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현상학 2 한길그레이트북스 64
게오르크 W.F.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 / 한길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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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을 읽던 시간 : 1997년 가을
- [정신현상학](1806), G.W.F. Hegel,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97.


1.

"말하자면 이제 '의식'은 오직 자기 자신을 음미하고 검증하는 것이라고 할 때 바로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는 순수한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기만 하면 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의식'은 한편으로는 '대상'의, '대상'을 향한 '의식'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만 관여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 G.W.F. Hegel, [정신현상학], <서론>, 1806.


그 해 여름이 더웠던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해 12월이면 전역이었고, 전 해 가을에는 생전 처음 '사랑'이란 걸 시작한 터였기에, 스물다섯 내 청춘은 가장 뜨거웠을 거란 기억만이 남은, 
1997년의 늦은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독일 사변철학을 완성했다는 19세기 '객관적 관념론' 철학자 헤겔(Georg W. F. Hegel)의 [정신현상학]을 사서 보내달라고 보낸 편지의 수신인 미선이는 이제 더 이상 나의 학교 후배가 아니었다. 
1996년 10월, 상병 진급휴가 복귀 전날 새벽까지 손을 잡고 함께 별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구박하고 골려먹던 대학 2년 후배였다. 하지만 '취중진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한 술취한 군바리의 사랑고백에 흔쾌히 응해준 그날 밤부터 미선이는 나의 실질적 '첫사랑'이 되었다. 그건 사실, 두 사람이 동의한 '객관적' 현상부터의 이야기였고, 나의 '주관적' 의식 속에서는 아마도 오래 전부터 그녀가 줄곧 떠나지 않은 터였다. 신병훈련소에서 빡세게 구르거나 자대배치 후 야간보초를 설 때 온통 내 머릿속에는 '자주국방'이나 '멸공방첩'이 아닌 소주 한 잔과 그녀 뿐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싫던 군대가 아니었다면 헤겔 철학의 원전인 [정신현상학] 따위는 읽을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게다. 헤겔의 거꾸로 물구나무 선 '변증법'은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유물변증법)'으로 150년 전에 바로 세워진지 오래고,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으로 완성된 19세기 독일 사변철학은 부르주아의 유산일 뿐, 진정한 철학인 '유물론'의 유산은 엥겔스에 의하면 이미 19세기에 독일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이 물려받은지 오래였다. 엥겔스는 아예 내친 김에 1888년에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선언했다. 1분에 5백타 이상 치는 한글타자 실력으로 운좋게 사령부처 행정병 보직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옆 공병대로만 갔어도 나는 공구리 치고 삽질하며 짬밥 더 먹기 위한 전우들과의 생존투쟁에 치어 철학책 따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역시 돌아보면 인생이란 '우연'으로 점철된 거 아니면, 헤겔의 아이였던 '의식'이라는 꼬마가 '이성의 간지(奸智:간교한 지혜)'에 의한 길고 긴 여행을 통해 '절대정신'이라는 궁극의 '일자(一者)'를 만나는 '필연'의 과정일 터였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며,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썼다는데, 그에게 '현실'은 '이성의 간지'에 의해 '절대정신'이 궁극에 실현되는 '필연'의 과정이었다. [정신현상학]으로 시작된 그의 방대한 세계관은 '개념'의 변증법적 운동으로서 [대논리학]으로, '법철학'과 '골상학', '미학'과 '역사철학'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순환되고 확장되었다. 어쨌든, '현실'이란 그게 무엇이었든 스물다섯의 한 젊은이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중년의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세상 모든 철학적 이치를 다 안다고 자부하던 이십대의 나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의하면 이제 겨우 '2장' 자기의식의 즉자성을 지나 대자적 관계에 접어들어 '이성'의 '3장'에 들어선 '의식'이라는 작은 아이였다.


헤겔이 주저 [정신현상학]을 탈고한 때는 그가 독일에 나타난 나폴레옹을 보고는 "저 분이야말로 말을 탄 '절대정신'이다"라고 일갈한 그날 밤이란다. 오래전부터 철학의 주체인 '의식'이 절대적 일자로서 '절대정신'을 만나 그야말로 신과 같이 절대적인 '학(學)적 지식'이 되는 철학적 여정을 고민했을 헤겔이 그 일단의 철학 프로그램을 후다닥 완성한 순간이었다. 18~19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근대주의'를 접했던 당대의 혁신적 '모더니즘' 철학자 헤겔에게 지적 혁명은 철학과 종교가 결국은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성'적 논증이었다. 헤겔로 인해 철학은 '주관적 관념론'을 벗어나 세상의 운동원리인 '변증법'과 일치하는 거대한 '객관적' 세계관이 되었다. 물론 마르크스에 의하면 '거꾸로 선' 관념론자였지만. 
[정신현상학]으로 사상의 개관을 마친 헤겔은 '의식'이 아닌 '개념'의 동일한 여정을 그리는 [(대/大)논리학]을 완성하고 또한 마지막에 같은 논리로 돌아가는 '역사철학'까지 진격하는데, 과연 이 거대한 일관성의 철학자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서양 철학사에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대(大)사상가였다.

나중에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기를 넘긴 장대한 '5년 연애'를 얘기하는 나에게 "웃기지 말라. 3년도 안된다"고 말하던 그녀는 나름의 셈법이 있었나 본데, 아무튼 새롭게 만난지 10개월이 지나는 시점에 생뚱맞게 '100일 기념(?)'으로 미선이는 [정신현상학] 두 권을 소포로 부치면서 "성경책만큼이나 빡빡한 이 두 권의 책을 보기에는 100일은 커녕 1000일도 모자랄 듯..."이라고 앞 속지에 썼다. 아마도 '니 제대할 때까지 읽는다고 다 보겠느냐'는 의구심이었겠지만, 미선이는 결코 사령부 민심처 행정병의 남아도는 시간까지는 알 수 없었으리라. 마르크스가 엄청 욕해대면서도 영향을 크게 받았고 넘어서야 했던 철학의 큰 산,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나는 1차 세계대전의 전야였던 1914년의 좌파 사회민주당 의원들마저 '조국'의 제국주의 전쟁공채에 찬성표를 던지던 암울한 유럽 정세에서의 레닌이 하라는 혁명은 하지 않고 바로 앞 선배인 마르크스처럼 대영도서관에 짱박힌 채 헤겔의 [대논리학]을 읽고 [철학노트]로 정리했을 그 마음으로 열심히 줄치고 메모하며 읽었다. 


2.

"이제 '이성'은 그 자신이 곧 전체를 포괄하는 실재라는 데 대한 확신이 진리의 단계로까지 고양되며 또한 자기자신을 바로 자기의 세계로, 그리고 다시 이 세계를 자기자신의 세계로 의식하는 가운데 스스로 '정신'이 된다... 이제 (즉자대자적 존재로서의) '의식'으로서의 구체성을 띠면서 동시에 스스로 자기자신을 표상하는 즉자대자적 실재는 다름아닌 '정신'인 것이다."
- Hegel, [정신현상학], <3장 이성, 6절 정신>, 1806.


