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힘 - 인생의 무기가 되는 12가지 최소한의 수학도구
올리버 존슨 지음, 노태복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학은 이제 여기까지만
- [수학의 힘], 올리버 존슨, 2023.


1.

며칠 전, 
어머니가 둘째 누나한테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어머니는 팔순을 훌쩍 넘기면서 하루하루 노쇠해진 일상을 통해 사람이 별 일 없이도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가는 과정을 내게 보여준다. 
방금 했던 말과 행동도 돌아서면 다시 반복하는 어머니 이전에, 이태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통해 나는 '죽음'이라는 게 내 삶의 직접적 일부이자 궁극의 종착점임을 처음으로 실감한 바였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내게 삶을 주었고 최초로 먹는 법과 말하는 법 등 살아가는 기본은 물론 종국에는 죽음까지도 실질적으로 가르쳐주는 그런 것이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를 앞으로 몇 년간 나는 함께 사는 연로하신 어머니를 통해 죽음에 관해 또 다시 새로 배울 차례가 오고 있다. 
모르는 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죽음은 내 것일 수 없었다. 나는 죽음 앞에 그저 구경꾼이었다. 심지어는 십년 전 둘째 누나의 죽음 또한, 슬픈 일이었지만 마흔넷 누이의 죽음 앞에서도 나는 방관자에 불과했었다.

이제 연로하신 어머니가 갑자기 오래전 죽은 둘째 딸이 보고싶다 한다.

내일은,
둘째 누나의 55세 생일날이다.


2.

나의 둘째 누나는 수학을 잘했다.

딸 셋에 아들이 나 하나였던 우리집은 가난하여 그나마 대학은 내 몫으로 애진작에 정해져 있었다. 큰 누나는 꿈또 꿀 수 없었고 셋째 누나는 형제들에게 양보해야 했기에 애초에 기회조차 없었다. 아마도 같은 운명이었을 둘째 누나는 아버지한테 계속 대들고 요구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특히 수학을 잘해서 이과를 선택했고 무려 의대에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한테 대들다가 빰을 맞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보다 네 살이 많았으니 둘째 누나가 오랜 투쟁 속에 의대는 못 갔지만 의대 편입을 꿈꾸며 생물학과에 진학했을 때 중학생이었던 난 그녀가 내 누나지만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나의 등록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니다가 숱하게 싸우시던 부모님을 보며 나는 덕수상고에 진학하여 빨리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겠지만, 특히 집안을 뒤집어 놓으며 대학에 진학한 둘째 누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 뿐인 남동생이었던 나만은 본인이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장담했다.

수학을 잘했던 이과생 둘째 누나와 달리 나는 타고난 문과생이었다. 누나가 몇 번 수학 과외를 해주겠다고 나섰지만 자고로 공부와 운전은 식구한테 배우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도와주겠다는 둘째 누나의 손을 뿌리치고 나의 길을 갔다. 가난한 집이었지만 하나 뿐인 외아들을 대학까지 보내겠다는 부모님의 염원이 컸다. 그런데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직에 종사할 수 있게끔 공대를 보내고 싶었던 어머니와 천생 이과생 둘째 누나의 바람과 달리 나는 수학에 재능이 없어 그냥 기본수학의 정석 문제들을 외워야 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통계과학연구소장인 올리버 존슨(Oliver Johnson)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 전염병 확산을 예측하기 위해 각종 '수학모델'을 만들었을 때, 수학자인 올리버 존슨의 자세는 'number crunch'였다. 우리말로 하면 '수학사랑' 또는 '숫자덕후' 정도 아닐까 싶다. 이를 '구조'와 '무작위성', 그리고 '정보'를 키워드를 통해 '수학모델'과 수학적 사고방식에 관한 글로 엮은 책의 제목이 [Number Crunch](2023)다. 이듬해 우리말로 번역된 책 제목은 [수학의 힘](<더퀘스트>)이다.


"수학모델은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로 기존의 데이터를 설명하고, 둘째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수학자는 숫자나 다른 정보들에서 패턴을 포착한 다음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뉴턴의 방정식 덕분에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에서 달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달의 중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고 있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애초에 달에 도착할 로켓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뉴턴의 방정식을 이해한 덕분이다."
- [수학의 힘], <들어가며: 수학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올리버 존스, 2023.


나는 애석하게도 수학을 잘하지 못했지만, 고대에 인류가 세계의 근본원리를 찾고자 했던 철학의 중요한 방법으로서 수를 통해 정확히 표현하고 증명하려는 수학의 중요함은 이해했기에 수학을 잘 하고 싶어하기는 했다. 그러나 수학이나 관련 과학 전공자가 아닌 고등학교 일반수학이 그렇게까지 어려워야 하는가 싶은 의구심은 고등학생 자녀 남매를 둔 학부모인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은 각자 다양한 법, 의대를 가고 싶어했던 둘째 누나 같은 사람들은 아마도 세상만물을 '수학모델'을 통해 이해하는 게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수학은 잘 모르지만 철학이라는 광범위한 학문의 이름으로 세계의 운동원리를 이해하고 싶어하며, 그 사유방식으로 '존재'가 '의식'보다 일차적이라는 '유물론'과 만물은 모순속에서 운동 및 변화한다는 '변증법'을 결합시킨 '유물변증법'을 채택하고 있다. 유물변증법은 항상 당대의 과학발전에 따라야 하므로 나는 이해를 다 하지는 못하더라도 '양자역학'이나 '수학' 관련 책은 가끔 펼쳐본다.

역시,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내 삶에서 수학은 숫자나 공식 또는 그래프가 아니다. 모든 수학 대중서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혼란하고 무작위적이며 우연으로 점철된 세상만사 속에서 확률과 통계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단단한 사유방식인 것이다.
미국의 수학천재 조던 엘렌버그의 [틀리지 않는 법](2014)도 그랬지만, '귀무가설'과 '대수의 법칙', '베이즈추론'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해했다.
일본 수학자 하타무라 요타로의 [직관수학](2004)을 통해서는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닌 대략의 숫자로 추산하는 접근법을 배웠다.
영국의 보험수리학자 앤드류 엘리엇의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2018)을 읽고는 지수로그방식을 통해 큰 수를 보는 법과 비교수치를 통해 이해하는 법 등을 어렴풋이나마 익혔다.


"... 수학이야말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이용할 만한 올바른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함수가 어떻게 증가하는지,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 어떤 질문이든 수학적 기법들이야말로 감정과 개인적 편향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통찰을 준다. 구조(1부), 무작위성(2부), 정보(3부)의 핵심 도구들은 여러분의 사고과정에 위력적인 도구를 제공한다."
- [수학의 힘], <4-13. 오류에서 배우는 교훈>, 올리버 존슨, 2023.


세계는 혼란스럽고 복잡하기 그지없지만,
철학자들이 도달하지 못할지 모르는 '보편적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듯,
수학자들도 각종의 추상적 '수학모델'을 만들어 세계운동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한다.
아인슈타인도 죽기 전 책상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신의 방정식'을 구하고자 했단다.

