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양장) 한국 민주주의 토대연구 총서 2
김동춘 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외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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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을 위한 민주적 '공화주의'
-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엮음, <한울아카데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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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100년, 가치와 문화](2020)
&#39;공공성&#39;을 위한 민주적 &#39;공화주의&#39; | &#39;공공성&#39;을 위한 민주적 &#39;공화주의&#39;-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엮음, &lt;한울아카데미&gt;, 2020. &quot;서구에서도 &#39;민주주의&#39;는 언제나 혁명이나 직접행동의 결과로 도입되었지, 지배세력이 양보하여 순순히 민주적 제도를 도입한 적은 없다. 특히 왕을 몰아내고 공화제를 실시한 것이나 보통선거권을 확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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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도 '민주주의'는 언제나 혁명이나 직접행동의 결과로 도입되었지, 지배세력이 양보하여 순순히 민주적 제도를 도입한 적은 없다. 특히 왕을 몰아내고 공화제를 실시한 것이나 보통선거권을 확보한 것도 모두 봉건귀족 세력과의 유혈투쟁, 전쟁과 내전, 봉기와 집단저항의 결과였고, 그러한 투쟁에 나선 주체는 일반 대중, 노동자들이었다... 지식인들의 사상과 이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이 어떤 의미 부여 작업을 통해 그런 가치나 구호에 공명해서 그처럼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건 봉기와 투쟁을 감행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 김동춘, 같은책, <서문>.


누구나 앞에서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대다.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손 안의 SNS를 통해 정보독점이 갈수록 약화되고 다수 민중의 정보활용과 연대의식이 무한 확장되고 있는 지금은, 30여 년 전 '민주화' 같은 용어가 무색할 정도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나 '민주주의'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거대자본과 정치권력의 편에 선 자들에게는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극소수이므로 소수에 의한 다수 지배체제는 당연한 것이고, '선민의식'을 버리지 못한 586 민주화 형님들은 본인들이 소싯적에 이미 겪은 '민주주의'만으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거대 기득권 양당구조로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시민들은 민주당 원외인사들이 생산하는 자극적인 뉴스들을 무기로 또 다른 파시즘을 양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시대인 지금, 모든 현상은 '민주주의'로 포장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산하 한국민주주의연구소가 1919년 3.1 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2019년 발간한 연구총서 [한국 민주주의, 100년의 혁명 1919~2019]에 이어 2020년에 발간한 책이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한울아카데미>)다. 
우리 헌법의 기초가 된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정' 불을 당긴 3.1 운동부터 1960년 4.19 혁명, 1970년 전태일 열사,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1987년의 민주화 대투쟁, 2002년부터 현재까지의 촛불시위 등의 거대한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기반으로, 1부에서는 '자유', '평등', '민주공화주의', '토지공개념' 등의 '가치'를, 2부에서는 '저항', '정당정치', '미투(젠더)', '학생운동' 등의 '문화'를 다룬다. 
그 이전 역사도 가끔 거론되나 조선이라는 마지막 '왕조'의 몰락 후 주로 한국 현대사 100년의 역사 속 '민주주의'의 '가치'와 '문화'가 주제다.

'민주주의'가 유래한 고대 그리스의 페리클레스가 연설에서 사용한 '자유'의 희랍어 '엘레우테리아(eleutheria)'는 '노예가 아닌 상태'나 '속박되지 않음'을 뜻한다는데 우리 조선 후기에도 비슷한 의미로 '자유'라는 용어가 등장한다지만,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이 말하는 '자유'는 그들만의 '자유'였고 피지배계급에게는 노동에 구속되거나 굶어죽을 '자유'만이 허락되었다. 일제강점기 진정한 '자유'는 식민지 상태로부터의 독립과 해방이었고, 현대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의 '자유'는 무한증식을 위한 '자본의 자유'에 불과하다.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그 용어 자체가 역설이다. 즉, '자유'라는 용어는 보편화되고 '평등'해져야 한다. 이렇게 각 개인의 '자유'가 모든 사람들 '자유'의 기초가 되는 진정한 '자유'의 조건은 '평등'이다. 근대적 의미의 '평등' 이전인 조선 시대 '민본주의'는 '균(均)'이라 표현했다. 우리 역사 최초의 대학 '성균관(成均館)'은 '균(均)을 이루는 교육기관'이었으며,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의 '경자유전' 원칙과 '과전법'의 토지개혁의 이념이 바로 '균(均)'이었다. 정약용도 '나라를 고르게 하는 것이 정치'라 했단다. 우리 제헌헌법에서도 단호하고 원칙적인 '평등'보다 현실적이고 정책적 개념인 '균등'을 선호했는데, 정치-경제-교육의 '균등' 강령인 조소앙의 '삼균주의' 영향일 수도 있고 '반공'의 이념적 영향도 있다. 그럼에도 조선 후기 농민봉기와 동학농민전쟁 및 동학의 기치는 단호한 '평등'이었음을 잊지 말 것이며, 현재는 과정과 절차를 우선하는 '공정성'과 결과로서의 '평등'의 연대를 지향해야 한다.

스스로 물러나는 기득권이나 적폐세력은 없다. 일제에 의해 패망하기까지 조선왕조는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와 일본을 끌어들였다. 외세의 군대로 내국민들을 죽이고 짓밟는 것을 서슴치 않은 결과 외세에 의해 국권 자체를 상실했다. 제국주의 열강들 경쟁에서 이긴 일제가 아니었더라도 다수 조선민중의 힘으로 무너졌을 조선이었겠지만, 왕조가 실제로 무너진 1907~1910년 이전 우리 역사 최초의 시민단체였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헌의6조' 같은 '민주주의'는 '입헌군주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공화국'은 왕조도 몰락하고 식민지 근대화가 폭력적으로 이식되던 1919년 3.1 운동 이후에야 상상 가능한 정치체제였다.




"임시정부가 내건 '민주공화국'이라는 비전과 구호는... '민주공화국과 관련하여 최초로 개념의 민주화가 시작'된 것이었다... '민주'라는 수식어를 결합한 용어 '민주공화'를 '임시헌장'에 삽입한 기초자들의 독창성, 그리고 그것이 이후의 역사에서 한 단어로 확고하게 굳어진 용어의 확정력은 '공화'의 개념사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민주공화주의'가 애국지사들이 일본의 강점에 대항하기 위해 서구사상을 수용하여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정치철학 이념인 것은 확실하다."
- 정상호, 같은책, <3장. 헌법 제1조의 기원과 변화로 본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


3.1 운동과 같은 동시대적 20세기 초 전세계 대중운동은 우연이 아니다. 유럽은 19세기 중반부터 다수의 노동계급에 의한 산업별 노동조합 투쟁과 정치세력화로 사회민주당 같은 진보정당이 보통선거권을 쟁취하기 시작했고 소비에트 노동자 정권도 등장했던 역동의 시기라 다수대중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시대정신이었다. 한반도는 해방 후 불행하게 남북 분단정권의 등장으로 남한 단독정부의 제헌헌법은 '반공'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이 헌법이 담은 '민주공화정' 또한 그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초기 제창자 유진오의 해석에 따르면 삼권분립, 의회, 정당, 선거 등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그친다. 자본주의 체제 모순을 '창조적 기업가정신'으로 극복하자는 조지프 슘페터 같은 학자의 '최소주의'적 '민주주의'와 같은 제헌헌법의 반공주의적 '민주공화국'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기 국고보조금 나눠먹기로 살아남은 제도권 거대정당들의 장기독재 획책을 저지한 다수대중의 저항과 투쟁을 통해 더욱 대중화되었고 21세기 '촛불투쟁'으로 등장한 대중민주주의 투쟁으로 '실질적' 민주주의의 길에 접어든다.

고대 로마 시대 '전제군주'의 명목상 임무는 '공화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공화정'이 '군주정'과 대립된 정치체제가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였다. '공화정'은 서양의 'republic', 즉 '공공성'의 어떤 표현이었고, 근대 이후 동양에 유입되면서 중국 주나라에서 폭군을 쫓아낸 재상정치체제로서 '공화'로 번역된 것인데, 권위있는 해석의 우리 문헌은 없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와 민주주의 역사는 '민주주의'와 '공화정'을 어울린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철학을 남북한 헌법 1조에 공히 선언하고 있다. 

