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 삶의 역풍도 나를 돕게 만드는 고전의 지혜
이상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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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경전, [주역]은 '변증법'이자 '유물론'이다
-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이상수, <웅진지식하우스>, 2014.


"... [주역]을 만든 사람들의 점에 대한 생각... 이들은 인간의 길흉을 결정하는 것은 점괘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행동, '덕'과 '지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른 덕을 지니고, 바른 실천을 하고, '변화'에 바르게 대응하는 경우, 점을 쳐볼 필요도 없이 길하고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왕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기 '운명'에 관심을 가진다는 전제 아래 [주역]을 만들었다...
...
나도 [주역]을 만든 사람들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싶다. 정말 점을 치고 싶다면 주역점을 쳐라. 그것도 누구에게 의뢰하지 말고 스스로 쳐라. [주역] 번역서만 한 권 있으면 해결된다. 그것이 왕처럼 점을 치는 유일한 방법이다."
-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19~20장', 이상수, <웅진지식하우스>, 2014.


[주역(周易)]은 '점(占)'을 치는 책이 아니다. 유학의 '4서 5경' 중 하나인 [역경(易經)]이다. 흔히 '점'으로 길흉을 본다 하여 '음양오행설'이나 도교적 시각으로 볼 수도 있으나 [주역] 또는 [역경]은 엄연한 유학의 '철학' 경전이며 상고시대부터 세상의 이치를 밝히고 설명하기 위한 집단지성 '과학서'다. 학문 분야로서 '과학'이 없었던 그 시대는 '과학'이 '철학'이요, '철학'이 즉 '과학'이었다.


[주역]은 '인류 문화의 시조'라는 중국의 복희씨가 '8괘'로써 만물의 이치를 정리했고 이 '8괘'들을 겹쳐 '8X8=64괘'로 확장했으며, 주나라 문왕이 은나라 주왕에 의해 핍박받고 격리되었을 때 '괘사', 즉 각 괘에 관한 해설을 지었다고 한다. 주문왕의 아들이자 주무왕을 도운 주공 단이 각 괘를 이루는 '효사'를 지었다고 하여 이를 [역경]이라 이르고 이후 공자가 이에 대한 10개의 '역전(易傳)'이라는 '10익'을 써서 이 모두를 [주역]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미래에 대한 길흉 예측의 '과학'이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의미일 터, 고대시대 국가의 앞날과 전쟁의 승패들을 점쳤던 기록들이 무수하게 축적된 데이터들이 발굴되면서 당시 수천년 '예측 과학'의 빅데이터 집적물 중 하나가 [주역]이었을 수도 있다고 한다. 거북이 등딱지를 태우는 '복점(卜占)'과 '시초(蓍草)'라는 풀의 줄기를 나누어 치는 '시초점' 두 가지 중 '복점'은 등딱지를 남겼고 '시초점'은 [주역]의 거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후 3세기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 왕필(王弼)이 유가와 도가를 종합하고 지양하여 종합적 [주역주(註)]를 23세에 지었다 하는데 현재 널리 알려진 [주역]의 형태라고 한다.


"[주역]을 만든 사람들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은 인간이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일과 닮았다고 보았다... 
...
그래서 [주역]은 자연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주역]에는 하늘, 땅, 우레, 바람, 물, 불, 산, 연못 등 여덟 가지 자연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왜 하필 여덟 가지만 나오는 것일까?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나 불교에서는 우주 만물이 '지수화풍', 곧 땅, 물, 불, 바람 등의 '네 가지 큰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이 물, 공기, 불, 흙의 '네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고대인들의 공통된 사고방식이다. [주역]을 만든 사람들도 공기(하늘), 흙(땅), 물, 불의 '네 가지'가 만물을 구성한다고 생각한 점에서 다르지 않다. [주역] 지은이들은 이 '네 가지 원소'에도 각각 그늘과 볕의 성질을 부여했다."
- 같은책, '3장', 이상수.


고대인들이 보기에 세계를 이루는 '4원소'는 '공기(하늘)', '흙(땅)', '물', '불'이었는데, 동양에서는 [주역]의 '4괘'인 '건(하늘)', '곤(땅)', '감(물)', '리(불)'가 그것이다. 이것이 '태(연못)', '진(우레)', '손(바람)', '간(산)' 등으로 분화된 것이 '8괘'다. '괘(卦)'는 '음양(陰陽)'을 나타내는 막대기인 '효(爻)가 3개 겹친 형태다. 가장 작은 단위인 '효'는 '볕(양)'은 홀수이며 '-'로, '그늘(음)'은 짝수이며 '--'로 표현한다. 이 '효'가 아래로부터 1,2,3효로 세 개 겹친 각 형태에 따라 '건(乾)-태(兌)-리(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의 '8괘'로 교차하고, 각 '괘'가 교차한 조합들이 '8X8=64괘'가 된다. 
[주역]의 번역서들은 '양효'인 '-'가 여섯 개 겹친, 즉 '건괘' 두 개로 이루어진 '중천건괘'로부터 '음효'인 '--'가 여섯 개, 즉 '곤괘' 두 개로 구성된 '중지곤괘'로 이어지며 예순네 가지 변형를 거치는데, 생성하고 모이고, 변하다가 막히기도 하며, 나아가다 물러나는 각 '괘'들을 통해 세상사의 큰 궤적을 그리고 있다. 마치 헤겔의 '이성'이 '부정'의 과정을 거쳐 '절대이성'에 이르는 [정신현상학]의 '변증법'적 여정과 닮았으되 [주역]은 완성되지 않는다. 63괘인 '기제괘'는 '불(리)' 위에 '물(감)'이 있는 '수화기제'로 아래로 내려오는 물이 위로 올라가는 불을 끄는 완벽한 형태로 모든 일의 완성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마지막 64괘는 '미제괘'다. '물(감)' 위에 '불(리)'을 얹은 '화수미제'는 마지막까지 왔으나 다 건너지 못한 상태로 불완전하게 마무리되고 있다.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끝없는 순환을 암시한다.

