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격투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오사다 류타 지음, 남지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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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너무도 '사소한' 페히트부흐
- [고대 격투기] /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


1.

나도 '형'이 있었으면 했다.

열 살 이전의 아주 어린 시절, 동네에서 싸움이 붙기 전 가장 강력한 말 중 하나는, "너, 우리 형한테 이른다"였다. 누나만 셋이었던 나는 소심하여 평소에 싸울 일도 거의 없었지만 간혹 만만해 보이는 친구 하나랑 붙어볼까 싶다가도 나중에 그 집 '형'한테 쥐어터질까봐 바로 꼬리를 내렸다. 
물론, 남자 꼬맹이들의 현실세계에서 그 '형'이란 무형의 존재들이 '평화'의 메신저가 되기 이전에, 그 남자 꼬맹이들 실제 가정에서의 그 '형'들이 어떤 인간들이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친구들 집을 드나들며 관찰한 결과 형제 집안 친구들은 밖에서 안 맞는 매를 집안에서 그 '형'으로부터 맞고 사는 듯 했다.
나는 우리 집에 있는 누나들이 갑자기 상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친다.
친구네 '형'의 책장에 있던 이소룡의 [절권도 교본]이나 [당랑권 교본], [유도 교본] 같은 책을 빌린다. 그리고 또 몇 권은 반환하지 않는다. 물론 보나마나 그 책을 잃어버린 친구는 어느날 책주인 '형'으로부터 그 무술 '교본'의 실험대상이 되었을 게다.


2.

"페히트부흐는 독일어로 [싸움의 책]이라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전투기술의 해설과 참조를 목적으로 쓰여진 서적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책이 쓰여졌다는 것은 무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식자율이 높아지고 기술이 다양화, 세분화되었으며, 귀족을 포함한 부유층이 무술 사범을 고용하여 배움을 청하는 기회가 늘어난 것도 페히트부흐의 성립과 관련이 있습니다."
- [중세 유럽의 무술], <1부 개론>, 오사다 류타, 남유리 옮김, <AK>, 2013.


사실 그 수 많았던 '교본' 즉, '싸움의 책'들은 실전에 쓸 수 없었다. '당랑권'이나 '태극권', 또는 '유도'의 기본기를 익혀서 실전에 쓸 만큼 싸움을 해보기에는 너무 피곤한 일이었는데, 아마도 무술에 진심인 녀석들은 그 때문에라도 숱하게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꼬맹이들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서로 뒹구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은 현상일텐데 사람만의 특징은 '교본'을 머릿속에 장착한다는 것일테고 소심한 나와 달리 적극적인 놈들은 이 '교본'을 진심으로 실험해보기 위해 약자들을 찾아다녔을게다.


'<AK> 출판사에서 'Trivia Book' 시리즈를 통해 실로 오랫만에 '교본'을 보았다. '하찮은 것(trivia)'에 관한 잡학적인 책들을 엮는다는 이 시리즈 중 '오사다 류타'라는 정체불명의 일본인이 쓴 [고대 격투기](2018)와 [중세 유럽의 무술](2013)이다. 옮긴이 소개는 있는데 정작 저자 소개도 없다. 실생활에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주제를 다뤘다는데 읽어보면 의외로 깊이도 있고 참고문헌 또한 방대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역사학자'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는 저자는 아마 일본의 어느 독방에서 인류 '무술의 역사' 관련 책과 인터넷 자료를 수십년 째 파고 있는 '무술 오타쿠(덕후)'가 아닌가 싶다. 

무술 '교본'의 유래는 아마 14세기경 독일인이 쓴 '페히트부흐(싸움의 책)'일 수도 있겠다. 14세기 당시는 인쇄술 혁명이 일기 전이었고 중세의 중반이었으므로 이 '교본'들은 대중에게 읽히기 위한 게 아니라 무술 전문가인 저자가 본인을 고용한 후견인 귀족이나 권력자에게 헌사하는 용도 또는 독일식 무술의 대표자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같은 대가의 제자들이 예수 사후 [신약성경]이나 공자 사후 [논어]처럼 스승의 비책이 사장되지 않도록 책으로 정리한 것일 수도 있다. 동양의 오래된 무술영화에서 주인공의 사부님이 품고 다니는 서책교본처럼 이 세상에 몇 권 안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근대의 인쇄술 혁명처럼 '총기류'의 발달은 힘있는 자들의 독점물이었던 '무술'과 전쟁 조차도 모든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화'시켰다. 
어릴적 내가 읽었던 각종 무술 '교본'은 물론 지금의 오사다 류타의 '사소한' 교본들 또한 현대의 민주주의적 '페히트부흐'다.

저자는 중세에서 르네상스 전까지 유럽의 독일식, 이탈리아와 스페인식 유파를 소개하고 장검(롱소드)과 단검(대거) 및 쌍검(몬탄테), 스틱과 창, 도끼(폴엑스) 등의 무기술과 맨손 레슬링에 관한 잡학 지식을 풀어놓는다. 

내 생각으로 중세 무술을 연 바이킹 같은 북유럽 게르만족과 중유럽 프랑크족의 개별적 각개전투가 로마의 진법을 깰 수 있었던 이유는 전투기술의 우열 차이가 아니라 문화였다. 고대 유럽의 세계최강 로마군단의 진법이 프랑크족의 손도끼(프랑크)와 바이킹의 장검(롱소드)에게 깨지기 전 서로마 국가체제는 이미 몰락한 후였다.
그렇게 "펜은 칼보다 강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복싱(Pygne:주먹)은 영웅 테세우스가 발명한 것으로 서술된다... 복싱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인데, 작중에 활약하는 영웅이 스스로 '전투는 뒤떨어지지만 주먹으로 살을 찢고 뼈를 부수기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와 같이 당시 복싱 기술은 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듯 하다... (당시 복싱은) 주먹을 이용한 타격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만큼 당시 가장 위험한 스포츠로 인식되었으며, 올림픽 대회에서도 두 명의 사망이 확인되고 있다. 초기 복싱에는 규칙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고, 처음으로 공식적인 규칙이 확립된 것은 기원전 688년의 일이다."
- [고대 격투기], <3장 복싱개설>, 오사다 류타, 남지연 옮김, <AK>, 2018.


우리의 고구려 벽화에 '수박희(手搏戲)'가 있다. '교본'은 없지만 [한서] <애제기> 등 고대 중국의 기록과 고구려 고분 등의 동아시아 벽화를 통해 권력자 주최의 잔치에서 무사들이 웃통을 벗고 힘을 겨루는 일종의 스포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의 택견이나 씨름으로, 일본의 가라데나 스모로, 중국의 쿵푸 등으로 분화되었겠지만 구체적 증거는 없으니 현대의 이종격투기 같았을 수도 있다. 당시부터도 규칙은 힘있는 자의 말에서 나왔을테니.

