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뱃속
미셸 옹프레 지음, 이아름 옮김 / 불란서책방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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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胃腸)의 유물론(唯物論)
- [철학자의 뱃속], 미셸 옹프레, 1989.


"인간 주체는 항상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게 낯선 자, 자신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힘들에 의해 구성된 자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의 주장이다."
- [유물론], <유물론들>, 테리 이글턴, 2016.


영국의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현재까지 "마르크스주의가 옳다"는 명확한 당파성을 고수하는 '유물론자'다.
그에 따르면 고전적 유물론의 주장, 즉 '물질'이 '정신'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이기는 하나, 기계적 유물론을 넘어서야 한다. 

20세기 초 레닌은 '정신' 또한 '뇌'라는 '물질'이 만들어낸 '최고 수준의 물질적 산물'이라는 식의 극단적 주장을 했는데, 사실 엄밀히 따진다면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 여부는 명확하지 않은 주장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철학적 관점으로는 다분히 이분법적이고 기계적인 유물론이다.

테리 이글턴의 '유물론'은 현대 철학에서 니체,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을 통해 '인간의 생체'가 중심이 되는 '신체적 유물론(Somatic Materialism)'으로 발전된다. 
그의 '철학 전장'에서는 '근본적인 사안들에서조차 합의에 이를 수 없는' 근대성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인해 인간의 욕망과 생체 모두를 아우르는 '신체적 유물론'만이 대안이 된다. 

과장을 섞으면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기독교적 관념론을 다른 편으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육체적, 성적 관계'를 가미한 그리스 신화의 '신체적 유물론' 같다.
과학의 발전을 철학적으로 반영하고자 했지만 뉴턴식의 전통적 물리역학을 초월한 현대적 양자역학에 놀란 전통적 유물론자들의 갈짓자 행보를 보면 그리스 신화의 비일관성과 일면 유사하다.

철학의 동력 또한,
모순과 비동일성 및 비일관성인 것이다.

그럼에도, 복잡한 '철학' 논쟁의 본질은 결국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이며, 그 극단을 이루는 질문은 세계 존재의 기원은 무엇인가'이다.


"음식학은 초월적인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살고 있는 이 내재적 세계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이자 실천적 '무신론이 된다. 육체는 이제 지식의 새로운 미학을 위해 나선다. 니체적 미식철학은 이 새로운 대륙(무신론)을 향한 통로가 될 것이다."
- [철학자의 뱃속], <6. 반기독교적 소시지 - 니체>, 미셸 옹프레, 1989.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는 니체주의자다.
즉, 무신론자이자, 세계의 근원 같은 객관적 요소에 대한 근본문제 보다는 그 세계 앞에 우뚝 선 인간의 신체와 욕망 같은 주체적 요소가 그들 철학의 계보학적 테마다.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과학이 이어받은지 오래되었으니, 철학은 더 이상 그런 문제에 골몰할 것 없이 인간 사유의 근원인 신체에 주목하자는 현대 서양철학의 흐름이다. 
이러한 철학의 시작은 19세기 말에 망치를 들고 견고한 객관적 세계체제를 깨부수며 세계운동의 필연성을 어떤 식으로든 부여하고자 하는 '신' 자체를 부정한 니체의 '무신론'이었다. 세계의 보편적 '필연성' 또는 그런 거대한 법칙과 모종의 프로그램은 기독교 같은 종교는 물론 종교와 철학의 내용이 동일하다던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 뿐만 아니라 관념론을 거꾸로 뒤집으며 현실적 유물론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 또한 끝내 탈피하지 못한 궁극의 패러다임이자 최대강령이었다.

역사 속 사건들의 우연성은 객관적 세계의 물질적 운동의 필연성을 드러내는 변증법적 관계의 실현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의 근간이다. 
19세기 말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지금보다 더욱 강고했을 유럽에서 무신론은 미친놈의 다른 말이었을 텐데, 마르크스주의 유물론보다 한 발 더 나간 니체의 무신론은 당대에는 어떠했을지 몰라도 이후 미셸 푸코나 미셸 옹프레를 비롯한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의 화두가 된다. 
주체적 욕망의 무신론이다.

그 중 한 명의 니체 추종자 미셸 옹프레가 1989년에 출간한 [철학자의 뱃속]은 형이상학으로서의 철학을 거부한다. 
세계를 탐구하는 최고의 학문이라 자처하는 철학의 비현실적인 초월성을 탈피하고 현실에 천착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다. 
신이라는 보편적 거대 정신이나 개인이라는 개별적 주체가 우선이 아니라 주체 외부의 객관적 물질세계의 일차성을 주장하는 유물론과 다른 방향이기는 하지만 음식과 신체라는 감각적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보면 현대적인 '신체적 유물론'의 일종이기도 하다. 

니체식의 극렬과격 무신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물질운동과 세계역사의 필연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 무신론은 무신론도 아닐테고,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적 변증법의 입장에서는 세계운동의 경향성과 법칙성을 부정하는 니체의 무신론은 유물론이 아니기에, 
마르크스주의와 니체주의는 섞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영국의 테리 이글턴이나 프랑스의 미셸 옹프레는 '신체적 유물론'이라는 신유물론의 범주 속에서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유물론과 현대적 니체주의 욕망철학을 화해시키고 있다. 
물론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하다는 미셸 옹프레와 달리 테리 이글턴은 니체주의자는 아니지만.


"인간은 곧 그가 먹는 것이다. 
감각기관을 따르라! 
감각이 시작하는 곳에서 종교와 철학은 멈춘다."
- 루드비히 포이어바흐, [철학적 선언].


[철학자의 뱃속] 서문격인 <1. 철학의 식생활>에서 저자 미셸 옹프레는 헤겔의 관념론적 절대정신을 뒤집어 인간적 유물론을 처음으로 개시한 근대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의 저서 [철학적 선언]의 문구를 인용한다. 인간의 감각을 우선으로 따르면 기존의 사상이 뒤집어지며, 식생활이라는 감각적 행위가 인간을 규정한다는 유물론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식'은 신체적 유물론에서 피해갈 수 없는 주제가 된다. 아마도 식욕은 물론 성욕 같은 인간 주체의 일차적 욕망이 현대적 유물론의 주요한 테마가 되는 것일텐데, 옹프레는 음식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철학자들의 뱃속과 위장을 들여다 본다.


