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1번지 경주 - 2박 3일 경주 제대로 즐기기
최동군 지음 / 도서출판 담디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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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정보] 2박3일 '경주답사'

* 1일차
- 대릉원 (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 등)
: 박,석,김씨가 돌아가며 왕이 되었던 신라에서 최초의 김씨왕이었던 미추왕릉과 황남동에 있는 가장 큰 쌍무덤인 황남대총 발굴전 연습삼아 팠다가 천마도를 비롯하여 보물대박맞은 천마총이 있다. 주인이 밝혀진 묘는 미추왕릉 뿐인데 김씨 자손들이 관리한다고 문을 안 열어준다.
- 첨성대 
: 선덕여왕때 지은 천문관측대로서 별로 높지도 않은 구조물에서 별을 관측했다기 보다는 권력을 자랑하는 상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답사의 출발점으로 삼으면 된다.
- 언양 불고기 
: 옛날에는 유명했으나 지금은 실질보다는 명성만 남아 비싸기만 하다. 경주에서는 40분 걸리는 언양보다 좀더 가까운 봉계를 가란다. 도축장이 언양에서 봉계로 옮겼다나.

* 2일차
- 분황사지 모전석탑 (신라 탑 형성기)
: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 '스투파'의 뜻은 '무덤'이다. '스투파'가 중국 한자로 '탑파'가 되고 우리에게 넘어와 '탑'이 되는데, '석탑'은 '석조탑파'의 준말이며 원래 '탑'은 부처님의 존엄한 사리를 묻은 '무덤(스투파)'으로 원시적 탑은 건물과 같은 크기였으나 시간이 흐를 수록 불상을 모신 금당과 함께 작게 지어지게 된다. 분황사지 탑은 현재 남은 신라 탑 중 가장 오래된 탑으로 돌을 벽돌처럼 가공한후 쌓아 올렸다 하여 '모전석탑'이다. 원래 9층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훼손되었다. 원효대사가 머물며 저술활동을 했다는 분황사 또한 현재 약사여래 한 분만 남았다.
- 황룡사지 
: 신라에서 가장 높았을 높이 80m 황룡사 9층 거대목탑이 있던 절터로 분황사 바로 옆이다.
- 불국사 (토함산 불국사)
: 현세의 석가여래를 모신 대웅전 마당에는 신라탑 완성기인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고, 바로 서쪽에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가 있는 극락전, 더 높은 곳에 청정법신 비로나자불을 모신 비로전 등 부처님의 나라 '불국'을 형상화한 우리 사찰 가람배치의 표본이다. 돌들의 자연적인 형태와 어우러진 건축기법에  산세를 이용한 다른 절들과 달리 산중턱 평지에 조성한 사찰로서 청운교/백윤교 등의 인공적인 계단을 통해 부처님의 세계로 진입하는 구조이다.
- 석굴암 (토함산 석불사)
: 신라 재상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석굴암)를 지었다고 한다. 일제의 시멘트 보강으로 습기와 이끼가 계속 차서 지금은 유리로 막아 에어컨으로 건조시키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근처 신라역사과학관에서 볼 수 있단다. 신라불상의 완성기 부처님이다.
- 장항리 사지 5층 쌍탑 (신라탑 변화기)
: 불국사와 문무대왕릉 사이 장항리에 있는 이름모를 절터에는 신라탑 변화기의 탑이 산중턱에 있다. 계곡을 건너 103개의 나무계단을 오르면 고즈넉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 감은사지 3층 쌍탑 (신라탑 형성기 말기)
: 문무왕을 기리기 위해 문무대왕릉 옆에 조성했다는 감은사 터에 남은 쌍탑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있는 고선사지 석탑과 비슷한 시기 석탑양식이란다.
- 대왕암 (문무대왕릉)
: 신라를 통일한 문무왕이 죽어서라도 왜구를 막겠다면서 묻혔다는 동양 유일의 수중릉이며 호젓하게 바닷가를 거닐 수 있다.
- 감포항 (대게, 회) : 경주의 항구
- 안압지 (동궁과 월지) 
: 신라 태자들 궁이며 국가행사를 열던 곳으로 오리와 기러기가 찾아와 안압지라 한단다. 야경을 볼 수 있도록 밤 10시 넘어까지 개장한다.
- 그 외 시간되면 김유신묘, 태종무열왕릉 등도 돌아볼 수 있다.

