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혁명 - 헤겔과 마르크스, 제3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지음, 김현일 옮김 / 중원문화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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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부정적 사유'로서의 '철학' : '변증법적 유물론'
- [이성과 혁명](1941),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김현일/윤길순 옮김, <중원문화>, 1987.



"이 책은 헤겔 철학의 부활보다는 오늘날... 망각되어 소멸할 위험에 처해 있는 하나의 정신기능, 즉 '부정적 사유능력'의 부활에 작으나마 공헌을 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쓰여졌다... 세계는 그 자체 모순적인 세계... 상식과 과학은 이러한 모순을 스스로 피하려 하지만, '철학'적 사유는 사실이 상식과 과학적 이성이 강요하는 제개념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부터, 다시 말하면 상식과 과학의 개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 H.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960년판 서문 - 변증법에 대하여>

독일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하이데거 영향 아래 헤겔(Hegel) 철학을 연구했는데,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분류된다. 1941년 그는 독일 관념철학이 생소한 미국에 헤겔 철학을 소개하기 위해 [이성과 혁명]을 쓴다.
이 책은 끊임 없는 '부정의 변증법'을 논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적 기초를 헤겔 철학에서 재조명하는데, 1914년 레닌의 방식과 닮았으나 '실천'이 아닌 '철학'에 머무르는 '추상성'으로 비판도 받는다.


1. 이성 - 헤겔


마르쿠제에 의하면, '변증법'이 상식과 과학 개념들에 적용하는 '부정(negative)'이란 실재하는 '모순'을 거부하는 기존 '논리학'에 대한 비판이며 기존 사상과 체제에 대한 비판이다. '변증법'적으로 현실의 모순을 파악하는 것은 사물의 참된 '존재양식'을 파악하는 것인데, 현실의 '모순', '부정합성'을 분석하는 도구가 바로 '부정적 사유능력'으로서의 '철학'이다.
이를 위해 이 독일 망명철학자는 기존 논리학을 뒤집은 헤겔을 연구하면서 '실증(positive) 철학'과 투쟁하는 '부정(negative)의 철학'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논한다.


"진정한 '존재'는 진정한 '운동'이며, 진정한 '운동'은 주체가 객체와 완전히 통일되는 활동이다. 따라서 (헤겔에게) 진정한 '존재'는 사상이고 '이성'이다... 헤겔은 모든 '존재'를 과정이나 운동으로 간주한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지극히 역동적인 성격을 재발견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변증법'의 양식은 '부정성'에 의해 관통된 세계, 모든 것이 그 실상과 다른 무엇이며, '대립'과 '모순'이 진보의 법칙을 이루는 세계를 표출하는 그러한 세계의 '진리'인 것이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편 - 헤겔철학의 기초>

1914년의 레닌이 헤겔로 다시 돌아갔을 때처럼, 마르쿠제도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 헤겔에게서 기존 관념론(형이상학)과 다른 요소를 발견하는데, 바로 제목에 명시한 주요 개념인 '이성'이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포괄적 명제를 내놓는데, 헤겔에게 '이성'이란 기존 형이상학이나 논리학에서 규정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운동'을 본질로 한다. 즉, '이성'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내포한 '현실' 속 '가능태' 또는 '맹아'까지 본다는 것이다. 물론 헤겔의 '존재론'은 '물질'보다 '정신'을 우선하는 관념론이므로 그의 [정신현상학]은 세계의 궁극적 본질인 '절대이성(정신)'을 향해 '자유'를 동기로 자기운동하는 '이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서술방식을 '유물론'으로 뒤집은 것이 바로 '상품'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니 헤겔의 '변증법'적 영향력은 크다.
마르쿠제는 이러한 '철학적 기초 개념'을 토대로 헤겔의 [정신현상학](1807), [대논리학](1812~1816), [정치철학](1816~1821), [역사철학](말년) 등을 분석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인간 '개별 이성'이 '절대이성'이라는 '총체성'을 향해 경험하는 자기운동 과정으로 '자유', '노동', '소외', '소유' 등의 중요한 철학 개념들을 다룬다.
[대논리학]은 '절대지(이성/정신)'의 기초를 다루는데, 모든 사물은 "그 자체의 본성에 속하는 '부정성'으로 인해 '대립물'과 연결되어 있으며", 사물이 "참다운 자기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현재 '그것이 아닌 것'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즉, 모든 사물은 그 내적 자기모순을 통해 운동하고 변화하며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논리학'으로서, 모든 것을 '불변'으로 전제하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논리학'을 '부정'한다. 여기서 그는 '모순', '대립물', '개별', '보편', '이행', '운동' 개념을 논하며 '현재 그것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개별자'의 '(변화)가능성'을 '실재성'으로 인식한다.


"... 가능적인 것은 또다른 실재의 '조건'으로서 파악된 주어진 실재성이다... '사실'은 '실존'하기 전에 '존재'한다는 헤겔의 유명한 명제는 이제 그 정확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된다... '사실'은 '실존'하기 전에 수없이 흩어져 있는 현존하는 제자료 안에 하나의 '조건'의 형태로서 '존재'한다... '사실'은 아직 '사실이 아닌 것', 그리고 아직 그 자체를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주어진 현실로 현현하지 못한 것과 관계되는 한에서만 '사실'이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편>

헤겔의 [정치철학]은 '국가'를 '절대이성(정신)'으로 상정하고 '사적 소유'와 '법의 지배'를 정당화했으며, 그의 [역사철학]은 지금까지의 '논리학'적 결론으로 '역사의 간지'를 끌어들여 그의 관념론적 '필연'을 완성시키므로 [정치철학]과 [역사철학]에서 물려받을 것은 별로 없다.

"기존 현실의 내용은 새로운 형태로의 자기전환의 맹아를 품고 있으며 그 전환은 그것이 우연적인 실재가 현실적으로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에서의 '필연의 과정'이다. 현실성에 대한 변증법적인 해석은 우연성, 가능성 및 필연성 사이의 전통적인 대립을 폐기하고 그 모든 것을 하나의 포괄적인 과정의 계기로서 통합한다. 필연성은 우연적인 실재를, 즉 기존의 형태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으로서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필연성은 우연적인 실재가 그것에 합당한 형태를 획득하게 되는 과정이다. 헤겔은 이것을 현실성의 과정이라 부른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편>

위와 같은 헤겔의 '부정(negative) 철학'은 모든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실재'만 '긍정'하는 '실증(positive) 철학'을 넘어 '철학'을 한 단계 진보시켰다. 여기서 중요한 철학적 방법론으로 '변증법'이 완성된다.