고대 그리스 견유학파 디오게네스나 근대 유물론의 시조격인 루소, 이탈리아 미래주의자 마리네티 등은 지향하는 바는 각자 다를지언정 당대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디오게네스의 날고기 및 채소 그대로의 생식과 루소의 우유예찬 및 채식주의, 마리네티가 주창한 이탈리안 파스타 전통 식문화 폐지 운동이 그것이다. 
견유학파는 당시 그리스 문명을 부정하는 행위에 집착했기에 길거리에서 성교하고 인간의 내장을 썰어먹는 개같은 철학자가 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한 소박한 루소는 평화적인 채식주의를 강조했지만 그의 자연주의와 사회계약설은 수백년 후 히틀러식 채식주의를 예견하지 못했다. 육류를 안 먹는 인간도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리네티는 이탈리아의 '미래'를 위해 수입밀로 만든 파스타는 이제 그만 좀 먹고 내수품목인 쌀을 장려하자고 주장했지만 운동의 성과는 무솔리니 파시즘의 몫이 되었다.

그 외 간소한 음식을 선호했으나 술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다는 칸트, 현재의 문명국과 미래의 조화국 간 음식전쟁 따위를 쓸데없이 연구하고 장황하게 서술한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 이야기는 그냥 그 철학자들의 경건했던 주요 사상 외에 이런 개인사도 있다는 식의, 저자 미셸 옹프레의 잡글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그의 잡글은 신체적 욕망을 부정하고 고귀한 사변을 즐긴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플라톤적 철학 전통을 설명해주는데, 가재와 조개, 굴 같은 갑각류를 혐오했던 사르트르가 결국 스스로 소설 속에서 갑각류가 되어 죽어갔다는 식의 이야기를 통해 사르트르의 일상과 사상 사이의 모순적 실존주의를 꼬집고자 한 듯 하지만, 글쎄 별 감흥은 없다. 

미셀 옹프레에게 중요한 철학자인 니체의 식생활을 보더라도, 니체가 게르만식의 기름진 식사를 증오하고 가벼운 소시지와 햄을 어머니한테 항상 주문했지만 그래도 실제로는 기름진 고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통해 철학자들의 사상적 관념론과 위장적 유물론 사이에는 모순과 비일관성이 가득하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이쯤 되면 이제 알 것 같다.
니체주의자 미셸 옹프레가 철학자들의 뱃속을 들여다 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식이라는 일차적이고 물질적인 매개를 통해,
신체적 유물론과 인간 주체의 욕망을 혼합하려는 시도.
철학자라는 인간의 뱃속 위장을 열어보며,
초월적 형이상학을 탈피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철학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

이른바,
위장(胃腸)의 유물론(唯物論).

그럼에도,
인류의 철학은 시지프스의 숙명처럼,
다시 굴러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계속 운명의 바위를 굴리며 언덕을 오른다.

***

1. [철학자의 뱃속(Le Ventre des Philosophes)](1989), 미셸 옹프레(Michel Onpray), 이아름 옮김, <불란서책방>, 2020.
2. [유물론(Materialism)](2016),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전대호 옮김, <갈마바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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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24-05-1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eatrice1007님, 이 책 처음 알게 된 책인데, 재미있어 보이는데 별 두 개밖에 안 주신 이유는 beatrice1007님께서 니체를 별로 안 좋아하시기 때문인가요? ^^

beatrice1007 2024-05-2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니체는 별로라서가 맞습니다. ^^;;
 
어느 노동자의 모험 -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
배명은 외 지음 / 구픽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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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프롤레타리아 장르'라니.
- [어느 노동자의 모험], 이서영 외, 2024.


그림 하나를 보았다.

미술사학자 이진숙 선생의 [시대를 훔친 미술](2015)을 읽다가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노가 1901년에 그린 '제4계급'이라는 미술 작품을 우연히.

수많은 노동자 군대가 서서히 걸어오는 장면인데 카라바조 풍의 명암대비법인 '키아로스쿠로' 같은 효과 속에서 선두의 대열은 어둠으로부터 광명깃든 역사의 무대로 서서히 걸어나오는 장면이라는 해설을 읽었다.

'제4계급'이라는 말을 나는 처음 들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이끈 부르주아가 왕족 또는 귀족의 '제1계급'과 성직자의 '제2계급'에 상대적인 '제3계급'으로 불렸고, 당시 다수였던 농민과 소수의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혁명의 배경에 불과했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최종적으로 농촌에서 쫓겨난 도시 노동자들이 다수가 되면서 산업혁명의 토대 위에서 생산의 주역이 되었고, 마르크스는 이 대다수 산업노동자 계급에게 혁명의 주체로서의 역사적 사명을 부여했다. 이제 다수 노동계급은 인류 역사에서 계급 자체를 철폐해야 할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아마도 자본주의를 끝으로 계급사회에 종말을 고하는 혁명의 주체가 되었기에 노동계급은 오래전 부르주아 혁명을 선도한 '제3계급'에 대비되는 이른바 '제4계급'이 되었을 게다.

어둠에서 밝은 광장으로 나오는 선두 대열에는 노동 지도자 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 같은 어머니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 같은 어린아이도 있다. 이는 이 세계의 미래를 선도하리라 믿었던 20세기 초 혁명적 열망의 아이콘이기도 하단다.

'20세기 소년'이면서 노동자의 아들인 내게도 '프롤레타리아'로 규정되던 노동계급은 불평등한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주역이었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소설이 있다.

[어느 노동자의 모험]이라는 모호한 제목이지만, 부제가 무려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이라는,
내게는 어마무시한 영감을 주는 소설집이다.

