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저항
방현석 지음 / 일하는사람들의작은책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80년대 가장 현실적 '리얼리스트', 방현석
-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창조적 리얼리스트... 사유와 감정이 사회적 존재로부터 형성되는 과정을 알며, 또 체험이나 감정들이 현실이라는 전체적 복합체의 부분이라는 점을 안다. 이때 그는 리얼리스트로서 그러한 부분이 삶의 전체적 복합체 속에서 어디에 속하며, 사회생활의 어느 부분에서 생성되었고, 무엇을 지향하게 되는지 등등의 문제를 보여준다."
- 게오르그 루카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1938.

'리얼리즘'은 '사실주의'와 다르다.
서양에서는 19세기 과학의 발전과 함께 기존 '낭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사실주의'가 시작되었으나, 서양사조가 여과없이 이식되던 식민지 조선에서는 '사실주의' 이후 '낭만주의'가 유행했는데, 우리 문학사에서 '사실주의'란 그 객관적 묘사의 자연적 확장이라는 '자연주의'와 구별이 모호했다. 
그로 인해, 원래 '사실주의' 원어로서 '리얼리즘'은 번역되지 못했고, 그냥, '리얼리즘'이 된다.

헝가리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에게 "문학(예술)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다.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기본으로, 복합적인 삶의 보편적 '총체성'을 개별적 '구체성'으로 '반영'하는 것이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문예사조에서 "문제는 리얼리즘"이었다.

"리얼리즘적인 것은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복합체를 발견하며... 계급의 관점에서 글을 쓰며... 따라서 민중성과 리얼리즘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들은 관대하면서도 극히 조심스럽게 선정되어야 한다... 기존의 리얼리스틱한 작품들이나 민중적인 작품들로부터만 그러한 기준을 끄집어내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경우에는 그저 형식주의적인 기준들 밖에, 형식적인 리얼리즘 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루카치에 대한 반론], 1938.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루카치의 '문예론'에 대한 반론으로, '리얼리즘'은 '계급적 관점'에서 현실을 '반영'하나 기존의 '민중적인 작품'들로만 가준을 삼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개인과 집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리얼리즘'의 '문제'는 단순한 '사실주의'의 그것과 다르다.


우리 현대 소설 문학사에서 나는 '리얼리스트'를 단 세 명만 뽑는다.

1970년대, 황석영.
1980년대, 방현석.
1990년대, 김소진.

21세기 들어서 '리얼리즘'의 의미는 더 확장되었거나 문예사조로서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1970년대 [객지]를 썼던 황석영이나, 1980년대 [내딛는 첫발은]을 썼던 방현석이나, 1990년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썼던 김소진에게서 추출된 공통점은 '복잡한 현실에서 노동하는 다수 사람들의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심경들과 그들의 지난한 현실들'이었다.

방현석은 소설창작을 전공하고 인천에서 공장노동과 노동조합 활동를 하면서 그 경험을 토대로 1988년 [내딛는 첫발은]이라는 단편소설로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소설가다.
뜨거웠던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파도가 지난 후 자본의 개별적 역습, 그리고 노조운동의 패배와 승리의 과정에서 고뇌하는 노동자들의 심리와 현실을 그려낸 단편소설들을, 역시 치열했던 1991년에 [내일을 여는 집]으로 묶어냈다.

해고와 복직투쟁의 과정을 그린 [내일을 여는 집], 조선소 투쟁을 담은 [지옥선의 사람들], 굴종을 깨고 일어나는 파업 과정을 묘사한 [내딛는 첫발은] 등 당시 노동자들이 '노예'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당당한 '노동계급 주체'로 우뚝서는 모습들 말이다.

물론,
방현석의 '80년대 소설들이 '리얼리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당시 남한의 구체적 현실이 배경이 되었고, 당시 우리 현실에서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복합성'을 발견하고 그 특수한 현실을 '반영'한 산물이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방현석은 같은 어조를 유지하면서 1999년에는 한국 현대 노동운동사(1970~1994)를 [아름다운 저항]으로 엮었는데, 1970년대 청계천 노동운동부터 1980년 광주, 1990년 울산 골리앗 투쟁, 1991년 전노협 건설과 1994년 전기협/전지협 파업까지 우리 노동운동 역사를 정리하기도 한다.


21세기에 아마도 '폐기'되었을지도 모를 우리의 '리얼리즘'은 그 본질이 '현실의 반영'인 한 여전히 '확장'되어야 한다.