숫자는 정확하고 엄말함을 추구한다. 그러니 수학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올바른 도구'일 수 있다. 다만, [수학의 힘]의 저자 올리버 존슨은 선입견과 과거의 수치, 지난 시절의 수학모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시대는 매번 변하니 항상 조건들과 가정들을 의심하고 같은 모델을 적용하지 않으며 오류가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틀리지 않고 올바른' 수학의 힘이다.


3.

언제나 지금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늘 더 나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려던 용감했던 둘째 누나가 다시 못 올 먼 곳으로 돌아간지 십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수학을 잘 했지만 누나가 정확하거나 올바른 삶을 살았을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혼란하고 무작위적이었을 길지 않은 인생의 파고를 넘던 중 어느날 갑자기 떠났다.

둘째 누나는 소설가를 꿈꾸던 이십대의 나를 늘 안쓰럽게 바라보며 능력도 안되면서 본인이 책임질테니 나보고 하고싶은 거 다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둘째 누나만큼 용감할 자신이 없던 나는 여전히 누나의 손을 뿌리쳤다. 

이제 나도 '수학'은 여기까지 하련다.
사실 몇 권을 읽고 또 읽어도 다 비슷한 내용으로 보이고 더 이상 흥미도 없다.
한편으론 수학을 잘 하던 둘째 누나의 안쓰런 눈빛과 애절한 손길이 그립다. 만일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나의 둘째 누나에게 말만이라도 따뜻하게 전해주고 싶다.

아니, 아직 팔팔한 동생 대신 하루하루 노쇠해지고 잠들기 두려워 매일 저녁 캔맥주를 드시고 주무셔야 하는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나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
몇 해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어머니와의 무작위한 생활을 내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도록.

오늘,
십여년 전 누나가 가던 날처럼 햇살이 눈부시다.

***

1. [수학의 힘(Number Crunch)](2023), Oliver Johnson, 노태복 옮김, <더퀘스트>, 2024.
2. [틀리지 않는 법(How Not to Be Wrong) - 수학적 사고의 힘(The Power of Mathematical Thinking)](2014), Jordan Ellenberg,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6.
3.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Is That a Big Number?)](2018), Andrew Elliott, 허성심 옮김, <미래의창>, 2021.
4. [직관 수학](2004), 하타무라 요타로, 조윤동 옮김, <서울문화사>, 2005.
5. [단 하나의 방정식(The God Equation)](2021), 미치오 카쿠, 박병철 옮김,<김영사>, 2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철학 베스트 50 - 철학의 탄생부터 더 나은 삶을 찾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이해하는 위대한 생각들을 한 권에!
히라하라 스구루 지음, 이아랑 옮김 / 더디퍼런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哲學), '개념의 공예'
- [철학 베스트 50], 히라하라 스구루, 2016.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철학은 한마디로 '개념'을 통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해가는 활동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공통 이해의 언어게임'이라 부른다... 마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그것을 '개념'으로 완성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개념의 공예'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철학 베스트 50], <들어가며>, 히라하라 스구루, 2016.


1.

스무살, 대학 신입생 때 내가 가입했던 영문과 '현대철학반'은 거룩했던 그 이름과는 달리 '현대철학'을 거부했다.

1993년은 30년 이상의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문민정권이 출범한 해였다.
광주항쟁의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쿠데타 대통령을 처벌하자는 민중들의 요구가 있었고, 공권력없는 학생들이 '전두환 체포조'를 자청하며 연희동을 순찰하던 시대였다. 문민정부 또한 이러한 거리의 요구에 부응하듯 군부 잔존세력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통해 부정부패를 정화하기는 하던 시절이었다.

그 해 대학 신입생이었던 우리 '93학번은 이른바 '문민정부 학번'이었다.
한 해 선배인 '92학번까지는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더 좌측에서는 백기완 민중대통령 후보의 득표 1%를 위해 거리에서 노숙을 했다던 험한 시절이었다면 '93학번은 찬란한 세대였다. 그래서 정권과 언론은 우리를 '신세대'라 불렀고, 우리 사회 진정한 '90년대의 시작은 1993년부터였다.

철학도 '신세대'에 맞게 '현대적'이어야 했겠지만, 내가 속한 영문과 학회 '현대철학반'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현대'와 마르크스주의에서 멈췄다. 우리에게 철학을 가르친 '90~92학번 선배들은 자기들이 아는 게 마르크스주의 뿐이라고 했고 그래도 학회의 주교재가 고대로부터 마르크스주의까지의 철학사를 다룬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였으니 2학년 학회 '교사'가 된 우리에게 시대에 맞게 '현대철학'을 펼쳐보라 권했다.

그러나 막상, 이제 본격적으로 '현대철학'을 할 수 있게 된 우리는,
여전히 '현대철학'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2.

며칠전, 1970년대 일본 노동운동의 대부라는 타카다 모토무의 [유물론 vs. 관념론](1974)을 읽고는 우리 '현대철학반'의 주교재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의 기원을 추측하게 되었다.

내친 김에 역시 일본인의 책이라 께름직하긴 했어도 일본 철학자 히라하라 스구루의 [철학 베스트 50](2016)를 연이어서 읽어보았다. 

고대철학의 출발은 역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시작했는데 타카다 모토무나 영문과 '현대철학반'(이하 '현철반')과 달리 19세기말 프리드리히 니체와 20세기 에드문트 후설을 넘어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를 지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점인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까지 철학의 고전 50권을 요약한 책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윤리 시간에 짧게 배웠던 철학사가 재미있었는데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에서 출발했던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만 알다가 대학에 들어와 '현철반' 교재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이하 '철철사')를 통해 나는 고대 그리스 탈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 등의 '유물론'적 기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철학사를 유물론과 관념론의 전쟁터로 규정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관점에서 본 철학의 역사다. 
타카다 모토무와 '철철사'의 시점이다.

1986년생 철학자 히라하라 스구루는 다시금 우리의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처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시작한다. 저작을 남기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스승과의 [대화편]을 통해 '보편성'으로서의 철학이라는 학문의 길을 연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근원이 '물'이라 했던 탈레스, '무한'으로 본 아낙시만드로스나 '공기'라 했던 아낙시메네스, '원자론'의 헤라클레이토스 등은 "세계를 설명하는 원리를 그리스 신화에서 개념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철학 베스트 50], <1장>). 그러나 이들은 과학이라는 학문분과가 있을 수 없이 그 자체가 '철학'이라는 학문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고대에 그나마 '과학자'들이었던 것이고, "세계의 근거를 '선(善-행복)'이라는 가치에 두었던 (철학자) 플라톤의 통찰은 기존 철학의 수준을 현저히 발전시킨 획기적인 것"(같은책, 같은장)이라고 저자 스구루는 적고 있다. '유물론'의 경향을 갖지 않는 철학자 히라하라 스구루는 철학사에서 과학적 발견의 기원보다는 철학이라는 '보편성'의 학문적 전통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대 신화를 철학적 보편성으로 표현한 플라톤이나 중세 종교의 '시녀'였으나 보편성의 끈을 놓치 않았던 스콜라철학, 내용은 종교와 같으나 형식이 다르다는 근대철학자 헤겔 등의 '관념론'이 진짜 정통 철학으로 부각된다. 고대 그리스 '자생적 유물론'과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유물론'적 요소나 마르크스주의 유물변증법은 이 보편성의 철학사를 보완하는 요소가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철학사에서 항상 '유물론'의 승리를 보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철학자 스구루는 '보편성'이라는 관념론으로 언제든 회귀한다. 물론, '관념론'에 치우치고 싶지 않은 스구루는 이 철학의 '보편성'을 '공통의 이해'(같은책, <들어가며>)로 치환하여 표현하고 있지만.

