 

 

소경영의 몰락과 대경영(대자본)에 의한 이들의 유지-‘증가·촉진’-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영세 자영업자 및 농민의 상황과 동일하다. 이러한 소경영 유산자는 고정자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옹색한 생산수단은 가지고 있지만 자본가처럼 착취자는 아니며 생활은 프롤레타리아와 다를 바 없다. 이는 또한 ‘공산주의 혁명은 비공산주의자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명제가 근거하고 있는 지점이다. 간접세를 폐지하고 소득 누진세와 부유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무상법률지원 등을 주장하는 반(反)자본주의 정치 당파로서의 사회민주당과 ‘국민’의 관계를 다루는 마지막 장의 마지막 절에서 카우츠키는 말한다. 

  

사회민주당을 강화하는 것은 비단 임금노동자의 이익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인민 중에서 노동으로 생활하고 착취로 생활하지 않는 모든 성원의 이익이기도 하다. 

  

- K. J. Kautsky. [에르푸르트 강령], 

제5장 <계급투쟁> 제14절 사회민주당과 국민 중 

  

여기까지 카우츠키는 과연 마르크스주의 정통파다운 사상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의회주의’이다. 

현재 우리 사회 한미FTA 비준무효 정국에서 다시 한 번 ‘의회주의’를 생각한다. 의회가 날치기한 한미FTA를 무효화하려면 이를 반대하는 대다수 민중이 ‘거리’에서 모은 분노의 힘으로 진보정당이 통합되고 ‘중도진보’를 표방한 ‘민주통합당’ 세력과 연대하여 정권교체를 이룬 후 결국 ‘의회’를 통해 한미FTA 문제를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바꿀 한미FTA를 중심으로 한 현 정세에서 한미FTA의 완전한 폐기를 목표로 하는 세력은 진보이고 자유무역의 환상을 버리지 못한 채 한미FTA 재협상을 목표로 하는 세력은 진보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가능할 테지만, 모든 정치세력은 이미 내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의 정권교체를 중심으로 통합 재편을 하고 있는 중이다. ‘거리’의 슬로건은 한미FTA 폐기이지만, ‘의회’의 슬로건은 재협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는  ‘의회주의’의 본질이기도 하다. 

 

프롤레타리아가 자기의식적 계급으로서 의회를 위한 투쟁(특히 선거전)에 참여하고 또한 의회에서 의석을 갖게 되면 의회주의도 역시 지난날의 본질이 변하기 시작한다. 의회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단순한 지배수단을 멈춘다. 바로 이러한 투쟁은 아직도 무관심한 프롤레타리아의 여러 계층을 분발시켜서 그들에게 확신과 희망을 고취해야 할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그것은 또한 다양한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더욱더 공고히 하나의 통일적 노동자계급으로 융합시켜야 할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그리고 최후에 의회주의는 국권을 프롤레타리아에게 유리해지도록 좌우하고 또 사정에 따라서는 일시적으로라도 얻을 수 있는 양보를 하게 하는 수단 중에서 현재 프롤레타리아에게 제공된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이것을 요약하면, 이러한 투쟁을 프롤레타리아를 그 경제적, 사회적 및 도덕적 침몰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지렛대에 속하는 것이다. 

 

-         K. J. Kautsky. [에르푸르트 강령], 제5장 <계급투쟁> 제9절 ‘정치적 투쟁’ 중 

 

독일에서 사회주의자 탄압 당시 영국의 마르크스와 엥겔스 곁에서 사회민주당 기관지 [노이에 차이퉁;Neue Zeitung] 발행까지 했던 마르크스주의 정통파 이론가 카우츠키는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가 주도하던 제2인터내셔널의 주된 경향처럼 ‘경제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정통파’인 그의 관점에서 사회민주당은 생산수단의 사유를 폐지하고 새로운 ‘조합적 소유’를 주장하지만 반대파가 공격한 것처럼 ‘미래국가’의 설계도를 제시할 수는 없다. 새로운 사회의 모든 맹아는 현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본질상 전투적 프롤레타리아의 목적의식적 분자에 지나지 않는’ 사회민주당 조차도 이러한 객관적 경제발전 법칙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의 주저 [자본론]에서 물려받은 주요한 유산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또한 자본주의가 성숙되지 않았던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레닌의 볼셰비즘을 비판했던 근거이기도 했다. 

