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 - 승부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삼국지 리더십 2
자오위핑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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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공명(孔明)'과 산 '중달(仲達)'의 '평상심(平常心)'
-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 제갈량], 자오위핑, 박찬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2.
- [자기통제의 승부사 - 사마의], 자오위핑, 박찬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3.



"제갈량과 100여 일을 대치하다 때마침 제갈량이 병사하자 장수들이 군영에 불을 지르고 몰래 도망갔다. 백성들이 달려와 보고하자 사마의는 출병하여 그들을 추격했다. 제갈량의 장사인 양의가 군기를 돌려 북을 울리며 마치 사마의와 싸우려고 했다. 사마의가 몰린 적은 몰아붙이지 않아야 한다고 여겨 양의는 진을 유지하며 물러갔다. 며칠이 지나 사마의가 제갈량의 군영에 이르러 남은 물건들을 살피고 많은 서적과 군량를 노획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죽었음을 확인하며 말했다. 
'천하의 기재구나.'..
당시 백성들은 이 일에 대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했다.'"
- [진서(晉書)], <선제기(宣帝紀)>, 방현령 외, 7세기.


"건흥 12년(234년) 봄, 제갈량은 전군을 인솔하여 사곡도에서 나왔는데, 유마로 군수물자를 운반하였으며, 무공현 오장원을 점거하고, 사마의와 위남에서 대치했다. 제갈량은 항상 식량이 계속 공급되지 않아 자기의 뜻을 펴지 못하게 될까 근심하여 병사를 나누어 둔전을 하게 하여 장기간 주둔할 기반을 만들었다. 경작하는 자들은 위수 가에 거주하는 백성들 사이에 섞여 지냈는데, 백성들은 마음 놓고 편안히 지냈고, 군대는 사사로움이 없었다. 서로 대치한 지 100여 일이 지난 그해 8월, 제갈량이 병이 들어 군중에서 사망했는데, 당시 54세였다.
촉의 군대가 퇴각하자 사마의는 제갈량의 군영과 보루, 거처를 둘러보고 말했다.
'천하의 기재구나!'"
- [삼국지(三國志)], <제갈량전(諸葛亮傳)>, 진수, 3세기.


"[한진춘추]에 이르길, 양의 등이 군을 정돈하고 출발하자 백성들이 사마의에게 달려와 고했고 사마의는 그들을 추격했다. 강유는 양의에게 명하여 군기를 반대로 하고 북을 울리도록 하여 마치 사마의에게 향하는 것처럼 하자, 사마의는 곧 물러나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이에 양의는 진형을 짠 채 물러나고 계곡으로 들어간 뒤 발상을 했다. 사마의가 퇴각하니 백성들은 '죽은 제갈(諸葛)이 살아 있는 중달(仲達)을 달아나게 했다'라는 속언을 지었다."
- [삼국지(三國志) 주(註)], 배송지, 5세기.



제갈량(諸葛亮)은 자가 '공명(孔明)'이고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촉한 유비가 형주 유표에게 의탁하던 시절에 기용한 지식인 참모다. 
'삼국지 영웅' 유비는 제갈량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는데, 전자는 나관중의 [삼국연의]에서 관우, 장비와 '도원결의' 후 '머리'도, '세력'도 없이 두주먹 불끈 쥔 '의지'만으로 버티다가 몰락하기 직전의 시절이고, 후자는 '머리'를 갖추고 '비전'을 장착한 후 대업을 향해 한발씩 전진하던 시기인 것이다.
제갈량은 진수의 '정사' [삼국지], <후주전>에서 '선주' 유비의 아들인 '후주'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를 통해 본인이 유비에게 기용된 과정을 말하는데, 이것이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출전이다. 조실부모하고 형주에서 초막살이를 하던 제갈량은 늘 본인을 제나라 관중과 연나라 악의에 비유하며 언젠가 큰 뜻을 펼칠 것이라 장담하고 다녔지만 주변으로부터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제갈량은 서서와 사마휘 등의 지인들을 통해 본인의 홍보를 부탁하고는 '삼국지 영웅' 중 가장 열세였던 유비가 위기에 빠진 것을 알고 유비 스스로 본인을 찾도록 계획한다. 그것도 앞의 두 차례 방문에서는 만나주지도 않고 세번째 방문에서야 마루에서 자는 척 하다가 만나서는 여유롭게 '천하삼분지계'의 '융중대'를 연출한다.
47세 유비도 인재에 목말랐지만, 27세 제갈량도 당시 나이대에는 내심 느긋하지는 못했을터,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하다. 다만, 밖에서 큰 소리 쳐서 상대를 불러들인 후 안에서 속삭이는 전술을 썼다.
이후 제갈량은 손권의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조조의 위나라를 적벽대전에서 패퇴시켜 북위가 더 남하하지 못한 채 위-촉-오 삼국이 솥발처럼 '정족지세'를 이루는 '천하삼분지계'를 확립한다. 제갈량의 이 '융중대' 전략은 당시 오나라 책사였던 노숙도 주장했던 것으로 강대국 위나라에 대항하여 2인자 오나라와 약소국 촉한이 연합하여 위나라가 망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적이 남도록 하는 계략이었다. 제갈량은 촉한이 오나라로부터 형주를 빼앗겨 벽지로 더 몰리고 촉한황제 '선주' 유비가 죽은 후에도 오-촉 동맹을 유지하면서 6차례나 위나라 정벌을 위한 '북벌'을 수행하던 중 오장원에서 '떨어지는 별'이 된다.

제갈량의 '북벌'이 실패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실력은 뒷받침되지 않는데 '비전'과 '명분'이 우선된 점도 있으나, 외부적으로는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군사가 사마의때문일 수도 있다.