* 3일차
- 경주 남산 (마애불 군락)
: 토함산과 함께 '경주5악' 중 하나라는 궁궐 남쪽 남산에는 바위에 부조로 새긴 마애불이 많다.
- 경주민속박물관 (경주답사 총정리)
: 성덕대왕신종과 고선사지 석탑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보들이 모셔진 박물관에서 경주답사를 마무리한다. 어느 지역이든 박물관을 들러 그 지역의 역사를 총정리할 것을 강력 추천한다.

* 참고서적
- [답사여행 1번지 경주], 최동군, <담디>, 2016.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유홍준, <창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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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8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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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회] 제10차 독서회 -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이라는 우리의 '무기'
- [해방전후사의 인식],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등


박근혜 파시즘의 '수구독재'와 '여소야대'에도 불구하고 보수야당들의 우경화로 인한 '의회반동'의 지금 시대를 헤쳐나가는 길은 우리 역사에 대한 철학적 관점과 이를 무기로 한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 분석'입니다.

산별교육원의 날 - '수요회' 제10차 모임은 1989년 완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6권을 중심으로 하여, 일제강점기 조선과 해방공간(1945~1948) 한반도의 '사회구성체'를 보는 관점으로서 '사회과학방법론'에 대한 논의를 하였습니다.

1. 사회과학방법론 

사회과학방법론은 이론적 전개 속에 사상적, 철학적 원칙을 관철시키는 방법으로서 개별적 대상으로서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합법칙적 내용을 담은 원칙을 적용시키는 방법적 원리이며, 개별적 대상의 제 현상형태를 본질적 관계 속에서 전체로서 파악하기 위한 방법론적 원리입니다. 즉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적 방법론'입니다.
사회과학방법론에서 중심이 되는 문제는 보편적 원칙과 보편원칙에 입각해 개별적 대상의 다양한 모든 현상형태를분석하는 보편과 개별의 통일 문제이고, 따라서 방법론에 있어서는 특수성이 그 중심범주가 됩니다.

사회과학의 철학적 원칙이자 방법론적 전제로서 기본범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계급성 : 사상, 이론은 계급적 존재를 반영하므로 특정 계급의 세계관으로서의 철학(변증법적 유물론)
2) 객관성 : 사회적 존재(토대:경제적 생산양식)가 사회적 의식(상부구조:정치,사상,이데올로기등)을 규정한다는 역사적 유물론
3) 총체성(전체성) : 전체의 한 계기로서 여타 관련 개별대상간의 관계속 사유
4) 특수성 : 개별과 보편, 보편성과 개별성의 통일 속에서 구체적 대상의 특수성 규명

2. 사회구성체론

포괄적 개념인 '사회(Society)'와 '사회구성체(Social Formation)'는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사회'는 정태적, 현상적 개념인 반면, '사회구성체'는 본질적, 동태적 개념으로서 그 토대(경제적 생산양식)의 '이행'과 '발전경향'을 전제로 합니다.

20세기초 각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동아시아(중국,일본,조선)적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승리한 이론은 일제강점기 조선을 '식민지반봉건제' 사회로 규정한 측이었던 바, 이 관점은 이후 해방공간의 미군정 시기와 남한 근현대화 과정에서도 '주변부반자본주의' 등의 과정도 잠시 있었으나 주류 사회구성체 이론을 구성합니다. 이들은 '민족해방파'의 관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민중민주파' 입장에서는 식민지 시대의 봉건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발전경향이 있었음을 주목하며 해방공간 사회구성체를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사적 시장조절 메커니즘'으로서의 '독점자본주의'와 이를 통제하는 '공적 메커니즘'으로서의 '국가'가 단일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김세균 교수)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이에 국제정치의 제국주의적 종속성를 결합한 이론이 바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구성체 이론입니다.

