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
알렉시스 토크빌 지음, 이용재 옮김 / 박영률출판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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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토크빌의 냉정하고 분석적인 비판적인 사고로 적어내린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을 읽어가면서 나는 솔직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토크빌이 저술한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이 그가 죽기 전인 3년 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분명 지금으로부터 150년 이전의 서적이란 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어 가면 갈수록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다시 본다는 기분이었다. 토크빌이 지적한 보편적인 인간군상과 거기에 대한 행정과 관리제도, 계급과 사회적 변화로 통해 당시 프랑스의 지식인이 보는 프랑스혁명과 지금 그 지식인의 서적을 보는 나로서 같은 시대와 공간에 살지 않아도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역사적인 존재란 분명히 공시적인 존재가 아니라 통시적인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시적인 영역으로 보는 민주주의사회 과정이란 그야말로 공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1856년 토크빌이 보던 1789년의 프랑스혁명이란 지금 내가 한국사회를 보고 있는 냉소적인 시선과 많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는 봉건주의사회인 전제군주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물론 심각성은 군주정의 시대가 심한 것은 당연하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군주정이 아닌 시절에 그런 문제를 현재 안고 있는 상황인 한국사회를 생각하면 후자 쪽이 더욱 심각하지 않은가 싶다.

 

프랑스혁명에 참가한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 사회를 비교하여 생각하면 이 구절이 너무 와 닿는다. “오늘날 민주적 전제주의(despotisme democratique)라고 부르는 특이한 통치형태−이는 중세에서 생각조차 할 수 없던 것이다−에 이미 친숙해 있었다. 사회에는 계서제도 계급적 차별도 고정된 서열도 있을 수 없으며 국민들은 서로 비슷비슷하고 완전히 평등한 개인으로 구성될 것이었다.

 

전체 국민이라는 이 무차별적 다수가 이론상 유일한 합법적 주권으로 인정되긴 하지만 사실상 정부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감시할 권한마저도 교묘하게 박탈당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국민의 동의 없이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권자(mandataire)가 전체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된다. 그 엄청난 힘은 여론이나 법률의 통제도 미치지 아니하는 바, 그것을 타도하려면 엄청난 혁명을 동반해야만 할 것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법적으로 하위 기구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지배자인 것이다.”

 

우리도 ‘국민의 정부, 국민의 주권, 국민의 사회’와 비슷 무리한 슬로건이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으나, 실제 국민 중에서 정치적 참여에 관여할 수 있는 자는 극히 제한적이다. 프랑스와 같이 일개 농민이나 노동자들의 정치적 발언과 참여 그리고 현실로서 표현되는 일들은 없었다는 점이고,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토크빌의 이런 정치적 문제에 대한 논쟁을 거론한 점과 프랑스 혁명 이전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볼테르가 영국을 다녀오면서 보았던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을 지적했다.

 

가령 영국의 경우에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다른 유럽사회보다 빨리 정착된 것이 분명하다. 토크빌의 친구이면서도 19세기 유럽 지식인 중에서 탁월한 인물이었던 존 스튜어트 밀이 영국 하원에 의원직에 당선되던 일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고려해볼만 하다. 존 스튜어트 밀이 살았던 시기에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전제군주로 등장하고, 몇 번이나 혁명이 있었고, 나폴레옹 3세까지 나온 시기다. 그에 반해 존 스튜어트 밀이 살던 영국사회에서 그가 정치인이 되면 자신을 지지한 시민들을 위해 정치하는 게 아니라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의정 생활할 것이란 말에도 그를 의원으로 만들어주었다. 물론 지속적인 정치생활을 하지 못했어도 적어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토크빌이 지적했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구조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판단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에서 토크빌은 다소 프랑스혁명에 부분을 냉소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보수적인 관점으로 기술했다. 그리고 보수적인만큼 그 보수에 대한 부분은 더욱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진보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변증법적인 논리를 그의 도서에서는 마지막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아무리 농민이 어리석어도 그 원인은 농민이 아니라 농민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구체제의 어리석음이란 점을 분명하게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루이16세의 통치기간 통안 토크빌은 루이16세에 대하여 무능하기보단 그저 마음이 약한 왕이란 점과 선의를 가지고 정치를 하였으나 그 선의 자체가 틀렸다고 적었다. 결국 루이16세에 대해 직접적으로 무능하다고 말한 것이라 간접적으로 무능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때의 시기에 가장 문제점은 너무 많았으나 제일 중요한 점은 지역자치지구의 해체와 관련된 것이다. 결국 왕정의 중앙집권화가 모든 것의 시초였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지역자치를 실행할 경우 그 지역구의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시장 내지 구장을 선출하여 그들 스스로 운영하기에 세금이나 행정, 관리 등을 직접 관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왕정시대에 왕권에게 가장 치명적인 존재는 귀족이란 점에서 지방자치는 지역귀족들에게 하나의 권력을 인정하는 셈이다. 중앙집권화로 통해 귀족들이나 혹은 지방자치기구의 힘을 약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런 행정시스템을 무효로 하고, 그 행정통치권을 매입하는 점에서 엄청난 예산을 투자한 것이다. 중앙집권화로 가는 길은 곧 예산의 낭비로 이어졌고, 그 낭비는 또 다른 낭비를 부르기 시작했다. 만약 길가를 지나가는 도로가 훼손되어 있고 성벽과 성당이 상당히 노후화 되어도 지방자치에서 수리나 복구를 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한 처리권한은 왕권이 임명한 지사에 의해 가능했다. 그들은 1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기본은 2~3년 정도 기다리는 행정착오를 만들었다. 지사의 권한이 지나치게 주어지자, 중앙집권화 그 자체를 보여주며, 구체제가 루이왕정이라고 하여도 생각해보면 지역자치기구의 행정 역시 구체제였다. 하지만 지역자치기구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것이야 말로 왕정시대이지만 마을주민에게 정치적 참여권과 행정적 감시권이 주어지고, 의사표명을 할 수 있는 민주주의제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단지 귀족사회가 주관하는 점에서 다소 한계치를 보이고 있었으나, 적어도 귀족사회는 지역사회의 시민 내지 혹은 농민들에게 중앙집권화로 통해 실시되던 정치적 이득보다 탁월했다는 점이다. 귀족들은 비록 농민들에 자기영지에 대해 경작을 하게하고 소작농으로 하여금 세금을 받았으나, 이들은 농민들의 복지와 생활을 어느 정도 돌본 점은 분명한 점이다. 중앙집권화로 통해 지역사회의 귀족들이 모두 중앙의 벼슬로 가게 되고, 파리는 어느 순간 프랑스의 모든 것이 되었다.