'현상학(現象學/phenomenology)'은 사물의 '현상'적 흐름을 추적하는 서술기법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필연'이라는 '이성의 간지'를 부리는 '절대정신'은 절대로 '의식'의 운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지옥에서 단테를 안내하던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도 같이 "순수한 방관자"(같은책, <서론>)이자 관찰자인 헤겔의 손을 잡고 높은 곳에 서서 '의식'(1장)이라는 작은 아이가 스스로를 깨닫는 즉자적 '자기의식'(2장)을 거쳐 타자와의 관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이성'(3장)으로 발전하는 현상의 궤적을 묵묵히 따라간다. '의식'에서 '이성'으로 성장하는 이 철학적 아이는 '정신'(3장 6절)과 '종교'(3장 7절)를 거치며 '절대정신' 또는 '절대지'를 만나는데, 이 궁극의 단계에서는 '이성'이라는 아이 자신이 곧 '절대이성'이 된다. '즉자'(의식)-'대자'(이성)-'즉자대자'(절대정신)로 완성되는 헤겔 철학은 후대에 의해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도식화되었고 이러한 완성의 체계를 비판한 마르크스는 물질로부터 시작하는 유물론을 역시 변증법적으로 완성하나 결국 말년의 주저 [자본론]에서 그렇게 비판하던 헤겔의 '현상학'적 서술방식을 따른다. 즉, '상품'이라는 작은 아이가 '생산'과 '노동착취', 그리고 '잉여가치'와 교환 및 확대재생산 등의 형태와 과정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생산'이라는 거대한 체제의 비밀을 폭로하는 과정이 마르크스 [자본론]의 서술체계다. 
19세기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방식으로 헤겔을 뒤집었고, 20세기 레닌은 그런 헤겔의 [대논리학]의 '개념 운동'을 통해 역설적으로 헤겔의 '유물론'적 측면을 발견하면서 [철학노트]를 작성했다. 혁명을 준비하던 레닌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물구나무 선' 철학 스승 헤겔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스물다섯의 나 또한 포천의 군부대 구석에서 하라는 '자주국방'은 아랑곳 없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팠다.


3.

"실제로 지(知)의 근원을 이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적작용을 하는 보편적 요소일 뿐더러 이것이 궁극적 의미에서는 다름아닌 '절대정신'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절대정신'은 신앙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순수의식이나 혹은 사유한다는 것 그 자체로서만 본다면 오직 절대적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자기의식'으로 보면 이것은 바로 자기에 관한 지(知)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 Hegel, [정신현상학], <3장 이성, 6절 정신>, 1806.


이십대 초반의 나는 '소설가'를 꿈꾸었고,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으나, 사실 '연애'를 하고 싶었다. 입대 후 일년 간 짧은 머리카락만 쥐어 뜯다가 휴가 때 구박은 했지만 귀엽게 아끼던 후배 미선이한테 다가갔고 전역을 하고도 그 후로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상처만 주다가 결국 헤어졌다. 
아프기도 했고 당시 나로서는 어쩔 수 없기도 했던 미안함이 가장 크지만, 다시 그 때로 되돌아 갈 수 있다 해도 나로서는 더 잘해볼 도리는 없었을 게다. 

그 당시 나의 '절대정신'이었던 그녀는 결국 그녀를 통해 투영했던 나 자신이라는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의식'이 타자를 만나 대자적 관계를 맺으며 '절대정신'으로 성장하는 잊지 못할 청춘의 과정. 
미안함에도 가끔 그 때가 문득 떠오른다면, 그 당시 모자랐던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상념이리라.

헤겔을 읽던 시간,
1997년 가을의 이야기다.

***

1. [정신현상학](1806), G.W.F.Hegel, 임석진 옮김,<지식산업사>, 1997.
2. [자본론] 1권(1867), K. Marx,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89~1996.
3.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4. [철학노트](1914), V.I. Lenin,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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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1 한길그레이트북스 63
게오르크 W.F.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 / 한길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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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을 읽던 시간 : 1997년 가을
- [정신현상학](1806), G.W.F. Hegel,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97.


1.

"말하자면 이제 '의식'은 오직 자기 자신을 음미하고 검증하는 것이라고 할 때 바로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는 순수한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기만 하면 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의식'은 한편으로는 '대상'의, '대상'을 향한 '의식'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만 관여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 G.W.F. Hegel, [정신현상학], <서론>, 1806.


그 해 여름이 더웠던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해 12월이면 전역이었고, 전 해 가을에는 생전 처음 '사랑'이란 걸 시작한 터였기에, 스물다섯 내 청춘은 가장 뜨거웠을 거란 기억만이 남은, 
1997년의 늦은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독일 사변철학을 완성했다는 19세기 '객관적 관념론' 철학자 헤겔(Georg W. F. Hegel)의 [정신현상학]을 사서 보내달라고 보낸 편지의 수신인 미선이는 이제 더 이상 나의 학교 후배가 아니었다. 
1996년 10월, 상병 진급휴가 복귀 전날 새벽까지 손을 잡고 함께 별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구박하고 골려먹던 대학 2년 후배였다. 하지만 '취중진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한 술취한 군바리의 사랑고백에 흔쾌히 응해준 그날 밤부터 미선이는 나의 실질적 '첫사랑'이 되었다. 그건 사실, 두 사람이 동의한 '객관적' 현상부터의 이야기였고, 나의 '주관적' 의식 속에서는 아마도 오래 전부터 그녀가 줄곧 떠나지 않은 터였다. 신병훈련소에서 빡세게 구르거나 자대배치 후 야간보초를 설 때 온통 내 머릿속에는 '자주국방'이나 '멸공방첩'이 아닌 소주 한 잔과 그녀 뿐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싫던 군대가 아니었다면 헤겔 철학의 원전인 [정신현상학] 따위는 읽을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게다. 헤겔의 거꾸로 물구나무 선 '변증법'은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유물변증법)'으로 150년 전에 바로 세워진지 오래고,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으로 완성된 19세기 독일 사변철학은 부르주아의 유산일 뿐, 진정한 철학인 '유물론'의 유산은 엥겔스에 의하면 이미 19세기에 독일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이 물려받은지 오래였다. 엥겔스는 아예 내친 김에 1888년에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선언했다. 1분에 5백타 이상 치는 한글타자 실력으로 운좋게 사령부처 행정병 보직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옆 공병대로만 갔어도 나는 공구리 치고 삽질하며 짬밥 더 먹기 위한 전우들과의 생존투쟁에 치어 철학책 따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역시 돌아보면 인생이란 '우연'으로 점철된 거 아니면, 헤겔의 아이였던 '의식'이라는 꼬마가 '이성의 간지(奸智:간교한 지혜)'에 의한 길고 긴 여행을 통해 '절대정신'이라는 궁극의 '일자(一者)'를 만나는 '필연'의 과정일 터였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며,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썼다는데, 그에게 '현실'은 '이성의 간지'에 의해 '절대정신'이 궁극에 실현되는 '필연'의 과정이었다. [정신현상학]으로 시작된 그의 방대한 세계관은 '개념'의 변증법적 운동으로서 [대논리학]으로, '법철학'과 '골상학', '미학'과 '역사철학'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순환되고 확장되었다. 어쨌든, '현실'이란 그게 무엇이었든 스물다섯의 한 젊은이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중년의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세상 모든 철학적 이치를 다 안다고 자부하던 이십대의 나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의하면 이제 겨우 '2장' 자기의식의 즉자성을 지나 대자적 관계에 접어들어 '이성'의 '3장'에 들어선 '의식'이라는 작은 아이였다.