'이성'은 헤겔에 이르러 '변증법'을 만나 일단 완성되었다.


2. 혁명 - 마르크스


"헤겔은 주장하기를, '진리'는 어떤 단순한 요소 안에도 현존해야만 하는 전체이며, 따라서 만일 단 하나의 실질적인 요소나 '사실'이 '이성'의 과정과 결합될 수 없는 경우에도 전체의 '진리'는 파괴된다고 했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그와 같은 요소, 즉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는 이른바 '이성'의 현실과 모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이성'의 '부정'을 증명하는 하나의 완전한 '계급'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는 '진리'가 실현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역사와 사회적 실현 그 자체는 이처럼 '철학'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비판은 '철학'적 이론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실천'의 작업이 된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2편 - 사회이론의 발흥>

마르크스주의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헤겔이 완성한 독일 사변적 관념론은 그 '철학'의 기초가 되었고, 마르크스-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계승하여, '물질'이 '정신'보다 우선한다는 '유물론'으로 뒤집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그 구조상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한다는 현실을 분석하며 '노동'의 '소외'를 새롭게 정의한 바, 개별적이고 실존적 '노동'이 아니라 위와 같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 구조적으로 편입되어 가동되는 '착취'당하는 '노동'은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철학'적 분석의 토대는 역시,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총생산의 사회화'의 모순을 담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자본가와 노동자를 계급으로 대립시키는 '생산관계'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현실'과 그 변화 '가능성'을  매개하는 것은 '노동'이고, 이 '보편'적 노동을 담지하는 다수의 '프롤레타리아'라는 '존재'가 이 체제의 '진리'를 담보한다는 것이다. 즉, 다수 노동계급 내에 그 자체로 체제 변혁의 '가능성'과 '운동', 그리고 '이행'의 '진리'가 있으며, 이것의 형식이 '혁명'이다.

이렇게 철학의 '이성'은 마르크스에 이르러 '혁명'으로써 그 '진리'를 궁극적으로 완성한다.


3. 이성과 혁명 - 레닌 혹은 마르쿠제

마르쿠제는 자본주의 변혁의 '철학'적 근거를 헤겔 철학의 '변증법'으로 운동하는 '이성'에서 찾고 있는데, 그 '현학적' 논리를 빼면 결국 내용상 1914년 레닌의 [철학노트]의 반복일 수도 있다. 
다만, 그의 초기 저작 [이성과 혁명]은 독일 관념론자 헤겔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현실을 불변의 것으로 선언해 버린 스탈린주의라는 '권위주의', '전체주의'로 변질된 레닌주의를 넘어, 끊임없는 '부정'의 사유방식으로써 지속적인 '혁명'을 수행하는 새로운 '실천적 철학'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헤겔주의'가 '종언'되었고, 얼마전에 '마르크스주의'도 '종언'되었다는 의견들도 있으나, 독점자본이 강화되고 '자본가'를 넘어 '자본' 자체가 전세계를 지배하는 지금의 '자본의 제국' 체제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역시 '부정의 철학'으로 끊임 없이 갱신되고 혁신되어야 할 '다수'의, '노동자의 철학'이다.


"사회의 자연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며, '사회주의 혁명'은 이 법칙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오는 것... 헤겔에게서 정점에 달한 독일 관념론은 사회-정치적 제도들이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과 일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반면, 권위주의 체제는 개인의 이해에는 개의치 않은 채, 모든 개인을 경제적 과정 속으로 강제로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사회질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결론 - 헤겔주의의 종언>

***

- [이성과 혁명(Reason and Revolution)], Herbert Marcuse, 김현일/윤길순 옮김, <중원문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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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Literature: A Survey for Students (Paperback)
Longman / 197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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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낭만주의'적 혁명과 혁명적 '낭만주의'
― William Wordsworth의 생애와 사상을 중심으로
 

목   차
1. 서론
2. 본론
① 낭만주의의 혁명
② W. Wordsworth의 생애와 사상
   ⅰ. 감각과 상상력(Feeling and Imagination)
   ⅱ. 보통의 언어(The Language of Common Speech)
   ⅲ. 고요함 속에서 회상된 정서('Emotion recollected in Tranquility)
3. 결론
 

 
1. 서론
 

무릇 시(詩)라고 하면, 감각적 언어, 감성적 표현, 상상의 산물 등으로서 이해되는 것이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가장 보편화된 반응일 것이다. 시는 많은 서사(敍事)문학이나 산문이 그러는 것처럼 작품의 제재가 되는 대상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차원이 다르게 시는 어느정도는 직관적이고 좀더 상징적이며 암시적인 표현방식을 매개로 하는 장르인 것이다. 물론 이는, 단 한 마디를 하더라도 긴 산문이 할 수 있는 이야기나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라는 장르의 형식적 필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깊이 들여다 본다면, 이런 장르상의 형식적 특징은 어떤 대상에 대한 함축적인 전언을 통해 그것을 읽는 이로 하여금 서사적 감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상의 필요에 기인할 터이다. 그렇다면 흔히 이야기되는 시적효과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서사문(敍事文)은 시적 표현에 비해 그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특정 대상에 대한 상대적으로 자세한 설명을 가한다. 그럼으로써 서사적 표현은 그 대상에 대한 읽는 이의 이해를 통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반면, 시문(詩文)은 보다 짧고 함축적인 언어로써 읽는 이가 느끼고, 추측하며, 상상을 하는 등의 '감성적' 작업을 통해 특정 대상과 제재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게끔 하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술했듯이 이런 식의 구분이 현실적으로 각 문학작품에 정확히 적용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을 테지만 다분히 도식적임에도 불구하고 양자간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전제(前提)적 구분을 가한다면 이와 같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에 이르러 시에 대한 이러한 생각을 가능하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낭만주의 운동(Romantic Movement)'이라는 강한 문학적 움직임을 그 요인으로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의 시대'라 규정되는 18세기. 그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주의'라는 견고한 문학적 진지. 그러나 형식적인 문체와 사고틀이 지배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이미 낭만주의는 자신의 알을 부화하고 있었다. 극단적 이성주의로 치닫는 고전주의에 대항하여 16세기, 혹은 중세에로까지의 복귀를 제창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당시의 동시대인들에 의해 "미친놈(madman)"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하지만 역사와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법이다. 1789년 7월 14일 전제왕권의 상징과도 같았던 프랑스 바스띠유(Bastille) 감옥이 민중의 힘에 의해 함락되는 것을 계기로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봉건적 권력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실로 그러한 운동에 발맞추어 문학사에서도 그간 정통적(orthodoxy)이라 굳게 여겨져 왔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그동안 비정통적이라 여겨져 왔던 움직임이 깃발을 들어 올렸던 것이다. 
시대적 변화와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거대한 흐름을 타고, 보수보다는 진보를, 이성보다는 감성을, 전통보다는 개인을, 순응보다는 반항을 부르짖는 혁명적 시대정신 혹은 문예사조로서의 '낭만주의'의 본격적인 자리매김의 과정이 진행되던 시기, 자본주의의 급격한 성장과 근대 부르조아 혁명이 전유럽을 강타하던 시기의 혁명적 양상의 한 측면은 이와 같은 흐름으로 대변될 수 있었으며, 그 물줄기의 선두에 바로 William Wordsworth가 있다..
 