"정식이 던진 스패너가 공중을 날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개처럼 살거야? 언제까지?'
...
15호기, 16호기가 꺼졌다... 스패너가 유리창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기계소리 대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잇따랐다.
'나가자.'
누군가 외쳤다. 나가자. 가자. 나가자. 한순간이었다. 눈물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모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달려나가는 사람들의 손에 금형 받침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 방현석, [내딛는 첫발은], <실천문학 봄호>, 1988.


내게 소설가 방현석은 등단작 마지막 장면으로, '80년대 가장 현실적인 '리얼리스트'로 언제까지나 기억되고 있다.

***

1.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2. [아름다운 저항], 방현석, <작은책>, 1999.
3. [당신의 왼편], 방현석, <해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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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지음 / 창비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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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가장 현실적 '리얼리스트', 방현석
-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창조적 리얼리스트... 사유와 감정이 사회적 존재로부터 형성되는 과정을 알며, 또 체험이나 감정들이 현실이라는 전체적 복합체의 부분이라는 점을 안다. 이때 그는 리얼리스트로서 그러한 부분이 삶의 전체적 복합체 속에서 어디에 속하며, 사회생활의 어느 부분에서 생성되었고, 무엇을 지향하게 되는지 등등의 문제를 보여준다."
- 게오르그 루카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1938.

'리얼리즘'은 '사실주의'와 다르다.
서양에서는 19세기 과학의 발전과 함께 기존 '낭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사실주의'가 시작되었으나, 서양사조가 여과없이 이식되던 식민지 조선에서는 '사실주의' 이후 '낭만주의'가 유행했는데, 우리 문학사에서 '사실주의'란 그 객관적 묘사의 자연적 확장이라는 '자연주의'와 구별이 모호했다. 
그로 인해, 원래 '사실주의' 원어로서 '리얼리즘'은 번역되지 못했고, 그냥, '리얼리즘'이 된다.

헝가리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에게 "문학(예술)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다.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기본으로, 복합적인 삶의 보편적 '총체성'을 개별적 '구체성'으로 '반영'하는 것이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문예사조에서 "문제는 리얼리즘"이었다.

"리얼리즘적인 것은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복합체를 발견하며... 계급의 관점에서 글을 쓰며... 따라서 민중성과 리얼리즘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들은 관대하면서도 극히 조심스럽게 선정되어야 한다... 기존의 리얼리스틱한 작품들이나 민중적인 작품들로부터만 그러한 기준을 끄집어내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경우에는 그저 형식주의적인 기준들 밖에, 형식적인 리얼리즘 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루카치에 대한 반론], 1938.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루카치의 '문예론'에 대한 반론으로, '리얼리즘'은 '계급적 관점'에서 현실을 '반영'하나 기존의 '민중적인 작품'들로만 가준을 삼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개인과 집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리얼리즘'의 '문제'는 단순한 '사실주의'의 그것과 다르다.


우리 현대 소설 문학사에서 나는 '리얼리스트'를 단 세 명만 뽑는다.

1970년대, 황석영.
1980년대, 방현석.
1990년대, 김소진.

21세기 들어서 '리얼리즘'의 의미는 더 확장되었거나 문예사조로서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1970년대 [객지]를 썼던 황석영이나, 1980년대 [내딛는 첫발은]을 썼던 방현석이나, 1990년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썼던 김소진에게서 추출된 공통점은 '복잡한 현실에서 노동하는 다수 사람들의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심경들과 그들의 지난한 현실들'이었다.

방현석은 소설창작을 전공하고 인천에서 공장노동과 노동조합 활동를 하면서 그 경험을 토대로 1988년 [내딛는 첫발은]이라는 단편소설로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소설가다.
뜨거웠던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파도가 지난 후 자본의 개별적 역습, 그리고 노조운동의 패배와 승리의 과정에서 고뇌하는 노동자들의 심리와 현실을 그려낸 단편소설들을, 역시 치열했던 1991년에 [내일을 여는 집]으로 묶어냈다.

해고와 복직투쟁의 과정을 그린 [내일을 여는 집], 조선소 투쟁을 담은 [지옥선의 사람들], 굴종을 깨고 일어나는 파업 과정을 묘사한 [내딛는 첫발은] 등 당시 노동자들이 '노예'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당당한 '노동계급 주체'로 우뚝서는 모습들 말이다.

물론,
방현석의 '80년대 소설들이 '리얼리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당시 남한의 구체적 현실이 배경이 되었고, 당시 우리 현실에서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복합성'을 발견하고 그 특수한 현실을 '반영'한 산물이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방현석은 같은 어조를 유지하면서 1999년에는 한국 현대 노동운동사(1970~1994)를 [아름다운 저항]으로 엮었는데, 1970년대 청계천 노동운동부터 1980년 광주, 1990년 울산 골리앗 투쟁, 1991년 전노협 건설과 1994년 전기협/전지협 파업까지 우리 노동운동 역사를 정리하기도 한다.