- 남한 헌법 제1조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북한 헌법 제1조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

물론, 두 체제 모두 헌법 1조만큼 실질적 '민주주의' 공화국인지는 별론으로 하고, 남한인 대한민국은 다수 대중의 참여민주주의 확산을 통해 '실질적'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이 최근 30여 년간의 실증적 역사다.

이탈리아의 헌법은 '노동에 기초를 두는 민주공화국'을, 대혁명의 국가 프랑스 헌법은 '민주적, 사회적 공화국'을 국체로 선언하지만 우리 '임시헌장'의 '민주공화국'보다 시기상 늦다. 그 용어 자체로 '사회성'과 '공공성'을 담보하는 '공화주의'는 지금 시대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더욱 실질적으로 확대되고 공고화되어 대한민국은 더욱 민주적이고 사회적이며 공공성을 우선하는 '공화국'이 되어간다.




"조소앙의 (지공주의) 토지개혁론에서 중요한 것은 국유화 그 자체보다는 '평균지권'의 실현이었다. 국유화 후 토지분배는 (삼균주의) 조소앙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안한 방책이었다... 조선 시대 과전법도, 조소앙의 토지개혁론도 토지를 농민에게 한 번 나눠주고 끝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골고루 나눠준 토지가 다시 소수의 수중에 흘러 들어가 불평등하게 소유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국전의 원칙이었다."
- 전강수, 같은책, <4장. 한국의 토지소유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변천해 왔을까?>.


책의 1부는 '민주공화국'의 주요 가치로서 '소유권'의 '공공성' 주제를 다루는데, 역사적으로 '공공소유'의 대상이었던 '토지', 즉 '토지공개념'의 주제를 다룬다. 고려시대 전시과와 조선의 과전법은 '국전'의 형태였다. 소유권은 국가였고 조세 수취권을 부여하거나 토지생산물을 농민이 소유하도록 하는 제도로 '평등지권'을 실현하는 정책이었다. 고려 말 권문세족이나 조선 후기 신분제의 망조는 대토지소유로 드러났고 조선이나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세상의 시작은 '토지개혁'으로부터 출발했다. 토지공개념은 단순한 '국유화'가 아니라 토지의 사적 소유와 투기의 이념인 '지주(地主)주의'를 토지의 공공소유 이념으로서의 '지공(地公)주의'로 대체하면서 '평등지권'을 지향하며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지공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독재정부는 국민들의 소유욕을 부추기는 '지주주의'를 강화하여 이 나라를 '부동산공화국'으로 만들어왔는데,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수 민중의 '사회공공성' 열망으로 노태우 정권은 토지공개념 정책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으나 '세계화'와 'IMF' 체제 이후 '지공주의'가 약화되어 왔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보유세 강화의 장기적 계획 정책화를 시도했으나 '지주주의' 기득권 세력에게 패배했으며 이후 보수정권은 부동산과 토지를 아예 투기대상으로 굳혔다. 문재인 정부도 '지공주의'를 정책화하는데 실패하고 있는데, 여전히 "권력이 시장에게 넘어갔다"는 이유를 대고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주의적 소유권은 '지공주의' 소유권처럼 '평등(평균)지권'이 본질이다. 실질적으로 노동하고 만들며 전유하는 다수가 그 생산물을 소유하고 처분한다는 '공공소유'가 그 내용이 된다.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공화주의'의 본질은 '공공성(公共性)'이다.


***

-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김동춘 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엮음, <한울아카데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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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 문장의 왕국 조선을 풍미한 명문장을 찾아서
백승종 지음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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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위한 '문장(文章)'의 시대
-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백승종, <김영사>, 2020.



"조광조 등을 각지로 귀양 보낸 다음에도 한동안 조정이 소란하였다. 무명의 청년들이 사람을 모아 임금 주변을 정화하겠다며 쿠데타를 시도하였다. 그들은 일이 발각되어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앞다퉈 봉기를 꿈꾸었다. 그만큼 조광조와 그 동료들의 인기가 높았다. 반면 남곤은 다 이겨놓고도 진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1부. 시대의 문장 - 성리학 전성기의 문장가', 백승종.


조선은 '문장'의 나라였다.
우리의 문자 한글이 창제된 것이 고작 15세기였는데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된 후 한반도의 유학자들은 한문으로 지은 글이 중국인들조차 우러러 볼 정도로 수려한 문장을 구사했다고 한다. 물론, 아직 우리 문자인 한글로 지어진 문장 이야기가 아니었으므로 중국인들을 능가할 정도의 주자학적 교조주의가 팽배했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조선의 '이단아' 허균의 최초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16세기 말 민중봉기의 기운을 받고서야 등장했다.


역사학자 백승종 선생은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 그의 제자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의 문장으로부터 조선 성리학의 전성기와 쇠퇴기, 실학의 시대를 거쳐 근대화 개항기의 '문장가'들을 찾아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2020)으로 엮었다. '민본'의 건국이념을 내건 성리학 도덕정치의 조선, 그 '시대의 문장'을 한편으로, '문장의 시대'를 이끈 명문장가들을 한편으로 하여 이 시대에도 변함없는 '문장(文章)'의 의미를 조명한다. 
난 개인적으로 '빈곤의 철학, 철학의 빈곤' 식의 댓구를 이루는 작명을 좋아하는데, 일단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이라는 제목이 와닿는다. '시대'와 '문장'의 두 단어로 네 가지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는 작법이다.

고려말 관리로서는 실무능력이 떨어지나 시대의 대학자였던 이색과 개혁가 정몽주, 혁명가 정도전의 운명은 엇갈렸다. 결국 썩은 고려왕조를 '민본'의 이름으로 뒤집어 엎은 정도전 또한 새왕조의 칼날에 명을 다했고 납작 엎드린 이색은 제 명을 다 누렸다. 성리학적 신념으로 일생 타협하지 않은 정도전의 정치는 그의 실각과 함께 사라진 듯 했지만 조선은 그의 '문장'까지 버리지는 않았다. 사찬 형식이었지만 [조선경국전]은 '법치국가' 조선의 헌법과 같은 [경국대전]의 골자가 되었으며, 왕권을 견제하는 사대부 집단지도체제의 운영원리는 그의 [경제문감]이 뿌리였다. 조선왕조 불구대천의 역적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은 벼슬길이 막히지 않았던 그의 후손들이 편찬할 수도 있었다.

집현전을 통해 '문장가'가 지도하는 성리학적 시대는 세종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세종 또한 '역적' 정도전과 그의 문장을 "없는 것만 못하다"며 싫어했으나, 그가 건설하고자 했던 '민본주의' 이념은 지향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할 명문장가들을 양성했다. 정도전의 '혁명동지'였던 대문장가 권근의 후손인 권채, 백승종 선생이 '조선 제일 문장가'로 꼽는 박팽년 등은 일종의 안식휴가를 받고 경학과 문장을 연마하여 시대의 문장가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후 세종은 어린 손자 단종이 자신의 아들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할 때 끝까지 저항한 박팽년, 성삼문 등의 '충신'을 양성했으니 그 뜻은 어느 정도 이뤘을 수도 있겠다.