오사다 류타는 [고대 격투기]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및 로마시대 서기 4백년까지 무술의 역사를 돌아본다. 복싱과 레슬링, 이 둘의 혼합과 같은 판크라티온(이종격투기)과 곤봉술, 검투사의 종류 등 온갖 사소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노예제 사회였던 고대 로마의 검투사는 전쟁포로 등의 노예였다. 아마도 대부분 비참한 삶으로 마감했을 것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특출난 인간들은 있다. 여권이 없던 고대에도 여성 황제가 나왔고 천대받던 내시가 권력의 정점에 서기도 했다. 노예 검투사 중에도 '스타'가 되어 신분상승된 경우도 있었을 테고 스파르타쿠스 같은 영웅은 검투사 노예해방군을 조직했다. 이 책에 의하면 실제로 스파르타쿠스는 신분의 제약을 넘어 외부에 살면서 결혼까지는 못했어도 여자와 동거하며 개별살림도 했단다. 참으로 '사소'하나 재밌다. 

고대 로마의 공화정과 제국의 혼합국가는 세계 각지의 민중들이 로마에 편입하려는 치열한 경쟁으로 돌아갔다. 그 중 하나가 군대로서 게르만인이나 유대인 등이 로마의 용병이 되어 실적을 쌓고 정규군이 되고 나아가 장군으로까지 승진하는 '능력주의'가 판을 친 시대였다. 이 '능력주의'의 '능력'은 실력이든 뇌물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다.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용병은 물론 검투사 같은 노예의 길을 택한 이민족도 많았을 것이다. 이들을 이끌었을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극소수였을 테니 도태된 다수가 살기 위해서는 타협은 물론, 적당하고 사소하게 '저항'할 수 밖에 없었겠다. 
결국 고대 로마와 같은 견고한 노예제 체제를 무너뜨린 건 다수 노예들의 '사소한' 저항들이었고 이것들이 모여 스파르타쿠스 반란 같은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으리라. 


3.

무술 '교본' 따위를 구해오는 '형' 같은 존재가 없었던 나는 10여세 이후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용감한 형제'라는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꿈꿨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기에  어머니를 졸라 태권도장을 다녔다. 아마도 초등 6학년 때인가 오른팔이 부러지지 않았다면(애정했던 태권도 훈련이 아니라 그냥 놀다가) 나는 아마 지금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만큼 어린 시절의 나는 태권도를 무척 사랑했다. 
모든 무술은 '도(道)'로 통하므로 인격훈련을 위해서라도 가히 애정할만한 대상이다.

가정을 이룬 후 숨어있던 무의식에 의해 첫째 아들을 보고 둘째도 '용감한 형제'를 바랐던 무모했던 삼십대를 지나 반백의 중년에 이른 지금, 성장한 아들을 보며 세상 모든 고추들에게 환멸 비슷한 걸 느끼게 된 후로는 세상 딸들이 그렇게 고맙고 이쁘다. 아마도 친구들에게 힘으로 군림하려던 어린 시절 그 역시 어렸던 친구들 형들의 실체를 본 후 우리집 세 명의 누나들이 상냥하게 보였던 현상의 반복이리라. 

나 스스로도 진흙탕에서 그렇게 구르며 성장하고 겪었지만, 어린 시절의 남자는 특히나 무모하고 위험한 존재들이다. 아마도 죽기 전날까지도 철이 들지 않을 이 '형'들은 대의를 꿈꾸면서도 '사소한 것'에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에서 허다한 예가 있겠지만,
관우는 자존심 세우다가 죽었고,
장비는 술주정 부리다가 죽었고,
유비는 의리를 쫓아가다 죽었다.

그들의 최후에 '촉한정통'과 '북벌통일'의 '대의'가 있었는가.

'사소한' 남자들에게 특히 '도(道)'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에게도 조선 정조시대인 18세기에 규장각에서 무예 '24기'를 총망라한 무술 교본 [무예도보통지]가 있기는 하나, '도(道)'를 담은 이 시대 진정한 '페히트부흐'는 어디에 있는가.

***

1. [고대 격투기], 오사다 류타, 남지연 옮김, <AK>, 2018.
2.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 남유리 옮김, <AK>,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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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무술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오사다 류타 지음, 남유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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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너무도 '사소한' 페히트부흐
- [고대 격투기] /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


1.

나도 '형'이 있었으면 했다.

열 살 이전의 아주 어린 시절, 동네에서 싸움이 붙기 전 가장 강력한 말 중 하나는, "너, 우리 형한테 이른다"였다. 누나만 셋이었던 나는 소심하여 평소에 싸울 일도 거의 없었지만 간혹 만만해 보이는 친구 하나랑 붙어볼까 싶다가도 나중에 그 집 '형'한테 쥐어터질까봐 바로 꼬리를 내렸다. 
물론, 남자 꼬맹이들의 현실세계에서 그 '형'이란 무형의 존재들이 '평화'의 메신저가 되기 이전에, 그 남자 꼬맹이들 실제 가정에서의 그 '형'들이 어떤 인간들이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친구들 집을 드나들며 관찰한 결과 형제 집안 친구들은 밖에서 안 맞는 매를 집안에서 그 '형'으로부터 맞고 사는 듯 했다.
나는 우리 집에 있는 누나들이 갑자기 상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친다.
친구네 '형'의 책장에 있던 이소룡의 [절권도 교본]이나 [당랑권 교본], [유도 교본] 같은 책을 빌린다. 그리고 또 몇 권은 반환하지 않는다. 물론 보나마나 그 책을 잃어버린 친구는 어느날 책주인 '형'으로부터 그 무술 '교본'의 실험대상이 되었을 게다.


2.

"페히트부흐는 독일어로 [싸움의 책]이라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전투기술의 해설과 참조를 목적으로 쓰여진 서적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책이 쓰여졌다는 것은 무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식자율이 높아지고 기술이 다양화, 세분화되었으며, 귀족을 포함한 부유층이 무술 사범을 고용하여 배움을 청하는 기회가 늘어난 것도 페히트부흐의 성립과 관련이 있습니다."
- [중세 유럽의 무술], <1부 개론>, 오사다 류타, 남유리 옮김, <AK>, 2013.


