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 사상 - 10개의 강의로 도교 쉽게 이해하기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가미쓰카 요시코 지음, 장원철.이동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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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冥府)'는 열렸다
- [요한묵시록]과 [지옥도와 아귀도], [도교사상]과 [성리학의 개념들], 그리고 [공산당선언]


1. 요한묵시록 : 기독교


"묵시록은 한 부분씩 잘라 읽으며 해석하는 대신 한결 넓고 '통합적인 시각'으로 읽을 때 우리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중심환시(中心幻視)', 더 나아가 요한묵시록이라는 책은 과학과 예술과 신학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고도의 문학작품인 동시에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요한묵시록은 결코 우리를 협박하며 불안으로 몰아가는 책이 아니다. 비록 회개와 충실로 이끌기 위해 위협적인 장면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더이상 로마를 겁내지 마라. 설혹 죽임을 당할지라도 안심하여라'(14장)며 하느님께 속한 이들이라면 언제나 보호와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책, 마치 탈출기 1~15장을 읽던 유다인들에게처럼 위로와 격려, 안도와 희망을 전하는 책이다."
- [일곱 봉인의 비밀], <결론>, 배은주, 2022.


성경을 다 읽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집에 있는 1960년대 번역판에 세로쓰기 성경은 가독성이 완전 '제로'다. 그래도 처음과 끝은 궁금하기에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은 읽었다.
그리스신화에서 '혼돈(Chaos)'으로부터 '질서(Cosmos)'가 창조되는 과정과 비슷한 [구약성경]의 시작인 <창세기>는 읽을만 했던 반면, '성경'이라는 우주 전체의 거대한 '역사'를 마무리하는 [신약성경]의 마지막 기록, <요한계시록>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계의 '종말'을 암시 또는 '계시'하는 듯한 이 기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가장 모범생이었던 '요한'일 수도, 아니면 예수 사후 1세기 이내 살았던 다른 어느 '요한'일 수도 있는 어떤 예언자가 남긴 기록이라는데, 열심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본론인 '중심환시' 때문이다. 
로마로부터 억압받던 기독교인들에게 기원후 4세기 전까지의 세계는 '지옥'에 다름 아니었고, 유일신 하느님을 부정하고 기독교를 탄압하는 로마황제는 그 자체로 '사탄'의 현신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예언자 '요한'이 어느 섬에서 신의 계시를 '환시(幻視)'의 형태로 받고 이를 기록함으로써 세계의 종말과 '천년왕국'의 도래를 '묵시(默示)'하는 문헌이 바로 <요한계시록> 또는 <요한묵시록>이다.

대구 베네딕트회 소속 배은주 수녀는 이 <요한묵시록>의 '중심환시'에서 하느님이 요한에게 내린 '일곱 봉인'과 그 전개의 구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곱 봉인의 비밀](2022)이라는 소논문을 출간했다. 
천상의 구름이 열리며 대천사를 대동한 채 왕좌에 앉은 이는 유일신 하느님일 수도, 아마도 그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일 수도 있다. 하늘이 내린 '일곱 봉인'은 '지옥'과도 같은 현실의 순차적인 전개와 이를 일일이 극복해 나가는 하늘의 '승리'의 구조 아래 결국 억압적 현실을 딛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메시아(구세주)'의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 따라서 [일곱 봉인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우리는 '선천개벽'(사실 이런 말은 없다)의 '혁명'을 꿈꾸게 된다. 
그렇게 [요한묵시록]은 '종말'의 기록이 아니라, '희망'을 암시하는 '혁명'의 경전이 된다.


2. 지옥론 : 불교


"'지옥(地獄)'이라는 일반명사로서 가장 흔히 등장하는 것이 '나락가(捺落迦)'이다. 이는 '고통이 있는 곳' 내지 '자유롭지 못한 곳'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Naraka'를 한(漢)어로 음역한 것이며, 이것이 한어로 '지옥(地獄)'으로 번역된 것이다... '규환(叫喚)'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지옥에서 울리는 죄인들의 고통과 회한에 가득찬 비명소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왜 '아비(阿鼻)'지옥을 '무간(無間)'지옥으로 부르는 것일까? 이는 아비지옥의 여러 특성 중에서도, 죄인들이 모두 타서 서로간에 구별할 수 없는 틈이 전혀 없기 때문이며, 또한 그 지옥에서 받게 되는 고통의 세력이 간단(間斷)없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2. 불교의 8대 근본지옥에 관하여>, 김성순, 2022.


산스크리트어 '야마(Yama)'는 고대 인도 신화에서 '가장 먼저 죽은 자'로서, 불교가 서역을 통해 중국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염마(閻魔)'로 음역되었다. 우리가 '지옥(地獄)'을 관장하는 신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 '염라대왕(閻羅大王)'이다. 이는 물론 불교만의 신화는 아니다. 염라대왕은 도교에서 유래한 '시왕(十王)' 신앙의 우두머리로 묘사되지만, 망자에 대한 인정적 심판을 이유로 불교의 '8대 지옥' 중 5대 지옥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고, 역시 불교가 서역을 통해 중국에 본격적으로 전해지던 5호16국 전란의 시대에 지옥 같은 현실의 참화 속에서 민중을 구제하려는 '대승(大乘)' 불교로의 전환과정에서 등장한 '지장보살'의 협신들인 '시왕'들 중 우두머리가 되었다. 

종교학자 김성순은 [불교 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2022)에서 불교의 '8대 지옥'을 묘사하며 '대승' 불교적 '메시아'인 지장보살이 '미륵불하생'의 '종말' 또는 '희망'의 세상이 개벽하기 전 중생을 보살피고 구제하는 과정을 그린다. 
'미륵불하생(彌勒佛下生)'은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우리 동아시아 민중반란의 주요 이념이었다. 원래는 '선천개벽'의 보수적 관념론이었지만, 서양의 천주교 또는 기독교 사상이 섞이고 또 우리의 '동학' 사상과 결합하며, '후천개벽'의 급진적 유물론의 성격으로도 드러났다. 


3. 선천 또는 후천 : 성리학


"'리기(理氣)'는 성리학(性理學)의 모든 개념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성리학자들이 비록 자연계의 최종적인 근원을 찾고자 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존재를 강조하지 않고  그것의 속성과 기능, 그리고 그것의 전개과정을 더욱 강조했다... 성리학에 나타난 변증법(辨證法)적 사유의 특징은 여기에서 충분히 표현되고 있다... 성리학자들은 이 (관계적) 개념들을 통해 대립과 통일의 변증사상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립과 통일 가운데 통일을 결정적 요소로 간주하여 모든 대립은 결국 '합일(合一)'에 이른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성리학적 변증사상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성리학의 근본적인 임무... 자연계를 순수한 객관적 대상으로 간주하여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성리학 개념들의 구성체계를 가운데 하나의 구성부분으로 여긴 것이다. 이는 성리학이 결코 인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성리학의 개념들], <1. 리기론-총론>, 몽배원, 1989.


주자학으로 불린 성리학은 '리기론(理氣論)'이기도 하다. '천명'과 같은 하늘을 비롯한 우주 전체의 원리인 '리(理)'와 인간의 실천과 같이 우주의 원리가 현실화되는 '기(氣)', 인간의 본성과 같은 '성(性)'과 역시 우주의 원리인 '리(理)', 앎의 '지(知)'와 실천의 '행(行)', 이러한 이항대립 개념들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철학이다. 성리학의 근본으로서 유학은 본래 기원전 중국 춘추시대 공자로부터 기원하는 인간중심 정치사상이자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일대를 지배했던 최대의 정치철학이었다. 
[주역] 또는 [역학]에 기반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로 나아가는 이 세계관은 자세히 보면 '유물론'적 요소도 있다. 그러나 성리학의 [대학]이 말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는 결국 인간의 '관념론'이다. 신을 전제하지 않고 '태극론'이나 '음양오행론' 등과 결합하여 '객관세계'인 우주와 하늘(천리:天理)을 연구(격물:格物)하고 지식에 이르는(치지:致知) 과정은 결국 인간의 도덕 함양을 위함이다. '객관세계'는 이러한 도학(道學)을 위한 궁극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연구하고 완성하기 위한 관념적 전제에 불과하다. 이 관념론적 성리학이 개인 도덕함양을 통해 이루려는 '대동세상'은 결국 '선천(先天)'의 혁명이다. 

