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nderful Wizard of Oz (Paperback) Collins Classics 40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 HarperPress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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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마음 속으로의 여행
- [오즈의 마법사], 라이먼 프랭크 바움, 1900.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집이 회오리바람에 두세 번 돌더니 하늘로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도로시는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는 줄 알았다.
북풍과 남풍이 도로시의 집에서 만나며 그 집을 '사이클론'의 중심으로 삼았던지, 그 중심은 고요했으며 집의 사방 주변 강풍의 강한 압력으로 갈수록 높이 높이 상승하다가 회오리바람의 정점에서 붕 떠서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로시는 무서움은 이겨냈으나 외로웠고 바람소리가 너무 커서 귀를 먹을 지경이었다. 처음에 도로시는 집이 추락하면 온몸도 산산조각 나리라는 두려움에 떨었으나 한참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걱정을 멈추고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침착하게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윽고 도로시는 흔들리는 거실을 기어 침대로 들어 누웠고 강아지 토토도 그녀 옆에 살며시 누웠다.
요동치는 집과 무섭게 부는 바람에도 도로시는 곧 눈을 감고 잠들었다."
- [The Wonderful Wizard of Oz](1900), '1. The Cyclone', Lyman F. Baum, <Collins Classics>, 2013.에서 필자 번역.


2019년 담배를 끊은 새해 첫날부터 올해도 일출시간에 맞춰 마을 뒷동산에 오른 건, 굳이 떠오르는 해를 보고자 한 건 아니었다. 
날이 흐려 못 볼 수도 있음에도 눈 비비고 일어나 인적없는 오르는 길도 올려보고 올라온 길도 돌아보며 작년의 마지막 달도 손을 들어 보내준다. 변함없이 누워계실 초안산의 내시와 궁녀들의 버려진 묘들을 지나 정상에서 동북쪽을 보고 있노라면 동쪽에서는 새해 첫 해가 이미 세상을 밝히고 난 후다. 그제서야 동쪽을 향한 채 해가 중천을 향해 시동을 걸 때 쯤 주위를 둘러보면 문전성시를 이루던 동네 일출객들은 모두 떠나간 지 오래다. 
목적을 이루면 미련없이 자리를 뜨는 무서운 인간세상이다.


'해'를 동경하던 '소년' 시절, 좋아했던 동화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시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 세 권이었다.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도로시는 내겐 그저 앨리스의 '짝퉁' 정도였고, 원래 본인이 가지고 있었을 '지혜', '마음', '용기'의 덕목을 일깨워주는 내용은 뭐 [피노키오]식 교훈을 넘지 않았다.

사실, 어른이 되어 '동화'를 생각했을리 없는 게, '현실'은 '동화'와 거의 정반대였고, 아니 오히려 그 '현실'을 유지하려는 어른들이 부러 아이들에게 정반대의 '동화'를 다시 캐내고 각색하고 있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나도 부모가 되었고 내 아들딸에게 '동화'를 읽어주게 되었다. 창작동화보다는 내가 어릴 때 감명을 받았던 '고전동화'를 위주로 읽어주며 아빠인 나도 그것들을 새롭게 다시 읽게 된다. 사실 [보물섬]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말고는 어른이 되도록 '성인판'으로 읽어보지 못했다는 걸 새삼 알기도 했다.

라이먼 프랭크 바움(Lyman F. Baum : 1856~1919)은 미국 극작가인데 샤를 페로나 그림 형제, 안데르센 등 배경이 다소 '레트로'한 그보다 조금 앞선 유럽의 고전동화 작가들에 비하면 다소 미래적 '판타지' 작가에 가깝다. 주인공 도로시(Dorothy)는 1865년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를 모델로 한 것이 맞다고 한다. 미국 캔자스 들판에서 부모 없이 아저씨, 아주머니와 사는 그녀는 어느날 불어닥친 '사이클론'에 날아가는 집에서 잠이 든다. 과연, '이상한 나라'로 갈 수 있는 '앨리스'급 반열 맞다.

머리가 빈 허수아비(The Scarecrow),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The Tin Woodman), 용기 없는 사자(The Lion)와 함께 '노란 벽돌길(The Yellow-brick road)'을 따라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를 찾아가 각자의 소원을 청하지만, 결국 다른 누가 아닌 본인이 이미 다 가지고 있더라는 '동화'적 결말이다. 그들이 지나온 길에서 겪은 경험에서 이미 다 드러났지만 그들 자신만 몰랐던 것들. 반면 도로시는 이미 본인이 신고 있던 마녀의 '은구두(The Silver Shoes)' 자체에 소원 성취의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도로시가 캔자스로 돌아왔을 때는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가 '꿈'이었을지 모른다는 암시는 없지만, 집으로 돌아오게 해준 '은구두'는 이미 '현실'과 '꿈' 사이의 '중간지대'인 '사막/황무지(the desert)'에 영원히 버려진다. 모험을 겪고 좀더 어른이 되었을 도로시는 다시 '이상한 나라'인 '오즈(Oz)'로 갈 수 없다. 앨리스 또한 언제든 잠들 수 있겠지만, 지루한 '역사책'을 읽어주던 언니처럼 성장할 것이므로 다시 잠에 빠진들 '이상한 나라'로 가는 토끼굴로 예전처럼 빠질 수는 없을 게다.