2. 본론
 

① 낭만주의의 혁명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8세기로 접어들게 된 유럽에서는 기존의 낡은 형태들이 더 이상의 위세를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갑작스럽게 나타난 현상은 아니었다. 즉, 일찍이 16세기경부터 영국에서는 부의 가치로서 금(金)을 무조건 많이 축적해야 한다는 중상주의적 경제정책이 등장하여 전유럽의 경제생활 속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상품경제의 중요성의 부각이 깔려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상품경제가 인간의 경제활동에서 완연한 보편성을 획득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맹아(萌芽)적 형태로서 존재할 뿐이었지만 그 결정적 지위를 본격적으로 점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경제활동에서의 상품경제의 부각. 이는 다름아닌 자본주의적 경제구조가 구축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거해주는 것이었다. 결국 상품경제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기존의 중세봉건적 생산관계를 조금씩 허물어뜨리면서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세계에서의 이러한 흐름은 비단 영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으며 16세기 이후의 전유럽에 걸쳐 점차로 만연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경제적으로 근대적 부르조아지가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게 됨을 암시하는 부분인데, 이를 통하여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 의해 부를 축적하게 된 이 계급이 자신들의 권익을 획득하고 더욱 확대시키기 위하여 정치사회적 시민계층을 형성하게 되리라는 18세기의 전반적 상황은 다분히 필연적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즉, 18세기에 전유럽에 걸쳐 중세봉건적 질서가 몰락하게 되었던 정치적 상황 이전에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경제적 변혁이 그에 앞서서 낡은 사회구조를 대체하고 있었으므로 언젠가는 정치, 사회,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토대에 비해 상부적 구조요인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움직임은 전술했다시피 18세기에 이르러 급기야 전유럽으로 확산되었으며 1789년의 프랑스 혁명에서 그 결정적인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18세기를 풍미했던 사조로서의 이성주의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본래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된 자본주의적 의식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합리주의 정신의 한 형태였다. 즉, 이러한 사상적 합리주의, 사조적 이성주의는 근대적 과학의 발전에 직면하여 그러한 발전으로부터 기인한 사회구조의 질적 변화를 옹호하고 정당화시키는 논리로서 충실히 작동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문학적 사조로서의 18세기 이성주의에 반발했던 낭만주의의 혁명적 역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만 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위에서 말한 시대사상으로서의 합리주의와 문학사조로서의 이성주의를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합리주의 정신은 인간의 이성을 새로운 사회구조 형성이라는 미래의 역사 속으로 투영시켰던 반면에, 문학적 사조로서의 이성주의는 고대 그리이스, 로마세계라는 과거의 역사를 지향함에 인간의 이성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차이가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18세기의 문학적 이성주의의 사고틀 속에서 문학은 다분히 고답적인 것으로 제한되었으며 인간의 이성에 의해 정형화된 하나의 고정적이고 형식적인 실재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는 당시에는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부르조아지 혹은 정치사회적 시민계층의 입장과는 반대로 귀족적이고 복고적이며 보수적인 입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문학사조로서의 이성주의가 이전의 르네상스와는 다르게 문예의 영역에서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적으로 고정화되어버린 문학적 이성주의,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인간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보편화된 전체보다는 개인을, 죽은 틀보다는 생동감있는 움직임을, 그리고 형식적 표현방식보다는 좀더 자유로운 표현방식을 기치로 내걸고 태동하였던 낭만주의의 역사적, 혁명적 정당성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회구조와 질서가 자본주의적으로 재편되고 있던 근대의 시기에 그러한 진보와 혁명성을 담보하고 있던 것은 시대사상적으로는 합리주의, 이성주의였다고 볼 수 있지만, 문학적 영역에서는 그와는 다르게 낭만주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낭만주의의 본질은 다름이 아니라, 그것의 출발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존의 고정적인 것에 대한 반발로서의 그 '혁명성'에 있었던 것이다.
 