그러나 이런 '관념론'과 '혁명'은 양립할 수 없다.
중국 사회과학원 철학박사 몽배원은 1989년에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위와 같은 '이항대립'적 [성리학의 개념들]을 정리했다. 소비에트연방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져 가던 시기에, 서양의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동양의 '대동세상'을 지향하는 유학 사상을 접목하여 '동양식 공산주의' 사상을 전개하려는 시도였겠지만, 본질적으로 '관념론'인 성리학과 '유물론'인 마르크스주의는 잘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결국 체제의 질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관념론'과 체제를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운동으로서의 '혁명'의 본질적 차이에 기인한다. 
우리의 동학은 유-불-선의 동양철학과 기독교의 서양사상이 결합하되 주요 이념은 '미륵불하생'의 메시아주의였다. 즉, 원래부터 '하늘'이나 '천명' 따위의 천상의 관념이 있었던 '선천'이 아니라, 유학(성리학)의 본래 이념대로 신이나 종교가 아닌 현실의 인간을 우선으로 하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은 불교적 '미륵불하생' 사상의 유교적 버전이다. 현실의 역사에서 '선천'은 질서를, '후천개벽'은 혁명을 호출했던 이유가 이 '미륵불하생'의 '메시아주의'에 있다. 


4. 신선사상 : 도교


"천계(天界)설을 고안했다는 사실에서 육조시대 후반기 불교 교리를 수용하는 한편 교리 체계를 구축해갔던 당시 도교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선계(仙界), 인계(人界), 귀계(鬼界)... 이 세상에서 불노불사의 선인(仙人)이 되지는 못하고서 사자(死者)가 되어 귀계에 들어간 경우라도 다시금 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방법을 설파하였던 것은 도교 혹은 신선사상의 새로운 전개라 하겠다."
- [도교사상], <4. 우주론 - 눈으로 보이는 세계를 넘어서>, 가미쓰카 요시코, 2020.


5호16국과 위진남북조 시대에 인도로부터 서역을 거쳐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래되기 전, 중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정치사상은 '선천'의 질서를 강조했던 유학이었다. 성리학은 기원후 12세기나 되어야 발전된 사상이니 그 전의 사상은 유학(儒學)이었다. 한편 다수 민중들에 널리 퍼져있던 사상은 공자의 유학보다는 노자와 장자의 '도교(道敎)'가 더 지배적이었다. 중국의 황제시대부터 춘추시대 노자까지 하늘의 '태상(太上)' 천군(하늘신)과 '태상노군(太上老君:노자)'을 모시는 일종의 중국식 민속신앙과도 같다. 우리의 무속신앙과 같은 수준이라는 중국의 도교는 '신선' 사상이기도 한데, 하느님이나 노자와 같은 '태상노군' 또는 이들의 기운을 받아 신선이 된 자는 하늘이나 땅 아래의 피안보다는 현실의 인간세상 옆 어딘가에 존재한다. 천당도 지옥도 아닌 이 '신선'의 세계는 우리 주변 어딘가에 존재하다가 고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언젠가 도래한다.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는 메시아(구세주)가 등장할 수도 있고 인간 개인이 도를 닦아 신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이 역시 '지옥'과 같이 참담하다면 역시 '미륵불하생'처럼 '태상노군'의 메시아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일종의 민중적 집단지성이 발동된다.

일본의 도교 전공학자인 가미쓰카 요시코는 대학교수 퇴임을 앞두고 그 동안 진행했던 강의들을 10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도교를 설명하는 [도교사상](2020)이라는 책을 냈다. 저자에 의하면 장각 형제의 '태평도(太平道)'가 바로 노자와 장자의 도가 사상이 중국 최초로 조직화된 '도교(道敎)'라는 설이 일반론이다. 동시에 장도릉이라는 유학자가 도를 닦고 스스로 '장천사(張天使)'라는 메시아적 신선이 되어 창시한 '오두미교(五斗米道)'는 누구나 쌀 다섯말(五斗)만 내면 공동체에서 함께 평등한 삶을 살 수 있고 나아가 신선도 될 수 있다는 '도교'의 조직화였다. 즉, '도교'의 시작은 후한말 황건 농민반란 시기의 '태평도'와 '오두미교'였다. 중국 후한 말기, 즉 우리가 아는 [삼국지]의 배경인 바로 그 '황건적의 난'이다. 이후 동아시아 역사에서 반복된 농민혁명은 원말명초 백련교나 마니교(명교)의 형태로, 청나라 말기 우리 조선말 최제우의 동학과 비슷한 시기에 역시 비슷한 동기로 유-불-선과 기독교의 결합에 의해 등장한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반란 등의 형태로 반복된다. 
이 모든 민란은 '지옥'과 진배없는 현실을 뒤집어 엎고 새세상의 '후천개벽'을 바라는 동양의 '메시아주의'였다. 대부분 동양 농민반란의 이념은 근대에 이르러 유학 또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불교의 '미륵불하생' 사상 및 도교의 '신선' 사상이 결합된 '유-불-선' 사상에 기독교적 '메시아' 사상이 접목된 '혁명' 이론이었다. 

불교에서 현실이 고되더라도 나쁜 짓 하면 '나락(지옥)'에 떨어져 똑같은 나쁜 짓으로 되갚음을 당한다는 '지옥론'을 설파한 이유는, 기독교에서 [요한묵시록]을 통해 고단한 현실을 버텨내라는 '희망'의 '종말론'을 기록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이 현실과 천상 또는 지옥의 이원론적 '관념론'은 현실 변혁의 시대적 요구로 인해 '혁명'적 '유물론'과 결합한다.

레닌의 말대로, "혁명 이론 없는 혁명 운동은 없다."([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1903)


5. '혁명(革命)'의 '선언(宣言)' : 마르크스주의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 교환관계, 부르주아적 소유관계,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듯이 그렇게도 강력한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을 만들어낸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자기가 주문(呪文)으로 불러낸 저승(명부:冥府/지옥:地獄/nether world)사자의 힘을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된 마술사와도 같다. 지난 수십년에 걸친 공업과 상업의 역사는 현대의 생산관계에 대한, 즉 부르주아지의 존립과 지배의 조건인 현대적 소유관계에 대한 현대적 생산력의 반역(叛逆)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 [공산당선언],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마르크스/엥겔스, 1848.


이제, 결론이다.

기독교에서 [요한묵시록]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은 당시 로마 제국이라는 현실의 '지옥'을 극복하기 위한 '일곱 봉인'의 환시적 종말론이었지만, 결국 '천년왕국'의 도래를 계시하는 '희망'의 메시아주의였다.

불교에서 '8대 지옥'의 고통과 천계와 인간계를 배회하는 '아귀'와 '아수라' 등의 혼란한 존재들을 설파한 이유는 '지옥' 같은 인간세상이 더 '지옥' 같은 '나락가'에 빠지지 않도록 수양정진하라는 경고였고, 만일 그렇지 못한 세상이라면 '미륵불'이 강림할 것이라는 또다른 메시아주의였다. 다만 '미륵불하생' 전 그 수만 겁의 시간 동안 지장보살은 현실과 지옥을 오가며 인간과 반인반신의 '아수라', '아귀'와 '축생', 그리고 고통받는 지옥의 망자들을 보살피고 구제한다. 결국 우리 모든 '보살(깨달음을 구하는 자)'들의 궁극목표는 불교 사찰 내 '명부전(冥府殿)' 주신인 '지장보살'인 셈이고, 우리가 기다리는 '미륵불하생'의 시간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도교의 신선 사상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니다. 중국 고유의 민속신앙인 도교는 우리의 삼국시대 고구려를 경유하여 유입되었다. 중국의 황건 농민반란을 시작으로 조직화된 도교는 5호16국과 위진남북조의 혼란기를 거쳐 선비족의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역시 선비족과 한족의 혼혈왕조로 건국된 당나라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당고조 이연 집안은 스스로 새왕조 개창의 정통성을 오래전 사라진 노자의 본명인 '이이'에서 찾았다. 즉, 같은 '이씨 집안'이라는 것이었다. '도교 왕국' 당나라는 우리 고구려에게까지 '도교'를 강제했고 고구려는 '외교적 필요성'에 따라 그들의 '도교'를 수입했다. 그리고 연개소문 시대에는 이 팽배해진 '도교'와 '음양오행론' 따위를 앞세우다가 멸망했다. 그러나 결국, 도교가 말하는 '신선계'는 천국이나 지옥 어딘가가 아닌 우리 '인간계' 옆 어딘가에 있다. 즉, '태상노군'과 같은 '메시아(구세주)' 또는 '미륵불하생'은 우리 주변 이 세상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유교 또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대동세상'과 '천인합일'의 그날은 교조적 주자의 성리학자가 말하는 '성즉리(性卽理)'나 극단적 관념론인 왕수인의 양명학자가 말하는 '심즉리(心卽理)' 따위의 도학적 개인수양과 정신승리로 도래하지 않는다. 불교의 참선과 도교의 신선 수양(도닦기)의 영향으로 유교의 '도학'은 개인수양으로 현실을 '지옥' 같지 않도록 정화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사탄'이나 '역그리스도'와 같은 지배권력자들은 다수 민중들의 개인수양 따위를 강조하며 부패한 자신들의 소수 지배권력을 정당화한다. 

