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문고 2
레닌 지음 / 돌베개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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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2단계 혁명발전론'은 어떻게 혁신되는가
- [신민주주의론](1940),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1905), 레닌, 이채욱/이용재 옮김, <돌베개>, 1992.


"중국혁명의 역사과정은 반드시 두 단계 발걸음으로 나뉘어 나아가야 한다. 그 첫째 단계는 '민주주의 혁명'이고, 둘째 단계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것은 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혁명과정이다. 이른바,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이미 구 범주의 민주주의, 즉 '구민주주의'가 아니라 신 범주의 민주주의, 즉 '신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중화민족의 새로운 정치는 바로 '신민주주의 정치', 중화민족의 새로운 경제는 '신민주주의 경제', 중화민족의 새로운 문화란 '신민주주의 문화'라 잘라 말할 수 있겠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1940.

중국은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중화민국)을 세웠는데, 중국의 부르주아(자산계급) 혁명은 '민족', '민생', '민권'의 소위 '삼민주의'로 정리된다. 
항일 투쟁의 전선에서 쑨원의 신해혁명으로 집권한 중국 국민당과의 '국공합작'을 시도했던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뚱은 1919년 중국 5.4 운동을 기점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하는데, 바로 '신민주주의론'이다.

1918년 중국 5.4 운동은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수탈당하는 식민지 민족문제에 대한 대대적 대응이었다. 우리의 3.1 항쟁이 그랬듯, 기존의 '반봉건' 운동에 '반제국주의' 투쟁이 전면화되면서 식민지 민중들은 각성했고 '민주주의 혁명'의 내용도 새롭게 혁신된다.

마오쩌뚱은 민중이 주인되는 국가건설을 위해 1단계로 '자산계급'에 의한 '민주주의 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자산계급'에 의한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긍정한다. 당시 중국의 발전단계가 후진적이고 봉건적이었기에 필수적인 단계이되, '자산계급의 독재'가 아닌 농민과 노동자의 '무산계급'의 광범위한 '혁명적 독재'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의 이론화가 바로 '신민주주의론'인데, 2단계로서 '사회주의 혁명'은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다. 

'신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신민주주의' 정치는 '반제국주의 계급연합독재'다.

"반제국주의 계급의 연합에 의한 공동독재의 '신민주주의' 국가... 국체는 각 혁명계급 연합전정, 정체는 민주집중제, 이것이 바로 '신민주주의' 정치이며 '신민주주의' 공화국이고 항일통일전선 공화국이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정치>

2. '신민주주의' 경제는 '대은행, 대공업, 대상업의 국유화'와 쑨원의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지주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이 소유하게 한다.

"무산계급 영도 하의 '신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국영경제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며, 이는 국민경제의 지도적 역량을 갖는다. 그렇지만 '신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을 몰수하지 않으며, '국민생계를 마음대로 뒤흔들 수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금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경제가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경제>

3. '신민주주의' 문화는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지탱하는 반혁명 구세력과 투쟁하는 '반제/반봉건'을 기치로 내건 혁명적 신세력의 문화다.

"이른바 '신민주주의' 문화는 곧 인민대중의 반제/반봉건 문화이며 오늘날에 있어서는 곧 항일통일전선의 문화이다... '신민주주의'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산계급이 영도하는 인민대중의 반제/반봉건의 문화이다."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문화>

"모든 사상에는 계급적 낙인이 찍혀 있다([실천론])", "복잡한 사물의 발전과정에는 많은 모순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는 하나의 주요 모순이 있으며 이 주요 모순의 존재와 발전에 의해 다른 모순의 존재와 발전이 규정되거나 영향을 받는다([모순론])" 등의 간략하고 쉬운 문장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설명하는 마오쩌뚱답게 항일투쟁의 '주요 모순' 국면에서 계급투쟁의 '기본 모순' 일소를 위한 '혁명론'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한 개념이 [신민주주의론]인 것이다.


"'차리즘(러시아왕정)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인민' 곧,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뿐이다... 농촌 및 도시의 프티부르주아지를 두 세력에 포함...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는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의 수립을 뜻한다."
- 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1905.