'변화(變化)'의 경전, [주역]은 만물의 운동과 대립물의 투쟁, 상호침투와 양질전화 모두를 아우르며 세계를 묘사하고 해석하는 '변증법(辨證法)'의 경전이기도 하다.
'볕(양)'과 '그늘(음)'을 나타내는 '-'과 '--'도 그 자체 '불변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볕'은 숫자 '7'로 시간의 양이 쌓이면 숫자 '9'인 '늙은 볕'이 되고 또 시간의 양이 더 쌓이면 이 '양'은 '음'으로 전환된다. 짝수인 '8'로 나타나는 '젊은 그늘'로의 질적전환 후 또다시 '늙은 그늘'인 숫자 '6'이 된다. '볕(-)'이라고 다 같은 '불변효'가 아니라, '그늘(--)'로 양질전화하는 '변효'도 공존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주역]은 '변화'의 경전이다. '변화'를 어떻게 예측할 것인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예측은 반드시 조짐을 실마리로 삼는다. 오늘날 현대 과학의 어떤 예측도 결국은 조짐의 분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일기예보나 지진예측도 대기의 흐름이나 특정 자연현상을 조짐으로 삼아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조짐을 보는 눈은 혜안이다. 조짐을 보고 판단해낼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조짐을 보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눈을 감고 캄캄한 미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 같은책, '15장', 이상수.


서자 홍길동은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아버지 홍판서로부터 감금된 후 흉계에 의해 자객이 찾아오는 위급한 때 책상을 물리고는 '주역점'을 친다. 물론 자객을 죽인 것은 그의 도술이었으되, 홍길동은 격리된 어려움 속에서 [주역]을 연구했고 그 점괘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나 '의적' 또는 '반란의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인생의 '질적전환'을 도모한다.
주 문왕(周 文王) 서백 창(西伯 昌)은 격리된 곤란함 속에서 '64괘'를 연구하여 '괘사'를 지었고, 다산 정약용도 긴 유배시절 독창적으로 [주역] 연구서를 썼다.

그러나 '도적질' 같은 소인배의 길을 [주역]을 통해 예측할 수는 없다. '주역점'은 반드시 '군자'의 '도'와 '인의'의 '덕'을 중심으로 쳐봐야 하며 남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왕'처럼 쳐야 한다. 꼭 '왕'이 되라는 게 아니라 그만큼 '주체성'이 [주역]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주역점'은 "떳떳함이 있는 크나큰 시초를 빌립니다(가이태서유상:假爾泰筮有常)"하고 두 번 외친 후 점칠 내용을 명확한 명제로 읊고는 '시초(筮:서)'라는 풀줄기로 친다고 하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시초든 성냥개비든 이쑤시개든 신성한 가지 55개(1에서 10까지 더한 수) 준비한다.

2. 6개(음양 분화전 태초의 태극)를 빼고 49개를 두손에 임의로 나눠 쥔다.

3. 각 손에 든 갯수에서 '4'의 배수로 남기는데  예를 들어 한 손에 22개면 2개를 덜고 20개를 남긴다.

4. 다시 합친 숫자를 다시 양 손에 나눠 쥔 후, 이 방식을 총 세 번 반복한다.

5. 최종 남은 수를 '4'로 나눈다. 아마도 숫자 '4'는 '건곤감리'의 '4원소'일 것이다.

6. '6', '7', '8', '9' 중 한 숫자만큼 남는데, '7'은 '젊은 볕', '9'는 '늙은 볕', '8'은 '젊은 그늘', '6'은 '늙은 그늘'에 각각 해당된다.

7.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의 '효'를 얻는데, '젊은 효'는 '불변효'로 변하지 않는 '효'이며 '늙은 효'는 '변효'로서 '양'에서 '음'으로, '음'에서 '양'으로 전환될 운명이다.

8. 위의 방식을 여섯 번 반복하면 64괘 중 하나의 괘가 나오는데 이를 [주역] 번역서에서 찾아보고 앞날을 예측한다.

9. '변효'로 인해 64괘 중 얻은 결과가 다른 괘로 전환되는 내용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


[주역]은 '길흉'을 치는 점이 아니다. 
긍정의 괘가 나오더라도 그 안에 배태된 부정의 기미를 예측해야 하며 부정의 영향은 최대한 제거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없이 씩씩하고 당당한 '중천건괘'로 시작했지만 온갖 부침을 겪으며 결국 '화수미제'의 미완성으로 마무리되는 [주역]에는 완전한 '긍정'도 완전한 '부정'도 없다.
모든 만물은 운동하고 대립하며 서로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물러서기도 하는 '변증법' 자체다. 
한편으로 '운명'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으되, 자연만물의 이치로서 '숙명'에는 순응할 줄 아는 '유물론'이기도 하다.
조선을 건국한 고려말 '혁명가' 정도전의 '급진적 성리학'에서 보이는 '유물론'의 단초가 바로 [주역]이었으며, 그의 '혁명동지' 권근 또한 조선 건국 후 [주역] 연구서를 집필했다.
[주역]은 당시 '혁명가'들의 '자연변증법'이었다.