귀족 없는 지역사회에 가난한 귀족만 남았고, 그들의 생활은 매우 비참했다. 게다가 지사의 등장과 중앙집권화로 그들은 귀족으로서 책임이던 장병을 소집할 필요는 없으나, 그 만큼의 혜택도 사라져 갔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농업적 기술을 관리해주고, 생활고에 시달릴 경우 도움을 청할 수 있던 귀족과 그리고 지역 교구들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지역 교구라는 관리들은 지사로 인해 자신들의 행정적 권한이 축소되었고, 그나마 농민에 대해 호의적인 지역 교구마저 힘을 잃어가자 농민의 생활을 비참해져갔다.

 

중앙정부에서는 그런 와중에 귀족과 귀족처럼 되려고 하던 부르주아의 세금감면이라는 특혜를 받아들이고, 이 모든 것을 지역사회의 농민에게 부과했다. 농민들의 생활은 점차 어려워지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분노, 이기심, 증오, 폭력으로 가득했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의 준비는 지식인들이 실천하였으나, 실행은 후자와 같이 무서운 마음을 가진 자들이 실행한 점이다. 이들의 실행에서 혁명 자체는 성공했으나 혁명 후의 과정이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글도 읽을 줄 모르고, 정치적 판단력도 없었다.

 

구체제의 상징인 루이16세가 단두대 아래 이슬이 되어도 프랑스사회에서 농민의 생활을 개선되지 않았다. 대신 루이왕정과 그 주변의 자리에 다른 자들이 앉아있었을 뿐이다. 아니라면 주인 없는 노예만 되었을 뿐이다. 다소 토크빌이 헤겔의 말을 빌려온 점에서 분명히 프랑스혁명의 계몽되지 않았던 주체들의 실시에서 그 이후의 폭력은 예기된 상황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성이 옳고 인간의 이성을 가졌다고 믿는 휴머니즘이 오히려 폭력을 야기한 것처럼 계몽이란 칸트의 말처럼 자신이 스스로 깨고 나온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프랑스혁명보다 오히려 개혁정치로 통해 농민에게 강압적 행정보단 그들의 농사체계의 개선, 빈곤의 문제를 해결, 세금의 과중에 대한 격감 등을 보였다면 어떨까 싶다. 이에 반해 신흥세력인 부르주아들은 이미 자신들의 이익에 눈에 멀어 그들 자신이 귀족화되고 있었다. 웃기는 이야기 같이 들리지 않을까 하나, 귀족들은 부르주와 자신들을 분리하고, 부르주아는 자신들과 농민을 분리했다. 가장 먼저 앞서서 총칼에 맞은 농민과 도시빈민들의 고통과 희생은 무엇이 되었는가?

 

토크빌의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은 과거의 문서로부터 하나씩 열거하여 그 과정을 정리한다. 그는 프랑스혁명 이후 사람이어도 그의 관점은 마치 프랑스혁명 이전과 그 순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프랑스혁명을 말하고 있다. 그의 결론은 그 이전과 그 순간, 그 이후라도 결국 같다는 점이다. 지독한 문맹이던 시절, 요새는 지독한 문맹 대신 지독한 문명으로 오히려 인간들은 세뇌시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나, 인간에게 과연 역사적 진보는 존재해도 정신적 진보는 없는 것인가?

 

본문에 나온 토크빌의 문구는 나에게 상당한 경악을 던져주었다. “대혁명이 시작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걸쳐서 우리는 자유에 대한 열정이 끊임없이 소멸과 부활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미숙하고 정제되지 못한 열정이 앞으로 겪게 될 운명이기도 하다. 자유에 대한 열정은 그만큼 시들거나 질식되어 버리기 쉬우며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바로 같은 시기 동안에 평등에 대한 열정은 항상 원래 모습 그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우리의 가장 고귀한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자유에 대한 열정은 계속 그 모습을 달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태의 추이에 따라 감소되거나 확대되었으며 강화되거나 약화되었다. 반면에 평등에 대한 열정은 줄곧 그 모습이 일정했으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완고하고 맹목적으로 동일한 목적을 지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려 하였으며, 평등에 대한 열정을 조장해주거나 고무해주는 정부라면 어느 것에나 그 정부가 전제주의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습성과 관념 및 법률들을 제공해주게 되었다.”

 

재미난 일화인지 모르나, 이렇게도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프랑스국민들은 이런 심정으로 프랑스혁명을 일으키고도 후에 나폴레옹과 같이 유럽 전역을 군화발로 밟아버린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가끔 촛불행사나 또는 각종 시위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자유와 평등이란 슬로건, 즉 민주주의 기본권에 대한 참여와 권리를 향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이것이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혁명을 보다시피 그것을 만들어낸 주체는 누구인가?

 

앙시엥레짐(구체제)라는 것들에 대한 처분에서 다른 모습은 새로운 구체제가 들어온다고 해도, 계속 조금씩 개선되고 발전(그것은 프랑스나 유럽사회와 같이, 한편으로 그렇지 못한 부분이 늘어가면서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그 사회구조와 모순에서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배경이다. <구체제와 프랑스혁명>를 읽어보는 것은 단순히 프랑스혁명만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그 모습까지도 읽을 수 있다는 하나의 사실이란 점을 망각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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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하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21세기총서 3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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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국사회의 흐름을 보면 분명히 앙시엥 레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앙시엥 레짐이란 과거 프랑스 혁명 이전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고, 그 후오 절대주의 왕권봉건사회에서 상징물이던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지고, 또 다시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리가 단두대의 여명 아래 그들의 몸과 분리되어 버렸다. 루이16세의 목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은 그야말로 구체제라는 구차한 유물의 상징의 종말을 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대체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자유시민인지, 농민인지, 노동자인지, 아니면 대학교수인지, 의사나 변호사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없었다. 토크빌의 <앙시엥 레짐과 프랑스혁명>의 역자서문처럼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 시대에 발견되는 ‘노예상태 속에서 평등’으로 개념화했던 것, 그리고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에서 ‘국민의 동의 없이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수권자’로 묘사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민주적 전체주의(despotisme democratique)'이다. 그것은 또한 그가 실의와 좌절에 빠진 채 정계를 등지는 계기가 되었던 1851년의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3세)의 쿠데타를 몸소 겪은 혈적 체험이기도 하다.

 

위 내용들은 <구별짓기>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제일 뒤의 역자의 후기를 읽어보면 반드시 토크빌의 서적과 그 서적의 역자서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구별짓기>는 결국 겉으로는 자유, 민주주의, 평등이 기반으로 되는 국가라고 하더라도 그 뒤에 가려진 자본의 불평등은 결국 계급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 계급이라고 하는 것이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역사는 계급의 투쟁이라고 하는 단순히 마르크스주의 논리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논리는 이 책으로 본다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구조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하나의 사회과학적인 지표이다.

 

그것은 마지막 장에 가면서 칸트의 <판단력비판>으로 통해 취미와 취향을 논하지 않은가? 미적 감각이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의 감정이라고 하고, 그 감정조차도 이성적 판단과 지성적 수준으로 평가를 판가름할 수 있다. <판단력비판>이란 결국 어느 대상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그 기준에 대한 기준이다. 처음부터 그것을 사고할 수 있는 역량조차 가지지 못하면 판단조차도 불가능해지는 귀납적인 논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취미와 취향, 그리고 계급과 사회, 문화와 역사, 민주주의사회와 프랑스혁명에서 우리의 사회는 어느 관계가 있는가?