사마의(司馬懿)는 자가 중달(仲達)이며 제갈량보다 2살 많으나 18년을 더 살았다. 위-촉-오 '삼국'을 잠시 통일한 '사마(司馬)'씨의 진(晉)나라 '고조(高祖)'로 추존되었으므로 '정사' [삼국지] 기록에는 등장할 수 없었고, 나관중의 '삼국연의'에서도 조조, 유비, 관우, 장비 등의 '1세대'가 다 죽고 제갈량이 남은 후에야 등장하는 인물이다. [삼국연의]에서는 거의 '신(神)'적 존재로 그려지는 제갈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묘사되지만 위나라 조조(무제)-조비(문제)-조예(명제) 3대를 섬기면서 조용히 힘을 길러 손자 사마염에 이르러 '삼국통일'을 이루게 하는 '자기 통제의 승부사'가 바로 사마의 중달이다.
[삼국연의] '허구'이기는 하나 사마의는 제갈량의 '공성전'에 속기도 하고, 어지간하면 제갈량과 정면대결을 피하다가 여인의 옷을 선물받기도 했으나 웃으며 넘어갔으며,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었을 때는 제갈량의 계략으로 의심하여 공격을 머뭇거리다가 퇴각하는 촉한군을 놓치기도 한다. 아마도 마지막 장면은 [삼국지]와 그 [주석], [진서]에서도 일치하는 기록으로 사실일 것인데, 당나라 태종이 방현령 등에게 명해 정리한 '정사' [진서(晉書)], <선제기(宣帝紀)>에 의하면 "죽은 공명(제갈량)이 산 중달(사마의)을 달아나게 했다"는 당시 민중들의 비아냥에도 "나는 산 사람을 잘 알지 죽은 사람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역시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삼국시대'라는 난세에 생존을 넘어 '비전'을 제시하고 '대업'에 도전하던 제갈량과 사마의는 기본적으로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을 것이다. 누구보다 잘났고 목소리를 높이려는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인물들임은 기본일텐데, 두 사람의 대결과정에서는 상대적 차이점은 일단 보인다. 즉, 제갈량은 '촉한정통론'의 명분에 입각하여 조씨의 위나라를 역적으로 규정하고 후한을 재건한 광무제 유수처럼 '북벌'을 포기하지 않는 '비전'을 가지고 궁벽한 촉한을 그나마 수십년 버틸 수 있게 하였다. 한편, 사마의는 조씨 3대 정권을 보좌하면서도 결코 그들을 자극하지 않고 필요하면 병으로 다 죽어가는 연기까지 하면서 꾸준히 '대업'을 준비한 결과 위나라 정권을 갈아엎고 촉한과 오나라까지 정벌하고는 삼국통일을 이루는 새로운 왕조의 기틀까지 다졌다.
'한왕실 부흥'이라는 제갈량의 '비전'은 '실패'했고, '새왕조 개창'이라는 사마의의 '대업'은 '성공'한 차이점도 있겠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더 많다.
우선 내부 조직 관리에서 본인보다 '조직'이나 '국가'를 우선하면서 사사로운 감정과 개인적 욕망을 조절했다. 결국 제갈량은 '북벌'의 '비전'을 위해, 사마의는 '혁명'의 '대업'을 위해 겉으로는 그랬다. 그리하여 조직 내부의 어떠한 도전에도 흔들림없이 스스로의 중심을 잡았다.
제갈량은 군사에 실패한 아끼는 수하 마속을 죽이면서까지 '북벌'을 위한 내부결속을 다지는 '읍참마속'의 고사를 낳았고, 사마의는 조조의 손자이자 왕족으로 실권자였던 조상과 대립하지 않고 병으로 물러나는 위장술 이면에 착실한 준비를 통해 자식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갈량과 사마의의 공통점은 그리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비전'과 '대업'의 목표를 놓지 않는 '주체성(主體性)'과 '평상심(平常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편으로 차이점 하나를 더 들자면, 제갈량은 '북벌'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사마의를 제거하고 싶었을지 모르나, 사마의는 세간의 비웃음을 감수하면서도 제갈량의 존재를 인정해야 했을 수도 있다. 위나라에서 촉한의 제갈량을 대적할 사람은 사마의 뿐이었기에 제갈량이 없으면 본인의 군사적 입지가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을 것인데 실제로 제갈량이 죽은 후 사마의는 '혁명'을 위한 준비에 착수할 수 밖에 없었다.


죽은 '공명(孔明)'이 산 '중달(仲達)'에게 더욱 치밀하고 굳건한 '평상심(平常心)'을 남긴 것이다.


***

1.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 제갈량], 자오위핑, 박찬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2.
2. [자기통제의 승부사 - 사마의], 자오위핑, 박찬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3.
3.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진수,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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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피에르 크리스탱 지음,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그림, 최정수 옮김 / 마농지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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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적인(Orwellian)' 세상과 '스페인 내전'
-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그 뒤로는 농장 일을 감독하는 돼지들이 앞발에 채찍을 들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돼지들이 라디오 세트를 구입하고 전화를 설치하고... 신문, 잡지를 구독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동물들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입에 담뱃대를 물고 농장 정원을 거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일주일 뒤 어느 오후, 많은 이륜 마차가 농장으로 들어왔다. 이웃 농장주들의 대표단이 농장을 둘러보려고 온 것이다. 그들은 농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모든 것, 특히 풍차를 대단히 칭찬했다. 그때 다른 동물들은 순무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들은 밭에서 고개를 들지도 않고 돼지가 더 무서운지 혹은 인간 방문객이 더 무서운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만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농가에서는 큰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죽박죽 뒤섞인 목소리들 때문에 동물들은 갑자기 호기심을 느꼈다...
이제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바깥에 있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그리고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구별하기란 정말로 불가능했다."
- [동물농장](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한때는 좋았던 인간'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매일 술에 취해 일도 안하고 결정적으로 동물들을 굶기기 일쑤인 '인간' 존스씨가 역시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지고 인부들도 일손을 놓은 사이 '동물'들은 '한밤중 회의'를 통해 12살짜리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동물'이 주인이 되는 '꿈' 이야기를 듣고 '영국의 동물들'이라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메이저 영감돼지가 죽은 후 젊고 영리한 수퇘지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은 메이저 영감의 '꿈'과 '영국의 동물들' 노래를 '동물주의'로 이론화하여 '메이너농장'의 모든 동물들을 사상무장시킨다. 
연일 굶던 동물들은 우발적으로 반란폭동을 일으켜 농장주 존스와 인간들을 농장 밖으로 몰아내고 '혁명'을 성공시킨다.
문자를 익힌 영리한 돼지 스노우볼은 이 '혁명적 동물주의'를 '7계명'으로 정립하는데, '두 발 달린 인간은 적이다', '네 발이나 날개 달린 모든 동물은 동지다', '금주할 것', '옷을 입지 않기', '침대에서 자지 않기', '동물끼리 죽이지 말 것' 등의 내용이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테제로 마무리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생산력 발전'을 위한 무리한 '풍차' 건설로 동물들은 피폐해지는데, '풍차' 건설을 기획하고 한편으로 '동물주의'를 고수하며 '외양간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스노우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인간'과 내통한 스파이로 몰려 추방당하고 나폴레옹은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옷을 입고 개를 키우며 침대에서 자는 나폴레옹은 농장의 생존을 위해 이웃의 인간 농장주들과 교류하면서 결국 '동물농장'을 '메이너농장'으로 다시 명명한다.
궂은 일 도맡은 종마 복서는 늙어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암말 클로버가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에세 '7계명'이 온전한가 묻는데, 어느새 '7계명'은 변질되었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되 '몇몇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로 바뀌어 있다.
'동물농장'의 주인이었던 동물들 눈에 인간들과 교류하는 돼지들은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더이상 구분할 수 없다.
'동물농장'은 여전히 '메이너농장'이 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인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영국인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살 이후 영국에서 자랐고 이튼스쿨 장학생이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근무했으며 귀국 후 일용노동자와 노숙자 생활도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조지 오웰은 우리에게 '반공우화'로 소개되곤 하는 [동물농장]을 2차 대전 종전해인 1945년에 발표한다. 영국은 1917년 러시아혁명 후 소비에트연방(소련)을 극도로 혐오했으나 2차 대전에서는 서로 연합국이 되어 종전 당시인 1945년에는 영국과 소련의 '협력관계'상 소련 체제를 비판한 '정치우화'인 오웰의 [동물농장]을 출판사들이 출간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반공소설'이라는 증거라고 한다.
실제로 이 우화에 등장하는 '존스씨'는 러시아 차르 또는 임시정부 등의 구체제, '메이저 영감'은 칼 마르크스, '스노우볼'은 트로츠키, '나폴레옹'은 스탈린, '복서'는 '프롤레타리아', '외양간 전투'는 혁명 후 내전, '풍차 전투'는 2차 대전, '이웃 농장주들'은 영국과 독일이며, '동물농장'은 사회주의, '메이너농장'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은 작가 본인이었으리라.

