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스쿨 DxD 3 - Novel Engine
이시부미 이치에이 지음, 곽형준 옮김, 미야마 제로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이번에 하이스쿨 DXD 3번째 권을 보면서 이 말이 생각났다. “신은 죽었다” 라고 말이다. “신은 죽었다” 라는 말은 어디에서 흔히 들어본 간단한 문장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원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온 말투다. 조로아스터교의 차라투스트라는 인물을 내세워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낸 철학도서다. 일반 학생이나 대중들이나 볼만한 라이트노벨에 생각해도 머리가 매우 아픈 철학을 끄집어 낸 것도 뭔가 아닌듯 하나, 그것도 서구철학의 모든 것을 배반한 니체에서 꺼내온 것 역시 위험한 수준일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책 표지일러스트를 바라보면서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시아 아르젠트, 그는 본래 수녀였고, 가톨릭교회에서는 한 때 성녀라고 불릴 정도다. 그녀의 치료능력은 성모마리아의 은총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1권에 나올 적에 수녀복을 입은 시스터였다. 그러나 3권은 조금 다른 시스터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악마날개를 펼쳤다. 그것도 교복도 아닌 수녀복으로 말이다.

 

이미 여기서 선과 악이란 이분법적 사고는 벌써 해체가 되어버렸다.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온 서구철학에서 이분법적 대립은 선과 악, 너와 나라를 주관과 객관이 나누어 버린다. 문제는 그 주관이란 존재가 과연 옳고 정당한 존재인지 수긍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격해진 것이다. 그런 문제는 1권에서 아시아가 가톨릭교회에서 이단자로 몰려 타천사에게 억지로 끌려간 사건과 그리고 3권 째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한 키바 유우토의 과거 역시 그렇다. 이 책에서 왜 신은 죽었는가라는 의문은 여지없이 폭로한다.

 

물론 신은 그러하지도 혹은 그 이상으로 난폭할지 모른다. 신이란 존재가 있다고 믿기에 인간들은 스스로 양심을 지키며, 또한 신이 있는데도 세상 어딘가에서 매우 부당하게 사라지고 있다. 신은 과연 있는가? 물론 서양종교보다 다소 동양적인 종교관에 가까운 본인입장에선 신은 자연이라고 여기는 점에서 신은 어디에나 있다고 여길 뿐이다. 나는 절대적인 신이 존재하지 않음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하이스쿨 DXD 3권은 그런 신에 대한 관념에서 매우 충격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물론 순전히 작가의 사고 아래 생성된 하나의 세계이나, 그 세계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잔인한 사고를 나타낸다. 전편들을 살펴보면 악마, 천사, 타천사 3부류들은 서로 간의 경쟁에 모두 큰 피해를 입은 채 암묵적인 휴전에 들어간다. 그런데 겉으로 전쟁만 끝이지 그 전쟁 자체를 위한 하나의 과정은 살아있었다. 천사를 믿는 인간들은 자신들의 절대적 선을 만들기 위해 그 궁극의 미를 추구하려 했다. 문제는 미의 추구에서 이것은 도덕적 관념, 즉 천사의 이름으로 타천사와 악마의 제거이지, 그 이후에 대해 전혀 생각한 바는 없었다. 오로지 그 하나를 위해서는 절대적 미를 추구하면 어떤 것도 희생을 감수해도 무방한 점이다.

 

과연 종교란 절대적 교조주의 즉 dogmatism으로 이루어진 폭력의 정식화인가? 아서 쾨슬러 소설인 <한낮의 어둠>에서 루바쇼프라는 주인공은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의 주역임에도 불구하고 넘버원에 의해 숙청된다. 그가 교도소에서 수감 중에 친구였던 이바노프와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에서 역대 유럽역사에서 기독교 종교를 가진 국가가 한번이라고 기독교의 진실한 진리로 대중을 통치했냐는 것에 의문에서 없었다 라는 것이다. 물론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를 읽다보면 더욱 확연한 것이 나온다. 15~17세기 사이에 유럽에선 마녀사냥이란 이름으로 50만 명에 가까운 죄 없는 자를 무참히 살해했다. 이것은 그 사회가 가진 하나의 정당성이고 정의이고, 진리인 종교의식이었다.

 

그래서 맨 처음 니체의 “신은 죽었다”에서 왜 신은 죽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종교라는 거룩한 이름아래 자행해온 폭력의 역사는 결국 신이 인간을 구원이 아니라 망친 것이다. 물론 정말 신은 인간을 망치지 않았다. 단지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그 추종자들의 맹신적인 전투적 메시아가 비극을 초래했다. 따지고 보면 키바나 아시아 모두 그런 추종자들에 의해 희생된 존재다. 키바는 타락천사를 증오하고, 거기에 매수된 타락한 신부 역시 증오했다. 그 중오로 얼굴이 성난 짐승처럼 일그러진 키바에겐 죽음이란 고통, 죽음 이후 악마로서 삶은 살아가고 있으나, 당시 같이 희생되어야 했던 친구들의 희생을 평생 혼자 안고 살아간 것이다.

 

바르퍼의 실험에서 키바는 모든 것을 잃었다. 꿈, 희망, 친구, 삶까지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잊지 않았고, 분노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복수를 숨겼으나, 그 숨겨진 분노 대신 그의 얼굴에 거짓된 미소로 위장했다. 하지만 그의 거짓된 미소 아래 감추어진 분노의 복수는 그의 모든 것을 삼켰다. 바르퍼와 싸우던 키바가 불리하자, 바르퍼는 매우 간악한 모습으로 키바에게 결정체를 던진다. 그 결정체는 엑스칼리버를 다루기 위해 키워진 아이들의 생명력을 닮은 도구였다. 그 결정체에 키바의 손이 가자, 주변에 키바의 친구들이 나타나고, 키바는 그들에게 축복과 삶에 대한 의지를 받는다.

 

악마인데도, 분명히 성가를 부르면 심한 고통이 오는데도, 키바는 유령처럼 나타난 친구들과 같이 성가를 부른다. 그 성가는 마치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세상이 모두 아름답게 보일 정도였다. 잇세이는 그 장관을 보면서 머리가 아플 것이란 생각 대신 오히려 기분이 좋고 매우 포근했다. 성가를 부르는 악마, 그리고 마검이 성검과 합쳐 성마검이 되었다. 악과 선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일까? 본문에 이런 리아스의 대화가 나오는데 그 문장이 매우 인상 깊다.