유교와 불교와 도교 일체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되어왔던 이유가 달리 있지 않다.

지금은, '혁명'적 '유물론'의 시간이다.
굳이 '마르크스주의'를 말하지 않아도, 유-불-선과 기독교 왕국의 지배자들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명부(冥府)'의 문을 연지 오래다. 다수 민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소수 지배자들이 채택한 지배 이데올로기 자체가 다수 민중들이 수천년 간 구축해 온 '집단지성'이었다. 그리고 '지옥' 같은 현실을 지탱해온 그 소수 지배자들 또한 한때는 다수 민중들의 일부였다. 따라서 그 소수 지배자들 또한 지금의 다수 민중들의 손에 의해 결국 심판받게 된다.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명부의 문을 열고만 마법사"([공산당선언], <1장>, 마르크스/엥겔스, 1848)와도 같이 소수 지배계급이 결국에는 다수 피지배계급의 '혁명'으로 타도되는 것, 이것이 인류의 역사가 보여준 단 하나의 '민주주의'의 원리이고,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본질은 '선거'나 '개혁'이 아닌 궁극의 '혁명'인 것이다.

동학의 후손들인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조선의 이씨왕조나 청나라-일제 같은 외세가 들었어야 할 그 경고는,
지금으로 치면 국찜당이나 민주당 같은 거대 기득권동맹체나 미국-일본 같은 주변국가들이 함께 들어야 할 경고와 같다.

한 줌도 안되는 그 소수의 지배권력이 언제까지 갈 것 같은가.
유-불-선과 기독교 따위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돌아보라.

'천년왕국'이나, '8대 지옥', '메시아' 같은 건 없다.
'혁명'적 '유물론'의 시간은 또 다시 반복되며, 
결국에 다시 온다.

***

1. [일곱 봉인의 비밀 - 요한묵시록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배은주, <분도출판사>, 2022.
2. [성경전서], '요한계시록', <대한성서공회>, 1989.
3.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김성순, <역사산책>, 2022.
4. [도교사상 - 10개 강의로 도교 쉽게 이해하기](2020), 가미쓰카 요시코, 장원철/아동철 옮김, <AK>, 2022.
5. [성리학의 개념들](1989), 몽배원 지음, 홍원식 외 옮김, <예문서원>, 2008.
6.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 마르크스/엥겔스, 1848.7.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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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고고학 현대사상의 모험 3
미셸 푸코 지음, 이정우 옮김 / 민음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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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연속성'의 무질서에 '정합성을!
- [지식의 고고학], 미셸 푸코, 1969.


"'동일성'은 결코 규준이 될 수 없다."
- [지식의 고고학], <4. 고고학적 기술>, 미셸 푸코, 1969.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제 '책 좀 읽으니' 어려운 프랑스 현대철학으로 다시금 관심이 갔다. 그냥 순수한 호기심으로 왠지 미셸 푸코 정도는 읽어줘야 할 것 같았다. 푸코의 초기 대표작인 [지식의 고고학](1969)과 그 선행작업으로서 [말과 사물](1966)을 구했다. 두 책의 <서론>을 읽다가 까맣게 잊고 있던 이십여 년전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여태껏 유일하게 읽었던 푸코의 저작 [감시와 처벌](1975)이라는 그 유명한 책이 왜 나의 책장에 없는지 기억이 났다. [감시와 처벌]은 정확한 문장으로 "내 다시는 이 미친놈의 글을 읽는 일은 없다!"는 선언과 함께 쓰레기통에 처박힌 아마도 유일한 책이었다. '미시적 권력학'과 그 은유로서의 감옥감시탑 '판옵티콘' 이야기를 세상 최악의 장황함과 횡설수설 글장난으로 쓸데없이 분량만 늘린 내 일생 최악의 책이기도 했다. 이십여 년 전의 나에게 온갖 철학적 도그마와 '일자(一者)'적 '동일성' 또는 '일관성'을 거부하며, 일종의 현대철학적 정신분열을 거듭해대는 미셸 푸코는 '미친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탄생, 연속성, 총체성 : 이들이 '지성사(知性史)'의 위대한 테마들이며, '지성사'는 이들을 가지고서 (전통적이고) 역사적 분석의 어떤 형태에 밀착된다. 이러한 조건들 하에서, 역사에, 그의 방법들에, 그의 요구와 가능성에, 이제는 다소 퇴색해 버린 이 개념들에 여전히 집착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성사'와 같은 분야를 포기할 수 없다고, 나아가 언설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의 다른 모든 형태들은 역사 자체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考古學)'적 기술(記述)은 정확히 '지성사'에 대한 포기이며, 그 가설들과 과정들에 대한 체계적 거부이며, 사람들이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 [지식의 고고학], <4. 고고학적 기술>, 미셸 푸코, 1969.


프랑스 현대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 1926~1984)의 1960년대 초기 대표작 [지식의 고고학](1969) 중에서 내가 뽑은 가장 '정상적'이고 평이한 대목이다. 푸코가 이 장황하고 읽다보면 욕이 나오는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사실 이것이 전부라고 봐도 좋다. 고전철학의 전통적 주제인 '주체'를 배제하는 프랑스 '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철학을 논하면서 본인은 '구조주의자'가 아니라고 성질을 부리기도 했다는 푸코는, 내가 보기에 결국 철학적 '주체' 개념과 이로 인해 펼쳐지는 철학적 '일자'의 '동일성'과 '일관성', 그로 인한 '역사성' 일체를 거부하는 푸코는, 본인이 뭐라 하든 말든 '구조주의자'가 맞다. 가스통 바슐라르와 루이 알튀세르 등의 '인식론적 단절(절단)' 개념을 차용하면서 '본인은 그들과 다르다'고 한다. 철학이나 '지성사' 일반의 '일관성'을 거부하는 푸코에게 바슐라르나 알튀세르가 말하는 온갖 '인식론적 단절(절단)'과 본인이 말하는 '단절(절단)'은 맥락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니 역시 같은 말이 아니라는 푸코 철학 나름의 '일관성'에 따른 논리적 결론이다. '일관성'의 '지성사'를 '배신'하고 [지식의 고고학]을 세우려는 현대철학자 푸코의 '지성'에도 부득불 '일관성'은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식의 고고학]에 관한 최근의 독자평을 보니 '악플'들이 좀 있던데, 내가 보기에 이 책의 문제는 뜬금없는 한자어가 갑툭튀한다거나 번역문이 비문인 게 아니다. 굳이 불어 원전으로 읽지 않아도 원저자 미셸 푸코의 문장 자체가 뒤죽박죽에 장광설 투성이가 맞을게다. 그런 철학자를 전공한 우리나라 철학자들인 이정우 교수([지식의 고고학])와 오생근 교수([감시와 처벌]) 같은 옮긴이들의 잘못은 내가 보기엔 푸코를 전공했다는 점 말고는 없다. 오죽 했으면 [말과 사물](1966)을 번역한 이규현 선생은 세간에 '제2의 창작'으로 여겨지는 번역 작업은 "두 언어 사이의 이동일 뿐만이 아니라" 그 작업 자체를 넘어, "저자나 작가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저자나 작가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고 실제로 나아가는 작업"([말과 사물], <역자해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푸코 원문 자체를 "저자가 지향하는 방향"대로 번역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읽는 나도 내내 책을 찢어버리고 싶었는데, 그걸 우리말로 옮기던 분들은 얼마나 욕을 해대었을까 생각하니 새삼 번역자들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전통적인 고전철학이 종교적 교리와 같은 '도그마'가 된 이유를 종교적 '신'과 같은 '일자(一者:The One)'의 '주체성'과 그로 인한 순환논리적 '동일성'에서 찾는 프랑스 현대철학의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이 구조주의 자체가 교리화되는 것을 경계하는 미셸 푸코는 사실 따지자면 '후기-구조주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 정도로 보면 된다. [지식의 고고학]의 마지막 5장 <결론>에서도 푸코는 스스로를 '당신'이라고 타자화시키면서 "당신은... 구조주의라는 딱지를... 벗어버리려고 노력했다"(같은책, <5>)고 자화자찬하며 빡빡머리를 스스로 쓰다듬고 있다. 그가 '포스트-모더니스트'인 이유는 '나는 구조주의자이면서 아니기도 하다'는 식의 자기 정체성 규정의 태도 자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푸코가 장황하게 말하는 [지식의 고고학]은 무엇인가.


"문제는 더이상 전통과 흔적이 아니라 '절단(단절)'과 극한인 것이다... '총체화'의 가능성을 의심... '불연속'의 개념... 그것은 역사의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비밀스러웠던, 그러나 결국 '주체'의 종합적인 활동에 연결되어 있던 역사의 이러한 형태의 소멸인 것이다... 그곳에서 마지막 인간학적 구속들이 해체되는 시도... 이 과제들은 어떤 무질서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일반적인 분절이 분명하게 정의되지 않은채 소묘되었다. 이제 이들에 '정합성'을 부여할 때이다-아니면 적어도 이를 시도할 때이다. 이 시도의 결과, 그것이 여기 이 책이다."
- [지식의 고고학], <1. 서론>, 미셸 푸코, 1969.