그러나 '우화'라는 것이 즉자적인 '비유'에 그칠 수는 없다. 조지 오웰이 1945년의 [동물농장]과 1948년의 '빅 브라더(Big Brother)' [1984]를 통해 묘사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히 '소련'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유'만이 아니라 '전체주의'와 '파시즘' 일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은 그의 '스페인 내전' 참전의 경험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전쟁 초기 몇 달 동안 프랑코의 실질적인 적은 인민전선 정부라기 보다는 노동조합들이었다.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키자, 도시의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대응했다. 이어 공공 무기고에 가서 무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투쟁 끝에 얻어냈다. 만일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다소간 독립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프랑코는 아무런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조지 오웰, [카탈루니아 찬가](1938).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소련에서 독재체제를 구축한 스탈린은 레닌이 사망한 1924년에 '후계자'가 되자마자 이미 '1국 사회주의론'을 제기했는데, 1차 대전 종전을 앞당긴 유럽 각국의 연쇄혁명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소련이라는 한 국가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1국 사회주의론'은 스탈린의 내부 숙청이 일단락되던 1935년경에는 확립되었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협력 과정에서 더욱 공고화되는데, 이 시기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강화 및 이를 기반으로 한 '파시즘'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조지 오웰이 '국제 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한 '스페인 내전'(1936~1939)은 '파시즘'의 발흥과 이에 대항한 유럽 민주주의 세력의 일대 격전장이었다.


1922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내세운 '파시즘'은 '단결'이라는 어원으로 우익 포퓰리즘의 극단적 정치형태였으며, 경제위기로 들끓는 다수 대중의 열망을 고대 신화를 빌어 '신비주의화'하여 결국 독점자본의 이익보장의 도구가 되는데, 1933년의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일본의 '천황군국주의' 등의 본질적 정치형태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고대 로마에서 '단결'을 상징하는 도끼묶음을, 독일 히틀러는 아리아인을 기원으로 하는 고대 게르만 신화와 그 상징으로서 하켄크로이츠를, 일본 군국주의는 욱일기로 표현되는 고대 천황의 신화를 숭상했다.
'독점자본'을 토대로 하는 '파시즘'이라는 병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적 독재체제의 특징을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완성된' 파시즘 체제가 지닌 기본 측면들로는 첫째,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 운동 분쇄와 이들 계급을 체제 내로 강제 통합, 둘째, 자본축적을 위한 국가의 광범한 개입, 셋째, 시민의 권리 박탈과 사회에 대한 전면적 감시, 통제체제 수립, 넷째, 의회제 통제로부터 국가권력 집행 기구의 자립과 이를 통한 무제한적 국가 폭력 사용 등이 지적되고 있다."
- 김세균, [자본주의 위기와 파시즘], 1987.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이탈리아와 독일은 이미 '파시즘'이 집권하였고 사회민주당마저 그들과 타협하던 1931년 스페인에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등의 '민주세력'들이 '인민전선'을 형성하여 공화국을 세웠다.
장군 프랑코를 앞세운 우익 반란군과 공화국 민병대간에 전개된 4년여의 전쟁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우익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고 프랑코 군부독재는 이후 40년간 스페인을 지배한다. 20여만 명의 인민을 학살한 스페인의 프랑코는 우리에게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합친 정도의 우익 악마였다.
애초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불간섭위원회'를 통해 스페인 내전을 지원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파시즘' 세계동맹을 기획하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프랑코 반군을 적극 지원했고, 영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뒷짐을 졌으며, 소련은 '공화군'을 소극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노동조합의 총파업과 '국제 여단'은 안팎으로 궤멸되어 갔다.
조지 오웰이 참전하여 목도한 스페인 내전의 '정치외교'적 현실이 이러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화국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이 노동자 민병대와 '국제 여단'을 오히려 억압하고 고립시키는데 열중했던 것이다.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코 우익 반란군보다 급진적 노동자와 '국제 여단'을 더 두려워했고, '1국 사회주의'를 선언한 소련공산당은 자본주의 협력국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 차라리 위성국을 더 만들지언정 노동자계급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혁명 확산을 바라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영국과 소련은 전유럽의 '파시즘' 확산에 기여하면서 2차 세계대전 확산을 방조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토대로 1938년에 [카탈루니아 찬가]를 출간했는데, 이 내전의 초기 정신은 '정치적 인민전선이 아닌 노동자 총파업'이라고 적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었다. 미래 예측이 틀린 SF 작가들의 경우처럼 오웰의 아우라는 쇠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빅 브라더는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웰적인(Orwellian)'이라는 형용사는 다른 운명을 겪어, '카프카적인(Kafkaesque;부조리하고 우울하고 악몽같은)'처럼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 되었다.
오웰은 자신을 전향시키려는 시도에 굴복하지 않았다."
- [조지 오웰(George Orwell)], <에필로그 - 오웰 이후>,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오웰적인(Orwellian)' 세상은 [1984]에 나온 '빅 브라더'의 '전체주의' 세상에 대한 표현이라는데, 이는 조지 오웰의 삶을 볼 때 비단 '반혁명'과 '반노동자'적인 '스탈린주의' 체제 뿐만 아니라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전체주의' 체제 일반을 의미한다.
'오웰적인' 세계에 대한 저항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국제 여단''으로 참전한 조지 오웰의 '자유' 정신과 노동자 '평등'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념이 앞서는 것이 아니다. 
'자유'가 우세하면 '평등'을 위해, '평등'이 우세하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바로 그 정신이다.