조선을 건국한 기득권 정도전의 후예들인 훈구파에 밀려 지방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정몽주의 후예 사림파들은 조선 중기 정계 진출을 하는데, 연산군 등의 폭군의 출현은 왕조 자체의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훈구파 지배체제의 한계이기도 했다. '덕치'와 그에 걸맞는 문장만을 인정한 사림파의 거두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은 그가 꿈에서 본 중국 초한전쟁 시대 초왕 의제(義帝)의 죽음을 담담히 묘사한 글임에도 유자광 등 훈구파는 개인적 복수와 정치적 시기로 해당 글을 세조의 찬탈을 비판하는 반역의 문장으로 둔갑시켜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선비가 화를 당한 사건 '사화(士禍)'는 이렇게 '문장'의 해석에서 시작하였다. 과연 '문장의 나라' 조선답다. 이후 중종에 의해 개혁의 기수로 발탁된 조광조 또한 오로지 '도학정치'만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며 군주를 견제하려 했기에 결국 세 번째 사화인 '기묘사화'의 재물이 되는데, 이 때는 이미 전국적으로 형성된 '사림파' 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였다. 성균관을 포함한 전국의 젊은 사림유생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섰고, 아마도 그 정치투쟁의 중심 또한 '문장'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사림파 김종직을 탄핵하고 '무오사화'를 일으킨 주동자였던 훈구파 유자광을 비판한 명문장 [유자광전]을 지은 남곤은 원래 조광조와 같은 사림파였으나 '기묘사화' 때는 훈구파가 되어 조광조를 처단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청년사림파의 암살 위협을 피해 변장을 하고 처소를 옮겨다닐 정도였단다.
젊은 시절 조광조와 뜻이 맞았을 남곤은 [유자광전]을 통해 '명문장'은 인정받았으나 시대에 굴복한 '문장가'로 후세가 평가한다.
그리하여 '문장의 시대'에는 수려하거나 화려한 '문장' 자체가 아니라, '시대의 문장'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남곤은 그의 일생으로 보여준다.


"피어린 상소문에 얽힌 사연을 더듬어가며, 나는 문장가로서 난세를 해쳐나간다는 것이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역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차라리 붓을 꺾을 수는 없었을까. 한 가닥 양심 때문에 문장가는 뜻을 굽히지 못한 채 고난을 자초하였던가."
-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2부. 문장의 시대 - 송곳처럼 날카롭고 추상처럼 매서운 문장가', 백승종.


네 번의 '사화'에도 불구하고 '문장'으로 무장한 다수 사림파는 굳은 '개혁' 의지로 선조 시대 이후 정권을 장악하고 본격적인 '당파투쟁'을 이어간다. 이후 실학자나 근대화론자들 또한 '문장'을 통한 시대 개혁을 꿈꾸었는데, 이들의 정신적 뿌리는 단연 강직한 선비들의 '피어린 상소문'이다.

광해군 때의 명문장가 권필은 외척을 비판하는 시를 지어 왕가의 노여움을 샀으나 붓을 꺾기보다는 차라리 맞아죽었다. 마지막 사화인 '을사사화'가 일어나기 전 명종 시기 조광조의 제자 백인걸은 모두가 눈치보느라 몸을 사리는 '대윤'과 '소윤' 따위의 정파싸움에 휘둘리지 말고 임금이 공명정대한 '덕치'를 해야한다는 상소 '문장'을 올린 후 왕의 부름을 받고는 모친과 처에게 "지금 들어가면 반드시 의금부에 하옥되어 유배를 떠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나 놀라지 말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실록). 조식은 역시 명종 시기 외척을 비판하는 격렬한 상소문으로 권력과 대치했는데 "유비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후한을 다시 세우지 못했다"며 명종의 벼슬길을 거절하고 초야에 숨었다. '덕치'가 불가한 세상에서 선비는 '문장' 뒤에 숨을 수 밖에 없었나 보다. 달리보면, 그나마 '문장'이라도 있던 '시대'라 다행이었던가.


"허위정보(가짜뉴스) 캠페인은 '진짜뉴스'를 '가짜뉴스'라고 매도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공격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넌더리를 내며 '어떤 소스도 믿을 수 없어. 뉴스는 믿을 게 못 돼'라고 외치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 [가짜뉴스의 고고학], '1장. 가짜뉴스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최은창.


로마의 카이사르 사후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는 경쟁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세력을 악티움 해전에서 물리치기 전, '가짜뉴스'를 통한 여론전에서 먼저 승리했다. "술꾼에 호색한에게 로마를 맡길 수 없다"며 이집트에 주둔한 안토니우스를 비방하여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먼저 얻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한 안토니우스였기에 '허위정보'는 아니었으나 정적에 대한 비방이 주를 이룬 짧은 찌라시 '가짜뉴스' 소문의 전파였다. 중세의 이단처형과 마녀사냥까지 온갖 '가짜뉴스'는 '문자'의 배포 형식이 아니었다. 인쇄술 혁명과 종교개혁을 통해 '문자'를 통한 '여론전'이 본격화되었으나 우리 조선과 마찬가지로 문맹률이 높았던 그 시대의 '문자'는 소수 지식인들의 영역이었고 다수 민중은 아마 소문으로 듣고 옮겼을 것이다. 이후 20세기 독일 나치는 라디오를 전국민들에게 싼 값으로 배포하면서 '가짜뉴스'를 세뇌시켰다. 괴벨스의 신조는 "거짓말도 계속 들으면 사실이 된다"였다. 싸구려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돈을 벌던 20세기 초 미국의 언론계는 유명작가 에드거 앨런 포조차도 '가짜뉴스'를 일부러 쓰던 시기를 거쳤다. 쿠바나 베트남에서 기사를 '사실'적으로 쓰기도 전에 미국의 의회나 신문사 편집실에서 '전쟁기사'를 먼저 쓰기도 했단다. 그들의 통킹만 사건 조작으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시작되었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했다. 해외는 70% 정도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데 우리나라는 80% 정도가 주요 포털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태극기부대 유투브, 정치권의 댓글부대 등 '가짜뉴스'는 각지에서 벌어지는 당장의 진흙탕 싸움에서 승기의 명분을 잡기 위함이었겠으나 이것들을 '고고학(archeology)'적으로 재구성하다보면, "세상 믿을 놈 없다", "너나 나나 다 사기꾼"이라는 허위의식의 판 구성이 목표였다고 소셜미디어, 지적재산권 전문가 최은창은 [가짜뉴스의 고고학](2020)에서 말한다.
위 책은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증폭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수단이 되는 '디지털 플랫폼'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도록 만들자는 것이 결론인데, "개방적 인터넷 자체는 민주주의를 붕괴시키지도, 허위와 진실을 구분하는 개인들의 능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 주요 전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짜뉴스' 제조기 트럼프를 주요 사례로 들며, 다수대중은 본인이 믿고싶은 내용을 담은 뉴스를 통해 신념을 굳히는 '확증편향' 또는 '동기화된 추론' 등을 통해 '가짜뉴스'를 읽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실제 정치적 영향력은 볼 수 없었고, 결국 이 '허위정보'나 '가짜뉴스'를 증폭시키는 언론의 역할이 컸으며 지금 시대의 거대 '언론'이자 '출판사'는 '디지털 플랫폼'이므로 이들의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나 또한 동의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공부한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저자에게 이런 거대 '디지털 플랫폼'의 '사회화'까지는 상상이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더욱 발전시킨 철도와 전기 등의 기간산업의 소유가 '사회화'되어야 하는 것처럼 '디지털 플랫폼' 또한 이 산업을 만들고 이용하며 발전시키는 다수에 의해 '사회화'된 민주주의 틀 안에서 그 역할이 토론되고 조정되며 통제되어야 한다. 지금은 다수 모든 민중들이 '문자'를 해독하고, '문장'을 지어내며,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로 활용하는 세상이다. 현대의 '스마트' 민중들에게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


문명은 문자와 함께 시작되었으니 다수가 문맹이었던 근대 이전에도 모든 것은 '문장'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후세에 남은 역사적 사실들 또한 '문장'에 의해서 가능했다. 
성리학 이념국가 조선이 '문장'을 중시했다지만 결국 다수 대중의 독해력으로 '문장'은 어느 시대든 주요한 소양이 될 수 밖에 없다. 권력을 지키고자 한 자들에게는 왜곡의 대상이 될 수도, 새세상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투쟁의 무기가 될 수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인류 문명사에서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 방식이 텍스트든 그림이든, 동영상이든 움짤이든 다양하겠지만, 결국 가장 단순하게 남아 전달되는 형식이 '문장'이 되리라는 믿음은 버릴 수가 없다. '문자'가 없는 '문명'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승종 선생은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말미에서 '가짜뉴스'가 SNS에서 판을 치는 시대에도 '불량한 문장'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통찰과 지혜가 빛나는 영롱한 문장들이 장차 세상의 흐름을 더욱 정의롭고 평화롭게 바꿀 것"이라고 믿으며 책을 마무리한다. 
지금의 '스마트 시대'는 더 많은 사람들을 '명문장가'로 만들 것이고, 그 평범한 다수 '명문장'들이 증폭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다.