② W. Wordsworth의 생애와 사상
 
지금까지 낭만주의의 본질적 혹은 시초적 의의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낭만주의의 선봉에 섰던 William Wordsworth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W. Wordsworth는 1770년 북부 England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풍부한 독서를 했고 캠브릿지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에 유럽 대륙으로 건너갔으며 이런 대륙생활을 통해 프랑스 혁명정신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온통 피로 얼룩져 버린 이상적인 프랑스 혁명정신의 결과를 보면서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이 그토록 열렬히 추종했던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시각에 등을 돌리고 심미적이고 내면적이며, -혹자에 의하면- 보수적이기까지 했던 말년을 보냈다 한다. 하지만 각성된 민중의 역사적 의식과 행동에 힘입어 혁명을 통해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흥 부르조아 계급내의 권력다툼으로 변질되어 버린 그 혁명은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을 향한 민중들의 열망과는 관계가 없었고, 결국에는 나폴레옹 1세의 전제정치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으니 Wordsworth의 혁명정신에 대한 좌절과 시각의 선회 또한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해 못할 바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 1세의 황제 등극. 주지하다시피, 나폴레옹 1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시기의 양대 정치적 분파였던 정통왕조파로서의 부르봉 왕조파와 신흥 부르조아지의 이해를 대변했던 오를레앙파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정치적 부류였다. 그러나 부르봉 왕조파와 오를레앙파 사이의 정치적 공백을 틈탄 나폴레옹 황제의 집권은 시민계층의 정치적 진출을 통한 근대적 정치체제의 창출이 좌절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혁명에 역행하는 이른바 '제 1제정' 시대를 결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약 반세기가 지나 1848년의 2월 혁명이 일어난 후에 기존의 질서를 보존하려는 보수연합 세력과 민중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쟁취하고자 했던 진보 세력간의 공전상황이 결과하게 되는 루이 보나빠르뜨의 시대착오적 제정체제로 반복이 된다. K. Marx가 정의한 '보나빠르뜨티즘'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권력형태를 지칭한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바스띠유 감옥의 함락이라는 상징적 사건이 일어났던 1789년이 중요시될 수 있는 연도라고 본다면, 문학사적으로는 1798년이 의미있는 해라는 주장도 있다. 1798년은 다름아닌 [Lyrical Ballads]가 출간된 해인데, 그 시집은 Samuel Taylor Coleridge와 1796년부터 교우해왔던 그가 Coleridge와 공동으로 펴낸 책이며 낭만주의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책의 1800년판의 서문에서 Wordsworth는 '낭만주의 운동의 독립선언(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the Romantic Movement)'이라는 제하에 그 자신의 시작(詩作)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데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ⅰ. 감각과 상상력 (Feeling and Imagination)
 
시라는 것도 인간의 삶을 노래하는 행위라는 당연한 전제에서 이해한다면, 이는 즉, 인간사의 심오한 문제를 건드릴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시는 감각과 상상력에 의해 추동되는 단순성에 기초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자연관'이 엿보이는데, 위에서 말한 단순성이란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인간의, 풍경의, 현상들의 그것이라는 것이다. 자연(Nature)이란, Wordsworth에 의하면, 모든 체계를 뛰어넘는 것으로서 인간 삶에서 도덕적인 것들의 스승이자, 행복의 가장 우선적인 전달자 등으로 이야기될 수 있겠는데,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의 범신론적 사상(pantheism)의 지고한 대상이자 근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결국, 자연이란 신(神)과 동일체이며, 그것으로의 자연으로 인해 모든 사물이 연결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가 말한 자연과의 동일체로서의 신은 종교적 논리에서 항상 소급되어지는 지고지순한 존재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자연의 형태로서 현실에 존재하는 다분히 현실적인 자연 그 자체인 것이다. 중세적인 신학과 차별성을 지니면서, 중세의 이단적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상과 닮아있는 Wordsworth의 이러한 범신론적 경향은 분명 당시의 근대적 과학발전의 강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W. Wordsworth의 자연관은 한마디로 범신론이며, 그것에 의해 현상되는 현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자연이자 동시에 바로 신이다. 또한 이러한 시각에 기초하여 그는 궁극적으로는 자연이 현현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하찮은 사물들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S. Coleridge의 '초자연적'이며 신비적인 세계관과 대조되는 점이다.
 
ⅱ. 보통의 언어 (the Language of Common Speech)
 
Wordsworth는 'poetic diction'을 거부했다. 이는 낭만주의적 시풍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poetic diction'을 중시했던 Alexander Pope로 대표되는 18세기 고전주의자들에 대한 반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는 고상하게 쓰여지는 현학적인 수사일 수는 없으며, 다름아닌 보통 사람들이 쓰는, 엄밀히 말하면, 자연과 가장 가까운 형태인 순박한 시골사람들의 언어, 그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우러나오는 언어로 쓰여지는 시가 바로 시로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적인 언어는 보통 사람들의 언어이어야 하는데 이는 겉만 번지르한 도시적인 언어나 '교양있는' 현학적 수사가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채 자연 그 자체의 모습과 닮아 있는 언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Wordsworth에 의하면, 이러한 시적 언어에 의해서 진정한 상상력과 인간 양심으로의 회귀가 가능하다. 
문학적 언어에 대한 이러한 진전된 사고는 문학이라는 영역이 더 이상은 특권화된 계층이 아니라 좀더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단초를 마련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이 또한 낭만주의 운동의 역사적으로 큰 성과였던 것이다.
 
ⅲ. 고요함 속에서 회상된 정서 ('Emotion recollected in Tranquility)
 
시인에게 있어서 가장 시다운 시를 쓸 수 있는 순간은 정서적인 경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그 순간이 아니라, 그 경험이 지난후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고요한 상태에서 다시 회상함으로써 시를 만드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하는 주장인데, 이는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몽골의 황제에 관한 꿈을 꾸고 난 후에 즉석에서 일사천리로 [Kubla Khan]이라는 시를 생산했던 Coleridge와는 대조되는 시작(詩作)의 동기이자 자세인 것이다. 
이처럼, W. Wordsworth의 낭만주의 '선언'은 시에 대한 자신의 독창적이고 뛰어난 시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 운동으로서 그 나름의 역사적 의의들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부분적이나마 일별했던 것처럼, 그는 [Lyrical Ballads]를 함께 작업했던 S. Coleridge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Coleridge가 환상적이며, 초자연적이고 관념적이며, 다소 종교적인 시각에 기반하여 다분히 환상적인 이미지에 천착했던 반면, Wordsworth는 현실적 자연의 가장 친근한 부분인 때묻지 않은 사람들과, 작은 사물들 하나하나에서 보다 구체적인 시적 이미지를 산출했던 것이다. 결국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들의 차이는 감각의 현실성과 초현실성 사이의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Wordsworth로 인해 시는 보다 이전의 고전주의적 이성주의자들의 시각과는 전혀 다르게 현실적이고 평범한 모습으로 보통 사람들의 편, 대중의 편으로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Wordsworth와 낭만주의의 이러한 성격은 권력이 귀족 이라는 소수계층에 의해서만 전유되었던 중세 봉건적 사회구조를 무너뜨렸던 18세기 유럽적 상황, 권력이 시민계층에게까지 확산되었던 시대의 사상을 문학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학 자체만을 놓고 이야기한다면, 이와 같은 '혁명적' 성격의 낭만주의로 인해 문학은 이전의 형식적이자 고정적이었던 시각과의 차별성을 통해 문학 자신의 지평을 훨씬 넓혀갈 수 있었던 것이다.
 
