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왕: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15
안 베르텔로트 지음, 채계병 옮김 / 시공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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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시작은 '신화(神話)'로
- [아서왕(King Arthur) :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안 베르텔로트, 채계병 옮김, <시공사>, 2003.



"서(敍)한다.
대저 옛날 성인이 바야흐로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교화를 베풀되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장차 일어나려고 하면 부명(符命)이 응하고 도록(圖籙)을 받아 반드시 다른 사람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큰 변화를 하여 대기(大器)를 장악하고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수에서는 도가 나왔고, 낙수에서는 서가 나와 성인이 일어났다. 무지개가 신모를 감싸 복희를 낳았고, 용이 여등과 교감하여 염제를 낳았으며,... 요 임금은 잉태한 지 14개월 만에 태어났고, 용이 큰 못에서 교합하여 패공(한고조 유방)을 낳았는데, 이 이후의 일은 어찌 다 기록할 수 있으리오. 그러니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神異)한 가운데서 나온 것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무엇인가? <기이(紀異)편>을 이 책의 첫머리에 싣는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일연,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1.


기록으로서의 '역사', 특히 '정사(正史)'는 대부분 '승자의 기록'이다.
지배자들은 자신이 도둑질한 천하가 '안정'되었다고 판단되면 지난 역사를 정리하였다. 자신들의 권력이 '정당하다'는 증명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이 '정사'는 제왕의 기록'인 <본기(本紀)>와 제후 또는 영웅들의 기록으로서 <열전(列傳)>을 엮어서 펼치는 '기전체(紀傳體)'가 이 '정식 역사'의 서술방법이었다.
기원전 1세기 중국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이 처음 시도한 [사기(史記)]의 '기전체'는 비록 그 당시에는 '정사'가 아니었으나 이후 여러 왕조를 거쳐 '정사'의 기술방식이 되었다.

13세기 고려시대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를 썼는데, 우리 역사에서 '정사(正史)'에 대비되는 '야사(野史)'의 대표작이다. 고려 당대 최고의 승려인 '국존'으로서 일연은 1289년 입적 전까지 경북 군위 인각사에서 100여 편의 책을 지었다는데 [삼국유사]는 그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연은 한세기 전 '정사'인 김부식의 [삼국사기] 부류의 역사서들이 담지 않는 불교적, 향토적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주된 내용은 삼국시대 불교의 전파와 대표적인 승려들에 의한 '흥법(興法)', 탑과 불상 등에 대한 이야기, 지역의 기릴만한 이야기들이다. 후세대인 우리에게는 '단군설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족보'를 정리한 사서로 알려져 있다.
사마천이 중국의 열국들의 시조로서 '삼황오제'의 거대한 족보를 완성했듯, 일연은 한반도와 요동의 자손들을 '단군왕검'의 자식들로 '족보화'하였다.
일연이 <본기> 같은 '정사'가 아니라 <기이(紀異)편>으로 [삼국유사]를 시작한 이유다.

아마도 일연이 가장 비판하고 싶었을 한세기전 유생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도 신라, 고구려 등의 시조는 다들 '괴력난신(怪力亂神)'들이었다. 신라의 박혁거세나 고구려 동명성왕 고주몽도 정체불명의 알에서 태어났고 백제의 온조도 고주몽의 아들이니 보통사람과 다른 '신의 자식들'이었다. 이제 일연은 우리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을 천신인 환인의 아들인 환웅과 웅녀의 아들로 확정한다.
구전되는 설화와 민담, 혹은 그 당시까지 있었을 기록을 토대로 구축한 '신화(神話)'다.
아마도 '신의 아들(천자)'을 자칭하는 환웅이 나타나 호랑이를 숭상하는 씨족은 몰살시키고 곰을 숭상하는 씨족과 결합하여 '고조선'을 세웠으리라.
[삼국유사]의 관점은 고려시대에 우리 한반도 또는 요동까지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인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짧지만 말갈족까지 아우르는 발해국에 대한 기록도 포함한다.


"그는 해안으로 내려가 허리띠 검집에서 검을 뺐다. 그는 오랫동안 검을 유심히 보다가는 마침내 '아! 훌륭하고 고귀한 검... 이 시대 가장 훌륭한 검인 엑스칼리버여! 이제 너는 주인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아서왕은 그리플레를 불렀다. '저기 언덕 밑으로 가거라.' 왕은 명령했다. '그곳에 가면 호수가 있을 것이다. 내 검을 호수에 던져라.'... 
그리플레는 더 이상 왕의 명을 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검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될 수 있는 한 호수의 가장 깊은 곳으로 검을 던졌다. 검이 물에 닿는 순간 그리플레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손이 물에서 팔굽까지 보이도록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손은 검을 움켜쥐고는 하늘을 향해 서너번 흔들기 시작했다. 그 손은 검을 쥔 채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 토머스 맬러리, [아서의 죽음], 15세기


고려시대 [삼국사기]가 출간된 12세기 영국에서는 헨리2세가 즉위한다. 십자군전쟁기 유럽 프랑크족 '대장'인 프랑스 카페왕조(샤를마뉴 대제의 후손)에 대항한 영국의 앙주왕조 출신인 그는 소수 노르만족 계통으로 라틴계통의 다수의 '브리튼'들 사이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다. 노르만족과 브리튼의 연대로 영국내 게르만족 일파인 색슨족에 대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12세기의 헨리2세는 5세기의 '아서왕(King Arthur)'을 소환한다. 마치 우리 고려 12세기의 김부식에게 1~7세기 '삼국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아서왕이 고대 켈트족이었든 근거지 '캐멀럿성'이 어디였든, 영국 불가사의 '스톤헨지'가 마법사 멀린의 작품이든 외계인의 소행이든, 아서왕은 영국내 노르만족 왕조의 '정통성'을 위해 명검 엑스칼리버를 들고 전설의 기사들과 함께 등장한다. 물론 지배이데올로기는 기독교 교리이며 그가 처단하는 색슨족은 '이교도'들이다. 카페왕조의 '프랑크인'들이 중근동에서 '이교도' '사라센인'들과 대적하듯, 영국의 헨리2세는 영국의 '샤를마뉴'인 아서왕의 '신화(神話)'로써 '이교도' 색슨족에 대적한다.

기독교 신화에서 '신의 아들'은 하나일테니 아서왕은 '신의 자식'은 아니다. 알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우터 펜드라곤이라는 전설의 왕이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콘월 공작의 부인과 관계하여 낳은 아들이다. 다른 부모 아래 기사수업을 받던 아서(Arthur)는 돌에 박힌 검을 뽑아 왕국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이는 귀족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후계자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의 성격이 짙다. 실제 아서의 명검 엑스칼리버는 바위에서 뽑은 그 검이 아니라 호수의 여신 비비안이 주었다고 한다.


다소 어색하지만, 5세기의 '기독교'적 영웅 아서는 영국민족의 통합을 위해 분투했고 각지의 전설적 기사들을 원탁으로 모은다. 호수의 기사 랜슬롯과 녹색기사 거웨인, 성배찾은 갤러해드, 퍼시벌, 아서를 배신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아들 모드레드 등. 그러나 '원탁의 기사'에 둘러싸인 아서왕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고 '평화' 시대에 사냥과 시합에 열중하던 그가 가진 건 결국 '원탁' 뿐이었으며 '근친상간'으로 얻은 아들 모드레드와의 마지막 결전 후 아들과 함께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영국의 다수 민족 '브리튼'들은 이 아서와 호수에 버려진 엑스칼리버가 죽지 않고 '구세주'처럼 다시 부활한다고 믿었다는데, 이 '구세주(그리스도/메시아)' 아서는 헨리2세 정권의 정통성을 선전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딱 맞는 소재였다.

이렇게 정권의 안정을 위해 소환되고 조작된 '영웅설화'는 봉건체제의 반영으로서 힘없는 아서의 '원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뜬금없는 '성배(聖杯:The Holy Grail)'의 등장으로 애초 계획에는 없던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들을 양산하면서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영문학에서는 아마도 15세기 작가 토머스 맬러리(Thomas Malory)의 [아서의 죽음]이 최초로 집대성된 이야기일 것이다.