작가들은 비록 흥행을 위해 소녀 주인공들을 계속 다시 '이상한 나라'와 '오즈'로 돌려보내지만, '속편'들은 결코 '첫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


"각자에게 개별인사를 마친 도로시는 이제 강아지 토토를 꼭 안고서 모두에게 마지막 '안녕' 인사를 건넨 후 신고있던 은구두의 뒷굽을 세 번 부딪치며 말했다.
'캔자스로 돌아가게 해 줘!'
순간 도로시의 몸이 떠올라 너무도 빨리 지나는 바람에 그녀가 보고 느낄 수 있던 건 귓가를 스치는 바람 뿐이었다. 은구두의 세 발짝만큼 시간에 날아 오느라 그녀는 예전에 살았던 캔자스의 풀밭에 급하게 내동댕이쳐졌다...
...
도로시는 일어나면서 신발이 없어진 것을 알았는데, '은구두(The Silver Shoes)'는 날아오는 동안 벗겨져 중간지대 사막에 영원히 버려진 것이었다."
- 같은책, '23. Glinda Grants Dorothy's Wish'에서 필자 번역.


새해 첫날 마을뒷산에 오른 건, 굳이 뜨는 해를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내 마음 속에 여전히 있을 '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엘튼 존의 노래 'Good bye Yellow Brick Road'에 나오는 '노란 벽돌길'은 떠나고 싶은 '도시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도로시'와 같이 걸었던 '어린 시절'의 상징이었을 수도 있다.

모두 떠난 마을뒷산 공터에 남아 생각한다.
한때 '노란 벽돌길'응 걸었던 캔자스 소녀 도로시는 자기 안에 있을 '은구두'를 다시 찾았을까, 아니면 아예 잊었을까.


어른이든 아이든,
다소 '직지심경(直指心經)' 부처님 말씀 같지만,
모든 길은 결국,
'내 마음 속으로의 여행'이다.


***

1. [The Wonderful Wizard of Oz](1900), Lyman Frank Baum, <Collins Classics>, 2013.
2. [오즈의 마법사], <교원 애니매이션 세계명작동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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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아론 바스타니 지음, 김민수.윤종은 옮김 / 황소걸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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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공산주의가 눈앞에 있다!
-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 '공산주의'는 인류가 마르크스가 '필요의 영역'이라고 부른 것에서 탈피해 '자유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 
'공산주의'는 화려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산주의'가 아니다."
-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1-3. FALC란 무엇인가>, 아론 바스타니, 2019.


1848년 유럽혁명의 시기에 '과학적 사회주의자' 청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을 때, 혁명의 '현실정치'적 결과는 또 다시 '왕정 타도'와 '공화국 건설'이었다. 그러나 1848년 '2월 혁명'이 1789년 프랑스대혁명과 달랐던 건 다수 '노동계급'의 힘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바야흐로 일체의 생산수단으로부터 배제된 채 가진 건 노동력 뿐인 도시 '자유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다수 양산하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한 신세계는 이 다수 노동계급의 힘으로 소외된 노동을 해방시키고 나아가 '계급' 자체가 철폐된 세상이었다. '계급투쟁의 인류역사'를 끝장내는 것이 다수 노동계급의 역사적 임무였다.

그로부터 170여 년이 흐른 2019년, 미국 정치평론가 아론 바스타니(Aron Bastani)는 현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풍요'와 '자동화'를 기반으로 탈자본주의적 새로운 '정치'를 통해 쟁취할 세계를 다시금 '선언'한다.


이른바,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ALC :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이다.


"'5가지 위기(기후변화, 자원부족, 과잉인구, 고령화, 자동화에 따른 기술적 실업)'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버틸 능력을 약화한다. '5가지 위기'는 끊임없는 확장, 무한한 자원, 이윤을 위한 생산,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 등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을 없앨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같은책, <1-2.>.


저자는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있던 1989년, 미국에서 '자본주의 체제승리'로서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무명 정치학자의 공상이론은 저자에 의하면 현재에도 '자본주의 리얼리즘'으로 유령처럼 배회한다. 즉,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더 게 쉽다"는 지배이념과 시장맹신 사상이 근거하는 이데올로기다. 2018년 후쿠야마는 자신의 '역사의 종말'이 헛소리였음을 시인했다지만 체제유지를 위한 시대의 관념은 굳건하다. 인류의 마지막 체제는 자본주의 밖에 없다는 관념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1차 대변혁'인 '농업혁명'과 '2차 대변혁'으로서의 '산업혁명'에 이어 '3차 대혁명'인 '정보혁명' 또는 '정보의 대해방'(같은책,<1-2>)에서 정점을 찍는다. 과학기술 발전과 디지털화로 인해 정보, 노동, 에너지, 자원, 건강과 음식 등 '희소성'을 경제적 특징으로 하던 재화들이 무한발전 및 무한공급되고, 이것들의 가격이 공짜('0')로 수렴되는 '무어의 법칙'이 작용하면 이를 다수가 전유하도록 분배하는 '력셔리 포퓰리즘 정치'를 통해 'FALC'를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공산주의'라는 단어의 뜻은... 생계를 위한 직업이 사라지고, 풍요가 희소성을 대신하고, 노동과 여가가 하나로 합쳐지는 사회다... FALC는 '3차 대변혁(정보해방)'의 경향을 뒷받침하기 보다 그 자체로 '3차 대변혁'의 경향이 도달한 결론이다... 
'공산주의'라는 개념은 '희소성'을 겪는 상태에서 어느 것이 유용성을 넘어서는지 보여준다. 필요한 것을 뛰어넘은 과잉이 이 개념의 본질이다. 따라서 정보, 노동, 에너지, 자원의 값이 영구적으로 내려가고 일과 낡은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면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유용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구분하는 모든 경계를 허문다."
- 같은책, <1-3>.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가져간다"는 마르크스주의 이상향 또한 '희소성'의 경제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에 의하면 이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풍요'와 '자동화'다. 태양열은 전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할 에너지를 단 9분만에 지구로 전달하고 있으며 기후위기를 벗어날 '탈탄소' 자원은 얼마 안 있어 우주로 나가 채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상과학이 아니라 실제 혁신적인 자본가들과 그 정권들이 이미 고액을 투자하여 시작한 일들이다. 물론 '자유 시장'을 믿는 그들은 '무한공급'의 가능성을 여전히 '희소성'으로 위장해서 소수의 '이윤창출'이라는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다수가 할 일은 '3차 대변혁'의 특징인 '공짜로 수렴하는 자원과 기술'의 경향을 믿고 이 '공유자원(the commons)'들을 재전유하는 것이다. 이 '공유자원'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어셈블리](2017)에서 다수대중이 재전유해야 하는 '공통적인 것(the commons)'과 같고, 노동하는 다수에 의해 확대되어야 하는 소유의 '사회화'다. 이제 공공재를 만드는 사람이 그 공공재를 소유하는 시대가 진정 오게 된다. 금융자본주의 체제에서 제대로 된 '중앙은행'의 최종 임무는 금융자본시장의 '점진적 사회화(같은책,<3-11>)'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의 전제는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소유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다수'의 '소유', 즉 '사회화'를 위해서는 '력셔리 포퓰리즘'이 필요하다.