사실 그 수 많았던 '교본' 즉, '싸움의 책'들은 실전에 쓸 수 없었다. '당랑권'이나 '태극권', 또는 '유도'의 기본기를 익혀서 실전에 쓸 만큼 싸움을 해보기에는 너무 피곤한 일이었는데, 아마도 무술에 진심인 녀석들은 그 때문에라도 숱하게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꼬맹이들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서로 뒹구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은 현상일텐데 사람만의 특징은 '교본'을 머릿속에 장착한다는 것일테고 소심한 나와 달리 적극적인 놈들은 이 '교본'을 진심으로 실험해보기 위해 약자들을 찾아다녔을게다.


'<AK> 출판사에서 'Trivia Book' 시리즈를 통해 실로 오랫만에 '교본'을 보았다. '하찮은 것(trivia)'에 관한 잡학적인 책들을 엮는다는 이 시리즈 중 '오사다 류타'라는 정체불명의 일본인이 쓴 [고대 격투기](2018)와 [중세 유럽의 무술](2013)이다. 옮긴이 소개는 있는데 정작 저자 소개도 없다. 실생활에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주제를 다뤘다는데 읽어보면 의외로 깊이도 있고 참고문헌 또한 방대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역사학자'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는 저자는 아마 일본의 어느 독방에서 인류 '무술의 역사' 관련 책과 인터넷 자료를 수십년 째 파고 있는 '무술 오타쿠(덕후)'가 아닌가 싶다. 

무술 '교본'의 유래는 아마 14세기경 독일인이 쓴 '페히트부흐(싸움의 책)'일 수도 있겠다. 14세기 당시는 인쇄술 혁명이 일기 전이었고 중세의 중반이었으므로 이 '교본'들은 대중에게 읽히기 위한 게 아니라 무술 전문가인 저자가 본인을 고용한 후견인 귀족이나 권력자에게 헌사하는 용도 또는 독일식 무술의 대표자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같은 대가의 제자들이 예수 사후 [신약성경]이나 공자 사후 [논어]처럼 스승의 비책이 사장되지 않도록 책으로 정리한 것일 수도 있다. 동양의 오래된 무술영화에서 주인공의 사부님이 품고 다니는 서책교본처럼 이 세상에 몇 권 안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근대의 인쇄술 혁명처럼 '총기류'의 발달은 힘있는 자들의 독점물이었던 '무술'과 전쟁 조차도 모든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화'시켰다. 
어릴적 내가 읽었던 각종 무술 '교본'은 물론 지금의 오사다 류타의 '사소한' 교본들 또한 현대의 민주주의적 '페히트부흐'다.

저자는 중세에서 르네상스 전까지 유럽의 독일식, 이탈리아와 스페인식 유파를 소개하고 장검(롱소드)과 단검(대거) 및 쌍검(몬탄테), 스틱과 창, 도끼(폴엑스) 등의 무기술과 맨손 레슬링에 관한 잡학 지식을 풀어놓는다. 

내 생각으로 중세 무술을 연 바이킹 같은 북유럽 게르만족과 중유럽 프랑크족의 개별적 각개전투가 로마의 진법을 깰 수 있었던 이유는 전투기술의 우열 차이가 아니라 문화였다. 고대 유럽의 세계최강 로마군단의 진법이 프랑크족의 손도끼(프랑크)와 바이킹의 장검(롱소드)에게 깨지기 전 서로마 국가체제는 이미 몰락한 후였다.
그렇게 "펜은 칼보다 강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복싱(Pygne:주먹)은 영웅 테세우스가 발명한 것으로 서술된다... 복싱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인데, 작중에 활약하는 영웅이 스스로 '전투는 뒤떨어지지만 주먹으로 살을 찢고 뼈를 부수기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와 같이 당시 복싱 기술은 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듯 하다... (당시 복싱은) 주먹을 이용한 타격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만큼 당시 가장 위험한 스포츠로 인식되었으며, 올림픽 대회에서도 두 명의 사망이 확인되고 있다. 초기 복싱에는 규칙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고, 처음으로 공식적인 규칙이 확립된 것은 기원전 688년의 일이다."
- [고대 격투기], <3장 복싱개설>, 오사다 류타, 남지연 옮김, <AK>, 2018.


우리의 고구려 벽화에 '수박희(手搏戲)'가 있다. '교본'은 없지만 [한서] <애제기> 등의 고대 중국의 기록과 고구려 고분 등의 동아시아 벽화를 통해 권력자 주최의 잔치에서 무사들이 웃통을 벗고 힘을 겨루는 일종의 스포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의 택견이나 씨름으로, 일본의 가라데나 스모로, 중국의 쿵푸 등으로 분화되었겠지만 구체적 증거는 없으니 현대의 이종격투기 같았을 수도 있다. 당시부터도 규칙은 힘있는 자의 말에서 나왔을테니.

오사다 류타는 [고대 격투기]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및 로마시대 서기 4백년까지 무술의 역사를 돌아본다. 복싱과 레슬링, 이 둘의 혼합과 같은 판크라티온(이종격투기)과 곤봉술, 검투사의 종류 등 온갖 사소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노예제 사회였던 고대 로마의 검투사는 전쟁포로 등의 노예였다. 아마도 대부분 비참한 삶으로 마감했을 것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특출난 인간들은 있다. 여권이 없던 고대에도 여성 황제가 나왔고 천대받던 내시가 권력의 정점에 서기도 했다. 노예 검투사 중에도 '스타'가 되어 신분상승된 경우도 있었을 테고 스파르타쿠스 같은 영웅은 검투사 노예해방군을 조직했다. 이 책에 의하면 실제로 스파르타쿠스는 신분의 제약을 넘어 외부에 살면서 결혼까지는 못했어도 여자와 동거하며 개별살림도 했단다. 참으로 '사소'하나 재밌다. 

고대 로마의 공화정과 제국의 혼합국가는 세계 각지의 민중들이 로마에 편입하려는 치열한 경쟁으로 돌아갔다. 그 중 하나가 군대로서 게르만인이나 유대인 등이 로마의 용병이 되어 실적을 쌓고 정규군이 되고 나아가 장군으로까지 승진하는 '능력주의'가 판을 친 시대였다. 이 '능력주의'의 '능력'은 실력이든 뇌물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다.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용병은 물론 검투사 같은 노예의 길을 택한 이민족도 많았을 것이다. 이들을 이끌었을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극소수였을 테니 도태된 다수가 살기 위해서는 타협은 물론, 적당하고 사소하게 '저항'할 수 밖에 없었겠다. 
결국 고대 로마와 같은 견고한 노예제 체제를 무너뜨린 건 다수 노예들의 '사소한' 저항들이었고 이것들이 모여 스파르타쿠스 반란 같은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으리라. 


3.