러시아왕정 '차르'를 무너뜨리고 러시아 공화국을 세운 1905년 '1차 러시아혁명'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 혁명'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 문제를 두고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로 대립하고 분화된다.
'온건파' 멘셰비키는 부르주아 세력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협력하고자 한 반면, '급진파' 볼셰비키는 '민주주의 혁명'에서도 노동자-농민 계급의 '혁명적 독재'를 주장했다.
1848년 프랑스 4월 혁명 등의 교훈은 '민주주의 혁명' 후 부르주아지의 다수 노동자-농민 계급에 대한 배신이었기 때문인데, 레닌의 볼셰비키는 케렌스키의 민주주의적 '임시정부'에 대항하여 노동자-농민-병사 소비에트의 '이중 권력'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반전평화와 노동권 쟁취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1917년 '2차 러시아혁명(소비에트혁명)'을 이루어낸다.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은 단번에 성취한 것이 아니다. 다수 노동대중의 '혁명적 독재'와 그 주체성(영도성)을 결코 놓지 않은 여러 단계의 '혁명발전론'의 결과다. 
러시아에서는 노동자-농민-병사 등 광범위한 노동대중의 '혁명적 독재'에 의한 '이중 권력'으로, 중국에서는 다수 '무산계급'의 '반제/반봉건 계급연합독재'로 나타난 '혁명발전론'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혁신되어야 할 것인가.

***

1. [신민주주의론](1940),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2. [실천론/모순론](1937),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3.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1905), 레닌, 이채욱/이용재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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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전론/신민주주의론 - 두레문고 2
모택동 / 두레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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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2단계 혁명발전론'은 어떻게 혁신되는가
- [신민주주의론](1940),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1905), 레닌, 이채욱/이용재 옮김, <돌베개>, 1992.


"중국혁명의 역사과정은 반드시 두 단계 발걸음으로 나뉘어 나아가야 한다. 그 첫째 단계는 '민주주의 혁명'이고, 둘째 단계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것은 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혁명과정이다. 이른바,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이미 구 범주의 민주주의, 즉 '구민주주의'가 아니라 신 범주의 민주주의, 즉 '신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중화민족의 새로운 정치는 바로 '신민주주의 정치', 중화민족의 새로운 경제는 '신민주주의 경제', 중화민족의 새로운 문화란 '신민주주의 문화'라 잘라 말할 수 있겠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1940.

중국은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중화민국)을 세웠는데, 중국의 부르주아(자산계급) 혁명은 '민족', '민생', '민권'의 소위 '삼민주의'로 정리된다. 
항일 투쟁의 전선에서 쑨원의 신해혁명으로 집권한 중국 국민당과의 '국공합작'을 시도했던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뚱은 1919년 중국 5.4 운동을 기점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하는데, 바로 '신민주주의론'이다.

1918년 중국 5.4 운동은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수탈당하는 식민지 민족문제에 대한 대대적 대응이었다. 우리의 3.1 항쟁이 그랬듯, 기존의 '반봉건' 운동에 '반제국주의' 투쟁이 전면화되면서 식민지 민중들은 각성했고 '민주주의 혁명'의 내용도 새롭게 혁신된다.

마오쩌뚱은 민중이 주인되는 국가건설을 위해 1단계로 '자산계급'에 의한 '민주주의 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자산계급'에 의한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긍정한다. 당시 중국의 발전단계가 후진적이고 봉건적이었기에 필수적인 단계이되, '자산계급의 독재'가 아닌 농민과 노동자의 '무산계급'의 광범위한 '혁명적 독재'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의 이론화가 바로 '신민주주의론'인데, 2단계로서 '사회주의 혁명'은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다. 

'신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신민주주의' 정치는 '반제국주의 계급연합독재'다.

"반제국주의 계급의 연합에 의한 공동독재의 '신민주주의' 국가... 국체는 각 혁명계급 연합전정, 정체는 민주집중제, 이것이 바로 '신민주주의' 정치이며 '신민주주의' 공화국이고 항일통일전선 공화국이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정치>

2. '신민주주의' 경제는 '대은행, 대공업, 대상업의 국유화'와 쑨원의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지주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이 소유하게 한다.

"무산계급 영도 하의 '신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국영경제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며, 이는 국민경제의 지도적 역량을 갖는다. 그렇지만 '신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을 몰수하지 않으며, '국민생계를 마음대로 뒤흔들 수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금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경제가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경제>

3. '신민주주의' 문화는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지탱하는 반혁명 구세력과 투쟁하는 '반제/반봉건'을 기치로 내건 혁명적 신세력의 문화다.