"'포퓰리즘'이란 경제를 움직이는 주류의 사고방식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정치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경도된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의 대란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 아래 '포퓰리즘'을 공격한다... '력셔리 포퓰리즘'은 '붉은색'과 '녹색' 정치를 한데 결합한다... 번영과 민주주의, '공유자원(the commons)'은 단순히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서로 완성하는 관계다.
... '3차 대변혁'이라는 조건이 마련되기 전에 '공산주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1차 대변혁' 전에 잉여생산물을 얻거나, '2차 대변혁' 전에 전기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같은책, <3-9>.


'FALC'의 정치 모토는 '자유'와 '화려함', 그리고 '탈희소성'의 추구다. 14세기에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카톨릭을 대중화했던 영국 신학자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보다 후대인 <95개조 반박문>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에 불을 당길 수 있었던 건 15세기 근대 인쇄기술의 '혁명'적 변화가 비로소 바탕되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19세기 '공산당 선언'이 20세기 '공산권 몰락'의 구질구질한 이미지로 남은 이유는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생산력이 그만큼 발전하지 못해서다. 
아론 바스타니에 의하면 이제 '풍요'와 '력셔리'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다시금 '공산주의 선언'이 가능하다.
화려하지 않은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소비에트가 구리게 끝난 이유도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이론에 기반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인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력이 최고로 발전한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마르크스의 '예측'은 여전히 '과학'이었으나 정작 마르크스 자신은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도, 노동자 보통선거도 못보고 19세기에 지구를 떠났다.


"이제 기술의 중요성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기술을 뒷받침하는 사상과 사회적 관계, '정치'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 
우리는 'FALC'를 지도 삼아 '희소성'과 '노동기반사회'라는 미로에서 벗어나야 한다... 'FALC'는 지금 당장 필요한 행동을 제시한다... 'FALC'는 구체적이고 단순명료한 '정치'적 방안을 요구한다. 바로 신자유주의와 단절', 노동자 소유경제로 이행,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국가재정 지원, 교환과 이윤을 위한 상품이 아닌 기본권으로서 'UBS(Universal Basic Service : 보편기본복지)'다...
...
쟁취해야 할 세계가 눈앞에 있다!"
- 같은책, <3-12. FALC : 새로운 시작>.


결론은 소수의 이익에 복무하는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지배이념인 '신자유주의'와 결별하고 GDP 수치 성장과 '통화주의'를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에 목을 매는 '자본주의국가'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국제투기에 대항하는 '국제주의'적 '자본(금융)거래세'(같은책,<3-11>)와 부유한 선진국이 '제3세계' 저발전 국가들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책임지고 지원하는 '지구세'(같은책,<3-10>) 등은 토마 피케티식 '현대화된 사회민주주의'의 또 다른 대중판 같기도 하지만, '21세기 공산주의 선언'을 내건 아론 바스타니의 'FALC(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 그 '너머'를 확실하게 명시한다. 모두가 등돌려 버린 '구질한' 공산주의를 '화려하게' 포장하면서까지 말이다. 

'희소성'과 '노동기반사회'의 기존 자본주의적 '미로'에서 벗어나는 우리 모두의 기본권 보장은 '보편기본복지(UBS : Universal Basic Service)'로 정책화된다.
이는 '보편기본소득(UBI : Universal Basic Income)'보다 "바람직한 대안"(같은책,<3-11>)인데 "노동 없는 임금"인 '기본소득'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는 사실 외에 모든 것이 불확실"(3-11)한 반면, '보편기본복지'는 주거나 의료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하면서 '화려한' 공산주의의 출발점이 된다. 
"에너지와 노동, 자원이 정보와 마찬가지로 공짜에 가까워지고 무한공급이 확대되는 한, 역사는 'UBS(보편기본복지)' 편이다(같은책,(3-10>)."
이는 다음 우리 대선의 주요쟁점이 될 '보편복지'와 '기본소득'의 대립에서 '복지축소'를 전제로 하여 '국가임금'식 괴물로 변형될 우파적 '기본소득' 책동을 분쇄하고 '보편복지'를 사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 몇 푼과 기본권을 교환할 수는 없다.


'붉은색(평등)'과 '녹색(환경)'이 결합된 정치(생태사회주의)를 통해 자동화와 디지털화로 생산된 '공공재(the commons)'를 다수가 재전유하는 '풍요'와 '럭셔리'가 '공산주의'였다니, 저자의 낙관적이고 꿈같은 이야기가 새삼 고맙다.
기후위기를 극복할 재생에너지와 '탈탄소화', 우주개발, 생명(유전)공학, 세포농업 등 현대과학의 신기술 발전에 관한 <2부>의 노동, 에너지, 자원, 건강, 음식 등의 간략한 소개들은 오히려 덤이다.