무술 '교본' 따위를 구해오는 '형' 같은 존재가 없었던 나는 10여세 이후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용감한 형제'라는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꿈꿨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기에  어머니를 졸라 태권도장을 다녔다. 아마도 초등 6학년 때인가 오른팔이 부러지지 않았다면(애정했던 태권도 훈련이 아니라 그냥 놀다가) 나는 아마 지금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만큼 어린 시절의 나는 태권도를 무척 사랑했다. 
모든 무술은 '도(道)'로 통하므로 인격훈련을 위해서라도 가히 애정할만한 대상이다.

가정을 이룬 후 숨어있던 무의식에 의해 첫째 아들을 보고 둘째도 '용감한 형제'를 바랐던 무모했던 삼십대를 지나 반백의 중년에 이른 지금, 성장한 아들을 보며 세상 모든 고추들에게 환멸 비슷한 걸 느끼게 된 후로는 세상 딸들이 그렇게 고맙고 이쁘다. 아마도 친구들에게 힘으로 군림하려던 어린 시절 그 역시 어렸던 친구들 형들의 실체를 본 후 우리집 세 명의 누나들이 상냥하게 보였던 현상의 반복이리라. 

나 스스로도 진흙탕에서 그렇게 구르며 성장하고 겪었지만, 어린 시절의 남자는 특히나 무모하고 위험한 존재들이다. 아마도 죽기 전날까지도 철이 들지 않을 이 '형'들은 대의를 꿈꾸면서도 '사소한 것'에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에서 허다한 예가 있겠지만,
관우는 자존심 세우다가 죽었고,
장비는 술주정 부리다가 죽었고,
유비는 의리를 쫓아가다 죽었다.

그들의 최후에 '촉한정통'과 '북벌통일'의 '대의'가 있었는가.

'사소한' 남자들에게 특히 '도(道)'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에게도 조선 정조시대인 18세기에 규장각에서 무예 '24기'를 총망라한 무술 교본 [무예도보통지]가 있기는 하나, '도(道)'를 담은 이 시대 진정한 '페히트부흐'는 어디에 있는가.

***

1. [고대 격투기], 오사다 류타, 남지연 옮김, <AK>, 2018.
2.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 남유리 옮김, <AK>,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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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 경제학고전선, 개역판
존 메이나드 케인즈 지음, 조순 옮김 / 비봉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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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것은 '사상'이지...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존 케인즈, 1936.


1.

역시, 
경제학은 어려웠다.

자본주의 확장과 발전을 보며 '본의 아니게' 사회주의를 전망했던 요제프 슘페터의 책,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2)를 억지춘향이로 읽고나서, 20세기 '천재 경제학자'로 꼽히는 슘페터가 마르크스주의만큼이나 견제했다던 동갑내기 경제학 천재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말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케인즈의 주저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넘기면서 새삼 확인한 사실이다.

경제학은,
내 적성은 아니었다.


2.

"어려움은 새로운 관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자라온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온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침투되어 있는 관념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있는 것이다."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서문>, J.M.케인즈, 1935.2.


20세기 최고의 '천재 경제학자'가 되고 싶었을 슘페터가 '사회주의'를 전망한 이유는, 자본주의 모순을 밝혔기 때문도, 착취당하는 다수 민중을 위해서도 아닌, 자본주의가 그 '창조적 파괴'의 '기업가 정신'으로 인해 무한 성장하다 보면 2차 대전 후 영국과 미국처럼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체제가 발전할 것이고, 팽창하는 자본주의 속성상 누진세와 국영화를 통해 자연스레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슘페터의 '예언'은 틀렸고 수십년 후 그가 전망했던 세계 경제체제는 '신자유주의'의 형태로 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했다. 물론, 지금의 '럭셔리'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화를 분배하고 본의 아니게 '공공재'를 무한생산하게 되면서 그가 말한대로 점점 '사회주의화'되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튼, '예언'하는 모든 '사상'은 '위험'하다. 그리고  일찍이 이를 알려준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케인즈이기도 했다.

'창조적 파괴'의 '기업가 정신' 밖에 모르는 슘페터에게 마르크스주의 혁명은 무책임한 선동이었고, '완전고용'을 지향했던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확장성을 모르는 '정체론자'의 대표논객이었다. 슘페터가 보기에 1883년 동갑내기 천재 케인즈는 슘페터 본인처럼 경제학 교수도 아닌, 경제관료로서 거시경제학 논객이었지 '경제학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슘페터는 평생 또 다른 경제학 '천재'였던 케인즈를 의식했다.


"나는 '고전파' 이론들의 공준들은 오직 특수한 경우에 한하여 타당하고 '일반'적인 경우에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1-1. 일반이론>, 케인즈, 1936.


1883년생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20세기 초중반인 1936년에 '완전고용(full employment)'과 '유효수요(effective demand)'라는 주요 개념으로 '거시경제학'의 논쟁을 촉발했다. 고전파 경제학을 전공하였으나 케인즈는 슘페터처럼 '경제학자'라기 보다는 영국 재무부 경제관료로서 현실적인 경제정책을 끊임없이 제출했다고 한다. 
한편, 1929년 대공황 이후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케인즈주의 영향은 아니고 우연히 겹치는 사상과 정책이다. 

케인즈의 주저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하 [일반이론])을 통해 제창된 '케인즈주의'는 국가의 공적 지출을 통한 '완전고용'과 저축(투자)과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유효수요'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불평등'을 점차로 완화하자는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러가지 용어들의 형형색색의 용법의 혼란 속에서 하나의 확정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저축액은 개개 소비자의 집합적 행동의 소산이고, 투자액은 개개 기업자의 집단적 행동의 소산이면서, 이 두 액수은 필연적으로 일치하게 된다...
...
소득 = 산출물의 가치 = 소비 + 투자
저축 = 소득 - 소비
따라서, 
저축 = 투자 ((소비+투자)-소비)..."
- [일반이론], <2-6. 소득, 저축 및 투자의 정의>, 케인즈, 1936.


이를 위해 케인즈는 주류경제학 일체인 '고전파 경제학'의 '추상성'을 일관되게 비판하는데, 이들 '사상'의 "낡은 관념으로부터 탈출"(같은책, <서문>)하는 어려움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이들 고착화된 개념들이 사실 '일반이론'으로 작동하기 위해 새롭게 현실적으로 재규정되는 "유쾌함"(같은책, <2-6>)을 즐기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분석의 긍극적 목적은 무엇이 '고용량'을 결정하는가를 발견하는 데 있다."
- [일반이론], <3-8. 소비성향:1.객관요인들>, 케인즈, 1936.

"... 고용이론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나는 오직 두 개의 기본적인 수량단위, 즉 '화폐가치'의 수량과 '고용'의 수량만을 이용할 것을 제창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를 엄격히 두 개의 단위, 즉 '화폐'와 '노동'에 한정..."
- [일반이론], <2-4. 단위의 선정>, 케인즈, 1936.


