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중국사 2 : 국가 이중톈 중국사 2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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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론'적 '키워드'로 본 '국가론'
- [국가], 이중톈, 2013.


"국가의 비밀은 바로 '도시'에 있다... 
'자유'는 '도시'의 특징이었다...
새로운 유형의 거주지가 필요했다. '안전'도 보장되고 충분한 '자유'도 누릴 수 있는.
그런 새로운 거주지는 바로 '도시'였다... 시민들의 관계는 혈연을 초월했다...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두 가지가 새롭게 생겨났다. 하나는 가족, 씨족, 부족을 초월한 '공공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관계된 '공공업무'였다... '공공규범'이 바로 '법률'이고, 공공권력은 '공권력'이며, '공공기관'은 '국가(國家)'다... 따라서 국가와 국민에게 가장 중대한 일은 어떻게 공권력을 다루느냐는 것, 다시 말해 그것을 누가 누구에게 주고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 [국가], <2. 도시는 말한다>, 이중톈, 2013.


이것이 중국 역사학자 이중톈의 '국가론'이다. 

'자유'와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이 '가족'과 '씨족(부족)'을 초월한 '시민'이 되면서 '공공'적 '권력' 관계인 '공권력'을 어떻게 위임하고 또 다루는가에 관한 이론. 
결론은 '문명의 전화'인 '문화'의 대표적 매개로서 '국가(國家)'의 기원에 관한 이론이다.

이중톈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와 인도 및 미국까지 동서고금을 횡단하며 중국의 '국가론'을 정립하고자 하는데, 그의 '중국사 이야기' 제2편인 이 책 [국가(國家)](2013)는 본격적인 중국의 국가 문명인 주나라 이전인 하나라와 상(은)나라의 고대 원시 부족연맹국가 단계까지의 이야기다.

원래 나는 중국의 대중역사가 이중톈의 '중국사 이야기' 제2권인 [국가]까지 읽을 생각은 없었다. 
'공적 권력'인 '국가'와 '사적 권력'인 '자본',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더욱 강고해지는 '독점 자본'의 결합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를 살아온 나의 '국가론'은, 경제적 관계인 하부구조가 정치사회적 상부구조인 '국가'를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구성체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람시와 알튀세르 등으로부터 진화한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향처럼 하부구조인 경제체제에 대한 상부구조의 '상대적 독립성'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 역사가 진보한다는 어느 정도의 '경제결정론'적 '국가론'이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천재적인 마르크스보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자연변증법'과 같이 우주만물에 적용하고 역사유물론을 '사회구성체론'과 '역사발전단계론'과 같이 도식화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대중적 노동자 철학으로 정식화함으로써 다수 노동계급을 기존의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이던 '고전철학'의 진정한 상속자로 규정했던 엥겔스를 더 좋아하기도 했다. 
19세기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엥겔스)은 구체적 현실에 기반한 '실천철학(그람시)' 또는 '새로운 철학적 실천(알튀세르)'의 분기점이었다.

그러던 중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2010)을 읽으면서 사회구성체적 '상부구조'만이 아니라 독립적 사회구성 요소로서의 '국가론'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고, 아마도 이중톈이라면 '초월론'적 이동(횡단)비평인 '트랜스크리틱'으로 '국가론'을 설명해줄 것 같았다.

중국인 이중톈이 서술하는 '국가론'의 결론은 결국, 현대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인 '인의'와 '덕치'의 유가 이념에 기반한 중국 문명의 전파다. 
그러나 그의 책 [국가]를 통해 내가 읽어낸 것은 각종의 '초월론'적 '키워드(핵심어)'로 엮어낸 문명전파의 도구로서 '국가론'이었다.


"... 종교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첫째는, '안전'한 느낌이다. 신의 도움과 비호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유'로운 느낌이다. 진정한 믿음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는, '아이덴티티'다.
... 종교는 국경없는 '국가'다."
- [국가], <4. 종교를 거부하다>, 이중톈, 2013.


이중톈은 사회구성체론처럼 역사 흐름의 '경제적' 배경 같은 것을 바탕에 깔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식의 '구체적 현실'보다는, 마치 칸트식의 '선험적' 또는 '초월론'적 개념을 중심으로 '국가'의 기원을 추적한다.

그 구체적 현실의 역사를 초월하여 원래부터 존재한 듯 이중톈에 의해 선별된 [국가]의 '키워드(핵심어)'들을 나열하면 이렇다.

'자유'와 '안전', '부락'과 '도시', '독립'과 '평등', '종교'와 '과학', '샤머니즘'과 '토템',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인간'.

씨족과 부락이라는 혈연집단을 이루던 인간들이 '자유'와 '안전'을 추구하며 '도시'를 형성하고, 그 도시들로 모이는 과정에서, 기존의 혈연적 조직을 떠나 개인들 간의 수많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인간'들은 비로소 '부족(씨족)민'이 아닌 '시민'이 되는데, 이런 '도시'의 성벽과 영토경계선을 기준으로 초기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상형문자인 한자에서, '지역'과 '영역'을 의미하던 '역(或)'이 도시성벽 테두리를 뜻하는 '구(나라 국/에워쌀 위;囗)'와 합쳐져 '국가(國)'가 되었다.

어느 시대나 '도시'를 보면 '국가'가 보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시 종교인 '샤머니즘'과 '토템'은 특정 국가의 상징으로 전화된다.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는 다신교의 형태로, 중국의 경우는 종교나 신이 아닌 조상으로. 그리고 현대 국가는 법률의 형태로.

중국에서 '샤머니즘'은 '예악(禮樂)'이 되어 '예(禮)'는 '안전'과 '질서'를, '악(樂)'은 '자유'를 상징했단다. 또한 중국에서 '토템'은 하나라의 '들소'와 은(상)나라의 '새(제비)'를 거쳐 종교나 신이 아닌 '하늘(天)'로 진화되었다. 이렇게 '국가'가 '천하'라는 거대한 '가정'이 된 중국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조상'으로부터 '조국(祖國)'이 유래된다.
이 '종교'의 키워드는 동양의 중국 한나라로부터 유학의 '조상'과 '하늘'로 정초된 한편, 동시기 서양의 로마에서는 '법률(로마법)'로 자리를 잡는데, 이것이 현대 '국가'의 핵심어인 '법치주의'의 기원이다.