 

‘미래국가’를 설계할 수 없는 사회민주당의 관점으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무산자 및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자가 투쟁하여 강화시켜 온 ‘의회주의’가 최선은 아니겠지만 현실적 차선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 현대사를 봐도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 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던 해방공간에서 ‘극좌파’로 분류되던 박헌영의 ‘소비에트 교조주의’도 즉각적 무력혁명이 아닌 선거와 의회 장악을 우선으로 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로 설정한 바 있다. 그리고 수 십년이 지난 현재 수많은 ‘시민 민주주의 혁명’과 온갖 개혁과정을 거치면서 최근 십 수년 간 우리 사회 모든 진보정치 세력이 추구했던 진보정당 운동도 바로 카우츠키의 노선과 정확히 일치한다. 여기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국면에서 무력했고 심지어는 전쟁을 찬성하기도 했던 유럽의 사회민주당과 이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의회의 배반에 맞서 혁명적 사고를 급진전시켰던 레닌의 고민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지금, '의회주의'의 '독재'에 의해 촉발된 한미FTA 비준무효 국면에서 그 폐기를 목표로 하는 진보정치 세력에게 ‘의회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 

 

1. [에르푸르트 강령], 칼 카우츠키 지음, 서석연 옮김, <범우사>, 2003. 

: 1875년 ‘고타강령’으로 유명한 독일사회주의노동당 결성 후 1890년에 이 당은 독일사회민주당으로 당명으로 바꿨고 이듬해인 1891년 에르푸르트 대회를 통해 사회민주당 강령을 채택하는데 이 강령이 바로 ‘에르푸르트 강령’이며 그 초안자는 칼 카우츠키였다. 이 강령에서 “사회혁명은 일거에 단호하게 행해지지는 않는다. 이런 예는 아마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혁명은 수 년 또는 수십 년 간의 정치 및 경제적 투쟁 속에서 준비되어 계급 및 당파의 세력관계가 끊임없이 융성, 쇠퇴, 소멸하는 가운데 행해지며 종종 장기간의 반동에 의해 단절되는 수도 있다”고 하며 마르크스 경제주의에 기초하여 역사적 경험은 “경제적 발전을 저지하는 모든 수단이 효과가 없거나 또는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는 고통을 도리어 크게 만든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고 본다. 한편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유해한 영향을 가능한 한 방어할 수 있는 유효한 다른 수단을 찾아냈다. 그것은 그들의 경제적 조직(노동조합)과 그들의 정치적 활동이다”. 이들 개혁은 “혁명적 견지에서도 지지”될 수 있는데, “국민대중의 프롤레타리아화,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경제생활을 지배하는 소수자로의 전 자본의 집중, 공황, 생존의 불안, 이 모든 잔인하고 광포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영향은 오늘의 소유질서의 지반 위에서는 어떠한 개혁에 의해서도-설사 그 개혁이 아무리 철저한 것일지라도- 부단히 증대하는 것을 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우츠키의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전면적인 정치권력 쟁취를 내건 레닌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와 달리 “사유재산의 몰락은 가령 그것이 언제 또 어떤 식으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어도 분명히 도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부터 계승한 지점이지만 ‘경제주의’에 매몰될 가능성이 크기도 했다. 이후 독일사회민주당은 1914년 전시공채문제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분열되었고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던 카우츠키의 중도파는 따로 떨어져 나와 독립사회민주당을, 로자 룩셈부르크의 좌파 또한 독립하여 스파르타쿠스단을 각각 결성하였다. ‘에르푸르트 강령’과 같은 경향은 우리 사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험으로서 12년간 존재했던 민주노동당의 노선이기도 했다. 번역이 다소 매끄럽지는 못하다. 

 

2. [프롤레타리아 독재/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 칼 카우츠키 지음, 강신준 옮김, <한길사>, 2006. 

: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대하여 정면으로 비판한 카우츠키의 1918년 저작이다. 제헌의회 소집과 보통선거권을 거부하고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계급관계를 토대로 한   ‘계급민주주의’에 기반하여 중앙집중 권력을 구축한 레닌의 ‘소비에트 민주주의’에 ‘일당독재’의 맹아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카우츠키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 러시아 볼셰비즘 비판의 본질적 근거는 보통선거권과 ‘의회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였다. 카우츠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다름아닌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선 프롤레타리아의 지배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한 문장의 규정으로 요약된다. 카우츠키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란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는 때때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사고를 억누르기도 하지만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획득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 성숙해 가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수단이다… 그런 조건에서 프롤레타리아가 국가권력을 잡게 될 경우 프롤레타리아는 즉각 경제발전의 방향을 사회주의로 향하게 하고, 즉시 사회의 전반적 복지를 증대시킬 수 있는 충분한 물적·정신적 권력수단을 갖게 될 것이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레닌은 카우츠키의 이 저작에 대하여 그 유명한 ‘배신자’ 낙인을 유래시킨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라는 글을 통해 ‘의회주의’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닌 ‘계급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임을 주장하였고, 카우츠키는 [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이라는 반박문건을 통해 1789년 프랑스혁명의 자코뱅주의(이른바 ‘1차 파리코뮌’)와 1871년 파리코뮌(이른바 ‘2차 파리코뮌’)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러시아 볼셰비즘을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닌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카우츠키는 이 문건에서 “전세계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운동에 돌입해 있으며 그들의 국제적인 압력은 매우 커져서 이제 어떤 경제적인 발전도 자본주의적인 성격은 물론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함께 띠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면서 사회주의 이행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토대로 “의회주의와 민주주의는 국민의 유형과 그 계층에 따라서 다양한 내용과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의회 내에서 부르주아 정당들이 우세할 경우 ‘의회주의’는 부르주아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의회 내에 사회주의 다수파가 자리를 잡게 되면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규정하며 사회주의 혁명에서 ‘국민의회’의 역할을 다시금 강조한다. ‘민주주의’와 ‘독재’를 철저히 구분하는 카우츠키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요약된다. “보통 및 평등선거권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적 지배의 특징이 아니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혁명 시기에 평등선거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차별선거를 도입했으며… 오랜 기간의 힘든 투쟁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프롤레타리아들이 보통 및 평등선거권을 쟁취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인데… 보통 및 평등선거권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주먹에 의한 계급투쟁을 머리에 의한 계급투쟁으로 바꾸는 방법이며 자신의 적들에 비해서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욱 성장해 있는 계급만이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1920년 레온 트로츠키는 같은 제목인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라는 글로 다시 카우츠키의 ‘진화론적이고 자연법적’인 사회주의 이행강령을 비판하게 된다. 