수많은 철학자들의 고전 50권을 본인만의 시각으로 쉽게 요약해주고 있는 철학자 히라하라 스구루에게 "철학은 한마디로 개념을 통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해가는 활동"(같은책, <들어가며>)이다. 복잡다단한 세계와 이 속에서 일어나는 각종 개별적 현상들을 통해 보편적으로 적용할 '개념'을 도출하는 철학의 '관념론'적 요소를 저자는 이렇게 규정하면서 '현대철학'적으로 철학은 '언어의 게임'이라 부른다. 

'현대철학'은 더 이상 종교와 같은 '관념론'적 요소를 강조하지 않는다. '보편성'을 담지하는 '개념'과 '진리'를 향한 목적지향성은 철학의 불가피한 학문적 본질이겠지만, '현대철학'은 신이나 절대자 또는 '일자(一者)' 따위를 더이상 세계의 근본으로 두지 않는다. 과학의 발전이 항상 앞서고 철학은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황혼녘에 날개를 펴듯 늘 과학의 뒤를 따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언제나 '자생적 유물론자'들이고 철학자들은 과학적 성과의 '개별성'을 '보편성'으로 종합하는 지식의 총결산에 복무한다.

'현대철학'에서 과학과 철학의 학문적 구분은 더욱 명확할지 모르나, '보편성'을 지향하는 학문의 본질상 인문과 자연 각 분야의 과학자들 모두가 철학자가 된다.

"주관은 어떻게 객관을 올바로 인식하는가를 묻는 '주객일치'의 구도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식이란 '욕구에 상관한 가치평가'로서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니체 '인식론'의 기본 원리다."
- [철학 베스트 50], <4장. 현대 1 - 니체부터 하이데거까지>, 히라하라 스구루, 2016.

히라하라 스구루는 프리드리히 니체를 높이 평가한다. 50권 중 3권이나 니체의 저작을 소개하면서 말이다. 스구루에 의하면 니체는 철학의 전통적 '인식론'에 인간 '욕망'이라는 혁명적 요소를 도입하면서 '현대철학'을 시작했다. 스구루가 말한 인간의 '욕구'는 '욕망'이다. 철학은 '보편성'의 학문이라 주체인 인간이 객체로서의 세계를 어느정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인식론'에서도 주체의 인식이 객체를 어느정도 반영할 수 있는지가 고전적 주제였다. 주체가 먼저인가 객체가 우선인가를 묻는 '존재론' 다음으로 나오는 철학의 주요 주제가 바로 '인식론'이다.

'유물론'은 '존재론'에서 객체의 일차성을 강조하다보니 '인식론'에서도 인간의 의식 자체도 두뇌라는 물질적 요소를 통한 '물질적 반영'이라고까지 주장하면서 철학의 '관념론'적 요소를 배제하고자 했다. 이에 니체는 '인식론'에서 주객일치의 '보편성'을 향한 경로를 이탈하면서 인간의 '욕망'에 의한 '가치평가'가 인식론을 좌우한다고 한 것이다. 근대의 신을 죽이고 현대를 연 니체가 철학적 '인식론'에서 인간 '욕망'을 개입시키면서 '보편성' 또한 죽이고 말았다. 이제 진리를 아는 건 철학의 '보편성'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는 '초인'으로서 주체다. 철학사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전선을 이탈하고 주체로서의 인간(욕망)을 중심으로 하는 생의 철학과 실존주의 등 현대철학의 문을 연 것이 니체라고 철학자 스구루는 보고 있다.

[철학 베스트 50]에서 히라하라 스구루의 결론은 철학사를 통해 인간 '마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그것을 개념으로 완성'하는 철학은 '개념의 공예'라는 것이다. '현대철학'에서 '보편성'은 거추장스러워졌지만 '공통의 이해'를 지향하는 '개념'을 다듬고 또 다듬는 공예 활동이 바로 '철학'이라는 결론이다.

이를 위해 철학사의 고전 50권은 '읽지 않고는 죽을 수도 없는', 즉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철학 베스트 50]이 된다.


3.

'현철반'의 선배들이 떠나고 남은 우리 현철반 4인방, 철이엄마와 정박아와 지진아와 벅스터는 결국 '현대철학'과 인간 '욕망'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실존주의는 고민했겠지만 다루지 못했고, 현상학은 무시했으며, '포스트 모더니즘'은 철학으로 보지도 않았다. 당시 1990년대 초반에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20세기 초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리라. 1995년까지 시대는 북유럽 사민주의가 '개량주의'와 비겁한 '기회주의'로 비판받던 시절이었다.

오래전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학습 지침서](1989)까지는 아니지만, 철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철학 고전들을 읽어주는 히라하라 스구루의 [철학 베스트 50] 같은 책은 여전히 친절하고 고맙다. 살펴보니 비록 나는 50권의 10분의 1인 5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철학자 히라하라 스구루의 말마따나 '철학'은 지식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운동의 원리와 이에 대한 사고방식, 공통이해(보편성)를 향한 개념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세상의 '이데아'를 꿈꾸며 '개념'을 지속적으로 다듬어 가는 '공예' 활동으로서 '철학'에 동감한다. 
결국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끊임없이 도전해온 것이 인류의 역사였고, 철학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

1.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철학 베스트 50](2016), 히라하라 스구루, 이아랑 옮김, <더디퍼런스>, 2024.
2.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학습 지침서], 모리스 콘퍼스, 이진영 옮김, <새물결>, 1989.
3. [유물론 vs. 관념론 - 철학의 근본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역사적 갈등](1974), 타카다 모토무, 최미선 옮김, <책갈피>, 2024.
4.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이병수/우기동, <돌베개>, 1987.
5. [1990's -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 윤여일, <돌베개>, 20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 돌베개인문.사회과학신서 67
이병수 외 / 돌베개 / 199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사의 전장 속 거대한 두 개의 진영
- [유물론 vs. 관념론], 타카다 모토무, 1974.


1.

결국, 
그 책을 돌려받지 못했다.

1993년도에 스무살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 나는 곧바로 영자신문사에 들어갔는데, '문민정권'임에도 신문사에 버젓이 잔존하던 군사문화가 싫어서 일주일만에 때려치우고 영문과 학생회의 철학학회에 가입했다. 
이름하여, '현대철학반'.

오로지 술 얻어마시고 놀고 싶어 들어갔는데, 역시 '현대철학'을 내건 이름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르크스주의 철학까지가 커리큘럼이었다. '문학사랑반'이나 '문학이론반' 또는 '영미희곡반'처럼 학회원이 많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떠밀려서 맡은 우리보다 1년 선배 태범이형이 교사 역할을 했고 지도고문 역할의 보현이형과 종선이형, 60년대생 회근옹 같은 몇 안되는 복학생 선배들이 다였다.
신입회원은 나(벅스터)를 포함한 진욱이(정박아), 진영이(지진아) 남학생 3명과 홍일점 여학생 윤주 1명이었다.

