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 - 국가 채무와 증세 문제, 양극화의 해법과 복지 논쟁까지
변양균 지음 / 바다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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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제가 어렵다 내수가 어렵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 아마 그 말은 우리가 해방 이후 계속된 말이고, 해방이전 일제총독부 시절과 조선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은 언제나 그 가난이란 짊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언제나 인간들은 자신의 욕망을 타인에게 투명해보거나 그 투명에 따라 자신이 마치 이룬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그 착각의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자는 결국 자신이 아닌 타인이라는 점에서 다시금 현실의 자아를 되찾고, 거기에서 비판적 사고보다는 또 다른 욕망의 대상자를 찾아 떠난다.

 

그런 점들은 많은 현실의 왜곡된 모습에서 우리는 볼 수 있다. 가령 재벌비리가 터져도 그 재벌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적 시야보다는 그저 넘어가주자는 식이다. 만일 그 비리나 부정한 사례가 일반 국민이나 힘없는 서민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단 일절의 친절과 배려는 있을까? 한 번 나는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무의식적 욕망에 대한 신화적인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원리에 대한 구체적 절차구명은 매우 어려울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에 대한 핵심적 요약문은 이미 정해져있다. 나도 거기에 갈 수 있다는 혹은 내 자식들이 거기에 갈 수 있다는 희망고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희망고문 아래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을 인정하는 것보단 그 벽을 타고 올라가려고 한다. 문제는 벽의 높이는 사람이 일정한 시간을 두고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아니라 무한대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이나 환경은 다르나 넘고자 하는 장벽의 높이는 각 개인에게 맞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장벽에 맞출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정된 공간에 높은 장벽에서 누구나 탈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그곳에 가기를 열망하고 또 열망한다. 현실에서는 계속 아웃-소싱으로 인원을 줄이고, 정규직보단 비정규직, 국내보단 국외로 나가는 현상 속에서 계속 멈추지 않은 신화의 열기에 식을 줄 모른다. 남은 모르지만 우리 아이는 될 것이고 말이다. 결국 그 아이가 각 개인이 모이고 모이면 수천 내지 수만의 개인이 생길 것이고, 그들은 자기와 같은 얼굴을 가진 자를 두고 싸워야 한다.

 

거울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더니 인상을 찌푸리면서 비난하는 것과 같다. 결국 자기 살만 깎아먹는 경제정신이 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요새 한참 유행이 되어가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올라온 건 2012년이다. 그렇지만 막상 경제민주화는 1980년대도 확연히 존재했다고 한다. 노동착취와 임금저하로 인해 그 자본을 독식하는 경제구조에서 경제민주화란 이미 그때부터 추구해온 가치다.

 

자본주의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력, 즉 돈이다. 문제는 자본의 차이에 따라 그 임금을 받아가는 가장과 식솔들의 삶이 현저하게 차이나는 점이다. 그나마 그때는 3저 현상이라 물가, 금리, 원유 등이 저렴하여 경제성장에 큰 차질이 없었다. 수출주도형 국가라는 점에서 원자재를 수입하여 가공 후 수출하는 한국경제구조로 본다면 당시로는 이 정도로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IMF 금융위기와 더불어 원유가격 상승, 원자재 가격 폭등 등은 무역으로 의존하는 한국으로서 심각한 딜레마가 아닐 수가 없었다.

 

IMF만 생각해도 끔찍한 것 같았다.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일자리 고민에 빠지고, 생계에 힘겨워 하던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게다가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경제회생에 대한 안전장치마저 위협 당했다. 문제는 그 모든 부담은 모두 평범한 국민들에게 갔다는 점이다. IMF 금융위기 시절 대기업을 비롯한 대형업체들은 IMF 시기에도 국가적으로 지원을 받았고, 이제는 그 위기에서 탈출하자 공룡기업이 되었다.

 

중소기업이 줄어들고, 일자리도 부족하고, 임금도 불안하다. 대기업 위주성장의 한계점이 무엇이냐면, 대기업에서 고용을 늘리는 것이 아닌 점과 많은 서민들은 오히려 중소기업에 많이 고용되어야 할 형편이다. 중소기업이 임금저하와 근무조건이 좋지 않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여 중소기업에서 인력부족, 취업자들은 일자리부족이란 아이러니로서 보인다.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출주도형 국가란 점에서 사람에 대한 인적자본은 우선시해야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인적자본을 양성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될까?

 

한국에서 수출을 주도하기 때문에 기술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기술발전사업을 국가에서 하는 것도 한계점이 있으며, 대기업에서도 할 수 있는 영역도 한계가 있다. 결국 중소기업 연구소로 하여금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키어 신자유주의 세계무역체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기술력의 발전은 결국 대량생산을 얼마나 작은 투자금액으로 대규모의 효과를 보는가이다. 그 효과에서 인력에 대한 임금은 분명 회사 입장에서는 축소해야할 목표일 것이다. 한국의 생산품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구조에서 이제 점차 서비스로 변모하고 있다.

 

생산직이 서비스직으로 이직되면서 같은 업종이 서로 경쟁하여 다시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빠진다. 게다가 골목상가의 소규모 자영업자에게 대기업의 상업적 도전은 결국 국민 전체로 하여금 경제구조의 위기로 몰린다. 우선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동의하는 점들은 대기업들이 자본을 순환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시장이 계속 유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어느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가 조건 되지 않을 시에는 대기업의 상품은 결국 재고품이 되고, 소비는 없이 생산만 하여 상품이 돌지 않을 시 공황이라는 경제적 문제가 발생된다.