[동물농장]의 당나귀 벤자민은 '동물농장'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술주정뱅이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을 동경한 것도 아니었다.


***

1.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2. [동물농장(Animal Farm)](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3. [세계노동운동사 3], 김금수, <후마니타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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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동물농장 & 1984 원전 완역본 세트 - 전2권
조지 오웰 지음, 이수정 외 옮김 / 코너스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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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적인(Orwellian)' 세상과 '스페인 내전'
-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그 뒤로는 농장 일을 감독하는 돼지들이 앞발에 채찍을 들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돼지들이 라디오 세트를 구입하고 전화를 설치하고... 신문, 잡지를 구독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동물들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입에 담뱃대를 물고 농장 정원을 거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일주일 뒤 어느 오후, 많은 이륜 마차가 농장으로 들어왔다. 이웃 농장주들의 대표단이 농장을 둘러보려고 온 것이다. 그들은 농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모든 것, 특히 풍차를 대단히 칭찬했다. 그때 다른 동물들은 순무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들은 밭에서 고개를 들지도 않고 돼지가 더 무서운지 혹은 인간 방문객이 더 무서운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만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농가에서는 큰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죽박죽 뒤섞인 목소리들 때문에 동물들은 갑자기 호기심을 느꼈다...
이제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바깥에 있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그리고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구별하기란 정말로 불가능했다."
- [동물농장](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한때는 좋았던 인간'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매일 술에 취해 일도 안하고 결정적으로 동물들을 굶기기 일쑤인 '인간' 존스씨가 역시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지고 인부들도 일손을 놓은 사이 '동물'들은 '한밤중 회의'를 통해 12살짜리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동물'이 주인이 되는 '꿈' 이야기를 듣고 '영국의 동물들'이라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메이저 영감돼지가 죽은 후 젊고 영리한 수퇘지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은 메이저 영감의 '꿈'과 '영국의 동물들' 노래를 '동물주의'로 이론화하여 '메이너농장'의 모든 동물들을 사상무장시킨다. 
연일 굶던 동물들은 우발적으로 반란폭동을 일으켜 농장주 존스와 인간들을 농장 밖으로 몰아내고 '혁명'을 성공시킨다.
문자를 익힌 영리한 돼지 스노우볼은 이 '혁명적 동물주의'를 '7계명'으로 정립하는데, '두 발 달린 인간은 적이다', '네 발이나 날개 달린 모든 동물은 동지다', '금주할 것', '옷을 입지 않기', '침대에서 자지 않기', '동물끼리 죽이지 말 것' 등의 내용이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테제로 마무리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생산력 발전'을 위한 무리한 '풍차' 건설로 동물들은 피폐해지는데, '풍차' 건설을 기획하고 한편으로 '동물주의'를 고수하며 '외양간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스노우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인간'과 내통한 스파이로 몰려 추방당하고 나폴레옹은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옷을 입고 개를 키우며 침대에서 자는 나폴레옹은 농장의 생존을 위해 이웃의 인간 농장주들과 교류하면서 결국 '동물농장'을 '메이너농장'으로 다시 명명한다.
궂은 일 도맡은 종마 복서는 늙어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암말 클로버가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에세 '7계명'이 온전한가 묻는데, 어느새 '7계명'은 변질되었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되 '몇몇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로 바뀌어 있다.
'동물농장'의 주인이었던 동물들 눈에 인간들과 교류하는 돼지들은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더이상 구분할 수 없다.
'동물농장'은 여전히 '메이너농장'이 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인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영국인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살 이후 영국에서 자랐고 이튼스쿨 장학생이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근무했으며 귀국 후 일용노동자와 노숙자 생활도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조지 오웰은 우리에게 '반공우화'로 소개되곤 하는 [동물농장]을 2차 대전 종전해인 1945년에 발표한다. 영국은 1917년 러시아혁명 후 소비에트연방(소련)을 극도로 혐오했으나 2차 대전에서는 서로 연합국이 되어 종전 당시인 1945년에는 영국과 소련의 '협력관계'상 소련 체제를 비판한 '정치우화'인 오웰의 [동물농장]을 출판사들이 출간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반공소설'이라는 증거라고 한다.
실제로 이 우화에 등장하는 '존스씨'는 러시아 차르 또는 임시정부 등의 구체제, '메이저 영감'은 칼 마르크스, '스노우볼'은 트로츠키, '나폴레옹'은 스탈린, '복서'는 '프롤레타리아', '외양간 전투'는 혁명 후 내전, '풍차 전투'는 2차 대전, '이웃 농장주들'은 영국과 독일이며, '동물농장'은 사회주의, '메이너농장'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은 작가 본인이었으리라.

그러나 '우화'라는 것이 즉자적인 '비유'에 그칠 수는 없다. 조지 오웰이 1945년의 [동물농장]과 1948년의 '빅 브라더(Big Brother)' [1984]를 통해 묘사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히 '소련'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유'만이 아니라 '전체주의'와 '파시즘' 일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은 그의 '스페인 내전' 참전의 경험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전쟁 초기 몇 달 동안 프랑코의 실질적인 적은 인민전선 정부라기 보다는 노동조합들이었다.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키자, 도시의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대응했다. 이어 공공 무기고에 가서 무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투쟁 끝에 얻어냈다. 만일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다소간 독립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프랑코는 아무런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조지 오웰, [카탈루니아 찬가](1938).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소련에서 독재체제를 구축한 스탈린은 레닌이 사망한 1924년에 '후계자'가 되자마자 이미 '1국 사회주의론'을 제기했는데, 1차 대전 종전을 앞당긴 유럽 각국의 연쇄혁명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소련이라는 한 국가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1국 사회주의론'은 스탈린의 내부 숙청이 일단락되던 1935년경에는 확립되었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협력 과정에서 더욱 공고화되는데, 이 시기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강화 및 이를 기반으로 한 '파시즘'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조지 오웰이 '국제 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한 '스페인 내전'(1936~1939)은 '파시즘'의 발흥과 이에 대항한 유럽 민주주의 세력의 일대 격전장이었다.