그가 본인의 장황한 '글놀이'에 미쳐서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전 내가 보기에 몇 안되는 '제 정신'으로 쓴 1장 <서론>의 대목이다. 즉, 푸코에게 [지식의 고고학]이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연속성'를 과감하게 깨부수고 '불연속성'의 무질서에 '정합성'을 부여하려는 철학적 시도를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 형식으로는 2장에서 <언설적 규칙성>을 밝히고 3장인 <언표와 문서고>에서 '언설'의 기표인 '언표'의 '좌표계'를 통해 "언표들의 형성과 변환의 일반적인 체계"(같은책, <3>)인 '문서고'의 요소 속에서의 "특이화된 실천들로서 기술하는 것"(같은책, <3>)이다. 
위의 내용과 형식을 종합하면, '총체성'이라는 자루에 언설과 언표, 개념들을 몽땅 쓸어담지 말고 각자의 층위와 역사와 결이 다른 특이한 '맥락'들을 읽어내고 표시하며 밝혀내는 작업이 바로 푸코가 말하는 [지식의 고고학]인 것이다. 그러므로 푸코에게 '모순'이란 헤겔식 변증법처럼 서로 지양되고 종합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모순' 자체이다. 그냥 다른 것인데 억지로 통합하고 합치자고 하지 말라는 거다. 따라서 [지식의 고고학]은 세상만물을 '일관성'으로 해석하는 '지성사'에 반발하며 각 '언설'과 '언표'들의 차이를, 그 맥락 속에서 그들이 찍은 '좌표'를 읽어내는 철학적 작업인 것이다. 


"창조하는 주체의 심급은... '고고학'에 낯선 존재... '지성사'는, 다소 심오한 수준에서, '언설'을 조직화하고 그에게 숨겨진 통일성을 복원시켜주는 '일관성'의 원리를 찾아내는 것을 그의 의무로 삼는다... '고고학'적 분석에 있어서는,... '모순'은,... 그들 자체로서 기술해야 할 대상들이다... '고고학'은 화해의 점을 찾지 않는 것이다... 그들(모순)을 해석 내지 설명에 있어서의 하나의 일반적인, 추상적인 그리고 균일한 원리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지성사'와는 달리, '고고학'은 상이한 '불화의 공간들'을 기술하는 것이다."
- [지식의 고고학], <4. 고고학적 기술>, 미셸 푸코, 1969.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에서 정의하는 '고고학'적 분석은 "통일화하지 않고 복수화하는 것"이자, "연결의 특이한 형태들(관계들)을 정의하는 것"이고, "불연속성 자체의 분산에 대해 기술하는 것"(이상 같은책, <4>)이다. 

푸코에게 '단 하나의' 개념이나 진리 같은 건 없다. 모든 것은 해당 맥락에서의 '관계'들로서 정의되고 기술된다. '지성사' 일반의 통일성에 반발하여 [지식의 고고학](1969)이 갈 길은 이런 '관계'들을 읽어내고 그 정합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 '고고학'의 철학으로 '권력'의 미시학과 계보학까지 푸코는 내처 나아간다. 그 완성작이 바로 1975년에 나온 [감시와 처벌]인 것이다. 지금의 현대철학에서 당연시되는 사유방식의 본격적인 시작을 푸코가 열어제친 것은 맞다. 한세기 전 "신은 죽었다!"면서 니체가 망치를 들고 깨부수려 했던 '신'의 철학을 푸코도 넘어서려 했다. 19세기 근대의 니체가 있었다면, 20세기 현대에는 푸코가 뒤를 이었다. 당시는 지금의 슬라보예 지젝처럼 언제가 되어도 한 지점에서 통일적으로 만나는 날이 오지 않는 '시차적 관점'도 없었고, 아도르노식 끊임없는 '부정의 변증법' 등도 당연시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운동 뿐'이라는 변증법 고유의 진리를 독일 사민당에서 실천하려던 베른슈타인은 '개량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로 규정되던 시절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부단한 '운동'과 '혁명'이라기 보다 인류가 도달해야 할 궁극의 '목적'이거나 다른 한편으로 '악마의 사상', 그 둘 중 하나였던, 에릭 홉스봄의 말마따나 이른바 '극단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장광설로 '지식의 고고학'과 '권력의 미시학' 따위를 글놀음하는 철학자는 정신분열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동시대 프랑스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는 푸코와 비슷한 철학적 사유놀이를 하다가 미쳐서 죽었다. 이러한 시대의 맥락에서 보면 미셸 푸코의 '고고학'적 사유방식은 선구적이고 기념비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니체처럼 너무 장황하다. 비전문가인 독자대중들이 당최 다가갈 수 없는 사유놀이를 통해 철학자 스스로 '영웅'이 된다. 역사를 끌어가는 다수대중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영웅이 되는 점에서 최근 뜬금없이 유행하는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의 면모도 있다. 

군복무할 때 진중문고에 있던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는 읽을 책이 없던 군시절 아니었으면 읽을 생각도 안 했을 것이었는데, 욕을 해대며 책장을 넘겼음에도 내 책이 아니었으니 부러 버리지는 않았다. 한편, 위대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 특유의 장황함으로 인해 폐기당하고 만 내 책 [감시와 처벌]은 2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니 아깝기도 하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시 읽은 푸코는, 또 다시 나의 앵두같은 입술에서 육두문자가 나오게 했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귀한 책을 찢어발길 뻔 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본래 나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십년 전의 내가 아니다. 난 또 다시 열을 내면서 푸코의 [말과 사물](1966)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열받는 사람들을 최소화하면서도 선구적이고도 위대한 프랑스 현대철학자 미셸 푸코를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의 장황한 저작을 요약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지식의 고고학](1969)이라는 푸코 사유의 계보학에서 중요한 '사전작업'으로 평가되는 책, [말과 사물](1966)을 펼친다.

***

1. [지식의 고고학](1969), 미셸 푸코,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0.
2. [감시와 처벌](1975), 미셸 푸코, 오생근 옮김, <나남>, 2003.
3. [말과 사물](1966),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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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치사상사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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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사의 '일이관지(一以貫之)'
- [중국정치사상사], 김영민, 2021.


"사회계통적 설명의 관점에서 보면,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순간에는 그러한 측정이 나름대로 유용할 수 있어도, '중국적'이라는 말은 결국 내용상 정확성을 결여한 말이다. '중국적'이라는 것의 본질은 없기 때문이다... '연속성'이란 서사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고, 서사란 선재하고 있는 어떤 것들을 베껴쓰는 것이 아니다. 적실성 있는 텍스트 상의 증거가 존재하면, 사상가들은 단순히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에 대해 형식적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 '일관성'이란 구분 가능한 일련의 주장들을 꿰어준다는 의미에서의 '일관성'이다."
- [중국정치사상사], <1. 서론>, 김영민, 2021.


현재 중국은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한 자리를 다시금 그들 나름 역사와 전통의 '중화(中華)'로 채우고 있다. 지금 중국은 실크로드와 해양무역로를 아우르는 '일대일로(一带一路)'라는 슬로건으로 유라시아 일대를 지배하고자 하며 더 나아가 세계를 감히 '덕치(德治)'하겠다고 한다. '인(仁)'을 중시한 공자의 후예들이라 온세계에 새삼 공표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던 자들이 '제국'으로 다시금 회귀하고 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 등의 에세이와 [공부란 무엇인가](2020)를 비롯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의 글을 읽다가, 과연 '사상사 연구자'인 학자로서 이 분의 글은 어떨까 궁금해져서 [중국정치사상사](2021)를 읽었다. '장학금' 때문이라고는 해도 '동아시아 사상사' 전공자가 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전공서적'은 2017년 영문으로 저술된 책을 2021년에 내용을 증보하여 우리글로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김영민 교수는 [중국정치사상사]를 통해 '중국역사'라든지 '중국사상사'를 통사로 다루지는 않는다. 중국역사를 따라가되 그 '정치사상사'를 '계몽된 관습공동체(2장)', '정치사회(3장)', '국가(4장)', '귀족사회(5장)', '형이상학 공화국(6장)', '혼일천하통일(7장)', '독재(8장)', '시민사회(9장)', '제국(10장)' 등의 테마 별로 묶어 '정치사상'들이 드러내는 '연속성'을 추적하고 '중국적' 또는 '중화'라는 이데올로기를 '일관성(一貫性)'의 서사로 꿰뚫어내고자 한다. 중국인들의 스승인 공자의 말씀인 [논어]에 나오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방법론이다. 방대한 '중국사'나 '중국사상사'를 일일이 다룰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중국'을 넘어 인류의 '정치사상'을 분석하는 '일관성'이 무기다. 그래서, 다시 '철학' 이야기다.