 

“그들 교회관계자들은 우리 악마를 사악한 존재라고 말하지만, 인간들의 악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존재이지 않을까” 이 말은 과연 옳았다. 아시아가 수녀이면서도 악마가 된 원인은 아시아의 순수한 이타심을 부정하고,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은 인간이다. 키바와 그 친구들은 힘들고 고된 실험에서 신에 대한 찬양과 기도, 그리고 마음 속 깊이 우러나온 성가로 그 힘든 나날들을 견뎌왔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 죽음, 비난, 절망, 우울, 저주 등등 인간들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악의를 받아들이고 뿜어야 했다.

 

작품 표지 타이틀에는 “우정과 열혈, 그리고 굉장한 번뇌로 선사하는 학원 러브코메디 배틀 판타지 망상 질주!” 라고 되어 있다. 물론 잇세이와 키바, 코네코의 우정은 소중했고, 잇세를 두고 리아스와 아시아, 거기에 아케노의 가세는 분명 하렘왕국의 주인으로 보이나, 잇세이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야한 것만 밝히나 그의 내면에는 리아스에 대한 존경과 동경심에서 야한 생각도 하고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어도 막상 그 순간이 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고, 아시아에 대해서는 언제나 마음 속 깊이 죄를 지었다는 양심의 가책 아래 아시아에 대한 모든 것을 지켜주려 했었다.

 

따라서 야한 것은 나오되, 그의 야한 것은 하렘과 무관한 번뇌로 치부된다. 물론 야한 장면은 작가의 서비스라고 본다. 후기에 보면 “담당 편집자 H님, 매번 에로 어드바이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점점 야시시한 아이템이 떠오르는 에로에로한 작가가 되어갑니다. 수정 부분이 지적이 없었더라면 이 작품은 연령제한이 붙었을지도 모릅니다.” 라고 되어있다. 이번 3권의 제일 중요 포인트는 잇세이의 활약보다는 키바의 활약이고, 그 활약 뒤에는 어두운 선의 과거에 숨어있다. 폭력이 미화되어 그것이 하나의 정당성이 되어버리면 우리가 흔히 가장 멀리하고 싶은 “파시즘”이 된다. 파시즘이라면 가까운 일본의 대동아전쟁의 군국주의,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히틀러와 같이 전쟁을 일으킨 무솔리니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파시시트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국민 역시 같았다는 점이다.

 

그런 절대적 맹목 앞에 아무리 악마라고 해도 잇세이의 어린 시절 친구인 시도 이리나는 잇세이가 인간이 아닌 이유로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제노비아 역시 과거의 [선배]인 키바와 전투를 벌였다. 악마이기 전에 인간이었고, 인간 시절 그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으며 심지어 매우 좋은 인간성을 가진 그들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선악의 이분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 천사, 악마, 타천사의 전쟁에서 4대 마왕과 신이 모두 소멸했듯이 말이다. 붉은 용제가 잇세이에게 힘을 가진 용에겐 추종자와 도전자 모두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잇세이는 그런 것보단 오히려 여자를 밝히고, 그것보단 리아스에게 모든 것을 던지려 한다. 차라리 그런 도덕적 관념으로 이루어진 폭력보단 단순하고 솔직한 자신을 보임이 훨씬 인간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스쿨 DxD 1~2 세트 - 전2권 - Novel Engine
이시부미 이치에이 지음, 곽형준 옮김, 미야마 제로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그 사람의 머리카락 색이랑 똑같아. 선혈로 물든 손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붉은 스트로베리 블론드보다 더욱 선명하게 붉은 머리카락, 그래, 그 사람의 아름답고 붉은 머리카락은, 내 손을 물들인 피와 똑같은 색이다.>

 

이 대사는 하이스쿨 DXD에서 처음 나오는 대사다. 즉 효도 잇세이가 죽어가는 찰나에 자신의 죽음에 한탄하며, 마지막으로 마음 속 깊이 숨겨둔 본심을 회고하는 것이다. 하이스쿨 DXD 라이트노벨 1권을 읽기 전에 나는 이 대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보았다. 라이트노벨 특성상 약간의 일러스트를 제외하면 문자텍스트란 점에서 그 실감도는 덜하겠으나, 애니메이션에 본 주인공의 독백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의미는 죽음을 앞두고 가장 자기 자신이 원한 욕망을 넘어 하나의 절망을 승화시킨 비장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의 대사처럼 주인공 효도 잇세이가 동경하는 그레모리 리아스에 대한 표현은 매우 아름답고 시와 같았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애니메이션에서 잇세이의 눈에 비추어진 리아스와 라이트노벨에서 묘사한 리아스의 모습은 다가가고 싶으나, 막상 앞에 도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소년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다.

 

먼저 작품을 분석하기 전에 이 작가의 프로필이 조금 흥미가 있어서 적어보겠다. 작가 이시부미 이치에이는 제17회 장편 환타지아 장편소설 대상에 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점이다. 환타지아라는 것은 결국 환타지 즉 환상에 대한 작품인 것이다. 환상에 대한 장편소설에서 이미 환상이란 것은 모든 서사의 기본이다. 서사의 여러 가지 갈래 중에서 신화(神話) 즉 신의 이야기가 모든 인간의 욕망과 억압을 다룬 것이다.

 

환상을 말한다는 것은 인간 무의식적 내면에 자리 잡은 욕망을 말해주고, 그 욕망이 억압과 해방을 연결해주는 끈으로 묶여있다. 환상이란 실제 우리 인간이 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 내면이나 혹은 관념으로 볼 수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결코 현실에서 보여 질 수 없음에 우리는 거기가 있지 않음을 알기에 오히려 그 현실적인 인식을 자리 잡을 수 있음을 확인한다. 따라서 하이스쿨 DXD에서 보이는 작품 내부의 이야기는 분명 인간사회와 인간 이상의 세계의 갈림길에서 현실과 환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야기다.

 

현실적 존재로서 효도 잇세이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변태망상 소년으로 보통 청소년과 비슷하다. 캐릭터의 개성부여를 위해 그는 필요 이상으로 여자아이를 밝히며, 특히 가슴에 큰 집착을 가진다. 주변 친구인 마츠다와 모토하마의 경우 변태적인 욕망이 끊이지 않아 여학생들이 환복 할 경우 몰래 숨어볼 정도로 심각한 변태다. 거기에 안경소년 모토하마는 약골에 키도 작아 어떤 여학생에게 불러나가 돈을 빼앗길 정도이니 효도 잇세이의 악우들에서 그는 학교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다.

 

그가 실제 어떤 인간인지 몰라도 그의 행실에서 좋은 인식이란 없다. 그런데, 그가 유마라는 미소녀를 만나고, 데이트를 하고, 기대한 첫키스를 원했지만 이와 다르게 그에게 온 것은 날개달린 유마와 그녀의 손에 잡힌 이상한 창이었다. 그 창은 잇세이의 배를 뚫고, 잇세이는 죽음의 수레바퀴 위에서 부당한 이 처사를 한탄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악우와 바보아들이라고 매일매일 핀잔만 주던 부모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그레모리 리아스였다.