"옛날 열국에서도 또한 각기 사관을 두어 사실을 기록하였으므로 맹자가 말하기를, '진나라의 [승], 초나라의 [도올], 노나라의 [춘추]가 그 한가지다.' 하였습니다. 이 해동의 3국도 역사가 오래 되어 마땅히 그 사실을 서책에 기록해야 될 것이므로, 이에 노신으로 하여금 편집하도록 하셨으나 스스로 돌아보건대 부족됨이 많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학사대부들이 오경과 제자의 글이나 진한 역대의 사(史)에 대하여, 혹은 널리 통하여 상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 나라 사실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망연하여 그 처음과 끝을 모르니 심히 탄식할 일이다.'... 
신은 본래 재주가 없고 또 깊은 학식도 없으며, 노년에 이르러 날로 혼몽을 더하여 비록 부지런히 독서를 한다 해도 책만 덮으면 곧 잊어버리고, 붓을 잡아도 힘이 없어 종이를 대하면 써내려가기가 어렵습니다... 삼가 <본기> 28권, <연표> 3권, <지> 9권, <열전> 10권을 편찬하여 표와 함께 올립니다. 위로 천람을 입게 되니 부끄러워 땀이 나고 황송함이 이를 길 없습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올리는 글>, 김부식, 1145.


'정사'를 편찬한 학자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을 것이며, 고려 인종대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진압하기도 한 당대 최고의 관료이기도 했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의 창업이 정당한 '하늘의 순리'임을 지난 삼국의 역사를 통해 입증해야만 했는데, '역작'을 올리면서도 전전긍긍한다. 실제로 '정사'를 편찬한 대학자들은 당시 군주에게 '올리는 글'에서 진땀을 흘리며 죽을 죄를 지었다고 땅에 코를 연신 박고 있다.
'정사'의 한계란 그 내용의 치밀함은 둘째로 하고 이 <서문>에서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기전체'의 창시자, 사마천이 [사기]를 펴내면서 "과연 하늘의 도는 있는가?"라고 던지는 탄식에 어찌 비하겠는가?


언제나 시작은 '신화(神話)'라는 '이데올로기'로 기술되던 '정사(正史)'의 시대는 오래전에 종말을 고했으나, 소수 지배자들은 언제가 되었든 역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으로, '정사'로서의 '기전체'는 지배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되어 왔으나, 원래 '기전체'는 <본기>의 날줄과 <열전>의 씨줄이 교차하면서 침묵 속에 드러나는 사실의 모순과 그로 인한 맥락의 서사가 참된 묘미이기도 하다.


***

1. [아서왕(King Arthur) -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안 베르텔로트, 채계병 옮김, <시공사>, 2003.
2. [삼국유사(三國遺事)], 일연,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1.
3. [삼국사기(三國史記)],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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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옳다! - 세상을 뒤흔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 숨쉬는책공장 일과 삶 시리즈 2
이용덕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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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옳다!](2020) - 이용덕
- 세상을 뒤흔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



"도로공사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많은 민주노총 소속 대공장 노동자들도 IMF 사태 직후 펼쳐진 대규모 정리해고 공세 앞에서 한편으로 민주노조가 갖는 힘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편으로 지도자들의 배신에 절망하고 길들여지면서 보수화되었다. 이후 여러 구조조정 투쟁에서 만만치 않은 저항의 힘을 보여 주기도 했지만 자신감이 예전처럼 올라오진 않았다.
상당한 임금을 받고 있고 고용불안을 덜 느끼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비참한 삶을 바라보며 그들에 대한 연민이나 연대의식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좀 더 나은 노동 조건과 소비 능력을 가진 자신에 대한 우월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 안도감 이면에는 의식하든 못 하든 뿌리 깊은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점점 더 커지고 정당성을 키워 가면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위가 흔들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불안감 때문에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의 영혼은 피폐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에 등을 돌리는 일이 수시로 발생했다."
- [우리가 옳다!], <1장 - 자를 사람 적어내라>, 이용덕, <숨쉬는책공장>, 2020.


그 동안 '책을 읽어준다'는 미명으로 '서평'을 끄적여댔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내 '서평'을 통해 그 책을 읽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보도록 중요 문구를 인용하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이윤'을 위한 것은 아니나 바쁜 사람들에게 나의 미흡한 글을 '포장'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다분히 '자본주의'적이고 '대리주의'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2019년 6월부터 2020년 초까지 7개월간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선봉이었던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투쟁 기록 [우리가 옳다!]는 감히 대신 '읽어줄' 수 없다.
이 글은 내 삶의 주인이고 싶은 우리 노동자 모두가 구입하고 읽으며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는 작은 응원글이다.


나의 사업장에서 잠시 노조 간부로 있을 때, 현대차와 기아차 하청노동자 투쟁과 케이블기사 노동자 투쟁은 우리 시대 노동자 투쟁의 주요 사안,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모든 것이었다. 강인한 남성 노동자들의 전투적이고 영웅적인 투쟁. 자본과 그 소비문화에 안정적으로 길들여진 나같은 '정규직'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으로 주체화된 '비정규직' 노동자 그들이 이끌어가는 투쟁이 현재 노동자 운동의 전부로 보였다.

나의 사업장에도 비슷한 사안들이 있었으나 미처 해결 못하고 현장에 돌아온 후,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투쟁을 보았다.
이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공약은 다름아닌 '자회사'를 통한 재고용이었고 해당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의 후퇴였으며 '새로운 시대'를 맞아 '없어질 일자리'에 대한 자본가들의 비인간적인 '대안'이었다. 안그래도 최저임금에 노예처럼 일해 온 노동 약자들을 더욱 '노예화'시키는 것이었다.
2015년 서산톨게이트영업소에서부터 시작된 이 싸움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를 배제하고 해고하는 도로공사와 정부에 대항한 투쟁이었고, 용역회사 하도급 관계에서 도로공사의 직접적 사용자성이 법원판결에서도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소한 일부만 직접고용하되 그것도 '자회사'를 설립하여 '없어질 일자리'들을 폭력적으로 외주화하는 자본 전체와의 싸움이었다.
더 나아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수'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소수'로 취급되어온 '비정규직'은 물론, '여성'과 '장애인'의 권리쟁취와 해방의 사안이 모두 응축된 투쟁이었다.

청와대와 광화문 일대 집회, 서울요금소 캐노피 고공농성, 집권여당 국회의원 사무소 점거와 김천 도로공사 본사 점거 과정에서 한국노총 정규직노조의 도로공사 편들기에 크게 분노했으나 한편으로 돌아서 내심 '내 현장에서 그런 나는 무엇이 다른가?' 여러 번 되돌아보게 했다.
'비정규직', '여성', '장애' 등의 주요 사안 일체를 대표한 이 처절한 투쟁과 조합원들의 주옥 같은 발언들은 차마 인용할 엄두를 못 내겠다.
많은 노동자들이 직접 읽었으면 한다.


"결국, 근본적 질문은 삶이 먼저냐, 이윤이 먼저냐다. 이 가치관으로 싸워야만 노동자들은 더 인간답고 풍요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에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노동자들은 생산과 판매, 서비스의 주체로 마음먹으면 세상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단결과 협동, 연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톨게이트 투쟁은 그 힘의 아주 작은 일부를 보여 주었을 뿐이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별은 수없이 많다."
- [우리가 옳다], <8장 -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이용덕, <숨쉬는책공장>, 2020.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싸움은 지금 시대 노동자 투쟁의 '전부'였음에도 '완전 승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역시, 이 노동자 투쟁은 '작은 승리'가 아닌 '단결'과 '연대'의 성과를 남겼고, '작은 일부'였으나 '이윤'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를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새기고자 했다.
그들은 '자회사'를 통한 외주화를 막지는 못했을 지언정 1,500명의 '직접고용'을 위해 '함께 가자'는 가치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으며, 지도부와 정치 '거간꾼'(을지로위원회)의 비민주성에 파업현장의 생생한 직접 민주주의와 흥겨운 율동으로 대항했다.