***

1.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2.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 마르크스/엥겔스, 1848.
3.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4.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5.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6.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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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양장 세트 - 전9권 (2판) - 일러스트 500여 컷 수록 셜록 홈즈 시리즈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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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의 '고전적 모티브'
- 셜록 홈즈 [붉은 머리 연맹] / 영화 [도굴]



"빨강 머리 연맹 - 미합중국 펜실베이니아 주 레바논의 고 이제키아 홉킨스 씨의 유언에 의해 결성된 이 연맹에 빈자리가 새로 하나 생겼다. 회원은 극히 형식적인 일만 하며 그 보수로 주 4파운드의 급여가 지급된다. 심신이 건강한 21세 이상의 붉은 머리를 가진 남성이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월요일 11시에 플리트 가의 포프스 코트 7번지에 있는 연맹 사무실로 본인이 직접 와서 던컨 로스에게 신청할 것."
- [빨강 머리 연맹], '홈즈단편 베스트 걸작선 17', 아서 코난 도일, 박현석 옮김, <동해출판>, 2006.


코로나 집콕 크리스마스 기념 하루 지난 집에서 영화 [도굴]을 봤다. 어린 시절 꿈이 '고고학자'였던 나는 아는 것도 없이 '고대 유물!'하면 무조건 본다. 나같은 사람만 있으면 이런 영화 무조건 대박일텐데 현실은 물론 그렇지 않다. 내 취향은 여전히 소수 중의 소수다. 


코미디 영화 [도굴]에는 예상보다 실제 유물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태조 이성계의 '보검'도 다른 계획을 숨기기 위해 친 뻥이다. 그냥 '유물' 관련 영화의 분위기만 풍긴다. 영화 중간에 도굴꾼들이 고구려 벽화를 털기 위해 중국 길림으로 가는데 그들이 훔치는 게 아무래도 황해도에 있는 '안악3호분' 벽화로 보임에도 왜 국내성 부근으로 갔는지는 모르겠고 물론 그런 '고증'이 영화흥행에 도움이 될런지는 영화를 모르는 나로서는 더더욱 모를 일이다. 


어쨌든, 조선 9대 왕 성종의 무덤인 서울 강남 선릉이 임진왜란 때 도굴되면서 왜군에 의해 왕의 시신이 불태워졌으며 선조가 '조선의 엑스칼리버'인 태조 이성계의 보검을 대신 관에 넣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미스터리와 주변 단란주점을 사서 도굴용 지하땅굴을 파는 이야기가 나올 때, 나는 순간 어린 시절로 갑자기 돌아갔다. 셜록 홈즈가 나오는 단편소설을 읽던 시절로. 그 시절은 내가 '고고학자'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때는 1890년, 홈즈의 베이커가 하숙집에 '붉은 머리' 남자 윌슨이 찾아왔다. 보통의 의뢰인들은 살인, 협박, 도난 등의 사연을 들고 오는데 윌슨의 사연은 의뢰라기 보다는 단순상담꺼리 같다. 보잘 것 없는 전당포를 운영하며 새로 온 젊은 점원도 임금을 반만 받는 사람을 고용했는데 어느날 '붉은 머리 연맹'의 회원 공석이 생겨 하루 4시간 대영 백과사전 단순 필사만 해도 고액을 받던 윌슨은 어느날 '연맹' 해체소식에 무슨 일인가 한다는 이야기. 단순상담 같지만 홈즈는 냄새를 맡는다. 항상 그렇듯 현장 답사를 다녀온 홈즈는 결국 친구 왓슨과 런던 경시청 경관들을 대동하여 사건을 해결하는데, 월슨의 전당포 뒷편 대형은행에 맡겨진 프랑스 나폴레옹 금화 3만 달러를 훔치려는 도둑이 빨간 머리 윌슨을 전당포로부터 꼬여서 자리를 비우게 하려는 수작으로 '붉은 머리 연맹'을 급조해냈고 도둑의 우두머리는 반값임금만 받는 새로온 전당포 점원이었다는 게 줄거리다. 도둑은 윌슨이 '붉은 머리 연맹' 사무실에 가 있는 동안 빈 전당포 지하에서 은행지점까지 지하땅굴을 파고 있었으며 홈즈는 첫 현장답사에서 유명한 도둑 존 크레이라는 그 점원의 얼굴을 확인한 게 아니라 땅굴을 파느라 더러워진 바지무릎을 슬쩍 본다. '연맹'이 해산했으니 그 주말에 바로 작업이 들어갈 거라는 정확한 예측은 물론이고.


영화 [도굴]에서 선릉을 파기 위해 유령 주점을 확보하는 식의 이야기는 비슷한 도둑질 영화의 단골메뉴일 텐데, 아마도 이런 미스터리극의 '고전적 모티브'가 바로 듣보잡 [붉은 머리 연맹]일 게다. 감독이나 작가는 분명 어린 시절 코넌 도일 경의 [붉은 머리 연맹]을 읽었으리라.


'붉은 머리 연맹'은 '빨간 머리 연맹'이나 '붉은 머리 클럽'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나는 어릴적 초등시절 읽은 대로 이 정체불명의 유령단체를 '붉은 머리 연맹'으로 기억한다. 윌슨씨의 머리는 도둑이 처음 보고 '연맹' 이름을 급조할 정도로 빨간 편에 가깝지만 왠지 '붉은' 게 더 미스터리한 것 같기도 하고 '연맹' 대신 '클럽'은 한참 나중에 나왔지만 남성전용미용실 같아서 내게는 변함없이 '붉은 머리 연맹(The Red-Headed League)'으로 남아 있다.


