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에서의 다음날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객잔 밖을 여러가지 무기를 든 자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 이 소녀만큼 기이한 행색도 드물었지만...민간인이 기웃거린다는 사실에 채미홍은 의아했다.

“간을 내어먹어야지.”

당랑적의 근거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빙이 말했던 것이 참이었다.
설한도 한빙의 과잉반응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지금 들려오는 소리를 보면 틀린 말도 아닌 듯 했다.
다만 왜 간을 내어먹어야한단 말인가? 돈이나 뜯어기면 될 텐데.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소녀가 미홍과 설한, 한빙이 앉아 있는 좌석을 향해서 힘껏 돌을 던졌다.
돌이 미처 닿기도 전에 설한이 소매를 흔들자 소맷바람에 돌은 다시 소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소녀는 그것을 다시 단도로 튕겨냈다.

“대단한 무공이군.”

설한은 빈정거리면서 소녀에게 읍했다.

“소저, 이름 여쭙는 걸 생략해서 죄송합니다만, 돌은 왜 선물로 주시는 겁니까?”

“소협, 소협한테는 볼 일이 없으니 그 설녀나 내어놓아요!”

발끈한 한빙이 탁자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내가 물건이냐?”

“나도 너한테 억하심정은 없지만...우리 아버지를 살리려면 그 수 밖에 없다. 간을 내놔!”

소녀의 무공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생사를 가리자고 들면 한빙의 신장 하나로도 목숨을 앗을 수 있었다.
한빙은 그건 알고 있었지만, 궁주의 죽음에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냉정을 잃고 있었다.
미홍이 그녀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참아야 한다. 한빙. 이제 남은 설녀는 너 밖에 없으니.”

“간을 내놓으라니 그건 뭔 소립니까?미홍, 당신은 알고...”

설한의 말에 미홍이 한숨을 쉬었다.

“이젠 황궁에서도 기다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더 이상 나도 개입이 되면 안되는 문제고...”

그 말을 한빙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설한은 단번에 이해했다.

“황궁에서 빙궁을 말살시키려는군요.”

그 둘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느라 한빙을 내버려둔 사이 한빙은 의자에 내려놓은 보따리에서 빙타편을 꺼내들었다.

“간을 한번 내어먹어보렴!”

기다란 얼음채찍이 바닥을 귀가 찢어질 정도로 소리를 내면서 아래에 있는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전설의 무기 중 하나인 빙타편은 스치기만 해도 위험한 물건이었다.
맞으면 돌과 단도만 가지고 있는 소녀로서는 대항할 수 없는...

그때였다.

“소저. 너무 위험한 장난은 치지 마시죠.”

소녀 앞에 나타난 여인은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로 빙타편을 감아들었다.

“너는 뭔데 참견이냐!”

소녀가 앙칼지게 외쳤다.

“아, 저 말인가요.”

여인이 빙긋 웃었다.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두 분이 말다툼하는 걸 보고 염치불구하고 말리러 왔는데, 실례였나요. 설녀님은 그렇다치고 아가씨는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요.”

 그녀는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다시 웃었다. 속을 알 수 없는 그 미소에 순간적으로 소녀가 움찔했다.
여인은 얼핏 보아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얇은 비단옷을 입고 손에는 호리병과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소...손에 든 그거 가지고 내 빙타편을 상대하겠다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한빙이 외쳤다.

“어디 한번 해보시지!”

그녀가 나뭇가지에 감긴 빙타편을 잡아당겨 다시 바닥을 후려쳤다.
설한과 미홍은 미처 말리지 못했다. 말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거니와 미홍은 개입하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상대의 정체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건드려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소저.”

여인이 말했다.

“전 소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헛소리!”

“위에 있는 상태에서 절 상대하면 2초식만에 소저가 저에게 집니다. 아래에 내려오면 가만 있자...한 5초식 이후에 소저의 빙타편이 제 것이 되지요.”

“묻지도 않은 헛소리 하지 말고, 무기를 꺼내!”