21세기에 아마도 '폐기'되었을지도 모를 우리의 '리얼리즘'은 그 본질이 '현실의 반영'인 한 여전히 '확장'되어야 한다.


"정식이 던진 스패너가 공중을 날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개처럼 살거야? 언제까지?'
...
15호기, 16호기가 꺼졌다... 스패너가 유리창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기계소리 대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잇따랐다.
'나가자.'
누군가 외쳤다. 나가자. 가자. 나가자. 한순간이었다. 눈물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모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달려나가는 사람들의 손에 금형 받침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 방현석, [내딛는 첫발은], <실천문학 봄호>, 1988.


내게 소설가 방현석은 등단작 마지막 장면으로, '80년대 가장 현실적인 '리얼리스트'로 언제까지나 기억되고 있다.

***

1.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2. [아름다운 저항], 방현석, <작은책>, 1999.
3. [당신의 왼편], 방현석, <해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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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분열증 현대사상의 모험 1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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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물신성' 속 '욕망하는 기계'들
- [앙띠오이디푸스](1972),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최명관 옮김, <민음사>, 1997.


"상품형태의 신비성은, 상품형태가 인간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자체의 '물적 성격(물건들의 사회적인 자연적 속성)'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그들 외부에 존재하는 관계, 즉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한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인간의 눈에는 '물건들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사실상 '인간들 사이의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라고 부른다."
- 칼 마르크스, [자본론] 1권, <자본의 물신적 성격과 비밀>, 1867.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수단을 사유화한 자본가가 가진 것은 노동력 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그들의 '노동의 (사용)가치'가 아닌 '상품'으로서 '노동의 교환가치', 즉 '노동력의 가치'인 '임금'을 주는 생산관계를 그 경제적 토대로 한다. 여기서 '지불되지 않는 노동(부불노동)'은 '잉여가치'가 되고 자본으로 축적되며, 이러한 과정은 "스스로 자기증식하는 자본의 자기운동"이라는 헤겔식 표현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서술된다.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자본의 '자기증식운동'의 과정이 노동 '착취'며, 자본 축적의 본질은 생산수단의 '독점'인 바, 이것이 자본주의 본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산관계가 '상품'이라는 '물적 관계'로 현상하면서 그 본질인 '인적 관계'를 은폐하는데, 마르크스는 이것을 '물신성(Fetishism)'으로 표현한다.

'기계'라는 프랑스 현대철학의 구조주의식 표현은, 말 그대로의 '기계'가 아닌 '은유'인데, 위와 같이 각 역사적 특정 단계의 사회적 '생산관계'에서 '자기운동'에 의해 가동되는 하나의 거대한 '구조'를 말한다.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 조차 자본주의를 '주체'도 없이 돌아가는 '구조'로 보는데, 고도로 발전한 복잡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온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의 영향이다.

질 들뢰즈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 '주변의 괴상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좌파 정신분석의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작업한 [앙띠오이디푸스]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 생산관계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인간들을 '욕망하는 기계들'이라 표현하는데, 난해하지만, 거대한 '기계'와 연결된 장치로서 '부품'들이기는 하나 '욕망'이라는 본질이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았으되, 사회적 '생산관계'가 아닌 개인적 '가족관계'로 한정된 프로이트의 '무의식-초자아(id)'는 거부한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개념에 반대한다는 선언이 [앙띠-오이디푸스(Anti-Oedipe)]이다.


"오이디푸스가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탄생하는 것은 첫째 차원의 사회적 심상들이 둘째 차원의 가족적 삼상들에 일치하는 데서이다... 오이디푸스는... 돈-자본의 탈규준화한 흐름들을 타고 도래한다... 오이디푸스 개념은 자본주의 '기계'의 상상적인 오이디푸스의 개념이 됨으로써만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현실화한다... 이 오이디푸스 개념은 실로 세계사의 결과이거니와, 이것은 자본주의가 이미 세계사의 결과라고 하는 독특한 의미에서이다."
- 가타리/들뢰즈, [앙띠오이디푸스], <결국은 오이디푸스>, 1972.