헤겔이 주저 [정신현상학]을 탈고한 때는 그가 독일에 나타난 나폴레옹을 보고는 "저 분이야말로 말을 탄 '절대정신'이다"라고 일갈한 그날 밤이란다. 오래전부터 철학의 주체인 '의식'이 절대적 일자로서 '절대정신'을 만나 그야말로 신과 같이 절대적인 '학(學)적 지식'이 되는 철학적 여정을 고민했을 헤겔이 그 일단의 철학 프로그램을 후다닥 완성한 순간이었다. 18~19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근대주의'를 접했던 당대의 혁신적 '모더니즘' 철학자 헤겔에게 지적 혁명은 철학과 종교가 결국은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성'적 논증이었다. 헤겔로 인해 철학은 '주관적 관념론'을 벗어나 세상의 운동원리인 '변증법'과 일치하는 거대한 '객관적' 세계관이 되었다. 물론 마르크스에 의하면 '거꾸로 선' 관념론자였지만. 
[정신현상학]으로 사상의 개관을 마친 헤겔은 '의식'이 아닌 '개념'의 동일한 여정을 그리는 [(대/大)논리학]을 완성하고 또한 마지막에 같은 논리로 돌아가는 '역사철학'까지 진격하는데, 과연 이 거대한 일관성의 철학자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서양 철학사에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대(大)사상가였다.

나중에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기를 넘긴 장대한 '5년 연애'를 얘기하는 나에게 "웃기지 말라. 3년도 안된다"고 말하던 그녀는 나름의 셈법이 있었나 본데, 아무튼 새롭게 만난지 10개월이 지나는 시점에 생뚱맞게 '100일 기념(?)'으로 미선이는 [정신현상학] 두 권을 소포로 부치면서 "성경책만큼이나 빡빡한 이 두 권의 책을 보기에는 100일은 커녕 1000일도 모자랄 듯..."이라고 앞 속지에 썼다. 아마도 '니 제대할 때까지 읽는다고 다 보겠느냐'는 의구심이었겠지만, 미선이는 결코 사령부 민심처 행정병의 남아도는 시간까지는 알 수 없었으리라. 마르크스가 엄청 욕해대면서도 영향을 크게 받았고 넘어서야 했던 철학의 큰 산,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나는 1차 세계대전의 전야였던 1914년의 좌파 사회민주당 의원들마저 '조국'의 제국주의 전쟁공채에 찬성표를 던지던 암울한 유럽 정세에서의 레닌이 하라는 혁명은 하지 않고 바로 앞 선배인 마르크스처럼 대영도서관에 짱박힌 채 헤겔의 [대논리학]을 읽고 [철학노트]로 정리했을 그 마음으로 열심히 줄치고 메모하며 읽었다. 


2.

"이제 '이성'은 그 자신이 곧 전체를 포괄하는 실재라는 데 대한 확신이 진리의 단계로까지 고양되며 또한 자기자신을 바로 자기의 세계로, 그리고 다시 이 세계를 자기자신의 세계로 의식하는 가운데 스스로 '정신'이 된다... 이제 (즉자대자적 존재로서의) '의식'으로서의 구체성을 띠면서 동시에 스스로 자기자신을 표상하는 즉자대자적 실재는 다름아닌 '정신'인 것이다."
- Hegel, [정신현상학], <3장 이성, 6절 정신>, 1806.


'현상학(現象學/phenomenology)'은 사물의 '현상'적 흐름을 추적하는 서술기법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필연'이라는 '이성의 간지'를 부리는 '절대정신'은 절대로 '의식'의 운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지옥에서 단테를 안내하던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도 같이 "순수한 방관자"(같은책, <서론>)이자 관찰자인 헤겔의 손을 잡고 높은 곳에 서서 '의식'(1장)이라는 작은 아이가 스스로를 깨닫는 즉자적 '자기의식'(2장)을 거쳐 타자와의 관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이성'(3장)으로 발전하는 현상의 궤적을 묵묵히 따라간다. '의식'에서 '이성'으로 성장하는 이 철학적 아이는 '정신'(3장 6절)과 '종교'(3장 7절)를 거치며 '절대정신' 또는 '절대지'를 만나는데, 이 궁극의 단계에서는 '이성'이라는 아이 자신이 곧 '절대이성'이 된다. '즉자'(의식)-'대자'(이성)-'즉자대자'(절대정신)로 완성되는 헤겔 철학은 후대에 의해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도식화되었고 이러한 완성의 체계를 비판한 마르크스는 물질로부터 시작하는 유물론을 역시 변증법적으로 완성하나 결국 말년의 주저 [자본론]에서 그렇게 비판하던 헤겔의 '현상학'적 서술방식을 따른다. 즉, '상품'이라는 작은 아이가 '생산'과 '노동착취', 그리고 '잉여가치'와 교환 및 확대재생산 등의 형태와 과정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생산'이라는 거대한 체제의 비밀을 폭로하는 과정이 마르크스 [자본론]의 서술체계다. 
19세기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방식으로 헤겔을 뒤집었고, 20세기 레닌은 그런 헤겔의 [대논리학]의 '개념 운동'을 통해 역설적으로 헤겔의 '유물론'적 측면을 발견하면서 [철학노트]를 작성했다. 혁명을 준비하던 레닌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물구나무 선' 철학 스승 헤겔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스물다섯의 나 또한 포천의 군부대 구석에서 하라는 '자주국방'은 아랑곳 없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팠다.


3.

"실제로 지(知)의 근원을 이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적작용을 하는 보편적 요소일 뿐더러 이것이 궁극적 의미에서는 다름아닌 '절대정신'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절대정신'은 신앙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순수의식이나 혹은 사유한다는 것 그 자체로서만 본다면 오직 절대적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자기의식'으로 보면 이것은 바로 자기에 관한 지(知)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 Hegel, [정신현상학], <3장 이성, 6절 정신>, 1806.


이십대 초반의 나는 '소설가'를 꿈꾸었고,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으나, 사실 '연애'를 하고 싶었다. 입대 후 일년 간 짧은 머리카락만 쥐어 뜯다가 휴가 때 구박은 했지만 귀엽게 아끼던 후배 미선이한테 다가갔고 전역을 하고도 그 후로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상처만 주다가 결국 헤어졌다. 
아프기도 했고 당시 나로서는 어쩔 수 없기도 했던 미안함이 가장 크지만, 다시 그 때로 되돌아 갈 수 있다 해도 나로서는 더 잘해볼 도리는 없었을 게다. 

그 당시 나의 '절대정신'이었던 그녀는 결국 그녀를 통해 투영했던 나 자신이라는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의식'이 타자를 만나 대자적 관계를 맺으며 '절대정신'으로 성장하는 잊지 못할 청춘의 과정. 
미안함에도 가끔 그 때가 문득 떠오른다면, 그 당시 모자랐던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상념이리라.

헤겔을 읽던 시간,
1997년 가을의 이야기다.

***

1. [정신현상학](1806), G.W.F.Hegel, 임석진 옮김,<지식산업사>, 1997.
2. [자본론] 1권(1867), K. Marx,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89~1996.
3.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4. [철학노트](1914), V.I. Lenin,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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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 정치적 종족성과 민족주의, 그 오랜 역사와 깊은 뿌리
아자 가트 외 지음, 유나영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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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현상학' : 시민적 민족주의 vs. 종족적 민족주의
- [민족](2013), 아자 가트/알렉산더 야콥슨, 유나영 옮김, <교유서가>, 2020.