 

상당히 엉뚱한 명제들만 늘여놓은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루이16세에게 아름다운 쇳소리를 내며, 그의 목과 몸을 영원한 그림 한 폭에 집어넣는 순간, 프랑스는 前자본주의에서 실제 자본주의국가로 이환되었고, 그 자본주의적인 요소는 현재까지도 민주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과 같은 다양한 사상과 이념이 뒤죽박죽이 되어있다. 오직 한 가지의 사상과 이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면 그 사회는 이른바 파시스트의 세계로 되어버릴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담론과 의미가 내재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일지 모른다. 오히려 이런저런 문제가 사소하게 터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현재 상황을 알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인 <1984> 내지 <동물농장>처럼 일이 있어도 그것조차 통제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병이 든 것도 모자라 죽어갈지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와 문화, 계급, 자유, 평등 같은 정치적, 사회적 영역과 연결함에서 왜 중요한가이다. 게다가 이 책은 1970년대 도서이고, 한국에는 1996년에 번역되어, 지금 내 손에 2010년대의 사회에서 담론짓고 있다. 생각을 다시 해보면 왜 내가 앙시엥 레짐을 꺼냈는가이다.

 

한국은 아직 민주주의국가라고 하나, 실제로는 토크빌이 지적한 ‘노예상태 속에서 평등’이란 의미이고, 루소가 칸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프랑스혁명이 그에게 큰 빚이 있었지만, 칸트는 프랑스혁명을 달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칸트는 이성을 중시했고, 강렬한 분노로 이루어진 테러리즘적인 혁명에서 결국 그 사회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농민과 노동자는 여전히 빈곤했고, 러시아혁명 이후 노동자들은 빵의 부족을 시달렸다. 사회적 구조로 본다면 결국 상층을 제거하여 새로운 상층만 들어선 것이다.

 

우리 한국이 아직 그런 과도기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프랑스와 같은 경우 1789년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혁명이 발발했다. 혁명이라고 하여 좌파적 성공(루소는 좌파다)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우파의 혁명도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전복되고 또 전복되어 수많은 희생자들(특히 1871년 파리코뮌)의 피로서 역사를 적어갔기에 오늘날의 프랑스가 되었다. 물론 그 중간에 세계대전의 참혹한 역시 새로운 전환기를 이어갔다. 그들은 200년이 넘는 민주주의국가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제 해방이후 70년조차도 되지 못했다.

 

프랑스혁명에서 좌파인 자코뱅당이 자발적으로 주도했지만,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도 착각하는 것이 좌파라고 하면 마르크스주의로만 연결하나, 실상은 루소의 이념이었다. 루소가 민주주의국가의 기틀을 잡았는데, 민주주의 시초조차도 좌파라는 점이다. 단지 그것이 시대에 따라 변해갈 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과도기를 지나치지 않았기에 다른 국가의 200년 이상의 시간을 불과 70년 미만으로 해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구별짓기>라는 도서는 프랑스혁명 후 거의 200년 이후에 나온 도서이다. 그런데 이 도서가 그보다 40년 정도 뒤에 내가 읽는데도 그렇게 시대적으로 뒤떨어지는 도서가 아니었다. 지표들을 보면 당시 TV는 없었고, 라디오의 소유가 중요했다. 2010년 TV가 없는 집도 없고, 라디오는 이제 오래된 기계에 불과한 시대다. 그러나 문제는 물질적인 조건이 아니라 물질적인 조건을 부여하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란 점이다. 자본이란 것이 경제력이 아니라 학력, 사회관계, 문화, 상징 등 수많은 조건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각 차이점은 사회구성원들의 차이를 만들고, 그들의 생활과 사고방식까지 구별 짓게 하고, 최종적으로 정치적 참여까지 변화를 준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국가에서 자본주의 유입의 중요성은 개인의 자산을 인정한다는 점이고, 과거 봉건사회는 재산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존재하나 왕족, 귀족, 성직자, 상인, 기사, 농민, 노동자, 노예 등과 같이 간단하게 계급을 정했다. 이 중 상인이 제아무리 능력이 좋고, 재산이 많아도 정치적인 결정권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그저 돈만 많은 사람이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와 결합에서 소유의 인정은 결국 이들에게 정치적 결정권에 큰 기회를 주었고, 경제적인 능력으로 통해 다른 영역까지 충분히 손을 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인이라 하여 모두 부유한 것도 아니고, 일부 대부르주아지에서 유지되다가 그 밑으로 쁘디부르주아지,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는 유효했다. 그러나 이제 쁘디부르주아지도 기존 세력, 기존세력에서 유지 혹은 몰락, 신흥세력까지 등장하고, 하층계층 농민 내지 프롤레타리아도 교육이나 사회적 지위나 여건에 따라 다르게 되었다.

 

게다가 이들이 파리에 사는지 혹은 근교에 사는지 시골에 사는지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변화의 세세함이 결국 취미와 취향 등에서 발견되는 점이다. 이 책에서 상류계층인 상급관리자, 자영업, 대학교수 등을 보자. 본래부터 귀족적인 부르주아지들은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을 경우가 많으며, 국립행정학교로 통해 영속적인 계급세습이 이루어진다. 이들의 취미는 테니스, 승마, 요트 등과 같이 비싼 대가를 필요로 하는 취미이고, 옷이나 가구, 구두등과 생활용품들은 최신품보다 너무 티를 내지 않은 것을 요구하며, 오히려 최신품만 추구하는 쁘디부르주아에 대해 다소의 경멸감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교수나 그랑제꼴 같은 높은 학력자본소유자들은 비싼 비용보단 산책이나 독서, 미술관 관람, 음악회 감상 등과 같이 문화자본에 충실했다.

 

이들은 가격보다는 문화적인 영역의 정신적 혜택을 추구했고, 독서량이나 신문읽기도 다른 계층보다 높았다. 이들은 상류계층이라도 피지배분파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머물지 않고 하층계층 쪽과 소통을 하려고 했다. 가령 1968년 5월 혁명을 생각하자. 이 책에서 드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1968년 5월 혁명은 드골정부의 강압적 정책에서 시작된 사건이었고, 그 계기로 1969년 선거에서 드골은 패배한다. 당시 많은 대학생과 노동자, 심지어 주부와 청소년들까지도 이 운동에 참여했다는 점과 많은 지식인들이 5월 혁명에 대해 큰 호응을 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 어느 특정 운동에 대해 대학교수나 사회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지지선언을 종종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일부는 그 운동의 시발이 되는 세력에 대해 협조적인 자세를 유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상류계층에서는 그만큼의 문화자본력과 학력자본이 있기에 사회적 현상을 제대로 간파하고,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다. 정치적 참여에서 토크빌에게 큰 회의감을 안겨준 ‘민주적 전체주의(despotisme democratique)'를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지식인들의 계몽의식 전달이기도 하나, 계몽이란 칸트의 <판단력비판>에서 타인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시작인 것처럼 한계가 있다.