옥토끼 같이 귀엽고 싶어서 스스로 지은 별명이 '벅스터(The Buckster)'였던 나와 마산에서 얼굴 철판깔고 올라온 '정박아', 그리고 나름 8학군 반포동 토박이 '지진아', '현철반' 남자 신입생 3인방은 하라는 '철학'은 안 하고 거의 매일 '정박아'의 자취방 인근에서 술추렴하고 차비가 없어 외박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철학학회의 커리큘럼에 맞는 주교재가 하나 있었는데, 아마도 내 고등학생 시절 [성문 기본영어]보다 더 많이 봐서 책 두께가 세 배는 불었고 공자의 '위편삼절'처럼 너덜너덜해지기는 했을 정도로 펼쳐보던 책이기는 했다. 자주 읽기도 했다지만 실은 하도 들고 다니며 함께 풍찬노숙하고 술을 마셔대서 걸레짝이 된 책이라는 게 맞다.

그 교재는 제목이 무려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 우리들끼리 줄여서 '철.철.사'였다.
2학년이 된 나는 학회장을 한 번 하고 근엄한 척, 진지한 척, 철학자인 척은 혼자 다 하다가 3학년 1학기 고문까지 하고는 그 해 늦가을에 입대를 했다. 보충대 입소 전날 난 나의 가보와 같던 '철.철.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또 1년 후 상병 휴가를 나와서 내가 군대 가던 해 1학년 신입회원이었던 여자 후배 미선이를 꼬셨다. 그리고는 다 낡아빠져 그지 같은 '철.철.사'를 그녀에게 맡기고는 홀연히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그렇게 그녀는 군복무 중인 나 대신 '현철반'의 후배들을 지도해야 했다. 닳고 닳은 '철.철.사'를 들고.

그리고는 몇 년 후,
그녀와 헤어지면서 수많았던 다른 책들에 묻혀 나의 '철.철.사'를 돌려받지 못했던 거다.

그녀가 '현철반' 복학생 선배 종선이형 집에 내가 준 책들을 다 맡겼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지만, 그 땐 이미 아마도 그 형이 책들을 다 처분한 후였을 게다.

스무살 초반, 
나의 3년간 철학적 투혼이 담긴 '철.철.사'는 그렇게 잊혀졌다.


2.

"철학사의 출발을 장식한 이오니아 자연학의 자생적 '유물론'과 자생적 '변증법'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도전으로 단련되면서 갈지자 행보를 거쳐, 한편으로는 프랑스 '유물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헤겔의 '변증법'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운 새로운 세계관은 이런 약점과 일그러짐을 걷어내고 '유물론'과 '변증법'을 처음으로, 의식적이고 내적으로 결합시켰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5장. 과학적 세계관의 등장: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형성>, 타카다 모토무, 1974.

일본 노동운동의 대부로 불린다는 타카다 모토무(高田求)는 내가 태어났던 1974년에 일찍이 [유물론 vs. 관념론]이라는 책을 써서 노동계급에게 '철학사(哲學史)'를 쉽게 설명했다. 원시 사회로부터 고대 및 봉건을 거쳐 근대 부르주아 사회를 넘어 마르크스주의 철학인 '유물변증법'이 성립되는 철학의 역사를 소개한다. 마르크스의 영원한 동지인 엥겔스의 선언처럼 '철학사의 전장은 유물론과 관념론 양대 진영 사이의 거대한 투쟁'이라는 전제 아래 철학의 역사 속 관념론적 경향을 극복해 온 유물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몰랐다.
최근 우연히 읽게 된 타카다 모토무의 [유물론 vs. 관념론]의 내용은 오래전 우리 '현대철학반'의 교재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의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과 '현철반'은 적어도 1990년도 이전부터 '철.철.사'를 교재로 사용했을 텐데, 마르크스주의 철학서인 '철.철.사'는 민주화의 격동기였던 1987년도에 출간되었다.
오랫만에 검색해 보니 오래전 공저자 중 하나였던 우리학교 선배 철학강사 우기동 선생은 빠져있었다. '80년대 좌파 운동권 냄새 풀풀 풍기며 외국 유학 없이 국내에서만 서양철학을 공부했다던 우직한 우기동 선생이 분명히 '철.철.사'의 공저자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우기동 선생의 철학강의를 찾아서 듣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타카다 모토무의 [유물론 vs. 관념론](1974)을 통해 오랫만에 나의 첫 철학교재인 우기동 선생의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를 다시 만났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인 '유물변증법'의 철저한 관점에서 2천년 철학의 역사를 '유물론'과 '관념론' 양대 진영의 투쟁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이는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의 엥겔스와 [철학노트](1914)의 레닌이 일관되게 견지했던 바로 그 관점이다.
세상의 운동 원리를 규명하고자 하는 철학적 세계관의 역사가 정신이 일차적이라는 '관념론'보다는 물질이 일차적 근원이라는 '유물론'의 승리의 역사라는 시각이다.


3.

"... 이런 문제제기와 답변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세계관이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성립된 새로운 형식의 세계관, 그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던진 물음에 내놓은 답은 그 내용상 '원초적이고 자생적인 유물론'이라고 할만한 것이었습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2장. 고대 사회: 철학적 세계관의 형성,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 타카다 모토무, 1974.

철학은 고대 인류로부터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출발했다. 원시 사회에서 언어와 말의 발전과 함께 성립된 '관념론'과 종교는 자연과학과 인류인식이 발전하면서 '유물론'에게 도전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시대 구분 없이 모든 철학적 투쟁에서 '관념론'적 경향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유물론'적 경향에 의해 패퇴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4년에 공저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한 '자생적 유물론'은 과학의 발전을 동반하면서 점점 더 '유물론'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간다. 고대의 원자론이나 중세의 유명론 등은 직관에 기초한 '자생적 유물론이었지만, 근대 부르주아 혁명 시대의 과학 발전 과정에서는 진정한 '유물론'의 형태가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역사를 나선형 진보로 엮어내는 '변증법'과의 결합이다.
바로 '유물변증법'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2천년 철학사가 총결산되는 과정이다.
유물론의 진영에서는 '유물변증법'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세계관이 즉 '현대철학'인 것이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 부분](1913)이라는 소논문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원천을,
1) 영국의 정치경제학, 
2)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 
3) 독일의 관념론, 
이상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1) 영국의 정치경제학은 '노동가치론'이고, 
2)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는 1789년 프랑스 부르주아 대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계몽철학의 '유물론'적 경향의 전통이며,
3) 독일의 관념론은 '변증법'적 나선형 진보의 사고방식을 자연과 인류사에 적용시킨 독일 고전철학의 거대한 사상체계로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관념적 사변철학의 집대성체인 독일 고전철학을 '유물론'적으로 바로 세웠다는 의미다. 
이 철학의 정수가 바로 '유물변증법'이다.