"이른바 '신민주주의' 문화는 곧 인민대중의 반제/반봉건 문화이며 오늘날에 있어서는 곧 항일통일전선의 문화이다... '신민주주의'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산계급이 영도하는 인민대중의 반제/반봉건의 문화이다."
-마오쩌뚱, [신민주주의론], <신민주주의 문화>

"모든 사상에는 계급적 낙인이 찍혀 있다([실천론])", "복잡한 사물의 발전과정에는 많은 모순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는 하나의 주요 모순이 있으며 이 주요 모순의 존재와 발전에 의해 다른 모순의 존재와 발전이 규정되거나 영향을 받는다([모순론])" 등의 간략하고 쉬운 문장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설명하는 마오쩌뚱답게 항일투쟁의 '주요 모순' 국면에서 계급투쟁의 '기본 모순' 일소를 위한 '혁명론'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한 개념이 [신민주주의론]인 것이다.


"'차리즘(러시아왕정)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인민' 곧,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뿐이다... 농촌 및 도시의 프티부르주아지를 두 세력에 포함...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는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의 수립을 뜻한다."
- 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1905.

러시아왕정 '차르'를 무너뜨리고 러시아 공화국을 세운 1905년 '1차 러시아혁명'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 혁명'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 문제를 두고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로 대립하고 분화된다.
'온건파' 멘셰비키는 부르주아 세력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협력하고자 한 반면, '급진파' 볼셰비키는 '민주주의 혁명'에서도 노동자-농민 계급의 '혁명적 독재'를 주장했다.
1848년 프랑스 4월 혁명 등의 교훈은 '민주주의 혁명' 후 부르주아지의 다수 노동자-농민 계급에 대한 배신이었기 때문인데, 레닌의 볼셰비키는 케렌스키의 민주주의적 '임시정부'에 대항하여 노동자-농민-병사 소비에트의 '이중 권력'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반전평화와 노동권 쟁취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1917년 '2차 러시아혁명(소비에트혁명)'을 이루어낸다.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은 단번에 성취한 것이 아니다. 다수 노동대중의 '혁명적 독재'와 그 주체성(영도성)을 결코 놓지 않은 여러 단계의 '혁명발전론'의 결과다. 
러시아에서는 노동자-농민-병사 등 광범위한 노동대중의 '혁명적 독재'에 의한 '이중 권력'으로, 중국에서는 다수 '무산계급'의 '반제/반봉건 계급연합독재'로 나타난 '혁명발전론'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혁신되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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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민주주의론](1940),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2. [실천론/모순론](1937),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3.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1905), 레닌, 이채욱/이용재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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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선집 2 중국 문화 총서 6
모택동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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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로서의 '국가'를 둘러싼 '지구전'
- [옥중수고](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 [지구전론](1938),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현대의 군주, 즉 신화, 군주는 실제의 한 인격,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일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이미 인정받고 있으며 또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인한 하나의 집단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체 혹은 복합적 사회요소일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이미 이러한 유기체를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정당(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1](1929~1935), <현대의 군주>,
‘마키아벨리 정치학에 대한 간단한 주석’ 중.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신의 [옥중수고]에서 이탈리아 사람답게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에 주목한다. 
즉,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정치과학이 유토피아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거나 현학적인 논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었으나 "마키아벨리는 이 양자를 결합하여, 교의적, 합리적 요소를 ‘대장’이라는 인격체 속에 육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개념에 상상적이고 예술적인 형식을 부여"하였으며, '순수히 이론적인 추상'으로서의 군주를 통해 궁극에는 민중과 하나가 되고, 이 과정에서의 발화된 정치적 정열과 신화의 요소들이 실존하는 '군주'를 통해 이상적인 '군주론'이라는 '정치적 선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에게 정치는 지배와 피지배의 전제하에 존재하는 것이고, 군주제 또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전체주의적 시도를 '군주'라는 한 개인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정치체제인 것이며, 현대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로서 '정치정당'이 실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정당의 역사는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의 역사일 수 밖에 없으나", "이 사회집단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친척집단과 반대파와 적을 가지고 있어" "주어진 정당의 역사는 오직 사회와 국가의 총체성에 대한 복합적인 기술 속에서만 드러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람시는 당연히 정당을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 즉 '계급'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 바, 결국, "모든 정당은 어떤 계급의 학명(學名)에 불과한 것이므로 계급분열의 종언을 지향하는 정당은,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계급의 표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써 정당 자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자기충족을 달성할 것"(이하 [옥중수고])이라고 정당의 정치성을 '육화'시키고 있다.