스핑크스의 퀴즈를 풀고 왕을 죽인 후 왕비를 차지한 그리스 시대 오이디푸스가 결국 본인이 죽인 왕이 자신의 아버지이고 본인이 겁탈한 왕비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고는 '정신분열'에 빠진 이야기. 프로이트는 '아버지-어머니-나'의 '가족적 삼각관계' 속에서 '오이디푸스'라는 '나'를 두고 '성적 억압'과 '정신분열'을 다루는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오이디푸스' 개념은 개인적 '가족관계'가 아닌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통해 현실화된다고 한다. 
[앙띠오이디푸스]의 '자기비판점'은' "가족에 포개는 일 밑에 무의식의 사회적 공급들의 본성을 발견하는 것. 개인적 환상 밑에 집단의 환상들의 본성을 발견하는 것" 혹은, "환영이 심상의 심상이기를 그치는 점까지 환영을 밀어붙여, 환영이 숨기면서 포장하고 있는 추상적인 형상들, 즉 '분열들-흐름들'을 찾아내는 것"인데, 사회적 '오이디푸스'인 '정신분열자' 분석의 과제는 개인적(가족적) 오이디푸스라는 "표상의 극장을 '욕망하는 생산'의 질서 속에 다시 옮겨놓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프로이트에 의해 개인적이고 가족적으로 발명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구조 속에, 그 특정 '생산관계'의 '질서' 속에 "이미-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의 영향이다.


"'욕망'은 생산의 질서에 속하며, 모든 생산은 욕망하는 것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리카도가 표상 가능한 모든 가치의 원리로서 '양적 노동(추상노동)'을 발견함으로써 정치적 혹은 사회적 경제학(정치경제학)의 기초를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프로이트는 '욕망'의 대상들과 목표들의 표상 전체의 원리로서 '양적 리비도'를 발견함으로써 '욕망'하는 경제학의 기초를 세우고 있다... 리카도가 '단적으로 노동 자체'를, 또한 표상을 실제로 넘어서서 넘쳐흐르는 생산의 영역을 최초로 찾아낸 사람이듯이, 프로이트는 '단적으로 욕망 자체'를 찾아낸 사람이다."
- 들뢰즈/가타리, [앙띠오이디푸스], <정신분석과 자본주의>, 1972.

마르크스주의에서 소비에트 러시아혁명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세계체제 변혁이라는 '거대담론'을 고민하고 자본주의 '국가'를 전복하는 '혁명'에 주력한다. 그러나, [앙띠오이디푸스]에 의하면, "레닌주의의 이 '절단'은 사회주의 자체에 국가자본주의가 되살아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따라서, 사회관계 속 개인들의 '욕망'이 부각된다. 사람들 개인의 '미시담론'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체제와 정치권력의 정복이라는 '거시담론'이 해결되어도 미흡하다는 것인데, 계급 전반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물신성(물신숭배)'의 문제인 것이다.
[앙띠오이디푸스]는 "욕망하는 기계들은 사회적 기계로부터 나오며, 욕망하는 기계들 없는 사회적 기계 또한 없다"고 한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세 가지 원천'(레닌)은 철학에서 독일의 관념론(칸트, 헤겔), 정치경제학에서 영국의 정치경제학(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사회주의에서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하는데,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이듯, 들뢰즈와 가타리의 '반-오이디푸스론'은 프로이트의 '관념론적 오이디푸스'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이제, '정신분열적' 난해한 이 책의 결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오이디푸스적' 정신분열자들을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이다.

"혁명가는 더러운 관을 깨부수고, 홍수를 통과시키고, 흐름을 풀어놓고, 분열을 다시 절단한다. 정신분열자는 혁명가가 아니지만, 정신분열증적 과정은 '혁명의 잠재력'이다... 그러므로 정신분석자-분석의... 마지막 명제는 사회적인 리비도 공급의 두 극을 구별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 하나는 반동적이고 파시즘화하는 편집병적인 극이요, 다른 하나는 정신분열적인 극이다."
- 들뢰즈/가타리, [앙띠오이디푸스], <정신분열자-분석의 적극적 임무>, 1972.

자본주의적 '물신성' 속에서, 가족관계에 머무는 관념론적 '오이디푸스'는 '편집증'의 형태로 '반동화'되고 '파시즘화'되는 반면, '욕망하는 기계들'을 긍정하는 유물론적 '오이디푸스들'은 '정신분열'은 겪지만 '혁명의 잠재력'이라는 것이 이 난해한 저서의 결론이다.
즉, '욕망(리비도)'을 억압하는 '사회적 기계'를 전복하는 '잠재력'을 '욕망하는 기계들'의 '오이디푸스적 정신분열'에서 찾아낸다.

다만, [앙띠오이디푸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세 가지를 적고 있다.
첫째, 예술과 과학만이 혁명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둘째, 하부구조(경제적 토대) 자체 속에 근거를 두는 '계급'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셋째, '혁명가'가 '정신분열자'이거나 그 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편집증'이 반동적 파시스트적이라는 '극단적' 의미로 '정신분열증'이 혁명적이라는 것이며, 그 전제는 위 두 가지일 것이다.

