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서술'의 역사 : 역사가 역사다워지는 '서사의 힘'
- [역사의 역사], 유시민, <돌베개>, 2018.


"이 책은 굳이 분류하지면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에 넣을 수 있을 듯 하다. '히스토리오그라피'는 역사학 이론과 역사서술 방법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우리말로는 보통 '사학사(史學史)'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학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서술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사학사'는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역사학'과 '역사서술'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목적과 성격과 작업방식이 다르다. '역사학'은 학술연구 활동이지만, '역사서술'은 문학적 창작행위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역사 르포르타주'로 받아들여주기를 기대한다."
- [역사의 역사], <서문 - 역사란 무엇인가>, 유시민, 2018.


20세기 말에는 세기말 징후로 여전히 '종말'과 '휴거'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신세기에 대한 막연한 '희망'도 가득찼다. 우리 '20세기 소년'들은 어려서부터 왠지 21세기가 되면 갑자기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두려움 등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20세기 후반부 격동의 시대에 30~40대 청장년을 보낸 1960년대생 '20세기 청년' 선배들이 어린 우리 1970년대생 '20세기 소년' 후배들에게 남긴 자취였을 수도 있다. 
소소하지만 인류의 '역사'란 이런 계기들의 집합이다.

내가 스무살 청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역시 우리를 각성시킨 것은 여전한 현실과 이런 세상을 분석해주는 '20세기 청년' 선배들이었다. 일면식은 없지만 군부독재에 용감하게 항거하고 새세상의 대안들을 치열하게 학습하며 노동현장에서 스러져간 사람들과 잠시 서구로 탈주했다 돌아왔다는 그 지식인들의 멋진 글들이었다. 일제강점기 목숨을 건 독립투사들은 너무 멀었지만, 어찌보면 나와 한 세대임에도 치열했던 '20세기 청년'들의 후일담은 가깝게 느껴졌다.
스무살의 나는, 이들의 '역사서술'에 매료되었다.

21세기 하고도 사반세기를 통과하는 지금 보니, 그 용감했던 '역사서술가'들은 다들 그들끼리 동지였고 친구였다. 1980년 '서울역 회군' 과정에서 노선투쟁을 했고, 비합법 지하 패밀리에서 이래저래 다들 아는 사이였고, 그렇게 비판하던 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관리에 성공했고, 그들의 80년대생 자녀들 스펙과 세습자산을 불려줬다. 그렇게 그들은 본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이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지금 우리 사회를 아예 부동산과 금융투기, 학벌중심의 '세습자본주의'로 고착시켰다. 
지금 시대는 이들을 정치권 여야를 떠나 공통되게 '586 세대'라 칭한다.

그렇지 않은 선배들이 더 많다는 것도 나는 안다.
20세기 말에 세계의 '종말'이 아닌 민중의 '희망'을 말하며 노동자 진보정당을 만들고 분투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길을 찾기 더 어려운 지금도 그 '희망'을 놓지 않고 산다. 
그 당시에도 역시 '선구적'이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유시민이 그랬고, 진중권이 그랬고, 조국도 그랬다.
유시민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당을 존중했지만 그 유려한 말발과 글발로 소수 진보정당의 고군분투를 허망한 '사표'로 만들어줬다. 진중권은 같은 편인 것 같지만 다수와 함께 하기에는 너무 읽은 책이 많아 내부의 적을 늘 만들고 동지들을 조롱했다. 조국은 잘생기고 똑똑하고 그 중 가장 급진적이고 싶었겠으나 그러기에 너무 부자집 출신이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 세기의 '천재'들이 자본가가 아닌 다수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서 있어준 것 자체가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이들 '20세기 천재들'은 다수 민중을 너무 비웃고 우롱했다. 
나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점이다. 일단 글쓰기로만 보면, 유시민과 진중권은 당최 미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은  선거철만 되면 노무현식 '좌파 신자유주의'를 다시금 유행시키기 위해 묵직한 주제의 책들을 가볍게 내곤 하는데, 유투브로 갈아타기 전 2018년의 저서 [역사의 역사]는 그래도 내가 그 중 유일하고도 유익하게 생각하는 책이다. 물론  사무금융 산별노조 독서회 '수요회'에 추천했다가 좌파 동지로부터 '손절' 당할 뻔도 했지만, 여전히 다른이들에게 주저없이 추천하고 싶은 책 중 하나다. '정치'가 아닌 '역사'를 다루는 위험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은 그래도 아직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역사의 역사](2018)에서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역사가의 시조'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로부터 기원전 1세기 중국 한나라 사마천의 [사기], 14세기 이슬람 '문명사학자' 이븐 할둔, 19세기 프로이센 제국의 '천생 역사가' 레오폴트 랑케, 유물사관의 칼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20세기 우리의 박은식과 신채호, 백남운 선생, [역사란 무엇인가]의 에드워드 카와 '문명의 충돌'로 인한 서구중심사관의 몰락을 징후하는 슈펭글러, 토인비, 헌팅턴의 20세기 역사학을 거쳐 최근의 '빅히스토리' 역사가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 등의 '역사서술(writing history)'의 역사를 충실하게 요약하고 있다.
21세기의 유시민은 이제 더 이상 다수 민중이 '승리'하는 당위론적이고 목적론적인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 르포작가'로서 '역사' 자체가 아닌 '역사서술'을 주제로 하여 [역사의 역사]에서 다루는 기라성 같은 역사가들이 '역사'라는 사실적 소재를 빚어 문학적 창작을 이루어낸 성과물로서의 그들의 저서들과 그 사실들의 연속성의 '역사'를 파헤친다.

