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모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기원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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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D. (Quod Erat Demonstrandum : What Was To be Shown)"
- Ellery Queen, [국명+사물+미스터리] 시리즈, <검은숲>



"살인자는 누구인가?
나는 내 소설에서 독자들이 범죄를 올바로 해결하는데 필요한 사실들을 모두 알게 되는 시점에 이르면 언제나 독자들의 지혜에 도전을 해 왔다.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도 예외는 아니다. 주어진 단서들을 엄밀한 논리와 추리로 분석해보면 지금쯤 범인의 정체를 단순히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답편를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단 하나의 올바른 해결책에는 '만일'이나 '하지만'이란 것이 없다. 논리는 결코 요행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니, 당신의 올바른 '논증'에 행운이 따르기를 빈다!"
- 엘러리 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독자에의 도전>,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중학교 시절인 1988년에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동네 형의 어두운 방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장편 추리소설을 우연히 발견한 후, 오락실 갈 용돈을 모아서 추리소설을 사모으던 짧은 시절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든 생각이었는데, 초등학교 때 친구집에서 빌려봤던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집]은 내게 '단편'을 읽는 힘을, 중학교 때 용돈 모아 사들였던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추리소설은 내게 '장편'의 바다에서 헤쳐 나오는 길을 알려줬다. 
당시 서점에 나온 영국 주류의 추리소설들 속에서 미국 추리소설은 양념과도 같았는데 지금은 책들도 사라지고 기억도 희미하지만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은 줄거리는 잊었으되 그 중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T'자형 십자가에 머리가 잘린 채 죽은 살인사건을 뒤쫓는 미국 탐정 엘러리 퀸의 모험과 어딘지 기괴한 미국식 삽화와 함께.


소설 속 주인공으로서 '엘러리 퀸(Ellery Queen)'은 1920년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장서가이자 서지학자이며 뉴욕경찰서의 경관인 리처드 퀸의 아들로 여러 살인사건을 그 특유의 '연역적 소거 추리법'의 논리로써 해결한다. 학자로서 학위는 있는지, 경찰도 아니면서 '아빠찬스'로 '특수수사'를 하는 것을 보면 직업이 탐정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건 수사과정을 책으로 출간하는 것을 보아 '작가'인지, 그의 정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여러 작품을 통해 캐릭터 자체에 모순점들이 보인다고 하는데, 셜록 홈즈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추리소설의 인기로 계속 연작 형태가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안 팔리면 주인공 탐정은 그 첫 수사가 마지막 작품이 될 운명일 것이기에.
어쨌든 '탐정' 엘러리 퀸의 추리 기법은 모든 사실과 단서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논리적으로 연결시킨 거대한 사고틀에서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용의자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연역적 소거논리'로 대부분 경찰들이 잡아온 단서들을 소파에 앉아 오로지 지식과 두뇌로만 해결하는데, 셜록 홈즈나 미스 마플, 포와로 등도 비슷한 방식일텐데 엘러리 퀸만의 특징은 그만의 '논리'를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현학적 행각을 통해 자랑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역법'이기에 대전제가 틀리면 전체가 오류가 되기도 함에도 불구하고 엘러리 퀸은 'Q.E.D.(증명 끝.)'를 좋아한다.


"명망 있는 젊은 청년인 (범인)이 위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일련의 범죄를 저지른 범인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릅니다. 또 그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랬는가를 모르면 머리가 아주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그러나 (범인)은 저의 '오랜 친구'인, 무자비한 '논리'의 그물에 걸렸습니다. 이 논리는 그리스인들이 숭상하던 로고스이고, 음모를 꾸미는 자들한테는 덫이 되기도 하죠."
- 엘러리 퀸, [그리스 관 미스터리](1932), <34. 핵심>, 김희균 옮김, <검은숲>, 2012.


수시로 라틴어 문구와 베르길리우스의 시구를 인용하고,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처럼 '분명'하다가도 사건이 갈피를 못잡으면 이럴 시간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읽는 게 낫다는 둥 잘난체를 하며, 불어로 중얼거려 경찰들을 짜증나게도 하는 이 현학적 '탐정'은 결국, 친구와 놀러 가거나([로마 모자 미스터리]), 소파에 깊이 앉아서([그리스 관 미스터리]), 고전학 교수와 대화하면서([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연역적 소거법'을 완성해 간다. 모든 사실과 단서들이 열거된 후 '작가' 엘러리 퀸은 독자들에게 '이제 한 번 추리해 보시라' 막간 한 페이지를 던지는데, 매 작품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독자에의 도전>이다. 잘난 체 하는 주인공이 얄밉기도 하나 숱한 추리소설 중 범인을 맞춘 적이 거의 없기에 나는 '굳이 왜 내가 머리를 쓰나?' 싶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게 편하다.


"... 엘러리가 [로마 모자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 책은 퀸 부자가 해결한 사건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흔한 살인 동기나 범죄 수법은 범죄 전문가라면 누구나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몬테 필드 살인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사건에서 퀸 부자가 상대한 것은 치밀한 두뇌와 교묘한 술책을 가진 살인자였다... 그러나 이 사건도 다른 '완전 범죄'들과 마찬가지로 허점이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엘러리의 날카로운 추리에 걸려들어 사건의 전말이 백일하에 드러나 결국 파멸을 맞았던 것이다."
- 엘러리 퀸, [로마 모자 미스터리](1929), <J.J.맥의 '서문'>, 이기원 옮김, <검은숲>, 2011.


한편으로 추리소설 작가로서 '엘러리 퀸'은 한 사람이 아니라, 만프레드 리(Manfred Lee)와 프레더릭 다네이(Frederic Dannay)라는 유태계 미국인 사촌형제의 필명이다. 뉴욕 출신으로 각각 영화사와 광고사에서 근무하던 이들은 당시 영국 추리소설의 아성에 도전하던 미국의 미스터리 바람을 타고 직장까지 때려치우며 미스터리 작가의 길을 가고자 했으나 하필 때는 1929년이었다. 
그들의 첫 작품인 [로마 모자 미스터리]가 공모작에 당선되기도 전 출판사가 파산하고 대공황의 경제 위기 속에서 이들 형제는 직장일과 미스터리 집필 작업을 병행하기로 하는데 다행히 책이 인기를 끌면서 전업작가 및 '미스터리 전문가'로 성공하게 된다. 책이 안 팔렸다면 아마도 대공황으로 직장도 잃고 작가로서도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아무튼 '미스터리 전문' 작가 '엘러리 퀸'의 명성은 현재까지도 '미국미스터리작가협회'를 이끌면서 건재하다고 하는데, 20세기 후반 일본의 추리소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봐, 퀸 군. 자넨 정말 바보짓을 했네.'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엘러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타우(그리스 알파벳 19번째, 영어의 'T'에 해당) 십자가가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란 말씀인가요?'
'바로 그걸세.'
...
'크룩스 코미사(crux commissa)가 이집트 십자가로 불린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건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요... 그런데 왜 타우가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라고 말씀을...'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니까.'
야들리가 미소를 지었다.
'고대 이집트인이 사용하던 신성한 도구들 중에 그리스어 T와 닮은 모양을 한 게 있다네. 상형문자로 된 문헌에 자주 나타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오래된 기독교 신앙인 타우 십자가가 되는 건 아니지...'
'그렇다면 T형 십자가는 이집트 십자가가 결코 아니군요. 맙소사, 큰 실수를 했군.'
엘러리가 투덜거렸다.
...
교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가 굳이 확대 해석해서 이집트 십자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앙크(ankh)일세... 보통 크룩스 안사타(crux ansata)라고 불리는데, 이집트 비문에 아주 자주 등장하지. 이것은 신성성이나 왕권을 의미하며, 이는 곧 '생명의 근원'을 소유한 자로 치환할 수 있지.'
- 엘러리 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2-12. 교수가 말하기를>,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중학교 2학년 때 역시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청소년용 '팬더시리즈'인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을 읽었을 때, 시체의 목을 잘라 T자 십자가형을 집행한 살인자의 엽기적 행각은 물론 왠지 이교도적인 '이집트 십자가'의 신비로움에 한창 빠져 지낸 기억은 무의식 속에 남았겠으나 주인공 엘러리 퀸이나 주요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한참 지난 후 우연히 애거서 크리스티를 회상하던 중 중학 시절 한창 빠졌던 <해문출판사> 추리소설판을 검색하다가 기억 저편에서 소환한 엘러리 퀸에 이끌려 [국적+사물+미스터리] 시리즈를 몇 권 사서 출퇴근길 전철간에서 다시 읽었다.
현학적인 말장난, 국적과 사물에 입혀진 신비주의, 비상한 두뇌로만 가능한 기억력과 기막힌 논리로 완성되는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
덕분에 회사로 출퇴근하던 중년의 노동자는 그때만은 잠시 80년대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곤 했다.