'유물변증법'의 관점으로 본다면,
철학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관념론'적 도전은 언제나 과학의 발견 및 진보와 함께 '유물론'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 여기서 다시, '어떤 관념론자가 다른 관념론자의 근거를 비판할 때 그 투쟁으로 성과를 올리는 것은 언제나 유물론이다'라는 레닌의 지적을 떠올려야 합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3장. 봉건 사회와 그 해체기의 유물론과 관념론>, 타카다 모토무, 1974.

레닌은 1914년 [철학노트]에서 모든 철학적 투쟁의 승리와 진보는 '유물론'적 성과라고 반복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임박하면서 유럽 노동운동이 반동의 파도에 휩쓸려가던 1914년의 침체기에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의 거대한 '관념론' 사상체계 속에서 빛나는 '유물론'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에 역사의 나선형 운동과 변화, 발전을 특징으로 하는 '변증법'을 결합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서 '유물변증법'의 정당성을 이론은 물론 실천적으로 입증하고자 한다.

현대철학 아닌 '현대철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 '유물변증법'을 대중에게 설명해 주려던 타카다 모토무와 '철.철.사'의 목적도 바로 그것이었다.

나의 '철.철.사', 
나의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4.

"공부 쫌 해라!"

신입생 시절 '현철반' 찌질이 벅스터와 정박아, 지진아 3인방이 여전히 돈이 없어 새우깡과 깡소주를 정박아 자취방 앞 골목에서 까고 있을 때, 지나가던 '87학번 복학생 찬우형이 일갈했다.

같지도 않은 철학 개념들을 남발하며 3인방이 서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한 잔 걸치고 근처 하숙집으로 올라가던 선배가 '니들, 파쇼와 독재의 차이 아나?'라고 경주 사투리로 물었고, 우리는 침묵했다. 한참을 기다리던 선배는 '폭력'이 있냐 없냐의 차이라고 개념적으로 간결히 정리해 주고는 영문과 철학떨거지 3인방을 일일이 쥐어박고 일어서서 가던 길을 갔다.

멋졌다.
나도 열심히 철학공부를 해서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이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항상 부족하지만 끝까지 철학책들을 읽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한 장면이다.

그래서, 타카다 모토무의 오래된 철학책을 읽고, 
오래전 우리의 '철.철.사'를 추억하게 된 김에, 
'철학은 개념을 통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하며 진짜로 '현대철학'까지의 고전들을요약하고 소개해 준다는 일본의 젊은 철학자 히라하라 스그루의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철학 베스트 50](2016)을 다음 책으로 읽어보려고 한다.

우연하게도 역시 또 일본 철학자의 책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난 전혀 '친일파'가 아니며,
일본의 좌파 지성계는 그래도 건전하면서 극우 천왕파시즘과 무관하다는 위안을 스스로 하면서 말이다.

마르크스주의 원전을 심도깊게 분석하는 일본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만 해도 나보다 젊지만 매우 뛰어난 내공과 식견을 자랑한다.

배움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지 않겠는가.


5.

책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는 '유물변증법'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짧은 한 시절 사랑하던 후배 미선이에게 '현철반'의 운명과 함께 '철.철.사'를 맡겼지만 시대는 더 이상, '유물변증법'의 편이 아니었다.

전역을 했고 학교로 돌아가 그녀와 이후 잠시 더 만났지만, 이미 '현철반'은 사라져 버렸다. '현대철학'을 내걸었음에도 마르크스주의에 머물렀던 학회는 20세기 말 대학 내 학회운동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그 후로 나는 소설을 써서 사라져 가던 '유물변증법', 당시의 용어로 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을 설파하고 싶었다. '현대철학반'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싶었다.

내겐 지금도, 
'문사철'의 궁극적 세계관이 '유물론'과 '변증법'의 결합인 '유물변증법'이다.

내겐 여전히,
철학의 전장에서 거대한 양대 진영의 투쟁이 보인다.

'유물론' 대 '관념론'의 투쟁이.

***

1. [유물론 vs. 관념론 - 철학의 근본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역사적 갈등](1974), 타카다 모토무, 최미선 옮김, <책갈피>, 2024.
2.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이병수/우기동, <돌베개>, 1987.
3. [세계관 - 당신 지식의 한계](2018),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4. [독일 이데올로기](1844), 마르크스/엥겔스, 박재희 옮김, <청년사>, 1988.
5.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6. [반뒤링론(Anti-During)](1878), F. Engels, 김민석 옮김, <새길>, 1987.
7. [철학노트](1914), 레닌,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8.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레닌,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9.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10.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11.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 철학 베스트 50](2016), 히라하라 스구루, 이아랑 옮김, <더디퍼런스>, 20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의 근본 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 역사적 갈등
타카다 모토무 지음, 최미선 옮김 / 책갈피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사의 전장 속 거대한 두 개의 진영
- [유물론 vs. 관념론], 타카다 모토무, 1974.


1.

결국, 
그 책을 돌려받지 못했다.

1993년도에 스무살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 나는 곧바로 영자신문사에 들어갔는데, '문민정권'임에도 신문사에 버젓이 잔존하던 군사문화가 싫어서 일주일만에 때려치우고 영문과 학생회의 철학학회에 가입했다. 
이름하여, '현대철학반'.

오로지 술 얻어마시고 놀고 싶어 들어갔는데, 역시 '현대철학'을 내건 이름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르크스주의 철학까지가 커리큘럼이었다. '문학사랑반'이나 '문학이론반' 또는 '영미희곡반'처럼 학회원이 많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떠밀려서 맡은 우리보다 1년 선배 태범이형이 교사 역할을 했고 지도고문 역할의 보현이형과 종선이형, 60년대생 회근옹 같은 몇 안되는 복학생 선배들이 다였다.
신입회원은 나(벅스터)를 포함한 진욱이(정박아), 진영이(지진아) 남학생 3명과 홍일점 여학생 윤주 1명이었다.

옥토끼 같이 귀엽고 싶어서 스스로 지은 별명이 '벅스터(The Buckster)'였던 나와 마산에서 얼굴 철판깔고 올라온 '정박아', 그리고 나름 8학군 반포동 토박이 '지진아', '현철반' 남자 신입생 3인방은 하라는 '철학'은 안 하고 거의 매일 '정박아'의 자취방 인근에서 술추렴하고 차비가 없어 외박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철학학회의 커리큘럼에 맞는 주교재가 하나 있었는데, 아마도 내 고등학생 시절 [성문 기본영어]보다 더 많이 봐서 책 두께가 세 배는 불었고 공자의 '위편삼절'처럼 너덜너덜해지기는 했을 정도로 펼쳐보던 책이기는 했다. 자주 읽기도 했다지만 실은 하도 들고 다니며 함께 풍찬노숙하고 술을 마셔대서 걸레짝이 된 책이라는 게 맞다.

그 교재는 제목이 무려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 우리들끼리 줄여서 '철.철.사'였다.
2학년이 된 나는 학회장을 한 번 하고 근엄한 척, 진지한 척, 철학자인 척은 혼자 다 하다가 3학년 1학기 고문까지 하고는 그 해 늦가을에 입대를 했다. 보충대 입소 전날 난 나의 가보와 같던 '철.철.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또 1년 후 상병 휴가를 나와서 내가 군대 가던 해 1학년 신입회원이었던 여자 후배 미선이를 꼬셨다. 그리고는 다 낡아빠져 그지 같은 '철.철.사'를 그녀에게 맡기고는 홀연히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그렇게 그녀는 군복무 중인 나 대신 '현철반'의 후배들을 지도해야 했다. 닳고 닳은 '철.철.사'를 들고.