이후 6.25 한국전쟁의 기원과 의의를 서로 논하는 과정을 거치고 결국 이러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2016년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관한 열띤 논의가 있었습니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관점과 입장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의 관점으로서 '사회과학방법론'과 사회경제적 토대의 발전과 이행을 전제로 해당 사회의 성격을 유물론적으로 규정하는 '사회구성체론'은 더 나은 세계를 기획하는 사람들의 유용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노동개악 저지!"

* 참고
- 이진경,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1987.
- 김세균, [(종속적)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1999.
- 박명림, 백일 외, [해방전후사의 인식] - 6권, 1989.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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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7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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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잊혀진 역사'를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 - [박헌영 평전]과 [이현상 평전], 안재성 


일제강점기 단 한 번도 일제에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 대다수는 '공산주의자'였다. 

해방공간에서 미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남북의 단독정부가 들어선 후 그 불굴의 '공산주의자'들은 잊혀졌다.

'조선의 레닌' 박헌영과 '조선의 체 게바라' 이현상 등 항일독립운동가들에 관한 '일제강점기 노동운동사 전문작가' 안재성 선생의 저서들을 읽어보는 것도 '잊혀진 우리 현대 역사'를 찾는 하나의 방법이다.


1. [박헌영 평전], 안재성, <실천문학사>, 2009.

: 몰락 양반가의 ‘서자’로 1900년에 태어나 1955년 북조선공화국 정권으로부터 미제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남한 공산주의 운동의 최고지도자 박헌영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남북한 단독정부 건설로 인한 분단초기와 한반도 내전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다. 소비에트연방의 스탈린과 중국인민공화국의 모택동 등의 국제적인 공산주의 지도자들로부터 ‘조선의 유일한 공산주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공산당 건설 사업에 매진하다가 해방 후 중도민족주의자들과의 연대전술을 꾀하면서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지도자로 역할을 하는데, 박헌영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식민지 해방투쟁을 벌인 국가의 혁명 단계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로 설정한 코민테른의 지침을 ‘교조적’일 정도로 준수하려 했던 ‘원칙주의자’였기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다. 월북 후에는 김일성에 의해 소위 ‘정의의 반격전쟁’으로 시작된 6.25 과정에서 전쟁을 묵인하는 등 소신없이 처신하다가 ‘패전의 원흉’이자 ‘미제의 간첩’의 혐의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역사에서 뛰어난 인물은 아닐지라도 대다수 민중들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박헌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가 관통해 왔던 우리 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평전이다.


2. [이현상 평전], 안재성, <실천문학사>, 2007.

: 1905년에 충남 금산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6.10 만세운동' 등 일찍부터 항일운동을 시작한 매우 과묵한 인물로서 일제강점기 내내 민족해방, 계급해방의 염원으로 수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단 한 번도 일제에 굴하지 않아 일제경찰로부터 '고문강자'라는 별명까지 얻어낸 '강철'과도 같은 캐릭터의 소유자이다. 이재유, 김삼룡과 함께 '경성트로이카', 박헌영, 이승엽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 '경성콤그룹'을 주도하며 남로당 최고간부를 역임하다 1948년 '여순반란'을 계기로 이후 5년간 그 유명한 '빨치산 부대'를 이끌었다. 공식 직함은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다. 일제강점기 항일의 최전선에서, 해방후 항미 유격대를 이끌던 중 6.25 전쟁을 맞았고 '남조선 후방 교란의 임무'를 수행했다지만, 이현상이 이끈 '빨치산'은 우리땅을 다시금 지배하려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 미국에 항전하는 '항미 유격대'였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남북의 정권으로부터 배제되어 외롭게 하산하던 중 사망한 그는 '조선의 체 게바라'였다. 이현상 사살을 둘러싸고 군경이 서로 '공적'을 경쟁하였는데, 초왕 항우가 죽은 후 '공적'을 위해 한나라 장수들이 사지와 머리를 찢어가는 [항우본기] 기록이 떠오르기도 하나, 어쨌든 이현상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저자 안재성은 그의 죽음을 이렇게 정리한다.

