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외인구단 애장판 1~5 박스 세트 1 - 전5권 공포의 외인구단 애장판 세트
이현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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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화백님은 현재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한국 만화역사에서 남긴 흔적과 공헌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분이며, 한국 만화애니메이션 문화를 향유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 분은 내가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작가였다.
바로 이현세 화백님이 만들어낸 많고 많은 작품이 있지만, 나는 이현세 화백님의 이름 3자가 나오면 딱 이 만화를 추천한다. 바로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당시 1980년대 한국에서 3s 정책(sex, sports, screen)이 나올 적에 국내에서는 한참 프로야구가 인기몰이였다. 이런 흐름에 따라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런 한국 대중문화에 어울려 나온 명작 만화책이다.

내가 이 만화책을 처음 본 것은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프로야구가 국민학생인 나에게도 큰 여파가 올 정도로 많은 인기가 있었다. 당시 그런 프로야구와 더불어 공포의 외인구단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만화책였다. 물론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단순히 야구승부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역경과 시련 그리고 극적인 비극과 플롯이 작품 요소에 반영되어 많은 몰입도를 조성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런 추억에 잠긴 나에게 최근 읽어본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린 시절에 보던 그 만화책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공포의 외인구단은 엄청난 내용과 가치관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그 외인구단 소속 선수들은 모두 엄청난 실력을 가진 인간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인간패배자였다. 모두 멸시와 조롱을 받는 실패한 인간들, 즉 당시 살아가던 힘없는 서민과 억압받던 소외된 자였다. 그런 패배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그들이 최후의 발악을 떨며 자신은 이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비명지른 만화가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팔이 고장난 투수 오혜성, 거대한 덩치인 백두산, 손가락 하나 없는 조성구, 게다가 팔이 없거나 태어날 때부터 키가 너무 작거나 태어날 때 한국인이 아닌 혼혈아 태어난 사람들, 그리고 미치광이 감독.. 이들은 모두 패배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소시민이들었다. 아무런 내일도 기약도 없이 죽음을 각오하고 야구훈련을 한 이들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 투쟁을 한다. 그리고 이들의 목표는 프로야구단 꼴등 팀에 가서 100연승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100연승이란 길고 긴 서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에 대한 복수와 패배한 자들의 포효는 야구 팬들로 하여금 환호성을 외치게 한다. 하지만 모든 세상에는 완벽한 일들이 없는 가보다. 100연승을 앞둔 상태에서 외인구단의 최대 라이벌인 마동탁이 다시 돌아와서 100연승의 종지부를 찍고 만다. 결국 100연승을 이루지 못한 패배한 인생들은 마지막 1승을 앞에 두고 현실 앞에 좌절한다.

이 좌절의 패배로 인해 오혜성은 시력을 잃어버리고, 마동탁의 아내요 오혜성의 첫사랑인 엄지는 오혜성이 눈이 실명된 것에 충격받아 정신을 실성한다. 그리고 마동탁은 엄지와 이혼하고 실성한 엄지와 눈이 멀은 오혜성은 최후에 해후하여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패배한 인간이 자신들의 목포인 100연승을 달성하지 못해 좌절하지만, 그 1승을 놓치더라고 99승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외팔이 선수 최관은 엄지 동생와 결혼하였고, 땅꼬마 최경도도 자신이 좋아했지만 자신에게 냉대하게 대한 은행여직원과 결혼하다. 조성구도 패배자 투수로 살림살이가 어려워 집에서 구박받았으나 이제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안식처를 얻었으나 오혜성은 안식처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최후에 실성한 엄지와 만나 제정신이 아닌 두 사람은 사랑을 영원히 나눌 수 있다.