"[주역]을 지은 이들은 인간의 길흉을 결정하는 것은 점괘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행동, '덕'과 '지혜'라고 생각했다. 바른 덕을 지니고, 바른 실천을 하고, 변화에 바르게 대응하는 경우에는 점을 쳐볼 필요도 없이 길하고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왕과 같은 수준의 '책임의식'과 '주체성'을 가지고 점을 쳐야 한다고 했다. 주역점만이 아니다. 운명을 대하는 태도가 왕과 같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운명을 이겨낼 수가 있겠는가."
- 같은책, '20장', 이상수.


[주역]은 '변화'의 경전이며, '유물론'에 기초한 '변증법'의 경전이다.
우리가 '덕(德)'과 '지혜(智慧)', '책임의식(責任意識)'과 '주체성(主體性)'을 가지고 [주역]을 읽는다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갈 수 있다.

[주역]을 읽는 우리 모두가 '왕'이고 '홍길동'이다.


***

1.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이상수, <웅진지식하우스>, 2014.
: 21세기초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을 쓴 전 한겨레신문 기자 이상수는 뛰어난 [주역] 전공자다.

2. [주역 - 왕필 주](3세기), 왕필, 임채우 옮김, <길>, 1998~2013.
: 64괘에 관한 왕필의 주석

3. [주역 - 64괘 384효의 본질], 신창호, <역사인>, 2019.
: 명나라 학자 호광의 [주역전의대전]이 저본

4. [인생의 공식 64], 장경, <청림출판>, 2019.
: 전공자는 아니지만 작가의 [주역] 해설 내공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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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1 - 상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자본론 1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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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아직 '상품화폐론자'다.
- [자본론] 1권(1867), K. Marx,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6.




자본주의 체제전환의 대안 이념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믿는 나는 '상품화폐론자'이지만,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실제 현실 묘사' 이론으로서 MMT(Modern Money Theory : 현대화폐이론)의 '화폐이론'은 흥미롭다. 
그리고 대안적 정치경제 이론과 정책으로 더욱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내게 '화폐'란 '상품'에 내재된 '노동(력)의 가치'와 그 '노동시간'을 일반화하여 '상품 교환'을 매개하는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하나의 '필연적 상품형태'이다.

즉, '상품화폐'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고, '주권국가'의 '명령화폐'는 그 '현상'의 '묘사'인 것이다.




"모든 상품이 가치로서는 대상화된 인간노동이고 그 자체가 같은 단위로 측정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상품의 가치는 한 개의 특수한 '상품(화폐)'에 의해 공동으로 측정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이 특수한 하나의 상품이 자기들의 공통적인 가치척도, 즉 '화폐'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가치척도로서의 '화폐'는 '상품'들에 내재하는 가치척도(즉 노동시간)의 필연적인 현상형태다...
...
'화폐'는 끊임없이 '상품'이 차지하고 있던 유통장소를 차지하며, 그리하여 자기자신의 출발점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떨어져 나가면서, '상품'을 끊임없이 유통영역으로부터 끌어낸다...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운동은 실제로는 '상품' 자신의 형태변환의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
'화폐'는 어떠한 '상품'으로도 직접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질적으로나 형태상으로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물질적 부의 일반적 대표물이다."
- K. Marx, [자본론] 1권(1867), '1편 상품과 화폐 -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6.


이제,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상품'이 된 '화폐'는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단순한 요소인 '상품'의 유통과정의 매개물이 된다. '화폐'는 노동의 '사용가치'를 담보하지 않고 노동시간으로 측정되는 노동(력)의 '교환가치(일반적으로 유통되는 '가치')'만을 매개하면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의 결과'인 '잉여가치'를 은폐한다. 

'상품'으로서 '화폐'의 유통과정에는 바로 '노동'이 창출한 '잉여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노동의 가치(사용가치)'와 '노동력의 가치(교환가치)', 이 차이값으로서 '잉여가치'를 은폐한 '상품화폐'가 바로, 자본 스스로 '자기증식'하는 과정의 비밀이다.




"상품유통은 자본의 출발점이다... 상품유통의 소재적 내용(즉 사용가치의 교환)을 무시하고 다만 유통과정에 의해 발생하는 경제적 형태만을 고찰한다면, 우리는 이 과정의 최후의 산물로서 '화폐'를 발견하게 된다. 상품유통의 최후의 산물은 자본의 최초의 현상형태('상품')다.
...
어떤 화폐액을 다른 화폐액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금액의 차이에 의해서다. 그러므로 과정 'M(화폐)-C(상품)-M(화폐)'은, 그 양극이 모두 '화폐'이기 때문에, 양극의 질적인 차이에 의해 내용을 갖는 것이 아니고 오직 양극의 양적인 차이에 의해서만 내용을 가지는 것이다... 최초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을 나는 '잉여가치'라고 부른다... (자본) 스스로를 가치증식... 바로 이 운동이 이 가치를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
자본으로의 '화폐'의 유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왜냐하면 가치의 증식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이 운동의 내부에서만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운동에는 한계가 없다. 
이 운동의 의식적 담당자로서 '화폐' 소유자는 '자본가'로 된다. 그의 일신(그의 '주머니')은 '화폐'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다. 이러한 유통의 객관적 내용(즉, 가치의 증식)이 그의 주관적 목적이 되고 추상적 부를 점점 더 많이 취득하는 것이 그의 행동의 유일한 추진적 동기로 되는 한에 있어서만, 그는 '자본가'로서 (즉, 의지와 의식이 부여된 '인격화된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이윤추구 운동만이 그(자본가)의 진정한 목적이다."
- K. Marx, [자본론] 1권(1867), '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 - 4장 자본의 일반공식',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6.