"이현상은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가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누가 어떻게 죽였든 그의 죽음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 민족해방의 이름으로, 계급해방의 이름으로, 그리고 인간해방의 이름으로,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던 한 따뜻한 인간의 죽음일 뿐이었다. 지리산에서 죽어간 수많은 유격대원의 죽음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 민족사의 비극일 뿐이었다."


3. [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 파와 순수의 시대를 살아간 항일독립운동가 19인 이야기], 안재성, <인문서원>, 2015.

: 박헌영, 이현상을 비롯하여 김삼룡, 이주하, 이관술, 이승엽, 이강국, 최용달, 김무정, 박진홍, 김원봉 등 불굴의 항일독립운동을 했으나 남북의 역사에서 잊혀진 위인들의 열전이다.


***


남북의 현대사에서 '잊혀진'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강자에게는 굽힘없이 강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약했던 그들의 독립운동이 위대한 이유는,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더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존경과 사랑', '인간해방'의 원대한 목표를 꺾지 않았기 때문이다.


'잊혀진 역사'를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는,

지금은 당장 도달할 수 없어도 굽히지 않고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인류의 위대함'을 다시금 되새기기 위함이다.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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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기원 사회주의 역사 탐색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손규태 감수 / 동연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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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 ''이 아닌 '반란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1602)

 

 

 

"... 역사의 연구, 장기간에 걸친 사회의 발전 경로에 대한 개관과 이해보다 이를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좀처럼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사회적 통찰, 자아의식, 정치적 성숙, 거시적 사고를 가져다 주려면 '유물사관'의 도움을 받아 역사적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과거의 연구는 단지 호사가의 골동품 수집 취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의 달성을 재촉하기 위한 현재의 투쟁에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 <서문>, 1908.

 

영국 BBC 다큐멘터리 작가 헨리 링컨은 [성혈과 성배](1981)를 통해 구세주(메시아) 예수를 ''이 아닌 '인간'으로서, 그것도 4세기 유럽의 메로빙거 왕조를 통해 자손을 잇고 현대 유럽에서 '유태왕국'의 재림을 도모하기 위해 '유력자' 가문들을 장악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추적한 바 있다. 로마 제국에 대항한 '유태왕족' 예수의 반란 실패 후, 그의 '부인' 마리아는 예수의 자손(성혈)을 잉태한 '성배'로서 유럽 왕가에 침투했고, 예수를 사이에 두고 마리아 집안과 '경쟁적 제자' 관계에 있던 베드로는 예수의 '신격화' 교리를 전세계에 유포하며 현재의 '종교권력'이 되는 등 예수 종파를 분화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은 예수 후손의 가계도(성혈과 성배)를 추적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예수'라는 가설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역사가 칼 요한 카우츠키는 그보다 이전인 1908년에 [그리스도교의 기원]이라는 저작으로 '반란자로서의 예수'라는 가설을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종교적 본질을 파헤친다. 카우츠키는 유태계에서 흔한 이름인 '예수'라는 '인간'이 어떻게 '메시아'로서 출현했고 어떻게 이례적으로 부각될 수 있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당시 로마 제국의 '노예경제'라는 사회구성체의 토대와 '국가제도(고리대금업과 속주약탈)' '사상과 정서(개인주의 철학)'의 상부구조에 대한 분석을 선행한다. 이것이 '역사가'인 카우츠키가 말한 '거시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유물사관' '역사의 연구'이다.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많지 않았던 대도시는 없었다. 로마 다음으로 예루살렘이 적어도 상대적으로는 그런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가장 많이 몰려있던 도시였다."

-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 3부 제2, 1908.

 

'무산계급'을 이르는 프롤레타리아는 로마 시대 노예에서 면천된 후 도시에 운집하며 로마 민주정(공화정)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다수를 이루던 계층(소상인,걸인,자유노동자)에서 유래하는데 이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대다수가 된다는 것은 노예경제의 몰락을 징후한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대산업 생산양식에서 일체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로부터 배제된 채 일체의 '사회적 노동'을 담지하는 '노동계급'이라는 점에서 자손생산 기능 밖에 없던 로마의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다르다.