그들의 힘겨웠던 투쟁은 가장 가난하고 억압받던 사람들이 뭉치면 얼마나 강하고 당당해질 수 있는지 자본에게는 물론 다수 노동자들에게도 분명히 보여주고자 했으며, [우리가 옳다!]는 그들의 기록은 '작은 일부'가 아닌 '전체 노동자'의 역사가 결국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노동운동가인 저자는 비록 나를 모르겠지만 내가 젊었을 적 옆에서 또는 멀리서 보았던 선배인데, 변함없이 민주노조 운동과 노동자계급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대신하여 이 귀한 기록까지 남겼다.
저자에 대한 깊은 존경과 믿음 또한 내가 부끄러운 솜씨나마 응원글을 감히 쓰는 이유다.

지난 몇 년 간 내게는, 
노동개악에 맞서 노동자 총투쟁에 앞장섰던 한상균 민주노총 1기 직선위원장이 노동자들의 '예수'였고, 이용덕 노동운동가는 일관되게 노동자들의 '인(仁)'을 지키는 '공자'와 같다.


노동자운동의 역사는 항상, 
우리가 '다수'라서 '옳다'가 아닌 인간다운 삶을 선택한 '다수'는 결국 패배하지 않기에 '우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


***

- [우리가 옳다! - 세상을 뒤흔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 이용덕, <숨쉬는책공장>,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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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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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보통사람들'의 역사관 : '계급투쟁'
- [유럽민중사](2016),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유럽민중사]는 주류 교과서와 연구 대신 읽을 만한 간결한 대안으로서, 유럽사의 발전과 궤적을 다르게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즉 역사를 상층계급 통치자와 사상가들의 빛나는 통찰의 결과가 아니라 경쟁하는 '집단'간의 '투쟁'을 통한 변동으로 바라본다... 서유럽 봉건제의 쇠퇴와 붕괴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반란자, 이의제기자, 비순응주의자, 보통사람의 기여를 폭넓게 추적한다. 이 책은 다른 교과서가 얼버무리고 넘어가거나 무시하는 개인과 사건에 주목할 것이다. 가령 이 책의 독자는 종교개혁 중에 얀 후스(Jan Hus)가 기여한 바와 19세기 파리코뮌을 좀 더 깊이 살펴볼 것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서문>, 2016.


역사는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말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 이를 거울삼아 미래를 조망한다. '과거'의 사례가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으므로 객관적 조건의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거나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돌아본다.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기는 하나 '자연과학'처럼 '필연'적 인과관계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사회과학'이고, '사회과학'은 '필연성'보다는 '경향성'으로 나타난다.
'철학'은 이 지점에서 '역사'에 개입하며, 이 '경향성'을 가지고 인류가 갈 방향을 가리킨다.
'자연과학'적 태도를 강조하는 '실증주의'와 대비되는 이 '철학'의 '실천'은 사회를 이루는 인간 '집단'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드러나는 바, 다수 노동자들의 '철학'인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정치경제적 현실을 토대로 하는 이 '집단'들의 관계를 '계급'이라 규정했고, 이 유물론 '철학'이 가리키는 '경향성'과 방향은 '계급'적 '당파성'이 된다.
그리하여, 유물론적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집단적 대화'다.


미국의 노동역사가 윌리엄 펠츠는 [유럽민중사](2016)를 통해 이 '계급'을 중심으로 소수의 지배적인 역사기록이 아닌 다수 노동자들의 '대안'적 '역사'를 제시하면서 중세유럽의 붕괴로부터 현대까지의 '유럽민중들'의 '역사'를 기술한다. 
펠츠의 역사관으로 돌아보는 '보통사람들' 즉 민중의 역사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지배자들'의 기록이 아니므로 중세의 공고한 성체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종교개혁에서 루터나 칼뱅이 아닌 그 이전부터 일어난 후스나 뮌처의 종교개혁운동에 주목하고, 1848년 유럽의 공화정 복원과 이후의 왕정복고 등의 정치변혁보다는 1871년의 프랑스 파리코뮌에 더 방점을 둔다.


"말하자면 종교개혁 덕분에 유럽인 일부는 로마(교황)의 착취에서 자유로워졌을지 모르지만, 루터, 칼뱅 또는 두 사람의 후원자들이 그어 놓은 한계선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모두 진압당했다. 로마에서 벗어날 자유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확대하려 한 이들은 기독교적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분쇄됐다... 후스나 뮌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 공동체든 마녀 혐의를 덮어쓴 '간교한' 여성이든, 아니면 유대인과 무슬림처럼 단순히 다른 방식으로 신을 경배하는 사람이든 통치자가 이들에게 제시한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복종하든가 아니면 죽어라."
- W. Pelz, [유럽민중사], <"다른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 종교 교리, 그리고 보통사람들>, 2016.


마르크스가 [프랑스혁명사] 3부작의 1부작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서 분석한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은 나폴레옹 1세의 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다시 세운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다수 노동계급의 힘으로 세운 부르주아 공화국이 곧바로 이 다수들을 어떻게 배신하고 '반혁명'으로 돌아섰는가에 중점을 둔다.
중세 교황청의 '면죄부 매매'에 반발하여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루터가 그 이전부터 중세 교회의 부정부패를 바꾸려 했던 후스와 뮌처의 다수의지를 탄압한 사실이나 1848년 혁명정부가 뒤이은 노동자투쟁을 억압하고 분쇄한 사실, 한국의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이 정치적 민주화에 멈춘 채 뒤이은 7~8월 노동자대투쟁을 억압했고 2016년 촛불항쟁에 편승하여 집권한 지금의 민주당 세력이 노동자투쟁을 길들이며 적폐청산 조차도 주저하는 사실 등이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역사적 '경향성'이다.


"(파리)코뮌은 정부를 오래 지속하지도 못했고, 사회를 분명한 방식으로 즉각 변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단지 저항의 수준을 넘어 권력을 잡고 통치한 사례로서, 이는 좌파에게는 희망이요, 우파에게는 악몽이었다... 코뮌은 유럽 노동운동의 의식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승자들은 이 사례의 힘을 이해했고, 그래서 이 기억을 파괴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코뮌은 오늘날까지 기억된다. 코뮌은 다양한 측면에서 유럽의 조직 노동계급, 그 중에서도 특히 급진적인 부분의 기억이나 이야기이자 하나의 창세신화다. 파리 함락과 뒤이은 잔인한 억압을 통해 좌파가 맛본 좌절에도 보통사람들은 코뮌 진압부터 1914~1918년의 제국주의 대학살에 이르는 시기에 스스로를 성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 W. Pelz, [유럽민중사], <1848~1849년 혁명부터 최초의 민중민주주의까지 : 파리코뮌>, 2016.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계급이 철폐된  무계급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체제로서 다수 노동계급의 독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구체적인 형태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의 제정과 독일의 전쟁에 지친 프랑스 민중들이 세운 1871년의 '파리 코뮌'을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스핑크스'라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파리 코뮌'을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의 3부 <프랑스 내전>에서 분석하고 있다.
전쟁 중이던 적국 독일과 결탁한 프랑스 정부에 의해 '파리 코뮌' 노동자 정부는 처절하게 분쇄되었는데, 지배자들에게는 심지어 전쟁 중에도 적국 보다는, '정치인의 노동자 평균임금'과 '정치인 소환제'를 주장하는 자국 '노동자 정부'가 더 위협적인 적이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인 대규모 폭력으로 고통받는 것이 러시아 민중만이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경이 곤두선 지배계급은 혁명, 아니 실제로는 급진개혁까지 차단하려고 억압에 기대는 상황이었기에 체계적인 대규모 억압이 곧 일상의 질서가 됐다. 이 위로부터의 계급전쟁 시기는 너무도 자주 망각되곤 한다. 이 시기를 기억함으로써 폭력의 원흉이 좌파라는 주류 서사를 대폭 정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시즘이 성장하고 발전한 배경을 설명할 수도 있다. 민족주의는 낡은 통치자들이 아래로부터의 반항적 운동에 맞서면서 내놓은 으뜸패였다."
- W. Pelz, [유럽민중사], <전쟁이 혁명을 낳다 : 러시아(1917), 중부 유럽(1918~1919)>, 2016.