 
3. 결론
 

위에서 다룬 것처럼 W. Wordsworth와 [Lyrical Ballads]는 현대 문학사조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낭만주의적 흐름의 대명사이자, 선두주자이다. 그와 그의 시집이 후대에 의해 그와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낭만주의적 시작(詩作)의 원칙을 어느정도 확립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Wordsworth가 Coleridge와 함께 [Lyrical Ballads]를 내면서 낭만주의 운동을 본격적으로 선언했을 당시에는 보수적인 고전주의자들에 의해 갖은 혹평을 받아야 했다고 하지만, 결국 그들의 노력과 움직임이 세월이 흐른 지금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당당하게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혹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낭만주의 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반항성과 전통의 파괴, 정통에 반(反)한 새로운 체계의 구축 등의 진보적 정신을 접어버렸던 말년의 Wordsworth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물론, 그의 말년 작품이 젊었을 때의 그것보다 질적으로 평가절하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에 대해서 위와 같은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아마도 시인으로서, 시대사상을 대표하는 위치 중 하나인 그런 시인으로서 자신의 사상을 일관되게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이 하나의 작지않은 결함이 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일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과 비판들이 가능하겠지만 낭만주의적 사고 자체의 한계를 지적해봄으로써 그에 대한 한 가지 의견을 톺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 세기의 고전주의적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꿈틀거리기 시작한 낭만주의. 그러나 고전주의가 아니었으면, 낭만주의적 움직임 또한 불가능했음은 역사적으로 자명한 진실일 터이다. 그런데 패러다임 자체의 변혁을 위한 부정적 인식이 역사적 발전의 측면에서 본다면 피할 수 없는 실천적 인식이자 요소라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낡은 것에 대한 반대가 부정적 인식의 수위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단순한 반대명제들의 부르짖음에서 그친다면 그건 말 그대로 반항의 수준에서 제 역할을 마치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예를 들면, 고전주의 시대의 '이성'적 측면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감성'적 측면에 대한 극단적인 강조로 치닫는 것은 제대로 된 발전의 상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이성주의'가 잘못되었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이성'이라는 인간에게 있어 불가결한 요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이 그렇게 유용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고전주의적 패러다임이 낡았기 때문인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만약 낡은 것에 대한 부정이 반항에서 그쳐버린다면 낡은 사고틀 자체의 전복은 고사하고 똑같은 사고틀의 반복만을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Lyrical Ballads]를 매개로 W. Wordsworth가 주창했던 선도적 낭만주의 선언이 이러한 문학사적 발전의 커다란 한 축을 형성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관되지 못한 사상이 일면 비판을 받는 이유는 지난세기에 대한,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라는 당시의 중대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혁명정신의 이상성(Idealism)만을 바라보는 Wordsworth의 '감성'적인 측면으로서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의 혁명의 연속성을 볼 수 있는 '이성'적 측면까지 포괄할 수 없었기에 그는 일관된 자신의 사상을 견지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혁명성이란 이성에 대한 단순한 반발로서 감성을 내세운 낭만주의가 보여준 것처럼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이전의 것에 대한 올바른 지양과 끊임없는 자기부정인 '부정의 부정'이 지난하게 반복되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낭만주의 영시], 이재호 編著, <탐구당>, 1975.
[영문학개설], 김용철 編著, <탐구당>, 1990.
[English Literature], Anthony Burgess, <Longman>, 1958.
[프랑스혁명사 3부작], K. Marx, 임지현/이종훈 譯, <소나무>, 1987.
[이성과 혁명], H. Marcuse, 김현일/윤길순 譯, <중원문화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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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지음 / 오픈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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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개인적인 팝송 '순위'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score>, 2015.
-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오픈하우스>, 2018.



"비틀즈(the Beatles)의 운명이 종말을 향해 치달을 무렵, 홀연히 아들의 꿈에 나타난 메리(Mary)는 그에게 삶의 지혜와 위로를 전한다. [Let It Be]의 노랫말을 통해 메리는 아들 매카트니에게 너무 주어진 상황을 바꾸려고 애쓰지 날고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둑이 터지듯 다른 수많은 문제가 비틀즈를 위협하고 있었다... 절망에 빠졌던 매카트니는 어느 날 밤 꿈에서 어머니 메리를 만났다.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에게 그녀는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 둬(so just let it be)'라며 위로했다. 꿈속 어머니로부터 큰 위안을 받은 매카트니는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곡을 썼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Let It Be>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인가. 라디오에서 배철수나 김광한의 팝송 프로그램은 거의 들은 적 없이 우리 가요만 듣던 나는 아주 우연히 스무살 둘째 누나가 길보드로 구입한 카세트 테잎을 발견했다. '비틀즈'의 'Greatest Hit'곡들을 섞어놓은 '짝퉁' 테잎. 누나에게 무슨 노래인가 물었고 누나는 <Let It Be>와 관련한 예의 사연을 들려주면서 영어를 좋아했던 나를 위해 가사도 해석해 주었다. 노래의 'Mother Mary'는 폴 매카트니의 돌아가신 어머니일 수도 있고, '매리 수녀'일 수도 있어 기독교적 '신의 계시'였을 수도 있다는.
그 때부터 나는 '비틀즈'만 들었다. 정품은 아니라도 용돈이 되는대로 레코드점에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했고 관련 이야기가 있으면 주워듣고 수집했다.

나는 존 레넌보다 폴 매카트니가 더 좋았다. <Let It Be>는 물론, 23세에 꿈 속에서 잠시 듣고 지은 명곡 <Yesterday>를 비롯하여 <Hey Jude>, <The Long and Winding Road> 등의 좋은 노래는 다 폴이 만들었는데, 아주 잠깐 번득이는 조언을 해준 존 레넌은 거의 대부분의 노래의 작사/작곡에 숟가락을 얹었다. 예를 들면, 꿈 속 멜로디를 기억하여 5분만에 만든 <Yesterday>의 곡에 가사를 못 짓던 폴에게 "한 단어로 시작"하라는 조언을 하고 녹음할 때도 도와주지 않는 식이다. 나는 존이 '예술가적 감성'으로 2살 어린 작곡 '노동자' 폴을 '착취'했다고 줄곧 생각했다.
아마도, 스무살에 우연히 '과학적 사회주의'를 알게 되었을 때, 줄곧 '연구'만 하던 칼 마르크스보다 사상의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더 좋아한 이유도 '비틀즈' 때문이었으리라.