“문답무용인가요...”

여인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흔들어보였다.

“보시다시피 호리병과 이 나뭇가지 하나면 소저를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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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남은 50을 위한 50세 공부법 - 현실이 된 75세 현역 사회에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다
와다 히데키 지음, 최진양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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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히데키 선생님은 10년전에 공부법을 내신 이후부터 줄곧 내 마음의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이번 책에 한해서는 호의적인 평을 할 수가 없다.
같은 분의 마흔에 독학하라..(책 제목이 길어서 외울 수가 없군.)는 책과 내용이 거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양심있게 쓰시려면 두 개를 한권에 통합했어도 될 것이었다.
2권 다 읽고 나니 허탈하다.
2권 다 내용이 거의 동일하므로 책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두 권 중 한 권만 고르셔도 될 듯 하다.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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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조식 시간에 공주와 시길은 나타나지 않았다.다희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구진은 얼굴이 간만에 피었다.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먹던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앉아 이야기를 나눠...야 겠지만, 대화는 어찌된 것이 일방통행이었다. 그러니까 다희가 화제를 던지면 구진은 멍하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그런 대화가 한 1분 가량 지속되자 다희는 자기 하이힐 굽으로 구진의 구두를 밟았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구진은 눈을 똑바로 떴지만 그건 구두굽의 효능은 아닌 듯 했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응?”

뭔가 재미난 걸 생각하고 있었던 듯, 구진은 히죽거리다가 그녀의 말에 그대로 굳어졌다.

“어제 말이야...”

“아, 어? 뭐?”

다희는 볼에 손가락을 갖다대다가 마침 그때 나온 그녀의 피나콜라다를 마시기 시작했다.

“공주 마마께서 시길이 방에 들어가는...”

“푸!푸!뭐?”

구진은 냉정을 잃고 자신이 마시고 있던 피나콜라다를 쏟을 뻔 했다. 하지만 그건 다희를 속이기 위한 연기였다.

“혹시 그거 네가 딜 한 거 아냐?”

“...무슨 소리지?”

구진은 자신의 연기를 다희가 읽을 까봐 신중에 신중을 가하면서 천천히, 다희의 눈을 쳐다봤다.
피하려고 해봤지 그 시선은 멈추지 않을 까봐.

“짜고 친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내 말 잘 들어. 노구진.”

다희가 손톱을 세우고 구진의 어깨에 박아넣었다.

“난 시길이가 맘에 들어도, 약혼녀가 생기고, 네가 날 좋아하니까 그냥 넘어간 거야. 그런데 만약 네가 시길이를 팔아서 뭔가를 꾸민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 경인양이랑 맺은 약혼이 파토가 나면 난 너하고 더 이상 같이 일 안해. 세계에서 제일 가는 배우를 만들어준다는 그 생각도 틀림없이 날 팔아...”

“시답잖은 소리.”

구진은 그녀의 손을 억지로 떼내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내가 너하고 그 녀석을 팔아서 무슨 영화를...”

“...정말이지?”

“물론이지.”

물론 아니었다. 다희를 팔아먹은 게 아니라 시길을 팔아 넘긴 것이었으니까.

-당신이 그 소문의 연출가...?-

크루즈 여행에서 기획했던 2인극은 참혹하리만큼 반응이 없었다.
사람 숫자가 모자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화제성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 공주님?-

-난 길게 말하는 타입이 아니니 짧게 이야기하죠.-

-네?-

-저 민시길이란 배우를 내게 넘길 생각은? 당신 재력에 저 두 배우를 제대로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드는데?-

-...모욕적이군요.그러나 사실이니 부인할 수도 없고.-  

승부사의 감이 발동했다. 그리고 구진은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언제나 살아남는 사람이었다.