이중톈은 '중국사 이야기' 제9편 [두 한나라와 두 로마](2014)를 통해 '트랜스크리틱'한 국가 문명을 다시금 서술하기도 했다.

이중톈에 의하면 이 모든 이데올로기들은 인간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비록 그리스 소도시국가에서만 우연히 나타난 형태였지만, 이중톈은 '민주주의'는 "인류 보편적 인성과 가치에 부합"하기에 "언젠가 결국 모습을 드러낸다"([국가], <3장>)고 말한다.
18세기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현대 국가 문명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민주주의'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중톈의 중국사 서술은 진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식상하지 않다.
마치 추리소설 기법처럼 작은 실마리를 쫓아 거대한 역사적 실체의 비밀을 추적하는 식이다.

그의 '국가론' 또한 마찬가지다.
위에서 열거한 '형이상학'적이고, '선험적'인 듯, '초월론적 가상'인 듯한 핵심 '키워드' 개념들을 쫓고 횡단하며 서로 엮어내는 '트랜스크리틱'을 통해 '국가'의 비밀을 파헤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토템은 과연 어떻게 '법'으로 변한 것일까?
그 비밀은 '인간'에게 있다...
... 인격이 법률에서 표현한 것은 바로 '권리', 즉 '신분권'이었다... 시민권이 없으면 로마인이 아니고 자유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었다. 이것이 '아이덴티티'의 실현을 가능하게 했다. 한 자유인이 시민권을 부여받기만 하면 로마인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것은 국가의 통치를 용이하게 만들기도 했다."
- [국가], <5. 토템이여 안녕>, 이중톈, 2013.


그러나 나는,
이중톈의 재미진 중국사 시리즈 제3권 [창시자]를 아직 읽을 생각은 없다.
[창시자]는 중국의 본격적인 국가 문명의 '창시자'인 주나라 주공 단의 이야기라는데, 은(상)나라의 인신공양 문명을 문화적으로 대체한 [주역]의 비밀을 담은 이 장대한 이야기는 리숴의 [전상(翦商)](2022)을 통해 충분히 읽었다.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았을 중국 국가문명의 시작 이야기를, 이미 다 알고 있는 그 이야기를 이중톈이 과연 어떻게 서술했을지 문득 궁금해질 때,
그 때가 이중톈의 중국사 이야기 제3권 [창시자]를 펼쳐볼 참이다.

***

1. [국가(國家) - 이중톈 중국사 2](2013),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3.
2.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3.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 F. Engels. 김대웅 옮김, <아침>, 1987.
4. [트랜스크리틱](2010), 가라타니 고진, 윤인로 옮김, <비고>, 2024.
5. [도시로 보는 유럽사], 백승종, <사우>, 2020.
6.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메디치>, 2018.
7. [두 한(漢)나라와 두 로마(Roma) - 이중톈 중국사 9](2014), 이중톈, 한수희 옮김, <글항아리>, 2016.
8. [상나라 정벌(翦商/전상/Conquest of the Shang Dynasty)](2022), 리숴(李碩), 홍상훈 옮김, <글항아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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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마르크스
가라타니 고진 지음, 윤인로 옮김 / 비고(vigo)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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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과 '비평'의 '초월론적' 이행
- [트랜스크리틱], 가라타니 고진, 2010.


"칸트의 '비판(비평)'은 끊임없는 '이동'을 포함하고 있어서 결코 안정된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이라고 부른다."
- [트랜스크리틱], <2-1. 마르크스 - 이동과 비평>, 가라타니 고진, 2010.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1941~)은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고전경제학의 '노동가치론'을 초월하여 총자본의 '유통과정'에서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것이 자본의 자기증식과정이라고 규정한다. 그리하여 고전적 '생산양식'을 넘어 '교환양식'의 틀에서 '세계사의 구조'를 서술한 책이 [세계사의 구조](2015)였다. 

[세계사의 구조]는 자본주의 체제를 초월하는 대항운동을 지향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요 저작이라고 하는데, 그가 잘 쓰는 비평의 한 방식인 '소행(溯行)', 즉 '거슬러 오르는' 비평의 방식에 따라 나도 가라타니 고진의 직전 저작인 [트랜스크리틱](2010)으로 역주행해 보았다.


"내가 '트랜스크리틱'이라고 부르는 것은 윤리성과 정치경제학이라는 영역의 사이, 칸트적 비판과 마르크스적 비판 사이의 트랜스코딩, 즉 칸트로부터 마르크스를 읽고, 마르크스로부터 칸트를 읽는 기획이다... [자본론]은 손쉽게 자본주의로부터의 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손쉬운 출구가 왜 있을 수 없는지를 제시함으로써만 이에 대한 실천적 개입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나는 형이상학 비판과 같은 것보다는 인간적 이성의 한계를 가차없이 드러냄으로써 실천적인 가능성을 시사하고자 한 명의 사상가(칸트)를 의식하게 되었다. [자본론]은 헤겔과의 관계 속에서 읽는 것이 상식이지만, 나는 [자본론]에 비견될 수 있는 책은 딱 하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마르크스와 칸트를 엮기로 마음을 먹게 된 이유 중 하나다."
- [트랜스크리틱], <서문>, 가라타니 고진, 2010.