[옥중수고]는 '국가는 강제의 갑옷을 입은 헤게모니', '국가와 시민사회', '강제와 헤게모니론', '기동전, 진지전' 등의 이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옥중에서 각 테마별로 저술한 기록을 엮은 것이다. 
<현대의 군주>-정당, 정치 등, 
<국가와 시민사회>-헤게모니론, 
<미국주의와 포드주의>, 
<역사와 문화>-지식인, 교육, 
<이탈리아 역사>, 
<실천철학> 등 
각 주제별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전' 전략을 채택하지만 전장에서는 속전속결('기동전')을 원칙으로 싸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적의 속전속결 전략은 수많은 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부득불 '지구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기동전'이란 광대한 전선과 전투지역에서 정규부대가 외곽전선에 위치하여 속전속결식의 공격전을 전개하는 형식을 뜻한다. 아울러 이러한 공격전을 전개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혹은 필요한 시기에 행하는 '기동성 있은 방어전'도 이에 포함된다. 또 때로는 보조작용으로서의 '진지공격전'과 '진지방어전'도 이에 포함되기도 한다."
- 마오쩌뚱, [지구전론], 1938.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뚱은 항일투쟁이 한창이던 1938년의 강의록 [지구전론]에서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는 유명한 테제를 인용하며,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정치적으로 패망할 것이라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세계 정세 분석에 기초하여 중국이 망할 것이라는 자산계급의 '망국론'을 반박하고 소자산계급의 '타협론'도 비판하면서 중국 민중의 항일투쟁은 결국 광범위한 통일전선과 대규모 정치적 민중동원을 기반으로 승리할 것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모든 전투에서 속전속결의 '기동전'이 주가 되고 '진지전'은 보조적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속승론' 또한 경계하면서 '진지전'을 통한 '지구전론'을 펼친다.

동시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감옥에서 그람시가 쓴 '진지전'에 대해 들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민중의 광범위한 정치적 동원'을 통한 '진지전'과 '지구전론'을 설파한 주장은 역시 그람시의 '헤게모니 투쟁'과 맞닿아 있다.
'기동전'을 통한 '정치국가' 영역에서의 '혁명'적 속전속결이 결정적이기는 하나, 실제에서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광범위한 '헤게모니 투쟁과 장악'을 이루어내는 수많은 '진지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내용인 것이다.
'국가'는 "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이고, 반파시즘, 반자본주의 투쟁은 결국 '지구전'이다.


그람시의 사상에 관한 해설서는 많지만, 그 자신의 저서는 '옥중의 기록'인 이 [옥중수고] 외 별도로 없다. 
그람시가 한 말을 직접 듣고 싶다면 [옥중수고]를 직접 읽기를 권한다.

***

1. [옥중수고 1~2](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2. [지구전론](1938),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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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옥중수고 1 - 정치편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이상훈 옮김 / 거름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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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로서의 '국가'를 둘러싼 '지구전'
- [옥중수고](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 [지구전론](1938),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현대의 군주, 즉 신화, 군주는 실제의 한 인격,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일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이미 인정받고 있으며 또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인한 하나의 집단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체 혹은 복합적 사회요소일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이미 이러한 유기체를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정당(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1](1929~1935), <현대의 군주>,
‘마키아벨리 정치학에 대한 간단한 주석’ 중.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신의 [옥중수고]에서 이탈리아 사람답게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에 주목한다. 
즉,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정치과학이 유토피아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거나 현학적인 논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었으나 "마키아벨리는 이 양자를 결합하여, 교의적, 합리적 요소를 ‘대장’이라는 인격체 속에 육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개념에 상상적이고 예술적인 형식을 부여"하였으며, '순수히 이론적인 추상'으로서의 군주를 통해 궁극에는 민중과 하나가 되고, 이 과정에서의 발화된 정치적 정열과 신화의 요소들이 실존하는 '군주'를 통해 이상적인 '군주론'이라는 '정치적 선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에게 정치는 지배와 피지배의 전제하에 존재하는 것이고, 군주제 또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전체주의적 시도를 '군주'라는 한 개인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정치체제인 것이며, 현대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로서 '정치정당'이 실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정당의 역사는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의 역사일 수 밖에 없으나", "이 사회집단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친척집단과 반대파와 적을 가지고 있어" "주어진 정당의 역사는 오직 사회와 국가의 총체성에 대한 복합적인 기술 속에서만 드러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람시는 당연히 정당을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 즉 '계급'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 바, 결국, "모든 정당은 어떤 계급의 학명(學名)에 불과한 것이므로 계급분열의 종언을 지향하는 정당은,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계급의 표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써 정당 자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자기충족을 달성할 것"(이하 [옥중수고])이라고 정당의 정치성을 '육화'시키고 있다.