'완전고용'의 이상사회를 상정하고 있기에 케인즈의 경제학에서도 '노동'이 기본 개념이 된다. 그렇다고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나아가 이들의 유산을 일부 물려받은 마르크스까지 고전주의적 정치경제학이 근간으로 두고있는 '노동가치론'을 다루지는 않고 있다. 케인즈는 [일반이론]에서 이미 고용된 90%의 임노동의 형태를 바꾸기보다 고용되지 않은 10%가 고용되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같은책, <6-24>).

케인즈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은 부러 무시하듯 언급도 거의 하지 않는데, '자본'이나 '노동', 그리고 '화폐'를 논할 때 '상품'이라든가 '노동가치론'을 준거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당시까지 '고전파' 경제학이 '노동가치론'에 대항하여 발견한 주요개념인 '한계(marginal~)' 개념을 사용하여 '자본의 한계효율'을 최소화할 정도의 풍부한 자본 확충을 통해 '유효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완전고용'에 이르러야 한다는 경제 '사상'이라기 보다는 경제 '정책'을 제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화폐'는 그 사용량이 확대되고 화폐 사용에 대한 대가로서 '이자율'은 높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실업(완전고용 실패)'과 '불평등'이라는 자본주의 폐해(같은책, <6-24>)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이자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상당히 광범위한 '투자의 사회화'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대부분의 경제생활을 포괄할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할 만한 분명한 이유는 없다. 국가가 인수할 중요한 사항은 '생산용구(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니다. 만일 국가가 생산용구를 증가시키시 위해 투입되는 총자본량과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에 대한 보수의 기본율을 결정할 수 있다면, 국가는 그것으로써 필요한 모든 일을 다 성취하게 되는 셈이 된다. 뿐만 아니라 '사회화'를 위하여 필요한 조처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사회의 일반전통을 파괴하지 않고 도입될 수 있는 것이다."
- [일반이론], <6-24. 일반이론이 도출하는 사회철학에 관한 결언>, 케인즈, 1936.


케인즈에게 경제불황에 대한 대책은 이자율을 낮춰 '준호황' 상태를 유지하는 것인데(같은책, <6-22>), 자본의 한계효율을 최소화시킬 정도의 자본 확충을 통해 저축 또는 투자와 소비의 균형으로서 '유효수요'를 충족시키는 '완전고용' 사회를 지향하면서 경제정책을 실행하면, 당시의 현실사회주의 체제처럼 전반적인 국유화의 '국가사회주의' 또는 급격한 '혁명' 없이도 점차적인 자본주의 모순 극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그의 결론이다.

그 외 내가 읽기에 중요한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사회의 두드러진 결함은 '완전고용'을 성취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부와 소득의 분배가 자의적이고 '불평등'하다는 점에 있다."
- [일반이론], <6-24. 결언>, 케인즈, 1936.

"... 자본 일반의 한계효율을 이자율과 거의 균등('제로')하게..."
- [일반이론], <4-18. 고용의 일반이론 재설>, 케인즈, 1936.

"...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서서히 인상하게 하는 정책... 선호한다."
- [일반이론], <5-19. 화폐임금의 변화>, 케인즈, 1936.


3.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의 '사상(思想)'은...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사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이 밖에 별로 없는 것이다... 나는 기득권의 위력은, '사상'의 점진적인 침투에 비하면, 매우 과장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빠르든 늦든, 선에 대해서든 악에 대해서든, 위험한 것은 '사상'이지 기득권익은 아니다."
- [일반이론], <6-24. 결언>, 케인즈, 1936.


케인즈는 '경제학자'였지만 이론으로서 '사상(思想)'을 중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험"(같은책, <6-24>)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 유일한 균형의 위치... 자본 축적량이 '한계효율'을 제로(0)로 만들기에 넉넉한 크기이면서 동시에, '완전고용'까지 실현되어 있고 이자의 형태로 얻을 수 있는 아무런 특별배당도 없는 상황에서 장래를 위해 대비를 마련하고자 하는 공중의 총체적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큰 부의 양을 표시하기도 하는 그러한 상태이다... 이자율이 제로가 되는 바로 그 점이 아니라, 이자율이 점차적으로 저하하는 과정에서 제로가 되기 전의 어떤 점에서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만약 '자본의 한계효율'이 제로가 되도록 자본재를 매우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비교적 쉽다고 생각하는('유효수요' 충족과 '완전고용' 실현) 나의 상상이 옳다면,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바람직하지 못한 여러 측면들을 점차적으로 제거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일반이론], <4-16. 자본의 본질에 관한 고찰들>, 케인즈, 1936.


케인즈는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기획한 마르크스와 달리 "자본주의의 바람직하지 못한 여러 측면들을 점차적으로 제거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4-16>)으로서, '자본의 한계효율'과 '이자율'을 거의 제로(0)에 가까운 동일 수준으로 조정하면서 충분한 소비와 저축(=투자)을 가능하게 하는 '유효수요'를 충족하고 '완전고용'을 실현하는 사회를 국가 주도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경제관료'로서 거시경제적 정책 제안을 했다. 
케인즈에게 국가는 마르크스주의처럼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하는 '국영화'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생산수단에 투입되는 총자본량과 이 생산수단 소유자들에게 지급되는 보수율을 정하는 '조정자'의 역할로써 충분하다(같은책, <6-24>).

한편으로 케인즈는 슘페터 같은 대학 강단의 '경제학자'가 아니었기에 좀더 자유롭게 '고전파' 주류경제학을 비판할 수 있었다. 
케인즈는 마르크스주의와 슘페터와 같이 '자유방임'적 시장을 믿지 않았다. '거시경제학'의 시조와도 같은 케인즈는 마르크스조차도 '노동가치론'으로 깊이 영향을 받은 고전주의 정치경제학은 물론 그들의 후예를 자처하는 마샬과 피구 등의 수리경제학 일체를 "날조"(같은책, <5-21>)와 기만으로 규정한다. 그들의 '미시경제학'은 극도의 추상성과 그릇된 전제로 인해 현 경제체제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도 내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관료' 케인즈의 경제학은 진보를 격정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고전파' 경제학의 추상성을 비판하고 각종 경제학 개념들을 새롭게 재규정하면서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자기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담담하게 설명할 뿐이다. 
원전을 통해 내가 케인즈로부터 직접 들은 말들은 매우 건조했다.