'역사'란 19세기 독일의 반동적 군주제 역사가인 레오폴트 랑케(같은책, <4장>)의 건조한 문헌적 역사가 추구한 '사실 그대로'의 서술이 불가능하며, 각 '역사가' 개인들의 시대적 한계와 나름의 '철학'적 관점, 정치적 성향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기록되고 기억되는 것이므로 '역사서술의 역사'인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y)' 또는 '사학사(史學史)'를 주제로 하는 이 책 [역사의 역사] 저자인 유시민 본인의 '글쓰기'는 학술적인 것이 아니기에 '역사 르포르타주(르포)'라고 <서문>에서 명확히 규정한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낭독회),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증명이었으며("하늘의 도는 무엇인가!"), 할둔에게는 학문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적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잡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철학적 자아와 공명하기 때문이다."
- [역사의 역사], <6장 -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유시민, 2018.


[역사의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은 역사가는 이슬람의 이븐 할둔(같은책, <3장>)이다. 그는 '역사'를 '이야기'나 서사가 아닌 '학문'의 대상으로 설정한 아마도 최초의 역사가였단다. 그의 [역사서설]은 이슬람 공동체의 사회문화인 '아싸비야'를 중심으로 기후와 자연 등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복합다단한 역사 이야기 이전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이론화를 시도한 '서설(무깟디마)'이었다. 14세기 이슬람 문화인 북아프리카 튀니지 출신의 이븐 할둔의 이 '역사학'은 칭기스 칸의 세계제국이 분할된 후 이슬람권의 칸으로부터 공식 역사서가 되고 할둔 본인도 '칸의 스승'과 같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만년의 할둔은 역시 말년의 티무르와 독대했지만, 그가 티무르에게 어떤 교훈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다. 중앙아시아 일대를 제패하고 동아시아 중국대륙의 명나라를 정벌하려던 티무르는 죽었고 할둔 또한 그 이듬해인가 죽었으므로 후세는 칭기스 칸의 후예를 자칭한 정복자 티무르가 한 도시 정복의 대가로 역사가 이븐 할둔과의 접견을 요청했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정복자의 스승인 '역사학의 아버지' 이븐 할둔은 오만한 정복자들도 우러러 본 역사가였다.

유시민에게 칼 마르크스는 아마도 '애증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마르크스는 전세계 수많은 청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자유주의자였던 '20세기 청년' 유시민에게도 세계를 변혁하라는 가르침을 처음으로 준 역사가였을 테고, 그로 인해 적어도 마르크스의 저서만큼은, 최소한 [공산당선언](1848)만큼은 유시민은 그 누구의 번역이 아닌 원전을 통한 스스로의 번역만을 인정하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유시민은 비록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이 '역사를 비껴간 역사법칙'(같은책, <5장>)이었다고 결론짓고 있지만, 칼 마르크스는 유시민의 자유주의적 사상경로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가'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자유주의자든,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자든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19세기 유럽의 칼 마르크스는 늘 그런 선학이다. 마르크스가 철학자였든 역사가였든 정치경제학자였든 아니면 백수나 문학가였든, 그는 우리 인류 사상사에 항상 그런 역사적 '서사의 힘'을 유산으로 남겼다.

