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 오시게

어여 오시게

흰 옷에 꽃달고 어여 오시게

마냥 아이인 듯 웃으며 그리 오시게

 

흐린 날씨에 갈모를 쓰고

맑은 날씨에 깔깔한 모시옷 깔끔히 다려 입고

그리 오시게

손님인 양 웃으며 문 열고 오시게

 

언제나 오려나

문열고 기다리는 내 심정 그대 아는가.

오래 전 남남지간이 되었건만

그래도 나는 문 열고 그대를 기다리네.

 

낮이든 밤이든

혹독한 여름이건 얼어붙는 겨울이건

나는 문열고 그대를 기다리네

 

첫째가 불평하네

어찌 그리 기다리십니까.

제가 안 보이시는가요.

 

그 불평을 왜 난들 모르겠는가.

부모자식간 인연을 끊고 나간

그대가 그래도 보고 싶어

문열고 밖을 내다보네

 

그대 재산을 탕진했다 이야기 들었지.

그래도 언젠가 집에 돌아오고 싶어서

갈모 따로 챙겨놓고

모시옷 따로 챙겨놓았다는 이야기 들었지.

 

짐꾸러미 한켠에 놓인 그 갈모, 모시옷

깨끗이 입고 오는 날.

나는 소를 잡고 잔치를 벌리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돌아오거라.

흰 옷에 흰 민들레를 달고 그리 오거라.

 

불평하는 이 있으면

내 이렇게 말하리.

내게는 죽은 사람이었던 아들이

돌아왔는데 어찌 소를 아끼리.

 

어여 오시게 어여 오시게

아드님 어서 오시게

그동안 고생해서 마른 몸에

기름진 것을 먹여 살을 찌우고

거친 머리에는 아주까리 기름을 발라

다시 보지 못한 내 아들의 얼굴을 보겠네.

 

어여 오시게 어여 오시게

집 문 앞을 서성거리는 마음 붙잡고

어여 오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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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평야의 소녀.

귀걸이가 달랑달랑거리고, 웃음을 매단채 술달린 옷을 나풀거리네.

아버지 태양을 향해 손을 내밀고

어머니 달을 향해 뛰어오른다.

술달린 옷 끝에 희망을 달고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강한 힘을 반지마냥 조롱조롱 끼웠네

 

소식을 전하는 까막새야

소녀에게 내 연가를 전해다오

그의 아리따운 연인은 저 먼 전쟁터에서

소녀의 춤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연인마냥 잘 뛰어오르던 청년은

잘생긴 해골이 되어서

강가에서 쉬고 있다네

 

까막새야 까막새야

전해다오.

해골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평야를 지배하던 청년의 이야기를.

잘생긴 해골이 아니라 청년의 이야기를.

 

아무리 잘 생겨봐도

해골은 해골인 것을

희망은 없고 절망만이 남은 이 골짜기의 이야기를

싹 다 빼버리고

연인의 이야기를 전해다오.

 

그 잘생긴 젊은이는 또 다른 골짜기를 향해서

가다가다 하다보니 그냥 까맣게

돌아오는 길을 잊었다고

그렇게 전해다오.

 

소녀여

눈물 짓지 말아다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땅에 반해

널 잊은 것이라고.

 

청년은 언젠가 돌아오리라.

사랑하는 소녀가 늙어 죽어

역시 예쁜 해골되면

그 해골 옆에 묻히기 위해서

달그락 달그락 뼈 울리는 소리를 내며

소녀의 뼈옆에 묻힐 것이라고.

 

지극하신 달 어머님이 지켜봐주시겠지.

그러니 소녀야, 울지 말고

오늘도 평야에서 하늘을 향해 뜀뛰기를 해다오.

전쟁은 마냥 없는 이야기.

연인은 언젠가 돌아올 것이고, 그때까지 너는

반지를 조롱조롱 낀채로 하늘을 향해 뛰어다오.

 

나의 사랑.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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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루 꼬박 진통 끝에

아이는 태어나지만

태어난다고 다 끝은 아닌 것처럼.

젖을 물린 후 요람에서 잠이 든 아이를 하루 진통보다 더한 고통과 싸워가며

키운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외로운 일인가.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되도록 키운다는 것.

그 모든 고통은 손끝으로 온다.