자본주의적 '오이디푸스'의 한 극단이 '파시즘적 편집증'이라면, 다른 극단은 '혁명적 정신분열증'이라는 결론인데, [앙띠오이디푸스]라는 책 자체가 '정신분열'적인 이유 아니겠는가.


"'욕망' 자체, 욕망의 위치의 문제가 제기... 즉, 욕망의 극단적인 두 극 간에, '욕망하는 기계들'과 기술적인 '사회기계들' 간의 내재적 관계의 문제... 이 두 극의 한쪽에서는 욕망이 '파시스트적인 편집병적' 조직체들을 공급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정신분열' 기질의 '혁명적인' 흐름들을 공급한다."
- 들뢰즈/가타리, [앙띠오이디푸스], <부록>, 1972.

***

- [앙띠오이디푸스](1972),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최명관 옮김, <민음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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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듀링론 - 오이겐 류링씨의 과학혁명, 개정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민석 옮김 / 새길아카데미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노동계급운동은 진정한 '철학'의 '상속자'이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모든 철학, 특히 현대 철학의 중요한 근본문제는 '사유'와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사유'가 차지하는 위치의 문제, 중세시대의 스콜라철학에서도 매우 커다란 역할을 했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정신'과 '자연' 가운데 어느 것이 '일차적'인 것인가? 이 문제는 교회와의 관계에서 이렇게 첨예화된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는가, 아니면 세계는 영원히 존재해 왔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진다."
-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1888.

칼 마르크스의 동지이자 마르크스 사후 그의 '악필' 초고들을 편집하여 [자본론] 2권과 3권을 출간하였으며, 유럽 사회민주주의 연대체인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청년 시절 마르크스를 만나 [독일이데올로기 초고](1844)와 [공산당선언](1848)을 공동 집필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다.
그는 마르크스 사후 자본주의 본격적 축적으로 인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목도했고, 전세계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경제주의'의 오명도 받고 있다. 결국, 만년의 엥겔스는 그 제자 칼 카우츠키가 그랬듯, '과학적 사회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면서 사상적 여로를 마치는데, 그의 중간 시기는 온갖 '사이비'에 맞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옹호한 '철학'적 투쟁의 시간이었다.

1888년 만년의 엥겔스는 칸트로 시작하여 헤겔로 완성된 '독일고전철학(사변철학-관념철학)'은 포이어바흐라는 반쪽짜리 '유물론자'를 거쳐 진정한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담지자인 독일노동계급에게 "상속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져 투쟁한 '철학의 역사'를 정리하고 '존재'보다 '정신'이 일차적이라는 '관념론'이 객관적 사회경제체제의 토대 위에서 '존재'가 '정신'보다 일차적이라는 '유물론'에 의해 대체되고 "상속"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엥겔스가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승리'로 결론지을 수 있었던 강력한 근거는 19세기 당시의 자연과학의 발전이었다.


"'잉여가치'의 발견... 부불노동을 전유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및 이로 인해 완성된 노동자 착취의 기본형태라는 것, 자본가가 가령 노동자의 노동력을, 그것이 상품으로서 상품시장에서 갖고 있는 충분한 가치 그대로 구입하였을 경우에도 그는 지불한 대가 이상의 가치를 노동자에게서 회수한다는 것, 그리고 이 '잉여가치'가 결국에는 가치총액이 되는 바, 유산자계급의 수중에 부단히 축적되는 대자본의 출처는 바로 여기('잉여가치')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상의 두 가지 위대한 발견, 즉 '유물론적 역사관'과 '잉여가치'를 통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의 폭로야말로 마르크스의 공적이다. 이것들이 발견됨으로써 '사회주의'는 하나의 '과학'이 되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과학'을 그 모든 개별들과 그것의 총체적 연관 속에서 더욱 완성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 F. Engels, [반뒤링론], <1장 개관>, 1878.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위대한 발견으로 '잉여가치'와 '유물론적 역사관' 두 가지를 든다.