그 후로도 오랫동안, 비틀즈의 해체를 막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했던 폴 매카트니의 노력은 나의 생각을 더욱 굳혔고, 맴버 중 가장 먼저 탈주한 존 레넌은 비틀즈에서 제일 싫은 가수가 되어 <Imagine> 같은 그의 '불후의 명곡'도 성인이 되어서야 듣게 되었다.


"몽상가 레논은 모든 신앙과 체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가 사라질 때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 사람 모두가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상, 하나의 인류라고 믿었다. 그것이 그의 '신앙'이었다. 레논은 기본적으로 무신론자였고, 아나키스트였으며 반자본주의자였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Imagine>.

16세의 존 레넌과 14세의 폴 매카트니가 영국 리버풀에서 그룹을 결성하여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나 <Love Me Do>로 데뷔한 해가 1962년이고, 2년만에 대서양을 건너 '대중가요'의 땅 미국과 전세계를 점령하다가 해체된 해가 1970년이다. 전형적인 '노동자 도시' 리버풀에서 노동자들의 아들들이 대중가요 역사에서 '전설'이 되었고, 존 레넌은 '무정부주의'적 신념으로 천주교도 폴 매카트니의 '기독교'적 노래 <Let It Be>를 경멸했다고 하나 아마도 그 노래의 저작권은 나눠먹고 있을 것이다.

<Let It Be>가 나온지 1년 후인 1971년에 존 레넌은 솔로 2집으로 <Imagine>을 내놓는다. 비틀즈를 흔들고 동료들을 경멸하며 "모두가 나를 몽상가로 부르지만, 나만이 꾸는 꿈은 아니다(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라고 외치던 이 '무정주주의자 존'은 결국 미국에서 추방당하지 않으려고 미국 영주권에 목을 매던 속물이었다.

비틀즈만 알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한 방을 쓰던 친구 효종이로부터 '아바', '카펜터즈' , '퀸' 같은 전설의 그룹들을 비롯하여 '데비 깁슨', '글렌 메데이로스', '카일리 미노그' 등 1990년대 초 팝 '아이돌'에 대해 배웠고, 고등학교 한때 영어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족보'는 모른 채 '올드팝'을 항상 듣고 다닌다.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쓴 <Bohemian Rhapsody>의 가사는 곡의 구성만큼이나 휘황찬란하며 동시에 애매모호하다. 불쌍한 한 소년의 얘기인 듯 서정적으로 전개되던 가사는 갑자기 'Mama, just killed a man'이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변모한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누구를, 왜 죽였단 말인가?... <Bohemian Rhapsody> 발표 얼마 후 머큐리는 그녀(애인 매리 오스틴)에게 자신의 성정체성(동성애)을 고백했고,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가사 속에서 머큐리가 총으로 쏘아 죽인 사람은 과거 이성애자로서 매리 오스틴을 사랑했던 자신이다. 노래 속에서 계속 그가 매달리는 엄마는 매리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Bohemian Rhapsody>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드는 이무영은 1990년대에 팝송을 소개하는 일도 했다는데 2015년에 [명곡의 재발견]을 써서 올드팝 100곡의 배경과 가사를 소개한다. 
2018년에는 KBS 라디오 PD 정일서가 역시 100여 곡에 대한 본인의 추억을 섞어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으로 소개한다.

대중가요에 좋아하는 '순위'란 보편적일 수 없다. 나의 경우 그룹은 '비틀즈', '아바', '카펜터즈', '에어 서플라이', '앨런 파슨즈 프로젝트', '카멜' 순으로, 가수는 '글렌 메데이로스', '데비 깁슨', '빌리 조엘' 등으로 개인적 '순위'를 매기는데, '비틀즈' 빼고는 어린 시절 친구 효종이가 알려준 거의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매일 듣는 CBS 음악FM 팝송 프로그램 신청곡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팝송 좋아하는 나도 그 관련 책을 알지는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대중가요를 듣는데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개인적 '순위'의 가수와 노래가 없어 아쉽기는 하나 '올드팝'의 '족보'나 '흐름'을 알고 싶다면 위 두 책을 추천한다.

***

1.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score>, 2015.
2.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오픈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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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의 재발견 - 영어 해석으로 보는 팝송이야기 100
이무영 지음 / 태림스코어(스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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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개인적인 팝송 '순위'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score>, 2015.
-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오픈하우스>, 2018.



"비틀즈(the Beatles)의 운명이 종말을 향해 치달을 무렵, 홀연히 아들의 꿈에 나타난 메리(Mary)는 그에게 삶의 지혜와 위로를 전한다. [Let It Be]의 노랫말을 통해 메리는 아들 매카트니에게 너무 주어진 상황을 바꾸려고 애쓰지 날고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둑이 터지듯 다른 수많은 문제가 비틀즈를 위협하고 있었다... 절망에 빠졌던 매카트니는 어느 날 밤 꿈에서 어머니 메리를 만났다.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에게 그녀는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 둬(so just let it be)'라며 위로했다. 꿈속 어머니로부터 큰 위안을 받은 매카트니는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곡을 썼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Let It Be>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인가. 라디오에서 배철수나 김광한의 팝송 프로그램은 거의 들은 적 없이 우리 가요만 듣던 나는 아주 우연히 스무살 둘째 누나가 길보드로 구입한 카세트 테잎을 발견했다. '비틀즈'의 'Greatest Hit'곡들을 섞어놓은 '짝퉁' 테잎. 누나에게 무슨 노래인가 물었고 누나는 <Let It Be>와 관련한 예의 사연을 들려주면서 영어를 좋아했던 나를 위해 가사도 해석해 주었다. 노래의 'Mother Mary'는 폴 매카트니의 돌아가신 어머니일 수도 있고, '매리 수녀'일 수도 있어 기독교적 '신의 계시'였을 수도 있다는.
그 때부터 나는 '비틀즈'만 들었다. 정품은 아니라도 용돈이 되는대로 레코드점에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했고 관련 이야기가 있으면 주워듣고 수집했다.