1922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내세운 '파시즘'은 '단결'이라는 어원으로 우익 포퓰리즘의 극단적 정치형태였으며, 경제위기로 들끓는 다수 대중의 열망을 고대 신화를 빌어 '신비주의화'하여 결국 독점자본의 이익보장의 도구가 되는데, 1933년의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일본의 '천황군국주의' 등의 본질적 정치형태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고대 로마에서 '단결'을 상징하는 도끼묶음을, 독일 히틀러는 아리아인을 기원으로 하는 고대 게르만 신화와 그 상징으로서 하켄크로이츠를, 일본 군국주의는 욱일기로 표현되는 고대 천황의 신화를 숭상했다.
'독점자본'을 토대로 하는 '파시즘'이라는 병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적 독재체제의 특징을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완성된' 파시즘 체제가 지닌 기본 측면들로는 첫째,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 운동 분쇄와 이들 계급을 체제 내로 강제 통합, 둘째, 자본축적을 위한 국가의 광범한 개입, 셋째, 시민의 권리 박탈과 사회에 대한 전면적 감시, 통제체제 수립, 넷째, 의회제 통제로부터 국가권력 집행 기구의 자립과 이를 통한 무제한적 국가 폭력 사용 등이 지적되고 있다."
- 김세균, [자본주의 위기와 파시즘], 1987.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이탈리아와 독일은 이미 '파시즘'이 집권하였고 사회민주당마저 그들과 타협하던 1931년 스페인에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등의 '민주세력'들이 '인민전선'을 형성하여 공화국을 세웠다.
장군 프랑코를 앞세운 우익 반란군과 공화국 민병대간에 전개된 4년여의 전쟁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우익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고 프랑코 군부독재는 이후 40년간 스페인을 지배한다. 20여만 명의 인민을 학살한 스페인의 프랑코는 우리에게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합친 정도의 우익 악마였다.
애초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불간섭위원회'를 통해 스페인 내전을 지원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파시즘' 세계동맹을 기획하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프랑코 반군을 적극 지원했고, 영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뒷짐을 졌으며, 소련은 '공화군'을 소극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노동조합의 총파업과 '국제 여단'은 안팎으로 궤멸되어 갔다.
조지 오웰이 참전하여 목도한 스페인 내전의 '정치외교'적 현실이 이러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화국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이 노동자 민병대와 '국제 여단'을 오히려 억압하고 고립시키는데 열중했던 것이다.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코 우익 반란군보다 급진적 노동자와 '국제 여단'을 더 두려워했고, '1국 사회주의'를 선언한 소련공산당은 자본주의 협력국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 차라리 위성국을 더 만들지언정 노동자계급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혁명 확산을 바라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영국과 소련은 전유럽의 '파시즘' 확산에 기여하면서 2차 세계대전 확산을 방조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토대로 1938년에 [카탈루니아 찬가]를 출간했는데, 이 내전의 초기 정신은 '정치적 인민전선이 아닌 노동자 총파업'이라고 적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었다. 미래 예측이 틀린 SF 작가들의 경우처럼 오웰의 아우라는 쇠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빅 브라더는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웰적인(Orwellian)'이라는 형용사는 다른 운명을 겪어, '카프카적인(Kafkaesque;부조리하고 우울하고 악몽같은)'처럼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 되었다.
오웰은 자신을 전향시키려는 시도에 굴복하지 않았다."
- [조지 오웰(George Orwell)], <에필로그 - 오웰 이후>,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오웰적인(Orwellian)' 세상은 [1984]에 나온 '빅 브라더'의 '전체주의' 세상에 대한 표현이라는데, 이는 조지 오웰의 삶을 볼 때 비단 '반혁명'과 '반노동자'적인 '스탈린주의' 체제 뿐만 아니라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전체주의' 체제 일반을 의미한다.
'오웰적인' 세계에 대한 저항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국제 여단''으로 참전한 조지 오웰의 '자유' 정신과 노동자 '평등'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념이 앞서는 것이 아니다. 
'자유'가 우세하면 '평등'을 위해, '평등'이 우세하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바로 그 정신이다.