이 정도 되면, 둘 중 하나로 감이 오게 마련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만연한 비정규/불안정 노동 현실을 고발하는 참혹한 르포르타주이거나, 아니면 아예 현실배경을 잠시 떠나 판타지로 현실을 비꼬는 유쾌발랄한 도발이거나.
책의 표지 그림을 보면 유쾌발랄 '노동판타지'로 추정되는데, 나 또한 페이스북에서 이 책을 소개한 어느 페친처럼, '프롤레타리아 장르'라는 과감한 선언 뿐만 아니라 이 20세기적 포스터에도 강렬하게 끌리게 되었다.


1970년대의 황석영,
1980년대의 방현석,
1990년대의 김소진,

오래전에 소설을 쓰고 싶던 내가 매달린 '사실주의' 형식이나 '노동전위' 내용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황석영과 방현석, 그리고 김소진 같은 소설가들을 우리 소설사에서 최고의 '리얼리스트'들로 꼽았고 지금도 그 판단에는 변함이 없지만, 세기말을 지나 21세기 벽두에 선 나는 그들처럼 글을 쓰지 못했다. 서른살 중반까지도 매년 초 찾아 읽던 각종 문학상 수상작들은 더 이상 지금 이 현실을 그대로 배경삼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지 오래였다.
그렇게 '소설'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중년인 지금 아주 오랫만에 읽은 소설들도 대부분 가상의 '판타지'였다.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 또한 이를테면 일종의 '노동판타지'다.

배명은 작가의 <삼도천 뱃사공 파업 연대기>는 조선소 파업에 참여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사고로 바다에 빠져 죽어 저승 가는 길에 착취당하는 카론 같은 뱃사공들의 파업을 돕는 이야기.

은림 작가의 <카스테라>는 제빵 노동자를 갈아먹은 거대한 괴물기계의 산재사고가 배경이지만, 어쩌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도 꿈을 쫓는 어느 제빵사의 소소한 이야기.

이서영 작가의 <노조 상근자가 여주 인생 파탄 내는 악녀로 빙의함>은 로맨틱판타지 여주인공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노동판타지로 뒤바꿔 버리려다가 종국의 반전을 맞는 일본식 '라이트 노벨(Light Novel)'류의 이야기.

구슬 작가의 <슈퍼 로봇 특별 수당>은 근미래의 반체제 변혁운동가 이야기로 가는 듯 하더니 결국은 성소수자 퀴어 이야기.

전효원 작가의 <살처분>은 전북 김제의 시골마을 살인사건 추리소설 같이 시작하더니 결국 이주노동자 이야기.

다섯 종의 이야기 모두 노동과 인권, 소수자 이야기를 무려 '프롤레타리아 장르'로 잘 엮어내었다.

그 중 백미는 이서영 작가의 <노조 상근자가 여주 인생 파탄 내는 악녀로 빙의함>인데, 
읽는 내내 나도 저런 소설 한 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얼리즘'이 꼭 팍팍한 지금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르포르타주일 필요는 없다는 정도는 이제, 나도 안다. 언젠가 나도 나만의 '프롤레타리아 장르' 소설을 써보고 싶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지금 이 현실을 벗어나 가상현실로 나아갈 엄두가 나지는 않는다.

언제쯤 나도 주세페 다 볼페노의 '제4계급'처럼 '리얼리즘'의 어둠으로부터 '판타지'의 환하고 발랄한 광장으로 나올 수 있을까.

소설이란 결국 '이야기'인 것이고,
모든 '이야기'는 결국 다 '판타지'일텐데 말이다.

***

- [어느 노동자의 모험 :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 배명은/은림/이서영/구슬/전효원, <구픽>,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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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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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 담긴 '인문학'적 서사의 힘
- [시대를 훔친 미술], 이진숙, 2015.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적인 것',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졌어도 우리는 해야 한다. 이 사고를 멈추는 순간, '인문학'적 성찰이 소멸하는 순간, 우리는 그저 '인간'이라는 이름의 동물이 될 뿐이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결국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 [시대를 훔친 미술], <'세계의 살'을 다루는 예술, 인간 자취로서의 예술사>, 이진숙, 2015.


미술사는 내게 '놀이터'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별다른 취미나 특기가 없는 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글쓰기 행위를 일종의 혼자서도 잘 노는 '놀이'로 규정하게 되었는데, 그 중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사'는 읽고 또 읽어도 물리지 않는 분야이기에 '미술사'가 나에게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뛰어노는 '놀이터'가 된 것이다.

인류에게 문자가 정착되기 전에는 태초에 '말', 즉 언어가 있었다. 수백만년 인류 역사에서 문자의 역사가 5천년이라면 나머지 그 이전의 더 길고 긴 시간은 말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시간이었다. 그 중 또 몇 만년은 아마도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남긴 시간이었으리라.

미술의 역사, 즉 미술사에 담긴 이야기들이 수만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미술사 또한 여느 인문주의적 행위와 같이 '이야기'의 역사다. 지금껏 그림과 의미, 나아가 '문자'와 '문헌'을 통해 해석되는 미술사를 이끈 것은 '서사'의 힘이다.

미술사에서도 또한 '인문주의'는 필수 불가결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구텐베르크의 활자혁명 덕분이었다. 개신교가 문자를 선택했다면, 가톨릭은 미술의 강력한 힘을 다시 불러냈다. 가톨릭의 '반(反)종교개혁'은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교회의 권위와 영광을 드높이는 화려한 '바로크 미술'이 꽃피게 된 것이다."
- [시대를 훔친 미술], <5. 反종교개혁과 바로크 미술>, 이진숙, 2015.


미술사학자 이진숙 선생은 [시대를 훔친 미술](2015)에서 미술 작품들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한다.