억압받던 우리 한국 사회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떻게 보면 패배자들의 향연이다. 마동탁은 부유한 집안에 엘리트 선수로 언제나 성공이 보장된 인간이었다. 그의 엘리트의식이 패배자들에게 조금씩 밀리자 자존심이 상하게 되고 마동탁이란 엘리트는 최후의 100승 고지에서 외인구단에게 패배를 안겨주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외인구단이 패배하더라도 그들 가슴 속에 묻은 억압된 욕망과 현실에 대한 분노는 닫혀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 향해 분출되고 있었다. 너무 뜨겁고 열정적이기 때문에 최후의 패배는 우리에게 아주 비극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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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 할인행사
야마가 히로유키 감독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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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보았습니다. 전설의 그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말이죠.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는 오타쿠 전문집단인 가이낙스의 최초작품입니다. 1987년 야마가 히로유키가 각본과 감독을 맡아 안노 히데아키, 오카다 토시오, 사다모토 요시유키, 오구라 마사히로 등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분들이 만든 작품으로 제가 보고 있는 2010년이니 지금으로부터 23년전에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경이나 사물에 대한 그림체는 정말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습니다. 그러나 대신 인물에 대해서는 그래 이쁘게 혹은 멋지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왕립우주군은 내용적인 작품성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담론을 담고 있으므로, 캐릭터의 모난점은 그런 부분을 강조하겠지요. 이 작품에서 보이는 특성은 아마 저보다는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고 있는 분들이 잘 아시고 더욱 잘 적어 주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최근까지도 영화평론가 사이에도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전 명작구분에서 대중의 인기가 좌지우지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유행이나 인기의 가치로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매기는 지요?




제가 이게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은 여기에 무엇이 담겨있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전달하는가라는 겁니다. 화려한 영상이미지와 극적인 플롯전개와 몰입도로 작품을 판단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통해 이 작품들이 무엇을 전달하는 겁니다. 아직 개념이 잘 안되서 이해반 불가반인 영상기호학이란 책을 보면서 애니메이션화면이 카메라시점과 똑같이 적용하는 점과 숏과 숏이나 시퀀스. 몽타쥬, 미쟝센 등 익숙하지 않은 단어와 그 단어가 지칭하는 의미도 이해가 어려워서 계속 고민합니다. 하지만 왜 이런게 중요한가는 이해갔습니다. 애니메이션 화면과 화면은 프레임과 프레임의 연결로 영상이미지에 사운드를 가미하여 우리에게 어느 주제를 전달하고자하는 한가지의 전달체계 즉 언어라는 겁니다.



주인공인 시구르츠 리닷트입니다. 그는 왕립우주군의 장교로 있지만, 사실 왕립우주군은 속된 말로 당나라군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라에서는 아주 무시당하고 무능력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봅니다. 사실 주인공의 얼굴을 보면 뭔가 영웅이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한심하고 나약한 한 청년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가 처음 작품 시작할 때 동기 한명이 우주로켓 발사시험에서 사망합니다. 그러나 그는 집에서 무력한 인간처럼 천정을 보면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그는 예식복장을 갖추지 않고 지각까지 했으니 그의 한심하고 나약한 현실을 절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이 왕립우주군이 자신이 그나마 밥을 빌어먹을 수 있지만, 언제 여기가 해체될지도 모르고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타파하기 보다는 그런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현대사회의 젊은이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우리도 현실에서 주어진 환경에서 그저 마음을 안주하지만 한편으로 언제나 불안해합니다. 목표없는 미래, 꿈, 희망 어째보면 리닷트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처럼 그저 흘러가는 청춘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무기력한 리닷트가 왕립우주군에서 실패한 인생을 넘어서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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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공각기동대 "S.S.S" - 한정판 (컨셉 아트북 + 양면자켓2종 + 해설집포함)
카미야마 켄지 감독 / 미라지엔터테인먼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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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령화 문제는 1990년대부터 이미 그 현상이 큰 사회적인 쟁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노인인구의 증가로 인해 실버사업이라는 새로운 사업이 등장했지만, 그 사업의 발전을 보자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인인구의 비율증가는 곧 그 나라에서 재화와 상품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청장년층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인 것이다. 한국은 1970년대 경제성장에 따라 산업구조와 정보기술력은 상당한 진보를 거친 것은 사실이나, 국민복지와 사회적인 인프라구축에서는 소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장애인, 고아, 결식아동,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정책은 그다지 큰 발전하지 못한 실정이다. 게다가 경제활동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노동자의 근무조건, 급여, 보건환경, 안전 및 복지에 문제로 여전히 나라에서는 집회운동이나 사회적인 시위가 발생하고 실정이다.