"프랑스혁명은 프랑스 민족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민족'의 주권자를 '군주'에서 '인민'으로 교체한 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민족에 대중적 에너지와 충성심을 불어넣은 건 덤이었다... 전면적 '근대화' 과정은 '민족주의'를 출범시킨 게 아니라 '해방'시키고 '변화'시키고 '강화'하는 동시에 그 정당성을 크게 높여주었다. 그러니까 '대중주권(민주주의)'은 '민족주의'에 기여하는 동시에 '민족주의'가 '해방'될 출구를 제공했다."
- [민족], <6. 근대 : 해방되고 변형되고 강화된 민족주의>, 아자 가트, 2013.


한때 '민족'과 '민중'이 '대립'되는 개념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 국가와 사회의 주인은 '민중'이었는데 소수의 권력자들이 앞세웠던 '민족'과 '민족주의'는 다수 인민/국민/민중들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군부독재정권에서 '해방'을 위한 가장 주요한 가치는 '민주주의'였고, '민주'를 중심으로 '민족'과 '민중'의 운명은 엇갈리는 것만 같았다. 

'민족주의'도 시대를 풍미한 '이데올로기'였다. 영국의 역사학자 윌리 톰슨은 자신의 저서 [20세기 이데올로기](2011)에서 20세기 '극단의 시대'를 관통한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사회주의)', '파시즘'의 역사적 계보학을 그리면서 '해방'을 약속하는 이데올로기의 실천을 서술한다. '자유주의'가 '승리'한 듯 했던 1991년 이후 "가장 가공할 만한" 이데올로기로서 "공격적인 '민족주의'"(윌리 톰슨, 같은책, <3-15.>)를 언급하지만 정작 [20세기 이데올로기]에서 '민족주의'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민족주의' 또한 다른 주요 이데올로기들 못지 않게 '해방'을 약속하는 실천적 이데올로기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아자 가트(Azar Gat)는 [민족(Nations)](2013)이라는 책을 통해 '시민적 민족주의'와 '종족적 민족주의'의 대립체계의 틀로 '민족의 현상학'을 서술한다. '민족주의'는 보통 근대화의 산물로 여겨지는데, 아자 가트에 의하면 '민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전자는 '시민적 민족주의'이고, 후자인 아자 가트의 관점은 '종족적 민족주의'에 가까운데 실질적으로 저자의 입장은 '절충주의'의 모양새다. 즉, '민족'은 아주 오래전 선사/원사 시대부터 '종족'의 모습으로 존재해 왔고, 근대화의 산물인 '민주주의'와 함께 '민족주의'가 '해방'되고 '변형'되며 '강화'되었다는 주장이다(아자 가트, 같은책, <6>). 지금의 '민주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는 무솔리니 파시즘과 히틀러 나치즘 같은 '파시즘'에 의해 배타적 인종주의 형태로 '변형'되고 '강화'되며 특정 민족의 '해방'만을 주장하는 왜곡된 모습이 된 결과 '민주주의'의 적(敵)이 되었지만, 원래 '민족'은 '종족성', '인족'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다. 다분히 이론적인 책이지만 그만큼의 이론적인 근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선사시대와 고대로부터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세계 각지의 종족과 국민(민족)국가의 역사적 현상을 따라 서술하는 일종의 '민족 현상학(現象學/phenomenology)'이다. '종족성(ethnicity)'에서 출발한 인류가 '인족(people)'을 거쳐 궁극에 '민족(nation)'으로 완성되는 장구한 '현상학'. 책이 불필요할 만치 장황하고 두꺼운 이유는 대사상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대한 오마쥬 또는 유발 하라리, 토마 피케티 같은 현대의 인기 사상가들에 대한 '민족'적 도전일 수 있겠다.


"민족국가는 전근대 국가 중의 일부였지 전부가 아니었고 심지어 대부분도 아니었다. 나머지는 더 넓은 공간을 여럿이 나누어 가진 소국들이었다. 하지만 제국들도 있었는데, 한 '인족'이나 '종족'이 팽창해서 다른 인족이나 종족들을 지배하는 경우가 가장 전형적이었다... 민족태를 정치적 종족성의 특정한 형태로 보는 이 책에서 제국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제국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일찍부터 어디에나 싹트고 있던 '민족(nation)'국가들을 우세한 무력으로 파괴한 강력한 엔진이었다. 많은 민족국가들이 제국이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둘째 이유는,... 거의 모든 제국은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특정 '인족(people)'이나 '종족(ethnicity)'의 제국이었다. 그 인족/종족의 군사력과 정치적 지배력이 제국의 주춧돌이었다."
- [민족], <4. 전근대 세계의 종족, 인족, 국가, 민족>, 아자 가트, 2013.


역사학자이자 이스라엘 방위군 예비역 소령인 아자 가트가 보는 '종족적 민족주의'에 가까운 '민족'은 오랜 세월 핍박받고 떠돌다가 근대화의 결과로 근동에서 땅따먹기 민족투쟁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유대' 민족주의의 그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자의 '절충주의'는 근대 '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결합된 결과이기도 하다. 아무리 유대 민족주의에 사상적 뿌리를 두었더라도 '종족주의'에 머물 수 없는 까닭은 '민주화'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민족 현상학'의 주체인 '종족(ethnicity)'은 '인족(people)'을 만난다. 역자가 말하기로도 어색한 번역어인 '인족'의 원어는 'people'이다. '민중'이나 '인민'은 '민족'적 색체가 적기 때문에 선택된 번역어겠지만 내가 읽기로 아자 가트의 '인족'은 '민중(인민)'에 다름 아니다.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씨족과 부족 등의 '종족'은 평상시에는 서로 싸움을 멈추지 않던 원수들이었으나 사회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레 공동체를 형성하고 외부의 다른 종족에 대항하여 비슷한 종족들끼리 단결하면서 연맹체나 초기 국가를 만들었다. 모든 역사의 소국들이 연맹체가 되고 사유재산과 잉여가치의 축적을 위한 군사력으로 고대국가가 되는 과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국가'의 출현에 관한 아자 가트의 현상학은 여기까지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의 정치경제학적 분석틀을 따른다. 그러나 [민족]의 저자 아자 가트는 결코 '계급투쟁의 역사'를 말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다. 미리 말하자면, 아자 가트의 [민족]의 결론은 "종족/민족 감정이 '자유주의'적이고 계몽된 상태로 유지되기만 한다면, (민족 감정과)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이 근본적으로 모순된다고 보지 않았다"(같은책, <6>)라는 명제에 들어 있다. 아자 가트에게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같은 말이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힘으로 '민족주의'는 비로소 '해방'된다. 그래서 아자 가트의 [민족]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인족(people)'이 된다. '민중'은 곧 '민주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 민족적 친밀감, 정체성, 연대감이... 매우 의미있는 정치적 힘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대주의적, 이분법적 이론화의 근본적 오류다... 민족현상에 큰 힘을 부여하여 이를 의미있는 정치변수에서 '민족주의 시대'의 핵심에 위치한 지배적 정치변수로 바꾸어놓은 것은 '대중주권', 시민권, 시민적-법적 평등, '민주화', 그리고 지역 정체성의 약화라는 교의였다."
- [민족], <5. 전근대 유럽과 민족국가>, 아자 가트, 2013.