"공자가 정치질서의 새로운 기초를 찾아나선 것은 바로 이러한 ('천명' 해체의) 역사적 맥락에서였다. 비록 하늘이 여전히 최상위의 권위로 남아있었지만, 그 하늘이 인간사에 직접 반응하리라고 공자는 더는 믿지 않았다. 그는 인간세계 내에서 정치질서의 대안적인 기초를 찾았다... 사실 공자 뿐 아니라 상당수 춘추시대 지식인들이 초인간적 존재가 갖는 정치적 적실성에 관해 회의를 품기 시작하였다."
- [중국정치사상사], <2. 계몽된 관습공동체>, 김영민, 2021.


'중국통사'가 아니기에 저자는 '삼황오제'나 이 중국족보체계를 세운 사마천 [사기] 등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수천년 중국사가 아닌 약 3천년 정도의 역사로부터 사상사를 시작한다. 상(은)나라는 '귀신들로부터 선택받은' 부족이 세습하여 지배권력이 되었지만 상나라라는 '부족연합국가'를 멸망시키고 '봉건제'를 시작한 주나라는 유목민족이 섬기던 '텡그리' 또는 '하늘'을 대신하는 '천명(天命)' 사상을 앞세웠다.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천하(天下)'가 되었다. 주나라의 쇠퇴는 '천명'의 몰락이었고, 춘추시대는 "인간들이 신적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공동체를 통제할 것인가?"(같은책, <2>)에 대한 의문의 시작이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이와같은 집단적 질문이 '공자'가 나타난 배경이었다. 즉, 고대로부터 '유학(儒學)'이라는 사상은 종교와 같은 '유교'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철학이었다. 중국의 '종교사'가 아닌 '정치사상사'가 '공자'의 유가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다. 한세기 이후 전국시대의 묵가는 평등주의 '겸애'를, 노자는 '무위'를 통해 선학인 춘추시대 공자를 비판했다지만, 춘추전국시대 그들 제자백가는 주나라 군주체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공자가 내세운 '예(禮)'는 일상생활의 '미시적' 영역까지 포괄하는 '관습'으로서 서로 말하지 않아도, 억압하거나 폭력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일종의 '관습공동체'를 이상적으로 만들자는 사상이었고 그 주체들은 공부를 통해 '계몽'된 성인군자들이었다. 이러한 이상적인 '계몽된 관습공동체'에서 성인군주는 '무위(無爲)'로써 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는데, 공자가 이상화시킨 '주나라'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이상향'의 구체화된 모델이었다. 또한 춘추-전국시대에는 실현불가능했기에 더욱 이상적이었다.


"전국시대 사상가들은 기존질서의 자연적 기초를 의심하였다.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 새로운 기초를 찾아내겠다는 강렬한 욕망에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구상한 '정치사회'는 통치가 부재한 '자연상태'와 대비될 뿐 아니라... '관습공동체'와도 다르다."
- [중국정치사상사], <3. 정치사회>, 김영민, 2021.


역시 '중국통사'가 아니니 각 시대에 관한 고전적 정의 같은 건 생략한다. 춘추시대 공자를 비판한 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은 '정치사회'에 관한 사상들을 생산했다. 거대한 '전쟁기계'로서의 강력한 군주국의 군국주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국가'라는 괴물 앞에서 '정치사상'은 '정치사회'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제각각의 답을 세상에 제출했다. 묵자는 '유용성'을, 순자는 '욕망의 조율된 충족'을, 노자는 '자유방임'을, 한비자는 '이기심'의 통제를, 장자는 극단적 관조를 통한 '상대성'을, 그리고 맹자는 공자를 계승하면서 '개인도덕의 완성'을 그 대책으로 내놓는다. 이들은 고대에 이미 '정치사회'를 이론화시키면서 견고해지기 시작한 '국가론'과 상호보완하는 동아시아적 '시민사회'의 기반을 닦는다.


"... 국가의 하향식 집행과 사회공학적 접근은 종종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논리적으로 계획되고, 통합되고, 중앙집권화된 행정체계는 현실에서 거의 실현되지 않는다."
- [중국정치사상사], <4. 국가>, 김영민, 2021.


'정치학'에서 '국가론(國家論/Theory of the state)'은 피해갈 수 없다. 
저자는 관념적인 '국가론' 대신, [중국정치사상사]에 등장했던 실제 국가들의 역사를 통해 '국가론'을 살핀다. '확장된 정주지 도시국가 연맹구조'였던 상나라와 '봉건제도'의 주나라, 춘추전국시대의 '전쟁기계'로서의 군주국들과 이를 통일한 진나라는 그 연장선으로 '폭력의 합법적 수단에 대한 독점' 체제였고, 초한전쟁의 승리자 유방의 한나라는 중앙집권과 '준봉건제도'가 혼합된 정치체제로 시작하여 한무제의 '중앙집권'으로 전환하였지만 북방의 강자 '흉노'로 인해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불안정한 국가체제에 불과했다. 즉, '흉노'를 포함한 북방 이민족이 있었기에 '한족' 또는 '중화'라는 이념의 국가가 존재할 수 있었다. 한무제 사후 흉노와 대결구도에서 촉발된 '염철론(鹽鐵論)'은 소금과 철에 대한 국가전매에 관한 논쟁으로서 강력한 '국가주의'와 분권적 '지방주의' 간 정치대결의 시작이었다. 이는 서한과 동한을 나눈 신나라 왕망과 송대의 왕안석 신법 논쟁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같은책, <4>)


"엘리트를 지칭하는 용어로 가장 많이 사용된 중국어는 '사(士/선비/젠트리)'이다... 왕조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중국사회가 전과 유사한 형태로 재통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엘리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 공화국' 비전은 당나라 귀족사회 비전과는 뚜렷이 다르다... '도학(道學)'은 '모든 사람이 본래 평등하다'는 급진적인 생각('性卽理')을 통해 위대한 조상을 자랑해대는 골수 세습귀족제를 거부하고 훨씬 더 평등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도학'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고귀함이란 오직 탁월한 사람됨이라는 면에서만 운위할 수 있다."
- [중국정치사상사], <6. 형이상학 공화국>, 김영민, 2021.


주자의 성리학이 조선 후기에는 신분질서를 '예학'으로 더욱 고착시켰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위진남북조와 당나라를 거쳐 견고해진 귀족사회에 대항하여 등장한 '도학(道學)'으로서 '성리학'은 '성즉리(性卽理)', 즉 인간의 본성은 평등하며 이를 잘 연마하면 누구나 우주만물을 관장하는 천리에 통달한다는 당대의 '평등주의' 사상이었다. 이 '도학자'들의 '형이상학 공화국'은 엄밀히 서양식 '공화주의'는 아니었으나 '군주제'를 견제하고 함께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사회' 또는 '시민사회'를 형성했고 이들 주체를 이르는 '신사(Gentry)' 또는 '선비(士)' 계층은 이후 '정치사상사'에서 '국가주의'와 대립하기도 하고 상호보완하기도 하는 분권적 지방주의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 한족의 송나라와 명나라는 한족 통일국가를 표방했지만 주변국들에 둘러싸여 상대적으로 좁은 영토를 차지했고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민족의 요-금-원-청나라에 비해 배타적 문화를 영위했다. 남송과 명의 '도학' 또는 '성리학'이 편협한 이유가 달리 있었던 게 아니다. 그러나 저자가 쓰고 있듯, 역사의 '연속성'에서 사상사를 꿰뚫는 '일관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자에서 제자백가 및 국가관료를 거쳐 '도학'으로 집중된 '평등주의'적 '엘리트'들은 '형이상학 공화국'이라는 '시민사회'적 성격으로 '국가주의'와 공존하며 '정치사회' 국가를 형성하고 발전시켰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정치체 및 그 사상적 기초를 지탱해 온 '통일성'이란 분절되고 갈등하는 다양한 요소간의 깨지기 쉬운 복합적인 균형상태이다. 명시적으로 역사적인 관점을 천명하는 이 책은, '통일성'이란 그처럼 아슬아슬한 균형상태에 불과하다는 점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중국정치사상을 기술하고자 하였다... '중화'는 확정되어 있는 (물리적) 실제 혹은 구현태와 동일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픽션'에 가깝다. 따라서 그것은 '허구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 [중국정치사상사], <11. 보다 넓은 맥락에서의 중국>, 김영민, 2021.