초기의 원시 그리스도교는 로마 시대 프롤레타리아의 공동체에서 출발하면서 반로마 기치를 내건 민족주의적이고 계급증오에 기반한 메시아적이고 폭력적 민주주의 이념에 기반한다.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의 그리스어)의 십자가 처형 이후 4(마가,누가,마태,요한) 복음서들은 최초 '폭력적 반란의 지도자'였던 예수의 출생과 죽음, 부활에 대해 상호모순된 보도를 하면서 결국 예수의 '폭력성' '평화주의'로 기록하는데, 이는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의 몰락과 로마 제국지배의 공고화에 기인한다. , 로마 제국의 지배가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민족적 메시아주의'가 유태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메시아주의'가 되고, 나아가 '국제적 메시아주의' 양태를 띄며 '신격화' '평화주의' 외피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모순이 없는 종교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만큼 모순과 엉터리투성이인 다른 종교는 좀처럼 없다... 그리스도교는 유태교에서 로마 양식으로, 프롤레타리아 공동체에서 세계 지배자로, 공산주의 조직에서 모든 계급들에 대한 착취의 조직으로 진화했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2, 1908.

 

헨리 링컨의 [성혈과 성배] '과격성' '급진성'으로 인해 유태인들로부터도 박해받고 고립되면서 로마를 당장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예수의 반란조직이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의 '타협'을 통해 '십자가 처형' '부활' '연극'을 연출함으로써 훗날을 도모한다는 음모적 가설까지 내세운다.

한편, 카우츠키는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는데 탁월하게 적합한 제도들을 갖춘 조직을 물려준 점(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2)"에서 당시 다른 메시아주의와 차별성이 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진화를 설명하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교는 300년 이상 투쟁하고 변화 및 발전하면서 로마로부터 국교로 공인된다.

 

"유태공동체가 왕족혈통을 지닌 그 메시아에게서 바랐으나 헛수고였던 것이 프롤레타리아 출신의 십자가에 매달린 메시아에 의해 달성되었다. 그는 로마를 제압했고 황제들을 무릎 꿇게 했으며, 세계를 정복했다. 그러나... 그 승리로 돌아간 싸움의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적... 조직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배와 착취의 기계(교회)로 변형되었다. 이 변증법적 과정은 전례가 없지 않다... 카이사르와 나폴레옹도 민주주의의 승리에서 등장했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2, 1908.

 

'십자가 처형' '부활'이라는 '투쟁교리'(같은책, 3부 제2)를 가능하게 한 '반란자' 예수의 '수난' "유태 민족의 수난사의 증거"(같은책, 4부 제4)에 불과하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확대발전 과정에서 '주교'의 권한이 강화되고 결국 가톨릭 교회(Katholikos;'전체교회' 또는 '보편적 교회') 체제가 확립된다.

 

"현대의 절대왕정이 봉건귀족 계층과 부르주아지간의 계급전쟁에서 성장했듯이, 교황의 절대왕정은 주교 귀족계층과 수도자들, 곧 수도원식 대농장 소유자들간의 계급투쟁에서 성장했다. 교회의 상승적 발전은 교황권의 공고화로 결말을 맺는다... 교회는 철저히 반동적인, 사회에 유해한 제도가 된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5, 1908.

 

''이 아닌 '인간'이자 '반란자'로서의 예수를 역사적으로 규명하면서 카우츠키는, 20세기초 "사회민주주의는 그리스도교와는 완전히 다른 경로로 집권(같은책, 4부 제6)"하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지극히 낙관적인 결론에 이른다.

 

"현대의 공산주의는... 오직 전체의 사회생활을 지배하고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의 획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런 힘은 국가권력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통함 힘의 쟁취가 현대 공산주의 실천의 첫번째 조건이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6, 1908.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민주주의의 붕괴와 일치한다. 그것이 공인되기까지 300년간의 발달기간은 자치의 모든 흔적의 지속적인 퇴화시기였다. 이는 그 시대가 생산력의 지속적인 퇴화시기였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노동자 운동은 민주주의의 가공할 승리인 프랑스 대혁명에서 출발한다. 그 이후로 흘러간 한 세기는 온갖 변천과 격동을 거치면서도 민주주의의 끊임없는 전진, 생산력의 그야말로 거짓말같은 증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크기만이 아닌 독립성과 현명함의 증대도 가리켜 준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4부 제6, 1908.