"시대의 조류야 언제든 변하기 마련이다. 그에 발맞춰 형식도 바뀌겠지만 그래도 좋은 문장이 아주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어질고 아름다운 문장에 깃든 위대한 힘, 영혼을 뒤흔드는 그 힘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머나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이끄는 한 줄기 빛이다."
-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마치며. 오늘날 우리에게 문장이란 무엇인가', 백승종.

***

1.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백승종, <김영사>, 2020.
2. [가짜뉴스의 고고학], 최은창, <동아시아>, 2020.
3.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4.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석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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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고고학 - 로마 시대부터 소셜미디어 시대까지, 허위정보는 어떻게 여론을 흔들었나
최은창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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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위한 '문장(文章)'의 시대
-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백승종, <김영사>, 2020.



"조광조 등을 각지로 귀양 보낸 다음에도 한동안 조정이 소란하였다. 무명의 청년들이 사람을 모아 임금 주변을 정화하겠다며 쿠데타를 시도하였다. 그들은 일이 발각되어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앞다퉈 봉기를 꿈꾸었다. 그만큼 조광조와 그 동료들의 인기가 높았다. 반면 남곤은 다 이겨놓고도 진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1부. 시대의 문장 - 성리학 전성기의 문장가', 백승종.


조선은 '문장'의 나라였다.
우리의 문자 한글이 창제된 것이 고작 15세기였는데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된 후 한반도의 유학자들은 한문으로 지은 글이 중국인들조차 우러러 볼 정도로 수려한 문장을 구사했다고 한다. 물론, 아직 우리 문자인 한글로 지어진 문장 이야기가 아니었으므로 중국인들을 능가할 정도의 주자학적 교조주의가 팽배했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조선의 '이단아' 허균의 최초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16세기 말 민중봉기의 기운을 받고서야 등장했다.


역사학자 백승종 선생은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 그의 제자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의 문장으로부터 조선 성리학의 전성기와 쇠퇴기, 실학의 시대를 거쳐 근대화 개항기의 '문장가'들을 찾아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2020)으로 엮었다. '민본'의 건국이념을 내건 성리학 도덕정치의 조선, 그 '시대의 문장'을 한편으로, '문장의 시대'를 이끈 명문장가들을 한편으로 하여 이 시대에도 변함없는 '문장(文章)'의 의미를 조명한다. 
난 개인적으로 '빈곤의 철학, 철학의 빈곤' 식의 댓구를 이루는 작명을 좋아하는데, 일단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이라는 제목이 와닿는다. '시대'와 '문장'의 두 단어로 네 가지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는 작법이다.

고려말 관리로서는 실무능력이 떨어지나 시대의 대학자였던 이색과 개혁가 정몽주, 혁명가 정도전의 운명은 엇갈렸다. 결국 썩은 고려왕조를 '민본'의 이름으로 뒤집어 엎은 정도전 또한 새왕조의 칼날에 명을 다했고 납작 엎드린 이색은 제 명을 다 누렸다. 성리학적 신념으로 일생 타협하지 않은 정도전의 정치는 그의 실각과 함께 사라진 듯 했지만 조선은 그의 '문장'까지 버리지는 않았다. 사찬 형식이었지만 [조선경국전]은 '법치국가' 조선의 헌법과 같은 [경국대전]의 골자가 되었으며, 왕권을 견제하는 사대부 집단지도체제의 운영원리는 그의 [경제문감]이 뿌리였다. 조선왕조 불구대천의 역적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은 벼슬길이 막히지 않았던 그의 후손들이 편찬할 수도 있었다.

집현전을 통해 '문장가'가 지도하는 성리학적 시대는 세종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세종 또한 '역적' 정도전과 그의 문장을 "없는 것만 못하다"며 싫어했으나, 그가 건설하고자 했던 '민본주의' 이념은 지향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할 명문장가들을 양성했다. 정도전의 '혁명동지'였던 대문장가 권근의 후손인 권채, 백승종 선생이 '조선 제일 문장가'로 꼽는 박팽년 등은 일종의 안식휴가를 받고 경학과 문장을 연마하여 시대의 문장가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후 세종은 어린 손자 단종이 자신의 아들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할 때 끝까지 저항한 박팽년, 성삼문 등의 '충신'을 양성했으니 그 뜻은 어느 정도 이뤘을 수도 있겠다.

조선을 건국한 기득권 정도전의 후예들인 훈구파에 밀려 지방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정몽주의 후예 사림파들은 조선 중기 정계 진출을 하는데, 연산군 등의 폭군의 출현은 왕조 자체의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훈구파 지배체제의 한계이기도 했다. '덕치'와 그에 걸맞는 문장만을 인정한 사림파의 거두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은 그가 꿈에서 본 중국 초한전쟁 시대 초왕 의제(義帝)의 죽음을 담담히 묘사한 글임에도 유자광 등 훈구파는 개인적 복수와 정치적 시기로 해당 글을 세조의 찬탈을 비판하는 반역의 문장으로 둔갑시켜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선비가 화를 당한 사건 '사화(士禍)'는 이렇게 '문장'의 해석에서 시작하였다. 과연 '문장의 나라' 조선답다. 이후 중종에 의해 개혁의 기수로 발탁된 조광조 또한 오로지 '도학정치'만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며 군주를 견제하려 했기에 결국 세 번째 사화인 '기묘사화'의 재물이 되는데, 이 때는 이미 전국적으로 형성된 '사림파' 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였다. 성균관을 포함한 전국의 젊은 사림유생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섰고, 아마도 그 정치투쟁의 중심 또한 '문장'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사림파 김종직을 탄핵하고 '무오사화'를 일으킨 주동자였던 훈구파 유자광을 비판한 명문장 [유자광전]을 지은 남곤은 원래 조광조와 같은 사림파였으나 '기묘사화' 때는 훈구파가 되어 조광조를 처단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청년사림파의 암살 위협을 피해 변장을 하고 처소를 옮겨다닐 정도였단다.
젊은 시절 조광조와 뜻이 맞았을 남곤은 [유자광전]을 통해 '명문장'은 인정받았으나 시대에 굴복한 '문장가'로 후세가 평가한다.
그리하여 '문장의 시대'에는 수려하거나 화려한 '문장' 자체가 아니라, '시대의 문장'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남곤은 그의 일생으로 보여준다.


"피어린 상소문에 얽힌 사연을 더듬어가며, 나는 문장가로서 난세를 해쳐나간다는 것이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역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차라리 붓을 꺾을 수는 없었을까. 한 가닥 양심 때문에 문장가는 뜻을 굽히지 못한 채 고난을 자초하였던가."
-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2부. 문장의 시대 - 송곳처럼 날카롭고 추상처럼 매서운 문장가', 백승종.


네 번의 '사화'에도 불구하고 '문장'으로 무장한 다수 사림파는 굳은 '개혁' 의지로 선조 시대 이후 정권을 장악하고 본격적인 '당파투쟁'을 이어간다. 이후 실학자나 근대화론자들 또한 '문장'을 통한 시대 개혁을 꿈꾸었는데, 이들의 정신적 뿌리는 단연 강직한 선비들의 '피어린 상소문'이다.

광해군 때의 명문장가 권필은 외척을 비판하는 시를 지어 왕가의 노여움을 샀으나 붓을 꺾기보다는 차라리 맞아죽었다. 마지막 사화인 '을사사화'가 일어나기 전 명종 시기 조광조의 제자 백인걸은 모두가 눈치보느라 몸을 사리는 '대윤'과 '소윤' 따위의 정파싸움에 휘둘리지 말고 임금이 공명정대한 '덕치'를 해야한다는 상소 '문장'을 올린 후 왕의 부름을 받고는 모친과 처에게 "지금 들어가면 반드시 의금부에 하옥되어 유배를 떠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나 놀라지 말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실록). 조식은 역시 명종 시기 외척을 비판하는 격렬한 상소문으로 권력과 대치했는데 "유비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후한을 다시 세우지 못했다"며 명종의 벼슬길을 거절하고 초야에 숨었다. '덕치'가 불가한 세상에서 선비는 '문장' 뒤에 숨을 수 밖에 없었나 보다. 달리보면, 그나마 '문장'이라도 있던 '시대'라 다행이었던가.