 

공황은 결국 기업, 국가, 국민 모두 죽음의 나락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국에서 이미 서민층들은 경제적 타격을 입었고, 그 후에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음을 뉴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라는 세계경제체계에 그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국내와 동일하게 할 경우 국내 시장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지금 그런 문제가 실제로 일어났고, 그 문제로 국회와 정부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계속 가정 부채는 늘어가고 있다는 통계수치에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 하는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 경제민주화에 대한 실천적 과제를 이미 지난 참여정부 시절에 내놓았다는 점이다. 당시 내가 군복무를 하는 시절이었기에 어떻게까지 여론이 매몰차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단지 이 책이나 다른 책에서 보듯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란 칭호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 2007년 국민소득은 21,000 달러를 넘었고, 지금 그 정권이 이양 된지 5년이 다 되어도 그 수치는 변동이 없다.

 

그러면 경포대에서 대통령은 경제를 포기를 했는가? 아니면 경제를 포지티브를 했는가? 이 책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지라고 했다. 왜 복지인가? 단순히 복지를 지원에 대한 막연한 포퓰리즘이 아니라, 먼 미래를 보고 구조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대안으로 가기를 원했다. 최근 청년실업난에 일자리 부족에서 취업희망자에 대해 일자리를 늘려주는 것이 문제다. 제일 중요한 사항은 지금 1번 들어간 것이 아니라 적정 수준의 임금에 직업의 지속성이 얼마나 부여되느냐이다.

 

한국의 최고 고질병 중에 하나가 유아출산저하와 노인고령화이다. 일한 사람들은 없어지고, 노인들조차도 노동시간이 늘어간다. 출산 후 육아문제로 영유가 부족해질 경우, 먼 미래 군부대에서 근무할 군인이 부족해 국방전력에도 큰 부담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나라에서 가장 투자할 대상은 사람이라는 점이고, 그것은 복지라는 필수불가결적인 선택지이다. 최근 복지에 대하여 반대하던 세력도 복지를 외치고 있다. 그 이유는 최근 물가상승과 더불어 집세가 너무 비싼 이유다. 아파트 1채를 구매하기 위해 부부가 돈을 빌려서 십 년 가까이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남편 혼자 벌어 생계가 가능한 가정경제구조가 이제부터는 부부가 벌어서 같이 해결해야하는 실정이다. 물론 여성의 경제참여도가 여성 사회참여에 대한 점에서 긍정적이나, 그렇게 참여해도 실제 서민경제에 큰 발전이 없는 것 역시 문제라는 점이다. 그런다고 해서 무조건 복지만 우선하란 것이 아니다. 그 복지로 통해 경제성장을 보게 하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이나 학생들이 대학교까지 진학하여 고급기술과 전문지식을 쌓고, 그것을 바탕으로 산업체나 연구소, 행정업무에 사용하면 그것 역시 경제적 효과로 볼 수 있다.

 

그들로 하여금 자유경제시장에 대응이 될 수 있는 인재육성은 시장경제에서 보자면 플러스면 플러스지,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다. 우수한 인재가 많아야 국가경쟁력이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연구자들의 성과에 의해서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원의 고갈과 에너지의 부족, 환경오염에 대한 심각함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는 오로지 인간의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그것을 복지적 정책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환경공학 전공자의 눈에 본다면 한국은 도시와 농촌의 개발의 차이로 인해 도시가 점차 과잉 성장했고, 농촌은 사람들이 얼마 살지 않을 정도로 황폐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 도시개발을 이루어지고 있는 점에서 더 이상 한국은 개발위주로 산업구조가 아니라 관리유지 산업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 생산의 이윤보다는 오히려 관리유지라는 지속적 안정적 이윤이 더 효율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비스 산업을 단순히 옆집 통닭, 피자집, 미용실 같은 것으로 동네방네 꾸밀 수는 없다.

 

일자리를 늘려주면서 같은 직종의 경쟁자들로 인해 피해가 가지 않은 폭 넓은 경제구조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은 경제만 보는 게 아니라 사회, 문화, 체육, 교육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로 봐야 한다. 각 항목마다 경제라는 칭호가 붙지 않아도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경제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 외의 다른 시야도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것의 기초는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인 소양이다. 흔히 착각하는 것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은 손을 강조하는데, 적어도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사람들의 시장 자유에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정하자. 어느 사람이 빵을 사는 이유는 그 빵집가게가 장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계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는 그 빵집을 사려는 사람처럼 그 빵을 제대로 살 수 있는 여건이 잘 구비되어 있는가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의 자유에서 윤리성을 강조했지만, 지금의 경제에서 윤리성은 없이 야만이란 폭식만 존재한다.

 

노무현이 추구한 따뜻한 경제학에서 생각해보면, 그는 언제나 보수진영에선 좌파대통령, 진보진영에선 신자유주의 신봉자라고 했다. 사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보력과 대응력이 안이했다. 이미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이후 세계의 냉전구조가 탈이데올로기로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자체가 확고한 이데올로기로 되었고, 그것은 자본주의의 승리로 이어진 것과 다시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를 부른 것이다. 그런다고 하여 재벌들에게 모든 이윤이 돌아갈 경우 국가에서는 재벌에게만 세금을 거둘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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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평전 - 지울 수 없는 얼굴, 꿈을 남기고 간 대통령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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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유시민 전 장관이 집필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를 읽은 것과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하여 수많은 서적들이 20095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편찬되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막상 다른 도서를 다 읽어보아도 노무현에 대한 서적에서는 유시민의 도서보다 좋은 도서가 없었다. 특히 그의 일대기의 기록에서 수많은 자료와 증언, 그가 남긴 유언까지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막상 생각해보면 노무현에 대한 도서 중에는 주로 일대기와 추모에 대한 글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추모에 대한 글에서는 자기가 직접 옆에 두던 인물부터 주변에 있던 국민들까지 이루어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점과 죽음을 받아들일망정 정말 그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의 노제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이별사로 죽어도 죽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다해 노무현의 육체는 수원의 작은 소각장에서 그 한 맺힌 연기 사이로 올라가고, 남은 분골들은 그가 사랑하던 봉하마을 산자락에 위치한 정토원에 모셔지게 되었다. 아무리 고향으로 내려가고, 고향에서 모든 것을 살아보려고 했다고 하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 너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무덤이었다.