그리고는 몇 년 후,
그녀와 헤어지면서 수많았던 다른 책들에 묻혀 나의 '철.철.사'를 돌려받지 못했던 거다.

그녀가 '현철반' 복학생 선배 종선이형 집에 내가 준 책들을 다 맡겼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지만, 그 땐 이미 아마도 그 형이 책들을 다 처분한 후였을 게다.

스무살 초반, 
나의 3년간 철학적 투혼이 담긴 '철.철.사'는 그렇게 잊혀졌다.


2.

"철학사의 출발을 장식한 이오니아 자연학의 자생적 '유물론'과 자생적 '변증법'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도전으로 단련되면서 갈지자 행보를 거쳐, 한편으로는 프랑스 '유물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헤겔의 '변증법'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운 새로운 세계관은 이런 약점과 일그러짐을 걷어내고 '유물론'과 '변증법'을 처음으로, 의식적이고 내적으로 결합시켰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5장. 과학적 세계관의 등장: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형성>, 타카다 모토무, 1974.

일본 노동운동의 대부로 불린다는 타카다 모토무(高田求)는 내가 태어났던 1974년에 일찍이 [유물론 vs. 관념론]이라는 책을 써서 노동계급에게 '철학사(哲學史)'를 쉽게 설명했다. 원시 사회로부터 고대 및 봉건을 거쳐 근대 부르주아 사회를 넘어 마르크스주의 철학인 '유물변증법'이 성립되는 철학의 역사를 소개한다. 마르크스의 영원한 동지인 엥겔스의 선언처럼 '철학사의 전장은 유물론과 관념론 양대 진영 사이의 거대한 투쟁'이라는 전제 아래 철학의 역사 속 관념론적 경향을 극복해 온 유물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몰랐다.
최근 우연히 읽게 된 타카다 모토무의 [유물론 vs. 관념론]의 내용은 오래전 우리 '현대철학반'의 교재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의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과 '현철반'은 적어도 1990년도 이전부터 '철.철.사'를 교재로 사용했을 텐데, 마르크스주의 철학서인 '철.철.사'는 민주화의 격동기였던 1987년도에 출간되었다.
오랫만에 검색해 보니 오래전 공저자 중 하나였던 우리학교 선배 철학강사 우기동 선생은 빠져있었다. '80년대 좌파 운동권 냄새 풀풀 풍기며 외국 유학 없이 국내에서만 서양철학을 공부했다던 우직한 우기동 선생이 분명히 '철.철.사'의 공저자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우기동 선생의 철학강의를 찾아서 듣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타카다 모토무의 [유물론 vs. 관념론](1974)을 통해 오랫만에 나의 첫 철학교재인 우기동 선생의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를 다시 만났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인 '유물변증법'의 철저한 관점에서 2천년 철학의 역사를 '유물론'과 '관념론' 양대 진영의 투쟁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이는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의 엥겔스와 [철학노트](1914)의 레닌이 일관되게 견지했던 바로 그 관점이다.
세상의 운동 원리를 규명하고자 하는 철학적 세계관의 역사가 정신이 일차적이라는 '관념론'보다는 물질이 일차적 근원이라는 '유물론'의 승리의 역사라는 시각이다.


3.

"... 이런 문제제기와 답변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세계관이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성립된 새로운 형식의 세계관, 그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던진 물음에 내놓은 답은 그 내용상 '원초적이고 자생적인 유물론'이라고 할만한 것이었습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2장. 고대 사회: 철학적 세계관의 형성,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 타카다 모토무, 1974.

철학은 고대 인류로부터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출발했다. 원시 사회에서 언어와 말의 발전과 함께 성립된 '관념론'과 종교는 자연과학과 인류인식이 발전하면서 '유물론'에게 도전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시대 구분 없이 모든 철학적 투쟁에서 '관념론'적 경향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유물론'적 경향에 의해 패퇴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4년에 공저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한 '자생적 유물론'은 과학의 발전을 동반하면서 점점 더 '유물론'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간다. 고대의 원자론이나 중세의 유명론 등은 직관에 기초한 '자생적 유물론이었지만, 근대 부르주아 혁명 시대의 과학 발전 과정에서는 진정한 '유물론'의 형태가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역사를 나선형 진보로 엮어내는 '변증법'과의 결합이다.
바로 '유물변증법'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2천년 철학사가 총결산되는 과정이다.
유물론의 진영에서는 '유물변증법'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세계관이 즉 '현대철학'인 것이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 부분](1913)이라는 소논문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원천을,
1) 영국의 정치경제학, 
2)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 
3) 독일의 관념론, 
이상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1) 영국의 정치경제학은 '노동가치론'이고, 
2)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는 1789년 프랑스 부르주아 대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계몽철학의 '유물론'적 경향의 전통이며,
3) 독일의 관념론은 '변증법'적 나선형 진보의 사고방식을 자연과 인류사에 적용시킨 독일 고전철학의 거대한 사상체계로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관념적 사변철학의 집대성체인 독일 고전철학을 '유물론'적으로 바로 세웠다는 의미다. 
이 철학의 정수가 바로 '유물변증법'이다.

'유물변증법'의 관점으로 본다면,
철학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관념론'적 도전은 언제나 과학의 발견 및 진보와 함께 '유물론'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 여기서 다시, '어떤 관념론자가 다른 관념론자의 근거를 비판할 때 그 투쟁으로 성과를 올리는 것은 언제나 유물론이다'라는 레닌의 지적을 떠올려야 합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3장. 봉건 사회와 그 해체기의 유물론과 관념론>, 타카다 모토무, 1974.

레닌은 1914년 [철학노트]에서 모든 철학적 투쟁의 승리와 진보는 '유물론'적 성과라고 반복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임박하면서 유럽 노동운동이 반동의 파도에 휩쓸려가던 1914년의 침체기에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의 거대한 '관념론' 사상체계 속에서 빛나는 '유물론'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에 역사의 나선형 운동과 변화, 발전을 특징으로 하는 '변증법'을 결합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서 '유물변증법'의 정당성을 이론은 물론 실천적으로 입증하고자 한다.

현대철학 아닌 '현대철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 '유물변증법'을 대중에게 설명해 주려던 타카다 모토무와 '철.철.사'의 목적도 바로 그것이었다.

나의 '철.철.사', 
나의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4.

"공부 쫌 해라!"

신입생 시절 '현철반' 찌질이 벅스터와 정박아, 지진아 3인방이 여전히 돈이 없어 새우깡과 깡소주를 정박아 자취방 앞 골목에서 까고 있을 때, 지나가던 '87학번 복학생 찬우형이 일갈했다.

