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동료들의 위로를 받으면서도 그는 어쩔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그건 그가 아내에게 지나치게 애정을 쏟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내와 아이와 아내와 아이와 아내와 아이와 아내와 아이와 아내와 아이와 아내와 아이와.

문제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 대낮에 아내의 배를 향해서 총을 쏘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 나라에선 총기 금지법이 있지 않나. 그런데 어째서 범인은 선량한 시민이면서 한 사람의 훌륭한 아내이자 곧 모성애 넘치는 아이의 어머니를 쏘았단 말인가.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그는 잘 풀리지 않는 결과에 절망했다.

가능하다면 그 범인을 자신의 손으로 잡고 싶건만, 모두들 그의 절망보다는 법에 의지하라고들 말했다. 그의 훌륭하기 짝이 없는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집필하는 시간동안 늘 앉아있는 그의 서재에서 친구는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마치 형님이 그러듯이 천천히 말하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있어. 그 마음. 나도 잘 알지. 하지만 제수씨가 자네에게 뭐라고 할 것 같은가. 이 어리석은 사람아. 복수는 자신을 망치기만 할 뿐이야. 조금만 참게.”

 

조금만? 어떻게?

 

그는 친구의 손을 놓아버렸다.

친구는 몇마디를 더 했지만 그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천장에 장난감처럼 매어놓았던 나무총을 꺼내들었다. 물론 총으로서의 본래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 물건이었다. 쏠 수 없는 장난감인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그 총을 집어들어서 반대편 벽에 훌륭히 장식되어 있던 박제를 향해서 집어던졌다.

 

챙그랑.

 

유리벽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그의 마음도 깨어져나갔다.

 

쯔쯔. 불쌍한 친구같으니...”

 

그의 친구는 그가 집어던진 나무총을 들어다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유리 부스러기가 그의 손에 닿아 까끌거렸지만 그는 그 감촉조차 느낄 수 없었다.

 

힘들면 나한테 말해. 내가 자넬 도와주지...”

“......”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뭐든지?”

 

그래, 뭐든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범인에 대한 복수라도?”

 

친구는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공적으로는 안되지만 사적으로는 도와줄 수 있어. 언제건 이야기하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집필실을 나갔다.

 

얼마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할 수만 있다면.

복수를.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보, 내 눈에는 아직 당신이 보여.”

 

 

친구가 나간 그 자리에 그의 아내가 그를 향해서 손가락질 하고 있었다.

그 날의 피묻은 옷자락에 미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안고서.

그 손가락은 정확하게 집필실을 나간 친구의 발자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발자국 하나하나에 그녀의 피가 묻어서 너무나도 선명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임신이란 얼마나 큰 축복이란 말이냐. 그는 그렇게 흥얼거리면서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었다.

남자가 임신의 경이로움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만은, 그는 가끔 톰 크루즈처럼 잊어버릴 때가 있었다. 그에게는 그의 이런 사소한 결점에 대해서 지적해주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오늘같은 때에는 그 친구조차도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동의해 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우려처럼, 그가 자신의 아내와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는 것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경찰같은 직업이 어디 짬을 잘 낼 수가 있는가 말이다.

그런 친구 하나 있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었다.

그는 경찰이지만 동시에 로맨티스트였다. 짭새니 뭐니 불려도 그는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남들이 뭐라고 부르건 뭔 상관인가, 그 사람들은 아마 사랑하는 가족이 없거나, 불평쟁이들일 것이다. 그는 철두철미한 복고주의자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필을 잘 깎아놔야 하고, 그 연필이나 혹은 만년필이 미끄러지듯이 종이위를 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좋은 종이도 있어야 했다.

거기다가 한 점 더 ! 타자기.

요즘은 타자기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원의 말에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구한 구형 타자기.

어차피 오래 가지 않을 건 알고 있지만.

톡 톡 톡 톡 토독.

 

타자기를 두들기면서 그는 앞일에 대한 자신의 희망사항을 소설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세에 살고 있고, 집필실도 좁아터진 방 한간 뿐이지만, 곧 아이가 태어나면...태어나면...

