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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야기 - 라틴어 원전 번역, 개정판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10월
평점 :
'변신'의 시간 : 1993년 ~
- [변신이야기],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여보시오.' 하고 페르세우스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대에게
혹시 고귀한 가문의 영광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면, 윱피테르께서
내 아버지시오. 혹시 업적에 감탄하신다면 그대는 내 업적에
감탄하실거요. 내가 바라는 것은 접대와 휴식이오.' 아틀라스는
이 순간 파르나수스의 테미스가 일러준 해묵은 신탁이 생각났다.
'아틀라스여, 그대의 나무가 황금을 약탈당할 때가 올 것인즉
그 약탈의 명성은 윱피테르의 아들이 차지할 것이오.'
그 뒤 이 신탁이 두려워진 아틀라스는...
... 페르세우스에게도 '멀리 꺼지시오. 여기서는 그대가 거짓말한
업적의 영광도, 윱피테르도 그대에게 도움이 안 될 테니까.'라고 했다.
그가 위협에 이어 폭력을 쓰며 페르세우스를 두 손으로 밀어내려 하자
페르세우스는 주춤거리며 부드러운 말에 거센 말을 섞었다.
힘에서 밀리자...
페르세우스는 '그대가 내 우정을 이토록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니,
선물이나 하나 받으시오!'라고 말한 다음 그 자신은 돌아선 채
왼손으로 메두사의 징그러운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틀라스는 큰 덩치 그대로 산이 되었으니,
수염과 머리털은 나무로 변하고, 어깨와 팔은 산등성이가 되었으며,
전에 머리였던 것은 산꼭대기가 되고, 뼈는 돌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아틀라스가 모든 부분에서 엄청난
크기로 자라니...
하늘 전체가 수많은 별과 함께 그의 어깨 위에서 쉬었다."
- [변신이야기], <제4권 639~662행>,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1.
스무살 봄의 강의실로 햇살이 스며든다.
봄햇살이라 따사로웠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십대 초반의 우리들은 따뜻했고 그만큼 들떴다. 영문학과 1학년 전공필수 '그리스로마신화' 시간의 강의실에 산발적으로 쏟아지던 그 빛줄기들은 흡사 다나에가 갇힌 방에 황금 빛줄기로 '변신'하여 스며든 제우스와도 같았을까.
황금 소나기 제우스와 교합한 아르고스 왕의 무남독녀 외동딸 다나에는 그리스신화 최초의 반신반인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았고 페르세우스는 그리스 아테네 문명 이전의 미케네 문명을 건설한 창업자가 된다.
물론 '유럽(Europe)'이라는 이름의 어원인 '에우로파'에게 황소로 '변신'하여 다가간 제우스가 역시 바람을 피운 결과 나온 반신반인 미노스 왕은 미케네 문명 이전의 크레타 문명을 열었다지만, '그리스로마신화' 강의의 교재였던 에디스 해밀턴(Edith Hamilton)의 [미쏠로지(Mythology:신화학)]에서 서술한 바에 의하면 페르세우스가 최초의 반신반인 영웅이다. 다음이 아테네 문명의 테세우스, 그 다음이 전체 그리스 문명을 만든 헤라클레스로 이어지는 흐름이 <영웅>장의 이야기다.
1940년대에 발표된 에디스 해밀턴의 [미쏠로지]는 주로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의 서사시를 토대로 엮었는데, 영문과 신입생 우리는 해밀턴의 [미쏠로지]와 판본은 기억나지 않는 [성서]를 원서로 보았다기 보다는 교재로 삼았고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원고지에 필사했다.
그리스로마신화 담당교수 이재호 선생님은 강조하셨다. 아무리 지루하고 어려운 책이라도 이해가 되든 안되든 끝까지 읽으라고. 그런 의미에서 스무살 초입의 우리들에게 극강의 지루함을 주는 고대의 서사시를 필사하라고 숙제를 내주셨던 듯 하다.
1학년 1학기 전공필수 교양과목을 나중에 다시 수강하지 않으려면 별 수 없이 우리는 재미없는 서사시를 깍두기 원고지에 베껴야 했고 제대로 읽었을리 없는 우리들은 앞부분과 뒷부분은 제대로 베껴 썼으나 중간에는 애국가 가사나 고등학교 때 외운 청산별곡이나 관동별곡 또는 정읍사나 향가 같은 걸 적어서 냈을 수도 있다.