 

어째든 상류계층에서 교수들은 문화자본과 학력자본이라면 부르주아지들은 대부분 경제자본이었고, 취미도 그런 것을 추구했다. 부르주아지가 있다면 쁘디부르주아지가 있다. 이들은 부르주아지를 넘보는 존재로서 경제적 성공을 배경이 되나 단점으로 본래의 부르주아지보다 문화자본과 상징자본이 부족하다. 특히 이들의 성공의 신화에 깊이 빠져있는 부류로서 값이 비싼 의상이나 구두, 자동차 등을 구매하고, 취미 역시 요트, 테니스, 골프를 하여 자신의 교양적 수준을 경제적 자본으로 대체하려 했다. 기본적으로 본래 부르주아지들은 억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자연스레 어린 시절부터 몸에 베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승 중인 쁘디부르주아지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만약 어느 노래나 그림이 나왔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경우 전자의 경우 “글쎄? 모르겠는데요.”라고 간단히 넘어갈 것이나, 후자의 경우 억지로 아는 채를 낸다는 점이다.

 

경제적 자본을 소유한 쁘디부르주아지의 특징이 이렇고, 신흥 쁘디부르주아지 중에서도 문화자본을 소유한 세력도 나타나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고, 박물관과 영화관, 미술관 등을 방문한다. 이들의 특징은 조금 열린 사고를 가진 점과 그런 사고로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직업과 더불어 취미의 영역이 각 계층마다의 차이는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미적 감각의 차이이고, 그것이 물질적 영역인지? 아니면 정신적 영역인지에 따라 틀리다. 물론 취미생활에서 문화자본의 소유는 경제적 자본력이 필요하다.

 

가령 책 1권을 구입하거나, 음반 1장 구매하거나, 박물관과 영화관을 관람할 때도 티켓은 반드시 금액이 필요하다. 하지만 막대한 금액이 소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미생활로서 자신의 취향을 살리고, 그 취향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부여된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들이 농민과 노동자이다. 농민의 경우 정치적 세력에서 진보와 보수가 있다면 보수보다 더 보수적인 존재로 나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거 러시아혁명 이후 레닌과 트로츠키가 경제개혁을 하려고 했으나, 쿨라크들이 소비니스트적인 자세로 포기해야 했다. 그 후에 트로츠키가 스탈린에게 정치적 패배를 하게 된 이후 스탈린이 쿨라크들을 모조리 탄압하여 소비에트연방은 강대국이 되었다.

 

저런 역사적인 사례와 더불어 농민들은 파리나 대도시 인근이 아니고, 신문이나 잡지도 잘 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기존의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습관성이 있었다. 이와 달리 도시노동자의 경우 경제적 압박을 받는 점과 1968년 5월 혁명 시에 바갈로레아라는 대학입학증서 소지자조차도 노동자가 되어 학력자본 소유로 통한 계급변화가 힘들어진 점 역시 무시하지 못할 처사였다. 바갈로레아가 노동계급으로 들어올 경우 중등교육 내지 초등교육을 받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문제와 더불어 그 안에서도 사회적 지위를 상승할 수 있는 기회까지 경쟁할 수 있는 점이다.

 

어째든 그런 노동자들은 대부분 생계형으로 생활패턴이 잡혀있기에 문화자본에서 독서, 영화보기 같은 것보단 TV보기와 축구나 일반적 경기관람이 많았다. 신문이나 잡지에 대한 수효는 적었다. 기본적으로 하층계층은 자신들이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수준이기에 자신의 의지로서 직접 표방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간다. 이 책에서 어느 하류계층에게 “당신의 정치적 입장은 어떠나요?”라고 물어보면 “저는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죠?”라고 되묻는다.

 

비록 <구별짓기>가 취미와 취향의 분포로서 각 계층을 비교분석하는 것이나 토크빌의 주장처럼 ‘국민의 동의 없이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수권자’가 가능한 이유는 민주주의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얼마나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그러나 그 판단능력은 학력자본과 문화자본, 경제자본에 의해 다시 재정립된다. 결국 이런 자본들의 충분하지 못한 부류가 국민 대부분이기에 정치적 상황에서 어느 특정세력에 대한 지지보다는 그 자체로서의 유동적인 상황이 된다.

 

한국에서 정치는 바람이 불면 갈대가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갈대가 쓰러진 곳에 바람이 온다는 말처럼 하류계층의 지적영역과 인식능력에서 결국 정치적 영향으로 이어진다. 아니면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다”라는 말에서 이성의 영역에서 현실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영역이 이성적이라고 왜곡되는 것이다. 취미와 취향의 부류에서 왜 정치적 영역으로 가는 것일까 생각하면, 결국 취미와 취향이 인간에게 사고의 결정을 부여하고, 가치관을 정립하며, 게다가 그 취미와 취향에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같이 한다는 사회관계자본까지 결정적이다.

 

만약 골프나 요트타기를 한다고 가정하면 일반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취미라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을 할 수 없다고 하여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통해 조직되는 계급들의 벽들은 사회적인 대립각으로 변화되는 경우가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골프장 도입을 환영하겠으나, 그 인근의 어민이나 농민들은 반대할 것이다. 조금 극단적인 경우라고 해도 사회관계의 차이는 분명히 갈등의 원인이 되는 점은 우리 현실에서 자주 보는 일이다.

 