[옥중수고]는 '국가는 강제의 갑옷을 입은 헤게모니', '국가와 시민사회', '강제와 헤게모니론', '기동전, 진지전' 등의 이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옥중에서 각 테마별로 저술한 기록을 엮은 것이다. 
<현대의 군주>-정당, 정치 등, 
<국가와 시민사회>-헤게모니론, 
<미국주의와 포드주의>, 
<역사와 문화>-지식인, 교육, 
<이탈리아 역사>, 
<실천철학> 등 
각 주제별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전' 전략을 채택하지만 전장에서는 속전속결('기동전')을 원칙으로 싸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적의 속전속결 전략은 수많은 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부득불 '지구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기동전'이란 광대한 전선과 전투지역에서 정규부대가 외곽전선에 위치하여 속전속결식의 공격전을 전개하는 형식을 뜻한다. 아울러 이러한 공격전을 전개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혹은 필요한 시기에 행하는 '기동성 있은 방어전'도 이에 포함된다. 또 때로는 보조작용으로서의 '진지공격전'과 '진지방어전'도 이에 포함되기도 한다."
- 마오쩌뚱, [지구전론], 1938.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뚱은 항일투쟁이 한창이던 1938년의 강의록 [지구전론]에서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는 유명한 테제를 인용하며,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정치적으로 패망할 것이라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세계 정세 분석에 기초하여 중국이 망할 것이라는 자산계급의 '망국론'을 반박하고 소자산계급의 '타협론'도 비판하면서 중국 민중의 항일투쟁은 결국 광범위한 통일전선과 대규모 정치적 민중동원을 기반으로 승리할 것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모든 전투에서 속전속결의 '기동전'이 주가 되고 '진지전'은 보조적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속승론' 또한 경계하면서 '진지전'을 통한 '지구전론'을 펼친다.

동시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감옥에서 그람시가 쓴 '진지전'에 대해 들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민중의 광범위한 정치적 동원'을 통한 '진지전'과 '지구전론'을 설파한 주장은 역시 그람시의 '헤게모니 투쟁'과 맞닿아 있다.
'기동전'을 통한 '정치국가' 영역에서의 '혁명'적 속전속결이 결정적이기는 하나, 실제에서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광범위한 '헤게모니 투쟁과 장악'을 이루어내는 수많은 '진지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내용인 것이다.
'국가'는 "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이고, 반파시즘, 반자본주의 투쟁은 결국 '지구전'이다.


그람시의 사상에 관한 해설서는 많지만, 그 자신의 저서는 '옥중의 기록'인 이 [옥중수고] 외 별도로 없다. 
그람시가 한 말을 직접 듣고 싶다면 [옥중수고]를 직접 읽기를 권한다.

***

1. [옥중수고 1~2](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2. [지구전론](1938),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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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혁명 : 마르크스주의 국가론과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더 레프트 클래식 3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문성원.안규남 옮김 / 돌베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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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급의 '민주주의'는 그 계급에 의한 '독재'
- [국가와 혁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김영철 옮김, <논장>, 1994.


"국가가 화해불가능한 계급 적대감의 산물이고 사회의 상부에 위치하면서 '사회로부터 자기를 스스로 점점 소외시키고 있는' 권력이라면, 억압받는 계급의 해방은 '폭력혁명'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이 창출했고, 또한 이러한 '소외'를 이루고 있는 몸체인 국가권력기구의 '파괴를 통하지 않고서는' 계급해방이 불가능하다."
- 레닌, [국가와 혁명], 1917.

모든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 규정하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국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한 기구, 더 나아가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위원회(엥겔스)'에 불과하다. 부르주아(자본가계급)에 의한 '생산수단 독점'이라는 경제적 토대 위에 이러한 생산관계를 공고히 하는 상부구조로서 정치적 기구가 바로 '국가'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에 의하면, 국가란 '계급지배의 도구'이므로 계급이 소멸되면 그 역할을 다하고 사멸된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계급)는 '혁명'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일체의 계급을 철폐하고 인류 역사에서 '마지막 계급'으로서의 소명을 완수하는데, 마르크스-엥겔스는 이 시기 사멸하는 '국가' 대신, 프랑스어 '코뮌'이나 독일어 '공동체(Gemeinwesen)'가 그 '최종적 형태'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실현되지 않은 '공산주의', '코뮌주의' 또는 '공동체주의'이며, 그 내용은 "개인의 발전이 만인의 발전의 기초"가 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공동체'다.