 

그의 묘자락에는 어느덧 작은 비석이 쌓이고, 해마다 매일매일 많은 조문객들이 그의 비석 아래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한탄하며 돌아간다. 그가 국정을 정말 잘 했던지 혹은 잘 하지 못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허망한 죽음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는 항상 자신을 두고 그렇게 말했다.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의 개인적 역사와 우리 한국의 역사,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의 역사는 항상 움직이는 톱니바퀴처럼 쉴 새 없이 맞물려갔다.

 

인과관계가 마치 어긋나더라도 그 어긋남이 다시 그 자체로서 질서가 되는 비합리적인 시공간 속에서 인과관계라는 것은 정말 인간의 합리적 이성의 존재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인지? 아니라면 비이성의 광기가 마치 하나의 정당화되어버린 광기의 신화가 되어 신성화되었는지는 조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계몽주의라는 이름 아래 정말 우리는 이성적으로 계몽을 했는가? 아니면 한 번 변화를 주었다고 거기서 모든 변화는 처음과 끝도 없이 정해야 하는가?

 

늘 우리 사회는 그런 시대적인 흐름과 인식의 전환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나아가야 했지만, 더디게 흘러가고 있었으며, 오히려 그것을 논하려고 하는 자에게 동의의 박수보다는 폭력의 주먹만 들어올 뿐이다. 노무현이라는 인간은 바로 그 세계에서 온 몸으로 세상을 맞이한 사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두고 바보라고 한다. 바보, 바보, 바보, 정말 그는 바보 중에 바보였다. 바보는 정말 아무 것도 몰라서 바보가 아니라 알면서도 그러는 것을 바보라고 한다.

 

뻔히 알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잘 알고,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합리적인 이익이 오는지 알면서 그걸 버려두고, 아무런 이익도 명예도 없는 허허벌판에 뛰어든 것이다. 그의 주요 무대는 전국구보다는 부산, 울산과 같은 경상남도 권역이었다. 경남지역이란 점에서 수도권에 비해 더 열악하고, 교육적, 문화적, 사회적 여건도 열악했다. 많은 공장들이 즐비한 시절 그의 활동들은 솔직히 보는 내내 괴로웠다.

 

오늘날의 근로자들은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그렇지 못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 어선이나 무역선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그 속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업무시간 과대와 노동착취를 항시 부당하게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조선소 안에 제대로 된 시설도 없이 힘들게 노동하는 자들을 보노라면 아직 내가 어린 시절이나 지금 어른이 되어도 별반 차이점은 모르겠다.

 

물론 임금 정도는 좋아졌을지도 모르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과 아웃소싱은 결국 임금감축과 상위회사에서 헐값이 덤핑으로 후려 깎을 수도 있다. 그나마 지금 4대보험이 어느 정도 기반이 되어있고, 산업재해 역시 예전보다 나은 보장도 들어섰다. 그런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당시는 더욱 치열했다. 노무현이 처음 국회의원이 되어 5공 청문회 스타가 된 것도 있지만, 원진 레이온 사건을 잊을 수 없다.

 

바보 노무현이란 도서에서 어느 소녀가 자기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눈물로서 호소할 때 그의 가슴은 막막했다. 그 소녀의 아버지는 이산화황산에 중독되어 신경계가 파괴된 것이다. 알 수 없는 표정에 눈물을 흘리며 말도 제대로 못한 그 가장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희생된 자와 그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과 고뇌로서 버터야 했는가? 이제 15세 소년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중금속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났으니,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그저 눈먼 환상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강진 유배생활 하던 시절, 강진군 어느 갈밭 농부의 아내가 피 붙은 남근을 들고 관아에 찾아갔다. 이른바 백골난포, 황구첨정이라고 불리는 죽은 시아버지와 아직 배냇물도 마르지 않은 아이까지 군포세를 거두는 것으로 그 세금을 내지 못한 농민은 자신이 애를 놓은 것이 죄라며, 칼로 자신의 남근을 베었다. 그런 사연을 안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애절양이란 시를 지으며, 그 농민을 애도하고 자신의 무력함에 슬퍼했는데, 이때 이 글귀가 생각났다. “너나 할 것 없이 한 백성인데 어찌하여 후하고 박한 거냐.”

 

정말 박하고 후한 그 모습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살던 조선이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무현은 바로 그런 세상을 조금 바꾸고 싶었다. 자신부터 먼저 못 먹고 못 살고 가난한 점에서 고등학교 판사출신으로 입성하려 했지만, 변호사 전업 이후 부림사건으로 시대에 대한 모순에 자신의 운명을 달리한다. 그의 법조인으로서 우선 상대주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열악한 기반은 상대주의적인 요소이고, 그리고 철학이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은 에티카 즉 윤리학이다. 윤리 그것은 무엇인가? 남의 입장을 생각하고 남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그것을 개선해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타인에 대한 관용과 대화와 소통으로 풀어가야 하며, 게다가 국민들은 자신의 의지로서 국가를 이끌어가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국민의 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통치기구로 전락한 점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는 의미를 상실했다. 그는 그런 현실이 싫었고, 자신에게 가장 엄하고, 주변에게도 당부했다. 그러나 피칠 못할 사정으로 누가 생기면, 그 누구라도 먼저 대신하여 앞에 나서서 국민 머리 앞에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고, 누구보다 더 자신의 과오를 밝히고 인정했다.