'노동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상품'으로서 '노동의 교환가치', 즉 '노동력의 가치(가격)'만을 임금으로 지불한 자본가가 지불하지 않는 '노동의 가치'인 '부불노동'으로 '잉여가치'를 남기는데, 이 과정이 바로 '착취'다. '착취'는 자본주의에서 '합법적' 과정이며, 새로운 사회에서는 철폐되어야 할 것인데, 자본주의에서 '불법적'인 것은 '착취'가 아니라 '수탈'이다(김규항, [혁명노트]). '착취'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력의 교환가치(가격)'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한 자본주의 본질로 현상하며, '수탈'은 20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과 억압적 지배에서 보인 '강화된 불법착취'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유물론적 역사관'은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도식화'되었는데, 인류의 사회역사에는 '역사적 유물론', 그 외 자연 전체에 대한 사유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보면 되는 바, 결국 양자의 공통지점은 '유물론'이라는 '철학'이다.
청년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뒤집어 유물론적으로 해석한 루드비히 포이어바흐가 '사이비 유물론자'임을 '11개 테제'로 남겼는데, 그 내용은 '진정한 유물론'과 '해석'이 아닌 '변혁'의 철학이었다.
엥겔스는 1878년에 당시 '사이비' 사회주의자이자 '강단 좌파'인 오이겐 뒤링이라는 인물의 주장들을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 분야로 나누어 조목조목 인신공격과 각종 역설(또는 '욕설')을 섞어 비판한다.
특히, 1부 '철학'의 영역에서는 당시 따로 집필 중이었을 [자연변증법](1873~1883)의 자료들을 가지고 비판한 듯 한데, [자연변증법]은 19세기 당시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발전을 토대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철학'이 객관적 자연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일종의 '필연의 증명' 작업이었다. 
[반뒤링론]에서 엥겔스는 '자연철학'으로서 수학(미적분), 우주발생론, 물리학, 화학, 유기체(생물학), 그를 기반으로 파생되는 '도덕'과 '법', 그리고 '양질전환'과 '부정의 부정'으로서 '변증법' 등의 영역에서의 무지막지한 비판으로 '오이겐 뒤링씨'를 깔아 뭉개버리고 있다.

엥겔스의 [반뒤링론]은 마르크스의 푸르동(공상적 사회주의자) 비판([철학의 빈곤])의 '논쟁 저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그 영역은 '온 우주'를 망라하는 바, '변증법적 유물론'을 수호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이는 저작이다. 
이러한 '논쟁을 목표로 쓴 저작'의 전통은 1908년 '유물론'의 외피를 쓴 오스트리아 마흐주의를 비슷한 방식으로 비판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컨대, '국가'라는 것은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일정한 발전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국가'는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자기 모순에 빠졌으며, 자기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불상용적인 대립으로 분열했다는 것을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대립, 즉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에서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하려면 외관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즉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를 '질서'의 한계 내에 유지시킬 권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로부터 발생했으나, 그 위에 올라서서 사회와는 더욱더 멀어져 가는 권력이 바로 '국가'이다."
- F. Engels,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1884.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원천,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에서 엥겔스는 원시 씨족사회를 연구하던 루이스 모건의 [고대사회](1877)라는 저서를 바탕으로 씨족에서 부족, '원시공동체'에서 생산력 발전의 과정 속 '잉여생산'과 '사유재산'의 축적, '계급사회'의 등장과 그 결정체인 '국가'의 기원을 추적한다. 
이 고전적 '국가론'은 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주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으로 이어진다.


[자연변증법]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의 거대한 영역에서, '사이비 사회주의자' 뒤링을 잠시 비판한 [반뒤링론], 씨족사회에서 '국가'의 기원까지 추적한 '역사적 유물론'을 거쳐 만년의 엥겔스는 '과학적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 "독일고전철학의 상속자"인 노동계급에게 '고전적 관념론 철학의 종말'을 고한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은 다름아닌 [자연변증법]이라는 방대한 연구, 그 '빅 히스토리'를 위한 '메모'였다.

"... 변증법적 자연관이 모든 자연철학을 불필요하고 불가능하게 만들었듯이 이러한 견해는 역사의 영역에서 '철학의 종말'을 고한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어느 곳에서든 우리 두뇌로부터 상호연관을 발명해 내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 속에서 상호연관을 발견하는 문제이다. 자연의 역사로부터 추방된 '철학'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순수한 사유의 영역, 즉 사유과정 자체의 법칙에 관한 이론인 '논리학'과 '변증법'만이 있을 뿐이다...
사회의 역사 전체를 이해하는 관건은 노동의 발전사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새로운 경향은 처음부터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독일 노동계급운동은 독일고전철학의 '상속자'이다."
-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1888.

엥겔스에 의하면, 헤겔은 [법철학]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고 했는데 '현실'을 '절대이성'화하는 '보수성'이 있었던 한편으로, 그 다음 명제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이라면서 '필연'의 변화에 '이성'을 포함시켜 '진보성'의 맹아를 품고 있다. 
포이어바흐는 자연철학에서는 헤겔을 뒤집었으나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하지 못해 '철학'에서는 '인류의 사랑'만을 발견했다. 
결국, '독일고전철학'이라는 '관념론' 일체는 다수 노동계급의 각성과 함께 '종말'을 고하면서, 노동계급운동은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으로 "상속"받는다.