미술 작품은 '시각 예술'로 분류되는데, 예술은 인류의 언어나 이론만이 아닌 실제 삶 자체를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미술은 '세계의 살'을 다룬다고 저자는 말한다. 언어 외의 다른 방식으로 인류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미술 작품들의 이야기는 중세의 신학적 세계관을 깨고 신 앞에 홀로 서게 된 근대적 '개인'의 발견으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전에 15세기 구텐베르크의 문자적 인쇄혁명이라는 '인문학'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 중세 가톨릭의 억압에 대항하면서 중세적 세계관에 균열을 냈던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 등 대규모 농민반란과 함께한 종교개혁운동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루터가 교황의 면벌부(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95개조 반박문'과 성경의 독일어 번역을 통해 종교개혁에 성공한 배경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이라는 강력한 동력이 있었다. 라틴어 독점이 아닌 독일어와 각종 언어로 성경이 인쇄되었을 때, 신은 성직자와 귀족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에게도 다가왔다. 

저자는 미술사 이야기를 다루지만, '예술사조'를 테마로 삼지는 않는다. 
미술 비전공자인 나는 처음에는 예술사조의 도식을 통해 미술 작품들을 분류했다. 아마도 일반인이 예술사를 이해하기에는 도식적이기는 해도 간편한 방법이겠다. 

그렇게 나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통해 '모더니즘'의 승리를 보았고,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통해  '낭만주의'적 혁명을 읽었으며,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읽으며 '인상주의'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미술 작품을 보면 어느 시대의 어느 사조로 분류될 수 있는지 혼자 가늠해 보고는 한다.

[시대를 훔친 미술]은 예술사조를 강조하지는 않지만 14~16세기 근대 르네상스로부터 17세기 '바로크'와 18세기 '로코코' 양식, 19세기 고대 그리스의 재발견을 통해 등장한 '신고전주의' 아카데미즘과 이에 반발한 '인상주의' 및 이후 20세기 초 현대 미술 이야기를 유럽의 세계사 이야기와 함께 엮으면서 이어간다.

16세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1536~1541)은 신교에 맞서 구교를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이후 17세기에 등장한 '바로크'는 종교개혁의 기치를 이어가던 신교의 '문자'에 대항한 구교의 '미술'적 무기였다. 
19세기의 '인상주의'는 기교의 혁명을 통해 시각 예술의 범주를 넓혔다. 
이제 인류는 이상적으로 고정화된 이미지 뿐만 아니라 빛의 움직임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19세기 말, 미술사는 '인상주의'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세잔의 후기 인상주의와 야수파, 미래파, 피카소의 입체파 등의 모티브는 바로 '인상주의'다.


"인상주의는 젊은 세대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방법론적 혁신이 성공의 필수요소라는 점이었다. 방법의 다양화는 피할 수 없는 덕목이 되었다."
- [시대를 훔친 미술], <14. 인상주의가 그린 장미빛 인생>, 이진숙, 2015.


[시대를 훔친 미술]이 '사실주의'나 '낭만주의' 같이 예술사조에서 중요한 계기들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저자의 미술사가 예술사조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증거다.

미술이 훔친 시대의 역사는 '예술사조'의 '도식'이라기 보다는, "좋은 시대에도 나쁜 미술이 나올 수 있고 나쁜 시대에도 좋은 미술이 나올 수 있다"(같은 책)는 우리 삶 속 미술의 이야기다.


"르네상스 이후 발전해 온 회화의 핵심 개념은 세계의 '재현'이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완벽하게 캔버스 위에 구현하는 것이 그림의 목표였다... 인상주의와 그것을 넘어서려는 피카소의 도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려는 미래파 모두가 이 목표에 봉사하고 있었다."
- [시대를 훔친 미술], <17. 들끓는 친부 살해의 욕망들>, 이진숙, 2015.


구상주의적이고 추상주의적인 현대 미술은 더 이상 사진 같이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사진 없던 시절 사진 같던 '트롱프뢰유'나 명암대비 배경의 연극 같은 '카이로스쿠로' 같은 기법은 사실의 재현이 아닌 극적인 기법일 뿐이었다. 그저 우리가 사실이 그러할 것으로 바라는 이상적 기대에 불과했을는지 모른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얀 페르메이르가 그린 그림은 얼핏 보면 매우 사실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실은 평범한 일상을 최대한 이상화한 개신교적 접근에 불과할 수 있다. 더 이상 종교화가 아닌 일반 민증의 일상이 최초로 예술화되는 근대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시대를 훔친 미술] 이야기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현대 미술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그래도 세계를 그대로 재현해보고자 했던, 심지어 피카소의 기괴한 입체주의 조차도 벗어나지 못했던 '정통 미술'이라는 '아버지'를 '살해'하고자 했다. 예술 또한 역사 일반과 같이 자기를 낳은 '친부'를 죽이고 넘어서면서 혁신된다. 
[시대를 훔친 미술]은 이러한 역사를 '친부 살해의 욕망'(같은책, <17장>)이라 표현한다.

인류 역사의 모든 서사를 담고 있는 미술사 또한 '혁신'을 빼고는 이어질 수 없는 이야기다. 

미술사 이야기를 통해서도 새삼 다시 읽게 되는 서사의 힘이다. 
이야기로 이어지는 미술사 또한 '인문학'인 것이다.

그렇게,
무궁무진한 미술사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주간 문사철'의 놀이터'가 된다.

***

1. [시대를 훔친 미술], 이진숙, <민음사>, 2015.
2.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1950), 에른스트 곰브리치, 백승길/이종숭 옮김, <예경>, 2003.
3.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cial History of Art)](1951), 아르놀트 하우저, 백낙청/염무웅 외 옮김, <창비>, 1974~2016.
4. [서양미술사], 진중권, <휴머니스트>, 2008~2016.
5. [시각예술의 의미(Meaning in the Visual Arts)](1955), 에르빈 파노프스키, 임산 옮김, <한길사>, 2013.
6. [미술사의 기초개념(Kunstgeschichtliche Grundbegriffe)](1915), 하인리히 뵐플린, 박지형 옮김, <시공사>, 1994~2016.
7. [뜻밖의 미술관], 김선지, <다산북스>, 2023.
8. [루터, 브랜드가 되다(Brand Luther)](2015), 앤드루 페트그리, 김선영 옮김, <이른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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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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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문] '문사철'은 계속 연재됩니다!
- '문사철'의 부활을 꿈꾸며


1.