[트랜스크리틱]은 2010년도에 출판되었지만, 헤겔을 넘어서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비판적 작업을, 헤겔 이전의 사상가 임마누엘 칸트의 비판적 사고로부터 영감을 받아 마르크스주의적 헤겔 비판을 다시금 수행하고자 했던 가라타니 고진의 오랜 작업이었다. 이것이 '근대 관념론 사변철학의 종결자' 게오르그 빌헬름 헤겔을 사이에 두고 그 이전의 임마누엘 칸트와 그 이후의 칼 마르크스를 횡단하는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이동비평)이라고 하면서 가라타니 고진이 창안한 개념이다. 다른 말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국가론'을 테마로 한 '초월론적 비평'이 '트랜스크리틱'인 것이며, 이러한 발상을 토대로 '캐피털(자본)-네이션(민족)-스테이트(국가)'의 '삼위일체'적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를 '생산양식'을 넘어 '교환양식'의 틀로 관통하여 보려는 시도가 10여년 후의 [세계사의 구조](2015)인 것이다.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 사회구성체론에 의하면 '경제(자본)'라는 하부구조(토대)가 '국가(정치/시민사회)'라는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경제결정론'의 경향이 있다. 이는 1867년 [자본론]을 저술할 당시의 마르크스 본인의 사상이라기 보다는 마르크스 사후에 그의 비판적 사상을 '보편 사상'으로 정립하려는 엥겔스와 독일 사회민주당의 도식화 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이 가라타니 고진의 시각이다. 
[트랜스크리틱]에 의하면, 19세기부터 정식화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교조적 도그마는 마르크스 본연의 사상이 아니다.
사민주의는 결코, '자본-네이션-국가'의 자본주의적'삼위일체' 매듭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이며, '노동가치론'(생산양식)에 갇힌 노동조합 운동처럼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기제가 된다.

마르크스가 극복하려는 헤겔주의는 엥겔스와 카우츠키, 루카치 같은 그의 동지 및 후예들이 정리한 것과 같이 하나의 구성적인 완전한 사고의 체계를 유물론적으로 뒤집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그 결말이 20세기에 명멸했던 현실 국가사회주의 체제였다. 현실 공산당 정권 역시 서유럽이나 북유럽 사민주의나 영국의 노동조합 운동과 다르지 않게 국가권력의 탈취와 중앙집권적 국가소유의 계획경제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인 '자본-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 매듭을 끊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강화하거나 존속시켰다. 
체제의 외부를 지향하는 가라타니 고진이 마르크스주의적 헤겔 극복을 넘어 칸트로 '거슬러 오른(소행)' 이유다. 


"... 우리는 칸트가 말하는 '초월론적'이라는 말을 굳이 버리지 않는다. 다만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트랜스크리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초월론적'인 태도는 강한 '시차'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강한 시차'... 그것은 '안티노미(이율배반)'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 [트랜스크리틱], <1-1. 칸트 - 칸트적 전회>, 가라타니 고진, 2010.


가라타니 고진의 칸트적 '트랜스크리틱'은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경제결정론적 사회구성체론이나 노동가치론의 완결된 사상체계를 읽는 것이 아닌, 칸트의 '안티노미(이율배반)' 모순의 '시차적 관점(parallax view)'에 의해 완결된 사상일 수 없는 '물자체'의 '초월론성'이다. 경험론일 수도 없고 합리론일 수도 없이, 그렇다고 모순되는 양자의 조정과 절충도 아닌, 이율배반(안티노미)의 '사이'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관념론도 유물론도 아닌 그 '사이'에서 '시차적 관점'을 이룬다. 

모순이 결합하고 통일되어 궁극의 체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며 변화하는 '비판(비평)'적 사고다.
이것이 '트랜스크리틱'이다.

자본의 운동에서 '생산과정'의 결과인 '상품'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의 '초월론적 가상'으로서 '화폐'의 우위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화폐'가 자본의 자기증식 과정에서 우선이고 '상품'은 그 부수적 요소라는 '전위적' 사고방식이 칸트식의 '초월론적 가상'이며 이런 횡적인 비평이 바로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이다.


"칸트나 마르크스는 끊임없이 '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칸트의 비판... '초월론적 비판'이란 어떤 안정된 제3자의 입장이 아니다. 그것은 트랜스버셜(횡단)한, 또는 트랜스포지셔널(전위)한 '이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칸트와 마르크스의 트랜스센덴털(초월)하거나, 트랜스포지셔널한 비판을 '트랜스크리틱'이라고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유통과정'을 중심에 둔 대항운동은 완전히 합법적이고 비폭력적이며, 그렇기에 그 어떤 '자본-네이션-스테이트(국가)'도 건드릴 수가 없다. [자본론]은 이런 시점에 논리적 근거를 부여하고 있다. 분명 가치형태에서의 비대칭적 관계(상품과 화폐)는 자본을 낳지만, 그런 비대칭적 관계에는 자본관계를 종식시키는 '트랜스포지셔널'한 모멘트가 있음을 [자본론]은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이 지점을 활용하는 일이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트랜스크리틱'인 것이다."
- [트랜스크리틱], <서론>, 가라타니 고진, 2010.


교조적이지 않은 마르크스주의는 결코 어느 한 체계에 머물지 않고 '이동'하는 '비판(비평)'적 사고다. 이를 가라타니 고진은 헤겔을 넘어 칸트로 역주행하는 '트랜스크리틱'이라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마르크스)가 '가치'로서 발견한 것은 '추상적, 사회적 노동'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체계만이 아니라) '복수체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가치'에는 이미 '잉여가치', 즉 화폐가 자본으로 바뀌는 비밀이 포함되어 있다... '잉여가치'란 개별자본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총자본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사회적 총자본은 '일국'이 아니라 세계적인 총자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본론]을 '국민(폴리티컬) 경제학 비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본론]이 자본주의를 (단일체계로서의) '폴리스(국민국가)'가 아니라 (복수체계로서의) '세계'의 관점에서 보고자 한 것에 있다."
- [트랜스크리틱], <2-3. 마르크스 - 가치형태와 잉여가치>, 가라타니 고진, 2010.


그리하여 가라타니 고진이 발견한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이 완성한 일국 국가론의 '법철학'을 비판하고, [자본론]에서 일국이 아닌 세계적 총자본의 운동과 그 '유통과정'에서 '잉여가치'를 발견하며 고전적 '노동가치론'까지 초월하고 넘어선다. 가라타니 고진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단초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도 읽고 있다. 즉, 상부구조로서의 국가론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 요소로서의 국가(정치사회)의 발견이다. 1848년 2월 혁명을 배반한 나폴레옹 3세의 보나파르티즘이나 이후 파시즘을 만든 것은 계급투쟁을 은폐한 보통선거권이었다는 [브뤼메르 18일]의 단서를 쫓아 권력 위임에 관한 현대적 선거제와 추첨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는 고전적 사회구성체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헤겔의 법철학이 완성한 '자본-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를 벗어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어소시에이션)'의 반자본주의적 대항운동과 노동-소비자 운동을 비롯한 갖가지 마이너리티 운동의 자유로운 연대를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잉여가치'는 '상품'의 '생산'이라는 '고전경제학'이 아니라 '유통'과 '판매'로서 발생한다는 '중상주의'적 관점을 수차례 강조하는데, '생산과정'에 국한된 '노동자'가 화폐를 매개로 '소비자'가 되는 양태에 주목하고 비폭력적인 '소비자 불매운동'을 전투적 노동운동보다 높게 본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다중'과 거의 같은 주체라 할 수 있겠다.