아마도 잘난 척과 오류가 엇갈리는 '연역논리'의 탐정 엘러리 퀸 '1기'에 해당하는 대공황 시기 [국적+사물+미스터리] 시리즈 작명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함이었겠으나,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비밀)]는 정작 '이집트 십자가'와 무관하다. 미국의 시골 아로요에서 발생한 크리스마스 '타우' 십자가형과 곳곳에 배치된 문자 'T', 그리고 등장하는 '이집트 태양신'을 자칭하는 미치광이 등의 인물들을 보며 엘러리 퀸이 '타우 십자가 = 이집트 십자가'라는 상징적 전제를 연역적으로 상정한 우연한 실수에서 유래한 제목이다. 


단순한 살인사건 추적을 넘어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고전으로서의 엘러리 퀸과 함께 한 짧은 시간이 아쉬워 작가 '엘러리 퀸'의 'X-Y-Z 비극 시리즈'를 다시 주문하고 말았는데,
엘러리 퀸을 읽는 시간은 그들의 작품이 백년이 지난 지금도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임이 논리적으로 '증명(Q.E.D)'되는 또 하나의 과정은 아닐런지.

"Q.E.D. (Quod Erat Demonstrandum : What Was To be Shown : 이것으로 증명 끝.)!"


***

1.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엘러리 퀸,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그리고 1980년대 <해문출판사>판.)
2. [그리스 관 미스터리](1932), 엘러리 퀸, 김희균 옮김, <검은숲>, 2012.
3. [로마 모자 미스터리](1929), 엘러리 퀸, 이기원 옮김, <검은숲>, 2011.
4.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1929), 엘러리 퀸, 이제중 옮김, <검은숲>, 2011.
5.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1931), 엘러리 퀸, 정영목 옮김, <검은숲>, 2011.
6. [미국 총 미스터리](1933), 엘러리 퀸, 김예진 옮김, <검은숲>,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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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진달래 - 제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 수상작
노회찬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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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들은 '이익'을 지키고, 군자는 '명예'를 지킨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2004), [우리가 꿈꾸는 나라](2018)





"... 정책을 인물보다 앞세우는 일은 시련의 연속이다. 정책으로 인격화되지 않는 인물은 정치적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 정책이 인물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이번 총선의 전투지침이다. 
모든 전투는 시련이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1.22. 일지', <사회평론>, 2004.


2004년 2월부터 시작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 속에서 그 해 4월 15일에는 17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299명 국회의원 중 신자유주의 '개혁'을 하려던 열린우리당이 152석, 그냥 수구세력 한나라당이 121석, 민주당과 자민련은 9석과 4석으로 찌그러졌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부유세' 등의 보편복지 정책과 1인2표 '정당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선거제도 개혁투쟁을 했던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하면서 4.19 혁명 이후 44년만에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간 첫 선거였다.

1992년 민중당의 실패 후에도 지침없이 '진보정당' 건설운동에 매진했던 '진보정치인' 노회찬 선생은 1997년 말 IMF체제와 함께 치러진 대선에서 '96년 총파업을 이끌었던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대선후보로 한 '국민승리21'의 중심에 있었고, 역시 2000년 초 창당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의 사무총장, 선대본부장으로 2004년 총선을 치른다. 이 해 1월부터 3월 말까지의 기록이 '총선 난중일기'라 불리는 [힘내라, 진달래]다. 

노회찬이 앞장선 민주노동당의 첫 총선에서 전국 각 지구당의 수많은 지역구 후보들과 당원들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부유세' 등 우리 사회 전례없던 보편복지 정책을 홍보하는 인간피켓이 되고 인간플래카드를 자처하며 이러한 의제들을 전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 이러한 '진보정당' 운동은 노회찬의 표현에 따라 "삼겹살 판을 갈기 위해" 그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간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념정당'이냐 '대중정당'이냐, '대중투쟁'이냐 '의회주의'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등등의 어려운 논쟁 속에서 '진보정당'이 몇 차례 부침을 겪으며 '의회' 중심의 '개혁'적 '대중정당'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당시 지구당의 후보들이었던 수많은 '소대장'들도 스러져 갔다. 함께 했던 '소총수' 당원들은 얼마나 남았을까 싶지만, "흐르는 물처럼 한 사람이 가고 한 사람이 태어난다('2004.1.16. 일지')"는 노회찬 총장의 말처럼 '진보정당'도 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어제의 그들과 같을 수는 없을 터. 
흐르는 물처럼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 변증법 제1조 1항이다.('2004.2.10. 일지')"


"라디오 토론이니 점잖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난투극이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서로 사과하라고 언성 높인다. 국민들 앞에 고개들 처지도 아닌데 희대의 영웅처럼 큰소리다. CBS의 좁은 스튜디오가 동물원 우리처럼 느껴진다.
이러니 점잖고, 상식적이고, 순박한 사람들은 정치권을 꺼려하지 않았는가. 그 정치권에 이제 민주노동당이 들어간다. 타잔이 되어야만 이 동물들을 다룰 수 있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3.3. 일지', <사회평론>, 2004.


후보와 이미지, 지역과 학연을 내세운 기존 정치와 선거에 맞서 보편복지 '정책'을 앞세운 '진보정치'가 노회찬을 비롯한 수많은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숙원이었다. 
"정책으로 인격화되지 않는 인물은 정치적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 정책이 인물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2004.1.22. 일지')"이라 상정한 17대 총선의 '전투지침'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보정당'의 선거지침이다.
'진보정치인' 노회찬은 갔어도 그의 '진보정치 지침'은 올곧게 남았다.


"여의도 나들목 부근은 어느새 밀려온 봄꽃 천지다. 개나리가 듬뿍 피어 있고 벌써 곳곳에서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3월 28일 아침 여의도.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꽃이 지금의 열우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율만큼 상륙해 있다.
힘내라, 진달래. 가슴도 눈시울도 연분홍이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3.28. 일지', <사회평론>, 2004.


'총선 난중일기' [힘내라, 진달래]는 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3월말에 끝나고 본 선거운동인 4월의 메모는 손질된 글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 해 총선 후 10월 이 기록들은 [힘내라, 진달래]라는 제목으로 "전태일 영전에 바친다"는 '서문'과 함께 출간되었고 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한다.