 

인간이 죽기 전에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스쳐가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던 사람에게 매우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잇세이는 그레모리 리아스를 떠올렸고, 이제 앞이 제대로 보이지 못할 상태에 왔을 때 누가 잇세이 앞에 서면서 미소를 짓는다. 붉은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휘날리며 말이다. 그 미소를 본 후 효도는 잠에서 깨고, 악몽에 시달린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너무 현실적인 느낌이라 그 고민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사실이고, 효도 잇세이란 인간은 죽었고, 효도 잇세이란 악마가 탄생했다. 문제는 악마가 되어도 그는 전혀 악마다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악마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조차도 무색했다. 효도 잇세이의 특징과 단점은 오로지 야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나, 한편으로 솔직하고 남을 속이지는 않았다. 선악의 이분법에서 다시 해체되는 것은 아시아 아르젠트라는 시스터를 만나서이다.

 

아시아는 수녀이고, 수녀는 신에게 봉사하는 존재로서 악마와 적대적 관계이다. 하지만 잇세이는 아시아가 수녀이든 아니든 그저 친구로서 대하려 했다. 악마와 수녀의 관계는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으나, 그것은 도덕적 문제이지 윤리적인 영역에서 본다면 효도의 가치관이 옳은 것이다. 차후에 효도가 아시아가 타락천사 레이나레(유마)에게 끌려간 것을 보고 구하려고 할 때, 교회 내부의 전경에서 과연 선악의 본질은 어디인가라는 의문을 준다.

 

성인들의 석상이 모조리 파괴되어 있고, 수단과 방법을 위해서라면 사람까지 죽이는 그들의 무자비에서 신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의문하게 만들었으며, 아시아가 교회에서 추방되어 타락천사 손에 의해 죽어갈 때 신은 아시아에게 구원의 손길을 전해주지 않았다. 물론 따지고 보면 신의 선물인 세이크리드 기어인 부스티드 기어 역시 잇세이의 죽음을 준 원인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신은 누구인가? 절대적인가? 아니라면 방관만 하는 무책임한 존재인가? 라는 작품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된다.

 

책 겉표지를 보자면, 잇세이가 그레모리 리아스를 두 팔로 올려 안아주고, 아시아는 잇세이의 팔짱을 끼고 있다. 단지 특이점은 리아스는 잇세이의 턱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봐도 남자 1명에 2명의 미소녀가 있다는 점은 3각관계가 도래한다는 의미이다. 뒷면에 보면 “기세와 번뇌만으로 보내드리는 학원 러브코메디 배틀 판타지 개막!” 이라고 하지만, 내용 중간을 살펴보면 단순히 러브코메디 요소만 집착할 수 없다.

 

효도 잇세이란 인물이 싸우는 이유는 아시아란 수녀가 정말 좋은 사람인데도 친구도 없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부당함과 자신의 주인이자 오컬트부의 부장인 리아스가 자신의 영지에 타락천사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는 것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그 싸움의 이면에는 선악의 이분법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선악의 기준이 도덕이란 거대한 인식이 옳은가라는 의문도 있다.

 

아시아가 레이나레에 의해 죽었을 때, 효도는 레이나레를 보면서 자신이 악마이지만, 오히려 레이나레 쪽이 더 악마 같다고 한다. 악마사냥꾼인 프리드 신부 역시 악마를 죽이는 것과 악마를 따르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점이다. 원래 타락천사의 가호를 받는 엑소시스터들은 처음부터 타락천사로부터 가호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활동하던 엑소시스터들이 악마를 처단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서인데, 오히려 자신의 파괴욕구로 통한 자기만족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한 독일철학자의 서적 <선악의 저편>에서 나온 문구를 인용하고 싶다. <만인이 좋아하는 책에서는 언제나 불쾌한 냄새가 난다: 거기에는 소인(小人)의 냄새가 베여 있는 것이다. 대중이 먹고 마시는 곳에서는, 심지어 그들이 숭배하는 곳에서조차 악취가 나곤 한다. 순수한 공기를 마시고자 한다면 교회에 가서는 안 된다.>,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내가 위 문구를 적은 이유는 천사에서 나온 타락천사와 그 타락천사를 따르는 무리들은 니체가 지적한 내용이 그대로 나온다. 단순히 대상이 다른 존재에게 피해가 가지 않음에도 태생적인 존재적 이유로 죽어야 한다는 자체가 윤리적 영역에서 크게 비켜가기 때문이다. 물론 에로소년 효도 잇세이의 가슴타령과 효도 잇세이가 만들어가는 번뇌 에피소드에 집중해도 좋다. 그러나 모든 라이트노벨이 단순히 작가와 독자의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진다면 라이트노벨은 그저 킬링타임 용으로 분류되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하면 그것 역시 부당하지 않을까 싶다.

 

 

=======================================================================================

 

 

“난 그 사람을 지키고 싶었다. 계약이라든가 제약이라든가.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그 사람은 붉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위풍당당하게 있어야만 해. 그게, 내가 동경하는 그 사람이니까. 그러니깐, 힘을 빌려줘, 붉은 용제여.”

 

