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반당한 혁명
레온 뜨로츠키 지음, 김성훈 옮김 / 갈무리 / 199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탈린은 관료집단의 인격화이다. 실제로 관료집단은 그이 정치적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이 문장은 1936년 레온 트로츠키가 저술한 “배반당한 혁명”에 나온 문구다. 트로츠키는 평생을 파시즘에 대항하여 싸웠고, 이긴 적도 있으나 결국 그 파시즘에 의해 죽고 만다. 그의 이름은 조지 오웰의 <1984>의 골드스타인이나 혹은 <동물농장>의 스노볼처럼 모든 평화를 깨는 원흉이자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역사적으로 패배라고 판단했을지 모르나, 21세기에서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경쟁에선 결국 트로츠키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 쪽은 1940년 8월 피켈에 의해 살해당했고, 한쪽은 1953년 3월에 나이가 들어 죽었다. 그 전자의 죽음은 당연히 스탈린이 고용한 자객에 의해서이다. 프랑스 최고배우인 알랑 드롱이 출연한 영화 <트로츠키 암살사건>에서 나오듯이 트로츠키의 죽음은 매우 준비된 죽음이란 점이다. 트로츠키가 죽음으로서 스탈린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또한 스탈린의 죽음은 한국의 동족잔상비극인 625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2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큰 여파를 줄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스탈린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트로츠키의 존재는 알 수 없다. 그 만큼 트로츠키의 영향력은 없어 보이나, 그를 진정으로 알아본다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줄 알 것이다. 그것은 <1984>에서 윈스턴 스미스가 오브라이언과 대화하면서 빅 브라더가 두려워할만한 골드스타인의 저작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그 책은 바로 <배반당한 혁명>이다. 이 책이 왜 이렇게 무서운 도서인가?
일단 <배반당한 혁명>의 저술목적은 1905년과 1917년 러시아에서 차르체제에 불만을 품어 혁명이 일어난다. 전자의 원인은 러일전쟁이고, 후자의 경우는 1차 세계대전이다. 전쟁과 혁명이 연결되는 이유는 전쟁의 모든 폐해를 지도상층부가 아니라 하층서민들이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 롤즈가 <만민법>에서 주장하듯이 전쟁의 모든 책임은 정치가와 장교에게 있어야 하며, 사병에게 그 대가를 물으면 안되는 점이다. 그 이유는 전쟁의 발단은 정치가와 장교들에 의해서고 사병에겐 전쟁에 대한 개전권이나 응전권이 없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단순히 전쟁에 참가하여 적에 향하여 총알을 날릴 수 있는 권한이다. 즉 사람을 직접 앞에서 죽이거나 혹은 죽임을 당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전쟁은 바로 누군가의 자유를 선사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희생하여 자신들만의 자유를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를 위해 타국에 지원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 자유를 짓밟는 행위가 되었다. 멀쩡한 국가에 침공해 그 나라의 이념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영역에 대립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전쟁이야말로 진정한 통치권을 확실히 굳힐 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이 필요할 때도 있다. 자기국가에 대한 주권확립을 위해 외국의 침입이나 불법적인 군사쿠데타에 대한 위협에서 가능하다. 트로츠키의 러시아혁명에서는 차르체제의 해체와 동시에 차르체제 아래 호사를 누린 백위군들이 외국세력의 지원을 받고 다시 러시아 내전을 벌일 때, 그 전쟁은 진실로 러시아 국민을 위해 해야 할 과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부터 문제였다. 트로츠키는 군대라는 조직이 결국 특권층을 형성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그런다고 전쟁의 위기에 군대가 상실되면 안 된다.