봄이 와서 노란 개나리가 흐드려지고 조금 늦은 연분홍 진달래가 꽃판을 조금씩 점령하고 물들여가는 상상. 기존 정치판에서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한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바램이었다. 
"힘내라, 진달래!"



"촛불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일까요? 잘못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감옥으로 보낸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를 총칼을 든 군인이 아닌, 촛불을 든 시민들이 민주주의 절차를 지키며 이뤄냈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는 시스템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업 또는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해도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나라가 문제없이 운영될 수 있습니다... 촛불이 일어난 것은...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계속 외쳤습니다. 시스템을 복구하라고 말입니다... 언제든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마음속의 촛불을 꺼내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촛불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공정, 평등, 평화를 사회에 정착시키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987년에 미처 이뤄내지 못했던 일들이지요. 그리고 그 과제들을 풀기 위해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하며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역시 촛불의 경험이 알려주지요. 국민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 노회찬, [우리가 꿈꾸는 나라], '참여가 세상을 바꾼다', <창비>, 2018.


내가 유일하게 존경한 '진보정치인'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시기 전인 2018년 초, <창비>에서 주최한 특강 녹취록을 엮어 그가 운명을 달리한 후인 그 해 9월에 출간된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1987년 이후 체제는 거리에 모인 민중의 힘으로 '민족', '민중', '민주'를 쟁취했다. 
노회찬은 2016~2017년 '촛불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는 '공정', '평등', '평화'를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운영원리이며, 이러한 민의가 제대로 의회에 반영되는 정치제도와 선거제도 개혁이 그의 유일한 '정치노선'이었다. '대중투쟁'이냐 '의회주의'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등의 논쟁에 대하여 그가 일생의 고단한 삶을 통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한 답변이었다.

'혁명'은 체제를 뒤집는 것을 이르는데, '촛불'이 '혁명'이 아니라 '항쟁'이었던 이유는 '촛불'이 '체제변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상식적인 '복구'를 요구하고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이 '혁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담은 새로운 헌법개정으로 '제7공화국' 체제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역설한 [우리가 꿈꾸는 나라]다.



그는 '작가'는 아니었고 '정치인'이다 보니 '글'보다는 '촌철살인'의 '말'이 더 유명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멀리서나마 보아온 그의 '글'은 유명해진 그의 '말'보다 더 빛나기에, 나는 감히 그를 좋아하는 '작가'로 추천한다. 그의 '촌철살인'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매순간 치열하게 사색하고 행동하며 메모한 그의 '글'이 원천인 것이다. 
아마도, 그럴리는 전혀 었었을 것이나 '정치인' 노회찬으로 살지 않았다면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우리의 역사와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를 '진보적'으로 우리에게 재미있게 풀어 설명해주는 이웃집 '작가' 아저씨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작가 유시민보다 훨씬 더 친근한 그런.


노회찬 의원 2주기인 2020년 7월 들어 그의 책을 다시 뒤적이던 중,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입이 있는 자들은 숱하게 떠들어대고 있으나, 내게 떠오른 문장은 한 줄이었다.

'도적들은 이익을 지키고, 군자는 명예를 지킨다'

[논어], [맹자]에나 나올 법한 문장은 인용이 아니라 최근 비보를 듣고 무시로 떠오른 것인데,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같은 자들은 '무죄'를 주장하며 개인의 '이익'을 목숨걸고 지키려 하고 노회찬 같은 군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국 목숨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삼성 X 파일'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의원직까지 상실했던 노회찬은 오히려 당당했으나 '드루킹' 사건 연루설은 그에게 부르주아 법원에서 '유무죄'의 차원이 아니었다. '진보정치인'으로서의 '명예'와 그가 평생을 바쳐 복무했던 인민에 대한 '의무'의 문제였다.


스스로 진보정치의 '원칙'이 되고자 했고, 그 '원칙'을 세우기 위해 일생을 바친 유일한 '진보정치인' 노회찬 선생을 다시금 떠올리는 시간들이 덧없이 이어지는 나날이다.


"스스로 원칙인 사람. 원칙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또 관철된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1.17. 일지', <사회평론>, 2004.


***

1. [힘내라, 진달래], 노회찬, <사회평론>, 2004.
2. [우리가 꿈꾸는 나라], 노회찬, <창비>, 2018.
3.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노회찬, <일빛>,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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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나라 지혜의 시대
노회찬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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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들은 '이익'을 지키고, 군자는 '명예'를 지킨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2004), [우리가 꿈꾸는 나라](2018)



"... 정책을 인물보다 앞세우는 일은 시련의 연속이다. 정책으로 인격화되지 않는 인물은 정치적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 정책이 인물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이번 총선의 전투지침이다. 
모든 전투는 시련이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1.22. 일지', <사회평론>, 2004.


2004년 2월부터 시작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 속에서 그 해 4월 15일에는 17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299명 국회의원 중 신자유주의 '개혁'을 하려던 열린우리당이 152석, 그냥 수구세력 한나라당이 121석, 민주당과 자민련은 9석과 4석으로 찌그러졌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부유세' 등의 보편복지 정책과 1인2표 '정당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선거제도 개혁투쟁을 했던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하면서 4.19 혁명 이후 44년만에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간 첫 선거였다.

1992년 민중당의 실패 후에도 지침없이 '진보정당' 건설운동에 매진했던 '진보정치인' 노회찬 선생은 1997년 말 IMF체제와 함께 치러진 대선에서 '96년 총파업을 이끌었던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대선후보로 한 '국민승리21'의 중심에 있었고, 역시 2000년 초 창당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의 사무총장, 선대본부장으로 2004년 총선을 치른다. 이 해 1월부터 3월 말까지의 기록이 '총선 난중일기'라 불리는 [힘내라, 진달래]다. 

노회찬이 앞장선 민주노동당의 첫 총선에서 전국 각 지구당의 수많은 지역구 후보들과 당원들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부유세' 등 우리 사회 전례없던 보편복지 정책을 홍보하는 인간피켓이 되고 인간플래카드를 자처하며 이러한 의제들을 전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 이러한 '진보정당' 운동은 노회찬의 표현에 따라 "삼겹살 판을 갈기 위해" 그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간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념정당'이냐 '대중정당'이냐, '대중투쟁'이냐 '의회주의'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등등의 어려운 논쟁 속에서 '진보정당'이 몇 차례 부침을 겪으며 '의회' 중심의 '개혁'적 '대중정당'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당시 지구당의 후보들이었던 수많은 '소대장'들도 스러져 갔다. 함께 했던 '소총수' 당원들은 얼마나 남았을까 싶지만, "흐르는 물처럼 한 사람이 가고 한 사람이 태어난다('2004.1.16. 일지')"는 노회찬 총장의 말처럼 '진보정당'도 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어제의 그들과 같을 수는 없을 터. 
흐르는 물처럼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 변증법 제1조 1항이다.('2004.2.10. 일지')"


"라디오 토론이니 점잖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난투극이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서로 사과하라고 언성 높인다. 국민들 앞에 고개들 처지도 아닌데 희대의 영웅처럼 큰소리다. CBS의 좁은 스튜디오가 동물원 우리처럼 느껴진다.
이러니 점잖고, 상식적이고, 순박한 사람들은 정치권을 꺼려하지 않았는가. 그 정치권에 이제 민주노동당이 들어간다. 타잔이 되어야만 이 동물들을 다룰 수 있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3.3. 일지', <사회평론>, 2004.