영화 [도굴]은 코미디 복수극으로 도굴 문화재를 모으는 악당에게 오래전 원한을 갚으면서 동시에 본의 아니게 도굴된 문화재를 국가에 되돌려주며 끝나는데, 한술 더 떠서 일제가 가져간 우리 문화재를 되털러 일본으로 간다는 호방한 '애국'의 메시지를 남기며 끝난다. 
착한 일 하는 도굴꾼들의 결말을 보니 역시 영화를 만든 사람의 '모티브'는 의도했든 아니든 또 다시 [붉은 머리 연맹]이다.


19세기 말 사그라지던 조국 대영제국이 유럽의 오래된 라이벌 프랑스로부터 빌려온 나폴레옹 금화를 지켜내고 역시 본의 아니게 조국의 '자존심'도 지켜낸 홈즈에게 친구 왓슨이 "전 인류의 은인"이라 치켜세웠을 때 그런 거 원래 안 좋아하는 냉소적인 셜록 홈즈는 다음과 같이 '어깨를 들썩이며' 굳이 프랑스 작가를 인용하며 말한다.


"그러니까 아주 조금, 무엇인가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인 플로베르가 조르주 상드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말이 있네.
'인간이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닐세. 그의 일(그가 한 일)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네.'"
- 같은책.


***

1. [빨강 머리 연맹], 아서 코난 도일, 박현석 옮김, <동해출판>, 2006.
2. 영화 [도굴], 박정배 감독, <사이런픽처스>, 2020.
3. [고구려의 황홀, 디카에 담다], 이태호, <덕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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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붉은 머리 연맹 - 셜록 홈스 걸작선 02 셜록 홈스 걸작선 2
아서 코난 도일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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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의 '고전적 모티브'
- 셜록 홈즈 [붉은 머리 연맹] / 영화 [도굴]



"빨강 머리 연맹 - 미합중국 펜실베이니아 주 레바논의 고 이제키아 홉킨스 씨의 유언에 의해 결성된 이 연맹에 빈자리가 새로 하나 생겼다. 회원은 극히 형식적인 일만 하며 그 보수로 주 4파운드의 급여가 지급된다. 심신이 건강한 21세 이상의 붉은 머리를 가진 남성이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월요일 11시에 플리트 가의 포프스 코트 7번지에 있는 연맹 사무실로 본인이 직접 와서 던컨 로스에게 신청할 것."
- [빨강 머리 연맹], '홈즈단편 베스트 걸작선 17', 아서 코난 도일, 박현석 옮김, <동해출판>, 2006.


코로나 집콕 크리스마스 기념 하루 지난 집에서 영화 [도굴]을 봤다. 어린 시절 꿈이 '고고학자'였던 나는 아는 것도 없이 '고대 유물!'하면 무조건 본다. 나같은 사람만 있으면 이런 영화 무조건 대박일텐데 현실은 물론 그렇지 않다. 내 취향은 여전히 소수 중의 소수다. 


코미디 영화 [도굴]에는 예상보다 실제 유물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태조 이성계의 '보검'도 다른 계획을 숨기기 위해 친 뻥이다. 그냥 '유물' 관련 영화의 분위기만 풍긴다. 영화 중간에 도굴꾼들이 고구려 벽화를 털기 위해 중국 길림으로 가는데 그들이 훔치는 게 아무래도 황해도에 있는 '안악3호분' 벽화로 보임에도 왜 국내성 부근으로 갔는지는 모르겠고 물론 그런 '고증'이 영화흥행에 도움이 될런지는 영화를 모르는 나로서는 더더욱 모를 일이다. 


어쨌든, 조선 9대 왕 성종의 무덤인 서울 강남 선릉이 임진왜란 때 도굴되면서 왜군에 의해 왕의 시신이 불태워졌으며 선조가 '조선의 엑스칼리버'인 태조 이성계의 보검을 대신 관에 넣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미스터리와 주변 단란주점을 사서 도굴용 지하땅굴을 파는 이야기가 나올 때, 나는 순간 어린 시절로 갑자기 돌아갔다. 셜록 홈즈가 나오는 단편소설을 읽던 시절로. 그 시절은 내가 '고고학자'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때는 1890년, 홈즈의 베이커가 하숙집에 '붉은 머리' 남자 윌슨이 찾아왔다. 보통의 의뢰인들은 살인, 협박, 도난 등의 사연을 들고 오는데 윌슨의 사연은 의뢰라기 보다는 단순상담꺼리 같다. 보잘 것 없는 전당포를 운영하며 새로 온 젊은 점원도 임금을 반만 받는 사람을 고용했는데 어느날 '붉은 머리 연맹'의 회원 공석이 생겨 하루 4시간 대영 백과사전 단순 필사만 해도 고액을 받던 윌슨은 어느날 '연맹' 해체소식에 무슨 일인가 한다는 이야기. 단순상담 같지만 홈즈는 냄새를 맡는다. 항상 그렇듯 현장 답사를 다녀온 홈즈는 결국 친구 왓슨과 런던 경시청 경관들을 대동하여 사건을 해결하는데, 월슨의 전당포 뒷편 대형은행에 맡겨진 프랑스 나폴레옹 금화 3만 달러를 훔치려는 도둑이 빨간 머리 윌슨을 전당포로부터 꼬여서 자리를 비우게 하려는 수작으로 '붉은 머리 연맹'을 급조해냈고 도둑의 우두머리는 반값임금만 받는 새로온 전당포 점원이었다는 게 줄거리다. 도둑은 윌슨이 '붉은 머리 연맹' 사무실에 가 있는 동안 빈 전당포 지하에서 은행지점까지 지하땅굴을 파고 있었으며 홈즈는 첫 현장답사에서 유명한 도둑 존 크레이라는 그 점원의 얼굴을 확인한 게 아니라 땅굴을 파느라 더러워진 바지무릎을 슬쩍 본다. '연맹'이 해산했으니 그 주말에 바로 작업이 들어갈 거라는 정확한 예측은 물론이고.