나는 존 레넌보다 폴 매카트니가 더 좋았다. <Let It Be>는 물론, 23세에 꿈 속에서 잠시 듣고 지은 명곡 <Yesterday>를 비롯하여 <Hey Jude>, <The Long and Winding Road> 등의 좋은 노래는 다 폴이 만들었는데, 아주 잠깐 번득이는 조언을 해준 존 레넌은 거의 대부분의 노래의 작사/작곡에 숟가락을 얹었다. 예를 들면, 꿈 속 멜로디를 기억하여 5분만에 만든 <Yesterday>의 곡에 가사를 못 짓던 폴에게 "한 단어로 시작"하라는 조언을 하고 녹음할 때도 도와주지 않는 식이다. 나는 존이 '예술가적 감성'으로 2살 어린 작곡 '노동자' 폴을 '착취'했다고 줄곧 생각했다.
아마도, 스무살에 우연히 '과학적 사회주의'를 알게 되었을 때, 줄곧 '연구'만 하던 칼 마르크스보다 사상의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더 좋아한 이유도 '비틀즈' 때문이었으리라.

그 후로도 오랫동안, 비틀즈의 해체를 막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했던 폴 매카트니의 노력은 나의 생각을 더욱 굳혔고, 맴버 중 가장 먼저 탈주한 존 레넌은 비틀즈에서 제일 싫은 가수가 되어 <Imagine> 같은 그의 '불후의 명곡'도 성인이 되어서야 듣게 되었다.


"몽상가 레논은 모든 신앙과 체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가 사라질 때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 사람 모두가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상, 하나의 인류라고 믿었다. 그것이 그의 '신앙'이었다. 레논은 기본적으로 무신론자였고, 아나키스트였으며 반자본주의자였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Imagine>.

16세의 존 레넌과 14세의 폴 매카트니가 영국 리버풀에서 그룹을 결성하여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나 <Love Me Do>로 데뷔한 해가 1962년이고, 2년만에 대서양을 건너 '대중가요'의 땅 미국과 전세계를 점령하다가 해체된 해가 1970년이다. 전형적인 '노동자 도시' 리버풀에서 노동자들의 아들들이 대중가요 역사에서 '전설'이 되었고, 존 레넌은 '무정부주의'적 신념으로 천주교도 폴 매카트니의 '기독교'적 노래 <Let It Be>를 경멸했다고 하나 아마도 그 노래의 저작권은 나눠먹고 있을 것이다.

<Let It Be>가 나온지 1년 후인 1971년에 존 레넌은 솔로 2집으로 <Imagine>을 내놓는다. 비틀즈를 흔들고 동료들을 경멸하며 "모두가 나를 몽상가로 부르지만, 나만이 꾸는 꿈은 아니다(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라고 외치던 이 '무정주주의자 존'은 결국 미국에서 추방당하지 않으려고 미국 영주권에 목을 매던 속물이었다.

비틀즈만 알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한 방을 쓰던 친구 효종이로부터 '아바', '카펜터즈' , '퀸' 같은 전설의 그룹들을 비롯하여 '데비 깁슨', '글렌 메데이로스', '카일리 미노그' 등 1990년대 초 팝 '아이돌'에 대해 배웠고, 고등학교 한때 영어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족보'는 모른 채 '올드팝'을 항상 듣고 다닌다.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쓴 <Bohemian Rhapsody>의 가사는 곡의 구성만큼이나 휘황찬란하며 동시에 애매모호하다. 불쌍한 한 소년의 얘기인 듯 서정적으로 전개되던 가사는 갑자기 'Mama, just killed a man'이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변모한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누구를, 왜 죽였단 말인가?... <Bohemian Rhapsody> 발표 얼마 후 머큐리는 그녀(애인 매리 오스틴)에게 자신의 성정체성(동성애)을 고백했고,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가사 속에서 머큐리가 총으로 쏘아 죽인 사람은 과거 이성애자로서 매리 오스틴을 사랑했던 자신이다. 노래 속에서 계속 그가 매달리는 엄마는 매리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Bohemian Rhapsody>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드는 이무영은 1990년대에 팝송을 소개하는 일도 했다는데 2015년에 [명곡의 재발견]을 써서 올드팝 100곡의 배경과 가사를 소개한다. 
2018년에는 KBS 라디오 PD 정일서가 역시 100여 곡에 대한 본인의 추억을 섞어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으로 소개한다.

대중가요에 좋아하는 '순위'란 보편적일 수 없다. 나의 경우 그룹은 '비틀즈', '아바', '카펜터즈', '에어 서플라이', '앨런 파슨즈 프로젝트', '카멜' 순으로, 가수는 '글렌 메데이로스', '데비 깁슨', '빌리 조엘' 등으로 개인적 '순위'를 매기는데, '비틀즈' 빼고는 어린 시절 친구 효종이가 알려준 거의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매일 듣는 CBS 음악FM 팝송 프로그램 신청곡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팝송 좋아하는 나도 그 관련 책을 알지는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대중가요를 듣는데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개인적 '순위'의 가수와 노래가 없어 아쉽기는 하나 '올드팝'의 '족보'나 '흐름'을 알고 싶다면 위 두 책을 추천한다.

***

1.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score>, 2015.
2.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오픈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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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위하여
루이 알튀세르 지음, 서관모 옮김 / 후마니타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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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서의 '문학비평'과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학' - '작품'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다
-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1966), 피에르 마슈레, 배영달 옮김, <백의>, 1994.
- [마르크스를 위하여](1965), 루이 알튀세르,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작가는 질문을 제기하지만, 그것에 답하지 않는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1965년,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라는 저작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였다. '대상'을 가지고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과 말 그대로의 '허위의식'이지만 물질적 힘을 지니는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는 것이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인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듬해인 1966년, 프랑스 구조주의 문학비평가 피에르 마슈레는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알튀세르의 작업을 '문학'의 영역으로 심화하여 '과학적 비평'을 정초하면서 하나의 '과학'으로서 '문학비평'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밝히려 한다.
마슈레는 문학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제도로서 존재하는 한, '문학비평'은 '이데올로기'와 단절하고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문학생산이론'은 '과학'적 '문학비평'에서 출발한다.