'인격화된 자본'으로서 자본의 무한 가치증식운동을 담지하는 '자본가'는 노동자를 만나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구매하고 '임금'을 지급하는데, '임금'으로 지불되는 '화폐'는 '노동력(시간)'의 양적인 가치로 '노동'의 질적인 가치 일반을 사들여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창출한다.

[자본론] 1권은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단순하고 개별적이며 가장 대량적이고 일상적인 최초의 세포(V.I.Lenin)"로서의 '상품'의 생산과 운동과정에 대한 서술로부터 체제분석을 시작하는데, 'C(상품)-M(화폐)-C(상품)'으로의 전환과정, '상품' 유통의 필연적 현상형태로서 '화폐'와 그 '상품성', 그 유통을 추적한 후 '잉여가치'의 증식과정, 즉 '생산과정과 가치증식과정'으로 넘어간다.
양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리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자본투자를 통해 질적인 생산력 혁신을 이루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말이다.



"...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화폐' 소유자는 '상품' 시장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즉, 노동자는 '자유인'으로서 자기의 '노동력'을 자신의 '상품'으로서 처분할 수 있다는 의미와,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노동력' 이외에는 '상품'으로서 판매할 다른 어떤 것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의 노동력의 실현에 필요한 일체의 물건(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다...
... 
'화폐' 소유자가 교환을 통해 받는 '사용가치'는 '노동력'의 현실적 사용, 즉 '노동력'의 소비과정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화폐' 소유자는 이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물건(예컨대 원료 등)을 '상품' 시장에서 구매하며, 또 그것에 정당한 가격을 지불한다. '노동력'의 소비과정은 동시에 '상품'의 '생산과정'이며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이다."
- K. Marx, [자본론] 1권(1867), '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 - 6장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6.


나는 여전히,
'상품화폐'를 '본질'적 분석으로,
'명령화폐'를 '현상'적 묘사로,
인식한다.


***

- [자본론] 1권(1867), K. Marx,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89~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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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재정론은 틀렸다 - 화폐의 비밀과 현대화폐이론
L. 랜덜 레이 지음, 홍기빈 옮김 / 책담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MMT'의 '정치경제학'
- [균형재정론은 틀렸다](2015),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우리는 화폐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해줄 새로운 이야기 프레임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확산시켜야만 한다.
이 새로운 이야기 프레임은 시장, 자유교환, 개인의 선택 같은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사회라는 메타포와 공공의 이익 같은 개념들을 필요로 하며, 그런 것들로 개개인들의 사적 이익의 계산을 대체해야만 한다. 우리는 정부가 수행하는 적극적, 긍정적 역할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거기에 쓰이는 돈은 우리 모두를 윤택하게 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10. 결론 : 주권통화와 현대화폐이론',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세계적 금융 위기로 자본주의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전세계 '비주류' 경제이론가들이 이 체제의 '불평등' 문제에 천착하면서 체제 변혁의 이론인 마르크스주의와 그 실천 강령으로 '사회주의' 일반이 다시 주목받기도 하는 지금이다. 의도하든 아니든 '평등'이나 '정의', '분배'를 강조하고자 한다면 어쨌든 '사회주의' 영역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다수가 함께 잘 살려면, 자유로운 '시장'은 허상이며 좀더 평등한 '분배'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체제는 명실상부한 '금융자본주의'이기에 '화폐'라는 금융의 한 형태를 중심으로 현 체제 해석의 이론이 다시 제기되기도 한다. 이른바, '현대화폐이론(MMT : Modern Money Theory)' 이야기다.


미국 켄사스 주 미주리대학 경제학 교수인 랜덜 레이(Randall Wray)는 'MMT'의 주도적 이론가로 2015년에 이론적 연구와 블로그 소통의 내용들을 소재로 'MMT 입문서'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의 대안 경제학자 홍기빈 박사가 2017년에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국역 제목은 [균형재정론은 틀렸다]인데, 타협의 여지 없이 단호한 선언이다. 번역체도 단호하면서 시원시원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경계하면서 정부의 지출이 많아지는 것을 개인이 돈을 흥청망청 써서 거덜나는 것과 동일시하며 정부의 '균형재정'이 깨지는 것을 죄악시한다. 
이 책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MMT가 확신있게 주장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주권국가의 정부재정은 가정경제 및 기업과는 다르다는 부분일 것이다. '미연방정부가 예산을 운영하는 식으로 우리집 가정경제를 운영했다가는 파산이 날 것이다'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린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의 적자를 통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MMT는 이러한 비유가 그릇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권국가의 정부는 자국통화로 지불을 행하는 한 지급불능 상태에 처할 수가 없다. 이러한 정부는 자국 통화로 가치가 매겨진 채무에 관한 한,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언제든 모두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 우리(MMT)의 주장이다."
- 랜덜 레이, 같은책, '서론'.


경제이론을 쉽게 설명하기란 난망하다. 그러므로 나는 MMT를 개념 중심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현대화폐이론'이므로 우선, '화폐'부터 시작한다. 다음으로 '주권국가', '조세', '변동환율제', '기능적 재정론', '완전고용', '인플레이션', '불평등 해소', '수입통제'와 '자본통제' 개념들을 따라 '공공성'의 정책적, 정치적 문제로 마무리된다.