어릴적 꿈은 '고고학자'였다.

중년이 된 지금 가끔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무슨 원대함이나 간절함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 보일는지 모르겠지만, 실은 그 또래 다른 친구들이 '과학자'가 꿈이었던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태권V를 보고 나중에 커서 그런 로봇을 만들고 싶어서 '과학자 김박사'가 되고 싶었던 어느 친구가 있었던 것처럼, 아직 공룡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공룡을 발굴하고 싶었거나, 취학 전 TV에 들어갈 듯 빠져들어 보던 마징가에 나오는 기계수와 전투수 악당들을 '발굴'하고 싶어서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 나오던 19세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고고학자'들을 만났을 때는 이미 내 꿈은 더 이상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장편 추리소설에 처음 맛들인, 꿈 따위는 아랑곳 없던 사춘기 소년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우연히 고대 그리스 서사시인 호메로스를 알게 되었고 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따라 고대 미케네 문명을 발굴한 독일 상인 하인리히 슐리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장이 잠시 뛰었다. 그러나 역시 스무살의 나는 '고고학자'를 꿈꿀 나이가 아니었다. 심지어 하인리히 슐리만이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고고학자'는 아니었다. 19세기 말 설형문자 해석으로 대홍수 신화를 역사로 증명한 조지 스미스도 그렇고, 20세기 초에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을 발굴한 하워드 카터도 엄밀히 말해 제대로 배운 '고고학자'가 아니었단다. 

'문사철' 또는 '인문주의' 또한 꼭 '전공'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2.

"개인적으로 새로운 기원을 찾아가는 고고학이야말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발굴하면서 수많은 유물을 발견해나가면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밖에 없다고요. 그걸 해내는 학문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에필로그 : 새로운 과거를 찾아가는 고고학>, 강인욱, 2023.


우리 고고학자 강인욱 선생의 책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은 고고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수필집'에 가깝다. 저자 또한 우리 고고학계의 시조와 같은 삼불 김원용 선생(1922~1993)이 1950년대에 유물 발굴을 하면서 남긴 수필들을 언급하는데, 고고학을 대중들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신문에 짧은 에세이를 연재해온 듯 하다. 이 글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잔치'와 '놀이', '명품'과 '영원' 같이 인류에게 친숙하며 생존에 불가결한 테마로 분류하고 있다.

1부 '잔치'에서는 막걸리와 소주, 해장국과 김치, 삼겹살과 소고기 등의 역사를 다루며 사물의 기원보다는 현재의 발전형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부 '놀이'는 고인돌, 씨름과 축구, 여행과 낙서, 개와 고양이까지 인류 '유희'의 역사를 돌아본다.
3부 '명품'에서는 석기, 실크와 황금, 도굴과 모방 등을 다루며 인류 문명에서 석기의 '창조'부터 '도굴'의욕망, 문명전파와 새로운 창조의 계기로서 '모방'을 조명한다.
4부 '영원'은 벽화와 문신, 미라와 발굴괴담, 점복과 메신저 등을 통해 영원한 삶을 욕망해 온 인류의 유물과 기록을 살펴본다.

이 책은 '고고학'과 '역사학'을 구분한다.
고고학의 재료는 '유물'이고 역사학의 재료는 '문헌'인데, 새로운 유물의 발굴로 인해 고고학적 성과는 새롭게 갱신되고 있는 있는 반면, 역사학에서는 과거를 송두리째 바꿀만한 완전히 새로운 문자나 문헌이 발견되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래 보존되기 어려운 '문헌' 자료들이 이미 거의 발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고학자인 저자는 은연 중에 '고고학'을 미래지향적 과학으로 규정하고, '역사학'을 과거라는 시간의 범주로 두고 있다.

이는 한 편으로 보면, '고고학'과 '역사학'의 관계를 '과학'과 '철학'의 관계처럼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과학'은 '개별'이고 '철학'은 '보편'이다.
'고고학'과 '역사학'의 관계도 그렇다.

저자는 고고학 유물 이야기인 책의 제목을 [세상 모든 것의 기원(The Origin of Everything)]이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류의 손을 거친', '사람이 만든'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고고학에 깃든 '문사철', 또 다시 '인문주의'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고고학의 인문학적 접근이다.

'고고학'의 개별적인 과학적 성과는 결국,
'역사학'의 보편적인 인문학적 성과로 종합된다.


3. 

청년 시절의 한 때는 '소설가'를 꿈꿨다.

역시 돌아보면, 어린 시절 '고고학자'처럼 구체적이지도 간절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뜻대로 잘 풀리지 않던 삶을 떠나 문자들 속으로 도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단편소설 습작 몇 편 끄적이다가 말았다.
대신, 그 동안 읽어두었던 책들을 '서평'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썼고, 짧은 '소설'의 형식을 입혀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19세기말 쿠바의 담배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독사(讀師)'가 있었다는데, 나 또한 그런 '책 읽어주는 노동자'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적지 않은 글들을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의 테마로 분류해 왔다. 
이른바 '주간 문사철'이다. 

나는 '주간 문사철'을 통해 우리 삶을 바꾸는 '인문주의' 부활을 꿈꾼다.
나와 동시대 사람들이 많은 책들을 통해 다양한 '인문주의'적 독해와 해석을 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주간 문사철'은 계속 연재된다.

***

1. [세상 모든 것의 기원(The Origin of Everything)], 강인욱, <흐름출판>, 2023.
2. [인류의 진화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온 여정], 이상희, <동아시아>, 2023.
3.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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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정벌 -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
리숴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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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공양제' 문명과 [역경]의 비밀
- [상나라 정벌(翦商)], 리숴,  2022.


1.