중국왕조를 정의할 때, '독재' 또는 '전제주의'를 많이 빗댄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독재' 또는 '전제주의'라는 정의는 명태조 주원장의 '독재의 전형'으로서의 황제권 확립과정에는 맞는 말이었을지 몰라도(같은책, <8. 독재>), '혼일천하' 원나라 칸의 제국이나 청나라는 그러한 방식만으로 국가권력을 유지하지 않았다. 배타적인 한족주의 명나라는 '황제권'에 갖혀 안으로 문을 걸어잠갔고 다민족 지배체제인 청나라는 외부로 분권확장한 결과, 현재 중국의 영토를 확정한 청나라의 영토는 이전 왕조인 명나라의 2배가 되었다(같은책, <10. 제국>). 역사적으로 중국 역사에서 2/3 이상을 차지했던 다양한 이민족 정권들은 소수의 힘으로 방대한 '중국'의 영토와 문화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굳이 직접 지배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 이민족의 국가들과 제국들은 공식적으로 중앙집권적 '국가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지방의 엘리트들을 통해 '천하'를 통치했고 스스로 '중국화'되었다. 몽골의 제국은 '중국'만이 목표가 아니었기에 오로지 '중국화'되지는 않은채 100년만에 북방으로 돌아갔고, 청나라 제국을 통해 비로소 '만주족'으로 정체성을 갖추었던 중국의 마지막 왕조는 근대 이후 세계사의 흐름에 따라 '공화정'으로 대체되었다. 태평천국과 같은 대규모 민란을 거치며 청나라 제국의 분권화는 가속되었고 19세기말 무술변법의 실패를 통해 '개혁'의 한계에 봉착한 '시민사회'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아예 왕조를 뒤집어엎는 '혁명'의 길로 가게 된다(같은책, <10>).

여기서도 정치사상을 꿰뚫는 '일관성'으로서의 주테마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투쟁이자 변증법이었다. 세계사는 물론 중국사에서도 '국가론'의 주요 주제는 '국가'와 '시민사회'인 것이다.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는 이 '국가론'의 '일관성'에서 '아슬아슬'하고 '분절되고 갈등하는' 균형체제로서의 '중국정치사상'의 '통일성'은 설명될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균일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던 '중국적'이라거나 '중화주의' 같은 사상은 그 자체로 '허구적'이지만 그래도 '비현실적'이지만은 않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저자는 광범한 '정치사상사' 연구를 통해 입증하고자 한다. 

분명, 중국인들에게 '중화'를 지탱했던 '천명'이나 '천하' 개념은 저자의 말대로 그들의 주요한 역사적 정신자산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불안정한 '제국'의 전통이야말로 설령 그것이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한들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이며 '픽션'이라는 사실을 주변의 인접국가인 우리로부터 다시금 인식시켜줄 시간일지 모른다. 
흉노가 없었으면 한나라 '중화'가 없었을 것이고, 고구려와 선비, 돌궐이 없었으면 당나라의 '중화'도 없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잘 지켜온 한반도의 독립성 또한 '중화'의 '허구적 현실성'을 일깨워주는 계기 중 하나일지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 동아시아 역사를 꿰뚫는 '일관성'일지 또한 누가 알겠는가.

'사상사 연구자' 김영민 교수는 [중국정치사상사]를 통해 보편적 '정치사상사' 일반을 꿰어낸 '일관성'의 철학으로, 언젠가는 [한국정치사상사] 연구서를 내겠다고 한다. 
에세이나 사회평론보다는 그의 다음 '전공서적'을 기대한다.

***

- [중국정치사상사](2017), 김영민, <사회평론아카데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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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공부란 무엇인가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전2권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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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 철학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사회주의와 같은 거대한 시도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전면적 파악이 가능하다는 대단한 믿음 위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실패는, 단순히 어떤 정치적 청사진이 몰락하는 사건을 넘어, 현실을 전면적으로 파악한다는 일이 많은 이들에게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다가오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산한 것은 현실이라기 보다는 현실을 냉정히 파악하고 기획하고자 하는 태도다... 유물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관념론자가 되어야 하고, '살기 위해서는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반영웅으로서 영웅, 관념론자로서 유물론자, 죽은 자로서 살아있는 자 : 고스트 독>, 김영민, 2001.


인류는 어떠한 시련에 닥쳐도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덩치큰 다른 종에 밀려 밀림을 떠나 초원으로 나왔던 600만 년 전에는 먹고살기 위해 두 발로 서서 손을 사용했고, 어쩌다 얻어걸린 생고기를 소화시키느라 시간낭비를 하는 대신 '불'을 찾아 화식을 하고는 덩치큰 종들이 쫓아오기 전에 얼른 자리를 떴다. 70만년 전에는 직립 후 자유로워진 손으로 도구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노동'을 했으며, 1만년 전부터는 아예 다른 종들을 쫓아내고 떼거지로 모여 살았다. '공동체' 또는 '사회'의 시작이다. 이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말'과 '글'을 만든 인류는 자신들의 고난과 혁신과 미래를 '꿈'으로 만들어 대대로 전승해 왔다. 이를 통해 사람은 있는 것을 지키는 '보수'도 꿈꾸고, 조금씩 바꾸는 '개혁'도 꿈꾸며, 아예 뒤집어 엎는 '혁명'도 꿈꿔왔다. 
'적응'과 '혁신'이라는 양면성이 '사피엔스'의 생존비결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말'과 '글'을 통한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2018년에 '칼럼계의 아이돌'로 부상한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의 에세이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를 며칠전 추천받았을 때, '나는 에세이는 읽기 싫은데'라는 속마음과는 달리 "너무 잘 쓴 글이라 읽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액면으로는 나보다 지혜로워 보이는 군대 후임 이재환 병장 형님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래도 '에세이'는 여전히 싫어서 같은 저자의 [공부란 무엇인가](2020)라는 제목의 아마도 '에세이'는 아닐 것 같아 보이는 책과 함께 구입했고, 잘난체 하려는 나는 [공부란 무엇인가]부터 펼쳐들었다. 

그랬더니 역시 '에세이'를 엮은 것 같은 [공부란 무엇인가]에 초반에 잠시 실망하며 서울대 교수면 교수지 대체 얼마나 공부를 했기에 "공부란 무엇인가?" 대놓고 묻는가 싶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 책을 많이 읽고 공부도 엄청나게 했을 이 '(정치)사상사 연구자'의 '무엇이란 무엇인가?'라는 일련의 질문은, 그 '무엇'을 '내가 잘 아니 이리와봐 알려줄게'가 아니라 이 세상이 그 '무엇'으로 부르는 '상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었다. 200여 년 전 독일 철학자 헤겔이 "철학은 상식과 다르다"고 했듯이 시대의 사상가 김영민 교수 또한 우리가 '적응'해서 알고있는 '상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대놓고 제기하고 있었다. '공부란 무엇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 '독서란 무엇인가?', 서평이란 무엇인가?'... 세상 모든 '상식'에 대한 그의 '철학'적 질문은 사피엔스의 역사만큼이나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아침 댓바람부터 '죽음'을 생각하라는 저자의 주장 또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삶에 관한 또 하나의 철학적 질문을 하라는 권유였을 거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실존주의 철학일지 아니면 '죽음'이라는 '음'이 없다면 '삶'이라는 '양'도 없다는 서양의 헤겔식 '변증법'이나 동양의 도가적 '음양오행' 또는 유가적 '무극이태극'일지 모르지만 '죽음'을 '철학'적이고 근본적으로 사색하지 않으면 '삶' 또한 '상식'에 머물고 만다는 사상가의 깊은 통찰로 읽힌다. '죽음'이라는 미래로 가는 '삶'의 길에서 '상식'이라는 이름의 만물을 다시 돌아보는 작업은 그 '상식'들에 대한 끝없는 근본적 '질문'을 필요로 한다.

아마도 '혁명'이라는 거대한 현실의 정치적 기획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본 저자는 인간세상에서 "총체적이고 현실적인 비전으로 번역"하는 그 거대한 기획의 파산을 통해 산산히 흩어져가던 '상식'들에 주목하게 되었을 것이다. 1998년에 영화평론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2001년에 이미 <고스트 독>이라는 영화평론글에서부터 '죽음'을 전제로 한 '삶'에 관한 통찰을 썼다. 그리고 2015년에는 심지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도발로 이어가더니 이윽고 2018년 즈음에 이르러 "언제 결혼하니?"라고 묻는 당숙의 추석 안부말의 면전에다가 "당숙이란 무엇이며, 추석이란 무엇인가?" 대놓고 반문하라 권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뜻 뜬금없어 보이는 이 질문들은 저자가 여러 번 표현하듯 답답하고 열받아 "테이블을 당수로 쪼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목젖을 뽑아 줄넘기를 한 다음에 창문을 온몸으로 받아 깨면서 밖으로 뛰쳐나가기"라는 현실도피 대신에, 세상의 온갖 '상식'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 근원에 대해 침착하게 반문하며 결국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새롭게 혁신하자는 위대한 '철학'의 길인 것이다.
더디고 돌아가기도 하며 간혹 진창에 빠지거나 제 얼굴에 침을 뱉을지도 모르는 이 질문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그래도 인류답게, 사피엔스의 후예답게 품위를 지키려면 이 길 밖에 없다. 이것이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philosophy;哲學)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인문학(humanities;人文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침을 열면서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일단 실제로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이미 죽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고는 늘 죽음보다 늦게 온다... 이러한 시절에 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첫째, 이미 죽어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 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넷째,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다섯째,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거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2015.