"허위정보(가짜뉴스) 캠페인은 '진짜뉴스'를 '가짜뉴스'라고 매도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공격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넌더리를 내며 '어떤 소스도 믿을 수 없어. 뉴스는 믿을 게 못 돼'라고 외치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 [가짜뉴스의 고고학], '1장. 가짜뉴스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최은창.


로마의 카이사르 사후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는 경쟁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세력을 악티움 해전에서 물리치기 전, '가짜뉴스'를 통한 여론전에서 먼저 승리했다. "술꾼에 호색한에게 로마를 맡길 수 없다"며 이집트에 주둔한 안토니우스를 비방하여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먼저 얻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한 안토니우스였기에 '허위정보'는 아니었으나 정적에 대한 비방이 주를 이룬 짧은 찌라시 '가짜뉴스' 소문의 전파였다. 중세의 이단처형과 마녀사냥까지 온갖 '가짜뉴스'는 '문자'의 배포 형식이 아니었다. 인쇄술 혁명과 종교개혁을 통해 '문자'를 통한 '여론전'이 본격화되었으나 우리 조선과 마찬가지로 문맹률이 높았던 그 시대의 '문자'는 소수 지식인들의 영역이었고 다수 민중은 아마 소문으로 듣고 옮겼을 것이다. 이후 20세기 독일 나치는 라디오를 전국민들에게 싼 값으로 배포하면서 '가짜뉴스'를 세뇌시켰다. 괴벨스의 신조는 "거짓말도 계속 들으면 사실이 된다"였다. 싸구려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돈을 벌던 20세기 초 미국의 언론계는 유명작가 에드거 앨런 포조차도 '가짜뉴스'를 일부러 쓰던 시기를 거쳤다. 쿠바나 베트남에서 기사를 '사실'적으로 쓰기도 전에 미국의 의회나 신문사 편집실에서 '전쟁기사'를 먼저 쓰기도 했단다. 그들의 통킹만 사건 조작으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시작되었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했다. 해외는 70% 정도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데 우리나라는 80% 정도가 주요 포털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태극기부대 유투브, 정치권의 댓글부대 등 '가짜뉴스'는 각지에서 벌어지는 당장의 진흙탕 싸움에서 승기의 명분을 잡기 위함이었겠으나 이것들을 '고고학(archeology)'적으로 재구성하다보면, "세상 믿을 놈 없다", "너나 나나 다 사기꾼"이라는 허위의식의 판 구성이 목표였다고 소셜미디어, 지적재산권 전문가 최은창은 [가짜뉴스의 고고학](2020)에서 말한다.
위 책은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증폭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수단이 되는 '디지털 플랫폼'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도록 만들자는 것이 결론인데, "개방적 인터넷 자체는 민주주의를 붕괴시키지도, 허위와 진실을 구분하는 개인들의 능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 주요 전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짜뉴스' 제조기 트럼프를 주요 사례로 들며, 다수대중은 본인이 믿고싶은 내용을 담은 뉴스를 통해 신념을 굳히는 '확증편향' 또는 '동기화된 추론' 등을 통해 '가짜뉴스'를 읽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실제 정치적 영향력은 볼 수 없었고, 결국 이 '허위정보'나 '가짜뉴스'를 증폭시키는 언론의 역할이 컸으며 지금 시대의 거대 '언론'이자 '출판사'는 '디지털 플랫폼'이므로 이들의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나 또한 동의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공부한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저자에게 이런 거대 '디지털 플랫폼'의 '사회화'까지는 상상이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더욱 발전시킨 철도와 전기 등의 기간산업의 소유가 '사회화'되어야 하는 것처럼 '디지털 플랫폼' 또한 이 산업을 만들고 이용하며 발전시키는 다수에 의해 '사회화'된 민주주의 틀 안에서 그 역할이 토론되고 조정되며 통제되어야 한다. 지금은 다수 모든 민중들이 '문자'를 해독하고, '문장'을 지어내며,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로 활용하는 세상이다. 현대의 '스마트' 민중들에게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


문명은 문자와 함께 시작되었으니 다수가 문맹이었던 근대 이전에도 모든 것은 '문장'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후세에 남은 역사적 사실들 또한 '문장'에 의해서 가능했다. 
성리학 이념국가 조선이 '문장'을 중시했다지만 결국 다수 대중의 독해력으로 '문장'은 어느 시대든 주요한 소양이 될 수 밖에 없다. 권력을 지키고자 한 자들에게는 왜곡의 대상이 될 수도, 새세상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투쟁의 무기가 될 수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인류 문명사에서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 방식이 텍스트든 그림이든, 동영상이든 움짤이든 다양하겠지만, 결국 가장 단순하게 남아 전달되는 형식이 '문장'이 되리라는 믿음은 버릴 수가 없다. '문자'가 없는 '문명'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승종 선생은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말미에서 '가짜뉴스'가 SNS에서 판을 치는 시대에도 '불량한 문장'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통찰과 지혜가 빛나는 영롱한 문장들이 장차 세상의 흐름을 더욱 정의롭고 평화롭게 바꿀 것"이라고 믿으며 책을 마무리한다. 
지금의 '스마트 시대'는 더 많은 사람들을 '명문장가'로 만들 것이고, 그 평범한 다수 '명문장'들이 증폭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다.


"시대의 조류야 언제든 변하기 마련이다. 그에 발맞춰 형식도 바뀌겠지만 그래도 좋은 문장이 아주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어질고 아름다운 문장에 깃든 위대한 힘, 영혼을 뒤흔드는 그 힘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머나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이끄는 한 줄기 빛이다."
-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마치며. 오늘날 우리에게 문장이란 무엇인가', 백승종.

***

1.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백승종, <김영사>, 2020.
2. [가짜뉴스의 고고학], 최은창, <동아시아>, 2020.
3.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4.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석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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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 자본론으로 21세기 경제를 해설하다
한지원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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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정표
-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한지원, <한빛비즈>, 2021.


"이 책은 오늘날의 경제상태가 지속적 '성장론'이 아니라 [자본(론)]의 '작동중지(breakdown)'론을 통해 좀더 잘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
[자본]의 정수는 생산과 분배의 체계가 작동하는 근본적 원리를 탐구하는데 있다. 오늘날의 경제학 교과서들은 이를 상품시장, 요소시장을 다루는 미시경제학과 금융, 경기순환, 경제성장을 다루는 거시경제학으로 설명한다. [자본] 역시 이 주제를 모두 다룬다. 다만, (주류)경제학의 프레임과 달리 화폐론(금융), 착취론(생산), 축적론(성장)으로 그 주제들을 다룰 뿐이다. 이 셋을 잘 엮어야 경제적 현상들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자본]이 '착취받는 노동자를 위한 (철학적) 위안'이 아니라, 오늘날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노동하는 시민을 위한 과학'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서문>, 한지원, 2021.


70세가 넘은 연세에 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전 지하철공사 노동조합 위원장 정윤광 선생께서는 해당 박사학위 논문([1929년 공황과 2008년 공황의 비교연구])을 통해 칼 마르크스는 1857~1858년에 걸쳐 [정치경제학 비판요강]을 집필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고 비판하기 위한 총 6부의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1) 자본, 2) 토지소유, 3) 임금노동, 4) 국가, 5) 외국무역, 6) 세계시장과 공황 등이 그것인데, 이 플랜은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수록 및 발표되었고 1867년 [자본론] 1권 출판에 이르기까지 수정되고 보완되었다. 마르크스 사후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연구 초고들을 정리하여 [자본]의 2권과 3권 및 '잉여가치학설사' 등을 편찬하였으나 마르크스의 장대한 '6부작 정치경제학 비판' 계획은 전반 3부에서 멈추었고 '국가', '외국무역', '세계시장과 공황'의 후반 3부는 이후의 과제로 남겨졌다고 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49

https://brunch.co.kr/@beatrice1007/150

[자본론] 1권은 '상품'이라는 자본주의 최초의 '세포'이자 '맹아'로부터 분석을 시작하여, '상품'과 '화폐', 개별 상품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운동과 노동가치의 이중성 및 그로 인한 착취론 도출과 '물신성' 등을 다룬다. 엥겔스가 정리하기 시작한 [자본] 2권은 자본의 사회적 순환과 확대재생산을 분석하며 결국 가치증식된 자본(화폐)의 비밀은 생산과정에 투입된 '노동의 (사용)가치'의 착취(부불노동)가 근원임을 밝힌다. 이후 [자본] 3권은 개별생산과 순환을 넘어 총자본의 운동을 분석대상으로 하면서 지대(토지), 이자(금융) 등의 가치증식 또한 상품생산 과정에서 '노동'을 통해 발생한 가치의 이전임을 밝히고 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97