지배계급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다른 나라의 침략이 아닌 자국 '보통사람들', 피지배노동계급의 권리 확대와 권력 장악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또 다시 반복되는데, 경제위기를 빌미로 다수 노동계급을 포섭한 파시즘 체제는 이미 사회민주당까지 이용하여 급진파를 제압했고 1917년 러시아 부르주아 임시정부는 민중들이 살기 위해 외치는 '반전평화'를 무시한 채 다수 노동자들을 전장으로 내몰다가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에 의해 결국 무너지고 만다. 
소수 지배자들은 자국의 다수 노동자들에 의해 쫓겨나느니 차라리 '민족'이나 '조국'의 이익을 내세워 적국과 전쟁을 불사한다.
세계대전이나 우리의 한국전쟁 등을 막론하고 지배자들과 그들의 '연합군'은 무차별 융단 폭격으로 다수 '보통사람들'의 씨를 말렸고 '서북청년단' 등의 극우행동단체와 '보도연맹' 같은 '전향단체'를 통해 다수 '보통사람들'을 관리하고 '정리'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다수 노동자들은 '조국'과 '민족'이 아닌 스스로가 살기 위해 혁명을 선택하게 된다.


"... 동기가 이념이었든 민족주의였든 또는 단순한 생존 본능이었든 파시즘에 맞선 유럽인들의 투쟁... 처칠 같은 지도자는 대영제국을 지키려고, 스탈린은 독재를 유지하려고 싸웠지만, 민중 대부분은 제국을 지키려고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싸웠다."
- W. Pelz, [유럽민중사], <파시스트 테러에 맞서 : 전쟁과 인종 학살, 1933~1945>, 2016.


'보통사람들'에게 '계급투쟁'은 '이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이었다.
'보통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소수 지배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국경도 없는 '이익동맹'으로 결속하는 반면, 다수 '보통사람들'은 '함께 살기' 위해 역시 '조국'과 '민족'을 초월하여 개인이든 집단이든 서로간의 굳건한 '연대'로 맞선다.


"물론 노동자들의 정서는 변덕스러웠고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날마다 마음이 바뀌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혁명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라도 다른 환경에서는 개혁을 지지할 수 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거의 모든 민중의 태도는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조건부였다. 좌파 중에도 편견, 인종주의, 편협함이 존재했지만, 운동의 전반적인 성격은 '수용성(acceptance)'이었다. 자기도 억압당하는 신세였기에 노동자 대부분은 식민지 주민이든 피억압 소수민족이든 '약자들'에 공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관점은 매우 다양했지만 말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노동계급의 발흥 :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1871~1914>, 2016.


이러한 역사적 '경향성'은 수차례 입증되었다. 그러나 '보통선거권'과 '민주주의'가 너무도 당연한 지금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왜 가난한 노동자들이 부자를 지지하는가?"

혹자는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답할 수도 있고, 다른 부류는 '급진적'일 수 없는 현실 정치로 대답할 수도 있겠다. '현실'을 불변하는 고정태로 보는 한 답변은 결국 제한된다.
역사 속의 모든 '현실'들은 '과거'가 되었고, 당시의 '미래'가 항상 지금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동하지 않으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다수 '보통사람들'이 이러한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적 '철학'으로 무장하고 결국 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수 밖에 없다. 개인이 아닌 노동하는 다수 '집단'의 형태로서 현대 사회에서는 비단 정치 영역 뿐 아니라 직장과 학교, 가정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권력 투쟁'을 통해 주인이 되어야 한다. 
펠츠는 이러한 시각으로 모든 장의 후반부에 역사상 억압받아 온 '여성'들이 항상 함께 투쟁해 온 사례들을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다.
'다수' 중 억압받는 '소수'를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은 패배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보면 그랬다. 반동과 잔인한 탄압의 시기도 있었지만,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유럽, 21세기에 던져지다>, 2016.


'보통사람들', '민중'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가 아니다. 매번 실패와 패배를 반복한 역사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이 다수가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다수'라서 옳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옳은 것이 결국 승리한다는 사례는 세계사에서 무수히 많다.
펠츠의 결론대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한, 다수 '보통사람들'은 역사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한 대로, 다수가 역사에서 얻는 것은 작은 '승리'가 아니라, '단결'의 기억이다.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지만, 그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단결이 확대되는 데에 있다. 대공업이 만들어낸 개선된 교통수단은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을 서로 연결시켜 줌으로써 노동자들의 단결은 더욱 촉진된다. 이러한 연결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어디서나 동일한 성격을 띤 수많은 지역적 투쟁이 하나의 전국적 투쟁, 즉'계급투쟁'으로 집중된다. 그런데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빈약한 도로망을 가졌던 중세의 도시민들이 수세기에 걸쳐 달성한 그 '단결'을 현대 프롤레타리아는 '철도'의 덕택으로 수년 안에 달성하고있다."
- K.Marx/F.Engels, [공산당선언](1848),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황광우/장석준 옮김([레즈를 위하여], <실천문학사>, 2003.)


현대에서는 19세기 자본주의 발전의 첨병 '철도'가 아니라 21세기의 첨병인 'SNS'가 '계급투쟁'의 도구가 된다.


"제조현장에서 시작된 혁신은 공장의 '원가계산(Cost Accounting)' 개혁을 거쳐서 '관리회계(Management Accounting)'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 기원은 19세기 철도회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철도회사에서 시작된 원가계산이나 관리회계의 흐름이 이윽고 제조업으로 계승되어갔다. 원래 중세 이탈리아에서 '자신을 위해' 행해졌던 회계는 동인도회사의 국가 네덜란드, 산업혁명의 국가 영국, 투자가보호의 국가 미국을 거치면서 '타인을 위해' 실행되어갔다. 이것을 다시 '자신을 위해' 실행하도록 되돌린 것이 '관리회계'다."
- 다나카 야스히로,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물론, 인간 '집단'의 관계만이 아닌 회계'나 '의학', '질병'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돌아보는 것도 '역사' 공부의 재미일 수 있다.

일본의 공인회계사 다나카 야스히로는 원시적 자본주의 '시초축적' 시기인 르네상스 상업주의 시대부터 공증인 아버지 덕에 기록과 종이에 익숙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 이야기, 상업자본에 의한 부기의 시작, 재무회계에서 관리회계로의 전환,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 투자가혁명과 국제회계기준 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19세기 '회계 혁명'은 대규모 합병을 통해 연결재무제표를 고안한 철도회사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곳에서 '회계'를 배운 앤드류 카네기가 철강왕이 되고 역시 '회계'를 익힌 존 록펠러가 석유러시 시기에 석유채굴이 아닌 석유정제로 부자가 된 이야기, 골드러시 시기에 금광이 아닌 '리-바이스' 청바지 작업복으로 성공한 레비-스트로스 이야기 등을 통해 '역사'를 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작금의 '역사 대중화'에 힘쓰는 역사 '강사'와 '교사'들의 노력은 위와 같은 흥미로운 주제 뿐만 아니라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다수 대중에게 감동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설민석 강사와 최태성 교사가 그러한데 그들은 '촛불항쟁' 이후 다수의 '대중투쟁'과 '민주주의'라는 시대흐름은 타되 '계급'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역시 일본의 명문 입시강사라는 우야마 다쿠에이는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같은 세계사 책에서 역시 '대안적' 세계사의 대중화를 꾀하는데, 그는 우리의 '대중역사가'들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사의 기본규칙과 역사의 필수복선으로 '계급투쟁'과 '욕망', '돈의 흐름' 및 '하부구조-상부구조'라는 '사회구성체론'까지 담는다.


이처럼, 일관된 '관점'과 키워드는 '역사'를 읽는데 필수적이다. 다만, 다시금 '철학'적 방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학'은 없이 '고증'과 '실증'의 '과학'만을 중시하는 역사관은 민족주의 또는 사대주의 논쟁틀을 벗어날 수 없고, '코로나19'가 창궐한 전세계적 '팬데믹' 시기인 지금 '질병'이라는 현재 뜨거운 키워드를 가지고 별 의미없는 역사관을 드러내는 독일의사 로날드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를 읽느라 시간낭비하느니,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로 의학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구경하는 게 훨씬 낫다.