 

그것이 자신이 하지 않았던 것마저도 말이다. 그는 평생 그렇게 혼자 세상을 싸워갔다. 독재정권과 군사정권부터 시작하여 같은 민주세력 안에서도 지방사람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었으며, 심지어 대통령이 되어도 각 여론과 정치인들에게 외면당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해갔다. 경포대라고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란 말을 마구 상대당과 족벌언론에서 떠들어댔지만, 오히려 그의 집권 시기에 2만 달러 GNI의 돌파와 경상수지 흑자는 지금에 와서도 조작할 수 없는 기록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그를 진실로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말꼬리를 잡기, 아니면 말고, 한번 흔들기, 조작하기로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은퇴 후에도 시골에서 농사짓던 어느 노인을 가만 두지 못한 채 끊임없이 흔들어 대었다. 아직 사실도 아닌 의혹을 부풀리고, 그 의혹이 마치 사실처럼 족벌신문에 나가고, 망신주기를 재미로 보던 그 간사함으로 그는 몸을 던졌다. 자살을 한 것이다. 자살이란 그냥 단순히 자신이 선택한 죽음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한다. 그는 정치적인 활동으로 인한 죽음이기에 정치적 타살이었다.

 

노무현의 이상은 시민사회 국가의 설립이었다. 市民 어떻게 보면 부산광역시, 서울특별시 등과 같이 살아가는 시민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폴리스국가의 그 시민이다. 자신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고 운영하는 국민 한 사람이 정치적 지도자적 자질을 갖춘 그것이 시민이다. 어떻게 보면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가 사람을 3가지로 보는데, 대중(mass), 선동가(mobs), 시민(people, 책에서는 인민)으로 구분했다.

 

노무현이 원한 사람들은 바로 시민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존 롤즈라는 미국 정치적 자유주의적으로 글을 적은 철학자의 도서에서도 그런 점을 추구한 점을 알 수 있다. 만민법(The Law of Peoples)이란 도서를 보면 존 롤즈라는 철학자가 독일 관념철학의 대부인 임마누엘 칸트의 구성주의적 자유주의를 추구하여, 만민법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단순히 어느 나라만의 시민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시민이었다.

 

평화와 공존, 공공선보다는 공동선으로서 좀 더 넓은 시야로 보이기를 바랐다. 상대주의 철학과 시민주의를 꿈꾸는 노무현의 사상을 보면 롤즈의 철학과 많은 연관성이 보인다. 그리고 롤즈의 철학에 영향을 준 칸트 이외에 존 스튜어트 밀을 본다면, 존 스튜어트 밀 역시 공리주의적 자유주의자로서 당시 영국의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 소외된 사람의 인권을 중시하고 개선하려 했다. 노무현의 정치철학은 바로 정치적 자유주의를 추구했으며, 최소 수혜자들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려고 했던 점이 보인다. 최근 롤즈의 도서를 보면서 노무현의 정치적 노선이 바로 그런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현실 속의 인간이 아니라 우리 관념 속에 형이상학적 영역에 놓인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죽어도 죽지 않은 인간이라고 했는가? 혹은 그는 새로운 신화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신화는 억압, 욕망, 해방이란 단어가 이래저래 들어가 있다. 그의 신화는 억압된 현실에서 해방하고 싶은 욕망의 신화일 것이다.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보편적 인권을 누리는 세계를 말이다.

 

ps 끝으로 이 책의 문제점은 너무 오타와 잘못된 내용이 많이 들어간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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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드립니다 -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 에세이
문재인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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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 사람에 대한 인격과 수준 그리고 사유를 알려면 그 사람과 대화하기 전에 그 사람의 서재를 찾아가 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생각이 그 서재에 의해 존립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서재와 혹은 그 사람이 읽고 있는 책으로 통해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들을 보고, 그와 대화를 시작하면 무엇을 생각하고 하고 싶은지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대통령 선거후보로 나온 문재인 의원의 책 역시 문재인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서 그가 의자에 앉아 보고 있던 서적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牧民心書)였다. 정약용이라고 하면 한국 철학사와 과학사 심지어 온갖 학문 영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위대한 정치인이기도 하며, 사상가였으며, 그 누구보다 백성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절망과 한탄을 안고 살아간 지식인이다. 그의 기록 중에서 나 역시 잊지 못할 사연들이 구구절절 떠오른다. 그가 강진에서 억울한 유배생활을 할 때 어느 농민의 비극을 본다. 한 농민이 군포세를 내지 못해 집안에 있던 소 한 마리를 강제로 관청에 빼앗긴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몫이 아닌 돌아가신 아버지의 군포로서 말이다. 농민은 기가 막혀 너무 분해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베었고, 그 농민의 아내는 고통스럽게 울면서 방에 쓰러져 있던 남편을 보면서 그 울분과 서러움에 한이 맺힌 채 남편의 성기를 들고 관아에 찾아갔다. 관아에 찾아간 아낙네는 잘라진 남편의 성기에 의해 손이 흥건히 피로 물들였으나, 그 누구도 아낙네의 원망과 슬픔을 받아주지 않았다. 관청의 담은 높지 않았으나 그 어떤 벽보다 높고 다가설 수 없었다. 결국 아낙네는 힘없이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는 실화다.

 

정약용은 그 사건을 보면서 애절양(哀絶陽)이란 시를 지어 그들을 생각했다. 지금의 한 고전국문학에서는 이 시조는 매우 가치가 높은 작품이나, 당시 백성들이 겪던 그 고통은 지금 읽어도 내 가슴을 후빈다. 그렇게 힘없는 약자를 생각하고 살아가려한 다산 정약용을 문재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1표2서에서 대표적인 서적 목민심서는 당시 관리만 아니라 지금의 관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이다.