영화 [도굴]에서 선릉을 파기 위해 유령 주점을 확보하는 식의 이야기는 비슷한 도둑질 영화의 단골메뉴일 텐데, 아마도 이런 미스터리극의 '고전적 모티브'가 바로 듣보잡 [붉은 머리 연맹]일 게다. 감독이나 작가는 분명 어린 시절 코넌 도일 경의 [붉은 머리 연맹]을 읽었으리라.


'붉은 머리 연맹'은 '빨간 머리 연맹'이나 '붉은 머리 클럽'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나는 어릴적 초등시절 읽은 대로 이 정체불명의 유령단체를 '붉은 머리 연맹'으로 기억한다. 윌슨씨의 머리는 도둑이 처음 보고 '연맹' 이름을 급조할 정도로 빨간 편에 가깝지만 왠지 '붉은' 게 더 미스터리한 것 같기도 하고 '연맹' 대신 '클럽'은 한참 나중에 나왔지만 남성전용미용실 같아서 내게는 변함없이 '붉은 머리 연맹(The Red-Headed League)'으로 남아 있다.


영화 [도굴]은 코미디 복수극으로 도굴 문화재를 모으는 악당에게 오래전 원한을 갚으면서 동시에 본의 아니게 도굴된 문화재를 국가에 되돌려주며 끝나는데, 한술 더 떠서 일제가 가져간 우리 문화재를 되털러 일본으로 간다는 호방한 '애국'의 메시지를 남기며 끝난다. 
착한 일 하는 도굴꾼들의 결말을 보니 역시 영화를 만든 사람의 '모티브'는 의도했든 아니든 또 다시 [붉은 머리 연맹]이다.


19세기 말 사그라지던 조국 대영제국이 유럽의 오래된 라이벌 프랑스로부터 빌려온 나폴레옹 금화를 지켜내고 역시 본의 아니게 조국의 '자존심'도 지켜낸 홈즈에게 친구 왓슨이 "전 인류의 은인"이라 치켜세웠을 때 그런 거 원래 안 좋아하는 냉소적인 셜록 홈즈는 다음과 같이 '어깨를 들썩이며' 굳이 프랑스 작가를 인용하며 말한다.


"그러니까 아주 조금, 무엇인가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인 플로베르가 조르주 상드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말이 있네.
'인간이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닐세. 그의 일(그가 한 일)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네.'"
- 같은책.


***

1. [빨강 머리 연맹], 아서 코난 도일, 박현석 옮김, <동해출판>, 2006.
2. 영화 [도굴], 박정배 감독, <사이런픽처스>, 2020.
3. [고구려의 황홀, 디카에 담다], 이태호, <덕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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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학계의 가야사 연구
조희승 지음 / 도서출판 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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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의 정체
- [북한학계의 가야사 연구], 조희승, 이덕일 해설, <도서출판 말>, 2020.



"(해방 후) 북한은 조선력사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학술지 [력사제문제]를 출간했는데, 벽초 홍명희의 아들인 홍기문은 1949년에 [력사제문제]에 <조선의 고고학에 대한 일제 어용학설의 검토(상,하)>라는 논문을 썼다. 홍기문은 이 논문에서 일제 식민사학의 요체를 명쾌하게 정리했는데, 첫째 한사군의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 가야가 '임나'라는 '임나일본부'설이고, 셋째는 백제가 일본의 부용국, 즉 속국이라는 주장 등이 일제 식민사학의 요체라는 것이었다.
- [북한학계의 가야사 연구], '해설 : 남북한 가야사 연구의 현격한 차이', 이덕일, 2020.


1945년 해방 후 1948년 남북 단독정권 수립 시까지 3년간은 우리 현대사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활발했던 '해방공간'으로 불린다. 이 시기 역사학은 세 가지 학파가 있었는데, 하나는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을 계승한 '민족주의 역사학', 또 하나는 마르크스 역사유물론에 기초한 '사회경제사학', 나머지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뒤를 이은 이병도 무리의 '식민사학'이었다. 미군정의 비호 아래 수립된 남한 단독정권에서 친일파가 다시 득세했을 때, '민족사학자'들은 짓밟혔고, '사회경제사학자'들은 차라리 북으로 넘어갔으며, 남한에는 오로지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다.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 선생의 아들 홍기문 선생은 북한의 역사학계에서 남북을 통틀어 '식민사학'의 '요체'를 위와 같이 정리했다. 
'낙랑=평양'설은 이후 1960년대 초 리지린 박사의 [고조선 연구] 논문에 의해 박살났고, 가야사는 1963년 김석형 선생에 의해 '임나가야'는 일본에 세워졌던 가야소국이라고 밝혀지며 올바르게 정리되었다. 이후 북한 '력사학계'는 '식민사학'을 극복하려는 '주체적 역사관'으로 단순하게 정립된다. 반면,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 제자들이 다수인 남한 역사학계는 '낙랑군 평양설'과 '임나 가야설'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정설이란다.

'가야사'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식민사학'이 따르고 있는 '임나일본부'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가야', '가라'라는 국호는 한자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고유 조선말에서 나왔다. '가야'의 국호가 '갓'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본서기]... '쯔누가아라시또'... '쯔누가'라는 말은 '뿔이 난 갓', '뿔이 난 고깔'이라는 뜻이다... '아라시또'를 '아라사람', 즉 '가야사람'으로 리해하는 것이 어느모로 보나 자연스럽다. 결론적으로 '뿔 달린 갓을 쓴 가라사람'이다."
- [북한학계의 가야사 연구], '1장 : 가야(금관)령맹체의 형성과 흥망성쇠', 조희승, 2011.