같지도 않은 철학 개념들을 남발하며 3인방이 서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한 잔 걸치고 근처 하숙집으로 올라가던 선배가 '니들, 파쇼와 독재의 차이 아나?'라고 경주 사투리로 물었고, 우리는 침묵했다. 한참을 기다리던 선배는 '폭력'이 있냐 없냐의 차이라고 개념적으로 간결히 정리해 주고는 영문과 철학떨거지 3인방을 일일이 쥐어박고 일어서서 가던 길을 갔다.

멋졌다.
나도 열심히 철학공부를 해서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이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항상 부족하지만 끝까지 철학책들을 읽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한 장면이다.

그래서, 타카다 모토무의 오래된 철학책을 읽고, 
오래전 우리의 '철.철.사'를 추억하게 된 김에, 
'철학은 개념을 통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하며 진짜로 '현대철학'까지의 고전들을요약하고 소개해 준다는 일본의 젊은 철학자 히라하라 스그루의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철학 베스트 50](2016)을 다음 책으로 읽어보려고 한다.

우연하게도 역시 또 일본 철학자의 책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난 전혀 '친일파'가 아니며,
일본의 좌파 지성계는 그래도 건전하면서 극우 천왕파시즘과 무관하다는 위안을 스스로 하면서 말이다.

마르크스주의 원전을 심도깊게 분석하는 일본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만 해도 나보다 젊지만 매우 뛰어난 내공과 식견을 자랑한다.

배움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지 않겠는가.


5.

책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는 '유물변증법'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짧은 한 시절 사랑하던 후배 미선이에게 '현철반'의 운명과 함께 '철.철.사'를 맡겼지만 시대는 더 이상, '유물변증법'의 편이 아니었다.

전역을 했고 학교로 돌아가 그녀와 이후 잠시 더 만났지만, 이미 '현철반'은 사라져 버렸다. '현대철학'을 내걸었음에도 마르크스주의에 머물렀던 학회는 20세기 말 대학 내 학회운동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그 후로 나는 소설을 써서 사라져 가던 '유물변증법', 당시의 용어로 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을 설파하고 싶었다. '현대철학반'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싶었다.

내겐 지금도, 
'문사철'의 궁극적 세계관이 '유물론'과 '변증법'의 결합인 '유물변증법'이다.

내겐 여전히,
철학의 전장에서 거대한 양대 진영의 투쟁이 보인다.

'유물론' 대 '관념론'의 투쟁이.

***

1. [유물론 vs. 관념론 - 철학의 근본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역사적 갈등](1974), 타카다 모토무, 최미선 옮김, <책갈피>, 2024.
2.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이병수/우기동, <돌베개>, 1987.
3. [세계관 - 당신 지식의 한계](2018),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4. [독일 이데올로기](1844), 마르크스/엥겔스, 박재희 옮김, <청년사>, 1988.
5.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6. [반뒤링론(Anti-During)](1878), F. Engels, 김민석 옮김, <새길>, 1987.
7. [철학노트](1914), 레닌,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8.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레닌,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9.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10.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11.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 철학 베스트 50](2016), 히라하라 스구루, 이아랑 옮김, <더디퍼런스>, 20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1963~1964.


1.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 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5장. 판결, 항소, 처형>, 한나 아렌트, 1963.


그 속에 내가 없기를 바랬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이야기 속에 내가 있었다.

거대한 사회체제 속의 부품으로 살면서,
스스로의 입신양명과 가족의 부귀영화를 꿈꾸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해고노동자들과 철거민들을 때려잡고,
농성텐트를 철거하는 자리에 화단을 만들겠다며 열심히 삽질해대던 '성실한' 공무원들을 떠올리면서,
수십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순리에 따라' 친일을 했던 자들과 독재정권에 본의 아니게 부역한 자들까지 상기하다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결국 펼쳤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대한 보고서'로 유명한 그 책 속에 평범한 내가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2.

"피고측이 피고로 하여금 무죄주장을 하게한 이유는 피고가 당시 존재하던 나치 법률체계 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가 기소당한 내용은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 공식행위'이므로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다른 나라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복종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고, (피고측 변호인) 세르바티우스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는 '이기면 훈장을 받고 패배하면 교수대에 처해질' 행위들을 했을 뿐이라는 것 등이었을 것이다(그래서 1943년에 괴벨스는 '우리는 역사책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서 기록되든지 또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장. 피고인>, 한나 아렌트, 1963.


독일 출신으로 나치의 유대인 박해 시기에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을 도왔고 1941년에 미국으로 망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 1906~1975)는 유대인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된 독일 나치장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 1906~1962)의 재판을 기록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간다.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 이주와 이송전문가'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전범재판이었던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처벌할 정도의 나치정권 수괴는 아니었다. 그는 아르헨티나로 도망쳐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던 중 이스라엘 정보국에 의해 1960년에 체포되고 예루살렘으로 납치되어 유대인의 신생국 이스라엘의 법정에서 유대인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 재판 끝에 처형당했다.

아렌트는 이 2년 간 재판의 기록을 통해 이스라엘의 재판정에 선 피고 아이히만의 '평범성'에 주목한다. 
이스라엘의 "심판대에 오른 것은 아이히만의 행위에 대한 것이지, 유대인의 고통이나 독일 민족 또는 인류, 심지어는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주의가 아니"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장>). 
그는 결코 나치 수괴들처럼 '악마적'이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착실히 승진하고 출세하려는 '평범(banality)'한 독일의 '공무원'이자 '시민'이었다.

피고인 아이히만의 변호사 세르바티우스는 전쟁 개시 전후 독일 나치정권의 법률체계는 '합법'이었으므로 그 어느 국가도 그 법률에 따른 '국가적 공식행위'를 '범죄'로서 판단할 수 없다고 일관되게 항변했다고 한다. 따라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같은 국제재판소도 아닌 이스라엘 일국의 법정에서는 아이히만을 단죄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배 행위의 불법성과 합법성을 두고 우리와 일본이 끊임없이 다투는 논리와 같다.


"요약하면, 예루살렘 재판의 실패는 뉘른베르크 재판소 설립 이래로 폭넓게 논의되고 또 충분히 인식된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 모두를 파악하지 못한데 놓여있다. 그것은, 1) '승자의 법정'의 훼손된 '정의'의 문제, 2) '인류에 대한 범죄'의 타당한 정의, 그리고 3)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새로운 범죄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필로그>, 한나 아렌트, 1963.


한나 아렌트는 결론부를 이루는 <에필로그>에서 이 기록은 '악의 평범성'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이 기록은 '악의 평범성'의 한 전형으로서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피고인에 관한 실제적 묘사라는 것이다. 