-저 사람 맘에 들어. 그러니...이렇게 하죠.-

-제가 어떻게 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배우 이야기를 들어봐야죠-

-내가 민시길과 여경인의 약혼을 파토내려고 한 그대 계획을 폭로한다면?-

-...공주님은 여러모로 저를 놀라게 하시는군요.-

간지용이 귀족의 사생아를 이용해서 시길의 재산상속에 훼방을 좋은 그 계획에 구진도 끼어있었던 것이었다.

-뜻대로 하십시오.-

짧게 그는 대꾸했다.

-어차피 있어봤자 도움도 안되는 백치같은 녀석이니까요.-
 
-그대와 오랫동안 한 팀이었는데도?-

-그 녀석은 원래 시민회관용 배우였을 뿐이니까요...-

그때 공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어떻게 그 남자를 쓰려는지 알고 있군. 당신은? 그래도 되는 건가?-

-때로는 그런 시민회관용 인생 배우도 있는 법이죠...성공하길 빕니다.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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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이웃님들
올 한해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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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31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12-31 1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태인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년에도 태인님의 꾸준한 활동 기대해 봅니다^^:

태인 2017-12-31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순님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18년도 호랑이힘으로 활동하시길 기원합니다.저도 여기 있는 동안에 글더미를 꾸준히 생성하렵니다...

bookholic 2017-12-31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인님도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요.. 새해에도 좋은 책 많이 소개해 주세요~~

태인 2017-12-31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예. 감사합니다. 북홀릭님도 좋은 새해 되셔요. 그리고 북홀릭님이 보시고 좋은 책도 소개해주셔요~ㅎㅎㅎ
 

미홍은 설한과 한빙이 자는 걸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자...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패설사관은 황제의 명을 받드는 직속 수하다. 하지만 황후의 명령도 거부할 수 없다.
황후는 그에게 빙궁의 사람을 보는 즉시 죽이라고 명했다.

“자아...이젠 황제궁에 까마귀를 보내야 하는 건가...”

그는 검을 뽑았다 넣기를 반복했다. 그 둘이 자는 순간부터 새벽이 올때까지 계속 그걸 반복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죽은 궁주와 그는 각별한 친구 지간이었다. 남녀를 떠나,검을 나누는 그 순간만큼은 둘은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살고 죽고는 운명일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홍은 언제나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았다. 수많은 고난을 겪고,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은 그가 강직하게 자신의 길을 달려왔을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대세를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왜 자신을 이 위치에 올린 황후가 그 명령을 내렸을까?

알 수 없었다.
그가 황후의 은인이라서?
아니면...

“안가이. 그대가 부럽군.”


미홍이 처음에 극북으로 향했던 것은 과거 그의 전임이었던 안가이가 현 황제의 첩과 정을 통했기 때문이었다.
패설사관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그는 황제가 알기 전 잽싸게 극북으로 향했고...
기실, 극북으로 정복한 자라는 칭호는 미홍이 아니라 안가이였어야 했다.
안가이는 제 버릇을 어쩌지 못하고, 전 빙궁주의 호위이자 친척이었던 여자와 다시 연분을 맺었다.

빙궁은 치외법권의 지역.
미홍은 빙궁주의 묵인 하에 안가이의 여인을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밖으로 끌어낸 후 그를 쳐죽였다.

안가이의 여인은 울지 않았다.
차분하게 그 시신을 얼음관에 넣고 빙궁주위를 떠도는 유빙에 그 관을 넣어 보냈다.
그녀는 임신해 있었고, 황제는 아이의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고 해서 이날 이때를 지나왔다.
안가이의 아이는 둘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살아있고, 하나는 죽었다.

“둘 중 하나는 안가이의 자식들인가?”

그는 더 이상 칼을 뽑지 않고 설한과 한빙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황후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는 주머니에 있던 주사위를 꺼내 높이 던졌다. 패설사관의 전통.
알 수 없는 상황에 떨어졌을 때 주사위 놀음으로 결정하는...
주사위가 손바닥위에 떨어졌을 때 그는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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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3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즐친 감사드려요.
복 많이 받으세요~~

태인 2017-12-30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순님.감사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해도 잘 부탁드려요.즐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