60명 정도 되던 우리들의 원고지를 다 읽어볼리 만무했을 이재호 교수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좋게 웃으시며 그리스신화 이야기를 해 나가셨는데, 놀 생각 밖에 없던 스무살 당시의 나는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같았을 그 강의를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봄날의 햇살 이미지는 이십년 이상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게 문득 각인된 장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영문과를 다니며 내게 남은 두 가지는 해밀턴의 [미쏠로지]와 스무살 그 해 봄날 황금 햇살이다.
2.
그리스신화하면 19세기의 토머스 불핀치와 20세기의 에디스 해밀턴, 우리나라의 작가 이윤기와 21세기 스티븐 프라이 등의 책들로 볼 수 있겠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도 그런 게 있는지 관심도 없던 나는 대학 영문과에 가서도 오랫동안 그런 신화 따위는 모른척 했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오래전 신입생 교재였던 해밀턴의 [미쏠로지]를 원서로 읽었다. 그렇지만 다소 뜬금없게도 취직해서는 인사이동으로 옮기는 사무실마다 그 책을 가지고 다니며 책상 위에 두었는데 이유는 딱히 모르겠고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읽었던 거다.
미국의 교육자이자 저명한 신화학(Mythology) 저술가 에디스 해밀턴은 책의 각 장 머리말에 이야기의 출처를 명시하면서 서술을 시작하는데 가장 많이 발췌된 책이 오비디우스(Ovid)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일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선배격인 베르길리우스도 인용되기는 하지만 불핀치와 해밀턴 이전의 사람들은 아마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통해 그리스신화를 읽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이 장편 서사시는 장황하기는 해도 그나마 체계적이기는 하다.
'그리스신화'는 그리스를 식민화한 로마가 그리스 문명을 계승하면서 '그리스로마신화'로 확장되었다. 신들의 이름도 그리스식의 '제우스'가 로마식의 '윱피테르'가 된다. 영어식으로 '주피터(Jupiter)'의 유래다. '포세이돈'은 '넵투누스'에서 '넵튠(Neptune)'이 되었고, '하데스'는 '플루토(Pluto)'가 되었지만,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 '플루토'로는 불리지 않고 줄창 '디스'로 불린다.
오비디우스는 로마 아우구스투스 시대인 기원 전후시기의 시인이다. 아마도 먼저 유명해진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먼발치에서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역시 유명했던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가 사라진 후 [사랑의 기술]이라는 통속시로 로마 제일 시인으로서 유명세를 타던 오비디우스가 기원후가 되자 마자 섬으로 유배된 이유를 후세들이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최고 권력자 아우구스투스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오비디우스는 간절히 염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유배지에서 풀려나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이 유배의 수난시기였던 기원후 2~8년 사이에 집필된 작품이 그리스로마신화의 교본과도 같은 [변신이야기(Metamorphoses)]다. 약 1세기전 동양의 사마천이 당대 절대권력자였던 한무제의 역린을 건드려 사형을 받았다가 궁형을 자청하면서까지 살아남아 [사기]를 완성했듯, 오비디우스도 고난의 시기에 홀로 대작을 이룬 셈이다.
오비디우스는 [변신이야기] 집필 후 약 10년 정도 지난 기원후 17~18년 즈음 세상을 등졌지만, 그는 바랬던 바대로 "영원히 살아남았다".
"이제 내 작품은 완성되었다...
하지만... 내 이름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로마의 힘에 정복된 나라가 펼쳐져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나는 백성들의 입으로 읽힐 것이며...
내 명성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 [변신이야기], <맺음말>,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그런데 왜 '변신' 이야기일까.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올림푸스의 신들은 황금시대를 지배하던 거인 '티탄족'을 물리치고 은시대를 열었는데 청동시대와 철시대를 거치며 탐욕스런 인간계를 벌하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켰단다. 이 내용은 길가메시나 구약성서의 내용과 겹치기도 하는데 주목할 것은 것은 제우스(윱피테르)를 위시한 그리스 신들은 이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신들과는 달리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온갖 사물로 '변신'하면서 인간들과 교류하고 인간들 또한 신들 또는 그와 관련한 계기를 통해 서로를 '변신'시키거나 스스로 '변신'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형상을 한 신들도 원래의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없는, 끊임없이 '변신'하는 형상일지도 모르겠다.
'인간' 또한 '만물' 중 하나로서 서로 교차하고 접속하며, 그리스신화의 다양한 주역들은 이종교배를 통해 페르세우스 같은 반신반인이든 켄타우로스 같은 반인반수든 키마이라 같은 괴수든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신'한다.