MMT는 고전적인 '상품화폐'설을 부정한다. 상품들이 교환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일반적 등가물'로서 '화폐'는 그 형태가 조개껍데기든 금속이든 동전이나 지폐든 관계없이 '계산화폐'이지 '상품'을 매개하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류경제학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주저인 [자본론]에서도 근거하고 있는 '상품화폐론'을 과감하게 폐기하는 MMT 입장에서 모든 '화폐'는 케인즈식 '계산화폐'이자 '주권정부'가 발행하는 '부채의 증표'로서 '명령화폐'다. 즉, '통화 발행자'인 '주권국가'가 정식 통화로 모든 사람들이 일률적으로 받아들이고 쓰게끔 '명령'하는 것이 '화폐'의 본질이며, 케인즈에 따르면 4천년 '국가'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이야기다.


"... '화폐'는 본래 지배자들이 신민들이 내야할 수수료, 벌금, '조세'의 가치를 정하기 위해 창조한 측량단위이다. 신민들 혹은 시민들을 부채 상태로 몰아넣게 되면 실물자원들을 동원하여 '공공'의 목적에 쓸 수 있게 된다. '화폐 유통의 추동력은 조세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창출된 자원들을 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화폐가 창조된 것이다. '조세'는 우선 실물의 재화 및 서비스 판매자들을 창조하기 위해 기능하며, 그 다음에는 '공공' 목적의 추구를 비롯한 여러 더 심화된 결과들로 만들어내게 되었다."
- 랜덜 레이, 같은책, '5. 주권국가의 조세정책'.


'명령화폐'성의 본질이 밝혀지면, 다음은 이 '통화 발행자'인 '주권국가'가 부과하는 '조세'의 역할이 밝혀져야 하는데, 예로부터 '국가권력'에 의한 강탈인 벌금이든 '십일조'든 모든 형태의 세금, 즉 '조세'는 1) '통화 유통을 추동'하고, 2) '총수요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화폐 유통의 추동력은 조세"라는 명제는 이 책에서 수십번 반복되는 말인데,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비유 역시 수십번 등장한다. 바로 '거시경제학'에서 '항등식' 이야기다. 즉, '거시경제학'의 주체들의 관계에서 '통화 발행자'인 국가(정부)는 '통화 사용자'인 '가계(개인)'와 '기업'과 달리 대차대조표상 '적자'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것인데, 정부의 '지출(적자)'은 금융자산의 형태로 중앙은행의 준비금으로 쌓이고 이는 각 운행의 준비금으로 이전되면서 다른 민간 주체들의 '소득(흑자)'이 된다는 '항등식'이다. 두 사람이 맞춰 추는 '탱고'처럼, 공적 정부의 '적자'는 민간의 '흑자'라는 얘기다. 통화를 발행하는 정부는 '소득'이 있은 후에 '지출'을 행하는 민간 주체들과 달리 '지출'을 먼저 행하고 '조세'를 걷는데, 정부가 행한 '지출'을 전부 '조세'로 거둬들여 '균형재정'을 이루면 민간 주체들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짠돌이 국가'의 국민들은 '가난하다'.


"... 그냥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이야기야? 그렇다. 바로 그거다."
- 랜덜 레이, 같은책, '서론'.


'통화 발행자'인 국가는 무한대로 '돈'을 찍어낼 여력이 있다. 재무부는 '포인트'와 같은 '주권통화'를 "엔터키를 때려서" 은행의 준비금으로 쌓는다. 이 얘기를 들은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민간 주체들은 경악하면서 '인플레이션'을 걱정한다. 여기서 '변동환율제'는 국내 통화 가치의 무한정 하락을 방지하는 유효한 정책이 되고, '균형재정론'의 대안인 '기능적 재정론'은 경기변동에 따라 재정정책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면서, 이렇게 '무한정' 발행되는 '돈'들은 케인즈식 '유효수요'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의 노동과 소득을 창출하는 '완전고용제' 정책으로써 국가의 '총수요를 안정화'한다. 물론 '일자리 보장/최종 고용자'로서의 국가의 역할은 20세기 중후반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외 다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채택되지 않은 정책이다. 그들은 거대 금융기관에 천문학적 '공적 지출'을 행하면서 한편으로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잡는 정책들을 시행했는데, MMT는 정부의 무한대 '지출 여력'을 통해 노동대중의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최종 고용자'로서 '완전고용'을 통해 '총수요를 안정화'하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한다. 소득과 임금이 일정하게 오르는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할 뿐더러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게 MMT의 입장이다.


"... '노동'은 모든 생산 과정에 들어가는 투입물이므로 이 (일자리 보장/최종 고용자) 프로그램으로 임금이 안정화되면 그에 비례하여 모든 생산물의 생산 비용 또한 더 안정화될 것이다... 우리(MMT)의 주장은 이 '일자리 보장/최종 고용자' 프로그램이 통화의 국내적, 대외적 가치 변동에 있어서 하나의 무게중심을 제공하며, 이렇게 하여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실제로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얻어 보수를 지급받을 권리는 '인권'의 일부라는 것이다."
- 랜덜 레이, 같은책, '8. 완전고용 및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


MMT는 스스로의 정책을 "좌파도 우파도 아닌" 이론으로 "실제 현실의 묘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공공성'을 추구한다는 명확한 선언을 하면서 '진보'와 같은 편임을 천명한다. MMT는 자신들의 정책이 개발도상국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현실의 묘사"로서 피할 수 없는 형태이며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재정적자를 내는 미국 정부가 전세계 무역에서 다른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도할 수도 있다는 다분히 '윤리적'인 결론을 비추기도 하나 이 지점은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더라도, '주권국가'들의 주체적 '재정적자'를 통해 노동대중들의 소득을 안정화하면서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으면, 만일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해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 방지를 위해 "부자들에게 전가"하는 '불평등 해소'의 적극적인 계급적 정책을 내놓기도 한다. 단, 토마 피케티식의 '누진세'나 '부유세' 등의 지출 사후적 조세적 형태보다는 다수의 '소득 안정화' 등의 사전적 조치를 선호한다. 
MMT가 '진보'의 편인 이유는, '노동'을 중요한 '인권'으로 인식하고 다수 '노동'의 가치를 무엇보다 정치(정책)적으로 중시하기 때문이다.