'종족성' 자체가 다분히 정치적인 개념이다. 아자 가트는 부정하겠지만 모든 '종족'은 계급사회의 정치권력으로 역사의 전면에 부상했고 국가권력이 된 후로는 '민족'으로 치장했다. 물론 근대 이전에는 '민족'을 대표하는 정치권력이 '군주(왕권)'였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민주화' 이후 국가의 주권이 형식상이나마 '민중(인족/people)'의 것이 되었다. 아자 가트의 '민족주의'에서 '인족'이 중요한 개념인 이유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나 제국도 기본 이데올로기는 공통 언어와 종교에 기반한 "범문화적 유대감"(같은책, <6>)을 공유하는 '민족'이었고, 이집트를 포함하여 고대 세계에서 이민족 왕이 집권했다 하더라도 해당 '인족'들이 믿는 '민족주의'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그 '민족적 민중'이라 할 수 있는 '인족'들에 의해 언제 쫓겨날지 몰랐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유럽 최초 '민족국가'의 원형이었던 고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또한 방대한 영토를 정복했던 제국이었지만 여러 지역을 직접 지배할 수 없었다. 마케도니아나 로마를 포함한 대제국의 권력자들은 '민족'이 여러 개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해당 지역의 실질적 주인은 그곳에 사는 해당 '인족'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도 중국을 차지한 이민족들은 '한족'으로 동화되었는데 해당 지역의 다수 '인족'이 한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자에 따르면, "과거의 농민들에게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찬성했던 유럽의 프롤레타리아들 못지 않게 엄연히 '조국(민족)'이 있었던 것이다"(같은책, <5>). 

프랑스 대혁명을 필두로 한 근대 '민주주의'가 등장한 이래 건설된 '국민국가'는 바로 이 '민족국가' 또는 '민족'에 기반한 제국이 해체되고 발전한 근대적 '민족국가'였다. 근대국가는 더 이상 '군주'가 주인이 아닌 '국민'이 주인이라고 헌법에 명시했고, 이 '국민'이 바로 '민족'으로 뭉친 '인족'들이었다. 아자 가트는 미국과 같은 '다민족 국가'에 관한 서술도 이어가고 역시 이스라엘 역사학자 알렉산더 야콥슨은 [민족]의 7장에서 '민족'과 '국가', '종족성' 관련한 헌법적 측면을 서술하고 있으나 사실 이 책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챕터 같지는 않으므로 건너뛰어도 무방할 듯 하다.


"근대 민족주의의 쇄도는 인민이 자신들의 선택을 표출하고 행동에 옮기게 해준 민주화, 자유화 과정의 한 작용이다... 계몽주의 가치를 옹호하는 이들은 민족주의의 해방적 측면과 공격적, 폭력적인 측면을 둘 다 인식해 왔다. 전자(해방적 측면)를 극대화하고 후자(공격적 측면)를 억제하려면 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민족], <결론>, 아자 가트, 2013.


국가는 오래전 고대로부터 '종족'과 '민족'에 기반해 왔고, '민주주의'가 등장한 근대 이후로 다수 '인족'의 힘을 기반으로 '국민(민족)국가'를 형성해 왔다. 아자 가트의 '민족주의'는 이 과정에서 현대의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인종주의)로 인해 부정적 변화는 겪었지만 결국 '자유주의'와 함께 할 때 '전 인류에 대한 사랑'과 '해방'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거의 동의어인 이스라엘 역사학자 아자 가트로서는 근대의 '시민적 민족주의'와 전통의 '종족적 민족주의'를 적절히 절충시킨 최적의 '민족주의'가 되겠다. 그러나, 부족이 국가가 되고 제국의 팽창과 국민국가의 출현에서 '계급투쟁'의 인류 역사를 보지 않으려 하는 유대인 '자유주의자' 아자 가트와 알렉산더 야콥슨의 '민족 현상학' 너머로 본다면, '민족'과 '민중'의 역사적 길항에서 '종족'이나 '민족' 같은 개념보다는 어색한 번역어이기는 해도 '인족(people)'에 더 방점이 찍힐 수 밖에 없다. 

'인족(people)'의 정체는 다시 말하지만 '민주주의'의 주체인 '민중(인민)'이다.

***

1. [민족(Nations) - 정치적 종족성과 민족주의, 그 오랜 역사와 깊은 뿌리](2013), Azar Gat/Alexander Yakobson, 유나영 옮김, <교유서가>, 2020.
2. [20세기 이데올로기(Ideologies in the Age of Extremes)](2011), Willie Thomson, 전경훈 옮김, <산처럼>, 2017.
3.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 F. Engels. 김대웅 옮김, <아침>, 1987.
4. [정신현상학](1806), G.W.F.Hegel, 임석진 옮김,<지식산업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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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 패션의 권력학
계정민 지음 / 소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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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포크'와 '댄디즘'이 영원하지 않듯
-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계정민, <소나무>, 2021.


"실버포크 소설이 가져온 변화 혹은 폐해는 넓고도 깊었다. 노동계급과 소작농 집단을 제외한 영국인들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패턴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이들 모두는 짐작하지 못했다. 동경과 모방의 대상인 귀족들은 이미 구별짓기를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는 사실을."
-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1-1. 실버포크 소설>, 계정민, 2021.


우리 사회 세대론을 상징하는 용어로 '금수저-흙수저론'이 있다. 재벌을 비롯한 상위 자본가 계급의 자녀들은 태어날 때 '금수저'를 물고 나오고, 다수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은 '흙수저' 또는 아예 수저 자체가 없다는 비유다. 아주 소수인 '금수저'보다는 못하지만 부유한 상층 부르주아들은 '은수저'로도 분류된다. 그들은 사회체제와는 무관하게 본인의 '능력'에 대한 '댓가'로 부를 축적했다고 생각하며 자녀에게 '교육' 자본과 '부동산' 자본을 세습하는 '세습중산층' 사회의 주축이다.

19세기 초 영국 문학 중 '실버포크(Silver fork)' 소설이 있다. 당시 몰락해 가던 대토지 소유 귀족 계급의 생활방식을 세부적으로 묘사한 소설들이었단다. 영문학을 전공한 나도 사실 몰랐다. 18세기 영국 소설에서 상류계층을 풍자했던 '코믹(Comic)' 소설과 또 다르게 그들을 비꼬았던 '벌레스크(Burlesque)' 소설은 들어봤다. 헨리 필딩이라는 '벌레스크' 소설가는 자신의 풍자소설 [조셉 앤드류스]의 '서문'에서 '코믹'은 '자연스러운(natural)' 풍자인 반면, 본인의 '벌레스크'는 '부자연스러운(unnatural)' 형태로 세태를 풍자한다고 규정했다. 필딩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모방(imitation)'했다고 책표지에 쓰고 있는데, 실제로 그의 소설 주인공들의 행실은 기묘하고 기괴하다. 돈키호테처럼 현실의 인물이라면 할 수 없는 우스꽝스런 모습들로 가득하다. 영문학에서는 이후 19세기 영소설에서 찰스 디킨스의 '사실주의'로 넘어가던 기억이 있다. 물론 전공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아 내가 빼먹었을 수도 있겠다.


계명대 영문과 계정민 교수는 19세기 영국 소설에서 등장했다가 사라진 '실버포크' 소설 이야기를 소개한다.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2021)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은 19세기 영국의 '실버포크' 소설과 이에 따른 '댄디즘'의 부상 및 몰락을 그리고 있다. 부제로 '댄디즘'의 핵심인 '패션의 권력학'을 썼지만, 책의 내용은 '패션'보다는 근대 이후 계급문화의 흐름을 짚고 있다.