위 대사는 애니메이션 하이스쿨 DXD 12화 마지막 부분에서 효도 잇세이가 악우들과 도망치며 구교사 앞의 담장 아래서 그레모리 리아스의 모습을 보며 독백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단지 “그러니깐, 힘을 빌려줘, 붉은 용제여.”는 빠져있다. 모든 어느 대상 한 작품이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연극으로 만들어질 때 같은 스토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 각본가 내지 감독, 시나리오 작가 손에서 변경되는 일들이 허다하다. 그런다고 하여 작품의 본질마저 그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이스쿨 DXD 라이트노벨 1권은 효도 잇세이가 악마가 된 것과 아시아가 악마가 된 것이 주요 서사적인 주제라면, 2권은 부장인 그레모리 리아스의 이야기다. 그녀가 왜 잇세이를 악마로 소생시켰는지, 그리고 왜 강화시키고 싶었는지 말이다. 그런 이야기가 목숨을 건 투쟁에서 보통의 라이트노벨과 다른 부분을 보여준다. 효도 잇세이의 꿈은 하렘왕이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란 혈기왕성한 청춘에 단 한 번도 봄은 오지 않았다. 레이나레가 유마로 둔갑할 때 잇세이는 죽음이란 비극을 맞이했고, 학교 최고의 미녀2인방인 리아스와 아케노는 그저 자신에겐 선배이고 상급악마이었다. 아시아는 자기를 감싸준 은인이고, 자신의 부주의로 악마로 재부활한 전직 수녀였다. 따라서 잇세이는 자신의 주변에 미소녀가 있다고 하여 그 미소녀가 자기의 하렘왕국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효도 잇세이는 부장 리아스를 매우 좋아하고, 동경한다. 1권에서 읽다보면 죽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마저 리아스를 소환할 정도로 그가 가진 감정의 크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리아스의 큰 가슴도 좋아했지만, 그것보단 리아스의 붉은 머리를 더 동경했다. 혈기왕성한 청춘의 성적욕망이 리아스라는 대상에게 향하는 것 이상으로 여자 리아스가 아니라 선배 리아스란 존재가 더욱 확고한 것이다. 위 독백에서 잇세이는 리아스를 가리켜서 리아스라는 이름이나 혹은 그녀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남녀의 구분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의 존재적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너무나 위대하고 강하고 아름답기에 잇세이는 항상 그 존재 아래서는 수줍고 어린 남자아이였다. 리아스가 그렇게 내 알몸이 보고 싶어라는 물음에 아무런 필터링 없이 원한다는 그의 진실과 막상 그 알몸이 보이면 아무것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는 그에게 리아스의 존재적 위치가 강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원한 하렘왕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리아스에 대해 생각하면 자신의 존재가 너무 초라하기에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것과 같다. 동경심이란 것에서 감히 내가 어떻게 대할 수 없는 고귀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악마로서 계약이 아닌 그 사람으로서 위풍당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이에 반해 아시아는 분명 귀엽고 상냥하고 예쁜 미소녀지만, 잇세이에겐 아시아라는 존재는 자신의 윤리적 양심을 반성하게 하는 존재다.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아시아는 악마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는 악마가 되어 어떤 형태로이든지 잇세이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나, 그 말이야말로 잇세이에게 속죄의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동경하는 사람을 지키고, 속죄해야할 사람을 지키는 것이 삼각관계의 구도이다. 하지만 잇세이는 부장을 좋아하고, 그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피닉스와 결투에서 자신의 초라함에 잠들지 못한 잇세이는 우연히 산장 복도에서 리아스와 마주친다.

 

리아스가 왜 피닉스의 결혼을 반대하고, 패배할 확률이 높은 싸움인데도 받아들이는 이유를 듣게 되자 잇세이는 자신이 동경하는 리아스를 좋아하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눈물을 흘린다. 주인공이 보통 불완전한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대부분 환타지계열에서 흔한 설정이지만, 그 설정 아래 남자가 여자에게 의존성을 보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장면이다. 언제나 리아스의 큰 가슴을 만지고 싶은 효도지만, 리아스가 불안 해 하는 효도를 자신의 가슴에 안아줄 때 효도는 바보처럼 운다.

 

보통 작품 내에서 남자주인공이 바보캐릭터나 변태캐릭터를 설정한 것들은 많다. 하지만 남자주인공이 울보라는 설정은 많지가 않다. 오히려 눈물은 여자인 리아스 쪽이 적었다. 리아스가 눈물을 흘린 부분은 잇세이가 피닉스에게 무참하게 맞아 죽음 직전에 갔을 때와 또 하나는 리아스가 피닉스하고 약혼식을 거행하려고 할 때 잇세이가 리아스를 다시 찾으려고 오는 장면이다. 잇세이가 왜 이토록 리아스를 지키려고 했을까? 리아스가 이번 싸움에 대한 원인과 더불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평소 매우 다정하고, 엄격한 선배인 리아스 부장이라도 부장 자신의 고민과 걱정이 있었다. 그 걱정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분이다. 잇세이가 리아스가 루인 프린세스(멸살공주)에 뛰어난 분이라고 말하자 리아스의 대답은 의외의 진솔함이 숨어 있었다.

 

“긍지로 여겨. 하지만 나 개인을 죽이고 있는 것도 분명해, 누구나 날 그레모니의 리아스로 봐. 리아스 개인으로는 인식해주지 않아. 그러니깐 인간계에서의 생활은 정말로 충실했단다. 누구도 악마 그레모리에 대해선 모르는걸. 다들 날 나로 봐줘. 그게 정말로 좋았어, 악마사회에서는 느낄 기회도 없었고, 앞으로도 느낄 수 없겠지. 내가 나로서 충실하게 생활할 수 있는 건 이 인간계에 있을 때뿐”

 

리아스에게 현실은 악마의 세계이고, 환상의 세계는 인간사회인 학교이다. 잇세이로 따지면 잇세이의 현실은 가정과 학교, 환상세계는 악마의 세계이다. 본래부터 귀족악마로 악마로 환생한 인간의 거리는 저기서 부터다. 잇세이는 언제나 변태와 바보로 취급당하나 자기 자신의 존재는 항상 자신의 자유의지로 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아스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신세였다. 그녀는 그레모리 가문의 영애로 취급당하지 리아스란 존재적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그런 부분은 피닉스의 결혼담에서 은근히 비추고 있다. 퀀인 아케노는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키바 역시 크게 관여하지 않으며, 코네코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간식만 즐길 뿐이다. 리아스의 결혼에 반응하는 자는 오로지 잇세이였다. 그러나 그 반응을 하는 만큼 잇세이는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에 좌절감을 맛보게 된 것이다. 다시 리아스의 대사를 보자.

 

“난 그레모리를 제쳐두고 날, 리아스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그게 내 작름 꿈이야. ······ 유감이지만 라이저는 날 그레모리의 리아스로밖에 보지 않아. 그리고 그레모리의 리아스로서 사랑해주지. 그게 싫어. 하지만 그래도 그레모리의 긍지는 소중해. 모순된 마음이지만, 그래도 난 이 작은 꿈을 지키고 싶어”

 

리아스의 소원은 그레모리 가문에 태어난 귀족으로서 마치 봉건사회의 권력가들이 맺는 흔한 정략결혼보다는 여자로서 사랑하는 사랑과 만나고 싶었다. 어떻게 보자면 가장 어른스럽고 당당한 리아스 역시 소녀로서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망은 라이트노벨 하이스쿨 DXD 2번째에서 잇세이가 가장 이루고 싶은 꿈 중에 하나였다. 물론 잇세이는 리아스가 자신과 결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원했는지 꿈에서도 리아스와 결혼하는 장면도 나온다.