"MMT의 여러 원리는 모든 '주권국가'에 해당된다. 그렇다. 모든 '주권국가'는 국내의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무역적자를 낳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통화 환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이것이 인플레이션 전달장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권통화'를 발행하는 정부라면 이러한 결과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많이 갖게 된다. '수입 통제'와 '자본 통제'가 그 예이다. 국가의 직접고용, 직접투자, 그리고 전략적 발전 등의 정책들도 취할 수가 있다."
- 랜덜 레이, 같은책, '10. 결론'.


이 책은 어쨌든 '경제학' 책이므로, '경제학'이 어려운 독자는 '서론'과 '결론'을 먼저 읽고 '본론'은 나중에 순서대로 읽되 중간 박스 기사들은 이해 안되면 건너뛰는 게 좋을 듯 싶은 게 내 독후감이다. 그만큼, 같은 명제들이 여러 번 반복되며, 이 내용들은 '서론'과 특히 '결론'에서 강조되고 있다. 


"실제 현실의 묘사"이자 "금융 공공성"을 지향하는 MMT의 화두는 결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며, "화폐의 본성에 대한 이해로 시작하는 하나의 '세계관'을 내놓고 있다(같은책, '9. 인플레이션과 주권통화')."

그러므로, 노동대중 다수의 '소득 안정화'를 통해 함께 잘 사는 '정치경제학'을 지향하는 MMT의 또 다른 결론 중 하나는 '자유 시장'의 허상을 깨는 "자본 통제"일 수 밖에 없다. 20세기 중반의 케인즈와 칼 폴라니, 현재의 장하준 등의 '진보' 경제학이자, 수학 공식과 '균형재정'에 기반한 주류 '경제학'을 넘어서 국가권력의 적극적 '정치(정책)'를 강조하는 또 하나의 '진보'적 '정치경제학'인 것이다.


"... 우리 모두가 우리 스스로를 돌보는 것...
정부가 돈이 떨어지는 상황이란 있을 수가 없다. 정부는 우리 모두를 돌볼 재정적 여력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기술적으로 현실성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행해볼 재정적 여력이 있다. 문제는 기술, 자원, 정치적 의지이다. 우리에게는 기술과 자원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를 굳건히 하여 정치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 프레임이 필요하다."
- 랜덜 레이, 같은책, '10. 결론'


***

-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 화폐의 비밀과 현대화폐이론(MMT)](2015),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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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B - 3집 The Third Wave [재발매]
공일오비 (015B) 노래 / 대영에이브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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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생각을 끊어야지...]


중년이 꺾어지고 또 꺾어지는 이 가을에,
오랫만에 듣게 된 내 어릴적 대중가요를 기화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부질없고 찌질한 내 옛 시절이 자꾸자꾸 떠올라 끊었던 담배를 사러 그 새벽에 기어이 뛰쳐나가고야 말았다.


1. 'Santa Fe' - [015B] 3집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효종이와 우리집 반지하 방에서 함께 살았다.
등교 10분 거리라 같이 거의 지각하면서.

대입이 끝난 후 효종이는 구리 돌다리 사촌누나 집으로 홀연히 떠났고,
나는 내 '서정의 기원' [015B]의 '세번째 물결' 뒷면 첫곡 'Santa Fe'를 들으며 망우리 공동묘지를 넘어 친구를 찾아갔다.
형들이 많아 조숙했던 효종이는 '비틀즈' 밖에 모르던 내게 '팝송'이 뭔지 가르쳐주었고, '개그욕심'을 일깨워 주고는 기약없이 떠난 터였다.
그렇게 다가올 스무살에는 오로지 나 혼자 '개그'를 해야했다.

이 곡을 떠올리면,
92년 말 93년 초 그 겨울길과,
새로 시작될 우리들의 불안한 청춘과,
겨울입김을 담아 내뿜던 담배연기에 실린 우리들의 농담이 짙게 배어온다.


2. '여름 이야기' - [무한궤도] 1집

"잊어버렸던 첫사랑의
설레임과 떨려오는
기쁨에 다시 눈을 감으면
너는 다시 내곁에 예쁜
추억으로 날아들어
내 어깨 위에 잠드네~"
- '여름 이야기', [무한궤도] 1집, 1989.

고등학교 때 친구 철호네 집에서 처음 알게 된 [무한궤도 1집] '여름 이야기'를 들으면,

동대문구 이문동 충남수퍼 앞 횡단보도와 그곳에 서 있는 여자아이가 왠지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혼자 좋아했던 오미나랑 고등학교 때까지도 우연히 마주치면 뒷모습까지 계속 눈으로 쫓던 김화영이 생각난다.

물론,
찌질하고 못생겼던 나는 말 한마디 붙여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무한궤도]의 '여름 이야기'를 흥얼거리면, 그 여학생은 "예쁘게 날아들어 내 어깨 위에 잠들었다."