 

(2016 2)

***

1. [그리스도교의 기원],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 “…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흥기를 자신의 필생의 업으로 삼은 모든 이들의 의무는프롤레타리아들에게 거시적 관점, 거시적 관계들, 거시적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의 연구, 장기간에 걸친 사회의 발전 경로에 대한 개관과 이해보다 이를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좀처럼 없다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사회적 통찰, 자아의식, 정치적 성숙, 거시적 사고를 가져다 주려면 유물사관(역사적 유물론)의 도움을 받아 역사적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과거의 연구는 단지 호사가의 골동품 수집 취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의 달성을 재촉하기 위한 현재의 투쟁에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서문>과 함께, 사회민주주의 역사가 칼 요한 카우츠키는 로마 제국의 하부구조로서 노예경제의 쇠퇴를 토대로 하여 고리대금업과 제국의 속주 수탈(세금 및 노예노동력)두 가지 착취제도에 기반한 국가제도독점성과 개인주의, 신비주의 철학이 팽배한 사상과 정서등 상부구조 분석을 선행한다.

“(로마) 공화정 말기에 주로 정치적 목적에서였지만 또한 상부상조의 목적에서도 클럽과 협회를 결성하는 추세가 두드려졌다. 황제들은 그것들을 해체했다. 사회적 조직체들보다 독재권력이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국가권력이 유일한 사회의 조직체이고, 국민은 국가에 대하여 뿔뿔이 흩어진 개인으로서만 존재할 때 그 권력을 가장 크다그런 상황에서 조직 열망은 비밀결사에 의존하게 되었다우리는 그리스도교에서 형성된 유일신상에는 플라톤 이래로 점점 더 유일신론을 향해 가던 철학보다 황제의 독재가 적지 않게 기여한 것을 보게 된다.”(2부 제3)

이스라엘에서 농민층의 몰락과 따라서 국가의 몰락은 나중에 로마에서도 그러했듯이 불가항력이었다.”(3부 제1)면서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생성과 그의 원인으로서 노예경제의 쇠퇴를 분석하면서 예루살렘 또한 그러한 사회체제였음을 밝힌다.

그러한 무산 민중계층들(프롤레타리아)은 다수가 몰려든 곳에서는 (로마처럼) 특히 전투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그들에게는 가진 자들처럼 잃을 것이 없다다수거리투쟁의 두각평상시에 프롤레타리아들은 바리사이파(부르주아 민주주의?) 사람들의 지도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로마간의 대립이 첨예화되고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소심해졌으며 앞으로 나서는 프롤레타리아 계층과 점점 더 갈등관계에 들어갔다농민의 지지… (사두가이파의 가혹한) 세금과 고리대금산적들이 내걸고 싸운 기치는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메시아) 부활에 대한 믿음은 투쟁의 교리였다.”(3부 제2)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의 파괴 후 로마의 지배가 공고해지자, 기원전 150년부터 공산주의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던 에세네파를 제외한 다수 유태종파(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는 로마와 타협하게 되는데, 이른바 열심당이라는 정파로서 젤롯당과 예수의 반란조직 또한 유태종파로부터 박해를 받아 고립되는 처지에 있었다. 후대 복음서들의 보도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 당시 잔인하기로 유명한 당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의 죄명을 밝히지 못하였으나 다수 유태인들의 기소를 토대로 예수를 십자가 처형했다고 한다. 이후 부활의 투쟁교리를 통해 존속하던 예수 반란조직은 부유한 동지들을 끌어들여 계급증오를 탈색하고 기회주의적, 수정수의적으로 변질되는 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확장되면서 기존의 사도예언자들 대신 부유하고 교육받은 교사들의 입지가 넓어지고 조직의 행정관리 필요에 따라 주교”, “부제”, “장로지도자들의 독재가 강화된다. 한편으로 노예경제붕괴의 흐름을 타고 수도원조직이 기존 노예의 노동에 기반했던 대농업(라티푼디움)을 물려받아 농촌에서 대농장을 운영함으로써 농노의 노동에 기반한 봉건경제의 토대를 세우게 된다. 전유럽적 교회권력과 대농업의 발전이 결합한다.