저명한 의학 저널리스트라는 게르슈테에게 '역사'는 독일제국의 빌헬름1세의 황태자 프리드리히3세가 후두암으로 죽지 않았다면 독일제국이 좀더 민주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냉전의 책임자' 레닌의 뇌경색은 러시아 혁명시기 망명시절에 걸린 '매독' 때문일 수 있다는 음모로 가득찬 공간이다.
본인은 역사적 가설을 믿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반복해 말하고는 있으나 결국 '영웅주의적 우익 역사관'에 기반한 그의 '세계사' 책 원제목도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질병이 '만든' 역사]다.


***

1. [유럽민중사],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2.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칼 마르크스,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4.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5.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6.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서민, <생각정원>, 2018.
7.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트 게르슈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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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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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보통사람들'의 역사관 : '계급투쟁'
- [유럽민중사](2016),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유럽민중사]는 주류 교과서와 연구 대신 읽을 만한 간결한 대안으로서, 유럽사의 발전과 궤적을 다르게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즉 역사를 상층계급 통치자와 사상가들의 빛나는 통찰의 결과가 아니라 경쟁하는 '집단'간의 '투쟁'을 통한 변동으로 바라본다... 서유럽 봉건제의 쇠퇴와 붕괴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반란자, 이의제기자, 비순응주의자, 보통사람의 기여를 폭넓게 추적한다. 이 책은 다른 교과서가 얼버무리고 넘어가거나 무시하는 개인과 사건에 주목할 것이다. 가령 이 책의 독자는 종교개혁 중에 얀 후스(Jan Hus)가 기여한 바와 19세기 파리코뮌을 좀 더 깊이 살펴볼 것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서문>, 2016.


역사는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말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 이를 거울삼아 미래를 조망한다. '과거'의 사례가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으므로 객관적 조건의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거나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돌아본다.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기는 하나 '자연과학'처럼 '필연'적 인과관계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사회과학'이고, '사회과학'은 '필연성'보다는 '경향성'으로 나타난다.
'철학'은 이 지점에서 '역사'에 개입하며, 이 '경향성'을 가지고 인류가 갈 방향을 가리킨다.
'자연과학'적 태도를 강조하는 '실증주의'와 대비되는 이 '철학'의 '실천'은 사회를 이루는 인간 '집단'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드러나는 바, 다수 노동자들의 '철학'인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정치경제적 현실을 토대로 하는 이 '집단'들의 관계를 '계급'이라 규정했고, 이 유물론 '철학'이 가리키는 '경향성'과 방향은 '계급'적 '당파성'이 된다.
그리하여, 유물론적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집단적 대화'다.


미국의 노동역사가 윌리엄 펠츠는 [유럽민중사](2016)를 통해 이 '계급'을 중심으로 소수의 지배적인 역사기록이 아닌 다수 노동자들의 '대안'적 '역사'를 제시하면서 중세유럽의 붕괴로부터 현대까지의 '유럽민중들'의 '역사'를 기술한다. 
펠츠의 역사관으로 돌아보는 '보통사람들' 즉 민중의 역사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지배자들'의 기록이 아니므로 중세의 공고한 성체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종교개혁에서 루터나 칼뱅이 아닌 그 이전부터 일어난 후스나 뮌처의 종교개혁운동에 주목하고, 1848년 유럽의 공화정 복원과 이후의 왕정복고 등의 정치변혁보다는 1871년의 프랑스 파리코뮌에 더 방점을 둔다.


"말하자면 종교개혁 덕분에 유럽인 일부는 로마(교황)의 착취에서 자유로워졌을지 모르지만, 루터, 칼뱅 또는 두 사람의 후원자들이 그어 놓은 한계선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모두 진압당했다. 로마에서 벗어날 자유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확대하려 한 이들은 기독교적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분쇄됐다... 후스나 뮌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 공동체든 마녀 혐의를 덮어쓴 '간교한' 여성이든, 아니면 유대인과 무슬림처럼 단순히 다른 방식으로 신을 경배하는 사람이든 통치자가 이들에게 제시한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복종하든가 아니면 죽어라."
- W. Pelz, [유럽민중사], <"다른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 종교 교리, 그리고 보통사람들>, 2016.


마르크스가 [프랑스혁명사] 3부작의 1부작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서 분석한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은 나폴레옹 1세의 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다시 세운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다수 노동계급의 힘으로 세운 부르주아 공화국이 곧바로 이 다수들을 어떻게 배신하고 '반혁명'으로 돌아섰는가에 중점을 둔다.
중세 교황청의 '면죄부 매매'에 반발하여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루터가 그 이전부터 중세 교회의 부정부패를 바꾸려 했던 후스와 뮌처의 다수의지를 탄압한 사실이나 1848년 혁명정부가 뒤이은 노동자투쟁을 억압하고 분쇄한 사실, 한국의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이 정치적 민주화에 멈춘 채 뒤이은 7~8월 노동자대투쟁을 억압했고 2016년 촛불항쟁에 편승하여 집권한 지금의 민주당 세력이 노동자투쟁을 길들이며 적폐청산 조차도 주저하는 사실 등이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역사적 '경향성'이다.


"(파리)코뮌은 정부를 오래 지속하지도 못했고, 사회를 분명한 방식으로 즉각 변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단지 저항의 수준을 넘어 권력을 잡고 통치한 사례로서, 이는 좌파에게는 희망이요, 우파에게는 악몽이었다... 코뮌은 유럽 노동운동의 의식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승자들은 이 사례의 힘을 이해했고, 그래서 이 기억을 파괴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코뮌은 오늘날까지 기억된다. 코뮌은 다양한 측면에서 유럽의 조직 노동계급, 그 중에서도 특히 급진적인 부분의 기억이나 이야기이자 하나의 창세신화다. 파리 함락과 뒤이은 잔인한 억압을 통해 좌파가 맛본 좌절에도 보통사람들은 코뮌 진압부터 1914~1918년의 제국주의 대학살에 이르는 시기에 스스로를 성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 W. Pelz, [유럽민중사], <1848~1849년 혁명부터 최초의 민중민주주의까지 : 파리코뮌>, 2016.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계급이 철폐된  무계급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체제로서 다수 노동계급의 독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구체적인 형태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의 제정과 독일의 전쟁에 지친 프랑스 민중들이 세운 1871년의 '파리 코뮌'을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스핑크스'라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파리 코뮌'을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의 3부 <프랑스 내전>에서 분석하고 있다.
전쟁 중이던 적국 독일과 결탁한 프랑스 정부에 의해 '파리 코뮌' 노동자 정부는 처절하게 분쇄되었는데, 지배자들에게는 심지어 전쟁 중에도 적국 보다는, '정치인의 노동자 평균임금'과 '정치인 소환제'를 주장하는 자국 '노동자 정부'가 더 위협적인 적이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인 대규모 폭력으로 고통받는 것이 러시아 민중만이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경이 곤두선 지배계급은 혁명, 아니 실제로는 급진개혁까지 차단하려고 억압에 기대는 상황이었기에 체계적인 대규모 억압이 곧 일상의 질서가 됐다. 이 위로부터의 계급전쟁 시기는 너무도 자주 망각되곤 한다. 이 시기를 기억함으로써 폭력의 원흉이 좌파라는 주류 서사를 대폭 정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시즘이 성장하고 발전한 배경을 설명할 수도 있다. 민족주의는 낡은 통치자들이 아래로부터의 반항적 운동에 맞서면서 내놓은 으뜸패였다."
- W. Pelz, [유럽민중사], <전쟁이 혁명을 낳다 : 러시아(1917), 중부 유럽(1918~1919)>, 2016.