신은 인간으로 '변신'하고, 인간은 신 또는 괴수나 자연만물로 끝없이 '변신'하는 이야기. 철시대와 대홍수를 거치면서도 탐욕스런 인간은 전쟁과 정복을 통해 기존에 있던 남의 문명을 파괴하며 자기만의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데, 제우스의 아들로 알려진 미케네의 페르세우스 뿐만 아니라 아테네 민주주의 도시문명을 건설한 테세우스도 포세이돈(넵투누스)의 아들을 참칭했고 아예 헤라클레스라는 희대의 괴력난신은 제우스의 또다른 아들로서 온 그리스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문명들을 파괴하고 자기의 씨를 뿌리고 다닌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같은 갖은 그리스 전 문명의 시작이 바로 제우스의 힘센 아들 헤라클레스의 정자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그리스신화는 이야기의 선후가 뒤섞여 앞뒤가 안 맞는 구전설화의 특징이 있는데 아마도 산발적으로 전해지던 구전들을 오비디우스가 [변신이야기]를 통해 집대성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유배지에서 탄생시킨 장편 서사시 [변신이야기(Metamorphoses)]를 통해 시인 오비디우스는 그리스로마신화와 함께 "영원히 살아남았고" 또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리스로마신화의 위대함은 바로 황당하지만 정념이 넘쳐나는 이런 육체적 관계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유물론'적 현실성에 있다. 태초에 천지의 창조도 밤과 낮이 동침하여 이루어졌고, 신들의 창조 또한 하늘의 거신 우라노스와 땅의 거신 가이아와의 건곤일척 섹스를 통해 가능했다.
"가장 위대한 테세우스여, 크레테의 황소를 피 흘리며
죽게 한 그대를 마라톤은 찬탄합니다.
... 에피다우루스 땅은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의 아들이 그대의 손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케피소스 강의 둑은 무자비한
프로크루스테스가 죽는 것을 보았고,...
갖고있던 큰 힘을 나쁜 용도로 쓰던 저 악명 높은 시니스도
죽었습니다...
... 우리가 그대의 업적과
그대의 나이를 계산하려 한다면, 업적이 나이를 압도할 것입니다."
- [변신이야기], <제7권 433~450행>,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목을 벤 후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바다뱀의 제물이 될 뻔 했던 카시오페아의 딸 안드로메다를 구출하여 자손만대 번성하며 미케네 문명을 건설한 반신반인 영웅의 대표주자다.
포세이돈의 아들이라 알려진 테세우스는 세속의 아버지인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명성을 얻기 위해 일부러 고된 육로를 거치며 민중들을 괴롭히던 각종의 악당들을 처치한다. 그들이 나그네를 다루던 방식대로 그들을 처치하는 대목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함무라비 법전이나 한고조 유방의 약법삼장 같은 초기 법률의 양상도 보이며, 민중들의 명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자의 모습도 보이는 가히 대중적 영웅의 본보기다. 크레타의 식민지가 된 아테네를 해방시키기 위해 반인반우 미노타우로스의 제물을 용감하게 자처하고 그 호랑이굴 래버린스에 침투하여 괴수 미노타우로스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장면에서는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독립해방투쟁의 표본이자 인간 자유정신의 표상인 동시에 민주주의적 평등의 전도사로서 테세우스는 신화 속에서나마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 여신(산고의 여신 일리튀이아)은 유노(헤라)의 간섭으로 나에게는 매우 가혹했지.
그러니까 노고를 참고 견딘 헤르쿨레스가 태어날 때가 되고
태양이 하늘의 제10궁을 지났을 때, 무거운 짐이
내 자궁을 늘어뜨리고 내 뱃속에 든 것이 어찌나 묵직하던지
아이의 아버지가 윱피테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지..."
- [변신이야기], <제9권 284~288행>,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헤라클레스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는 오비디우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헌에서 괴력과 명성, 고단한 삶의 노고와 광기에 대한 참회 등을 찬미받았기에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는 그의 출산시 어머니 알크메네가 느낀 감상을 발췌하는 것으로 족하다.