내가 보기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노동'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임금/가격)'의 이중성 폭로, 그로 인한 '이윤'의 원천으로서 '착취론'과 '잉여가치론', 인간의 사회적 생산관계가 '상품'과 그 '일반적 등가물'인 '화폐'의 관계로 은폐되는 '물신성(fetishism)'으로 정리되는데, [자본론]을 심도깊게 다시 공부한 'B급좌파' 김규항 선생은 최근작 [혁명노트]에서 이 '물신성'을 최대의 화두로 삼았고, 좀더 공부한 사람들은 [자본론] 3권 3편의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을 추가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50

[자본론] 2권 <서문>에서 "선학들이 '해답'을 본 곳에서 마르크스는 '문제'를 보았다"고 했던 엥겔스가 본 [자본론]의 '철학적' 시각을 나는 따랐는데, 자본주의 체제를 거대한 플랜에 따라 분석하고 해부하고자 한 마르크스 본인의 '정치경제학적' 시각을 따라 더 연구한다면 [자본론]의 결론은 '평균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에 따라 '작동중지(breakdown)'하는 자본주의 내적 모순과 그의 실현태인 '공황(economic crisis)'이 된다. 1994년 남한을 뒤흔든 지하철 총파업을 이끈 정윤광 박사에 의하면 자본주의 체제적 '공황'은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비판플랜의 결론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정윤광 박사님은 나의 결혼식 주례선생님이시기도 했다. ^^*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한지원 실장은 [매일노동뉴스] 칼럼으로 내게는 '믿고 읽는' 지식인이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이나 '국가재정' 등의 사안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현실 정책에 대한 다소 '양비론'적 언급으로 읽히기도 했으나 한지원 실장의 제안은 현재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엄밀하고 냉정한 분석을 토대로 일체의 '기득권'과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관점임을 알기에 '무조건 믿고 읽는' 저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지원 실장은 2021년에 세계를 보는 그의 관점을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라는 저서로 출간했는데, 이 책의 부제는 '[자본론]으로 21세기 경제를 해설하다'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와 지난 현실사회주의경제 등을 망라하며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분석틀로 현대경제를 분석하고 관련 이론들을 비판한다. 관점은 '철학적'이고 '문과적'인 시각을 넘어 '경제학적'이고 수량적인 '이과적' 시각도 강하다. '공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비유도 '이과적'이다.


"노동가치론의 논리 전개에 따르면 화폐의 본질은 상품에 대한 '보편적 등가물'이다... 길이의 보편적 등가물은 빛의 속도다.., 상품세계에서 빛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화폐다... 화폐는 인간노력을 사회적인 노동 한 단위로 양자화한다."
- 같은책, <1부 상품과 화폐>, 한지원.


마르크스에 의해 더욱 확고해진 '노동가치론'에 철저하게 입각하여 현대 경제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상품들의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화폐'의 본질을 설명하는 저자는 사회과학의 개념에도 자연과학의 비유를 하는데, 자본의 순환운동을 '보일러'의 난방운동에 비유하기도 한다. 



"... 사물을 파악하는 자본가적 방식의 미치광이 같은 성격은 여기('가공/의제자본')에서 그 절정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본의 가치증식을 노동력의 착취로부터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노동력의 생산성을 노동력 자체가 가진 이자낳는 자본이라는 신비한 속성으로부터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자본론] 3권, '5편 28장 은행자본의 구성', 칼 마르크스,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0.


'불평등'의 문제에 관하여 근원을 '기술혁신'이나 '불공정 시장' 등에서 찾는 것이 아닌 '자본' 자체로부터 규명하고 추적하는 토마 피케티 또한 한지원 실장에 의하면, "생산 측면이 이니라 분배와 거래 측면에서(같은책, <4부>)" 자본을 재정의하다보니 자산 일반이 모두 자본이 됨으로써 "배가 산으로 간 경우(같은책, 같은장)"가 된다. 저자에 의하면 "요컨대, 피케티의 불평등 이론은 법칙이라기 보다는 금융화의 힘 또는 자본가의 사회적 힘을 묘사하는 것에 불과하다(같은책, 같은장)".

https://brunch.co.kr/@beatrice1007/5

피케티 책의 특징은 매우 방대한 데이터와 장황한 설명을 하면서 "요약"을 통해 주제별로 결론단락을 두는 것인데, 한지원 실장도 "요컨대"를 통해 일련의 설명을 요약하는 특징이 있다. 저자가 요약한 피케티는 체제에 대한 현상의 '묘사'일 뿐 자본에 관한 본질적 분석이 아니다. 미국의 '불공정 시장 비판론자'이자 케인스주의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또한 저자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하는데 그 자신만만한 이론적 근거는 바로 [자본론]의 분석틀이다. 젊은 지식인의 탄탄한 자신감이 부럽다. 그만큼 '비트코인'에서부터 '임금공정성'이나 '임금(소득)주도성장론' 등 주요 논쟁점들의 허구성을 파헤치는 실력도 만만치 않다. 지속적인 '경제성장론'을 가상적으로 전제하는 위 이론들을 대차게 비판하는 주요근거 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결론인 '자본주의 작동중지론'이다.

내가 읽기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하나 고르라면 바로 '가공자본(fictitios capital/의제자본)'이다. 


"경제에서 '가공자본'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자본소유자가 생산물을 차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소유자가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미래로도 확장된다. 소유법칙은 이제 자본소유자가 미래 노동에 대해서도 청구할 권리로 확장된다... 자산소유자는 '가공자본'을 통해 현재의 노동만이 아니라 미래의 노동까지도 착취할 수 있다."
- 같은책, <3부 9장>, 한지원.


[자본론]이 나온 19세기는 '금융자본주의' 이전이었다. 3권에서 분석하는 지대(토지), 이자(금융) 등은 생산과정에 투입된 노동가치가 이전된 형태이며, 그 중 '이자' 또한 '금융자본'이었다기 보다는 당시 자본주의 '이상적 평균([자본론을 읽는다], 루이 알튀세르)'으로서 영국의 '영란(잉글랜드)은행'으로 대표되는 '은행자본'이었다. [자본론] 3권에 나오는 '가공자본(架空資本)' 또는 '의제자본(擬制資本)'은 '노동'과 결합하여 가치를 증식하는 생산자본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가 이전되거나 이에 기생하여 '자본' 구실을 하는 '가짜자본'이라는 뜻일 텐데, 어쨌든 현대 금융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가공(의제)자본' 형태가 자본의 주된 모습으로 현상하므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자산)론'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지원 실장은 '작동중지'의 내부모순으로서 '실제(생산)자본'에서 파생된 '가공자본'은 "미래의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그 필연의 운동을 가속화한다.


"21세기, 자본의 '작동중지(breakdown)' 상태에서 자본의 무능과 진보진영의 실패로 말미암아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적 공멸이라는, 체제의 극한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 같은책, <4부 14장>, 한지원.


'미래의 노동'까지 땡겨서 착취하는 '가공자본'이 대세가 된 현대자본주의는 결국 '평균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을 막을 수도 없고 오히려 더 강화한다. 고전적으로는 자본투자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분모인 불변자본(C) 몫이 커지면 분자의 가변자본(V) 몫에 비해 저하되는 개별자본의 이윤율(V/C+V)이 자본투자를 통한 '산업혁명' 급 기술혁신이 없는 한 전체 평균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회자되나 이 인공지능화와 자동화 등은 아직 기존 자본과 산업의 구조를 파괴하고 혁신하는 '혁명성'이 없다. 단지 '노동'의 파괴와 일자리 감소 등의 '협박질'로 불확실성만 키우고 이를 이용하는 자본의 이윤만 늘리고 있다. 