20세기 초 우리 식민지 조선의 역사가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선생(같은책, <6장>)은 더욱 인상깊다. 
성리학 선비였던 박은식 선생의 피를 토하는 역사학과 [한국통사]는 아마도 식민지 조선이라는 조건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이 아니었다면 이 개명 유학자가 왕정이 아닌 민주정을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며 일제에 끝까지 항거한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와 [조선혁명선언] 또한 마찬가지다. 의열단의 강령이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1923)은 20세기 조선판 [공산당선언]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역시 유학자였던 신채호 선생은 민주주의자 박은식 선생보다 더 급진적으로 사회주의 또는 아니키즘 성향까지 보이나 이들 또한 역사가였기에 고대 문헌의 철저한 고증과 비교분석을 통해 가장 개연성이 높은 역사이론을 채택한 것이었다. 이들은 외세를 물리친 을지문덕과 연개소문, 강감찬과 이순신 등의 민족적 영웅전을 쓰면서 식민사학에 대항한 우리 고유의 민족사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해방공간에서 북조선으로 넘어간 백남운 선생은 우리의 역사를 마르크스주의 '역사단계론'에 끼워 맞추기는 했으나 아마도 우리 역사학계에서 최초로 '역사유물론'을 정초한 역사학자일 것이다. 백남운 선생의 [조선사회경제사]는 우리 역사를 '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근대자본주의'의 '역사단계발전론' 틀에서 해석하면서 식민지 조선은 '특수한 단계'로 서구의 마르크스주의를 우리 사상계에 이식하여 식민사관과 투쟁하는 유물사관(역사유물론)을 정립하자는 시도였다. 
우리 역사가인 이들 선학들의 '민족사관'과 '유물사관'이 지금 후세들에게 다소 과격하고 도그마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특수단계에서는 필연의 역사학이었다. 
[역사의 역사] 저자 유시민은 말한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이 쓴 역사를 읽으면 가슴이 아리다"라고. 
나 또한 그렇다. 식민지 시대든 군부 파시즘 시대든 그 시절 지식인들의 역사는 슬프다. 
내게는 유시민 작가도 그렇다.

이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오랜 질문에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답변한 에드워드 핼릿 카(같은책, <7장>)가 정초한 '현대 역사학'과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의 지구환경 역사학 및 미래지향적 '빅히스토리'(같은책, <9장>)는 세간에 너무 많이 언급되고 있어 유시민의 이 책에서 그리 새롭지는 않다. 다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와 '빅히스토리'는 '역사서술'의 역사를 돌아볼 때 반드시 거쳐야 할 현대사의 한 단계가 되었다. 이들은 이미 지난 '역사서술'이 아니라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인 '현대사'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서 '역사'는 걸출한 역사가들의 탁월한 안목으로 취사선택된 서사를 통해 비로소 역사다워진다고 소감을 밝히며 [역사의 역사]를 마무리한다. 
인류의 역사는 역사가들의 "서사의 힘"(같은책, <에필로그>)으로 '발전'한다고 믿기에 유시민은 '역사서술의 역사'를 묵직하게 엮어냈다.
사회과학 저서 출판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돌베개> 출판사의 편집과 디자인 또한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본 소감이다."
- [역사의 역사], <에필로그 - 서사의 힘>, 유시민, 2018.

***

1.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돌베개>, 2018.
2.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삶의 '무기(武器)'로서의 '철학(哲學)'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2018), 야마구치 슈, 김윤경 옮김, <다산북스>, 2019.


"지옥으로 가는 길은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선의로 깔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더 나은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자기기만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 좋은 세상을 구축하고자 하는 이상을 잃지 않은 채 그러한 '이상 사회'를 꿈꾸며 운동을 벌이는 일이 독선과 기만에 빠질 위험성 또한 동시에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과거의 철학자가 남긴 사회에 대한 고찰이 우리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1부. 무기가 되는 철학>, 야마구치 슈, 2018.


1888년, 죽은 칼 마르크스의 살아남은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독일 고전철학'에 '종말'을 고한다. 
본래 '철학(哲學)'은 고대 인류의 의식이 각성하면서 "세계는 무엇(what)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떻게(how) 돌아가는가?"에 관한 답을 찾는 '학(學)' 자체였다. 자연과학이 발전하기 전인 고대에는 '철학'이 당연히 학문의 최고 지위였고, '과학'이나 '종교'가 곧 '철학'이었다. 이 궁극의 학문으로서 철학은 인간의 주체가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으로 주관적 관념은 객관적 대상에 1차적 영향을 받는다. 그에 따라 '주체'가 먼저라 보는 철학을 '관념론', '객체'가 우선이라 전제하는 철학을 '유물론'이라 했다. '양자역학'의 현대과학 시대인 지금은 무엇이 1차적이고 우선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와 '신화' 또는 '이데올로기'로 당대 지배체제를 옹호하는 집단이나 계급의 철학이 '관념론'인 한, 다수 민중의 '유물론'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근대 이전 썩은 왕조를 무너뜨린 수많은 농민반란이 종교적인 '관념론'의 이데올로기 아래로 모였을지는 몰라도 사실 다수 민중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이었던 현실적 '유물론자'들이었다. 이 다수 유물론자들에게 선택지는 늘 둘 중 하나였다. "이대로 굶어 죽느냐, 아니면 뒤집어 엎느냐?"
엥겔스가 종말을 고한 '독일 고전철학'은 바로 고대로부터 19세기 당시까지 철학사를 지배해 온 '관념론' 및 독일 사변철학이었다. 자연과학은 발전하고 대다수 노동계급이 자본으로부터 대규모 착취당하는데 더 이상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해서는 안되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철학이었다. 따라서 이제 철학은 '관념론'에 종말을 고하고 '유물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되어야 했다. 엥겔스에게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철학'의 상속자는 바로 자본주의 착취로 억압받는 다수 노동계급이었다.
19세기 말에 이미 '철학'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되었다.