아울러,
내게 [무한궤도] 뿐만 아니라 너무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면서 초딩때부터 줄곧 붙어다녔던 내 오랜 친구 철호가 늘 건강하게 나랑 오래오래 붙어서 놀아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3. '눈물나는 날에는' - [푸른 하늘] 2집

"나에게 올 많은 시간들을
이제는 후회없이 보내리
어두웠던 지난날을 소리쳐 부르네
아름다운 나의 날을 위하여~"
- '눈물나는 날에는', [푸른 하늘] 2집, 1989.

중학교 때는 큰 누나가 이선희, 셋째 누나가 전영록에 빠져 카세트 테이프를 사댔는데 나는 레코드점 한 번 못 가봤다.
그 때는 '좀 놀아보이던' 키 큰 친구 민상이가 멀리서 놀자고 불러도 삥뜯길까봐 도망가던 내 인생의 '중세 암흑기'였다.

고등학교 올라가서 친구들을 많이 만나 내 인생은 '근세'에 접어들었는데, 친구들 생일선물 사려고 레코점을 몇 번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생일이 세 개나 되던 민상이로부터 '푸른 하늘'과 '윤상'을 알게 되었다. 특히 [푸른 하늘] 테이프는 민상이에게 한 번 빌리면 반납 안하고 '존버'하다가 수차례 독촉을 받고 거의 절교 전 결국 테이프 다 늘어진 다음에 돌려줬다.

1981년에 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살던 '이오사' 높은 구석집과 여인숙 단칸방에서, 일요일 아침 KBS에서 하던 [디즈니]와 MBC '명작만화'를 누나들과 옹기종기 보던 어린시절도 흐리게 떠오른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마 그 여인숙에서 잠깐 본 것 아니었을까.

아무튼,
원래부터 심하게 구겨져 있던 가세가 펴진 적이 없던 어린 나와 민상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꼭 남들처럼 풍족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4. ...
담배를 안 피우려면,
옛생각을 먼저 끊을 일이다.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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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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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를 돌면
- [빨간 머리 앤](1908), 루시 몽고메리, 최지현 옮김, <보물창고>, 2011.




"다행히 매튜는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면할 수 있었다. 매튜가 자신에게로 오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여자 아이는 햇볕에 그을린 앙상한 손으로 낡아빠진 구식 여행가방의 손잡이를 잡고 일어서더니 남은 손을 매튜에게 내밀었다.
'초록 지붕 집의 매튜 커스버트 씨죠?'
아이는 독특하게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아저씨가 저를 데리러 오지 않으면 어쩌나 막 걱정을 하던 참이었어요.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서 아저씨가 오지 못하는 걸까, 상상하고 있었어요. 혹시라도 오늘 밤 저를 데리러 오지 않으시면 기찻길을 따라 가 저기 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야생 벚나무에 기어 올라가서 밤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참이에요. 전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온통 하얗게 꽃이 핀 벚나무에서 달빛을 받으며 잠을 자는 건 정말 낭만적이지 않을까요? 대리석으로 꾸민 커다란 방에 살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아저씨가 오늘밤에 오지 못하더라도 내일 아침에는 꼭 오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매튜는 아이의 작고 앙상한 손을 어색하게 잡고는 당장 어떻게 할지 마음을 정했다.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이 아이에게 착오가 있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 마릴라가 대신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 [빨간 머리 앤], <2. 매튜 커스버트, 놀라다>, 루시 몽고메리, 1908.


내가 어릴적인 1980년대는 방송국에서 'TV 명작동화' 시리즈를 줄창 틀어줬다. 전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우리집에는 노란색 표지의 <세계위인전집>과 <세계명작동화>가 한 질씩 있었는데 'TV 명작동화'를 감명깊게 본 후 '원작'을 꺼내 읽곤 했다. 가장 많이 읽은 내 '인생동화'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이었다. 두번째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 전집에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앨리스 애니메이션은 일본 것이 아닌 월트 디즈니판으로 기억난다. 세번째 감명깊은 게 [빨간 머리 앤]인데, 그 전집의 앤을 다 읽었는지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 TV 시리즈와 동화전집이 뒤죽박죽되면 책을 읽었는지 만화를 본 건지 경계가 모호하다.

처가 둘째 딸 읽으라고 사준 [빨간 머리 앤]을 최근 우연히 읽고 나니, 사실 나는 루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을 처음 읽은 거였다. 열네살인 둘째에게 '앤이 열여섯살에 끝나더라'라고 전하니 옆에서 듣던 처가 '앤이 열여섯에 죽느냐?'고 묻는 걸 보니 처도 안읽은 거였다. 


1874년에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태어나 외조부모 손에 자란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는 외지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홀로된 외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자전적 이야기를 각색하여 [빨간 머리 앤]을 18개월간 지었다고 한다. 2년간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다가 1908년에 보스턴 출판사에서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후속 얘기를 쓰기도 했다.
수다스럽고 끊임없이 떠들어제끼며 '상상개그'를 날려대는 열한살 빨간 머리 앤은 아마도 루시 몽고메리 본인의 자화상이었을 게다. 1995년 조숙한 여자아이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 [새의 선물]의 그 꼬마가 작가 은희경 본인이었을 거라는 그 추측처럼.