 

3. [트로츠키: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슬라보예 지젝 서문 / 레온 트로츠키 지음, 노승영 옮김, <프레시안북>, 2009. 

: 카우츠키의 논문인 [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을 같은 제목을 걸고 반박한 레온 트로츠키의 글이다.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에 대한 평생의 비판자이며 ‘불구대천의 원수’, 한편으로는 영구혁명론자이자 이후 소비에트연방에서도 끝내 복권되지 못한 트로츠키답지 않게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후 ‘일당독재’와 ‘노동의 군사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외부적으로 유럽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을 기다리면서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부르주아 계급은 물론 러시아 사회혁명당 및 멘셰비키 등 사회주의 혁명의 적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인 ‘의회주의’와 보통선거권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철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이 글의 요지다.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는 수긍이 갈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 적들과의 내전으로 인해 파괴된 러시아 산업을 지키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볼셰비키의 배타적 권력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이 묻어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의  스탈린주의와 교차점을 이루는 주장이기도 하다. 트로츠키에게 “코뮌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살아있는 부정이었다”. 그럼에도 슬라보예 지젝에 의하면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궁극적 차이점은 이것이다. 

“스탈린에게 ‘레닌은 영원히 산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외설적 영혼, 권력의 도구가 되어 인공적으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영혼으로 말이다. 트로츠키에게, 죽은 레닌은 조 힐(누명을 쓰고 죽은 미국의 노동운동가)처럼 살아 있다. 같은 이데아를 위해 투쟁하는 민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도 살아 있다.”

 

4. [로베스피에르:덕치와 공포정치], 슬라보예 지젝 서문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지음, 배기현 옮김, <프레시안북>, 2009. 

: 1789년 프랑스대혁명 당시 자코뱅주의를 통해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철저하게 구현하고자 했던 로베스피에르의 연설문 모음집이다. “이성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고, 직관 없는 이성은 공허하다”고 말한 칸트의 테제를 빌어 “공포 없는 덕은 무력하고, 덕 없는 공포는 치명적이고 완전히 맹목적이다”고 규정한 로베스피에르의 이념을 강조하고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말한다. “평상시에 인민정부를 움직이는 동인이 미덕이라면, 혁명의 시기에 그 동인은 미덕과 공포 양쪽 모두입니다. 덕이 없는 공포는 재난을 부르고, 공포가 없는 덕은 무력합니다”라고. 군주정과 당시 부상하는 계급이던 소수 부르주아지의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라 다수 가난한 계급의 더 나은 삶과 민주주의를 위해 불가피하게 채택한 자코뱅주의의 ‘공포정치’를 우리는 더 이상 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 서문을 붙인 슬라보예 지젝의 해설이다. 대다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등장하기 이전이었지만 대다수 피착취자들을 위해 “대규모의 집합적 의사결정을 추진하기 위해 위험도 감수”한 자코뱅주의의 ‘공포정치’가 “아마도…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동료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커다란 유산일지도 모른다”고 지젝은 이야기한다. “기회주의적 현실주의에 맞서며, 어떠한 고난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유라는 항구적 가치에 확신을 가지지 않는다면, 로베스피에르의 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혁명은 ‘단지 하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저지르는 또 하나의 소란스런 죄악’에 불과하다”는 서문의 결론은 피착취자의 혁명의 대부인 로베스피에르의 변하지 않는 정신을 후세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하여 준다. 나머지 로베스피에르의 길고 장황한 연설문들은 다소 지루한 점이 있기는 하다. 