일본의 기업경영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원제 : 무기가 되는 철학)](2018)라는 책에서 지루한 철학사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근대 철학의 분기점이라는 칸트를 건너뛰고 과학철학의 맹아를 담은 스피노자를 무시한다. 으레 철학사 서적이 다루듯 고대 그리스 철학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기업 컨설팅 그룹 소속답게 비즈니스에서 '실용'적으로 중요한 철학 개념 50가지를 추려 '사람', '조직', '사회', '사고'의 네 가지 범주에 각 콘셉트(개념)들을 배치하여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철학'은 기업경영과 비즈니스 세상에서 '혁신'을 통해 '영속'하고자 하는 기업가들의 인문학적 '무기'이자 다수 기업 실무자들 삶의 '무기'가 된다. 그는 인용한다. "교양이 없는 CEO는 '위험천만'하다"고.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 앨런 케이, 야마구치 슈의 같은책 <4-49> 중.


자본가로부터 비용을 받고 기업경영 컨설팅을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저자는 언뜻 경영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성과급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자율적인 상황에서 목표 달성이 더 용이하다는 근거를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같은책, <1-3>)에서 찾고, 기업 의사결정에도 끝까지 집요하게 이의를 제기하라며 존 스튜어트 밀의 '악마의 대변인'(<2-16>) 이야기를 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결국 성공한다는 '1만번의 법칙'은 틀렸다며 질 들뢰즈의 '파라노이아(편집증)'와 '스키조프레니아(분열증)'를 거론하며 여의치 않으면 현실 직장으로부터 탈주하라(<3-33>)고 말한다. 온갖 '능력주의'로 포장된 기업의 인사평가는 애초에 공정할 수 없다며 캐나다 심리학자 멜빈 러너(<3-37>)의 '공정한 세상 가설'을 소개한다. 즉, '능력주의'가 전제하는 '공정세상'이라는 가설은 틀렸다고 본다. 자본주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칼 마르크스까지 다루는 이 기업 컨설턴트는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 체제비판의 핵심인 '물화'가 아니라 초기 마르크스 철학의 인간적 요소였던 '소외'(<3-25>)를 소개하는데 그친다. 저자가 철학적 사고에서 중요하게 소개하는 사고방식은 헤겔의 '변증법'(<4-42>)인데, 서로 대립하고 모순되는 사물이 '맞서고 얽혀('맞얽힘')' 새롭고 창의적인 사고로 '나선형 발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야마구치 수는 기업의 돈을 받고 컨설팅 보고서를 쓰기는 하나, 기업 담당자들에게 '미래'가 어떨지 묻지 말란다. 그는 미국의 퍼스널 컴퓨터 선구자인 앨런 케이(<4-49>)의 말을 빌어 답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라고.


"평범한 인간이야말로 극도의 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하기를 멈추면 안된다고 아렌트는 호소했다. 우리는 인간도 악마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1-10. 한나 아렌트_악의 평범성>, 야마구치 슈.


야마구치 슈가 50명의 철학자와 사상가들을 빌어 소개하는 '삶의 무기'로서의 철학 개념들의 핵심은 결국 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사고'다.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평론가인 한나 아렌트(같은책, <1-10>)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기획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방청하고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썼다. '악'은 히틀러나 무솔리니, 일본 천왕처럼 거대악으로 상징될 수 있으나 정작 이러한 악의 집행은 지배 시스템이나 이데올로기에 무비판적으로 '실무'를 맡아 처리한 평범한 자들이 자행했다. 1960년 예루살렘에서 재판받고 처형된 아이히만이 법정에 등장하는 것을 본 한나 아렌트는 그 살인자가 '악마'가 아닌 지극히 나약해보이고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단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폭력으로 집권하지 않았다. 1차대전 패전국의 전후 경제위기에 불만을 품은 다수 민중들이 그 파시스트들에게 합법적으로 권력을 주었고, 자기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그 권력을 지지했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악마와 같은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한 그 평범한 '악마'들은 결국 수천만 명을 살육했다. 한나 아렌트는 무비판적 실무자들에 의해 자행된 이 악행들을 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말을 지어냈다.
 이 '악의 평범성'은 절대악을 이상화하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을 열었고, 스스로의 맹목성과 무비판성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했다. 그들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실무능력'은 주변의 다수 지지자들의 이익이라는 '선의'로 포장되는데, 이것이 가능하게 한 건 현실 체제와 제도, 지배 시스템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었다. 연말에 폭탄과 같이 사면복권된 박근혜가 절대권력을 휘두를 때 대한문 앞에 있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의 농성장을 갈아엎고 화단을 만든 서울 중구청 공무원 실무자들의 삽질이 떠오른다. 그들은 오직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공무원이었지만, 29명의 정리해고 조합원 사망자들과 유족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에게 '평범한 악마들'이었다.