'트랜스크리틱'에 의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새롭게 읽히는데, 당시 자본주의 체제의 '이상적 평균'(알튀세르)으로서의 영국이라는 일국의 '단일체계'를넘어선 세계 자본주의라는 '복수체계'를 전제로 개별 자본의 '생산과정'을 넘어 총자본의 '유통과정'을 통한 '잉여가치'의 창출로 이해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고자 하는 '생태사회주의'(사이토 고헤이)의 측면도 고려될 수 있다.

'트랜스크리틱'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물론, 국가론 일체가 현대화된다.

그렇게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와 마르크스 사이의 '트랜스크리틱'이라는 '이동'과 '비평'을 무기로 미래의 '교환양식'으로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사회(어소시에이션)'로 이행한다.


"... 자본과 국가에 대한 내재적인 투쟁과 초출적인 투쟁은 (생산과정을 넘어선) '유통과정', 즉 '소비자=노동자'의 장에서만 연결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개개인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환양식D로서의)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란 어디까지나 (다중을 이루는) 그런 개개인의 주체성에 근거한 것이다."
- [트랜스크리틱], <2-4. 마르크스 - 트랜스크리티컬한 대항운동>, 가라타니 고진, 2010.

***

1. [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마르크스에 관하여](2010), 가라타니 고진, 윤인로 옮김, <비고>, 2024.
2. [세계사의 구조 -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2015),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비고>, 2024.
3. [자본론](1867~), 칼 마르크스,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6.
4.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5.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6. [프랑스혁명사 3부작], 칼 마르크스,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7.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마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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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고(vigo)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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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양식'의 구조적 세계사
-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2015.


"이 책은 '교환양식'을 통해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재검토함으로써 현재의 '자본-네이션-국가(스테이트)'를 넘어서는 전망을 여는 시도다... 새롭게 '헤겔(법철학) 비판'을 시도한다는 것... 나는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에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시 파악하기로 했다...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다시 하는 것... 헤겔이 관념론적으로 파악한 근대의 사회구성체와 그것에 도달한 '세계사'를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유물론적으로 계속 전도시키면서 헤겔이 파악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사'를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으로 보는 시점이 불가결하다."
- [세계사의 구조], <서문>, 가라타니 고진, 2015.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규정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다소 도식적이지만 '역사발전단계설'을 통해 일체의 계급이 철폐된 공산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과학적 사회주의'다.

인류 최초의 자유롭던 유동적 사회인 원시 공동체에서 국가와 계급의 출현과 함께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를 넘어 근현대 자본주의를 거치고 이후 다수 노동자민중의 국가권력 전유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오히려 다수 민중의 직접적인 '민주주의'적 권력체제 형태로 계급의 철폐와 국가의 소멸을 완성한다는 '역사발전단계설'이다. 계급투쟁과 계급지배의 현실태로서 국가가 소멸된 공산주의는 20세기까지만 해도 인류의 미래였다. 

이러한 역사의 필연적 발전 과정에서는 인간의 '노동'에 기초한 생산력(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인 생산관계의 상호작용이 필수요소다. 이 둘은 변증법적 관계로 일정 기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둘러싼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견인하지만 계급 불평등이 심화되면 특정 생산관계는 생산력 발전을 저해하는 상호 모순의 관계가 된다. 이러한 변곡점에서 노예제나 봉건제 같은 특정 생산양식은 새로운 생산양식, 즉 새로운 정치경제체제로 이행한다. 봉건제를 이은 자본주의체제는 생산력 발전의 최고 수준을 담보하는 한편 소수 자본가들의 생산수단 사적독점이 다수 노동계급을 소외시키면서 계급투쟁의 대단원을 기록한다는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과 '생산'의 관점에 철저한 '노동가치론'에 기반한다. 

다수의 '자유'를 위해서 '평등'이 전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지배의 도구인 국가를 소멸시키기 위해 우선 국가권력을 잡아야 한다. 국가를 지양하기 위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이 모순적 정치상황이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복지국가든, 사민주의 정당이든 '혁명'이라는 계기만 제외한다면 동일한 정치사상이 된다.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1941~)은 칸트주의적 초월론에 입각한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다. 마르크스 철학의 헤겔 극복 작업을 칸트 철학에서 찾는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The Structure of World History)](2015)라는 제목의 그의 주저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생산양식(Modes of production)' 이론을 넘어서는 '교환양식(Modes of Exchange)' 이론을 제시한다.

인류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생산양식'에만 국한된 '평등'에서만 멈춰서면 안되고 생산과 유통, 소비 일체를 아우르는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는 세계사 '이야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생산양식'을 넘어선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세계사의 구조'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 [세계사의 구조(The Structure of World History)의 부제는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From Modes of Production to Modes of Exchange)'다.


"내가 여기서 쓰려는 것은 역사학자가 다루는 '세계사'가 아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복수의 기초적 '교환양식'의 연관을 '초월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사에서 일어난 '세 번의 이행'을 구조론적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네 번째 이행', '세계공화국으로의 이행'에 관한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 [세계사의 구조], <서설 : 교환양식론>, 가라타니 고진, 2015.


가라타니 고진 또한 나름대로의 마르크스주의적 '역사발전단계설'을 지지한다. 다만, 기존의 원시 공동체와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와 근현대 자본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미래의 공산주의 등의 '생산양식' 개념을 넘어, 각 시기별 '교환양식'의 단계적 개념으로 구분한다.