내가 위에서 한국사회의 흐름이 앙시엥 레짐에 가깝다고 한 말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문화와 취미, 취향 그리고 정치적, 정치적 영역에 왜 그런 것인가이다. <구별짓기>에서 이런 말이 있다. 정치인들은 하층계급에 대해 직접적인 입장이나 상황을 알 수 없으면서 그들과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접점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과의 접점을 찾으려 한다면 그들의 생활을 따라가야 할 부분이 있다. 취미나 취향, 심지어 식사와 일반생활까지 말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행위에 대해 진심어린 행동보단 아직까지도 상징적인 요소로 통한 신화의 단절과 단절이 아니라 영속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인류가 존재하는 이상, 신화라는 존재는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화가 계속 바뀌어 갈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아직 힘들다는 점이다. 앙시엥 레짐의 연계는 바로 상징자본적인 요소가 강한 현실의 모습이다. 프랑스에서 루이16세의 목을 국민들 스스로가 베었다면, 그것은 신체적 살해를 넘어 하나의 상징적 살해와 같다. 그러나 한국에선 상징적 상해는 없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 지지에서도 <구별짓기>가 제시한 학력자본, 문화자본, 사회관계자본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구별짓기>를 보면서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인간들 중에서 누가 가장 높은 존재인지 생각을 해보았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 나오나, 국민들의 권력을 ‘국민의 동의 없이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수권자’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어렵고, 경제적 규모로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삐에르 부르디외와 같은 지식인이어야말로 가장 높은 존재로 보여줄 수 있다. 단지 자신이 높이 보이기 위해 억지로 무리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지금 그렇게 되고 있는 사회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혁명에서 루소에게 큰 빚이 있다고 한다. 루소는 왕도 아니고 높은 계급에 오르지도 못했고, 매우 고된 삶을 보냈다고 한다. 프랑스혁명 일어나기 1년 전에 죽은 루소에게 혁명정부의 요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가 프랑스혁명의 앞을 만들어준 하나의 시작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아니라면 토크빌처럼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과 판단하는 임무 역시 중요하다. 인간들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삐에르 부르디외가 <구별짓기>로 통해 문화의 사회학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그런 프랑스의 1970년대의 모습과 그것을 통해 보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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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로의 숲을 찾다 - 내셔널트러스트의 여행
요코가와 세쯔코 지음, 전홍규 옮김 / 이후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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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처럼 환경을 전공한 사람에 자연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참으로 난감하다. 일단 나는 환경을 공학적으로 배웠고, 공학 이전에 과학과 기술로서의 관점을 키운 것이다. 따라서 환경이란 것을 분명히 인간의 심성과 영혼을 치유하는 존재로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을 하나의 구조와 체계로 보는 시스템이란 점이다. 생태학으로 통해 보는 자연이란 그런 것이다. 효율과 이익의 체계에서 본다면 말이다.

 

그런다고 하여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조금 더 유보적으로 혹은 안정적으로 또는 회복적으로 보는 것이 환경공학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공학이란 것은 이익을 위해서라는 단기적인 인간욕구가 결합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환경을 이익과 효율을 너머로 보는 것을 얼마나 중요한 것이다. 오히려 환경을 탈이익과 탈효율로 보는 것이 많은 이익과 효율을 준다.

 

많은 역사적 사례에서 그것을 증명되었다. 조금이라도 환경을 파괴하거나 망치는 경우 인간에게 돌아오는 보복은 확실하게 잔인하고도 철저했다. 수많은 인명들이 죽고, 병들며,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이 책의 저자가 주로 여행한 곳은 북유럽에 자리하고 있는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영미문화가 녹아든 호주와 그리고 자국 일본이다.

 

예전에 마르크스 자본을 읽으면서 심각한 노동자의 생활상을 보았다. 더러운 음식과 집, 좁은 방과 화장실조차 구비되지 않은 위생환경, 게다가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과 하천에 유입되는 공장폐수는 이들의 건강을 모두 망치게 했다. 인간의 수명 중에서 노동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수명이 40세 전후라는 점에서 나를 놀라게 했다. 어린아이가 일을 하면서 공장굴뚝에 올라가 암에 걸리거나 혹은 폐병에 걸리는 점에서 인간에게 환경오염은 생존을 위협하는 하나의 무기였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사유지이면서도 모두에게 열린 자연공간은 그런 노동자에게 필수적이었다.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풀과 나무는 인간에게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건강과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윤을 추구하는 자들에 의해 모두 격리되어 갔다. 그래서 존 러스킨, 월리엄 워즈워스, 베아트릭스 포터와 같은 인물들이 모여 자신의 이익이 아닌 모두의 삶을 위해 투쟁을 하게 된다.

 

당시 19세기 유럽 특히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 이후 끊임없이 자본주의로 통해 문명발전과 거기에 상응하는 자연파괴가 있었다. 자연이 파괴되면 될수록 사람들에게 문명의 혜택보단 오히려 인간성 파괴와 건강악화가 있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게 만사가 아니라 때로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돌아봄으로서 인간에게 돌아간 공간이 확보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삶의 욕망과 동시에 죽음의 욕망이 있다. 물론 정말 죽음의 욕망에서 죽음 그 자체를 추구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죽음의 영역이란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본능이 숨어 있다.

 

그 본능을 자극하고 만족하고 받아주는 곳은 오로지 자연이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으로부터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광기를 아름답게 표출한다. 자연에서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시인에게 시라는 노래를, 문학가에겐 위대한 작품을 선사한다. 물론 문명사회의 공간에서도 작가의 위대한 작품은 탄생한다. 하지만 아름답고 감성이 가득한 이야기들은 자연에서 태어난다. 게다가 우리 민족의 이야기에서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자연은 신화와 전설이 가득하고,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를 유지시킨다.

 

자연의 단절은 우리 인간에게 마음을 죽게 하고, 건강까지 죽게 한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큰 기여를 한 존 러스킨이라는 예술가는 자연에 접하지 않고 예술은 태어나지 않았다라고 한다. 미학적으로 우리 인간의 최초의 예술은 종교적인 제의였다. 종교적 제의가 정치적인 표현이고, 그 정치적 표현이 인간의 관념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대인들이 사용한 주술도구나 조각, 회화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고대그리스의 예술과 르네상스 예술 역시 그리스신화를 본을 땄다.

 

그리스신화조차도 자연의 흐름에 비합리적인 설명을 합리적으로 보여줌으로 신화라는 서사가 탄생했다. 특히나 디오니소스라는 포도주의 신이 그러하지 않은가? 자연이란 우리에게 끊임없는 상상력과 생명력을 준 것이다. 그것은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애니메이션이 있고, 그 애니메이션 감독 중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만든 이웃집 토로로라는 작품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은 매우 아름답다. 특이하게도 이 토토로의 숲은 일본 도쿄 사이타마현 시야마 구릉의 숲이라고 한다.

 

나무의 정령 토토로에서 일본의 전형적인 애니미즘 사상을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 역시 고목이나 바위에 정령이 있다고 여겼다. 물론 한국의 경우 애니미즘보단 샤머니즘에 가깝지만, 그래도 그 무속종교의 영역에서 자연이란 세계는 분명히 우리 민족에게 끊임없는 상상력과 생명력, 역사까지 주어진 것이다. 자연이란 세계는 그렇다. 우리 인간에 항상 미적 아름다움과 생명의 활력을 주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순간적 이익을 위해 모두 파괴하고, 소유화한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인간의 소유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은 결국 인간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거나 불투명하게 했다. 오히려 존재로 통한 영원한 소유로도 가능한데 말이다.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면 누구나 잘 보호되도록 가꾸며, 그것을 서로 즐기고 누릴 수 있다. 자연의 공간을 사유화가 아니라 인간을 너머 자연까지 공유하면, 그 누구의 것이 아닌데도 결국 그 누구의 것이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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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상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21세기총서 3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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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위해 나는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사회학이란 기본적인 명제 아래 경제학비판과 동시에 이루어져 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입장과 그 대중들 사이에서 학력과 경제력, 가정환경에 따른 변화무쌍한 사회적 관계는 단순히 이 책으로 읽었다고 하여 판단하는 여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부터 마르크스의 자본, 다른 인류학 내지 미학 및 철학 도서까지 읽어야 했다.