후보와 이미지, 지역과 학연을 내세운 기존 정치와 선거에 맞서 보편복지 '정책'을 앞세운 '진보정치'가 노회찬을 비롯한 수많은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숙원이었다. 
"정책으로 인격화되지 않는 인물은 정치적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 정책이 인물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2004.1.22. 일지')"이라 상정한 17대 총선의 '전투지침'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보정당'의 선거지침이다.
'진보정치인' 노회찬은 갔어도 그의 '진보정치 지침'은 올곧게 남았다.


"여의도 나들목 부근은 어느새 밀려온 봄꽃 천지다. 개나리가 듬뿍 피어 있고 벌써 곳곳에서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3월 28일 아침 여의도.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꽃이 지금의 열우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율만큼 상륙해 있다.
힘내라, 진달래. 가슴도 눈시울도 연분홍이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3.28. 일지', <사회평론>, 2004.


'총선 난중일기' [힘내라, 진달래]는 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3월말에 끝나고 본 선거운동인 4월의 메모는 손질된 글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 해 총선 후 10월 이 기록들은 [힘내라, 진달래]라는 제목으로 "전태일 영전에 바친다"는 '서문'과 함께 출간되었고 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한다.

봄이 와서 노란 개나리가 흐드려지고 조금 늦은 연분홍 진달래가 꽃판을 조금씩 점령하고 물들여가는 상상. 기존 정치판에서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한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바램이었다. 
"힘내라, 진달래!"





"촛불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일까요? 잘못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감옥으로 보낸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를 총칼을 든 군인이 아닌, 촛불을 든 시민들이 민주주의 절차를 지키며 이뤄냈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는 시스템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업 또는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해도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나라가 문제없이 운영될 수 있습니다... 촛불이 일어난 것은...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계속 외쳤습니다. 시스템을 복구하라고 말입니다... 언제든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마음속의 촛불을 꺼내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촛불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공정, 평등, 평화를 사회에 정착시키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987년에 미처 이뤄내지 못했던 일들이지요. 그리고 그 과제들을 풀기 위해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하며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역시 촛불의 경험이 알려주지요. 국민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 노회찬, [우리가 꿈꾸는 나라], '참여가 세상을 바꾼다', <창비>, 2018.


내가 유일하게 존경한 '진보정치인'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시기 전인 2018년 초, <창비>에서 주최한 특강 녹취록을 엮어 그가 운명을 달리한 후인 그 해 9월에 출간된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1987년 이후 체제는 거리에 모인 민중의 힘으로 '민족', '민중', '민주'를 쟁취했다. 
노회찬은 2016~2017년 '촛불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는 '공정', '평등', '평화'를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운영원리이며, 이러한 민의가 제대로 의회에 반영되는 정치제도와 선거제도 개혁이 그의 유일한 '정치노선'이었다. '대중투쟁'이냐 '의회주의'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등의 논쟁에 대하여 그가 일생의 고단한 삶을 통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한 답변이었다.

'혁명'은 체제를 뒤집는 것을 이르는데, '촛불'이 '혁명'이 아니라 '항쟁'이었던 이유는 '촛불'이 '체제변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상식적인 '복구'를 요구하고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이 '혁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담은 새로운 헌법개정으로 '제7공화국' 체제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역설한 [우리가 꿈꾸는 나라]다.



그는 '작가'는 아니었고 '정치인'이다 보니 '글'보다는 '촌철살인'의 '말'이 더 유명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멀리서나마 보아온 그의 '글'은 유명해진 그의 '말'보다 더 빛나기에, 나는 감히 그를 좋아하는 '작가'로 추천한다. 그의 '촌철살인'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매순간 치열하게 사색하고 행동하며 메모한 그의 '글'이 원천인 것이다. 
아마도, 그럴리는 전혀 었었을 것이나 '정치인' 노회찬으로 살지 않았다면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우리의 역사와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를 '진보적'으로 우리에게 재미있게 풀어 설명해주는 이웃집 '작가' 아저씨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작가 유시민보다 훨씬 더 친근한 그런.


노회찬 의원 2주기인 2020년 7월 들어 그의 책을 다시 뒤적이던 중,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입이 있는 자들은 숱하게 떠들어대고 있으나, 내게 떠오른 문장은 한 줄이었다.

'도적들은 이익을 지키고, 군자는 명예를 지킨다'

[논어], [맹자]에나 나올 법한 문장은 인용이 아니라 최근 비보를 듣고 무시로 떠오른 것인데,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같은 자들은 '무죄'를 주장하며 개인의 '이익'을 목숨걸고 지키려 하고 노회찬 같은 군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국 목숨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삼성 X 파일'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의원직까지 상실했던 노회찬은 오히려 당당했으나 '드루킹' 사건 연루설은 그에게 부르주아 법원에서 '유무죄'의 차원이 아니었다. '진보정치인'으로서의 '명예'와 그가 평생을 바쳐 복무했던 인민에 대한 '의무'의 문제였다.


스스로 진보정치의 '원칙'이 되고자 했고, 그 '원칙'을 세우기 위해 일생을 바친 유일한 '진보정치인' 노회찬 선생을 다시금 떠올리는 시간들이 덧없이 이어지는 나날이다.


"스스로 원칙인 사람. 원칙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또 관철된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1.17. 일지', <사회평론>, 2004.


***

1. [힘내라, 진달래], 노회찬, <사회평론>, 2004.
2. [우리가 꿈꾸는 나라], 노회찬, <창비>, 2018.
3.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노회찬, <일빛>,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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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노회찬 지음 / 일빛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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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들은 '이익'을 지키고, 군자는 '명예'를 지킨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2004), [우리가 꿈꾸는 나라](2018)




"... 정책을 인물보다 앞세우는 일은 시련의 연속이다. 정책으로 인격화되지 않는 인물은 정치적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 정책이 인물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이번 총선의 전투지침이다. 
모든 전투는 시련이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1.22. 일지', <사회평론>, 2004.


2004년 2월부터 시작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 속에서 그 해 4월 15일에는 17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299명 국회의원 중 신자유주의 '개혁'을 하려던 열린우리당이 152석, 그냥 수구세력 한나라당이 121석, 민주당과 자민련은 9석과 4석으로 찌그러졌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부유세' 등의 보편복지 정책과 1인2표 '정당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선거제도 개혁투쟁을 했던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하면서 4.19 혁명 이후 44년만에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간 첫 선거였다.

1992년 민중당의 실패 후에도 지침없이 '진보정당' 건설운동에 매진했던 '진보정치인' 노회찬 선생은 1997년 말 IMF체제와 함께 치러진 대선에서 '96년 총파업을 이끌었던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대선후보로 한 '국민승리21'의 중심에 있었고, 역시 2000년 초 창당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의 사무총장, 선대본부장으로 2004년 총선을 치른다. 이 해 1월부터 3월 말까지의 기록이 '총선 난중일기'라 불리는 [힘내라, 진달래]다. 