'실버포크(Silver fork)'는 생선요리를 먹을 때 '은으로 된 포크'를 쓰는 계층을 이른다고 한다. 상층계급의 생활양식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소설 부류였는데, 18세기 산업혁명으로 급부상하던 산업(상업) 부르주아 계급이 경제적 부를 기반으로 선거권 확대를 통해 정치적 주류가 되었음에도 장악할 수 없었던 기존 대지주 귀족 계급의 '문화자본'을 따라할 수 있게 한 일종의 '지침서'였다고 한다. 소설의 플롯 자체는 흡사 지금의 막장 드라마와 같았을 것인데, 묘사 자체가 너무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라 은둔작가 에밀리 브론테 조차도 당대의 '실버포크' 여소설가 고어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낼 정도였단다. 덕분에 상류층의 생활상을 직접 보지 않고도 간접경험했고 자신의 소설쓰기에 활용할 수 있었음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다. '실버포크' 소설 주인공들은 귀족적 삶을 동경하고 따라하려던 부르주아 또는 자본주의 발전으로 몰락한 귀족의 후예로서 돈은 없지만 귀족적 문화가 몸에 배인 젊은이로 우연히 거대한 유산을 받아 귀족적 '실버포크' 인생을 완성하거나 몰락하는 내용들이라고 한다. 영국 소설 계보에서 소수에 해당했을 이 '실버포크' 소설은 영문학자 계정민 선생의 이 책에 의해 세밀하게 분석되고 소개되고 있다. 

영문학사에서 유명한 토머스 칼라일이나 윌리엄 새커리 같은 비평가/소설가들은 이 '실버포크' 소설들을 매섭게 비판했다. 문학이 담아야 할 역사와 철학, 사상을 소홀히 한 채 상업적 인기에만 영합하는 '속물(snob)'들이라는 것일진데, 이런 속류 소설들을 출판기획하고 뻥튀기 서평까지 곁들여 돈을 번 헨리 콜번은 지금까지 문학계에서 조롱과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지만 저자에 의하면 콜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이 가게 될 길을 조금 앞서 간 것이라고 한다. 지금 '문학(예술)성'과 '상업성'의 관계를 보면 이해할만한 이야기다. 물론 저자의 이력이나 각종 사실관계를 부풀리거나 속여서 '서평'을 먼저 뿌렸다는 출판기획자 콜번의 사기 마케팅은 앞서도 너무 앞섰을 테다. 


"돈으로 '휘감은' 중간(부르주아) 계급은 상류사회 진입을 위한 예비단계는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예선통과자'에게는 본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족 계급은 유일하게 남은 무기인 문화자본으로 최종 방어기지를 구축했고, 구축한 문화요새의 전위에는 '댄디'가 서 있었다. '댄디'가 '허영심 많은 젊고 경박한 맵시꾼'이 아니라 귀족 계급이 선포한 문화전쟁의 선봉대인 까닭이다."
-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2-3. 댄디의 탄생>, 계정민, 2021.


이제 본격적으로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고 말한 주체가 등장한다. 그들은 '댄디(Dandy)'들이었다. 자신의 옷차림과 '패션', 치장된 육체를 타인들에게 '전시'하던 귀족 계급 남성들이 바로 '댄디'들이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와 노동의 영역에는 결코 발을 들이지 않는 몰락한 귀족주의가 '댄디즘(Dandyism)'이었다. 그래서 '실버포크' 소설은 '댄디' 소설이었다. 
물론 산업혁명 이전 대지주 귀족 계급은 대부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했다. 그러나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면서 '정직, 성실, 근면' 등의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강조되었고, 실제 노동은 노동자 계급이 전담했음에도 이런 지배윤리로 무장한 부르주아 계급은 도저히 귀족들의 '무위'적 생활방식을 진실로 따라갈 수 없었다. 몰락하던 귀족들은 이런 신흥 부르주아에 대항하여 진정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재산과 시간을 몸 치장하는데 허비하고 바쁘게 다니는 부르주아 계급(중간계급) 사이에서 '거북이를 데리고 산책하기' 등을 시전하던 '댄디'들을 그래서 부르주아들은 '감히 넘볼 수 없었다'. 몰락하는 귀족들은 '무위'와 '권태'로 무장한 '댄디즘'으로 시대에 대항했지만, 결국 자본주의 발전과 부르주아 계급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경향을 되돌릴 수 없었다. 중국 역사학자 이중톈의 전공인 [위진풍도]는 5세기 위진 남북조 시기 진취적인 이민족 북조에게 밀려 남하한 한족 남조의 '사족'들의 '무위'적 삶을 '위진풍도'라 하였다. 몰락해 가던 귀족 자제들이 일은 안하고 몸치장과 고담준론, 음주향락에 빠지고 남성들이 연약하고 흰 피부에 하루 종일 화장하며 칼이나 붓 대신 부채나 들고 다니다가 허약한 몸으로 길거리에서 실신하는 행태는 19세기 영국의 '댄디'의 모습 그대로다. 실리보다 명예를 앞세우는 '결투'를 하기도 했지만 영국의 '댄디'들은 여성화된 남성이었다는데, 귀족들이 양성평등의 진보성이 있었을리는 만무하고 그저 '성실, 근면, 노동'의 새로운 지배윤리에 저항하고 "감히 넘볼" 필요 조차 못 느끼게 만들려는 최후의 발악과도 같다.

그러나 중국의 5세기 '위진풍도'가 이후 [삼국지연의] 등의 문학에서 제갈량의 모습 등으로 부활했듯, 몰락한 '실버포크'의 '댄디즘'은 부르주아 계급 뿐만 아니라 '혁명전사'가 될 다수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욕망 속에서 다시 부활한다.


"1840년대는 가난의 문제와 '빈곤의 문화'가 압도적으로 부각된 시기였다. 소비와 과시로 요약되는 귀족 계급의 생활양식은 더 이상 찬탄과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 분쇄해야 할 시대착오적인 악습으로 규정되었다. '실버포크' 소설의 몰락은 이제 예정된 수순이었다."
-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3-6. 실버포크 소설을 감시하기>, 계정민, 2021.


영국의 '곡물법'은 1846년에 폐지되었다. 곡물 수입을 제한하고 귀족들 땅에서 나온 곡식 만 비싸게 유통시킴으로써 대토지 소유주의 이익만 늘리고 다수 민중들은 기아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곡물법'을 존속시킨 귀족들은 더이상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증오와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1840년대 노동자 혁명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실버포크'와 '댄디' 또한 부정되고 파괴되어야 했다. 찰스 디킨스 같은 소설가는 초기 영국 자본주의 현실을 그리는 영국 근대소설의 전형이 되었고, 아일랜드 식민지의 현실을 그리려는 제임스 조이스 같은 굵직한 영문학 소설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기존 '실버포크' 소설가들 조차도 '댄디즘'을 버렸다. 그러나 '댄디즘'은 사라지지 않았다. 