학자도 아니도 서울대학교 신입생은 더더욱 아니며 글쟁이는 아니지만 서평과 소설을 쓰고 싶은 나로서는, 김영민 선생이 묻고 알려주는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100퍼센터 응답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름의 관심사를 쫓아 '독서란 무엇인가?'와 '서평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저자 나름의 답변의 문장들은 옮겨 적어봐야만 할 것 같다.


"사회로부터 도망하기 위해 책을 읽다가 거꾸로 소통을 위한 언어가 풍부해지는 역설이 독서행위에 있다."
- [공부란 무엇인가], <3-3. 정신의 날선 도끼를 찾기 위하여 - 독서란 무엇인가?>, 김영민, 2020.


원래 좀 튀고 싶고 잘난체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잘나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한 내가 찾은 것이 '책'이었다. 독서를 하면 다른 걸 잊을 수 있었고 조금은 똑똑해진다고 착각도 되어 더욱 파고들었다. 나한테도 '역설'은 생겼다. 사람들을 만나 할 말이 많아졌고 심지어는 말할 기회를 안주면 남의 말을 끊고라도 내 말을 하고 싶어졌으며, 잘 쓰지는 못해도 '글쓰기'가 어느새 개인적 취미가 되어 버렸다. 다른 이들이 나를 보기에는 어떨는지 몰라도 나 스스로는 '소통'의 기제가 독서였고, 나 혼자 생각이지만 '언어도 풍부'해졌다. 저자가 말한 '독서'의 '역설'을 나는 200퍼센트 이상 동감한다.
있는 척 해보려고 두껍고 어려운 '고전'들을 읽으니 얇고 가벼운 책을 읽는 것은 저자의 말마따나 진짜로 '휴식'이 되었고, 어려운 책들을 읽어나가는 극복의 과정은 '자기갱신'의 '공부'라는 저자의 가르침도 실감했다.
나는 이제 '책'을 놓고는 어디에도 못 간다.

사실 나는 독서를 많이 하고 난 다음에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소질이 없어 그나마 읽은 책을 정리하면서 독후감을 써놓았고 혼자 '서평'이라 불렀다. 에릭 홉스봄이 지난 세기 역사를 서술하면서 "응집된 전체로서의 과거"를 돌아본 것처럼, 김영민 선생은 "하나의 전체로서의 책"에 대해 말하는 '서평'에 대해서도 '서평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하고 있다. 영화평론작가이기도 한 김영민 선생에 의하면 '서평'은 단순한 책의 요약이나 느낌을 남기는 '독후감'과는 달리 그 책이 전하고자 의도했든 아니든 그 '맥락'을 전달하기도 해야하고 더 나아가 해당 '서평' 나름의 '문체'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추천사'나 '출판비평' 달리 소개하려는 책과는 별개로 하나의 '작품'으로서 독립된 '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과는 별개로 '문학비평'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것처럼 말이다. 역시 영화 '제작자'가 아닌 영화 '평론가'다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지력, 매력, 멍청함, 편견 등"을 드러내는 줄 알지만 '서평'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소설'은 못 쓰더라도 '작품'은 언젠가 쓰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비평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평의 독자가 꼭 그 비평대상이 된 책의 저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책의 저자에게는 말조차 걸고싶지 않아도, 광의의 독자에게 말을 건내기 위해서 서평을 쓸 수도 있다... 서평은 서평의 대상이 된 책 뿐 아니라 서평자 자신의 지력, 매력, 멍청함, 편견 등를 대대적으로 홍보할 좋은 기회다."
- [공부란 무엇인가], <3-4. 하나의 전체로서 책에 대해 말하기 - 서평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2020.


'에세이'는 싫어하지만, '상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날리는 김영민 선생의 글을 읽은 후 결국 나는 저자의 의도든 아니든 걸려들고 말았다. '사상사 연구자'인 김영민 교수의 '본업'을 담은 글이 궁금해졌다. 
다음 책으로 그의 [중국정치사상사](2021)를 읽고 싶어진 거다.
초반 몇 장을 읽다가 졸음이 몰려와 '죽기 전에 꼭 다 읽어야지~' 하면서 중간에 덮은 20세기에 나온 E.K.헌트의 [경제사상사]가 책장에서 먼지만 덮어쓰고 있는데, 그 옆에 [정치사상사]가 한자리 더 차지하지 않을까 짐짓 염려가 되기도 하지만. 
그냥 눈감고 주문한다.

***

1.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어크로스>, 2018.
2.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어크로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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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리더 조조 더봄 평전 시리즈 3
친타오 지음, 양성희 옮김 / 더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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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시대를 초월한 '난세의 영웅'
- [난세의 리더, 조조], 친타오, 2013.


"한나라 말기는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 영웅호걸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 중에서 원소는 네 주를 근거로 하여 호시탐탐 노렸으며 강성함은 대적할 자가 없었다. 태조(조조/위무제)는 책략을 이용할 계획을 세워 천하를 편달하고, 신불해와 상앙의 치국 방법을 받아들이고, 한신과 백기의 기발한 책략을 사용하여 재능있는 자에게 관직을 주고, 사람마다 가진 재능을 잘 살려 자기의 감정을 자제하고 냉정한 계획에 따랐다. 옛날의 악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마침내 국가의 큰일을 완전히 장악하고 대사업을 완성시킬 수 있었으니, 이는 오직 그의 명석한 책략이 가장 우수했던 덕분이다. 따라서 그는 '비범한 인물'이며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 [삼국지], <위서>, '무제기-評曰', 진수, 3세기.


'치세(治世)의 능신(能臣), 
난세(亂世)의 간웅(奸雄).'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에서 조조(曹操)를 평가한 문장이다. 주지하다시피 원말명초 시기에 몽골족의 압제에 맞서 중국 한(漢)족의 독립투쟁에 가담했다던 나관중은 고대 중국 한나라의 정통성을 복원하기 위해 '춘추필법'에 따라 한나라 유씨 왕조 후손을 자처했던 촉한의 유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따라서 유비의 최대 맞수 조조는 교활하고 간악한 인물로 묘사되었으며 오랫동안 우리에게 전해진 조조의 이미지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중국 4대 정사'인 [사기], [한서], [삼국지], [후한서] 중 가장 문장이 유려하다는 범엽의 [후한서]의 <허소전>은 후한말 당시 인물평의 대가였던 유학자 허소가 아직 관리가 되기 전의 부잣집 건달 조조의 협박에 못이겨 "그대는 태평한 시대에는 간적(奸賊), 혼란한 시대에는 영웅(英雄)이 될 것"이라고 내린 평을 조조가 듣고는 크게 웃으며 돌아갔다고 전한다. 사실의 기록은 [후한서]가 맞을 것인데, 유비의 주적인 조조를 폄훼하려는 [삼국지연의]는 손성이 쓴 [이동잡어]의 설을 채택하여 조조를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 또는 간적'이라 전한다. 어쨌든 중국의 문호 루쉰이 "세상의 어떤 잣대로 평가해도 문무를 겸비한 '최소한의 영웅'이었다"고 평가한 조조는 이 '최소한의 영웅'이 되었으니 크게 웃으며 돌아간 것이다. 중국 역사가 이중톈이 [삼국지강의(品三国)]에서 말했듯 조조는 '최소한의 영웅(英雄)'이면 되었지, '간사하든(奸雄)' 아니면 '능력있든(能臣)'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위-촉-오 삼국 중 조조가 세운 위나라를 무너뜨리고는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서진(西晉)의 학자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는 위나라 무제 조조의 열전인 <위서-'무제기'> 말미에서 "평하여 말하기(評曰)"를 "비범한 인물이며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라 할 수 있다"고 남겼다. 

'간'이든 '능'이든 신경쓰지 않고 '최소한의 영웅'이면 족했을 난세의 '실용주의자' 조조가 여전히 '72개 가짜무덤(의총)' 중 어딘가에서 크게 웃고 있다.


"사실 조조가 태어날 때부터 난세의 간웅이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이 깨끗하고 공정했다면 그 역시 정상적으로 훌륭한 신하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조조의 인생은 그 자신이 선택한 결과였지만 모든 선택은 그에 합당한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 [난세의 리더, 조조], <5. 삼기삼락>, 친타오, 2013.