노회찬이 앞장선 민주노동당의 첫 총선에서 전국 각 지구당의 수많은 지역구 후보들과 당원들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부유세' 등 우리 사회 전례없던 보편복지 정책을 홍보하는 인간피켓이 되고 인간플래카드를 자처하며 이러한 의제들을 전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 이러한 '진보정당' 운동은 노회찬의 표현에 따라 "삼겹살 판을 갈기 위해" 그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간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념정당'이냐 '대중정당'이냐, '대중투쟁'이냐 '의회주의'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등등의 어려운 논쟁 속에서 '진보정당'이 몇 차례 부침을 겪으며 '의회' 중심의 '개혁'적 '대중정당'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당시 지구당의 후보들이었던 수많은 '소대장'들도 스러져 갔다. 함께 했던 '소총수' 당원들은 얼마나 남았을까 싶지만, "흐르는 물처럼 한 사람이 가고 한 사람이 태어난다('2004.1.16. 일지')"는 노회찬 총장의 말처럼 '진보정당'도 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어제의 그들과 같을 수는 없을 터. 
흐르는 물처럼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 변증법 제1조 1항이다.('2004.2.10. 일지')"


"라디오 토론이니 점잖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난투극이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서로 사과하라고 언성 높인다. 국민들 앞에 고개들 처지도 아닌데 희대의 영웅처럼 큰소리다. CBS의 좁은 스튜디오가 동물원 우리처럼 느껴진다.
이러니 점잖고, 상식적이고, 순박한 사람들은 정치권을 꺼려하지 않았는가. 그 정치권에 이제 민주노동당이 들어간다. 타잔이 되어야만 이 동물들을 다룰 수 있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3.3. 일지', <사회평론>, 2004.


후보와 이미지, 지역과 학연을 내세운 기존 정치와 선거에 맞서 보편복지 '정책'을 앞세운 '진보정치'가 노회찬을 비롯한 수많은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숙원이었다. 
"정책으로 인격화되지 않는 인물은 정치적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 정책이 인물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2004.1.22. 일지')"이라 상정한 17대 총선의 '전투지침'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보정당'의 선거지침이다.
'진보정치인' 노회찬은 갔어도 그의 '진보정치 지침'은 올곧게 남았다.


"여의도 나들목 부근은 어느새 밀려온 봄꽃 천지다. 개나리가 듬뿍 피어 있고 벌써 곳곳에서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3월 28일 아침 여의도.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꽃이 지금의 열우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율만큼 상륙해 있다.
힘내라, 진달래. 가슴도 눈시울도 연분홍이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3.28. 일지', <사회평론>, 2004.


'총선 난중일기' [힘내라, 진달래]는 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3월말에 끝나고 본 선거운동인 4월의 메모는 손질된 글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 해 총선 후 10월 이 기록들은 [힘내라, 진달래]라는 제목으로 "전태일 영전에 바친다"는 '서문'과 함께 출간되었고 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한다.

봄이 와서 노란 개나리가 흐드려지고 조금 늦은 연분홍 진달래가 꽃판을 조금씩 점령하고 물들여가는 상상. 기존 정치판에서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한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바램이었다. 
"힘내라, 진달래!"




"촛불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일까요? 잘못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감옥으로 보낸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를 총칼을 든 군인이 아닌, 촛불을 든 시민들이 민주주의 절차를 지키며 이뤄냈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는 시스템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업 또는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해도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나라가 문제없이 운영될 수 있습니다... 촛불이 일어난 것은...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계속 외쳤습니다. 시스템을 복구하라고 말입니다... 언제든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마음속의 촛불을 꺼내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촛불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공정, 평등, 평화를 사회에 정착시키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987년에 미처 이뤄내지 못했던 일들이지요. 그리고 그 과제들을 풀기 위해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하며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역시 촛불의 경험이 알려주지요. 국민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 노회찬, [우리가 꿈꾸는 나라], '참여가 세상을 바꾼다', <창비>, 2018.


내가 유일하게 존경한 '진보정치인'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시기 전인 2018년 초, <창비>에서 주최한 특강 녹취록을 엮어 그가 운명을 달리한 후인 그 해 9월에 출간된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1987년 이후 체제는 거리에 모인 민중의 힘으로 '민족', '민중', '민주'를 쟁취했다. 
노회찬은 2016~2017년 '촛불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는 '공정', '평등', '평화'를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운영원리이며, 이러한 민의가 제대로 의회에 반영되는 정치제도와 선거제도 개혁이 그의 유일한 '정치노선'이었다. '대중투쟁'이냐 '의회주의'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등의 논쟁에 대하여 그가 일생의 고단한 삶을 통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한 답변이었다.

'혁명'은 체제를 뒤집는 것을 이르는데, '촛불'이 '혁명'이 아니라 '항쟁'이었던 이유는 '촛불'이 '체제변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상식적인 '복구'를 요구하고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이 '혁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담은 새로운 헌법개정으로 '제7공화국' 체제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역설한 [우리가 꿈꾸는 나라]다.


그는 '작가'는 아니었고 '정치인'이다 보니 '글'보다는 '촌철살인'의 '말'이 더 유명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멀리서나마 보아온 그의 '글'은 유명해진 그의 '말'보다 더 빛나기에, 나는 감히 그를 좋아하는 '작가'로 추천한다. 그의 '촌철살인'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매순간 치열하게 사색하고 행동하며 메모한 그의 '글'이 원천인 것이다. 
아마도, 그럴리는 전혀 었었을 것이나 '정치인' 노회찬으로 살지 않았다면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우리의 역사와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를 '진보적'으로 우리에게 재미있게 풀어 설명해주는 이웃집 '작가' 아저씨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작가 유시민보다 훨씬 더 친근한 그런.


노회찬 의원 2주기인 2020년 7월 들어 그의 책을 다시 뒤적이던 중,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입이 있는 자들은 숱하게 떠들어대고 있으나, 내게 떠오른 문장은 한 줄이었다.

'도적들은 이익을 지키고, 군자는 명예를 지킨다'

[논어], [맹자]에나 나올 법한 문장은 인용이 아니라 최근 비보를 듣고 무시로 떠오른 것인데,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같은 자들은 '무죄'를 주장하며 개인의 '이익'을 목숨걸고 지키려 하고 노회찬 같은 군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국 목숨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삼성 X 파일'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의원직까지 상실했던 노회찬은 오히려 당당했으나 '드루킹' 사건 연루설은 그에게 부르주아 법원에서 '유무죄'의 차원이 아니었다. '진보정치인'으로서의 '명예'와 그가 평생을 바쳐 복무했던 인민에 대한 '의무'의 문제였다.


스스로 진보정치의 '원칙'이 되고자 했고, 그 '원칙'을 세우기 위해 일생을 바친 유일한 '진보정치인' 노회찬 선생을 다시금 떠올리는 시간들이 덧없이 이어지는 나날이다.


"스스로 원칙인 사람. 원칙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또 관철된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1.17. 일지', <사회평론>, 2004.


***

1. [힘내라, 진달래], 노회찬, <사회평론>, 2004.
2. [우리가 꿈꾸는 나라], 노회찬, <창비>, 2018.
3.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노회찬, <일빛>,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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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이데올로기
토마 피케티 지음, 안준범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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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체제극복을 위해 '불평등'의 기원을 추적하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불평등… 핵심적인 문제는 불평등의 크기 자체라기보다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 [21세기 자본], <3-7. 불평등과 집중 : 기본적 지표>, 토마 피케티, 2013.


자본주의체제의 '불평등' 주제에 천착해 온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3년 [21세기 자본]이라는 저서를 통해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주류 경제학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노동' 대신 '인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고수한 그는 자본주의 체제 전환을 적극 주장하지는 않았다. 주요 내용은 자본수익률(r)은 4~5%인데 반해 경제성장률(g)은 장기적으로 1~1.5%이므로 이 'r>g'의 부등식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자본주의 체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인데, 이를 역사적으로 입증하는 300년 이상의 방대한 '불평등' 데이터로 무장한 그의 적은 '주류 경제학'이었다. [21세기 자본]에서 토마 피케티는 '자유주의'에 기반한 정치경제학자였다.