악마와도 같은 수천만 유대인 대량학살의 부역자 아이히만의 '평범성'은 단지 그가 성실하고 평범한 독일 시민의 면모와 품성을 지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독일군 장교 아이히만은 '하사관에서 8천만 독일인들의 총통이 된' 히틀러를 존경하고 본받고자 했던 출세지향적 인물로서 어떤 점에서는 '평범'하지만은 않았고, 히틀러의 나팔수였던 괴벨스가 말한대로 '위대한 인물'이 될지 '흉악한 범죄자'가 될지 양자간 하나라는 생각으로 앞만보고 달린 '유대인 이송전문가'였다. 스스로를 히틀러처럼 순수한 '이상주의자'로 규정했던 아이히만은 자신의 임무에 있어서는 한치의 타협도 하지 않았단다. 패전의 분위기가 감돌자 하인리히 힘러 같은 나치 친위대 직속상관이 히틀러의 '최종적 해결책'(유대인 대량학살)을 지연시키고 회피하려 할 때에도 그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정도로, 책임질 때가 되면 '웃으며 무덤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장담하는 자부심과 책임감까지 겸비했던 '평범한' 독일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평범한' 독일시민들 대부분은 히틀러의 유럽정복전쟁을 범죄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히만의 '평범성'은 '모든 사람들이 유죄인 곳에서는 아무도 유죄가 아니다'(같은책, <에필로그>)라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한편,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악의 평범성'의 전형이 될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가 전후 유대인의 신생국 이스라엘 법정의 '정당성' 논란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고 본다.
즉, 국제재판소도 아닌 피해민족으로서 유대인의 국가법률로 패전국인 가해국 독일인을 단죄할 수 있는가, 유대인의 민족적 보복이 아닌 보편적 '정의'를 담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첫번째 문제.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법정은 '정의의 집'이 되는데 실패했다고 본다. 결코 아이히만이 무죄라고 옹호할 수는 없지만, 국제재판소가 아닌 이스라엘 단독의 아이히만 체포와 납치는 '불법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번째로 민족적 복수에 불과한 예루살렘의 법정은 2차대전 당시 유대인 대량학살을 '보편적'인 '인류에 대한 범죄' 행위로 규정하는데 또한 실패했다는 결론이 따른다. 유대인을 넘어 폴란드인과 집시들 같은 소수자는 물론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같은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탄압과 학살 전반에 대한 단죄가 아닌 유대인 문제에만 국한된 민족적 보복행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번째 요소로서 유대인 대량학살의 '주범'인 아이히만의 특별한 '악마성'을 구축하지 못했다. 수백수천만 유대인이 학살되도록 만든 장본인이자 집행자임에도 아이히만은 히틀러나 괴벨스 같은 '악마'적 이미지나 '악의 화신'이 아니라 출세지향적이기는 했지만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남고 말았다.


"이 회담(1942년 1월 '반제회의') 날이 아이히만에게 잊혀지지 않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비록 그가 '최종 해결책(유대인 대량학살)'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지만 그는 여전히 '폭력을 통한 그러한 피투성이의 해결책'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의구심들이 이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 이 곳에서, 이 회담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제3제국의 교황들이 말씀하셨다.' 이제 그는 히틀러 뿐만아니라, 하이드리히와 '스핑크스' 뮐러 뿐만 아니라, 친위대나 당 뿐만 아니라, 착하고 연륜있는 엘리트 공무원들이 이 '피투성이의' 문제에서 주도권을 갖는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7장. 반제회의, 혹은 본디오 빌라도>, 한나 아렌트, 1963.


여기에 아이히만을 그답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있다. 바로 1942년 1월 독일 반제에서 열린 회담, 이른바 '반제회의'였다.

원래 특출나지 못했던 아이히만이 그나마 독일 군부에서 출세의 길에 들어선 게, 그가 '유대인 전문가'였다는 사실 그것이었다. 아이히만은 많은 유대인 지도자 집단과 연결이 되었고 그들을 통해 다수 유대인들을 각국으로 이송시키는 전문가였다. 다수 유대인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무국적자로 만들고 대량이주시키는 대신 소수 유대인 지도집단의 특권과 기득권은 보장하는 식이다. 식민지배에서 피식민 민중들을 분리통치하는 바로 그 방식이다. 그러던 그가 나치정권의 고위층들이 모여 유대인 대량학살 집행을 결정하는 반제회의에 참석하게 되었고, 나치당 제3제국의 '교황'들이 모여 거리낌없이, 나아가 경쟁적으로 '최종적 해결책'의 주도적 집행자가 되려는 모습을 보며 죄의식 자체를 씻어버렸다고 한다. 마치, 유대인 랍비들이 예수를 고발하여 죽게 만든 과정에서의 예루살렘 로마인 총독 본디오 빌라도처럼.

예수를 죽게 만든 건 빌라도 본인이 아니라 예수와 같은 유대인 랍비들이라고 말하며 손을 씻은 본디오 빌라도처럼, 
유대인을 이송만 하는 게 아니라 존경하는 총통 히틀러의 '최종적 해결책'인 대량학살을 집행할 수 있게 한 건 결정권한이 없는 아이히만 본인이 아니라 독일 나치정권의 성실하고 지적이며 선량하고 연륜있는 고위공무원 전부와 그들에 협조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소수 유대인 지도자들이라는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유대인 이송전문가는 성실하고 착실하게 출세를 꿈꾸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대인 대량학살의 '주범'이 되었고, 비록 직무상 한계로 인해 독일 나치정권의 고위공무원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으나 그의 자부심은 패전 15년 후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정보국원에게 체포될 때 "내가 아이히만이다(Ich bin Eichmann)!"라고 바로 신분을 까는 당당함의 근원이 되었다.

정신이상도, 사이코패스도, 예루살렘의 유대인 법정의 의도와 달리 괴물이나 악마도 아닌, '악의 평범성'의 한 전형으로서 아돌프 아이히만은 항소심 판결 후 3일만에 집행된 사형대에서 본인의 죽음을 주재하는 식의 진부(banality)한 장례연설을 유언으로 남기는 기괴한 광경을 연출하며 생을 마감했다. 

아렌트는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세뇌하고 속인 아이히만 자신의 기억이 바로, '말과 사유를 허용하지 않는'(같은책, <15장>), 철학없는 사고, 반성하지 않는 사유,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같은책, <후기>)로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두려운 교훈'(같은책, <15장>)을 남긴다고 말한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후기>, 한나 아렌트, 1963~1964.


거대한 체제에서 톱니바퀴와 나사와 같은 부품으로서 철학없는 '무지'와 반성없는 '무사유'는 '악의 평범성'의 기본조건이다.


3.

악(惡)에 대한 심판 과정을 통해 현실적으로 드러난 '악의 평범성' 속에서 '평범'한 내 모습을 얼핏 보았을 때, 사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기 전에도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입신과 출세를 위해, 가정의 안녕과 부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 시대에 따라 친일도 되었고 독재정권의 지지기반이 되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유죄인 곳에서는 역시 모두가 무죄라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살았던 독일 시민 아돌프 아이히만은 결국 유대인의 법정에서 '악의 평범성'의 전형이 되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성실함이 '악(惡)'이 된 건 성실함 자체가 아니라 식민시대 또는 반민주 독재정권이라는 시대적 배경의 상대성이 있다.
아이히만의 성실함이 평범한 악(惡)이 된 것 또한 예루살렘 법정의 '정의의 집'(같은책, <1장>) 여부에 대한 논란의 상대성이 있었다.

그래서 혼자 또 묻는다.
평범한 내가 사는 이 체제는 '정의'로운가.
과연 시대의 '악(惡)'은 무엇인가.

지금, 평범한 나의 성실함 속에 '악(惡)'은 얼만큼이나 있는가.

***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1963~1964), Hannah Arendt, 김선욱 옮김, 정화열 해제, <한길사>, 20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