 

5. [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는 명제로 시작하여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호소로 마무리되는 과학적 사회주의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주요 저작이다. 과학적 사회주의 또는 공산당(공산주의자)의 역사를 중심으로 1848년 현재 공산당(공산주의자)의 입장을 군더더기 없이 서술하고 있는데 선언문이라 그런지 명료하기는 하나 주석과 같은 예비지식 없이는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점도 있다. 레닌은 과학적 사회주의로서 마르크스주의가 세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첫째 독일의 관념론(변증법) 철학, 둘째 영국의 고전경제학, 셋째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하였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계급투쟁의 역사가 흐르면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본격적 출현과 프롤레타리아트와 공산주의자의 관계, 기존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들에 대한 비판을 곁들이고 19세기 중반 현재 온갖 반대파들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지 주장한다. 계급투쟁과 모든 반정부주의자를 포함한 국제연대를 통해 공산주의자는 ‘전체 운동의 이해’와 미래를 대변하고 적들을 공포에 떨게 하면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강력히 주장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6. [독일 이데올로기],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박재희 옮김, <청년사>, 1988. 

: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보다도 먼저였던 1845~1846년에 공동 집필한 저작이다. 칼 카우츠키의 [에르푸르트 강령]은 [공산당 선언]의 서술 형식을 따라 그 당시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해석하여 발표한 노선이라 볼 수 있는데, 역사를 계급투쟁으로 보는 관점을 중심으로 [공산당 선언]이 주로 사회주의 사상 관련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독일 이데올로기]는 새로운 (변증법적)유물론 철학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고대, 중세,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사회구성체의 역사와 그 토대를 이루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역사를 좀더 세부적으로 다루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초기 저작이자 미완의 저작이다. 아마도 몇 년 후 이 초안을 바탕으로 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이 [공산당 선언]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7. [박헌영 평전], 안재성 지음, <실천문학사>, 2009. 

: 몰락 양반가의 ‘서자’로 1900년에 태어나 1955년 북조선공화국 정권으로부터 미제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남한 공산주의 운동의 최고지도자 박헌영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남북한 단독정부 건설로 인한 분단초기와 한반도 내전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다. 소비에트연방의 스탈린과 중국인민공화국의 모택동 등의 국제적인 공산주의 지도자들로부터 ‘조선의 유일한 공산주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공산당 건설 사업에 매진하다가 해방 후 중도민족주의자들과의 연대전술을 꾀하면서 남조선노동당의 지도자로 역할을 하는데, 박헌영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식민지 해방투쟁을 벌인 국가의 혁명 단계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로 설정한 코민테른의 지침을 ‘교조적’일 정도로 준수하려 했던 ‘원칙주의자’였기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다. 월북 후에는 김일성에 의해 소위 ‘정의의 반격전쟁’으로 시작된 6.25 과정에서 전쟁을 묵인하는 등 소신없이 처신하다가 ‘패전의 원흉’이자 ‘미제의 간첩’의 혐의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역사에서 뛰어난 인물은 아닐지라도 대다수 민중들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박헌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가 관통해 왔던 우리 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평전이다.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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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을 읽는다 - 두레신서 33
루이 알튀세르 외 지음, 김진엽 옮김 / 두레 / 1991년 3월
평점 :
절판


<자본>의 철학적 독해에 관한 노트

 

 

마르크스의 이론적 혁명은 그 답의 변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변경에 있다는 것, 따라서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의 지형으로부터 과학의 지형으로 옮긴 ‘제요소의 변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 L. Althusser, <마르크스를 위하여>, 1965.

 

 

1, ‘대상(對象)’이라는 문제

 

인식과 관련된 존재론의 보편적 범주.