1851년 영국 수정궁 박람회는 산업혁명으로 전성기를 향해 기관차처럼 치달리는 영국의 산업과 생산품들을 전세계에 전시했고 계급의 '혁명전사'가 되어야 했던 다수 노동자 계급은 물론 식민지 '해방전사'가 되어야 했던 식민지 민중들까지 자본주의 상품 소비의 거대한 대열에 포섭되었다. 몰락 귀족의 사치스런 '댄디즘'을 "감히 넘볼 수 없던" 부르주아 계급은 자본주의적 공급과잉 상품을 무기로 몰락한 소수 귀족은 물론 부상하는 다수 노동자 계급과 식민지 민중들을 사로잡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본주의 상품들을 모두가 "넘볼 수 있게" 하는 환상을 심어 다수 민중들이 자본가들의 정치경제적 독점권력을 "감히 넘볼 수 없게" 만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들고 수많은 정보와 자산이 교류되고 공유되는 지금, 소수 자본가들의 생활방식과 문화자본 일체 또한 오래전 '댄디즘'처럼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히 넘볼 수 없게" 존재하던 소수의 권력이 보다 많은 다수의 점유를 통해 '사회화'될 수 있는 기반도 만들어지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실버포크'와 '댄디즘'이 영원하지 않듯,
영원한 체제도, 영원한 계급도 없다.
세상에 "감히 넘볼 수 없는" 것 또한 없다.

***

1.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 패션의 권력학], 계정민, <소나무>, 2021.
2. [위진풍도 - 이중톈 중국사 11](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8.
3. [Joseph Andrews](18세기), Henry Fielding, <No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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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데올로기 -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1914-1991
윌리 톰슨 지음, 전경훈 옮김 / 산처럼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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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실천'은 '해방'이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윌리 톰슨, 2011.


"지배적인 '사상(이데올로기)'이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들의 관념적 표현, 사상으로서 파악된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 그 자체일 뿐이며, 따라서 어느 한 계급을 지배 계급으로 만들어주는 관계들의 표현이고, 따라서 그 계급의 지배 사상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1-3.>, 1845~1846.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면 "망상과 관념과 도그마와 환상적인 존재들([독일 이데올로기], <서문>)"로서 물질적 세계를 떠나 존재하는 척 하는 '허위 의식'이었다. 그 전형은 독일의 사변철학자들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유물론'으로 인류를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던 최초의 '과학'적 시도였다.


"이데올로기란 한 주어진 사회 내에서 역사적 존재와 역할을 지닌 하나의 표상(이미지들, 신화들, 경우에 따라서는 관념이나 개념들) 체계(고유한 논리와 엄격성을 지닌)라는 정도로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 이데올로기는 사회들의 역사적 삶에 본질적인 구조인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표상들은 대부분의 경우 이미지들이거나 때로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표상들은 무엇보다도 '구조'들로서... '지각되고-수용되고-체험된' 문화적 대상들이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게 기능적으로 작용한다... (대중의 표상체계로서) 이데올로기의 '계급'적 기능을 논할 때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바로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것, 그리고 지배 이데올로기가 피착취 계급을 지배하는 데 뿐만 아니라 지배 계급이 세계와 체험한 관계를 현실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지배 계급으로 형성되는 데'에도 봉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 1965.


1965년,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라는 저작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였다. '대상'을 가지고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과 말 그대로의 '허위의식'이지만 물질적 힘을 지니는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는 것이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인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1. 20세기 '극단의 시대'의 이데올로기들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권력에의 의지와 결부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네 가지(자유주의/보수주의/공산주의/파시즘) 이데올로기의 지적 토대를 다루지만, 주된 관심은 이데올로기들의 역사적 적용과 작용을 고찰하는데 있다. 이론을 논의하긴 하겠으나,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실천(praxis)'이다... 
... 혁명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가 지닌 강점과 매력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자유주의는 17세기 영국에서 등장한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에 기초한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없이도 완벽하게 잘 돌아갈 수 있으며, 빈번히 그래왔다... 
... 실지로 보수주의는, 토지 소유 및/또는 그와 연결된 교회와 장교군단과 같은 전통 기관들로부터 수입을 얻고 있으며 기존 상황의 변화를 결사반대하는 사회 계급 및 지위의 이데올로기에서 기원했다...
... 19세기 중반 유럽에 새로 등장한 이데올로기에서는 자유주의를 유산 부르주아지의 계급 이데올로기로 낙인찍고, 스스로도 계급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그와 동시에 '보편성'을 주장했다.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바로 사회주의인데,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변형태가 그러했다...
... 무엇보다도 파시즘 자체는 위기 즉 전쟁과 부차적 사회혼란 그리고 경제붕괴 및 문화적 불안이라는 위기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서론: 개념 정의 및 개요>, 윌리 톰슨, 2011.


영국의 역사학자 윌리 톰슨(Willie Thomson:1939~)은 1991년 영국공산당이 해체될 때까지 활동한 사회주의 역사학자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부터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1991년까지 기간을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로 규정하며, 제1~2차 세계대전의 1914~1945년을 '대참사의 시대'로, '자유주의' 진영이 추축국 파시즘에 승리한 후 냉전을 통해 자본주의/공산주의 경제번영을 이루던 1945~1973년을 '황금시대'로, 세계경제 위기로 경기가 하향선을 그리다가 결국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진 1973~1991년을 '위기'로 구분한다. 각 시기를 각 부로 나누고 각 부의 첫 장에 '경제 및 사회여건'을 다룬 후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등 네 가지 이데올로기들의 역사를 소개하는 저서가 바로 [20세기 이데올로기(Ideologies in the Age of Extremes)](2011)다. 그는 20세기 세계사에서 이데올로기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지만 역사에 적용된 그 '실천(praxis)'적 형태를 강조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역사 속 중앙집중식 계획경제 또는 명령경제에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이 불가능했던 '공산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는 저자 윌리 톰슨은 인류 보편의 '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위 네 가지 '이데올로기'들의 특성을 서술한다. 
19세기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허위 의식'이자 사변적 '관념'에 불과했던 '이데올로기'는 20세기 루이 알튀세르에게는 그럼에도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힘을 지니면서 역사유물론의 '과학'에 의해 구분되는 '철학'의 지위를 획득한다. 21세기에 노구의 역사학자가 보기에도 '이데올로기'는 인류사에 매우 중요한 '사상'을 의미한다.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표현된 모든 이데올로기는... '해방'을 약속"(같은책, <3-15>)하는 이유다. 


2. 자유주의


"자유주의는 예외적으로 '해방'에 역점을 두고 있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해방이란 개인을 사회의 규율로부터 구제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에서 '사유재산'은 개인의 인격과 긴밀하게 엮여있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2-7. 우파 자유주의>, 윌리 톰슨, 2011.


자유주의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의 기본 사상으로서 신화나 종교가 아닌 인본주의 사상의 시초였다. 부르주아의 부상과 함께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사유재산을 신성시했다. 토마 피케티는 자유주의를 아예 '소유주의'로 부른다. 자유주의는 '해방'을 향한 모든 이데올로기의 뿌리다. 그러나 보통선거권 쟁취의 정치적 평등은 지향했으되, 경제적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시장을 옹호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경제적 토대로서 자본의 영역에서는 철저히 반민주적이다. 자본주의 최고단계에서 더이상 진보적이지 않은 자유주의는 경제 위기를 맞은 1970~80년대에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보수주의와 유착하여 '신자유주의'가 된다(같은책, <3-12>). 우파 자유주의인 신자유주의와 좌파 자유주의인 사회민주주의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개량하는 주요한 두 이데올로기다.