"결정적 문제는 불평등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의 기원이요, 정당화 도식이다... 모든 것은 다시금 불평등의 기원과 불평등의 정당화에 달려있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서론>, 토마 피케티, 2019.

"불평등'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적이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3-13. 하이퍼자본주의 : 현대성과 의고주의 사이에서>, 토마 피케티, 2019.

"각각의 불평등주의체제는 사실상 나름의 정의 이론에 기초한다. 불평등은 정당화되어야 하고 이상적인 사회적, 정치적 조직화의 그럴듯하고 일관된 관점에 의거해야 한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4-14. 경계와 소유 : 평등의 건설>, 토마 피케티, 2019.


토마 피케티는 2019년 "본인의 책 중 한 권을 읽는다면 이 책을 읽으라"며 최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내놓는데, 이 책에서 그는 '사회민주주의 현대화'와 '투명한 국제 누진세연대' 등을 결론으로 했던 [21세기 자본]보다 좀더 왼쪽에서 '정의로운 소유', '정의로운 조세(누진세)', 정의로운 교육' 등이 기반된 '참여사회주의'와 '정의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계', '대안적 조직화' 등에 바탕한 '사회연방주의'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를 자임한다. 
독점자본의 초집중화로 인한 '불평등' 심화와 이로 인한 자본주의체제 위기는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자를 6년만에 '사회주의자'로 만들었다. [21세기 자본]의 인기를 업고 전세계 투어를 하면서 청취한 여론과 더 방대해진 '불평등 데이터'의 영향일 수도 있다.

"특히 서유럽에서 20세기 민주사회주의와 사민주의가 거둔 대체로 긍정적인 결실을 감안하면...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사용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4-17. 21세기 참여사회주의를 위한 요소들>, 토마 피케티, 2019.


[21세기 자본]을 통해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한 그는 [자본과 이데올로기]로 이 '불평등'의 '기원'을 추적한다. 주류 '경제학'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경제학"을 학문적 배경으로 한 정치경제학자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의 방대해진 '좌파적' 버전으로서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유럽 외 다른 지역(인도,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까지 넓혀진 데이터와 1천페이지 이상의 분량으로 썼다. 굳이 이렇게까지 길게 쓴 이유는 하이에크나 '시카고학파' 등의 주류 경제학자나 '질서자유주의자'들을 데이터 뿐만 아니라 분량으로도 질식시키기 위함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과 함께 나는 몇 가지 주요 개념을 중심으로 서평을 해보고자 한다.
공산주의 몰락으로 신자유주의가 강화된 세계체제에서 사회민주주의는 국제연대를 통해 '현대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의 토마 피케티의 특징은, 기존 '좌파' 개념을 본인식으로 굳이 대체하는 것이기도 하다.





1. 철학적 기초 : 공정으로서의 '정의'



"혹자들은 어쩌면 내가 언급한 '정의'의 원칙들이 1971년 존 롤스가 정식화한 것들과 유사하다고 여길 것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타당성이 있다. 다만 유사한 원칙들은 훨씬 오래된 문명에서, 또한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조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을 덧붙여야만 한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4-17>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토마 피케티의 철학적 기초는 '평등'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정의'의 '자유주의'다. 그의 철학적 스승은 유럽의 칼 마르크스가 아니고 미국의 존 롤스다. '불평등'을 연구하는 피케티의 철학적 지향은 '평등사회'가 아니다. '정의로운 소유', 정의로운 조세', 정의로운 교육', 정의로운 경계' 등 '정의'이며, 정의론'의 관점에 따라 '불평등'은 철폐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화'되는 것이다. '불평등'이 정당하다는 게 아니다. '정당화'된 '불평등'은 불가피하다는 것인데, 그 '정의론'이 바로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의 사상이다. 즉, '정의'는 기본적으로 '평등'에 대한 요구이며, 사회의 '최소 수혜자'인 소수에게 '최대 수혜'가 보장된다면 그 '불평등' 또는 '차등의 원칙'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롤스는 기계적 '공리주의'에 대한 현실적 대안으로서 "쓸모있는 체계적 이론이 될 정의론을 제시함으로써 선을 극대화한다는 관념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고자 했다"(87절)고 [정의론](1971)에 쓰고 있다.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의 두 원칙... 첫째, 각자는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자유의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체계에 대하여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둘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과 같은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즉 (a) 모든 사람들의 이익이 되리라는 것이 합당하게 기대되고, (b)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이 결부되게끔 편성되어야 한다."
- 존 롤스, [정의론], <11절. 정의의 두 원칙>, 1971.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조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별은 공공의 이익을 근거로 한다'는 내용인데, 고전적인 과학적 사회주의가 주장한 '평등' 이념과 '생산수단 사회화' 정책을 지양하고 '공정'이나 '정의' 개념으로 '평등'을 대체한 1959년 독일 사민당의 고데스베르크 강령이나, 1971년까지 정립한 존 롤스의 [정의론]이 피케티의 철학적 기초다. 


2. '자본'과 '이데올로기'


"오늘날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이데올로기 투쟁과 정의 추구의 역사... 달리 말해, 역사에서는 관념과 이데올로기가 중요하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결론>, 토마 피케티, 2019.


피케티는 '자본'을 새삼스레 연구하거나 분석하지 않는다. 그에게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현 체제로서 경제학자임에도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역사에 주목한다. 마르크스에게는 '허위의식'이었고 알튀세르 등의 후학들에게는 '실질적'인 힘으로서 '이데올로기'는 피케티에게도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역사적인 정치관념이자 '불평등' 체제를 극복하는 현실적인 힘이다.


"역사에서는 사상들과 이데올로기들이 중요하다. 새로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구조화하는 것을 언제나 가능케 해주는 것이 바로 사상과 이데올로기다... 전반적으로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단절들과 과정들이 불평등의 축소와 변동을 가능케 했으며, 이는 우리의 가장 고귀한 제도들, 인류 진보라는 관념이 하나의 현실이 되도록 해주었던 그런 제도들(보통선거, 무상의무교육, 보편적 의료보험, 누진세)의 기원이다. 미래 역시 그러하리라는 것은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 현재의 불평등과 현행 제도는 보수주의자들이 뭐라 생각하든 유일한 가능태가 아니며, 그 자체로 지속적으로 변형되고 재창안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달리)... 내가 강조하는 것은, 관념의 영역, 즉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영역에 진정 자율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서론>, 토마 피케티, 2019.


[21세기 자본]에서 피케티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 분석틀인 토대-상부구조의 '사회구성체'를 '추상적'이라며 거부하는데, '불평등' 체제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극복하는 '이데올로기'의 '현실적'인 힘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는 현재 '불평등'의 원인으로서 '자본'과 함께 피케티 야심작의 제목이 된다.