기업경영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가 말하는 비판적 사고로서의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된다는 주장에 깊이 동감한다. 이 비판적 무기를 벼리기 위해 저자가 소개하는 개념들 또한 매력적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가 칸트와 스피노자 등을 제끼면서 돌아보는 철학사 또한 재미있고 유익하나 '비판'은 얘기하되 '변혁'을 담지 못하는 철학은 역시 공허하다. 그냥 '철학'이라는 주제로 책과 강연을 팔아 명성을 사기 위한 '교양'에 불과할 수도 있다.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현 체제와 시스템을 "왜 비판하는가"에 관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시, '무기'로서의 '철학'의 상속자가 체제의 전환을 요구하는 다수 대중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1.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2018), 야마구치 슈, 김윤경 옮김, <다산북스>, 2019.
2.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프리드리히 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3. [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 이철, <움직이는책>, 2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후의 힘 - 기후는 어떻게 인류와 한반도 문명을 만들었는가?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후의 힘'을 억제해야 우리가 산다
- [기후의 힘],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역사학에서 처음 파생된 개념이지만 인문학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역사학 외에도 천문학, 지질학, 기상학, 해상학,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 지리학 등 다양한 학문이 서로 얽혀 진행되는 학제 간 연구인 '빅 히스토리'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준다."
- [기후의 힘], <프롤로그>,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는 자신의 책 [기후의 힘](2021)에서 '빅 히스토리'는 역사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인문학'은 아니라고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1997)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2011) 등으로 촉발된 '빅 히스토리' 유행을 보면 역사학이라고 해서 인류만 중심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 일체의 연구 성과를 접목하여 과거를 분석하고 현재를 들여다 보며 미래를 내다본다. 우리나라 지리학계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박정재 교수는 그러면서도 이 책의 말미 <감사의 글>에서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기상학자와 같은 자연과학자가 아니라 인간을 함께 공부하는 지리학자"라고 설파한다. 
저자는 과학에 매몰되지 않는 '인간주의'로서 '인문학'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기후의 힘'을 살펴보고 있다.


"플라이오세를 마지막으로 제3기가 끝난 후 대략 260만년 전부터 제4기가 시작된다. 제4기는 플라이스토세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기인 홀로세로 구성되므로 제4기의 시작은 곧 플라이스토세의 시작이다. 학자들이 말하는 '빙하기'는 대체로 '플라이스토세'를 의미한다."
- [기후의 힘], <2. 빙하기란 무엇인가>, 박정재.


19세기 스위스계 지질학자 루이 애거시즈(Louis Agassiz)는 '빙하기(Ice age)'라는 말을 처음 썼다. 그는 진화론이 아니라 창조론을 끝까지 옹호했다지만 종교가 아닌 과학의 입장에서였다. 
260만년 전부터 대략 1만년 전까지의 오랜 기간인 '플라이스토세' 전체가 '빙하기'였다. 그 중 가장 추웠던 '최종빙기 최성기'는 2만4천년 전부터 1만9천년 전이었단다. 이후 약 1만년 간 '만빙기' 등의 쇠퇴기를 거쳐 1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기간이 바로 '홀로세'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은 인류가 자연을 망치고 있는 지금의 기후변화 시기를 '인류세'로 부르기도 했고,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자연이야 파괴되든 말든 자연과 인간을 상대로 한 끊임없는 잉여가치 착취를 멈추지 않을 작금의 자본주의는 아예 '자본세'라 불러야 한다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는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인류가 수렵과 채집을 벗어나 농경사회로 정착한 1만년 전부터 지금까지를 이르는 학문적 시기명칭은 '홀로세'다.