아이는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해 어머니 주위를 뱅뱅 돌고

아쉬운 마음에 차라리 아이 때 모유를 더 먹일 걸, 하고 걱정하는 어머니.

당신이 그런 광경을 보았다면

차라리 아이 낳지 말았으면 하였을 걸.

그 아이가 어머니에게

왜 낳았냐고 비명처럼 내뱉을 때

당신은 도대체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괴로워하였으리라.

그래서 고통이 온 손끝을, 색깔이 바래가는 손끝을

봉숭아 꽃물로 물들이려 했겠지.

하지만 그것뿐이었겠는가.

그 수많은 고통 끝에 겪는 채머리질에

철없는 자식조차 깨닫기 시작하는 것이 유일한 위안일까.

아니 위안이 아닐 것이다.

어미란 자식을 키우며 제 살을 깎아먹고 있는데

자식은 그 중 일부만 보고 있을 뿐이다.

말로 종합병원 가라고 이야기하는 자식.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병이 온 몸에 온 당신은

그저 웃기만 할뿐이네.

오늘 오후부터 내일 오후까지 진통했던 당신에게

나 낳기 전 시간을 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나이 먹어가고.

당신께서도 나이를 먹어가네.

부디 건강하시고

함께 같이 또 20년을 살아계셨으면.

어머니.

 

 

20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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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범인을 붙잡던 그로서는 살인범과 같이 있는 것이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뭔가가 있었다. 어쩌면 이 요양원에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알고 있지만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 아니 그 복수해야 할 원인에 대해서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걸 물어봐야했다.

 

선생님.”

 

최대한 어조를 상냥하게 하면서 의사에게 약을 받고 오는 그에게 그렇게 접근해보았다.

 

뭔놈의 얼어죽을 선생님.”

 

[그 사람]은 냉랭하게 대꾸했다.

 

자네 답지 않구만. 그 눈빛은 자주 보던 눈빛이야. 뭔가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이해타산적인 눈초리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야.”

 

실패했다.

하지만 한번 더 시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다가갔다. 물론 나쁜 쪽으로 질문하는 거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렇게 물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만.”

 

그의 말에 [그 사람]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

 

어떻게 해서 따님을 살해할 수 있었던 겁니까. 그리고 왜...”

 

그 말에 [그 사람]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짭새라서 뭐가 달라도 달라요. 그렇지. 그렇게 질문하는 게 정석이겠지. 자신의 궁금한 건 숨기고, 알아낼 건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마음에 들어. 그 질문 말이야.”

 

“......”

 

하지만 이건 어떤가. 나는 그 날 요양원 밖을 나가지 않았어. 자네도 알지 않나. 요양원 문은 항상 닫혀 있다는 거.”

 

하지만!”

 

문제는 돈이야. 자넨 복수하기 위해서 친구의 아버지를 설찔렀지. 그리고 전직은 경찰이고. 내가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 않나? 결론은 돈. 무슨 짓거리를 해도 무조건 돈 덕분이지. 알리바이를 어떤 걸 대더라도 돈이 최우선이라네.”

“......”

 

길준은 할 말을 잃었다.

 

돈은 세상의 신이야. 모든 걸 지배하지. 자네가 왜 독방에서 2인실로. 그것도 나하고 같이 쓰게 된건지 아나? 바로 내가 돈을 주고 여기 놈들한테 부탁했기 때문이지.”

 

“......”

 

난 사람을 안 믿어.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돼. 그렇다고 내가 조폭이나 뭐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진 말게.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돼. 딸네미는 별 거 아냐. 그 앤 커피를 뒤집어쓰기만 한 건 아냐. 내가 흉도 지도록 좀 해놨지. 사인은 아마도 파상풍일거야. 설마하니 죽을 줄은 몰랐지만. 안 나가도 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가능하지. 살인은 아니더라도 살인 교사범은 될 수 있을 거야. 자네 친구 말이야.”

 

뜬금없는 폭탄 발언에 함길준의 목에 핏줄이 솟았다.

 

어떻게...”

 

왜 모르겠나. 내 인맥은 보기보다 넓어. 경찰에게 돈 쥐어준 게 한번 두 번인줄 아나. 특히나 여자문제 꼬이면 더 문제가 생기지. 임신한 상태로 괜히 죽은 게 아니야. 자넨 자네 마누라만 보이지? 생각보다 여자는 복잡하다네. 남자랑은 달라.”