단지 군대란 계급을 나누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주권확립을 위한 체계라는 점이다. 전쟁에서 가장 큰 희생양은 당시 유럽에서는 농민과 노동자다. 이들에겐 지휘권이 없으면 병사로서 그저 뛰어들 뿐이다. 1917년 2월 혁명의 동기는 바로 1차 세계대전의 문제다.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은 무능한 지휘관 덕분으로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수백만 명이나 희생당해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전쟁물자 동원이란 명목아래 거리에 식빵을 구하기 위해 여성들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시골의 경우 문맹과 제도의 혜택마저 박탈당했다. 특히 식량원조로 곡식과 가축을 약탈당하고, 남자들마저 징집되니 불만이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
혁명의 원인은 바로 애국심이 아니라 조국에 대한 증오에서 시작된다는 레닌의 말처럼, 정치적인 능력과 판단력은 국민들로 하여금 어떤 사태가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게 러시아 혁명이다. 그런데 그 혁명에서 레닌은 더 어려운 과제를 맡았다. 혁명 이전과 이후의 러시아는 여전히 가난하고 척박하며, 외국에 의한 침략에 불안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더라도 서방국가에서 정치적 불안감과 파시즘은 계속 지속되는 점이다. 그런 와중 레닌이 1924년 뇌일혈로 사망하고, 레닌이 혁명 실행할 러시아 재건계획은 위기를 맞이했다.
레닌 사후 스탈린은 러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를 두고 트로츠키와 경쟁을 했다. 트로츠키가 처음 경제성장정책으로 시작하려한 공업화는 농민의 반대가 일어나 실패했고, 이후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농민을 억압하는 자로 몰고, 농민 및 자신들의 추종자들의 도움을 받아 트로츠키를 추방해버렸다. 웃긴 점은 트로츠키가 추방 후에 스탈린이 추진한 경제정책에서는 분명히 공업화를 추구했고, 특히 중공업을 추구했다. 문제는 공업화 실행에선 농민이 희생되어야 하고, 처음 트로츠키를 내칠 때 동조하는 척하다가 이후 쿨라크라는 러시아부농의 재산을 모두 몰수했다. 처음에는 민주적인 정치를 위해 강제부과는 반대한 그가 쿨라크의 모든 것을 빼앗고, 90%를 강제노동에 보낸 것이다.
이들 대부분 노역으로 죽거나 아니면 끝없이 시달려야 했다. 특히 1936년~1938년 사이 스탈린의 공포정치는 수많은 러시아인들과 외국인까지 죽였다. 스탈린이 진정한 추구한 정치제는 바로 그런 관료주의였다. 하지만 스탈린의 경우 조금 달랐다. 자신의 숙적은 제거하는데, 스탈린주의 일부를 이용했고, 나중에 그들까지 처분했다. 또한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사지로 몰아넣고, 자신이 진정한 레닌의 후계자라고 선언한다. 레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후 20세기에 빼놓을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하지만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고, 그는 러시아 문체도 제대로 적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어느 시인에 대해 찬사를 보내자, 소비에트 모든 책에 그 시인에 대한 내용이 실렸다고 한다. 단지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반응하는 저 독재자의 세계는 마르크스의 교훈은 상관없었다. 그저 스탈린이 추구한 민주적인 소비에트는 관료주의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평등이란 가난과 굶주림이었다. 혹은 평등하게 비밀경찰 손에 암살되든지 말이다.
하지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보다시피 그의 숙청은 모든 것을 트로츠키와 연결시킨다. 트로츠키의 이름과 연결시키면 그 어떤 것도 죽음의 낫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의 악랄한 서적 본문에 소개된다. “1936년 1월에 개최된 당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인민위원회 의장 몰로토프는 선언했다. ‘소련 경제는 사회주의화되었다(박수).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계급의 일소라는 문제를 해결했다(박수). 그러나 과거부터 우리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성격을 지닌 분자들인 구지배계급들의 잔존세력들이 남아있다. 더욱이 집단농장의 농부, 국가공무원, 심지어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가끔 피라미 투기꾼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은 집단적 재산과 국가재산을 뜯어먹는 사기꾼, 소비에트 연방에 해악을 끼치는 수다쟁이 등으로 불린다. 이 결과 독재체계는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엥겔스의 견해와는 반대로 노동자국가는 잠들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더욱더 경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엥겔스의 견해처럼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는 엥겔스였다. 당시 스탈린이 지시한 마르크스주의 연구는 완전히 오도되었고, 심지어 본래 취지도 어긋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레닌조차도 노동자의 권위를 위해 볼셰비키에 교양 있는 노동자를 영입하려 했지만, 스탈린 집권 시기에 점차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만 살아야 했고,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를 감시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누가 더 사기꾼이고, 누가 잔존세력이 되었는지는 자신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생각해보면 답은 이미 나왔다.