현실을 분석하되 추상적 이론을 배척한 케인즈는 결국 이 책 [일반이론]의 결론으로 기존 정치경제학 '사상' 일반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으로 끝을 맺는다. 누구든 이미 '사상'에 영향을 받으면 세계관을 수정하려 하지 않으므로 케인즈는 이 '위험'한 '사상'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일반이론]을 쓴다는 1935년 2월의 <서문>을 상기하게 된다.

케인즈의 '화폐론'은 현실에서 중요한 경제학 개념이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다만 "파는 사람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없고, 사는 사람이 없는 곳에 파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같은책, <2-7>)는 논거를 보면 'MMT(Modern Money Theory:현대화폐이론)'의 모티브일 수도 있겠다.
'유효수요' 충족과 '완전고용' 실현을 위해서는 '균형재정론'보다는 '공공지출'의 확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어려운 경제학에다가 우리나라 '거시경제학'의 대부라는 조순 교수 번역본으로 일부러 골라서 읽었다. 아마도 번역투와 용어 자체가 1980년대식이라 내게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아무튼,
슘페터 덕분에 직접 읽게 된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대한 나의 이해도는 아마도 한 30% 수준 이하 아닐까 싶은데, 읽을 때는 괴롭더니 책을 덮으니까 다음에는 또 어떤 경제학자의 원전을 읽어볼까 싶기도 하다.

경제학,
묘하다.

***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1936), John Maynard Keynes, 조순 옮김, <비봉출판사>, 198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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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요제프 알로이스 슘페터 지음, 이종인 옮김 / 북길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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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기업가 정신'?
-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요제프 슘페터, 1942.


"나의 역설적인 결론이란 바로, 자본주의는 그 '눈부신 성취'로 인해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 J.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초판 서문>, 1942.


얼핏 읽으면 마치 마르크스의 말 같다.
자본주의는 그 체제 자체에 붕괴의 씨앗(맹아)을 품고 있다는 그 유명한 '최초의' 예언.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소수 독점으로 인해 다수의 프롤레타리아트 노동계급을 양산하고 소수의 부르주아지 자본가계급의 착취로 인해 이 다수의 '궁핍화'가 심화되면, 건곤일척의 격렬한 '계급투쟁'이 재앙처럼 만연하고 소수 자본가에 의한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다수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사회화의 모순이 깊어져 결국 자본주의가 붕괴된다는 철학적이고 경제학적이며 역사학적인 논리를 19세기 인류에게 '최초'로 선사했다. 
20세기에 들어 고전주의 '노동가치론'에 대항한 '한계효용론'의 발견과 정밀한 사회과학으로서 '경제학'이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19세기의 칼 마르크스는 이러한 본인의 사상을 고전 정치경제학의 전통에 따라 여전히 '정치경제학'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위에 인용된 이 문장은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결코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던 20세기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1883~1950)의 주장이다.
자본주의 '생산 엔진'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슘페터는, '유효수요' 거시경제학의 대가 케인즈와 함께 마르크스 이후의 20세기 경제학에서 양대 산맥을 이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에 미국 하버드대 교수로 생을 마감한 20세기 '천재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는 '귀족'적이었고 보수적이었으며, 마르크스를 존중했지만 그의 논리가 오류임을 증명하려 했고 동갑내기 케인즈를 평생 의식했다.

자본주의가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변혁을 이루어 나가는"(같은책, <1-3>) 그 자체의 '역동성'으로 인해 멸망한다는 결론은 마르크스와 비슷하나, 자본주의는 결코 마르크스가 예측한 대로 '다수 프롤레타리아만을 양산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투쟁'만으로 현상하지 않았을 뿐더러 더욱이 그들 노동계급을 '궁핍화'시키지도 않았다고 슘페터는 주장하면서 경제학자로서 "사실의 길을 따라(via facti)"(같은책, <옮긴이의 말>) 증명하려고 한다.

"자본주의 엔진을 작동시키고 유지하는 근본적 충동은 새로운 소비자 물품, 새로운 생산이나 수송방법, 새로운 시장, 기업이 창조하는 새로운 산업조직 등에서 나온다... 이 과정은 '내부로부터' 경제구조를 혁명적으로 꾸준히 변화시키면서,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이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 자본주의의 핵심적 사항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고, 모든 자본주의적 회사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 J. 슘페터, 같은책, <2-7. 창조적 파괴의 과정>, 1942.


1950년에 심징마비로 급사하기 전 미국 경제학회의 강연에서 슘페터는 "나는 사회주의자를 옹호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평생 오류를 지적하려던 마르크스주의와 역설적이게도 동일하게 자본주의가 멸망하고 사회주의로 '전진'한다고 예측했지만, 이는 슘페터가 '사회주의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중반 자본주의를 분석하다보니 불가피하게 "도출된 추론"(같은책, <4-23>)이라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고 슘페터가 활동하던 미국이 이제 본격적으로 전쟁에 개입하려던 1942년부터 그가 사망하기 한 해 전이었던 1949년까지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라는 대표적인 대중서를 꾸준히 증보하고 발표했다.


이 책의 <1부>에서 슘페터는 "미래 예측의 경제이론을 구체화한 최초의 인물"(같은책, <1-3>)인 '마르크스의 이론'(같은책, <1부>)을 '예언자'(<1-1>), '사회학자'(<1-2>), '경제학자'(<1-3>), '역사가'(<1-4>)의 측면에서 살펴보며 마르크스가 예측한 자본주의 특성으로서 '계급투쟁'과 '다수의 궁핍화'가 사실(facti)과 다르다는 점을, 적어도 19세기 마르크스 생전은 몰라도 20세기 당시 슘페터의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틀렸다고 수차례 강조한다. 