- 1부. 미니세계시스탬(교환양식A) : 원시 공동체 유랑(유동성) 이후 정착사회인 씨족(부족)사회는 '증여'와 주술 중심의 상호(호수) 사회 / '네이션'(부족 또는 씨족)의 최초 출현
- 2부. 세계=제국(교환양식B) : '국가(스테이트)'의 등장으로 '폭력' 또는 강제에 기반한 국가중심주의와 절대왕권의 '주권' 개념과 '주술'을 넘어선 '보편종교'의 확립 / 부르주아 시민혁명으로 등장하는 '국민국가'와 '네이션(인민/민족)'의 진화 및 강화
- 3부. 근대세계시스템(교환양식C) : 절대왕정의 중상주의(상업자본주의)를 넘어선 산업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한 '자본'의 부상 /  자본의 '제국화' 또는 '세계화'와 '국민국가(스테이트)'와의 모순
- 4부. 현재와 미래(교환양식D) : '자본'의 '제국화'와 '국민국가(스테이트)'간 모순을 극복하는 '세계공화국' / 칸트의 루소적 근대 시민국가와 프루동과 마르크스 등 사회주의자들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사회(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건설을 통한 상호(호수)주의적이고 증여적인 '교환양식A'의 회복

원시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급사회를 통해 생산력이 최고로 발전한 상태에서 계급 불평등과 국가를 지양하면서 '공동체주의(코뮤니즘/공산제)'를 현대적으로 복원한다는 칸트식 '규제적 이념'이다. 즉, 논리적으로 완벽하여 필연적 결론에 도달하는 '구성적 이념'이 아닌, 일관성과 경향성을 지닌 좌표적 개념으로 끊임없이 그에 수렴해 나가는 '규제적 이념'인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 생산양식) 관점은 최초의 단계에 존재하는 '평등성'을 중요하게 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유동성(자유)'이라는 사상을 무시한다. 즉, '코뮤니즘'을 '유동성(자유)'이 아니라 '부의 평등'이라는 점으로만 보는 사고가 되기 쉽다.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볼 때 이상과 같은 결함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 [세계사의 구조], <1-2. 증여와 주술>, 가라타니 고진, 2015.


이 '교환양식A-B-C'들은 각 시기단계별로 하나씩만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기마다 각각의 교환양식이 '네이션-국가(스테이트)-자본'의 형태로 복합되어 있으며, 원시 공동체는 '교환양식A(증여)'가, 고대 노예제와 중세 봉건제 또는 아시아적 전제주의와 유럽의 절대왕정 등은 '교환양식B(국가)'가, 근현대 산업자본주의 체제는 '교환양식C(자본)'가 우세한 시기다. 미래의 '세계공화국(교환양식D)'은 이 모든 '교환양식'들이 혼재하지만 '증여'와 '상호(호수)주의'적인 '교환양식A'의 현대적 복원을 기획한다.


"호수(상호/증여) 원리에 기초한 세계시스템, 즉 '세계공화국'의 실현은 쉽지 않다. '교환양식A,B,C'는 집요하게 존속한다. 바꿔 말해 '네이션-국가-자본'은 집요하게 존속한다. 아무리 생산력(인간과 자연의 관계)이 발전해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인 '교환양식'에서 유래하는 그와 같은 존재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존재한다면 '교환양식D' 또한 집요하게 존속한다... 칸트가 말하는 '규제적 이념'이란 그런 것이다."
- [세계사의 구조], <4-2. 세계공화국으로>, 가라타니 고진, 2015.


이 과정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1,2차 세계대전의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국민국가(자본-국가-네이션)'간 대전쟁 후 결성된 국제연맹과 국제연합(UN)에 희망을 건다. 국가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국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간의 연대 못지 않게 국가들간의 연대가 미래의 '세계공화국' 건설의 필수요소다.

'생산양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환양식'까지 아우른다는 것은, 생산과 노동의 노동자계급을 넘어 총자본의 입장에서 역시 노동 못지않게 잉여가치와 자본증식을 가능하게 하는 대다수 '소비자'로서의 '다중(다수 대중)'에 주목하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주의적 프롤레타리아 개념을 현대화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틀 하트의 '제국' 및 '어셈블리' 개념을 지지한다.

이렇게 '노동'을 넘어 '소비'와 '유통'까지 아우르는 '교환양식' 관점에 입각한 가라타니 고진의 사회구성체는 '노동'과 '생산양식'에 머물던 마르크스주의적 경제결정론을 극복한다. 하부구조(토대)의 경제적 '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시되던 상부구조로서 정치적 '국가'의 자율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즉, '자본'을 키운 것은 '국가'이며,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의 현대적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교환양식D(코뮤니즘/어소시에이션)'로서 '교환양식A(증여/호수)'를 복원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과 헤겔의 근대적 국민국가주의를 넘어선 칸트의 '목적의 나라'다.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도덕적 정언명령은 마르크스가 헤겔을 넘어선 그 이상의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제,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을 역주행하여 칸트식으로 마르크스를 읽고 접속시키는 [트랜스크리틱](2010)을 읽어봐야겠다.

***

1. [세계사의 구조 -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2015),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비고>, 2024.
2. [트랜스크리틱](2010), 가라타니 고진, 윤인로 옮김, <비고>, 2024.
3.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1848),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4.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5. [제국(Empire)](1998),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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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34
찰스 디킨스 지음, 성은애 옮김 / 창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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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무엇으로 '상징'되는가
(What was the symbol of revolution)
-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1859.


1.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두 도시 이야기], <1-1. 시대>, 찰스 디킨스, 1859.


첫 문장으로 유명한 작품이라 하면,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Call me Ishmael)"라고 시작하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1851),
"어머니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로 시작하는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1942),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면서 그 유명한 <서문>을 열고는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수천년의 인류 문명사를 과감하고 명료하게 요약하는 압축적인 문장으로 <1장>을 시작하는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1848)이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인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의 [보물섬](1883)의 첫 문장 또한 이야기 서술의 경위를 소개하는 매우 평이한 문장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상깊다. 