전혀 관계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노인들은 경제활동 자체가 가능한 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 연극영화배우로 큰 역할을 맡은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이순재 교수님이나 삼성 이건희 회장처럼 국내 교육, 정치, 경제, 문화재 등 그 분야 및 사회적 위치에서 정점을 지키고 있지 않은 이상 노인들에게 경제적인 능력과 사회적인 위치는 상당히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다고 일제강점기 해방과 625전쟁, 군사독재정권, IMF 등 한국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위기를 맞으면서 이겨낸 그들에게 이제 더 이상 늙어서 소용없으니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행위이다. 그런다고 이런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재 한국이나 일본이나 기타 선진국들의 크나큰 숙제이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조금 생각하면서 떠오른 작품이 있었다. 그건 공각기동대 TV 시리즈 3기이다. 공각기동대는 극장판과 TV드라마로 2가지가 나누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유명하다고 인정된 작품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만든 극장판 공각기동대로 2000년을 맞이하기 전에 아키라.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함께 3대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 명작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이버펑크라는 단어를 줄이면 SF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상과학영화(science fiction film)가 아니라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펑크(Punk)의 합성어이다.

사이버네틱스란 생물 및 기계를 포함하는 계(系)에서 제어와 통신 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고, 펑크는 1970년대 락뮤직 흐름에서 이른바 펑크락이 등장했는데, 이 펑크는 젊은이들이 기존의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이버로 통한 인간 및 생물과 기계의 조합에서 반항의식을 표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키라를 보면 주인공인 생체연구소의 실험으로 괴물로 변화는 것과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에바의 구성이 원래 아담과 인간의 유전조합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연상될지도 모른다. 공각기동대에서는 애초부터 주인공인 쿠사나기 모토코의 경우 전신이 기계화로 되어있고 두개골속의 뇌는 일반인의 뇌가 아닌 전뇌로 되어 있어서 전신 사이보그로 되어있다.

공각기동대에서 주요착안점은 인간과 기계, 남성과 여성, 나와 상대편에 대한 이원화적인 구도보다는 그 구도를 분리하여 경계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점을 파괴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공각기동대는 애니메이션 족에서 여성학과 사이버펑크 장르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째든 이런 공각기동대의 주요설정을 보자면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은 솔직히 말해 아주 심오하고 어려운 작품이다. 이번 주제로 올릴 작품은 TV 시리즈 3기인데, 우선 TV시리즈들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작업을 맡은 것이 아니라 카미야마 켄지라는 감독이 총괄적으로 작업을 맡았다.

그리고 1기와 2기에서는 26화의 장편물이 아닌 단 1편인 105분이라는 시간 안에서 보여주어 다소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느낌도 든다. 이 3기에서 주요 핵심적인 내용은 이 노인문제와 아동문제이다. 위에서 필자가 말한 노인문제도 이 공각기동대에서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재산과 경제적인 입지를 갖춘 노인이 있는데, 문제는 이 노인들이 사망하면 뒤를 이어나갈 후손이 없다는 점이다. 후손이 없는 노인들이 사망하면 그 노인들의 재산은 국가에서 모두 몰수해간다. 거기다가 더 큰 문제는 고아나 혹은 가정상황이 어려운 집안이다.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혹은 고아들은 국가적으로 아주 큰 문제이다. 어린이들은 국가미래를 짊어져갈 큰 인재들인데, 그런 어린이들이 부모의 경제, 사회, 도덕윤리적인 문제로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요 착안점은 이런 어린이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부 고위관리자는 어린이들을 어느 기관 한 연구실에서 단체로 교육을 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그 아이들은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들으며 같은 것을 하고만 있다. 이번 작품의 배후인물 중의 하나인 고위인사는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이 국가미래를 발전해 나갈 인재라고 한다. 확실히 그렇게 자기네들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물론 잘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아이들을 위한 교육방법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만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구도를 이어나갈 뿐이다. 집단교육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경제적인 발전은 있으나 인간적인 삶은 영위할 수 없다. 버려진 아이들과 죽어가는 노인, 노인의 죽음으로 재산을 국가로 가면서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들인가라는 의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공각기동대 TV시리즈 1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인형사라고 불리는 웃는 남자이다. 그가 나올 때 TV애서는 그의 얼굴이 나오지 않고 스마일마크가 등장하여 이른바 스마일맨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그는 1기에서 처음에 범죄와 음모의 우두머리로 보였지만, 사실 그는 국가고위간부와 군대, 경제, 언론 등 다양한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을 속이고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죄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 활동하다가 오히려 기존 이익을 고수하려는 고위기관인물들에 의헤 왜곡당한다.
 