 

본래 이 책은 사회과학 도서라서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찰력이 제일 좋을지도 모른다. 저자인 삐에르 부르디외라는 콜레주 드 프랑스라는 엄청난 교육기관의 사회학 교수를 지낸 사람으로 과거 1968년 5월 혁명에 대하여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68혁명과 이 책과의 관계는 무관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구별 짓기에서 많은 차이를 주는 요인이 있지만, 그 중 제일 중요한 사항은 교육이란 점이다.

 

물론 이 책에선 교육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왜 교육일까? 최근 영미철학 도서를 보면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생각해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교육적 결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하기를 인간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란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보다는 자신이 사회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단지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시절은 그리스폴리스국가는 소수의 남자만이 직접적 민주주의가 가능한 귀족주의 시절이었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귀족만이 통치하는 과두제가 아니나, 10% 정도라면 조선시대의 사대부통치시절과 맞먹는 범주다. 그들에게 정치권과 사회결정권이 있었다. 따라서 이런 부분마저도 <구별 짓기>에서 중요한 사회적 계급차이를 보여준다. 그만큼 명문가문이나 오래된 자영업자들은 그들이 소유한 가정 내력과 자력을 소유하였기에 다른 사람들과 차이점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물론 앙시엥 레짐이던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 시대로 보자면 왕족, 귀족, 성직자, 기사, 자유상인, 농민, 노동자, 노예 등등으로 구분되었기에 그들의 신분적 한계로 문화적 구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독재정권 그리고 프랑스 왕권 몰락 후의 의회 성립 그 후의 1차 및 2차 세계대전, 여분으로 집어넣자면 알제리와 전투와 드골의 강압정책은 프랑스 사회에서 계급의 차이를 만들어 내던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봉건사회가 물러간 뒤에 프랑스에서도 영국의 산업혁명처럼 자본주의화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구체계라면 분명 천부적인 탄생에서 모든 것을 결정했다면, 자본주의는 다른 요소로 보았다.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런다고 하여 완벽한 부르주아에 의해 자본력만이 상위계급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자본 중에서 경제적 자본은 있어도 그 외의 자본은 없었다. 그것은 문화적 자본이다. 문화자본은 학력, 지역, 취미, 식생활 등 다양한 요소들이 집중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문화를 생산하는 것에서 문화가 인간을 생산을 하고 재분류를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인간이 문명사회에서 기호를 생산하고 즐기기보다는 오히려 기호에서 인간이 뒤따라간다. 그런 점에서 삐에르 부르디외가 살던 68혁명은 괜히 나온 시대적 배경이 아니다. 기 드보르가 이른바 스펙타클의 사회라고 하여 문화가 인간을 지배하여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마치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만드는 환상의 세계가 열린 것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이런 문화적 영향을 받는 모든 계급에 상관없다는 점이다.

 

문화적인 생활에서 계급을 나누는 것은 그들에게 자신의 신분의 우월감과 동시에 사회적 안정망을 추구한다. 가령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하다시피 상류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운동의 종류에서 항상 타자와 분류하려 했다. 특히 골프, 테니스, 승마, 요트 등은 그것이 정말 수준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그것을 즐기려 하는 것에서는 막대한 경제적 지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장 보드리야르가 논한 것처럼 현대사회의 인간은 자신들이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를 즉 자신의 상품적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소비를 한다.

 

<구별 짓기>에서도 테니스를 하는데 분명히 필요한 라코스테 메이커와 테니스를 하는데 필요한 아디다스와 같은 명품 스포츠상품은 1970년 전후의 프랑스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비싼 운동에는 다시 비싼 의상과 그 의상이 나타내어주는 상표까지 취급한다. 경제력을 모든 것으로 구별 짓는 귀족문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오랜 귀족문화를 가진 자들은 이들과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오히려 겉으로 억지로 나타내 주기보단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겼다.

 

엘리트적인 음악취향에서 상급계층보단 오히려 그보다 낮은 쁘디-부르주아 편에 더 많은 수치를 보인다. 그것은 그들에게 상류로 올라간다는 욕망과 더불어 하층계급과 다르다는 하나의 의식이 보이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도 우습게 만드는 것이 아방가르드 예술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영화, 미술, 건축, 무용, 문학 등에서 20세기에 활발하게 등장하다 쇠퇴와 몰락을 맞은 운동으로 최근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새로운 사상으로 전환되었다.

 

위와 같이 뭐든지 의식적으로 보이려는 행위에 대하여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보여주며, 심지어 counter-culture의 등장은 귀족주의 내지 상류문화에 대한 겉치레를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신들로 하여금 실천을 옮긴다. 가령 제일 재미난 구절이 바로 축구이다. 축구는 축구인데, 축구화를 신지 않고 운동화나 스니커즈를 신으며 여성들도 참여 가능하여 하이힐까지 신고 뛰어 들어간다. 경기장은 잘 정돈된 잔디구장이 아니라 진흙탕으로 엉망이 될 수도 있고, 경기하는 사람 수도 딱히 정해진 게 아니라 20~30명이 여기저기 몰려다닌다.

 

더 재미난 사실은 성인들만 아니라 중학생과 고등학생, 심지어 11~12의 어린아이도 있다는 사실이다. 억지로 구별 짓기하여 고상한 어른보다 오히려 소통과 대화로서 승부욕을 대신해 주는 모습은 새롭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다고 하여 상류로 가려하는 그들의 노고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의 행동에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마르셀 뒤샹이 미술전시관에 소변기라는 레니메이드에 자신의 서명을 한 후 “샘”이란 작품이라 명명했다. 다다이즘 작품으로서 현대의 예술(지금의 근대이나)은 딱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어디라도 있다는 풍자로서 당시로는 엉뚱한 행동이나 지금에서는 아방가르드 예술문화 도서에서 반드시 봐야할 통과의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자본주의와 밀접한 것이라고 본다. 자본의 구조와 그리고 자본의 구조만이 아닌 고상함과 신성성이 서로 겹쳐있기 때문이다. 가령 사회의 존경받는 그룹에선 반드시 돈으로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관료적, 혹은 학문적 영역도 존재한다. 그 중 교수를 보자. 교수들은 비싼 음식과 운동을 하지 않는다. 특히나 문학, 철학, 인문계통 교수들은 산책이나 등산을 좋아하고, 거기서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좋아한다. 상류계층이라면 상류계층이나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 영역이고, 문화생활을 중시한다.