정윤광 선생은 예의 박사논문에서 1929년 공황과 2008년 공황을 비교분석하면서 '대공황'이 자본의 가치증식 운동의 필연적 결과임을 전제로, 1929년 공황 이후 2차 세계대전이라는 광범위한 자본파괴와 재건 및 혁신, 대규모 노동착취 강화를 발판으로 인류사 최고의 이윤율 성장을 기록하고 위기를 극복한 반면, 2008년 최근의 공황은 정부의 발빠른 개입으로 위기는 넘겼으나 신자유주의적 기조가 변함없어 여전히 이윤율 저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공황'의 연속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이 겹쳐져 우리 시대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일대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의 기본 '경전'이 다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72

우리 사회에 [자본론]을 처음 번역한 고(故)김수행 선생은 2014년 그의 마지막 저서 [자본론공부]에서 이 '평균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을 이윤율 저하의 경향과 산업혁명급 혁신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확대로 사회가 한 발 더 전진하는 경향이 현실적으로 복합작용하는 '법칙'으로 이해하자는 유언과도 같은 당부를 한다. 즉,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은 옳지만, 이 분석틀은 역사와 현실에 맞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지원 실장의 이 책은 [자본론]의 '공부'나 '해설'을 넘어 현시대에 맞는 "[자본론]의 현재화(같은책, <서문>)"라는 '또 다른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자본]의 현대화와 철학자 이진경의 말대로 자본주의 체제 '이후'를 상상하고 내다볼 수 있는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 필요하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0

자본이 '작동중지'와 '공황'으로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정표로서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새로운 세대에게 '철학'적 신념은 물론 이를 넘어선 '과학'적 무기가 된다.


칼 마르크스의 후예들로서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굽힘없이 현대화시키는 이 '천재'들이 화려한 주류경제학으로 가지 않고 노동계급의 편에 남아 있음에 이 시대 임금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감사한다.

***

1.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 자본론으로 21세기 경제를 해설하다], 한지원, <한빛비즈>, 2021.
2. [자본론], 칼 마르크스,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0~1996.
3. [자본론 공부], 김수행, <돌베개>, 2014.
4.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그린비>, 2004.
5. [혁명노트], 김규항, <알마>, 2020.
6. [1929년 공황과 2008년 공황의 비교연구], 정윤광, <경상대 정치경제학과 박사학위논문>, 2020.
7. [자본론을 읽는다](1966), 루이 알튀세르, 김진엽옮김, <두레>, 1991.
8.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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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중산층 사회 -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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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덫을 벗어나는 다수 '노동'의 연대
- 미국의 [엘리트 세습]과 한국의 [세습중산층 사회]



"신소유주의(신자유주의)는 주로 과도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능력주의' 언술은 경제체계의 승자를 찬양하며 패자를 본인의 능력과 덕성과 근면의 부족 탓이라고 간주하고 매도한다. 이것은 당연히 오래된 이데올로기로, 모든 엘리트가 어떤 풍토에서든 자신들의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활용해온 것이다...
...
'불평등'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적이다. 현재의 신소유주의는 19세기 초의 고전시대 소유주의와는 다르게 더 이상 명시적으로 '납세유권자'적일 수 없기에 그만큼 더 '능력주의'를 고취하려 한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3부 20세기의 거대한 전환 - 13장 하이퍼자본주의 : 현대성과 의고주의 사이에서', 토마 피케티, 2019.


2013년에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갈수록 높아지는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는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21세기 자본], <결론>)" 사회라 규정하며 현대의 '불평등' 문제에 천착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9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좀더 좌파적인 시선으로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를 '신소유주의'로 부르며 분석한다. 그가 추적하는 '불평등'의 기원은 가치증식(이윤)을 위해 '형성기'에는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21세기 자본], <2부 3장>)"이나 "충분히 축적되면...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같은책, 같은장)"으로 '변신'하는 자본이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규정한 자본의 본질은 '끊임 없는 자기증식 운동'인데 피케티는 이 운동형태의 '지대추구성'을 보며 '자본의 변신(같은책, 같은장)'을 갈수록 심화되는 현대 '불평등'의 한 조건으로 전제한다. 

피케티의 '신소유주의(신자유주의)' 분석에는 여러 개념이 사용되는데, 그 중 '브라만좌파'와 '상인우파' 이야기가 있다. 전통적인 자본가나 지주계급에 뿌리를 둔 '상인우파'는 원래부터 '불평등'의 근원인 반면,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브라만좌파'는 기존 산업시대 생산력 발전의 주력이었던 '노동계급'의 자녀들로서 평등교육의 혜택을 입고 유럽의 사회민주당과 미국의 민주당의 주력이 된 '좌파' 세대를 이른다. 우리의 '강남좌파'와 '86 세대'와 같다.
이 '교육'을 통해 '지식인' 계층을 형성한 '브라만(힌두교 성직자/지식인) 좌파'는 체제의 기득권을 형성하면서 기존 권력층인 '상인우파'와 결탁하고 신자유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권력동맹으로 굳게 결탁된다. '정치'적으로는 싸우는 것 같지만 '경제'적으로는 이익을 공유하는 양당제 거대정당 과두지배의 맨얼굴이다. 정확히 우리 사회 민주당의 모습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또 하나의 개념이 파생적으로 연결되는데, 바로 '능력주의(meritocracy)'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결론인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의 조건 중 '누진적 조세제도' 외에도 '교육'과 기회의 평등 및 공공재 소유의 확산이 제기된다. 피케티의 관점에 '능력주의'는 엘리트 계층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조해 온 이데올로기다. 이 '능력주의'라는 '허위의식(ideology)'은 '불평등'의 정치경제적 근원을 은폐한다.


"모든 문명사회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속임수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부와 특권의 집중과 세습을 대대손손 유지하는 메커니즘이자 원한과 분열을 불러일으키는 계층제도가 된 것이다. 심지어 새로운 '귀족제도(aristocracy)'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고통이 '능력주의'가 불완전하게 구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능력주의' 그 자체 때문이라는 점이다... '능력주의'는 시민 대다수를 사회 주변부로 몰아내고 중산층 어린이들을 무기력한 학교로, 중산층 성인들을 장래성 없는 직장으로 보낸다...
다시 말해 '능력주의'는 조직적인 계층 갈등을 조장해 사회적, 정치적 생활을 망가뜨린다... '능력주의'에 힘입은 엘리트들은 제 아무리 순수한 동기를 지니며 양심적인 방법으로 성공을 거둔다 해도 포부와 성과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비판하는 '불평등'에 관여하게 된다."
- [엘리트 세습], '서문', 대니얼 마코비츠, 2020.


예일대 수학과, 런던 정경대 경제학과 석사와 옥스포드대 철학과 박사 학위를 얻은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이자 사법연구소 소장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천재'로 불린단다. 학위와 직업 소개에도 숨이 막히게 재수없는 이 엘리트가 토마 피케티의 '불평등' 연구에 뒤질세라 본인이 속한 미국사회 엘리트 계층의 주요 이데올로기인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깐다. 세부 내용 하나하나 수긍할 만 하나 나는 사실,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어 사서 읽었다. 고대 로마의 제국 팽창과 공화국의 몰락의 근본 토대는 고대 노예제 정치경제체제의 모순이었겠으나, 표면적으로는 부와 성공, 벼락출세자들에 대한 숭배도 원인이었으며 그 지배 이데올로기가 '능력주의'였다 생각했고, 마침 이 책 표지에 그려진 상상의 동물 '그리핀(Griphios)'이 고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매개 같았다.