그런 일들은 과거나 현재까지도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라 애니메이션 속의 가상세계에서도 실재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나오는 것은 자주 알 수 있다. 어째든 이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로 불리는 웃는 남자가 하려고 하는 것은 죽어가는 노인과 버려지거나 가난한 집안의 아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의 호적을 그 노인 밑으로 이적시키는 것이다. 물론 친자식은 아니나 그 노인은 자신이 죽어가겠지만 자신의 후계자가 있다고 생각함에 따라 죽음이라는 공포를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아이들은 가난에서 해방되어 경제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자신의 친자식이 아닌 애를 누군가에게 강제로 입양하는 것은 그 부모의 입장을 무시하는 것만 아니라, 작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쪽에 가까운 토쿠사도 자신의 아이가 인형사에 의해 입양되려고 할 때, 쿠사나기 소령이 구출해주었지만, 공각기동대에서 보여주는 노인문제이야기는 애니메이터들이 만든 가상세계이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공감대가 포함된다. 1기의 국가의 정보조작, 2기의 인간의 군중심리로 자국의 국민과 타국의 이민자들(중국이라 하지만 스토리 흐름을 보면 한국영토 내의 원자폭탄으로 인한 이주자일 가능성이 높음) 사이의 갈등을 일으켜서 현재 정권을 유지하는 사람들(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은 자국 내에 전쟁이 없음에 따라 무사들과 영주들의 불만이 자신의 정치적인 위기로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분노의 칼날을 조선으로 돌렸다.
 
역사를 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귀족, 왕족, 정치권 등 상류계층이지만 그 억압을 받는 존재들은 국가경비대나 경호대, 국가공권력에 막혀 그 분노가 원인 발생자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의 모습에서 공각기동대가 시사하는 의미는 외교, 정치, 경제, 언론, 사회, 문화 등 다양한 현실적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웃고 즐기기 위해 나온 것은 사실이나, 과연 애니메이션이 일반 사회에서 보는 편견과 고정관념처럼 그렇게 질적 수준이 낮은 가에서 필자의 대답은 완벽한 NO이다. 하지만 그 NO를 대답하는 일들은 정말 만만치 않고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은 보고 듣고 생각함으로 애니메이션이 과연 우리주변에서 보는 게 질적으로 낮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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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 Animation & Philosophy
이진경 외 지음 / 문경(문학과경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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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와 국외에 애니메이션과 관련되 서적과 학술자료 및 논문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막상 그런 책들을 필자가 접하는 경우 많은 애로사항이 나온다.
그것은 이 자료들은 애니메이션 수용자를 대상으로 적은 글이 아니라 단순히 자기네(학회)들의 사고를 공유할 뿐이다.
문제는 이런 자료들이 애니메이션 향유자들에게 열려 있지 않으면 애니메이션문화는 결국 퇴화해 버린다.
애니메이션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대중이라면, 이런 자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야 말로 엘리트로 볼 수 있다.
현재 필자가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애니메이션문화 향유대중과 애니메이션 연구하는 엘리트부류의 중간론적 역할로 통해
서로 왕래하며 정보공유 및 이해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애니메이션을 보면 과연 이것이 자기가 어떤 것들을 생각했는데, 막상 표현하거나 혹은 나타내는 경우 많은 고민이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작품 내의 텍스트 해석이나 영상기법, 음향기법 등 다양한 경로를 읽어서 애니메이션 영상을 읽는 것도 일종의 영상서사 읽기 하나라는 것을 인지시켜 만화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은 오덕이나 덕후, 십덕후라는 말 대신에 애니메이션 팬, 매니아라는 일종의 취미와 취향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 필자의 목표이다.
그래서 오카다 토시오가 제시하는 진정한 애니메이션 오타쿠는 이런 팬과 매니아들을 아무런 편견과 고정관념에 시달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째든 계속되는 한국 애니메이션문화의 현실적인 문제는 단순히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생긴 문제이니, 조금씩 조금씩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늘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즉 애니메이션 아니다는 말은 애니메이션인데 왜 아니냐는 말인데, 그 이유는 여기서 나온 애니메이션들은 인문사회학자들이 보는 시점에서는 단순한 애니메이션도 영화도 아닌 그 이상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예술이란 것은 명작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그 명작을 구분짓게 하는 것은 그 작품 내에서 의미하는 영상서사를 해석함에 따라 나온다.
그래서 다른 분들은 몰라도 필자는 인기있는 애니메이션을 명작과 별개로 보는 이유도 그런 이유다.
명작이다고 하자. 그러면 그게 왜 명작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가? 단순히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로 누가 멋있다! 누가 대단하다! 란 식은 애니메이션 전문 평론이나 비평에서 나오지 않은 단어이다. 그 작품 내에서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 그 시대적 상황과 배경에 따른 연출을 해석하여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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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문화의 리더 오타쿠
이진천 지음 / 디씨에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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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리뷰를 적고 있는 필자는 만화애니메이션 오타쿠이다. 국내에서 만화애니메이션 내지 혹은 게임과 밀리터리, 코스프레를 접하는 사람들을 오타쿠라고 한다. 오타쿠란 어원은 본래 일본에서 나온 단어로 집에만 갇혀 살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여 다른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이른바 세상 속에 고립된 인간을 의미한다.