‘주체’와 ‘객체’로서 그 구성요소가 기본적으로 분화되는 존재론적이자 인식론적인 토대를 전제했을 때, 우리가 접하게 되는 개념들 중 하나가 바로 ‘대상’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위의 기본적 전제 하에서 인식의 행위를 하는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세계의 ‘주체’적 요소가 되는 반면, 그러한 행위 이전에 이미 존재를 이루고 있는 인간 이외의 세계요소는 ‘객체’가 된다. 이런 인식론적 관계에서 후자, 즉 ‘객체’적 세계는 인식적 측면에서 다름 아닌 ‘대상’이다. 한마디로 말해, 인식론의 기본적 범주에서 ‘객체’는 철학적으로 그 성격을 부여받기 이전에 이미 ‘대상’으로서의 자기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좀더 명확하게 이야기해보자. 인식론이라는 이론적 분파는 흔히 철학이라는 이론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즉, 인간의 인식과 인식론의 관계, 현실행위와 이론 사이의 관계가 그것이다. ‘인식’이라는 것, 그 행위 자체는 ‘인식’의 ‘이론’과 다르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당연한 말이지만 ‘인식’이라는 행위가 ‘인식론’의 이론적 출발 이전에 이미 인간생활 속에서 존재하고 있어 왔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의식적이든 자생적이든 만약 그가 유물론자라면-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개별적 행위나 현상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보편성’을 향한 그 나름의 내적인 요구에 의해 그것들의 이론을 형성하듯이, 무의식적이고 무언적인 그러한 인간 인식의 행위들 또한 위와 같이 계속 누적되고, 또 그것이 역사라는 끝없는 지평 위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그 자체의 요구에 당면하면서 비로소 탄생하게 된 역사적 산물이 다름아닌 ‘인식론’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론’의 발생, 그 역사적 경위를 본다면 그 뿌리는 바로 철학에 닿아있음을 알 수 있다. 삭막한 물질세계에서 첫울음을 터뜨렸던 인간. ‘목구멍이 포도청’이기에 살기 위해서 자신을 낳아준 물질적 자연과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런 기본적 욕구로부터 노동을 배워나간 인간. 그 과정 속에서 보다 나은 노동력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 그 자체 노동의 필요로 인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인식과 사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냥 그때그때 잊혀지고 마는 단순한 형태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마치 생식의 본능과도 같이 다음 세대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는, 그런 인식과 사유를. 그러기 위해서는 각기 행위들의 개별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이 필요했을 테고, 그 필요에 의해 보편성을 지향하는 ‘이론’이라는 것은 비로소 인간역사의 발전 속에서 그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역사 초기에, 당시의 역사적 한계로 말미암아 각기 세분화된 영역을 가지지 못했던 과학적 지식들은, 그리고 여타 ‘이론’들은 단지 ‘철학’의 동일 개념일 뿐이었다. 기원적으로, ‘이론'은 ‘과학’에 다름 아니었으며 ‘철학’ 그 자체였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넓어지고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각기 이론들도 세부영역을 점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인간은 과학1)과 철학을 동일시할 수 없게 되었다. 각각의 세분화된 과학은 고대의 철학자들-당시에는 과학자이기도 했던-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뭉뚱그린 ‘세계’라는 것을 자신의 ‘대상’으로 삼는 데 그칠 수 없게 되었으며 이제 그 나름대로의 ‘대상’들을 갖게 되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과학과 이론의 세분화와 함께 ‘대상’도 세분화되었다. 그리하여 과학은 각각의 이론적, 실천적, 실험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대상’으로부터 이론적 지식들을 생산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이제 철학은, 아주 오래 전에는 이론으로서의 과학의 모체가 되었으며 그것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철학은, 하나의 뭉뚱그려진 ‘세계’라는 막연한 자신의 ‘대상’을 갈가리 찢어진 형태로서 과학에게 넘긴 채 과학의 꽁무니만 쫓아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2)

“지혜3)의 여신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왜 밤에만 날아다니는가”라는 일견 식자연해 보이는 의문은 엄밀히 말해 “미네르바의 새가 왜 밤에만 날아다니는 올빼미일 수밖에 없는가”하는 의문으로 정정되어야 할 것인데, 아무튼 이 물음은 바로 과학의 발전과, 그것이 철학과 분리되는 역사, 세계라는 객체적 범주가 세분화된 형태로서 철학의 ‘대상’으로부터 과학의 ‘대상’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역사 속에서 풀릴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세분화된 학문으로서 과학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그 개념으로서의 과학이 태동하게 된 근대에 이미 철학자 헤겔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철학은 황혼 녘에 날개를 편다”라는 은유적 명제로 표현했다. 즉, 수많은 가지를 이루고 있는 각각의 과학이 그 자신의 지식을 생산해내는 것이고, 철학은 그 조건 아래에서만이 진정 자신의 ‘대상’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과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위와 같은 역사적 인식은 진정한 철학이 왜 유물론일 수밖에 없는가, 라는 철학적 근본문제의 해결에 좋은 증거로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철학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관념적 전통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위치에서, 전혀 ‘새로운 실천’4)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여기 하나의 함축적 문장이 있다.

 

간단히 말해 철학은 분열한다는 냉혹하고도 기본적인 사실에 관한 의식이다. 과학이 하나로 된다면 철학은 분열한다. 철학은 분열함으로써만 하나가 될 수 있다… 철학적 꼬뮈니까씨옹(communication)이란 없다. 철학적 토론이란 없다.

- L. Althsser, <레닌과 철학>, 1968.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은 그 자체의 세분화와 더불어 갖가지 혁명적인 모습들을 거쳤다. 즉, 토마스 쿤의 이론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전통적인 그것이 폐기됨으로써 결국에는 ‘진실적인’ 이론만이 남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알뛰세르에 의하면 철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즉, 과학이 그 자신의 ‘대상’에 대한 진리를 향해 ‘하나로’ 나아간다면, 철학은 그 과학적 지식에 기초하여 여러 가지 경향의 테제들을 생산하는데 이 과정은 철학의 근본문제인 관념론과 유물론으로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의 근본문제인 관념론적 경향과 유물론적 경향. 일찍이 엥겔스에 의해 정식화되었던 이 근본문제5) 속에서 양자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은 어느 시기에 한 경향이 우위를 점하였다고 하여 그 반대 경향이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철학은 역사 속에서 이 근본문제적 갈등을 무수히 반복하기만 할 뿐이다.6) 따라서 철학의 전장에서 경향성과 관련하여 근본문제에 대한 투쟁은 영속적이다.