지배계급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다른 나라의 침략이 아닌 자국 '보통사람들', 피지배노동계급의 권리 확대와 권력 장악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또 다시 반복되는데, 경제위기를 빌미로 다수 노동계급을 포섭한 파시즘 체제는 이미 사회민주당까지 이용하여 급진파를 제압했고 1917년 러시아 부르주아 임시정부는 민중들이 살기 위해 외치는 '반전평화'를 무시한 채 다수 노동자들을 전장으로 내몰다가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에 의해 결국 무너지고 만다. 
소수 지배자들은 자국의 다수 노동자들에 의해 쫓겨나느니 차라리 '민족'이나 '조국'의 이익을 내세워 적국과 전쟁을 불사한다.
세계대전이나 우리의 한국전쟁 등을 막론하고 지배자들과 그들의 '연합군'은 무차별 융단 폭격으로 다수 '보통사람들'의 씨를 말렸고 '서북청년단' 등의 극우행동단체와 '보도연맹' 같은 '전향단체'를 통해 다수 '보통사람들'을 관리하고 '정리'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다수 노동자들은 '조국'과 '민족'이 아닌 스스로가 살기 위해 혁명을 선택하게 된다.


"... 동기가 이념이었든 민족주의였든 또는 단순한 생존 본능이었든 파시즘에 맞선 유럽인들의 투쟁... 처칠 같은 지도자는 대영제국을 지키려고, 스탈린은 독재를 유지하려고 싸웠지만, 민중 대부분은 제국을 지키려고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싸웠다."
- W. Pelz, [유럽민중사], <파시스트 테러에 맞서 : 전쟁과 인종 학살, 1933~1945>, 2016.


'보통사람들'에게 '계급투쟁'은 '이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이었다.
'보통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소수 지배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국경도 없는 '이익동맹'으로 결속하는 반면, 다수 '보통사람들'은 '함께 살기' 위해 역시 '조국'과 '민족'을 초월하여 개인이든 집단이든 서로간의 굳건한 '연대'로 맞선다.


"물론 노동자들의 정서는 변덕스러웠고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날마다 마음이 바뀌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혁명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라도 다른 환경에서는 개혁을 지지할 수 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거의 모든 민중의 태도는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조건부였다. 좌파 중에도 편견, 인종주의, 편협함이 존재했지만, 운동의 전반적인 성격은 '수용성(acceptance)'이었다. 자기도 억압당하는 신세였기에 노동자 대부분은 식민지 주민이든 피억압 소수민족이든 '약자들'에 공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관점은 매우 다양했지만 말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노동계급의 발흥 :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1871~1914>, 2016.


이러한 역사적 '경향성'은 수차례 입증되었다. 그러나 '보통선거권'과 '민주주의'가 너무도 당연한 지금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왜 가난한 노동자들이 부자를 지지하는가?"

혹자는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답할 수도 있고, 다른 부류는 '급진적'일 수 없는 현실 정치로 대답할 수도 있겠다. '현실'을 불변하는 고정태로 보는 한 답변은 결국 제한된다.
역사 속의 모든 '현실'들은 '과거'가 되었고, 당시의 '미래'가 항상 지금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동하지 않으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다수 '보통사람들'이 이러한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적 '철학'으로 무장하고 결국 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수 밖에 없다. 개인이 아닌 노동하는 다수 '집단'의 형태로서 현대 사회에서는 비단 정치 영역 뿐 아니라 직장과 학교, 가정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권력 투쟁'을 통해 주인이 되어야 한다. 
펠츠는 이러한 시각으로 모든 장의 후반부에 역사상 억압받아 온 '여성'들이 항상 함께 투쟁해 온 사례들을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다.
'다수' 중 억압받는 '소수'를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은 패배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보면 그랬다. 반동과 잔인한 탄압의 시기도 있었지만,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유럽, 21세기에 던져지다>, 2016.


'보통사람들', '민중'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가 아니다. 매번 실패와 패배를 반복한 역사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이 다수가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다수'라서 옳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옳은 것이 결국 승리한다는 사례는 세계사에서 무수히 많다.
펠츠의 결론대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한, 다수 '보통사람들'은 역사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한 대로, 다수가 역사에서 얻는 것은 작은 '승리'가 아니라, '단결'의 기억이다.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지만, 그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단결이 확대되는 데에 있다. 대공업이 만들어낸 개선된 교통수단은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을 서로 연결시켜 줌으로써 노동자들의 단결은 더욱 촉진된다. 이러한 연결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어디서나 동일한 성격을 띤 수많은 지역적 투쟁이 하나의 전국적 투쟁, 즉'계급투쟁'으로 집중된다. 그런데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빈약한 도로망을 가졌던 중세의 도시민들이 수세기에 걸쳐 달성한 그 '단결'을 현대 프롤레타리아는 '철도'의 덕택으로 수년 안에 달성하고있다."
- K.Marx/F.Engels, [공산당선언](1848),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황광우/장석준 옮김([레즈를 위하여], <실천문학사>, 2003.)


현대에서는 19세기 자본주의 발전의 첨병 '철도'가 아니라 21세기의 첨병인 'SNS'가 '계급투쟁'의 도구가 된다.


"제조현장에서 시작된 혁신은 공장의 '원가계산(Cost Accounting)' 개혁을 거쳐서 '관리회계(Management Accounting)'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 기원은 19세기 철도회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철도회사에서 시작된 원가계산이나 관리회계의 흐름이 이윽고 제조업으로 계승되어갔다. 원래 중세 이탈리아에서 '자신을 위해' 행해졌던 회계는 동인도회사의 국가 네덜란드, 산업혁명의 국가 영국, 투자가보호의 국가 미국을 거치면서 '타인을 위해' 실행되어갔다. 이것을 다시 '자신을 위해' 실행하도록 되돌린 것이 '관리회계'다."
- 다나카 야스히로,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물론, 인간 '집단'의 관계만이 아닌 회계'나 '의학', '질병'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돌아보는 것도 '역사' 공부의 재미일 수 있다.

일본의 공인회계사 다나카 야스히로는 원시적 자본주의 '시초축적' 시기인 르네상스 상업주의 시대부터 공증인 아버지 덕에 기록과 종이에 익숙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 이야기, 상업자본에 의한 부기의 시작, 재무회계에서 관리회계로의 전환,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 투자가혁명과 국제회계기준 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19세기 '회계 혁명'은 대규모 합병을 통해 연결재무제표를 고안한 철도회사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곳에서 '회계'를 배운 앤드류 카네기가 철강왕이 되고 역시 '회계'를 익힌 존 록펠러가 석유러시 시기에 석유채굴이 아닌 석유정제로 부자가 된 이야기, 골드러시 시기에 금광이 아닌 '리-바이스' 청바지 작업복으로 성공한 레비-스트로스 이야기 등을 통해 '역사'를 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작금의 '역사 대중화'에 힘쓰는 역사 '강사'와 '교사'들의 노력은 위와 같은 흥미로운 주제 뿐만 아니라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다수 대중에게 감동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설민석 강사와 최태성 교사가 그러한데 그들은 '촛불항쟁' 이후 다수의 '대중투쟁'과 '민주주의'라는 시대흐름은 타되 '계급'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역시 일본의 명문 입시강사라는 우야마 다쿠에이는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같은 세계사 책에서 역시 '대안적' 세계사의 대중화를 꾀하는데, 그는 우리의 '대중역사가'들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사의 기본규칙과 역사의 필수복선으로 '계급투쟁'과 '욕망', '돈의 흐름' 및 '하부구조-상부구조'라는 '사회구성체론'까지 담는다.


이처럼, 일관된 '관점'과 키워드는 '역사'를 읽는데 필수적이다. 다만, 다시금 '철학'적 방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학'은 없이 '고증'과 '실증'의 '과학'만을 중시하는 역사관은 민족주의 또는 사대주의 논쟁틀을 벗어날 수 없고, '코로나19'가 창궐한 전세계적 '팬데믹' 시기인 지금 '질병'이라는 현재 뜨거운 키워드를 가지고 별 의미없는 역사관을 드러내는 독일의사 로날드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를 읽느라 시간낭비하느니,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로 의학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구경하는 게 훨씬 낫다.


저명한 의학 저널리스트라는 게르슈테에게 '역사'는 독일제국의 빌헬름1세의 황태자 프리드리히3세가 후두암으로 죽지 않았다면 독일제국이 좀더 민주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냉전의 책임자' 레닌의 뇌경색은 러시아 혁명시기 망명시절에 걸린 '매독' 때문일 수 있다는 음모로 가득찬 공간이다.
본인은 역사적 가설을 믿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반복해 말하고는 있으나 결국 '영웅주의적 우익 역사관'에 기반한 그의 '세계사' 책 원제목도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질병이 '만든' 역사]다.