제우스가 알크메네의 남편으로 '변신'하여 갖게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 부인이자 결혼과 출산의 여신 헤라의 방해로 출산이 방해받는다. 결국 알크메네는 산고의 여신을 속여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하나가 헤라클레스로 그는 태어나자마자 헤라가 보낸 뱀을 목졸라 죽이는 기염을 토한다. 그 후 헤라의 간계로 광기에 사로잡혀 형제를 죽이고는 그에 대한 깊은 빡침과 후회로 죽음의 12가지 노역을 수행하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중 하나로 하늘을 지고 있던 아틀라스 대신 하늘을 잠시 받치고 있다가 다시 그 노역을 되돌려주는 장면이 있는데, 아틀라스는 애초 페르세우스에게 황금사과를 주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다가 메두사 머리를 보고 산으로 '변신'하여 굳어진 자다.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의 노역을 대신해 보기도 했고, 지옥에 가서 케르베로스를 사슬에 묶어 길들이기도 했으며, 망각의 의자에 앉은 사촌 테세우스를 힘으로 데리고 오기도 했다.
아무튼, 오비디우스는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가 출산 당시 이미 반신반인 헤라클레스의 존재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며느리에게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괴력의 반신반인을 소개하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metamorphoses)'은 원래부터 정해진 모양이 없이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는 신과 인간, 자연만물과 세상만사 일체에 대한 '변증법'적이고 '유물론'적 정의다. 그렇다고 '변증법적 유물론'은 아니기는 하나 어쨌든, 신과 인간이, 천상과 지상이 현실에서 육체적이고 물질적으로 접속하면서 서로 상호 대립과 투쟁, 교합하는 과정 일체가 바로 '변신'으로 상징되고 있다.
3.
"새로운 몸으로 '변신'한 형상들을 노래하라고 내 마음 나를 재촉하니,
신들이시여, 그런 '변신'들이 그대들에게서 비롯된 만큼
저의 이 계획에 영감을 불어넣어주시고, 우주의 태초로부터
우리 시대까지 이 노래 막힘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 [변신이야기], <서시>,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오비디우스의 그리스로마신화 장편 서사시가 [변신이야기]가 될 것은 그의 '서문'인 <서시>에 이미 나와있다.
스무살의 영문과 신입생 우리는 어른으로의 '변신'을 앞두고 있었다.
막 이십대에 진입한 터라 당장 놀고먹고 술마시고 토하는 그런 생활만 쫓아다녔지만, 그 동안 살아온 시간을 탈피하면서 새롭게 '변신'해야할 시간이었다. 그리스 신들처럼 자기 의도대로 '변신'할 수 없는 우리 인간들은 본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신'할지 당최 알 수 없었다. 그 당시는 무엇으로 '변신'하고 싶은지 본인 의도 자체도 알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십대로 '변신'했던 그 시절의 나로 말하자면, 신문기자가 되어보고자 영자신문사에 들어갔다가 군사정권식의 잔존문화에 짜증나서 한 번 나가고 만 후 다 집어치웠고, 노동계급의 아들이니 자랑찬 이 땅의 노동자가 되고 싶기도 했고, 내 깜냥에 운동에 투신할 자신도 없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가로 '변신'을 꿈꾸기도 했다. 결국 지금은 푸르던 이십대 청년에서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금융노동자로 '변신'하여 살아온지 20년이 훌쩍 넘었고 남편과 아빠로 '변신'한지도 역시 2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수업은 제대로 듣지 않았지만, '어떤 책이든 한 번 펼치면 끝까지 읽으라'고 말씀하시던 내 스무살 시절 그리스로마신화 과목 이재호 교수님의 조언을 에디스 해밀턴의 [미쏠로지(Mythology)]에 담아서 지금껏 주구장창 들고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건 해밀턴의 [미쏠로지]에 삽입된 스틸 새비지(Steele Savage)의 삽화들은 지금까지도 무척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던 해밀턴의 [미쏠로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최근 도통 보이질 않는다. 집에서 아들딸 방에도, 내 오래된 책장들에도, 오산의 외로운 내 자취방에도 없다. 그렇다고 새 것을 사고 싶지는 않다.
죽을 때까지 꾸준히 찾아볼 요량인데, 혹시 이제 다시금 다른 것으로 '변신'할 때가 되었다는 제우스 신의 계시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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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신이야기(Metamorphoses)](기원후 1세기), 오비디우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05.
2. [Mythology](1940), Edith Hamilton, <New American Library>, 1969. - Illustrated by Steele Savage
3. [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1942), 에디스 해밀턴, 서미석 옮김, <현대지성>, 2022.
4. [그리스 신화], 스티븐 프라이, 이영아 옮김, <현암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