 

하렘왕국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항상 목소리 높여 말하는 잇세이지만, 실제로는 하렘보다는 리아스의 옆에 영원히 있고 싶은 사람이다. 따라서 2권의 표지를 보면 잇세이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리아스를 업힌 모습에서 2권이 말하고 싶은 잇세이의 욕망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점은 일러스트 표지 상에서 리아스의 모습이 특징이다. 리아스의 모습을 보면 발과 발바닥을 잘 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따지자면 여성의 발은 상징적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발 페티시즘 즉 발에 대한 물적인 욕망으로 여성의 발이 등장하는 이유는 기존에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으나,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일부 여성들도 남성보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상위에 놓일 경우 남성은 여성의 발에 집착한다고 한다. 사실 애니메이션 내에서도 1화를 감상하면 나체의 리아스가 잇세이 앞에 있는 모습이 나온다. 이때 리아스는 매우 침착하고 여유가 있는 표정인 반면 잇세이는 평소 동경하는 리아스가 있다는 점과 거기에 나체의 모습은 행복하기보단 오히려 당황하고 난처한 모습을 보여준다.

 

잇세이가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매고 있는 영상에서 리아스의 발이 효도 얼굴 앞으로 나오는 점에서 이미 리아스가 잇세이보다 훨씬 상위의 존재라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이 부분만 아니다. 책에는 세세한 모습은 없으나, 9화에서 별장 정원에서 대화를 나눌 때 리아스는 난간 위에서 이야기하고 잇세이는 난간 아래 바닥에서 이야기한다. 또한 무릎 위의 medium-shot으로 대화할 때 화면 좌우에 남은 여백에서 잇세이보다 리아스의 여백공간이 넓다는 점이다.

 

하이스쿨 DXD 3권 이후로는 국내 정식 발매가 되지 않아 아직 읽지 않았으나, 적어도 라이트노벨에서 남자주인공보다 여자주인공쪽이 더 확고한 지위와 위치를 높인 것은 그래 흔하지 않은 점이다. 특히나 2권 check-mate 장에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말하는 서술자가 잇세이에서 리아스로 교체되는 점이다. 주변 인물과 상황을 관찰하는 사람이 잇세이에서 리아스로 바뀐 점에서 조금 특이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편집자와 독자를 위해 야한 장면과 서비스를 준비하겠다고 후기에 적어놓았으나, 일반적으로 라이트노벨에서 나타나는 클리셰의 공식을 다소 깨어주는 잇세이의 모습은 조금 신선하다. 보통 라이트노벨 남자주인공처럼 색마기질은 있으나, 알몸의 리아스와 아시아를 보는 순간 잇세이는 위축되는 모습과 오히려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장면은 분명 잘 확인하면 좋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스쿨 DxD 2 - Novel Engine
이시부미 이치에이 지음, 곽형준 옮김, 미야마 제로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그 사람을 지키고 싶었다. 계약이라든가 제약이라든가.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그 사람은 붉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위풍당당하게 있어야만 해. 그게, 내가 동경하는 그 사람이니까. 그러니깐, 힘을 빌려줘, 붉은 용제여.”

 

위 대사는 애니메이션 하이스쿨 DXD 12화 마지막 부분에서 효도 잇세이가 악우들과 도망치며 구교사 앞의 담장 아래서 그레모리 리아스의 모습을 보며 독백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단지 “그러니깐, 힘을 빌려줘, 붉은 용제여.”는 빠져있다. 모든 어느 대상 한 작품이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연극으로 만들어질 때 같은 스토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 각본가 내지 감독, 시나리오 작가 손에서 변경되는 일들이 허다하다. 그런다고 하여 작품의 본질마저 그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이스쿨 DXD 라이트노벨 1권은 효도 잇세이가 악마가 된 것과 아시아가 악마가 된 것이 주요 서사적인 주제라면, 2권은 부장인 그레모리 리아스의 이야기다. 그녀가 왜 잇세이를 악마로 소생시켰는지, 그리고 왜 강화시키고 싶었는지 말이다. 그런 이야기가 목숨을 건 투쟁에서 보통의 라이트노벨과 다른 부분을 보여준다. 효도 잇세이의 꿈은 하렘왕이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란 혈기왕성한 청춘에 단 한 번도 봄은 오지 않았다. 레이나레가 유마로 둔갑할 때 잇세이는 죽음이란 비극을 맞이했고, 학교 최고의 미녀2인방인 리아스와 아케노는 그저 자신에겐 선배이고 상급악마이었다. 아시아는 자기를 감싸준 은인이고, 자신의 부주의로 악마로 재부활한 전직 수녀였다. 따라서 잇세이는 자신의 주변에 미소녀가 있다고 하여 그 미소녀가 자기의 하렘왕국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효도 잇세이는 부장 리아스를 매우 좋아하고, 동경한다. 1권에서 읽다보면 죽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마저 리아스를 소환할 정도로 그가 가진 감정의 크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리아스의 큰 가슴도 좋아했지만, 그것보단 리아스의 붉은 머리를 더 동경했다. 혈기왕성한 청춘의 성적욕망이 리아스라는 대상에게 향하는 것 이상으로 여자 리아스가 아니라 선배 리아스란 존재가 더욱 확고한 것이다. 위 독백에서 잇세이는 리아스를 가리켜서 리아스라는 이름이나 혹은 그녀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남녀의 구분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의 존재적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너무나 위대하고 강하고 아름답기에 잇세이는 항상 그 존재 아래서는 수줍고 어린 남자아이였다. 리아스가 그렇게 내 알몸이 보고 싶어라는 물음에 아무런 필터링 없이 원한다는 그의 진실과 막상 그 알몸이 보이면 아무것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는 그에게 리아스의 존재적 위치가 강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원한 하렘왕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리아스에 대해 생각하면 자신의 존재가 너무 초라하기에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것과 같다. 동경심이란 것에서 감히 내가 어떻게 대할 수 없는 고귀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악마로서 계약이 아닌 그 사람으로서 위풍당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이에 반해 아시아는 분명 귀엽고 상냥하고 예쁜 미소녀지만, 잇세이에겐 아시아라는 존재는 자신의 윤리적 양심을 반성하게 하는 존재다.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아시아는 악마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는 악마가 되어 어떤 형태로이든지 잇세이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나, 그 말이야말로 잇세이에게 속죄의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동경하는 사람을 지키고, 속죄해야할 사람을 지키는 것이 삼각관계의 구도이다. 하지만 잇세이는 부장을 좋아하고, 그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피닉스와 결투에서 자신의 초라함에 잠들지 못한 잇세이는 우연히 산장 복도에서 리아스와 마주친다.