“… 다수의 결정이 대표(주교)를 파견한 모든 공동체들에게 구속력을 갖게 되었으며, 그 공동체들을 통일된 탄탄한 몸으로 융합그리하여 가톨릭 교회(Katholikos;전체교회,보편적 교회)가 만들어졌다.”(4부 제5)

이 책의 결론과 같은 제4부 제6 <그리스도교와 사회민주주의>에서 카우츠키는,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그 근원적 본질의 정반대로 변했을 때 비로소 성공을 거둔 것, 그리스도교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아니라 이들을 착취하고 지배한 성직자 계층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그리스도교는 전복세력이 아닌 보수세력으로 억압과 착취의 새로운 버팀목으로서 승리했다는 것, 그것은 황제의 권력, 노예제, 민중의 헐벗음, 소수의 손아귀에 부가 집중되는 것을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공고화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스도교의 조직인 교회는 그 원래의 목표들을 포기하고 그 반대의 것을 감싸는 것으로써 승리했다.”면서, 로마 제국과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차이로 인해 로마 제국에서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투쟁능력과 투쟁의욕이 계속 감퇴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상승하며, 계급대립은 때를 기다리며 날카로워져 간다.”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 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확고히 한다. 카우츠키의 결론은 이렇다.

발흥하는 그리스도교의 시대가 슬프기 짝이 없는 정신적 쇠퇴의 시대, 우습기 그지없는 무지와 극히 우둔한 미신이 급증하던 시대라면, 사회주의의 발흥시대는 자연과학의 눈부신 진보시대, 사회민주주의에 사로잡힌 민중에게서 교양의 급속한 증대시대이다그리하여 사회민주주의는 그리스도교와는 완전히 다른 경로로 집권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완전히 다른 영향력 행사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은 일체의 계급지배를 영원히 종식시켜야 한다.”

2. [성혈과 성배], 헨리 링컨, 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지음, 이정임, 정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2005.

: 1880년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인 렌르샤토의 사제였던 베랑제르 소니에르가 지역의 교회유물에서 가톨릭 교회 전체를 뒤흔들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BBC 방송작가 헨리 링컨과 이단적사진작가 마이클 베이전트,‘이단적작가 리처드 레이는 이 책을 통해 소니에르 신부가 발견한 것은 예수 집안의 가계도였다는 추정을 하면서,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예수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가톨릭 교회의이단이기도 했던 시온수도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카우츠키처럼 유물사관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4대 복음서를 비롯한 성경의 보도들이 편집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조명하고 현재에도 예수의 자손들이 유럽을 넘어 전세계에 퍼져 있다고 주장한다.