아주 오래전,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의 인류는 일종의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는 [의식의 기원](1976)에서 고대 인류의 '양원적 정신(Bicameral mind)'이 붕괴되는 과정에서의 '의식의 기원'을 추적했다. '양원적 정신'은 우리 두뇌가 이성-감성의 좌우 영역으로 나뉜 것처럼 인류 의식의 역사에도 이와 같은 두 가지 원천이 있다는 건데 고대 인류는 우반구가 더 활성화되어 '신의 음성'을 진심으로 들었다는 설이다. 기원전 2천년경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측 뇌 뿐만 아니라 온몸의 장기를 통해 신들의 음성을 직접 듣고 인생에서 닥치는 온갖 선택의 스트레스를 견뎠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기원전 신석기-청동기 문명교체기의 조상들을 '상상의 친구들'과 함께 노는 '어린아이'로 생각했던 거다.


2.

중세 유럽의 축제 '카니발'은 '식인 축제'였다고도 하고, 지금도 석기시대처럼 사는 부족은 얼마전까지 '식인'을 했을지 모른다는 설을 들으면 역겨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공포심과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다. 그래서 기원전 1천년경 고대 중국의 은-주나라 교체기 문명에서 '인신공양제사'가 만연했다는 주장을 담았다는 책을 얼마전 우연히 소개받고는 그 900쪽의 책을 덥썩 읽기 시작했다.


"초기와 중기 상(商)나라의 존속기간은 모두 합쳐서 약 300년인데, 그 사이에 '인신공양제사' 행위는 신속하게 증가했고, 도살방식도 갈수록 잔인해졌다. 인간 희생 대신 청동기를 매장하는 개혁적인 시도가 있었을 수도 있으나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졌을 뿐이다. 상문명의 기본 특징은 이미 틀이 정해졌다. 문자와 청동기술, 거대한 성지, 폭력을 숭상하고 '인신공양제사'에 열중하는 문화가 그것이다."
- [상나라 정벌], <7장. 인신공양제사의 번영과 종교개혁운동>, 리숴, 2022.


대략 3,400년 전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를 대체한 은나라는 아마도 본격적인 청동기라기보다는 신석기 문명으로 시작했을 텐데, 초기 청동기 제련술과 대규모 군대운용으로 황하 이북의 영역에서 활발한 정복전쟁을 벌여 각 부족들에 대한 지배력을 넓혔다. 아마도 동아시아 대륙의 동쪽에서 발원했을 용산 문화의 은나라 종족은 보통 '상(商)'족으로 불리는데 은허의 중원을 장악하고는 강족의 땅인 서방으로 더 확장했다. 관중을 넘어 서쪽 깊은 땅은 청동기 문명에서 중요한 구리가 많은 지역이었다고 한다. 

청동기 문명 초기의 이 정복전쟁은 활발한 '인신공양제사'의 문화와 풍습을 남겼다. 아마도 식량이 부족했던 석기시대에는 불가피한 '식인' 풍습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청동기 정복전쟁 문명에서는 지배종족의 부족장이 왕조로 확립되면서 신과의 소통을 독점하고자 했다. 왕조의 사유재산과 그 독점권을 지키기 위한 '국가권력'의 기원이다. 이 국가권력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소나 양, 개와 서부의 말을 희생물로 바쳤는데, 여기에 인간 순장과 같은 '인간 희생'도 포함시키게 되었단다.

은나라 중후반과 말기는 '은허'라는 수도 지역을 중심으로 '은상(殷商)' 문화로 불리는데, 상나라는 관중 넘어 중국 대륙 서부를 식민지배하면서 토착부족인 강족을 포로로 잡아다가 상나라 왕족의 하느님이었던 '상제(上帝)'에게 바쳤다. 상나라 수도 은허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제사와 무덤 유적에서는 수많은 순장자의 유골이 사지가 해체되거나 머리가 잘린 상태로 더 나아가 인간 희생의 머리가 청동시루에 쪄진 상태로 발굴되었단다. 이는 제사나 장례 등의 예식 과정에서 수많은 인간 희생물이 해체되고 요리되어 먹혔다는 고대 인류의 '식인'의 증거다.

이 문화는 왕족은 물론 민간과 청동기 제련작업장에서 만연했다. 청동기 제련 작업장의 건물기반에는 수많은 인간 제물이 묻혔고 수도 은허를 너머 서부와 이어지는 식민지 숭국 같은 곳의 민간에서도 이러한 '인신공양제'와 '식인' 풍습이 횡행했다.

여기서 서부 강족의 일족인 앙소 문화의 '주(周)족'이 등장한다.


"공자는 상나라 왕족의 후예이니, 주공이 상족에게 생존의 기회를 주고, 그들을 대신해서 피비린내 나는 '인신공양제사'의 기억을 없애서 후세의 자손들이 치욕 속에서 살아갈 필요가 없게 해준 데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주공의 이런 관용과 위대한 사적은 그 자신에 의해 500년 동안 묻혀 있다가 또 결국에 공자에게 다시 암호가 해독되고 말았다."
- [상나라 정벌], <에필로그: 주공에서 공자까지>, 리숴, 2022.


중국의 역사학자 리숴(李碩)가 2022년에 발표한 [상나라 정벌(전상:翦商)]이라는 그 책 제목은 '상나라를 베다'라는 뜻이다. 

은-상나라 마지막 주왕을 치고 주나라를 연 왕은 주무왕이지만, 이 혁명을 준비한 사람은 주무왕의 부친 주문왕이다. 주족의 성씨는 '희(姬)'씨였으니 주문왕의 이름은 '희창', 주무왕은 '희발'이다. 상나라 왕족은 '자(子)'씨라고 하나 원래 은상은 성씨가 없이 종족의 성만 있었고 '자'씨는 이후 주나라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주족의 성씨인 '희'씨는 주로 여성이 썼고 남성은 '주창'이나 '주발'로 썼다. 주문왕 주창은 주족의 기반을 닦은 고공단보의 손자로서 상나라에 충성하면서 주족의 생존을 책임졌다.

역사에서 1차 사료는 '문헌'이고 '고고학' 사료는 그 다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은상 문화에서 만연한 '인신공양제사'의 '고고학'적 증거는 제사갱과 갑골문자 등의 발견으로 차고 넘치는데 '문헌'적 증거는 없다.