 

문화생활이라면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것이 문화생활일 수 있다. 작은 월급으로 음식재료에 많은 지출을 하는 농민이나 공업노동자들의 생활 역시 음식문화, 소비문화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식사하면서 대화하고, 가족들과 즐기는 것 역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문화라고 인식하기보다는 문화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생존의 필요성이다. 유명한 옛 단어처럼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사는가? 식도락과 생존의 영역에서 우리는 어떻게 문화적일까? 라고 판단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문화적 소양이라면 당연히 일상적인 영역보단 비일상적 영역으로 봐야 할 것이다. 공연장 가기, 박물관 가기, 음반 듣기, 독서생활 하기 등등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여전히 문화적 차별을 이루어진다. 아니 지금 내가 이 책을 읽고 글을 적는 것마저도 문화적 차별이 이루어진다. 인간이 모든 행위 자체에서 문화적 행위는 분류가 되어 그것이 서로 재생산되고 되어 같은 부류와 만나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다른 그룹과 차이점을 둔다. 독서와 서평이란 취미와 취향에서 사회적인 영역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도 구별 지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어느 전시회에 유명한 그림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많은 금액도 필요하며, 전시회 대부분 박물관 및 화랑이기에 대부분 조용한 점과 그곳에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 좋은 의상에 깔끔한 외모를 하고 전시회에 들어온다. 오늘 그 그림을 보니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아비뇽의 여인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 피카소군. 참으로 좋다고 한다.” 문제는 그들은 대부분 경제적 자본력이 월등하다.

 

그러나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피카소의 분노이고, 아비뇽의 여인들은 스페인에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창녀들을 그렸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그의 명성을 찬양하는 인간들의 의식구조에서 피카소는 자본주의에 희생된 여성과 그리고 강대국에 의해 희생된 죄 없는 자들의 죽음을 추도했지만, 그런 것도 모른 채 앞에서 웃고 있는 자들을 어떻게 보는 하는 것일까? 아마 아비뇽의 여인들이 최고의 화가 피카소가 창녀를 보고 그렸다는 사실만으로 구역질이 나는 자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창녀에게 어떤 미학적 존재가 있기에 그들을 예술로서 승화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말이다. 아니라면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것인가? 그림이 걸린 벽을 보는 것일까? 라는 조소도 같이 보낸다. 결국 자본은 이런 그림조차 이해하기 위한 지식적 문화자본도 존재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 자본력과 혹은 가족의 내력으로 결정한 자본력, 또는 학력과 지식으로 결정되는 자본력, 이 모든 것이 인간들을 서로 구분 짓고 또 구분 짓는다.

 

문제는 그것이 가진 자에게 유리하나, 못 가진 자에게 상당히 치명적이다. 프랑스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기에 중등교육 이상을 수료한 자들이 부족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고, 이들에게 초반에 어울리는 직장이 찾을 수 있다가, 어느새 바깔로레아(대학입학증서)도 적정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시골 포도농장에서 일한다는 문구에서 학력의 과잉 화를 볼 수 있다. 5월 혁명 시기에 많은 학생과 노동자들이 저항한 이유는 바로 이들의 직업적 문제가 있을 것이다.

 

트리클 다운이란 경제적 효과는 이미 무효화된 경제정책이나 아마도 그런 체계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경제적 부분에서 학력의 상승과 동시에 일자리의 부족과 임금문제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본력이 중시된다. 이 책에서 아버지가 자영업, 공업노동자, 농민, 교수, 관료이면 그 후손들도 높은 확률로 이어졌다. 결국 문화자본, 경제자본, 학력자본 등은 인간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기 보다는 계급 재생산이라는 의미심장한 현상들을 만든다.

 

한국에서도 비정규직이 그대로 비정규직으로 가는 것은 불가피한 처사이고, 일부 소수자만 상위로 올라간다. 특히 spec 관리는 구별 짓기를 효과적으로 몰아붙인다. 경제적 자본이 학력자본과 문화자본까지 말이다. 하지만 경제적 자본력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그것에 비례하는 다른 영역에서 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취미와 취향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급예술이나 운동을 배우거나 높은 교육조건을 갖추는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 사람보다 우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가끔 아방가르드 표현과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로서 그들을 조롱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것 역시 남발할 수 없는 입장에 놓였다. 그렇게 조롱하는 사람들 역시 고상한 취미와 취향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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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바보들 - 틀린데 옳다고 믿는 보수주의자의 심리학
크리스 무니 지음, 이지연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나라는 사람은 이 책에 비유하자면 환경주의자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단순히 환경주의자라서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라는 전공을 선택했기에 환경주의자가 된 것이다. 따라서 상당히 관념적으로 환경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연적인 유물론적 영역에서 환경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히 지구환경이 오염되는 것이 일반화된 정보보단 전공지식과 과학적 기술정보에 의해 논리성을 부여하는 것이니 그만큼 다를 수밖에 없다.

 

막상 <똑똑한 바보들>이란 도서를 보면서 생각난 도서는 예전에 보았던 <지상의 위험한 천국>이란 서적인데, 그 부제에는 American Fascists라는 명제가 붙어 있었다. 즉 미국의 전체주의자라는 의미이다. 똑똑한 바보들과 지상의 위험한 천국에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더라도 근본적인 연결고리는 맞물러 있었다. 내가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나는 환경공학을 전공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과학이란 정확한 사실을 그리고 그 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논리와 이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진술에서 과학의 부정은 결국 비합리성인 사고관념으로 가득하다는 것만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책에서 그런 비합리적 사고로 무장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과 심리, 그 속에 무엇이 차이인지 보여준 내용이 있었다. 과거 한국에 이런 일이 있었다. 구미시에 폭우로 인해 흙탕물이 수돗물에서 나온 적이 있었다. 수돗물에서 흙탕물이 발생될 가능성은 몇 가지 있으나, 그 중에 예를 들자면

 

(1) 원수의 지나친 흙탕물이란 조건 - 그러나 정수시설을 가게 되면 모두 스크린과 침사지, 응집조에 의해 제거된다. (2) 정수시설의 문제 - 정수시설의 문제라면 그 정수시설에 나온 물을 공급받는 가구들은 모두 흙탕물이 나와야 하나 나오지 않았고, 어느 지역에 한정되었다. (3) 물의 송수과정에서 파이프나 관로 등이 손상을 받아 흙탕물이 유입될 경우 - 이 경우가 가장 확률이 높은 것으로 기본적으로 송수관로 주변에 하중이나 지형변화 등이 일어날 경우 관의 손상을 받아 주변 흙탕물이 상수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4) 각 가구마다 관로가 손상 받을 경우 - 동시다발적으로 흙탕물이 유입되었다면 수만 가구의 수도관이 고장 난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3)번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이 문제를 두고 어느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이 적국의 간첩이 한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 사건이 일어날 무렵에 엄청난 폭우와 폭우에 따른 토사유출이 발생했다. 기본적으로 토사유출이 발생하면 지반이 무너지거나 인근지역의 지면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으며, 토사누적으로 인해 지반붕괴 및 균열이 발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부분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도로 밑에 상수관로 흐르는 것이 대부분이며, 그 매장된 깊이가 매우 깊지 않다. 가끔 도로변에서 상수관로가 터져 아스팔트 위로 올라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그 발언을 하는 사람과 그 발언을 믿는 사람, 게다가 그 발언을 하는 사람을 그 위치에 올려놓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과학적 사고는 무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런 과학적인 논증으로 통해 어이없는 일들은 하나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별로 큰 충격이 아니었다. <똑똑한 바보들>에서 보인 그 어이없는 사고들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내가 왜 <지상의 위험한 천국>을 언급했냐면, 기본적으로 환경을 배우면 생물학 내지 생태학을 배우게 된다. 게다가 기상의 기본적 정보, 대기과학, 수질과학, 토양지하수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익히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충격을 받은 사실은 공룡이 등장한 것은 수천만 년 전의 일인데, 그 원원을 아담과 이브가 동산에서 사과를 먹었다는 이유로 공룡이 멸종한 것이다. 공룡화석을 방사선 원소 측정을 해보면 분명 수천만 년 전의 뼈들이다. 그런데도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어떻게 받아 들이야 하는가? 한국의 보수와 진보에서는 그나마 환경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는 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미 초월하여 이미 정확한 사실을 부정함으로서 스스로의 pata-physics한 공상소설을 만들고 있다.