***

1. [반뒤링론(Anti-During)](1878), F. Engels, 김민석 옮김, <새길>, 1987.
2.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 F. Engels. 김대웅 옮김, <아침>, 1987.
3.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4.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V. I. Lenin,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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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강유원 옮김 / 이론과실천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노동계급운동은 진정한 '철학'의 '상속자'이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모든 철학, 특히 현대 철학의 중요한 근본문제는 '사유'와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사유'가 차지하는 위치의 문제, 중세시대의 스콜라철학에서도 매우 커다란 역할을 했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정신'과 '자연' 가운데 어느 것이 '일차적'인 것인가? 이 문제는 교회와의 관계에서 이렇게 첨예화된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는가, 아니면 세계는 영원히 존재해 왔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진다."
-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1888.

칼 마르크스의 동지이자 마르크스 사후 그의 '악필' 초고들을 편집하여 [자본론] 2권과 3권을 출간하였으며, 유럽 사회민주주의 연대체인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청년 시절 마르크스를 만나 [독일이데올로기 초고](1844)와 [공산당선언](1848)을 공동 집필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다.
그는 마르크스 사후 자본주의 본격적 축적으로 인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목도했고, 전세계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경제주의'의 오명도 받고 있다. 결국, 만년의 엥겔스는 그 제자 칼 카우츠키가 그랬듯, '과학적 사회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면서 사상적 여로를 마치는데, 그의 중간 시기는 온갖 '사이비'에 맞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옹호한 '철학'적 투쟁의 시간이었다.

1888년 만년의 엥겔스는 칸트로 시작하여 헤겔로 완성된 '독일고전철학(사변철학-관념철학)'은 포이어바흐라는 반쪽짜리 '유물론자'를 거쳐 진정한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담지자인 독일노동계급에게 "상속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커다란 진영"으로 갈라져 투쟁한 '철학의 역사'를 정리하고 '존재'보다 '정신'이 일차적이라는 '관념론'이 객관적 사회경제체제의 토대 위에서 '존재'가 '정신'보다 일차적이라는 '유물론'에 의해 대체되고 "상속"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엥겔스가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승리'로 결론지을 수 있었던 강력한 근거는 19세기 당시의 자연과학의 발전이었다.


"'잉여가치'의 발견... 부불노동을 전유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및 이로 인해 완성된 노동자 착취의 기본형태라는 것, 자본가가 가령 노동자의 노동력을, 그것이 상품으로서 상품시장에서 갖고 있는 충분한 가치 그대로 구입하였을 경우에도 그는 지불한 대가 이상의 가치를 노동자에게서 회수한다는 것, 그리고 이 '잉여가치'가 결국에는 가치총액이 되는 바, 유산자계급의 수중에 부단히 축적되는 대자본의 출처는 바로 여기('잉여가치')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상의 두 가지 위대한 발견, 즉 '유물론적 역사관'과 '잉여가치'를 통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의 폭로야말로 마르크스의 공적이다. 이것들이 발견됨으로써 '사회주의'는 하나의 '과학'이 되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과학'을 그 모든 개별들과 그것의 총체적 연관 속에서 더욱 완성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 F. Engels, [반뒤링론], <1장 개관>, 1878.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위대한 발견으로 '잉여가치'와 '유물론적 역사관' 두 가지를 든다.