 

리아스가 왜 피닉스의 결혼을 반대하고, 패배할 확률이 높은 싸움인데도 받아들이는 이유를 듣게 되자 잇세이는 자신이 동경하는 리아스를 좋아하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눈물을 흘린다. 주인공이 보통 불완전한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대부분 환타지계열에서 흔한 설정이지만, 그 설정 아래 남자가 여자에게 의존성을 보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장면이다. 언제나 리아스의 큰 가슴을 만지고 싶은 효도지만, 리아스가 불안 해 하는 효도를 자신의 가슴에 안아줄 때 효도는 바보처럼 운다.

 

보통 작품 내에서 남자주인공이 바보캐릭터나 변태캐릭터를 설정한 것들은 많다. 하지만 남자주인공이 울보라는 설정은 많지가 않다. 오히려 눈물은 여자인 리아스 쪽이 적었다. 리아스가 눈물을 흘린 부분은 잇세이가 피닉스에게 무참하게 맞아 죽음 직전에 갔을 때와 또 하나는 리아스가 피닉스하고 약혼식을 거행하려고 할 때 잇세이가 리아스를 다시 찾으려고 오는 장면이다. 잇세이가 왜 이토록 리아스를 지키려고 했을까? 리아스가 이번 싸움에 대한 원인과 더불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평소 매우 다정하고, 엄격한 선배인 리아스 부장이라도 부장 자신의 고민과 걱정이 있었다. 그 걱정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분이다. 잇세이가 리아스가 루인 프린세스(멸살공주)에 뛰어난 분이라고 말하자 리아스의 대답은 의외의 진솔함이 숨어 있었다.

 

“긍지로 여겨. 하지만 나 개인을 죽이고 있는 것도 분명해, 누구나 날 그레모니의 리아스로 봐. 리아스 개인으로는 인식해주지 않아. 그러니깐 인간계에서의 생활은 정말로 충실했단다. 누구도 악마 그레모리에 대해선 모르는걸. 다들 날 나로 봐줘. 그게 정말로 좋았어, 악마사회에서는 느낄 기회도 없었고, 앞으로도 느낄 수 없겠지. 내가 나로서 충실하게 생활할 수 있는 건 이 인간계에 있을 때뿐”

 

리아스에게 현실은 악마의 세계이고, 환상의 세계는 인간사회인 학교이다. 잇세이로 따지면 잇세이의 현실은 가정과 학교, 환상세계는 악마의 세계이다. 본래부터 귀족악마로 악마로 환생한 인간의 거리는 저기서 부터다. 잇세이는 언제나 변태와 바보로 취급당하나 자기 자신의 존재는 항상 자신의 자유의지로 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아스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신세였다. 그녀는 그레모리 가문의 영애로 취급당하지 리아스란 존재적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그런 부분은 피닉스의 결혼담에서 은근히 비추고 있다. 퀀인 아케노는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키바 역시 크게 관여하지 않으며, 코네코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간식만 즐길 뿐이다. 리아스의 결혼에 반응하는 자는 오로지 잇세이였다. 그러나 그 반응을 하는 만큼 잇세이는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에 좌절감을 맛보게 된 것이다. 다시 리아스의 대사를 보자.

 

“난 그레모리를 제쳐두고 날, 리아스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그게 내 작름 꿈이야. ······ 유감이지만 라이저는 날 그레모리의 리아스로밖에 보지 않아. 그리고 그레모리의 리아스로서 사랑해주지. 그게 싫어. 하지만 그래도 그레모리의 긍지는 소중해. 모순된 마음이지만, 그래도 난 이 작은 꿈을 지키고 싶어”

 

리아스의 소원은 그레모리 가문에 태어난 귀족으로서 마치 봉건사회의 권력가들이 맺는 흔한 정략결혼보다는 여자로서 사랑하는 사랑과 만나고 싶었다. 어떻게 보자면 가장 어른스럽고 당당한 리아스 역시 소녀로서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망은 라이트노벨 하이스쿨 DXD 2번째에서 잇세이가 가장 이루고 싶은 꿈 중에 하나였다. 물론 잇세이는 리아스가 자신과 결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원했는지 꿈에서도 리아스와 결혼하는 장면도 나온다.

 

하렘왕국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항상 목소리 높여 말하는 잇세이지만, 실제로는 하렘보다는 리아스의 옆에 영원히 있고 싶은 사람이다. 따라서 2권의 표지를 보면 잇세이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리아스를 업힌 모습에서 2권이 말하고 싶은 잇세이의 욕망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점은 일러스트 표지 상에서 리아스의 모습이 특징이다. 리아스의 모습을 보면 발과 발바닥을 잘 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따지자면 여성의 발은 상징적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발 페티시즘 즉 발에 대한 물적인 욕망으로 여성의 발이 등장하는 이유는 기존에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으나,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일부 여성들도 남성보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상위에 놓일 경우 남성은 여성의 발에 집착한다고 한다. 사실 애니메이션 내에서도 1화를 감상하면 나체의 리아스가 잇세이 앞에 있는 모습이 나온다. 이때 리아스는 매우 침착하고 여유가 있는 표정인 반면 잇세이는 평소 동경하는 리아스가 있다는 점과 거기에 나체의 모습은 행복하기보단 오히려 당황하고 난처한 모습을 보여준다.

 

잇세이가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매고 있는 영상에서 리아스의 발이 효도 얼굴 앞으로 나오는 점에서 이미 리아스가 잇세이보다 훨씬 상위의 존재라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이 부분만 아니다. 책에는 세세한 모습은 없으나, 9화에서 별장 정원에서 대화를 나눌 때 리아스는 난간 위에서 이야기하고 잇세이는 난간 아래 바닥에서 이야기한다. 또한 무릎 위의 medium-shot으로 대화할 때 화면 좌우에 남은 여백에서 잇세이보다 리아스의 여백공간이 넓다는 점이다.

 

하이스쿨 DXD 3권 이후로는 국내 정식 발매가 되지 않아 아직 읽지 않았으나, 적어도 라이트노벨에서 남자주인공보다 여자주인공쪽이 더 확고한 지위와 위치를 높인 것은 그래 흔하지 않은 점이다. 특히나 2권 check-mate 장에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말하는 서술자가 잇세이에서 리아스로 교체되는 점이다. 주변 인물과 상황을 관찰하는 사람이 잇세이에서 리아스로 바뀐 점에서 조금 특이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편집자와 독자를 위해 야한 장면과 서비스를 준비하겠다고 후기에 적어놓았으나, 일반적으로 라이트노벨에서 나타나는 클리셰의 공식을 다소 깨어주는 잇세이의 모습은 조금 신선하다. 보통 라이트노벨 남자주인공처럼 색마기질은 있으나, 알몸의 리아스와 아시아를 보는 순간 잇세이는 위축되는 모습과 오히려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장면은 분명 잘 확인하면 좋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스쿨 DxD 1 - Novel Engine
이시부미 이치에이 지음, 곽형준 옮김, 미야마 제로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그 사람의 머리카락 색이랑 똑같아. 선혈로 물든 손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붉은 스트로베리 블론드보다 더욱 선명하게 붉은 머리카락, 그래, 그 사람의 아름답고 붉은 머리카락은, 내 손을 물들인 피와 똑같은 색이다.>