그러다가 500년 후 주공단의 봉국인 노나라 출신이자 상나라 왕족의 후손인 공자에 의해 '인신공양제사'의 '문헌'적 비밀이 밝혀진다.

그 '문헌'은 바로,
[역경(易經)] 또는 [주역(周易)]이다.


"괘사와 효사의 번잡하고 어지러운 현상 이면에는 사실 세계의 운행법칙에 대한 주창(주문왕)의 탐색이 들어있었다. 괘상의 배열과 조합에 따른 변화를 통해, 현존하는 세계 질서가 영원한 게 아니라 변화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왕조의 통치도 이와 같다는 사실이다... 유리의 감옥에서 주창은 몸은 도망칠 수 없었으나 64괘로 짝을 맞추는 원칙을 연역, 추론하여 스스로 신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었으니 이것은 바로 '상나라 정벌(翦商)'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 [상나라 정벌], <20장. 상나라 정벌과 [역경]의 세계관>, 리숴,  2022.


사실 주문왕의 조부 고공단보가 상나라와 타협하고 관중의 주원땅에서 종족의 생존권을 보장받은 비밀 또한 리숴는 [상나라 정벌]에서 밝히는데, 주족은 상나라 왕조의 '인신공양제사'에서 희생되는 포로들의 공급책이었다. 즉, 상나라와 그 식민지 숭국의 지시를 받고 주변 강족을 잡아다가 바치는 일을 도맡으면서 독립된 종족으로 생존했다는 것인데 아마도 할당량이 모자라면 자신의 부족으로 충당했을 수도 있다. 현재 중국 한족의 뿌리라는 '화하족(華夏族)' 문명의 시조이자 농업 문명의 신 후직의 후예인 앙소 문화 주나라 족속의 흑역사다.

실제로 주문왕은 상나라 서부에서 명성을 얻으면서 상나라 주왕의 견제를 받았고, 상나라 수도 은허의 인근인 유리라는 지역에 구금되었는데 그 전에 이미 주문왕 주창의 큰아들 '백읍고', 즉 주읍은 상나라 주왕의 인질이 되어 주왕의 마차를 몰았다.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무왕 주발은 실제로는 주문왕 주창의 둘째 아들이었고, 주나라 건국 후 주무왕의 아들 주성왕을 섭정하며 국가의 기초를 세운 주공단 역시 주문왕의 아들이자 주무왕의 동생이었다.

상나라의 잔혹한 통치를 은허에서 목격한 주문왕 주창은 자신의 집 지하 토굴에서 몰래 상나라 갑골 점술과 그 문자를 독학하며 주족의 미래를 점쳤는데, 언제 자신의 부족이 상나라의 잔혹한 문명의 희생자가 될지 어떨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결국 문왕 자신이 구금되어 인신공양제물이 될 위험에 빠졌고 실제로 장자 주읍이 인간 제물이 되었다. 심지어 문왕과 무왕 및 주공단 부자는 아들이자 큰형인 주읍의 고기와 국물까지 억지로 먹게 되면서 상나라에 대한 피맺힌 복수를 본격적으로 기획하게 된다. 이 엽기적인 제례는 상나라 식민부족의 수령인 '백(伯)'을 임명하는 일종의 '전통'이었겠지만, 주문왕 부자들에게 이 악마같은 주왕의 패악질은 잔악하기 그지없는 상나라 멸망의 제일 명분이 된다. 
유리에 구금된 주문왕 주창은 [역경]의 기본인 64괘를 더욱 열심히 연구하면서 상나라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았고, 구금에서 풀려나 관중의 주원(호경)으로 돌아간 후에 즉시 스스로 '문왕'을 칭하며 혁명을 준비한다.


리숴의 [상나라 정벌]은 문왕이 연역하고 풀이한 [역경]의 64괘 괘사와 효사의 은유적이고 난해한 내용을 통해 상나라 '인신공양제사'의 현장을 읽어내고 있다. 

주문왕은 큰아들을 비롯한 자신까지 빠져든 인간 제물의 위험 속에서 그 '인신공양제'의 현실을 일일이 [역경] 64괘 해석에 담았고 그 과정에서 세상 만물의 운동과 변화, 그리고 변증법적 전환의 원리를 읽어내고 말았다. 즉, 하나라가 상나라에 의해 대체되었듯이 상나라의 운명도 언젠가는 멸망하게 될 예정인데, 그 주역이 자신의 종족인 주족이 될지 아니면 '혁명'이 실패하여 주족 전체가 인간 제물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점을 치고 64괘를 해석했다. 

'변혁'과 변화의 경전, 
[역경]의 시작이다.


"... 무왕은 자기로서는 부친(주문왕)이 열어놓은 이 정의롭지만 미친 사업을 계승할 역량이 없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주(周)나라 왕의 지위를 계승하고도 감히 자기 연호를 쓰지 못하고, 여전히 문왕이 천명을 받은 이후의 연호를 이어서 썼다. 그는 신과 소통할 능력이 없으니, 그저 하늘에 있는 부친의 영령이 계속해서 주나라를 보우해 주기만 기원할 뿐이었다... 주공(단)도 분명히 자기의 위상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그는 부친(주문왕)이 시작한 이 정의롭지만 미친 사업을 혼자 감당할 역량이 없음을 알았으나, 이 사명과 거기에 수반된 압력은 그들 형제(주발/주단)가 함께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 [상나라 정벌], <25장. 목야에서 용맹을 떨치다>, 리숴, 2022.


문왕이 상나라를 멸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들의 신을 빼앗는 것이었다. 즉, 상나라가 인신공양을 하면서까지 모신 '상제'와 직접 소통하기 위해 왕처럼 갑골점을 직접 치고 직접 갑골문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왕 주창은 '상나라 정벌'의 준비과정에서 죽었고 그의 뒤를 이은 무왕 주발은 부친의 '정의롭지만 미친'([전상], <25장>) 혁명사업을 감당하기 버거워 했다. 