마차타고 달리는 가로수길을 '기쁨가득 새하얀 길'로 이름붙이고, 본인의 빨간 머리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며, '앤'이라는 이름은 촌스럽고 평범하니 '코델리아'라고 불러주거나 아니면 끝에 'e'가 붙는 '앤(Anne)'으로 불러달라고 막무가내로 부탁하는 열한살 고아소녀의 특징은 단연 '상상력'이다. 결국 머리가 좋고 시골학교에서 성적도 좋아 도시의 사범학교 같은 곳으로 진학하기도 하지만, 앤의 '개그'는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과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일 수 있겠다. 매튜 아저씨를 만나자마자 내던지는 장황한 말들은 아마도 기차역에서 그를 기다리는 내내 연습하고 외워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아, 제발 저를 코델리아라고 불러 주세요. 어차피 제가 여기서 잠시 동안만 있을 거라면 아주머니가 저를 뭐라고 부르든 아무 상관없잖아요. 앤이란 이름은 너무 낭만적이지가 않아요."
- [빨간 머리 앤], <3. 마릴라 커스버트, 놀라다>


이런 식이다. 남자 아이를 입양하여 일꾼을 만들려던 매튜와 마릴라 커스버트 독신남매가 착오로 여자 아이가 온 것을 알고는 초록 지붕 집에 살지 못할 수도 있는 '절망' 앞에서도 '상상'과 '개그'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과 '절망'의 극과 극을 오가는 이 빨간 머리 소녀는 당장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하더라도 '유언개그'를 날릴 참인데, 사실은 불우하고 가난한 환경을 버텨낸 힘이 그것이다. 교사인 부모가 열병으로 일찍 돌아가고 어린 나이부터 다른 집 더부살이를 하며 보모일을 했고 그조차도 여의치 않아 고아원에 갔을 때는 깨진 유리에 비친 자신과 숲에서 메아리치는 본인 목소리에 이름을 붙여 끊임없이 상상하고 대화하면서 수련한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다. 절친 다이애나에게는 슬쩍 "가난해서 위안이 되는 게 한 가지 있지. 상상할 것들이 많다는 거야."라며 '비기'를 전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는 건 그래서 나쁜가 봐요. 그 사실을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하고 있어요. 어릴 때 그렇게 원하던 것도 막상 가지고 보면 그다지 멋지지 않거든요."
- [빨간 머리 앤], <29. 새로운 경험>


끊임없이 수다를 떨던 앤은 열세살을 넘어가는 '틴에이저'가 되면서 말수가 다소 줄었는데, 서구에서는 '-teen'으로 끝나는 13세부터 19세까지가 'Teenager'라 하니 우리로 치면 '사춘기'가 되었는지 마릴라 아주머니한테 제법 어른스러운 말과 표정을 지어주기도 한다.


"마릴라는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말끝에 한숨을 내쉬었다. 앤이 자란 걸 보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진 것이다. 자신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 눈앞에는 진지한 눈빛과 사려 깊은 듯한 눈썹, 그리고 당당한 표정을 한 키 열다섯 살짜리 소녀가 서 있는 것이다."
- [빨간 머리 앤], <31. 시냇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


'모태독신녀'로 알려진 마릴라 아주머니는 사실 앤의 수다개그와 상상개그를 핀잔은 하지만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만큼 말수가 줄어들고 커가는 앤을 보며 무척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고 앤이 애써 무시하려는 '훈남' 길버트의 아버지와의 젊은 시절 '썸'타던 얘기도 해준다. 
자녀와 함께 크고 그만큼 변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난 나 이외의 어느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아. 평생 동안 다이아몬드로 위로를 받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야. 난 진주 목걸이를 한 초록 지붕 집의 앤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 매튜 아저씨가 분홍 드레스 부인의 보석보다 훨씬 더 깊은 사랑을 그 목걸이에 담아 주셨다는 걸 난 아니까."
- [빨간 머리 앤], <33. 호텔 발표회>


그래서 우리가 [빨간 머리 앤]을 보며 그 아이의 성장을 통해 배운 것은 미친 '상상력'과 주체못할 '개그욕심'만은 아니다. 바로 빨간 머리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주근깨에 빼빼 말라 미남과 결혼도 못할 것이며 이름마저 촌스러운 불완전한 본인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존감'이다. 본인 뿐 아니라, 자신을 만들어준 환경과 함께해 준 사람들과 그 힘으로 성장하는 '나' 이외의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힘이다.


"... 이제 그 이정표에는 모퉁이가 있네요. 그 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을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 믿을래요. 모퉁이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에요."
- [빨간 머리 앤], <38. 모퉁이를 돌면>


매튜 아저씨가 심장병으로 죽은 후 대학 장학금까지 포기하며 마릴라 아주머니가 홀로 남은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교사로 돌아오는 앤의 선택은 그렇기에 빛이 난다. 더 좋은 길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나 불행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어릴 때는 하루에 열두번도 더 '불행'과 '행복', '절망'과 '희망'를 넘나들던 상상력의 천재가 생각하지 않을리는 없다. 다만 이제 열여섯살 다 큰 앤은 그 생각을 수다로 풀지 않고 더 멋진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승화하는 것이리라.
자신이 바라보던 이정표에서 '모퉁이'를 발견했고, 그 '모퉁이'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멈칫하는 대신 앤 특유의 '상상력'과 '개그'로 극복하는 것.
[노자]가 말한 "대직약굴(大直若屈)"의 [빨간 머리 앤]식 표현이다. 역시 '크고 곧은 길은 작게는 굽어보이는 법'일테니.


스스로를 모태로 창조했을 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냈을 몽고메리는 결국 '모퉁이를 돌며' 이야기를 끝낸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는 법이다!"
- 루시 몽고메리


***

1.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 루시 몽고메리, 최지현 옮김, <보물창고>, 2011.
2. [빨강 머리 앤], 몽고메리, <교원>, 2006.
3. [새의 선물], 은희경, <문학동네>,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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