"트렐로니 지주와 리브시 판사를 비롯한 몇몇 양반들이 나에게 보물섬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라고 요청했는데, 아직 가져오지 못한 보물이 남았으므로 보물섬의 위치만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기록하라고 했고 나는 17백 몇년의 어느 때로 돌아가서 펜을 들어야 했다. 내 아버지가 남긴 '벤보우 제독' 여관 처마 아래로 뺨에 큰 칼자국이 있는 늙은 선원이 처음 들어섰던 바로 그 때 말이다."
- [보물섬], 로버트 스티븐슨, <1장, '벤보우 제독' 여관의 늙은 선원>, <Collins classics>에서 필자 번역.

해적 플린트 선장의 보물섬 지도를 훔쳐서 달아난 1등 항해사 빌리 본즈의 등장과 함께 시작하는 그 첫 문장은 어린 나를 미지의 추억과 모험의 세계로 바로 초대해 주었다.

여기 또 하나의 유명한 첫 문장을 자랑하는 소설이 있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 1812~1870)의 1859년작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다.
한 시대를 짧으면서도 인상깊게 대비되는 문장으로 묘사한 대목이 압권이다. 번역하기에 따라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다"는 식의 병렬식 문장도 좋고, "최고의 시간이었지만(한편으로는), 최악의 시간이었다"는 식의 대비식 문장도 나쁘지 않다. 아마도 번역자에게는 두 가지 표현 중 무엇으로 할까 고민되는 첫 문장이기도 하겠으나, 원문은 단순한 한 줄 문장들의 나열이다.


"It was the best of times. It was the worst of times. It was the age of wisdom. It was the age of foolishness. It was the season of light. It was the season of darkness. It was the spring of hope. It was the winter of despair. We had everything before us. We had nothing before us..."
- [A Tale of Two Cities], <1. Recalled to life>, Charles Dickens, 1859.


이 기념비적인 첫 문장들이 묘사한 시대가 언제일까 궁금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였을까. 
소설은 <1권. 되살아나다(Recalled to life)>의 <1장. 시대>를 이 첫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혁명이 일어나기 14년 전인 1775년이 그랬다고 적고 있다. 제목과 같은 공간적 배경인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는 '턱이 큰' 조지 3세와 역시 '턱이 큰' 루이 16세가 영국과 프랑스를 다스렸고, '평범한 얼굴'의 샬럿 소피아와 '아름다운 얼굴'의 마리 앙뜨와네뜨가 각 나라의 왕비로 있던 때였다. 중세를 지나 절대왕권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던 이 지배권력자들은 '혁명'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낡은 질서의 대표적인 '상징'들이다. 영국은 이미 한세기 전인 17세기에 의회혁명으로 왕권이 제한된 입헌군주국이었고, 프랑스는 왕정과 귀족 계급의 폭정과 착취로 인해 바야흐로 민중 대혁명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폭풍전야였다. 

주지하다시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절대군주 개인의 국가가 아닌 다수 민중(인민) 주권의 국가의 건설, 이른바 '국민국가'의 시작이었다. 
'국가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근대적 헌법정신의 기원이다.

[두 도시 이야기], <1권. 되살아나다(Recalled to life)>, '1장. 시대'에서 말하는,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은,
1775년의 왕족과 귀족 계급에게는 '최고'였던 반면, '제3신분'인 신흥 부르주아 계급과 농노를 비롯한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최악'의 시대였다.

한편으로 이 첫 문장들은,
'혁명'의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1789~1793년 대혁명의 '바다(같은책, <2-22>)'와 '불(<2-23>)', '폭풍(<3-4>)' 속에서는 다수 민중 계급에게 '최고'였던 반면, 소수의 낡은 지배계급에게는 '최악'의 시간이었을 테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1859)의 유명한 첫 문장은 다름아닌 바로 '계급투쟁'의 진실을 담아낸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2.

"'라 기요띤(La Guillotine)'이라 부르는 날카로운 여인...
그것은 대중적인 농담의 주제였다. 그것은 두통에 대한 최상의 치료약이고, 머리카락이 세는 것도 확실히 막아주며, 표정을 기묘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주는, 바짝 잘 깎이는 '국민 면도칼'이라는 거였다. '라 기요띤'에 입을 맞추고, 그 작은 구멍을 들여다 보고 자루 속에 재채기를 한(단두대에서 처형된) 사람들 말이다. 그것은 인류가 갱생한다는 지표였다. 그것은 '십자가'의 지위를 빼앗았다. '십자가'를 내버린 가슴 위로 그것의 모형이 달렸고, '십자가'를 부정한 곳에서 사람들은 그것에 절하고 신봉했다."
- [두 도시 이야기], <3-4. 폭풍 속의 고요>, 찰스 디킨스, 1859.


미국 독립혁명 이데올로기를 기초한 근대 사상가 토머스 페인이 영국에 대항해 미국의 독립을 지원한 프랑스로 건너가 '자유, 평등, 우애(연대)'를 강조하면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철저히 옹호했을 때, 이미 한세기 전 '명예혁명'의 파고를 겪은 영국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완전한 인민 공화국을 건설한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깎아내렸다.

[두 도시 이야기]의 '두 도시'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인데, 프랑스 대혁명 시기 런던과 파리 '두 도시'를 오고가는 '이야기'다.
귀족 계급의 억압과 착취를 고발하다가 바스띠유 감옥에 10년 동안 갇힌 프랑스 의사 마네뜨 박사가 '되살아나서(Recalled to life)' 영국에서 건너온 딸 루시와 상봉하는 <1권>부터 영국으로 건너가서 프랑스 간첩으로 기소되었다가 살아난 프랑스 귀족 찰스 다네이(에브레몽드 후작 가문)와 루시 마네뜨의 영국에서의 결혼 및 프랑스 대혁명의 복수혈전을 그린 <2권>, 역시 루시 마네뜨를 사랑했던 영국의 방탕한 변호사 시드니 카턴의 희생으로 끝나는 <3권>의 긴 이야기를 통해 찰스 디킨스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인간성'에 관한 것이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1943)와 함께 전세계에서 2억 부 이상 팔렸다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1859)는 결국 '혁명'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인간사의 그 어떤 파도와 폭풍, 그 어떤 혼돈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우정을 위해 바쳐지고 희생되며 그 진가를 발휘하는 도덕과 미덕의 '인간성'이 그 주제였다.