레닌이 한참 정치에 신경 쓰던 시기에 그는 이런 의견을 내놓았는데, 매우 명확했다. “(1) 권력층의 특권, 지위, 전용상점 등이 불러오는 부패, (2) 舊 귀족계급 및 부르주아지의 잔존세력과 권력층의 화해, (3) 신경제정책의 부패적 요소가 끼치는 영향력, (4) 부르주아지의 도덕과 이데올로기가 가하는 유혹 등 해악적 요인들로부터 당과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당 지도부의 임무였다.”
심지어 레닌은 제3인터내셔널인 코민테른 창시할 때, 국내인 소비에트 연방뿐만 아니라 세계제국주의에 침략 받은 식민지국가 및 제3세계까지 지원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소비에트 연방에서 코민테른 의회가 열렸을 때 한국 독립 운동하던 사람들이 실제로 레닌과 만났고, 그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레닌이 죽은 후 스탈린의 공포정치로 인해 그들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스탈린은 다른 국가의 독립이나 자주권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일국사회주의로 향하고, 코민테른은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허수아비로 변질된 것이다.
그 덕분에 마르크스주의가 심하게 오염될 뻔했으나, 트로츠키의 활동으로 오명을 피했다고 한다. 역설적이지만, 트로츠키는 미국하고의 정치적인 관계가 불편했으나, 그의 저서 모두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트로츠키 연구소로 기증되었다고 한다. 또는 미국의 철학자 겸 교육자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날린 존 듀이의 법정에서 진술은 큰 여파를 남기고, 그가 이때까지 행해온 정치적 투쟁이 무죄로 판명 나게 했으며, 영국의 철학자 겸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과 지식인으로서 편지를 주고받은 것에서 그의 정치적인 안목은 매우 뛰어난 것이다.
<배반당한 혁명>에서 트로츠키는 스탈린만 향한 비판만 날리지 않았다. 당시 유럽과 아시아까지 예측했으며, 스탈린이 독일의 히틀러와 동맹할 것이란 예언은 적중했다.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은 이미 소비에트연방은 더 이상 레닌이 남긴 유산을 남기지 않음을 공식적으로 증명했다. 그런 예언을 날린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이야말로 스탈린에게 눈에 가시고, 그 책을 만든 트로츠키가 최고의 적이란 점이다. 그 정도로 이 책에 담긴 정치적, 사회적, 외교적 분석은 매우 탁월하다. 정치라는 것은 결국 역사적 사실에서 사회과학적인 분석과 철학적인 사유로 통해 분석과 대안을 찾아간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명하기를 관념론과 유물론에서 끊임없는 대립으로 통해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생기는 것이고, 그 철학은 철학으로서 생산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마르크스주의는 거짓이 아닌 진실을 추구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한다. 형이상학적 인식에서 인간은 늘 자신에게 쌓인 관념에 따라간다. 물론 인간이 살아온 환경이나 배경에서 그런 한계점은 이해하나, 그것을 깨닫고 현실을 살아가야할 존재가 인간이다. 역사란 왜 배우고 이해해야 하는가?
지나간 일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시간이란 존재를 비가역적 존재로 본다. 이론적으로 평행이론이라던지 혹은 문학,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존재하는 포스트모던적인 요소로 볼 수 있겠으나, 현실에선 증명되지 않으면 결국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비슷한 일들은 지역, 인종, 상황, 시간은 다르더라도 비슷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왜 트로츠키가 테르미도르 반동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자코뱅당이 왕당파를 대항해 자유를 쟁취했다고 하나, 오히려 당통과 롤랑부인은 단두대 아래 이슬로 사라진 아이러니를 보인다. 그 후에 나타난 보나파르트적인 정치체는 어떠한가? 트로츠키의 추방은 프랑스혁명에서 보인 테르미도르 반동이란 새로운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