과히 ‘철학은 분열함으로써만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적 토론은 없다’라는 명제에 관해서는 역시 과학과의 관계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바, 즉 역사적으로 철학과 인간 사상에 영향을, 그것도 아주 혁명적인 영향을 끼친 과학적 ‘대륙’은 고대 그리이스의 ‘수학의 대륙’과 중세말기의 ‘물리학의 대륙’, 그리고 근대말기의 ‘역사의 대륙’이라는 세 가지이다. 탈레스로부터 시작한 첫 번째 시기에는 플라톤에 이르러 그 철학적 정점을 이루었고 갈릴레오로부터 시작한 두 번째 시기에는 철학적으로는 데카르트로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한정된 시기 내에서 과학이 철학에-구체적으로 말해 철학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과학적인 철학적 경향은… 유물론밖에 없지 않은가- 끼치는 영향은 대략 그 즈음에서 그친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이후에 특정 ‘대륙’ 사이의 일정한 시기에 벌어지는 ‘철학적 꼬뮈니까씨옹’이라든가 ‘철학적 토론’은 예의 근본적인 경향들의 지리하고도 ‘무의미한’7) ‘세력다툼’을 반복한다. 이후의 철학적 “재탄생을 야기하는”8) 과학적 대륙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런 양상을 볼 때, 헤겔의 ‘철학은 황혼 녘에 날개를 편다’라는 명제는 옳다. 또한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관념론자인 데카르트가 그 역사적 의의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그 과학성(유물론적인)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그 ‘의의’는 근대 말에 이르러 마르크스가 ‘역사의 대륙’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철학적 사명을 마친다. 이제 역사는 역사철학이나 사회철학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의 과학이 되었고-그럼으로 인해 역사적유물론은 정당하다-, “황혼 녘에 날개를 펴는” 철학은 변증법적유물론, 유물변증법으로서 정식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무의미한’ 토론은 역사적 의미 또한 잃었다. 남은 건 주지되어 온 것처럼 ‘새롭게 만들어진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다. 철학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9)이자 정치적 계급투쟁에 있어 과학적 ‘심급’을 유지시켜주는 하나의 ‘개입으로서의’ 정치가 되었다.10)

여기까지가 과학과 철학과의 관계에 대한 알뛰세르의 입장의 대개이다.

 

철학은 다른 과학들처럼 그 나름대로의 ‘대상’을 지니고 있지 않다. 철학적 대상은 다른 과학들의 ‘대상’을 통해 생산된 과학적 지식들을 기초로 행해지는 이론적 작업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철학의 ‘대상’은 따로 존재할 수 없으며, 과학적 지식의 발견과 발전에 힘입어 우리가 지금 흔히 볼 수 있게 된 ‘~학’, ‘~론’ 등속의 것들이 모두 다름아닌 철학의 ‘대상’인 것이다.

철학의 ‘대상’은 바로 과학의 ‘대상적 지식’이다

 

2, 철학적 대상, 혹은 그것의 혁명적 전화(轉化)

 

어떤 텍스트에 대한 ‘철학적 독해’가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즉, 그 텍스트가 전통적으로 ‘표방’해왔던 특정 과학의 입장에서만 읽혀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역사 위에 올라설 수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역사,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과학으로서의 역사이다.

반면, 특정 과학의 틀 속에서만 이해된 텍스트는 관념의 나열, 혹은 기껏해야 사건들의 단순한 열거로서의 역사 이상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 그 자체로 과학으로서의 역사는 그 내부로부터의 혁명적 전화를 통해서만이 실로 제 위치를 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보의 역사가 출발하게 되는 지점이다.