"적어도 '(문학)비평'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비평'은 항상 '부정'으로부터 시작하며, '비평'의 기본적 행위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작품에 대한) '거부의 행위'이다. 그러나 '비평'은 인식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며, 그리고 '비평'이 행하는 권리는 결정적인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비평'은 '허위(이데올로기)'를 폭로함과 동시에 '진실(과학적 진리)'을 말하고자 한다... 읽는 것... 그것은 바로 (이데올로기로서 작품의) '파괴'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읽기'에 의해 작품은 '파괴'된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1부. 몇 가지 기본적 개념들>, 1966.

사회구성체의 결정적 '최종심급'으로서 경제적 토대와 상호 영향을 미치는 상부구조로서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는 '문학'은 하나의 '과학'이 되어야 하는데, 이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다. 
'설명'하는 것은 마슈레에 의하면, "작품을 결정짓지만 어떤 의미로 확실히 귀결되지 않는 필요성을 알아보는 것"(같은책)으로서 "작품의 필요성은 그 의미의 '다양성'에 의거"하며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이러한 다양성의 원리를 인정하고 '구분'하는 것이다."(같은책)

그리하여, 문학비평을 통해 "문학작품을 아는 것은 그것을 '분해'하고 그 '허구'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의 '침묵'의 의미를 알리는 것이다."(같은책)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작품의 그물 속에서 파악되기 때문에, 하나의 새로운 지위를 받아들이며, 그것의 직접성은 변형"되어 결국 "과거의 환상으로부터 '허구'적인 것이 된다."(같은책)
문학작품을 '설명'하려는 충동은 문학 내의 실제적 기능을 내포하는 환상의 메커니즘으로서의 언어 사용인 '이미지' 그 자체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미지'에 위치를 부여하는데, 개개의 '이미지'를 증가시키고 새겨놓은 이 작업은 "질서의 탐구"로서 '과학'적 작업이다.
또한, 텍스트를 '창작'하는 것은 이 "질서 탐구"의 "끊임없는 재파악"이다.


"작품은 어떤 작업의 산물이자 기술의 산물이다. 그러나 모든 기술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술사나 흥행사의 일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이다. 이 노동자의 힘은 '무(無)'로부터 완전히 선택된 형식을 생겨나게 하는 전혀 기적같은 것이 아니다... 텍스트 '생산자'로서의 '작가'는 특히 그가 가지고 일하는 재료들을 만들지 못한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1부. 몇 가지 기본적 개념들>, 1966.

'문학생산'은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재료'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재료'들을 배열하고 '질서'를 부여하면서 생산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문학생산'의 조건은 "처음에 주어진 것, 즉 말의 경험적 의미에서 원인이 아니라 모든 작품을 측정할 수 있는 '합리성'의 원리"인데, "작품의 조건들을 인식하는 것은 그 구성의 실제 과정을 강조하는 것, 즉 실제로 다양한 요소들이 어떻게 작품을 구성하고 작품에 '일관성'을 부여하는가를 보여주는 것"(같은책)이다.

작가는 언어와 문자를 통해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사용'을 하는 '작가의 담론'은 "이론적 언표를 모방"하고 "그것의 기준을 반복"하며, "이 담론은 역시 '이데올로기'의 언어인 일상어를 모방"하고 "이 끊임없는 대조 속에서 언어의 실제 사용들을 혼합하는 문학은 마침내 언어의 '진실'을 드러내고 만다"(같은책). 
마슈레는 작가가 "설사 언어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언어로 실험하는 문학작품은 '지식'의 '유사물'인 동시에 일상적 '이데올로기'의 기묘한 모방"(같은책)이다.

따라서, '문학'은 '이데올로기'이고 '작가'는 언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여 현실을 드러내며, '문학비평'은 이러한 '문학'을 '설명'하면서 현실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이 된다.


"작가는 어떤 시대에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은... 방법적으로 '과학'적 비평의 최초의 질문이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2부. 톨스토이 비평가, 레닌>, 1966.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러시아 소설가 톨스토이를 '비평'하면서 "문학작품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하는데, 마슈레는 톨스토이에 대한 '문학비평가' 레닌의 작업을 조명한다. 
'작가'는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조망하지는 못하는데, 이론가로서 '비평가'는 이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과학자'이다.
'과학'은 '이데올로기'를 폐기하고 작품은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거부하는데 '이데올로기'의 비체계적인 '의미작용'에 대한 다양한 독서를 제안하며 이것들을 언어의 '기호'들로 결합해낸다. '과학'으로서 '비평'의 역할은 "이 기호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문학작품'이라는 '거울'을 통해 '대상'은 완성되면서 '파편화'되는데, 문학적 '이미지'들은 이 '찢어짐' 속에서 나온다. '총체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개별적' 문학작품에 '과학'적 문학비평은 그 '보편성'을 부여한다.

"... 레닌은 문학작품이 허망한 '총체성'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필연적이고 실제적인 구분 속에서 단지 연구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 피에르 마슈레, 같은책, 같은 부분.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3부>는 '몇 가지 작품들'에 대한 논고인데, '과학소설가' 쥘 베른느의 '불완전한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이다.

"쥘 베른느의 '문학적 실패', 이 시도의 취약함은 바로 그의 책들의 '소재'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베른느의 화해의 모든 이미지가 어떤 갈등의 묘사로 귀착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상이론을 위하여], <3부. 쥘 베른느 혹은 불완전한 이야기>, 1966.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 어떤 '기술적 진보'도 현실의 '계급투쟁'을 담지 않는 한, '미래'를 생각할 수도, 재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과학기술' 발전을 '소재'로 하는 프랑스 '과학소설가' 쥘 베른느는 역설적이게도 결코 '과학'적이지 못하다.
엥겔스가 발자크 소설에서 부르주아계급의 '고상한 현실'을 그려내면서 그들의 '추락한 본질'을 의도치 않게 드러낸 것과 같은 '리얼리즘'적 '이중성'을 발견했듯, '문학비평'은 '문학작품'의 '이중성'을 설명해야 하는데, 쥘 베른느는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현실의 '계급투쟁'을 탈색함으로써 그 '이중성'을 보여주며, 그로 인해 그의 이야기는 "불완전한 이야기"로 머문다.


"... 예술은 (부르주아 휴머니즘적)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체계의 요소로서의) '생산자'의 활동이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3부>, 1966.

'문학작품'은 부르주아적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현실을 토대로 '생산'되는 것이다.

*** 

1.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1966), 피에르 마슈레, 배영달 옮김, <백의>, 1994.
2. [마르크스를 위하여], 루이 알튀세르,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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