주무왕은 아버지 문왕처럼 상제신과 직접 소통하지 못했고 [역경]의 비밀도 풀지 못해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그래서 참모 같은 동생 주공단에게 의지했다. 주공단 역시 내심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지만 형과는 다른 방법을 고안했다. 즉, [역경]을 통한 '혁명 이론'을 구축한 것인데, 주공단의 이념은 바로 '덕(德)'이었다. 

500년 후 춘추시대 공자가 제창한 '유가' 또는 그 후세 '유학'의 기본이념 중 하나로서 '덕'의 기원이다.
'인신공양제사' 풍습의 잔혹한 '상(商)'나라 문명을 '베었던(翦/전)' 기원전 1046년 목야의 대전은 한순간이었다. 상나라 권력은 이미 내부로부터 와해되었고 주나라를 건국한 주족은 강족과도 화해했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운 문명의 창조였다. 

'인문주의'의 출현이다.


"... 왕조의 흥망과 교체의 교훈... 
그(주공단)는 이 일의 배후에 '하늘(天)-상제(上帝)'의 변화의지가 있으나, '천명(天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사람의 '덕(德)', 그러니까 현실 문제를 처리하는 인간의 준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공은 '하늘을 믿을 수 없다(天不可信)'라고 하면서, 사람이 상제의 뜻을 짐작하려는 것은 지나친 욕망이니, 그저 인간 세상에서 해야할 의무를 잘 이행해야 할 뿐이라고 했다."
- [상나라 정벌], <26장. 주공의 새시대>, 리숴,  2022.


'인(仁)'을 강조한 춘추시대 역사문헌학자 공자는 '덕(德)'의 이념을 강조한 주공단으로부터 500년 후학으로서 주공단의 유학 이념을 더욱 확대발전시켰다. 물론 주공단 시대에는 본격적인 유학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신석기 시대부터 상나라까지 2~3천년간 이어져온 잔혹한 '인신공양제'와 '식인'의 문명 일체를 동아시아에서 끝장냈다. 비록 국가권력에 의한 정복전쟁을 멈추지는 못했지만 '상제' 같은 인격적 신이 아닌 '하늘'로부터의의 '천명'으로 대체했다.

주나라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후 '인신공양제'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면서 향후 그러한 풍습의 재발을 방지하고, 변화의 경전 [역경]에서 '인신공양제' 해석을 삭제하고 재편하면서 주공단이 의도한 것은 잔인하고 포악한 문명의 종말은 물론 '인신공양제'에 부역했던 주나라 종족의 흑역사를 은폐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3.

리숴는 [상나라 정벌]에서 집요하게 '인신공양제사'를 파고든다.

그 잔인한 식인 문명은 수천년 이상 이어 내려온 인류의 자취였다. 식량이 부족한 선사시대에는 어떤 면에서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벼농사가 정착하기 전의 상고시대에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고 전쟁에 필요없는 이른바 '잉여' 인력을 제사나 식량으로 소모했을 수도 있다. 국가의 출현 이후로는 신이나 종교를 명목으로 반역자나 '잉여' 인간들을 처분하는 주요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은상에서 주나라로의 문명교체기를 통해 '인문주의'는 이렇게 수천년 이어진 잔혹한 문명을 끝장낸 이력이 있다. 인간의 일은 어찌 되었든 인간 사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수많은 '혁명'이 있었다.
그 중 삼봉 정도전은 고려말 잔혹한 현실을 혁파하는 이념으로 성리학을 채택했다. [대학]과 [중용]은 물론 '변화의 경전'인 [역경] 또는 [주역]의 현실주의적 원리에 따라 변혁을 실천한 그 중심 사상 또한 '인문주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무왕 같은 권력자는 매일 전전긍긍하며, 혁명은 실천했으되 상나라문명을 실제로 혁파하지 못했다.실제로 문헌에 의하면 주무왕이 상제에게 처음 제사를 올릴 때 '인신공양'으로 상나라 지배계급에게 복수를 했다고 하며 그의 아우 주공단은 이러한 상나라 풍습을 철저히 혁파하겠다는 의지를 '덕'의 '인문주의' 이념을 통해 더욱 강화했고 이후 그의 치세 기간에 '인신공양'의 역사 자체를 없애버렸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주무왕 같은 현실 권력자로서 정치적 손익을 재었겠지만, 삼봉 정도전은 민중을 중심으로 한 공자의 '인(仁)'과 맹자의 '의(義)', 더 거슬러 올라가 주공단의 '덕(德)'을 현실에서 혁명으로 실현하고자 했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현실 정치를 넘어서는 '인문주의'의 힘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정복전쟁이 여전히 수많은 '인신공양'을 해대고 있는 현재까지도 '인문주의'는 변함없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인신공양제'와 검투사 산업의 소멸은 모두 외래문화의 간섭에서 비롯되었다. 로마인은 나중에 기독교에 귀의했고, 전통적인 아즈텍 종교는 식민주의자들의 천주교로 대체되었으나, 은상(殷商)은 그와 달랐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한 뒤에 '인신공양제사'는 주나라 사람들에 의해 소멸했으나, 주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를 만들지 않고 세속적인 '인문주의' 입장을 채용하여 극단적인 종교 행위와 거리를 두고, 그것이 현실 생활에 관여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이른바 '귀신을 경외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는 것이었다. 이것은 후대 중국문화의 토대를 닦아놓았다."
- [상나라 정벌], <프롤로그>, 리숴, 2022.

***

1. [상나라 정벌(翦商/전상/Conquest of the Shang Dynasty)](2022), 리숴(李碩), 홍상훈 옮김, <글항아리>, 2024.
2. [의식의 기원](1976), 줄리언 제인스, 김득룡/박주용 옮김, <연암서가>, 2017.
3. [주역 - 왕필 주](3세기), 왕필, 임채우 옮김, <길>, 1998~2013.
4.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이상수, <웅진지식하우스>, 2014.
5. [정도전을 위한 변명], 조유식, <푸른역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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