 

물론 문재인은 칸트의 추구한 이성을 중시한 것 같았다. 칸트는 나이 80세 동안 자신이 태어난 고향 쾨니히베르크에서 한발작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칸트는 자유를 위해서는 인간에게 이성이 중시되어야 했고, 그 이성으로 하여금 타인에게 선을 추구하는 실천이성을 중시했다. 문재인이 중시하는 이성이란 상식이 통하고, 서로간의 합의와 대화를 추구하는 세상일 것이다. 그런 그가 전해주고픈 이야기라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춘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자신과 함께 살아가야할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누구나 낙오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의 서민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그것을 피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간다. 그러나 잘 풀리지 않거나 오히려 길의 끝에 몰려 절망의 눈물을 흘린다. 문재인은 그런 삶이라도 좋고, 뒤틀린 길에서 넘어져도 좋다고 했다.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고, 그 길에서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끔 절망과 낙담한 심정을 보내고 있다. 꿈이란 무엇인지? 뭐든지 한 가지 목표로서 그 기준에 미달되면 인간적인 가치에서 탈락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 모두 개인에게 소중하고도 존귀한 생명이고 이성적 주체이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뭔가 군중 속에 고독을 겪는 아쉬움에서 우리의 모습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돈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필요하고, 서로간의 약속과 신뢰로 살아가야 할 사랑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두가 현실의 벽에 막힌다면 얼마나 청춘들에게 큰 좌절일까? 많은 청춘들은 그런 모순과 왜곡된 현실에서 처음에 분노와 반항을 느끼나 어느 순간 그 모순과 왜곡을 생산하는 주체자로 전도된다. 반복되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좌절, 이 모든 것은 영원히 이어갈 수밖에 없는 숙제인가?

 

오늘날의 청춘은 먼 미래의 청춘의 어른이다. 거울 앞에 선 청춘이 언젠가 그 후를 이어갈 청춘에게도 큰 벽이 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문재인의 글이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권위 있어 보이려는 애쓰는 사람보다,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는 사람이 훨씬 권위 있어 보입니다.” 라고 말이다. 청춘들에게 길이 막힌 이유는 그 권위라는 벽에서 시작됨을 알고 있던 것이다. 자신도 그런 벽에 의해 살아왔고, 그것도 깨닫지 못한 채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았던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은 스스로의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기쁨, 슬픔, 좌절, 눈물, 절망, 희망, 실수 등을 솔직한 심정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반성으로 통해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남을 배려하고, 그 배려로 타인과 소통하고, 그것으로 통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자신에게만 혹은 우리들에게만 사랑을 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웃이 아닌 자들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곳에 어느 이는 굶고 어느 이는 추위에 떨며 어느 이는 절망으로 지낼 수 있다. 그들을 관용적인 자세로 대하고, 불평등한 것 자체를 인정함으로 좀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노력하고 서로 미소 짓는 삶, 어떻게 보면 쉬울 것 같으나 생각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첫걸음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다. 가다보면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 하지만 그 일어서는 자에게 우리 사회의 온정은 너무나도 각박하다. 그래도 문재인은 괜찮다고 한다. 자신이 아무리 쓰러져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교훈으로 삼으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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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당한 혁명
레온 뜨로츠키 지음, 김성훈 옮김 / 갈무리 / 199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탈린은 관료집단의 인격화이다. 실제로 관료집단은 그이 정치적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이 문장은 1936년 레온 트로츠키가 저술한 “배반당한 혁명”에 나온 문구다. 트로츠키는 평생을 파시즘에 대항하여 싸웠고, 이긴 적도 있으나 결국 그 파시즘에 의해 죽고 만다. 그의 이름은 조지 오웰의 <1984>의 골드스타인이나 혹은 <동물농장>의 스노볼처럼 모든 평화를 깨는 원흉이자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역사적으로 패배라고 판단했을지 모르나, 21세기에서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경쟁에선 결국 트로츠키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 쪽은 1940년 8월 피켈에 의해 살해당했고, 한쪽은 1953년 3월에 나이가 들어 죽었다. 그 전자의 죽음은 당연히 스탈린이 고용한 자객에 의해서이다. 프랑스 최고배우인 알랑 드롱이 출연한 영화 <트로츠키 암살사건>에서 나오듯이 트로츠키의 죽음은 매우 준비된 죽음이란 점이다. 트로츠키가 죽음으로서 스탈린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또한 스탈린의 죽음은 한국의 동족잔상비극인 625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2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큰 여파를 줄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스탈린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트로츠키의 존재는 알 수 없다. 그 만큼 트로츠키의 영향력은 없어 보이나, 그를 진정으로 알아본다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줄 알 것이다. 그것은 <1984>에서 윈스턴 스미스가 오브라이언과 대화하면서 빅 브라더가 두려워할만한 골드스타인의 저작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그 책은 바로 <배반당한 혁명>이다. 이 책이 왜 이렇게 무서운 도서인가?

 

일단 <배반당한 혁명>의 저술목적은 1905년과 1917년 러시아에서 차르체제에 불만을 품어 혁명이 일어난다. 전자의 원인은 러일전쟁이고, 후자의 경우는 1차 세계대전이다. 전쟁과 혁명이 연결되는 이유는 전쟁의 모든 폐해를 지도상층부가 아니라 하층서민들이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 롤즈가 <만민법>에서 주장하듯이 전쟁의 모든 책임은 정치가와 장교에게 있어야 하며, 사병에게 그 대가를 물으면 안되는 점이다. 그 이유는 전쟁의 발단은 정치가와 장교들에 의해서고 사병에겐 전쟁에 대한 개전권이나 응전권이 없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단순히 전쟁에 참가하여 적에 향하여 총알을 날릴 수 있는 권한이다. 즉 사람을 직접 앞에서 죽이거나 혹은 죽임을 당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전쟁은 바로 누군가의 자유를 선사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희생하여 자신들만의 자유를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를 위해 타국에 지원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 자유를 짓밟는 행위가 되었다. 멀쩡한 국가에 침공해 그 나라의 이념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영역에 대립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전쟁이야말로 진정한 통치권을 확실히 굳힐 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이 필요할 때도 있다. 자기국가에 대한 주권확립을 위해 외국의 침입이나 불법적인 군사쿠데타에 대한 위협에서 가능하다. 트로츠키의 러시아혁명에서는 차르체제의 해체와 동시에 차르체제 아래 호사를 누린 백위군들이 외국세력의 지원을 받고 다시 러시아 내전을 벌일 때, 그 전쟁은 진실로 러시아 국민을 위해 해야 할 과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부터 문제였다. 트로츠키는 군대라는 조직이 결국 특권층을 형성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그런다고 전쟁의 위기에 군대가 상실되면 안 된다.