한편, 영국인으로서 찰스 디킨스가 그려내는 영원한 숙적이자 '적국'인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혁명은 '자유, 평등, 우애'보다는 '복수'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농노(소작인)들의 새신부의 정절은 물론 그들의 목숨까지도 무시로 빼앗고 착취하는 귀족 계급을 기어코 처단하면서 '애국시민'과 '공화국'을 배신하는 자들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목을 쳐대는 민중해방의 공간은 피의 '복수'로 점철된 '국민 이발소'로 비유된다.

그렇게 영국인 찰스 디킨스에게 '프랑스 대혁명'은 '기요띤(Guillotine:단두대)'으로 '상징'된다.
구태의 지배계급과 그 낡은 문명 일체의 모가지를 날려 버리는 '기요띤'은 만병통치약으로서 '국민 면도칼'로 불리면서 이 대혁명의 공간은 '국민 이발소'가 되는 것이다.

소설 말미에 시드니 카턴의 희생 덕분에 기요띤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한 찰스 다네이는 프랑스 귀족 에브레몽드 후작 가문의 상속자였지만 귀족의 압제에 신물을 느끼고는 일체의 기득권을 버린 채 영국으로 망명한 자의 영국식 이름이다. 알렉상드르 마네뜨 박사의 딸 루시 마네뜨와 영국에서 결혼하고 정착하였지만 프랑스인으로서 인도적 의무를 위해 파리로 건너갔다가 에브레몽드 가문과 철천지 원수였던 애국시민 포도주상 드파르주 부부로부터 고발을 당해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과정과 그런 다네이를 구하기 위해 영국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사람들이 함께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찰스 디킨스의 '추리소설'식 서술의 면모도 충분히 보여주면서 읽어나가기에 일종의 박진감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성'의 '도덕'과 '미덕'을 강조하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그려내는 프랑스 '대혁명'이란 '국민 면도칼'인 '기요띤(단두대)'으로 상징되는 '복수혈전'의 대혼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찰스 디킨스는 '십자가'로 상징되던 구시대의 폐허 위에, '혁명'의 새로운 '상징'으로서 '기요띤'을 세웠다.

물론, 이 소설이 그러거나 말거나 '프랑스 대혁명'이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 '자유, 평등, 우애(연대)'라는 이념, 인민주권에 기초한 공화정인 '국민국가'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3.

"상상력이 기록된 이래 상상되어 온, 탐식하며 만족을 모르는 그 괴물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실현되어 있다. '기요띤'. 그러나 풍요롭고 다양한 토양과 기후를 지닌 프랑스 어디에서도 이 공포를 낳은 것보다 더 확실한 조건 하에서 성장하는 풀잎, 나뭇잎, 뿌리, 가지, 열매는 하나도 없다. 비슷한 망치로 다시 한 번 더 '인간성'을 일그러뜨린다면, 그것 역시 똑같은 일그러진 모양으로 구부러질 것이다. 다시 한 번 그 탐욕스러운 방종과 억압을 다시 씨 뿌린다면, 그것은 분명 그 종류에 따라 똑같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 [두 도시 이야기], <3-15. 발소리 영영 사라지다>, 찰스 디킨스, 1859.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 낡은 질서에 대한 피의 '복수'에 불과한 '기요띤'으로 상징되고 마는 '프랑스 대혁명'은 결국 공포정치 지도자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마저 '기요띤'의 희생자가 되면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티즘'에 의한 왕정복고로 되돌려졌다. 이 과정을 다 지켜봤을 1859년의 찰스 디킨스에게 역시 '혁명'의 '복수'는 무한하게 반복될 수 있는 '인간성'의 말살로 상징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시대를 불문하고 '혁명'은,
18세기든, 19세기나 20세기든,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찰스 디킨스가 바라본 '상징'과 바로 그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며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가 되는 '계급투쟁'의 현실이 존속하는 한, 
'혁명'은 피해갈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고,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이며,
'믿음과 불신',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계급투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

1.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1859), Charles Dickens, 성은애 옮김, <창비>, 2014.
2. [소설가의 첫 문장], 김대웅 엮음, <북플라자>, 2024.
3. [모비 딕(Moby Dick)](1851), Herman Melville,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11.
4. [이방인(L'Etranger)](1942), Albert Camus, 박용철 옮김, <덕우출판사>, 1990.
5.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1848), Karl Marx/Friedrich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6. [Treasure Island], Robert Louis Stevenson, <Collins classics>, 2010.
7. [상식(Common Sense), 인권(Rights of Man)](18세기), Thomas Paine, 박홍규 옮김, <필맥>, 2004.
8.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1956), Jean Massin, 양희영 옮김, <교양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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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 그러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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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 의한 경제지식의 재전유"
- [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2021.


"평등과 정의를 향한 여정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투쟁의 과정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4장. 배상의 문제>, 토마 피케티, 2021.


세계적 역사학자로 부상한 '빅히스토리' 대가 유발 하라리의 최근 관점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하라리의 최근작 [넥서스](2024)를 찾아 읽어본 후, 나는 또 하나의 세계적 경제석학 토마 피케티의 최근 근황이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이후 5년만에 [평등의 짧은 역사]라는 피케티의 책을 집어 들었다.

토마 피케티는 2013년에 [21세기 자본]을 통해 300년 서구 자본주의 역사에서 'r>g', 즉 자본의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빨리 증가한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21세기 자본], <결론>)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파헤쳤다. 이 [21세기 자본]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는 '평등'에 먼저 주목한 게 아니고 '불평등'의 정당화가 가능한지 질문을 던졌다. 당시의 나는 그런 피케티를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자'로 보지 않았다. '불평등'의 정당화를 이야기하는, 미국에서 공부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내가 보기에 미국식 '정의론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후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으로 얻은 세계적 명성을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좌파 경제학자들과 활발한 의견을 나눈 결과 더 이상은 '불평등의 정당화'가 아닌 '평등을 위한 투쟁'으로 관점을 전환한다. 
2019년의 저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는 본인의 사상을 알고자 한다면 이 책 한 권만 읽으라면서 본인 사상의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2019년에 '불평등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본격 파헤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식의 '자유주의'적 개혁으로부터 '사회주의'적 혁명으로 사상전환을 감행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후 3년 후인 2021년에 토마 피케티는 [평등의 짧은 역사]를 통해 '불평등'의 틀을 벗어나 '평등'의 나라로 완전히 들어선다. 그러는 한편, 역사적으로 대다수 민중의 집단행동과 반란으로 쟁취해 온 '평등'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주장한다. 