월급도 더 오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세에서 자가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는 대필소설도 대박을 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는 예쁜 여자아이일 것이고, 땡땡이 옷을 입은 그 아이는 무당벌레처럼 귀여울 것이다.

화단에는 커다란 접시꽃과 무궁화가 피고, 가을에는 수줍은 듯이 수수한 들국화가 피어날 것이다. 아름답고 예쁜 꽃들. 내 팔안의 아내와 아이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껏 망상에 빠져 입가가 실룩거리고 있던 그가 알아차린건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던 그 소리가 온 집을 떠내려가게 할 듯이 크게 되고 나서였다.

 

무슨 일이야?”

 

집필실 문을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까지 올릴 수 있는 습관을 가진 건 친구 뿐이었다. 그는 문을 급하게 열었다.

 

자네 부인이...”

 

친구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 얼굴만으로도 일어난 일을 알아차렸다. 아내는 이 시간에는 늘 장을 본다. 그렇다면...

친구가 내민 휴대폰을 받으면서 그는 모든 꿈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타자기도, 아이도, 아내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랑비가 발을 적시네.

그대가 서 있는 줄 알고 잡으려 했지만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멀어지기만 하는 그것은

달빛 받은 빗방울에 비친 그대 그림자.

내 손에 닿으면 사라지겠지.

 

 

당신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남은 꽃잎을 주워올리네.

빗방울이 흘러 흘러 강으로 가는 것처럼

그대와 함께 한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겠지.

꽃잎 따라 가면 갈 수 있을까.

저 꽃길이 천리 만리 이어지면 따라갈텐데.

아아 야속해라. 구름아, 바람아.

 

 

창가에는 부들을 놓고, 뿌리얕은 연꽃도 띄우자.

빗방울처럼 다시 구름으로 돌아가 버린 사랑을 위하여.

창가는 항상 열어놓자.

어느날 비 촉촉이 내리는 날, 구름에서 떨어질 당신.

꽃향기 맡고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무산선녀의 기도를 올린다.

해뜨는 날에는 그대 구름으로라도 있어줘.

그리고 흐린날 물방울 되어 천리 만리를 날아서 내게 돌아와줘.

떠나갔던 것처럼 발자국 하나하나 꽃잎을 밟으며 돌아와

구름으로, 빗방울로, 저 연꽃의 꽃잎을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의 발자욱을 오늘도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신선한 포도알이 터졌다.
즙이 터지면서 입에 침이 고인다. 
포도알 하나당 삼삼한 꿈들이 터져나왔다.

포도 하나 건져올려 시큼한 요구르트에 섞는다. 스푼에 휘휘 저인 포도알은 여전히 상큼하다.
첫 사랑의 치마가 흔들리던 순간도 요구르트에 녹아드는 포도알 같았다.
녹아들고 녹아들어 요구르트는 달콤하면서도 시큼하고, 그 시큼함의 냄새는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소년의 냄새와 같았다.

첫 사랑 누나가 떠나는 정거장에서 소년은 전하지 못한 편지를 가슴에 품었다. 가슴에서는 급하게 뛰어오느라 풍기는 땀냄새가 시큼했다.
포도알은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고 탱글탱글한데 나이든 소년은 더 이상 생글생글한 포도같은 추억을 품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왜 그 날 고양이를 호수에 던지셨어요? 알버트 삼촌."

유산을 물려받기 전 임종을 맞이하고 있는 삼촌에게 했던 말이다.

"......"

삼촌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비밀로 지키려는 걸까.
그러다가 다른 생각이 났는지 조용히 말했다.

"고양이는 아홉개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알버트를 잘 부탁한다."

그것이 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내 질문에 대한 근원은 3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내가 티없고 철없이 뛰놀던 시절, 어느날 삼촌은 내게 수영을 가르쳐준다면서 어디에선가 고양이 한마리를 주워왔다.
집고양이인지 길고양이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 추물은 다시 못 볼 듯 싶었다.