3. 보수주의


"프랑스 혁명과 그 여파 때문에 그 반대자들은 자신들의 앙시앵-레짐(구체제)을 옹호하기 위한 논증을 준비해야만 했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1-3. 보수주의>, 윌리 톰슨, 2011.


보수주의는 하나의 정립된 사상이 아니다. 그냥 지배 이데올로기 일반이다. 근대 이전에는 왕정과 이에 결탁한 가톨릭으로 그만이었다. 그러나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사상으로서 자유주의가 부상하고 시대정신이 되자 이에 반발하여 결집된 구 지배 계급의 대항 이데올로기가 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토지 소유 귀족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부르주아적 프로테스탄티즘에 맞선 가톨릭 구교 세력들이 주축이 된다. 이후로 '기독교' 등 지배 종교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한 자들이 '보수주의'를 앞세웠고 결국 기존 질서 유지와 보존을 본질로 하는 '보수주의'는 '자유주의'와 필연적으로 유착하여 '신자유주의'가 된다. 기존 질서와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는 보수주의는 언제 어디서든 '파시즘'과도 결탁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2차 대전에서 왕정복고 보수주의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벗이었다.


4. 공산주의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뒤이어 소비에트 국가가 살아남지 못했다면, 이전의 식민지 세계에 있던 대부분의 국가는 여전히 식민지로 남아있을 것이며, 중국 역시 반(半)식민지 상태로 남았거나 조각난 제후국들의 집합이 되어있을 것이다. 게다가 냉전 기간 서유럽 주민들에게 '공산주의'가 호소력을 지닐 수 있다고 하는 위협 덕분에, 그런 위협을 중화시키기 위해 자본의 포식적 본능을 견제하고 노조의 세력을 용인하며 적절한 복지체계에 자금을 지원하여 복지국가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었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3-13. 공산주의>, 윌리 톰슨, 2011.


공산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역사 속 현실체제를 이른다. 저자는 사회주의 일반을 다루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주의로부터 1991년 소비에트연방에 이르기까지의 현실 공산주의의 '실천'을 바탕으로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유로코뮤니즘 등의 이데올로기로서 사회주의를 묶어서 서술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는 사유재산을 신성화시키며 개인의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설파하는 반면, 사회주의는 인류 보편의 '해방'을 주장하며 등장했고 정치경제 체제의 변혁을 통해 해방을 쟁취하려던 '과학적 사회주의'가 한때 세계의 1/3을 차지했음에도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못한 체제임을 돌아본다. '과학'을 이야기했지만 근본적으로 '유토피아'적 '공상'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의 한계다. 새로운 체제를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없는 한 '반세계화' 운동과 같은 전세계적 다수 대중투쟁도 시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노년 사회주의자의 냉정한 평가로 마무리된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었던 영국의 보수주의자 마거릿 대처의 슬로건은 "대안은 없다(There's No Alternative)!"였는데, 자본주의 체제가 건재하고 새로운 대안체제가 등장하지 못하는 한 '자유주의'가 주류 이데올로기가 된다.


5. 파시즘


"파시즘을 정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특징 같은 것은 없지만, 의사혁명론, 권위주의, 포퓰리즘적 극단적 민족주의는 군사화된 함의들과 함께 파시즘 전체를 거의 모두 포괄한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1-5. 파시즘>, 윌리 톰슨, 201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두 계급 전쟁에서 어느 편도 우위에 서지 못했을 때 등장하는 세력이 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의 조카가 등장한 '보나파르티즘', 20세기 '국가사회주의'를 내건 무솔리니를 보고 옥중의 그람시가 고대 로마의 공화정에서 등장한 케사르(시저)에 빗대어 명명한 '케사리즘', 우리 역사를 포함하여 등장한 '군사정권'들. 이들은 군사조직을 기반으로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이며 의사(사이비) 혁명적이지만 본질은 독점자본의 정치적 대변자였다. 경제 위기와 대량 실업의 재난을 배경으로 등장한 이들은 살기 힘든 다수 노동자민중들의 분노를 군사적 전쟁이나 테러로 대리표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그랬고, 공화정을 무력화시킨 모든 군부독재의 모습이 그랬다. 사상적으로 일관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자들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고대 로마 단결의 도끼묶음에서 착안하여 만든 '파시스트당'의 이름에서 유래한 '파시즘'으로 통칭되는데, '반공주의', '인종주의', '군국(군사)주의', '(총통)전체주의', '(신화적)신비주의' 등을 내세우는 세력 일체를 '파시즘'으로 보면 된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 무솔리니, 독일 히틀러, 일본 천왕주의, 스페인 프랑코, 우리의 군부독재정권 일체가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보수주의와 가장 가까운데, 경제 위기의 피를 먹고 자란 파시즘의 '혁명'은 다수의 해방을 위한 그것이 아니라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고 사적이익을 빨아먹으려는 쿠데타이기에 그렇다. 역시 자유주의자들 또한 독점자본주의 체제를 존속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파시즘과 손을 잡는다. 전간기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은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의 체제 위협을 두려워하여 히틀러와 '평화협정'을 맺고 경제교류를 했다. 파시즘은 계급투쟁 과정에서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 창궐할 수 있는 독버섯이다.


6. 이데올로기의 '실천'은 '해방'


"그러한 이데올로기들 중에 지금까지 가장 가공할 만한 것은 공격적인 '민족주의'다. 민족주의는 지난 200년 동안 그 힘이 크게 변해왔지만 언제나 중요하게 남아 있었던 일종의 '정체성 정치학'이었다. 냉전이 진행된 몇 십 년 동안은 양쪽 진영 모두 민족주의를 자기 쪽에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었다. 개별적인 공산주의 조직들이 붕괴되거나 변형되기 훨씬 전에 국제 공산주의 조직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민족주의의 힘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3-15. 1991년 이후>, 윌리 톰슨, 2011.


윌리 톰슨은 현대사에서 자유주의/보수주의/공산주의/파시즘의 이데올로기 '실천사'를 통해 현재는 '자유주의'가 지배적 이데올로기지만, 자유주의 또한 '유토피아'적 공산주의 못지 않게 그리스도 재림의 "천년왕국"을 기다리는 유토피아적 측면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데올로기가 어떤 측면에서든 "해방을 약속"하는 한 체제가 변혁되고 대안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경험은 위기와 재난이 그러한 희망을 없애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같은책, <3-15>)고 쓰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민족주의'는 이러한 '20세기 이데올로기'들의 전반적인 투쟁 속에서 지역적이고 국지적 운동의 기본 이념으로 기능하나 이 책에서는 본격적인 이데올로기로서 다루지 않는다. 그저 반식민주의적 민족주의는 식민지 민중들의 해방 이념이었던 반면, 극단적 민족주의는 인종차별주의를 토대로 한 보수주의이자 더 나아가 파시즘의 형태였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상투적이지만, 역사 속에서 '해방'을 향한 '이데올로기'의 '실천'적 힘을 믿는다면, 위기와 재난은 인류의 '희망'을 강화한다.


***

1. [20세기 이데올로기(Ideologies in the Age of Extremes)](2011), Willie Thomson, 전경훈 옮김, <산처럼>, 2017.
2. [독일 이데올로기](1845~1846),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박재희 옮김, <청년사>, 1991.
3. [마르크스를 위하여](1965), 루이 알튀세르,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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