***

1. [유럽민중사],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2.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칼 마르크스,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4.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5.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6.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서민, <생각정원>, 2018.
7.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트 게르슈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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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잠 못 드는 시리즈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오세웅 옮김 / 생각의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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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보통사람들'의 역사관 : '계급투쟁'
- [유럽민중사](2016),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유럽민중사]는 주류 교과서와 연구 대신 읽을 만한 간결한 대안으로서, 유럽사의 발전과 궤적을 다르게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즉 역사를 상층계급 통치자와 사상가들의 빛나는 통찰의 결과가 아니라 경쟁하는 '집단'간의 '투쟁'을 통한 변동으로 바라본다... 서유럽 봉건제의 쇠퇴와 붕괴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반란자, 이의제기자, 비순응주의자, 보통사람의 기여를 폭넓게 추적한다. 이 책은 다른 교과서가 얼버무리고 넘어가거나 무시하는 개인과 사건에 주목할 것이다. 가령 이 책의 독자는 종교개혁 중에 얀 후스(Jan Hus)가 기여한 바와 19세기 파리코뮌을 좀 더 깊이 살펴볼 것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서문>, 2016.


역사는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말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 이를 거울삼아 미래를 조망한다. '과거'의 사례가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으므로 객관적 조건의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거나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돌아본다.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기는 하나 '자연과학'처럼 '필연'적 인과관계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사회과학'이고, '사회과학'은 '필연성'보다는 '경향성'으로 나타난다.
'철학'은 이 지점에서 '역사'에 개입하며, 이 '경향성'을 가지고 인류가 갈 방향을 가리킨다.
'자연과학'적 태도를 강조하는 '실증주의'와 대비되는 이 '철학'의 '실천'은 사회를 이루는 인간 '집단'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드러나는 바, 다수 노동자들의 '철학'인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정치경제적 현실을 토대로 하는 이 '집단'들의 관계를 '계급'이라 규정했고, 이 유물론 '철학'이 가리키는 '경향성'과 방향은 '계급'적 '당파성'이 된다.
그리하여, 유물론적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집단적 대화'다.


미국의 노동역사가 윌리엄 펠츠는 [유럽민중사](2016)를 통해 이 '계급'을 중심으로 소수의 지배적인 역사기록이 아닌 다수 노동자들의 '대안'적 '역사'를 제시하면서 중세유럽의 붕괴로부터 현대까지의 '유럽민중들'의 '역사'를 기술한다. 
펠츠의 역사관으로 돌아보는 '보통사람들' 즉 민중의 역사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지배자들'의 기록이 아니므로 중세의 공고한 성체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종교개혁에서 루터나 칼뱅이 아닌 그 이전부터 일어난 후스나 뮌처의 종교개혁운동에 주목하고, 1848년 유럽의 공화정 복원과 이후의 왕정복고 등의 정치변혁보다는 1871년의 프랑스 파리코뮌에 더 방점을 둔다.


"말하자면 종교개혁 덕분에 유럽인 일부는 로마(교황)의 착취에서 자유로워졌을지 모르지만, 루터, 칼뱅 또는 두 사람의 후원자들이 그어 놓은 한계선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모두 진압당했다. 로마에서 벗어날 자유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확대하려 한 이들은 기독교적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분쇄됐다... 후스나 뮌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 공동체든 마녀 혐의를 덮어쓴 '간교한' 여성이든, 아니면 유대인과 무슬림처럼 단순히 다른 방식으로 신을 경배하는 사람이든 통치자가 이들에게 제시한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복종하든가 아니면 죽어라."
- W. Pelz, [유럽민중사], <"다른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 종교 교리, 그리고 보통사람들>, 2016.


마르크스가 [프랑스혁명사] 3부작의 1부작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서 분석한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은 나폴레옹 1세의 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다시 세운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다수 노동계급의 힘으로 세운 부르주아 공화국이 곧바로 이 다수들을 어떻게 배신하고 '반혁명'으로 돌아섰는가에 중점을 둔다.
중세 교황청의 '면죄부 매매'에 반발하여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루터가 그 이전부터 중세 교회의 부정부패를 바꾸려 했던 후스와 뮌처의 다수의지를 탄압한 사실이나 1848년 혁명정부가 뒤이은 노동자투쟁을 억압하고 분쇄한 사실, 한국의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이 정치적 민주화에 멈춘 채 뒤이은 7~8월 노동자대투쟁을 억압했고 2016년 촛불항쟁에 편승하여 집권한 지금의 민주당 세력이 노동자투쟁을 길들이며 적폐청산 조차도 주저하는 사실 등이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역사적 '경향성'이다.


"(파리)코뮌은 정부를 오래 지속하지도 못했고, 사회를 분명한 방식으로 즉각 변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단지 저항의 수준을 넘어 권력을 잡고 통치한 사례로서, 이는 좌파에게는 희망이요, 우파에게는 악몽이었다... 코뮌은 유럽 노동운동의 의식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승자들은 이 사례의 힘을 이해했고, 그래서 이 기억을 파괴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코뮌은 오늘날까지 기억된다. 코뮌은 다양한 측면에서 유럽의 조직 노동계급, 그 중에서도 특히 급진적인 부분의 기억이나 이야기이자 하나의 창세신화다. 파리 함락과 뒤이은 잔인한 억압을 통해 좌파가 맛본 좌절에도 보통사람들은 코뮌 진압부터 1914~1918년의 제국주의 대학살에 이르는 시기에 스스로를 성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 W. Pelz, [유럽민중사], <1848~1849년 혁명부터 최초의 민중민주주의까지 : 파리코뮌>, 2016.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계급이 철폐된  무계급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체제로서 다수 노동계급의 독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구체적인 형태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의 제정과 독일의 전쟁에 지친 프랑스 민중들이 세운 1871년의 '파리 코뮌'을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스핑크스'라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파리 코뮌'을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의 3부 <프랑스 내전>에서 분석하고 있다.
전쟁 중이던 적국 독일과 결탁한 프랑스 정부에 의해 '파리 코뮌' 노동자 정부는 처절하게 분쇄되었는데, 지배자들에게는 심지어 전쟁 중에도 적국 보다는, '정치인의 노동자 평균임금'과 '정치인 소환제'를 주장하는 자국 '노동자 정부'가 더 위협적인 적이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인 대규모 폭력으로 고통받는 것이 러시아 민중만이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경이 곤두선 지배계급은 혁명, 아니 실제로는 급진개혁까지 차단하려고 억압에 기대는 상황이었기에 체계적인 대규모 억압이 곧 일상의 질서가 됐다. 이 위로부터의 계급전쟁 시기는 너무도 자주 망각되곤 한다. 이 시기를 기억함으로써 폭력의 원흉이 좌파라는 주류 서사를 대폭 정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시즘이 성장하고 발전한 배경을 설명할 수도 있다. 민족주의는 낡은 통치자들이 아래로부터의 반항적 운동에 맞서면서 내놓은 으뜸패였다."
- W. Pelz, [유럽민중사], <전쟁이 혁명을 낳다 : 러시아(1917), 중부 유럽(1918~1919)>, 2016.


지배계급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다른 나라의 침략이 아닌 자국 '보통사람들', 피지배노동계급의 권리 확대와 권력 장악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또 다시 반복되는데, 경제위기를 빌미로 다수 노동계급을 포섭한 파시즘 체제는 이미 사회민주당까지 이용하여 급진파를 제압했고 1917년 러시아 부르주아 임시정부는 민중들이 살기 위해 외치는 '반전평화'를 무시한 채 다수 노동자들을 전장으로 내몰다가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에 의해 결국 무너지고 만다. 
소수 지배자들은 자국의 다수 노동자들에 의해 쫓겨나느니 차라리 '민족'이나 '조국'의 이익을 내세워 적국과 전쟁을 불사한다.
세계대전이나 우리의 한국전쟁 등을 막론하고 지배자들과 그들의 '연합군'은 무차별 융단 폭격으로 다수 '보통사람들'의 씨를 말렸고 '서북청년단' 등의 극우행동단체와 '보도연맹' 같은 '전향단체'를 통해 다수 '보통사람들'을 관리하고 '정리'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다수 노동자들은 '조국'과 '민족'이 아닌 스스로가 살기 위해 혁명을 선택하게 된다.