 

이 대사는 하이스쿨 DXD에서 처음 나오는 대사다. 즉 효도 잇세이가 죽어가는 찰나에 자신의 죽음에 한탄하며, 마지막으로 마음 속 깊이 숨겨둔 본심을 회고하는 것이다. 하이스쿨 DXD 라이트노벨 1권을 읽기 전에 나는 이 대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보았다. 라이트노벨 특성상 약간의 일러스트를 제외하면 문자텍스트란 점에서 그 실감도는 덜하겠으나, 애니메이션에 본 주인공의 독백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의미는 죽음을 앞두고 가장 자기 자신이 원한 욕망을 넘어 하나의 절망을 승화시킨 비장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의 대사처럼 주인공 효도 잇세이가 동경하는 그레모리 리아스에 대한 표현은 매우 아름답고 시와 같았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애니메이션에서 잇세이의 눈에 비추어진 리아스와 라이트노벨에서 묘사한 리아스의 모습은 다가가고 싶으나, 막상 앞에 도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소년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다.

 

먼저 작품을 분석하기 전에 이 작가의 프로필이 조금 흥미가 있어서 적어보겠다. 작가 이시부미 이치에이는 제17회 장편 환타지아 장편소설 대상에 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점이다. 환타지아라는 것은 결국 환타지 즉 환상에 대한 작품인 것이다. 환상에 대한 장편소설에서 이미 환상이란 것은 모든 서사의 기본이다. 서사의 여러 가지 갈래 중에서 신화(神話) 즉 신의 이야기가 모든 인간의 욕망과 억압을 다룬 것이다.

 

환상을 말한다는 것은 인간 무의식적 내면에 자리 잡은 욕망을 말해주고, 그 욕망이 억압과 해방을 연결해주는 끈으로 묶여있다. 환상이란 실제 우리 인간이 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 내면이나 혹은 관념으로 볼 수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결코 현실에서 보여 질 수 없음에 우리는 거기가 있지 않음을 알기에 오히려 그 현실적인 인식을 자리 잡을 수 있음을 확인한다. 따라서 하이스쿨 DXD에서 보이는 작품 내부의 이야기는 분명 인간사회와 인간 이상의 세계의 갈림길에서 현실과 환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야기다.

 

현실적 존재로서 효도 잇세이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변태망상 소년으로 보통 청소년과 비슷하다. 캐릭터의 개성부여를 위해 그는 필요 이상으로 여자아이를 밝히며, 특히 가슴에 큰 집착을 가진다. 주변 친구인 마츠다와 모토하마의 경우 변태적인 욕망이 끊이지 않아 여학생들이 환복 할 경우 몰래 숨어볼 정도로 심각한 변태다. 거기에 안경소년 모토하마는 약골에 키도 작아 어떤 여학생에게 불러나가 돈을 빼앗길 정도이니 효도 잇세이의 악우들에서 그는 학교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다.

 

그가 실제 어떤 인간인지 몰라도 그의 행실에서 좋은 인식이란 없다. 그런데, 그가 유마라는 미소녀를 만나고, 데이트를 하고, 기대한 첫키스를 원했지만 이와 다르게 그에게 온 것은 날개달린 유마와 그녀의 손에 잡힌 이상한 창이었다. 그 창은 잇세이의 배를 뚫고, 잇세이는 죽음의 수레바퀴 위에서 부당한 이 처사를 한탄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악우와 바보아들이라고 매일매일 핀잔만 주던 부모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그레모리 리아스였다.

 

인간이 죽기 전에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스쳐가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던 사람에게 매우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잇세이는 그레모리 리아스를 떠올렸고, 이제 앞이 제대로 보이지 못할 상태에 왔을 때 누가 잇세이 앞에 서면서 미소를 짓는다. 붉은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휘날리며 말이다. 그 미소를 본 후 효도는 잠에서 깨고, 악몽에 시달린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너무 현실적인 느낌이라 그 고민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사실이고, 효도 잇세이란 인간은 죽었고, 효도 잇세이란 악마가 탄생했다. 문제는 악마가 되어도 그는 전혀 악마다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악마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조차도 무색했다. 효도 잇세이의 특징과 단점은 오로지 야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나, 한편으로 솔직하고 남을 속이지는 않았다. 선악의 이분법에서 다시 해체되는 것은 아시아 아르젠트라는 시스터를 만나서이다.

 

아시아는 수녀이고, 수녀는 신에게 봉사하는 존재로서 악마와 적대적 관계이다. 하지만 잇세이는 아시아가 수녀이든 아니든 그저 친구로서 대하려 했다. 악마와 수녀의 관계는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으나, 그것은 도덕적 문제이지 윤리적인 영역에서 본다면 효도의 가치관이 옳은 것이다. 차후에 효도가 아시아가 타락천사 레이나레(유마)에게 끌려간 것을 보고 구하려고 할 때, 교회 내부의 전경에서 과연 선악의 본질은 어디인가라는 의문을 준다.

 

성인들의 석상이 모조리 파괴되어 있고, 수단과 방법을 위해서라면 사람까지 죽이는 그들의 무자비에서 신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의문하게 만들었으며, 아시아가 교회에서 추방되어 타락천사 손에 의해 죽어갈 때 신은 아시아에게 구원의 손길을 전해주지 않았다. 물론 따지고 보면 신의 선물인 세이크리드 기어인 부스티드 기어 역시 잇세이의 죽음을 준 원인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신은 누구인가? 절대적인가? 아니라면 방관만 하는 무책임한 존재인가? 라는 작품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된다.

 

책 겉표지를 보자면, 잇세이가 그레모리 리아스를 두 팔로 올려 안아주고, 아시아는 잇세이의 팔짱을 끼고 있다. 단지 특이점은 리아스는 잇세이의 턱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봐도 남자 1명에 2명의 미소녀가 있다는 점은 3각관계가 도래한다는 의미이다. 뒷면에 보면 “기세와 번뇌만으로 보내드리는 학원 러브코메디 배틀 판타지 개막!” 이라고 하지만, 내용 중간을 살펴보면 단순히 러브코메디 요소만 집착할 수 없다.