600만년 전 오스랄로피테쿠스가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을 거닐 때는 지구가 온난했는데, 이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시기가 대략 이 '빙하기'와 겹칠 것이다. 빙하기에는 한 곳에 정착이 불가능했기에 상대적으로 덜 추운 해안가로 몰려갔을 테고, 해안가와 강가는 먹을 거리를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나았을 테니 점차로 정착 비슷한 생활을 했겠지만 농경을 통해 먹고 살기 시작한 것은 그래봐야 '고작' 1만년 전부터였다. 물로부터 문명이 시작되고 치수에 성공한 지도자가 추앙받은 이유다. 
아무튼,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기 시작한 약 20만년 전은 여전히 들쑥날쑥 빙하기였으니 인류는 수렵과 채집을 오랜 기간 영위하다가 비로소 원시 작물과 가축을 길들이며 물가 주위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1만여 년 전부터 정착 문명을 구축했다.


"'여섯번째 대멸종'... 인간의 환경교란 때문에 멸종된 동식물의 수가 과거 있던 '다섯 차례의 대멸종'으로 사라진 동식물의 수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는 백악기에 운석 충돌로 발생한 대형 파충류(공룡)의 멸종 또한 포함된다."
- [기후의 힘], <6. 거대동물이 갑자기 사라지다>, 박정재.


1만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과 이집트 나일강, 인도의 인더스강과 중국 황하 문명이 정착 농경문화를 발전시켰으나 이후 '8.2ka(8천2백만년 전)'와 '4.2ka'(4천2백만년 전)'를 비롯한 수차례의 정기적인 '한랭기 이벤트'들과 대략 5백년 주기로 찾아온 '소빙기'는 이 정착민들을 다른 지역 해안가 등지로 내몰았다. 
우리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농경이 시작된 시기가 약 4천년 전이었고 이로부터 발달한 한반도 서남부의 남방 '송국리' 문화가 또 다른 '소빙기'를 맞아 일본 남부로 건너가 '야요이' 문화로 정착한 게 대략 3천년 전이다. 기후변화에 맞아 앉아서 죽느니 이에 맞서 미지의 땅을 찾아 적극적으로 이동한 '사피엔스'들의 혁신이 우리 동아시아 한반도 일대에서도 펼쳐졌다. 
인류가 문명을 일군 약 1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략 5백년 주기로 '소빙기'가 찾아왔는데 각 지역별로 그 시기는 차이가 나지만 중국의 한, 당 고대왕조와 송, 명 중근세왕조가 약 그 주기로 번성하다가 멸망했다. 기후 위기로 농사가 안되고 왕조들이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을 때, 전염병이 돌고 대규모 농민반란이 일어났으며 썩은 왕조가 무너졌다. 로마의 주기적인 위기와 쇠망도, 고구려와 백제의 쇠퇴와 멸망도, 몽골제국 및 원나라의 번성과 우리 고려의 '무신정권' 및 아홉 차례 '여몽항쟁'도, 이후 고려와 조선의 흥망 또한 이 주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까운 우리 역사에서 19세기 삼정 문란과 홍경래의 난과 같은 조선 후기 '민란의 시대' 또한 조선 초기 이후 다시 도래한 '소빙기'의 영향이 아니라고 볼 수도 없다. 18세기 서양의 산업혁명은 석탄을 많이 태우기 시작하여 지구의 온도를 높이기는 했지만 그 시기 서양 또한 '소빙기'였을 수도 있다. 기후변화로 힘든 와중에 자본은 '인클로저'로 농민들을 땅으로부터 도시로 쫓았는데 도시의 산업노동자가 된 이들을 대규모로 착취했고 정부는 이를 부추기고 옹호했다. 새로운 혁명 주체인 노동자 계급은 19세기 중반부터 혁명의 반란을 시작했다.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등장한 산업 프롤레타이라 계급은 '계급투쟁'의 인류역사를 종결짓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 임무'를 과학적으로 부여받았다.

인간 중심으로 보면 정치경제학적 분석과 규명이 가능한 한편, 자연과학적으로는 주기적 기후위기와 이를 가속화시키는 인류가 보인다. 
박정재 교수가 천착한 지점이다.


"대략 8천년 전에 기온이 최고점에 오른 후 그 수준이 4천3백년 전까지 유지되었다. (홀로세 기후 최적기) 이후 5백~2백년 전에 이르면 '8.2ka 이벤트' 이후로 기온이 가장 낮아지는데, 이 시기가 신빙기의 핵심 구간인 '소빙기'다... 고대 사회의 흥망성쇠를 이러한 신빙기 기후변화와 연관시키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 [기후의 힘], <9. 생태계가 풍요로워지다>, 박정재.