분명 오타쿠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매우 강한 단어이다. 하지만 이 오타쿠란 존재가 과연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가이다. 왜냐하면 코믹월드에 참가하는 부스나 거기에 상품을 사러오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아닌 2차원 세계의 인물을 흉내내는 코스프레이어들이 과연 집에만 있는 존재인가이다.

물론 일반 대중들과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대중처럼 심각한 획일화에 갇혀있지 않다. 물론 오타쿠문화라는 서브컬쳐에도 주류세계와 비주류세계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 것을 무조건 버리고 새로운 것만 취하기를 바라는 대중문화와 달리 새로운 것과 아주 오래된 것까지도 공존하는 것이 오타쿠문화이다.

그래서 오타쿠문화란 상당히 폭넓고 다양하고, 그 다양함 속에 세밀하고도 깊은 세계가 존재한다. 이런 서브컬쳐를 구성하는 오타쿠문화를 알아본다는 것은 현재 획일적인 사회통념과 교육관념으로 창의력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뭔가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런 신선한 자극제로 사용될 수 있는 이 오타쿠문화가 어떻게 하면 사회문화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를 전달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는 언제나 획일적인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뭔가 새롭고 참신한 내용이 필요한 세상이다. 그런 현대사회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서브컬쳐를 알아본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공간을 창출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제일 필요한 게 바로 문화구성력을 만드는 인적 인프라 단계이다. 문화컨텐츠는 공장의 기계처럼 자동으로 찍어 나오는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컨텐츠는 오로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무형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적인 욕구로 통해서만 문화컨텐츠사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화컨텐츠를 구성할 수 있으려면 먼저 이 오타쿠문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이 오타쿠문화로 통해 긍적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 필자가 리뷰하려고 하는 "21세기 신문화의 리더, 오타쿠"는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오타쿠와 우리가 평소 알지못했던 오타쿠에 대해 소개한 도서이다. 물론 필자가 이 서적을 읽기 전에 이미 국내 대학원에서 오타쿠에 대해 연구한 석사학위 논문 몇부를 읽어보았으며, 거기에 더하여 일본 오타쿠 전문가 및 평론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문사회학자들의 연구서적까지 보았다.

그런데 기존에 필자가 보던 책들은 일반 사람들이 읽기에는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일반 대중들은 어느 특정한 이슈와 현상에 대해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대부분 사회적통념과 편견으로 판단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잘못된 사고방식은 자신들과 다르게 보이는 오타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사고로만 접근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소 학술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올바른 단어의 정의와 내용해석이 필요하면서 한편으로 일반 대중들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적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 "21세기 신문화의 리더, 오타쿠"는 상당히 좋은 도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책를 만든 지은기가 국내에서 오타쿠에 대해 서술하기 보다는 직접 일본이란 곳에 살면서 현지에 있는 오타쿠와 만남으로 통해 좀 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전개하였다.

책을 보면 우리가 기존 생각했던 오타쿠는 대부분 만화애니메이션, 게임, 밀리터리, 코스프레 등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오타쿠는 그런 장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철도오타쿠, 공항오타쿠, 기계오타쿠, 차량오타쿠 등 매우 많은 종류가 있다. 특히 이 서적에서는 주로 다루고 있는 오타쿠는 철도오타쿠와 모에오타쿠이다. 

철도오타쿠는 교통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존재로 기존 오타쿠 연구서적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모에오타쿠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에를 쉽게 풀이하고 모에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작용하는지 쉽게 풀이 되어있다. 그리고 모에오타쿠에 대한 내용으로 1980년대 우르세이 야츠라부터 최근에 방영된 애니메이션까지 예시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국내에서 부정적인 존재로 낙인찍힌 오타쿠문화이지만, 이 서적에서는 이 부정적인 면을 잘 이용하여 긍정적인 요소로 만들어서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문화컨텐츠강국을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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