3. '삼(3)원사회'-'소유자사회'-'신소유자사회'


"... 프랑스 혁명 당시 해결된 중심 문제는 정당한 소유 문제가 아니라 절대권력과 중앙집권국가 문제였다. 주요 목표는 지역 귀족 엘리트와 사제 엘리트의 절대권력을 중앙집권국가로 이전하는 것이었지, 소유의 광범위한 재분배를 조직하는 게 아니었다... 종교적 초월성에 의지했던 삼(3)기능 도식을 저버린 순간부터, 사회의 안정성을 보장해줄 새로운  답을 찾아야만 했던 것...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소유권에 대한 절대적 존중은, 혼돈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고 삼기능 이데올로기의 종언으로 인한 공백을 채워줄 새로운 초월성을 제공한다. '소유의 신성화'는 어떤 면에서는 분명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의 종언에 대한 답이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1-3. 소유자사회의 창안>, 토마 피케티, 2019.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의 '사회발전단계설' 중 자본주의 이전 단계인 '봉건주의'는 종교 사제계급과 세속 전사계급의 지배동맹이었는데 상업과 자본의 발전과 함께 '제3계급'인 부르주아지를 탄생시킨다.본인만의 개념을 만드는 피케티는 이 '봉건주의'와 '절대왕정' 시기를 '삼(3)기능사회' 또는 '삼원사회'로명명한다. '사제-전사-상인'의 3계급사회라는 것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이 '앙시앵 레짐'을 단두대로 보내고 '자본주의'를 공고히 한 '자유주의'적 혁명이었는데, 피케티의 개념으로는 '소유주의'다. 경제적 소유와 자산의 크기에 절대적으로 비례하는 권력의 시대로서 '소유의 (준)신성화'가 이루어진 사회라는 의미다. 


"칼 폴라니는 '소유자사회'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바로 문제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 사이의 애매함을 노정하는 '자유주의'라는 용어보다 '소유주의'가 여기서 문제되고 있는 것('사적소유의 준신성화')을 더 잘 포착한다고 본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3-10. 소유자사회의 위기>, 주83, 토마 피케티, 2019. 


피케티는 굳이 구분하려 하나, '이데올로기'로서 '소유주의'는 '자유주의'의 다른 이름이며, 자본주의 이전의 체제 '이데올로기'는 '삼원주의'다.
이러한 역사의 궤적에 따라 현대 초국적 금융자본주의는 '하이퍼자본주의'로, 그 지배적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는 '신소유주의'가 된다. 
피케티에 의하면 '신자유주의'의 발흥은 유럽의 '소유주의'로부터 미국의 '신소유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소유 집중의 진화와 관련해서는, 소유 집중이 언제나 소득 불평등보다 훨씬 강도높게 진행되었다는 점을 우선 상기하게 될 것이다... 자산 집중이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에 도달했을 때조차, 이는 소득 '불평등'의 가장 높은 수준에 필적한다... 20세기에 전개된 소유 집중의 감소는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되는 중대한 역사적 혁신이다. 자산은 물론 여전히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 하지만 근대사회의 역사상 최초로 총 재화의 상당부분(수십 %, 심지어 거의 절반)이 부유하지 않은 90%에 속하는 사회집단에 의해 보유되었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3-10>.


'신자유주의('신소유주의')'의 전개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중위계급(중산층)'의 등장 또한 목도되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소유의 초집중과 '불평등'의 극단적인 심화다.


4. '하이퍼자본주의', '브라만좌파'와 '상인우파' : '교육 균열의 반전'


"1990~2020년 하이퍼자본주의적인 디지털 세계화... 늘어난 운송수단 이용과 특히 정보기술로 가능해진... 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문화적이고 사회경제적이며 '정치적-이데올로기적'인 상호의존과 교류..."
- [자본과 이데올로기], <3-13>.


'신자유주의' 시대의 초국적 금융자본주의인 '하이퍼자본주의'는 '사회연방주의'의 기초 토대를 놓기도 하는데, 이는 <결론>에서 보기로 하고 피케티에 따르면 '하이퍼자본주의'는 다음과 같다.


"요약하자. 심대한 금융 불투명성과 병행된 강력한 소유 집중의 회귀는 21세기 초 현재의 '신소유주의' 불평등체제의 주요특징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는, 20세기에 관찰된 탈집중화가 중위 자산계급을 출현하게 했음에도 소유는 부단히 너무나 불평등하게 분배되었고 총자산 중 가난한 50%에게 돌아가는 몫은 미미했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3-13>.


한편, 이보다 앞서 '불평등'의 기원 추적으로서의 역사 속에서 '노예제사회'와 '식민사회'를 다루는 [자본과 이데올로기] 제2부에서는 특히 인도의 사례를 주요하게 다루는데, 인도는 뿌리깊은 힌두교적 계급주의와 영국 식민지 시기를 거쳐 현재는 10억이 넘는 대규모 연방체제로서 이전 [21세기 자본]의 '유럽 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일종의 '알리바이' 같기도 하다. 그의 광범위한 '불평등' 데이터들은 인도와 유라시아, 아시아와 남미까지 방대해졌으되 그 정도로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피케티의 인도사회 연구는 그의 '브라만좌파'와 '상인우파' 신개념을 만들어낸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진보적 노동자정당과 대중정당 운동의 초기에 보통선거권 쟁취를 통해 사민당, 사회당, 노동당 등의 지지자는 다수 노동자와 저학력층이었고 이 진보정당들은 힘없는 절대다수의 주요한 정치적 무기였다. 이는 유럽이나 미국 외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반 이 저학력 노동자들이 만든 보통교육 체계에서 이들의 자녀들이 교육을 받고 '다중엘리트체계'가 등장하는데, 진보정당을 고학력자들이 다수 지지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피케티는 이러한 현상을 "교육 균열의 반전"이라 표현하고 있다. 


"다중엘리트체계... 이 체계의 한편에는 고학력자들의 표를 사로잡는 '브라만좌파'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상위소득과 자산에서 항상 선두에 서는 '상인우파'가 있다... '브라만좌파'는 학문적 노력과 능력을 믿는다. '상인우파'는 사업에서의 노력과 능력을 강조한다. '브라만좌파'는 학력, 지식, 인적자본의 축적을 지향한다. '상인우파'는 무엇보다도 화폐, 금융자본의 축적에 의거한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4-14>.


이는 미국의 '공화당-민주당' 또는 유럽의 '보수당-사민/사회/노동당'의 '양당체제'의 의회주의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전후 계급주의 유형의 좌우 정당체계가 고학력자들을 빨아들이는 '브라만좌파'와 상위소득 및 자산을 빨아들이는 '상인우파'로 구성된 '다중엘리트체계'로 점차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 '브라만좌파'는 친재분배와 친시장 분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상인우파'는 민족주의적이고 사회토착주의적인 노선을 따르는 분파와 친기업 및 친시장을 견지하려는 분파 사이에서 역시 갈팡질팡한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4-15. 브라만좌파 : 미국과 유럽의 새로운 균열>, 토마 피케티, 2019.


'촛불항쟁'을 통해 다수의 힘으로 적폐를 청산한다던 우리 사회가 '수구적폐당-민주당'의 '양당체제'를공고히 할수록 더욱 강화되는 현상과도 닮아있다.


5. '사회토착주의'와 '정의로운 경계'


"21세기 '사회토착주의자'들의 누진세에 대한 의지박약... 사민당, 사회당, 노동당이나 루스벨트식 좌파정책과 연결되는 과거 전통에 결부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탈리아 오성운동은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걸로 보이는 기본소득에는 매료되지만, 기본소득에 재원을 조달해줄 누진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누진세에 대한 사회토착주의자들의 의지박약은 또한 수십년간 납세거부 이데올로기가 폭발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원리가 신성시된 결과다. 실제로 21세기 초의 하이퍼자본주의는 격화된 국가간 경쟁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4-16. 사회토착주의 : 포스트식민적인 정체성주의의 덫>, 토마 피케티, 2019.