'자본주의'를 다룬 이 책의 <2부>에서 슘페터는 자본주의 경제학자이면서도 전혀 자유주의적이지 않게 시장의 '완전 경쟁'을 부정한다. 자본주의는 '합리성'을 추구하나 이를 '자유 시장'이 아닌 대기업 독점과 관료제의 '효율성'을 통해 구현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의 필연적 '독점화' 현상을 '자본주의 최고 단계'로서 '제국주의'로 규정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다르게,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이 대기업 독점과 관료제의 '효율성'으로 인해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스스로 '창조적 파괴'와 '혁명'적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이들 '창조적 파괴'(같은책, <2-7>)의 '기업가 정신'(같은책, <2-9>)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주식회사' 같이 '자본가'로부터 분리된 소유 체제가 '사적 소유'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를 '내부로부터' 변혁시키고 '국유화'로 전환되는 '사회주의'로 이행시킨다는 예측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 배경은 19세기 마르크스주의 '계급투쟁'과 '다수의 궁핍화'가 아니라, 대기업 독점자본의 생산력 발전으로 자본가 1인 소유가 제한되는 한편 부르주아의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실제로 부유해지는 노동자들과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국영화(국유화)'와 누진세 등으로 정책전환하는 20세기 자본주의 현실에 두고 있다. 
슘페터는 20세기에 세계를 장악한 자본주의가 정치경제 체제를 넘어 이미 "문명"(같은책, <2-11>) 자체라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든 기타 체제든 분명 붕괴한다"(같은책,  <1-4>)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슘페터 역시 '자본주의 멸망'을 예언한 점도 있다. 어쨌든 20세기에 자본주의 종언을 예측한 슘페터의 사상은 마치 '21세기 럭셔리 공산주의'를 선언한 현재의 미국 사회사상가 아론 바스타니의 주장과 흡사하다. 공공의 생산재를 모두가 무상으로 공유하는 21세기 자본주의는 '완전히 자동화된 럭셔리 공산주의(사회주의)-FALC(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의 기본 배경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 사회주의 사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배 자본주의 사회가 남겨놓은 풍요로운 환경-경험, 기술, 자원 등-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결정에 따르는 '불확실성'(은)... 사회주의 경제에서 거의 완전하게 사라져 버릴 것이다."
- J. 슘페터, 같은책, <3-16. 사회주의 청사진>, 1942.


'사회주의'에 관해 서술한 이 책의 <3부>에서 슘페터는 '사회주의자'에 다름 아니다. 그가 자본주의 본질적 특성으로 정리한 이 모든 문구들, 즉 대기업 독점과 관료제의 '효율성'으로 인한 '창조적 파괴'의 '기업가 정신'으로 자본주의는 생산발전을 이루지만 '계획경제'일 수가 없기에 "불확실성"(같은책, <3-16>, <3-17>)을 노정한다. 슘페터는 소비에트연방을 '사회주의'로 보지 않는다. 스탈린주의는 제2차 대전에서 '파시즘'과 싸워 이긴 승전국임에도 슘페터에게는 또 다른 '차르 전제권력'이자 '파시즘', '제국주의'에 불과하다. 물론, 영국과 미국을 찬양하던 슘페터로서는 불가피한 관점이기도 하다. 슘페터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 대중정당인 유럽대륙의 사회민주당보다는 영국 노동당의 전후 국영화 정책이 더욱 '사회주의'적이다. 한편으로 북유럽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는 보편적 형태도 아닌 그 지역만의 특성으로 치부된다. "정말로 그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스웨덴 사람들을 수입하여 그 일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같은책, <5-26>)는 참신한 개그가 북유럽 사민주의에 대한 슘페터의 논평이다.
 
결코 '사회주의자'일 수 없는 슘페터에게 '사회주의'는 유럽의 마르크스주의 또는 '과학적 사회주의'로, 심지어 북유럽 사민주의로 한정되어서는 안되었다.
자본주의가 어쩔 수 없이 이행하는 '사회주의'는 "어떤 형태로든 변신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신화 속 신 '프로테우스'(같은책, <3-15>)가 되어야 했다.
자본주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하는 슘페터의 '사회주의' 자체가 '불확실'하다.


그렇게 슘페터는 이 책 <4부>의 '민주주의' 문제로 넘어간다. 슘페터에게 '민주주의는 하나의 "목적"이나 이상이 아니라 당대 현실 속 "하나의 정치적 방법"(같은책, <4-20>)에 불과하다. 
20대에 이미 스승들로부터 "신들로부터 받은 위험한 선물"(같은책, <옮긴이의 말>) 같은 재능을 지녔다던 천재 경제학자 슘페터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 직접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없는 현대 정치에서 불가피했던 20세기 대의 민주주의는 '국민'의 "지적 수준을 가장 낮은 단계로 떨어뜨린다"(같은책, <4-21>). 이런 현상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한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선동'을 통해 '국민'을 호도하고 '마르크스주의' 같이 '폭력'과 '혁명' 따위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천재 슘페터에게 민주주의는 체제를 변혁시키는 무기가 아니다. 그에게 체제 전환은 대중이 주체가 되는 '혁명'의 실천이 아니다. 슘페터에게 오로지 유일한 '변혁'은 자본주의 '합리성'과 대기업 독점 및 관료제의 '효율성'에 기반한 '창조적 파괴'의 '기업가 정신' 뿐이다.

'신이 내린 위험한 선물'인 천재 슘페터에게 '계급투쟁' 대신 "계급들의 공생"(같은책, <2-12>)만이 보이고, '계급' 대신 "국민의 의지"(같은책, <4-22>)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는 필수가 아닐 수도 있으며,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는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같은책, <4-23>). '사회민주주의'든 '민주적 사회주의'든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반드시 함께 작동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기업 독점과 관료제의 '효율성'이 체제 변혁을 '선동'하는 '민주주의'보다 더 '국민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 사회주의 경제의 '효과적 관리'는 '공장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아니라 그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를 의미한다."
- J. 슘페터, 같은책, <4-23. 도출된 추론>, 1942.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창조적 파괴'의 주체를 불안정한 노동조건 속에서 착취당하는 다수 노동계급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으로 대체하면서 자본의 논리를 은폐하려던 슘페터는 19세기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한편, 20세기 초중반 당시 경제학자도 아니면서 '천재 경제학자'인 본인보다 더 유명해진 케인즈를 자본주의 생산발전을 회의적으로 의심하는 "정체론자"(같은책, <4-28>)로 규정하며 역시 비판한다. 
비록 '사회주의'를 마지 못해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나마 케인즈주의 또한 마르크스주의 못지 않게 깔아뭉개 줘야 천재 경제학자인 슘페터 본인이 유일한 '천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르겠다.

동의할 만한 내용이 별로 없는 주장을 읽느라 힘들었다. 역시 내게 '경제학'은 재미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남은 것은 한 가지 있다.
다음 읽을 책으로 '천재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가 그리도 견제하고 싶어했던, 경제학자도 아니면서 그 분야에서 또 다른 천재로 인정받은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대표작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1936)을 선택한 것이다.

둘 다 마르크스주의를 싫어했지만,
왠지 케인즈는 슘페터보다는 읽어줄 만 할 것 같다는 기대와 함께 이제 책장을 열고 케인즈의 말을 직접 한 번 들어봐야겠다.

***

1.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1942), Joseph Alois Schumpeter, 이종인 옮김, <북길드>, 2016.
2.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1936), John Maynard Keynes, 조순 옮김, <비봉출판사>, 1985~2020.
3.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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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 선순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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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우리의 요구, 노동시간 단축!
-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데이비드 하비, 2020.