"삼촌?"

"지금부터 이 고양이가 수영하는 걸 보자꾸나."

삼촌은 그때당시 직업이 없는 상태였고, 하루하루 꾸려나가는 생활도 전적으로 전당포에 의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할머니는 마치 백년은 더 묵은 사람같았는데, 별로 수익도 안나는 전당포를 꾸려나가면서도 그다지 쪼들려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우리 삼촌같은 사람이 열명만 더 있어도 꾸려나가는데는 지장이 없었을 테니까.
삼촌은 고양이를 번쩍 들어서 호수를 향해서 던졌다.

퐁당.

다행히도 멀리 던져지지는 않았는지 고양이는 헤엄을 쳐서 우리쪽으로 다시 건너왔다.
삼촌은 다시 한번 고양이를 집어들었고, 고양이는 삼촌을 할퀴려고 했지만 민첩한 삼촌은 할퀴어지기도 전에 다시 고양이를 호수에 멀리 집어던졌다.
세게 집어던졌는지 이번에는 더 큰 소리가 났다.

야옹!

고양이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번에도 고양이는 우리쪽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몇번의 던짐과 몇번의 돌아옴이 있었고, 마지막에 삼촌은 말 그대로 고양이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렸다. 말 그대로 가라앉아버린 것이었다.
후에야 그 고양이가 전당포 할머니가 매우 아끼던 고양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삼촌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도망치듯 마을을 떠났다.
전당포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아서 마을을 떠났고, 이내 모 도시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고양이 한마리가 없어진 일에 지나치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고양이를 싫어했던 양반이 그때 그 고양이보다 더 못생기고 재수없는 고양이를 남길 줄이야. 생각같아서는 삼촌이 그랬듯이 호수에 넣고 익사시키고 싶었지만, 고양이를 기르는 일이 조건에 들어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아홉개의 생명 운운했으니 특별한 고양이긴 한 모양인데.

"알버트."

내 부름에 알버트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야옹

보면 볼수록 기분 나쁜 종자다.
내가 더 오래 살지 저 추물이 더 오래 살지 모르겠다. 하긴 알버트 삼촌도 몇번 기르는 고양이가 바뀌었다고 하니까 저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아니, 꼭 길러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잃어버렸을 때의 경우에 대한 말은 없었으니까 몰래 길을 잃어버리게 하면 된다. 왜 이 생각을 진작 못했을까.

그 다음날 나는 알버트의 목에 목줄을 매고 걸어가다가 저 멀리 공원에 풀어놓고 와버렸다.
그리고 저택의 문을 열고, 집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럴 수가, 물려받은 알버트를 그만 길에서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집사는 지그시 날 바라보더니 짧게 말했다.

"싫어하시더니 잘 되었군요. 알버트 주인님께서도 고양이를 자주 잃어버리셨지요."

집사는 내가 고양이를 갖다 버리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마디 덧붙였다.

"알버트는 그래도 늘 집을 잘 찾아왔답니다."

"네?"

"고양이 이름말입니다. 알버트. 알버트 주인님이 8번만에 다시 찾으시면서 그렇게 고양이 이름을 지으셨죠. 그 고양이, 30년동안 한번도 주인님 곁을 떠난 적이 없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야옹하고 발치에서 소리가 났다. 알버트였다.

"제 말이 맞지요? 30년동안 한번도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답니다."

"30년? 알버트가?"

"네."

집사는 알버트를 번쩍 들어올리고는 알버트에게 간식을 주었다.

"고양이 생명은 9개라죠? 전 주인님이 그렇게 자주 말씀하시곤 했죠."

"잠깐만, 애슐리. 그럼 알버트가 언제부터 알버트 삼촌옆에 있었단 소리에요?"
 
"주인님이 자수성가하실 무렵이 아마 고향을 떠난 후였죠? 그때부터 주인님을 모셨으니 아마 제가 알버트보다 좀 더 뒤에 들어왔을 겁니다. 그렇지? 알버트?"

그 말에 알버트는 딱 한마디를 했다.

"야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