[동물농장]의 당나귀 벤자민은 '동물농장'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술주정뱅이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을 동경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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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2. [동물농장(Animal Farm)](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3. [세계노동운동사 3], 김금수, <후마니타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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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동물 농장 (양장) - 194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지 오웰 지음, 이종인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웰적인(Orwellian)' 세상과 '스페인 내전'
-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그 뒤로는 농장 일을 감독하는 돼지들이 앞발에 채찍을 들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돼지들이 라디오 세트를 구입하고 전화를 설치하고... 신문, 잡지를 구독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동물들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입에 담뱃대를 물고 농장 정원을 거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일주일 뒤 어느 오후, 많은 이륜 마차가 농장으로 들어왔다. 이웃 농장주들의 대표단이 농장을 둘러보려고 온 것이다. 그들은 농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모든 것, 특히 풍차를 대단히 칭찬했다. 그때 다른 동물들은 순무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들은 밭에서 고개를 들지도 않고 돼지가 더 무서운지 혹은 인간 방문객이 더 무서운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만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농가에서는 큰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죽박죽 뒤섞인 목소리들 때문에 동물들은 갑자기 호기심을 느꼈다...
이제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바깥에 있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그리고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구별하기란 정말로 불가능했다."
- [동물농장](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한때는 좋았던 인간'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매일 술에 취해 일도 안하고 결정적으로 동물들을 굶기기 일쑤인 '인간' 존스씨가 역시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지고 인부들도 일손을 놓은 사이 '동물'들은 '한밤중 회의'를 통해 12살짜리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동물'이 주인이 되는 '꿈' 이야기를 듣고 '영국의 동물들'이라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메이저 영감돼지가 죽은 후 젊고 영리한 수퇘지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은 메이저 영감의 '꿈'과 '영국의 동물들' 노래를 '동물주의'로 이론화하여 '메이너농장'의 모든 동물들을 사상무장시킨다. 
연일 굶던 동물들은 우발적으로 반란폭동을 일으켜 농장주 존스와 인간들을 농장 밖으로 몰아내고 '혁명'을 성공시킨다.
문자를 익힌 영리한 돼지 스노우볼은 이 '혁명적 동물주의'를 '7계명'으로 정립하는데, '두 발 달린 인간은 적이다', '네 발이나 날개 달린 모든 동물은 동지다', '금주할 것', '옷을 입지 않기', '침대에서 자지 않기', '동물끼리 죽이지 말 것' 등의 내용이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테제로 마무리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생산력 발전'을 위한 무리한 '풍차' 건설로 동물들은 피폐해지는데, '풍차' 건설을 기획하고 한편으로 '동물주의'를 고수하며 '외양간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스노우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인간'과 내통한 스파이로 몰려 추방당하고 나폴레옹은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옷을 입고 개를 키우며 침대에서 자는 나폴레옹은 농장의 생존을 위해 이웃의 인간 농장주들과 교류하면서 결국 '동물농장'을 '메이너농장'으로 다시 명명한다.
궂은 일 도맡은 종마 복서는 늙어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암말 클로버가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에세 '7계명'이 온전한가 묻는데, 어느새 '7계명'은 변질되었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되 '몇몇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로 바뀌어 있다.
'동물농장'의 주인이었던 동물들 눈에 인간들과 교류하는 돼지들은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더이상 구분할 수 없다.
'동물농장'은 여전히 '메이너농장'이 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인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영국인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살 이후 영국에서 자랐고 이튼스쿨 장학생이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근무했으며 귀국 후 일용노동자와 노숙자 생활도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조지 오웰은 우리에게 '반공우화'로 소개되곤 하는 [동물농장]을 2차 대전 종전해인 1945년에 발표한다. 영국은 1917년 러시아혁명 후 소비에트연방(소련)을 극도로 혐오했으나 2차 대전에서는 서로 연합국이 되어 종전 당시인 1945년에는 영국과 소련의 '협력관계'상 소련 체제를 비판한 '정치우화'인 오웰의 [동물농장]을 출판사들이 출간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반공소설'이라는 증거라고 한다.
실제로 이 우화에 등장하는 '존스씨'는 러시아 차르 또는 임시정부 등의 구체제, '메이저 영감'은 칼 마르크스, '스노우볼'은 트로츠키, '나폴레옹'은 스탈린, '복서'는 '프롤레타리아', '외양간 전투'는 혁명 후 내전, '풍차 전투'는 2차 대전, '이웃 농장주들'은 영국과 독일이며, '동물농장'은 사회주의, '메이너농장'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은 작가 본인이었으리라.

그러나 '우화'라는 것이 즉자적인 '비유'에 그칠 수는 없다. 조지 오웰이 1945년의 [동물농장]과 1948년의 '빅 브라더(Big Brother)' [1984]를 통해 묘사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히 '소련'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유'만이 아니라 '전체주의'와 '파시즘' 일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은 그의 '스페인 내전' 참전의 경험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전쟁 초기 몇 달 동안 프랑코의 실질적인 적은 인민전선 정부라기 보다는 노동조합들이었다.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키자, 도시의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대응했다. 이어 공공 무기고에 가서 무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투쟁 끝에 얻어냈다. 만일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다소간 독립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프랑코는 아무런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조지 오웰, [카탈루니아 찬가](1938).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소련에서 독재체제를 구축한 스탈린은 레닌이 사망한 1924년에 '후계자'가 되자마자 이미 '1국 사회주의론'을 제기했는데, 1차 대전 종전을 앞당긴 유럽 각국의 연쇄혁명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소련이라는 한 국가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1국 사회주의론'은 스탈린의 내부 숙청이 일단락되던 1935년경에는 확립되었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협력 과정에서 더욱 공고화되는데, 이 시기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강화 및 이를 기반으로 한 '파시즘'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조지 오웰이 '국제 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한 '스페인 내전'(1936~1939)은 '파시즘'의 발흥과 이에 대항한 유럽 민주주의 세력의 일대 격전장이었다.


1922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내세운 '파시즘'은 '단결'이라는 어원으로 우익 포퓰리즘의 극단적 정치형태였으며, 경제위기로 들끓는 다수 대중의 열망을 고대 신화를 빌어 '신비주의화'하여 결국 독점자본의 이익보장의 도구가 되는데, 1933년의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일본의 '천황군국주의' 등의 본질적 정치형태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고대 로마에서 '단결'을 상징하는 도끼묶음을, 독일 히틀러는 아리아인을 기원으로 하는 고대 게르만 신화와 그 상징으로서 하켄크로이츠를, 일본 군국주의는 욱일기로 표현되는 고대 천황의 신화를 숭상했다.
'독점자본'을 토대로 하는 '파시즘'이라는 병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적 독재체제의 특징을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완성된' 파시즘 체제가 지닌 기본 측면들로는 첫째,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 운동 분쇄와 이들 계급을 체제 내로 강제 통합, 둘째, 자본축적을 위한 국가의 광범한 개입, 셋째, 시민의 권리 박탈과 사회에 대한 전면적 감시, 통제체제 수립, 넷째, 의회제 통제로부터 국가권력 집행 기구의 자립과 이를 통한 무제한적 국가 폭력 사용 등이 지적되고 있다."
- 김세균, [자본주의 위기와 파시즘], 1987.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이탈리아와 독일은 이미 '파시즘'이 집권하였고 사회민주당마저 그들과 타협하던 1931년 스페인에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등의 '민주세력'들이 '인민전선'을 형성하여 공화국을 세웠다.
장군 프랑코를 앞세운 우익 반란군과 공화국 민병대간에 전개된 4년여의 전쟁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우익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고 프랑코 군부독재는 이후 40년간 스페인을 지배한다. 20여만 명의 인민을 학살한 스페인의 프랑코는 우리에게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합친 정도의 우익 악마였다.
애초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불간섭위원회'를 통해 스페인 내전을 지원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파시즘' 세계동맹을 기획하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프랑코 반군을 적극 지원했고, 영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뒷짐을 졌으며, 소련은 '공화군'을 소극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노동조합의 총파업과 '국제 여단'은 안팎으로 궤멸되어 갔다.
조지 오웰이 참전하여 목도한 스페인 내전의 '정치외교'적 현실이 이러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화국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이 노동자 민병대와 '국제 여단'을 오히려 억압하고 고립시키는데 열중했던 것이다.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코 우익 반란군보다 급진적 노동자와 '국제 여단'을 더 두려워했고, '1국 사회주의'를 선언한 소련공산당은 자본주의 협력국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 차라리 위성국을 더 만들지언정 노동자계급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혁명 확산을 바라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영국과 소련은 전유럽의 '파시즘' 확산에 기여하면서 2차 세계대전 확산을 방조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토대로 1938년에 [카탈루니아 찬가]를 출간했는데, 이 내전의 초기 정신은 '정치적 인민전선이 아닌 노동자 총파업'이라고 적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었다. 미래 예측이 틀린 SF 작가들의 경우처럼 오웰의 아우라는 쇠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빅 브라더는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웰적인(Orwellian)'이라는 형용사는 다른 운명을 겪어, '카프카적인(Kafkaesque;부조리하고 우울하고 악몽같은)'처럼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 되었다.
오웰은 자신을 전향시키려는 시도에 굴복하지 않았다."
- [조지 오웰(George Orwell)], <에필로그 - 오웰 이후>,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오웰적인(Orwellian)' 세상은 [1984]에 나온 '빅 브라더'의 '전체주의' 세상에 대한 표현이라는데, 이는 조지 오웰의 삶을 볼 때 비단 '반혁명'과 '반노동자'적인 '스탈린주의' 체제 뿐만 아니라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전체주의' 체제 일반을 의미한다.
'오웰적인' 세계에 대한 저항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국제 여단''으로 참전한 조지 오웰의 '자유' 정신과 노동자 '평등'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념이 앞서는 것이 아니다. 
'자유'가 우세하면 '평등'을 위해, '평등'이 우세하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바로 그 정신이다.