 

효도 잇세이란 인물이 싸우는 이유는 아시아란 수녀가 정말 좋은 사람인데도 친구도 없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부당함과 자신의 주인이자 오컬트부의 부장인 리아스가 자신의 영지에 타락천사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는 것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그 싸움의 이면에는 선악의 이분법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선악의 기준이 도덕이란 거대한 인식이 옳은가라는 의문도 있다.

 

아시아가 레이나레에 의해 죽었을 때, 효도는 레이나레를 보면서 자신이 악마이지만, 오히려 레이나레 쪽이 더 악마 같다고 한다. 악마사냥꾼인 프리드 신부 역시 악마를 죽이는 것과 악마를 따르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점이다. 원래 타락천사의 가호를 받는 엑소시스터들은 처음부터 타락천사로부터 가호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활동하던 엑소시스터들이 악마를 처단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서인데, 오히려 자신의 파괴욕구로 통한 자기만족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한 독일철학자의 서적 <선악의 저편>에서 나온 문구를 인용하고 싶다. <만인이 좋아하는 책에서는 언제나 불쾌한 냄새가 난다: 거기에는 소인(小人)의 냄새가 베여 있는 것이다. 대중이 먹고 마시는 곳에서는, 심지어 그들이 숭배하는 곳에서조차 악취가 나곤 한다. 순수한 공기를 마시고자 한다면 교회에 가서는 안 된다.>,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내가 위 문구를 적은 이유는 천사에서 나온 타락천사와 그 타락천사를 따르는 무리들은 니체가 지적한 내용이 그대로 나온다. 단순히 대상이 다른 존재에게 피해가 가지 않음에도 태생적인 존재적 이유로 죽어야 한다는 자체가 윤리적 영역에서 크게 비켜가기 때문이다. 물론 에로소년 효도 잇세이의 가슴타령과 효도 잇세이가 만들어가는 번뇌 에피소드에 집중해도 좋다. 그러나 모든 라이트노벨이 단순히 작가와 독자의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진다면 라이트노벨은 그저 킬링타임 용으로 분류되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하면 그것 역시 부당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역시 굽본좌는 위대하고도 예술적이었다. 예술을 누가 이렇게 말했던가? 삶을 광학적으로 본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이 의미는 매우 뛰어난 이상적인 영역을 현실에 나타내어주는 모방보다는 패러디가 작렬하는 요즘 같은 현대사회의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 예술은 그 예술에 대한 작품적 가치가 존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단순히 현실과 동떨어지기보단 그 현실을 다르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너무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뭔가 괴리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따라서 예술은 너무 현실에 대해 충실하기 보단 오히려 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어떤 매체에 대해 지나친 사실주의적인 요소 리얼리티 같은 요소를 부여하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그저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보이게 하는 하나의 도구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가령 TV 드라마와 극장가의 영화는 똑같은 실사영상을 가지고 있어도, 또한 같은 오리지널 소설이나 시나리오가 있어도 다른 영역으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영화는 현실 속의 환상을 극대화 내지 혹은 현실의 그 자체의 느낌을 보여주려고 한다면 드라마는 오히려 현실 속의 환상을 더욱 환상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모두 작품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와 영화가 같은 실사영상이라도 예술적 가치를 받는 것과 못하는 이유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에 비해 처음부터 그런 현실적인 요소 즉 리얼리티가 존재하지 않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말이 다르다.

 

그런다고 하여 그 리얼리티의 배제한다고 하여 모두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서사는 픽션을 기초로 하고, 설사 그 사실을 재현해내도 그것 역시 픽션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 당시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 본 것도 들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간적인 존재이고, 그 시간에 따라 공간에 머물러 있기에 사건과 정황은 당시 실제로 있었던 사람만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만화는 그 공간과 시간에 있던 시기에 일어난 일과 혹은 그 전에 있었던 일들을 있는 그대로의 기록으로서 보여주기보단 재미와 유머, 그리고 비꼬는 묘사로 통해 보는 이에게 더욱 큰 느낌을 준다. 게다가 만화라는 것은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이라는 텍스트까지 존재하기에 만화라는 매체는 인간이 가진 정보기록 및 전달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굽시니스트의 선택은 패러디의 향연이었다. 패러디로 통해 직설적인 내용보다 은유적으로 비꼬는 방법은 재미와 풍자를 극대화했다. 게다가 패러디 소재는 주로 만화, 애니메이션, 가수, 많은 문화매체를 사용했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는 최근에 발매된 일본 애니메이션 “마법소녀 마도카 마지카”에 이어, 포르노 게이배우로 유명한 빌리 해링턴까지 차용하여 패러디를 가용했다.

 

보통 사람들이 봐도 웃기지만, 만약 그런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가수, 영화, 심지어 어둠의 세계까지 알고 있는 부류라면 그 재미를 상상을 초월한다. 대다수 시사인을 보는 분들은 무엇부터 보는지 알 수 없으나, 본인 같은 경우 시사인에서 굽시니스트의 시사인만화부터 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굽본좌라는 말이 과연 명불허전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으 우선 표지부터이다. 역대 대통령과 주요 정치인들을 캐리커쳐한 후 오른편 하단에 하트표시를 하고 있는 소녀가 보인다.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에 노란색 리본이 눈에 뛰며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있다. 물론 원작 캐릭터와 얼굴모양은 상이하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등장하는 주인공 스즈미야 하루히를 그대로 묘사했다. 이미 표지부터 볼 때부터 이 시사만화 모음집은 굽본좌의 오덕 기질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다.

 

1장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령의 연세로 인해 돌아가실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미 그때부터 바이올린리스트 유진박 씨, 드래곤볼의 카카로트(손오공)과 베지터, 기동전사 건담 아무로 레이와 샤아 아즈나블 등의 캐릭터, 나루토 및 마르크스 프론티어 주인공까지 패러디하였다. 작가의 오덕기운의 오로라를 알아채지 못한 이상 평범한 사람(10~40대 남성)은 오직 드래곤볼과 건담 정도만 알아보지 않을까 싶으나, 그 정도로 알아보고 봐도 충분할 것이다.

 

물론 여성분들을 보는 것을 고려하여 아이돌 가수나 유명가수의 노래가사를 개사하거나 혹은 상황에 알맞게 패러디했다는(최근의 아이유의 노래를 패러디) 점과 레이디 가가의 활용은 매우 즐겁고도 환상을 자아낼 것이다. 대신 그 부분은 이번 편인 2009년~2011년이기에 2012년 이후 편을 기대해야 한다. 하지만 3년 분량을 1권으로 제작했으니 다음 굽본좌만의 위엄을 느낄 수 있을 때는 아마 2년이란 기나긴 고행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나, 그래도 무방하다. 1권도 그 무지막지한 포스를 내뿜고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