자본의 무한증식 운동에 편승한 인류의 탐욕이 지구 온난화의 기후위기를 확대하고 주기를 단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와 이로 인한 '세차운동' 및 태양 흑점 변화가 복합된 일조량 축소 등 기본적인 기후변화는 수십억년 반복되어 왔다. 이로 인해 백악기 말 공룡의 멸종까지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운석 충돌이나 화산 대폭발 등의 외부 요인도 한 몫 했단다. 그러나 지금 기후 대위기 시대의 '여섯번째 대멸종'의 주범이 우리 '사피엔스'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신대륙의 대형 포유류는 인간이 새로 정착하고 반세기 이내에 대부분 멸종했다. 
이 자본가들은 지금도 지구를 착취하다가 우주로 튈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의 홀로세 또는 '인류세'를 '자본세'로 바꿔 부르자는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의 주장은 지구 평균기온이 2~3도 오르기 전에 자본주의를 끝장내자는 매우 급진적인 대안을 내놓으며 본인은 자연과학을 심화학습하던 말년의 마르크스와 같은 심정으로 '인류세의 [자본론]을 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론이나 다듬으며 기다릴 시간이 없다. 당장 변혁을 실천해 나가야 한단다. 

박정재 교수는 이 정도 급진성은 아니더라도 자본을 통제하고 나아가 변덕스러운 '기후의 힘'을 억제하는 우리 인류, 즉 '사피엔스'의 혁신을 믿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 조건은 무지막대한 '기후의 힘'을 억제하는 우리 '사피엔스'의 '혁신'적 지혜와 실천이다.
'자연과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자'를 자청하는 지리학자가 기후위기 시대의 '책문'에 제출한 답안이다.


"인류는 지구의 생태계가 회복불가의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온실 기체(이산화탄소, 메탄가스 등)의 증가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일의 가능 여부가 미래 인류의 생존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가 농경 시작 이후 문명을 이루고 국가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혁신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기후의 힘'을 억제해야 우리가 산다."
- [기후의 힘], <14. 지구를 위협하는 변화의 증후들>, 박정재.

***

1. [기후의 힘],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
2.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3. [사피엔스](2011),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1.
4. [로마의 운명](2017), 카일 하퍼,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5. [공산당 선언](1848), 마르크스/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나라 귀신요괴전 1 - 중국 괴력난신의 보고, 자불어 완역 청나라 귀신요괴전 1
원매 지음, 조성환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 What the Master would not discuss.
- [청나라 귀신요괴전 1~2], 원매, 조성환 옮김, <글항아리>, 2021.


"사람의 혼(魂)은 선량하지만 백(魄)은 사악하다. 사람의 혼은 총명하지만 백은 우둔하다. 사자(死者)가 처음 왔을 때 그의 영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백이 혼의 지시를 받아 행동했다. 사자가 갈 때는 그의 심사가 다하여 혼은 사라졌으나 백만 남게 되었다. 혼이 남아 있을 때는 사람이나, 혼이 떠났을 때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산송장은 모두 백이 지시하며, 도를 가진 사람만이 백을 통제할 수 있다."
- [청나라 귀신요괴전 1], '권1. 남창의 선비', 원매, 조성환 옮김, <글항아리>, 2021.


중국 각지의 음식 이야기를 지은 [수원식단(隨園食單)](1787)의 저자인 '수원선생' 원매(袁枚:1716~1798)가 귀신요괴 이야기까지 지었다니, 그 박학다식한 오지랖에 놀랍다. 

원제는 [자불어(子不語)]였는데, [논어] <술이> 편에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즉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말에서 따왔다. 같은 제목의 책이 먼저 나온 것을 알고는 나중에 [신제해(新齊諧)]로 바꿨다고 한다. '제해(齊諧)'는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오는 "기이한 것을 기록"했다는 사람이다. 
공자가 강조한 '문행충신(文行忠信)'이 아니라 공자(the Master)가 말하지 않은(子不語 : What the Master would not discuss)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이야기 <24권 572편>은 '수원노인' 원매가 죽기 3년 전인 1794년에 재미로 지었단다. 


"나는 평생토록 취미가 적어서 무릇 술 마시고 곡에 맞추어 노래하고 저포(주사위) 놀이를 하는 등 무리 지어 사는 즐거움을 이을 수 있었으나, 어느 하나에도 능숙하지 못했다. 문학과 역사 외에는 스스로 즐길 것이 없어 이에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귀를 놀라게 하는 일, 아무렇게나 말하고 아무렇게나 들은 것을 널리 수집하고 아울러 기록하여 세상에 남겨두는 것이지, 여기에 미혹되지는 않았다."
- [자불어], <서>, 원매, 1794.


혀가 넓은 미식가는 잘 먹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안 먹어본 것이 없는 자이고, 귀가 열린 음악가는 모르는 음악이 없다고 말하면서 만년의 원매가 '아무 이야기 대잔치'인 [자불어]를 펼치기 전 쓴 <서문>이다. 
세상만물에 관한 잡학을 기록한 '제해'라는 사람처럼 세상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만물박사 '수원노인'의 노고 속 여유가 보인다. 
원매는 [수원식단]을 지었으나 막 먹어대는 돼지는 아니었고, [자불어(신제해)]를 지었으나 '괴력난신'에 미혹되지 않았다.
그저 재미로 지어 세상에 남기고자 했다.