마코비츠는 [엘리트 세습]에서 미국 사회를 분석하면서 미국의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금융업 고위직 종사자들은 '기술혁명'과 궤를 같이 하면서 기존 미국의 '산업민주주의'를 만들어온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는데 이를 가속화시킨 핵심 분야가 '교육'과 '직업'이라고 한다. 부자집안 아들 부시와 중산층 클린턴은 재산의 차이 외에는 교육이나 사회진출의 기회 또는 생활에서 큰 차이가 없었으나 이후 기득권이 된 클린턴 부부나 오바마 등의 민주당 정치권력자들 부류는 자식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인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거나 이용하여 '엘리트 세습' 체제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마코비츠는 [엘리트 세습] 곳곳에서 피케티를 의식하는데, 마치 '불평등'의 기원을 '자본'에서 찾는 피케티의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함이다. 어차피 사라져가는 미국 '중산층'을 염려하며 오랜 미국의 영화를 되살리고 싶은 이 미국 엘리트 '천재'에게 마르크스나 사회주의 같은 지난 서사담론은 안중에 없을 것이니, 주류 엘리트에 도전하는 신세대 정치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같은 '엘리트'로서 '경계'의 대상일 수 있겠다. 
마코비츠에 의하면 미국 산업의 전성기를 통과한 '중산층'은 미국의 상위 '엘리트'들에 의해 '교육'에서도 밀려나고 '직업' 또한 '번지르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게으른 삶'을 강제당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엘리트' 또한 재능 없이 물려받은 재산만으로 '여가'를 즐기며 일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전통적인 '귀족'들과 달리 고수익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는 '자기착취'를 통해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므로 "이제 중산층 노동자와 상위 (엘리트) 노동자를 포괄하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같은책, <결론>)"는 선언으로 "오래된 구호([공산당선언])를 새롭게 인용(같은책, <결론>)"하며 책을 끝맺는다. 

고소득을 받지만 쉬지않고 일을 하는 현대의 '귀족' 엘리트는 어려서부터 상위권 교육환경에서 살인적인 경쟁에 시달려 왔고 '번지르한' 직업에 진입해서도 쉼없는 '자기착취'로 피폐한 삶을 산다. 한편으로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을 성장시킨 '중산층'은 중간관리직 일자리가 고위 엘리트들의 '기술혁신'에 의해 줄어들고 소득이 줄어 소비도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빈민계층과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 
수학과 경제학, 철학까지 전공하고 명문대 로스쿨에서 상위 엘리트층 자녀들을 가르치는 '천재' 마코비츠의 뛰어난 수치분석과 비교 그래프들은 화려하기는 하나 미국사회의 분석이므로 저자의 '진보'스러운 수사에도 불구하고 공허하다. '중산층'을 복원하고 '엘리트'를 연민하며 미국 노동자들을 '단결'시켜 얻을 '새로운 세상'이라 해봐야 결국 18~20세기 미연방 공화국의 영광 뿐 아니겠는가.
'불평등'의 정치경제학적 근본 분석은 피해가면서 미국사회가 빠진 '능력주의의 덫' 자체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서술을 지루하게 읽다보니 얼마전 꼭 읽어야겠다 생각한 우리 책, [세습중산층 사회]가 떠올라 바로 주문하였다.
마코비츠 책, [엘리트 세습]의 원제는 '능력주의 덫(The Meritocracy Trap)]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시기에 이르러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테크노크라트에 가까운 집단을 대규모로 창출했다. 이들은 이전 세대인 50년대생과 비교해 전문직이나 대기업 내 관리직 비율이 높았다. 또 시대에 맞는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추었기 때문에 1990년 중반 이후 금융과 IT 산업에서 1세대 엘리트층을 구성하게 된다... 또 386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보다 동일 연령대에서 자산 축적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자신의 계층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분투하면서 '세습중산층 사회'를 만들어냈다."
- [세습중산층 사회], '6장 세습중산층의 기원', 조귀동, 2020.


경제학 박사과정에서 '인적자본'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는 저자 조귀동은 [세습중산층 사회]에서 한국사회 기득권이 된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와 그들의 자녀들인 '90년대생'들을 통틀어 '세습중산층'으로 본다. 이 책은 아마도 경제학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나온 마코비츠의 [엘리트 세습] 못지 않게 온갖 수치와 그래프 및 수학적 비교분석이 대부분인데, 결국 '86세대'가 한국의 노동시장을 석권하고 부동산시장을 점령하였으며 그럼에도 자산 뿐만 아니라 90년대생 자녀들을 엘리트 교육시장에까지 진출시키면서 '중산층'의 지위를 세습하는 사회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조귀동의 '세습중산층'은 마코비츠의 '중산층'과 다르고 상위 엘리트층이 약간 확대된 것으로 보면 된다. 한 세대 전 '교육(명문대)'을 통해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금융직 등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들의 앞세대처럼 물적자산을 물려주기 보다는 효율성 높은 인적자산을 키워주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 마코비츠의 '중산층'은 '세습중산층 사회'에서는 '중하위 80%'에 해당하는 계층 일반으로 보면 된다.
자녀들이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치열한 입시경쟁 '교육'에 투자하는 '세습중산층 사회'의 분석에 앞서 조귀동은 '노동시장' 분석부터 시작하여 20대 세대 분석, '세습중산층'의 기원인 '86세대' 분석, 그로 인해 세습되는 '계급의식'과 20대 정치성향 분석 등을 수많은 수치비교를 통해 전개하면서 '세습중산층 사회'의 진화를 예측한다. 
조국 전장관 자녀 특혜 비리에 대해 분노한 20대라고 해봐야 그 사건을 통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위층 자녀들이고, 나머지 다수 20대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난 용'이었던 '86세대'가 부동산과 교육, 노동시장을 다 독식한 결과 그 비슷한 '중산층'의 삶을 물려받는 90년대생  자녀들 이후로는 이 망할 '세습중산층 사회'가 더욱 강화된다는 전망 앞에서는 그냥 책을 덮고 싶었다.


"오히려 문제는 명문대를 나오고,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 인정과 경우에 따라 명망까지 가진 '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90년대생'인 자신의 자녀들이 적합한 '능력'을 갖추도록 독려하고, '교육' 제도를 잘 이용해 새로운 경제 여건과 시대 상황에  걸맞는 '인재'로 키워내는 데 성공하는 것 그 자체다."
- [세습중산층 사회], '에필로그 : 세습중산층의 진화', 조귀동, 2020.


[세습중산층 사회]의 저자 조귀동은 이런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가 된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책의 결론(에필로그)에서 '기회의 평등'과 '누진적 조세'를 제안하는데 다수인 90%가 상위 10%가 접근할 수 있는 공공교육과 상위 10%의 소득에 대한 세금 확대가 그것이다. 결국 '능력주의'의 문제도 '교육'과 '직업(노동)'이며, 해법도 '교육'과 '노동(직업/조세)'에서 찾는다. '자본'이 만든 '능력주의'는 여전히 이윤을 찾아 우리 삶 전 영역을 헤맨다.


"'능력주의'는 귀족제도를 해체하기보다 재편해 부가 토지나 공장이 아닌 인적자본, 즉 숙련 노동자의 자유로운 형태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카스트와 같은 계층질서를 만들어낸다... 능력은 능력으로 대체된 귀족의 가치처럼 자연스럽거나 보편적인 덕목이 아니라 앞서 존재한 '불평등'의 결과물이다. 능력은 인적자본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부당한 분배를 눈가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구조물이다."
- [엘리트 세습], '1부 3장 다가오는 계층전쟁', 대니얼 마코비츠, 2020.


피케티나 마코비츠나 조귀동 모두 '불평등' 문제에 주목하고 방대한 조사와 데이터 연구분석을 통해 원인을 규명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한다. '불평등'의 토대가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라는 근본적 분석에 동의하든 말든, 미국의 '엘리트-중산층' 대립이나 우리의 '86세대-90년대생' 세습관계 등의 계층이나 세대 분석적 접근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다. 그리고 그 다양한 분석들을 망라하는 변혁의 방식으로 이들 모두가 제출하는 것은 '연대'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자본'과 '시장'의 무한증식 팽창을 다수가 통제하기 위한 '노동'의 '연대'라면 더욱 좋겠다. 
LG 자본에 의해 쫓겨나는 청소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능력주의의 덫'이든 뭐든 중요한 게 아니라 오로지 인간답게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노동'하는 다수의 광범위한 연대를 통한 '평등' 지향이라는 방향성이 없다면, 우리 사는 이 세계는 너무도 절망적이다.

***

1. [엘리트 세습](2020), 대니얼 마코비츠, 서정아 옮김, <세종>, 2020.
2. [세습중산층 사회], 조귀동, <생각의힘>, 2020.
3.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4.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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