2017년에 [노모자사마의(老謀子司馬懿)]를 통해 음흉하고 복잡다단한 인물 사마의를 후한말 난세가 낳은 극단적 '개인주의자'로 평가했던 중국의 법사학자 친타오는 이미 2013년에 [흑백조조(黑白曹操)]라는 책으로 조조를 '72가지 얼굴'을 지닌 '실용주의자'로 평가했다. 국역으로 '더봄' 출판사 '평전시리즈'로서 '평전 시리즈-1' [결국 이기는 사마의](2018)와 '평전 시리즈-3' [난세의 리더, 조조](2022)로 각각 출간되었다. 
참고로 여담이지만 '평전 시리즈-2'는 [제왕의 스승, 장량](위리, 김영문 옮김)인데 내가 좋아하는 인물 장자방의 흔치 않은 평전이라 나 개인적으로는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하긴 위나라 관리이자 조조의 후계자 조비의 참모였고 촉한의 명재상 제갈량을 이기고 결국 맞수 제갈량이 없어지자 내부로 칼을 돌려 자신이 섬기고 있던 위나라를 멸망시킨 사마의를 평가함에 있어 그의 대선배 조조를 빼놓을 수는 없다. 후한말 난세가 배출한 전형적 '개인주의자'였던 노련한(老謀子) 사마의(司馬懿)는 조조가 세운 위나라를 없애고 사마씨 아들과 손자로 하여금 새나라를 세우도록 판을 깔았지만, 명목상으로는 삼국 중 위나라를 '계승'했다고 선전했다. 사마의가 평생 경외했던 유일한 존재가 바로 조조였기 때문이다. 조조의 가문이 한나라 유씨 왕조로부터 선양을 받았듯, 진나라의 사마씨 가문 또한 위나라의 조씨 왕조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후한말 극단의 '개인주의자' 사마의는 난세의 대선배인 극단의 '실용주의자' 조조를 유일하게 두려워 했다. 
불가능한 가정이겠지만, 조조와 사마의가 동년배였다면 승자는 조조였을지도 모른다. 

[조조 평전]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장쭤야오가 2000년도에 쓴 것이 있다. [난세의 리더, 조조]의 저자 친타오도 장쭤야오의 책을 참고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친타오는 장쭤야오처럼 장대한 정치경제학적 방식이 아닌 테마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 서술로써 조조를 쫓아간다.

부잣집 환관 가문의 유협 건달(1장-난세의 악동)에서 15세 태학생 시절 겪은 '당고의 화'(2장)의 여파, 효렴이지만 환관 가문의 배경으로 출사한 벼슬직에서 세번이나 물러난 경력(5장-'3기3락'), 여백사 일가족 살인사건인 '착방조의 진실'(6장)은 물론 원소와의 건곤일척 '관도대전'(10장)과 황제를 등에 업고(8장) 시대의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12장-'명법의 치'와 13장-'인재 모집령')하며 결국 '선양' 형식이지만 본인 방식으로 '혁명'의 대업을 이룬 조조의 삶(15장-대단원의 막)을 조명한다. 

장쭤야오는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의 평가인 '법가'와 '병가'의 정치인 조조에 유학의 '천명'과 '성리'를 투과하여 결론적으로 '유가'로서의 조조를 평전한다. 그에 의하면 조조는 난세에 환관 가문 출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면서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정치에 적극 투신했지만, 한편으로는 민중들을 안정시키고자 권력을 쥐고 개혁을 실시한 정치인으로서 '성리'를 현실에 조화시키려 한 그 나름의 정치이력을 통해 결국 낡고 부패한 구체제를 뒤집고 새로운 왕조를 열어 '천명'을 실현한 현실 정치가였던 것이다. 물론 조조의 '천명'은 '인의예지' 같은 높은 덕목이 아니라 지극히 '실용주의'에 입각한 현실정치였는데, 유학이나 성리학의 특징은 신을 모시는 관념적인 종교의 영역보다는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현실정치를 중시한다는 지점이고 장쭤야오가 조조에게서 뜬금없이 '유가'적 측면을 끌어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조조는 한고조 유방이 초한전쟁를 시작하기 전의 '법삼장'에서 시작했지만 400년간 왕조가 이어지며 복잡하고 방대해진 한나라 법률을 단순화시킨 '명법의 치'를 세웠는데 사례마다 매번 새로운 규정이 신설되는 대신 일련의 포괄적인 규칙들이 서로 연결되어 신설법 없이 탄탄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이 방식은 이후 왕조 법령들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조조 자신도 젊은 시절 '평판'에 매달려 허소를 칼로 협박하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 환관 집안 유협건달을 멸시하던 유학자들에 대한 반발심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황제를 등에 업은' 최고 권력자가 된 조조는 세차례의 '인재 모집령'을 내려서 '평판'보다는 '능력' 중심의 인재를 중시한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였는데, 실제로 이 인재 모집령으로 등용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래부터 실시되어 왔던 조조의 인재 모집 원칙을 더욱 공고히 밝히기 위한 반복적 선언에 불과했다. 후한말 인재들 출사의 원칙을 가문이나 허울좋은 평판이 아닌 '실용'적인 '능력'에 두었던 것이다. 뜬구름 잡는 '현학'이 사상계를 지배하며 허위적 풍류를 쫓던 후대 '위진풍도(위진풍류)'의 유래는 후한말의 이 난세였는데 당시는 유학이 장려하던 '충효'의 덕목을 지키기 위해 사기는 물론 복수와 살인까지도 불사하던 행태가 만연했다고 한다. 조조 또한 이러한 시대가 낳은 아들이었지만 그의 '비범함'은 시대에 편승하기보다는 이를 극복하고 혁신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후한말 난세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조조가 다양한 '능력'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용인술(用人術)'의 대가였다는 평가는 보편적이다.

물론, 조조가 펼친 이 난세의 '용인술'이 치세에도 맞았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난세의 영웅'(허소)일지 '난세의 간웅'(손성/나관중)일지 알 수 없는 '72가지 얼굴'의 조조가 '치세의 간적'(허소)일지 '치세의 능신'(손성/나관중)일지 어찌 알겠는가.


"72기 의총은 사실이 아니지만, 조조에게는 72가지 얼굴이 있다."
- [난세의 리더, 조조], <16. 사후 미스터리>, 친타오, 2013.


아무튼 이토록 난세의 최강 능력자인 '실용주의자' 조조에 대해서는 그가 죽은지 1,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갖가지 평가가 난무한다. 그래서 저자 친타오는 조조의 흑색에서 백색까지 조명한다는 의미에서 짧은 평전의 제목를 [흑백조조]로 하였을까. 결국 "매우 다양하다"는 진부하면서도 불가피한 결론이지만, 선배 역사학자 장쭤야오처럼 고전적이며 전형적인 방식의 통시적 평전이 아닌 테마를 중심으로 한 어느정도 공시적이고 간략하며 그로 인해 더욱 대중적인 평전을 시도한다. 

난세에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조조가 사후 무덤이 파헤쳐질 것을 우려하여 '72개의 가짜무덤(의총)'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 '실용주의자' 조조는 소박한 무덤을 지정하고 장례도 간소하게 하며 금은보화를 부장물로 무덤에 묻지 말라고 유언했다. 후한말과 삼국시대의 허위의식은 수많은 재화들을 경쟁적으로 시신과 함께 순장시키면서 실물경제를 바닥치게 만들 정도였다고 하니 '비범한 인물'이자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며 시대의 경세가였던 조조가 이에 편승했겠는가. 

"내가 천하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는 하지도 않은 말로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죽어도 남의 손에 내 목숨을 맡기지 않겠다"며 당대의 명의 화타까지도 죽인 의심의 달인이었으며, 있지도 않은 '72기 의총'으로 교활함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지만, 욕을 먹든 말든 '72가지 얼굴'의 '실용주의자' 영웅 조조는 죽는 순간까지 시대를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3의 배수'인 '72가지'는 '36계'와 같은 논리로 '무한대'를 의미한다. 중국에서 '3'은 완벽의 수 단위로서 '3의 배수'는 서로 교차하고 조합하며 무한한 형태로 나타난다. '36계'는 무한한 전략과 전술의 조합이고, 서유기 손오공의 '72가지 도술'은 그 자체로 셀 수 없다는 뜻이다. 조조의 '72기 의총(가짜무덤)'은 그 설 자체가 가짜지만 조조의 '72가지 얼굴'은 이 난세의 '실용주의자' 영웅이 지닌 '무한대'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

1. [난세의 리더, 조조](2013), 친타오, 양성희 옮김, <더봄>, 2022.
2. [삼국지 - 위서](3세기), 진수,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
3. [조조 평전](2000), 장쭤야오, 남종진 옮김, <민음사>, 2010.
4. [삼국지강의(品三国)](2006), 이중텐, 김성배/양휘웅 옮김, <김영사>, 2007.
5. [결국 이기는, 사마의](2017), 친타오, 박소정 옮김, <더봄>, 2018.
6. [위진풍도 - 이중톈 중국사 11](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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