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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평점 :
['반지성주의'를 타파하는 진보정당]
- 토머스 프랭크,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2004.
"철학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다."
- 루이 알튀세
프랑스 철학자이자 구조주의 맑스주의자 알튀세의 사상은 위 한 줄의 명제로 함축됩니다.
자본주의 현실은 계급투쟁이고 현실의 반영인 철학은 계급투쟁의 이론적 실천이라는 말인데, 맑스의 새로운 테제 중 '해석이 아닌 새로운 실천적 철학'(포이어바흐에 관한 12번째 테제)이 사실은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며, 철학은 계급투쟁으로 새롭게 실천되어야 하지만 그 관념적 본질상 세계를 '계급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알튀세를 인용한 이유는 바로 '계급투쟁'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미국의 선거를 다룬 책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토머스 프랭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잊혀진 '계급투쟁'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이제 더 이상 하루하루 점점 더 포악해지고 점점 더 오만해지는 자유시장 체제의 파국적 종말에 대해서 민중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한때 자신들과 공화당을 확연하게 구분했던 계급용어를 폐기함으로써 지금까지 물질적 관심사인 경제문제에 가려져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던 환각적 호소력을 지닌 총기 소지나 낙태 문제와 같은 문화적 분열 쟁점에 스스로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계급에 대해서-확실히 말하자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반면에 민주당은 계급 이야기를 불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에필로그> 중
미국 공화당은 유럽의 보수당처럼 왕정이나 귀족, 봉건지주를 토대로 하는 보수가 아니라 당명 그대로 미국의 '민주적 공화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보수당입니다.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보수주의 자체가 '공화주의'라는 것입니다.
왕조와 식민지를 거치면서 친일-친미-사대를 뿌리로 하는 우리의 수구반동과 다른 점입니다.
공화당은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미국 중서부 노동계급에게 기독교 사상과 낙태 반대 등의 사안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계급투쟁'을 은폐하고 '문화전쟁'을 촉발하여 지지세를 얻습니다.
미국을 성장시킨 '산업역군'(우리에게 참 익숙한 세대론)은 신의 계시에 따라 우둔하나 믿음직하게 미국을 지키는 반면, 유럽에 가까운 미국 동부의 '지식인', 엘리트들은 반전평화, 여성주의, 히피적 행태로 '잘난체 하며' 미국을 흔든다는 것이지요.
미국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사회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있었습니다. 전설적 철노노동자 유진 뎁스, 사회주의적 목사 노먼 토머스, 진보정치인 로버트 라폴레트 등의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민주당을 왼쪽으로 이동시켰고,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케인즈주의와 뉴딜정책을 가능케 했으며, 미국 민주당의 '계급적' 입장을 강화시키기도 했지요.
토머스 프랭크는 공화당을 비판하기 보다, 그들의 단순한 '문화전쟁'을 통해 굳어진 '영웅주의'와 '반지성주의'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계급투쟁'을 져버린 민주당의 패착이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단순무식 '문화전쟁'이 아니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diot, It's the Economy!)"라은 슬로건으로 성공한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에서부터 노동계급을 버리고 월스트리트를 등에 업고 친기업 정책을 선택한 과오가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당은 유럽의 사회민주(노동)당들과 다르게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만들지 못했기에 단명했고, 이제 불가역적인 거대 양당체제로 인해 이 책의 대안은 얼핏 민주당의 '계급투쟁'을 복원하여 공화당의 '영웅주의'와 '반지성주의'를 타파하자는 것으로 확대해석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주의' = '반지성주의' = '영웅주의'를 타파하는 대안은 '빅텐트' 거대 양당체제가 아닌 강력한 진보정당 운동이며, 지금의 진보정당이 전통적인 거대한 '운동형 진보정당'(독일과 스웨덴의 사민당이나 브라질 노동자당 등)일지 선거연대블록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형 진보운동'(그리스 '시리자'나 스페인 '포데모스' 등)일지는 아직 알 수 없을지 모릅니다.