마르크스의 <자본> 또한 하나의 과학적 텍스트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이론적 원천11) 중 하나인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이라는 하나의 ‘과학’으로부터 출발하며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자본주의 일반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저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본>은 ‘경제학’이라는 특정 ‘과학’의 눈으로 읽어서만은 안되는 이론서이다. 만약 기존 경제학의 분석틀로 해석을 한다면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이야기하고 있는 계급투쟁으로서의 현실 사회구성체를 진정한 ‘대상’으로서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비록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이라는 과학적 학문이 마르크스주의의 주요한 사상적 원천이라고는 하나, 마르크스 자신은 <자본>을 비롯한 그의 저서 속의 어느 한 문장에서조차도 고전파 경제학을 ‘경제학’적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다. 즉, 모든 개인이 ‘공정한 룰’에 의해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한다는 이론적 전제를 하고 있는 아담 스미스를 읽을 때도, ‘노동의 가치’, 가치를 생산해내는 담지자로서의 노동의 발견을 이야기하고 있는 데이비드 리카아도를 읽을 때도 마르크스는 전혀 ‘경제학’적인 시각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칭 ‘순수이론’이라고 자부하는 고전파 경제학이나 근현대의 주류경제학과는 다르게 현실 사회구성체 그 자체를 자신의 ‘대상’으로 하면서 연구를 출발할 수 있었고, 엥겔스가 말한 것처럼 ‘역사적유물론’과 ‘잉여가치’라는 두 가지 위대한 역사적 발견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유물론적 사고체계에서 언급하고 있는 ‘정치경제학’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학과 정치경제학의 차이는 무엇인가.

도식적일지는 모르지만 단언하자면, 그 ‘개별과학’ 속에 철학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 다시 말하면 ‘대상적 전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철학의 눈으로써 그 과학을 읽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즉, ‘순수이론’이자, 단순한 ‘개별과학’으로서의 전자에는 철학적 사고가 수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경향의 한 측면에서는 현실에서 정치, 즉 힘의 관계로서 현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정치-과학으로서의 ‘정치학’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를 대변하는 존재로서의 ‘철학’을 전혀 상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2) 만약 이러한 ‘순수이론과학’에 위와 같은 철학이 개입을 하게 된다면, 우리의 ‘순수성’은 더 이상 그 어디에서고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은 다르다. 정치경제학은 그 자체로 유물론적 사고에서만이-엄밀히 말하면 유물변증법이다- 가능한 과학분야이므로 당연히 이론의 ‘순수성’을 현실과 유리시키지 않는다. 정치경제학은 더 이상 ‘순수성’을 자신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정치경제학의 대상은 과학의, 나아가 이론의 원료로서의 현실, 바로 현실 그 자체일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본>을 가지고 ‘순수한 이론서’라고 규정하는데 무리수가 개입된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상적 평균’13)으로서 <자본>이 서술하고 있는 이론적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유물론적 전제에 입각하여 이미 위와 같은 ‘철학적 독해’와 그로 인한 ‘대상적 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현실적 이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이 말하고 있는 ‘이상적 평균’으로서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또 다시 현실을 분석하는 자료와 기준으로서 객관적으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경제학은 역사라는 ‘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계급투쟁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 온갖 ‘순수성’의 장식으로 꾸며진 ‘이윤’만이 아닌 계급사회에서의 인간노동을 통해 발생하는 ‘잉여가치’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상’,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철학적 대상’의 전화, 그것도 ‘혁명적’인 전화이다.

‘대상’에 대한 정확한 규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이론적 작업이라며 ‘순수성’이라는 이름으로 현실 위에 또 하나의 ‘왕국’14)을 만들고 있는 ‘대상’의 오류들에 대한 정정과 나아가 그것의 ‘혁명적’인 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3, <자본>에 관한 철학적 독해

 

철학은 이미 우리의 ‘순수이론’으로서의 ‘경제학’에 개입되어 존재한다. 설령, 경제학이 자신의 독립성을 내세우며 이러한 진리를 부정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자본>의 경제학’이라는 것은 고전파 경제학과 주류경제학이라는 개념들에 빗대어서 쓰이는 하나의 은유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정치경제학을 지칭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의 윗부분에서 우리가 짧고도 미흡하게나마 고찰한 것, 그것들에 전제한 채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철학적 독해’에 대해 언급할 수가 있고, 또한 그것에 대해 언급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지하다시피, 과학적 대상, 그리고 그런 대상적 지식 자체는 철학이라는 이론적 작업에 의해 그때그때 역사적으로 규정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다른 여타의 과학-경제학도 예외일 수는 없이-과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철학에 의한 ‘대상’의 규정, 재규정과 나아가 그것의 혁명적 전화는 과학의 진보에 필수불가결한 이론적 작업이며, 그 작업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텍스트에 대한 ‘철학적 독해’인 것이다. 마르크스가 사용한 읽기 방식도 바로 이것이었으며, 또한 아무런 경향성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새로움만을 요구받는 현재의 우리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읽어야 하는 방식도 바로 이래야 하는 것이다.15)

철학적 독해, 그것의 필요성은 죽은 마르크스를 대신하여 <자본> 2권을 출간했던 엥겔스에 의하여 이미 언급되어 있는 바, 이 글을 맺으면서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만 하다.

 

선학(先學)들이 해답을 본 곳에서 그-마르크스-는 문제만을 보았다.16)

 

(1998년 2월)







1) 여기서 계속 언급되는 ‘과학(科學)’이라는 것은 주지하다시피 자연과학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적이고 이론적 행위들 속에서 점점 세분화된 학문, 각각의 이론적 영역들을 말하는 것이다.