재일교포로 북한에서 '한일 고대사'를 연구한 학자 조희승은 1960년대 초 역사학자 김석형 선생의 학설을 계승하여 서기 1 ~ 6세기 한반도 남동부 '가야'의 역사를 정리한다. 남한의 역사학계는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전'에서도 그들의 근본과 같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조차 가야가 서기 42년에 건국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3세기부터 존재했다는 [일본서기]의 기사를 답습하고 있었다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의 역사학은 끊임없이 '임나일본부'를 해체하고 있다.

[삼국사기]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는 '가야'에 관한 유일한 종합적인 기록은 일연의 [삼국유사] <가락국기>다. 서기 42년 '거북아,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먹겠다'는 <구지가(龜旨歌)>를 부른 후 '알'에서 태어난 김수로(金首露) 왕이 건국한 '금관가야' 이야기의 출처다. 흔히 '가야'는 초기 연맹체 국가에서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하지 못하여 우리 '삼국시대'의 변두리 역사에 머물러 있다. 북한 역사학계는 마르크스주의 역사발전단계설에 따라 청동기 시대의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철기 시대로 이행하며 봉건제 국가체제로 전환된다고 보는데 청동기 시대인 진국(辰國:삼한을 통치했던 청동기 노예제 국가)은 철기가 발전하면서 마한은 이후 백제로, 진한은 신라로, 변한은 가야로 진화한다고 본다. 진수의 [삼국지] <위서-한전>은 변한이 철이 많이 나는 지역이며 고깔 모양의 '갓'을 쓰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 나라 이름이 '가야'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기록 [삼국지]에서도 '땅이 기름지고 오곡이 풍성하며 철기 문화가 발전'하여 번영된 문명을 지녔다던 '가야'는 주변의 고구려-백제-신라와 동등하게 '사국시대'의 주역이 되어야 했음에도 '신라 중심주의'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해 사장되었다. 그 결과 가야에 관한 문헌학적 자료는 매우 빈약하다.

'하늘(텡그리)'을 숭배하던 아시아 동북지역 부족 중 요동과 만주 일대 '고조선'의 후예들인 고구려와 한반도 남부 신라의 건국설화는 모두 동일하게 시조들이 '알'에서 태어난다. 이는 '하늘'의 상징인 '새'와 관련이 있으며 시신을 새의 먹이로 바치는 '조장(鳥葬)'의 장례 예식과도 관련이 있다. '알'에서 태어난 시조를 지닌 나라는 모두 한 민족 또는 동일 문화인 것인데 가야 연맹체의 첫번째 맹주국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은유는 그 통치집단이 북쪽(하늘)의 고조선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또한 의미한다. 고고학적 증거로는 김수로 금관가야의 무덤양식이 '나무곽무덤'이라는 점이다. 가야와 초기 신라의 한반도 남동부 무덤양식은 '수혈식돌널무덤'이었다. 금관가야를 제외한 다른 가야 소국(아라,고령,성산,대,소가야 등)들은 돌널무덤이었던 반면 금관가야만 나무곽무덤이었고 고구려와 같이 구리가마를 집에 걸어놓는 북방식 선진문화 또한 발견된다. '고조선인' 김수로 '통치배'의 금관가야는 이 선진문화에 힘입어 서기 3~4세기 지금의 대구와 상주까지 아우르는 가장 넓은 영역을 지배했고 금관가야 연맹체는 신라와 동등한 국력을 과시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신라가 고구려와 연합하였고 가야는 백제와 연합하는 이른바 '사국시대'가 전개되는데, 이 전선에 항상 등장하는 것이 '왜', 즉 '일본'이다. 백제-가야 연합세력은 조선해협을 건너 일본까지 장악했던 '해양성' 국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일본인들은 바다 건너 배를 타고 온 한반도인들을 '뿔이 달린 외국인(가야사람)', 즉 '쯔누가아라시또'라 불렀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왜'는 어디까지나 북규슈의 이또지마 반도 일대에 있던 가야계통 '왜'소국의 군사력이었다... 가야의 철이 '왜'와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광개토대왕)릉비의 '왜'가 기내지방 야마또 정권이 아니였다는 데 대해서는 구태여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자명한 사실이다."
- 조희승, 같은책, '3장 : 경제와 문화'