"... 동기가 이념이었든 민족주의였든 또는 단순한 생존 본능이었든 파시즘에 맞선 유럽인들의 투쟁... 처칠 같은 지도자는 대영제국을 지키려고, 스탈린은 독재를 유지하려고 싸웠지만, 민중 대부분은 제국을 지키려고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싸웠다."
- W. Pelz, [유럽민중사], <파시스트 테러에 맞서 : 전쟁과 인종 학살, 1933~1945>, 2016.


'보통사람들'에게 '계급투쟁'은 '이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이었다.
'보통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소수 지배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국경도 없는 '이익동맹'으로 결속하는 반면, 다수 '보통사람들'은 '함께 살기' 위해 역시 '조국'과 '민족'을 초월하여 개인이든 집단이든 서로간의 굳건한 '연대'로 맞선다.


"물론 노동자들의 정서는 변덕스러웠고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날마다 마음이 바뀌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혁명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라도 다른 환경에서는 개혁을 지지할 수 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거의 모든 민중의 태도는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조건부였다. 좌파 중에도 편견, 인종주의, 편협함이 존재했지만, 운동의 전반적인 성격은 '수용성(acceptance)'이었다. 자기도 억압당하는 신세였기에 노동자 대부분은 식민지 주민이든 피억압 소수민족이든 '약자들'에 공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관점은 매우 다양했지만 말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노동계급의 발흥 :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1871~1914>, 2016.


이러한 역사적 '경향성'은 수차례 입증되었다. 그러나 '보통선거권'과 '민주주의'가 너무도 당연한 지금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왜 가난한 노동자들이 부자를 지지하는가?"

혹자는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답할 수도 있고, 다른 부류는 '급진적'일 수 없는 현실 정치로 대답할 수도 있겠다. '현실'을 불변하는 고정태로 보는 한 답변은 결국 제한된다.
역사 속의 모든 '현실'들은 '과거'가 되었고, 당시의 '미래'가 항상 지금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동하지 않으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다수 '보통사람들'이 이러한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적 '철학'으로 무장하고 결국 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수 밖에 없다. 개인이 아닌 노동하는 다수 '집단'의 형태로서 현대 사회에서는 비단 정치 영역 뿐 아니라 직장과 학교, 가정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권력 투쟁'을 통해 주인이 되어야 한다. 
펠츠는 이러한 시각으로 모든 장의 후반부에 역사상 억압받아 온 '여성'들이 항상 함께 투쟁해 온 사례들을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다.
'다수' 중 억압받는 '소수'를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은 패배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보면 그랬다. 반동과 잔인한 탄압의 시기도 있었지만,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유럽, 21세기에 던져지다>, 2016.


'보통사람들', '민중'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가 아니다. 매번 실패와 패배를 반복한 역사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이 다수가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다수'라서 옳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옳은 것이 결국 승리한다는 사례는 세계사에서 무수히 많다.
펠츠의 결론대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한, 다수 '보통사람들'은 역사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한 대로, 다수가 역사에서 얻는 것은 작은 '승리'가 아니라, '단결'의 기억이다. 
현대에서는 19세기 자본주의 발전의 첨병 '철도'가 아니라 21세기의 첨병인 'SNS'가 '계급투쟁'의 도구가 된다.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지만, 그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단결이 확대되는 데에 있다. 대공업이 만들어낸 개선된 교통수단은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을 서로 연결시켜 줌으로써 노동자들의 단결은 더욱 촉진된다. 이러한 연결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어디서나 동일한 성격을 띤 수많은 지역적 투쟁이 하나의 전국적 투쟁, 즉'계급투쟁'으로 집중된다. 그런데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빈약한 도로망을 가졌던 중세의 도시민들이 수세기에 걸쳐 달성한 그 '단결'을 현대 프롤레타리아는 '철도'의 덕택으로 수년 안에 달성하고있다."
- K.Marx/F.Engels, [공산당선언](1848),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황광우/장석준 옮김([레즈를 위하여], <실천문학사>, 2003.)


"제조현장에서 시작된 혁신은 공장의 '원가계산(Cost Accounting)' 개혁을 거쳐서 '관리회계(Management Accounting)'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 기원은 19세기 철도회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철도회사에서 시작된 원가계산이나 관리회계의 흐름이 이윽고 제조업으로 계승되어갔다. 원래 중세 이탈리아에서 '자신을 위해' 행해졌던 회계는 동인도회사의 국가 네덜란드, 산업혁명의 국가 영국, 투자가보호의 국가 미국을 거치면서 '타인을 위해' 실행되어갔다. 이것을 다시 '자신을 위해' 실행하도록 되돌린 것이 '관리회계'다."
- 다나카 야스히로,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물론, 인간 '집단'의 관계만이 아닌 회계'나 '의학', '질병'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돌아보는 것도 '역사' 공부의 재미일 수 있다.

일본의 공인회계사 다나카 야스히로는 원시적 자본주의 '시초축적' 시기인 르네상스 상업주의 시대부터 공증인 아버지 덕에 기록과 종이에 익숙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 이야기, 상업자본에 의한 부기의 시작, 재무회계에서 관리회계로의 전환,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 투자가혁명과 국제회계기준 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19세기 '회계 혁명'은 대규모 합병을 통해 연결재무제표를 고안한 철도회사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곳에서 '회계'를 배운 앤드류 카네기가 철강왕이 되고 역시 '회계'를 익힌 존 록펠러가 석유러시 시기에 석유채굴이 아닌 석유정제로 부자가 된 이야기, 골드러시 시기에 금광이 아닌 '리-바이스' 청바지 작업복으로 성공한 레비-스트로스 이야기 등을 통해 '역사'를 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작금의 '역사 대중화'에 힘쓰는 역사 '강사'와 '교사'들의 노력은 위와 같은 흥미로운 주제 뿐만 아니라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다수 대중에게 감동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설민석 강사와 최태성 교사가 그러한데 그들은 '촛불항쟁' 이후 다수의 '대중투쟁'과 '민주주의'라는 시대흐름은 타되 '계급'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역시 일본의 명문 입시강사라는 우야마 다쿠에이는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같은 세계사 책에서 역시 '대안적' 세계사의 대중화를 꾀하는데, 그는 우리의 '대중역사가'들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사의 기본규칙과 역사의 필수복선으로 '계급투쟁'과 '욕망', '돈의 흐름' 및 '하부구조-상부구조'라는 '사회구성체론'까지 담는다.


이처럼, 일관된 '관점'과 키워드는 '역사'를 읽는데 필수적이다. 다만, 다시금 '철학'적 방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학'은 없이 '고증'과 '실증'의 '과학'만을 중시하는 역사관은 민족주의 또는 사대주의 논쟁틀을 벗어날 수 없고, '코로나19'가 창궐한 전세계적 '팬데믹' 시기인 지금 '질병'이라는 현재 뜨거운 키워드를 가지고 별 의미없는 역사관을 드러내는 독일의사 로날드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를 읽느라 시간낭비하느니,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로 의학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구경하는 게 훨씬 낫다.


저명한 의학 저널리스트라는 게르슈테에게 '역사'는 독일제국의 빌헬름1세의 황태자 프리드리히3세가 후두암으로 죽지 않았다면 독일제국이 좀더 민주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냉전의 책임자' 레닌의 뇌경색은 러시아 혁명시기 망명시절에 걸린 '매독' 때문일 수 있다는 음모로 가득찬 공간이다.
본인은 역사적 가설을 믿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반복해 말하고는 있으나 결국 '영웅주의적 우익 역사관'에 기반한 그의 '세계사' 책 원제목도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질병이 '만든' 역사]다.


***

1. [유럽민중사],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2.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칼 마르크스,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4.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5.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6.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서민, <생각정원>, 2018.
7.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트 게르슈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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