또한,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지, '큰 개혁과 작은 혁명'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계급투쟁'을 버리지 않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불가역적 승리를 단호하게 옹호하는 진보정당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강력한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반지성주의'를 타파하고 '계급투쟁'에 복무하는 '새로운 철학적 실천'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브렉시트 국면에서 영국 노동계급을 단순화시켜 노동당을 패배시킨 영국 보수당의 선거방침,
'빨갱이' 타령으로 연명하는 한국의 수구보수 집단과 '조국사태', '문빠' 양산으로 재미보는 한국의 민주당의 모습도 이 책과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듯 합니다.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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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 ‘큰 개혁’과 ‘작은 혁명’들의 이야기], 장석준 지음, <서해문집>, 2019.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8세기 말 ~ 19세기 초의 세계사를 기술하면서 ‘이중혁명’의 시대라 규정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극적으로 전개된 민주주의 혁명과 영국(산업혁명)에서 본격 시작된 자본주의 혁명, 이 두 혁명이 동시에 전개됐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두 개의 큰 운동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확산과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갱신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혼란의 밑바탕에는 민주주의 혁명과 자본주의 혁명의 격렬한 충돌이 있다. (진보)좌파정당이란 바로 이 충돌에서 단호히 민주주의 혁명의 편에 서는 정당이다. 민주주의 편에서 자본주의에 맞서고, 타협을 만들어 내더라도 민주주의 원리가 우위에 선 타협을 위해 노력하며, 종국에는 민주주의 혁명이 자본주의 혁명을 제압하고 극복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정당이다.”
- 같은책, <서문>
우리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석준 선생의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는 현재의 ‘진보정당’을 이해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역사’를 다루고 있으니 이야기책을 보듯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재미있게 읽었는데, 수구 자유한국당과 보수중도를 못 벗어난 민주당의 실질적 양당구도인 우리 정치에서 ‘진보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기에 강력한 산별노조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진보정당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진보정당’ 형태일 수 있는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와 스페인 ‘포데모스(할 수 있다)’보다 지난 역사로서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브라질 노동자당의 역사를 서술한 장이 더 잘 읽힌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진보정당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논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다룬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읽은 것일지는 모르나, 세계 진보정당의 소중한 역사를 저자의 방대한 참고문헌과 연구를 바탕으로 더 넓고 깊게 증보하기를 기대한다.
E.H.카가 ‘러시아혁명사’를 연구하고 방대한 저술로 남겼듯이.
끝날 수 없는 진보정당 운동사의 ‘중간 정리’로서 ‘결론’을 독자로서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본다.
‘지금도 반복되는 진보정당의 고뇌’인 ‘작은 개혁’과 ‘큰 혁명’의 관계는 이제 이 책의 부제에 나온 것처럼 ‘큰 개혁’과 ‘작은 혁명’으로 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큰 테마다. 민주주의 무대에서 ‘혁명’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개혁’하자는 것이 하나의 ‘이론적 결론’이다.
또한, 현재의 진보정당은 진보의 다원성을 강화하고 연대하는 ‘좌파블럭’을 변혁의 주체로 하여 당시 정세에 맞는 ‘진보적 대중연합’(그람시의‘역사적 블록’)을 구축해야 하며, 다수 대중이 이러한 사회변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기’는 여전히 ‘진보정당’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역사적 (잠정)결론’이다.
“소수의 자본 소유자와 다수의 노동대중 사이에는 뿌리 깊은 구조적 차원을 지닌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는 이 권력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 시기에 기존 세력균형을 끊임없이 격동시키고 조금이라도 변형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계급 권력관계의 심층에 자리한 구조들에 손을 대는 급진개혁으로 발전해야 한다. 선거를 통한 집권은 이러한 과정을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계급권력구조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화’하여 견지해야 할 마르크스-엥겔스 정치이론의 핵심 메시지일 것이다.”
- 같은책, <결론>
지난 150년의 역사 속에서 ‘운동형 정당’으로 현상했던 진보정당의 형태가 21세기에는 대중의 분노와역동성을 더욱 기반으로 하는 대중연합적 ‘정당형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개혁’이라는 ‘최소강령’만을 목표로 타협하고 균형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강한 소수에 비해 약한 다수에게 세력관계가 ‘불가역적으로’ 역전되는 것이 바로 ‘혁명’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는 그람시의 말대로 ‘현대의 군주’인 ‘(진보)정당’이다.
(2019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