"모든 부르주아 국가는 그들의 형태가 아무리 다양하더라고 끝까지 그 본질을 분석해 보면 '부르주아지의 독재'라는 동일한 본질이 드러난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풍부하고 아주 다양한 정치적 형태들을 창출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그 본질은 필연적으로 동일하게 될 것이다.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이다."
- 레닌, [국가와 혁명], 1917.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계급사회 국가의 본질을 분석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수립할 '노동자국가'는 기존 계급사회의 국가장치를 파괴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이행체제를 통해 '계급사멸(공산주의)'을 달성해야 하고 그와 함께 국가의 역할도 소멸된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 국가(State)'는 '사멸'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폐지'되고 '계급철폐'와 함께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준국가(Semi-state)'는 궁극에 '사멸'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필연적으로 '폭력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반한다.

[국가와 혁명]은 소비에트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7년 8월과 9월에 발표된 저작으로서 계급국가의 정의와 분석으로부터 시작하여 엥겔스의 보충설명, 국가에 관한 각종 기회주의적 경향(카우츠키 류)에 대한 비판을 지나 1905년과 1917년 사이 러시아 혁명의 경험까지 기획하였지만, 임박한 실제 혁명의 정세를 맞아 제7장인 <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의 경험>장을 시작하기 전에 중단된 '미완의 저작'이다.

"이 소책자([국가와 혁명])는 1917년 8월에서 9월 사이에 쓰여졌다. 나는 이미 제7장(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의 경험)에 대한 계획을 구상해두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써내려갈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1917년 10월 혁명의 전야라는 정치적 위기가 나의 저술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중단'은 반가운 것일 수밖에 없다..."
- 레닌, [국가와 혁명], <초판 후기>, 1917.11.30.

[국가와 혁명] 말미에 '임박한 혁명'을 실천하기 위해 펜을 놓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레닌의 '급박함'이 묻어나는데, 그는 소비에트 러시아혁명 후 출간된 이 '미완의 저작' <초판 후기>에 위와 같이 쓰면서 "아마도 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의 경험에 대한 저술은 먼 훗날로 미루어야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결국, 그 시기에 대한 기록은 레닌의 몫이 아니라 '혁명'으로 '국가'를 '장악'하고 '폐지'하고 '사멸'시켜야 할 후세의 '노동자계급'의 임무가 되었을 터, 그러나 '혁명'은 실패했고 아직까지 '계급'은 존재하며 '국가'는 건재하다.

체코의 현대적 '변증법적 유물론자' 슬라보예 지젝의 [레닌 재장전]에 따르면, 혁명 전의 레닌과 혁명 후의 레닌은 사상 및 실천적으로 구분되는데, [국가와 혁명]은 레닌의 혁명 전 사상을 표현하는 ‘마지막 저작’이 된다. 

레닌의 이 '미완의 저작'은 1976년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알튀세르의 동료이자 제자인 에티엔 발리바르([레닌 재장전]의 저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가 저술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한역판은 [민주주의와 독재])를 통해 요약 및 정리된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이 정리한 '국가론',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레닌의 세 가지 테제는 다음과 같다. 

(1) 국가권력은 항상 단일한 계급의 정치권력이다. 
(2) 국가장치가 없이는 국가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하여 기존 계급사회의 국가장치들은 혁명기에는 철저히 파괴되어야 한다.
(3)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이다.

결국, 계급사회에서 국가를 통해 실현되는 '민주주의'는 결국 한 계급의 '독재'에 불과하다.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동일하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론'의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국가론'과 연관된 '민주주의'에 대한 레닌의 견해를 들어본다.

"민주주의는 처음에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 투쟁을 치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융합되고, 이어 자본주의를 산산조각내며, 모든 부르주아 계급과 공화적인 부르주아지와 국가기구 그리고 상비군과 경찰과 관료제까지도 이 지구상에서 싹쓸어버리고, 그 대신에 보다 민주적인 국가기구로, 그것도 모든 대중을 포함하는 시민군을 형성하는 무장한 노동자들이라는 측면에서 본 국가기구로 그것들을 대체하게 된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 레닌, [국가와 혁명], 1917.

***

1. [국가와 혁명], 레닌, 김영철 옮김, <논장>, 1994.
2. [민주주의와 독재], 에티엔 발리바르, 최인락 옮김, <연구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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