 

길준이 멍하게 있자, [그 사람]은 길준의 어깨를 툭 쳤다.

 

자네 부인은 생각보다 깨끗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길준은 이내 이성을 잃고 [그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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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내의 환영은 계속 그를 괴롭혔다.

손가락은 벽 저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고, 아기는 그녀의 품에 안긴 채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바랐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서 요양원에 갇혀 있는 것보다 그게 더 괴로웠다. 어차피 부부는 남이라곤 하지만, 그에게 아내는 남 이상의 존재였다.

영원히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반쪽.

 

그는 요양원 침대에 누워서 도대체 사건이 얼마나 어떻게 진행되었었는지 머리로 복기했다.

그 당시 상처로 본다면 심장 관통, 복부 관통.

태아는 유산, 아내는 심장관통으로 즉사.

시체에 나타난 시반은 병률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손가락은 도대체 무얼 말하고 있는가.

무엇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가. 그것을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병률을 찌르려고 했던 칼은 어설픈 솜씨로 인해서 엉뚱한 곳을 찔렀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자신은 아내의 손가락을 보면서 계속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자신이 요양원에 들어와서 약을 먹으며 멍한 정신으로 지내고 있던 날이었다. 사는 게 귀찮아져서 달력의 날짜도 세지 않던 것이 그때쯤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었다. 의사를 계속 만나게 해달라면서 접수부에 성가시게 매달려 있었던 그의 눈이 묘하게 번쩍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계속 관찰하기 시작했다. 보통 안정제나 신경정신과 약을 먹을 경우 정신이 멍해지고 약기운으로 인해서 혀가 꼬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발음도 정확했고 가끔 의사와 만나서 농담따먹기까지 하는 걸 보면 약을 전혀 복용하지 않는다는 걸 그는 곧 깨달았다.

어느 날은 복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의사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복용하라고 하면서 약을 [그 사람]에게 억지로 먹였다. 하지만 [그 사람]은 혀 사이에 약을 끼워놓았다가 의사가 사라지자 약을 그대로 뱉었다. 그리고는 얼른 창가에 있는 화분에 약을 묻어버렸다.

 

의사 선생님이 아시면 뭐라고 하시겠는데요?”

 

그의 말에 [그 사람]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놈은 의사가 아냐. 그러니까 안다고 해도 상관없지.”

 

하지만...”

 

자네도 공범이야. 만약 자네가 이야기를 흘린다면 난 자네가 더 미쳐서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만이거든. 나야 그놈들이 알아주는 똑똑한 정신의 사나이니까 말이야.”

 

선생님은 아프신게 아니로군요.”

 

당연하지. 내가 아프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저놈들도 의사는 아니지. 그리고 자네도 미친 게 아니고 말이야.”

 

그는 차라리 미친 것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미치지 않았다면 어째서 20년지기를 향해서 칼을 뽑을 수가 있으며, 그 손가락에 의해서 분노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남자는 자신을 향해서 손가락을 까닥까닥 해보였다.

 

하지만 제 눈에는 아내의 유령이 보입니다.”

 

그럼 살짝 미쳤을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 사람은 아주 돈이 많은 것 같았다. 감시원 각각을 돈으로 구워삶아서 요양원 뒷문을 알아냈고, 그 다음에는 두 사람이 각각 쓰던 방을 2인실로 바꿨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감시원을 유유히 따돌리고 요양원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고, 면회온 가족의 얼굴에 뜨거운 커피를 부었다고 했다,

 

왜 내꼴이 우습냐?”

 

마침 같은 날 면회가 잡혀 있어서, 어머니를 뵙기 위해서 나온 그를 향해 그 남자가 내 뱉은 말이었다.

 

딸년이라고 해서 다를 줄 알았더니...유산 상속을 해주지 않으면 내보내지 않겠다고!”

 

“......”

 

날 이런 곳에 가둬놓고 그런 말을 할 배짱이 있다는 게 웃긴 것들이야.”

 

그날이었다. 그 남자의 딸이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가벼운 상처가 크게 덧나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 남자는 울지도 웃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러길래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고 했는데...”

 

아내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그 남자]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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