물론 결론은 이전 저작들과 동일하다. 
'사회적 국가'의 재부상과 강력한 '누진세' 확대, '민주적 사회주의 연방제'를 통한 '글로벌 자본세' 등으로 '현대화된 사회민주주의' 정책과 제도로 '불평등'을 없애면서 '평등'을 더욱 현실화시키자는 주장이다. 20세기 초에 세계전쟁을 겪으며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뤘던 강력한 누진세의 역사를 통해 부상한 '사회적 국가'의 재부상이다. 피케티는 이를 자본주의 역사상 1914~1980년대의 '대규모 재분배'([평등의 짧은 역사], <6장>)라고 명명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신식민주의 청산을 통한 모두에게 고르게 분배되는 '상속' 제도 등을 덧붙인다. 20세기 식민주의 해방은 가진 자들에 대한 대규모 배상을 통해 식민지 해방보다는 제국주의 부자들의 배를 더 불렸다는 역사를 돌이켜 보며, 포스트식민주의에서는 소수의 부자들이 아닌 다수 민중 모두에게 돌아가는 제대로 된 배상과 상속이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러한 정책과 제도 일체는 21세기에 맞게 현대화된 민주적, 분권적, 다문화적, 연방적 '사회적 국가'가 투명하고 합법적으로 시행하는 강력한 '누진세'와 '글로벌 자본세'를 통해 가능한 것인데, 가진 자들에 대한 몰수에 가까운 '부유세'로 다수 민중이 '평등'하게 사회적 부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평등'을 향한 이 역사적 과정은 '다수 민중, 다수 시민들의 집단행동과 반란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피케티가 다시금 확인하는 역사의 교훈이다.

역시 대전제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란 개인적인 소유 개념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생산한 집단의 영역이라는 확고한 신념이다.
소유와 분배의 문제는 사회적 개념이다.


"... 소유와 그 분배의 문제... 소유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아야 하는 개념... 소유의 집중은 시대를 막론하고 한 번도 극단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전반적인 경향 속에서도 집중이 뚜렷하게 꺾이는 추세는 관찰된다... 평등을 향한 여정은 앞으로 계속되는 게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를 좀더 확대강화해야 할 것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2장. 서서히 일어난, 권력과 소유의 탈집중화>, 토마 피케티, 2021.


'평등'을 향한 여정은 '다수 민중의 집단행동과 반란투쟁'을 통해 여전히 진보해 왔고 앞으로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평등'의 길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 [평등의 짧은 역사]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저작을 통해 기존 [21세기 자본](2013)과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라는 매우 두꺼운 벽돌책들의 결론을 좀더 대중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라고 <감사의 말>에서 쓰고 있다.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참여적 사회주의' 제도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실현 가능한 경제시스템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확보한 역사적 경험들에 따르면, 이런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민중의 집단행동'이 필요하다."
- [평등의 짧은 역사], <5장. 혁명, 지위, 계급>, 토마 피케티, 2021.


여기에 전작들에 비해 다수 민중의 집단적 투쟁을 통한 '평등'의 쟁취 역사를 한층 강조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분배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혁명적 제도로서 '민주적 사회주의'와 강력한 '누진세', 투명한 '글로벌 자본세'와 기후 대응 등의 대안을 광범위하고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만들어가자는 제안을 피케티는 반복하고 있다.

토마 피케티의 이 민주적 논의 제안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는 1970~1980년대 스웨덴의 강력한 사민주의 국가 시절 '평등'한 '사회주의' 이행체제 대안 중 하나였던 렌-마이드너의 좌파적 '임노동자 기금' 또는 우파적 응답으로서 '중앙집권적 시민기금안' 등의 재조명을 언급한 것 또한 반가운 일이다.
'평등'을 향한 여정에서 사적 소유의 사회적 소유로의 전환을 위한 가능한 대안 체제를 열어놓고 논의하자는 것이 피케티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 책에서 나는 민주적이고, 연방제적인, 분권화되고 참여적인, 환경적이고 다문화적인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 사회주의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의 확대, 기업내 권력분유, 포스트식민주의 배상, 차별철폐, 교육평등, 개인 탄소카드 도입, 점진적인 경제의 탈상품화, 고용보장, 모두를 위한 상속, 화폐적 불평등의 대폭축소, 그리고 마침내 금권의 영향에서 벗어난 선거와 미디어 시스템의 기반 위에서 작동하게 될 것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10장. 민주적,환경적,다문화적 사회주의를 향하여>, 토마 피케티, 2021.


'평등'을 위한 이 모든 '민주적 사회주의' 결론들은 다수 민중, 즉 시민들에 의해 광범위하고 민주적으로 재전유되어야 한다는 것이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이후 토마 피케티가 주장하는 그의 사상적 목표다.

현재 토마 피케티의 사상적 궤적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시민에 의한 경제지식의 재전유'([자본과 이데올로기], <결론> / [평등의 짧은 역사], <감사의 말>, <10장>)가 바로 그 한 마디다.


"'시민에 의한 경제지식의 재전유'는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단계다. 이 책의 독자들에게 평등을 위한 투쟁의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쥐어주었다면, 나는 목표를 다 이룬 셈이다."
- [평등의 짧은 역사], <10장>, 토마 피케티, 2021.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과연,
현대식 [공산당선언]에 버금간다 할 수 있겠다.

***

1. [평등의 짧은 역사](2021), Thomas Piketty, 전미연 옮김, <그러나>, 2024.
2.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3.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4.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신정완, <사회평론>, 2012.
5. [공산당선언(Communist Manifesto)](1848), 마르크스/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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