 

단지 군대란 계급을 나누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주권확립을 위한 체계라는 점이다. 전쟁에서 가장 큰 희생양은 당시 유럽에서는 농민과 노동자다. 이들에겐 지휘권이 없으면 병사로서 그저 뛰어들 뿐이다. 1917년 2월 혁명의 동기는 바로 1차 세계대전의 문제다.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은 무능한 지휘관 덕분으로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수백만 명이나 희생당해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전쟁물자 동원이란 명목아래 거리에 식빵을 구하기 위해 여성들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시골의 경우 문맹과 제도의 혜택마저 박탈당했다. 특히 식량원조로 곡식과 가축을 약탈당하고, 남자들마저 징집되니 불만이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

 

혁명의 원인은 바로 애국심이 아니라 조국에 대한 증오에서 시작된다는 레닌의 말처럼, 정치적인 능력과 판단력은 국민들로 하여금 어떤 사태가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게 러시아 혁명이다. 그런데 그 혁명에서 레닌은 더 어려운 과제를 맡았다. 혁명 이전과 이후의 러시아는 여전히 가난하고 척박하며, 외국에 의한 침략에 불안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더라도 서방국가에서 정치적 불안감과 파시즘은 계속 지속되는 점이다. 그런 와중 레닌이 1924년 뇌일혈로 사망하고, 레닌이 혁명 실행할 러시아 재건계획은 위기를 맞이했다.

 

레닌 사후 스탈린은 러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를 두고 트로츠키와 경쟁을 했다. 트로츠키가 처음 경제성장정책으로 시작하려한 공업화는 농민의 반대가 일어나 실패했고, 이후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농민을 억압하는 자로 몰고, 농민 및 자신들의 추종자들의 도움을 받아 트로츠키를 추방해버렸다. 웃긴 점은 트로츠키가 추방 후에 스탈린이 추진한 경제정책에서는 분명히 공업화를 추구했고, 특히 중공업을 추구했다. 문제는 공업화 실행에선 농민이 희생되어야 하고, 처음 트로츠키를 내칠 때 동조하는 척하다가 이후 쿨라크라는 러시아부농의 재산을 모두 몰수했다. 처음에는 민주적인 정치를 위해 강제부과는 반대한 그가 쿨라크의 모든 것을 빼앗고, 90%를 강제노동에 보낸 것이다.

 

이들 대부분 노역으로 죽거나 아니면 끝없이 시달려야 했다. 특히 1936년~1938년 사이 스탈린의 공포정치는 수많은 러시아인들과 외국인까지 죽였다. 스탈린이 진정한 추구한 정치제는 바로 그런 관료주의였다. 하지만 스탈린의 경우 조금 달랐다. 자신의 숙적은 제거하는데, 스탈린주의 일부를 이용했고, 나중에 그들까지 처분했다. 또한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사지로 몰아넣고, 자신이 진정한 레닌의 후계자라고 선언한다. 레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후 20세기에 빼놓을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하지만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고, 그는 러시아 문체도 제대로 적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어느 시인에 대해 찬사를 보내자, 소비에트 모든 책에 그 시인에 대한 내용이 실렸다고 한다. 단지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반응하는 저 독재자의 세계는 마르크스의 교훈은 상관없었다. 그저 스탈린이 추구한 민주적인 소비에트는 관료주의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평등이란 가난과 굶주림이었다. 혹은 평등하게 비밀경찰 손에 암살되든지 말이다.

 

하지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보다시피 그의 숙청은 모든 것을 트로츠키와 연결시킨다. 트로츠키의 이름과 연결시키면 그 어떤 것도 죽음의 낫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의 악랄한 서적 본문에 소개된다. “1936년 1월에 개최된 당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인민위원회 의장 몰로토프는 선언했다. ‘소련 경제는 사회주의화되었다(박수).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계급의 일소라는 문제를 해결했다(박수). 그러나 과거부터 우리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성격을 지닌 분자들인 구지배계급들의 잔존세력들이 남아있다. 더욱이 집단농장의 농부, 국가공무원, 심지어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가끔 피라미 투기꾼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은 집단적 재산과 국가재산을 뜯어먹는 사기꾼, 소비에트 연방에 해악을 끼치는 수다쟁이 등으로 불린다. 이 결과 독재체계는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엥겔스의 견해와는 반대로 노동자국가는 잠들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더욱더 경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엥겔스의 견해처럼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는 엥겔스였다. 당시 스탈린이 지시한 마르크스주의 연구는 완전히 오도되었고, 심지어 본래 취지도 어긋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레닌조차도 노동자의 권위를 위해 볼셰비키에 교양 있는 노동자를 영입하려 했지만, 스탈린 집권 시기에 점차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만 살아야 했고,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를 감시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누가 더 사기꾼이고, 누가 잔존세력이 되었는지는 자신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생각해보면 답은 이미 나왔다.