"... 마르크스가 되풀이해서 말하는 핵심 중의 핵심... 개인의 자유와 해방의 진정한 뿌리는 하루에 6시간 노동을 통한 집단적 행동으로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고 나머지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이 바로 대안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동력과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순간입니다."
-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19장>, 데이비드 하비, 2020.


19세기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급성장하면서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하는 대다수 도시 노동계급(프롤레타리아트)의 집단적이고 계급적인 권리투쟁의 쟁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바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 보통선거권 쟁취'다. 
전자는 산업 내 노동조합을 통해 경제투쟁의 성격으로, 후자는 노동자 진보정당을 무기로 한 정치투쟁의 형태로 나타났다. 현실적으로 유럽에서는 제조와 철도 등 산업별노조를 중심으로 '하루 8시간 노동'을 외쳤고, 노동자 생활개선을 위해 각국 사회민주당(사민당)과 노동당이 '(남성) 노동자 보통선거권'을 주장했다.
지금은 하루 8시간 노동제는 확보되었고, 남녀불문 노동자 보통선거권은 당연한 시대다.

그럼에도 노동인권 개선에서 굵직한 이 두 가지 쟁점은 여전하다.

노동시간은 하루 6시간 또는 주 35시간 이하로 줄어야 하며, 보통선거권을 얻는 연령은 더 낮춰져야 한다.
후자는 민중들의 보편적 인권의 확대 문제이고,
전자의 '노동시간 단축'은 '개인의 자유'의 확장 문제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여는 전제조건이다.


"필요의 영역이 제대로 관리될 때만 자유의 영역이 극대화... 사회주의의 임무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회주의의 임무는 기본적인 생필품들이 제대로 관리되어, 즉 '무료'로 공급되어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6장>, 데이비드 하비, 2020.


영국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 1935~)는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 석학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미국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인류학 교수로 일하는 그가 2018년부터 진행한다는 팟캐스트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었는데, 원제목은 [The Anti-Capitalist Chronicles(반자본주의 연대기)](2020)이고, 국역은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2021)이다. 따라서 이 '연대기(chronicles)'는 '신자유주의'의 간략한 역사는 물론 더 근본적으로 노동을 생산수단으로부터 폭력적으로 강제분리시킨 원시적인 자본의 '본원축적'의 역사 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근거로 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 역사만 돌아보아도 자본주의 체제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이 책은 2008년부터 불거진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세계적인 대규모 저항운동을 계기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장의 자유' 및 '공공재의 민영화' 등을 신성시하는 '신자유주의'만이 아니다. 
우리 다수 민중들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제목이 '반신자유주의(Anti-Neoliberalism)'가 아닌 '반자본주의(Anti-Capitalism)'인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분석과 비판을 위해 하비가 뿌리박은 근거는 흔들림없는 마르크스주의다. 그렇지만 학술적이지는 않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1장의 상품생산과 노동의 생산으로부터 '소외' 및 잉여가치 확대와 본원적 자본축적, 2장의 자본의 확대재생산과 3장의 평균이윤율 하락의 경향 등을 2020년 이후 코로나 상황 속에서 쉽게 적용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혁명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나긴 여정입니다."
- 데이비드 하비, 같은책, <1장>, 2020.


물론, 마르크스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는 신자유주의 문제점을 지적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당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비 또한 반자본주의 관점을 취한다 해서 당장 자본을 없애고 체제를 뒤엎는 '혁명'을 말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19세기 마르크스 시대와 달리 현대의 다수 민중들은 자본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세계화된 세상에서 운송과 이동, SNS와 각종 소비생활 일체가 자본의 세계적 운동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비는 이를 자본의 '소비-보상주의'라고 하며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이를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조차도 이미 자본의 운동범위 내의 산업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저자는 전통적인 제조-금속산업의 조직노동은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비정규 서비스 및 돌봄노동 영역과 항공업으로 대표되는 현대적 운송노동 영역(마르크스의 시대 19세기에는 철도) 다수를 차지하는 인종적, 성별적, 사회적 약자들의 불안정노동에 주목한다.

이들 새로운 다수 노동계급을 주체화하면서 현재 코로나 위기 같은 자본주의적 근본위기가 결합된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자 데이비드 하비는 다시금 '노동시간 단축'을 꺼내든다.
즉, 마르크스가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위해 주체로 세운 노동계급의 '집단적 조직운동'은 집단주의 또는 전체주의적 운동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목표로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마르크스가 1848년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선언]을 발표하면서 제출한 신세계의 모습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었다는 사실의 재확인인 것이다. 물론 이 개인들의 '자유'는 부르주아의 법적 '자유'만이 아닌 실질적 '자유'로서 '필요'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수다. 따라서 이윤율은 자본의 그 비교총량이 늘어난 결과 하락하는 경향은 입증되지만 이윤의 총량 자체가 어마어마한 현대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 이상의 생산은 기후위기와 체제모순만을 노정하기에 다시금 다수 노동계급으로의 분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루 6시간 노동하고 남는 시간을 자본을 위한 것이 아닌 개인의 '자유시간'과 세상을 바꾸는 연대로 채우자는 이 주장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4년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아침에는 일하고 낮에는 낚시하며 밤에는 독서하는' 이상사회를 되풀이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본의 탐욕으로 발호한 기후재앙과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맞게 된 노동시간 단축과 사회적 거리두기 국면을 '반자본주의'라는 집단적 조직운동으로 전환하자는 현대화된 사회주의 운동이다.
새롭게 주체화되는 불안정 노동의 집단적 실천은,
노동시간의 단축과 공공재의 무상공유를 요구하며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자본을 통제한다.
그렇게 '혁명'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기나긴 여정'으로 실현된다.


조금씩, 그러나 혁명적으로 전진해보자.
노동시간 단축을 지속 실현하고 우리 다수가 생산 및 소비하는 공공재 일체의 무상화(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운송, 무상SNS)를 주장하며 일 끝내고 남는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놀아보자. 
어차피 자본은 그 운동 고유의 근본원리상 그런 주장도 실천도 할 수 없다. 
세상을 서서히, 그러나 혁명적으로 바꿔나가는 주체는 지금도 변함없이 이 세상을 만든 다수 노동계급일 수 밖에 없다.

여전히 '노동시간 단축'은,
대다수 노동계급의 최대 요구사항이다.

***

1.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The Anti-Capitalist Chronicles)](2020), David Harvey, 강윤혜 옮김, <선순환>, 2021.
2.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3.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The Socialist Manifesto)](2019), Bhaska Sunkara,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편집부 옮김, 2021.
4.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 마르크스/엥겔스, 1848.
5.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6. [자본론 공부], 김수행, <돌베개>, 2014.
7.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김수행, <한울>, 2012.
8. [자본론] 1권(1867), K. Marx,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89~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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