[동물농장]의 당나귀 벤자민은 '동물농장'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술주정뱅이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을 동경한 것도 아니었다.



***

1.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2. [동물농장(Animal Farm)](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3. [세계노동운동사 3], 김금수, <후마니타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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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6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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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시작은 '신화(神話)'로
- [아서왕(King Arthur) :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안 베르텔로트, 채계병 옮김, <시공사>, 2003.



"서(敍)한다.
대저 옛날 성인이 바야흐로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교화를 베풀되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장차 일어나려고 하면 부명(符命)이 응하고 도록(圖籙)을 받아 반드시 다른 사람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큰 변화를 하여 대기(大器)를 장악하고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수에서는 도가 나왔고, 낙수에서는 서가 나와 성인이 일어났다. 무지개가 신모를 감싸 복희를 낳았고, 용이 여등과 교감하여 염제를 낳았으며,... 요 임금은 잉태한 지 14개월 만에 태어났고, 용이 큰 못에서 교합하여 패공(한고조 유방)을 낳았는데, 이 이후의 일은 어찌 다 기록할 수 있으리오. 그러니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神異)한 가운데서 나온 것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무엇인가? <기이(紀異)편>을 이 책의 첫머리에 싣는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일연,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1.


기록으로서의 '역사', 특히 '정사(正史)'는 대부분 '승자의 기록'이다.
지배자들은 자신이 도둑질한 천하가 '안정'되었다고 판단되면 지난 역사를 정리하였다. 자신들의 권력이 '정당하다'는 증명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이 '정사'는 제왕의 기록'인 <본기(本紀)>와 제후 또는 영웅들의 기록으로서 <열전(列傳)>을 엮어서 펼치는 '기전체(紀傳體)'가 이 '정식 역사'의 서술방법이었다.
기원전 1세기 중국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이 처음 시도한 [사기(史記)]의 '기전체'는 비록 그 당시에는 '정사'가 아니었으나 이후 여러 왕조를 거쳐 '정사'의 기술방식이 되었다.

13세기 고려시대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를 썼는데, 우리 역사에서 '정사(正史)'에 대비되는 '야사(野史)'의 대표작이다. 고려 당대 최고의 승려인 '국존'으로서 일연은 1289년 입적 전까지 경북 군위 인각사에서 100여 편의 책을 지었다는데 [삼국유사]는 그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연은 한세기 전 '정사'인 김부식의 [삼국사기] 부류의 역사서들이 담지 않는 불교적, 향토적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주된 내용은 삼국시대 불교의 전파와 대표적인 승려들에 의한 '흥법(興法)', 탑과 불상 등에 대한 이야기, 지역의 기릴만한 이야기들이다. 후세대인 우리에게는 '단군설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족보'를 정리한 사서로 알려져 있다.
사마천이 중국의 열국들의 시조로서 '삼황오제'의 거대한 족보를 완성했듯, 일연은 한반도와 요동의 자손들을 '단군왕검'의 자식들로 '족보화'하였다.
일연이 <본기> 같은 '정사'가 아니라 <기이(紀異)편>으로 [삼국유사]를 시작한 이유다.

아마도 일연이 가장 비판하고 싶었을 한세기전 유생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도 신라, 고구려 등의 시조는 다들 '괴력난신(怪力亂神)'들이었다. 신라의 박혁거세나 고구려 동명성왕 고주몽도 정체불명의 알에서 태어났고 백제의 온조도 고주몽의 아들이니 보통사람과 다른 '신의 자식들'이었다. 이제 일연은 우리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을 천신인 환인의 아들인 환웅과 웅녀의 아들로 확정한다.
구전되는 설화와 민담, 혹은 그 당시까지 있었을 기록을 토대로 구축한 '신화(神話)'다.
아마도 '신의 아들(천자)'을 자칭하는 환웅이 나타나 호랑이를 숭상하는 씨족은 몰살시키고 곰을 숭상하는 씨족과 결합하여 '고조선'을 세웠으리라.
[삼국유사]의 관점은 고려시대에 우리 한반도 또는 요동까지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인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짧지만 말갈족까지 아우르는 발해국에 대한 기록도 포함한다.