유럽에서 제도권 좌파인 '사회민주당' 계열들이 '브라만좌파'화 되면서 다수 노동계급과 괴리되고 기득권인 '상인우파'와 공통지점이 많아지는 한편, '정치'외 '노동-환경-젠더' 등의 진보적 가치를 담는 다양한 진보정당이 부진한 틈에서 극우 파시즘이 다시 힘을 얻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어김없이 '인종주의' 또는 '민족주의'가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피케티는 이를 '사회토착주의'라는 신개념으로 설명한다. 이 세력의 특징은 전체주의, 파시즘, 다수의 실질적 정치 참여를 방해하는 '양당체제'로 나타나는데, 체제의 필연적인 경제위기를 기회삼아 국내 다수 노동자들의 배타적 '인종(민족)주의'를 자극하여 세를 키워나가는 정치세력이다. 이탈리아 '오성운동' 같은 경우는 보수우파와의 연합은 물론, '누진세' 도입은 관심없이 '기본소득'만을 주장하는데, 피케티는 지극히 경계하는 표현이기는 하나,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다.
현대 국가독점자본주의 역사에서 파시즘과 나치즘 등의 극단적 '전체주의' 정치세력이 '사회토착주의'의 기원인데, 다수의 실질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저해하는 '양당체제'에서는 '브라만좌파'든 '상인우파'든 같은 모습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는 피케티의 개념은 '정의로운경계'다.


6. 결론 :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


"... 1980~1990년 이후 관철되어온 초불평등주의적인 새로운 서사가 숙명은 아니다. 이 서사는 부분적으로 공산주의 파국과 그 역사의 소산이며, 이렇게 된 이유는 또한 지식의 불충분한 확산과 지나치게 경직된 분과학문 장벽들, 그리고 너무 자주 타인들에게 내맡겨진 경제 및 금융문제들에 대한 시민들의 제한된 전유에서 유래하는 것이기도 하다. 활용 가능한 역사적 경험들을 토대로, 나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계를 극복하고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참여사회주의'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요컨대, 이 사회주의는 보편주의적 평등주의를 향한 전망으로, 그 근간은 사회적소유와 교육, 지식 및 권력의 분유에 있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4-17. 21세기 참여사회주의를 위한 요소들>, 토마 피케티, 2019.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결론의 한 축은 '참여사회주의'인데, 기존 소비에트식 공산주의 체제와 그 아류들의 "초중앙집중화된 국가사회주의"와 대비되는 신개념으로서, '정의로운 소유', '정의로운 조세(누진세)', '정의로운 교육'을 토대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현대화'라는 [21세기 자본]의 결론을 더욱 구체화한 형태다.


"자본주의와 사적소유를 극복하고 '참여사회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나는 아래의 두 축에 입각할 것과 이를 심화시킬 것을 제안한다... 법률제도와 조세재정제도를 바꿔서, 한편으로는 기업 내 권력을 더 폭넓게 분유하여 자본의 진정한 사적소유를 제도화... 다른 한편으로는 막대한 소유에 강력한 '누진세'를 적용하는 가운데 자본의 일시소유 원칙을 확립..."
- [자본과 이데올로기], <4-17>.


소유와 자산의 '투명성'과 '정보공개'의 중요성을 주장한 [21세기 자본]의 결론에 이어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누진세'는 '소득'과 '상속' 뿐만 아니라 '연간누진소유세'의 '3종 세트'로 결합된 '부유세'로 구체화된다. 이는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닌데, 1914~1945년 세계대전과 경제 위기를 거치며 유럽과 미국에서는 법률로서 상위 자산계급에게 70~90%에 육박하는 '부유세'를 통해 보편복지의 재원을 마련하고 경제성장을 이룬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880~1914년의 유럽 '호시절(벨 에포크:belle epoch)'은 어느 시절보다 불평등했고 상위 자산계급에 대한 세율이 높지 않았으며, '소유자사회'를 공고히 했던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입법 과정도 전후의 누진세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피케티가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의 세제'는 연간누진소유세, 누진상속세와 누진소득세의 결합이다. 그에 의하면 누진소유세와 누진상속세는 국민소득의 5%, 누진소득세는 45% 상당한다.


"소유자사회의 몰락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소유관계를 조정하기에 알맞은 정치체의 규모라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제기한다. 경제무역 관계와 소유관계가 초민족적 수준에서 조직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소유자사회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길은 민족국가 이상의 정교한 어떤 형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인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3-10>.


[자본과 이데올로기] 결론의 다른 한 축은 '사회연방주의'인데, '정의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계', '대안의 조직화'를 그 내용으로 한다.

[21세기 자본]의 주요 결론 중 하나는 단연 '민주주의'였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체제전환' 또는 '체제극복'을 위해 '국제적 사회민주주의' 형태로서 소유의 재분배와 기후 위기 등에 대응하는 '유럽의회' 중심의 '유럽연합'으로의 전환과 국제연대를 지향하는 '정의로운 민주주의'와 '사회토착주의'를 극복하는 '정의로운 경계'를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자. 공적소유는 공권력으로 사적소유가 지닌 힘들의 균형을 잡는다. 사회적소유는 기업 차원에서 생산수단 통제와 권력 분유를 지향한다. 일시소유는 사적소유를 순환시키며 지나치게 막대한 보유가 지속되는 것을 막아준다... 사적소유 극복을 위한 이 세가지(공적소유, 사회적소유, 일시소유) 형태는 상호보완적이다. 달리 말해, 공적소유, 사회적소유, 일시소유의 혼합에 의거해야 자본주의를 현실적으로 그리고 지속가능하게 극복해낼 수 있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3-11. 사민주의사회들 : 미완의 평등>, 토마 피케티, 2019.


또한 '불평등'을 정당화하지 못하고 한계에 봉착한 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라는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그 '대안의 조직화'를 기획해야 한다. 그러나 피케티 또한 이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역사적 집단경험'에 기반한 '집단적 숙의'의 민주주의 과정 속에서 도출할 수 밖에 없다.


"계급투쟁과 달리, 이데올로기 투쟁은 인식과 경험의 분유, 타자에 대한 존중, 숙의와 민주주의에 기초한다. 그 누구도 정의로운 소유, 정의로운 경계, 정의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세금(누진세)과 교육에 관한 절대적 진리를 결코 보유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사회의 역사는 정의추구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분석한 경험을 토대로 나는 확신하건대, 자본주의와 사적소유를 넘어서서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에 기반한 정의로운 사회를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결론>, 토마 피케티, 2019.


토마 피케티가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스스로 말하듯, 그의 이러한 결론들은 현대 역사 속에서 유럽 사민주의 운동과 민주사회주의 운동의 '집단경험'의 연장선이다.
이것이 '불평등' 체제극복을 위해 '불평등'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한 피케티의 의 방식이다.



[어셈블리]의 '공통적인 것'이든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기본 재화'든 인간의 지식, 자산, 자본, 생산수단, 권력, 선거, 보건의료, 교육, 기후, 생태 등 일체에 대한 다수의 '재전유'를 기획하는 것.
이것이 현재 '민주적 사회주의'의 길이다.


"이 책에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목표가 있다. 
경제학, 역사학 지식에 대한 시민의 재전유에 기여하는 것."
- [자본과 이데올로기], <결론>, 토마 피케티, 2019.


***

1.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2.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3. [정의론](1971), 존 롤스, 황경식 옮김, <이학사>, 2014.
4.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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