놀기는 좋아하나 그닥 잘 하는 건 없고, 
그저 책이나 읽으며 잡학에 관한 글이나 남겨보려는, 
그런 내가 결국 가고자 하는 그 길을, 
이미 18세기 청나라 전성기에 과거는 급제했으나 만주어 승진시험에 연신 꼴찌를 차지하면서 미관말직에 머물다 '수원'으로 물러나 앉은 한족의 '수원노인' 원매가 이미 멋지게 보여줬다. 
배울 점이 많은 노인이다.

***

1. [청나라 귀신요괴전 1~2], 원매, 조성환 옮김, <글항아리>, 2021.
2.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휴머니스트>,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나라 귀신요괴전 2 - 중국 괴력난신의 보고, 자불어 완역 청나라 귀신요괴전 2
원매 지음, 조성환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 What the Master would not discuss.
- [청나라 귀신요괴전 1~2], 원매, 조성환 옮김, <글항아리>, 2021.


"사람의 혼(魂)은 선량하지만 백(魄)은 사악하다. 사람의 혼은 총명하지만 백은 우둔하다. 사자(死者)가 처음 왔을 때 그의 영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백이 혼의 지시를 받아 행동했다. 사자가 갈 때는 그의 심사가 다하여 혼은 사라졌으나 백만 남게 되었다. 혼이 남아 있을 때는 사람이나, 혼이 떠났을 때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산송장은 모두 백이 지시하며, 도를 가진 사람만이 백을 통제할 수 있다."
- [청나라 귀신요괴전 1], '권1. 남창의 선비', 원매, 조성환 옮김, <글항아리>, 2021.


중국 각지의 음식 이야기를 지은 [수원식단(隨園食單)](1787)의 저자인 '수원선생' 원매(袁枚:1716~1798)가 귀신요괴 이야기까지 지었다니, 그 박학다식한 오지랖에 놀랍다. 

원제는 [자불어(子不語)]였는데, [논어] <술이> 편에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즉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말에서 따왔다. 같은 제목의 책이 먼저 나온 것을 알고는 나중에 [신제해(新齊諧)]로 바꿨다고 한다. '제해(齊諧)'는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오는 "기이한 것을 기록"했다는 사람이다. 
공자가 강조한 '문행충신(文行忠信)'이 아니라 공자(the Master)가 말하지 않은(子不語 : What the Master would not discuss)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이야기 <24권 572편>은 '수원노인' 원매가 죽기 3년 전인 1794년에 재미로 지었단다. 


"나는 평생토록 취미가 적어서 무릇 술 마시고 곡에 맞추어 노래하고 저포(주사위) 놀이를 하는 등 무리 지어 사는 즐거움을 이을 수 있었으나, 어느 하나에도 능숙하지 못했다. 문학과 역사 외에는 스스로 즐길 것이 없어 이에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귀를 놀라게 하는 일, 아무렇게나 말하고 아무렇게나 들은 것을 널리 수집하고 아울러 기록하여 세상에 남겨두는 것이지, 여기에 미혹되지는 않았다."
- [자불어], <서>, 원매, 1794.


혀가 넓은 미식가는 잘 먹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안 먹어본 것이 없는 자이고, 귀가 열린 음악가는 모르는 음악이 없다고 말하면서 만년의 원매가 '아무 이야기 대잔치'인 [자불어]를 펼치기 전 쓴 <서문>이다. 
세상만물에 관한 잡학을 기록한 '제해'라는 사람처럼 세상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만물박사 '수원노인'의 노고 속 여유가 보인다. 
원매는 [수원식단]을 지었으나 막 먹어대는 돼지는 아니었고, [자불어(신제해)]를 지었으나 '괴력난신'에 미혹되지 않았다.
그저 재미로 지어 세상에 남기고자 했다.

놀기는 좋아하나 그닥 잘 하는 건 없고, 
그저 책이나 읽으며 잡학에 관한 글이나 남겨보려는, 
그런 내가 결국 가고자 하는 그 길을, 
이미 18세기 청나라 전성기에 과거는 급제했으나 만주어 승진시험에 연신 꼴찌를 차지하면서 미관말직에 머물다 '수원'으로 물러나 앉은 한족의 '수원노인' 원매가 이미 멋지게 보여줬다. 
배울 점이 많은 노인이다.

***

1. [청나라 귀신요괴전 1~2], 원매, 조성환 옮김, <글항아리>, 2021.
2.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휴머니스트>,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