 

레닌이 한참 정치에 신경 쓰던 시기에 그는 이런 의견을 내놓았는데, 매우 명확했다. “(1) 권력층의 특권, 지위, 전용상점 등이 불러오는 부패, (2) 舊 귀족계급 및 부르주아지의 잔존세력과 권력층의 화해, (3) 신경제정책의 부패적 요소가 끼치는 영향력, (4) 부르주아지의 도덕과 이데올로기가 가하는 유혹 등 해악적 요인들로부터 당과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당 지도부의 임무였다.”

 

심지어 레닌은 제3인터내셔널인 코민테른 창시할 때, 국내인 소비에트 연방뿐만 아니라 세계제국주의에 침략 받은 식민지국가 및 제3세계까지 지원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소비에트 연방에서 코민테른 의회가 열렸을 때 한국 독립 운동하던 사람들이 실제로 레닌과 만났고, 그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레닌이 죽은 후 스탈린의 공포정치로 인해 그들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스탈린은 다른 국가의 독립이나 자주권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일국사회주의로 향하고, 코민테른은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허수아비로 변질된 것이다.

 

그 덕분에 마르크스주의가 심하게 오염될 뻔했으나, 트로츠키의 활동으로 오명을 피했다고 한다. 역설적이지만, 트로츠키는 미국하고의 정치적인 관계가 불편했으나, 그의 저서 모두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트로츠키 연구소로 기증되었다고 한다. 또는 미국의 철학자 겸 교육자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날린 존 듀이의 법정에서 진술은 큰 여파를 남기고, 그가 이때까지 행해온 정치적 투쟁이 무죄로 판명 나게 했으며, 영국의 철학자 겸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과 지식인으로서 편지를 주고받은 것에서 그의 정치적인 안목은 매우 뛰어난 것이다.

 

<배반당한 혁명>에서 트로츠키는 스탈린만 향한 비판만 날리지 않았다. 당시 유럽과 아시아까지 예측했으며, 스탈린이 독일의 히틀러와 동맹할 것이란 예언은 적중했다.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은 이미 소비에트연방은 더 이상 레닌이 남긴 유산을 남기지 않음을 공식적으로 증명했다. 그런 예언을 날린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이야말로 스탈린에게 눈에 가시고, 그 책을 만든 트로츠키가 최고의 적이란 점이다. 그 정도로 이 책에 담긴 정치적, 사회적, 외교적 분석은 매우 탁월하다. 정치라는 것은 결국 역사적 사실에서 사회과학적인 분석과 철학적인 사유로 통해 분석과 대안을 찾아간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명하기를 관념론과 유물론에서 끊임없는 대립으로 통해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생기는 것이고, 그 철학은 철학으로서 생산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마르크스주의는 거짓이 아닌 진실을 추구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한다. 형이상학적 인식에서 인간은 늘 자신에게 쌓인 관념에 따라간다. 물론 인간이 살아온 환경이나 배경에서 그런 한계점은 이해하나, 그것을 깨닫고 현실을 살아가야할 존재가 인간이다. 역사란 왜 배우고 이해해야 하는가?

 

지나간 일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시간이란 존재를 비가역적 존재로 본다. 이론적으로 평행이론이라던지 혹은 문학,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존재하는 포스트모던적인 요소로 볼 수 있겠으나, 현실에선 증명되지 않으면 결국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비슷한 일들은 지역, 인종, 상황, 시간은 다르더라도 비슷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왜 트로츠키가 테르미도르 반동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자코뱅당이 왕당파를 대항해 자유를 쟁취했다고 하나, 오히려 당통과 롤랑부인은 단두대 아래 이슬로 사라진 아이러니를 보인다. 그 후에 나타난 보나파르트적인 정치체는 어떠한가? 트로츠키의 추방은 프랑스혁명에서 보인 테르미도르 반동이란 새로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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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김동택 해제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폭력의 시대>의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중요한 키워드를 잘 찾아내었다. <홉스봄이 다루는 정치적 주제들은 “21세기의 전쟁과 평화”, “세계 제국들의 과거와 미래”, “민족주의의 성격과 변화”, “자유민주주의 앞날”, “정치적 폭력과 테러이다. 에릭 홉스봄이 이 서적을 내 놓을 시기는 20세기가 물러나고 새로운 21세기의 도래이다. 그 도래의 결정은 후쿠야마가 선언한 자유주의 승리다. 1990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갈림길에서 자유주의가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돌아보면 단지 그것은 시장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의 대립에서 전자가 이긴 셈이다. 스탈린이 집권한 일국사회주의 파시스트 정권에게 처음부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만든 공산당 선언과는 완전히 상반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어째든 그런 역사적, 정치적 흐름을 어떻게 되었든 현실의 모습에서 분명 (시장)자유주의가 승리한 것은 분명하고, 더 이상의 냉전으로 인한 불안감을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재앙의 도래였다. 세계적으로나 혹은 국내 상황적으로나 인간들은 모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힘겨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1세기에 냉전의 종식은 전쟁이란 큰 위기감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른 전쟁에 부딪히고, 그것이 또 다른 경제와 사회적 불안으로 연결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기본적으로 난민과 이민이 발생하고, 경제적으로 약한 나라의 국민들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국가로 넘어온다. 그러면서 국가는 단일민족의 모임체계가 아니라 여러 민족들이 같이 존재해야 하는 다민족 체계로 들어선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출신자가 국회의원이 되듯이 외국인이라도 다른 나라에서 한 사람의 정치적 행위와 참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선진국에서 정치적 참여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프랑스에선 어느 높은 관료가 한국인이란 사실만으로 이미 전 세계의 국가는 그 나라의 민족만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타 민족과의 교류가 늘어나는 만큼 충돌도 늘어난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체의 대한 권리>에서 프랑스 우익정부의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한 행위는 윤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 추방하는 당시, 비행기 탑승객 중에 곧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있다는 점이었다. 상대방이 누구든 생명이 위급한 사람에 대해 비인격적 대우는 국법을 둘째 치고 과연 제네바에서 의결한 국제법도 따르고 있을까라는 점이다. 하지만 대부분 전쟁이나 테러행위에서 보듯이 현대사회의 전쟁과 테러는 더 이상의 위대함이나 숭고함 따위는 없다. 단지 죽이기 위해 다시 태어난 전쟁도구이고, 그 전쟁도구는 원래 인간이었던 자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점에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으며, 오로지 이상주의적 관념에 따라 움직인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숭고한 완장을 차고 있으나, 그들의 행위란 불법적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포로를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이다. 본래 포로를 잡아도 즉결처분 내지 비인격적 고문을 가하면 안 된다. 그들의 행위는 오로지 포로에게는 상대진영의 정보를, 그리고 민간인의 학살에는 심리적인 압박을 가한다. 어차피 상대국가에 침공하여 어느 민가에 들어갈 경우 그 민간인들이 결국 자신이 싸워야 할 대상과 같은 민족이기에 무차별적 폭력이 가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군인들은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살해의 대상은 왕, 정치관료, 고급장교 등과 같은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높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점차 민간인이 되었고, 전쟁은 목적과 관계없이 수단에 의존하는 테러 그 자체로 변한 것이다. 그 테러에서 폭력은 오히려 자신들만의 이상을 추구하는 성전으로 변모했다. 안 그렇다면 자살폭탄테러를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슬람 과격무장단체들은 자살폭탄테러로서 많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문제는 그 대상이 점차 군대나 정치조직이 아닌 민간인이란 사실이 분명하고, 거리와 버스 안에서 폭탄테러로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점이다.