기름부어진 자(메시아)’로서의 예수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가난하지 않고 부유했으며 교육을 받은 랍비(바리사이파)였는데 그가 랍비였다는 사실은 그가 결혼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의 아내는 그에게 기름을 부은마리아(어머니 마리아와는 다른)였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모호한 예수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는 그의 부인 마리아와 그의 처남 라자로였다는 것, 베드로는 예수의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의 가족인 마리아, 라자로와 대립했다는 것, 결국 예수의 봉기가 실패한 후 예수 일가는성혈이 든 성배’, 아이를 임신한마리아를 유럽으로 도피시켜 유태왕국의 재림을 도모했던 한편,베드로 같은 제자들은 신격화된 예수의 교리를 전유럽에 설파하며 현실적 종교권력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 등의 내용이 전개된다. 또한 예수가 다윗의 유태왕조재림의 중심이었으므로 다윗왕의 자손이 되어야 했고, 그로 인해 그의 출생지가 나자렛이 아닌 베들레헴으로 위조되어야 했다는 것은 예수 탄생 즈음 로마에서 실시되었다는 인구조사가 거짓이라는 사실로도 바로 증명된다. 또한 이 책은 예수의십자가 처형부활또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의 거래를 통해 당시 관행과 다르게 진행된 십자가 처형쇼를 거쳐 거짓 죽음 후 부활하였으며 마리아와 함께 도피한 예수는 이후 다른 지역 어딘가에서 천수를 누렸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결국 성배로 이어져 온 성혈은 기원후 4세기경 게르만계 고트족 일파 중 하나인 메로빙거 왕조로 이어져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제1차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여 예루살렘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예루살렘 성전에 숨겨져 있던 예수의 가계도를 지키기 위해 신비로운 성당기사단이 창설되었다는 이야기, 이슬람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 이 기사단은 성배(가계도)’를 지키기 위해 유럽의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는 시온수도회를 장악하고 장미십자회등을 결성하면서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로버트 보일, 빅토르 위고 등 유명한 인물들이 시온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를 역임했다는 이야기 등등. 가톨릭 교회가 시온수도회’, ‘장미십자회’, ‘성당기사단등을이단으로 탄압한 이유는 예수의 혈통과 가문이 드러나면 예수는 더 이상 이 아니라 인간이 되므로 수 세기 동안 굳건히 유지해 온 가톨릭 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가톨릭 교회는 이단들과 타협하고 이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며, 렌르샤토의 소니에르 사제가 가톨릭 교회와 거래하고 죽기 전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력한 일가와도 모종의 거래를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합스부르크 왕가도 예수의 가문일 수 있다는 것.

예수 가문과 혈통은 지금까지도 시온수도회의 엄호를 받으며 전세계 곳곳 유력한 위치에서 활약하고 있을 수도 있고, 인류는 이러한 예수 재림과 같은 사제왕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으로 이 책은 결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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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전트 외 지음, 정미나 외 옮김 / 자음과모음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성혈과 성배] + [검은 사제들] '다양성'은 역사를 견인하는 힘!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반동 쿠데타로 꺾여 공화정이 황제 나폴레옹의 제정으로 대체된 후, 모든 집회와 시위, 반란과 '소요'는 가톨릭으로부터 '이단'이라 규정된 '비밀결사단이 배후'라는 '음모론'이 횡행했다.
([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머, 헨리 링컨, 1986.)

가장 교조적이고 근본적인 집단으로서 '성단기사단(템플기사단, 튜턴기사단 등)'은 가톨릭 교단의 무리한 십자군전쟁 책임의 희생양이 되어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파문당하고 절멸되었으나, 과학의 발전과 철학적 각성, 시민적 계몽을 '이단'으로 규정했던 교황청의 독단에 맞서 새로운 의식과 사상은 '이단적인 비밀결사체'로 흡수되었다.

5백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구마(퇴마)의식'의 배후로 등장하는 '장미십자회' 또한 이러한 '이단'의 흐름 중 하나인데, 하나의 체제가 확립되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다양성'은 '이단'의 이름으로 탄압받고 부정되지만 결국, '역사를 견인하는 힘'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오래된 사례이다.

역사는 체제의 '획일성'과 '다양성'간 투쟁에 의해 발전한다는 사실은,
'노동개악 반대'를 '소요죄'로 기소하고,
역사교과서를 '하나의 해석'에 가두는 일이 '반역사적 행위'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단'적 구마(퇴마) 의식 후 쇠고랑차는 '장미십자회' 신부(김윤식)와 악마를 안고 한강에 투신했다가 살아나오는 부사제(강동원)는 내가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속편'을 암시하는, 나아가 2편 시나리오를 직접 써볼까 싶은 망상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ㅋ

속편의 시작은 이렇다.

'체제의 법정에서 싸우는 '이단의 신부'와 물에 빠진줄 알았던 악마가 죽지않고 남아있는 '부마자'로서 '부사제'

결국 퇴마과정에서 한국판 '토미리존스'와 '윌스미스'의 '맨 인 블랙'으로 흥행하는 망상.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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