"그는 해안으로 내려가 허리띠 검집에서 검을 뺐다. 그는 오랫동안 검을 유심히 보다가는 마침내 '아! 훌륭하고 고귀한 검... 이 시대 가장 훌륭한 검인 엑스칼리버여! 이제 너는 주인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아서왕은 그리플레를 불렀다. '저기 언덕 밑으로 가거라.' 왕은 명령했다. '그곳에 가면 호수가 있을 것이다. 내 검을 호수에 던져라.'... 
그리플레는 더 이상 왕의 명을 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검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될 수 있는 한 호수의 가장 깊은 곳으로 검을 던졌다. 검이 물에 닿는 순간 그리플레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손이 물에서 팔굽까지 보이도록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손은 검을 움켜쥐고는 하늘을 향해 서너번 흔들기 시작했다. 그 손은 검을 쥔 채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 토머스 맬러리, [아서의 죽음], 15세기


고려시대 [삼국사기]가 출간된 12세기 영국에서는 헨리2세가 즉위한다. 십자군전쟁기 유럽 프랑크족 '대장'인 프랑스 카페왕조(샤를마뉴 대제의 후손)에 대항한 영국의 앙주왕조 출신인 그는 소수 노르만족 계통으로 라틴계통의 다수의 '브리튼'들 사이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다. 노르만족과 브리튼의 연대로 영국내 게르만족 일파인 색슨족에 대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12세기의 헨리2세는 5세기의 '아서왕(King Arthur)'을 소환한다. 마치 우리 고려 12세기의 김부식에게 1~7세기 '삼국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아서왕이 고대 켈트족이었든 근거지 '캐멀럿성'이 어디였든, 영국 불가사의 '스톤헨지'가 마법사 멀린의 작품이든 외계인의 소행이든, 아서왕은 영국내 노르만족 왕조의 '정통성'을 위해 명검 엑스칼리버를 들고 전설의 기사들과 함께 등장한다. 물론 지배이데올로기는 기독교 교리이며 그가 처단하는 색슨족은 '이교도'들이다. 카페왕조의 '프랑크인'들이 중근동에서 '이교도' '사라센인'들과 대적하듯, 영국의 헨리2세는 영국의 '샤를마뉴'인 아서왕의 '신화(神話)'로써 '이교도' 색슨족에 대적한다.

기독교 신화에서 '신의 아들'은 하나일테니 아서왕은 '신의 자식'은 아니다. 알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우터 펜드라곤이라는 전설의 왕이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콘월 공작의 부인과 관계하여 낳은 아들이다. 다른 부모 아래 기사수업을 받던 아서(Arthur)는 돌에 박힌 검을 뽑아 왕국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이는 귀족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후계자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의 성격이 짙다. 실제 아서의 명검 엑스칼리버는 바위에서 뽑은 그 검이 아니라 호수의 여신 비비안이 주었다고 한다.


다소 어색하지만, 5세기의 '기독교'적 영웅 아서는 영국민족의 통합을 위해 분투했고 각지의 전설적 기사들을 원탁으로 모은다. 호수의 기사 랜슬롯과 녹색기사 거웨인, 성배찾은 갤러해드, 퍼시벌, 아서를 배신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아들 모드레드 등. 그러나 '원탁의 기사'에 둘러싸인 아서왕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고 '평화' 시대에 사냥과 시합에 열중하던 그가 가진 건 결국 '원탁' 뿐이었으며 '근친상간'으로 얻은 아들 모드레드와의 마지막 결전 후 아들과 함께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영국의 다수 민족 '브리튼'들은 이 아서와 호수에 버려진 엑스칼리버가 죽지 않고 '구세주'처럼 다시 부활한다고 믿었다는데, 이 '구세주(그리스도/메시아)' 아서는 헨리2세 정권의 정통성을 선전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딱 맞는 소재였다.

이렇게 정권의 안정을 위해 소환되고 조작된 '영웅설화'는 봉건체제의 반영으로서 힘없는 아서의 '원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뜬금없는 '성배(聖杯:The Holy Grail)'의 등장으로 애초 계획에는 없던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들을 양산하면서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영문학에서는 아마도 15세기 작가 토머스 맬러리(Thomas Malory)의 [아서의 죽음]이 최초로 집대성된 이야기일 것이다.


"옛날 열국에서도 또한 각기 사관을 두어 사실을 기록하였으므로 맹자가 말하기를, '진나라의 [승], 초나라의 [도올], 노나라의 [춘추]가 그 한가지다.' 하였습니다. 이 해동의 3국도 역사가 오래 되어 마땅히 그 사실을 서책에 기록해야 될 것이므로, 이에 노신으로 하여금 편집하도록 하셨으나 스스로 돌아보건대 부족됨이 많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학사대부들이 오경과 제자의 글이나 진한 역대의 사(史)에 대하여, 혹은 널리 통하여 상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 나라 사실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망연하여 그 처음과 끝을 모르니 심히 탄식할 일이다.'... 
신은 본래 재주가 없고 또 깊은 학식도 없으며, 노년에 이르러 날로 혼몽을 더하여 비록 부지런히 독서를 한다 해도 책만 덮으면 곧 잊어버리고, 붓을 잡아도 힘이 없어 종이를 대하면 써내려가기가 어렵습니다... 삼가 <본기> 28권, <연표> 3권, <지> 9권, <열전> 10권을 편찬하여 표와 함께 올립니다. 위로 천람을 입게 되니 부끄러워 땀이 나고 황송함이 이를 길 없습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올리는 글>, 김부식, 1145.


'정사'를 편찬한 학자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을 것이며, 고려 인종대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진압하기도 한 당대 최고의 관료이기도 했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의 창업이 정당한 '하늘의 순리'임을 지난 삼국의 역사를 통해 입증해야만 했는데, '역작'을 올리면서도 전전긍긍한다. 실제로 '정사'를 편찬한 대학자들은 당시 군주에게 '올리는 글'에서 진땀을 흘리며 죽을 죄를 지었다고 땅에 코를 연신 박고 있다.
'정사'의 한계란 그 내용의 치밀함은 둘째로 하고 이 <서문>에서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기전체'의 창시자, 사마천이 [사기]를 펴내면서 "과연 하늘의 도는 있는가?"라고 던지는 탄식에 어찌 비하겠는가?


언제나 시작은 '신화(神話)'라는 '이데올로기'로 기술되던 '정사(正史)'의 시대는 오래전에 종말을 고했으나, 소수 지배자들은 언제가 되었든 역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으로, '정사'로서의 '기전체'는 지배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되어 왔으나, 원래 '기전체'는 <본기>의 날줄과 <열전>의 씨줄이 교차하면서 침묵 속에 드러나는 사실의 모순과 그로 인한 맥락의 서사가 참된 묘미이기도 하다.


***

1. [아서왕(King Arthur) -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안 베르텔로트, 채계병 옮김, <시공사>, 2003.
2. [삼국유사(三國遺事)], 일연,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1.
3. [삼국사기(三國史記)],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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