'노동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상품'으로서 '노동의 교환가치', 즉 '노동력의 가치(가격)'만을 임금으로 지불한 자본가가 지불하지 않는 '노동의 가치'인 '부불노동'으로 '잉여가치'를 남기는데, 이 과정이 바로 '착취'다. '착취'는 자본주의에서 '합법적' 과정이며, 새로운 사회에서는 철폐되어야 할 것인데, 자본주의에서 '불법적'인 것은 '착취'가 아니라 '수탈'이다(김규항, [혁명노트]). '착취'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력의 교환가치(가격)'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한 자본주의 본질로 현상하며, '수탈'은 20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과 억압적 지배에서 보인 '강화된 불법착취'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유물론적 역사관'은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도식화'되었는데, 인류의 사회역사에는 '역사적 유물론', 그 외 자연 전체에 대한 사유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보면 되는 바, 결국 양자의 공통지점은 '유물론'이라는 '철학'이다.
청년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뒤집어 유물론적으로 해석한 루드비히 포이어바흐가 '사이비 유물론자'임을 '11개 테제'로 남겼는데, 그 내용은 '진정한 유물론'과 '해석'이 아닌 '변혁'의 철학이었다.
엥겔스는 1878년에 당시 '사이비' 사회주의자이자 '강단 좌파'인 오이겐 뒤링이라는 인물의 주장들을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 분야로 나누어 조목조목 인신공격과 각종 역설(또는 '욕설')을 섞어 비판한다.
특히, 1부 '철학'의 영역에서는 당시 따로 집필 중이었을 [자연변증법](1873~1883)의 자료들을 가지고 비판한 듯 한데, [자연변증법]은 19세기 당시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발전을 토대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철학'이 객관적 자연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일종의 '필연의 증명' 작업이었다. 
[반뒤링론]에서 엥겔스는 '자연철학'으로서 수학(미적분), 우주발생론, 물리학, 화학, 유기체(생물학), 그를 기반으로 파생되는 '도덕'과 '법', 그리고 '양질전환'과 '부정의 부정'으로서 '변증법' 등의 영역에서의 무지막지한 비판으로 '오이겐 뒤링씨'를 깔아 뭉개버리고 있다.

엥겔스의 [반뒤링론]은 마르크스의 푸르동(공상적 사회주의자) 비판([철학의 빈곤])의 '논쟁 저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그 영역은 '온 우주'를 망라하는 바, '변증법적 유물론'을 수호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이는 저작이다. 
이러한 '논쟁을 목표로 쓴 저작'의 전통은 1908년 '유물론'의 외피를 쓴 오스트리아 마흐주의를 비슷한 방식으로 비판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컨대, '국가'라는 것은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일정한 발전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국가'는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자기 모순에 빠졌으며, 자기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불상용적인 대립으로 분열했다는 것을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대립, 즉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에서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하려면 외관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즉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를 '질서'의 한계 내에 유지시킬 권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로부터 발생했으나, 그 위에 올라서서 사회와는 더욱더 멀어져 가는 권력이 바로 '국가'이다."
- F. Engels,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1884.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원천,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에서 엥겔스는 원시 씨족사회를 연구하던 루이스 모건의 [고대사회](1877)라는 저서를 바탕으로 씨족에서 부족, '원시공동체'에서 생산력 발전의 과정 속 '잉여생산'과 '사유재산'의 축적, '계급사회'의 등장과 그 결정체인 '국가'의 기원을 추적한다. 
이 고전적 '국가론'은 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주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으로 이어진다.


[자연변증법]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의 거대한 영역에서, '사이비 사회주의자' 뒤링을 잠시 비판한 [반뒤링론], 씨족사회에서 '국가'의 기원까지 추적한 '역사적 유물론'을 거쳐 만년의 엥겔스는 '과학적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 "독일고전철학의 상속자"인 노동계급에게 '고전적 관념론 철학의 종말'을 고한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은 다름아닌 [자연변증법]이라는 방대한 연구, 그 '빅 히스토리'를 위한 '메모'였다.

"... 변증법적 자연관이 모든 자연철학을 불필요하고 불가능하게 만들었듯이 이러한 견해는 역사의 영역에서 '철학의 종말'을 고한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어느 곳에서든 우리 두뇌로부터 상호연관을 발명해 내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 속에서 상호연관을 발견하는 문제이다. 자연의 역사로부터 추방된 '철학'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순수한 사유의 영역, 즉 사유과정 자체의 법칙에 관한 이론인 '논리학'과 '변증법'만이 있을 뿐이다...
사회의 역사 전체를 이해하는 관건은 노동의 발전사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새로운 경향은 처음부터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독일 노동계급운동은 독일고전철학의 '상속자'이다."
- F. Engels,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1888.

엥겔스에 의하면, 헤겔은 [법철학]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고 했는데 '현실'을 '절대이성'화하는 '보수성'이 있었던 한편으로, 그 다음 명제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이라면서 '필연'의 변화에 '이성'을 포함시켜 '진보성'의 맹아를 품고 있다. 
포이어바흐는 자연철학에서는 헤겔을 뒤집었으나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하지 못해 '철학'에서는 '인류의 사랑'만을 발견했다. 
결국, '독일고전철학'이라는 '관념론' 일체는 다수 노동계급의 각성과 함께 '종말'을 고하면서, 노동계급운동은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으로 "상속"받는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철학'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현대화해야 한다.

***

1. [반뒤링론(Anti-During)](1878), F. Engels, 김민석 옮김, <새길>, 1987.
2.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 F. Engels. 김대웅 옮김, <아침>, 1987.
3.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4.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V. I. Lenin,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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