 

이런 문제들은 다 근본이 있기 마련이다. 왜 테러를 하느냐이다. 정말 테러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에서 우리는 국제적으로 보이는 힘의 대결이다. 이 힘의 대결은 자신들만의 도덕적 관념에 빠진 것에서 문제시 된다. 가령 자신의 인종적이나 민족적 우위로서 다른 민족들을 침공하던 독일이나 일본은 결국 파시스트로서 낙인찍힌 채 2차 세계대전에 패망했다. 하지만 문화적 도덕적인 이유로 싸우는 것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어떤 날조와 위조로 통한 정보조작으로 모든 원인제공을 상대편에게 넘겨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폭력의 정신은 그 폭력을 하나의 미()로서 만들어 버린다. 이 책에서 언급하기를 무제한적 폭력을 부르는 더 위험한 요인이 있다. 1914년 이후 국가 간 내부 세력 간의 분쟁 둘 다를 지배한 이념적 확신이다. 그것은 자신을 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명분은 너무나 정당하고 상대의 명분은 너무도 형편없기 때문에, 패배를 면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어떤 것도 동원해야 하고, 동원되는 모든 수단은 정당하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그런 확신을 가지면 정부군이나 반군 모두 어떤 야만적 행동도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비단 그것은 내전을 다루는 부분에서 반군과 정부군의 폭력행위만을 꼬집는 말투가 아니다. 20세기부터 시작된 전쟁의 공포부터 시작하여 내부 치안단속이라는 정치적 압박도 마찬가지다. 물론 20세기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18700만 명에 이른다는 점만 해도 충격이나, 전쟁의 특수성에서만 이런 극단적 위기만 오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권과 평화라는 슬로건을 위해 사회적 약자나 국민, 심지어 외국인까지 살인과 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민주주의 역사에서 많은 민주화 투사가 죽었고, 또한 북한과의 대치에서 북한군의 테러행위에서도 많은 희생을 거두었다.

 

또한 625 동란은 결국 내전이란 비극으로 우리 민족 역시 비이성적인 광기가 합리적인 도구가 되어 많은 민간인 살상이 일어났다. 그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이 정신병적인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비이성적인 대처로 인해 그렇게 된다는 점이다. 마치 니체가 집단에 있으면 광기에 말려간다고 하듯이 말이다. 이런 폭력이 계속 진행되면 폭력을 받은 이들이 다시 다른 형태로 폭력을 시도하고, 원초에 폭력을 행한 그들이 그 폭력을 받게 되면, 분노의 폭력으로 응징을 가한다.

 

이때가지 제노사이드 혹은 홀로코스트라고 지명해도 아깝지 않은 죽음의 향연은 바로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와 자신들의 도덕적 관념을 고집이다. 분명 20세기 2차 세계대전은 최소한 인종과 민족의 우월성으로 생긴 전쟁이기에 시민의식으로 구성된 군인들이 많았으나, 1960년대 베트남전쟁부터 1980년대의 중동지역의 전쟁, 21세기의 이라크 전쟁은 더 이상 전쟁이 시민의식으로서 대처할 행위가 아님을 증명했다. 국민들이 점차 국가적 전쟁행위에 동조하지 않은 만큼 또한 전쟁의 잔인성은 커지고 있다. 전쟁이 예전처럼 국가 정치나 외교적 최후 무력수단으로 행하기보다는 다른 이유로서 시도되는 것이 늘어가는 이유다.

 

20세기가 전쟁의 시기라고 해도 무방하나, 지금은 그 전쟁의 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오히려 테러가 계속 일어나는 시기다. 제국주의 강제통치를 받은 제3국도 내전으로 서로 피를 흘리며, 그 내전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폭력단체에 대해 어느 강대국 일부는 원조까지 하는 실정이다. 그런 것들은 1983년 레바논전쟁이나 스페인의 프랑코의 독재 그러하다. 그 이유는 무력으로서 자유를 주겠다고 하는 유토피아조차도 될 수 없는 자기들만의 평화의식에 오늘도 내일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할 수 있는 게 과연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하지만 폭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자신의 폭력을 정의와 선으로 가득한 하나의 진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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