 

지구과학에서 온난화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매년 탄산가스와 메탄가스의 증가로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고,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려 해면수위 13m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극악의 상황은 아니나, 적어도 일부 국가의 토지가 해수면에 의해 잠식당하는 경우도 있고, 해일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도 증가추세다. 기본적으로 태풍의 경우 적도부근에서 대기운동과 더불어 수증기의 압축에너지로 인해 거대한 폭풍이 발생한다. 이 원인은 지구의 과잉적인 온도증가다.

 

문제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지구온난화에서 예전에 미국이 탄소배출의 저감을 합의하는 교토의정서에 미국이 탈퇴했다는 사실이다. 탄소배출에서 대부분 문명국가에서 에너지원인 화석에너지의 소모 그 자체가 탄산의 배출과 지나친 낙농업의 확장은 소의 메탄가스 발생을 확대시킨 점이다. 당연히 대기업의 입장에서 이윤추구에 방해되는 세계조약에 반대할 입장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있어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눈을 가리고 귀를 닫고, 억지로 거짓 논리를 펼치는 점이다.

 

그들의 비논리적 태도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국 현재 대통령인 오바마가 미국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이슬람 쪽이라고 믿는 사람이 엄청 많다는 사실과 911테러에서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있다고 부풀린 사실이다. 심지어 부시도 직접적 발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보수주의자 미디어인 폭스에선 그런 것들은 계속 내보낸 점이다. 당시 테러사건 이후 미국에선 많은 사회적 혼란이 있었고, 그 혼란에 대한 불안 심리에서 타자에 대한 폭력적 행위도 있었다. 쌍둥이 빌딩 2블럭 옆에 이슬람 사원이 건축된다는 사실이 그 쌍둥이 빌딩에 세워지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은 자유주의자라고 불리는 미국인들에 의해 엄청난 폭력과 협박에 시달렸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가 가장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적이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국가의 헌법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와 각각의 자율성을 추구한다. 문제는 종교가 너무 깊이 국가와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린 점이다. 진화론을 없애고, 창조론을 믿게 하는 점부터 괴상하고, 인체 DNA구조에서 성체로서 대체할 수 있다는 미신은 비합리적이다. 도저히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들은 마구 생산하고 있다. 게다가 이것에 대한 반박마저 새로운 가설과 논증으로 만들고 있으나, 그런 유사한 문제는 미국 공화당 부시의 주변 정치조력자마저 내치는 상황으로 연결된다.

 

과학적 사고는 무슨 일을 하든 필연적인 부분이나, 그 사고자체가 위협이 되는 것에서 우린 어떤 반응을 취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이 책에선 뇌과학으로 통해 분석하고자 했다. 일단 우리 뇌에는 끊임없이 진화를 했기에 용량이 크다는 점이 있지만, 사람마다의 능력과 직업, 취미에 따라 뇌스캔을 해보면 어느 부분이 활성화 되어있는 모습을 알 수 있다. 결론은 뇌로 통해 저런 정보의 오류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란 가설이다.

 

단적으로 이 책에선 모두 보수주의자를 비과학적이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1960년대 진보주의자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와 같이 보수주의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 내린다. 단지 그 기준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가이다. 공화당의 1960년대에서 경제학적으로 매우 합리적이나, 당시 그 합리성을 제기한 경제학자가 2010년대의 미국 공화당을 보면 환장할 지경이란 것이 문제다. 왜 그런가에서 뇌의 실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주제와 텍스트를 볼 때 관심을 가지며 보는 시간이 있다. 어느 글을 보면서 전체적으로 보면서 판단하는가? 아니면 제목과 문장 첫줄만 보고 결정하는가?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진보주의적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보다 같은 글에 대해 더 오래보며, 상반된 내용이라도 다 같이 보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오직 자기입맛에 맞는 정보만 보고, 상세한 내용은 제대로 안보고 결정하는 셈이다. 주변에 보면 우리가 신문을 보는 경우 제목과 본문의 내용이 안 맞는 경우가 있다.

 

‘어느 사람이 어떤 사람을 죽이려고 생각했다’에서 제목에서 보인 정보는 사람을 살해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는 반면, 본문을 보면 그 내용과 전혀 다른 의도로 가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정보를 다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목의 선전에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한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정보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적인 프로파간다의 계략에서 똑똑한 바보가 된다. 머리에 그대로 복사기를 상황에 따라 같은 것들을 복사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런 부류가 대다수로 될 경우 하나의 정의 내지 교조주의로 흐르게 된다.

 

사람이 과학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위해 뇌가 있으나, 한편으로 가장 비합리적으로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느 책을 인용하면 “파스칼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광기에 걸려 있다. 따라서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미쳤다는 것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미친 사람은 미쳤다고 하지 않고, 미치지 않은 사람 역시 미치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두 부류 다 어느 곳에는 미친 영역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들이 미치지 않았다고 또한 옳다고 증명하기 위해 미친 행위를 어김없이 보이는 것이 주변에서 보이고 들리는 현실이다.

 

미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미친 짓을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행동일 것이다. 물론 합리적이고 이성적 보수주의자들은 대화와 소통으로 풀어간다. 진보주의자들이 개방과 유연성을 중시해도, 그들 역시 극단적 영역이 없지 않아 있기에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고 듣고 판단하느냐이다. 대통령이 기독교 문화와 갈등중인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발상조차 어이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관계없는 국가면 몰라도 한국인인 나도 아는 사실은 자국민 미국인마저 농락당하고 있고, 그것을 확실하게 여긴다는 것은 결국 이것은 <똑똑한 바보들>의 복제품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현실의 비극을 절실히 보여준다. 이 책이나 나 역시 진보와 보수는 어느 행위나 사고행위에 장단점을 지니고 있기에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시작하려면 먼저 이성적, 과학적, 객관적 사고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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