2) 이하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철학에 대한 L. Althusser의 테제들, 즉 “철학의 새로운 실천”과 관련된 주장(<’자본’을 읽는다>, <레닌과 철학>,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을 참조하고 있음을 밝혀 둔다. 또한 각각의 명제들을 인용할 때에는 그때그때 출처를 밝힐 것이다.


3) 철학의 어원이 ‘philos(사랑)’와 ‘sophia(지혜)’의 합성어인 ‘philosophy’라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철학적 행위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선다. 즉, 철학은 각각의 지식들의 보편화, 이론화, 그리고 그 운용에 관한 학문이다.


4) 12) 참조


5)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1888.

엥겔스는, 철학에 있어서 이러한 근본적인 두 경향 사이의 문제는 고대철학의 발생 때부터 꾸준히 존재해 왔지만 결정적으로 중세사회에서 교회, 즉 종교적 논리가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때 본격적으로 ‘첨예화’되었다고 쓰고 있다.

“… 신이 세계를 창조했는가, 아니면 세계는 영원히 존재해 왔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진다. 자연에 대해 정신의 일차성을 주장하고, 따라서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세계창조…를 가정하는 사람들은 관념론의 진영을 구성했다. 한편 자연을 일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학파의 유물론에 속한다.

관념론과 유물론이라는 이 두 가지 표현은 원래 바로 그러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ibid.)


6) 이하, 약간 언급되듯이, 철학은 과학적 지식의 발견이라는 각 계기를 거친다. 예를 들면 갈릴레오에 의해 정립되기 시작한 역학적(力學的) 발견-그 자체로 과학적 혁명-은 데카르트 철학의 유물론적 성격에 의해 ‘철학적으로’ 재정립되며, 이후 마르크스가 역사라는 ‘과학적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까지 관념론과의 지리한 투쟁을 반복한다. 하지만 역사라는 ‘대륙’의 발견 이후 그것은 다시 유물론적 재정립으로 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7) 비록 레닌의 말처럼 인류가 존재하고 또 그들이 사고를 하는 한 철학적 관념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경향이 인간이 만들어온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책동에 철저히 복무하게 되기 때문에 계급투쟁으로 현상하는 과학적 입장에서는 더더욱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8) L. Althusser, <레닌과 철학>, 1968.


9) 철학은 이론에 있어서 계급투쟁을 나타냅니다…”  - L. Althusser, <마치오키와의 대담>, 1968.


10) ”철학은 이론 형식 내에서 수행된 정치적 개입의 실천이다…”  - L. Althusser, <헤겔 이전의 레닌>, 1969.


11) V. I. Lenin이 마르크스 사후 30주년을 기념하여 1913년 4월 볼셰비키의 합법적 월간이론지 <프로스베시체니에>에 게재한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부분>이란 소논문 참조.

레닌은 이 글에서 인류의 전통을 가잘 잘 계승한 사상은 마르크스,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이며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천과 구성부분’을 가진다고 쓰고 있다. 즉 (1) 근대 계몽기의 기계적 유물론과 독일 고전철학의 사변적 변증법의 결합으로서 ‘변증법적유물론’, (2) 영국 고전파 경제학의 노동가치설을 토대로 한 ‘정치경제학’, (3) ‘자유와 평등’의 기치로 일단의 봉건주의를 타파하고자 했던 프랑스 ‘공상적 사회주의’ 등이 그것이다.


12) ”… 철학은 어떤 영역에 있어서 어떤 현실에 관한 정치의 어떤 연속이다. 철학은 이론 영역 내에서, 보다 정확히 말해 과학 곁에서 정치를 대변한다. 그리고 역으로, 철학은 계급투쟁에 참가한 계급 곁에서 정치의 과학성을 나타낸다… 마르크시즘은 실천의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다.”

- L. Althusser, <레닌과 철학>, 1968.


13) 마르크스는 <자본>의 모델로서 당시 자본주의 최고 발전국가였던 영국을 상정하였지만, <자본>에서 영국자본주의를 개별적으로 논하지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 체제의 제 요소를 ‘이상적’이고 이론적으로 보편화하면서 자본주의 체제 일반에 대한 하나의 ‘이상적 평균’을 <자본>이라는 저서를 통해 구성하고 분석, 비판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L. Althusser, <자본을 읽는다>, 부록 <’이상적 평균’과 이행형태들에 대하여>, 1965, 두레, 김진엽 譯, 1991. 참고.


14) K. Marx,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중 4번째 테제

“… 세속적 토대가 자기자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스스로 구름 속에서 하나의 독립적 왕국으로 자리잡는다는 사실은 오직 이 세속적 토대의 자기분열과 자기모순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15) L. Althusser, <’자본’을 읽는다>, 제1장 참조


16) F. Engels, <자본> 2권 ‘서문’, 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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