가야연맹체는 3~4세기에 가장 전성기였는데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기 백제를 복속시키기 위해 남하하던 4세기 말 고구려-신라 연합과 백제-가야-왜 연합의 대전쟁 이후 패배한 금관가야는 신라에 복속되었고 5~6세기 가야 연맹체의 맹주국은 '고령대가야'가 되었다. 고령대가야 시기는 이미 고구려 선진문명과 직접 접했으므로 한반도 남부까지 개마무사 등 철기와 무기류, 전쟁장비 등은 고구려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런데, 광개토대왕릉비는 이 당시 '왜'를 언급하고 있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기 위해 간첩질을 하던 19세기 말 '사또'라는 일제 장교가 광개토대왕릉비를 탁본해 가는데, '임나일본부'가 [일본서기]라는 무덤에서 좀비처럼 일어나는 계기다. 광개토대왕의 고구려와 신라에 의해 패퇴한 '왜'는 가야가 부산, 김해 등을 통해 바다 건너 일본 북규슈 땅에 건설한 소국(식민지)의 군사력이었으나, 동아시아를 장악하려는 일본 군국주의는 역으로 일본이 '철'을 얻기 위해 가야를 비롯한 한반도 동남부에 진출하였고 이곳에 '임나(가야)일본부'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릉비의 '왜'는 이 '임나일본부'였다는 거다. 이것이 3세기 가야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일본서기]의 허황된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국명은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인 7세기(670년)에나 등장했고 '일본'을 연 이 야마또(대화) 정권은 당시 일본땅 조차 장악하지 못한 상태였으며 [일본서기]는 8세기에 '일본' 천왕정권을 합리화하기 위해 신화적으로 지어낸 시간 순서의 앞뒤도 안 맞는 그들만의 '정사'에 불과하다. 
'일본'도 없던 시절에 그들이 한반도를 점령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임나일본부가 남부조선에 있었다는 [일본서기]의 기사와 주장은...) 그 시기(5세기)에 벌써 서부 일본이 기내 야마또 정권에 의하여 통일되여 있었다는 판단에 기초한 그릇된 설이다. 5세기의 력사적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7세기 이후의 시점에서 임나에 갔다고 하는 기사를 곧 '조선의 임나(가야)로 갔다'고 속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면 어디에 있던 '가야(임나)'였던가. 그것은 '다사'가 본거지로 삼은 곳, 즉 기비의 '가야'였다...
그러므로 야마또 정권이 기비 지방의 '임나'에 인연이 있는 '다사'를 '임나국사', 즉 '미마나노구니노 미꼬또모찌'로 파견하였다고 보는 것이 어느모로 보아도 합리적이며 또 옳다."
- 조희승, 같은책, '4장 3절 : '임나일본부'의 정체'.


'임나'는 '가야'를 이르는 [일본서기]의 지명이다. 고대 한국어는 일본어처럼 받침이 없었다는데 '가야'를 뜻하는 다른 말인 '미마나'가 나중에 '임나'가 된 듯 하다. 부산과 김해를 중심으로 한 3세기 금관가야의 '해상력'은 바다를 건너 미지의 북규슈 섬 지역까지 진출하여 가야 '소국'들을 건설했고 5세기 한반도 대전쟁에서는 가야인들이 일본에 세웠던 소국들의 군대까지 총동원하였으나 결국 패배하였으며 6세기 고령대가야까지 해체된 후에는 가야 유민들이 일부는 백제로, 또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가 오까야마(기비) 지방에까지 '소국'들인 '임나(가야)'를 대거 건설했다. 고고학적으로는 가야와 동일한 그 지역의 '조선식 산성'이 증거가 되는데 일본의 '가야' 소국들은 산성을 축성할 정도의 '국력'과 동원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7세기 '왜'가 아닌 '일본'이 되려는 야마또 정권은 일본 통일전쟁에서 '가야계' 인사인 기비노가미쯔미찌 다사라는 자를 '임나국사(가야총독)'로 임명하여 일본 기비(오까야마) 지방에 '임나일본부'를 세우는데 그 지방을 장악하기 위한 야마또 정권의 '행정출장소'가 바로 7세기 '임나일본부'의 정체인 것이다. 
당시 일본 지역은 '구다라(백제)', '시라기(신라)', '미마나(임나/가라/아라/가야)' 등 한반도 중남부 '해양성' 국가들의 '식민지' 건설 각축장이었다. 그렇다고 '유사사학'처럼 우리 고대 국가들의 '제국성'이라든가 '고대 일본은 우리의 식민지였다'는 식의 보복성 주장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고대 문명의 확장은 대륙에서 전해졌을 것이고 아직 미지의 일본 섬 지방은 당연히 문명의 전파가 늦어졌을 것이며 조금이라도 먼저 '문명화'된 한반도의 고대 국가들이 이 '미지의 섬'으로 진출하여 선진문명을 '이식'하는 것은 인류 문명의 당연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식민성'을 주장하는 '제국주의'적 시각이 아닌 인류 보편역사의 관점에 보아야 한다.

요약하면, 7세기 전까지 '왜'에는 '일본'은 없었고, '임나일본부'는 7세기 이후 야마또(대화) 정권이 기비 지방에서 발전하던 신라('시라기') 소국들을 견제하고 해당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가야(임나/미마나)'계 사람들을 '총독' 비슷하게 임명하여 간접지배하던 '출장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임나일본부'의 정체다.

그리하여 남한 '식민사학'이 [일본서기]를 근거로 되뇌이는 '가야사'를 바로잡는 일은, '임나일본부'를 해체하고 그 정체를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야의 역사가 형체없이 된 것은 나라의 멸망이라는 비극적 사태가 빚어낸 후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삼국사기]를 엮은 김부식의 과오에 기인된다고 볼 수 있다. 김부식은 자기가 경주 김씨의 자손이라는 데로부터 신라를 중심으로 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력사를 편찬하였다... 김부식은 신라에 의해 통합된 가야를 [삼국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마땅히 [사국사기]로 되여야 할 책이 [삼국사기]로 되고 말았다... '통일신라'라는 개념... 고구려 땅에 일떠선 발해의 력사를 서술하지 않고 후기신라만을 취급함으로써 '발해사'도 '가야사'처럼 말살되는 위험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틈을 노려 가야 력사를 혹심하게 외곡(왜곡)해 나선 것이 약삭빠른 일본인들이였다. 그들은 빈구석으로 된 가야사의 자리에 일본 력사를 밀어넣었다. 그리하여 가야의 력사는 참혹히 란도질을 당하게 되였다."
- 조희승, 같은책, '4장 3절'.


***

1. [북한학계의 가야사(伽倻史) 연구], 조희승, 이덕일 해설, <도서출판 말>, 2020.
2.[삼국사기(三國史記)],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3. [삼국유사(三國遺事)], 일연,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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